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어폰 또는 헤드폰으로 영상을 시청하실 때 왼쪽에서만 소리가 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채널을 방문하여 콘텐츠를 시청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전반적인 영상을 흥미있게 정독 중입니다 보면서 드는 물음은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성경의 대부분은 당시 시대상에 입각한 잘 짜여진 각본 내지는 소설에 가까운 느낌인데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아직 기독교인으로 남아 계시는 걸까요? 단지 문화적 취향? 이 맞기 때문에 내 생애를 목회자로 살아가는건 제 입장에선 꽤 어려운 일 같거든요 전 20년간 찬양사역하던 사람이고 지금은 그냥 나이브 하게 교회 다니고 있습니다 바울의 열성적인 팬이였구요 그런데 목사님의 주장을 보다 보면 이제 뭐 굳이 힘들게 교회 다닐 필요 있나 그냥 마음의 평화 얻으려고 가끔 나가는 정도도 괜찮지 않나 혹은 어짜피 허구의 이야기에 왜 내가 목슴걸고 다녔을까? 라는 회의감도 좀 있거든요 목사님께서 계속 기독교인으로 살아가시는 이유도 꽤 듣고 싶긴 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제 영상을 흥미있게 정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굳이 답변하자면, 저 역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여러 의문과 갈등을 겪었고, 그러나 지금도 계속 배우며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있고 기독교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정말 귀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나누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대부분 한국 교회의 특정한 모습만을 접하게 되어,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의문이 생길 때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모두 거부해야 하나'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연구하고, 종교와 신앙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되면, 그 과정이 성숙을 위한 중요한 단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지난 시간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데 나만의 과정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년간 찬양사역을 하셨다는 점에서, 그 경험이 분명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찬양 사역을 하려면 가수 나 다름없는 것인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금의 고민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더 깊은 이해와 평안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목TV가 많은 사람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와 진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도록 늘 응원과 관심 그리고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어요. 😅 더 자세한 재림 신앙과 종말론에 관하여는 멤버십 전용 콘텐츠를 확인해주세요! C. H. 도드의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The Parables of the Kingdom)읽기 th-cam.com/video/J0Oh0lsEmW4/w-d-xo.html
감사합니다. 4복음서가 일종의 다큐멘터리 기록물이라는 전제를 깔고 4복음서의 모든 기록들을 정합적으로 꿰어맞출 수 있다는 입장을 버리지 못하는 보수적 신앙인들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합리적인 분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의 받아쓰기 수업시간에 교사의 구술내용을 학생들이 받아적기하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자들이 그대로 받아적은 결과물이라는 보수적인 신앙관이 그리스도교 신앙 역시 동시대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도전과제들을 마주하며 살아갔던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내부적 외부적 대립과 소통의 역동적 형성물이라는 합리적 시각에 바탕을 둔 접근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안티팬들만 울타리 바깥에서 대상의 전체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KingJo-k7d 답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하신 논점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종의 문서입니다. 주어진 문서를 역사적 기록물, 문학작품, 학술 연구서적, 언론보도 자료 등등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각의 카테고리에 맞는 기술 규범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그 문서는 신뢰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은 우리시대의 문화규범이지 성서가 쓰여졌던 1세기 혹은 2세기 레반트 지역(?)의 문화규범은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성서 저자들 자신에게 라는 주관적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할 방법이 없는 이상 (거의 틀림없이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정치적 실세의 후원을 등에 업은 후세의 이데올로그들이 진행했던 신성불가침화 작업의 산물로 등장한 성서 무오류성이라는 맹신적인 믿음의 책임을 초기 신앙 공동체나 성서 저자들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서라는 문서 역시 다른 시대의 문서화된 문화유산들처럼 우리 시대의 인류공동체가 삶이 삶을 향해 던지는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질문들이라는 도전에 대해 삶이 삶에게 대답하는 치열한 고민과 공동체 내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방식으로 응전하듯 당시대의 신앙공동체가 대내외적 도전에 마주한 채 그에 응전하는 과정 속에 겪었던 처절한 고뇌가 녹아든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는 생각이 보수적인 신앙인들과 안티그리스천들이 합의한 적대적 담론게임의 진행규칙인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적대적 담론게임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게임의 규칙이 저에게는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여겨집니다. (감정을 상하는 표현이 되었다면 죄송스럽습니다.) 저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의 형성 시기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떤 체험과 비전을 공유했는지 그리고 그 공유된 자산 속에서 어떤 실존적 성찰을 획득했는지 그 성찰이 당대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성경 속에 녹아들고 표현되었는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면서도 공감적인 지향점을 지닌 연구자들에 의해 일그러지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안티들 못지않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대중소통채널에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저에게는 참 소중합니다. 