결국 오나라를 생각하면 두고두고 안타까운 것이 군주, 도독, 충신 할 것 없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 요절을 했다는 얄궃은 사실입니다. 손등과 태자사우의 면면을 보자면 더더욱 오나라의 마지막이 너무 아쉽습니다만... 그래서 삼국시대의 종말을 다 지켜보고 난 뒤에 몰려오는 회한이 자꾸 다시 삼국지를 꺼내 읽게 만드는 매력일지도 모르겠어요. 역사 아래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번 영상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손씨가문의 수장이자 오나라의 황제에 올랐던 손권이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입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젋은 시절에 그 수많은 호족세력들과 그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온갖 상소와 기싸움과 살벌했던 신경전과 협잡과 줄서기의 아수라장을 그나마 일축해가며 위촉과 다퉜었다는 게 경이롭게 보일 지경입니다. 위촉오 세 나라는 정말이지 절묘하게 균형이 맞는, 너무 다른 세 세력들이었군요. 삼국지라는 콘텐츠가 마르지 않는 우물인 이유가 그 다채로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이번 영상도 감사합니다~
결국 지리적 한계가 크죠 오나라땅은 수당시기는 돼야 주요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송나라때 되면 핵심 경제중심지가 되지만, 삼국시기엔 변방 중 변방이였습니다. 왜냐면 지금 강남지방은 논과 호수로 수리시설이 정리되었지만 저당시 강남지방은 대부분이 늪지대였거든요. 그래서 흡혈촌충, 모기 등 각종 병충해가 많고, 전염병도 많아서 요절을 할 가능성이 중원지역에 비해 엄청 높았습니다. 그래서 페니실린 등 각종 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열대지방은 인구성장률이 매우 낮았고, 아열대지방 역시 지금에 비해 크게 낮아 오나라 역시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었습니다.
둘이 경쟁을 시키고 그 경쟁을 이용해서 호족들을 대거 숙청하고 왕권을 안정화 시킨다하는 계획이 있었을 수도 있겠으며 아예 엄청 어린 아들을 내세운 뒤에 자신이 아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상왕이 되거나 한 뒤에 다시 어린 왕을 조종해서 왕을 능멸한다는 핑계로 2차 숙청을 해버린다 하는...조선 태종이 심온을 숙청했던 방식이죠...더 큰 계획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 모두 손권이 오래 살아야 가능한 것이죠...아니면 손권이 차기 후계자가 성년이 될때까지 오래 못 산다 쳐도 믿을 만한 탁고대신(제갈공명 같은...)에게 맡긴 후에 숙청 작업을 이어가면 된다 하는 뭐 그런 계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상은 손권 본인만 알겠죠.
개인적으로는 손등이 요절할걸 계산 못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때가 있음. 그러니까 순수하게 저 2명의 태자에게 같은 대우를 해주고 파벌경쟁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싶을때가 있음. 어차피 진짜 태자가 죽었으니 진짜 유능한 녀석을 찾고 싶으니까.. 하지만 손권의 예상과 다르게 모든게 너무 크게 흘러갔음... 가끔보면 숙종의 환국으로 인한 후기 조선의 정치적 불균형을 그대로 본 느낌이 든달까..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치매 증세로 보입니다 2:00 처럼 노망이 나더라도 내릴수 있습니다 늘 상태가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그 증세가 점차 심각해 지는거죠 아마 특유의 불같은 성격과 술을 즐거하는거랑 첫째아들 손등의 사망에 의한 충격등이 발병 원인이 된것 같습니다 또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이 의심이 심해진다는 점에서 대량 숙청이 이루어 진것로도 보여집니다 저는 정치적 측면 보다는 의학적 측면을 무게를 두고싶네요
이궁의 변이 황권강화를 위한 간사한 계략이었다면, 숙청을 해도 너무 많이 해버렸고, 손화 손패 둘다 버리고 7살 난 어린애를 태자로 세우는게 정말 뻘짓이었죠. 손권이 10년이라도 더 살 수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지금 현대 시점에서도 손권은 엄청나게 장수를 한 상황인데...
손권의 노망설이 나오는 이유도 갑작스럽게 죽은 형의 자리를 어린 나이에 물려 받아 불안한 동오를 정치적으로 안정화 시키며 삼국지내에서는 물론 중국 역사에 따져도 손꼽을 만한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보여준 것에 비해 이궁의 변은 이 모습과 정반대되는 모습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궁의 변에서 손권이 보여준 모습은 기존의 손권의 행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의도했다기에는 아무리 왕권강화가 목적이라지만 도가 지나쳐 오나라 멸망의 단초를 마련했고, 두 왕자 간의 경쟁이 목적이었다면 핑계거리야 많았기에 태자의 지목을 늦췄어도 됐을 요량이죠. 그래서 손권이 의도했다기에는 이전까지 손권이 보여준 정치적 역량에 비해 너무나도 허술한 점이 많기에 저는 노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권이 나이가 들면서 더이상 예전처럼 총명하고 현명한 판단을 할 능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세종대왕께서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전까지의 정치적 행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곤 하셨는데 손권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거기다 자수성가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유의 남의 말을 잘 안듣고 자기 고집이 강해지는 모습이 나이가 들면서 더 강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세병제가 있을정도로 3국중 호족들의 입김이 가장 강했던게 손오의 사정을 생각하면 손권의 판단은 매우 멍청한 판단이였죠. 특히 호족들의 대표격인 육손은 공신에다 영향력도 컸지만 그렇다고 권세를 휘두르는 타입도 아니였기에 역으로 그에게 위임하는 선택이 정답이였음. 역으로 육손이 필요했던거죠. 명문호족+압도적인 명성으로 대호족들을 컨트롤 할 수 있던건 육손 뿐이였죠. 육손을 고명대신으로 해서 혼란을 잠재우고 정국을 안정시켰다면 조위의 정세를 보아가면서 촉한과 손잡고 공세를 필 수도 있었다 봅니다. 특히 사마사, 사마소형제가 지속적인 반란에 시달렸던 점, 손권의 예상대로 제갈각은 함량미달이였던 점, 또 그래서 손휴 이전까지 손오의 정치가 막장으로 갔던 점 고려하면 이궁의 변은 손권 스스로 손오의 관짝에 못질 시작한것과 다름없다 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 형 자신 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후계자 계승을 겪으며 후계 문제로 장난질 치는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체득하지 못한게 문제인거 같네요. 원소 일가의 일도 말로만 들었지 조조처럼 실제로 겪어본 일이 아니고... 아버지와 헝의 신하들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승계된 것만 보고 경각심이 없었던거 같음...
