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 맹달한테 꾸짖으며 한다는 말이 '단지 1000명의 기병만 지원가도 능히 관우의 재주것 살았을것' 이라 했다는데 그것보다 처음부터 1명의 군사급 인재를 형주에 주둔시켰어야 하지않았을까... 입촉때는 방통만 데려가고 제갈량은 형주에 주둔시켰다가 한중공방전으로 익주 행정을 맡길사람이 없어 제갈량을 소환한게 실책임. 제갈량을 익주에 배정할꺼면 형주에도 책사를 보냈어야했고 가절까지 쥐어줬어야했음. 관우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본인 잘못으로 패배한적은 없으며 모든 전장에서 적장을 베었고 여포 사후 무력으로 가장 으뜸이라는 평을 들었기에 콧대가 높아도 거의 강남미인수준으로 높아졌으니 제어장치가 필요했었음.
유비의 극장점이자 반대급부 단점이 드러난 두가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유비는 본인의 용인술이 극만렙이라, 장수들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에 딱딱 잘 배치합니다. 유비 본인의 리더쉽이 쩔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리더쉽 안에서 최대출력을 발휘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의 집단이 유비군인거지요. 문제는 유비군에 용인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리더가 유비 딱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유비가 그런 계열의 인사는 유달리 등용을 안 한 것일까요? 어쩌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되니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유비세력(사후 포함)에서 유비를 제외한 자치 군단장이 딱 관우, 제갈량 둘 뿐인데 둘 다 치명적인 준망국급 인사 실책을 범합니다. 좀더 작은 스케일로는 서주를 위임받은 장비도 여포, 조표를 잘 컨트롤하지 못했지요. 저는, 유비였다면 미방과 부사인을 더 적절하게 다루고 마속을 더 적절한 곳에 배치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만사에 만능인 장수가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빛을 발하는거겠지요. 조조에게는 반대로 순욱, 장료, 장합, 사마의 등 군주직할군이 아닌 위임군을 이끌만한, '장수들의 리더 격'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 상반되는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자치 사령관 top10 같은거 만들어주시면 어떨지요?
관우의 혼인동맹 거절 건은 정말 잘 해석하셨다고 봅니다. 어떤 바보가 믿지도 못할 놈들한테 딸을 인질로 보낼까요. 잘 이런 식으로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잘못이 없다고는 못하죠. 그런데 관우의 죽음와 유비의 실패는 애써 넘어가더라도 손제리는 합비방면은 포기하고 활용하지도 못할 형주를 그렇게까지 하면서 먹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드네요
........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손권배신 수준 ㄹㅇ 실화냐 진짜 천하제일의 배신이다. 그 똑똑한 손권이 맞냐 진짜 손권은 레전드다. 한번의 출정으로 삼국의 균형을 부수고 훗날에 본인 나라까지 부수는 손권은 정말 레전드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조조조차도 형북을 차지한 관우군과 한중을취한 유비군이 동시에 칠것을 두려워해 하북으로 천도를 고려했을정도인데..손권은 언제든지 촉만없다면 무너뜨릴 존재로생각했으니...그러한 촉을 희대의통수로 무너뜨린순간 이미 위의 천통을 확정됬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사마의가 가장두려워한 조조또한 병사하는순간부터 새로운 나라를 세울 계획이 잡혔다봅니다. 누군가의 손해는 또다른 누군가의 득을 가지니 세상의 이해득실이지 아니할수가 없군요
01:25 이 부분 유비 쉴드를 좀 쳐 보면, 유비 패거리는 처음에 제갈량이 형주 라인 파촉 방통 라인으로 쌍 라인으로 조조 때리기가 계획이었는데 방통이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중심인 유비 라인으로 제갈량을 빼지 않을 수 없었음. 즉 제갈량을 빼서 보낼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라 방통 없이는 제갈량 자체가 형주에 있을 수 없는 전력이었던 것 게다가 관우 그 오만방자한 성격상 초기 유비 라인이 아니면 커버 자체가 될 놈이 아니어서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었을 듯 삼분계 자체가 유방 따라하기 컨셉이어서 한중으로 위로 가는 게 큰 뼈대인 만큼 제갈량을 형주에 배치하는 게 어려웠다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제갈량이랑 관우가 사이 좋을지도 좀 의아하기도 함. 그리고 유비 패거리는 손권에게 지키질 못 할 약속을 한 게 아닌 지킬 생각이 없는 약속을 함ㅋ (유비 양아치 근성 ㅉㅉ(참고로 촉빠))
알 생각이 없으니 그런거겠죠 손권이 위에 맞서 세력 키울려고 생각했던 익주공략을 유장이 종친이라 공격할 수 없다며 참여 거부하고 막았는데 유장 도와준다며 들어가선 자기가 차지해 버리는 기만에 분노했고 그에 조조 막으라고 빌려준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 하는데 거부해서 익양대치까지 갔죠 손권이 유비를 이 못 믿을 교활한 늙은이라고 한게 기록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형주는 손견부터 손가가 계속 원해온 땅이고 장강 상류 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면 오의 방어가 취약하기에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땅이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계속 형주를 노려왔고 그로 인해 관우와 마찰이 많았는데 관우가 손권 사신 모욕에 오 군량 약탈 등 선을 넘어서 손권 성질 건드렸구요
@@aa2095 위에 다 설명 했잖아요 손권의 익주 공략 참여 제안에 유비가 거절한 이유가 유장이 종친이라서 공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손권의 익주 공략도 말렸고요 장노의 공격에 유장이 유비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유비는 유장을 도와주러 간다고 하고 익주로 들어가 익주를 차지해버렸죠 손권은 유비가 기만한 것에 분노했고 그로 인해 형주 반환을 요구하는데 거절 당합니다 이게 익양대치의 빌미가 되죠 조조 때문에 합의는 하지만 손권은 육구에 오의 대도독을 배치 시키면서 계속 형주를 위협 했었습니다 손권은 형주를 자기 땅이라 생각했으니 강탈 당한거라 여기는 겁니다 여몽이나 육손 등 오의 장수들이 모두 촉을 주적처럼 여기고 있는게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관우가 오 사신 모욕에 군량 약탈을 하니 기름을 붓는거죠
@@항상행복하세요-i2d 그런 장수들을 발굴해서 요지에 잘 배치한게 손권이라 수성을 잘한거고 본인도 직접 조조의 친정에 맞서 직접 나가서 지휘도 했는데 뭔 소리에요? ㅋㅋ 수성에 전부 성공했으니 수성의 달인이란 소릴 듣지 궁에 짱박혀서 나몰라라하고 손가락만 빨았는데 그런 칭호를 듣나?
관우의 패퇴는 관우 스스로 자초한거로 봄 오나라 입장에서는 어찌되었건 명분과 당위성이 있으니 관우가 백번도 참아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전선만 계속 확대해 감 물론 대비도 했고 위나라에 대해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자신감 과잉으로 이어져 독이 되어 돌아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량 이상으로 전선확대한 끝에 좋은 결과 낸 이를 본적이 없음
미방도 이전까지 전황만보면 미축 못지 않게 유명했어요 형님 투자에 반대한적도 없고 조조가 관직 준다는데 거절하고 유비 입장에선 그래도 쓸만한 인재였죠. 그 뿐만 아니라 반준, 요화,장완과 상용에 유봉까지 세워 둿으니 내정은 제갈량이하고 관우에 맞춰 장안루트로 달려가던 무도, 천수 방향으로 정리하며 가는 루트를 계획 중인데 유봉, 미방을 믿고 맡겼던 안일함이 관우를 죽게 만든거라 봐야죠
근데 유비와 제갈량은 분명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시 위와 촉의 국력을 생각해보면 한중에서 온힘을 끌어내던진 직후라 정비가 필요한 시기라 어느 인사라도 함부로 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가정하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죠.............방통이 죽지않고 제갈량늬 역활을 해줬다면 모를까 진작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손권 입장에선 손부인 귀환으로 촉과의 맹약이 깨졌고 익주점령 후 반환약속도 지키지 않았음에 한술더떠 안하무인한 관우의 대응에 열받은 상황에서 위촉간 분쟁을 틈타 형주를 기습한 전략을 잘못이라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로 인해 촉오 vs 위 라는 균형추가 흔들려 위에게 절대 유리한 국면으로 갔지만 오나라로선 경쟁국인 촉이 자기들보다 강성해지는 것도 용납하긴 힘들었을 듯..
삼칠이님 2만명 구독자 축하드립니다! ! ! 늘 재밌는 삼국지 주제와 재밌는 설명 그리고 귀여운 그림체들로 연의만 읽었던 저로썬 정사의 지식을 삼칠이님의 영상을 통해 늘 많이 배우고 새로운 업로드가 늘 기다려지네요. 구독자 5만명 10만명 100만명 찍을때까지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영상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마지막 대사 천번 만번 들어도 캐공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역시나 최고 실책은 유비. 유비가 한중을 따낼 때 관우의 양동덕에 따냈으면 그 이후 관우의 양동이 어느덧 시국의 변화로 주공이 된 시점에서 유비는 어떤 형태로든 서쪽에서 양동을 걸었어야 했습니다. 출발지가 상용이었든. 한중이었든 말이죠. 이런 생각 아니 다른 대안 비슷한 거라도 법정이나 제갈양 (이엄 황권은 아직 유비 측근은 아니니... 재끼더라도)이 헌책했어야 했습니다. 서량 군벌 마초는 뒀다가 국 끓여 먹었습니까?
관우 책임이 제일 크죠. 당시 기술로는 보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거리까지 원정을 가놓고 보급 못한다고 부하들 매질했고 포로 3만을 먹여살리고 앉았고 (무장해제하고 번성으로 풀어줘서 군량부족을 가속화시켰어야지) 동맹은 개무시하고 약탈까지 하고... 아주 뒤치기 해달라고 애원을 해라. 근데 이게 몇주동안 전투도 아니고 상황 전체가 꽤 길기 때문에 그때까지 아무런 구원군도 안 보낸 유비도 이상합니다. 나중에 알았다는 게 말이 안 됨.
말이 쉽나요..3만 돌려보내면 정보 누출에 전력 그대로 돌려보내는 꼴인데요. 조조군 보급라인도 전장에서 길지 않아서 돌아간 3만명이 다시 정예군으로 돌아오는건 일도 아니에요. 무장해제하고 보내봤자 보급라인 길게 끌고 멀리 온 관우는 더 불리해지는거죠. 그렇다고 죽이자니 민심이 난리날 것 같고 당시로써는 구금이 최선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유비가 구원군을 안보낸게 아니라 못보낸거죠. 혼자 뭐 게임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당시는 2세기에요. 삐삐나 무전기가 없어요. 막혀있고 알리는데만 한달이 넘을텐데 무슨수로 군을 보내요? 하다못해 현대 대한민국도 광주 민주화 운동때 서울 사람들 몰랐어요. 소식이 안오는데 어떻게 알아요
발단, 전개, 결말 구성 전체가 정사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극적이었던, 군신 관우에게 어울리는 한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팝콘뜯은 조비, 훗날을 도모하지 못하는 여몽, 관우를 과신한 촉의 수뇌, 자신을 과신한 관우 군신 관운장은 이정도 너프를 해야 죽일 수 있다! 정도.
유비가 형주에 관우만 배치하고 관우가 적극적으로 위를 공격했던 이유는 오가 배신을 하는 병크를 저지르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었나 보네요 ㅎㅎ 상식적으로 나중에 다시 싸우더라도 약소국끼리 돈독하게 지내야 미래가 평안한데,,, 저도 여몽이 뛰어난 사람인줄 알았지만 37씨 이야기를 듣고보니 여몽은 대국을 보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네요 ㅎㅎ
여몽은 분명 대단한 장수입니다 부하를 진정으로 아낀 덕장이고 필요할때는 선두에 서는 용장이며 합비전투 이외에는 이렇다 할 패배가 없는 지장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소년만화 주인공스러운 인물입니다 다만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마지막 그릇된 판단으로 빌런 역활이 된게 아까울뿐이죠 머 그 당시에선 그게 최선일 수 있었으니 억지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넘치는 능력을 위에 집중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네요
보급 문제를 운운하시는데 애초에 7군 포로 3만여명을 생포하기 전까지만해도 보급 자체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3만이나 되는 포로를 먹여살리느라 동맹군인 오나라의 식량을 무단으로 탈취하고 어중간하게 양,번 동시 포위를 지속한 관우의 판단 자체가 오히려 보급에 난황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홍수를 예상한게 아니라 양번을 포위하려면 당연하게도 배가 있어야만 작전을 수행이 가능한겁니다. 21세기에도 홍수가 예상이 안되서 수재가 발생하는게 현실인데 관우가 무슨 수로 홍수를 예상합니까? 유봉과 맹달은 당장 상용을 완전하게 점거해서 안정화도 못시킨 마당에 양양 쪽으로 지원을 보낸다는 것은 지극히 관우 중심적인 이야기입니다.
