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옹송갑조신도비 및 후기비 睡翁宋甲祚神道碑 𠕨 後記碑 쌍청당송유묘표 雙淸堂宋愉墓表 조선후기대표적신도비양식 쌍청당묘역雙淸堂墓域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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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เผยแพร่เมื่อ 4 ม.ค. 2025
-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수옹송갑조신도비 및 후기비
(睡翁宋甲祚神道碑 𠕨 後記碑)
Stele and Epilogue Monument of Song Gap-jo
지정(등록) 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지정(등록) 2021년 7월 19일
분류 기록유산 서각류 금석각류 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 면적 2기
위치 대전 동구 판암동 511
수옹 송갑조(睡翁 宋甲祚)의
신도비와 후기비이다.
송갑조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원유(元裕), 호는 수옹(睡翁)이다.
참봉 송세량(宋世良)의 증손,
할아버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이고,
아버지는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
송응기(宋應期)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윤경(李潤慶)의 딸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아버지이며,
최립(崔岦)의 문인이었다.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신도비는 17세기에 입비 되었으며
비문의 글 따위를 지은 찬자(撰者)는
3남 송시열(宋時烈,1607~1689),
서자(書者)는 종제(宗弟) 송준길(宋浚吉, 1606~1672),
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에 돌려 가며 쓴 전자(篆字)
두전(頭篆)은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하였다.
형태적으로 가첨석(加檐石)은 방형의 판석과
간략화된 와가형(瓦家形)의 가첨석이
이중(二重)으로 되어 있으며,
비대는 조각이 없이 방형의 화강석(花崗石)을
치석(治石)하여 사용하였다.
이처럼 이중으로 된 가첨석과
조각을 하지 않고 화강석을 다듬은 비석 받침돌,
가첨석과 비대에 민속적인 문양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점 등은
같은 시대인 조선 중기의 다른 신도비(神道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비대의 우측 상면에는 석재 가공(加工) 시 절단을 위한
쐐기를 박았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암혈(巖穴) 있다.
후기비(後記碑)는 18세기에 입비(立碑)된 것으로
신도비가 세워지고 난 후 영조 병오년(1726, 영조 2)에
수옹이 경헌(景獻)이라는 사시(賜諡)를 받은 사실과
영의정으로 추증(追贈)된 것을 기록하여
18세기에 추가로 세워졌다.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의 전면 대자(大字) 부분은
일부가 박락(剝落)되어 찬자와 서자의 확인은 어렵다.
다만 이의현의 문집인 도곡집(陶谷集)의 기록으로
찬자가 조선 후기의 문신 도곡 이의현
(陶谷 李宜顯, 1669~1745) 임을 알 수 있다.
이의현은 송시열의 문인이었던 제월당 송규렴의 아들인
송상기에 의해 당대의 명문장가로 천거된 인물이다.
형태적으로 가첨석은 와가형으로 지붕의 추녀,
마루 등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비대(碑臺)는 일반적인 묘표(墓標) 등에 비하여
큰 편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이 공들여 새겨져 있다.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쌍청당송유묘표(雙淸堂宋愉墓表)
Tombstone of Song Yu
지정(등록) 종목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지정(등록)일 2021년 7월 19일
분류 기록유산 서각류 금석각류 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 면적 1기
위치 대전 동구 판암동 511
조선시대의 학자 송유의 묘표(墓表,
묘주의 사적과 행적을 새겨
묘소 앞에 세우는 표석)이다.
송유(宋愉, 1388~1446)의 본관은 은진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조부는 정몽주 등 제현들에게 존경을 받은
사헌부집단 송명의(宋明誼)이고
부친은 진사 송극기 어머니는 고흥류 씨 류준의 딸이다.
은진송 씨가 회덕에 정착한 것은 송명의 때부터이지만
은진송 씨가 회송(懷宋, 회덕의 송 씨)이라고 칭해질 만큼
지역사회의 깊은 연고를 갖게 된 것은 송유 때부터로
의미가 있다.
이 때 송촌(宋村)이라는 지명도 생기게 되었다.
묘표는 17세기에 입비 된 것으로 비신이 크게
풍화됨 없이 잘 보존되어 비문의 판독이 가능하다.
비문의 찬자(撰者)는 김상헌(金尙憲, 1570~1652),
서자(書者)는 김집(金集, 1574~1656),
두전(頭篆)은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하였다.
내용적인 면에서 약 500여 명에 이르는 자손록으로
수록인원 수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이고
자손의 기록방식은 친외손 구분이 없이 수록하고 있는데
이는 가부장제가 강화되기 전인 17세기 이전의 전통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석은 크고 높은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묘표의 형태를 보면 가첨석은 와가형의 팔작지붕형으로
전형적인 와가(瓦家)의 지붕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대는 상당히 높고 큰 편에 속하며 비대의 상단에
복련형의 연꽃잎이 선명히 조각되어 있다.
비대의 측면에는 연주형의 장식이 새겨져 있고
상(床) 다리와 같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형식의 가첨석과 높은 방부형의 비대는
17세기 이후 신도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송유묘표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신도비 양식을 보여준다.
판암동정자목
板岩洞亭子木
Salix glandulosa of Panam-dong
판암동왕버들보호수
은진송씨종중마을
恩津宋氏宗中마을
쌍청당묘역
雙淸堂墓域
취재
2024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