세계 역사를 보면 지도자의 입장에서 자식들이 너무 어리거나 후계구도가 불안하게 보이면 본인이 죽기 전에 정말 미친 척하면서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신하들이나 제후들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손권 본인이 죽은 이후의 시대를 매우 염려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당시 상황이 사마씨가 조씨 일가를 멸족 시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손권 입장에선 다른 나라 한테 지면 왕이나 호족이라도 인정해 주지만 내부반란 일어나면 멸족이니까요. 게다가 오나라에 비해 위나라의 왕권이 훨씬 강했는데 조씨 일가가 멸족 당한 겁니다. 손권 입장에선 다른 나라 잔쟁 보단 내부반란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죠
최근에 태조왕건 보니까 비슷한 상황이 있네요 왕건은 첫아들이 어릴때 태자 책봉을 했는데 견훤은 아들들을 경쟁시키고 첫째가 마흔이 넘을때도 태자책봉을 미루다가 결국 신검파가 경쟁자인 막내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켜버림 신하들도 태자 후보 따라 갈라져서 싸움 왕권제에다 호족문화인데 태자 경쟁시키건 최악의 수인듯
지역 호족들 미는 왕자가 달라서 너무 밀면 갈라질 가능성이 있죠. 후백제 북쪽 호족들이랑 남쪽 호족들 각각 미는게 달랐는데 나주뺏기면서 힘이 더 빠져서 그거 균형맞춘다고 금강을 더 밀어준 것도 있을 꺼라는 영상을 본거같습니다. 왕건도 통일전에 죽었으면 쪼개질 가능성이 컷죠
이궁의 변, 오빠들이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사건이죠. 손권 분명히 그 능력이 의심할 바 없지만 후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부분에서 한계가 분명하죠. 후계자를 잘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인격적으로나 능력으로나 출중했던 장남 손등의 죽음이 나머지 아들들의 능력에 대한 손권의 불신을 키웠다고 봅니다. 조앙의 위나라와 손등의 오나라 유선의 촉나라가 2세경쟁을 하는 삼국지도 재밌을것 같은데 참 아쉽네요.
사실 한국 역사였으면 K 사극 한편감이죠. 손권이 손화, 손패를 동일 대우한거까지는 손권의 태자 교육 철학으로 봐줄 순 있습니다. 근데 이걸 가지고 육손이 손권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보는데, 손권이 적통이 아닌데 적통 타령을 해버린거죠. 그것도 딱딱하게 상소로 해버렸지. 하필 육손은 손책의 사위인데, 손책의 사위가 적통을 중시하라고 얘기한다고? 더구나 손책의 아들 손소가 살아있는데? 형주 탈환의 공훈, 호족 명문가의 육손이 해버렸으니 그 무게감이 너무 크게 손권의 역린을 건드려 버린거죠. 1등 호족이 태자를 지지해준다는 고마움 보다는 방계왕인 자신의 위치가 더 크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물론 손권이 잘 했다는건 아니지만, 조직 문화의 생리를 고려할 때, 손권 입장에서는 육손의 이 상소 한 방은 너무 자존심 터지는 문제가 아니였을까? 옳곧은 선비가 많이 타는 귀향 테크죠. 육손의 몰락이 트리거가 되서 명문 호족들과 신진 사대부의 세력 싸움, 손노반-왕부인의 궁중 암투까지 더해지면서 카오스가 펼쳐지죠. 여기서 손패도 그럴수록 몸가짐을 조심했어야 하는데, 본인도 제위의 욕심을 내다가 자결당해버리고, 그러니까 손패에게 베팅했던 손노반도 가만히 있을수가 없지요. 이러다간 왕부인한테 평생 물어뜯히게 생겼거든요. 결국 결과적으로는 어이없게 손량에게 제위가 갔는데, 그나마 손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혼란을 겪은 손패가 왕위를 이으면 어디 가만히 있겠는가? 현재 이해관계가 형성된 적이 없는 손량에게 넘기는게 가장 평화로운 선택이 아닐까? 그런 고민이 있었을지도요. 근데 임종 직전에 생각해보니까, 왕실 내부만 고려하면 손량인데, 오나라의 대외 관계를 생각해보면 오나라의 왕권은 역시 명문 호족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걸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죽기 직전에 폐위된 손화를 다시 언급하면서 후세에 손가락질 받는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인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손권은 능력은 있는 인물은 맞는데 항상보면 의욕적이게 일을 추진하기는 하는데 그 벌여놓은일들이 자기선에서 수습이 안되는 일들뿐이었다는게 문제. 의욕적으로 형주를 먹겠다고 달려들어서 전체까진 아니어도 먹은건 좋았으나 관우가 죽음으로써 진짜 이릉에서 못막았으면 오나라는 끝이었을 상황까지오고 그나마 먹은 형주땅은 두고두고 문제거리로 작용함. 이궁의 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게 첨에는 충성경쟁+택현자를 할려고 했었던듯하나 자기 술버릇처럼 기분파적인 면이 강해서 잘 조율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이리저리 인물들 쳐내다보니 정작 오나라를 이끌고 후주를 받쳐줄 인물들이 사라지고 손노반같은 능력은 없는데 권력을 탐하는이들만 남게되다보니 결국에는 후계도 망...그냥 일만 열심히 벌여놓고 수습은 어떻게 할줄 모르는 전형적인 스타일이었음.
