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현 코마진자 방문해서 코마 후미야스 궁사님 직접 만난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반갑네요. 고구려의 음악, 미술, 언어, 음식, 정신, 모든 것이 일본에 남아 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문화도 역시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1500여년전 그 당시 아름다웠던 동북아시아 문화 강국 고구려가 지금 일본에 여러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고구려를 미화하고 너무! ! ! ! 고구려가 멸망 한 668 년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5 세기 초에 고구려와 싸우고 있습니다. 호태왕 비에 적혀있다. 663 년 백촌강 전투는 백제의 지원군으로 47,000 명을 보내고있다. 고구려인은 어디 까지나 난민 관동의 황무지 개척에 내몰린! ! ! 처음에는 환대하고 있었지만, 시대와 함께 일본에 묻혀 버렸다. 단 1799 명, 일본인의 유전자에 영향을주지 않는 수준. 고구려의 음악, 미술, 언어, 음식, 정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만,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 ? 고려 씨가 무사의 시작이라는 설도 없습니다! ! ! 사무라이 기원설 고전적인 개발 영주가 요구 설 (재지 영주 론) 최근 제기 된 직능에서 유래했다는 설 (직능 론) 율령제 하에서 国衙 군제에 기원을 요구하는 설 (国衙 군제 론)
@@ytaaa2007 선생님의 의견 감사합니다. 2007년 제가 직접 일본 현지에 남아있는 고구려 문화에 대해서 취재를 하였고, 그것을 프로그램화 하여 수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드린 말씀입니다. 저는 비록 보잘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후예로서 저는 우리 조상의 나라, 고구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제가 일부러 하여서 득이 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1799명의 고구려인들이 일본인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에 남아 있는 고구려 문화를 보고 듣고 기록하였고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코마진자와 코마 후미야스 궁사님을 영사으로 보니 반가운 마음에 저의 소회를 담은 글을 쓴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admiralblue9324 일본의 혈통에 영향이 적었다는건 전 좀 생각이 다르네요 오히려 많은 영향을 주었죠 유전학적 측면에서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에서 나왔다고 할정도로 삼국시대이전부터 한반도에서온 많은 도래인이 일본에 정착해 조몬인을 규슈에서부터 밀어내고 일본을 개척했습니다 그들은 야마토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세우는데 이게 일본인의 기원입니다 실제로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DNA 연관성은 매우높습니다 만주족 다음입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일본은 문물수용을 한반도에 의존했습니다 삼국시대이전부터 그랬고 삼국시대때 절정이었죠 심지어 조선시대까지도 일본은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할수없어서 조선에 통신사파견을 요구했죠 임진왜란때도 대장장이와 도공 유학자를 많이잡아갔고 일본문화발전에 많이 기여했습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에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초중반에 많은기여를한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도래인이 일본에 건너가지않았으면 지금의 일본이 존재하지 못할정도로요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인의 정체성이 한국인의 정체성에 종속된다고 말하는건 아닙니다 그들도 한반도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문화를 만들었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되려 한국인보다 강해졌으니까요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려신사는 저도 벌써 20년가까이 참배하러 가는 신사입니다. 올해도 새해참배(하츠모우데)를 갔다왔는데요 집에서도 차타고 한시간 정도면 가는 거리고 코마가와(고려강)에 있는 킨착쿠다(복주머니 모양의 밭)주변은 산책하기도 좋고 강가에서는 바베큐도 가능해서 자주 갑니다. 9월말에는 피안화라는 빨간색 꽃이 군집자생하여 장관을 이루고 히다카의 고려향은 정말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려신사(고구려신사)현판은 조선시대 사람이 쓴글입니다. 고려신사 입구쪽에는 돌로된 장승도 있고 대한제국의 이은왕자와 이방자여사가 기념식수한나무도 아직 있구요. 그리고 이신사는 출세의 신으로 받들여집니다. 역대 총리대신중 4명인가? 이곳을 참배하고 총리가 되었다고 출세의 신으로 받들여집니다.
단 1799 명의 난민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왜 삼켜 고구려의 흔적은 전혀 없다. 조선에서 많은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이런 유전자는한다. reimeinews.jp/wp3.2/wp-content/uploads/2015/06/WJSVaQ6.jpg 야요이 인은 강남에서왔다.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 ! 시노다 겐이치 씨 인터뷰 "우리의 뿌리는 5500 년 전에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 iwj.co.jp/wj/open/archives/102215
백제 연구하는 교수가 백제자료 찾으러 일본에 자주감.... 일본학자들과도 친해져 술자리를 자주가졌는데 어느날 술취한 일본학자가 자신들은 고구려 후손이라고 고백하듯말했다는게.....이런 이유 때문이였군.. 첨들었을땐 백제가 아닌 왠 고구려? 했었는데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도 엄청나게 영향을 끼쳤군...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중국분 같은데, 중국은 56개족 즉 55개족이 1개 민족에 흡수된 나라죠. 백제고구려는 신라 중국에 흡수. 조선500년은 중국에 기댄 역사, 현재 남한이 미국에 기대듯..고구려백제의 귀족 다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가 건설에 큰영향을 줍니다. 역사든 혈족이든 니것도 없고 내것도 없습니다. 같이 살아갈 공동체죠..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애초에 DNA 상으로는 한국인= 일본인 mt DNA 99.99프로 일치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시대가 흐르면서 나눠졌으니 민족성이 달라졌겠지만 유전적으로는 동일민족이나 마찬가집니다... 임나가 일본사가 될려면 철기시대도 아니였던 일본이 철기를 다뤘던 백제를 다스렸다는 의미인데 .. 이미 박살난지 오래인 가설이죠.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논리없이 주장을하시는데 mt dna 검사를 하면 한국인은 중앙아시아계열에 가까우며 유전적으로는 한국인 일본인인 99.99퍼센트로 일치하여 다음으로 여진족이 99.95퍼센트로 거의 흡사합니다 반대로 중국이 주장하는 한족은 검사하면 동남아 유전과 흡사하죠 유전자적 기원을 찾자면 그렇다는건데 이상하시네요ㅎㅎ
토쿄장기거주민입니다.지금 토쿄 동경 관동평야를 개척한것은 고구려인들이예요.그땐 무사시지역이라 불렸는데 무사시란 말은 아이누말로 푸른 초원이란 뜻이라고 합니다.즉 그때는 토쿄평야 사이타마 치바 카나카와등엔 아이누족과 죠몽인들 토착세력들이 저급 문명으로 살고 있었죠.고구려인들이 4ㅡ5세기부터 쿤마/군마 즉 말을 키우던 곳이었죠.쿤마는 토쿄 북쪽사이타마 사이타마의 북쪽 쿤마 쿤마 서쪽 나카노현 산맥 고원지역에서 한랭한 지역에서 말을 키우기 좋은 지역이었어요.고구려인들이 토인들에게 각종 말키우고 양잠 포목 농사등을 가르쳐서 일본 토쿄지역과 주변이 개척됩니다.일본 토쿄와 주위 지역은 고구려인들이 개척 팽창시킨것입니다.
큰애가 걸음마를 시작 했을무렵에 고마신사에 갔었는데 신사 입구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큰 대리석으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현대에 세원거긴 합니다. 고마신사는 출세를 기원하는 신사로 유명하고 그 일대가 전체가 파워 스팟이라 해서 풍수지리적으로도 기운이 좋은 곳입니다. 일본 신사에서 판매하는 오마모리(부적의 일정)는 천 주머니에 종이 부적인데 이 신사에서는 방울입니다. 풍수적으로 방울소리나 풍경소리는 악운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고 하죠. 신사에 방문한 유명인의 이름이 즐비하게 걸려 있는데 일본의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의 이름이 여느 신사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사 마당에는 천황이 심었다하는 나무도 있고 매년 천황계가 찾아와서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신사에서 도보로 20분정도 떨어진 곳에는 약광왕과 그의 일족의 능이 있는곳이 있는데 이곳은 건축물과 전체 환경이 일본이라기 보다는 경주나 한국의 역사유적이 있는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근대에 들어서 고마시에서는 김치 만들기 행사도 하고 이곳은 소바(메밀국수)가 아주 맛있습니다. 소바의 향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역사 연구는 "현재"를 정의하는 투쟁입니다. 제가 80년대에 일본에서 일본 사립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일본 역사책에서는 [지금도 그럴 겁니다] 임나일본부를 정설로 써놓았고,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의 역사아 아닌 것처럼 서술했던 것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한편 중국은 주지하다시피 고구려를 지방의 한 호족 세력 정도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중국에 살기 때문에 조선[한국]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를 자기들의 현재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역사연구를 나라에서 지원해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사학과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현 강단사학계의 식민사관을 깨기 위한 대안도 절실합니다.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등 한반도에서 넘어간 인원이 어마어마했을듯.... 신라가 통일후 고려 조선을 거치며 외침을 통한 전쟁으로 솔직히 혼잡된 종이 더많을듯하고... 현재 일본 인구가 1억 2천이 기준이라면 600년대부터 일본 본토에 내전외에는 국토가 초토화되는 외부침략이 없었으니 인구의 대다수가 한반도에서 넘어간 도래인인듯... 어떻게 보면 현재의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피와 뿌리를 가진 후손들이라고 봐야할듯...
유전자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됨. 고로 헛소리임. 오히려 한반도에 중국인들이 대거 넘어왔다는 것은 유전자로 증명됨. 물론 족보로도 증명됨. 대표적인게 댁임. 송씨는 고려시대에 송나라가 멸망당하고 넘어온 중국 유민들의 성씨임. 댁의 족보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겁니다. 중국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어느 한 국가가 멸망당하면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한반도와 동남아로 이주를 했거든요.
