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마속, 제갈량이 가정에서 기용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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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3 ก.ย. 2024
  • 읍참마속의 주인공, 유비가 쟤 별로라고 중히 쓰지말라던, 그런 마속을 제갈량은 왜 가정에서 주장으로 임명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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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storygd2322
    #삼국지 #촉나라 #제갈량 #마속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35

  • @dolee909
    @dolee909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0

    제갈량: 아, 드립 잘 치길래 일도 잘 할줄 알았지.
    유비: ㅋㅋㅋㅋㅋ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입만 열면.....ㅋㅋㅋ

  • @user-nt5xe3ce5b
    @user-nt5xe3ce5b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실제 마속군이 대파된 후 제갈량의 본진대군은 장합군에 패배하며 후퇴하게 된다는. 본진대군도 감당못하는 장합군을. 마속의 1-2만 군대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었겠나. 촉군은 군량이 부족해져가면서 (서량 평정이 제대로 안됨) 사기가 낮아지고 있었고 위군은 충실한 보급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촉군을 상대하려 했다는.

  • @발할라-j2b
    @발할라-j2b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위연같은 고참 장수를 기용하자는 중론을 거스르고 마속을 기용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죠. 예를 들면 1차북벌의 기본전략 자체를 마속이 입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배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조조 유비도 일생동안 숱한 패배를 경험했어요.
    마속을 격파한 장합도 장비한테 탈탈 털린적도 있고
    그 장비도 여포한테 탈탈 털린적 있고
    마속은 불행히도 일생 첫전투에서 털렸고 그 책임을 지고 처형당했기 때문에 재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속단하기 어렵다는거죠.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저도 1차 북벌이 마속에게서 입안되었다고 추측합니다. 1차 이후(마속이 사라진 이후)의 북벌은 뭔가 너무나도 안정에 치우친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마속의 머리에서 나온게 아닐까 하죠.
      그리고 2번째 단락에서 해주신 이야기 덕분에 너무나도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지형도, 그렇게 싸운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ㅠㅠ
      너무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발할라-j2b
      @발할라-j2b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historyGD2322 네 ㅎㅎ. 아무래도 연의의 영향 때문에 촉나라 팬이 너무 많고 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관우, 조운, 제갈량, 강유 같은 인물들이 실패하게 된 원인을 제공하는 손권, 여몽 ,마속, 유선 같은 인물들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죠.
      중국 역사 전체로 보면 촉은 그닥 존재감도 없는 나라고 우리나라와도 사실상 아무 접점도 없는 나라인데 역시 연의의 영향이 너무 큰거 같아요.

  • @user-dv5gi7hv5f
    @user-dv5gi7hv5f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보드게임인 3인칭을 잘 본다고 즉응해야하는 현장에서의 1인칭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제갈량도 헛똑똑이였다는 거죠.
    유비가 군사로 쓰지 않고 행정으로 뺑뺑이 돌린 이유가 명확

  • @user-sx6dl4to6s
    @user-sx6dl4to6s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마속이 있을때 그나마 북벌 성공했을 경우였고, 이후에 정공법으로만 공격하다 망한걸 생각하면...
    마속은 정공법이 아닌 기책을 생각해낸 유일한 장수였지 아닐까 싶은

  • @user-ch1mz9uv4t
    @user-ch1mz9uv4t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누..누..누가 이기라고하였느냐!