@@haga6762맞지. 맞지. 백기나 조조같이 조나라 40만 대군이나 원소군 8만을 구덩이 쳐넣었듯이 우금7로군을 생매장 시켰어야 했는데.ㅎㅎ 솔직히 조조군에 남았을 때 백양전투때 안량 목 땄을 시절 서황이나 장료,장합처럼 완전 귀순하고 조조를 섬기지 괜히 ㅈ같이 큰 귀놈을 섬겨가지고 인생을 망쳤어.. 불멸이라고 칭송받으면 뭐해 신이 사당을 모셔지면 뭐해 나이 60도 못되고 아들과 함께 죽으면 촉까들한테 형주공방전에 모든 책임을 다지고 조리돌림 당하는데..ㅠ.ㅠ 나 같으면 진작에 하비성 지킬때 바로 성문열고 조조한테 서황이나 장합,고람이 한 것 마냥 찬양하면서 귀순신청했을듯...?ㅎㅎ
그러진 않았을거같아요 손권이 합비/수춘 방면으로 이후에도 성공한적이 없어요 공격하긴 어렵고 지키긴 쉬운 지역이라 정평이 나있고 영양가도 없었다고 해요. 손권측이 형주 형주 부르짖던 이유도 형주가 아니면 활로가 없었기 때문이라네요. 다만 노숙이 있었으면 유비의 의제를 그런식으로 쥭여버리는 병신짓은 안했을거같아요
@@서성주-l9b 제 생각은 다릅니다 관우의 북벌을 할때 조조는 큰 위기감을 느끼고 합비를 지키던 장료를 형주에 투입할정도로 합비는 빈집에 가까웠어요 사실상 오나라입장에서는 관우의 북벌때가 합비를 차지하기 가장 가능성 있었을 때죠 그리고 합비가 영양가가 없다는 말은 틀리다고 봐요 오나라의 입장에서는 합비루트를 통해 북벌하는게 가장 가능성있고 쉬운 방법이죠 또 회남지역을 얻는게 수도 건업을 방비하는데 더 효과적이죠 반면에 오나라는 강릉을 얻었지만 양양을 차지하지 못해 장강 방어선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죠 당장 오나라는 형주를 얻고도 계속 합비에다 꼴아박았구요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오나라는 형주보다 회남이 더 중요한 땅이었어요
@@성민준-n9j 좋은 말씀이긴한데 회남이 더 중요했으면 손오가 회남을 안먹고 관우까지 쳐가며 형주로 갔는지가 설명이 안되지않나요? 아마 합비가 빈집어어서 먹었다고 한들 수전에 익숙한 동오군이 위군을 오래 막을 순 없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형주는 말씀하신 것 처럼 장강방어라인의 완성에다가 강을 따라서 허창 등으로 나아가기도 쉬우니깐 그렇게 원했던거구요
@@서성주-l9b 글쎄요 장강방어라인을 완성지으려면 다른 중국 남부왕조처럼 최소한 양양을 먹었어야하는데 손오는 그러지 못했죠 그리고 회남지역은 오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회남지역을 먹어야 수도 건업을 안정적으로 수비할 수 있고 서주 예주까지 손쉽게 북벌 할 수 있죠 괜히 오나라가 형주를 얻고도 합비에다 꼴아박은게 아니란거죠 그래서 몇몇사람들은 관우를 통수쳐서 형주를 얻은 여몽을 보고 대국적으로 보지 못했다 하는것 같아요
@@서성주-l9b 형주를 통해 북벌을 해도 되긴 하겠지만 문제는 최소 양번을 모두 먹어야 허창까지 북벌이 가능하다는건데 이는 쉽지 않죠 특히 양양성은 중국 역사 통틀어 가장 견고했던 성중 하나였구요 결과적으로 손오는 형주를 통한 북벌을 별로 시도하지못하고 계속 합비만 공격하다가 촉이 멸망하고 진나라가 쳐들어오니 손쉽게 멸망했으니 오나라가 관우를 통수쳐서 얻은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봐요
ᆢ법 효직은 한중공방전 끝나고 얼마 안되서 죽었고 당시 법 효직은 방통의 후임이던 야전 참모총장이라서 전술 총 책임자임ᆞ 그렇게 따지면 전략안을 담당한 책임자이던 황권을 까야하는데 그 황권도 이릉대전은 좋게 안보던 입장이고(이건 제갈량이나 조운도 마찬가지고ᆢ)ᆢ 결국 그 많은 반대에도 강행한 사람은 유비라ᆢ 황권도 판 깔리니 일단 자기 할 일은 최선을 다해서하고 수륙양용이나 자기가 먼저 야전에서 허실을 파악하겠다고 하는 등 최대한 잘 풀려고 노력해도 유비가 딴거 시켰죠ᆞ(사실 황권이 하려던 일들이 다 장비나 관우가 살아있었으면 걔들 시키던 일이란게 참ᆢ 특히 관우는 수군을 잘 쓰는 편이기도 하고)
유비 입장에서 2인자로 미방, 상용에 유봉을 배치한건 나름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방통이 죽고 제갈량이 성도에서 나올수 가 없게 되버린 시점에서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관우에게 유비를 모신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입촉 이후의 인재를 2인자로 붙여주면 불협화음이 나지 않을까 염려한거겠죠. 입촉 이후의 인재를 다 제끼고 믿을만한 인재 보고나니 그게 처남인 미방과 양자인 유봉이었던거겠죠. 설마하니 오랜 신하이자 가족인 저들이 관우를 배신이야 하겠어 했겠지만 설마가 사람잡은...
@@berry-kf6kd 정사에도 같음 사방장군 전 관, 좌 마, 우 장, 후 황 이었는데 장비는 거병동지고 형제 다름없으니 인정, 마초는 단순 객장이 아니라 유비나 조조랑 대등하던 군웅이니 인정 근데 듣도보도 못 한(전장에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황충이 자기랑 비슷한 서열 되니 짜증냄
딱히 손권이 가만히 있었어도 관우가 아무리 날고기어도 혼자서 형주의 촉 병력만 가지고 중원까지는 무리죠.....위나라의 최악은 남은 형주 상실과 허창이 공격받는정도? 아무리 짬밥이 있었다지만 미방이 형주 2인자 였던 것 부터가.........뭐 훗날 촉에서의 북벌과 호응해서 그때 위나라 최고의 위기를 불러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당장 손권이 지금 관우를 막지 않으면 오나라도 위험할 것이다 라고 판단할 정도는 아니었죠......촉이 형초와 파촉에 서북까지 먹는다해도 질적으로 위나라와 해볼 정도지 전력상으로만 본다면 여전히 중원 하북의 위나라가 압승........오나라가 멍해서 1강 1중 1약이던가 오나라가 전력을 비축해서 1강 2중정도였겠죠.... 더군다나 서북까지 장악하고 나면 촉의 무장 중에서 1군 에이스들은 거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무엇보다 오나라도 기회를 날렸다고 할 수 있는게 관우의 북벌에 위나라는 장료를 빼와야하나 고민하던 시기라.......오나라 입장에서 서주로가는 문이 열리려는 찰나에 도어락을 직접 붙여준느낌......오나라가 서주를 먹었어도 지킬 역량이 있었을까하는 고민도 아무렴 촉의 위협에 위나라가 오나라에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 한정되는데 그것에도 지키지 못할 정도라면 삼국시대라는 이름을 떼야겠죠.........우리나라 삼국시대에 가야포지션......
오늘 영상을 보고 감상평을 남기고자 한다!! - 우선 번성공략전의 실패에 대해 관우는 분명 책임이 있다.아무리 조조가 형주까지 마수를 뻗어서 먼저 공략은 했으나 뒤에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반드시 배치하여 후방(형주)의 안정을 해야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당했다. - 유비와 제갈량도 잘못이 있다!!형주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면 관우를 뒷받칠 수 있는 능력있는 인재를 배치함으로써 안정을 도모하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해야지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미방같은 인물을 배치하여 결국 오에게 빼았긴건 물론 이릉대전에서 대패까지 하니 이들의 책임은 면할수 없다!!(이릉대전에 관한 건은 해당 동영상보고 평할게요!!) - 가장 큰 잘못은 오나라의 손권,여몽,육손에게 있다.(물론 육손은 그 때의 위치가 모호할 수 있다.)첫째,형주이후 무얼할 건가에 대해 어떤생각도 하지 않았고,둘째,관우를 죽여놓고는 촉에 대해선 아무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또한,여몽은 뭐했나?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노숙보다 뛰어난 능력도 아닌데 앞뒤생각 안하고 형주를 친 것은 아니다.솔직히 오나라는 형주가 필요한게 아니라 요즘 저장성,푸젠성,광둥/광시성 같은 남쪽지방이 아닐까?(이 지역은 추측컨데 5호16국시대부터 시작한게 아닌가함.)아무튼 현상유지를 원하면 왜 형주를 점령했는지 알 수 없으며,동맹까지 끊으며 점령했는지 알 수없다!! - 결론 : 번성공방전은 이릉대전을 불러왔고 위가 나중에 진이 되어 통일하는데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 추신 : 여기서 손권은 능력은 없었고,다만 권력의 의지는 확고했다.(왜,육손이 대들다 죽은지는 다 알고 있었어 더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중대전이 217~219년입니다. 관우의 출병은 219년이구요. 정확히는 위나라 철군은 3월 관우는 7월에 거병 12월 사망... 한중대전이 삼국지에서는 비중이 적은데 촉으로서는 최고의 승리이자 3년이나 지속된 국운을 건 전쟁 였습니다. 2016년 부터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삼국지에서 제일 장기전이 아닌가 합니다. 촉나라는 국력을 다해서 겨우겨우 위나라와 싸우고 있어서 군사적 압박을 덜기 위해서 관우한테 양양을 치라고 한거 같습니다. 기록을 보면 218년10월에 남양군(번양바로 위)에서 후음이 위나라 반란을 일으켰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우는 지원병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관우가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으면 이때가 최고 적기였을 것입니다. 그런 호기를 보고 있을 만큼 한중대전이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였습니다. 한중대전이 격렬한데 또 하나의 전선을 열기는 어렵겠죠. 그리고 3월 철수가 위나라가 완전 철군을 한건지 전술적 후퇴한건지 유럽국들 처럼 조약을 맺지 않았으니 촉에서는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위나라가 철수를 하고 한숨 돌리면서 한중 정비를 하면서 관우의 북벌로 위나라의 압력을 형주로 돌려서 한중대전 마무리를 하려고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모든 전쟁은 마지막이 서로 제일 고통 스러운 단계 입니다. 압도적으로 이긴게 아니라 3~4년간 엄청난 물량의 위나라에 대해 국운을 걸고 쥐어 짜서 버티는 촉은 거의 거덜나기 직전 수준였을겁니다. 한중은 지형상 주요 요지에 성과 진지를 구축하면 침공하기가 대단히 어렵죠. 나중에 왕평이 낙곡대전으로 20년간 한중을 안전하게 한 것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관우 패망을 보면 위나라에서 한중대전에서의 병력이 여유가 있어서 장안에서 정비한 후에 서황이 대규모 지원군을 계속 보내서 지게 된겁니다... 우금의 7군이 전멸하고 바로 추가 지원군을 안보낸건 한중대전에 파병한 군대를 정비하고 이동한 시간이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 장안에서 번성까지는 한달 이상 걸립니다. 그러니 조조가 당장 파병할 군대가 없으니 천도 하니 하는 난리를 친 거 같습니다. 그 당시 위나라의 국력이 관우군 몇만을 못 막는게 말이 안됩니다. 군대 동원 시간상 차이가 났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관우가 한중대전에서 위나라가 확실하게 철수를 했고 더 이상 한중으로 파병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우금의 3만 위나라 포로를 데리고 형주로 귀환했어야 했는데 놀라운 승리로 번성와 양양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니 욕심을 내다가 패망한 것 같습니다.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번 양을 먹게 되면 중원에 대해 엄청난 거점을 마련하는거라 욕심이 안날 수가 없죠... 그게 아니면, 우금과 3만의 포로로 위나라와 잠시 평화협정을 맺어서 한중을 안정시킬 시간을 버는것도 좋은 방책 였을 겁니다. 이래서 관우 측에 책사가 있었으면 여러가지 방책들을 제시 했을텐데 한중대전에 상용까지 갑자기 흡수해서 여력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위나라에서 조비가 황제 참칭을 하기 전이라 평화 조약을 맺는데 명분도 나쁘지 않았을겁니다. 조조 진영에서 신세 질때 우금과도 잘 아는 사이니...방덕한테도 풀어 줄 수도 있으니 좀 대기 해라 이러면 방덕이 발작도 안했을거구요.. 계속된 전쟁에 백성들을 안정 시키자등 여러가지 이유로 충분히 조조와 협정을 맺을 만 했습니다. 조조는 손제리랑 달리 협정을 먼저 손바닥 뒤집듯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한중 상용 형주를 안정 시키고 소위 융중대 전략을 제대로 펼 수 있었겠죠. 마지막으로 맥성 위치가 강릉 바로 옆입니다. 물론 촉으로 가는 길목이긴 한데, 관우가 양양에서 패하고 바로 촉으로 도망갔으면 살았을 가능성도 있는데 강릉을 다시 탈환 하려고 가까운 맥성에 가서 한달 넘게 전투를 하다가 도망가다가 죽었습니다. 최고의 철군 방향은 양양에서 형주 수군과 같이 한수를 통해서 한중으로 바로 갔으면 병력도 거의 대부분 유지 했을 겁니다. 관우의 패주가 심각한게 형주 수군이 궤멸이 돼서 나중에 이릉대전에서 수군이 제대로 없어서 공격 후퇴가 늦게 되고, 산중에 700리 진지를 세우다 화공으로 패망하는 원인이 됩니다. 소설에서는 도망가다 잠시 버려진 맥성에 들렀다 라고 나오는데 다른분 유튜브를 보면 실제는 규모도 어느 정도 있는 성입니다. 도망가다 들렀다기보단 강릉성및 형주 재탈환을 하기 위해서 두달 가까이 있었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자존심을 좀 굽히고 다음을 기약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우가 죽음으로 오하고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버려서...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킬 수 밖에 없게 되죠... 관우가 일시적 자존심 보다 본인의 위치를 생각 했으면... 물론 여기서 장렬하게 죽어서 충의와 의협의 신으로 아직까지 추앙 받고 있긴 하죠....
