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감사합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무슨 자본을 투입해서 제작하는게 아니다 보니 부족한 구석이 너무 많고, 쇼츠까지는 언감생심 신경을 못쓰고 있었습니다. 또...사실 자포니카 썰은 15년 지나서 맘편히 하는 이야기입니다 ㅋㅋ, 누군가는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critiqu.e 네 이런 재밌는 동영상만 올려주셔도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워낙 말도 조리있게 잘 하시고 아시는것도 많은데다가 부동항 관련된 얘기처럼 제가 생각하지 못 했던 시각도 말씀해주시고 해서 계속 보게 되네요. 다른 분들도 한번 보면 빠지게 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특히 저의 경우는 연대 전투지원중대 작전반에서 중대장을 보좌하면서 작전판을 최신화 시키고 했었는데 파병 가시기 전에는 비슷한 일을 하셨을 것 같아서 재밌어요. 그러고 보니 군대얘기를 부대이름, 시점 모두 밝히고 하는건 좀 부담이 되긴 하실 수 있겠네요.
조선뿐만 아니라 모든 전근대 국가의 대규모 수송루트는 강 또는 바다입니다. 내연기관이 발명되기전까지 심지어 발명되고나서도 상당기간 육상수송은 대단히 비효율적이었으니까요. ( 크리티크님이 2차대전때 독일군이 대량의 말을 사용했다고 말씀하신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페르시아, 몽골, 로마를 비롯한 거대제국들이 육상 교통로를 정비하긴 했지만, 그건 정보전송, 사치품교역, 긴급한 병력파송에나 쓰였지, 식량을 포함한 대규모 일상물품 전달목적으로는 최근대에 이르러서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국가들이 육상교통로를 정비안한건 그런 이유입니다. 조세는 모두 남해안-서해안으로 이어지는 바다를 이용했고, 해외교역역시 대규모 수송이 필요할때는 전적으로 바다에 의존했으니까요. 북방지역은 국방을 위해 아예 조세를 수도로 안보냈구요.
그렇다고 보긴 조선은 너무 극심하게 대로와 수레가 없었음 드라마에 보던 임상옥이 1800년대 인물인데 여전히 보부상이고 그러니 물자의 흐름, 인력의 흐름이 없으니 화폐경제도 1800년대나 되야 전국시행됨 화폐경제가 되어야 주막이 나올수있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쌀 본위제로 한 희안한 나라임
@@campsite97 조선의 탄생은 혁신이 맞습니다만 넘오래 변하지 않고 기조도 대륙의 침략에 대한 대비로 대로를 만들지 안는등 독트합니다 전근대의 생산력이 못먹여 살리니 대외교역을 해야지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화폐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물물교환으로 국가운영을 한다면 역사의 흐름에 당연히 뒷쳐짐 사실 넌센스 아닌가요? 강한 정치권력과 그에비해 빈약한 경제권력 전세계가 은본위제 일때도 이제 쌀 본위제를 시작했던 나라 우리가 배운 대동법이 1600년대인데 이미 한세기전에 유럽에 일본에 중국에 은으로 도배되던 시절임 우리는...
전 고구려 이후 한민족이 정복전쟁을 갈수 없었던 이유를 ..보급 능력의 문제 였다고 생각 합니다.. 쌀먹는 문화라 ,, 쌀도 그렇거니와 그것을 조리할 솥이나 냄비까지 짊어 지고 전장에 갔어야 했으니.. 전투 하기전에 이미 지쳐 있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러시아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밤에는 빵을 베개 삼아 숙면을 취하고, 낮에는 내 끼니마나 그 빵을 씹으면서 행군을 한다고 하더군요.. 몽골군이 제국을 세울수 있었던 것도.. 보급에 제일 체적화된 유목민족 이었기 때문이었겠죠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보내면 하루 종일 굶어도 할만하네, 왜 군인들은 보급이 중요하지 생각했는데, 군대가보니, 식사추진 30분만 늦어도 욕나옴 훈련나가면 하루 종일 힘들게 하는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계속 쉬는데도, 배고픔 진짜 한끼 굶으면 사기가 바로 떨어지겠다 싶다
주인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대장군전이 일반 포탄보다 장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폭발탄이 아니니 탄의 무게와 속도와 구경에 따라 위력이 결정될텐데 길쭉하게 생긴거랑 구형인거랑 결국 뚫린 범위는 구경과 같을것이고 모양이 어떻든 결국 추진장약?의 위력이 전달될 뿐이고 일반탄에는 당시에는 강선이 없으나 대장군전은 날탄이니 좀더 정확해진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으로 보이는데 그럼 좀 정확한 저격용으로 사용했던 것인거요 제 지식으로는 이정도 추측이 한계입니다 전부터 넘 궁금한데 해당 주제의 영상이 없어서 그나마 비슷한 주제에 질문 올립니다
단기간 속도전이 지공보다 병참이 유리합니디. 특히나 식량은 현지조달하면 되거든요. 문제는 냉병기시대가 아닌 경우 화포의 탄약이 크게 문제가 됩니다. 냉병기의 경우 화살 조달도 문제이고요. 지공의 경우 식량 조달이 당장 문제가 되고 위생 문제가 누적되고, 근거리에서 목재 조달이 안되면서 연료문재가 터지고, 이후 질병이 퍼지게 됩니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의 없었던것이지요ㆍ 부산에서 한양까지 걸어가는데 20일 걸립니다ᆢ 즉ᆢ 조선은 국방을 지킬 군사조차 없는 변변찮은 나라였지요ㆍ왜? 너무 가난해서 ᆢ적어도 국방을 지킬 기본 군사수가 10만명은 돼야 되는데 ᆢ 궁궐을 지킬 1만명의 상시 병력밖에 없었슴ᆢ 나머지는 예비군 형식의 전투력없는 농민 백성들ᆢ한심한 나라ᆢ