생각난 게 하나 있어서 부연하자면, 플라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생각과 스승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모두 소크라테스의 생각인 것으로 기술해 놓았습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일종의 팩트 왜곡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의 저작물들이 무가치한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성서를 바라볼 때도 그런 일종의 너그러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병욱-v2p 저보다 일목요연하게 핵심만 뽑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길게 설명하는 것은 전제를 굳이 만들고 꿈보다 해몽을 만들어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성서는 문서이지만, 진리를 담고 더 나아가 형이상학을 다루는 철학적 신학적인 문서이므로 근원에 대해 다루는 만큼 엄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화로 치부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성서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야 지금 알고 있는 대로의 전세계 인구와 석학들이 인정하는 문서가 됩니다. 일반화된 최소한의 문서로서의 정의로는 그 부족합니다. 두번째로 플라톤의 얘기를 하셨는데,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식으로 얘기한게 팩트 왜곡이라고 하셨네요. 전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플라톤이 썼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고도 속이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플라톤 저작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시로 든 것이 다소 극단적이고 특이할만한 해석이라는 점 알려드립니다. 억지로 예시를 지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요. 플라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성서와 같이 형이상학과 근본에 대해 다루었지만, 영원, 창조에 대해선 제시를 못하죠. 소크라테스도 답을 직접 말하진 않았고 중간중간 언중유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소크라테스교라던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예수교가 있습니다. 그 명확한 차이를 아시겠죠?
@@KingJo-k7d 우리는 채널 운영자가 아닌데 여기서 우리끼리 논쟁을 벌이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애초에 저는 그럴 의도도 없었구요. 또 대화의 규칙을 저에게 강요하시는 듯 해서 불편하게 느껴지는군요. 성경 저자들 자신이 성경의 무오류성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성경을 초월적인 계시의 산물로 주장하지도 않았으므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신앙관의 불합리성과 부도덕성에 대한 책임을 성경의 저자들이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 이전 글에 담겨 있었는데 그 부분을 놓치신 듯 합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다시 말씀드리자면 플라톤은 자신의 (거의) 모든 주장을 자신의 주장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인 것으로 기술해 놓았기 때문에 플라톤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플라톤의 사상과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이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 창조자가 아닌 설계자로서의 신, 영혼 불멸 사상, 민주공화정에 대한 불신, 권위적이고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스파르타 사회체제에 대한 높은 평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의 기하학적 버전 등등 오늘날 자연과학과 민주주의 인권사상의 세례를 듬뿍 받은 현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수많은 주장들을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인 걸로 둔갑시켜 내세웠습니다. 그렇다고 플라톤을 스승의 이름을 도용해서 역사적 논란에 휩싸이게 될 자신의 수많은 주장에 부정직하게 권위를 덧입힌 파렴치한 인물로 오늘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이 점을 모르고 계셨다면 관련 자료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키보드 배틀을 벌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는 초보적인 격률을 함께 상기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식의 배타적 구원관, 식의 반과학주의, 보수 정치세력과 프로테스탄트 보수 교단의 기묘한 동맹 등에 대해서 저 역시 매우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 시대 특정 종파 메인 스트림의 역사적 탈선에 대한 책임을 2000년 전 발원시기의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건 너무 과격한 발상으로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이 댓글창에서 몇 마디 대화로 간극을 좁힐 수 없는 기본전제에 대한 이견을 가지고 계시고 있고 그것을 주장하고 싶으신 거라면 저는 그 논쟁을 여기서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어쨌든 남은 오후를 뿌듯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pfarrerjin 성경을 보는 기독교인들은, 성경 자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그런 접근 방법은 성경이 모두를 설명할 수 없다라고 보는 시각이네요. 부활날짜는 핵심인데, 그것이 설명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신가요? 자료는 4복음서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이 자세한 타임라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헤롯왕이 죽은게 기원전 4년정도니까 예수님은 가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나셨고 동방박사가 본 별의 징조가 기원전 6년정도에 일어났기에 예수님은 기원전 6년정도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고(정확한 날 모름),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할 때 기원후 30년엔 36정도였다고 봐야함. 그렇게 될 때 " 네 나이 50도 안되었거늘(나이보다 늙게 보이심)"이란 말도 이해된다. 유대인들의 말도 이해됨.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는 39세나 40세이었다고 봐야함.