누구의 탓이 가장 큰지 꼭 한명을 꼽자면 저는 미방을 꼽겠습니다. 미방은 나름 초기때부터 형인 미축과 함께 유비를 따라온 최고참 장수중 하나였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고 미축도 여전히 유비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그가 배신을 했다는게 어이가 없을정도이니 말 다했죠. 이 어이없는 배신만 아니었으면 오나라가 쥐도새도 모르게 형주를 차지할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삼칠님이 언급했다시피...어찌보면 촉의 인재부족도 영향이 큰거 같습니다. 촉/한중을 정복하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통의 죽음으로 인해 관우를 서포트할 인재가 부족했다는 것도 사실이고... 이런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아직 국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우가 왜 무리하게 북벌을 감행했을까도 의문이죠... 물론 손권이 배신때리기 전까지 성공적이었으나, 손권과의 동맹은 이 시점에도 불안했고, 형주라는 불안요소도 있었는데...오히려 3~5년 동안 내정을 중시하고, 손권과의 동맹도 안정시키고 조조 사후 북벌을 감행했으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 듯 합니다. (X맨 조비 활약은 덤 ㅋㅋ)
저는 손권이 가진 통찰력의 한계가 만들어낸 결과라 봅니다. 노숙의 장점이 패기와 통찰력이란걸 알면서 완전 무장이기만 한 여몽에게 기존의 전략을 다 바꾸게 한건... 형주가 물론 수.륙에서 모두 지키기 좋은 요충지이나 그건 전략전술에 따라 충분히 뚫릴 가능성이 있으며, 서주가 얻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땅은 맞지만 조조가 장료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니 빈집털이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손의 찬성을 한 걸 보면 국력이 위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봤을 수도 있지만 관우의 출정이 미칠 영향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니 이도 그리 좋게 보이진 않네요 ㅎㅎ 길게 써봤는데요 ㅎㅎ 삼칠이님 반응이 궁금하네요.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몽:손권은 말년에 가서 이궁의변 등 여러 뻘짓을 하긴했지만 오에 촉과 위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들릴당시 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할정도로 영민했다. 그런데 영상에서 여몽은 서주공략이 불가능 하다 주장하고. 촉의 뒤를 쳐야한다고 손권을 설득했다. 여몽은 영민한적 있었지만 손권의 천성을 자극해 촉의 뒤를 치게 하였으며 관우가 오와의 우호를 노력하지 않은것처럼 관우는 여몽이 드러눕자 방심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미루어보아 관우는 여몽을 높게 평가하였을거로 보이며 이러한 여몽또한 관우와의 우호를 증진시키려한 점이 없었고. 노숙에게 괄목상대를 말했던 여몽은 관우의 뒤를 친다는 계책을 실행에 옮기기전에 그 계책을 다시 눈을 비비고 돌아보지 않았다.
당연히 오나라도 위로 진군했다면 훨씬 큰 땅들을 얻었겠지만 겨우 형주 다 얻지도 못하고 망했죠. 손권이 여기서 보여준 통수를 몇가지 이유로 추측해봅니다. 1. 장강아래 우물안 개구리가 되있었는데 처음 전투인 적벽에서 큰 승리를 얻어버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위나라를 업신여기게 됬다 2. 관우가 쳐들어가서 성과를 얻는것을 보며 자신이 형주만 얻는다면 당연히 관우처럼 위나라를 몰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3. 늘 양양의 유표도 못이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모자람이 아니라 비옥한 형주빨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4. 합비 수춘 방면의 공격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 그쪽은 불가능하고 형주쪽만이 가능한 루트라고 생각지만 실제로 해보니 더 답이 없어서 이후 결국은 합비 수춘방면에 집중하게 된다 5. 원래 인간 본성이 그런데 특히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권력자의 비리보다는 내 옆집 사람이 이득보는것을 더 미워하기에 거지인데 인망은 자기보다 높았던 유비가 자신보다 더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미웠다
개인적으론 미방이 가장 문제였다고 생각하는게 완에서 반란일어나서 조인이 양번 비운사이에 관우가 바로 쳤으면 먹었으리라 봄. 근데 미방이 군량건초 다 태워먹는바람에 원정도 2개월 늦어지고 그것뿐만 아니라 오나라 상대로 버티지도 않고 바로 항복해 버림... 촉빠입장에서 여몽이랑 손권이 야속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욕은 못하겠는게 저같아도 불확실한 캐이득보단 눈앞에 확실한 이득을 우선적으로 취하는게 맞다고봐요. 특히 본인 국가와 자국민의 이득을 위해서 일해야하는 입장에선... 다만 오나라가 진짜 싫어진건 형주를 먹은건 그렇다 치지만 그걸 기반으로 위나라 상대로 임팩트 있는 원정을 간것도 아니었고 마량, 비위, 장완등에 버금갈만한 형주출신 인재를 영입한것도 아니면서 왜 먹었는지 납득이 안가는듯
암만봐도 손권이죠ᆞ 교주 문제도 지가 직활하려다가 두고두고 소화 못 시켜서 망할때도 문제 일으켯는데 형주도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이릉대전 당시에도 습진이나 사마가를 포함한 촉에 가까운 인사들이나 패잔병 규합세력에게 시달리는데(사실 유비도 이걸 고려해서 이릉대전을 치른거라ᆢ아직 소화 못시킨 형주니까 되찾을 가능성이 있어서) 이게 이릉대전 끝나고도 몇년은 계속된 일이니ᆢ 촉도 익양대치나 청니대치 문제로 곱게는 내주기 싫어도 결국 북벌에 필요한 전진기지 성이 있는 남군ᆞ무릉ᆞ영릉은 냅두고 강하ᆞ장사ᆞ계양은 넘겨주는 선택을 한건데요ᆞ(뭐 노숙도 대국적인 관점때문에 거기까지만 뜯어낸거라) 근데 그걸로는 만족 못해서 다 뜯어내겠다고 통수친걸로도 모자라서 양&번이라도 쳐 먹었으면 몰라도 그것은 또 못해서 전선은 괜히 더 길어지고 소화 못시켜서 내상은 내상대로 입고 외교는 외교대로 꼬이는 등신같은 선택을 했으니 그야말로 딱 지방 제후 수준 밖에 안되는 기량이 손권ᆢ
일단 적어도 저 일 전에 나름대로 두 사람이 능력을 보인건 맞음. 일단 미방은 개국공신+외척 대우+ 그로인한 신뢰가 잇다고 하지만 형주에서 2인자라고 할 수 잇는 게 남군태수인데 그걸 받앗다는거나 젊은 시절 조조가 회유할려고 팽성상을 줫다는거보면 단순히 외척이라고만 그렇게 줄리는 없고 유봉 경우는 조조가 한중공방전에서 유봉에게 많이 시달려서 그런지 저 가짜 아들놈 따위 우리 황수아불려서 조지겟다! 이 소리를 할 정도로 능력을 보이긴 햇음. 근데 이렇게 졸렬한 성품인지는 몰랏겟죠 ㅋㅋㅋ
참 번성공방전을 볼 때 마다 육손이 전장에서는 최고였을지 몰라도 큰 그림을 보는 능력(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 하거나 큰 판에서 국가의 스탠스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은 제갈량 사마의에게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갈량이나 사마의 였다면 촉을 배신하고 관우를 죽음으로 몰고가면 결국 촉의 모든 화살은 본인에게로 날아 오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위나라에게 대륙의 패권을 내주게 되는 행위란걸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손제리의 삽질로 인해 1강 2약으로 굳히기 들어간건 진짜...노답.. 천하통일의 기개라도 없으면 초치기라도 하지 말던가.. 한창 잘 나가던 촉을 주저앉히게 만들고 조비가 팝콘먹게 만든 손제리.. 손권을 수성의 달인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야망도 패기도 없는 그냥 보스자리 해먹어보고 싶은 똘추에 불과한것일뿐..
해석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글 써봅니다 형주를 차지하는 부분에서 기회를 노린 손권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 행동으로 볼때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나요? 군주로써 어떤 평을 받든 현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볼때 잘한일 같은데 이부분이 까이는 이유가 무엇인이 궁금합니다
형주를 얻은걸로 손권이 이익본게 겨우 촉보다 땅이 넓어졌다는겁니다. 위나라의 땅을 뺏어야 삼국사이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데 오히려 동맹국을 쳐 조조가 죽은 위나라가 안정될 시간을 벌어줬죠. 결국 손권은 형주에서부터 아무런 이익도 거두지못했고 제갈량은 줄창 한중에서부터 북벌을 일으켰지만 실패. 최후엔 양국 모두 사이좋게 망하는 결과를 초래한겁니다.
@@372tv 늦은 시간에도 이런 귀한 답변 주셔서 감사해요 이 답변으로 삼칠님의 삼국지를 보는 관점을 조금은 이해한거 같아 좋았습니다 아직 의문이 조금 남아 조금더 질문을 더해봅니다 결과적으론 손권의 선택이 아쉽지만 그 순간의 선택을 볼땐 촉보다 더 우위에 서고 통일에 대해선 넓은 선택지를 택할수 있고 영토를 넓힐수있는 수단을 택한 점으로 볼때도 저의 소견으론 손권이 오국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봤거든요 이런점을 따져 보더라도 손권의 선택은 잘못되었다 라고 해두는게 맞는것일까요? 솔직히 저의 생각은 어떤 답을 정하고 여쭤 본거라 쉽게 마음을 돌리기 어려워 제가 생각한 답을 몇자 적어봤습니다 ㅎㅎ
결과적으로 아쉽게 됐지만 순간의 선택으로는 손권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전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 역시 모두의 입장을 비판하는 영상을 남길만큼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각도 있습니다. 손권은 잘될거라고 생각했겠죠 물론! 실제로 조비의 이상한 판단으로 양양성을 오군에게 '아주 잠시' 뺏긴적도 있습니다. 조비가 더 멍청했으면 그대로 형주에서 재미 좀 봤을수도 있어요.
@@372tv 감사합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영상을 만들어 주셔서 잘 보고있습니다 실제로 시각도 좀더 넓어지고 재미있는 사실들도 알게 되고요 이전에 보았던 괴변을 사실인냥 이야기 중심으로 가지고와 까고 또 까는 영상만 보다가다 이런 생각 하게 하는 영상을 보니 너무 좋았어요 몇번을 다시 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손권이 대국적인 뭔가를 노렷다면 노숙이 한대로 반만 먹고 뒷탈 없이 형주 북상에 맞춰서 합비를 노린다는 각을 잡앗겟지만 손제리는 소탐대실을 많이한다보니까 형주를... 사실 손권의 이런 점 때문에 노숙이나 주유처럼 뭔가 대국적인 천하패권 포부를 가졋다기보단 그낭 할거해서 지방 정권을 누리는 제후급 정도 밖에 목표로 삼는 현실안주나 생각하는 존재로 판단하는 이들이 많죠. 그래서 코삼마져도 14의 손권에게 주의가 유비처럼 왕도나 조조처럼 패도도 아닌 할거일 정도니까요. 그게 아니면 손제리의 소탐대실은 그냥 순간 감정적인 거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수준이라서요.
촉나라로 따지면 에초에 손권이 동맹을 결성한 이유를 생각하면 관우를 혼자 보내거나 하지는 말아야 하는데...장비나 조운이라도 보내거나 아니면 관우를 잠시라도 익주에 들어오게끔 해서 잠시 쉬어가기를 했어야 하고 오나라는 사실상 촉나라와 척을 지는 행동을 해버려서 판세를 바꿀 유일한 희망을 자기 손으로 없애버린 최악의 상황이 되버리고 만약 조비가 이대로 약해진 두나라중 촉나라를 먼저 공격하면 촉이 멸망하고 바로 오나라는 완전히 고립 상태에 빠지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을 하니... 솔직히 이것은 오나라의 잘못이 매우 크지만 그만큼 유비도 한중왕이라는 타이틀에 너무 심취해서 저지른 패착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촉나라가 위나라를 부수는 걸 막은 사람이 누구인가? 손권이다.