흔히들 놓치는 부분이 손권은 정복군주가 아닙니다. 정복군주의 최대 베네핏은 압도적인 힘입니다. 이부분은 형인 손책이 해당되죠. 손권은 기존 개척지를 상속받은 입장인겁니다. 이는 오나라와 같이 호족이 득세하는 곳에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단순히 조조의 형주정벌때도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군주제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항복'일 주장하고 있죠. 항복은 곧 본인이 모시는 군주의 몰락인데 그것을 언급했다는 것은 손오는 조조가 그만큼 강력했다는 것과 더불어 호족의 자기보신의 성격이 짙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권은 자신의 힘을 온전히 기를 땅이 필요했고 그것이 형주였다는 것이지요. 여러가지 사건으로 형주를 손에 넣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최대 수훈자 중 하나였던 여몽이 급사해버리고 말죠. 여몽은 대호족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뒷일을 맡은 사람은 대호족 육손입니다. 호족에 대해 탐탁치않아했지만 능력과 결과로 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능력있고 덕망있던 후계였던 손등이 사망합니다. 아마 여기서 곪았던부분이 터졌을꺼라 생각됩니다. 과연 내가 죽고난 이후 다음 황제는 대호족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손권이 기획한게 이궁의 변의 시작 3남 태자와 4남 여지 였을 듯합니다. 그런데 손권의 생각과는 달리 3남의 능력이 굉장히 모자랐고, 4남도 딱히 능력이 있지는 않았죠. 그리고 웃기게도 3,4남도 본인들의 능력이 아닌 호족들의 핸들링 대상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아버린 손권은 '에이 C8! 어디까지 개판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보고있다가 실망해서 싸그리다 쓸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주저리주지리 썼는데 결론적으로는 손권은 오랫동안 호족의 등쌀에 싸워왔고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기회를 노려왔으나 마지막에 결국 반쯤 실패했다. 정도로 생각하는 사건이 이궁의 변입니다.
손등이 죽은건 죽은거고 그냥 손화를 밀어주면 되지 손패랑 경쟁을 왜 시키냐 라고들 많이 생각하시지만 이들의 출생년도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손등 209년생, 손화 224년생.. 여기서부터 좀 쎄하죠? 손권이 182년생이니 손등도 당시로는 꽤나 늦게 본 아들이고 손화면 이미 늦둥이입니다. 먼저 간 조조, 유비도 60대에 사망했는데 손등이 사망할 241년, 손권은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손화는 17살이죠. 그래도 17살이면 손권도 권력을 잡은 나이인데 뭐가 문제냐고 하실수 있겠지만 문제는 224년생 동갑내기 아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게 손패죠. 모든 조건이 완벽한 태자가 죽은 마당에 비슷한 나이의 아들 둘이 있으면 한번쯤 경쟁시켜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근데 신기한게 삼국 모두 군주가 죽기전에 신하들에게 태자들을 부탁한거 보면 이궁의 변이 괜히 나온게 아닌거 같네요 난세를 거치면서 수 당 시대때까지 계속된 혼란들을보면 시대 자체에 황권이 약해졌다고 볼수있습니다 뭐 손권이 애초에 명분 없는 이유로 칭제를 하였고 호족들의 추대를 받고 황제가 되었으니 호족들의 입김이 클수밖에요 그래서 매번 호족들중에 손권을 아주 치켜세워주는 호족들을 총애하는 한편 육손이나 우번을 한편으로는 심기 불편해하는게 있었을겁니다. 특히 외부인사와 사병집단으로 차별하는 근거의 기록이 보입니다. 제갈각이 단양을 산월족을 잡고 안정화 하자 손권은 나중에 후계자 보좌시킬려할때 망설였다는걸 보았을때... 흠..
아마 젊엇을때는 태사자랑 싸우고 잇엇을 거임. 대충 기록을 보면 젊을땐 유표의 조카인 유반 밑에서 일햇는데 이 인간이 장사에서 예장으로 확장하던 입장이엿다고 함. 유표의 승인은 받앗을거란 걸 고려한다면 이미자랑 다르게 유표도 야심이 잇어서 나름 세력 확장 욕심이 잇엇는데 이때 손책이 이놈들 막을려고 예장에다가 보낸 게 태사자임. 즉 젊을 적에는 둘이 거기서 쌈질하고 잇엇다고...
단순한 호족정리를 위한 쇼였다고 보기에는 그것 때문에 아들 2명이 죽어나감. 심지어 호족정리의 가장 큰 이유는 권력 집중에 의한 중앙집권화인데 그걸 행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음. 결국 이건 자동차를 달리기 위헤서도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닌 밴치프레스 용도로 쓰기 위해 사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인거임. 차라리 막내아들을 총애했다고 보는게 맞는 거 같음. 이성계도 그랬고 이런경우는 많음. 공이 있는 거랑 누굴 좋아하는게 꼭 동일하진 않음.
노망은 절대 아니었다고 봄. 분명 자기 뒷생각까지 하면서 계산 해서 벌인 후계자 정리작업임. 성공하면 태종각도 볼 수 있었고 근데 대충 공신세력 완벽히 정리하기 전에 죽어버렸고 그나마 손량이 곱게 즉위했으면 절반의 성공이었는데 손침이라는 변수가 터져버리고 그러다 우야무야 손호가 즉위해버려서 진짜 망가져버린거. 아 손호를 손패랑 헷갈리네..
충성경쟁을 시키면서도 나름 후계를 명확히 했던 조조의 정치능력이랑 비교가 되는 사건같네요.
어리석었든 간사했든 결국 사건만 벌려놓고 뒷수습 할 능력이 없었던 손권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오나라는 지방호족들이 주를 이루는 나라이기에 좌지우지된거 같습니다. 고려만 봐도 왕건이 결혼을 ..ㅋㅋ 위나라 조조가 당대 최고 지략가인 이유겠죠 ㅋㅋㅋ
@@유후2 다른 무엇보다 사병이 ok되는게 매우 크죠.
@@유후2
아니 그냥 손권이 병신이라 그런거임ㅋ
@@유후2조조는 조씨일가들이 창업멤버라서
이궁의 변은 결과물이 너무 처참해서 의도가 뭐였는지는 상관없어져버린듯..
결국 오나라를 생각하면 두고두고 안타까운 것이 군주, 도독, 충신 할 것 없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 요절을 했다는 얄궃은 사실입니다. 손등과 태자사우의 면면을 보자면 더더욱 오나라의 마지막이 너무 아쉽습니다만... 그래서 삼국시대의 종말을 다 지켜보고 난 뒤에 몰려오는 회한이 자꾸 다시 삼국지를 꺼내 읽게 만드는 매력일지도 모르겠어요. 역사 아래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 되니까요. 그런데 이번 영상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손씨가문의 수장이자 오나라의 황제에 올랐던 손권이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입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젋은 시절에 그 수많은 호족세력들과 그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온갖 상소와 기싸움과 살벌했던 신경전과 협잡과 줄서기의 아수라장을 그나마 일축해가며 위촉과 다퉜었다는 게 경이롭게 보일 지경입니다. 위촉오 세 나라는 정말이지 절묘하게 균형이 맞는, 너무 다른 세 세력들이었군요. 삼국지라는 콘텐츠가 마르지 않는 우물인 이유가 그 다채로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이번 영상도 감사합니다~
결국 지리적 한계가 크죠
오나라땅은 수당시기는 돼야 주요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송나라때 되면 핵심 경제중심지가 되지만, 삼국시기엔 변방 중 변방이였습니다. 왜냐면 지금 강남지방은 논과 호수로 수리시설이 정리되었지만 저당시 강남지방은 대부분이 늪지대였거든요. 그래서 흡혈촌충, 모기 등 각종 병충해가 많고, 전염병도 많아서 요절을 할 가능성이 중원지역에 비해 엄청 높았습니다.
