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무식하고 게으른 저는 세상 어느 종교나 어떤 신을 믿는 신자도, 불신자도 그 선택이 스스로와 상대에게 이롭다면 선택을 지속해도 괜찮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만 유익하거나, 상대에게만 유익하거나, 나와 상대에게 모두 유익하지 않은 믿음이라면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도 배웠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결단이 마음에 드내요.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질수록 객관적 진리보다 주관적 진리가 더 삶을 이끄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새 저는 객관적 진리를 아는 것보다 내 안의 주관적 진리를 아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는 넘쳐나고 접근도 쉬워져 제 스스로 엄청난 지식을 체득한 것처럼 느끼다가도 그 많은 지식이 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여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내 선택이 옳거나 선하거나 완벽한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쩌면 무지와 오만이더라도 내 결단을 끌고 가는 것이 내 삶을 더 값지게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고민이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객관적 진리를 알았다는 것이 환상에 가깝다고 느낄때도 있고요. 쓰다보니 신비주의에 가까운 의견인 것 같기도 한데 주관적 진리가 더 나의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객관적 진리에 대한 욕망도 여전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주관적 진리를 위한 도구로써요.
어려운 이야기를 정말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것은 가장 큰 자연수를 찾아내겠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법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람을 살해한자는 사형무기5년이상 ~~~ 그럼 제 생각에 왜 사람을 살해하면 그렇게 되는거지? 라는 의문을 가질만도 해요 그러면 사람을 살해하는것은 나빠! 라는것이 저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럼 왜 사람을 죽인것이 나빠?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하느님이 그렇게 정했어! 십계명 중에 여섯번째 계명을 읽어봐! 라고 대답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점에서 '살인하지 마라'는 그 자체로 선험적인 명제입니다 살인이 나쁜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모든 살인행위를 관찰해서 법칙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살인이 나쁘다는것은 그 자체로 참인 명제입니다 성경은 보통 이러한 구절들로 이루어져있더라구요 그래서 그것들은 법칙을 찾아낼 필요도 없고, 모순이 있다고 해서 거짓인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냥 기준내지 원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점은 부분이 없는것이다' , '1은 자연수이다' 와 같은 말들이에요 저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아니고,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닙니다 그저 철학에 관심있는 비전공 대학생일 뿐입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재밌는 영상 감사합니다. 파스칼의 내기에서 고려할 만한 건, 신을 믿는 대가가 종교인들 말처럼 무한대에 가깝다면 신 존재의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신을 믿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 아주 낮은 신 존재 확률 x 무한대의 대가 = 무한대) 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비판은 신 존재의 확률이 0라거나, 아님 신을 믿는 대가가 무한대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저는 그저, 제가 이 영상을 클릭하는 선택을 해서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접하고 사고를 넓힐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하고 감사할 뿐, 제가 이 영상을 클릭하도록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매 영상마다, 책 한 파트마다, 제 사고능력을 키워감에 많은 도움을 주심에 오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신을 믿진 않지만 '신앞에 홀로 선 단독자' 라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는 너무 매력적임. 세상의 절대자와 단 둘이 있게 된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런점에서 종교는 절대자와 나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인데 중간자가 이익에 눈이 멀어 개개인의 주관적 진리를 찾아주는게 아니라 목사님의 진리만을 설파하니 문제인듯.
기독교에 요즘 개돼지같은 목사가 있는것은 사실이고 불교에도 개돼지 스님이 있고 천주교에도 개돼지 신부 수녀 주교들이 엄청많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한구원을 외치는 종교라는것만 알면됩니다 불교는 색즉시공 즉 색이 공이며 공이 부처의 영이라고 볼수 있으며 우주의 관찰자라고 볼수 있겠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니까 창조주가 우주를 관찰하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우주가 관찰한다고 하는 우주에 신성을 두는 불교 유교 흰두교 도교 하이데꺼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사상과 철학을 기독교에서는 반대합니다
매불쇼보고 왔습니다 컨덴츠가 좋네요 잘 보겠습니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른이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각자가 다를 수 있으니 신이 존재 한다 안한다 강요하지 말자 생각은 자유니까 유신론자는 무신론자에게 지옥 간다고 겁박하지 말고 무신론자는 유신론자를 조롱하지 말자 그러면 적어도 신을 안믿는다고 사람 잡아다 죽이는 일은 줄어들겠지.....
저는 불가지론자인데 신의 존재(혹은 부존재)를 꼭 증명해야하나 싶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 신의 가르침을 꼭 따라야 하나 의문이 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만들었다고 자식이 꼭 부모를 따를 필요가 없듯이요. 저는 인간이 신을 믿게되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근히 학자들 중 신을 믿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다,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좌절하여 결국 신에 기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것이 아니라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채널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얼굴로 만나뵈어서 더 좋았습니다. 한편으로, 영상 마지막에서 가볍게 다뤘다고 인정하셔서 많이 안도했습니다. 현대 일류 기독 철학자, 가령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J P 모어랜드, 알빈 플란팅가, 앨리스터 맥그라스 등이 이 영상의 방식으로 해당 주제들을 다루는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나은 학문적 대화를 위해, 그리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피하기 위해, 가능하시다면 이 주제들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마이클 로타, 알빈 플란팅가 등이 다룬 버전들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다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논증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의 현대 버전이 있고, 파스칼은 마이클 로타(Michael Rota)가 최근에 현대 버전으로 업데이트했고, 안셀름의 존재론적 논증은 또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가 업데이트했기 때문에 이 세 사람에 대해서 집중하여 소개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 외 알빈 플란팅가 혹은 J P 모어랜드의 양상 논리에 입각한 영혼 존재 논증,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의 역사학적 논증, 크레이그 키너(Craig Keener)의 기적 논증 및 그가 정리한 경험적 자료들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컨텐츠 계속 만들어주시기 기원합니다.
칸트의 신의 현존이 요청된다는 것은 증명이 아니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의 현존이 없다면 살인과 거짓말, 간음 금지와 보모 공경이라는 인간의 도덕률에 왜라는 질문을 할때 최종 권위는 없으며 문화 상대주의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입니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에 대해 '신 존재가 증명되면 믿음에 가치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된 것처럼, 신앙과 존재론적 증명은 (일정 부분)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만약 신 존재가 증명됐다면 신앙의 기저엔 믿음이 아니라 복종이 있겠죠.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고, 자유는 증명된 것을 전재하지 않으니까요. 더불어 개신교와 가톨릭 - 기독교에선 신앙을 사적인 채험으로 봅니다. 타인의 경험에만 기대서는 신앙을 체득하기 힘들다는 말인데, 이 또한 존재론적 증명과는 일부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다른 얘기이긴 하나 삶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걸러내는 방법론으로써 신학은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에, 개인적으론 신학을 단지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의 태도를 위한 일종의 정신적 수양(?)으로도 받아들이면서 상당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혐오 정서가 뿌리깊게 자리잡은건 알지만, (요즘 유독)판치는 사이비 교회에 출석하는게 아니라 신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개인의 상황에 따라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종교 관련 내용은 오랜만에 나온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댓글이 두서없이 길어졌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정신적 수양의 의미로 종교를 가지려면 불교가 맞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고 다스리는게 목적입니다. 신을 받드는 의미보다 나 자신을 가다듬는것이 더큰 목표니까요. 그에 비해 기독교는 하느님 안믿으면 지옥간다고 전도하는거 부터가 썩었습니다. 되도안한걸로 협박하는 기독교를 종교라 부르기도 부끄럽네요ㅋㅋ
정리가 깔끔하게 된 영상 감사합니다. 한가지 의문이 있다면 마지막에 믿음은 선택에 의한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게 믿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주관적 전제인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신의 존재에 대한것은 현재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여러 양측의 의견을 모두 도서와 여러 정보를 통해 접하였고, 결국 증명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양측의 의견 중 제가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의견이 반반으로 나눠지거나 절대적 답이 없는 경우, 우리는 한쪽을 선택하여 자신의 신념으로 삼습니다. 물론 그 신념이 바뀔수도 있긴 하지만요. 따라서 믿음 또한 신의 존재가 증명 되지 않는 한은 선택의 영역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란 개념자체가 '선택'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 믿는 것과 안믿는 것 중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인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무신론자는 신의 부재를 믿는 것이지, 믿음에 반한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zvhzk 지구가 둥글다는 것처럼 답이 정해진 경우에는 선택이 필요가 없죠. 증명된 팩트니까요. 종교인이 종교인이 되기 전, 무신론자가 무신론자가 되기 전에 그들 스스로 그 믿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찬반이 거의 절반으로 나뉘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논지에 대해서, 그 중 하나의 의견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배경지식으로 그것을 선택한거죠. 만약 무신론자가 영적 경험을 하면 그는 신을 믿기로 선택하겠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구요.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반론 에서, 결단, 즉 선택할 수 없고 선택되어질 뿐이라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닐까요? 신을 믿는 문제는 인간의 자유 의지, 영혼이 있다는 믿음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와 얼켜있는 것 같네요. 따라서 유물론적 세계관으로는 신앙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웃긴게 신이 인간판단 기준이란거에 모순이 있음 세상을 만들면 만물 평등인데 인간 기준으로 도덕을 지키느니 뭐니 이딴 거 보다 그냥 인간이 미학적 유희를 위해 닭 돼지 소 잡아먹고 토지개척을 위해 나무 벌목을 하고 플라스틱 생성에 대기 오염에 지구 입장에서 수많은 악행을 이미 저지르고 있는데 그냥 인간 기준에 착한 행동 이딴 걸로 신의 축복을 받겠다고 믿는 거 부터가 시건방진 태도임. 지구의 신 우주의 신 입장에서 그냥 인간의 맘적 태도나 인간끼리 돕고 선을 행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음.
칸트의 신 존재 요청과 비슷한 고민을 최근에 하고 있었는데 이런 논증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선생님 덕분에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으로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의 대부분은 몇 백 년전 철학자가 한 고민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저 혼자 한 생각이라기보단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의 2차 창작물로 간접 경험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애매하지만 우리는 지키면서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이처럼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신에 대한 의심도 평생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고민이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함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의무 교육 과정에서는 합리주의, 이성주의를 주입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분명 과학이 주지 못하는 강력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 신앙보다 종교 철학 쪽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종교 철학이라는 말에도 사이비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은 과학, 철학보다 훨신 복잡한 존재입니다. 요즘 굉장히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고 다니네요. 칸트의 인간은 끊임없이 갈등하는 비극적 존재라는 말에 큰 위로를 얻고 갑니다.
믿음의 강도에 기반한 종교는 회의와 입증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이나 과학과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현 시대의 타협점이긴 하지만, 철학과 과학이 신과 종교를 논하는 것은 중대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이는 우주론이나 우주과학에의 도전이 유익함과 비유될 것입니다. 기성종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루면서도 철학이나 과학과는 말을 섞지 않으려 하지요. 그 이유는 가치를 초월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라지만 경험칙 상 실익이 없어서지요. 말하자면 명분상으로는 가치초월적이지만 실재는 가치추구를 넘어서는 극보수인 셈이죠. 법이 정의의 실현을 이념으로 하면서 그에 앞서 테러로 안정성을 확보하는 사태와 마찬가지. 역사적으로 인간이 믿어온 신들은 다양하게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탄생하고 확장되겠지요. 우주를 총괄하는 절대종교의 입장에서는 철학이나 과학도 결국은 신흥 종교에 불과합니다. 철학과 과학이 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인간 사고의 한계를 탐구하는 것으로 그 신은 기성 종교의 신들과는 전혀 별개지요. 이를 인식하면 종교와 철학은 대립적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철학적 시각에서 인간은 정신을 유희하는 동물이며 그 사태의 극단이 신이지요. 알 수 없는 우주 저멀리 우주선을 보내는 과학이 정작 깔고 앉은 지구의 핵에는 가거나 볼 수 없지만 그 내용은 계산하듯, 인간의 정신 세계도 무의식이나 사후에 대해 유사한 수단들이 급속히 개발되는 시대입니다. - 아무리 배워도 짧은 식견에서 나오는 막글 -
영생은 필멸이요, 불생이 불멸으로, 다만 원생으로 작용할 뿐 1. 인간이라는 기능과 능력이라는 차원의 한계 2. 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만과 오만의 한계 3. 존재론적 관점과 무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 적멸을 경지를 성취하더라도 그것은 논리와 표현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한계 4. 파스칼의 내기도 표현하지 못하는 현생의 이익 즉, 인과의 법칙은 곧 우주의 법칙인 것을
파스칼내기 신 존재 경우의 수는 신이 있다 or 없다로 나누는게 아니라 어떤 신이 있는지까지 고려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이를테면 야훼 토르 제우스 크리슈나 아후라마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 피콜로 계왕신 검정고무신 등등 수없이 많은 신 중에 어떤 신이 있을지 알 수 없는거 아닙니까
교수님 혹, 인도철학을 소개하여 주실 수 있으신지요? 구글 ceo, 영국 총리 등이 인도계열이기에… 국제 정치 및 경제 측면에서도 인도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어 쉽고 간단히 소개하여 주시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듯하여서요. 5분 뚝딱 채널이 영향력이 크기에 혹여나 하여 남겨두어요!