조선에서 많은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이런 유전자는한다. reimeinews.jp/wp3.2/wp-content/uploads/2015/06/WJSVaQ6.jpg 야요이 인은 강남에서왔다.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 ! 시노다 겐이치 씨 인터뷰 "우리의 뿌리는 5500 년 전에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 iwj.co.jp/wj/open/archives/102215
산동과 요동에 식민지까지 건설하며 진취적이었던 삼국시대가 왜 그 이후로 폐쇄적이고 내리막만 걸었는지 .. 삼국시대이후 왜 일본은 승승장구했는지 답이 나오네요 백제고구려 지배층과 무사 기술자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갔던거네요 베트남에 일본마을 중국마을은 있어도 한국마을은 없는이유..
@@Z_KOREA 일본이 타국문화를 받아들인게 아니라 그냥 한반도 도래계들이 세운 나라예요. 원주민인 에미시, 아이누족은 털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두려워했고 화합보다는 싸우는 일이 더 많았죠. 영국과 영연방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인들은 은연중에 일본과 한 뿌리라는 걸 부정하고 일본 역시 한국과 한 뿌리라는 걸 부정하기 위해 기를 쓰고 중국 강남이 뿌리라고 주장하던 게 서로 반복하던 두 나라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되네요.
마치 유럽이나 로(Ro)시야에서 전쟁/굶주림/내전/반란/폭동/박해가 일어난 뒤, 피해자들이 '탈출구'로 캐나나다 미국을 골라서 달아났듯이 말이죠(예 :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달아난 에이레[Eire] 사람들이나, 로시야 제국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달아난 폴스카['폴란드'의 바른 이름] 사람들/유대인들이나, 잉글랜드에서 국왕과 성공회의 탄압을 피해 북아메리카의 잉글랜드 식민지로 달아난 청교도들).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탈출구'로 삼았듯이, 고대 배달민족(한국인/코리안)도 왜 열도를 '탈출구'로 삼은 게 아닌가 합니다.
17:02 일본 학자분이 고마산 지형을 3D로 보여 주는 걸 보니, 게임 신장의 야망 재밌게 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고대 한국인의 일부가 일본으로 이주하여, 뿌리를 내려온 건 사실이지만, 현대에 와서 한국과 일본은 너무 다른 나라가 되었죠.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사실상 같은 민족이면서도, 정치적인 대립과 최근의 전쟁을 통해,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을 볼 때, 국가 대 국가로서 정치,외교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일부에 고대 한국인의 혈통이 섞여 있다고 해서, 무조건 화해하고 친하게 잘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게임과 문화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강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참회, 진정한 사과와 평화에 대한 약속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일본은 영원히 먼 나라이자 경계할 나라일 뿐입니다.
우리역사는 아니긴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이런인물이 있엇다 하는정도 공유정도 하고있엇다라고 생각하면 좋을거같아요 약광은 보장왕 아들 일본에 건너가서 정착해서 고구려 인으로서 부심을 부렷다 흑치상지 백제 출신으로서 백제 200여개성뺏고 유인궤와 부여풍에 설득으로 사탁상여와 함께 당나라 군인이되구 고문간 고구려 출신 돌궐 장수 였다가 당나라로 장군 됨 설계두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 장군이 되어 고구려 정벌 이정기 고구려 출신으로서 제나라를 세움
우리는 생활에서 고구려를 잊은듯 보이는데, 일본에서 오히려 고구려 정신을 계승해 가고 있어보여 반갑기도 하지만 조금 씁쓸한 느낌도 있네요. 우리도 고구려 발해 등을 좀 더 쳬계적으로 연구하고, 아직까지 이어오는 풍속등을 연구하는 단체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런다고 사람들이 하려하면 다른쪽에서 혹시 빨갱이라 할지도 모르겠네요ㅠ.ㅠ
단 1799 명의 난민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왜 삼켜 고구려의 흔적은 전혀 없다. 조선에서 많은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이런 유전자는한다. reimeinews.jp/wp3.2/wp-content/uploads/2015/06/WJSVaQ6.jpg 야요이 인은 강남에서왔다.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 ! 시노다 겐이치 씨 인터뷰 "우리의 뿌리는 5500 년 전에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 iwj.co.jp/wj/open/archives/102215
29:05 이 고분군 근방에 또 다른 고분군(와카코다마 고분군)이 있는데, 그 곳의 이 아무래도 시대,유물,고분 형태 등에 있어서 고구려쪽과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이 지역은 이미 고구려계 유입 이전에 백제계 신라계 도래인 호족들이 먼저 선점 하고 있던 지역이라 사키타마 고분군 같은 경우 축조시기나 형태 같은것이 백제 신라 쪽과 더 가깝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백제가 신라한테 멸망당하고 백제인도 왜로 많이 넘어갔다..그러므로, 일본의 고대 중세 국가는 고구려,백제,신라인의 유민들이 자리잡고 살았다고 볼 수 있음..왜냐하면 그시절에 멸망한 왕족이나 귀족들은 같은 살 수 없었으므로, 유배형태의 형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보는게 정설...
그렇습니다. 백강 전투에서 패한 왜구의 배에서 귀족 등 백제의 왜인 3000 명이 난민으로 망명했다.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 ! ! 당시 백제, 신라는 왜에 인질로 보냈다! ! ! ! 망명 백제인 2 명 정도가 중류 귀족 징수되었지만, 대부분은 관동에 개척민으로 강등되었다. 이전에 신라, 백제에서 온 살았다는 털끝! ! !
일본인의 유전자 애리조나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인 남성 62.1 %의 유전자는 Y 염색체 D1b 34.7 %, O-47Z 22 %, CM 4.4 %라는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없는 특수한 유전자이기 때문에 대륙과 남쪽의 섬에서 도래 한 민족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민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배급 유전자 배열은 해외 유적 인골에 아직 발굴하지 않고, 거의 일본에 한정되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Y 유전자의 YAP 재 분류에 따르면, 일본인의 Y 유전자가 35 %를 차지하고, 세계적으로도 고립 된 상태에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추적 잘 정리 해 주셔네요 동경여행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길 추천 합니다 우에노~사이다마~ 히다카시 유명음식 : 우동도 있어요 그리고 밤나무가 많이 있고 고마신사는 약광왕의 후손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으며 옆에 약광왕이 처음 살았든 집도 그대로 보존 되어 있으며 일본에 살고 있는 많은 교포후세 분들께서 후원도 하고 계신듯 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들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ek. 이후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나라와 몽골에 정복 당했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나라다. 고조선문명이 중국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중국사관학자들이 환빠라고 거품 물며 발악하는 이유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역사를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kaizazerem816 노비에 한이 맺혔나? 댓글마다 노비 얘기를 하는걸로 볼 때 조상님이 노비 출신이라도 되나보네? 한이 맺힐만도 하군 그런데 조선시대에 신분제는 초기에 양반 상민 노비가 대체로 1/3 정도 되었다가 노비가 점점 많아졌으나 조선 후기에 신분제가 무너져서 돈으로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사람들이 많았음. 양반이 넘치고 노비는 줄었음. 노비의 신분은 노예와는 다르게 상당히 자유로운 편임. 별도의 재산권도 있었고. 일부 몰지각한 양반들이 인권을 유린하는 사례가 있었으나 일본의 농노와는 다르게 언로도 열려 있었고 생명권도 보장 받았음. 노비도 함부로 죽이면 살인죄를 물음.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저기 유전자 분석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걸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유전자를 분석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쉽지만 한국인/일본인들은 중국인들과 지리적으로는 이웃일지 몰라도 유전적으로는 이웃이 아닙니다. 언어 그룹도 중국어는 'Sino-Tibetan' language family에 들어가 있고, 한국어, 일본어는 약간 견해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각각 Koreanic, Japonic 에 속하고, 크게는 'Macro-Altaic'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아시나요? 모르겠죠? 그러면 최소한 검색이라도 해보시길... SIno-Tibetan group는 중국어, 티베트어 등의 남동아시아 지역의 언어 그룹이고, Macro-Altaic group는 터키어, 퉁구스어, 몽골어, (한국어, 일본어)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언어 그룹입니다. 애초에 유전적/언어학적으로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들이 많은데 이렇게 의미없이 역사왜곡을 하는게 참 안타깝네요. 공부 좀 하고 오세요.