  • @mu-nyom.Viscacha
    @mu-nyom.Viscacha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거기 그냥 구릉 지대 라니까~.
    해발이 높다고 산이 삐쭉삐쭉 솟아있는데가 아니라니까요.
    그 막으라는 길에서 산이 너무 가깝고 낮아요.
    완만한 언덕이라고 봐야 됨.
    병법을 아는 사람은 거길 안 올라 갈 수가 없어.
    거길 올라갔으니까 장합이 포위해서 1주일 끈거지.
    그 제갈량 말대로 길막만 하고 있으면
    장합이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기세로 치면
    하루 컷임. 1일 만에 끊났을 거임.
    그니까 제갈량이 그 지역을 잘 몰라서
    명령주면 곧이곧대로 하는 인사가 아니라
    명령대로 안 하고 자기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인사를 선발해서 보냈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장합이 또 용병이 빠르고, 군사도 더 많았고. 이래저래 악조건에서 1주일 막았으면
    사실 제갈량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패배했다고 볼 수 있음. 근데 제갈량은 못 죽이잖아요. 심지어 대신 할 사람도 없고...
    가정 지도를 검색해 보면. 주니의 삼국지 세상이란 블로그에 딱 포인트 찝어 논 지도가 있습니다.
    가정 1 위치에서 북쪽은 위수강이고 밑에 지류가 있는데 거기 지도 가운데 가정이잖아요. 두번째 지도는 무시하고.
    3번째 지도를 보면 가정 동쪽으로 계곡 있잖아요. 가정3에 왕평이 진을 친거고.
    그 계곡 분기점에 가정2 남산이 있잖아요. 그 지도를 봐봐. 남산옆에 길이 있잖아요
    왕평이 막은 곳은 분명 막기 좋은 위치긴 해요. 위에서 보면~ 근데 실제로 가면 그냥 큰 언덕 같은 거니까. 길도 생각보다 넓고.
    막기도 힘들고 막으면 뭐해~. 남산에서 남쪽으로 길이 있는데.
    우회가 되니까 거길 막을 수 밖에 없는 거지.
    심지어 부장은 뒤에 놔두고 본진 앞으로 나선 거니 용기도 가상한거지.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가정의 위치부터 잘못되었다' , '가정은 높은 산이 아니다' 등등의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하게 이거다! 라고 하는게 딱히 없는 듯 하여 일단은 일반적인 중론으로 의견을 잡은 점 양지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인사' 라는 점은 저도 공감합니다. 당시 열류성의 고상도 있었고 고상과의 연계를 통해 위군을 제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가정을 수비하는 장수는 어느정도 본인의 판단에 맡길 수 있는 인물이 맡는게 맞죠.
      좋은 의견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은 의견 반영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이강호-b1i
      @이강호-b1i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길목이 한갈래가 아니라 우회할수 있는 길목이넓고2군데 더 있어 틀어막고 지키지도 못하고 위나라가 무서운게 기병인데 그릉지 평지수준 지역에서 보병이 기병을 막는건 거의 불가능함 그래서 마속이 그나마 높은 구릉지쪽으로 진을 친거 같은데... 그리고 제갈량 본대가 곽회한테 막혀서 상규지역 못먹은게 북벌에 가장 큰 실패 요인임 성에서 농성하는것도 민심을 얻지 못해서 못햇다는 소리도 있고 잘못하면 병참 단절되서 개몰살됨 연의만 보고 마속을 까는것도 잘못된거 같음 유투버가 가정지역 드론으로 찍어논 영상봤는데 2천년이 지나서 지형도 바꼈다고 하나 그냥 구릉지 평지임 오의 위연 조운이 와도 털릴 가능성이 큼 장합이 이끈 부대가 황제 직속 정예중에 최정예부대에 기병이 1-2만 보병이3-4만 정도 5만정도라 하는데 마속은 보병중심에 병력도 적었을 꺼임

    • @mu-nyom.Viscacha
      @mu-nyom.Viscacha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historyGD2322 구글맵에서 검색해 보시면
      톈수이 시(천수), Longchengzhen 陇城镇(가정) Qishanxiang 祁山镇(기산) 세 곳을 검색해서 보시면
      촉이 쳐들어 갈때 가정은 전혀 중요한 곳이 아니거든요.
      근데 천수에서 강유가 항복을 한 다음에 중요해 지지 않았을까?
      제갈량은 강유랑 만난 후 기산에서 바로 상규(Xiangquanzhen香泉镇)로 갔단 말이죠. 상규를 친다는 것은 다음에 바로
      바오지시(진창)을 칠거란 얘긴데. 기산에서 부터 가정까지 마속을 보냈고 이 시점에선 마속군의 행군이 굉장히
      서둘렀다는 얘기죠. 그리고 원군이면 장합도 왜 굳이 거기를 돌아옮? 상규가 함락 된 것도 아닌데?
      원군이면 상규로 달려 와야지. 빙 둘러서...이상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싸운 위치도 이상해.
      막을 거였으면 여기Handianxiang 韩店镇, 여기 전후에서 막아야죠. 분기점인데.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거랑 다르게 장합이 먼저면 어떻게 될까요?
      장합이 거기로 온다고 보고를 받아서 급하게 파견 했는데. 늦게 도착해서 거기서 싸운거면.
      그 시점에서 이미 총사령은 전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질 줄 알면서 보냈다면, 울면서 마속을 죽이지 않았을까?

