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 스승 이야기 - 조조를 거절한 사마의 처세술 [사마의일대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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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8 ก.ค. 2021
  • 사마의의 스승 호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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ความคิดเห็น • 67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3 ปีที่แล้ว +4

    잘봤습니다~~~~~!

  • @kscho7077
    @kscho7077 3 ปีที่แล้ว +3

    그야말로 순삭이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 @user-kg7fr6ho4u
    @user-kg7fr6ho4u 3 ปีที่แล้ว +3

    굿굿

  • @NESWAR네스워
    @NESWAR네스워 ปีที่แล้ว

    사마의 대단하군요 ㄷㄷㄷ

  • @namwookim1
    @namwookim1 2 ปีที่แล้ว +1

    진짜잘만드셨습니다

  • @kandahesse7130
    @kandahesse7130 ปีที่แล้ว

    각본 굿

  • @zse260
    @zse260 2 ปีที่แล้ว +5

    딱 공융이 삐딱선 타다가 불효를 명분으로 잡혀서 일족이 몰살당했던거 생각하면 초창기 사마의의 출사거부는 위험한 짓이죠.

  • @user-ii3ie8lp9f
    @user-ii3ie8lp9f 2 ปีที่แล้ว +1

    아니 진짜 아프다고..... .

  • @Max-np1ib
    @Max-np1ib 3 ปีที่แล้ว

    다음편.. 다음을 달라!!

  • @momomo4534
    @momomo4534 3 ปีที่แล้ว +3

    역시 재미나요 ! 감사히 봤어요 ^^ 다방면의 천재 조조도 궁금해지네요

  • @hkk3870
    @hkk3870 3 ปีที่แล้ว +6

    관도대전에서 세족과 귀족으로 세력이 나뉜것이 현대중국의 태자당 상하이방으로 권력이 나뉘는게 삼국시대와 다른게 없어 보이네요
    순욱과 조조의 견해 차가 연의와 매체에서 얕게 그려져서 대의나 구 한나라는 출신관료라는 것에 기인하여서 그 정도만 이해 했었는데
    기득권 권문세가여서 그냥 귀족 조조와 달랐다니 ㄷㄷ 사마의추천이 오호 십육국이나 전한시기때 명가 사마씨이고 꽌시였다니
    중국은 왜 명가 자손들은 태생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는 기류가 있을까? 했는데 지식이 가문에서만 공유된다는것 정말 오래된 궁금증이 해결되었어요!

  • @cahmahkkang63
    @cahmahkkang63 3 ปีที่แล้ว +29

    사마의보면 이에야스 생각남
    인내심이 진짜 최고의 무기인듯
    그러나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인내하는 순간 대머리되고 속은 다 썩을듯

    • @user-lb5qj1nu5s
      @user-lb5qj1nu5s 3 ปีที่แล้ว +7

      참는것도 권력있는 애들이나 참아야지
      일반인은 맘대로 살아야됨

  • @user-hb9kj5td7f
    @user-hb9kj5td7f 3 ปีที่แล้ว +4

    사마팔달 8형제가 다 똑똑함

  • @kalbcplomy
    @kalbcplomy 3 ปีที่แล้ว +2

    존경스럽다 사마의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

  • @user-lt3nq4ew8v
    @user-lt3nq4ew8v 2 ปีที่แล้ว +1

    심리분석과 세부 사례 묘사가 대단히 치밀한데, 참고하신 논문이나 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 @user-pj7le9oe1o
    @user-pj7le9oe1o 3 ปีที่แล้ว +3

    사마의가 연기 대상 명품 배우였었군요 ^^
    정치는 어차피 연기력이니까요^^

  • @weyon3733
    @weyon3733 3 ปีที่แล้ว +23

    사마의 사마사는 둘다 너무 현명함 지독하고 무서울 정도임 사마사 가정사나 장춘화 이야기보면 소시오패스 집안 같음 처세술,지략,상황판단, 냉철함까지.. 좋은 주인 만나고 대기업 들어가는 것도 실력이라 생각함

    • @zse260
      @zse260 2 ปีที่แล้ว +1

      사마사까지는 괜찮았는데 사마소가 문제였죠. 사마소 덕에 조씨들보다 더 호족들에게 더 엎어지게 된 꼴이니.

    • @user-vy5gw6rk1g
      @user-vy5gw6rk1g 2 ปีที่แล้ว +1

      뭔가 적당한게 없고 다들 지나쳐보임. 기회를 기다리겠다고 무려 7 년을 누워 지낸 것이나 , 일어나는 걸 봤다고 여종을 죽인다거나 , 인성들이 다 극단으로 가는 것 같음.

