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박인수교수는 1938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에서 유학을 했고, 서울시청에서 운수과장, 도시계획과장, 건설과장 등 요직을 거쳤으나, 너무나 청렴하여 자식들 학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했고 노래를 한 번 시작하면 트로트에서부터 이태리 민요, 오페라 아리아, 가곡에 이르기까지 계속 불렀다고 한다. 어머니는 한국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매우 알뜰했고, 음식 솜씨가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네 살 되던 해에 서울 내수동에서 미아리로 이사를 했다. 그때는 미아리에 집이 몇 채 없었고, 산과 들, 논과 밭만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고 한다. 미아리 인근에 살면서 여름에는 붕어와 피라미를 잡으러 다니고,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돈암초등학교에 진학한 후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소년지로 나오는 것들은 죄다 읽었고, 중학교 땐 세계 명작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다. 웬만한 명작 수준의 책들은 중학교 때 다 뗐다. 독서광의 면모. 중학교에 입학을 한 뒤부터는 럭비부에 들어가고 기계체조도 배웠다. 유도부터 수영에 이르기까지 안 배운 종목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싸움 꽤나 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다. 그러다 싸움패인 ‘미아리 오형제파’를 결성했다. 친구들에 의해 두목으로 추대되었고, 싸움질을 일삼고 다니면서도, 마도로스가 되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을 꿈꾸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따라 동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성가대를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말 교회 목사로부터 성악을 하라는 권유를 받고, 마도로스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성악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바로 음대에 진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구청에 임시직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야간으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다녔다. 그러면서 당시 대한민국의 3대 테너 중 하나였던 이화예고의 이우근 선생에게서 무료로 성악 레슨을 받았다. 그 덕분에 1960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하였다. 대학 시절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반찬이라고는 콩나물과 김치가 전부였다. 특별한 날에는 어묵을 먹는 게 다였다. 그래서 봄, 가을 주말마다 중국집 결혼식 하객 행세를 하고 몰래 피로연장에 가서 고기를 먹으면서 영양을 보충하고 성악을 공부했다. 1967년 국립오페라단에서 '마탄의 사수'를 올릴 때에 주인공 ‘막스’ 역을 맡아 학생 신분으로 데뷔하였다.그런데 공연 당시 잘하고 싶은 욕심에 발성을 바꾼 게 화근이 되어서 오페라 자체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서울 시내 일간지들이 일제히 혹평을 하였고, 결국 오페라 무대에 서자마자 한국 오페라계에서 매장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 후 남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돈을 벌었으나, 그것마저 실패를 하였다. 결국 어렵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1968년 서울 시향과 협연으로 아내와 함께 부부 음악회를 열었는데, 다행히 좋은 평을 얻었다.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고, 프리마 오페라단에서 올린 '사랑의 묘약'에서 ‘네모리노’ 역을 맡아 드디어 재기에 성공했다. 1969년에는 친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젊은 성악가들을 모아 ‘서울 오페라 아카데미’를 결성했다. '라 보엠(자코모 푸치니)'을 제작해 우리나라 최초로 원어로 불렀다. 그렇게 무대에 올린 오페라가 성공하니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고, 작곡자들도 자기 작품을 노래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의 노래가 FM 전파를 타고 방송되기 시작했다. 마침 버펄로 심포니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로 일하던 서울대 선배가 추천을 하여, 1969년 여름 버펄로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페라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1970년 5월 미국으로 진출하였고, 줄리아드 음대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 클래스 오디션에 합격하여,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성악 교육을 받았다. 생활비를 매달 받긴 했지만, 뉴욕의 집세를 감당하기엔 빠듯하여, 뉴욕의 한국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1976년부터 미국 뉴 헤븐 오페라단(New Heaven Opera)과 버팔로 오페라단(Buffalo Opera)에서 '라 보엠'의 ‘로돌포’ 역을 했고, 캐나다 온타리오 더 쇼 페스티벌(Ontario the Show Festival)에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바쿠스’ 역을 했다. 1년에 반 이상은 미국 전역과 남미, 캐나다 등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가 1983년에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2003년 퇴임할 때까지 3백회가 넘는 오페라 공연을 했다. 1989년에는 클래식과 가곡을 접목한 국민가요 '향수'를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불러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는 공연 직후 클래식계에서 '클래식 음악을 모욕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자신이 단장으로 내정되기까지 한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을 당했다. 당시만 해도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크로스오버는 상당히 생소했고, 이 때문에 클래식계에서 반발이 심하였다. 그러나 4년 후 시작된 KBS의 , 파바로티를 비롯한 3대 테너가 주도했던 성악계의 크로스오버 추세가 자리잡힌 것을 보면, 도리어 선견지명이었던 셈. 2003년 서울대 정년퇴임 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음악대학원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매년 50회에 가까운 국내외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가을달은 유난히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우리나라엔 큰멍뭉이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산책은 늘 밤에 시키죠. 고즈녁한 울동네에선 아직 멍뭉이들과 함께 달과 별을 볼 수 있어요. 매일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을 헤이고 뜬 달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그안에 젖어들 수 있는 감성을 아직 놓치지 않은 내가 아직은 대견해요. 이렇게 고요히 흘러가는 시간들도 언젠간 뚝 끊겨버리고 심연속으로 사라져버릴 날이 오겠지만 오늘도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사랑할 수 있는 나를 거울속으로 들여다 봅니다.