그래서 페니실린 등 각종 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열대지방은 인구성장률이 매우 낮았고, 아열대지방 역시 지금에 비해 크게 낮아 오나라 역시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었습니다.
아니 눈감고 듣고있는데 갑자기 중간에 호는 자x , ㅈ위 이러니까 움찔했자나요 ㅋㅋ 오늘도 좋은영상 보고갑니다👍
눈감고 손은 어디에 뒀나요?
별별역사 이후 최고의 채널입니다..밥먹을때마다 넘 잼잇게 보고있어요 항상감사합니다
빠른 업로드 속도에 반비례하는 깊은 퀄리티에서 내공이 느껴지십니다.
거기다 재미까지 챙기시니 기다리는 맛이 있습니다 꼭 대성하세요
이궁의변을 이렇게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형은 손찬이형이 처음이야 너무 좋다
원래 늙은 왕은 장성한 자기 아들을 견제하고 자기가 컨트롤 할수 있는 막내 아들을 중용한다
둘이 경쟁을 시키고 그 경쟁을 이용해서 호족들을 대거 숙청하고 왕권을 안정화 시킨다하는 계획이 있었을 수도 있겠으며 아예 엄청 어린 아들을 내세운 뒤에 자신이 아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상왕이 되거나 한 뒤에 다시 어린 왕을 조종해서 왕을 능멸한다는 핑계로 2차 숙청을 해버린다 하는...조선 태종이 심온을 숙청했던 방식이죠...더 큰 계획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 모두 손권이 오래 살아야 가능한 것이죠...아니면 손권이 차기 후계자가 성년이 될때까지 오래 못 산다 쳐도 믿을 만한 탁고대신(제갈공명 같은...)에게 맡긴 후에 숙청 작업을 이어가면 된다 하는 뭐 그런 계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상은 손권 본인만 알겠죠.
호족이 이끄는 세병들이 주력이었던 오나라에서 호족 숙청 잘못 손대면 권력기반이랑 국방이 한번에 날아가니깐... 결국엔 실패로 돌아간 후계 선정인거 같네요.
세병제가 존재할 정도로 왕권확립이 안되었던 손오와 조선의 사정은 다르죠
시대에 맞지 않는 방법입니다. 이궁의 변 이외에도 수많은 군벌이 후계자문제와 호족들과의 갈등이 시너지를 일으켜 망한 사례는 많은데 원소의 경우 본인이 그 갈등의 중심에 서서 철권통치하다 망했습니다..
삼국지의 무대에서 호족을 배제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afta-u8g 완전공감합니다. 실상 저 시대 힘을 갖고있던건 호족들이죠. 그래서 삼국지 게임으로 삼국지 시대를 논한다? ㄹㅇ 개소리임
손권은 이미 엄청 오래살았습니다.
그나이에 어린 황제를 세우고 황제가 클때까지 뒤에서 조종? 그것도 멍청한 짓이죠….
제갈량 사후 별관심 없던 내용이었는데.. 너무 잘 봤습니다~^^
위빠는 유비를 까고, 촉빠는 조조를 까지만, 오빠는 손권을 깐다는 그 사건
리중텐 교수님의 삼국지 해제책에 보면 손패쪽 파벌과 손화쪽 파벌이 완벽하다싶이 지역별 호족라인으로 나뉘더라고요 손권이 이궁을 이용해서 호족세력을 줄이고 중앙집권을 하려던 큰 그림이긴 일수도 있기는한데...
마무리가 개차반이니 노망난짓거리
문제는 이게 외부의 강력한적이 없는 상태이거나, 오나라의 군대가 적어도 세습제가 아닌 위나라같은 지방+중앙군 같은 시스템도 아닌지라, 진짜 이도저도 아닌 나라 멸망으로 가버린거죠.
삼국지 좋아하는 두아이아빠입니다. 유튜브 전업이신지 이집은 자주 업로드가 되어서 좋네요
개인적으로는 손등이 요절할걸 계산 못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때가 있음. 그러니까 순수하게 저 2명의 태자에게 같은 대우를 해주고 파벌경쟁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싶을때가 있음. 어차피 진짜 태자가 죽었으니 진짜 유능한 녀석을 찾고 싶으니까.. 하지만 손권의 예상과 다르게 모든게 너무 크게 흘러갔음... 가끔보면 숙종의 환국으로 인한 후기 조선의 정치적 불균형을 그대로 본 느낌이 든달까..
조조도 조비 조식을 경쟁시켰지만 중간에 한쪽을 택하죠. 왜 그랬을까요.
손권이 왕과 황제가 된 후 호족세력을 누르고 중앙집권화를 하고 싶었겠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었고..손화쪽 손을 들어준 뒤에 손화에 의해 집권화를 시키도록 도와줬어야한다고 봄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치매 증세로 보입니다 2:00 처럼 노망이 나더라도 내릴수 있습니다 늘 상태가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그 증세가 점차 심각해 지는거죠 아마 특유의 불같은 성격과 술을 즐거하는거랑 첫째아들 손등의 사망에 의한 충격등이 발병 원인이 된것 같습니다 또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이 의심이 심해진다는 점에서 대량 숙청이 이루어 진것로도 보여집니다 저는 정치적 측면 보다는 의학적 측면을 무게를 두고싶네요
이궁의 변이 황권강화를 위한 간사한 계략이었다면, 숙청을 해도 너무 많이 해버렸고, 손화 손패 둘다 버리고 7살 난 어린애를 태자로 세우는게 정말 뻘짓이었죠. 손권이 10년이라도 더 살 수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지금 현대 시점에서도 손권은 엄청나게 장수를 한 상황인데...