  • @user-vc3sy1hi8h
    @user-vc3sy1hi8h 2 ปีที่แล้ว +7

    사마의가 조조의 신하가 된 과정은, 제갈량이 유비의 신하가 된 과정과는 다릅니다.
    전자는 그야말로 반 강제로 이루어진 일이었죠. 신하가 될 사람도 악착같이 반항하다가 마지못해 무릎을 꿇었고요. 후자는 그렇지 않았어요.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신하가 되었고, 주군도 그 신하를 아끼고 존중했죠.
    아마 그 때문에라도 사마씨가 나중에 조씨를 무너뜨리는 일에 별 죄책감을 못 느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반대로, 제갈씨는 유씨에게 촉한이 망하는 그 날까지 충성했지만요)
    그런 걸 보면, 역시 인간관계는 과정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외교나 내정도 마찬가지지만요.

  • @leecaesar2044
    @leecaesar2044 ปีที่แล้ว

    사마의가 7년뒤 임관했을때 꾀병이라는걸 안 조조의 반응은 어땠나요?

  • @user-yp6rf9rh6k
    @user-yp6rf9rh6k 3 ปีที่แล้ว

    ㅋ ㅑ.. 진짜 예술..

  • @hbsci0204
    @hbsci0204 2 ปีที่แล้ว +5

    제갈량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비 위주의 방어전을 펼친 것.
    삼국지의 진정한 승리자. 사마의.
    희한한 건 패배자인 제갈량과 관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
    호소한다. 이 말의 주인공이 여기 나오는구만. 실패할 확률이 큰 게 호소.

  • @nadir5586
    @nadir5586 3 ปีที่แล้ว +1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요

  • @appetite4214
    @appetite4214 3 ปีที่แล้ว +4

    중국인들이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최악의 시대가 5호16국시대. 사마의의 후손들이 5호16국을 초래했기에 사마의의 평가가 박하고
    심지어 조조까지도 안 좋은 평을 듣게 되었다고

    • @user-vc3sy1hi8h
      @user-vc3sy1hi8h ปีที่แล้ว

      그리고 '한족(漢族)'들이 싫어하고 깎아내리는 '중국 왕조' 가운데 사마씨가 세운 서진(西晉)이 있더군요. 사실, 제가 '한족'이었어도 그렇게 여겼을 겁니다. 정사(正史)에 나오는 서진 지배층이 한 짓들이 너무 형편없고 뻔뻔하고 역겨운지라(예 : 시호가 '혜제'였던 서진의 황제 '사마충'은 신하가 "흉년이 들어서, 곡식이 없는 나머지 백성들이 굶어 죽었다고 하옵니다."하고 아뢰자, "먹을 것이 없다고? 곡식이 없어? 그럼 [그들이] 왜 고기 죽을 먹지 않는 건가?"하고 되물었대요. 귀족들은 곡식[!]을 땔감으로 써서 밥을 짓거나, 백성에게 주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비싼 염료 한 병[향수병 만한 크기]으로 집의 벽을 칠하거나, 시녀에게 손님 앞에서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게 시킨 뒤, 만약 손님이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사형에 처하고, 노래를 실수로 틀리게 불러도 사형에 처했다네요. 사마충의 황비였던 '가남풍'은 남편 몰래 미소년들을 불러서 관계를 맺었고요), 그리고 '한족'의 터전이었던 이른바 '중원(화북 지방)'을 지키지 못하고 남쪽(화중/화남 지방)으로 달아난 죄(!)가 있는지라, 전(前)근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에도 그다지 평가가 좋지 않은 왕조가 서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광(시호 '수 양제') 때문에 망한 수(隋) 왕조도 평가가 좋지 못한 건 마찬가지고요(아버지이자 창업군주인 양견 - 시호 '수 문제' - 은 나라를 잘 다스렸는데, 아들인 양광이 다 망쳐서...).

  • @user-sq3yz6gy1s
    @user-sq3yz6gy1s 3 ปีที่แล้ว +3

    존버정신.... 그러나 인내심은 기본 요건이고 하늘이 결과를 내렸을뿐...

  • @rrrhhl
    @rrrhhl 3 ปีที่แล้ว

    몰아보기는 언제 올라오나요 ?

  • @masaki1527
    @masaki1527 2 ปีที่แล้ว

    5:58 같은얼굴 다른인격 맹덕과 현덕

  • @stevenrhee8398
    @stevenrhee8398 3 ปีที่แล้ว +2

    교활함, 잔혹함, 인내심,
    결단력

  • @ysj2829
    @ysj2829 3 ปีที่แล้ว +7

    현 시대에 비유하자면, 본인의 몸값을 높이는 사마의의 처세술은 훌륭하네요. 입사 첫날부터 그 사람의 미래 몸 값은 어느정도 결정되어 있는 편인데, 사마의는 그걸 빠르게 간파한거 같네요.