'이 마음 저 밤새와 같이 이 밤 허비며 사랑 노래 부르네'~~~ 이 부분 가사 너~무 좋네요 👍 올려주신 박인수교수님 약력 읽어 내려가다가 롤러코스트같은 인생에 울어 버렸네요😭 익히 전해 듣긴 했어도 상세한 얘기는 처음이라 인간적인 면모와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에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분이 늘 건강하시길 빌어드립니다~:; 선생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요''',,,* *좋은분과의 인연과 과거생활도 호중씨를 떠 올리게 합니다*
@@고은비-e4t Dear 김호중 트바로티 님 ! 🌟 울 호중별님은 * 경국지색^^ 리즈가 올린 댓글에 조회수가 팔백이 넘는 쾌거를 올렸다오^^ 호중님 보헤미안 랩소디 듣고 적었다오~~~ 모두 입소문해주고, 꼭 한번 들어가 보셔요^^ 그리고 강허달림의 * 미안해요... 오늘 내내 들었는데, 알고보니 호중님이 좋아해서 추천한 곡이 랍니다. 🌟💜🌟💜🌟💜🌟💜🌟💜🌟
테너 박인수교수는
1938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에서 유학을 했고, 서울시청에서 운수과장, 도시계획과장, 건설과장 등 요직을 거쳤으나, 너무나 청렴하여 자식들 학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노래를 좋아했고 노래를 한 번 시작하면 트로트에서부터 이태리 민요, 오페라 아리아, 가곡에 이르기까지 계속 불렀다고 한다. 어머니는 한국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듯 매우 알뜰했고, 음식 솜씨가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네 살 되던 해에 서울 내수동에서 미아리로 이사를 했다. 그때는 미아리에 집이 몇 채 없었고, 산과 들, 논과 밭만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고 한다. 미아리 인근에 살면서 여름에는 붕어와 피라미를 잡으러 다니고,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돈암초등학교에 진학한 후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소년지로 나오는 것들은 죄다 읽었고, 중학교 땐 세계 명작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다. 웬만한 명작 수준의 책들은 중학교 때 다 뗐다. 독서광의 면모.
중학교에 입학을 한 뒤부터는 럭비부에 들어가고 기계체조도 배웠다. 유도부터 수영에 이르기까지 안 배운 종목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싸움 꽤나 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다. 그러다 싸움패인 ‘미아리 오형제파’를 결성했다. 친구들에 의해 두목으로 추대되었고, 싸움질을 일삼고 다니면서도, 마도로스가 되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을 꿈꾸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따라 동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성가대를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말 교회 목사로부터 성악을 하라는 권유를 받고, 마도로스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성악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바로 음대에 진학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구청에 임시직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야간으로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다녔다. 그러면서 당시 대한민국의 3대 테너 중 하나였던 이화예고의 이우근 선생에게서 무료로 성악 레슨을 받았다. 그 덕분에 1960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하였다.
대학 시절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반찬이라고는 콩나물과 김치가 전부였다. 특별한 날에는 어묵을 먹는 게 다였다. 그래서 봄, 가을 주말마다 중국집 결혼식 하객 행세를 하고 몰래 피로연장에 가서 고기를 먹으면서 영양을 보충하고 성악을 공부했다.
