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이라는 쓰지도 않는 단어로 국어에서 고생했던게 억울하네요. 모순 양비론이라니! 한번에 알아듣겠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모순 말하기로 와이프와 대화 할때마다 자기편을 안든다고 공감하지 않는다고 비난 받는 상황이 생각나네요. 각각의 관점과 입장이 다름을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부간의 대화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게 소피스트의 양비론으로 오류를 찾기 위한 말하기 방식이었다니! 저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dialetic은 그리스어원으로 보면 무엇을 통해 말하기, 기술을 얻기 또는 대화의 기술 내지 함께연합하는 기술이라는 dialegein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비론이나 모순으로 생각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으나 고대 그리스에서 디알레틱을 할 때 대립이나 대치되는 것만 토론한 것이 아니라 상반되는 것이나 대비되는 것에 대해 토론한 것이고 단어의 본 뜻에 따라 연합 내지 합의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차후 나온 헤겔의 정반합에 기초한 변증법적인 요소가 이미 존재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양이라고 번역한 헤겔의 단어 Aufhebung이 부정, 보존, 높임 등 세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음을 볼 때 헤겔은 자신의 시대에서 고대 그리스의 Dialetic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것으로 봅니다. 지양이란 단어의 독일어 속성에 따라 일본식 표현인 변증법을 쓰기 않고 차라리 헤겔의 지양논이라고 해도 헤겔의 변증법이 충분히 설명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있었던 변증법에 대한 몰이해의 원인을 드디어 알았네요.. 과거에 변증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칸트의 설명과 헤겔-마르크스의 설명을 구분없이 들어봤는데요. 그러다보니 그래서 변증법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모호했습니다. 이 영상을 통해 그 구분이 생기면서 왜 그런 몰이해가 발생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되었다니 기쁩니다. 변증법에 대한 추가 영상은 두 개가 더 있습니다. 먼저, 작년에 올렸던 영상으로 정반합 변증법에 대한 비판적인 해설은.. th-cam.com/video/ol5mJDreHyc/w-d-xo.html 다음으로, 논리학 시리즈로 강의하는 부분에서 변증 파트는... th-cam.com/video/M72Dm3ecKfU/w-d-xo.htmlsi=Op5dJ4BKy6wtKy73 입니다. 감사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을 개인적으로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헤겔이 이야기한 변증법은 ’합‘에 의미를 두지만 동시에 그 운동 그 자체인 과정에 중요도를 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주체사이에 무수한 얽힘에 의해 나타난 존재 이유를 걸고(죽음을 불사하고) 진행해 나아가는 투쟁 (과정, 대화, 대립) 그 자체가 변증법이라 느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하는 내용에서 결국 헤겔은 ‘합’을 역사론적 필연으로 정해두고 그 사이에 복잡함을 단순화 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가 이야기한 변증법은 또한, 양측의 모순과 얽힘을 분석하고 대화와 투쟁을 통해 나타나는 앎의 운동, 그 과정 자체에 중심을 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봐요. 저도 한때 헤겔주의자였고, 그때에는 장점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단점을 체험한 후에는 좀 멀어졌습니다. 오히려 헤겔을 사기꾼으로 비난한 쇼펜하우어의 관점이 제게는 더 흥미롭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선생님처럼 해석할 수도 있고, 또 대철학자 헤겔이 바라보는 통찰에서 커다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변증법에 관한 제 기본적인 입장은... 다음 영상으로 업로드한 적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h-cam.com/video/ol5mJDreHyc/w-d-xo.htmlsi=i1nJBdWfSrq3JNcy