  • @apc849
    @apc849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패했더라도 왕평과 같이 패잔병 수습해서 돌아왔다면 한직으로 내쫒길지언정 죽지는 않았을지도(마속이 수습은 커녕 도주했다는 기록이 있음)

  • @grandmaster7146
    @grandmaster7146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마속이 가정에 기용한건 할수있다고 봅니다. 참모라서 1차북벌을 제갈량이랑 같이 계획했겠죠.(위연은 가정대신 곽회를 잡아야하는일이 있었죠.) 문제는 가정 도착후인데 이때 원래 계획에 있던거보다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고 생각됍니다. (ex지도,첩자보고로들었던 가정이 실제와는 틀리다던가.) 그래서 마속이 돌발행동을 했고 이때 임기응변을 커버칠수 있는 왕평을 딸려서 보낸건데 (여기서 중요한게 제갈량 명령이 뭔지는 모름) 마속은 왕평의 의견을 듣지않음.정리하면 그 변수가 무었인지를 몰라서 지금은 추측만하는거 같습니다.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더 정확한 기록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아쉽습니다 ㅠㅠ

    • @고정도
      @고정도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해당지역을 찾아간 유튜버가 홍보대사 인터뷰라던가 직접 드론띄워보면서 해당지역을 보여주는 영상이있습니다
      여기서나온 기록이나 민담에의한 걸로는 마속이 당시 가정성을 지키지않은건 가정지역의 경우는 성내민심 자체가 이미 위나라 편이었고 심지어 성내백성들이 촉군의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합니다
      관에서 하는 수성전과 성에서하는 수성전은 또다르져 아니면 백성들을 다 내쫓아야하는데 또 그럴경우에는 촉에대한 민심이 더더욱 나빠지구여
      이전 남만평정떄도 마속은 남만족에대한 민심다독이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합니다
      거기다 해당지역이 우리가생각하는 뭐 길목이라칭할만큼 좁지도않은데 이 길목좌우로 두군대의 산이있습니다
      한곳은 물을 구할수있지만 산이 낮고 완만한반면 마속이 있었던 곳은 물이없고 산이 험하고 높았다는거죠
      즉 물만제외하고보면 이쪽이 방어에더 유리하다는점
      그다음은 이제 마속이 경험한 지형은 살아온 형주지역과 촉땅만 경험해왔고 이곳은 비가 많이내리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곳에서만 40년가까이 살았다보니 저기도 비가 자주올줄알고 비오면 물받아서 버티면된다 이런생각을 하지않았나
      하지만 해당지역은 이미 당시기후상 땅이 메말라가던 시기였던지라 비가안왔다는거죠
      여기다가 상규성이 포위되어있고 이를 구출해야하는게 장합의 임무였는데 상규성이 포위되어있긴하나 그옆으로 샛길이있어 이곳으로 연락이가능했다합니다
      곽회가 옹주의 주성인 기성을 포기하고 상규성을 틀어막은목적이 이 샛길을 살리기위함이었다고하구여
      이로인해 장합은 상규성이 아직 잘버티고있다는 사실도 알고있었고 그러기에 마속이 등산한걸 굳이 강하게 공격해가면서 피해를 늘려야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냥 느긋하게 산을포위하고 목말라죽게끔 기다린거구여
      여기다가 연의기준으로는 5배 정사기준은 모르겠지만 적은병력으로 막아야하는데
      마속이 강제적으로라도 명령을 따르게끔 직위를 올려서 보내도 모자를판에 그냥보내서 왕평이랑 대판싸우고 왕평이 따로 진지를 꾸려버림으로서
      군사적역량이 그래도 입증된 왕평이 지휘하지않는 상황이발생한거죠

    • @user-ht8vy6xk5h
      @user-ht8vy6xk5h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끝까지 가정지킬려했던사람은 마속이라생각함 가정정투 와 비슷한게 임진왜란 당시 남원성전투임 제갈량계책대로 남원읍성에서 지키던 조선명나라군사는 왜군에 몰살당함 마속도 아걸알고 산위로 올라가 농성하는것임 마속의계책은 가토기요마사처럼 울산성에서 농성후제갈량도움받는것이었을듯 왕평은 싸우는척하고 도망치는거고