위나라가 오나라를 부수는 걸 막은 사람이 누구인가? 손권이다.
그렇다면 오나라는 누가 부쉈는가? 손권이다.
대단하다! 손권!
맞습니다!
자해빌런?
그새끼는 남잘되는걸 못보는 새끼임 왜 그런애 있자나요 겜에서 불리하면 판자체를 엎어버리는새끼
오대황제!
손권짱
5:02 큰 오명을 무릅쓰고 몇수앞을 내다본 식충전술로 관우를 골로 보낸 킹갓제너럴우금의 큰그림
사실 미방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따위로 취급될 인물이 전혀 아니었어요.
유비의 엄연한 개국공신 미축의 동생으로서 미축이랑 같이 유비에게
엄청난 충성심을 보여 조조에게 오라는 회유에도 응하지 않을 정도였죠.
그리고 엄청난 전공은 없었지만 정치적 입지로는 대단했습니다.
ㅇㅈ 당시 유봉맹달이 원군을 안보낸시점에 터진거나 다름없지 손건미축은 제갈랑보다 높은 관직일정도의 충신이였듬 미방도서주부터 따라온 개국공신에 유비처형 이였으니 관우옆에 아들 처형으로 보좌시킨건데 둘다 똥쌀줄은 몰랐겠지
한편으론 관우의 성질머리가 어느정도였으면, 그렇게 처참하게 조조에게 쫓길때도 유비를 절대로 배신 하지 않았던 미방이, 빡쳐서 뒤도 안 돌아보고 관우의 통수를 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죠.
@@전투불패ㅋㅋㅋㅋㅋ
@@정성현-q2l 유봉맹달이 원군을 보내기 전에 보급이 후달리고 홍수로 수몰된 양번도 못따는 관우가 진작에 철군했으면 그 사단이 안났음 똥싼건 관우인데 왜 유봉, 맹달이 상용 정리도 안된 마당에 똥을 치워줘야 됨? ㅋㅋ
유봉 맹달한테 꾸짖으며 한다는 말이 '단지 1000명의 기병만 지원가도 능히 관우의 재주것 살았을것' 이라 했다는데 그것보다 처음부터 1명의 군사급 인재를 형주에 주둔시켰어야 하지않았을까... 입촉때는 방통만 데려가고 제갈량은 형주에 주둔시켰다가 한중공방전으로 익주 행정을 맡길사람이 없어 제갈량을 소환한게 실책임. 제갈량을 익주에 배정할꺼면 형주에도 책사를 보냈어야했고 가절까지 쥐어줬어야했음. 관우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본인 잘못으로 패배한적은 없으며 모든 전장에서 적장을 베었고 여포 사후 무력으로 가장 으뜸이라는 평을 들었기에 콧대가 높아도 거의 강남미인수준으로 높아졌으니 제어장치가 필요했었음.
유비의 극장점이자 반대급부 단점이 드러난 두가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유비는 본인의 용인술이 극만렙이라, 장수들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에 딱딱 잘 배치합니다. 유비 본인의 리더쉽이 쩔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리더쉽 안에서 최대출력을 발휘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의 집단이 유비군인거지요.
문제는 유비군에 용인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리더가 유비 딱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유비가 그런 계열의 인사는 유달리 등용을 안 한 것일까요? 어쩌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되니 굳이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유비세력(사후 포함)에서 유비를 제외한 자치 군단장이 딱 관우, 제갈량 둘 뿐인데 둘 다 치명적인 준망국급 인사 실책을 범합니다. 좀더 작은 스케일로는 서주를 위임받은 장비도 여포, 조표를 잘 컨트롤하지 못했지요.
저는, 유비였다면 미방과 부사인을 더 적절하게 다루고 마속을 더 적절한 곳에 배치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만사에 만능인 장수가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빛을 발하는거겠지요.
조조에게는 반대로 순욱, 장료, 장합, 사마의 등 군주직할군이 아닌 위임군을 이끌만한, '장수들의 리더 격'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 상반되는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자치 사령관 top10 같은거 만들어주시면 어떨지요?
1:53 완전 공감가는 해석이네요;;;ㅠㅠ
관우의 오만함과 손권의 인성이 겹친게 아닐까 조심스레 이야기합니다
책 던지기는 커녕 통수로 인한 죽음이 엄청 흥미진진했었는데, 시대가 시대라 잘잘못을 따질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구요.
동맹국 속 계속 긁던 관우도 잘못있고 그거 냅둔 유비도 잘못이 있고 1강 2약 체제에서 동맹국 뒷통수 치려고 전략짜던 여몽이나 그거 좋다고 홀랑 받아버린 손제리나..
3:54 관우 엿 뭐냨ㅋㅋㅋ보고 터짐ㅋㅋㅋㅋㅋㅋ
진짜 영상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보니
어떻게 보면 각자에게 어느정도에 문제도
있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삼국지의 밸런스를
부셔버린 역대급 병크라고 생각되네요
유비 피눈물 그림
영혼이 빠진 듯한 표정은 진짜 그림인데도 소름입니다
관우의 혼인동맹 거절 건은 정말 잘 해석하셨다고 봅니다. 어떤 바보가 믿지도 못할 놈들한테 딸을 인질로 보낼까요. 잘 이런 식으로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잘못이 없다고는 못하죠. 그런데 관우의 죽음와 유비의 실패는 애써 넘어가더라도 손제리는 합비방면은 포기하고 활용하지도 못할 형주를 그렇게까지 하면서 먹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드네요
그러니 손권이 욕먹죠 ㅋ
오나라 장수 및 손책 제외하곤
손제리 새X 좋아하는 사람 몇없을껄요? 말년에 노망나서 나라까지 망침
관우의 죽음은 관우 스스로가 책임이 젤 큰것 같기도... 이번 영상도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솔직히 촉과 오와 위가 얽힌 마지막 전쟁이면 위나라 올스타 vs 촉, 오 올스타였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촉의 관우 vs 위, 오 올스타........
어쩔수없죠 촉과한중을 차지한지얼마안됬으니..
한중공방전승리기세몰아가려고 안정된 형주에서만 진출한게크나큰 실수인거같네요.
굳이진출할꺼면 상용에 장비나 황충 같이 용맹하고 믿음직한장수를배치해 언제든 첩보를통해 지원을가게했음어땠을까하네요.
그리고 관우빼곤 모든주력장수들이 익주에있었던거도 좀실수인듯
오나라와 관계가 원만한편이 아닌데 주력장수를 관우가진출할동안 배치해놨다면
진짜 역사가바꼈을지도요..
누가 자신보다 몇배나 국력강해지려고하는데 가만히있겠어요.
그만큼 관우의 위상이 참 대단했죠 천하의 조조조차 진지하게 천도를 고려했을 정도면 말 다했죠
정작 올스타 출동하기도 전에 신병으로 편성된 서황 하나한테 뚝배기 깨져버린 관우좌.....
ㅋㅋㅋㅋ 촉,오 올스타 다 합쳐도 위 올스타 보다 전력이 앞서나가지않는데 ㅋㅋㅋ
아이러니하게도 관우가 이렇게 죽지않앗다면 삼국지가 이만큼의 인기를 못누렷을것 같음
먼치킨이 몰락하면서 어떤이들은 카타르시스를 어떤이들은 분노를햇을거고 말씀처럼 최고의 떡밥이 된거같음
우리 미방도 잊지말라고!
@유황희 듀오
........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손권배신 수준 ㄹㅇ 실화냐 진짜 천하제일의
배신이다. 그 똑똑한 손권이 맞냐 진짜 손권은 레전드다. 한번의 출정으로 삼국의 균형을 부수고 훗날에 본인 나라까지 부수는 손권은 정말 레전드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어그로 낚였다
낚였다 ㅋㅋ
@@비상용-l1j 어그로라기엔 팩트만이 있었다
솔직히 여포 다음가는 배신수준이었음
@@호필라우스-n5p ㄴㄴ.여포보다 우위였음.여포는 진궁의 말을 안듣기만 했지,손권은 육손을 파직후에 게속 사자를 보내 그를 질책하여 육손이 피토하며 쓸어지게한 장본인임.
원래 동맹이란게 자국에 이익이 될때야 지켜지는 것이죠.
사실 동오는 손씨의 땅이 아니라 호족의 땅이다 보니 직할지를 원하는 손권의 집착은 쩔었죠.
메이크실리엔 그래서,멍청한 선택이었죠!!
그래봤자 흡수도 제대로 못해서 이릉대전 끝나고도 몇년을 고생하고 양&번은 못 먹어서 전선만 괜히 길어지고 그랬는데요ㅋㅋ
교주도 그ㅈㄹ을 해서 망할때까지 속썩인거보면 손권 수준이 지방 제후 수준밖에 안되는 깜냥이라ᆢ
손권은 솔직히 유비,조조보다 더 능력이 없음!!그러나,자기 이익이 되면 그걸 추구하는
능력은 있음!!
@@황야의개마무사 근데 그걸 소화 못시키는 일을 잘 하죠ᆞ특히 지방 호족들 정리하겠다고 시도했다 제대로 망한 이궁의 변ᆢ
행동력과 별개로 능력이ᆢ
이주표 그래서 삼국지연의에서 말하지 않는 일이 있었군요!!왜 손권이 형주에 집착했는지...!!
조조조차도 형북을 차지한 관우군과 한중을취한 유비군이 동시에 칠것을 두려워해 하북으로 천도를 고려했을정도인데..손권은 언제든지 촉만없다면 무너뜨릴 존재로생각했으니...그러한 촉을 희대의통수로 무너뜨린순간 이미 위의 천통을 확정됬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사마의가 가장두려워한 조조또한 병사하는순간부터 새로운 나라를 세울 계획이 잡혔다봅니다.
누군가의 손해는 또다른 누군가의 득을 가지니 세상의 이해득실이지 아니할수가 없군요
01:25
이 부분 유비 쉴드를 좀 쳐 보면, 유비 패거리는 처음에 제갈량이 형주 라인 파촉 방통 라인으로 쌍 라인으로 조조 때리기가 계획이었는데 방통이 너무 허무하게 죽어서 중심인 유비 라인으로 제갈량을 빼지 않을 수 없었음.
즉 제갈량을 빼서 보낼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라 방통 없이는 제갈량 자체가 형주에 있을 수 없는 전력이었던 것
게다가 관우 그 오만방자한 성격상 초기 유비 라인이 아니면 커버 자체가 될 놈이 아니어서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었을 듯
삼분계 자체가 유방 따라하기 컨셉이어서 한중으로 위로 가는 게 큰 뼈대인 만큼 제갈량을 형주에 배치하는 게 어려웠다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제갈량이랑 관우가 사이 좋을지도 좀 의아하기도 함.
그리고 유비 패거리는 손권에게 지키질 못 할 약속을 한 게 아닌 지킬 생각이 없는 약속을 함ㅋ (유비 양아치 근성 ㅉㅉ(참고로 촉빠))
대부분 "이거는 얘가 이렇게 잘못했네" 이런건디 조비랑 손권은 "얘는 왜 이랬지?" 이럼 ㅋㅋㅋ
알 생각이 없으니 그런거겠죠
손권이 위에 맞서 세력 키울려고 생각했던 익주공략을 유장이 종친이라 공격할 수 없다며 참여 거부하고 막았는데 유장 도와준다며 들어가선 자기가 차지해 버리는 기만에 분노했고 그에 조조 막으라고 빌려준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 하는데 거부해서 익양대치까지 갔죠
손권이 유비를 이 못 믿을 교활한 늙은이라고 한게 기록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형주는 손견부터 손가가 계속 원해온 땅이고 장강 상류 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면 오의 방어가 취약하기에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땅이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계속 형주를 노려왔고 그로 인해 관우와 마찰이 많았는데 관우가 손권 사신 모욕에 오 군량 약탈 등 선을 넘어서 손권 성질 건드렸구요
강석준 손권이 성질 건드린건 말 안하네? 심지어 합의한걸 갖고 뒷통수 친건데? 보고 싶은 대로만 보네
@@aa2095 위에 다 설명 했잖아요 손권의 익주 공략 참여 제안에 유비가 거절한 이유가 유장이 종친이라서 공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손권의 익주 공략도 말렸고요
장노의 공격에 유장이 유비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유비는 유장을 도와주러 간다고 하고 익주로 들어가 익주를 차지해버렸죠
손권은 유비가 기만한 것에 분노했고 그로 인해 형주 반환을 요구하는데 거절 당합니다
이게 익양대치의 빌미가 되죠
조조 때문에 합의는 하지만 손권은 육구에 오의 대도독을 배치 시키면서 계속 형주를 위협 했었습니다
손권은 형주를 자기 땅이라 생각했으니 강탈 당한거라 여기는 겁니다
여몽이나 육손 등 오의 장수들이 모두 촉을 주적처럼 여기고 있는게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관우가 오 사신 모욕에 군량 약탈을 하니 기름을 붓는거죠
@@sjstyle7 손부인이 유비 아들 납치해서 볼모삼으려던 미친 짓은 기가막히게 패스 했네요(말 짧다니 수정합니다)
@@Tube-sb6fi 여긴 말 짧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지 참...