1967년 국립오페라단에서 '마탄의 사수'를 올릴 때에 주인공 ‘막스’ 역을 맡아 학생 신분으로 데뷔하였다.그런데 공연 당시 잘하고 싶은 욕심에 발성을 바꾼 게 화근이 되어서 오페라 자체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서울 시내 일간지들이 일제히 혹평을 하였고, 결국 오페라 무대에 서자마자 한국 오페라계에서 매장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 후 남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하며 돈을 벌었으나, 그것마저 실패를 하였다. 결국 어렵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1968년 서울 시향과 협연으로 아내와 함께 부부 음악회를 열었는데, 다행히 좋은 평을 얻었다. 이후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고, 프리마 오페라단에서 올린 '사랑의 묘약'에서 ‘네모리노’ 역을 맡아 드디어 재기에 성공했다.
1969년에는 친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젊은 성악가들을 모아 ‘서울 오페라 아카데미’를 결성했다. '라 보엠(자코모 푸치니)'을 제작해 우리나라 최초로 원어로 불렀다. 그렇게 무대에 올린 오페라가 성공하니 여기저기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고, 작곡자들도 자기 작품을 노래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의 노래가 FM 전파를 타고 방송되기 시작했다.
마침 버펄로 심포니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로 일하던 서울대 선배가 추천을 하여, 1969년 여름 버펄로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페라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1970년 5월 미국으로 진출하였고, 줄리아드 음대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마스터 클래스 오디션에 합격하여,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성악 교육을 받았다. 생활비를 매달 받긴 했지만, 뉴욕의 집세를 감당하기엔 빠듯하여, 뉴욕의 한국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1976년부터 미국 뉴 헤븐 오페라단(New Heaven Opera)과 버팔로 오페라단(Buffalo Opera)에서 '라 보엠'의 ‘로돌포’ 역을 했고, 캐나다 온타리오 더 쇼 페스티벌(Ontario the Show Festival)에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바쿠스’ 역을 했다. 1년에 반 이상은 미국 전역과 남미, 캐나다 등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그러다가 1983년에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2003년 퇴임할 때까지 3백회가 넘는 오페라 공연을 했다.
1989년에는 클래식과 가곡을 접목한 국민가요 '향수'를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불러서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는 공연 직후 클래식계에서 '클래식 음악을 모욕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자신이 단장으로 내정되기까지 한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을 당했다. 당시만 해도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크로스오버는 상당히 생소했고, 이 때문에 클래식계에서 반발이 심하였다. 그러나 4년 후 시작된 KBS의 , 파바로티를 비롯한 3대 테너가 주도했던 성악계의 크로스오버 추세가 자리잡힌 것을 보면, 도리어 선견지명이었던 셈.
2003년 서울대 정년퇴임 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음악대학원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도 매년 50회에 가까운 국내외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이끌어나가는점 음악에대한 장벽이 없는 마인드가 김호중군과 많이 비슷하네요 김호중군도 공부를 계속해 인재를 발굴해내는 스승으로 늙어갔음 좋겠네요
독후감 댓글창에 남겼습니다~~^^ 🌸☘️🌸
파란만장한 삶을 성공으로 이끄신 박인수교수님을 존경함니다~~^^
와~~ 꽃길만 걸은줄 알았는데 파란만장한 삶이었군요. 예술인들은 삶이 고달픈가보네요.. 울호중님은 절대 그러면 안되는데....
존경하는 분인데 어렵게 공부했네요
멋진 곡을 잊고 있었네 고마우이...
박인수교수님 테너 목소리
이 가을에 내맘을 촉촉하게 하네요...
예전에 고양시에서 향수를 부르시던 때가 떠올려 지네요. 멋진교수님
짱!
쌤!♥
이른아침 바람이 쌀쌀합니다.
건강유의하십시요♥
가을이 왔네요. 청아한 교수님의 목소리가 가을밤의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감사합니다.👍👍👍👍👍👍👍👍👍👍👍👍👍👍👍👍
애절함에 맘이 울립니다
역시 박인수님 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오....이 아름다운 가을 아침에
이런 아름다운 음악으로 열려 주시네요...😊🍁🍂🌾🌻
오...내사랑아 내사랑아
허철쌤 오늘도 멋진 하루 되십시요
좋아하는 박인수 교수님이 부르시는 그대 창밖에서 를 들으며 노랫말 하나하나에 취해 봅니다
오는 아침 선물 감사합니다
애수에 젖는..