안녕하세요.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칸트와 헤겔의 모순양비론을 비교하시면서 헤겔, 그리고 맑스는 각각 지양과 혁명의 방식으로 이 모순양비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고 하셨는데요. 어찌보면 칸트도 이것이 해결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예로 드신 신의 존재와 부존재의 양비론을 넘어 칸트가 자기만의 창견을 제시했던 사례를 보면, 칸트 나름대로는 '해결'했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요? 폰으로 쓰느라 글이 이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칸트의 경우에는 그런 해결을 믿지 않았습니다. 칸트 자신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이러하다 저러하다면서 세상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모두 시도(즉, 변증)에는 '진리 관점에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류공통의 오류라고 못을 박고 있는걸요? 칸트는 신의 존재와 부존재의 양비론을 극복해서 새로운 진리론을 펼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입장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혹은 "알 수 있는 수단이 우리에게는 없다"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칸트 철학 전체에 일관되고, 아주 뿌리깊게 내려진 생각이어서요... 칸트가 해결한 것은(해결했다고 칸트가 믿는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우리들 앎의 한계를 인정하는 그런 철학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성의 한계이며, 우리의 지식은 경험할 수 있고,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것에 제한되기 때문에, 그 이상을 넘어서 무엇이 옳다는 식의 진리 주장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이 올바르다는 식의 탐구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칸트는 이런 방식으로 인간에게 이성이 주어진 까닭, 사명을 해결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순을 해결하는 주체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이데아 그 자체라는 해석이 독특해요. 해겔의 절대정신이 이 해석으로 보니 이해가 되네요. 세계는 이데아라는 신이 스스로 절대정신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으며 인간의 이성은 철학을 통해 그 가는 과정을 조금 이해하는 거네요. 그럼 이 절대정신은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세계는 이미 절대정신에 이른 완전한 신의세계이고 해겔의 세계는 모순을 극복하여 나아가는 불안정한 신의세계의 상태인건지요. 그리고 이때 지금의 상태가 모순인지 아닌지 누가 판단하나요. 절대정신이 종교적 인격신이 아닌데 세계 자체가 그것이 모순인지 판단하는게 이상해요. 자연현상에 옳고 그름이 있지는 않잖아요. 칸트는 이성이 판단할수 없는 영역에까지 무분별하게 답을 내는것을 비판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다만 스피노자는 있음을 말한 것이고, 헤겔은 앎을 말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존재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대한 관심의 차이로 이해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스피노자와 헤겔은 자신들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탐구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설을 세우는 것은 두 분의 철학자이겠습니다만, 그 가설을 따르느냐 마느냐는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변증법 영상 잘 봤습니다. 하지만, 국어사전의 '변증'항목에 나와있는 설명이 모두 dialectic의 번역어로서의 '변증'을 설명한 것이라는 전제는 오류라고 보입니다. 서양사상이 한자문화권에 도입될때, 한가지 개념이라도 여러가지 번역어가 만들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논리학분야에서 demonstration의 번역어로 '증명,논증,입증'등이 만들어졌고, 그중에 하나가 '변증'도 있었던 거죠. 또한 apology의 번역어로서도 '변증'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저도 국어사전 설명이 제대로 된거라고 생각은 않고, 사전 편집자가 아무생각없이 여기저기에서 베꼈다는 느낌은 받지만 말이지요. 저는 dialectic의 번역어로 '변증법'은 '괜찮은 번역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영상에도 나와있더군요. 말씀하신 '디베이트 화술'이란게 한국말로 하면 바로 '변론'입니다. '변증법'이 '변론을 통한 증명법'이라는 의미란 것만 제대로 인식한다면 괜찮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의 증명은 '입증/반증'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실은 한국에서 오용되고 있는 말은 '변증법'이 아니라 '변론'이란 말입니다. 창피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을 보고 제가 뭔가 잘못 전했나 싶어 다시 한번 영상을 봤습니다. dialectic의 의미는 변론을 통한 증명법은 아닙니다. 