양측 관계 파탄 나던 때 얘기 하는데 파탄난 이후 얘기는 해봐야 뭐합니까
위에 적었듯이 그 이후는 실질적으로 적이라구요
개인적으로 유비가 너무 오를 만만하게봤음 형주를 안일하게 취급한것도 그렇고 어느정도 컨트롤할수있다고 믿었겠지만 좋든싫든 오는 유비가 잡기엔 너무 강적이였던것일뿐 손권이 사실 수성에는 괜찮은 군주이기도했고요
수성을 잘한다기보다 지리빨이 너무 강력해서 천연 방어막 장강
마왕 제갈량때문 아닐까요?
그런 인간이 이릉의 변을 일으키는게 무슨 수성의 달인인가요? 그냥 손제리일뿐
수성에 괜찮다고하기에는 유비,주유,육손,육항이 사실상 다한거라.. ㅎㅎ
@@항상행복하세요-i2d 그런 장수들을 발굴해서 요지에 잘 배치한게 손권이라 수성을 잘한거고 본인도 직접 조조의 친정에 맞서 직접 나가서 지휘도 했는데 뭔 소리에요? ㅋㅋ 수성에 전부 성공했으니 수성의 달인이란 소릴 듣지 궁에 짱박혀서 나몰라라하고 손가락만 빨았는데 그런 칭호를 듣나?
관우의 패퇴는 관우 스스로 자초한거로 봄
오나라 입장에서는 어찌되었건 명분과 당위성이 있으니 관우가 백번도 참아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전선만 계속 확대해 감
물론 대비도 했고 위나라에 대해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자신감 과잉으로 이어져 독이 되어 돌아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량 이상으로 전선확대한 끝에 좋은 결과 낸 이를 본적이 없음
관우, 유비도 책임이 있었지만 손권이 장기적인 안목, 이익을 볼 줄 모르는게 제일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생각차가 있긴 하지만요.
@@신세계-s8v 그냥 위가 통일하게 나둔거나 다름없죠
@@정성현-q2l 노숙의 죽음도 플러스죠
천하통일할 생각도 없으면서 형주는 먹으려고 기를 쓰는 손제리가 레전드다
미방도 이전까지 전황만보면 미축 못지 않게 유명했어요 형님 투자에 반대한적도 없고 조조가 관직 준다는데 거절하고 유비 입장에선 그래도 쓸만한 인재였죠. 그 뿐만 아니라 반준, 요화,장완과 상용에 유봉까지 세워 둿으니 내정은 제갈량이하고 관우에 맞춰 장안루트로 달려가던
무도, 천수 방향으로 정리하며 가는 루트를 계획 중인데 유봉, 미방을 믿고 맡겼던 안일함이 관우를 죽게 만든거라 봐야죠
근데 유비와 제갈량은 분명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시 위와 촉의 국력을 생각해보면 한중에서 온힘을 끌어내던진 직후라 정비가 필요한 시기라 어느 인사라도 함부로 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가정하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죠.............방통이 죽지않고 제갈량늬 역활을 해줬다면 모를까 진작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삼국지 관련한 영상들이 유튜브에 많지만 함축적이면서 은유적인 코멘트가 특히 인상 깊네요. 잘봤습니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 우리 조비짱
손권 입장에선 손부인 귀환으로 촉과의 맹약이 깨졌고 익주점령 후 반환약속도 지키지 않았음에 한술더떠 안하무인한 관우의 대응에 열받은 상황에서 위촉간 분쟁을 틈타 형주를 기습한 전략을 잘못이라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로 인해 촉오 vs 위 라는 균형추가 흔들려 위에게 절대 유리한 국면으로 갔지만 오나라로선 경쟁국인 촉이 자기들보다 강성해지는 것도 용납하긴 힘들었을 듯..
그래도 둘 사이에서의 공공의 적인 위가 남아잇는 이상은 대놓고 저러긴 힘들텐데요? 이게 자칫하면 자기 살 파먹기가 되는 상황이라... 그래서 손권에 대해선 무슨 대단한 천하통일 패권 같은건 없이 지방의 제후면 안주하는 할거주의자라는 시선도 많은 게 그거라서요.
촉빠 특:유비를 빤다. 위빠 특:조조를 빤다. 오빠 특:손권을 깐다
이것도 개소리인게 진짜 오빠들은 손권을 안깜 오빠를 가장한 촉빠들의 단골 멘트
손권의 형주탈취는 나쁘지만은 않은 판단이었다.
오나라는 형주를 얻음으로써 삼국중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건 독발수기능한테 감사해야하는거지 무슨 오의 힘으로 막은것처럼 이야기하네
삼칠이님 2만명 구독자 축하드립니다! ! !
늘 재밌는 삼국지 주제와 재밌는 설명 그리고 귀여운 그림체들로 연의만 읽었던 저로썬 정사의 지식을 삼칠이님의 영상을 통해 늘 많이 배우고 새로운 업로드가 늘 기다려지네요.
구독자 5만명 10만명 100만명 찍을때까지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영상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가슴깊이 새겨서 좋은 영상으로 보답할게요~
삼국지 최악의 졸장ㅋㅋㅋㅋ 조심스레... 마속,하후무 랭킹에 있다에 예상해 봅니다.
삼칠이형 영상보면서 객관적인 상황으로 보면 모두 잘못이있지만
사람과 사람간엔 신의가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손권
진짜 삼국지읽을때마다 손가놈은
형주가세상의 전부라고 아는놈같음
인생이 형주뿐인가
형주 얻으려고
통수치고 배신을때린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네요
진짜 온갖욕을 퍼부어도 모자랄....
차라리 관우 뒤를 치는 척하면서 대오전선의 위나라 군세가 약해질때 합비, 수춘 혹은 서주를 공략했다면 제갈량이 원했던 그림이 빠르게 실현되겠죠 어차피 후에 육손이나 제갈근 등 오나라 네임드급 인물의 위나라 공격을 보면 시원찮은게 사실이니 이게 골든타임 같네요
사실 손권은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국소멸을 꿈꿨을수도....
이거다....!!!
적벽에서도 항복할려고 했던놈
중원은 필시 세상의 해악이 될것이라 간파했던거죠... 대오 황제 손제리님...
???:(☆폭☆8☆)으어헣헣헣헣헣 th-cam.com/video/JapL0NTs2yk/w-d-xo.html
@@리트머스-i8b 손권이 원했던 건 심국폭☆8! ㅋㅋㅋㅋㅋ
장비: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 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 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 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 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 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형님 원수를 갚은다 관우 형님 원수를 갚은다 갑옷 만들어 부하들아 일안하냐! 장달 범강! 야발
장달, 범강:하....
장비목:홀로로로롤
복수에 눈이 먼 장비
아래에서 뭐라고 떠들든 잘못된 소리를 담아듣지 않고, 옳은 소리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덕목인데 자신이 듣고 싶던 소리를 한 자의 계략을 채택해서 실행했던 자에게 최고의 책임이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삼칠님 영상꿀잼이네요
힘내세요~~!
손권이 어이 없는게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공격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왜 유비가 피눈물을 흘리고 불바다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는 모습이 이렇게도 가슴이 저리고 슬픈거지
그건 당신이... 촉빠이기 때문에...
너무 재밌어요
정말 어렸을때부터 다독한 삼국진데 지금도 님 통해 새롭게 읽혀요
전 오늘도
유비의 자학의 질주
새롭게 배우네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대사 천번 만번 들어도 캐공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역시나 최고 실책은 유비.
유비가 한중을 따낼 때 관우의 양동덕에 따냈으면
그 이후 관우의 양동이 어느덧 시국의 변화로 주공이 된 시점에서 유비는 어떤 형태로든 서쪽에서 양동을 걸었어야 했습니다.
출발지가 상용이었든. 한중이었든 말이죠.
이런 생각 아니 다른 대안 비슷한 거라도
법정이나 제갈양
(이엄 황권은 아직 유비 측근은 아니니... 재끼더라도)이 헌책했어야 했습니다.
서량 군벌 마초는 뒀다가
국 끓여 먹었습니까?
이미 마초는 그 시점에선 현역에서 활동한 기록이 없었던 걸로 압니다. 분명히 이릉까지 살아있긴 했는데 말이죠... 분명 사정이 있을 겁니다.
ㅋㅋㅋ 이 와중에 또 조비디스...삼칠이님이 조비싫어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깐..ㅋㅋㅋㅋㅋㅋㅋ
초 1때 처음으로 삼국지 읽었는데 관우가 제일 좋았고 손권쉑이 배신했을때 책던짐
정상입니다
ㄹㅇ정상
저도 책 던진건 맞지만 지금 생각하면 관우도 후방 경계를 소홀한 빙신 짓......
🐀
+구안의 헛소리
+육손의 이릉대전
관우 책임이 제일 크죠. 당시 기술로는 보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거리까지 원정을 가놓고 보급 못한다고 부하들 매질했고
포로 3만을 먹여살리고 앉았고 (무장해제하고 번성으로 풀어줘서 군량부족을 가속화시켰어야지)
동맹은 개무시하고 약탈까지 하고... 아주 뒤치기 해달라고 애원을 해라.
근데 이게 몇주동안 전투도 아니고 상황 전체가 꽤 길기 때문에
그때까지 아무런 구원군도 안 보낸 유비도 이상합니다. 나중에 알았다는 게 말이 안 됨.
말이 쉽나요..3만 돌려보내면 정보 누출에 전력 그대로 돌려보내는 꼴인데요. 조조군 보급라인도 전장에서 길지 않아서 돌아간 3만명이 다시 정예군으로 돌아오는건 일도 아니에요. 무장해제하고 보내봤자 보급라인 길게 끌고 멀리 온 관우는 더 불리해지는거죠.
그렇다고 죽이자니 민심이 난리날 것 같고 당시로써는 구금이 최선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유비가 구원군을 안보낸게 아니라 못보낸거죠.
혼자 뭐 게임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당시는 2세기에요.
삐삐나 무전기가 없어요. 막혀있고 알리는데만 한달이 넘을텐데 무슨수로 군을 보내요? 하다못해 현대 대한민국도 광주 민주화 운동때 서울 사람들 몰랐어요. 소식이 안오는데 어떻게 알아요
당시 기술로는 보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거리까지 원정을 갔다?
강릉 앞의 제일 가까운 성이 양양인데 원정이 아니지 이건ㅋㅋㅋㅋㅋㅋ
그냥 미방 부사인이 보급품 싹다 태워놔서 보급을 못한거임
발단, 전개, 결말 구성 전체가 정사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극적이었던, 군신 관우에게 어울리는 한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팝콘뜯은 조비, 훗날을 도모하지 못하는 여몽, 관우를 과신한 촉의 수뇌, 자신을 과신한 관우
군신 관운장은 이정도 너프를 해야 죽일 수 있다! 정도.
여몽이 부추겼어도 손권은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유혹을 뿌리치고 형주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야 했네요 당장 땅이 문제가 아니라 둘중에 하나가 무너지면 바로 위나라가 쳐들어올건데.. 너무 근시안적으로 본 오나라였네요 좋은 영상 감사해요!!
조조:(조비를 보고)아이고 저 병신...
손책:(손권을 보고)아이고 저 병신...
노숙:(여몽을 보고)아이고 저 병신...
형주와 한중 먹은 상태로 제갈량이 북벌하던 거처럼 천수 안정 등 서역지역을 점령한 뒤에 동시에 공격했으면 중원점령도 불가능한 건 아니였을듯
오의 배신+형주정예군까지 전부 다 동원힌 관우의 오만의 합작일듯
제갈량이 중원 점령? 진창성 하나도 못 깨는데 뭔 중원 타령? 매 북벌마다 과감하지 못하고 눌러 앉기만하는 제갈량이 무슨 수로 중원을 점령함? 장안성 구경도 못해본 인간인데? ㅋㅋ
단 한번의 북진도 성공못한 손권은 한심하죠 손책이 오래살았어야했는데 ㅠ
잘못을 따지자면 손권이요 책임을 묻자면 유비겠죠. 군주란 그런 자리니까요.
유비가 형주에 관우만 배치하고 관우가 적극적으로 위를 공격했던 이유는 오가 배신을 하는 병크를 저지르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었나 보네요 ㅎㅎ 상식적으로 나중에 다시 싸우더라도 약소국끼리 돈독하게 지내야 미래가 평안한데,,, 저도 여몽이 뛰어난 사람인줄 알았지만 37씨 이야기를 듣고보니 여몽은 대국을 보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네요 ㅎㅎ
여몽은 분명 대단한 장수입니다
부하를 진정으로 아낀 덕장이고
필요할때는 선두에 서는 용장이며
합비전투 이외에는 이렇다 할 패배가 없는 지장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소년만화 주인공스러운 인물입니다
다만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마지막 그릇된 판단으로 빌런 역활이 된게 아까울뿐이죠
머 그 당시에선 그게 최선일 수 있었으니 억지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넘치는 능력을 위에 집중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역시 촉을 친 건.... 괄목상대도. 사람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던 걸까요?ㅠㅠㅠㅜ
관우가 진짜 보급만 제대로 받았어도 진작에 조인 목따는데 성공했죠.