11:20 부근의 오류 영상 초기에 신은 완전하다 라는 측면, 요점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 하여 지옥 행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전선'이 아니기에 패러독스가 생김. 존재한다면 전선할 것이기에 믿음과 상관없이, 인간이 선하게 살았으면 최소한 지옥 행은 면 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사후 세계는 '무'이니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한 시간, 자본의 투자를 안해서 이득이고.
신의 존재에 대해 그냥 이도저도 아닌 관점입니다만, 참 살면 살수록 칸트의 의견에 많이 동의하게 되네요. 온갖 악인들을 볼 때마다, 그렇지 않게,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천국에 그 보답이 마련되어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됩니다. 처음 아퀴나스의 논증을 들었을 때,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존재들이 '서로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즉 무한이 이어지는게 아니라, 유한한 순환의 고리를 이루면 왜 안되냐? 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께선 '그건 좋지 않은 방식이어서' 정도로 설명을 해 주셨는데, 당시엔 완전히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납득했었는데, 지금은 그 납득의 과정이 잘 기억이 안납니다. * 일반적으로 수정에 이르는 정자는 꽤나 늦게 난자에 도착한 정자라고 합니다 ㅎㅎ ** 총 한자루가 고장날 확률이 0.1%일 때, 6자루가 동시에 고장날 확률은 0.0000000000000001% 로, 훨씬 더 희박한 확률입니다. 아마 계산 과정에서 백분율이 혼동을 주었나 봅니다.
신 우리에게 최소한 창조주의 의미 근데 이세상을 만들었다고 완벽하고 전지전능할거라는 생각이 웃김 그냥 실패해서 버려지거나 잠깐 갖고 놀다가 흥미를 잃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장난감 일수도있지 딱봐도 단순한 생존게임 뭐 모르지 히든퀘스트에 의해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것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천국따위는 아닐확률이 높겠지 첫판이 가장 쉬운법이니까 ㅋㅋ
@@gangstakim3385 음... 안셀무스의 논증은 말하자면 '신은 그 정의상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정도가 되는데, 그걸 좀 확장하면, '신은 정의상 전지하고 전능하고 지선해야 한다', 는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주라서 전지전능하다라기보다는, 전지전능이라는 개념이 상상 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주가 그 속성을 갖추게 된다고 이해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적어도 이 영상에서 논하고 있는 영역에서) 신이 전지+전능+지선 할 것이라는 믿음은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자' -> 정의 상 오류 발생 -> '그럼 전지+전능+지선한게 맞구나?' 와 같은 논리학적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꼭 맞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냥 덮어놓고 그렇게 믿은 결과물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것이죠.
진정한 사랑이 '비이성', '비논리'를 핵심 요소로 하듯이, 진정한 믿음도 '비이성'과 '비논리'를 동반하지 않으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죠. 만약 신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종교는 없을 겁니다. 무신론이 종교와 믿음의 영역에 존재하게 되겠죠. 😊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지/전능/전선하며 완전한 신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이상향일 뿐이다. 내 생각: 너도, 나도, 모두가 신성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신성하다. #존재하지 않는 자동차와 존재하는 자동차 중에 왜 존재하는 자동차가 더 완전한 것인가? 왜 탈 수 없는 자동차가 탈 수 있는 자동차보다 더 완전할 수 없는가? 완전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왜 꼭 존재해야만 완전한 것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가? 누군가 이 댓글을 보기 전까지 그는 내 존재를 모르지 않았나?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존재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 것 이 더 적절한 구분 아닐까? #빅뱅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이 신이라고 한다면, 왜 그런 운동을 했는가? 그저 신이기에 스스로 운동한 것이라고 한다면, 빅뱅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즉 빅뱅 그 자체가 신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과학은 이야기한다. 그러면 이 모든 세상이 또 신이라는 것 아닌가? 러셀의 말 대로 꼭 최초의 원인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세계를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이 인간/ 동물/ 생명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왜 인간이 신이 설계도를 가지고 정교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명체가, 인간이 존재할 적절한 조건이 우연히 갖춰져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왜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가? 물론 후자도 맞는 말일 수는 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렇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신이 존재할 확률이 50%이상이든 0.1%이든, 그 전에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 선하게 살 것인가? 악하게 살 것인가?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그다지 악하게 살지 않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선한 삶을 살면서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종종 있곤 하다. 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혹시.... 믿음의 여부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칸트가 신을 믿자고 하는 것일까? #주관적 진리 나에게 맞는 것이 꼭 너에게도 맞아야 할까... 때로는 그렇지 않아도 아무렴 괜찮고, 오히려 더 좋을 경우도 있지 않을까?
지구 6000년설을 주장하는 유신론자들의 주장을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론 찾다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재미있네요. 개인적으로는 러셀의 '왜 꼭 원인이 있어야 하느냐' 라는 주장이 인상적입니다. 많이 공부하신 분들도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원인을 찾다 결국 신을 믿게된다는 주장을 보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러셀처럼 생각해본적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신이나 종교가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있는 편이 사회에 더 이득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아무튼 잘 봤습니다. 건강하세요~!
사람이 생각하는 논리,이치 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것, 일 뿐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논리나 이치에 맞아야만 인정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논리인것입니다. 사람이 그 무엇에 대하여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끝은 결국 모름으로 마쳐지게 될것입니다. 앎이란, 사람의 생각범위 안에 국한된 앎, 일 수 밖에 없지요. 사람이 살면서 추구하며 사는 목적은 모름에 대하여 더,더,더 알아가는 삶을 살다가 갈뿐이고 그 결국은 모든것을 다 아는것이 아닌, 알만하다는 앎, 에 도달하여 이해할 수 없음이 이해될수 있음이되는것입니다. 없음과 있음은 서로 상대적인것이므로 없다가 되려면, 있음이 있어야 하고, 있다가 되려면 없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신이, 창조주가 있다, 없다. 생각하기전에 "나"는 있다, 없다 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있으면 신이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것입니다. 내가 있기에 신의 존재여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 "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신의 존재여부는 의미가 없는것입니다. 없음은 그저 없는 것이며, 있으므로 있게 된것입니다. "나"가 없으면 신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서 흙으로 가도 흙으로 라도 존재하게 되지요. 또다른 나는 계속 존재하므로 신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것이 사라져 없음이 되면 신도 없는것입니다. 있기에 있는 것입니다.
신의존재에 대해 '메타메타메타...인지'를 하고 있던 차에~(본 채널 메타인지 동영상 참조) 이 영상을 보고 얼마나 감사한지! (참고로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6학년 후반대) 선생님 덕분에 수백수십년의 지식을 단5분만에(실제는 런닝타임이 21':39"이지만 *집중하면 5분! *)쏙 정리!*^^* 개인적으로 몇군데 장면에서 아쉬움이 좀 있었는데...그중 파스칼의내기 내용중에 신의 유무의 확률은 경우의 수 합의 법칙에 의해 둘다 각 1/2로 50%,50%이고, 롯또의 당첨율(1등만 기준했을 경우)은 0.0000125%, 꽝은 99.9999875%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누구는 롯또를 왜 사는가? 누구는 왜 사지않는가?의 설명이 좀 불분명하고 나아가 이 롯또 확률 이론?으로 신의 존재의 유무에 적용하여 결론을 내리는게 매끄럽게 이해가 안되네요.... >
1. 신을 전지, 전능, 전선 한 존재다 라고 정의하려면 무지, 무능, 전악(?) 한 것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지 무능 전악한 것은 신이 만들었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존재를 만든 신은 전선하다고 할 수 있나요? 2. 창세기에 의하면 태초에 신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탄생했고 그 외 세상 만물을 말로서 창조하셨습니다. 이를 행하는데 6일이 걸렸고 하루는 쉬셨죠. 또 인간을 만드실 때는 자신의 모습을 본 따셨고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천지창조에 6일이 걸렸고 하루는 쉬어야 하는데 전지전능하다고 할 수 있나요? 제가 프로그래밍을 공부 하는데 Duck Typ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동물이 있는데 오리처럼 울고,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생겼다면 그것은 오리일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 하는 추론법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는데 사람처럼 말을하고 사람처럼 휴식하고, 사람처럼 시간을 쓰고,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사람처럼 생겼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닐까요? 신은 사실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다고 하죠. 사람 안에 있는것 아닐까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누구라도 능히 저 산을 옮길 수 있다.' 이 말은 누구나 기적을 행할수 있다는 뜻아닐까요? 불교가 생각나네요. 누구나 안에 부처님이 계시죠.
자연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이 없더라도 선(善)이라는 것은 존재할 것입니다. (다만, 선은 인식될 수가 없습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정도의 자연적인 개념 자체는 존재하겠지요) 하지만 악(惡)은 다르지요. 비유하자면, 밝음이 선이고, 어둠이 악일까요? 아니죠. 빛이라는 것은 어둠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어둠도 빛이 있으므로 대별 되는 지극히 자연적인 것입니다. 물론, 선과 악이 이원론적 관점에서 쉽게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존재해야 할 그 목적과 필요 조건으로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째서 존재하지도 않는 선악의 개념이 인간에게만 존재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물고기, 독수리, 코끼리나 사자와 같은 동물에게 선악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필요하지도 않고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필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선악을 몰랐을 때는 필요한 개념이 아니나 알게 된 이후로는 필요) 모든 동식물과 자연을 가꾸고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유롭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높은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지요. 그러한 책임과 본분에서 벗어난 것이 타락이고 죄악이지요. 그런 인간이 무결성한 존재가 되려면, 책임을 다하는 입장에 서려면, 신의 간섭 없이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만약 간섭하게 된다면, 간섭한 주체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니 그 어떤 책임이나 죄를 전적으로 그 대상에게 물을 수가 없지요. 오히려 신은 인간에게 '따먹지 말라'라고 경고했으나, 인간 마음대로 그 지켜야 할 책무에서 벗어났으니 명백히 죄가 되지요. 그렇다면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된 것처럼 애초부터 신이 악을 창조한 것인가? 신에게 악의 개념이 존재했다면, 그 신은 전지전능한 무결성한 존재가 아닙니다. 애초부터 모순된 존재라면 파멸했을 겁니다. 따라서 지옥이라는 것도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겁니다. 인간이 타락할 것을 예상하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눴다면, 신 스스로 무능하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결국 지옥이라는 것도 인간이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세계도 인간 스스로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신은 인간에게 그만한 책임과 권한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선한 것이 정답이고 악한 것이 오답이라고 가정한다면 오답이 존재한다고 해서 출제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부모가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는 선하고 둘째는 악하다면 그 부모가 존재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나요 ? 부모의 마음이 선해도 자식이 악할 수 있는 것처럼 창조자는 선하지만 피조물이 죄악으로 인해 악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벌에는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처벌하는 사형이 있습니다 사형 자체는 살인과 동일하므로 악한 행위일 수 있지만 죄악에 대한 처벌로 국가가 확실한 연쇄살인범에게 사형을 집행한다면 국가나 제도가 선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요 악한 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창조자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완전(전지 전능 전선)한 것과 피조물이 불완전한 것은 별개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창조자가 피조물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완전하다면 그것은 피조물이 아니라 신입니다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보통 신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신이 완전하고 선한데 세상은 왜 불완전하고 악한가] 이렇게 오류 섞인 질믄을 하시는데 하나님은 피조물을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왜냐면 그래야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부족과 한계와 죄악을 느끼고 신의 필요성을 깨달아 신을 찾아가게 되기 때문이죠 만약 피조물을 완전하게 창조했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됐겠죠 그리고 창세기 7일째 하나님의 쉬심은 인간처럼 힘들어서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의 완성의 의미로 더이상 창조하지 않고 창조 활동이 멈추었다는 의미로 7일째에는 (창조를 더이상 안 하시고) 쉬셨다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작동시킨다는 의미의 일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아버지(하나님)가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온 우주를 작동시키는 일하심은 쉬신 적이 없고 지치지도 않으십니다