결론은 한 점 한 획도 더 하거나 빼도 안된다는 진리를 전제로 해도,확실하게 이 거다 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하나로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개관적 자료가 없이,여기 저기서 이 것 저 것 자료를 모아서 대충 이럴 것이다,또는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의견 들을 모아서 이렇게 하자고 결론을 내린 걸 들고서,인정하면 교리와 설교로 사용하고,아니다 싶으면 인정하지 않고 다른 해석과 결론으로 서로 다른 교파가 생기는 건가요?? 그럼 결국 200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을 그 당시에 집접 곁에서 보고 듣고 했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예수가 활동하고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한 다음. 그 한참 뒤에 전해진 이야기를 들은 사람 들 중에 그 무지한 당시에 문자를 알고 기록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그 당시의 사고방식과 지식,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그 때의 언어로 기록한 성경을 후대에 우연히 다 따로따로 발견해서,발견할 당시의 언어도 아닌 걸,다시 그 시대 그 곳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만 이 걸 이용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거를,후대에 다시 또 번역한 것을 다 사실이라거나 진리와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깝지 말입니다.
나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산격화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지금 현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스마트폰 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99.9999%가 되는 세상인데..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비종교 학자들이 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천국 지옥도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거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거다..내 맘이 편하고 즐겁고 행복 하면 족하다 생각한다..살아생전에 편한대로 사세요..죽으면 끝안데...다 부질없단다...
현재 이어폰 또는 헤드폰으로 영상을 시청하실 때 왼쪽에서만 소리가 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채널을 방문하여 콘텐츠를 시청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전반적인 영상을 흥미있게 정독 중입니다
보면서 드는 물음은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성경의 대부분은 당시 시대상에 입각한 잘 짜여진 각본 내지는 소설에 가까운 느낌인데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아직 기독교인으로 남아 계시는 걸까요?
단지 문화적 취향? 이 맞기 때문에 내 생애를 목회자로 살아가는건 제 입장에선 꽤 어려운 일 같거든요
전 20년간 찬양사역하던 사람이고 지금은 그냥 나이브 하게 교회 다니고 있습니다
바울의 열성적인 팬이였구요
그런데 목사님의 주장을 보다 보면 이제 뭐 굳이 힘들게 교회 다닐 필요 있나
그냥 마음의 평화 얻으려고 가끔 나가는 정도도 괜찮지 않나 혹은
어짜피 허구의 이야기에 왜 내가 목슴걸고 다녔을까? 라는 회의감도 좀 있거든요
목사님께서 계속 기독교인으로 살아가시는 이유도 꽤 듣고 싶긴 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제 영상을 흥미있게 정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굳이 답변하자면, 저 역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여러 의문과 갈등을 겪었고, 그러나 지금도 계속 배우며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있고 기독교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정말 귀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나누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대부분 한국 교회의 특정한 모습만을 접하게 되어,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의문이 생길 때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모두 거부해야 하나'라는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연구하고, 종교와 신앙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되면, 그 과정이 성숙을 위한 중요한 단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지난 시간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고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데 나만의 과정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년간 찬양사역을 하셨다는 점에서, 그 경험이 분명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찬양 사역을 하려면 가수 나 다름없는 것인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금의 고민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더 깊은 이해와 평안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목TV가 많은 사람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와 진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도록 늘 응원과 관심 그리고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ungjun_h blasphemy!!
각자 목적에 따라 저작되며 예수의 활동순서가 뒤섞인 복음서들을 합리화시키다보니 공생애가 3년으로 늘었지만 역사학적인 분석기법을 동원해서 정리하면 7개월 정도의 활동기간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봤습니다. 별개의 얘기지만 김학철교수님도 삼프로 나왔네요 ㅎ
그렇군요. 종교 콘텐츠가 인기가 있나 봅니다!😆
세례요한이 먼저 죽은걸 예수님께서 아시고 나도 그리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뒤에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곧 7천 찍겠군요 캬~
ㅊㅋ합니다
진목 르네상스입니다!
아멘! 🤣🤣
@@pfarrerjin 근데 애칭 이벤트는 어케 되는 건가용. 오늘 라이브?