홍수까지 예상하고 배까지 미리 준비해서 조조 최정예 7군을 모조리 수몰시켜 포로로 잡고도
성을 함락하지 못한건 '화살' 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유봉과 맹당 이 두놈들이 병력지원은 안해도 화살만 보급해줬어도 관우는 안죽을수있었죠.
에휴 생각할수록 씁슬함.
심지어 유봉과 맹달에게 보낸 지원요청이 오나라가 배신해서 위험하니 와서 구해달라가 아니라 한창 승승장구하면서 이기고 있으니 너희도 와서 같이 위나라 멱따러가자였죠.......
보급 문제를 운운하시는데 애초에 7군 포로 3만여명을 생포하기 전까지만해도 보급 자체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3만이나 되는 포로를 먹여살리느라 동맹군인 오나라의 식량을 무단으로 탈취하고 어중간하게 양,번 동시 포위를 지속한 관우의 판단 자체가 오히려 보급에 난황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홍수를 예상한게 아니라 양번을 포위하려면 당연하게도 배가 있어야만 작전을 수행이 가능한겁니다. 21세기에도 홍수가 예상이 안되서 수재가 발생하는게 현실인데 관우가 무슨 수로 홍수를 예상합니까?
유봉과 맹달은 당장 상용을 완전하게 점거해서 안정화도 못시킨 마당에 양양 쪽으로 지원을 보낸다는 것은 지극히 관우 중심적인 이야기입니다.
@@haga6762맞지. 맞지. 백기나 조조같이 조나라 40만 대군이나 원소군 8만을 구덩이 쳐넣었듯이 우금7로군을 생매장 시켰어야 했는데.ㅎㅎ 솔직히 조조군에 남았을 때 백양전투때 안량 목 땄을 시절 서황이나 장료,장합처럼 완전 귀순하고 조조를 섬기지 괜히 ㅈ같이 큰 귀놈을 섬겨가지고 인생을 망쳤어.. 불멸이라고 칭송받으면 뭐해 신이 사당을 모셔지면 뭐해 나이 60도 못되고 아들과 함께 죽으면 촉까들한테 형주공방전에 모든 책임을 다지고 조리돌림 당하는데..ㅠ.ㅠ 나 같으면 진작에 하비성 지킬때 바로 성문열고 조조한테 서황이나 장합,고람이 한 것 마냥 찬양하면서 귀순신청했을듯...?ㅎㅎ
손권도 분명히 삼국통일을 꿈 꿨을 겁니다. 꿈은 100% 꿨다니까요?
진짜 손제리는 삼국통일같은 야망이 없던거같네요...
유비와 조조에 감히 비할수가 없는것같아요..
형주공방전을 보면 노숙의 부재가 참 아쉬운 상황이라고 느껴지는게 노숙이 있었다면 관우 죽이고 촉오가 전쟁하게 되는 상황이 아니라 관우의 북진으로 위나라가 혼란해 진 틈을 타서 합비를 공격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ㅠ
그러진 않았을거같아요
손권이 합비/수춘 방면으로 이후에도 성공한적이 없어요
공격하긴 어렵고 지키긴 쉬운 지역이라 정평이 나있고
영양가도 없었다고 해요. 손권측이 형주 형주 부르짖던 이유도 형주가 아니면 활로가 없었기 때문이라네요.
다만 노숙이 있었으면 유비의 의제를 그런식으로 쥭여버리는 병신짓은 안했을거같아요
@@서성주-l9b 제 생각은 다릅니다
관우의 북벌을 할때 조조는 큰 위기감을 느끼고 합비를 지키던 장료를 형주에 투입할정도로 합비는 빈집에 가까웠어요
사실상 오나라입장에서는 관우의 북벌때가 합비를 차지하기 가장 가능성 있었을 때죠
그리고 합비가 영양가가 없다는 말은 틀리다고 봐요 오나라의 입장에서는 합비루트를 통해 북벌하는게 가장 가능성있고 쉬운 방법이죠
또 회남지역을 얻는게 수도 건업을 방비하는데 더 효과적이죠 반면에 오나라는 강릉을 얻었지만 양양을 차지하지 못해 장강 방어선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죠
당장 오나라는 형주를 얻고도 계속 합비에다 꼴아박았구요
장기적으로 봤을때는 오나라는 형주보다 회남이 더 중요한 땅이었어요
@@성민준-n9j 좋은 말씀이긴한데 회남이 더 중요했으면 손오가 회남을 안먹고 관우까지 쳐가며 형주로 갔는지가 설명이 안되지않나요? 아마 합비가 빈집어어서 먹었다고 한들 수전에 익숙한 동오군이 위군을 오래 막을 순 없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형주는 말씀하신 것 처럼 장강방어라인의 완성에다가 강을 따라서 허창 등으로 나아가기도 쉬우니깐 그렇게 원했던거구요
@@서성주-l9b 글쎄요 장강방어라인을 완성지으려면 다른 중국 남부왕조처럼 최소한 양양을
먹었어야하는데 손오는 그러지 못했죠
그리고 회남지역은 오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회남지역을 먹어야 수도 건업을 안정적으로 수비할 수 있고 서주 예주까지 손쉽게 북벌 할 수 있죠 괜히 오나라가 형주를 얻고도
합비에다 꼴아박은게 아니란거죠
그래서 몇몇사람들은 관우를 통수쳐서
형주를 얻은 여몽을 보고 대국적으로 보지 못했다 하는것 같아요
@@서성주-l9b 형주를 통해 북벌을 해도 되긴 하겠지만 문제는 최소 양번을 모두 먹어야 허창까지 북벌이 가능하다는건데 이는 쉽지 않죠
특히 양양성은 중국 역사 통틀어 가장 견고했던 성중 하나였구요
결과적으로 손오는 형주를 통한 북벌을 별로 시도하지못하고 계속 합비만 공격하다가
촉이 멸망하고 진나라가 쳐들어오니 손쉽게 멸망했으니 오나라가 관우를 통수쳐서 얻은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봐요
제갈량은 유비 사후전까진 내정쪽에 전념해서 제갈량에게 책임을 묻는건 좀 많이 간것같습니다 차라리 법정에게 묻는게 적당할거같네요
ᆢ법 효직은 한중공방전 끝나고 얼마 안되서 죽었고 당시 법 효직은 방통의 후임이던 야전 참모총장이라서 전술 총 책임자임ᆞ
그렇게 따지면 전략안을 담당한 책임자이던 황권을 까야하는데 그 황권도 이릉대전은 좋게 안보던 입장이고(이건 제갈량이나 조운도 마찬가지고ᆢ)ᆢ 결국 그 많은 반대에도 강행한 사람은 유비라ᆢ 황권도 판 깔리니 일단 자기 할 일은 최선을 다해서하고 수륙양용이나 자기가 먼저 야전에서 허실을 파악하겠다고 하는 등 최대한 잘 풀려고 노력해도 유비가 딴거 시켰죠ᆞ(사실 황권이 하려던 일들이 다 장비나 관우가 살아있었으면 걔들 시키던 일이란게 참ᆢ 특히 관우는 수군을 잘 쓰는 편이기도 하고)
유비 입장에서 2인자로 미방, 상용에 유봉을 배치한건 나름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방통이 죽고 제갈량이 성도에서 나올수 가 없게 되버린 시점에서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관우에게 유비를 모신지 얼마 되지도 않는 입촉 이후의 인재를 2인자로 붙여주면 불협화음이 나지 않을까 염려한거겠죠. 입촉 이후의 인재를 다 제끼고 믿을만한 인재 보고나니 그게 처남인 미방과 양자인 유봉이었던거겠죠. 설마하니 오랜 신하이자 가족인 저들이 관우를 배신이야 하겠어 했겠지만 설마가 사람잡은...
연의 내용이지만 관우는 황충이 자신과 같은 5호대장에 올랐을때 익덕은 내 아우고 자룡은 형님을 오래 모신 중신이고 맹기는 명문가의 자손인데 황충은 뭔데 나랑 같은 항렬이냐며 성낸적도 있었으니
@@berry-kf6kd 정사에도 같음 사방장군 전 관, 좌 마, 우 장, 후 황 이었는데 장비는 거병동지고 형제 다름없으니 인정, 마초는 단순 객장이 아니라 유비나 조조랑 대등하던 군웅이니 인정 근데 듣도보도 못 한(전장에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황충이 자기랑 비슷한 서열 되니 짜증냄
형주를 그렇게 먹을 아이디어로 합비를 그렇게 공략했어 봐라. 수적으로 우위 점하고 있던 새끼가 장료한테 몇 번이나 털려 처 먹던 주제에 형주 먹을 때는 존나 신속 정확 빠르고 졸렬하게 잘 하는 새끼가 합비 때는 왜 그렇게 못 했을까?ㅋㅋㅋ
아마 만총이 합비에 있었거나, 형주와 달리 합비는 수전비중이 낮아선지도?
만약 만총이 번성에 없었고, 그래서 번성을 포기했다면 관우는 그대로 허창으로 갔을것이고, 손권도 형주흘 도모할 꿈도 못꿨겠지요.
합비를 칠때는 위나라랑 짝짝쿵을 못하거든요 ㅋㅋ
딱히 손권이 가만히 있었어도 관우가 아무리 날고기어도 혼자서 형주의 촉 병력만 가지고 중원까지는 무리죠.....위나라의 최악은 남은 형주 상실과 허창이 공격받는정도? 아무리 짬밥이 있었다지만 미방이 형주 2인자 였던 것 부터가.........뭐 훗날 촉에서의 북벌과 호응해서 그때 위나라 최고의 위기를 불러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당장 손권이 지금 관우를 막지 않으면 오나라도 위험할 것이다 라고 판단할 정도는 아니었죠......촉이 형초와 파촉에 서북까지 먹는다해도 질적으로 위나라와 해볼 정도지 전력상으로만 본다면 여전히 중원 하북의 위나라가 압승........오나라가 멍해서 1강 1중 1약이던가 오나라가 전력을 비축해서 1강 2중정도였겠죠....
더군다나 서북까지 장악하고 나면 촉의 무장 중에서 1군 에이스들은 거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무엇보다 오나라도 기회를 날렸다고 할 수 있는게 관우의 북벌에 위나라는 장료를 빼와야하나 고민하던 시기라.......오나라 입장에서 서주로가는 문이 열리려는 찰나에 도어락을 직접 붙여준느낌......오나라가 서주를 먹었어도 지킬 역량이 있었을까하는 고민도 아무렴 촉의 위협에 위나라가 오나라에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 한정되는데 그것에도 지키지 못할 정도라면 삼국시대라는 이름을 떼야겠죠.........우리나라 삼국시대에 가야포지션......
오늘 영상을 보고 감상평을 남기고자 한다!!
- 우선 번성공략전의 실패에 대해 관우는 분명 책임이 있다.아무리 조조가 형주까지 마수를 뻗어서 먼저 공략은 했으나 뒤에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반드시 배치하여 후방(형주)의 안정을 해야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당했다.
- 유비와 제갈량도 잘못이 있다!!형주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면 관우를 뒷받칠 수 있는 능력있는 인재를 배치함으로써 안정을 도모하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해야지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미방같은 인물을 배치하여 결국 오에게 빼았긴건 물론 이릉대전에서 대패까지 하니 이들의 책임은 면할수 없다!!(이릉대전에 관한 건은 해당 동영상보고 평할게요!!)
- 가장 큰 잘못은 오나라의 손권,여몽,육손에게 있다.(물론 육손은 그 때의 위치가 모호할 수 있다.)첫째,형주이후 무얼할 건가에 대해 어떤생각도 하지 않았고,둘째,관우를 죽여놓고는 촉에 대해선 아무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또한,여몽은 뭐했나?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노숙보다 뛰어난 능력도 아닌데 앞뒤생각 안하고 형주를 친 것은 아니다.솔직히 오나라는 형주가 필요한게 아니라 요즘 저장성,푸젠성,광둥/광시성 같은 남쪽지방이 아닐까?(이 지역은 추측컨데 5호16국시대부터 시작한게 아닌가함.)아무튼 현상유지를 원하면 왜 형주를 점령했는지 알 수 없으며,동맹까지 끊으며 점령했는지 알 수없다!!
- 결론 : 번성공방전은 이릉대전을 불러왔고 위가 나중에 진이 되어 통일하는데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 추신 : 여기서 손권은 능력은 없었고,다만 권력의 의지는 확고했다.(왜,육손이 대들다 죽은지는 다 알고 있었어 더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몽은 괄목상대로 거듭나도 지식은 있어도 지혜는 여전히 없다는 걸 알 수 있죠. 결국 사람은 안 바뀐다는 거.