손권의 가장 재미났던 부분 최후가 저럴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영원한건 없지
손권의 노망설이 나오는 이유도 갑작스럽게 죽은 형의 자리를 어린 나이에 물려 받아 불안한 동오를 정치적으로 안정화 시키며 삼국지내에서는 물론 중국 역사에 따져도 손꼽을 만한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보여준 것에 비해 이궁의 변은 이 모습과 정반대되는 모습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궁의 변에서 손권이 보여준 모습은 기존의 손권의 행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의도했다기에는 아무리 왕권강화가 목적이라지만 도가 지나쳐 오나라 멸망의 단초를 마련했고, 두 왕자 간의 경쟁이 목적이었다면 핑계거리야 많았기에 태자의 지목을 늦췄어도 됐을 요량이죠. 그래서 손권이 의도했다기에는 이전까지 손권이 보여준 정치적 역량에 비해 너무나도 허술한 점이 많기에 저는 노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권이 나이가 들면서 더이상 예전처럼 총명하고 현명한 판단을 할 능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세종대왕께서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전까지의 정치적 행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곤 하셨는데 손권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거기다 자수성가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유의 남의 말을 잘 안듣고 자기 고집이 강해지는 모습이 나이가 들면서 더 강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의도적이었다면 간사했지만 영리하지는 못한것같네요;; 아니면 하다보니 일이 너무 커졌거나;; 이궁의 변을 설명하시는 유투버중에 의도적이라는 견해를 가지신 분은 처음이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재밌게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5:18 이거 때매 이거밖에 기억안남 ㅋㅋ
조선 숙종도 사화로 왕권강화하고 영조 정조대 왕권강화 시대로 이어지긴했는데 오나라는 호족 연합 국가 성격이고 조선은 중앙집권 완성국이었죠..
결론
장자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반드시 피바람이 분다.
조선 이성계의 장자 때도 그렇고
세종대왕 첫째 문종도 그러 했습니다.
세자의 어머니 중전도 없을 때 문종이 일찍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피바람이 일었죠.
세병제가 있을정도로 3국중 호족들의 입김이 가장 강했던게 손오의 사정을 생각하면 손권의 판단은 매우 멍청한 판단이였죠. 특히 호족들의 대표격인 육손은 공신에다 영향력도 컸지만 그렇다고 권세를 휘두르는 타입도 아니였기에 역으로 그에게 위임하는 선택이 정답이였음. 역으로 육손이 필요했던거죠. 명문호족+압도적인 명성으로 대호족들을 컨트롤 할 수 있던건 육손 뿐이였죠. 육손을 고명대신으로 해서 혼란을 잠재우고 정국을 안정시켰다면 조위의 정세를 보아가면서 촉한과 손잡고 공세를 필 수도 있었다 봅니다.
특히 사마사, 사마소형제가 지속적인 반란에 시달렸던 점, 손권의 예상대로 제갈각은 함량미달이였던 점, 또 그래서 손휴 이전까지 손오의 정치가 막장으로 갔던 점 고려하면 이궁의 변은 손권 스스로 손오의 관짝에 못질 시작한것과 다름없다 봅니다.
저도 이거 좀 알아봤는데 다른건 다 어케설명이되도 마지막에 개트롤짓까지 생각하면 그냥 노망이라고 밖에는 ...
아무래도 아버지 형 자신 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후계자 계승을 겪으며 후계 문제로 장난질 치는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체득하지 못한게 문제인거 같네요. 원소 일가의 일도 말로만 들었지 조조처럼 실제로 겪어본 일이 아니고... 아버지와 헝의 신하들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승계된 것만 보고 경각심이 없었던거 같음...
손권의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일을 저지르고 그 뒷감당은 나몰라라 식으로 툭 던지는 것이 큰 것 같습니다.
첫째 둘째를 일찍 잃고나니 셋째도 일찍 죽을까봐 노파심에 넷째한테도 보험들어놨다가 ㅈ댄거같음
코에이 삼국지 수많은 단점 중 하나가 정치력을 내정용으로만 쓴다는거...
그래서 이궁의변이던, 고평릉 사변이던, 팔왕의 난이건 정치 싸움을 만들 시스템이 부족함
오직 전투에만 몰빵임 ㅠㅠㅠ
세계 역사를 보면 지도자의 입장에서 자식들이 너무 어리거나 후계구도가 불안하게 보이면 본인이 죽기 전에 정말 미친 척하면서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신하들이나 제후들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제거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손권 본인이 죽은 이후의 시대를 매우 염려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졸라 재밌다 귀에 쏙쏙 박힘 ㅋ
숙청후 어린황제 올릴거면 오래살기라도하던가 올려놓고 뒷배가될 신흥세력, 구세력 다죽여놓고 지는 그냥 죽어버리니 야심있는황족한테 새끼사슴 그냥 던져놓은거지
장차남 간건 간거니까 확실하게 손화 몰빵치고 바로 세습작업을 들어가든 손패로 낚시질했을때 줄서는 애들 과감하게 죄다 뎅겅 해버렸어야 했는데 손화 손패 둘 다 여간 못마땅했었는 모양.. 그 못났다는 조비도 후사는 어떻게든 못박아두고 갔는데 오래도 사신 양반이 말년에 이렇게 장대한 똥을 뿌리고 갈줄은
당시 상황이 사마씨가 조씨 일가를 멸족 시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손권 입장에선 다른 나라 한테 지면 왕이나 호족이라도 인정해 주지만 내부반란 일어나면 멸족이니까요. 게다가 오나라에 비해 위나라의 왕권이 훨씬 강했는데 조씨 일가가 멸족 당한 겁니다. 손권 입장에선 다른 나라 잔쟁 보단 내부반란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죠
손권이 그동안 대호족들에 대해 쌓인 감정을 참고 있었던게 육손의 간언으로 폭발한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육손의 잘못이 있다면 올바른 정론일지라도 누가 어떤 지위의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르게 들릴수도 있다는걸 감안하지 않은것이죠.