대립되는 견해의 오류를 밝히는 화술이었지만, 그게 고대의 디베이트 화술이 dialectic라는 것은 아니고, dialectic이 디베이트 화술의 일종이었다는 말씀이었어요. 저는 변증법이라는 단어가 괜히 철학을 어렵게 만드는 낡은 번역어라고 생각합니다만(제가 머리가 나빠서 이 단어를 이해하는 데 수십 년 걸린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걸 바꿀 능력도 입장도 아니어서요... 하나의 언어를 바꾸는 일은 사회적 흐름이 있어야 하고 수십 년의 오랜 세월이 걸리는 문제여서 저로서는 아무래도 역부족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견해만 가질 뿐이지요. 다만, 변증법이라는 단어를 타인에게 설명하실 때에, '모순론', '양비론'으로 설명하시면 대체로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오류를 밝히는 게 아니라 진리를 찾는 방법론이어서 전통적인 서양철학의 생각과는 다르고, 사람들이 '정반합'으로 설명하니까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헤겔 이외의 전통적인 서양철학에서는 모순론, 양비론의 이해해야만 dialectic이라는 용어가 이해되더라고요.... 물론 저는 헤겔의 변증법도 결국 모순론이자 양비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codyjeong 음.....'dialectic이 디베이트 화술의 일종'이었다는 말씀이었다면 그것이 오류라고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디베이트 화술의 일종'으로 나오는 것은 보통 한국말로 '변론술'로 번역되곤 하는데, 그 원어는 '디알렉티키'가 아니라 '레토리키'입니다. 이를 착각하신듯 합니다. 그리고 번역을 할때는 가급적 역자의 주관성은 베재하고 원어의 뜻과 가깝게 번역해야합니다. 여러 사상가들에게서 모순이 dialectic의 핵심개념이긴 하지만, dialectic이란 말 어디에도 '모순'이란 개념이 내포되어있지 않습니다. 또한 '모순론'은 모택동의 모순론이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오해를 유발하죠. dialectic의 뜻은 어떤 사상가라고 해도 'logos를 주고받는(dia-(현대영어로는 through)) 방식'이란 의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자문화권에서 번역하기로 '변증법'이 괜찮다고 한 것입니다.
@@해왕성-m6u 아, 이건 선생님과 제가 생각이 다른 거네요. 대체로 건너기 어려운 생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번역에 관해서, 원어의 뜻과 가깝게 번역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인데, 저쪽의 언어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쪽의 언어를 탐구하게 되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중학생 수준의 어휘력이라면 그 단어를 듣고 어느 정확한 의미를 연상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가급적 평범한 일상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단어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어도 변화하게 마련이어서 젊은이들의 언어들을 관찰하면 우리나라에서 한자문화권은 그 힘이 매우 미약해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쓰지도 않는 한자어를 조립해서 만들어도 그 의미를 대충 이해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시대는 달라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어려운 한자어는 의심하는 게 저의 입장이고요. 아는 사람만 알게 되고, 그래서 한쪽은 가르치고 한쪽은 배워야 하는 정신적인 권력관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50대 이상의 연령에서는 모순론이라고 하면 모택동의 사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모순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선생님도 잘 아시는 창과 방패의 그 모순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단어는 모순과 양비론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서양사상가들이 말하는 dialectic을 제대로 입문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나머지 지적에 대해서는 제가 동의하지 않고, 제 생각을 선생님도 동의하지 않을 터이니, 이건 그냥 각자의 생각으로 가지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변증법, 괜찮아요. 그 번역을 찬동하고 그 단어를 계속 쓰시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계속 사용하십시오. 그 단어로는 사전 지식을 누군가 잘 설명해 주지 않으면, 많이 공부하지 않고서는, 텍스의 의미 파악이 잘 안 될 거라는 겁니다. 헤겔은 제외. 정반합이 워낙 유명하니까요. 감사합니다.