@@jameschan98310만 양병설 쉽게 생각하시네요 본 영상에도 말했지만 군이란 최대의 소비집단입니다. 일반 민초도 보릿고개 굶어죽는 세상에 그걸 모아서 언제 사용될지 모를 상비병을 운영한다는건 모험이지요. 외적의 침입은 1백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지만 민심의 이반은 단 10년만에도 나라가 전복 될수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님은 군대 5년 갑시다 2년 갔다온사람 3년 더채우고 제대 하면됩니다 라고 하면 안가고싶잔아요. 당시인구에 10만 양병이면 지금 북한처럼 군생활 10년 해야됨
@@역사탈탈전쟁의 패러다임 전환인지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윗분 말처럼 못살았기 때문이죠. 상인을 천시하여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지 못한것과 중앙집권으로 군사력은 내부 반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처럼. 반대로 일본은 내전으로 혼란했지만 서로 경쟁하기 위해 조총을 받아들인 것과 조선에서 받아들인 은제련 기술발달로 막대한 은 체굴량으로 조총등 군사력 강화에 돈을 쓸 수 있었던거죠.
옛날에는 지게로 운반을 하였으니 체격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현대인 보다는 더 많은 무게의 물품을 더 멀리 운반 했을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상머슴 장골 같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지게에 쌀 두 가마니를지고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죠 . 좋은 영상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
레바논시절 자포니카. 쌀 스토리 언급하셨는데요 ( 자폰. = 일본 이겠지요 ) 대체적으로 중국인들에게는 쌀은 주식이 아니고 별식 정도 인데요 예전에 중국 본토에서 어느 중국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통상적으로 중국인들은. 아마 쌀은 1달에 한 두 끼니 먹는 정도이고 거의 다 밀 그런 식사를 한다고 들은 바 있긴 해요 물론 남쪽 광저우나 상하이 이남 지방에 가면 벼 모내기한 논도 제법 볼 수 있지요 임란 때 명나라 남쪽 지방. 병사들이 상당수 조선에 들어왔다고 들은 바 있는데 쌀 보급의 경우 쌀 주산지인 중국 남부 (화남지역 )에서 그 멀고 먼 압록강을 돌아서 보급한것 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해안 뱃길을 이용해서 한강유역이나 안전한 평안도 지역 쪽으로 보급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게 합리적 추론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쌀 주산지에서 압록강 까지가 멀어도 너무 너무 멀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군수 보급에는 식량만 있는게 아니고 유류 피복 탄약 등등등... 태평양 전쟁이 한참 일때 미군 잠수함의 성과는 독일. 잠수함부대 U- Boat 못지 않았다고 하는데 일본 유조선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오일 싣고 일본 본토로 가다가 미군 잠수함들에게 하나씩 격침되는데요 마지막 남은. 최후의 일본 유조선이 격침되던 바로 그날이 실질적으로 일본 패망의 날이라고 하는 분도 있지요 이 때부터 일본은 부득이 본격적으로 소나무에서라도 기름 채취하고 정어리에서도 기름. 채취하고 대만에서 사탕수수 인가 사탕무우에서도 알콜 추출해서 군수용으로 관리하는데요 오일이 없으니. 군함들도 훈련기동 조차도 잘 할 수 없게 되니 패전은 시간문제 카미카제 공격도 따지고 보면 오일부족에 따른 쥐어짠 작전으로 볼 수 있다고도 보구요 해상을 통해서 즉 유조선을 통해서 오일을 보급받는 나라는 어느 나라이든지 유조선이 격침당하면 나라 전체가. 일순간에 고철로 바뀐다는 역사적 사례이구요 소나무 기름 짜내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참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가 생각이 나네요 노장이 천하의 요새인 조령(문경새재)를 내주고 배수진을 치고 탄금대에서 전투를 벌인 것을 보통 신립의 치명적 실수 패착으로 배우는데 제가 예전에 본 책에서 기억하는 다른 해석을 덧붙이자면 조령은 산악지형으로 보급이 어렵지만 탄금대는 수운로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신립은 자신의 기병대와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급조된 농민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기병대를 운용하기에도 그렇고 산악에서 진을 칠 경우 농민병의 야간 탈영을 막지 못하고 이들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배수진을 쳤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탄금대의 풍량도 순풍을 타고 있어 조총의 위력은 낮아지고 조선군의 화살의 위력은 세지는 지형이었다는 내용까지 봤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보급과 기병대의 운용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은 되지만 기타 다른 이유도 모두 참작을 한 불가피한 선택이 탄금대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강현민-u1c 신립은 자질이 모자른거 맞습니다. 당시 수도의 동원체계가 작동하기전에 시간을 버는 지연전이 필요한데 상대의 전력도 파악할 생각도 못하고 난데없이 회전을 벌여서 한순간에 정규군세력을 붕괴시켜버렸습니다. 도무지 전략적인 식견은 눈뜨고도 찾을수 없는 위인입니다. 조령을 포기한 신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시 조령을 지나서 한양에 오가던 많은 선비들은 물론 일본과 명나라의 장수들까지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당시 그 지형을 실감하는 사람들입니다.