th-cam.com/video/5uNx5DuQ-mo/w-d-xo.html 위의 영상이 진짜 한국사입니다 지금 우린 일제가 만들어놓은 가짜역사를 배우고있어요 1922년 제 3대 조선 총독 사이코 마코토는 다음처럼 조선의 교육을 재단한다."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이 선조와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 등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일본사적, 일본의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섭고도 주도면밀한 정책인가, 이로써 우리나라는 지금 까지도 그 악습이 남아돌고 있다. 본디 우리의 국학(國學)은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버지와 어머니께, 형제들께 배우고 자라오는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우리의 국학은 성공보다는 완성을, 경쟁보다는 상생을, 소유보다는 관리를, 지배보다는 존중을,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하는 가르침 이었다. 악습을 없애고 우리의 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린 고조선 이전부터 나라가있었습니다 우리의역사서를 일제시대때 일본이 시골산속까지 곳곳까지 다 찾아서 태워버렸습니다 단군은신화가 아닙니다 다행히 중국쪽에 환단고기때 유물이 남아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려는게 그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명산마다 정기를 끊겠다고 말뚝까지 박은 일본입니다 다들 우리의역사를 바로 세워주세요
@@김유신태대각간 임마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썩은 지식 썩은내 풍기네.도데체 어디서 역사를 배웠길래 역사에 대해 확신을 해? 지가 그 시대를 산것도 아니면서.본 영상 똑바로 안보냐? 고구려인이 일본 건너가서 굉장한 도움을 줬대잖냐. 그만큼 기술력이 뛰어난거지.근데, 백제가 일본 속국이었다고? 머리가 빈거냐? 그 당시 백제하면 고구려,신라와 통일을 하기 위해 경쟁하던 사인데,백제가 그만큼 기술력이 없었겠냐?그런 헛소리는 니 머릿속에서나 풀어놓고 퍼뜨리지 마라. 주변에 오염될까 두렵다.모르는것이 죄라지만 거짓을 퍼뜨리는건 가장 큰 죄악이다.뇌피셜은 뇌피셜로 끝내라.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똥사는 소리하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중국역사는 절반이 이민족들의 역사고 그 역사는 한족들이 그 이민족들에게 굴복하고 그랬었음. 그 이민족들의 나라가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연나라 등이 있고 그 이민족들은 흉노족, 선비족, 만주족 , 몽골족,거란족, 티베트족, 위구르족 등 많은 동아시아 민족들이 지금의 중국이 있는 대륙들을 지배했었다 그리고 지금 중국 땅 요하 요서는 우리민족들이 다스렸기도 했던 적도 있었다. 고구려 발해 당시 그 요하 요서는 지금 랴오허 강 부근에 있던 지역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들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ek. 이후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나라와 몽골에 정복 당했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나라다. 고조선문명이 중국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중국사관학자들이 환빠라고 거품 물며 발악하는 이유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역사를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고려의 삼별초... 근 7~80년쯤 저항하다 제주도에 옮겨 저항하다 패하자 일본으로 갔다... 일본으로 갈때 인원이 수천명... 처음 삼별초가 저항을 위해 이동할때 으로 보따리 다 싸서 최소 5천명 이상의 인원이 구성 되어 움직이며, 이들이 닿는 곳 마다 큰 마을을 이루고 계속 저항을 한 것.... 삼별초도 수천명 이상이 일본으로 가서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이런저런 나라들이 마지막 전쟁에서 패하면 남은 유민들은 모두 일본으로 갔던것 같다. 고구려 고려 부여 옥저 삼한 백제 신라... 이들도 남은 유민들이 모두 일시에 일본으로 갔기때문에 그들의 흔적... 기록 유물 같은 것들을 들고갈수 있는 것들은 갖고 갔기 때문에 ... 현재 한국에서 그들의 유물을 찾기가 어려운게 아닐까....
어느 언어학자가 이야기 했지 한민족의 잊혀진 언어.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일본을 연구하라고.. 우린 신라중심으로 역사를 기억하지만 찬란했던 고구려.백제의 역사는 일본에 살아 내려오고있다 고로 우리의 싸움은 혈육의 싸움이다라고도 할수있다. 혈육의 싸움은 더 잔인하다.그러나 작은 희망은 동일한 조상과 역사를 가진 민족이니 다시 역사를 되돌아보고 용서와 화합으로 형제의 국가가 될수 있기를 기원한다.
@@kkhj1729 조선이 민생보다 국가가 빨대 꽃고 빨아재끼면 국가자체는 그럭저럭 풍족할수도 있었음 구휼미 나오는거 실록 참고해서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 곡식이 나오는 것인지 적게는 수만에서 심하겐 백만단위로 곡식을 풀어재낌 이것을 보아서 팔거나 국가가 조세를 높혀 수금했다면 병력이고 뭐고 각도기 젤수 있었는데 조선은 그 물자를 백성들에게 풀고 또 풀고 계속풀어냄
cafe.daum.net/freemicro/1CmD/331 조선신사 대동보는 한반도 이주 양반 인명록 ..조선이주 수인초 m.cafe.daum.net/freemicro/1CmD/303?svc=cafeapp 명성황후의 능 크기는 얼마만 했을까 1895년 살해당함. 알렌이 고종의 어의였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서 책을 저술. 에카르트 신부도 조선에 왔다 돌아가서 명성황후의 왕릉크기를 책에 저술 둘다 규모와 크기가 일치. 규모를 보면 현재 한반도 왕릉과 크기가 엄청 차이남. th-cam.com/video/lJJ889PON7I/w-d-xo.html 외국인 눈에 비친 아름다운 대륙조선 기행문 cafe.daum.net/warong84/Hz6e/37?q=%EB%8F%85%EC%9D%BC%EC%9D%B8%EC%97%90%EC%B9%B4%EB%A5%B4%ED%8A%B8%2C1919%EB%85%84%20%E6%9C%9D%E9%AE%AE%EC%9D%B4%EB%8C%80%EB%A5%99%EC%97%90%EC%9E%88%EC%97%88%EC%9D%8C%EC%9D%84%EC%A6%9D%EB%AA%85 독일인 에카르트, 1919년 朝鮮이 대륙에 있었음을 증명. th-cam.com/video/_o7zMCK-4ew/w-d-xo.html 역사왜곡의 서막 중국25사의 탄생과 조선사편수회의 관계 th-cam.com/video/xO6BGLh07Gs/w-d-xo.html 광화문 광장 지키자, 대륙조선사를 반도사관으로 바꾼 일제 윤봉길의사 선서문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26일(1932년)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골드미즈노 이런 미친놈도 있군. 백제의 지배층은 부여계지만 피지배층은 한국계잖아? 중국놈들이 백제인구 전체를 끌고가지 않았을 거고 일본으로 다 건너가지도 않았을거 아냐? 고구려사가 일본사러고? 정말 왜구놈들의 뻔뻔함은 상상을 넘네? 당나라 역사도 일본사라고 하지 그러냐? 니네 기모노도 당나라거니까 당나라도 니꺼??? 니네는 원래 훈도시 차고 맨발에 훈도시 차던 놈들아니냐?
바보인가! 조선의 역사서 삼국지기에는 백제, 신라는 왜 인질을 보냈다고 적혀있다. 광개토 왕비에는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 신라를 신하로했다고 적혀있다. 당시부터 일본이 강국인데 그런 이유는 아니다. 또한 일본인은 죠몽 유전자 D가 40 % 이상이다. 한국인은 0 % 전혀 다른 민족이다. 일본인 すり寄る은 그만! ! 기분이 나쁜! ! ! 지금의 한국인은, 만주인, 중국인, 몽골 인에게 범했다. 2000 년 노예 민족이다! ! ! !
@@ariellerusty8251 바보 삼국사기라고 써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조선의 역사서 아닌가? 삼국사기 (백제 본기) 397 년 여름 오월 아 莘王는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의 腆支을 인질로 왜에 보냈다. 402 년 오월 사자를 왜국에 보내어 큰 진주를 요구했다. 403 년 봄 두 월 왜국의 사신이 와서, 아 莘王 그를 맞이하고 위로하고 특히 두껍게 대우했다. 405 년 腆支 태자는 왜국에서 아 莘王의 부고를 듣고 哭泣하면서 귀국 할 것을 부탁했다. 왜왕은 군인 백 명을 동반하고, 호송했다. 418 년 여름 사자를 왜국에 보내어 白綿을 열 반을 보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402 년 삼월에 왜국과 通好하여 奈勿 왕의 아들 미 斯欣을 인질로 왜에 보냈다. 광개토 왕 비의 견해는 중국과는 일치하고있다. 너희들의 역사 감은 판타지한다. 조선은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의 속국으로 인식하고있다.
한반도 출신이 뚜렸한 사람들 한반도에 관해 심경이 복잡 하죠. 동질성은 느끼지만 자신들이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생각 입니다. 어떤이들은 적대시 하고 어떤이들은 도움을 줄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인 사고는 일본 자체가 계급 사회라 자신들이 우위에 서야 하는다는 사고방식.
이 영상을 보며 일본이 누구 후예다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함. 고립되어 있던 섬나라 특성상 발전이 저렇게 더뎌도 계속해서 기술자들 받아들이고 자기것으로 만들고 우리보다 강성국이 됐다. 지금이야 노령화로 발전이 없지만 저들은 저렇게 세계강국이 됐다는거지. 일본이 모방을 잘하고 지금도 장인들이 많은 게 저렇게 귀화인 받아들이고 배울게 있다고 생각되면 어떻게든 기술을 가져오려 했으니 지금의 일본이 있었겠지.
그.. 고구려 라고 불리기전에 부여홀본 (홀본=태양의나라) 라고 불렸었는데 부여홀본왕이 아들없이 딸만 셋이여서 주몽한테 소서노 보내서 결혼 시켰음. 그 소서노 와 비류 온조 는 주몽 다음 후계서열1순위나 다름없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유리 2대왕(주몽 갑자기 죽음 시체도 없음) 때문에 쫒겨나다시피 남쪽으로 내려가서 백제 세움. 백제 황실은 우리가 부여홀본이라는 뿌리 를 잊지말아야해서 백제황실만 따로 남부여홀본 이라고 칭하고 외적으로는 백제 라함. 그러다 당나라 공격으로 백제 무너지고 백제 잔여 황실세력 남부여홀본이 왜쪽 영토 로 가서 왜를 병합 시켜서 지금의 일본이 된거임. 부여홀본(태양의나라). 백제=홀본 홀본=일본 고구려=백제 일본이랑 왜 랑은 아예 다른 나라 였음. 왜나라 는 몇백년간 토착세력 이었음. 그런 나라를 백제 잔여세력이 합병 시켜서 지금의 일본임. 부여는 얼마나 컸던걸까 상상이 안됌 ㄷㄷ..유리 왕은 대체 어디서 온걸까..
Kokuryo 's yakkwang king made kokuryo sinsa in japan .and japan pray kokuryeo's king .Komak is the place that there town open festival . yakkwang king was the last king of kokuryeo and the son of bojang king in kokuryeo in korea history.