@@dawnsunshine 정답과 오답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좋다" 혹은 "나쁘다"의 자연적인 개념 자체는 존재합니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고, 나쁜 결과가 될 수는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자연적인 불변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선과 악을 비유로 설명하기에는 많이 거리가 있습니다. 악은 신이 바라던 창조목적이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이 2개일 수는 없는데.. 설명을 더 해야 하는 부분) 일단, 님께서 선한 부모가 자식을 낳았는데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선악 자체가 존재한다는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점은 생각을 유보하셔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것은 비유적인 설명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선한 자식이 태어날 수도, 악한 자식이 나올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무조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확률적인 자연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신은 인간에게 따먹지 말라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만한 지침을 줬다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께서 모든 의사와 결정을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맡기신 것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전지전능한 신께서 아이러니하게 인간에게 '믿음'으로서 경고하신 겁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을 것을 아셨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도 않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의 있나요?) 즉, 모든 것을 아시는데, 인간에게 따먹지 말라고 경고했을까요? (모순이지요) 이것은 흑백논리로 따지면 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신께서 주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전지전능하다는 것도 어느 범위에서 그렇다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론은 한가지죠. 신은 인간을 동등한 입장으로 창조하신 겁니다. (예수님 같은 존재, 부모와 자식 관계)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직접적으로 주관할 수 없는 존재로서(간접은 가능) 인간 스스로 책임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그러한 자아로 완성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신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자가 되도록 하신 겁니다. 그래야만 신을 닮은 초월적인 존재가 되니까요. 자식이 나를 닮아야 졸지? 하나도 닮지 않은 것이 좋은가요?ㅎㅎ 각설하고, 만약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에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신이 개입해서 주관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틀에 박힌 결과적인 행위만 하는 로봇에 불과하지요. 신이 전지전능한데, 뭐 하러 우주를 만들고, 인간을 창조했습니까?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인데, 뭐가 부족해서 그러한 창조를 하셨겠습니까? 심심해서요? 물론 심심한 것도 결핍의 하나겠지요. 전지전능하더라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도 결핍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 기쁨도, 슬픔도... 결핍이 없다면 그러한 자극은 없습니다. 에덴은 좋다, 기쁘다,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창조의 행위는 기쁨에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악한 인간, 악한 세계가 되길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user-qe7fo8yq1r 정답과 오답도 선과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정답은 참말이지만 오답은 거짓말이니까요 성경에 따르면 거짓말은 죄이고 따라서 악입니다 물론 악은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선과 악 사이에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한 사람이 선택의 기로에서 정답인 선을 택할 것인가 오답인 악을 택할 것인가를 시험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자입니다 국가에는 감옥이 있죠 그러나 국가가 모든 국민이 감옥에 들어가길 바라기 때문에 감옥을 만들었나요 ? 아니죠 범죄를 저지르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감옥을 만든 것처럼 악이 존재하는 이유도 인간이 선과 악 사이의 선택 중에 선을 택하길 바라시고 또한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누구를 천국으로 데려갈 것고 누구를 지옥에 보낼 것인지 확정하시기 위해 그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시험하신 후에 참된 선한 사람만 천국에 보내시는 것이 창조자의 의도입니다 부모가 선한데 자식이 악하다는 것은 결과론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는데 왜 악을 만들었나] 이런 질문에 대해 [만든 존재는 선해도 만들어진 존재는 악할 수 있으므로 결과물(피조물)의 상태에 따라 창조자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고 따라서 인간 가운데 일부가 죄악을 저지르고 악하다는 이유로 신은 없다는 식의 주장은 오류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님 말대로 선과 악은 결과에 불과한 것이지 피조물의 현상 또는 상태 즉 피조물의 선악에 따라 창조자의 존재 유무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원하신 것이지 [모든 의사와 결정을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을 했을 때에만 벌을 받지 않고 안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의사와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선악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겠죠 하나님은 인간을 불완전한 피조물로 만드셨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신 것이지 인간을 믿으신 게 아닙니다 인간을 믿었다면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도 안 하셨겠죠 신이 인간을 믿었다는 것은 님의 주장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과 [명령을 어겼을 경우 벌을 받는다]와 [벌에 대한 내용은 죽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안 지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명령 어기면 넌 벌을 받고 죽는다]는 경고도 필요 없죠 창조자는 인간을 믿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하시고 명령 안에서만 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어린 아이에게 [불에 손 대면 안 된다 뜨겁다 다친다] 이렇게 경고했다면 그 사람이 [이 아이는 절대 불에 손을 대지 않을 거야] 이런 믿음이 있어서 경고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 아이는 잘 몰라서 불에 손 댈 수도 있으니 경고해 줘서 손 안 대개 해야지] 이런 불신에서 경고한 것입니까 창조자는 처음부터 인간이 불완전해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고 [명령에 대한 순종]과 [명령에 대한 불순종 즉 죄악을 범함] 가운데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정답만 고르길 원하신 것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부모님이 아이에게 만원의 용돈을 주면서 [5천원은 맛있는 것 사먹고 5천원은 저금통에 넣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 아이가 [만원을 다 저금통에 넣을 수도 있고] [하나도 저금통에 넣지 않고 모두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도 있다]라는 두 가능성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말씀을 자율적 자발적 자유의사에 따라 능동적으로 잘 지켜서 그 결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바라기는 마음에서 만원을 주고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만원을 모두 군것질 사먹고 저금통에 하나도 넣지 않아 부모님 말씀을 어겼습니다 이럴 때 과연 그 부모가 [아이가 타락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도 않았다면 아이에게 돈을 맡길 필요가 없는데 맡겼다는 것은 그 부모의 의도나 존재가 선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 그 부모가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라는 것을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부모는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아이 스스로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길 원했기 때문에 기회를 준 것입니다 선의로 기회를 줬는데 그 기회를 준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불성설입니다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신의 의도나 존재도 악하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흑백논리입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눠주고 시험을 주관해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가려내듯 한 인간이 참으로 선한지 악한지 정답과 오답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시며 천국행 시험을 주관하시는 분이 창조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정확히 신께서 주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충분하고도 넘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과 동등할 수 없이 무한대로 높으신 분이지만 님 말씀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선과 악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랑은 기계처럼 수직적인 명령만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참된 사랑이 가능하니까요 따라서 신은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거나 신을 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런 상황에서도 누가 신이자 창조자인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는지 보시기 위해 인간에게 선택권과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고 그런 쉽지 않은 시험과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중에 천국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도 자식에게 관여하고 주관하는데 신이 인간에게 관여할 수 없고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신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관여 주관 등 모든 것을 하십니다 인간은 부모 없이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성장해서 성인이 되나요 ? 아니죠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만 봐도 직간접적으로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데 부모를 예로 드시면서 신이 인간에게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시니 어불성설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을 처음부터 불완전하게 만드셨고 초월적 존재가 되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성품을 인간이 닮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사랑 봉사 이타심 선행 등의 선한 성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처럼 초월적 존재가 되지 않아도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닮게 창조됐으므로 [초월적이 존재가 돼야 신을 닮은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신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것 또한 신의 뜻입니다 (앞으로는 받으실 수도 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하나님 밖에 모름)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신도 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을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저도 이과
신을 믿는 이유가 첫째는 보상심리 때문입니다.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부조리와 범죄들을 보고 또 사악한 사랑들이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을 보면서 이세상 너머에는 반드시 신이 존재해야 하며 그 신의 심판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한다는 소망으로 신을 믿습니다. 두번째는 신이 없다면, 그리고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광대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인간의 가치가 너무도 초라하여, 인간만은 신이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창조했다고 믿음으로서 스스로에게 어떤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신을 믿습니다.
신 존재 증명의 새로운 방법론 - 만약 인간에 의해 창조된 AI가 인간처럼 자체 시스템에 의해 자기언급의 역설을 무한유예 시킬수 있다면 그리고 그 때 인간은 사라지고 없다면 AI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즉 AI의 나는 자산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인식할까? 아니면 자기가 아닌 그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자로 인식할까?
신의 존재 논증에 대해 간결하게 잘 요약해 주셨습니다. 예전에 철학서적에서 접해 본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이런 논증들이 철학도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들으니 확실히 그 세 가지 존재 논증과 요청, 결단 등은 모두 주관적 개념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컨대 존재론적 논증에서 "신은 정의상 전지, 전능, 전선한 존재"라는 전제 자체가 하나의 독단이기에, 이후의 논리는 사실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다른 논증들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고, 신의 개념 안에서 뱅뱅 도는 관념의 유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는 철학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나 신의 문제는 그것을 사유하거나 논증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서만 그 답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은 철학과 신학, 혹은 주관적 결단이나 믿음으로서의 '신앙'을 확실하게 넘어서는 문제라 하겠습니다. 이런 시각이 내포하는 중요한 함의 중의 하나는, 신에 대한 어떤 믿음이나 신앙도 그 자체로는 결코 진리나 구원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에게 구원을 의지하는 모든 종교적 믿음은 신이라는 관념의 범주 속을 맴돌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신의 실체에 가 닿을 수 없고 본질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신학이나 철학에 기반한 그런 관념적 신 개념의 범주를 벗어나서, 신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쓰기보다, "과연 우리가 신이나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신이나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훨씬 유의미한 물음이고, 실제로 유용하고 탁월한 결과를 도출하는 출발점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야를 크게 넓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신과 구원에 관해 실질적으로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유일신 혹은 인격신 관념의 낡은 우물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안전하다"는 유치한 확률 판단이나,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는 식의 억지 주장, 혹은 현상계의 엄청난 정교함에서 유추한 '지적설계론'으로 신앙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용기 있는 철학적, 종교적 결단을 요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스승 라마크리슈나는 제자 비베카난다가 "저에게 신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고, 비베카난다에게 모종의 깨달음 체험을 안겨주었습니다. 비베카난다는 자신이 신을 체험했음을 확신했고, 진리는 체험의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깨달은 신은 자기 바깥의 어떤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진정한 자아(진아)였고, 그 자신의 실체가 곧 신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인도에서는 태곳적부터 신과 진리의 문제가 전적으로 깨달음의 문제로서 다루어졌습니다. 이 경우 신은 우리가 자신의 하찮고 결함 많은 자아인 에고를 소멸했을 때, 내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자신의 보편적 실체임이 드러납니다. 인도의 전통에서 신은 저 먼 우주공간의 어디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는 우리 내면의 신적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동의어입니다. 20세기에 깨달음과 관련하여 신의 문제를 무수히 언급한 대표적인 스승으로 라마나 마하르쉬와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가 있습니다. 특히 마하라지는 1) 일체의 속성을 넘어선 절대자와, 2)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보편적 의식, 그리고 3) 현상계와 개인적 자아를 다루는데, 그는 이 중에서 두 번째인 보편적 의식을 신과 동의어로 규정합니다.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어떤 인격신이 아니라 전 우주에 편재한 보편적 의식이지만, 이것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궁극의 진리는 신을 넘어선 경지이며, 그 절대자는 지와 무지를 넘어서 있기에 전혀 앎이 없는 상태, 완전한 침묵으로 설명됩니다. 전지전능이 아니라 (모든 앎을 넘어선) 완전한 '비지(非知)'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도의 스승들은 오래 전부터 신과 진리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직 접해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결국 신의 존재 증명은 관념적 철학에서가 아니라 "내가 있다"는 자기존재의 확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개인적 자아와 마음을 소멸하는 수행을 거쳐 완전한 깨달음에서 확증됩니다.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이제껏 진리에 이르는 유의미한 경로와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이유입니다. 아무튼 유익한 동영상이었고, 두서없으나마 몇 가지 생각을 풀어놓게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의미 있는 글 잘 봤습니다 신을 전제하는 철학자는 진정한 철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근거 없는 전제에서 시작하니 철학과 맞지 않습니다 철학은 관찰과 사유의 결과이고 보편성이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내가 존재한다'는 데 까지는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소멸시키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더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영훈-t2m 종교를 서구에서는 흔히 '신념체계(belief system)'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매우 적절한 통찰이라고 봅니다. 그 말은, (마음이나 정신으로는 증명 불가능한) 신이라는 개념을 전제해 놓고, 교리로 표현되는일련의 신념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서 신앙하는 것이 종교라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종교는 심리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유이고, 누구든 종교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 체계를 과도하게 신봉하고 그 내러티브만 되뇔 때는 다른 세계관, 다른 통찰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종교에 대한 과몰입의 문제입니다. 거기서 집착과 독단이 나오고, 배타성과 공격성이 나옵니다. 이른바 '고등종교'로 자처하는 서구의 기독교(구교/신교)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아닙니까? 이미 종교는 복수로 오래 존재해 왔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할 근거는 박약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라고 믿는 이른바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는 그런 생각을 일종의 맹목 또는 미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종교라는 용어는 너무나 많은 복잡하고 서로 모순되는 의미를 무질서하게 내포하고 있어서, 진리를 논의할 때 사용하시기에는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신에게는 생로병사가 없습니다. 신에게 생로병사가 없다면, 신이 그것을 끝낼 일도 없습니다. 