병참에 대한 관심도는 결국 깊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용하신 브래들리 장군의 격언대로 전쟁수행은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동시에 얼마나 충분한 보급을 유지하는가 하는 병참능력의 대결인데,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군사전문가는 드뭅니다. 의외로 국군은 무기개발 부분에서는 후속군수지원에는 상당히 신경을 써오는 전통은 있는데, 참 특이하게도 일반물자보급은 자주 병크가 터지는 3류군대의 모습을 보이고는 하지요. 특히, 현재 고급지휘관들이 전시 병참에 대한 전문성은 얼마나 배양되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있고, 보급을 트럭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애초에 작계5015에 부적합함은 러-우전쟁을 통해서 가타부타가 필요없는 구태임이 확인 되었지만, FEBA 병참을 위한, 충분한 방호능력이 있는 장갑차 확보는 고사하고, 전투장비 조차 APS 같은 전투지속능력을 담보하는 생존장비 부착이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있는거 보면, OP 5015는 개전 3일 정도나 방향성을 유지가능하고, 미군없이는 전혀 지속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휘관들이 군수/보급 관심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훈련 때 펑크 안나는 정도까지만, 이미 선배들이 만든 자료대로, 공식대로 물자준비 하는 게 거의 대부분이고, 임무조건이 크게 바뀌는 경우, 즉각적인 대응은 사실, 안된다고 확신합니다. (애초에 병참 임무를 중요하다 생각하는 지휘관이 없으니 그거 붙잡고 있는 꼴을 못보고, PPT 보고서 줄간격 맞추는 시간은 안아까운 최신유행 이태리식K군대라서...) 영상에서 강의해주신 대로 임진왜란이 군수 능력에서는 충분했던 일본과 명이 조선 땅에서 병참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쟁 초반과 후반의 전세를 가름지었는데요, 대중의 인식이 군수나 병참은 컴퓨터 게임처럼 알아서 대충 됐다 치고를 못벗어나니 이런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하는 분을 찾기 어려운데, 참으로 유익한 내용 너무나도 재밌고 즐겁습니다.
정확한 조언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느정도 archive를 쌓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채널에 읽을만한 영상을 쌓는 것도 그렇지만, 저 스스로도 제작능력이나 감을 좀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회수나 구독자에 연연하기 보다는 그야말로 연습하는 느낌으로 돌렸습니다. 요즘 이제 조금 근육이 붙었다고 할까요, 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래서 좀 변화를 줘볼 생각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각기병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해드리자면, 러일전쟁 당시, 일본육군은 각기병으로 수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육군 군의관 수뇌부는 메이지시대 독일 유학파였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각기병의 원인을 몰랐고, 독일에서 배운대로 일했던 육군 군의관들은 각기병의 피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일본해군은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해군 군의관 수뇌부는 메이지시대 영국 유학파였는데, 영국은 대양해군 경험으로 일찍이 각기병 예방책을 알고 있었고, 이를 받아들인 해군 군의관들은 각기병으로부터 병사들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 일본 육해군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과거 한반도의 정복왕조중 유일하게 고구려가 만주를 넘어서 갈수있었는데 왜 가지 않았는지 정작 역사책이나 자료로 알려주는 정보가 없어서 항상 의문이었는데.. 전쟁에서 이길순 있어도 점령이나 복속시킬수 있다는건 다른 얘기였던거네요.. 보급이 원활하고 영토란 개념으로 군을 주둔시키기가 힘들어서 였네요
이재명 최후 변론에 대한 의견 : 백현동에 대한 종상향 4등급 올린 후 국토부 협박으로 종상향 했다고 하니 문제되는 것이다. 그럼 이재명이 정치적이익을 보는 상황이므로 협박 받았다는 물증을 내노아야 한다. 이미 최측근 김인섭의 이익을 위해 종상향 한것 세상이 다안다. 건설부 공문을 핑계로 종상향 이익을 이재명이 향유 한 것이지. 형님건의 경우 서로 갈등이 많았으므로 시장의 권력을 이용해 정신병원 입원시킨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형님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김문기의 경우 인지 여부는 객관적 사실로 판단하면 된다. 성남시 모라토리움 선언후 호주에서 다른 일행과 떨어져 별도로 골프팀 3명(이재명, 유동규, 김문기)이서만 골프치며 몇일을 돌아다녔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김문기가 자살한 후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는게 말이되는가? 재판장을 설득하려는 교묘한 입술에 불과하다. 과거 이재명 대법원 판결은 가족사에 대한 것이고 백현동은 공적 영역으로 대법원 판례 적용이 어렵다 본다.