  • @user-es4ys5my3y
    @user-es4ys5my3y 3 ปีที่แล้ว +2

    다음은 언제 만드나요? 스토리가 그냥 여기서 끓겨서 .....

    • @fold_history
      @fold_history  3 ปีที่แล้ว +2

      이번주 금요일 7월 30일 업로드 예정 입니다

  • @user-vy5gw6rk1g
    @user-vy5gw6rk1g 2 ปีที่แล้ว +2

    11:00 지나치다. 꾀병 연기를 하려고 사람을 죽이다니 지나치다

  • @user-mc2fo3bg7w
    @user-mc2fo3bg7w 3 ปีที่แล้ว +36

    가끔은 사마의의 기록이 굉장히 미화, 과장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음요ㅋㅋ

    • @scarletsong31
      @scarletsong31 3 ปีที่แล้ว +9

      동감! 내가 정사 삼국지같은 사서를 100% 사실로 생각하지않는 이유임. 승자의 입맛대로 쥐만한건 부풀리고 오점은 감추는 내로남불형 기록

    • @user-mc2fo3bg7w
      @user-mc2fo3bg7w 3 ปีที่แล้ว +6

      @@scarletsong31 그쵸ㅋㅋ 청화수 라는 역사 유튜버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실제 자료들을 예로 들어 풀어가는데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 @tutu-ho7gd
      @tutu-ho7gd 2 ปีที่แล้ว +2

      ㅋㅋ 결국 마지막 승자는 사마의 인데,, 당신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 @user-mc2fo3bg7w
      @user-mc2fo3bg7w 2 ปีที่แล้ว +3

      @@tutu-ho7gd 승자니까 미화되지요.

    • @zse260
      @zse260 2 ปีที่แล้ว

      제갈량의 북벌 내에 있던 노성전투의 경우는 역사를 왜곡했죠. 사마의- 장합이 제갈량-위연-왕평 조합을 꺾지못함.

  • @hosanglee5976
    @hosanglee5976 3 ปีที่แล้ว +9

    ..무시무시한 사람 사마의..

  • @user-re6kz1mf5g
    @user-re6kz1mf5g 3 ปีที่แล้ว +9

    제갈량이라는 명성에 가려져 사마의는 대중들에겐
    찬밥신세였는데 요즘 사마의가 대세인가 사마의를 다루는 주제들이 많네요..
    이것도 내다보았을까요 사마의..
    천재 중에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 @aaahungry
      @aaahungry 3 ปีที่แล้ว +1

      @퇴치벌레 ㅇㅇceo로써 개인능력은 제갈량이 넘사

  • @user-dz1ml1tl3x
    @user-dz1ml1tl3x 3 ปีที่แล้ว +2

    사마의 저꾀병이야 말로 고릉사변 큰그림이네

  • @johnlemon6068
    @johnlemon6068 2 ปีที่แล้ว

    아들 이름들에 스승 이름을 붙였구나 ㄷㄷ

  • @j8663
    @j8663 3 ปีที่แล้ว +3

    참 그러고 보니 북송시절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사람이 사마광인데 그의 조상이 다름아닌 사마랑.사마의 의 동생 사마부 라고 합니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이라는 장편 역사서를 편찬했는데 이게 권수가 무지막지하게 많더군요 삼국지에 해당하는 부분이 한기60권.위기10권 에 해당 하며
    자치통감삼국지 라는 역사소설도 있더군요
    삼국지에 관한 기록서 들 중에서 이 자치통감도 빼놓을수 없다고 봅니다.
    중드 미완의책사와 최후의 승자를 이 자치통감을 참고 해서 만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걸 보니 내가 만약 위나라군이었고 사마의가 지휘하는 부대에 소속 되어 있었다면 최소한 창칼에 맞아 죽을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갈량과의 전투에서 자주 패하긴 했지만
    병력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이려고 하는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 @hosanglee5976
    @hosanglee5976 3 ปีที่แล้ว +5

    호소 란 인물에 대해서는 첨 듯네요..
    제가 내공이 높지 않은지라..
    그나저나 '공명'이라는 호를 쓰는게
    그런사람들에게 붙이는건지 그런사람들이 그런 호를 좋아하는건지 모르겠네요 ㅋㅋ
    호소란 인물이 궁금해집니다.