한중대전이 217~219년입니다. 관우의 출병은 219년이구요. 정확히는 위나라 철군은 3월 관우는 7월에 거병 12월 사망...
한중대전이 삼국지에서는 비중이 적은데 촉으로서는 최고의 승리이자 3년이나 지속된 국운을 건 전쟁 였습니다. 2016년 부터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삼국지에서 제일 장기전이 아닌가 합니다.
촉나라는 국력을 다해서 겨우겨우 위나라와 싸우고 있어서
군사적 압박을 덜기 위해서 관우한테 양양을 치라고 한거 같습니다.
기록을 보면 218년10월에 남양군(번양바로 위)에서 후음이 위나라 반란을 일으켰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관우는 지원병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관우가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으면 이때가 최고 적기였을 것입니다.
그런 호기를 보고 있을 만큼 한중대전이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였습니다.
한중대전이 격렬한데 또 하나의 전선을 열기는 어렵겠죠.
그리고 3월 철수가 위나라가 완전 철군을 한건지 전술적 후퇴한건지
유럽국들 처럼 조약을 맺지 않았으니 촉에서는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위나라가 철수를 하고 한숨 돌리면서 한중 정비를 하면서
관우의 북벌로 위나라의 압력을 형주로 돌려서
한중대전 마무리를 하려고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모든 전쟁은 마지막이 서로 제일 고통 스러운 단계 입니다.
압도적으로 이긴게 아니라 3~4년간 엄청난 물량의 위나라에 대해 국운을 걸고 쥐어 짜서 버티는
촉은 거의 거덜나기 직전 수준였을겁니다.
한중은 지형상 주요 요지에 성과 진지를 구축하면 침공하기가 대단히 어렵죠.
나중에 왕평이 낙곡대전으로 20년간 한중을 안전하게 한 것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관우 패망을 보면 위나라에서 한중대전에서의 병력이 여유가 있어서
장안에서 정비한 후에 서황이 대규모 지원군을 계속 보내서 지게 된겁니다...
우금의 7군이 전멸하고 바로 추가 지원군을 안보낸건 한중대전에 파병한 군대를 정비하고 이동한 시간이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
장안에서 번성까지는 한달 이상 걸립니다. 그러니 조조가 당장 파병할 군대가 없으니 천도 하니 하는 난리를 친 거 같습니다.
그 당시 위나라의 국력이 관우군 몇만을 못 막는게 말이 안됩니다.
군대 동원 시간상 차이가 났다고 보면 딱 맞습니다.
관우가 한중대전에서 위나라가 확실하게 철수를 했고 더 이상 한중으로 파병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우금의 3만 위나라 포로를 데리고 형주로 귀환했어야 했는데
놀라운 승리로 번성와 양양이 떨어지기 일보직전이니 욕심을 내다가 패망한 것 같습니다.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번 양을 먹게 되면 중원에 대해 엄청난 거점을 마련하는거라 욕심이 안날 수가 없죠...
그게 아니면, 우금과 3만의 포로로 위나라와 잠시 평화협정을 맺어서 한중을 안정시킬 시간을 버는것도 좋은 방책 였을 겁니다.
이래서 관우 측에 책사가 있었으면 여러가지 방책들을 제시 했을텐데 한중대전에 상용까지 갑자기 흡수해서 여력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위나라에서 조비가 황제 참칭을 하기 전이라 평화 조약을 맺는데 명분도 나쁘지 않았을겁니다.
조조 진영에서 신세 질때 우금과도 잘 아는 사이니...방덕한테도 풀어 줄 수도 있으니 좀 대기 해라 이러면 방덕이 발작도 안했을거구요..
계속된 전쟁에 백성들을 안정 시키자등 여러가지 이유로 충분히 조조와 협정을 맺을 만 했습니다.
조조는 손제리랑 달리 협정을 먼저 손바닥 뒤집듯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한중 상용 형주를 안정 시키고 소위 융중대 전략을 제대로 펼 수 있었겠죠.
마지막으로 맥성 위치가 강릉 바로 옆입니다. 물론 촉으로 가는 길목이긴 한데,
관우가 양양에서 패하고 바로 촉으로 도망갔으면 살았을 가능성도 있는데
강릉을 다시 탈환 하려고 가까운 맥성에 가서 한달 넘게 전투를 하다가 도망가다가 죽었습니다.
최고의 철군 방향은 양양에서 형주 수군과 같이 한수를 통해서 한중으로 바로 갔으면 병력도 거의 대부분 유지 했을 겁니다.
관우의 패주가 심각한게 형주 수군이 궤멸이 돼서 나중에 이릉대전에서 수군이 제대로 없어서 공격 후퇴가 늦게 되고,
산중에 700리 진지를 세우다 화공으로 패망하는 원인이 됩니다.
소설에서는 도망가다 잠시 버려진 맥성에 들렀다 라고 나오는데 다른분 유튜브를 보면 실제는 규모도 어느 정도 있는 성입니다.
도망가다 들렀다기보단 강릉성및 형주 재탈환을 하기 위해서 두달 가까이 있었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습니다.
자존심을 좀 굽히고 다음을 기약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우가 죽음으로 오하고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버려서...유비가 이릉대전을 일으킬 수 밖에 없게 되죠...
관우가 일시적 자존심 보다 본인의 위치를 생각 했으면...
물론 여기서 장렬하게 죽어서 충의와 의협의 신으로 아직까지 추앙 받고 있긴 하죠....
누구의 탓이 가장 큰지 꼭 한명을 꼽자면 저는 미방을 꼽겠습니다.
미방은 나름 초기때부터 형인 미축과 함께 유비를 따라온 최고참 장수중 하나였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고 미축도 여전히 유비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는데, 그가 배신을 했다는게 어이가 없을정도이니 말 다했죠.
이 어이없는 배신만 아니었으면 오나라가 쥐도새도 모르게 형주를 차지할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 미방을 업신여겨서 배반하게 만든게 관우임 ㅇㅋ?
8:47 이건 리얼이다... 이 때 조비네가 쳐들어왔으면 손권 시절에서 오나라는 끝났을테니
자 이제 저는 이걸 나무위키에 적어봅시다
삼칠님이 언급했다시피...어찌보면 촉의 인재부족도 영향이 큰거 같습니다.
촉/한중을 정복하고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통의 죽음으로 인해
관우를 서포트할 인재가 부족했다는 것도 사실이고...
이런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아직 국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우가 왜 무리하게 북벌을 감행했을까도 의문이죠...
물론 손권이 배신때리기 전까지 성공적이었으나,
손권과의 동맹은 이 시점에도 불안했고,
형주라는 불안요소도 있었는데...오히려 3~5년 동안 내정을 중시하고,
손권과의 동맹도 안정시키고 조조 사후 북벌을 감행했으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 듯 합니다. (X맨 조비 활약은 덤 ㅋㅋ)
삼국지의 매력은 누구나 한번씩 실수를 한다는 부분인데 그점에서보면 비율적 차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양쪽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던걸로 보입니다.
손권이 형주집착만 안했어도...
예전 삼국지 애니에서는 관우가 육손이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애송이라고 깔보면서 업신 여기다가
그의 계략에 말려 죽는 것으로 나오는데 정사에서는 나이도 30대 중반에 경험도 풍부했음.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손권이 가진 통찰력의 한계가 만들어낸 결과라 봅니다. 노숙의 장점이 패기와 통찰력이란걸 알면서 완전 무장이기만 한 여몽에게 기존의 전략을 다 바꾸게 한건...
형주가 물론 수.륙에서 모두 지키기 좋은 요충지이나 그건 전략전술에 따라 충분히 뚫릴 가능성이 있으며, 서주가 얻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땅은 맞지만 조조가 장료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니 빈집털이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손의 찬성을 한 걸 보면 국력이 위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봤을 수도 있지만 관우의 출정이 미칠 영향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니 이도 그리 좋게 보이진 않네요 ㅎㅎ
길게 써봤는데요 ㅎㅎ 삼칠이님 반응이 궁금하네요.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정도 길이론 다른댓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핫핫
아무리 양아치에서 교화되어 우등생 겸 문무겸비한 여몽이 되었어도 역시나 그 뿌리는. 대국을 보는 시각의 협소함은 어쩔 수가 없군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고우영 삼국지에서 “제갈량 관우 제거설”을 보여줬죠
각색이라지만 이해가 안갔던..
실제론 제갈량이 관우보고 염공 그러니까 수염아저씨라고 별명으로 불려도 관우는 좋다고 웃을 정도로 둘 사이는 친한데요? ㅋㅋ
당시엔 부모가 물려준 이름도 함부러 부르는게 아니라고 하던 사회인데 그 상황에서 저런 별명으로 불려도 상관없을 정도면 이미 논할 가치도 없는거죠
관우랑 제갈량은 사적으로도 친하고 개인적으로 연락도 하는 사이였습니다. 제갈량은 관우를 존중하고 관우도 제갈량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이해가 안갈만 합니다.
거기다가 마초들어왔을때 관우 띄어준거보면 그런거같진않음
또 제갈량 사망직전까지 형주 그리워하고 죽ㅇ.ㅁ.
고우영 만화+낚은애의 삼국지 죽이기 같은 개소리 서적땜에 파성넷 정사 삼국지 알려지기 전에 한창 퍼진 뇌피셜
그 각색덕에 관우는 더 영웅이된거라고 봅니다 제갈량이 질투하는 인물로 ㅋㅋ
주유와 노숙이 능력이 부족해서 유비를 안친게 아닌걸 여몽은 몰랐던거죠.
근데 아주 드문일도 아닌게
여포의경우도 원술과 손잡고 조조를 견제했어야했는데 진규말듣고 조조와 함께 원술을 친걸 생각하면.......
손제리와 여몽의 전략적 안목은 여포와 비슷할지도?..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여몽이 훌륭할지 모르지만...)
거기다 게임하다보면 가끔있습니다. 1등을 노리는게 아니라 단기적인 이득만보고 움직이는사람들요.
은근 생각보다 꽤 많죠.
내가 5일 동안 생각 해본 결과 왕평은 항복한지 얼마 안되서 안된다 쳐도 이적과 요화 정도면 강릉을 맡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삼칠이님이 답장 다는 일은 없겠지? 에이 설마~
낄낄. 너무 재밌습니다. 완성도가 높아서 영상 기획부터 엄청 오래 걸리겠습니다아.
여몽:손권은 말년에 가서 이궁의변 등 여러 뻘짓을 하긴했지만 오에 촉과 위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들릴당시 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할정도로 영민했다. 그런데 영상에서 여몽은 서주공략이 불가능 하다 주장하고. 촉의 뒤를 쳐야한다고 손권을 설득했다. 여몽은 영민한적 있었지만 손권의 천성을 자극해 촉의 뒤를 치게 하였으며 관우가 오와의 우호를 노력하지 않은것처럼 관우는 여몽이 드러눕자 방심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미루어보아 관우는 여몽을 높게 평가하였을거로 보이며 이러한 여몽또한 관우와의 우호를 증진시키려한 점이 없었고. 노숙에게 괄목상대를 말했던 여몽은 관우의 뒤를 친다는 계책을 실행에 옮기기전에 그 계책을 다시 눈을 비비고 돌아보지 않았다.
지가 먼저 배신대리고 관우 죽여놓고 하는 말이,우리는 힘을합쳐야 되는 거 너도 알자낭 위나라 부터 조져야지.관우 죽인 건 미안해 참고로 그건 여몽이 죽이라고 해서 정말 방도가 없어서 죽인거야ㅠㅠ제발 화 풀고 잘 해보자 이제ㅠㅠㅠㅇㅈㄹ
적어도 관우 살려보넸으면 저렇게까진 문제 없었다
사실상 조롱한거라고 봅니다. 이후에 주태를 한중태수로 임명하고 유장을 앞세우며 남만을 충동질 하는 등 손권의 도발은 끝이 없었거든요. 사실상 형주공방전 이전에 있었던 익양대치를 비롯한 촉과 오의 충돌은 그 시작은 형남에 손권이 관리를 파견하면서였죠.
당연히 오나라도 위로 진군했다면 훨씬 큰 땅들을 얻었겠지만 겨우 형주 다 얻지도 못하고 망했죠. 손권이 여기서 보여준 통수를 몇가지 이유로 추측해봅니다. 1. 장강아래 우물안 개구리가 되있었는데 처음 전투인 적벽에서 큰 승리를 얻어버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위나라를 업신여기게 됬다 2. 관우가 쳐들어가서 성과를 얻는것을 보며 자신이 형주만 얻는다면 당연히 관우처럼 위나라를 몰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3. 늘 양양의 유표도 못이기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모자람이 아니라 비옥한 형주빨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4. 합비 수춘 방면의 공격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 그쪽은 불가능하고 형주쪽만이 가능한 루트라고 생각지만 실제로 해보니 더 답이 없어서 이후 결국은 합비 수춘방면에 집중하게 된다 5. 원래 인간 본성이 그런데 특히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권력자의 비리보다는 내 옆집 사람이 이득보는것을 더 미워하기에 거지인데 인망은 자기보다 높았던 유비가 자신보다 더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미웠다
삼칠이님의 유비도 잘못이 있다라는말 공감하는데요 미방이 배신하리라고는 미방애미도 몰랐을듯.