섬네일 창천온라인의 손권 아닌가요? 진짜 개오랜만에 보네요
혹시 셋째아들도 요절할까 트라우마가 생긴건 아닐까요 그래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손패로 보험을 들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변은 변란이라는 거니까, 사고의 느낌이 강하고 쟁은 전쟁이라는건데
이 사건의 주도자가 두 태자가 아니라 손권이니만큼 쟁이라는 표현보다 변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태조왕건 보니까 비슷한 상황이 있네요
왕건은 첫아들이 어릴때 태자 책봉을 했는데
견훤은 아들들을 경쟁시키고 첫째가 마흔이 넘을때도 태자책봉을 미루다가 결국 신검파가 경쟁자인 막내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켜버림
신하들도 태자 후보 따라 갈라져서 싸움
왕권제에다 호족문화인데 태자 경쟁시키건 최악의 수인듯
지역 호족들 미는 왕자가 달라서 너무 밀면 갈라질 가능성이 있죠. 후백제 북쪽 호족들이랑 남쪽 호족들 각각 미는게 달랐는데 나주뺏기면서 힘이 더 빠져서 그거 균형맞춘다고 금강을 더 밀어준 것도 있을 꺼라는 영상을 본거같습니다. 왕건도 통일전에 죽었으면 쪼개질 가능성이 컷죠
고려도 호족때문에 숙청전까지 개판임
이궁의 변, 오빠들이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사건이죠. 손권 분명히 그 능력이 의심할 바 없지만 후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한 부분에서 한계가 분명하죠. 후계자를 잘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인격적으로나 능력으로나 출중했던 장남 손등의 죽음이 나머지 아들들의 능력에 대한 손권의 불신을 키웠다고 봅니다. 조앙의 위나라와 손등의 오나라 유선의 촉나라가 2세경쟁을 하는 삼국지도 재밌을것 같은데 참 아쉽네요.
도베.. 아니 손찬님 오늘도 영상 잘 보고 갑니다.
사실 한국 역사였으면 K 사극 한편감이죠. 손권이 손화, 손패를 동일 대우한거까지는 손권의 태자 교육 철학으로 봐줄 순 있습니다. 근데 이걸 가지고 육손이 손권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보는데, 손권이 적통이 아닌데 적통 타령을 해버린거죠. 그것도 딱딱하게 상소로 해버렸지. 하필 육손은 손책의 사위인데, 손책의 사위가 적통을 중시하라고 얘기한다고? 더구나 손책의 아들 손소가 살아있는데? 형주 탈환의 공훈, 호족 명문가의 육손이 해버렸으니 그 무게감이 너무 크게 손권의 역린을 건드려 버린거죠. 1등 호족이 태자를 지지해준다는 고마움 보다는 방계왕인 자신의 위치가 더 크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물론 손권이 잘 했다는건 아니지만, 조직 문화의 생리를 고려할 때, 손권 입장에서는 육손의 이 상소 한 방은 너무 자존심 터지는 문제가 아니였을까? 옳곧은 선비가 많이 타는 귀향 테크죠.
육손의 몰락이 트리거가 되서 명문 호족들과 신진 사대부의 세력 싸움, 손노반-왕부인의 궁중 암투까지 더해지면서 카오스가 펼쳐지죠. 여기서 손패도 그럴수록 몸가짐을 조심했어야 하는데, 본인도 제위의 욕심을 내다가 자결당해버리고, 그러니까 손패에게 베팅했던 손노반도 가만히 있을수가 없지요. 이러다간 왕부인한테 평생 물어뜯히게 생겼거든요.
결국 결과적으로는 어이없게 손량에게 제위가 갔는데, 그나마 손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혼란을 겪은 손패가 왕위를 이으면 어디 가만히 있겠는가? 현재 이해관계가 형성된 적이 없는 손량에게 넘기는게 가장 평화로운 선택이 아닐까? 그런 고민이 있었을지도요.
근데 임종 직전에 생각해보니까, 왕실 내부만 고려하면 손량인데, 오나라의 대외 관계를 생각해보면 오나라의 왕권은 역시 명문 호족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걸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죽기 직전에 폐위된 손화를 다시 언급하면서 후세에 손가락질 받는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인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육손은 이릉대전에서 촉한을 사실상 멸망의길로 가게 했지만
본인은 주군을 잘못 섬기는 바람에 비명횡사 함
5:17 5:24
웃긴 건 말이죠... 손량의 뒤를 이은 임금이 다시 손권 아들이라는 거...
세병제와 호족제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군주부터 주연까지의 대도독, 인재들이 풍부했지만 끝내 말이 안타까웠죠.
첫 태자가 잘 이어받았어도...
오나라 요절징크스만 없었어도...
죽을때가 되어서야 손권이 손화한테 너무 한거 같다고 했다지만 결국 그애기 때문에 손화도 죽게되죠
손권은 능력은 있는 인물은 맞는데 항상보면 의욕적이게 일을 추진하기는 하는데 그 벌여놓은일들이 자기선에서 수습이 안되는 일들뿐이었다는게 문제. 의욕적으로 형주를 먹겠다고 달려들어서 전체까진 아니어도 먹은건 좋았으나 관우가 죽음으로써 진짜 이릉에서 못막았으면 오나라는 끝이었을 상황까지오고 그나마 먹은 형주땅은 두고두고 문제거리로 작용함.
이궁의 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게 첨에는 충성경쟁+택현자를 할려고 했었던듯하나 자기 술버릇처럼 기분파적인 면이 강해서 잘 조율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이리저리 인물들 쳐내다보니 정작 오나라를 이끌고 후주를 받쳐줄 인물들이 사라지고 손노반같은 능력은 없는데 권력을 탐하는이들만 남게되다보니 결국에는 후계도 망...그냥 일만 열심히 벌여놓고 수습은 어떻게 할줄 모르는 전형적인 스타일이었음.
아들 딸들이 문제야
난 그래서 출생률 감소에 기여하려고
절대 결혼도 안하고 (아니 못하고)
애기도 안낳을려고 ( 아니 못낳아)
손권을 보자마자 쥐새끼라고 한 관우....당신은 대체 몇 수를 내다 보신 겁니까
@@Kira_2000역병의 신…
쥐적쥐
손제리 ㅋㅋ 관우는 지 앞가림 좀 잘하지 ㅜㅜ
본인 앞 빼고는 다 내다보신 관공..