오버로드님 정말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박사논문 작성중이라 바쁜데 채널 발견하고 이틀만에 다 들어버렸네요. 쇼츠로 올릴만한 스토리가 있고 하면 몇만명 금방일 것 같은데 자포니카 썰 같은것은 쇼츠로 만들어주시면 유입 늘어나지 않을까요
앗 감사합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무슨 자본을 투입해서 제작하는게 아니다 보니 부족한 구석이 너무 많고, 쇼츠까지는 언감생심 신경을 못쓰고 있었습니다. 또...사실 자포니카 썰은 15년 지나서 맘편히 하는 이야기입니다 ㅋㅋ, 누군가는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critiqu.e 네 이런 재밌는 동영상만 올려주셔도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워낙 말도 조리있게 잘 하시고 아시는것도 많은데다가 부동항 관련된 얘기처럼 제가 생각하지 못 했던 시각도 말씀해주시고 해서 계속 보게 되네요. 다른 분들도 한번 보면 빠지게 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특히 저의 경우는 연대 전투지원중대 작전반에서 중대장을 보좌하면서 작전판을 최신화 시키고 했었는데 파병 가시기 전에는 비슷한 일을 하셨을 것 같아서 재밌어요. 그러고 보니 군대얘기를 부대이름, 시점 모두 밝히고 하는건 좀 부담이 되긴 하실 수 있겠네요.
오버로드님 채널이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jwyi1 아직도 연대 지원중대는 4.2인치 박격포와 Metis-M 대전차미사일을 다루는지 궁금하네요....
@@jwyi1 일단 12월까지는 현재 스피드로 업로드 해볼 예정입니다 ㅋㅋ
담담하게 사실 기반의 팩트로 분석하는 영상 보고 있으니 뭐가 뻥 뚫린 느낌이 듭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팩트만 있고 광대짓이 없다고 불만인 사람들이 가득인 가운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critiqu.e ㅋㅋㅋㅋㅋ 수요가 충분할 양질의 컨텐츠라 생각됩니다.
이 채널 진짜 좋습니다
조선뿐만 아니라 모든 전근대 국가의 대규모 수송루트는 강 또는 바다입니다.
내연기관이 발명되기전까지 심지어 발명되고나서도 상당기간 육상수송은 대단히 비효율적이었으니까요.
( 크리티크님이 2차대전때 독일군이 대량의 말을 사용했다고 말씀하신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페르시아, 몽골, 로마를 비롯한 거대제국들이 육상 교통로를 정비하긴 했지만,
그건 정보전송, 사치품교역, 긴급한 병력파송에나 쓰였지,
식량을 포함한 대규모 일상물품 전달목적으로는 최근대에 이르러서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국가들이 육상교통로를 정비안한건 그런 이유입니다.
조세는 모두 남해안-서해안으로 이어지는 바다를 이용했고,
해외교역역시 대규모 수송이 필요할때는 전적으로 바다에 의존했으니까요.
북방지역은 국방을 위해 아예 조세를 수도로 안보냈구요.
평안감사.. 라는 말이 나온 이유죠..
그렇다고 보긴 조선은 너무 극심하게
대로와 수레가 없었음
드라마에 보던 임상옥이
1800년대 인물인데
여전히 보부상이고
그러니 물자의 흐름, 인력의 흐름이 없으니
화폐경제도 1800년대나 되야 전국시행됨
화폐경제가 되어야
주막이 나올수있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쌀 본위제로 한 희안한 나라임
@@세상어렵네 그건 자본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양극화를 낳고, 전근대의 생산력은 모두를 먹여살릴 정도가 아니었으니 이것들이 하층민들에겐 더 크게 다가옴. 게다가 조선은 근본적으로 고려 말의 심각한 수준의 양극화를 엎고 생긴 나라라서 그럼
@@campsite97
조선의 탄생은 혁신이 맞습니다만
넘오래 변하지 않고
기조도 대륙의 침략에 대한 대비로
대로를 만들지 안는등
독트합니다
전근대의 생산력이 못먹여 살리니 대외교역을 해야지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화폐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물물교환으로
국가운영을 한다면
역사의 흐름에 당연히 뒷쳐짐
사실 넌센스 아닌가요?