생로병사는 중생에게 있기에, 그런 것은 중생들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신에게는 인간들의 생로병사가 큰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의 견지에서는 생로병사 자체가 하나의 환이고,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를 실재한다고 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상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에게 인간을 위한 역할이 있다면, 생로병사가 환이며 실재하지 않는다는 진리와, 그것을 깨닫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스승의 역할이며, 신이란 실은 아주 옛적에 깨달은 스승들일 뿐입니다. 인도의 스승들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신과 스승과 진리는 똑같은 하나다"라고 말입니다. 제가 원 댓글에서 보인 진리의 관점에서 말해 본다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는 일, 즉 인간의 구원은 오직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 자체가 생로병사가 실재하지 않음을 철저히 체험하고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은 어떤 스승도, 어떤 신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고, 본인의 노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은 수행이라는 노력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이라는 결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서구의 종교들은 '하느님을 믿으면 천당에 가고, 그것이 구원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고대의 신학자들이 구성한 교리일 뿐 진리와는 정말 거리가 멉니다. 깨달음의 종교들이 가진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그냥 말도 안 되는, 가당치 않은 주장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천당과 지옥들에 대한 깊고 폭넓은 통찰을 가진 인도의 종교들(불교/힌두교)은 다양한 종류의 천당과 지옥들을 묘사하지만, 모두 일시적으로 왕래하는 곳일 뿐 어느 영혼도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천당에 갈 복력이 있는 사람은 가겠지만, 거기서 그 복을 다 누리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러니 천당에 가는 것이 무슨 구원이며,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무슨 징벌일 수 있습니까? 그런 관념들은 모두 영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영혼들을 이끌기 위한 방편적 설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리와 깨달음의 문제는 확실히 종교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종교나 신학의 틀 안에 머물러서는 이런 시야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누구나 진리 앞에서 용감해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성철스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불교가 불교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뛰어난 진리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신봉한다. 만약 불교보다 더 뛰어난 가르침이 있다면, 불교가 아니라 그것을 신봉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두서없이 몇 가지 소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칸트는 존재는 속성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사유의 한계 아닌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테슬라 자동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그것이 있다고 믿는다. 러셀도 인과관계를 무한퇴행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테슬라 자동차를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존재하는 것만이 경험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경험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우리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반론 부분에서는 테슬라 주식 예에서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는데 다음과 같이 이해를 해도 될까요?^^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에 대한 개인의 결단으로 주관적 진리가 성립한다는 데, 사실 진리란 객관적으로도 참이어야 그렇게 칭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는 개인 믿음 결단과는 달리 테슬라 주가가 내려간다면 그 진리성은 그냥 무참히 무너진다는 것이 문제점 같습니다. 즉, 그냥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믿음의 선택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참(진리)이 된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이 아닌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계속 더 가져간다면 이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더 큰 문제일 것 같구요...^^
1. 존재론적 신존재 논증 가정이 잘 못 되었습니다. 신은 완전해야 한다는 생각자체가 화자의 주관적 주장이며,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완전성에 기반한 이후 논증은 모두 유효하지 않습니다. 논외로 "신은 선하다"는 가정도 잘못되었습니다. 존재를 모르는데 선하다 추정하는 것이 결과를 먼저 얘기한 것이라 틀렸습니다. 또 논외로 "선하다" 주장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선하다는 것이 모호 합니다. 무엇이 완전한 선인지 알 수 있을까요? 2. 토마스아퀴나스의 원인으로서의 신존재론 토마스아퀴나스는 신학자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초의 움직임의 원인 제공자가 신이라는 것인데, 원인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인격 또는 의식을 가진 어떠한 존재라는 가정이 주관적인 주장이니 역시 객관성 결여 입니다. 양자역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것은 입자로 되어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고... 3. 목적론적 논증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이상한 논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를 보고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하는 관찰자의 인식은 또한 주관적입니다. 또한 시계를 만든 장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이미 시계의 탄생원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논하는 것은 시계공의 존재 여부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시계의 장인의 존재와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논외로 시계가 정교하기는 하나, 현대 물리학에서 밝혀진 중력의 크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는 데, 이와같은 상대적 시간의 흐름을 우리의 시계로는 측정이 불가하니 그리 정교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선하고 완전한 신이 우리 인간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불완전하게 만들었을까요? 4. 파스칼의 내기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믿어서 손해볼 것 없다는 참으로 가소로운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IQ180이라는 파스칼 형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니.. ㅠㅠ 5. 칸트의 신존재 요청 이 형님도 좀 이상해... 가만히 들어보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알려져 있고, 무엇이 선이고 무었이 행복인지 분명치 않으니.... 이분도 가정이 틀렸습니다. 또한 신의 존재여부 또는 요청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 기반하여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 우주적으로 신의 존재 여부를 논하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6. 키에르케로르의 결단 이 분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마다 신의 존재가 다를 수 있겠습니다.또한 신을 믿지 않은 경우도 일종의 개인의 믿음이므로 참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되어 버릴 수 있겠네요. 논외로 객관적 진리라는 것이 과학적/논리적/종교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예를 들면 뉴턴의 역학은 양자 역학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거시적 세계에서는 뉴턴의 법칙이 통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근사치로 수렴합니다. 수학에서는 시간이 들어가는 방정식에서는 시간의 역순도 방정식의 성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과거로 흐르지 않습니다. 물리학적으로도 실제로 시간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객관적 진리인가요? 개인적으로 더이상 과거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필요이상으로 예를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만 하시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신이 존재해서 , 정말 선한 세상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정립해야 할것같습니다. 막연한 정의의 신은 믿는 사람에게는 존재하고 신의 존재를 믿지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을것으로 사료됩니다. 신의 존재에 회의를 갖은 사람이 신을 믿다가 사실은 신이 없었다면 본전이란 논리는 궤변으로 생각됩니다. 신은 전지전능 이고 불쌍한 인간이 신에게 모욕을 주더라도 그사람한테 벌을 줄만큼 편협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없이 행복하게 얼마나 살까요?전지 전능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로 회귀함 .욕망과 문명이 충돌해서 승자는 모두 가져가고 나머지는 노예로 살다가 삶의 이미를 찾다가 그냥 죽는겨 근데 그래도 인류의 모든 사상을 섭렵하고 통일된 이론을 만들자~~~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복잡한 철학을 간단명료하게 5분으로 머리에 쏙 들어오게 해주는 분이 누가 있을까요 항상 감사합니다
영상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무식하고 게으른 저는 세상 어느 종교나 어떤 신을 믿는 신자도, 불신자도 그 선택이 스스로와 상대에게 이롭다면 선택을 지속해도 괜찮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만 유익하거나, 상대에게만 유익하거나, 나와 상대에게 모두 유익하지 않은 믿음이라면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도 배웠습니다.
다시 5분뚝딱의 상큼함을 맛볼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하느님 믿으세요❤
키에르케고르의 결단이 마음에 드내요.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질수록 객관적 진리보다 주관적 진리가 더 삶을 이끄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요새 저는 객관적 진리를 아는 것보다 내 안의 주관적 진리를 아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보는 넘쳐나고 접근도 쉬워져 제 스스로 엄청난 지식을 체득한 것처럼 느끼다가도 그 많은 지식이 제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여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내 선택이 옳거나 선하거나 완벽한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쩌면 무지와 오만이더라도 내 결단을 끌고 가는 것이 내 삶을 더 값지게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고민이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객관적 진리를 알았다는 것이 환상에 가깝다고 느낄때도 있고요.
쓰다보니 신비주의에 가까운 의견인 것 같기도 한데 주관적 진리가 더 나의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객관적 진리에 대한 욕망도 여전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주관적 진리를 위한 도구로써요.
어려운 이야기를 정말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의 존재를 증명하겠다는것은 가장 큰 자연수를 찾아내겠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법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람을 살해한자는 사형무기5년이상 ~~~
그럼 제 생각에 왜 사람을 살해하면 그렇게 되는거지? 라는 의문을 가질만도 해요
그러면 사람을 살해하는것은 나빠! 라는것이 저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럼 왜 사람을 죽인것이 나빠?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하느님이 그렇게 정했어! 십계명 중에 여섯번째 계명을 읽어봐! 라고 대답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점에서 '살인하지 마라'는 그 자체로 선험적인 명제입니다
살인이 나쁜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모든 살인행위를 관찰해서 법칙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살인이 나쁘다는것은 그 자체로 참인 명제입니다
성경은 보통 이러한 구절들로 이루어져있더라구요
그래서 그것들은 법칙을 찾아낼 필요도 없고, 모순이 있다고 해서 거짓인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냥 기준내지 원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점은 부분이 없는것이다' , '1은 자연수이다' 와 같은 말들이에요
저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아니고,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닙니다
그저 철학에 관심있는 비전공 대학생일 뿐입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재밌는 영상 감사합니다. 파스칼의 내기에서 고려할 만한 건, 신을 믿는 대가가 종교인들 말처럼 무한대에 가깝다면 신 존재의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신을 믿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 아주 낮은 신 존재 확률 x 무한대의 대가 = 무한대) 파스칼의 내기에 대한 비판은 신 존재의 확률이 0라거나, 아님 신을 믿는 대가가 무한대가 아니라는 것이겠죠.
@chamna6363그러면 (천국 지옥) (지옥 지옥) 이렇게 되서 믿는게 이득인데요
오 좋은 생각이네요 ! 감사합니다
어떤 댓가를 바라고 신을 믿는 선택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조잡스럽습니다
신의 존재를 확률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천박합니다
믿음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도 믿지 않으니 지옥불에 떨어질 걱정을 왜 하나요?
매번 좋은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제 인생 정말 큰 행복이다보니 김필영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이 행복을 몰랐을 것 같아 기분이 묘하네요.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5분 뚝딱 이지만
지루하지 않은 시간 😊
저는 그저,
제가 이 영상을 클릭하는 선택을 해서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접하고 사고를 넓힐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하고 감사할 뿐,
제가 이 영상을 클릭하도록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매 영상마다, 책 한 파트마다,
제 사고능력을 키워감에 많은 도움을 주심에 오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 좋은 내용임 요즘같은 사고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고의 일깨움을 주는 영상임
신을 믿진 않지만 '신앞에 홀로 선 단독자' 라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는 너무 매력적임. 세상의 절대자와 단 둘이 있게 된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런점에서 종교는 절대자와 나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인데 중간자가 이익에 눈이 멀어 개개인의 주관적 진리를 찾아주는게 아니라 목사님의 진리만을 설파하니 문제인듯.
어떤 목사의 진리라는겁니까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단외의 딴교단 목사의 주장을
정통교단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통교단의 성경해석외에는 비성경적으로 봅니다
여호와의증인 안식교회 통일교회는
세계 기독교연합에서 기독교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 요즘 개돼지같은 목사가 있는것은 사실이고
불교에도 개돼지 스님이 있고
천주교에도 개돼지 신부 수녀 주교들이 엄청많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한구원을 외치는 종교라는것만 알면됩니다
불교는 색즉시공 즉 색이 공이며 공이 부처의 영이라고 볼수 있으며 우주의 관찰자라고 볼수 있겠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니까 창조주가 우주를 관찰하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우주가 관찰한다고 하는 우주에 신성을 두는 불교 유교 흰두교 도교 하이데꺼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사상과 철학을 기독교에서는 반대합니다
@@폭풍의전사 정통교단이 하는 악행들도 수없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홀로 신을 만나서 주관적 진리를 낳아야 한다는 주장에 정통이냐 이단이냐가 왜 나옵니까? 종교 자체가 중간에서 이익을 가로채는게 문제라는겁니다.
홀로신을 만나다니요 ?
종교에는 역사와 교주가 있어야 하고
민주화 과학 문화 도덕이 발달해야 미국같은
기독교 강국이 됩니다
기독교는 성경을 믿고 창조주를 믿으며 예수님을 믿습니다
홀로 신을 만나는 주관적 체험은 기독교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폭풍의전사 키에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에 대해 말하고있는데 기독교가 인정하든 말든 무슨상관일까요 ㅋㅋ 그냥 갈길가십쇼
감사합니다 ㅋㅋ
영상시청전 좋아요부터 눌렀습니다
이 철학 채널에서 개별자란 개념을 알고나서
개별적으로 구분할줄 알게되고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
스승님 오늘 칸트의 요청에 대하서 뭔가 느낌적인 느낌이 오는데요 참 재밌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며 존재하기에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죽으면 이 세상 또한 존재하지 않기에
나를 이 세상에 살 게 해준 창조주 또한
내 자신이며 이 세상 또한 내가 만든 세상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내 삶의 방향은
오직 나에게로 이루어진다
댓글에서 보이는 몇몇 싸움 댓글 빼면 완벽한 영상...ㅎㅎㅎ 저도 신 안 믿지만 강요하고 서로 욕하는게 더 바보같이 보입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ㅎㅎ
매불쇼보고 왔습니다
컨덴츠가 좋네요 잘 보겠습니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른이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각자가 다를 수 있으니 신이 존재 한다 안한다 강요하지 말자 생각은 자유니까
유신론자는 무신론자에게 지옥 간다고 겁박하지 말고
무신론자는 유신론자를 조롱하지 말자
그러면 적어도 신을 안믿는다고 사람 잡아다 죽이는 일은 줄어들겠지.....