오늘 12시까지 좀 살펴보겠습니다 ㅋㅋ
🔥🧚🧎♂️🧎♀️🙏아멘 할렐루야 🙏 믿고 순종합니다 복종합니다 🙏 뼈중에뼈요 살중에살이니라 🙏 오늘도 세상것에 얼룩진 내영혼영을 주의십자가 보혈로 흰눈보다 더더더 희게 씻어주심을 감사감사 합니다 🙏 (안동북부 최집사)
신앙이 너무 돈독한 사람이 교회에서 사라지면 기독교는 한단계 더 발전할 겁니다
예수 재림 시기가 2030년정도쯤일까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어요. 😅
더 자세한 재림 신앙과 종말론에 관하여는 멤버십 전용 콘텐츠를 확인해주세요!
C. H. 도드의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The Parables of the Kingdom)읽기
th-cam.com/video/J0Oh0lsEmW4/w-d-xo.html
감사합니다.
4복음서가 일종의 다큐멘터리 기록물이라는 전제를 깔고
4복음서의 모든 기록들을 정합적으로 꿰어맞출 수 있다는 입장을 버리지 못하는 보수적 신앙인들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합리적인 분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의 받아쓰기 수업시간에
교사의 구술내용을 학생들이 받아적기하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자들이 그대로 받아적은 결과물이라는 보수적인 신앙관이
그리스도교 신앙 역시
동시대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도전과제들을 마주하며 살아갔던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내부적 외부적 대립과 소통의 역동적 형성물이라는 합리적 시각에 바탕을 둔 접근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
안티팬들만 울타리 바깥에서 대상의 전체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고 뭐고를 떠나서 성경을 신이 보내준 영감으로 기록됐다고 여기죠. 보수적인 게 아니고 진리를 쫓는다고 봐야죠. 애초에 성경이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긴 어렵죠.
언론사도 오보를 한번 내면 신뢰하기 어렵듯이요.
@@KingJo-k7d
답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하신 논점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종의 문서입니다.
주어진 문서를 역사적 기록물, 문학작품, 학술 연구서적, 언론보도 자료 등등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각의 카테고리에 맞는 기술 규범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그 문서는 신뢰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은
우리시대의 문화규범이지
성서가 쓰여졌던 1세기 혹은 2세기 레반트 지역(?)의 문화규범은 아마 아니었을 겁니다.
성서 저자들 자신에게 라는 주관적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할 방법이 없는 이상 (거의 틀림없이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정치적 실세의 후원을 등에 업은 후세의 이데올로그들이 진행했던 신성불가침화 작업의 산물로 등장한 성서 무오류성이라는 맹신적인 믿음의 책임을 초기 신앙 공동체나 성서 저자들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서라는 문서 역시
다른 시대의 문서화된 문화유산들처럼
우리 시대의 인류공동체가
삶이 삶을 향해 던지는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질문들이라는 도전에 대해
삶이 삶에게 대답하는 치열한 고민과
공동체 내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방식으로 응전하듯
당시대의 신앙공동체가 대내외적 도전에 마주한 채 그에 응전하는 과정 속에 겪었던
처절한 고뇌가 녹아든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는 생각이 보수적인 신앙인들과 안티그리스천들이 합의한 적대적 담론게임의 진행규칙인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적대적 담론게임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게임의 규칙이 저에게는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여겨집니다.
(감정을 상하는 표현이 되었다면 죄송스럽습니다.)
저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의 형성 시기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떤 체험과 비전을 공유했는지
그리고 그 공유된 자산 속에서 어떤 실존적 성찰을 획득했는지 그 성찰이 당대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성경 속에 녹아들고 표현되었는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면서도 공감적인 지향점을 지닌 연구자들에 의해
일그러지지 않은 모습이 드러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안티들 못지않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유주의 신학(?)의 대중소통채널에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저에게는 참 소중합니다.
생각난 게 하나 있어서 부연하자면,
플라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생각과 스승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모두 소크라테스의 생각인 것으로 기술해 놓았습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도 일종의 팩트 왜곡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의 저작물들이 무가치한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성서를 바라볼 때도 그런 일종의 너그러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병욱-v2p 저보다 일목요연하게 핵심만 뽑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길게 설명하는 것은 전제를 굳이 만들고 꿈보다 해몽을 만들어서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성서는 문서이지만, 진리를 담고 더 나아가 형이상학을 다루는 철학적 신학적인 문서이므로 근원에 대해 다루는 만큼 엄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화로 치부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성서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야 지금 알고 있는 대로의 전세계 인구와 석학들이 인정하는 문서가 됩니다. 일반화된 최소한의 문서로서의 정의로는 그 부족합니다.