강한 정치권력과
그에비해 빈약한 경제권력
전세계가 은본위제 일때도
이제 쌀 본위제를 시작했던 나라
우리가 배운 대동법이 1600년대인데
이미 한세기전에
유럽에 일본에 중국에
은으로 도배되던 시절임
우리는...
영상 너무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영상 부탁드려요 ^^ 구독 추천 ! 채널의 금방 클것같아요 ㅎㅎ
부실한 형식에도 괘념치 않고 격려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이템플러 운용하여 상대방의 일꾼을 제거하는 것이 승리초석인 것과 정말 똑같습니다. 몰랐던 지식을 오버로드로 훤히 밝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간지러운 포인트가 비슷했다는 것이 재밋습니다
전 고구려 이후 한민족이 정복전쟁을 갈수 없었던 이유를 ..보급 능력의 문제 였다고 생각 합니다..
쌀먹는 문화라 ,, 쌀도 그렇거니와 그것을 조리할 솥이나 냄비까지 짊어 지고 전장에 갔어야 했으니.. 전투 하기전에 이미 지쳐 있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러시아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밤에는 빵을 베개 삼아 숙면을 취하고, 낮에는 내 끼니마나 그 빵을 씹으면서 행군을 한다고 하더군요..
몽골군이 제국을 세울수 있었던 것도..
보급에 제일 체적화된 유목민족 이었기 때문이었겠죠
꼭 한민족이 아니더라도, 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정주문명의 원정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심지어 현대에 들어와서도 영프가 동남아,인도를 관리할 수 없어 포기했지, 좋은 마음으로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critiqu.e 미국만 할 수 있는 전쟁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50년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경험한 미군은 아직도 주한미군에게 알래스카 주둔군과 동일한 수준의 월동장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보급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화용도에서 500명의 관우병력과
소백산맥-충주루트 설명에서 정말 피부로 와닿네요
사극에서는 늘 무기를 든 가벼워보이는 전투병력들만 보여주지만
실제 과거전투는 등짐진 사람들이 어마어마할듯합니다 ㅋㅋㅋ
병참과 군수의 관점에서 본 임진 7년전쟁 분석과 해석 너무 흥미롭고 참신합니다. 잘봤습니다. 이걸 이제서야 봤네요.
어렸을 때 역사공부 하면서 머릿속에 들었던 여러 의문점 중 하나가 ‘중국은 티벳 서하 위구르 준가르처럼 한반도도 병탄하지 않고 내버려뒀을까? 안했을까? 못했을까?’ 였는데 이 영상에 주인장님의 클로징 멘트를 보니 느껴지는 게 있네요 ㅎㅎ
이분 채널 속이 꽉찼음. 괜한 걸로 쇼맨십 부리는 샤를보다 나음.
감사합니다.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보내면 하루 종일 굶어도 할만하네, 왜 군인들은 보급이 중요하지 생각했는데,
군대가보니, 식사추진 30분만 늦어도 욕나옴
훈련나가면 하루 종일 힘들게 하는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계속 쉬는데도, 배고픔
진짜 한끼 굶으면 사기가 바로 떨어지겠다 싶다
정확합니다. 더군다나 과거 냉병기 시대에 군대든 용병단이든 굶기면 어떻게 됐겠구나 바로 감이 옵니다
학생으로써 좋은 자료를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압도적인 자료 퀄리티, 감탄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인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대장군전이 일반 포탄보다 장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폭발탄이 아니니 탄의 무게와 속도와 구경에 따라 위력이 결정될텐데 길쭉하게 생긴거랑 구형인거랑 결국 뚫린 범위는 구경과 같을것이고
모양이 어떻든 결국 추진장약?의 위력이 전달될 뿐이고
일반탄에는 당시에는 강선이 없으나
대장군전은 날탄이니 좀더 정확해진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으로 보이는데 그럼 좀 정확한 저격용으로 사용했던 것인거요
제 지식으로는 이정도 추측이 한계입니다
전부터 넘 궁금한데 해당 주제의 영상이 없어서 그나마 비슷한 주제에 질문 올립니다
저도 지식이 얕아서 대답이 어렵네요. 나중에 관련 내용을 습득하게 된다면 이 질문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영양상태도 충분치 않은 노약자나 아녀자들에게 군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등짐에다가 메고 수송케 했다면...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사람이 병들고 지치고 죽었을 듯 하네요. 이러한 것 역시 전쟁의 또 다른 씁쓸한 면이겠죠.
전쟁이 아니라도 평균수명이 30대이던 시절이니 오죽했겠습니까
존경합니다 !!!
너무 열광적인 짧은 멘트에 놀라, 1년전 영상을 한번 다시 틀어봤더니, 스스로도 너무 민망해서 오래 못봐주겠네요...
교량과 터널은 물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통로조차 변변치 않았던 당시에
대부분이 보병으로 편성된 일본군이 일방적이기는 했어도 전투까지 치르면서
불과 20일 정도에 부산에 상륙한 다음 서울까지 점령했다는 것은 경이적입니다
단기간 속도전이 지공보다 병참이 유리합니디. 특히나 식량은 현지조달하면 되거든요.