저는 불가지론자인데
신의 존재(혹은 부존재)를 꼭 증명해야하나 싶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 신의 가르침을 꼭 따라야 하나 의문이 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만들었다고 자식이 꼭 부모를 따를 필요가 없듯이요.
저는 인간이 신을 믿게되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은근히 학자들 중 신을 믿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학자들이 진리를 탐구하다,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좌절하여 결국 신에 기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것이 아니라요.
신이있다고 주장하는사람들이 있기에증명해야됨 전지전능 하다하니 부모자식 비교는 오류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결과를 뻔히알텐데 뭐하러 악의존재가필요함? 낳은부모는 내자식이라도어찌할수없슴당연 신과다름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만지고 해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마음으로 보고 느껴야 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과학은 오로지 눈과 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제가 애정하는 채널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얼굴로 만나뵈어서 더 좋았습니다. 한편으로, 영상 마지막에서 가볍게 다뤘다고 인정하셔서 많이 안도했습니다. 현대 일류 기독 철학자, 가령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J P 모어랜드, 알빈 플란팅가, 앨리스터 맥그라스 등이 이 영상의 방식으로 해당 주제들을 다루는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나은 학문적 대화를 위해, 그리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피하기 위해, 가능하시다면 이 주제들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마이클 로타, 알빈 플란팅가 등이 다룬 버전들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다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논증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의 현대 버전이 있고,
파스칼은 마이클 로타(Michael Rota)가 최근에 현대 버전으로 업데이트했고,
안셀름의 존재론적 논증은 또 알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가 업데이트했기 때문에
이 세 사람에 대해서 집중하여 소개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 외 알빈 플란팅가 혹은 J P 모어랜드의 양상 논리에 입각한 영혼 존재 논증,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의 역사학적 논증, 크레이그 키너(Craig Keener)의 기적 논증 및 그가 정리한 경험적 자료들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컨텐츠 계속 만들어주시기 기원합니다.
제가 관심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시니 반갑네요. 아마도 현재 가장 힘을 가진 논증은 윌리엄 크레이그가 즐겨 사용하는 '칼람의 논증'이 아닌가 싶네요.
반론을 계속 크레이그가 업데이트 해서 재반론하고 있으니까요.
현재까지 뚜렷한 반론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와 1등이에요!! 오늘도영상감사해요
인류 원리라는 것이 일종의 확률론이고, 최초의 원인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인간적 망상이라는 관점이 흥미롭네요.
칸트의 신의 현존이 요청된다는 것은 증명이 아니고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의 현존이 없다면 살인과 거짓말, 간음 금지와 보모 공경이라는 인간의 도덕률에 왜라는 질문을 할때 최종 권위는 없으며 문화 상대주의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입니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에 대해 '신 존재가 증명되면 믿음에 가치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된 것처럼, 신앙과 존재론적 증명은 (일정 부분)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만약 신 존재가 증명됐다면 신앙의 기저엔 믿음이 아니라 복종이 있겠죠.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고, 자유는 증명된 것을 전재하지 않으니까요. 더불어 개신교와 가톨릭 - 기독교에선 신앙을 사적인 채험으로 봅니다. 타인의 경험에만 기대서는 신앙을 체득하기 힘들다는 말인데, 이 또한 존재론적 증명과는 일부 상반되는 내용입니다.
다른 얘기이긴 하나 삶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걸러내는 방법론으로써 신학은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에, 개인적으론 신학을 단지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의 태도를 위한 일종의 정신적 수양(?)으로도 받아들이면서 상당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혐오 정서가 뿌리깊게 자리잡은건 알지만, (요즘 유독)판치는 사이비 교회에 출석하는게 아니라 신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개인의 상황에 따라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종교 관련 내용은 오랜만에 나온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댓글이 두서없이 길어졌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가지고 계신 생각이 제가 너무나도 바라는 이상적인 생각으로 보이네요... 이런 지인이 있었다면,,
정신적 수양의 의미로 종교를 가지려면 불교가 맞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고 다스리는게 목적입니다. 신을 받드는 의미보다 나 자신을 가다듬는것이 더큰 목표니까요. 그에 비해 기독교는 하느님 안믿으면 지옥간다고 전도하는거 부터가 썩었습니다. 되도안한걸로 협박하는 기독교를 종교라 부르기도 부끄럽네요ㅋㅋ
조명세팅을 좀 하셨으면 좋겠네요 뒤에 빛 때문에 역광상태가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사체가 어두워집니다
11:10 파스칼의 내기 그러나 존재란? 16:10 칸트 요청됨으로써 신이 존재 19:00 주관적 진리 결단
최근 영상들을 종합해보니 선생님은 확실히 테슬라 주식에 대한 주관적 믿음이 있으시군요
사색하기전에 한번씩 아무영상이나 보는데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화이팅
정리가 깔끔하게 된 영상 감사합니다.
한가지 의문이 있다면 마지막에 믿음은 선택에 의한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게 믿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주관적 전제인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신의 존재에 대한것은 현재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여러 양측의 의견을 모두 도서와 여러 정보를 통해 접하였고, 결국 증명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양측의 의견 중 제가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의견이 반반으로 나눠지거나 절대적 답이 없는 경우, 우리는 한쪽을 선택하여 자신의 신념으로 삼습니다. 물론 그 신념이 바뀔수도 있긴 하지만요.
따라서 믿음 또한 신의 존재가 증명 되지 않는 한은 선택의 영역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란 개념자체가 '선택'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 믿는 것과 안믿는 것 중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인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고 무신론자는 신의 부재를 믿는 것이지, 믿음에 반한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zvhzk 지구가 둥글다는 것처럼 답이 정해진 경우에는 선택이 필요가 없죠. 증명된 팩트니까요. 종교인이 종교인이 되기 전, 무신론자가 무신론자가 되기 전에 그들 스스로 그 믿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찬반이 거의 절반으로 나뉘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논지에 대해서, 그 중 하나의 의견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배경지식으로 그것을 선택한거죠.
만약 무신론자가 영적 경험을 하면 그는 신을 믿기로 선택하겠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구요.
@@zvhzk 유신론자는 무신론자와 애초부터 다른 인류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되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물론 성서는 이것을 신이 그로 하여금 믿게 하도록 그를 선택했다고 설명하기는 합니다.
흐어 이런 유익한 채널을 오늘에야 알게 되다뇨 ㅠㅠ바로 구독했습니다!!
파스칼은 성령 체험을 한 이후로 불안을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적 체험이 신을 믿게 되는 계기가 됐겠죠. 그런데 그것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으니 결단을 말한 것 같네요.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자기가 생각한 주관을 진리로 믿음을 선택해서 조금이라도 믿는구석을 찾고싶었던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12HA71-lr6yy 힘들면 찾는게 신이니… 그럴수도있지않을까요?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반론 에서, 결단, 즉 선택할 수 없고 선택되어질 뿐이라면,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닐까요?
신을 믿는 문제는 인간의 자유 의지, 영혼이 있다는 믿음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와 얼켜있는 것 같네요. 따라서 유물론적 세계관으로는 신앙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웃긴게 신이 인간판단 기준이란거에 모순이 있음 세상을 만들면 만물 평등인데 인간 기준으로 도덕을 지키느니 뭐니 이딴 거 보다 그냥 인간이 미학적 유희를 위해 닭 돼지 소 잡아먹고 토지개척을 위해 나무 벌목을 하고 플라스틱 생성에 대기 오염에 지구 입장에서 수많은 악행을 이미 저지르고 있는데 그냥 인간 기준에 착한 행동 이딴 걸로 신의 축복을 받겠다고 믿는 거 부터가 시건방진 태도임. 지구의 신 우주의 신 입장에서 그냥 인간의 맘적 태도나 인간끼리 돕고 선을 행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음.
신에 대한 대철학자들의 이런저런 주장보다, 인간이 없는 것을 믿는 능력이 생김으로써 신의 존재도 믿게 되었다는 '인지혁명'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고있는 5분뚝딱철학이어라. ♥
주가 상승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베팅이겠지요.
베팅은 하락할 수도 있다는 염려를 각오한 것입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로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겠지요.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고 믿으면 없고.
....
좋은 강의 잘 경청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칸트의 신 존재 요청과 비슷한 고민을 최근에 하고 있었는데 이런 논증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선생님 덕분에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으로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의 대부분은 몇 백 년전 철학자가 한 고민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저 혼자 한 생각이라기보단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의 2차 창작물로 간접 경험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애매하지만 우리는 지키면서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겁니다. 이처럼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이 윤리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신에 대한 의심도 평생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고민이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함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의무 교육 과정에서는 합리주의, 이성주의를 주입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분명 과학이 주지 못하는 강력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 신앙보다 종교 철학 쪽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종교 철학이라는 말에도 사이비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은 과학, 철학보다 훨신 복잡한 존재입니다. 요즘 굉장히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고 다니네요. 칸트의 인간은 끊임없이 갈등하는 비극적 존재라는 말에 큰 위로를 얻고 갑니다.
교수님 아드로 메다 은하에 지적 존재가 유기적으로 존재 할때 그 지적 존재도 신을 믿을까요??? 하느님은 안드로 메다나 지구나 동일한 공유체의 신일까요?? 과학적으로 우주에 지구와 같은 환경의 생명체의 행성이 수억 개 존재한다고 합니다.
믿음의 강도에 기반한 종교는 회의와 입증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이나 과학과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현 시대의 타협점이긴 하지만, 철학과 과학이 신과 종교를 논하는 것은 중대하고 유익한 일입니다. 이는 우주론이나 우주과학에의 도전이 유익함과 비유될 것입니다.
기성종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루면서도 철학이나 과학과는 말을 섞지 않으려 하지요.
그 이유는 가치를 초월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라지만 경험칙 상 실익이 없어서지요.
말하자면 명분상으로는 가치초월적이지만 실재는 가치추구를 넘어서는 극보수인 셈이죠.
법이 정의의 실현을 이념으로 하면서 그에 앞서 테러로 안정성을 확보하는 사태와 마찬가지.
역사적으로 인간이 믿어온 신들은 다양하게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탄생하고 확장되겠지요.
우주를 총괄하는 절대종교의 입장에서는 철학이나 과학도 결국은 신흥 종교에 불과합니다.
철학과 과학이 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인간 사고의 한계를 탐구하는 것으로 그 신은 기성 종교의 신들과는 전혀 별개지요. 이를 인식하면 종교와 철학은 대립적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철학적 시각에서 인간은 정신을 유희하는 동물이며 그 사태의 극단이 신이지요.
알 수 없는 우주 저멀리 우주선을 보내는 과학이 정작 깔고 앉은 지구의 핵에는 가거나 볼 수 없지만 그 내용은 계산하듯, 인간의 정신 세계도 무의식이나 사후에 대해 유사한 수단들이 급속히 개발되는 시대입니다.
- 아무리 배워도 짧은 식견에서 나오는 막글 -
영생은 필멸이요, 불생이 불멸으로, 다만 원생으로 작용할 뿐
1. 인간이라는 기능과 능력이라는 차원의 한계
2. 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만과 오만의 한계
3. 존재론적 관점과 무존재론적 관점을 벗어나 적멸을 경지를 성취하더라도 그것은 논리와 표현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한계
4. 파스칼의 내기도 표현하지 못하는 현생의 이익 즉, 인과의 법칙은 곧 우주의 법칙인 것을
오늘 자기전 영상은 이거다
파스칼내기 신 존재 경우의 수는 신이 있다 or 없다로 나누는게 아니라 어떤 신이 있는지까지 고려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이를테면 야훼 토르 제우스 크리슈나 아후라마즈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 피콜로 계왕신 검정고무신 등등 수없이 많은 신 중에 어떤 신이 있을지 알 수 없는거 아닙니까
오! 기다리던 뚝딱이 형~~~♡
모든 논리 문제는 결국 개념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개념을 정의내리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명제가 참으로도 거짓으로도 증명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혹, 인도철학을 소개하여 주실 수 있으신지요? 구글 ceo, 영국 총리 등이 인도계열이기에… 국제 정치 및 경제 측면에서도 인도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어 쉽고 간단히 소개하여 주시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듯하여서요.
5분 뚝딱 채널이 영향력이 크기에 혹여나 하여 남겨두어요!
로또 살 이유와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할 이유 비유가 멋지내요.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강할 수록 로또완 상관없이 조용히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게되네요
11:20 부근의 오류
영상 초기에 신은 완전하다 라는 측면, 요점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 하여 지옥 행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전선'이 아니기에 패러독스가 생김.
존재한다면 전선할 것이기에 믿음과 상관없이, 인간이 선하게 살았으면 최소한 지옥 행은 면 할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사후 세계는 '무'이니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한 시간, 자본의 투자를 안해서 이득이고.