    • @SangyubRi
      @SangyubRi 2 ปีที่แล้ว +2

      삼국지 위서 11 원·장·양·국·전·왕·병·관전 (김원중 역)
      정시 2년(241) ".. 당시 거록 사람 장천은 자가 자명이고, 영천 사람 호소는 자가 공명이었는데, 마음을 닦으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정시 원년(240) "..호소는 애초에 기주로 피난을 갔는데, 역시 원소의 부름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조가 사공 승상이었을 때 후한 예로써 자주 초빙했다. 호소는 나아가서 명에 응하여 도착한 후, 자신은 일개 야인으로 군사와 국가의 일을 할 수 없으니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원했다. 조조가 말했다 '사람에게는 각각의 생각이 있으므로 나와서 임용되는 것과 집에 있는 목적이 각기 다르오. 나는 그대가 끝까지 이 고아한 뜻을 지키고 절의를 억지로 굽히지 않도록 하겠소' 그래서 호소는 육혼산으로 옮겨 살면서 몸소 밭을 갈며 즐거워하고 경전과 서적을 읽었다. 마을에서는 그를 존경하고 친애했다"
      건안 23년(218) "육혼현의 장 장고는 명령서를 받아 성년 남자를 징발해 한중으로 보내려고 했다. 백성은 먼 곳으로 가서 복역하는 것을 꺼리고 싫어했으므로 대부분 불안해했다. 백성 손랑 등이 병사를 일으켜 현의 주부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현읍이 파괴되었다. 장고는 10여명의 관리와 부하를 데리고 호소의 거주지를 의지하여 남은 백성을 불러 모아 사직을 안정시키고 회복시켰다. 손랑 등은 마침내 남쪽으로 관우에게 귀속되었고, 관우는 그에게 관인을 주고 병사를 주어 돌아가서 도적이 되도록 했다. 손랑 등은 육혼 남쪽 장락정에 돌아와 서로 맹서를 하여 말했다 '호 거사는 현인이다. 누구든 그가 사는 부락을 침범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수 일대의 백성은 호소를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모두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주) "처음에 진 선제가 벼슬을 하지 않을 때, 호소와 친한 사이였다. 같은 군 출신의 주생 등이 사마의를 죽이려고 계획했다. 호소가 이 말을 듣고 험한 길을 건너서 효민에서 주생을 만나 그만둘 것을 요청했으나 듣지 않았다. 호소가 눈물을 흘리며 진실하게 말하니, 주생은 그의 의로움에 감동하여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 호소는 주생과 대추나무를 잘라 함께 맹약하고 헤어졌다. 호소는 비록 사마의에게 음덕을 베풀었어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칭송이 자자했다. 건안 16년(211), 마초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이 전쟁을 피하여 산으로 들어가니, 그 수가 1천여 가구나 되었다. 식량이 부족하자 서로 위협하여 빼앗기 시작했다. 호소는 항상 겸허한 말로 그들을 화해시켰고, 이로써 서로 빼앗는 일이 없어졌으며, 3백 리에 걸쳐 다른 사람을 침범하는 일이 없었다"

    • @SangyubRi
      @SangyubRi 2 ปีที่แล้ว +1

      가평 2년(250) "공거로 특별히 초빙을 받았으나 공교롭게도 죽었으니, 89세였다. 아들 호찬을 낭중으로 임명했다. 당초 호소는 역사와 서법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종요·한단순·위의·위탄과 더불어 유명했고, 서간의 필적은 그 운필이 후세인들의 본받는 바가 되었다.."
      사마의와의 관계는 진수의 본문에는 없고 배송지 주에만 나오는 듯 하네요

  • @jerrylee8818
    @jerrylee8818 2 ปีที่แล้ว +1

    주옥같은 말들이 너무 많네요

  • @jeyukpark9901
    @jeyukpark9901 3 ปีที่แล้ว +4

    사마의는 최악의 역적이라 보는 1인
    정변 찬탈로 후에 문제없이 후손들이
    통치했으면 상관없는데
    수십년만에 말아먹고 삼국시대와 다른
    유목민족의 야 신난다 시즌1 찍었으니까요 뭐 근데 그 유목민족도 한화 했으니 손해는 아닌건가
    삼국시대 이후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수/당이 한화된 선비족이니까요

  • @user-bl7gs1ok1d
    @user-bl7gs1ok1d 2 ปีที่แล้ว

    ㅋㅋㅋ

  • @note20ultra5ggalaxy4
    @note20ultra5ggalaxy4 3 ปีที่แล้ว +2

    ^^

  • @seungwooham3204
    @seungwooham3204 3 ปีที่แล้ว +2

    1빠

  • @jungking4033
    @jungking4033 2 ปีที่แล้ว

    사마의에 대한 기록은 80%가 뻥이죠.

  • @kkh1395
    @kkh1395 3 ปีที่แล้ว +4

    사마는 부여의 벼슬이다.위나라는 부여의 관제를 썻다.

  • @user-li4se4wg4d
    @user-li4se4wg4d 3 ปีที่แล้ว

    나 같으면 꺼져하고 치킨이나 먹지 ㅉㅉ 정치해서 머하냐 치킨이 진리지

    • @보병
      @보병 2 ปีที่แล้ว

      아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