문제는 냉병기시대가 아닌 경우 화포의 탄약이 크게 문제가 됩니다. 냉병기의 경우 화살 조달도 문제이고요.
지공의 경우 식량 조달이 당장 문제가 되고 위생 문제가 누적되고, 근거리에서 목재 조달이 안되면서 연료문재가 터지고, 이후 질병이 퍼지게 됩니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의 없었던것이지요ㆍ 부산에서 한양까지 걸어가는데 20일 걸립니다ᆢ
즉ᆢ 조선은 국방을 지킬 군사조차 없는 변변찮은 나라였지요ㆍ왜? 너무 가난해서 ᆢ적어도 국방을 지킬 기본 군사수가 10만명은 돼야 되는데 ᆢ 궁궐을 지킬 1만명의 상시 병력밖에 없었슴ᆢ
나머지는 예비군 형식의 전투력없는 농민 백성들ᆢ한심한 나라ᆢ
@@jameschan983
신립의 경우 소집 가능한 기병부대를 비롯한 강한 전력으로 결전을 시도했지만, 조총의 일제사격으로 인해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하게 되는바, 전쟁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을 전혀 인지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jameschan98310만 양병설 쉽게 생각하시네요
본 영상에도 말했지만
군이란 최대의 소비집단입니다.
일반 민초도 보릿고개 굶어죽는 세상에
그걸 모아서
언제 사용될지 모를 상비병을 운영한다는건
모험이지요.
외적의 침입은 1백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지만
민심의 이반은 단 10년만에도
나라가 전복 될수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님은 군대
5년 갑시다
2년 갔다온사람 3년 더채우고
제대 하면됩니다 라고 하면
안가고싶잔아요.
당시인구에 10만 양병이면
지금 북한처럼
군생활 10년 해야됨
@@역사탈탈전쟁의 패러다임 전환인지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윗분 말처럼 못살았기 때문이죠. 상인을 천시하여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지 못한것과 중앙집권으로 군사력은 내부 반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처럼. 반대로 일본은 내전으로 혼란했지만 서로 경쟁하기 위해 조총을 받아들인 것과 조선에서 받아들인 은제련 기술발달로 막대한 은 체굴량으로 조총등 군사력 강화에 돈을 쓸 수 있었던거죠.
팬입니다
전 병참이 더 재미있던데 진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이런 유튜브 자료를 일정한 전자책을 만들어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구글도 돈 버니 좋을 듯요.
너무 재밌어요 올리신 동영상 역주행으로 다 보고 있어요
지금도 뭐 만족스럽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에 만든 영상들 오글거려서 못보겠던데요... 흠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급 이야기가 젤 잼있어용 ㅎ
지금 작성 중인 컨텐츠가 2개인데요. 1개는 커뮤니티에 공지한대로 나폴레옹 근위대에 대한 것이구요. 나머지 1개가 나폴레옹 전쟁 시기 보급과 군자금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지게로 운반을 하였으니 체격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현대인 보다는 더 많은 무게의 물품을 더 멀리 운반 했을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상머슴 장골 같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지게에 쌀 두 가마니를지고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죠 .
좋은 영상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
그러게요 지게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살펴보니 양 측 모두 굶어죽고 얼어죽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구요.
레바논시절 자포니카. 쌀 스토리 언급하셨는데요
( 자폰. = 일본 이겠지요 )
대체적으로 중국인들에게는
쌀은 주식이 아니고 별식 정도 인데요
예전에 중국 본토에서
어느 중국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통상적으로 중국인들은. 아마
쌀은 1달에 한 두 끼니 먹는 정도이고
거의 다 밀 그런 식사를 한다고 들은 바
있긴 해요
물론 남쪽 광저우나 상하이 이남 지방에 가면
벼 모내기한 논도 제법 볼 수 있지요
임란 때 명나라 남쪽 지방. 병사들이 상당수
조선에 들어왔다고 들은 바 있는데
쌀 보급의 경우
쌀 주산지인 중국 남부 (화남지역 )에서
그 멀고 먼 압록강을 돌아서 보급한것 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해안 뱃길을 이용해서
한강유역이나 안전한 평안도 지역 쪽으로
보급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게
합리적 추론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쌀 주산지에서 압록강 까지가 멀어도
너무 너무 멀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군수 보급에는 식량만 있는게 아니고 유류 피복 탄약 등등등...