나라는 사람을 창조한 존재가 있으며 악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할 존재가 있는데 없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창조자가 볼 때는 가장 큰 거짓말이기 때문에 지옥에 보내는 것이므로 지옥에 보낸다는 이유로 전선하지 않다고 할 수 없음 그것은 님의 주장이자 개인적 의견임
신의 존재에 대해 그냥 이도저도 아닌 관점입니다만, 참 살면 살수록 칸트의 의견에 많이 동의하게 되네요. 온갖 악인들을 볼 때마다, 그렇지 않게,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천국에 그 보답이 마련되어있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됩니다.
처음 아퀴나스의 논증을 들었을 때,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 존재들이 '서로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즉 무한이 이어지는게 아니라, 유한한 순환의 고리를 이루면 왜 안되냐? 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께선 '그건 좋지 않은 방식이어서' 정도로 설명을 해 주셨는데, 당시엔 완전히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납득했었는데, 지금은 그 납득의 과정이 잘 기억이 안납니다.
* 일반적으로 수정에 이르는 정자는 꽤나 늦게 난자에 도착한 정자라고 합니다 ㅎㅎ
** 총 한자루가 고장날 확률이 0.1%일 때, 6자루가 동시에 고장날 확률은 0.0000000000000001% 로, 훨씬 더 희박한 확률입니다. 아마 계산 과정에서 백분율이 혼동을 주었나 봅니다.
순환하는 고리면 그 순환의 시작이 어디였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그럼 결국에는...
@@veryveryverylongso9090 말씀이 타당합니다만, 조금 더 와닿는 설명이 있었던 것 같은데...도저히 기억이 안나네요 ㅎㅎ.
신 우리에게 최소한 창조주의 의미
근데 이세상을 만들었다고 완벽하고 전지전능할거라는 생각이 웃김 그냥 실패해서 버려지거나 잠깐 갖고 놀다가 흥미를 잃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장난감 일수도있지
딱봐도 단순한 생존게임 뭐 모르지 히든퀘스트에 의해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것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천국따위는 아닐확률이 높겠지 첫판이 가장 쉬운법이니까 ㅋㅋ
@@gangstakim3385 음... 안셀무스의 논증은 말하자면 '신은 그 정의상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정도가 되는데, 그걸 좀 확장하면, '신은 정의상 전지하고 전능하고 지선해야 한다', 는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주라서 전지전능하다라기보다는, 전지전능이라는 개념이 상상 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주가 그 속성을 갖추게 된다고 이해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적어도 이 영상에서 논하고 있는 영역에서) 신이 전지+전능+지선 할 것이라는 믿음은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자' -> 정의 상 오류 발생 -> '그럼 전지+전능+지선한게 맞구나?' 와 같은 논리학적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꼭 맞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냥 덮어놓고 그렇게 믿은 결과물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것이죠.
어차피 각자의 생각 .
재미있읍니다 ~
철학 과학 예술 문학등의 학문은 남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언젠가 의심되는 것들은 명쾌하게 풀리기를 기대합니다.
선생님 자주 뵙고싶습니다~늘 응원합니다
진정한 사랑이 '비이성', '비논리'를 핵심 요소로 하듯이,
진정한 믿음도 '비이성'과 '비논리'를 동반하지 않으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죠.
만약 신의 존재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종교는 없을 겁니다.
무신론이 종교와 믿음의 영역에 존재하게 되겠죠. 😊
여러가지 주장과 반론이 함께하니 보다 더 이해하기 쉽네요 한가지 주장만 있다면 의구심이 들때 내가 이해하지 못한건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반론이 등장할때 주장에 대한 의구심이 합리적이었는지 이해를 못 한건지 확인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명강의입니다... 저는 무신론자였다가 최근에 영적인경험을 많이해서 믿을수밖에 없게되었습니다...가오갤보고 내가 저과학자가만든 세계의 복제인간? 유전자조작으로만들어진 거아닌가하는...
신을믿는데 과학을한다 ?모순
@@메타인지-h5p 신이 비과학적이다라는건 무슨 근거죠?
과학과 신은 오히려 밀접하지요.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신이 만들지 않은 과학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뭘 겪었길래요 ㅋㅋ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지/전능/전선하며 완전한 신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이상향일 뿐이다.
내 생각: 너도, 나도, 모두가 신성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신성하다.
#존재하지 않는 자동차와 존재하는 자동차 중에 왜 존재하는 자동차가 더 완전한 것인가?
왜 탈 수 없는 자동차가 탈 수 있는 자동차보다 더 완전할 수 없는가? 완전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왜 꼭 존재해야만 완전한 것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가?
누군가 이 댓글을 보기 전까지 그는 내 존재를 모르지 않았나?
존재하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존재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 것
이 더 적절한 구분 아닐까?
#빅뱅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이 신이라고 한다면, 왜 그런 운동을 했는가? 그저 신이기에 스스로 운동한 것이라고 한다면, 빅뱅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즉 빅뱅 그 자체가 신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과학은 이야기한다. 그러면 이 모든 세상이 또 신이라는 것 아닌가?
러셀의 말 대로 꼭 최초의 원인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세계를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이 인간/ 동물/ 생명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왜 인간이 신이 설계도를 가지고 정교하게 만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생명체가, 인간이 존재할 적절한 조건이 우연히 갖춰져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왜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가?
물론 후자도 맞는 말일 수는 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렇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신이 존재할 확률이 50%이상이든 0.1%이든, 그 전에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
선하게 살 것인가? 악하게 살 것인가?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그다지 악하게 살지 않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평균보다 훨씬 선한 삶을 살면서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종종 있곤 하다. 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혹시.... 믿음의 여부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칸트가 신을 믿자고 하는 것일까?
#주관적 진리
나에게 맞는 것이 꼭 너에게도 맞아야 할까... 때로는 그렇지 않아도 아무렴 괜찮고, 오히려 더 좋을 경우도 있지 않을까?
5분 뚝딱인데 21분을 올리다니ㅋ
하지만 뚝딱이였죠?
너무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 👍
최근에, 서점에 잠깐 들를 일이 있었는데, 5분 뚝딱 철학 1권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책 구입했습니다 :)
생각날 때, 심심할 때, 열어서 보기도 좋고, 주제 별로 지도를 제공해주시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오늘 영상도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
칸트의 요청에 관해 처음 들었을때 이게 뭔 개소리지 했는데, 말씀하신 현재의 이해를 들어보니 일리가 있네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감사해요
다른 철학 유튜버와는 다르게 쉽게 설명해주려고 하셔서 좋아요
지구 6000년설을 주장하는 유신론자들의 주장을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반론 찾다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재미있네요. 개인적으로는 러셀의 '왜 꼭 원인이 있어야 하느냐' 라는 주장이 인상적입니다. 많이 공부하신 분들도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원인을 찾다 결국 신을 믿게된다는 주장을 보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러셀처럼 생각해본적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신이나 종교가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있는 편이 사회에 더 이득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아무튼 잘 봤습니다. 건강하세요~!
일단 모든 유신론자가 6000년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논리,이치 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것, 일 뿐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논리나 이치에 맞아야만 인정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논리인것입니다.
사람이 그 무엇에 대하여 왜?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끝은 결국 모름으로 마쳐지게 될것입니다.
앎이란, 사람의 생각범위 안에 국한된 앎, 일 수 밖에 없지요.
사람이 살면서 추구하며 사는 목적은 모름에 대하여 더,더,더 알아가는 삶을 살다가 갈뿐이고 그 결국은 모든것을 다 아는것이 아닌, 알만하다는 앎, 에 도달하여 이해할 수 없음이 이해될수 있음이되는것입니다.
없음과 있음은 서로 상대적인것이므로 없다가 되려면, 있음이 있어야 하고, 있다가 되려면 없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신이, 창조주가 있다, 없다. 생각하기전에
"나"는 있다, 없다 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있으면 신이 존재하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것입니다.
내가 있기에 신의 존재여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 "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신의 존재여부는 의미가 없는것입니다.
없음은 그저 없는 것이며,
있으므로 있게 된것입니다.
"나"가 없으면 신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서 흙으로 가도 흙으로 라도 존재하게 되지요.
또다른 나는 계속 존재하므로 신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모든것이 사라져 없음이 되면 신도 없는것입니다.
있기에 있는 것입니다.
올라왔당 필영이형❤❤❤
신의존재에 대해 '메타메타메타...인지'를 하고 있던 차에~(본 채널 메타인지 동영상 참조)
이 영상을 보고 얼마나 감사한지! (참고로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6학년 후반대)
선생님 덕분에 수백수십년의 지식을 단5분만에(실제는 런닝타임이 21':39"이지만 *집중하면 5분! *)쏙 정리!*^^*
개인적으로 몇군데 장면에서 아쉬움이 좀 있었는데...그중
파스칼의내기 내용중에 신의 유무의 확률은 경우의 수 합의 법칙에 의해 둘다 각 1/2로 50%,50%이고,
롯또의 당첨율(1등만 기준했을 경우)은 0.0000125%, 꽝은 99.9999875%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누구는 롯또를 왜 사는가? 누구는 왜 사지않는가?의 설명이 좀 불분명하고
나아가 이 롯또 확률 이론?으로 신의 존재의 유무에 적용하여 결론을 내리는게 매끄럽게 이해가 안되네요.... >
1. 신을 전지, 전능, 전선 한 존재다 라고 정의하려면 무지, 무능, 전악(?) 한 것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지 무능 전악한 것은 신이 만들었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존재를 만든 신은 전선하다고 할 수 있나요?
2. 창세기에 의하면 태초에 신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탄생했고 그 외 세상 만물을 말로서 창조하셨습니다. 이를 행하는데 6일이 걸렸고 하루는 쉬셨죠. 또 인간을 만드실 때는 자신의 모습을 본 따셨고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 하셨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천지창조에 6일이 걸렸고 하루는 쉬어야 하는데 전지전능하다고 할 수 있나요? 제가 프로그래밍을 공부 하는데 Duck Typ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동물이 있는데 오리처럼 울고,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생겼다면 그것은 오리일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 하는 추론법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는데 사람처럼 말을하고 사람처럼 휴식하고, 사람처럼 시간을 쓰고,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사람처럼 생겼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닐까요? 신은 사실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다고 하죠. 사람 안에 있는것 아닐까요?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누구라도 능히 저 산을 옮길 수 있다.' 이 말은 누구나 기적을 행할수 있다는 뜻아닐까요? 불교가 생각나네요. 누구나 안에 부처님이 계시죠.
자연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이 없더라도 선(善)이라는 것은 존재할 것입니다. (다만, 선은 인식될 수가 없습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정도의 자연적인 개념 자체는 존재하겠지요)
하지만 악(惡)은 다르지요.
비유하자면, 밝음이 선이고, 어둠이 악일까요?
아니죠. 빛이라는 것은 어둠이 있으므로 존재하고, 어둠도 빛이 있으므로 대별 되는 지극히 자연적인 것입니다.
물론, 선과 악이 이원론적 관점에서 쉽게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존재해야 할 그 목적과 필요 조건으로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째서 존재하지도 않는 선악의 개념이 인간에게만 존재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물고기, 독수리, 코끼리나 사자와 같은 동물에게 선악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필요하지도 않고요.
그러나 인간에게는 필요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선악을 몰랐을 때는 필요한 개념이 아니나 알게 된 이후로는 필요)
모든 동식물과 자연을 가꾸고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유롭게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높은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지요.
그러한 책임과 본분에서 벗어난 것이 타락이고 죄악이지요.
그런 인간이 무결성한 존재가 되려면, 책임을 다하는 입장에 서려면, 신의 간섭 없이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만약 간섭하게 된다면, 간섭한 주체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니 그 어떤 책임이나 죄를 전적으로 그 대상에게 물을 수가 없지요.
오히려 신은 인간에게 '따먹지 말라'라고 경고했으나, 인간 마음대로 그 지켜야 할 책무에서 벗어났으니 명백히 죄가 되지요.
그렇다면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된 것처럼 애초부터 신이 악을 창조한 것인가?
신에게 악의 개념이 존재했다면, 그 신은 전지전능한 무결성한 존재가 아닙니다.
애초부터 모순된 존재라면 파멸했을 겁니다.
따라서 지옥이라는 것도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귀결되는 겁니다.
인간이 타락할 것을 예상하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눴다면, 신 스스로 무능하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결국 지옥이라는 것도 인간이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죄악된 세계도 인간 스스로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신은 인간에게 그만한 책임과 권한을 줄 수가 없습니다.