@@KoreanMonkey-IQ.60-80 임나일본부설,남한경략설은 오로지 일본국내기록에서만 나옴. 그 정도 대규모 원정이 있었다면 중국정사에도 보여야 하는 데 어라? 없네? 4세기 일본 역사는 거의 텅 비어 있다는 것. 이건 일본학자들도 인정한다. 그래서 신비의 4세기라는 표현을 쓰지. 그리고 자기네 주장은 역사가 2600년이 됐고 초대왕이 진무라고 하지만 이 역시 에가미 나미오등 일본학자들도 10대 스진왕부터가 초대라고 여기며 심지어 만세일계는 신빙성이 없고 삼왕조교체설까지 주장하는 상황이다.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가족혼의 기원이 일본인과 섞이지 않기 위한 시도였을 수도 있고,
사무라이의 기원이 고구려라니.... 또,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한반도 도래에 관한 내용을 지우고 싶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아, 메밀국수....
th-cam.com/video/zLAtbwRRKsM/w-d-xo.html
th-cam.com/video/zLAtbwRRKsM/w-d-xo.html
th-cam.com/video/kGMQMGSdsEw/w-d-xo.html
사이타마현 코마진자 방문해서 코마 후미야스 궁사님 직접 만난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반갑네요. 고구려의 음악, 미술, 언어, 음식, 정신, 모든 것이 일본에 남아 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문화도 역시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1500여년전 그 당시 아름다웠던 동북아시아 문화 강국 고구려가 지금 일본에 여러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고구려를 미화하고 너무! ! ! ! 고구려가 멸망 한 668 년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5 세기 초에 고구려와 싸우고 있습니다. 호태왕 비에 적혀있다. 663 년 백촌강 전투는 백제의 지원군으로 47,000 명을 보내고있다. 고구려인은 어디 까지나 난민 관동의 황무지 개척에 내몰린! ! ! 처음에는 환대하고 있었지만, 시대와 함께 일본에 묻혀 버렸다. 단 1799 명, 일본인의 유전자에 영향을주지 않는 수준. 고구려의 음악, 미술, 언어, 음식, 정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만,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 ?
고려 씨가 무사의 시작이라는 설도 없습니다! ! !
사무라이 기원설
고전적인 개발 영주가 요구 설 (재지 영주 론)
최근 제기 된 직능에서 유래했다는 설 (직능 론)
율령제 하에서 国衙 군제에 기원을 요구하는 설 (国衙 군제 론)
@@ytaaa2007 선생님의 의견 감사합니다. 2007년 제가 직접 일본 현지에 남아있는 고구려 문화에 대해서 취재를 하였고, 그것을 프로그램화 하여 수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드린 말씀입니다. 저는 비록 보잘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후예로서 저는 우리 조상의 나라, 고구려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제가 일부러 하여서 득이 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1799명의 고구려인들이 일본인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에 남아 있는 고구려 문화를 보고 듣고 기록하였고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코마진자와 코마 후미야스 궁사님을 영사으로 보니 반가운 마음에 저의 소회를 담은 글을 쓴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admiralblue9324 일본의 혈통에 영향이 적었다는건 전 좀 생각이 다르네요 오히려 많은 영향을 주었죠 유전학적 측면에서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에서 나왔다고 할정도로 삼국시대이전부터 한반도에서온 많은 도래인이 일본에 정착해 조몬인을 규슈에서부터 밀어내고 일본을 개척했습니다 그들은 야마토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세우는데 이게 일본인의 기원입니다 실제로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DNA 연관성은 매우높습니다 만주족 다음입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일본은 문물수용을 한반도에 의존했습니다 삼국시대이전부터 그랬고 삼국시대때 절정이었죠 심지어 조선시대까지도 일본은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할수없어서 조선에 통신사파견을 요구했죠 임진왜란때도 대장장이와 도공 유학자를 많이잡아갔고 일본문화발전에 많이 기여했습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에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초중반에 많은기여를한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도래인이 일본에 건너가지않았으면 지금의 일본이 존재하지 못할정도로요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인의 정체성이 한국인의 정체성에 종속된다고 말하는건 아닙니다 그들도 한반도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문화를 만들었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되려 한국인보다 강해졌으니까요
저도 5년여전인가 도쿄 어느대학에 강의를 오신 고마 후미야스 궁사를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1300년이상의 시간을 자신의 뿌리를 지키고 사는 그들의 모습에 까닭모를 연민도 들고, 조상을 잊지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논리면 고대 중국 문화가 한반도로 흘러들었는데 중국 문화가 우리 조상들 문화보다 높은 게 되군요.
상세한 고구려 문화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욱 활발히 알려지며 계승되고 있는 것이 놀랍다.
고구려 뿐만 아니라 고려 전통 음악인 고려악도 한국에선 대가 끊겼지만, 일본 전통 악사들이 지금까지 보존시켜 내려오고있죠...
명나라 정치(경국대전),철학(주자성리학)및 중국의 일부인 소중화사상을 실천한 명나라개 이씨조선이 분서갱유(역사서 말살) 세종의 고려문화 말살인 분영갱상으로 우리의 전통은 사라졌으며 철저한 중화문화를 받았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고려 문화는 일본에만 있습니다.
우리나란 참 부끄럽지도 않나. 우리나라의 문화를 일본이 계승하고 있는데 아무 관심도 없다는게 참
@타로밀크티 펄ᄂᄂ 잘난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것같아요ㅜㅜ
@@loveItalia-py6gp 뭐하는분 이신지요 실명공개를 안하시는것보니 전통을 고수하는일은 아니신듯 이글 올릴 자격이 있으신지?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려신사는 저도 벌써 20년가까이 참배하러 가는 신사입니다.
올해도 새해참배(하츠모우데)를 갔다왔는데요 집에서도 차타고 한시간 정도면 가는 거리고 코마가와(고려강)에 있는 킨착쿠다(복주머니 모양의 밭)주변은 산책하기도 좋고 강가에서는 바베큐도 가능해서 자주 갑니다. 9월말에는 피안화라는 빨간색 꽃이 군집자생하여 장관을 이루고 히다카의 고려향은 정말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려신사(고구려신사)현판은 조선시대 사람이 쓴글입니다. 고려신사 입구쪽에는 돌로된 장승도 있고 대한제국의 이은왕자와 이방자여사가 기념식수한나무도 아직 있구요.
그리고 이신사는 출세의 신으로 받들여집니다.
역대 총리대신중 4명인가? 이곳을 참배하고 총리가 되었다고 출세의 신으로 받들여집니다.
단 1799 명의 난민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왜 삼켜 고구려의 흔적은 전혀 없다.
조선에서 많은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이런 유전자는한다. reimeinews.jp/wp3.2/wp-content/uploads/2015/06/WJSVaQ6.jpg
야요이 인은 강남에서왔다.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 ! 시노다 겐이치 씨 인터뷰 "우리의 뿌리는 5500 년 전에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
iwj.co.jp/wj/open/archives/102215
고이즈미,아베도 여기서 참배하고 총리돼서 감히 조상의 나랑에 그 ㅈㄹ했나 보군.
오히려 한국보다 더 고구려 음악이 잘 보전되어 있네요..
백제 연구하는 교수가 백제자료 찾으러 일본에 자주감.... 일본학자들과도 친해져 술자리를 자주가졌는데 어느날 술취한 일본학자가 자신들은 고구려 후손이라고 고백하듯말했다는게.....이런 이유 때문이였군.. 첨들었을땐 백제가 아닌 왠 고구려? 했었는데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도 엄청나게 영향을 끼쳤군...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일본은 말레이시아계 조몬인과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 혼혈임. 유전자를 봐도 중국쪽과는 거리가 멈...고구려,백제는 부여족임. 현재 중국은 한족의 나라아닌가?? 한,명,남송 정도밖에 지배한적이 없는 애덜인데 뭔 개소리...인류는 하나다 그런의미인가... 정신병자 새끼가 뒤질려고 어디서 구라질이야.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우리 기마민족맞아...한족과는 다른. 몰랐냐...너 컨셉인지 뭔지 몰겠지만 개소리는 다른데서 해라. 내글 더럽히지 말고.
@@고구려백제중국사들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중국분 같은데, 중국은 56개족 즉 55개족이 1개 민족에 흡수된 나라죠. 백제고구려는 신라 중국에 흡수. 조선500년은 중국에 기댄 역사, 현재 남한이 미국에 기대듯..고구려백제의 귀족 다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가 건설에 큰영향을 줍니다. 역사든 혈족이든 니것도 없고 내것도 없습니다. 같이 살아갈 공동체죠..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너 미쳤구나
여기 작년에 다녀왔어요.. 왠지 맘이 편해지더라구요
선조님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을꺼에요
와 정말이요?? 어떻든가요????
저는 올해 1월에 고마신사에 다녀왔는데 경내를 구석구석 돌아봤어요.
일본황가에서 참배했을 때의 기념식수도 있고 재일한국대사들이 부임해서 참배한 기록도 보이고요.
물론 한일양국의 정치인들이 참배한 기록도 있었어요.
그냥 동네신사가 아니에요. 규모도 웅장하고 마츠리 사진도 걸려있는데 옛날 고구려인 복장의 행렬도 있던데요. ^^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애초에 DNA 상으로는 한국인= 일본인 mt DNA 99.99프로 일치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시대가 흐르면서 나눠졌으니 민족성이 달라졌겠지만 유전적으로는 동일민족이나 마찬가집니다...
임나가 일본사가 될려면 철기시대도 아니였던 일본이 철기를 다뤘던 백제를 다스렸다는 의미인데 .. 이미 박살난지 오래인 가설이죠.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물론 그렇다고 백제가 일본의 원조이며 우위성을 갖고있다는것은 아닙니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나 기술이라는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거니까요.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논리없이 주장을하시는데 mt dna 검사를 하면 한국인은 중앙아시아계열에 가까우며
유전적으로는 한국인 일본인인 99.99퍼센트로 일치하여 다음으로 여진족이 99.95퍼센트로 거의 흡사합니다 반대로 중국이 주장하는 한족은 검사하면 동남아 유전과 흡사하죠
유전자적 기원을 찾자면 그렇다는건데 이상하시네요ㅎㅎ
토쿄장기거주민입니다.지금 토쿄 동경 관동평야를 개척한것은 고구려인들이예요.그땐 무사시지역이라 불렸는데 무사시란 말은 아이누말로 푸른 초원이란 뜻이라고 합니다.즉 그때는 토쿄평야 사이타마 치바 카나카와등엔 아이누족과 죠몽인들 토착세력들이 저급 문명으로 살고 있었죠.고구려인들이 4ㅡ5세기부터 쿤마/군마 즉 말을 키우던 곳이었죠.쿤마는 토쿄 북쪽사이타마 사이타마의 북쪽 쿤마 쿤마 서쪽 나카노현 산맥 고원지역에서 한랭한 지역에서 말을 키우기 좋은 지역이었어요.고구려인들이 토인들에게 각종 말키우고 양잠 포목 농사등을 가르쳐서 일본 토쿄지역과 주변이 개척됩니다.일본 토쿄와 주위 지역은 고구려인들이 개척 팽창시킨것입니다.