  • @정승호-d4t
    @정승호-d4t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첫지휘관때 망함 : 마속
    첫지휘관때 상타치 : 강감찬

  • @해톨짱
    @해톨짱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저도 양양이님 가정기행 영상을 보기전까지는 이런 의견에 공감했지만 그걸 본 이후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속을 등산왕이니 장합이 장비한테 깨지고 산악전을 배워서 마속한테 써먹었다느니 이런 말이 있었는데 가정의 산은 전혀 그런 말을 쓰기에 택도 없는 산이었습니다.
    가정성 좌우에 산이 2개가 있는데 물길을 지킬수 있는 산은 위나라 기병이 돌격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완만한 구릉이었고 마속이 오른 산도 우리나라 동네 뒷산보다도 편해보이는 산이더군요.
    그리고 총체적으로 가정 지형이 평지에서 최고의 전투력을 보이는 위군에게 유리한 지형처럼 보였고 위군의 숫자마저 2배가 넘으니 더 답도 없어보였습니다.
    마속이 오른 산타는 방법 외에는 가정성에서 버티는 게 최고였는데 당시 지역사학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가정성 주민들은 위나라 치세에서 오랜시간 평화를 누리다가 촉군에 의해 그게 깨지니 촉군을 재앙으로 여기고 촉군에게 협조하지 않고 위군에게 촉군의 정보를 넘겨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을 지킬때 가장 위험한 것이 내통자들이니 성주민들을 그대로 두고 성을 지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위연, 오의가 가정을 지키는 방책은 주민들을 성에서 비우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합군이 워낙 빠르게 다가오니 더 극단적인 처방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왕평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조언도 비슷한게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마속은 그 방법을 쓰면 농서의 민심을 얻는데 악영향을 주니 채택하지 않았을 거고 제갈량이 마속을 가정으로 파견한 원인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너가 어떻게든 민심을 얻어보고 안되면 그 좋은 머리로 현장에서 잘 판단해라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위연, 오의, 왕평 같은 사람들도 그런 점을 잘 알았겠지만 그들의 성향 상 당장 가정을 지키지 못하면 어차피 전쟁에서 지는거니까 당장 가정을 지키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썼겠죠.
    왕평과의 불화에서도 알수 있듯 마속의 군장악력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보였고 법정 방통도 유비의 군사참모로 크게 활약했지 장군의 역할까지는 크게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갈량이 행정가인 본인이 군사를 직접 이끄는 게 되니까 마속도 할수 있지 않을까 착각한 것이 가정전투 패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왕평이 복병으로 위장해서 장합을 물리친 것을 보고 왕평이라면 장합을 물리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지만 이것도 경우를 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촉군은 삼국 군대중 최고의 산악부대로 유비의 한중 공방전부터 촉군이 산으로 위군을 끌어들여서 이기는 것이 여러차례 반복되고 있었으므로 장합이 매복을 걱정해서 돌아간 것이 왕평보다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은 가정성에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면 촉군의 장점을 활용하기 힘든 지형이었고 위군의 장점을 누르기에도 시원치 않은 정말로 쉽지 않은 전장이었다는 것이 양양이님 가정기행을 보고 느낀 점이었습니다.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먼저 정성스럽게 써주신 댓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양양이님의 가정기행을 봤던 사람으로서 한 말씀 드리자면, 가장 처음으로 드는 의문은 '과연 저 지형이 2천년 전 고대에도 그대로 유지되었을까?' 였었죠.
      저는 그 당시 어디서 보았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제갈량이 북벌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과거 초한쟁패 시절의 기산 등의 지형과 제갈량의 북벌 당시의 지형이 달랐다는 주장에 관한 글을 보았었습니다. 그 가설도 꽤나 그럴 듯 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었죠. 그 가설에서도 든 싱각은 '음, 그럴 수도 있겠네' 였는데, 여기서 또한
      전체적으로 '그럴수도 있겠구나' 정도였지, '와 맞네 이게 정답이네' 까지는 아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마속의 군 장악력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왕평과의 불화만으로 마속이 군 장악력이 부족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보이는게, 마속이 처형될 당시 '모든 제장들이 울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본다면 마속이 연의에서의 시건방지고 오만한 캐릭터가 아닌 인망이 꽤나 있었지 않을까 라는 추측도 생기기에 군 장악력이 부족했기에, 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않을까합니다.
      마지막으로 장합이 왕평의 적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왕평이 장합보다 비교우위이다' 라는 말은 아닙니다. ㅎㅎ 가정에서는 복병의심으로 퇴각, 4차 북벌 당시 장합이 왕평을 이기지 못한 것도 기록으로 나오는데, 정사의 장합은 그냥 무대뽀 장수가 아닌 전략가에 가까운 지장이었습니다. 즉, 생각이 너무 많았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왕평 또한 지장이었기에, 수 싸움에서 패배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정에 그 어떤 장수가 갔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제갈량이 총애했던 마속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가 궁금했던 것 뿐 입니다. 사실 전체적으로 기록이 너무나도 부실한 인물 중 하나라, 추측에만 기대야 한다는게 너무나도 아쉬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ㅠ 혹시라도 오해를 하셨다면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의견에서는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시한번 너무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세요~!!^^