@@codyjeong 기존에 관습처럼 혹은 습관처럼 아니면 어떤 무언가의 힘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순응해 버리는 연약한 태도로 인해(후자의 경우가 관련 학자들에 해당한다면 실로 개탄할 일이지만) 일반인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용어를 (어쩌면 실제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그러한 용어를) 마치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것이 뭔가 있어보이고 뭔가 심오해 보이며 뭔가 자신의 지적 수준이 높은것처럼 무의식속에 고이 담아 자물쇠를 걸어 잠궈버린 "게으른" 지식인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성찰하라! 코디정 선생님으로 인해 철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요즘부쩍 생겼습니다. 이전까진 도무지 용어의 개념이 정립이 안돼서 철학이란 단어 아니, 철학이란 학문자체가 아무 쓸모없는 학문이라 여기고 살아온 무지한 사람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늘 항상 토나올것 같았던 용어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쉬운 우리말 다운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해주시니 제 인생에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의 빛을 보는 듯합니다. 개념(용어)를 알아야 벽돌의 수가 늘어나고 벽돌의 수가 많아야 집이 완성되고, 집이 완성되어야 지식의 확장을 할 수 있는데, 애초부터 철학적 용어 즉, 개념자체가 대중들에게 전달이 안되다 보니 지식으로 확장될 여지조차 주지않은 관련분야 학자들의 나태함을 이 어찌 탓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jhj5716 여러 가지 지식의 너비와 깊이를 감안했을 때, 현대 한국인의 지적 능력은 이미 (당대 인류가 아니라) 인류사에서 가장 똑똑합니다. 과거 철학자들이 모르는 과학지식까지 우리는 초등, 중등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야 할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좀처럼 고전의 지혜를 독해할 수 없습니다. 어딘가 굉장히 이상한 상황인데, 제가 탐구한 바로는, 그냥 번역 문제인 것 같아요. 철학분야의 한국어 텍스트는, 사실상 한국어의 무덤이고, 일본어의 향연입니다. 일본어는 한국어가 아니니까, 우리는 서양철학을, 일본언의 언어로, 읽고 있는 셈이지요. 그게 아마도 우리의 정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 말씀하신 내용이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처구니 없는 논쟁을 하든 생산적인 대화를 하든 우리는 터인과 소통을 해야 하잖아요? 만약 과거 종교 시대 혹은 철학의 지적 흥분 시대에만 유행했고 지배적이었던 생각이, 지금에 이르러 거의 그 지배권을 잃고 누구도 신봉하지 않는다면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적지 않게 과거의 사고체계를 따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무리 과학의 시대라 하더라도 철학적 유산이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요… 변증법 관련해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상당수는 변증법을 아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의 과거의 유물이 아니겠지요… 과학의 시대, 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비과학적인 의견를 갖기도 하고,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모르는 또한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어느 정도 과학자, 어느 정도 철학자, 혹은 어느 정도 종교인인 채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변증법이라는 쓰지도 않는 단어로 국어에서 고생했던게 억울하네요. 모순 양비론이라니! 한번에 알아듣겠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모순 말하기로 와이프와 대화 할때마다 자기편을 안든다고 공감하지 않는다고 비난 받는 상황이 생각나네요. 각각의 관점과 입장이 다름을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부간의 대화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게 소피스트의 양비론으로 오류를 찾기 위한 말하기 방식이었다니! 저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 문제로 수십 년 동안 고생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방대한 부분을 정리해서 쉽게 전달하는 진심이 느껴집니다. 모든 강의가 정말 주옥같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최고입니다!!
다행이에요.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만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런 쉬운 설명이 가능 하시다니 내공을 느낄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척 도움이 됩니다.
도움이 됐다니 보람이고,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dialetic은 그리스어원으로 보면 무엇을 통해 말하기, 기술을 얻기 또는 대화의 기술 내지 함께연합하는 기술이라는 dialegein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비론이나 모순으로 생각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으나 고대 그리스에서 디알레틱을 할 때 대립이나 대치되는 것만 토론한 것이 아니라 상반되는 것이나 대비되는 것에 대해 토론한 것이고 단어의 본 뜻에 따라 연합 내지 합의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차후 나온 헤겔의 정반합에 기초한 변증법적인 요소가 이미 존재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양이라고 번역한 헤겔의 단어 Aufhebung이 부정, 보존, 높임 등 세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음을 볼 때 헤겔은 자신의 시대에서 고대 그리스의 Dialetic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것으로 봅니다. 지양이란 단어의 독일어 속성에 따라 일본식 표현인 변증법을 쓰기 않고 차라리 헤겔의 지양논이라고 해도 헤겔의 변증법이 충분히 설명되리라 생각합니다.
네 좋은 말씀, 그리고 고견입니다. 경청합니다. 헤겔의 지양론, 이러면 좀 더 헷갈리지 않고 헤갤의 지혜에 귀를 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동 강의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박..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명쾌한 설명입니다..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영상도 가볍게 즐겨 주세요~~
변증법에서 정의된 각자의 지양과 혁명.. 많이 와닿네요 너무 좋은 설명입니다. 잘 봤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것이풀렸읍니다~~감사합니다❤❤❤❤❤❤❤❤
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알고리즘인지는 모르겠지만 변증법에 대해 쉬운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고리즘에 관해서는 칸트 순수이성비판에 관한 영상에 조금 소개되어 있습니다^^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혼자서 순수이성비판 프랑스어판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철학과 학부생입니다.