역시 너무좋은방송..자기전에 꼭보고잡니다..
ㅇㅈ
깽가리 소리 땜에 잠 깼네
@@커피우유-b6v 깽가리(x) 꽹과리(ㅇ)
민노총이 장악한 현재 개백수는 이런 프로그램 못만듭니다
큰애가 걸음마를 시작 했을무렵에 고마신사에 갔었는데 신사 입구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큰 대리석으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현대에 세원거긴 합니다.
고마신사는 출세를 기원하는 신사로 유명하고 그 일대가 전체가 파워 스팟이라 해서 풍수지리적으로도 기운이 좋은 곳입니다. 일본 신사에서 판매하는 오마모리(부적의 일정)는 천 주머니에 종이 부적인데 이 신사에서는 방울입니다. 풍수적으로 방울소리나 풍경소리는 악운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고 하죠. 신사에 방문한 유명인의 이름이 즐비하게 걸려 있는데 일본의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의 이름이 여느 신사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사 마당에는 천황이 심었다하는 나무도 있고 매년 천황계가 찾아와서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신사에서 도보로 20분정도 떨어진 곳에는 약광왕과 그의 일족의 능이 있는곳이 있는데 이곳은 건축물과 전체 환경이 일본이라기 보다는 경주나 한국의 역사유적이 있는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근대에 들어서 고마시에서는 김치 만들기 행사도 하고 이곳은 소바(메밀국수)가 아주 맛있습니다. 소바의 향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역사 연구는 "현재"를 정의하는 투쟁입니다. 제가 80년대에 일본에서 일본 사립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일본 역사책에서는 [지금도 그럴 겁니다] 임나일본부를 정설로 써놓았고,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의 역사아 아닌 것처럼 서술했던 것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한편 중국은 주지하다시피 고구려를 지방의 한 호족 세력 정도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중국에 살기 때문에 조선[한국]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를 자기들의 현재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역사연구를 나라에서 지원해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사학과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현 강단사학계의 식민사관을 깨기 위한 대안도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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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cam.com/video/kGMQMGSdsEw/w-d-xo.html
우리가 역사왜곡하는것도 있을거같아요
@@손고쿠-i1i 우리의 조선시대 조상님들은 중세사를, 그리고 우리는 고대사/중세사/현대사를 모두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조선지배층을 욕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죠.
@@손고쿠-i1i 우리가 역사왜곡하는 것 뭐가있는지 나열해보시길~
@@코알라-c7h 일제시대 역사왜곡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 가야계등 한반도에서 넘어간 인원이 어마어마했을듯.... 신라가 통일후 고려 조선을 거치며 외침을 통한 전쟁으로 솔직히 혼잡된 종이 더많을듯하고... 현재 일본 인구가 1억 2천이 기준이라면 600년대부터 일본 본토에 내전외에는 국토가 초토화되는 외부침략이 없었으니 인구의 대다수가 한반도에서 넘어간 도래인인듯... 어떻게 보면 현재의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피와 뿌리를 가진 후손들이라고 봐야할듯...
유전자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됨. 고로 헛소리임. 오히려 한반도에 중국인들이 대거 넘어왔다는 것은 유전자로 증명됨. 물론 족보로도 증명됨. 대표적인게 댁임. 송씨는 고려시대에 송나라가 멸망당하고 넘어온 중국 유민들의 성씨임. 댁의 족보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겁니다. 중국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어느 한 국가가 멸망당하면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한반도와 동남아로 이주를 했거든요.
조선에서 많은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이런 유전자는한다. reimeinews.jp/wp3.2/wp-content/uploads/2015/06/WJSVaQ6.jpg
야요이 인은 강남에서왔다.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 ! 시노다 겐이치 씨 인터뷰 "우리의 뿌리는 5500 년 전에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
iwj.co.jp/wj/open/archives/102215
중국 중국 하는데 중국도 남방계와 북방계로 크게 나누어 집니다 .북방계는 사실상 우리 한국인과 피가 거의 같습니다. 같은 민족이기에 나라 경계선만 다르다고 보면 됩니다.
@@大신라혼 DNA 70% 유사 특히 전라도 남부는 거의 비슷함 마한이 아마 일본인 조상이 가능성 높음
주몽 이후 고구려 역사와, 가문의 정체성을 알기 시작한것 같네요.
고이즈미가 아베가 고구려 성씨라는 것이 .... 혹성탈출....ㄷㄷㄷ
カムサハムニダ💐歴史の勉強になりました、💐
최고의 프로그램 입니다
저기를 몇번이나 갔었는데요 가슴이 벅차 오르는걸 느꼈습니다
인터뷰한 초딩 얼굴을 보자마자 어? 했는데 고마 신사 궁사 아드님인가봐요
성도 같고...똑닮았네
방계들은 성을 일본식으로 다 바꾸거나 외가성 따른걸로 알고 있는데...
고마 성씨를 지키고 뿌리를 그 오랜 세월동안 기억해줘서 고맙습니다
거대한 대전쟁으로 인해 일본으로 건너간 보장왕의 황태자 약광... 그가 일본에서 어떤 전쟁들을 수행했고 귀족이나 장군, 사무라이가 됬는지 높은 지위를 얻었는지, 어떠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고싶었는데.. 기록이나 유물이 더 발굴되길..
메밀소바가 고구려인에 영향받은 음식이라니 신기합니다.
日本語の翻訳を付けて下さい。お願いします。
마유 덕분에 좋은 다큐 보고 갑니다
나중에 한번 방문해보고 싶네요.
일본에 백제도 아니고 고구려라니.,
산동과 요동에 식민지까지 건설하며 진취적이었던 삼국시대가 왜 그 이후로 폐쇄적이고 내리막만 걸었는지 .. 삼국시대이후 왜 일본은 승승장구했는지 답이 나오네요 백제고구려 지배층과 무사 기술자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갔던거네요 베트남에 일본마을 중국마을은 있어도 한국마을은 없는이유..
@@강인하-c5v 어찌했든 일본은 자연스럽게 타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었네요 ㅋㅋㅋ한국도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여 더 나은 미래를 가지면 좋을듯 ㅎ 일본과 중국의 역사공정은 노ㅜ노ㅜ
@@Z_KOREA 일본이 타국문화를 받아들인게 아니라 그냥 한반도 도래계들이 세운 나라예요. 원주민인 에미시, 아이누족은 털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두려워했고 화합보다는 싸우는 일이 더 많았죠. 영국과 영연방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인들은 은연중에 일본과 한 뿌리라는 걸 부정하고 일본 역시 한국과 한 뿌리라는 걸 부정하기 위해 기를 쓰고 중국 강남이 뿌리라고 주장하던 게 서로 반복하던 두 나라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되네요.
1300년이 넘도록 고구려 이름을 지키고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정신이 대단하다.
私たちが神のように大事に守っている美しい寺院は古代韓国のものというのは衝撃です。言葉では言い表せられない。
高麗神社や百済神社の歴史を見ると面白いです。亡命してきた人が作ったという事がはっきりと記されている。
그 사람들도 일본인으로 살고 있고 일본에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결국 일본의 것 아닙니까?
사료에서도 반도에서 열도로의 대이동이 고조선 이후, 삼한시대 이후, 가야 멸망 이후,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 등 이 시기에 매우 도드라지게 많았다고 함.
마치 유럽이나 로(Ro)시야에서 전쟁/굶주림/내전/반란/폭동/박해가 일어난 뒤, 피해자들이 '탈출구'로 캐나나다 미국을 골라서 달아났듯이 말이죠(예 :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달아난 에이레[Eire] 사람들이나, 로시야 제국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달아난 폴스카['폴란드'의 바른 이름] 사람들/유대인들이나, 잉글랜드에서 국왕과 성공회의 탄압을 피해 북아메리카의 잉글랜드 식민지로 달아난 청교도들). 서양 사람들이 아메리카를 '탈출구'로 삼았듯이, 고대 배달민족(한국인/코리안)도 왜 열도를 '탈출구'로 삼은 게 아닌가 합니다.
17:02 일본 학자분이 고마산 지형을 3D로 보여 주는 걸 보니, 게임 신장의 야망 재밌게 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고대 한국인의 일부가 일본으로 이주하여, 뿌리를 내려온 건 사실이지만, 현대에 와서 한국과 일본은 너무 다른 나라가 되었죠.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사실상 같은 민족이면서도, 정치적인 대립과 최근의 전쟁을 통해,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을 볼 때, 국가 대 국가로서 정치,외교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일부에 고대 한국인의 혈통이 섞여 있다고 해서, 무조건 화해하고 친하게 잘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게임과 문화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강압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참회, 진정한 사과와 평화에 대한 약속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일본은 영원히 먼 나라이자 경계할 나라일 뿐입니다.
이정구 성우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멋있으시네요 ~ ㅎㅎ
최고입니다
후손들에게 고구려혼을 가르친 분들이 대단하네요. 13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예전 다큐들이 역시 잘만들었네요
국뽕이라는 댓글 어이없네ㅋ 저 사람들은 본인이 고구려인 후손이라는거에 자긍심을 느끼고 소개하는데 국뽕 ㅋㅋ 이젠 역사적 사실마저 국뽕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가봐
우리나라 사람들 종특이 일본 못살때 문화 좀 전파해줬다고 일본천황이 우리민족 사람이다~~ 하면서 개지ㄹ을 떠는데 안역겨움? 넘어가서 살면 산거지 저런걸로 삼국시대때 우리나라 민족이 넘어가서 나라를 세웠니 뭐니 어휴.