태평양 전쟁이 한참 일때
미군 잠수함의 성과는 독일. 잠수함부대
U- Boat 못지 않았다고 하는데
일본 유조선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오일 싣고 일본 본토로
가다가 미군 잠수함들에게 하나씩 격침되는데요
마지막 남은. 최후의 일본 유조선이 격침되던
바로 그날이 실질적으로 일본 패망의 날이라고 하는 분도 있지요
이 때부터
일본은 부득이 본격적으로
소나무에서라도 기름 채취하고
정어리에서도 기름. 채취하고
대만에서 사탕수수 인가 사탕무우에서도
알콜 추출해서 군수용으로 관리하는데요
오일이 없으니. 군함들도 훈련기동 조차도
잘 할 수 없게 되니 패전은 시간문제
카미카제 공격도 따지고 보면
오일부족에 따른 쥐어짠 작전으로 볼 수
있다고도 보구요
해상을 통해서 즉 유조선을 통해서
오일을 보급받는 나라는 어느 나라이든지
유조선이 격침당하면
나라 전체가. 일순간에
고철로 바뀐다는 역사적 사례이구요
소나무 기름 짜내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전호연-r1s 지역별로 차이야 있지만 그래도 재배작물 1위가 쌀인데 별식이라고 까지 말씀하셨단걸 보면 섬서 산서성 쪽 중국인을 만나셨었나봅니다. 2차세계대전중 독일과 일본의 석탄액화에 대해 관심이 좀 있어서 추후 다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비야 40kg 배낭메고 세계여행 ㅋㅋㅋ
@@Garimtos-g4c 아 저도 순간 뿜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참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가 생각이 나네요 노장이 천하의 요새인 조령(문경새재)를 내주고 배수진을 치고 탄금대에서 전투를 벌인 것을 보통 신립의 치명적 실수 패착으로 배우는데 제가 예전에 본 책에서 기억하는 다른 해석을 덧붙이자면 조령은 산악지형으로 보급이 어렵지만 탄금대는 수운로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신립은 자신의 기병대와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급조된 농민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기병대를 운용하기에도 그렇고 산악에서 진을 칠 경우 농민병의 야간 탈영을 막지 못하고 이들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배수진을 쳤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탄금대의 풍량도 순풍을 타고 있어 조총의 위력은 낮아지고 조선군의 화살의 위력은 세지는 지형이었다는 내용까지 봤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보급과 기병대의 운용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은 되지만 기타 다른 이유도 모두 참작을 한 불가피한 선택이 탄금대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신립은
자질자체가 모자람ᆢ
@@권영배-m7d잘모르고 대충 떠들지 마세요;
@@권영배-m7d신립이 자질이 모자라다니 ㅋㅋㅋ
보통 지휘관은 자신이 성공했던 작전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립도 여진족을 상대로 이루었던 기병전술의 성과에 집착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조령을 걸어 넘으며 살펴보았는데 험준하기는 했습니다.
@@강현민-u1c 신립은 자질이 모자른거 맞습니다.
당시 수도의 동원체계가 작동하기전에 시간을 버는 지연전이 필요한데 상대의 전력도 파악할 생각도 못하고 난데없이 회전을 벌여서 한순간에 정규군세력을 붕괴시켜버렸습니다.
도무지 전략적인 식견은 눈뜨고도 찾을수 없는 위인입니다.
조령을 포기한 신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시 조령을 지나서 한양에 오가던 많은 선비들은 물론 일본과 명나라의 장수들까지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당시 그 지형을 실감하는 사람들입니다.
병참에 대한 관심도는 결국 깊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용하신 브래들리 장군의 격언대로 전쟁수행은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동시에 얼마나 충분한 보급을 유지하는가 하는 병참능력의 대결인데,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군사전문가는 드뭅니다. 의외로 국군은 무기개발 부분에서는 후속군수지원에는 상당히 신경을 써오는 전통은 있는데, 참 특이하게도 일반물자보급은 자주 병크가 터지는 3류군대의 모습을 보이고는 하지요.
특히, 현재 고급지휘관들이 전시 병참에 대한 전문성은 얼마나 배양되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있고, 보급을 트럭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애초에 작계5015에 부적합함은 러-우전쟁을 통해서 가타부타가 필요없는 구태임이 확인 되었지만, FEBA 병참을 위한, 충분한 방호능력이 있는 장갑차 확보는 고사하고, 전투장비 조차 APS 같은 전투지속능력을 담보하는 생존장비 부착이 여러 이유로 미뤄지고 있는거 보면, OP 5015는 개전 3일 정도나 방향성을 유지가능하고, 미군없이는 전혀 지속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휘관들이 군수/보급 관심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훈련 때 펑크 안나는 정도까지만, 이미 선배들이 만든 자료대로, 공식대로 물자준비 하는 게 거의 대부분이고, 임무조건이 크게 바뀌는 경우, 즉각적인 대응은 사실, 안된다고 확신합니다.
(애초에 병참 임무를 중요하다 생각하는 지휘관이 없으니 그거 붙잡고 있는 꼴을 못보고, PPT 보고서 줄간격 맞추는 시간은 안아까운 최신유행 이태리식K군대라서...)
영상에서 강의해주신 대로 임진왜란이 군수 능력에서는 충분했던 일본과 명이 조선 땅에서 병참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쟁 초반과 후반의 전세를 가름지었는데요, 대중의 인식이 군수나 병참은 컴퓨터 게임처럼 알아서 대충 됐다 치고를 못벗어나니 이런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하는 분을 찾기 어려운데, 참으로 유익한 내용 너무나도 재밌고 즐겁습니다.