선생님의 재밌는 해설 영상 덕분에 지식 얻어갑니다.
아, 제 인생에서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두 번째 분이에요. 저는 영어 번역본으로 읽었고요… 응원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MovementFAV 아직 배워가는 중입니다 ㅎㅎ.. 더 열심히 해야죠! 감사합니다
지금 들었는데 정말 너무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익했다니 다행이에요. 기쁩니다~~
우와 너무 좋습니다 언어는 권력이고 습관 적이네요 오류의 번역을 계속 변증이라고 쓰고있네요 좋은강의 감사드립니다 라캉 에크리 읽다가 잘들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의 오류다, 라고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다함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쓰면서 지식을 공부하고 표현하고 소통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철학 공부를 위한 최고의 준비 강의
그동안 있었던 변증법에 대한 몰이해의 원인을 드디어 알았네요..
과거에 변증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칸트의 설명과 헤겔-마르크스의 설명을 구분없이 들어봤는데요. 그러다보니 그래서 변증법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모호했습니다. 이 영상을 통해 그 구분이 생기면서 왜 그런 몰이해가 발생했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저도 정말 오랫동안 많이 헤맸습니다;;; 이렇게 딱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까 순조로워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어려운 철학적인 용어를 쉬게 풀어 주셔셔 이해하는데 도움되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더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 까요?
도움되었다니 기쁩니다. 변증법에 대한 추가 영상은 두 개가 더 있습니다.
먼저, 작년에 올렸던 영상으로 정반합 변증법에 대한 비판적인 해설은.. th-cam.com/video/ol5mJDreHyc/w-d-xo.html
다음으로, 논리학 시리즈로 강의하는 부분에서 변증 파트는... th-cam.com/video/M72Dm3ecKfU/w-d-xo.htmlsi=Op5dJ4BKy6wtKy73 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유익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혹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대한 설명도 있으십니까?
감사합니다. 아직 제 채널에서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다루지는 않았어요.
헤겔의 변증법을 개인적으로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헤겔이 이야기한 변증법은 ’합‘에 의미를 두지만 동시에 그 운동 그 자체인 과정에 중요도를 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주체사이에 무수한 얽힘에 의해 나타난 존재 이유를 걸고(죽음을 불사하고) 진행해 나아가는 투쟁 (과정, 대화, 대립) 그 자체가 변증법이라 느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하는 내용에서 결국 헤겔은 ‘합’을 역사론적 필연으로 정해두고 그 사이에 복잡함을 단순화 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가 이야기한 변증법은 또한, 양측의 모순과 얽힘을 분석하고 대화와 투쟁을 통해 나타나는 앎의 운동, 그 과정 자체에 중심을 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봐요. 저도 한때 헤겔주의자였고, 그때에는 장점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단점을 체험한 후에는 좀 멀어졌습니다. 오히려 헤겔을 사기꾼으로 비난한 쇼펜하우어의 관점이 제게는 더 흥미롭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선생님처럼 해석할 수도 있고, 또 대철학자 헤겔이 바라보는 통찰에서 커다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변증법에 관한 제 기본적인 입장은... 다음 영상으로 업로드한 적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h-cam.com/video/ol5mJDreHyc/w-d-xo.htmlsi=i1nJBdWfSrq3JNcy
그 어려운 변증법을 이렇게 설명해 주시니.. 감사! 사실 Dialectic은 참 쉬운 단어 인데…
네.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한테는 수십 년 동안 상당히 어려운 단어였습니다. '변증'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상하고, 철학자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주 헷갈렸어요. 이제는 드디어 좀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찝찝했던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네.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보람입니다^^. 저도 엄청 찝찝했어요~ 감사합니다.