선한 것이 정답이고 악한 것이 오답이라고 가정한다면 오답이 존재한다고 해서 출제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부모가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는 선하고 둘째는 악하다면 그 부모가 존재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나요 ? 부모의 마음이 선해도 자식이 악할 수 있는 것처럼 창조자는 선하지만 피조물이 죄악으로 인해 악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벌에는 극악무도한 살인자를 처벌하는 사형이 있습니다 사형 자체는 살인과 동일하므로 악한 행위일 수 있지만 죄악에 대한 처벌로 국가가 확실한 연쇄살인범에게 사형을 집행한다면 국가나 제도가 선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요 악한 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창조자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완전(전지 전능 전선)한 것과 피조물이 불완전한 것은 별개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창조자가 피조물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완전하다면 그것은 피조물이 아니라 신입니다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보통 신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신이 완전하고 선한데 세상은 왜 불완전하고 악한가] 이렇게 오류 섞인 질믄을 하시는데 하나님은 피조물을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왜냐면 그래야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부족과 한계와 죄악을 느끼고 신의 필요성을 깨달아 신을 찾아가게 되기 때문이죠 만약 피조물을 완전하게 창조했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됐겠죠 그리고 창세기 7일째 하나님의 쉬심은 인간처럼 힘들어서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창조의 완성의 의미로 더이상 창조하지 않고 창조 활동이 멈추었다는 의미로 7일째에는 (창조를 더이상 안 하시고) 쉬셨다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작동시킨다는 의미의 일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아버지(하나님)가 지금까지 (쉼 없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온 우주를 작동시키는 일하심은 쉬신 적이 없고 지치지도 않으십니다
@@dawnsunshine 정답과 오답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좋다" 혹은 "나쁘다"의 자연적인 개념 자체는 존재합니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고, 나쁜 결과가 될 수는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자연적인 불변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선과 악을 비유로 설명하기에는 많이 거리가 있습니다.
악은 신이 바라던 창조목적이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이 2개일 수는 없는데.. 설명을 더 해야 하는 부분)
일단, 님께서 선한 부모가 자식을 낳았는데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선악 자체가 존재한다는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점은 생각을 유보하셔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것은 비유적인 설명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선한 자식이 태어날 수도, 악한 자식이 나올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무조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확률적인 자연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신은 인간에게 따먹지 말라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만한 지침을 줬다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께서 모든 의사와 결정을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맡기신 것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전지전능한 신께서 아이러니하게 인간에게 '믿음'으로서 경고하신 겁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을 것을 아셨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도 않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의 있나요?)
즉, 모든 것을 아시는데, 인간에게 따먹지 말라고 경고했을까요? (모순이지요)
이것은 흑백논리로 따지면 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신께서 주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전지전능하다는 것도 어느 범위에서 그렇다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론은 한가지죠. 신은 인간을 동등한 입장으로 창조하신 겁니다. (예수님 같은 존재, 부모와 자식 관계)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직접적으로 주관할 수 없는 존재로서(간접은 가능) 인간 스스로 책임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그러한 자아로 완성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신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초월적인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자가 되도록 하신 겁니다. 그래야만 신을 닮은 초월적인 존재가 되니까요.
자식이 나를 닮아야 졸지? 하나도 닮지 않은 것이 좋은가요?ㅎㅎ
각설하고, 만약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에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신이 개입해서 주관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틀에 박힌 결과적인 행위만 하는 로봇에 불과하지요.
신이 전지전능한데, 뭐 하러 우주를 만들고, 인간을 창조했습니까?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인데, 뭐가 부족해서 그러한 창조를 하셨겠습니까?
심심해서요? 물론 심심한 것도 결핍의 하나겠지요.
전지전능하더라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도 결핍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 기쁨도, 슬픔도... 결핍이 없다면 그러한 자극은 없습니다.
에덴은 좋다, 기쁘다,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창조의 행위는 기쁨에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악한 인간, 악한 세계가 되길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dawnsunshine 사형에 대해서 말씀하셔서... "사형제도 찬성? 반대? (우리의 법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러한 글을 검색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user-qe7fo8yq1r 정답과 오답도 선과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정답은 참말이지만 오답은 거짓말이니까요 성경에 따르면 거짓말은 죄이고 따라서 악입니다 물론 악은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선과 악 사이에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한 사람이 선택의 기로에서 정답인 선을 택할 것인가 오답인 악을 택할 것인가를 시험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자입니다 국가에는 감옥이 있죠 그러나 국가가 모든 국민이 감옥에 들어가길 바라기 때문에 감옥을 만들었나요 ? 아니죠 범죄를 저지르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감옥을 만든 것처럼 악이 존재하는 이유도 인간이 선과 악 사이의 선택 중에 선을 택하길 바라시고 또한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누구를 천국으로 데려갈 것고 누구를 지옥에 보낼 것인지 확정하시기 위해 그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시험하신 후에 참된 선한 사람만 천국에 보내시는 것이 창조자의 의도입니다 부모가 선한데 자식이 악하다는 것은 결과론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는데 왜 악을 만들었나] 이런 질문에 대해 [만든 존재는 선해도 만들어진 존재는 악할 수 있으므로 결과물(피조물)의 상태에 따라 창조자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고 따라서 인간 가운데 일부가 죄악을 저지르고 악하다는 이유로 신은 없다는 식의 주장은 오류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님 말대로 선과 악은 결과에 불과한 것이지 피조물의 현상 또는 상태 즉 피조물의 선악에 따라 창조자의 존재 유무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원하신 것이지 [모든 의사와 결정을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을 했을 때에만 벌을 받지 않고 안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의사와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선악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겠죠 하나님은 인간을 불완전한 피조물로 만드셨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신 것이지 인간을 믿으신 게 아닙니다 인간을 믿었다면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도 안 하셨겠죠 신이 인간을 믿었다는 것은 님의 주장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과 [명령을 어겼을 경우 벌을 받는다]와 [벌에 대한 내용은 죽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안 지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명령 어기면 넌 벌을 받고 죽는다]는 경고도 필요 없죠 창조자는 인간을 믿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하시고 명령 안에서만 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어린 아이에게 [불에 손 대면 안 된다 뜨겁다 다친다] 이렇게 경고했다면 그 사람이 [이 아이는 절대 불에 손을 대지 않을 거야] 이런 믿음이 있어서 경고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 아이는 잘 몰라서 불에 손 댈 수도 있으니 경고해 줘서 손 안 대개 해야지] 이런 불신에서 경고한 것입니까 창조자는 처음부터 인간이 불완전해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고 [명령에 대한 순종]과 [명령에 대한 불순종 즉 죄악을 범함] 가운데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정답만 고르길 원하신 것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부모님이 아이에게 만원의 용돈을 주면서 [5천원은 맛있는 것 사먹고 5천원은 저금통에 넣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 아이가 [만원을 다 저금통에 넣을 수도 있고] [하나도 저금통에 넣지 않고 모두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도 있다]라는 두 가능성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말씀을 자율적 자발적 자유의사에 따라 능동적으로 잘 지켜서 그 결과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바라기는 마음에서 만원을 주고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만원을 모두 군것질 사먹고 저금통에 하나도 넣지 않아 부모님 말씀을 어겼습니다 이럴 때 과연 그 부모가 [아이가 타락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그렇게 되길 바라지도 않았다면 아이에게 돈을 맡길 필요가 없는데 맡겼다는 것은 그 부모의 의도나 존재가 선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 그 부모가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라는 것을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 부모는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아이 스스로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길 원했기 때문에 기회를 준 것입니다 선의로 기회를 줬는데 그 기회를 준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불성설입니다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신의 의도나 존재도 악하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흑백논리입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눠주고 시험을 주관해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가려내듯 한 인간이 참으로 선한지 악한지 정답과 오답 사이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시며 천국행 시험을 주관하시는 분이 창조자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정확히 신께서 주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충분하고도 넘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과 동등할 수 없이 무한대로 높으신 분이지만 님 말씀대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선과 악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랑은 기계처럼 수직적인 명령만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자발적이고 능동적이고 참된 사랑이 가능하니까요 따라서 신은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거나 신을 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런 상황에서도 누가 신이자 창조자인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는지 보시기 위해 인간에게 선택권과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고 그런 쉽지 않은 시험과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중에 천국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도 자식에게 관여하고 주관하는데 신이 인간에게 관여할 수 없고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신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관여 주관 등 모든 것을 하십니다 인간은 부모 없이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성장해서 성인이 되나요 ? 아니죠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만 봐도 직간접적으로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는데 부모를 예로 드시면서 신이 인간에게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시니 어불성설입니다 창조자는 피조물을 처음부터 불완전하게 만드셨고 초월적 존재가 되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성품을 인간이 닮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사랑 봉사 이타심 선행 등의 선한 성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처럼 초월적 존재가 되지 않아도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닮게 창조됐으므로 [초월적이 존재가 돼야 신을 닮은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신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것 또한 신의 뜻입니다 (앞으로는 받으실 수도 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하나님 밖에 모름)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신도 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을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고 저도 이과
신을 믿는 이유가
첫째는 보상심리 때문입니다.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부조리와 범죄들을 보고 또 사악한 사랑들이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을 보면서 이세상 너머에는 반드시 신이 존재해야 하며 그 신의 심판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한다는 소망으로 신을 믿습니다.
두번째는 신이 없다면, 그리고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광대한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인간의 가치가 너무도 초라하여, 인간만은 신이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창조했다고 믿음으로서 스스로에게 어떤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신을 믿습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측정하기도 힘든(이 시점에도 계속 커지고 있다는) 거대한 우주를 만든 존재가 미세먼지 보다도 못한 인간에게 신경을 쓸까.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 할 수도 없고.
인간한테 신경을 딱히 안쓰긴해 그래도 인간이 우주의 미세먼지 보다 밑에는 아냐 우주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하거든
신 존재 증명의 새로운 방법론 - 만약 인간에 의해 창조된 AI가 인간처럼 자체 시스템에 의해 자기언급의 역설을 무한유예 시킬수 있다면 그리고 그 때 인간은 사라지고 없다면 AI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즉 AI의 나는 자산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 인식할까? 아니면 자기가 아닌 그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자로 인식할까?
댓글을 보고 기분이 나쁘신 크리스찬분들 이 말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은 님들보다 더한 모욕과 고통을 당했는데도 아무 저항과 말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오~ ㅋㅋㅋㅋㅋ ㄹㅇ
크리스찬이 예수는 아니지요 너무 멀리간듯요
@@홍경준-z6m 제발 예수님좀 본받으세요
@@성재훈-l3b 뭔말인지?
@@홍경준-z6m이해를 못하신다면, 기독교가 뭔지 모르시는 거임
신의 존재 논증에 대해 간결하게 잘 요약해 주셨습니다.
예전에 철학서적에서 접해 본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이런 논증들이 철학도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들으니 확실히 그 세 가지 존재 논증과 요청, 결단 등은 모두 주관적 개념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컨대 존재론적 논증에서 "신은 정의상 전지, 전능, 전선한 존재"라는 전제 자체가 하나의 독단이기에, 이후의 논리는 사실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다른 논증들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고, 신의 개념 안에서 뱅뱅 도는 관념의 유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는 철학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리나 신의 문제는 그것을 사유하거나 논증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서만 그 답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은 철학과 신학, 혹은 주관적 결단이나 믿음으로서의 '신앙'을 확실하게 넘어서는 문제라 하겠습니다.
이런 시각이 내포하는 중요한 함의 중의 하나는, 신에 대한 어떤 믿음이나 신앙도 그 자체로는 결코 진리나 구원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에게 구원을 의지하는 모든 종교적 믿음은 신이라는 관념의 범주 속을 맴돌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신의 실체에 가 닿을 수 없고 본질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신학이나 철학에 기반한 그런 관념적 신 개념의 범주를 벗어나서, 신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쓰기보다, "과연 우리가 신이나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신이나 진리를 체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훨씬 유의미한 물음이고, 실제로 유용하고 탁월한 결과를 도출하는 출발점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야를 크게 넓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신과 구원에 관해 실질적으로 거의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유일신 혹은 인격신 관념의 낡은 우물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안전하다"는 유치한 확률 판단이나,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는 식의 억지 주장, 혹은 현상계의 엄청난 정교함에서 유추한 '지적설계론'으로 신앙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용기 있는 철학적, 종교적 결단을 요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스승 라마크리슈나는 제자 비베카난다가 "저에게 신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고, 비베카난다에게 모종의 깨달음 체험을 안겨주었습니다. 비베카난다는 자신이 신을 체험했음을 확신했고, 진리는 체험의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깨달은 신은 자기 바깥의 어떤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진정한 자아(진아)였고, 그 자신의 실체가 곧 신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인도에서는 태곳적부터 신과 진리의 문제가 전적으로 깨달음의 문제로서 다루어졌습니다.
이 경우 신은 우리가 자신의 하찮고 결함 많은 자아인 에고를 소멸했을 때, 내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자신의 보편적 실체임이 드러납니다.
인도의 전통에서 신은 저 먼 우주공간의 어디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는 우리 내면의 신적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동의어입니다.
20세기에 깨달음과 관련하여 신의 문제를 무수히 언급한 대표적인 스승으로 라마나 마하르쉬와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가 있습니다.