이 가을빛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노랫말과 음색입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 함니다~~ 임긍수님의 냄새도 맡게되네요~~ 강건너 봄이 오듯이~~^^
아! 제가좋아하는 박인수교수님~가곡을들려주셔서감사합니다~철쌤~
들을때마다 친근하고 그리운 목소리~~~
박인수교수님 다시 그리워 집니다~^^
가을아침이라인지 성악에 가을빛을 머금은듯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첨은 힘든가 봅니다 그렇지만 그래인해 지금 우리는 감동받습니다 감사합니다 💜 쌤께서 열어주시는 아침은 늘 아름답네요 오늘도요🤩
시월의 아침을 박인수테너님의 미성으로 열어주셨네요
그대 창밖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쓸쓸한 가을을 노래하는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박인수 교수님목소리 오랜만에 듣습니다. 노래 듣는동안 옛날~~을 떠올리게 만들는 시간 이였네요 ㅎ 👍
이 아침
지금 창밖에는
새소리가 들리고
살짝 단풍옷 입기 시작하는
앞산이 보입니다.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지나갑니다.
오늘도 음악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박인수 교수님의
절절한 표현들이
이 맘 허비며 들어옵니다.
가을 맑은 날씨처럼 맑은 목소리가 상쾌한 아침을 여네요
고우신 얼굴이라 순탄한 삶을 보내신줄 알았는데 역경속에 얻으신 삶이라 애절함이 묻어 가슴 울린것 같읍니다 값진 결과에는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란것을 다시 세기게 되네요 가슴으로 와닿는 노래 감사합니다
감성이 저절로 묻어나고 애절한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테너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고인이 되셔서 정말 안타깝고 천국에서 편히 쉬시길 빌겠습니다!
버스안에서 듣는 박인수님의 그대 창밖에서의
가사가 너무나 아름다워요~~
가을감성에 젖어드네요
철쌤!!! 감사합니다 ^^
아름다운 노랫 말과 애절한 선율이 가슴에 파고 드네요.
언제나 실망스럽지 않고 또 기대하게 되는 선곡이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아침에 반복해서 듣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애잔한 노래가 가을날씨와 어울리네요~
깊어가는 이 가을아침에~~~
좋아하는 박인수교수님의 청아하고,애절함이 묻어나는 '그때 창밖에서'~~가을의 정취에 젖어 감동이 배가되어 가슴을 적시네요.
허철쌤!감사합니다.날씨가 쌀쌀해졌어묘.목감기에 조심하세요.👍💕💕
좋은곡 들려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테너박인수님 감동보이스
잘 들었습니다 멋집니다 💐💐
내가 좋아하는 박인수 교수님
감사합니다 ~~
허철
교수님
박인수 교수님
프로필
자세하게 설명하게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곡의
깊이와
멋을
느끼게
해준
박인수교수님
존경합니다
이젠 아침이 제법 쌀쌀합니다 감기조심할때가 온듯합니다 낙엽이 지는 창가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자니 산속에 사는 여유가 행복해지는 아침입니다
가을 아침에 귀한 가곡을 받자옵고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허철샘
18분이나 지나도 알림이 안뜨는 이유가 뭘까요
19분이 안지나서? ㅋ
@@existingspace1091 19분까지 안 떠서 커뮤니티 타고 갔어요
가을달은 유난히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우리나라엔 큰멍뭉이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산책은 늘 밤에 시키죠.
고즈녁한 울동네에선 아직 멍뭉이들과 함께
달과 별을 볼 수 있어요.
매일 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을 헤이고 뜬 달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그안에 젖어들 수 있는 감성을 아직
놓치지 않은
내가 아직은 대견해요.
이렇게 고요히 흘러가는 시간들도 언젠간 뚝 끊겨버리고
심연속으로 사라져버릴 날이 오겠지만
오늘도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사랑할 수 있는
나를 거울속으로 들여다 봅니다.
별이 보이는 곳이군요~
큰 멍뭉이를 키우시나봐요~?^^
안녕 하세여 교수님 ?
오늘도 가을 향기에 푹 빠지게 하시는군여. 이곳을 찿게 하시는 교수님의 매력에 감사 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여.^^*♡♡♡
어린시절 티비에서 자주 뵈었던 분인데
이렇게 처연하게 연주하시는 분이라니 미처 몰랐네요~
너무 아름다운 소리 감사합니다. 무정한 마음(카타리)의 감성!!