625때도 지게꾼이 보급수단으로 사용된걸 생각하면 임진왜란 때의 보급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신석기 이후 현대 전까지는 의외로 크게 변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게만 하더라도 그렇고
영상 분량을 1부2부 나누더라도 10분정도로 끊어서 올리시고 얼굴이 안나오게 하시던가 작게 나오게 하시면 구독자가 좀더 빨리 늘지 않을까 싶네요 컨텐츠 퀄리티가 좋아서 잘되실거 같아요
정확한 조언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느정도 archive를 쌓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채널에 읽을만한 영상을 쌓는 것도 그렇지만, 저 스스로도 제작능력이나 감을 좀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회수나 구독자에 연연하기 보다는 그야말로 연습하는 느낌으로 돌렸습니다.
요즘 이제 조금 근육이 붙었다고 할까요, 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래서 좀 변화를 줘볼 생각입니다.
@@critiqu.e 화이팅 하세요
장군은 전투에서 이기고
군수장교는 전쟁에서 이긴다
라는 군수격언이 있죠
재미없어 보여도 결국 전쟁의 승패는 군수에 달려있습니다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에 보급 요소를 넣거나 확대하면 게임 템포가 확연히 줄어들면서 고역임...
놀이가 일이 되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각기병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해드리자면,
러일전쟁 당시, 일본육군은 각기병으로 수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육군 군의관 수뇌부는 메이지시대 독일 유학파였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각기병의 원인을 몰랐고, 독일에서 배운대로 일했던 육군 군의관들은 각기병의 피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일본해군은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해군 군의관 수뇌부는 메이지시대 영국 유학파였는데, 영국은 대양해군 경험으로 일찍이 각기병 예방책을 알고 있었고, 이를 받아들인 해군 군의관들은 각기병으로부터 병사들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 일본 육해군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과거 한반도의 정복왕조중 유일하게 고구려가 만주를 넘어서 갈수있었는데 왜 가지 않았는지 정작 역사책이나 자료로 알려주는 정보가 없어서 항상 의문이었는데.. 전쟁에서 이길순 있어도 점령이나 복속시킬수 있다는건 다른 얘기였던거네요.. 보급이 원활하고 영토란 개념으로 군을 주둔시키기가 힘들어서 였네요
처절, 그 자체...
전쟁나면 그 흔한 생수병 조차 보급 제데러 못할텤데 한국군 그 산맥 산악 사이로 보급 할 솔루션 조차 없는 군대
크리티크님은 특수부대로 파병을 다녀오신걸까요?
네
호이에서 주변에 보급허브 없는 러시아 허허벌판 밀어야할때..
저는 더위와 정글 때문에 attrition 높은 아프리카가 가장 짜증...
5:34 민가 약탈 안하고 전장 이탈만한거면 진짜 좋은 사람이군요.
군수와 병참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수사령관은 대장지위줘야해요. 2작전사령관은 참모차장이 겸직해도 될일이지요.
병참플랜이 제대로 서야 이기는 군대인건데요. 여전히 쇼와일본군처럼 군수보급을 중시하지 않으니 답답한 이나라 군대.
지금 생각해보니 십자군 원정은 도대체 어떻게 1번이라도 성공한거지? ㅋㅋㅋㅋ
수비에 비해 많은 병력
조선이 참으로 궁벽하구나...
100만석이 필요한데, 임란 세수 4~5만석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오긴 합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ㅋㅋ
625때 중공군들은 영하 몇십도의 산악에서 낮에는 미군정찰기 피해 숨어있고 밥도 못해 먹었을텐데 어떻게 전투룰 하였는지..
우리가 청한 것은 아니니
이재명 최후 변론에 대한 의견 : 백현동에 대한 종상향 4등급 올린 후 국토부 협박으로 종상향 했다고 하니 문제되는 것이다. 그럼 이재명이 정치적이익을 보는 상황이므로 협박 받았다는 물증을 내노아야 한다. 이미 최측근 김인섭의 이익을 위해 종상향 한것 세상이 다안다. 건설부 공문을 핑계로 종상향 이익을 이재명이 향유 한 것이지. 형님건의 경우 서로 갈등이 많았으므로 시장의 권력을 이용해 정신병원 입원시킨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형님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김문기의 경우 인지 여부는 객관적 사실로 판단하면 된다. 성남시 모라토리움 선언후 호주에서 다른 일행과 떨어져 별도로 골프팀 3명(이재명, 유동규, 김문기)이서만 골프치며 몇일을 돌아다녔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김문기가 자살한 후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떼는게 말이되는가? 재판장을 설득하려는 교묘한 입술에 불과하다. 과거 이재명 대법원 판결은 가족사에 대한 것이고 백현동은 공적 영역으로 대법원 판례 적용이 어렵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