특히 마하라지는 1) 일체의 속성을 넘어선 절대자와, 2)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보편적 의식, 그리고 3) 현상계와 개인적 자아를 다루는데, 그는 이 중에서 두 번째인 보편적 의식을 신과 동의어로 규정합니다.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어떤 인격신이 아니라 전 우주에 편재한 보편적 의식이지만, 이것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궁극의 진리는 신을 넘어선 경지이며, 그 절대자는 지와 무지를 넘어서 있기에 전혀 앎이 없는 상태, 완전한 침묵으로 설명됩니다. 전지전능이 아니라 (모든 앎을 넘어선) 완전한 '비지(非知)'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도의 스승들은 오래 전부터 신과 진리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직 접해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결국 신의 존재 증명은 관념적 철학에서가 아니라 "내가 있다"는 자기존재의 확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개인적 자아와 마음을 소멸하는 수행을 거쳐 완전한 깨달음에서 확증됩니다.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이제껏 진리에 이르는 유의미한 경로와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이유입니다.
아무튼 유익한 동영상이었고, 두서없으나마 몇 가지 생각을 풀어놓게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
예수도 ego를 없에라는 식의 가르침을 합디다 어느정도 맞는 이야긴듯
의미 있는 글 잘 봤습니다
신을 전제하는 철학자는 진정한 철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근거 없는 전제에서 시작하니 철학과 맞지 않습니다
철학은 관찰과 사유의 결과이고 보편성이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내가 존재한다'는 데 까지는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소멸시키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더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삼라만상과
만물(인간 포함)은
종교 입니다
神은
생로병사를 끝내는것입니다
이것은
종교 만이 할수가 있습니다
@@박영훈-t2m 종교를 서구에서는 흔히 '신념체계(belief system)'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매우 적절한 통찰이라고 봅니다.
그 말은, (마음이나 정신으로는 증명 불가능한) 신이라는 개념을 전제해 놓고, 교리로 표현되는일련의 신념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서 신앙하는 것이 종교라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종교는 심리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유이고, 누구든 종교에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 체계를 과도하게 신봉하고 그 내러티브만 되뇔 때는 다른 세계관, 다른 통찰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종교에 대한 과몰입의 문제입니다. 거기서 집착과 독단이 나오고, 배타성과 공격성이 나옵니다. 이른바 '고등종교'로 자처하는 서구의 기독교(구교/신교)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아닙니까?
이미 종교는 복수로 오래 존재해 왔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할 근거는 박약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라고 믿는 이른바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는 그런 생각을 일종의 맹목 또는 미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종교라는 용어는 너무나 많은 복잡하고 서로 모순되는 의미를 무질서하게 내포하고 있어서, 진리를 논의할 때 사용하시기에는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신에게는 생로병사가 없습니다. 신에게 생로병사가 없다면, 신이 그것을 끝낼 일도 없습니다. 생로병사는 중생에게 있기에, 그런 것은 중생들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신에게는 인간들의 생로병사가 큰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의 견지에서는 생로병사 자체가 하나의 환이고, 실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를 실재한다고 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상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에게 인간을 위한 역할이 있다면, 생로병사가 환이며 실재하지 않는다는 진리와, 그것을 깨닫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스승의 역할이며, 신이란 실은 아주 옛적에 깨달은 스승들일 뿐입니다. 인도의 스승들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신과 스승과 진리는 똑같은 하나다"라고 말입니다.
제가 원 댓글에서 보인 진리의 관점에서 말해 본다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는 일, 즉 인간의 구원은 오직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음 자체가 생로병사가 실재하지 않음을 철저히 체험하고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은 어떤 스승도, 어떤 신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고, 본인의 노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은 수행이라는 노력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이라는 결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서구의 종교들은 '하느님을 믿으면 천당에 가고, 그것이 구원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고대의 신학자들이 구성한 교리일 뿐 진리와는 정말 거리가 멉니다. 깨달음의 종교들이 가진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그냥 말도 안 되는, 가당치 않은 주장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천당과 지옥들에 대한 깊고 폭넓은 통찰을 가진 인도의 종교들(불교/힌두교)은 다양한 종류의 천당과 지옥들을 묘사하지만, 모두 일시적으로 왕래하는 곳일 뿐 어느 영혼도 그곳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천당에 갈 복력이 있는 사람은 가겠지만, 거기서 그 복을 다 누리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러니 천당에 가는 것이 무슨 구원이며,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무슨 징벌일 수 있습니까? 그런 관념들은 모두 영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영혼들을 이끌기 위한 방편적 설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리와 깨달음의 문제는 확실히 종교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종교나 신학의 틀 안에 머물러서는 이런 시야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진리를 추구한다면, 누구나 진리 앞에서 용감해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성철스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불교가 불교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뛰어난 진리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신봉한다. 만약 불교보다 더 뛰어난 가르침이 있다면, 불교가 아니라 그것을 신봉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두서없이 몇 가지 소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와~ 더 확신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궤변이네요
신은 완벽하니까 존재한다?
완벽하다는 말 자체가 이미 존재를 전제한 것 아닙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나 참 별..
신의 사랑은 참사랑이기에 믿는 믿음으로-
신은 참사랑의 원형
신은 어머니의 원형
신은 아버지의 원형
완전한 악이란
악 선이란 누가 정했나
아무것도 증명할수 없는걸
의미없이 떠드냐
증명할수 있음 믿을께
왜? 신을믿지않으면 지옥에 가야 하나요? 잘못된 결론을 내려놓고 헙박 하는거죠!
칸트는 존재는 속성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사유의 한계 아닌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테슬라 자동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그것이 있다고 믿는다. 러셀도 인과관계를 무한퇴행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테슬라 자동차를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존재하는 것만이 경험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경험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우리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자기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낸다는게 그게 폭군이고 악마지 그게 신인가요? 그것 때문에 현실의 종교를 믿고 싶지 않음.차라리 나 자신이 만들어낸 신을 믿는다.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해도 그 이유가 신 자신을 바라보라고 만든게 아니라고 봄.
신의 존재의 근거와 본질과 구조와 논리가 결여 되어 어렵네요.
신은 무엇을하는가요?
하는일없이 잠만자는가요?
동.서양이 지녀왔으나 인간의 손이 닿지 아니한 순수한 인류 최고(高.古)의 두 고전인을 순서별로 대조해보니
두책 모두가 神이 창조한 "창세기"였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리임을 입증한 "태초학"을 본다면 그토록 복잡한 인간의 철학이란 가시덤불과 엉겅인것을 알게 됩니다.
믿는다는 것의 전재조건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알면 믿을 필요가 없는것이죠.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은 무의식적 상태이지 의식적으로 믿어지는게 아니죠.
사람들은 단지 자기가 믿고 있다고 믿고싶은 것 뿐입니다.
맞는말입니다. 하지만 회의주의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수잇을까요. 형이상학이 우리를 움직이는건 부정하기 힘듭니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반론 부분에서는 테슬라 주식 예에서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는데 다음과 같이 이해를 해도 될까요?^^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에 대한 개인의 결단으로 주관적 진리가 성립한다는 데, 사실 진리란 객관적으로도 참이어야 그렇게 칭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는 개인 믿음 결단과는 달리 테슬라 주가가 내려간다면 그 진리성은 그냥 무참히 무너진다는 것이 문제점 같습니다. 즉, 그냥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믿음의 선택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참(진리)이 된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이 아닌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계속 더 가져간다면 이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더 큰 문제일 것 같구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찬찬히 보니 맞는 말씀인것 같습니다.
10:27 천국이 영원한 행복이라는 전제부터 틀렸읍니다. 매 주말 아침마다 찬송가 소리 시끄러워 돌아 버리겠는데 저기 가면 그걸 주구장창 하고 있겠죠?
🐜개미의 움짐임을 무심코 바라보는 나를 인식한 순간에~!" 무심코 있음 인식하게된 초등시절 기억😅나의 존재를 전혀 모를 대상통해 나는 존재함 인지할 때!! 신은 있다고 믿을수도~
신은 없다고 생각됨, 무신론자로..자기 삶 잘~살아내면 될듯!
신의 속성- 사랑 창조성 무한성
신의 특성 - 원칙성(로고스) 비밀성(모두 비밀) 재미추구
ㅡㅡ의문점ㅡㅡ
1. 신은 무한시간이 지나야만 완전 전능한가?
2. 신은 불변인가? 재미라는 변화를 추구하는가?
3. 신은 유한세계가 필요한가?
오늘도 역시 훌륭하셨습니다.
엔딩 부분에 나온 피아노 솔로 곡이 무슨곡인가요?
전투적 무신론자인데 댓글보니까 살짝 혈압이 오르네요, 동영상만 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 존재론적 신존재 논증
가정이 잘 못 되었습니다. 신은 완전해야 한다는 생각자체가 화자의 주관적 주장이며,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완전성에 기반한 이후 논증은 모두 유효하지 않습니다. 논외로 "신은 선하다"는 가정도 잘못되었습니다. 존재를 모르는데 선하다 추정하는 것이 결과를 먼저 얘기한 것이라 틀렸습니다.
또 논외로 "선하다" 주장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선하다는 것이 모호 합니다. 무엇이 완전한 선인지 알 수 있을까요?
2. 토마스아퀴나스의 원인으로서의 신존재론
토마스아퀴나스는 신학자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초의 움직임의 원인 제공자가 신이라는 것인데, 원인이 있다고 한들 그것이 인격 또는 의식을 가진 어떠한 존재라는 가정이 주관적인 주장이니 역시 객관성 결여 입니다. 양자역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것은 입자로 되어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고...
3. 목적론적 논증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이상한 논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를 보고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하다고 하는 관찰자의 인식은 또한 주관적입니다. 또한 시계를 만든 장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이미 시계의 탄생원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논하는 것은 시계공의 존재 여부를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시계의 장인의 존재와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논외로 시계가 정교하기는 하나, 현대 물리학에서 밝혀진 중력의 크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는 데, 이와같은 상대적 시간의 흐름을 우리의 시계로는 측정이 불가하니 그리 정교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선하고 완전한 신이 우리 인간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불완전하게 만들었을까요?
4. 파스칼의 내기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믿어서 손해볼 것 없다는 참으로 가소로운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IQ180이라는 파스칼 형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니.. ㅠㅠ
5. 칸트의 신존재 요청
이 형님도 좀 이상해... 가만히 들어보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알려져 있고, 무엇이 선이고 무었이 행복인지 분명치 않으니.... 이분도 가정이 틀렸습니다. 또한 신의 존재여부 또는 요청하는 이유는 인간의 삶에 기반하여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 우주적으로 신의 존재 여부를 논하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6. 키에르케로르의 결단
이 분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마다 신의 존재가 다를 수 있겠습니다.또한 신을 믿지 않은 경우도 일종의 개인의 믿음이므로 참이 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되어 버릴 수 있겠네요.
논외로 객관적 진리라는 것이 과학적/논리적/종교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예를 들면 뉴턴의 역학은 양자 역학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거시적 세계에서는 뉴턴의 법칙이 통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근사치로 수렴합니다. 수학에서는 시간이 들어가는 방정식에서는 시간의 역순도 방정식의 성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과거로 흐르지 않습니다. 물리학적으로도 실제로 시간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객관적 진리인가요?
개인적으로 더이상 과거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필요이상으로 예를 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만 하시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신이 존재해서 , 정말 선한 세상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이 절대선이고, 신을 믿음으로써 선하고 행복해 진다니.. 어딜 가나 종교시설이 있고 종교인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이 가장 선하고 행복한 국민들이 사는 나라....?
그냥 교회가 많은거지 무교인이 절반이상인 나라입니다
좋은 내용 잘 들었습니다 ㅎ 수고하셨습니다 ㅎ
20분 뚝딱..!
세상권력에 굴복하는 신은 신이 아닙니다.
거짓이지요.
당신이 신을 믿는다면 기도해보세요!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신은 존재하는것이겠지요!
넘 사랑하는 채널
넘❤❤❤ 좋아요
지금 세상에서 믿는 신은 전능한 무한한 절대적인 것은 아니죠
심지어 소 말 태양 사람
등등 우상을 만들어서
믿는가짜신이죠
세상을 창조한분이
진짜신이죠
믿음은 결단에 의해 선택해요 !
우선 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정립해야 할것같습니다.
막연한 정의의 신은 믿는 사람에게는 존재하고 신의 존재를 믿지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을것으로 사료됩니다.
신의 존재에 회의를 갖은 사람이 신을 믿다가 사실은 신이 없었다면 본전이란 논리는 궤변으로 생각됩니다.
신은 전지전능 이고 불쌍한 인간이 신에게 모욕을 주더라도 그사람한테 벌을 줄만큼 편협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책 대박나셔서 테슬라차 사시기를....(__)
(이미 사셨다면 한대 더 뽑으시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없이 행복하게 얼마나 살까요?전지 전능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로 회귀함 .욕망과 문명이 충돌해서 승자는 모두 가져가고 나머지는 노예로 살다가 삶의 이미를 찾다가 그냥 죽는겨
근데 그래도 인류의 모든 사상을 섭렵하고 통일된 이론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