하지만 쥐새끼한테 형주를 넘겨버린..ㅠ
흔히들 놓치는 부분이 손권은 정복군주가 아닙니다. 정복군주의 최대 베네핏은 압도적인 힘입니다. 이부분은 형인 손책이 해당되죠. 손권은 기존 개척지를 상속받은 입장인겁니다. 이는 오나라와 같이 호족이 득세하는 곳에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단순히 조조의 형주정벌때도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군주제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항복'일 주장하고 있죠. 항복은 곧 본인이 모시는 군주의 몰락인데 그것을 언급했다는 것은 손오는 조조가 그만큼 강력했다는 것과 더불어 호족의 자기보신의 성격이 짙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권은 자신의 힘을 온전히 기를 땅이 필요했고 그것이 형주였다는 것이지요. 여러가지 사건으로 형주를 손에 넣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최대 수훈자 중 하나였던 여몽이 급사해버리고 말죠. 여몽은 대호족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뒷일을 맡은 사람은 대호족 육손입니다. 호족에 대해 탐탁치않아했지만 능력과 결과로 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능력있고 덕망있던 후계였던 손등이 사망합니다. 아마 여기서 곪았던부분이 터졌을꺼라 생각됩니다. 과연 내가 죽고난 이후 다음 황제는 대호족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손권이 기획한게 이궁의 변의 시작 3남 태자와 4남 여지 였을 듯합니다.
그런데 손권의 생각과는 달리 3남의 능력이 굉장히 모자랐고, 4남도 딱히 능력이 있지는 않았죠. 그리고 웃기게도 3,4남도 본인들의 능력이 아닌 호족들의 핸들링 대상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아버린 손권은
'에이 C8! 어디까지 개판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보고있다가 실망해서 싸그리다 쓸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주저리주지리 썼는데 결론적으로는 손권은 오랫동안 호족의 등쌀에 싸워왔고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기회를 노려왔으나 마지막에 결국 반쯤 실패했다. 정도로 생각하는 사건이 이궁의 변입니다.
연의 기준의 수혜자 중 하나인 손제리의 병크 오점 중 하나인 이궁의 변이죠.ㅋㅋ
5:15 아 라면 먹다가 뿜으려는 거 참았는데…. 2탄이 있었네
정말 많이 아시는 거 같아요. 삼국지 뿐 아니라 다른 잡지식도요.
손씨의 가문 내력인거 같음 겁이 없다고 할지 오만하다고 할지 뒷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
그래서 손찬이가..
뭐 말이 노망이지 실제 노망이 났다는건 아니고 그 만큼 판단력이 흐려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의도가 있다 한들 그래서 의도한 바를 이루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님
손등이 죽은건 죽은거고 그냥 손화를 밀어주면 되지 손패랑 경쟁을 왜 시키냐 라고들 많이 생각하시지만 이들의 출생년도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손등 209년생, 손화 224년생.. 여기서부터 좀 쎄하죠? 손권이 182년생이니 손등도 당시로는 꽤나 늦게 본 아들이고 손화면 이미 늦둥이입니다. 먼저 간 조조, 유비도 60대에 사망했는데 손등이 사망할 241년, 손권은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손화는 17살이죠. 그래도 17살이면 손권도 권력을 잡은 나이인데 뭐가 문제냐고 하실수 있겠지만 문제는 224년생 동갑내기 아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게 손패죠. 모든 조건이 완벽한 태자가 죽은 마당에 비슷한 나이의 아들 둘이 있으면 한번쯤 경쟁시켜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어릴때 지위물려봤았는데 주변에 다 쟁쟁한인간들이 지 잘났다고 나서지 눈치보며 저 자리 지키던 그 트라우마가 말년에 터졌다봐야하나? ㅎ
근데 신기한게 삼국 모두 군주가 죽기전에 신하들에게 태자들을 부탁한거 보면 이궁의 변이 괜히 나온게 아닌거 같네요 난세를 거치면서 수 당 시대때까지 계속된 혼란들을보면 시대 자체에 황권이 약해졌다고 볼수있습니다 뭐 손권이 애초에 명분 없는 이유로 칭제를 하였고 호족들의 추대를 받고 황제가 되었으니 호족들의 입김이 클수밖에요 그래서 매번 호족들중에 손권을 아주 치켜세워주는 호족들을 총애하는 한편 육손이나 우번을 한편으로는 심기 불편해하는게 있었을겁니다. 특히 외부인사와 사병집단으로 차별하는 근거의 기록이 보입니다. 제갈각이 단양을 산월족을 잡고 안정화 하자 손권은 나중에 후계자 보좌시킬려할때 망설였다는걸 보았을때... 흠..
손찬아저씨 황충도 다뤄주세요
그리고 황충은 항상 이미지가 할아버지인데 젊었을때 청년이었을 때도 같이 알고싶어요 더불어서 코에이에서는 뭔가 항상 같이 나오는 이엄도 😅
황충이랑 이엄이 같이나온다고요? 엄안아닐까요?
아마 젊엇을때는 태사자랑 싸우고 잇엇을 거임. 대충 기록을 보면 젊을땐 유표의 조카인 유반 밑에서 일햇는데 이 인간이 장사에서 예장으로 확장하던 입장이엿다고 함. 유표의 승인은 받앗을거란 걸 고려한다면 이미자랑 다르게 유표도 야심이 잇어서 나름 세력 확장 욕심이 잇엇는데 이때 손책이 이놈들 막을려고 예장에다가 보낸 게 태사자임. 즉 젊을 적에는 둘이 거기서 쌈질하고 잇엇다고...
엄안 : 목을 벨거면 베지 화를 내고 ㅈㄹ이야?
삼국지 if 월드컵같은걸했을때 재미있을 이유가 되는 영상같네요 손권의 첫째나 둘째가 살았다면에서 시작되는
if 한가지 굳이 추가하자면 손량말고 손휴가 바로 손권의 뒤를 이었다면?
손자지 손자위
단순한 호족정리를 위한 쇼였다고 보기에는 그것 때문에 아들 2명이 죽어나감.
심지어 호족정리의 가장 큰 이유는 권력 집중에 의한 중앙집권화인데 그걸 행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음. 결국 이건 자동차를 달리기 위헤서도 구경하기 위해서도 아닌
밴치프레스 용도로 쓰기 위해 사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인거임.
차라리 막내아들을 총애했다고 보는게 맞는 거 같음.