현재 일본 왕가는 야마토왜는 가야계 일본은 백제계입니다. 공부 하시면 알게됨. 토착민은 남방계로 그냥 문명 개화가 않된 원주민 수준임...
@@joonhojeon1262 아니 그건 알겠는데 그게 왜 우리 역사라는거냐고 ㅋㅋㅋ 그럼 흉노태자가 넘어와서 신라 김씨왕조가 됬는데 신라역사는 중국꺼겠네 나당연합이 통일했으니 우리나란 중국역사겠네 ㅋㅋ 님들 논리대로면 우리나라가 중국속국맞네 ㅋㅋ
자랑스럽게 재외일본인이요 백제계요 고구례계요 하는 일본에 사는 국민 본 적.있나?
우리역사는 아니긴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이런인물이 있엇다 하는정도 공유정도 하고있엇다라고 생각하면 좋을거같아요
약광은 보장왕 아들 일본에 건너가서 정착해서 고구려 인으로서 부심을 부렷다
흑치상지 백제 출신으로서 백제 200여개성뺏고 유인궤와 부여풍에 설득으로 사탁상여와 함께 당나라 군인이되구
고문간 고구려 출신 돌궐 장수 였다가 당나라로 장군 됨
설계두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 장군이 되어 고구려 정벌
이정기 고구려 출신으로서 제나라를 세움
옛날에 한여름에 여기 구경하겠다고 땀 뻘뻘 훌리며 걸어갔다온 기억이 나네요..^^; 아무도 없고 정적만 흐르던 그곳;; ㅋㅋ
와....마지막 분 고구려 22대왕 안장왕의 후손이 맞으십니다! 시바 스케야쓰시 ! 누가 알려준 왕의 후손이라는게 본인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하시며 안장왕의 22대손이 확실한지는 몰라도 믿어야겟죠 라고 하셨지요! 네이버에 검색하니 바로 나오네요!
전통문화 보존에 있어서 한국이 일본에게 배울 점이 많고만... 우리나라는 항상 혁신과 개혁, 효율을 추구하느라 옛걸 자주 잊고, 침략도 많이 당해서 문화재도 많이 소실당했는데, 저런 면에선 일본이 굉장히 부럽다
맞는 말씀 같지만 임진왜란 일제강점로 인한 약탈 소실로 인한 이유가 클 것이다
우리의 문화재와 재물을 거의다 훔쳐갔지 않았나
부러울 일 인가
왜 눈물이 나냐
오늘도 행복하세요/골동품덕후 함께합니다.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수백년을 이은 마을 축제, 20대, 60대에 이어 가업을 잇는 모습이 대단해 보이면서도
전쟁이 온 땅을 휩쓸지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라 가능한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ㄴㄴ 와 사상 때문이에요 th-cam.com/video/QkbWSaVkro0/w-d-xo.html
우리는 생활에서 고구려를 잊은듯 보이는데, 일본에서 오히려 고구려 정신을 계승해 가고 있어보여 반갑기도 하지만 조금 씁쓸한 느낌도 있네요. 우리도 고구려 발해 등을 좀 더 쳬계적으로 연구하고, 아직까지 이어오는 풍속등을 연구하는 단체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런다고 사람들이 하려하면 다른쪽에서 혹시 빨갱이라 할지도 모르겠네요ㅠ.ㅠ
新しい事を教えて👂️?くれてよかたんです❤有りかとございます。うれしい😃🎶
한반도에서의 고구려는 흔적이 없는데 오히려 일본에서 고구려가 살아있네요
사실 고구려의 흔적은 북한에 가장많이 남아있죠
고구려후손의 핏줄도 북한주민이구요 아마도 그래서
북한사람들이 호전적이고 자존심이 센듯
단 1799 명의 난민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왜 삼켜 고구려의 흔적은 전혀 없다.
조선에서 많은 일본으로 건너 갔다면 이런 유전자는한다. reimeinews.jp/wp3.2/wp-content/uploads/2015/06/WJSVaQ6.jpg
야요이 인은 강남에서왔다.
유전자 연구의 권위자! ! 시노다 겐이치 씨 인터뷰 "우리의 뿌리는 5500 년 전에 중국 남동부에서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
iwj.co.jp/wj/open/archives/102215
@@ytaaa2007 마 뭐라카노
우리나라 성씨중 횡성고씨가 고구려왕족의 가문이죠
29:05 이 고분군 근방에 또 다른 고분군(와카코다마 고분군)이 있는데, 그 곳의 이 아무래도 시대,유물,고분 형태 등에 있어서 고구려쪽과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이 지역은 이미 고구려계 유입 이전에 백제계 신라계 도래인 호족들이 먼저 선점 하고 있던 지역이라 사키타마 고분군 같은 경우 축조시기나 형태 같은것이 백제 신라 쪽과 더 가깝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재밌겠봤어요 기대되네요
참. 역사란.. 흔적을 찾아야 서로를 알게되겠지요
근대에 안좋은일도 있었지만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 미워하고 증오했다고 국민감정을 자극하는것은 정치인이요 이에 휘둘리는것은 순진한 국민인데 증오의 시대가 빨리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
とても興味深い動画楽しませてもらいました!出来れは英語と日本語の字幕が欲しいです。
백제가 신라한테 멸망당하고 백제인도 왜로 많이 넘어갔다..그러므로, 일본의 고대 중세 국가는 고구려,백제,신라인의 유민들이 자리잡고 살았다고 볼 수 있음..왜냐하면 그시절에 멸망한 왕족이나 귀족들은 같은 살 수 없었으므로, 유배형태의 형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보는게 정설...
그렇습니다. 백강 전투에서 패한 왜구의 배에서 귀족 등 백제의 왜인 3000 명이 난민으로 망명했다. 당시 왜구의 인구 500 만명! ! ! ! 당시 백제, 신라는 왜에 인질로 보냈다! ! ! ! 망명 백제인 2 명 정도가 중류 귀족 징수되었지만, 대부분은 관동에 개척민으로 강등되었다. 이전에 신라, 백제에서 온 살았다는 털끝! ! !
일본인의 유전자 애리조나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인 남성 62.1 %의 유전자는 Y 염색체 D1b 34.7 %, O-47Z 22 %, CM 4.4 %라는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없는 특수한 유전자이기 때문에 대륙과 남쪽의 섬에서 도래 한 민족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민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배급 유전자 배열은 해외 유적 인골에 아직 발굴하지 않고,
거의 일본에 한정되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Y 유전자의 YAP 재 분류에 따르면, 일본인의 Y 유전자가 35 %를 차지하고,
세계적으로도 고립 된 상태에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추적 잘 정리 해 주셔네요
동경여행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길 추천 합니다
우에노~사이다마~ 히다카시
유명음식 : 우동도 있어요
그리고 밤나무가 많이 있고
고마신사는 약광왕의 후손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으며 옆에 약광왕이 처음 살았든 집도 그대로 보존 되어 있으며 일본에 살고 있는 많은 교포후세 분들께서 후원도 하고 계신듯 합니다
일본은 고구려만 영향을 끼친 건 아니고 백제,고구려,신라,가야 모두 깊은 영향을 끼침
맞아여 중국도 영향을 줌
1799명보다 더 많은 고구려인들이 도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들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ek.
이후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나라와 몽골에 정복 당했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나라다.
고조선문명이 중국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중국사관학자들이 환빠라고 거품 물며 발악하는 이유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역사를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kaizazerem816 본인 정신부터 붙잡아 놓고 댓글 남기길
@@waikiki_9317 ㄹㅇ ㅋㅋ
@@kaizazerem816 노비에 한이 맺혔나?
댓글마다 노비 얘기를 하는걸로 볼 때 조상님이 노비 출신이라도 되나보네?
한이 맺힐만도 하군
그런데 조선시대에 신분제는 초기에 양반 상민 노비가 대체로 1/3 정도 되었다가 노비가 점점 많아졌으나 조선 후기에 신분제가 무너져서 돈으로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된 사람들이 많았음.
양반이 넘치고 노비는 줄었음.
노비의 신분은 노예와는 다르게 상당히 자유로운 편임.
별도의 재산권도 있었고.
일부 몰지각한 양반들이 인권을 유린하는 사례가 있었으나 일본의 농노와는 다르게 언로도 열려 있었고 생명권도 보장 받았음.
노비도 함부로 죽이면 살인죄를 물음.
일본에서도 우리국민들이 산다는것 너무신기합니다...
동시에 나당으로 당한 백제를 함께 공감하며 이미 백제땅이엇으니 백제왕가 천황가에게 알현하고 정식 도움을 받은탓에 그 루트로가게된거다 즉 천황백제왕으로부터 좋은땅을 인도받은것이다
왠수들이지만 화합해야 하는 이유도 저런 역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피를 나눈 형제네요~ 신라때부터 고구려 그 이후 강제 이동돼서 정착한 후손들까지 일본은 절반 이상이 한국의 후손들의 나라인 샘이죠~
맞습니다
지구상에 된장국먹는민족이 일본과 우리뿐입니다 일본인 70% 아기때 궁뎅이에 몽고점 있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영국인이 아메리카로 이주해 미국세웠습니다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이주해 일본을세웠습니다
2:38 약광왕 초상이 안악 3호분 묘주 벽화랑 완전 비슷하게 생겼는데? 전승되는 그림인지, 안악 3호분 발굴 이후 모사해서 그린 건지 궁금하네
한일관계가밝히밝혀지길빕니다
고구려 시대에 일본에천황이 있었다는 자체가 개소리임..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니는 어떤역사책 보기에 이렇게 멍청하니
@박재현 너무 길어 안읽었네
일본이랑 엮이지 말죠. 토나요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저기 유전자 분석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걸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유전자를 분석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쉽지만 한국인/일본인들은 중국인들과 지리적으로는 이웃일지 몰라도 유전적으로는 이웃이 아닙니다. 언어 그룹도 중국어는 'Sino-Tibetan' language family에 들어가 있고, 한국어, 일본어는 약간 견해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각각 Koreanic, Japonic 에 속하고, 크게는 'Macro-Altaic'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아시나요? 모르겠죠? 그러면 최소한 검색이라도 해보시길... SIno-Tibetan group는 중국어, 티베트어 등의 남동아시아 지역의 언어 그룹이고, Macro-Altaic group는 터키어, 퉁구스어, 몽골어, (한국어, 일본어)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언어 그룹입니다. 애초에 유전적/언어학적으로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들이 많은데 이렇게 의미없이 역사왜곡을 하는게 참 안타깝네요. 공부 좀 하고 오세요.