이해가쉽네요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순수이성비판 서문 공부한 적있었는데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힘들었는데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칸트와 헤겔의 모순양비론을 비교하시면서 헤겔, 그리고 맑스는 각각 지양과 혁명의 방식으로 이 모순양비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고 하셨는데요. 어찌보면 칸트도 이것이 해결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예로 드신 신의 존재와 부존재의 양비론을 넘어 칸트가 자기만의 창견을 제시했던 사례를 보면, 칸트 나름대로는 '해결'했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요?
폰으로 쓰느라 글이 이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칸트의 경우에는 그런 해결을 믿지 않았습니다. 칸트 자신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이러하다 저러하다면서 세상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모두 시도(즉, 변증)에는 '진리 관점에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류공통의 오류라고 못을 박고 있는걸요? 칸트는 신의 존재와 부존재의 양비론을 극복해서 새로운 진리론을 펼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입장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혹은 "알 수 있는 수단이 우리에게는 없다"라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칸트 철학 전체에 일관되고, 아주 뿌리깊게 내려진 생각이어서요...
칸트가 해결한 것은(해결했다고 칸트가 믿는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우리들 앎의 한계를 인정하는 그런 철학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성의 한계이며, 우리의 지식은 경험할 수 있고,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것에 제한되기 때문에, 그 이상을 넘어서 무엇이 옳다는 식의 진리 주장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이 올바르다는 식의 탐구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칸트는 이런 방식으로 인간에게 이성이 주어진 까닭, 사명을 해결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칸트의 변증법 해석은 몰랐지만…
어쨌든 재미있었습니다.
네.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는 것 같아요. 이 말이 일본번역어인 데다가 헤겔식 정반합 변증법이 워낙 널리 퍼져있어서요….
모순을 해결하는 주체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이데아 그 자체라는 해석이 독특해요. 해겔의 절대정신이 이 해석으로 보니 이해가 되네요. 세계는 이데아라는 신이 스스로 절대정신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으며 인간의 이성은 철학을 통해 그 가는 과정을 조금 이해하는 거네요. 그럼 이 절대정신은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세계는 이미 절대정신에 이른 완전한 신의세계이고 해겔의 세계는 모순을 극복하여 나아가는 불안정한 신의세계의 상태인건지요. 그리고 이때 지금의 상태가 모순인지 아닌지 누가 판단하나요. 절대정신이 종교적 인격신이 아닌데 세계 자체가 그것이 모순인지 판단하는게 이상해요. 자연현상에 옳고 그름이 있지는 않잖아요. 칸트는 이성이 판단할수 없는 영역에까지 무분별하게 답을 내는것을 비판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다만 스피노자는 있음을 말한 것이고, 헤겔은 앎을 말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존재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대한 관심의 차이로 이해합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스피노자와 헤겔은 자신들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탐구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설을 세우는 것은 두 분의 철학자이겠습니다만, 그 가설을 따르느냐 마느냐는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모순" 이나 "양비론"으로 생각하니 .......아!....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사용하는 대부분의 학문적단어는 일제식민시절 한자표기!
네. 다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요. 몇몇 단어들은 죽은 낱말이거나 의미가 맞지 않는 말이어서 고집 부리지 말고 21세기에 맞게 더 유연하게 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변증법 영상 잘 봤습니다.
하지만, 국어사전의 '변증'항목에 나와있는 설명이 모두 dialectic의 번역어로서의 '변증'을 설명한 것이라는 전제는 오류라고 보입니다.
서양사상이 한자문화권에 도입될때, 한가지 개념이라도 여러가지 번역어가 만들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논리학분야에서 demonstration의 번역어로 '증명,논증,입증'등이 만들어졌고, 그중에 하나가 '변증'도 있었던 거죠.
또한 apology의 번역어로서도 '변증'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저도 국어사전 설명이 제대로 된거라고 생각은 않고,
사전 편집자가 아무생각없이 여기저기에서 베꼈다는 느낌은 받지만 말이지요.
저는 dialectic의 번역어로 '변증법'은 '괜찮은 번역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영상에도 나와있더군요.