이성계도 그랬고 이런경우는 많음. 공이 있는 거랑 누굴 좋아하는게 꼭 동일하진 않음.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게 손량에게 바로 위 이복형 손휴가 멀쩡히 있었는데 손권은 왜 손휴가 아닌 막내 손량을 후계자로 세웠을까요? 손휴가 바로 손권의 뒤를 이었다면 오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어렸을때 형한테 물려받은 위치사수하느라 중신들 눈치보며 살얼음판 걸어온 자기자신을 돌아보니 이거안되겠다싶은거겠지만 너무 막나간거같은 그런느낌
노망이 난게 아니라면 더 문제인거 같습니다;;;; 이러니 오빠가 손권을 까는 건가요.
영상을 다 보고 내 뇌에 남은 건 손려와 손패의 자 뿐이다
장자가 요절하지않고 뒤를 이어 오나라를 이끌었다면 오나라가 중국 다 먹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인재가 너무 많은데
손등이 단명한 게 너무 안타까운...
관우가 손권을 눈 아래로 본 이유가 있는거 같아요. 저렇게 간사한 짓하니
장남이 일찍 죽지않았더라면 오나라가 더 오래 살아남았을텐데...
촉빠의 이릉전투와 같은 참담한 사건!
오빠의 이궁의변!!
촉나라는 저런 환란 없었다구 ㅋ
@@ArtJoHistory하지만 촉은 환관이 있었다구
@@sohnehenry6183 오나라도 못지않은 잠혼이라는 환관이 있었어 ㅋ
@@sohnehenry6183 그리고 환관은 어느나라 어느왕실에나 다 있었음 ㅋㅋㅋ환관은 말 그대로 왕의 시중을 드는 시다바리임
노망은 절대 아니었다고 봄. 분명 자기 뒷생각까지 하면서 계산 해서 벌인 후계자 정리작업임. 성공하면 태종각도 볼 수 있었고 근데 대충 공신세력 완벽히 정리하기 전에 죽어버렸고 그나마 손량이 곱게 즉위했으면 절반의 성공이었는데 손침이라는 변수가 터져버리고 그러다 우야무야 손호가 즉위해버려서 진짜 망가져버린거. 아 손호를 손패랑 헷갈리네..
미안하지만 절대로 성공을 못해요.
이유는 가장 간단한게 숙청이 성공하려면 필요한 간단한 것
1. 후계의 나이와 정통성
2. 나라의 안정 즉 통일이 되었나
이 둘중 하나도 충족을 못하고 하니 당연히 성공은 커녕 실패를 하는 겁니다.
@@정희원-j7i 냉정히 보면 불가능하지만 인간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만해서 이치에 맞지 않는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이것이 그 손제리 탄생설화군요
손자지...
손자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제리를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였든, 결과적으로 너무 크게 망한거 같아요.
양쪽다 망하고 제3자에게 넘겨주면 그 3자를 케어라도 잘해야지 이게 뭐에요.
관우가 괜히 오나라가 개들이라고 욕한게 아닙니다. 협지의 옹삭함과 세련되지못한 지역성이 있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이궁의 변 때도 군사, 외교적인 일은 멀쩡히 처리했던거보면 노망이나 치매는 절대아닌데 자기 나이 생각안하고 본인 스스로 충분히 수습할 수 있을거라 착각한듯...
장고 끝에 악수
주원장 고려광종 선조와 같이
신하들을 잡아 죽이고 싶은 구실을 찾은듯
손에 피를 묻혀 숙청
참고로 자는 **입니다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
5:15
오히려 노망이라면 다행이었군여
후계문제로 개판이 되지않았다면 과연 오나라는 진나라를 막을수있었을지 궁금하네
삼국통일이나 하면 해야하는짓을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길래 파벌로 견제한다고 장난질 하는걸까 참신기한 인간 손권 그냥 인재 다죽어나가고 멸망하지
문제는 삼국통일은 너무 멀고 최고 군주의 수명은 다 해 간다는것...
멀리서 보니까 원씨 집안의 후계다툼이랑 매칭이 되긴 하네요..
굉장히 심오한 내용인데,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건 손려의 자....
다래끼 시술받다 의사가 도망가 안구가 적출된 사마사는 언제쯤 하실 예정인가요?
걘 수술은 잘됫는데 상처가 흥분으로 벌어져서 빠진거 아니엿음? ㅋㅋㅋㅋ 마치 손책이 치료는 잘됫는데 얼굴에 흉터 남는 건 어쩔수 없겟다니까 흥분해서 얼굴이 망가졌는데 앞으로 어찌할거냐면서 흥분해서 거울 집어던지면서 상처가 벌어져서 끝장 난 것처럼 말이죠 ㅋㅋㅋ
주유가 유능한건 인정하는데 당시 상황과 손권군 수준으로 파촉정벌 어림도 없음..유비도 몇년을 걸린, 게다가 핵심인물이 배신해서 도와준 파촉정벌을 주유가 혼자서 뭔수로함.
엄청 어린 아들 내세우는건 난세엔 자멸책임 .. 진시황이 장남 멀리했던것도 흥선이 고종 내세웠듯 멍청한 아들 내세우는것도 마찬가지 그냥 손제리는 바이든 같은 인물임 간신 하나 있음 사리분별안됨
손권이 이걸 빌미로 육손을 제거하고 왕권 안정시켰다 생각했겠지
촉나라에 이릉대전이 있다면 오나라에는 이궁의 변이 있지. 둘다 이로 시작한다는게 참 ㅋㅋㅋㅋㅋ
손제리 때문에 오빠는 못할듯. ㅋ 물론 오나라의 가장 큰 단점이 뭐만 할라치면 죽어버리는 단명한 인재들이라는 건데, 암튼 극복 했어야지. 창업군주 왕건은 수많은 호족들에게 시달리면서 어쨌든 왕씨가 황실의 주인임을 인식 시키는것 까지는 성공함
개인적으로 손권의 말년은 노망이 50% 정도 있었다고 봅니다.
이성계의 예만 봐도...
공손찬 일러가 원소 양산형 혹은 그 계열 같이 보이는데 .. 코에이는 너무 돌려 쓰는거 같음
의도했다한들 이 정도면 진짜 노망이 맞죠 뭐... 일생을 조율하고 참으며 오나라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결국 나라 망하고 들어다 바치는 꼴을 자기 손으로 만든거나 마찬가지
조인이 없네요 조인ㅠ
간사하려 했으나 어리석었다.
적벽에서 위를 격파! 이릉에서 촉을 격파! 이궁에서 오를 격파한 손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