0:35 ㅋㅋㅋ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여기에도 ㅋㅋㅋ
나중에 설치한거...
@@gatsbyjay1707 헐...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정말 다행이야. 같은 조상이면 정말 억울했을거야. 욕도 마음껏할수있어 천만 다행이야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아저씨 병원에 가보시길요 ~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댓글공작하면 중국정부에 얼마 받죠? 건당?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많이 똑같은 소리를 나불대지 않을텐데 전단지 뿌리는 알바생 보는 것 같네요.
46:10 고이즈미도 고구려계구먼..
고이즈미 일본 전 총리도 고구려계.
어제도 고구려 후손임
아베
@@yukyung4889 정말요? ㅡㅡ 고구려후손들 안되겠네ㅋㅋㅋ
보고싶은것만 보지마시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않습니까?
영상 감사합니다
한반도와 대륙에서의 패권전에서의 패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패자부활전을 벌였단 얘기네..
영어로 올려야 할 것 같아요 요즘 부쩍 유튭에 한국 고려 역사를 지워버리고 1000년 동안 중국의 속국있었다는 게 많이 올라와요 ㅡㅡ k-pop역사가 정부가 노련해서 계획한거라고 루머를 퍼트리네요
th-cam.com/video/5uNx5DuQ-mo/w-d-xo.html
위의 영상이 진짜 한국사입니다 지금 우린 일제가 만들어놓은 가짜역사를 배우고있어요
1922년 제 3대 조선 총독 사이코 마코토는 다음처럼 조선의 교육을 재단한다."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이 선조와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 등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그러면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 일본사적, 일본의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섭고도 주도면밀한 정책인가, 이로써 우리나라는 지금 까지도 그 악습이 남아돌고 있다. 본디 우리의 국학(國學)은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버지와 어머니께, 형제들께 배우고 자라오는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우리의 국학은 성공보다는 완성을, 경쟁보다는 상생을, 소유보다는 관리를, 지배보다는 존중을,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하는 가르침 이었다. 악습을 없애고 우리의 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린 고조선 이전부터 나라가있었습니다 우리의역사서를 일제시대때 일본이 시골산속까지 곳곳까지 다 찾아서 태워버렸습니다 단군은신화가 아닙니다 다행히 중국쪽에 환단고기때
유물이 남아있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려는게 그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명산마다 정기를 끊겠다고 말뚝까지 박은 일본입니다 다들 우리의역사를 바로 세워주세요
정부가 중공 간첩 빨갱이 집단이면서 미국에 매달리는 매국노 집단이기도 하니 기대할게 있겠습니까
M
적어도 500년은 속국이였지
@@가끔정신차림 미친~~~반대로 중국의 고대국가들이 고구려의 속국이었다 해야 맞을것이다 그들이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깨지고 망국의길로 간것이 한두번이 아니거늘~~~
이노우에, 고이즈미가 고구려 도래인 성씨라니 우와 놀랍다!!!!!
아베는 발해 성씨이져.
아니러니하게도 2차대전 패배로 신상류층 조선평민 도래인 명치유신세력이 물러나고 삼국도래인후손 구상류층이 대거 정치주류로 복귀합니다.
무슨 정신승리 . 그냥 그렇다는건데.
영국왕가가 독일계후손인데 1차대전때 독일이름을 영국식이름으로 바꾸져.
@@김유신태대각간 임마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썩은 지식 썩은내 풍기네.도데체 어디서 역사를 배웠길래 역사에 대해 확신을 해? 지가 그 시대를 산것도 아니면서.본 영상 똑바로 안보냐? 고구려인이 일본 건너가서 굉장한 도움을 줬대잖냐. 그만큼 기술력이 뛰어난거지.근데, 백제가 일본 속국이었다고? 머리가 빈거냐? 그 당시 백제하면 고구려,신라와 통일을 하기 위해 경쟁하던 사인데,백제가 그만큼 기술력이 없었겠냐?그런 헛소리는 니 머릿속에서나 풀어놓고 퍼뜨리지 마라. 주변에 오염될까 두렵다.모르는것이 죄라지만 거짓을 퍼뜨리는건 가장 큰 죄악이다.뇌피셜은 뇌피셜로 끝내라.
@@작아지는아이 아놔 잠깐 쉬려고하는데 위에 이상한 댓글만 보고가네요 ㄱ-...
저런애들때매 걱정되네.....
너무 수고많으십니다.
아니에요 잘 들어보면 자막은 고이즈미인데 소리는 후쿠이즈미에요 ㅠㅠ 자막 오류
역시 삼국시대 다큐는 고구려 다큐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이 몇년 전 고마신사에 참배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고구려 후손 약광을 모신 신사였군요.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이색히 중국놈이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한국인 같은데?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중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여기저기 허접한 뎃글 달고 다니네?
무식한 🐕가 왈 왈~~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똥사는 소리하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중국역사는 절반이 이민족들의 역사고 그 역사는 한족들이 그 이민족들에게 굴복하고 그랬었음. 그 이민족들의 나라가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연나라 등이 있고 그 이민족들은 흉노족, 선비족, 만주족
, 몽골족,거란족, 티베트족, 위구르족 등 많은 동아시아 민족들이 지금의 중국이 있는 대륙들을 지배했었다 그리고 지금 중국 땅 요하 요서는 우리민족들이 다스렸기도 했던 적도 있었다. 고구려 발해 당시 그 요하 요서는 지금 랴오허 강 부근에 있던 지역이다.
일본의 신사에 있는 코마이누도 고려 高麗 라는 한자를 씁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삼국의 후예들이 일본에 도래인으로서 그 땅에 선진문화를 전하고 발전시키고 또 서로 싸우고 분쟁과 분쟁
일본에 흡입되고
인간은 화평보다는 분쟁속에 살아가는 본능자
오우치가문의 시조 백제 임성태자 - 무사시노 개척자 고구려 약광왕 두분다 일본으로 건너 가셨구나..
고구려는 끝나지 않았다.
멸망하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으로 현재를 살고 있다는 어떤 일본사람... ^^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제발좀 논리있게 반박좀 해봐라
매번 똑같이 하고 너는 계속해서 빤스런하고
매번 같잖아 좀 재밌게 해봐
@@고구려백제중국사들
기본 룰을 다시 설명을 해줄게 지난번에
보여준거 이미 반박을 했으니 안되고
중원 일본의 입김이 전혀 없어야 된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자료 주는곳에서 새로운건 안준거냐?
@@고구려백제중국사들이런 머저리도 있구나.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멍멍아 내가 너무 깠니? 울지말고 핑핑이랑
웅담 먹으면서 놀아라
어디갈 곳이나요 중국욿 외국으로ㅡㅡㅡ갊대가여기밖에ㅡㅡㅡ,갈곳이 있나요😢😢여기여당나라에ㅠㅠ
감사합니다.
유학 마무리기념 오늘 갔다왔습니다.
다른분들도 꼭 갔다오시길
메이지 유신 이후로 왜그렇게 집요하게 역사날조를 했는지 알 수 있겠네요........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응 토왜~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응 니피셜~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응 무식한데 신념있음 인증 ㄳ~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이정도면 엄마빠도 포기한 병자임 ㅋㅋㅋㅋㅋ 정신병원가야하는데 좌파 정권이 정신병원 입원 어렵게 만들어서 난리네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들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ek.
이후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나라와 몽골에 정복 당했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나라다.
고조선문명이 중국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중국사관학자들이 환빠라고 거품 물며 발악하는 이유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역사를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고려의 삼별초... 근 7~80년쯤 저항하다 제주도에 옮겨 저항하다 패하자 일본으로 갔다... 일본으로 갈때 인원이 수천명...
처음 삼별초가 저항을 위해 이동할때 으로 보따리 다 싸서 최소 5천명 이상의 인원이 구성 되어 움직이며, 이들이 닿는 곳 마다 큰 마을을 이루고 계속 저항을 한 것.... 삼별초도 수천명 이상이 일본으로 가서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한반도에서 이런저런 나라들이 마지막 전쟁에서 패하면 남은 유민들은 모두 일본으로 갔던것 같다. 고구려 고려 부여 옥저 삼한 백제 신라... 이들도 남은 유민들이 모두 일시에 일본으로 갔기때문에 그들의 흔적... 기록 유물 같은 것들을 들고갈수 있는 것들은 갖고 갔기 때문에 ... 현재 한국에서 그들의 유물을 찾기가 어려운게 아닐까....
고구려 후손이라는 전제에 취재하였므로 현대과학 기술력을 빌려, Y하플로타입을 분석해보면 더 좋겠슴.