두번째로 플라톤의 얘기를 하셨는데,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식으로 얘기한게 팩트 왜곡이라고 하셨네요. 전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플라톤이 썼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고도 속이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플라톤 저작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시로 든 것이 다소 극단적이고 특이할만한 해석이라는 점 알려드립니다. 억지로 예시를 지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요.
플라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성서와 같이 형이상학과 근본에 대해 다루었지만, 영원, 창조에 대해선 제시를 못하죠. 소크라테스도 답을 직접 말하진 않았고 중간중간 언중유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소크라테스교라던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예수교가 있습니다. 그 명확한 차이를 아시겠죠?
@@KingJo-k7d
우리는 채널 운영자가 아닌데
여기서 우리끼리 논쟁을 벌이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애초에 저는 그럴 의도도 없었구요.
또 대화의 규칙을 저에게 강요하시는 듯 해서 불편하게 느껴지는군요.
성경 저자들 자신이 성경의 무오류성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성경을 초월적인 계시의 산물로 주장하지도 않았으므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신앙관의 불합리성과 부도덕성에 대한 책임을 성경의 저자들이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내용이 이전 글에 담겨 있었는데
그 부분을 놓치신 듯 합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다시 말씀드리자면
플라톤은 자신의 (거의) 모든 주장을 자신의 주장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인 것으로 기술해 놓았기 때문에 플라톤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플라톤의 사상과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구별하는 데 있어서 이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 창조자가 아닌 설계자로서의 신, 영혼 불멸 사상,
민주공화정에 대한 불신,
권위적이고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스파르타 사회체제에 대한 높은 평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의 기하학적 버전 등등
오늘날 자연과학과 민주주의 인권사상의 세례를 듬뿍 받은 현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수많은 주장들을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인 걸로 둔갑시켜 내세웠습니다.
그렇다고 플라톤을 스승의 이름을 도용해서
역사적 논란에 휩싸이게 될 자신의 수많은 주장에 부정직하게 권위를 덧입힌 파렴치한 인물로 오늘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혹시 이 점을 모르고 계셨다면 관련 자료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키보드 배틀을 벌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는 초보적인 격률을 함께 상기하는 기회를 갖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식의 배타적 구원관,
식의 반과학주의,
보수 정치세력과 프로테스탄트 보수 교단의 기묘한 동맹 등에 대해서 저 역시 매우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 시대 특정 종파 메인 스트림의 역사적 탈선에 대한 책임을 2000년 전 발원시기의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건 너무 과격한 발상으로 여전히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이 댓글창에서 몇 마디 대화로 간극을 좁힐 수 없는 기본전제에 대한 이견을 가지고 계시고 있고 그것을 주장하고 싶으신 거라면 저는 그 논쟁을 여기서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어쨌든 남은 오후를 뿌듯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임병욱-v2p 대화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네요. 현실에서 보고 말하지 않는 한 의미없어 보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대화법을 잘 모르고 계세요. 이만 줄입니다.
사흘만에 죽은게 금-일이 맞나요? 전 수-일 설도 읽어봤거든요. 이 부분을 조명해주는 영상이 있다면 한번 보겠습니다.
신약보다 이른 자료나 전승이 없다보니 정확한 요일은 알 수는 없어요. 목요일은 들어보았으나, 수요일은 모르겠어요. 자료를 알려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
@@pfarrerjin 성경을 보는 기독교인들은, 성경 자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그런 접근 방법은 성경이 모두를 설명할 수 없다라고 보는 시각이네요. 부활날짜는 핵심인데, 그것이 설명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신가요?
자료는 4복음서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이 자세한 타임라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는 청소년기 반항기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초기 기독교 위경, 도마의 유아기복음은 신적 능력을 지닌 예수지만, 정신 연령은 어린이로 묘사합니다. 😄
헤롯왕이 죽은게 기원전 4년정도니까 예수님은 가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나셨고 동방박사가 본 별의 징조가 기원전 6년정도에 일어났기에 예수님은 기원전 6년정도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고(정확한 날 모름),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할 때 기원후 30년엔 36정도였다고 봐야함. 그렇게 될 때 " 네 나이 50도 안되었거늘(나이보다 늙게 보이심)"이란 말도 이해된다. 유대인들의 말도 이해됨.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는 39세나 40세이었다고 봐야함.
AD 몇년에 돌아가셨다고 보시나요?