말씀하신 '디베이트 화술'이란게 한국말로 하면 바로 '변론'입니다. '변증법'이 '변론을 통한 증명법'이라는 의미란 것만 제대로 인식한다면 괜찮다는 것이죠.. 물론 여기서의 증명은 '입증/반증'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실은 한국에서 오용되고 있는 말은 '변증법'이 아니라 '변론'이란 말입니다. 창피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을 보고 제가 뭔가 잘못 전했나 싶어 다시 한번 영상을 봤습니다.
dialectic의 의미는 변론을 통한 증명법은 아닙니다. 대립되는 견해의 오류를 밝히는 화술이었지만, 그게 고대의 디베이트 화술이 dialectic라는 것은 아니고, dialectic이 디베이트 화술의 일종이었다는 말씀이었어요. 저는 변증법이라는 단어가 괜히 철학을 어렵게 만드는 낡은 번역어라고 생각합니다만(제가 머리가 나빠서 이 단어를 이해하는 데 수십 년 걸린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걸 바꿀 능력도 입장도 아니어서요... 하나의 언어를 바꾸는 일은 사회적 흐름이 있어야 하고 수십 년의 오랜 세월이 걸리는 문제여서 저로서는 아무래도 역부족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견해만 가질 뿐이지요.
다만, 변증법이라는 단어를 타인에게 설명하실 때에, '모순론', '양비론'으로 설명하시면 대체로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오류를 밝히는 게 아니라 진리를 찾는 방법론이어서 전통적인 서양철학의 생각과는 다르고, 사람들이 '정반합'으로 설명하니까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통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헤겔 이외의 전통적인 서양철학에서는 모순론, 양비론의 이해해야만 dialectic이라는 용어가 이해되더라고요.... 물론 저는 헤겔의 변증법도 결국 모순론이자 양비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codyjeong 음.....'dialectic이 디베이트 화술의 일종'이었다는 말씀이었다면 그것이 오류라고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디베이트 화술의 일종'으로 나오는 것은 보통 한국말로 '변론술'로 번역되곤 하는데,
그 원어는 '디알렉티키'가 아니라 '레토리키'입니다. 이를 착각하신듯 합니다.
그리고 번역을 할때는 가급적 역자의 주관성은 베재하고 원어의 뜻과 가깝게 번역해야합니다.
여러 사상가들에게서 모순이 dialectic의 핵심개념이긴 하지만, dialectic이란 말 어디에도 '모순'이란 개념이 내포되어있지 않습니다. 또한 '모순론'은 모택동의 모순론이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오해를 유발하죠.
dialectic의 뜻은 어떤 사상가라고 해도 'logos를 주고받는(dia-(현대영어로는 through)) 방식'이란 의미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자문화권에서 번역하기로 '변증법'이 괜찮다고 한 것입니다.
@@해왕성-m6u 아, 이건 선생님과 제가 생각이 다른 거네요. 대체로 건너기 어려운 생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번역에 관해서, 원어의 뜻과 가깝게 번역한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번역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인데, 저쪽의 언어는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쪽의 언어를 탐구하게 되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중학생 수준의 어휘력이라면 그 단어를 듣고 어느 정확한 의미를 연상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가급적 평범한 일상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단어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어도 변화하게 마련이어서 젊은이들의 언어들을 관찰하면 우리나라에서 한자문화권은 그 힘이 매우 미약해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쓰지도 않는 한자어를 조립해서 만들어도 그 의미를 대충 이해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시대는 달라졌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어려운 한자어는 의심하는 게 저의 입장이고요. 아는 사람만 알게 되고, 그래서 한쪽은 가르치고 한쪽은 배워야 하는 정신적인 권력관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50대 이상의 연령에서는 모순론이라고 하면 모택동의 사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말하는 모순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선생님도 잘 아시는 창과 방패의 그 모순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단어는 모순과 양비론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서양사상가들이 말하는 dialectic을 제대로 입문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나머지 지적에 대해서는 제가 동의하지 않고, 제 생각을 선생님도 동의하지 않을 터이니, 이건 그냥 각자의 생각으로 가지고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변증법, 괜찮아요. 그 번역을 찬동하고 그 단어를 계속 쓰시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계속 사용하십시오. 그 단어로는 사전 지식을 누군가 잘 설명해 주지 않으면, 많이 공부하지 않고서는, 텍스의 의미 파악이 잘 안 될 거라는 겁니다. 헤겔은 제외. 정반합이 워낙 유명하니까요. 감사합니다.