    • @해톨짱
      @해톨짱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주인장께서 긴 글을 써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마속에 대한 영상 중 전통적인 포지션은 유지하지만 그래도 색다른 시각을 많이 첨가한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양이님 가정기행 영상을 보면서 그동안 알려져왔던 마속과 가정 전투에 대한 역사적 교훈이 대중에게 잘못 전달이 돼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생각나서 적다보니 저도 너무 길어져서 주인장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조금 망설여졌지만 쓴김에 그냥 올려버렸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의 진실을 다 알수는 없으니 주인장의 이런 의견과 연구들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니 너무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historyGD2322

  • @user-ps3gi1qq7i
    @user-ps3gi1qq7i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마속은 원피스의 에이스같은 존재임.
    윗사람의 명령을 절대로 안듣고 결국 자기 멋대로 하다 결국 팀의 프로젝트를 망침 둘다 낭만형 트롤로 재평가되었음

  • @user-dv5gi7hv5f
    @user-dv5gi7hv5f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실전경험이 없는 후임 키우려면 한무리의 장으로 두는 게 아니라 똑똑한 장 옆에 두어 그를 살펴 익히게 하는 게 최고죠, 마속을 한무리의 장으로 둔 한가지로 이미 군을 이끄는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인물.
    꼼꼼한 워커홀릭인 건 좋은데 말 잘한다고 자기처럼 행정능력 풀로 채워진 게 아닌데다 자기부터가 군략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물량으로 차근차근 밀어버리는 정석을 신봉하는 참모인데, 제갈량이 위나라에서 살았다면 생전에 삼국통일 성공했을 겁니다.
    인재도 충분하고 물자를 뽑을 인구도 영토도 충분하고

  • @user-kq6dm1dt6k
    @user-kq6dm1dt6k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촉에게 가장 필요 했던 인재는 곽회 같은 인재가 가장 필요 했다 봅니다. 내정 이야 비위,장완,동윤 같은 인물들이 있으니 가장 필요 한건 군사령관 같은 인물 이었다고 봐요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그래서 왕평도 매우 중용되었었고, 위연이 무엇보다 아쉬운 인재였죠.

    • @user-kq6dm1dt6k
      @user-kq6dm1dt6k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historyGD2322 왕평과 위연의 귀순이 촉에겐 마지막 까지 승부 볼 수 있는 하늘이 준 복 이었다고 봅니다. 이릉에서 훗날을 도모할 인재들이 싹다 죽거나 위에 투항한게 아쉬워요.

    • @user-ry1js9yi8v
      @user-ry1js9yi8v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user-kq6dm1dt6k 위연은 귀순이 아니라 애초 유비의 병사출신입니다. 한현 부하는 연의의 창작입니다

  • @user-yl7vb7xc8l
    @user-yl7vb7xc8l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맨유가 2:1로 이기고 있는데 75분에 미들 맥토미니를 빼고 안토니를 넣는
    아약스 향우회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거 낑꽁형 장난이 너무 심한거 아니오! 맨유팬인건 어찌알고...

  • @user-ub8yb2yo9h
    @user-ub8yb2yo9h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전형적인 탁상공론자

    • @historyGD2322
      @historyGD2322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입으로 먹고사는 친구죠 ㅋㅋ

  • @h9981025
    @h9981025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마속빈강정

  • @김석봉-l4q
    @김석봉-l4q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결과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