율법에 그렇게 하라해서
율법을 완성시키려고...
로마의 정획한 역사적 기록만 찾아봐도 예수의 탄생은 연도부터 틀렸다는 것은 알고 계시는지요? 예수는 신, 삼위일체등 모두가 로마 가톨릭에서 새로이 정의한 것도 알고 계시겠지요? 예수는 만들어진 신입니다.
로마의 역사적 기록이 나타난 제목이 궁금하군요. 그리고 역사란 왜곡이 있다는 것도 일부 알아야 합니다. 초기 로마가 그리스도교인을 박해했다는 것을 보아, 적대적인 관계임은 분명했고요.
남에게 아니모르니 하기전에,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무식하고 과격한지 부터 좀 알아라 어휴ㅉ
나름의 종교가 있다면 이성을 갖고 자신의 종교에 관해 냉정하게 객관적인 공부도 해야 됩니다. 이미 맹신으로 세뇌된 사람들은 일단 거부감부터 가지게 되죠. 요 위에 사람들처럼... 다시 얘기하지만 예수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신입니다.
@@엄신부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워딩이 객관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얘기다 문해력 박살난 인간아 ㅉㅉ
맹신 같은거 안하니까 너는 유튜브끄고 국어 공부나 좀 해라 어휴ㅉ
마지막 문장에 논리 비약이 심하네요.
유월절이 한번 나왔다고 일년이다는건 너무 단세포적 결론아닌가요.
제자들 모으고 활동하고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전국구로 알려지려면 삼년은 걸릴것 같은데요.
유월절은 한번 표현되면 1년 이상으로 봐야죠. 3년은 아니죠. 동일한 사례를 담고 있는 한곳에서 3번 언급됐으면 3년 이상으로 봐야죠. 그걸 억지로 1년으로 줄여 보는건 현재 학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있다고 증명하는 꼴 밖에 안되죠.
예수가 죽은 날짜를 하루 앞으로 당겼다는 근거구절은요?
안녕하세요. 유월절과 유월절 양잡는 날이 하루가 차이가 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신학 서적까지 아니도라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을거에요. 😄
@@pfarrerjin 요한복음 몇장 몇절인가요? 찾아보려고 하는데요. 대답이 이해가 안됐어요.
@@KingJo-k7d유월절 양은 유월절 당시가 아니라 유월절 전날에 잡았기 때문에 저런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날에 죽으셨다고 기록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당일에 죽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sionfuchs 아 그러니까 근거구절이라고 말하면 보통 장절을 말하죠. 찾아보고 설명할까 하는데요.
저기 다른 분들이 답글 달아주시는 건 좋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대답은 근거구절이 어디냐에 대한 물음이었지, 부차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움이 안 됩니다.
진짜 미친짓 아닌가? 2000년전 고대인류의 허망한 사상을 쫒는 짓은
결론은 한 점 한 획도 더 하거나 빼도 안된다는
진리를 전제로 해도,확실하게 이 거다 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하나로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개관적
자료가 없이,여기 저기서 이 것 저 것 자료를 모아서
대충 이럴 것이다,또는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의견
들을 모아서 이렇게 하자고 결론을 내린 걸
들고서,인정하면 교리와 설교로 사용하고,아니다
싶으면 인정하지 않고 다른 해석과 결론으로
서로 다른 교파가 생기는 건가요??
그럼 결국 200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을 그 당시에
집접 곁에서 보고 듣고 했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예수가 활동하고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한 다음.
그 한참 뒤에 전해진 이야기를 들은 사람 들 중에 그
무지한 당시에 문자를 알고 기록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그 당시의 사고방식과 지식,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그 때의 언어로 기록한 성경을 후대에 우연히 다 따로따로
발견해서,발견할 당시의 언어도 아닌 걸,다시 그 시대 그 곳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만 이 걸 이용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거를,후대에 다시 또 번역한 것을 다
사실이라거나 진리와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깝지 말입니다.
정확한 멘트가 필요한데,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게 모순적이다라는 건지??
나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산격화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지금 현재가 중요하다고 봅니다..스마트폰 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99.9999%가 되는 세상인데..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비종교 학자들이 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천국 지옥도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거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거다..내 맘이 편하고 즐겁고 행복 하면 족하다 생각한다..살아생전에 편한대로 사세요..죽으면 끝안데...다 부질없단다...
사람들이 신격화했다는 표현은 신이 아니라는 표현입니다. 신격화한걸 왜 믿어요? 믿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