유비에 방심도 꽤큰게 그이유는 장료한테 10만이 박살나고 주유 노숙이 죽었기때문에 오는 골치거리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을거같음..
앜ㅋㅋㅋㅋㅋㅋ 마지막 대사 너무 좋아욬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론 미방이 가장 문제였다고 생각하는게 완에서 반란일어나서 조인이 양번 비운사이에 관우가 바로 쳤으면 먹었으리라 봄. 근데 미방이 군량건초 다 태워먹는바람에 원정도 2개월 늦어지고 그것뿐만 아니라 오나라 상대로 버티지도 않고 바로 항복해 버림... 촉빠입장에서 여몽이랑 손권이 야속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욕은 못하겠는게 저같아도 불확실한 캐이득보단 눈앞에 확실한 이득을 우선적으로 취하는게 맞다고봐요. 특히 본인 국가와 자국민의 이득을 위해서 일해야하는 입장에선... 다만 오나라가 진짜 싫어진건 형주를 먹은건 그렇다 치지만 그걸 기반으로 위나라 상대로 임팩트 있는 원정을 간것도 아니었고 마량, 비위, 장완등에 버금갈만한 형주출신 인재를 영입한것도 아니면서 왜 먹었는지 납득이 안가는듯
암만봐도 손권이죠ᆞ
교주 문제도 지가 직활하려다가 두고두고 소화 못 시켜서 망할때도 문제 일으켯는데 형주도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이릉대전 당시에도 습진이나 사마가를 포함한 촉에 가까운 인사들이나 패잔병 규합세력에게 시달리는데(사실 유비도 이걸 고려해서 이릉대전을 치른거라ᆢ아직 소화 못시킨 형주니까 되찾을 가능성이 있어서) 이게 이릉대전 끝나고도 몇년은 계속된 일이니ᆢ
촉도 익양대치나 청니대치 문제로 곱게는 내주기 싫어도 결국 북벌에 필요한 전진기지 성이 있는 남군ᆞ무릉ᆞ영릉은 냅두고 강하ᆞ장사ᆞ계양은 넘겨주는 선택을 한건데요ᆞ(뭐 노숙도 대국적인 관점때문에 거기까지만 뜯어낸거라)
근데 그걸로는 만족 못해서 다 뜯어내겠다고 통수친걸로도 모자라서 양&번이라도 쳐 먹었으면 몰라도 그것은 또 못해서 전선은 괜히 더 길어지고 소화 못시켜서 내상은 내상대로 입고 외교는 외교대로 꼬이는 등신같은 선택을 했으니 그야말로 딱 지방 제후 수준 밖에 안되는 기량이 손권ᆢ
냉정하게 말하면 가장 잘못은 솔직히 관우입니다
오만하지 말고 좀더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손권을 설득했다면 일이 거기까지 가진 않았을것 같아요
그렇다고 관우가 조조랑 친분이 없는것도 아니고
어떤일이있어도 결국 그 군대승패의 책임은 최고지휘관이 질수밖에 없죠
유비의 양자인 유봉, 개국공신 미방 둘이 이렇게 까지 폐급일줄 몰랐던거죠. 유봉이 원군을 보내거나 미방이 항복을 안했거나 둘중 하나만 했어도 관우가 죽지는 않았을듯
일단 적어도 저 일 전에 나름대로 두 사람이 능력을 보인건 맞음. 일단 미방은 개국공신+외척 대우+ 그로인한 신뢰가 잇다고 하지만 형주에서 2인자라고 할 수 잇는 게 남군태수인데 그걸 받앗다는거나 젊은 시절 조조가 회유할려고 팽성상을 줫다는거보면 단순히 외척이라고만 그렇게 줄리는 없고 유봉 경우는 조조가 한중공방전에서 유봉에게 많이 시달려서 그런지 저 가짜 아들놈 따위 우리 황수아불려서 조지겟다! 이 소리를 할 정도로 능력을 보이긴 햇음. 근데 이렇게 졸렬한 성품인지는 몰랏겟죠 ㅋㅋㅋ
참 번성공방전을 볼 때 마다 육손이 전장에서는 최고였을지 몰라도 큰 그림을 보는 능력(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 하거나 큰 판에서 국가의 스탠스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은 제갈량 사마의에게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갈량이나 사마의 였다면 촉을 배신하고 관우를 죽음으로 몰고가면 결국 촉의 모든 화살은 본인에게로 날아 오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위나라에게 대륙의 패권을 내주게 되는 행위란걸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손제리의 삽질로 인해 1강 2약으로 굳히기 들어간건 진짜...노답..
천하통일의 기개라도 없으면 초치기라도 하지 말던가..
한창 잘 나가던 촉을 주저앉히게 만들고 조비가 팝콘먹게 만든 손제리..
손권을 수성의 달인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야망도 패기도 없는 그냥 보스자리 해먹어보고 싶은 똘추에 불과한것일뿐..
그러게 대출을 해갔으면 지때 갚았어야지 입촉도 막아버리고 상환도 안하고 제리 혈압을 왜높힘 허허
예전에 본글은 오는 사실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라 호족 연합체라 처들어가서 얻어질 이득은 대부분 군주가 얻게될 것기에 공격에는 무관심했고 누군가 처들어오면 자신들의 모든걸 잃게 되기에 수비엔 전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강동은 정치적으로도 가장 후진국임
책임자 순위
1.미방->배신자
2.관우->서주시절부터 유비를 따른 미방이 배신하게 만들었음
3.유봉->혹시모를 사태를 대비에 상용에 주둔하면서 관우 헬프치라고 했더니 군악대로 싸우다 관우 지원도 못가고 상용도 빼앗겼음
이렇게 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가장 큰 주범은 무조건 오나라인게, 촉이나 위에게 오의 배신 시나리오는 if의 영역이라 어쨌든 모든 게 현실화 되지 않은 상상일 뿐이었지만, 오는 자신의 결단으로 행동한 것인 만큼 이후 어떻게 될 것인지 촉의 인사들에 비해 충분히 예측 가능함에도 저지른 일이기 때문.
방통이 실제로 전략가였을지 모르지만 살아있었다면 관우옆에 보좌잘했을듯. 일단 형주의 유력가 자제였던것도 크고(제갈량은 서주출신에 유력가의 사위였으니 형주 민심장악력은 방통이 밀리지 않았을듯) 적어도 미방같이 배반은 안때렸을듯
다음화 백호 형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졸장ㅋㅋㅋ
조비 까기 좋아하시군요!아주 굿이예요!굿
육손:오나라 최고의 히트상품이면서 여몽이 형주를 먹는것을 말리지 않고 도왔다
오나라 입장에서 통수만 맞앗는데 왜 말려요 ㅋㅋㅋㅋ
안말리면 전쟁 일어나니까요 ㅋㅋㅋㅋ 안말리고 관우죽여서 이릉대전일어 난거잖음
아왜 구독자가 안늘까 진짜 삼국지체널중에 제일 좋아하는 체널인데
근본을 뜯어보면 애초에 여몽이 손권한테 제안을 안하거나 그제안을 손권이 칼차단했으면 그런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군요
해석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글 써봅니다
형주를 차지하는 부분에서 기회를 노린 손권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한 행동으로 볼때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나요?
군주로써 어떤 평을 받든 현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볼때 잘한일 같은데 이부분이 까이는 이유가 무엇인이 궁금합니다
형주를 얻은걸로 손권이 이익본게 겨우 촉보다 땅이 넓어졌다는겁니다. 위나라의 땅을 뺏어야 삼국사이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데 오히려 동맹국을 쳐 조조가 죽은 위나라가 안정될 시간을 벌어줬죠. 결국 손권은 형주에서부터 아무런 이익도 거두지못했고 제갈량은 줄창 한중에서부터 북벌을 일으켰지만 실패. 최후엔 양국 모두 사이좋게 망하는 결과를 초래한겁니다.
@@372tv 늦은 시간에도 이런 귀한 답변 주셔서 감사해요
이 답변으로 삼칠님의 삼국지를 보는 관점을 조금은 이해한거 같아 좋았습니다
아직 의문이 조금 남아 조금더 질문을 더해봅니다
결과적으론 손권의 선택이 아쉽지만 그 순간의 선택을 볼땐 촉보다 더 우위에 서고 통일에 대해선 넓은 선택지를 택할수 있고 영토를 넓힐수있는 수단을 택한 점으로 볼때도 저의 소견으론 손권이 오국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봤거든요
이런점을 따져 보더라도 손권의 선택은 잘못되었다 라고 해두는게 맞는것일까요?
솔직히 저의 생각은 어떤 답을 정하고 여쭤 본거라 쉽게 마음을 돌리기 어려워 제가 생각한 답을 몇자 적어봤습니다 ㅎㅎ
결과적으로 아쉽게 됐지만 순간의 선택으로는 손권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전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 역시 모두의 입장을 비판하는 영상을 남길만큼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각도 있습니다. 손권은 잘될거라고 생각했겠죠 물론! 실제로 조비의 이상한 판단으로 양양성을 오군에게 '아주 잠시' 뺏긴적도 있습니다. 조비가 더 멍청했으면 그대로 형주에서 재미 좀 봤을수도 있어요.
@@372tv 감사합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영상을 만들어 주셔서 잘 보고있습니다
실제로 시각도 좀더 넓어지고 재미있는 사실들도 알게 되고요
이전에 보았던 괴변을 사실인냥 이야기 중심으로 가지고와 까고 또 까는 영상만 보다가다 이런 생각 하게 하는 영상을 보니 너무 좋았어요
몇번을 다시 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손권이 대국적인 뭔가를 노렷다면 노숙이 한대로 반만 먹고 뒷탈 없이 형주 북상에 맞춰서 합비를 노린다는 각을 잡앗겟지만 손제리는 소탐대실을 많이한다보니까 형주를... 사실 손권의 이런 점 때문에 노숙이나 주유처럼 뭔가 대국적인 천하패권 포부를 가졋다기보단 그낭 할거해서 지방 정권을 누리는 제후급 정도 밖에 목표로 삼는 현실안주나 생각하는 존재로 판단하는 이들이 많죠. 그래서 코삼마져도 14의 손권에게 주의가 유비처럼 왕도나 조조처럼 패도도 아닌 할거일 정도니까요. 그게 아니면 손제리의 소탐대실은 그냥 순간 감정적인 거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수준이라서요.
촉나라로 따지면 에초에 손권이 동맹을 결성한 이유를 생각하면 관우를 혼자 보내거나 하지는 말아야 하는데...장비나 조운이라도 보내거나 아니면 관우를 잠시라도 익주에 들어오게끔 해서 잠시 쉬어가기를 했어야 하고
오나라는 사실상 촉나라와 척을 지는 행동을 해버려서 판세를 바꿀 유일한 희망을 자기 손으로 없애버린 최악의 상황이 되버리고 만약 조비가 이대로 약해진 두나라중 촉나라를 먼저 공격하면 촉이 멸망하고 바로 오나라는 완전히 고립 상태에 빠지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을 하니...
솔직히 이것은 오나라의 잘못이 매우 크지만
그만큼 유비도 한중왕이라는 타이틀에 너무 심취해서 저지른 패착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유비가 그 정도로 경솔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일단 한중을 점령하고 내부 정비나 다른 인재를 빼서 형주로 차출할 사정이 아니던지... 그런 속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역시 방통이 없다는 거.ㅠㅜㅜㅜㅜ
손권이 관운에게 혼담을 던진게 유비와 관우를 이간질하려던 정치적 공작이었다는 견해도 있더군요.
유비와 관우는 이간질이 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조조밑에서 다시 돌아왔으며, 심지어 그후에도 관우는 유비의 2인자였습니다. 더 말이 필요없죠.
뭐, 어디까지나 "되면 좋은 거고"식의 매우 간잽이스러운 발상이지만, 세상물정 단 1도 모르는 바보가 아닌이상 기대 자체를 안하는게 정상인 발상이었죠. 하지만 그런 의도가 0.1%라도 들어갔다는 게 애초에...
@@372tv 유비와 관우가 서로를 믿는다 치더라도 주변에선 어떻게 생각할까요? 국가의 원탑이랑 2인자인데 혼인관계에서는 관우를 하나의 제후로 취급하고 있지요.. 의식이 될수밖에 없겠죠. 물론 추측일 뿐입니다.
관우가 혼인을 거절할 때 쥐새끼 드립을 치면서 거절한 것도 이런 논란에 대해서 의식해서 과도하게 반응한게 아닐까요?
@@최진우-f8p 그건 그냥 개소리같은데..
그 당시에 관계를 더 돈독하기위해 자식들 끼리 혼인 많이 시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