@@codyjeong 기존에 관습처럼 혹은 습관처럼 아니면 어떤 무언가의 힘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순응해 버리는 연약한 태도로 인해(후자의 경우가 관련 학자들에 해당한다면 실로 개탄할 일이지만) 일반인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용어를 (어쩌면 실제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그러한 용어를) 마치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것이 뭔가 있어보이고 뭔가 심오해 보이며 뭔가 자신의 지적 수준이 높은것처럼 무의식속에 고이 담아 자물쇠를 걸어 잠궈버린 "게으른" 지식인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성찰하라! 코디정 선생님으로 인해 철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요즘부쩍 생겼습니다. 이전까진 도무지 용어의 개념이 정립이 안돼서 철학이란 단어 아니, 철학이란 학문자체가 아무 쓸모없는 학문이라 여기고 살아온 무지한 사람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늘 항상 토나올것 같았던 용어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쉬운 우리말 다운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해주시니 제 인생에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의 빛을 보는 듯합니다. 개념(용어)를 알아야 벽돌의 수가 늘어나고 벽돌의 수가 많아야 집이 완성되고, 집이 완성되어야 지식의 확장을 할 수 있는데, 애초부터 철학적 용어 즉, 개념자체가 대중들에게 전달이 안되다 보니 지식으로 확장될 여지조차 주지않은 관련분야 학자들의 나태함을 이 어찌 탓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jhj5716 여러 가지 지식의 너비와 깊이를 감안했을 때, 현대 한국인의 지적 능력은 이미 (당대 인류가 아니라) 인류사에서 가장 똑똑합니다. 과거 철학자들이 모르는 과학지식까지 우리는 초등, 중등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야 할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좀처럼 고전의 지혜를 독해할 수 없습니다. 어딘가 굉장히 이상한 상황인데, 제가 탐구한 바로는, 그냥 번역 문제인 것 같아요. 철학분야의 한국어 텍스트는, 사실상 한국어의 무덤이고, 일본어의 향연입니다. 일본어는 한국어가 아니니까, 우리는 서양철학을, 일본언의 언어로, 읽고 있는 셈이지요. 그게 아마도 우리의 정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의 시대입니다 ㆍ
따라서 과거의 종교나 그의 교리
또는 철학과 그들의 논쟁등 역시 역사의 유몰로 돌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말씀하신 내용이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어처구니 없는 논쟁을 하든 생산적인 대화를 하든 우리는 터인과 소통을 해야 하잖아요? 만약 과거 종교 시대 혹은 철학의 지적 흥분 시대에만 유행했고 지배적이었던 생각이, 지금에 이르러 거의 그 지배권을 잃고 누구도 신봉하지 않는다면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적지 않게 과거의 사고체계를 따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무리 과학의 시대라 하더라도 철학적 유산이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요… 변증법 관련해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상당수는 변증법을 아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의 과거의 유물이 아니겠지요…
과학의 시대, 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비과학적인 의견를 갖기도 하고,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모르는 또한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어느 정도 과학자, 어느 정도 철학자, 혹은 어느 정도 종교인인 채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헤겔 마르크스는 도둑놈이라고 봐야 아니면 시기 질투로 정신병
어려운 내용이니 전달력을 높이려고 그러신 것 같긴 한데 목소리 높낮이가 너무 왔다갔다 하고 과장된 톤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듣기 좀 거슬립니다 그냥 편안히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내용은 좋았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네 말씀하신 부분 경청합니다. 앞으로 유념하면서 콘텐츠를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듣지마 그러면
@@hera7242 안 들으니까 답글 달지마라
좋기만 합니다
이 사람 웃기네. 지 말만 맞대. 국어사전도 틀렸대. 대박!
네. 제가 좀 웃깁니다. 10년 동안 매일 사전을 봤으니까요. 아저씨도 1년 정도 매일 사전 보면 잘못된 부분이 보입니다. 살다 보니 남이 가르쳐 주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국어사전이 절대적인가? 질문할 수준도 안되면 침묵해라. 중딩수준이 대학강의실 들어와서 싸가지하고는.
찌질이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왝곡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