'이 마음 저 밤새와 같이
이 밤 허비며 사랑 노래 부르네'~~~
이 부분 가사 너~무 좋네요 👍
올려주신 박인수교수님 약력 읽어 내려가다가 롤러코스트같은 인생에 울어 버렸네요😭
익히 전해 듣긴 했어도 상세한 얘기는 처음이라 인간적인 면모와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에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이분이 늘 건강하시길 빌어드립니다~:;
선생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요''',,,*
*좋은분과의 인연과 과거생활도 호중씨를 떠 올리게 합니다*
두견새는 진달래 가 피는
이른봄 에 우는새
그래서 진달래을 두견화 라고도 한다지요?
두견주도 있고요
참 로맨틱한 두견새
이 아침 음악소리에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언니 ~~~~
어제밤 파트너 대박이었죠? 역시 울호중님은 천재임이 틀림없어요.💜💜💜💜💜💜💜
@@김희숙-e1s
최고!..👍👍👍
울 호중님 찐팬중에 찐팬!!!~~
내 동생 희숙님!!!~~💜💜💜
@@고은비-e4t
Dear 김호중 트바로티 님 !
🌟 울 호중별님은 * 경국지색^^
리즈가 올린 댓글에 조회수가
팔백이 넘는 쾌거를 올렸다오^^
호중님 보헤미안 랩소디 듣고 적었다오~~~
모두 입소문해주고, 꼭 한번 들어가
보셔요^^
그리고 강허달림의 * 미안해요...
오늘 내내 들었는데, 알고보니
호중님이 좋아해서 추천한 곡이 랍니다.
🌟💜🌟💜🌟💜🌟💜🌟💜🌟
@@lizjung6337
강허달님이 여러편인데
어디로 들어가야하나요??
@@고은비-e4t
아니, 우리 호중님 팬카페
Desr 김호중 트바로티 님!
들어가서
🌟 울 호중별님은 * 경국지색^^
찾으면 됩니다.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자 저는 퇴근 합니다~~~
은숙님 안녕~~
철의음악 라이브방송 에서 만나요^^
🌹💐🌹💐🌹💐🌹💐🌹💐🌹
박인수교수님 정말 감성소환입니다 너무 청아한 테너의 소리
좋네요
그래서 성악가들이 테너를 하고 싶어하신다는말 이해가 되네요
테너의 음성이 가장 선명하고 밝고 대중적으로 친숙해서 할수만 있다면 테너를 하고 싶어합니다.
단,목소리는 타고나는거라서 바꾸는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곡 또한 많이 줗아했지요!!!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 새삼스레 다가오네요
자막없이 들어보니 살짝
가사 전달이 두어군데 아쉬움...
어떤 이의 설명 떠 올리게 되네요 가곡의 맛은 피아노
반주로 들을 때 좋다는...
쌤 의 설명 보며 박인수 테너의
삶도 알고, 감사드립니다 ~
그때 창밖에서? 그대 창밖에서~~~~
맞아요 제명 당하섰던걸로, 처음 크로스오버하신분.
삼가 명복을빕니다
클래식 음악 대중 음악....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합니다.
가을아침 절절한 노래 한참 여운이 남습니다.
묵묵히 꾸준히 애써주시는 허철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고
편하게
지내시는지
안부가
궁금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했어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19시간 후의 방송방이 만들어져 있네요
허철샘 보시면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거기 네분이나 계십니다
제가 만들지도 않은 방이 왜 생기는지 모르겠네요 ㅠㅠ
이방의 식구님들! 어제밤 파트너 보고 행복했죠? 네이버tv 에 들어가셔서 울호중님 파트너 영상 보시고, 좋아요. 감동적인 댓글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사랑합니다.💜💜💜💜💜💜💜
😂
아침부터 우울~~
그래서 아름다운거야
이 노래가..
...
밤녘이었으면
더 좋았으려나...?
다 그런거지 뭐...
우울해하시면 아니됩니다~!^^
Dear 김호중 트바로티 앞으로
🌟 울 호중별님은 * 경국지색^^
댓글에 조회수 800이 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아~~ 칭찬받고 싶습니다~~^^ 🌟💜
멋진글 들어가서 잘 보았습니다~^^!!
@@-musicadiferro
🤣😃😄😅😍😘
@@-musicadiferro
아참, 조회수가 높을 수록 호중이가
본다기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