감사
한일이친해지길빕니다
1300년동안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대단하군
어느 언어학자가 이야기 했지
한민족의 잊혀진 언어.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일본을 연구하라고.. 우린 신라중심으로 역사를 기억하지만 찬란했던 고구려.백제의 역사는 일본에 살아 내려오고있다
고로 우리의 싸움은 혈육의 싸움이다라고도 할수있다. 혈육의 싸움은 더 잔인하다.그러나 작은 희망은 동일한 조상과 역사를 가진 민족이니 다시 역사를 되돌아보고 용서와 화합으로 형제의 국가가 될수 있기를 기원한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www.nahf.or.kr/gnb04/snb03.do?mode=view&cid=61500
응 맞어 일본성씨중에 한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아
@@김유신태대각간일본이라는 국호도 백제에서 온거고, 그 백제도 주몽의 아들이 본인을 홀본부여인이라며 이름을 따온데서 시작된겁니다.
이런거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기술을 너무 천시한거 같음🤦
조선이 문제임
좆망한 주자학 들고와서 역행함
근데 조선 초는 또 괜찮음
임진왜란 후 선조부터 나라가 흠..
@@kkhj1729 문제 찾는것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돌린게 문제였죠. 결국 나라 전체를 차단시켜 버리죠
@@kkhj1729 정확히 아시네. 조선초 진짜 자주적이였는데 ...사림 개개끼들
@@kkhj1729 조선이 민생보다 국가가 빨대 꽃고 빨아재끼면 국가자체는 그럭저럭 풍족할수도 있었음 구휼미 나오는거 실록 참고해서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 곡식이 나오는 것인지 적게는 수만에서 심하겐 백만단위로 곡식을 풀어재낌 이것을 보아서 팔거나 국가가 조세를 높혀 수금했다면 병력이고 뭐고 각도기 젤수 있었는데 조선은 그 물자를 백성들에게 풀고 또 풀고 계속풀어냄
cafe.daum.net/freemicro/1CmD/331
조선신사 대동보는 한반도 이주 양반 인명록 ..조선이주 수인초
m.cafe.daum.net/freemicro/1CmD/303?svc=cafeapp
명성황후의 능 크기는 얼마만 했을까
1895년 살해당함.
알렌이 고종의 어의였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서 책을 저술.
에카르트 신부도 조선에 왔다 돌아가서
명성황후의 왕릉크기를 책에 저술
둘다 규모와 크기가 일치.
규모를 보면 현재 한반도 왕릉과 크기가 엄청 차이남.
th-cam.com/video/lJJ889PON7I/w-d-xo.html
외국인 눈에 비친 아름다운 대륙조선 기행문
cafe.daum.net/warong84/Hz6e/37?q=%EB%8F%85%EC%9D%BC%EC%9D%B8%EC%97%90%EC%B9%B4%EB%A5%B4%ED%8A%B8%2C1919%EB%85%84%20%E6%9C%9D%E9%AE%AE%EC%9D%B4%EB%8C%80%EB%A5%99%EC%97%90%EC%9E%88%EC%97%88%EC%9D%8C%EC%9D%84%EC%A6%9D%EB%AA%85
독일인 에카르트, 1919년 朝鮮이 대륙에 있었음을 증명.
th-cam.com/video/_o7zMCK-4ew/w-d-xo.html
역사왜곡의 서막 중국25사의 탄생과
조선사편수회의 관계
th-cam.com/video/xO6BGLh07Gs/w-d-xo.html
광화문 광장 지키자,
대륙조선사를 반도사관으로 바꾼 일제
윤봉길의사 선서문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26일(1932년)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고구려 도래인들은 무사시 신라계 도래인들은 야마구치 백제계는 규슈 기나이 가야계는 규슈쪽 도래인이 되어 원주민들의 지배계층이됨
ありかとうございます
빌어먹을. 백제의 유물은 일본에 압도적으로 많이 남아있고, 고구려 풍물, 후계라는 사람들이 일본에 남아있다니.. 정말 이거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백제가 중국사? 이건 ㅉㄲ들의 동북공정이잖아? 이래서 중국이 싫어. 니네는 징기스칸도 중국인이라며? 기가막혀.
@골드미즈노 이런 미친놈도 있군. 백제의 지배층은 부여계지만 피지배층은 한국계잖아? 중국놈들이 백제인구 전체를 끌고가지 않았을 거고 일본으로 다 건너가지도 않았을거 아냐? 고구려사가 일본사러고? 정말 왜구놈들의 뻔뻔함은 상상을 넘네? 당나라 역사도 일본사라고 하지 그러냐? 니네 기모노도 당나라거니까 당나라도 니꺼??? 니네는 원래 훈도시 차고 맨발에 훈도시 차던 놈들아니냐?
일본은 전통을 중시하니까요. 한국은 일본 문화라고하면 청산해야할것이라고하지만
역사를 소중히 하는 문화 반드시 본받아야합니다
일본은 삼국 후손이라 보면됨
日高에 재일교포의 절이있는데 그 분도 일제시대 건너간게 아니고 고구려 후손 일수도 있네요.
관서지역은 백제계 관동지역은 고구려계나 신라계후손들
즉
일본은 국호가 백제랑같습니다
일본인들은 백제계 고구려계 신라계로이루어진 나라
조상이 같습니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응 있어 신찬성씨록에 나오는데 지는 끝까지 아니래 백제계 202개 고구려계52개 신라계48개 진실을 회피하는 매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역사공부좀 자세히 하기를
한국사만 수박겉핧기식말고
검증된 일본고대사까지 세밀히
봐야지
그리고 백제계는 한강이남부터충청계가 대부분
전라는 말이 백제이지
지방호족들이 그냥 대다수 별개임
바보인가! 조선의 역사서 삼국지기에는 백제, 신라는 왜 인질을 보냈다고 적혀있다. 광개토 왕비에는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 신라를 신하로했다고 적혀있다. 당시부터 일본이 강국인데 그런 이유는 아니다. 또한 일본인은 죠몽 유전자 D가 40 % 이상이다. 한국인은 0 % 전혀 다른 민족이다. 일본인 すり寄る은 그만! ! 기분이 나쁜! ! ! 지금의 한국인은, 만주인, 중국인, 몽골 인에게 범했다. 2000 년 노예 민족이다! ! ! !
@@고구려백제중국사들 👍
@@ariellerusty8251 바보 삼국사기라고 써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조선의 역사서 아닌가?
삼국사기 (백제 본기)
397 년 여름 오월 아 莘王는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의 腆支을 인질로 왜에 보냈다.
402 년 오월 사자를 왜국에 보내어 큰 진주를 요구했다.
403 년 봄 두 월 왜국의 사신이 와서, 아 莘王 그를 맞이하고 위로하고 특히 두껍게 대우했다.
405 년 腆支 태자는 왜국에서 아 莘王의 부고를 듣고 哭泣하면서 귀국 할 것을 부탁했다. 왜왕은 군인 백 명을 동반하고, 호송했다.
418 년 여름 사자를 왜국에 보내어 白綿을 열 반을 보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402 년 삼월에 왜국과 通好하여 奈勿 왕의 아들 미 斯欣을 인질로 왜에 보냈다.
광개토 왕 비의 견해는 중국과는 일치하고있다. 너희들의 역사 감은 판타지한다. 조선은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의 속국으로 인식하고있다.
한반도 출신이 뚜렸한 사람들 한반도에 관해 심경이 복잡 하죠. 동질성은 느끼지만 자신들이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생각 입니다. 어떤이들은 적대시 하고 어떤이들은 도움을 줄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인 사고는 일본 자체가 계급 사회라 자신들이 우위에 서야 하는다는 사고방식.
고마케이코. 예전에 오까야마에 살때 우연히 百済성씨를 본적 있음.백제조상인지 물어볼껄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이것땜에 깡통닉까지 새로 파서 일일히 어그로 댓글 다는 네 인생이 정말 대단하다
혼조스즈 . 아라이 리마도 고구려피.. 어쩐지 끌리더라..
이 영상을 보며 일본이 누구 후예다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함. 고립되어 있던 섬나라 특성상 발전이 저렇게 더뎌도 계속해서 기술자들 받아들이고 자기것으로 만들고 우리보다 강성국이 됐다. 지금이야 노령화로 발전이 없지만 저들은 저렇게 세계강국이 됐다는거지. 일본이 모방을 잘하고 지금도 장인들이 많은 게 저렇게 귀화인 받아들이고 배울게 있다고 생각되면 어떻게든 기술을 가져오려 했으니 지금의 일본이 있었겠지.
잘못 이해하고 있는 1인.. 일본이 외지인을 받아 들인게 아니라 일본 섬 자체를 백제 고(구)려인들이 넘어가 살며 발전시킨거지 그곳에 무슨 토착 세력이 있었겠는가?
일본이 기술을 받아들이고 강성국이 된게 아니라 동아시아에 식민지를 하면서 수십년을 약탈해 간게 강성국의 근본이 된거져
참 잘못 이해하고 있네여
그러게요. 중요한 포인트를 간과할 필요는 없지요.
그.. 고구려 라고 불리기전에 부여홀본 (홀본=태양의나라) 라고 불렸었는데 부여홀본왕이 아들없이 딸만 셋이여서 주몽한테 소서노 보내서 결혼 시켰음. 그 소서노 와 비류 온조 는 주몽 다음 후계서열1순위나 다름없었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유리 2대왕(주몽 갑자기 죽음 시체도 없음) 때문에 쫒겨나다시피 남쪽으로 내려가서 백제 세움. 백제 황실은 우리가 부여홀본이라는 뿌리 를 잊지말아야해서 백제황실만 따로 남부여홀본 이라고 칭하고 외적으로는 백제 라함. 그러다 당나라 공격으로 백제 무너지고 백제 잔여 황실세력 남부여홀본이 왜쪽 영토 로 가서 왜를 병합 시켜서 지금의 일본이 된거임. 부여홀본(태양의나라).
백제=홀본
홀본=일본
고구려=백제
일본이랑 왜 랑은 아예 다른 나라 였음. 왜나라 는 몇백년간 토착세력 이었음. 그런 나라를 백제 잔여세력이 합병 시켜서 지금의 일본임. 부여는 얼마나 컸던걸까 상상이 안됌 ㄷㄷ..유리 왕은 대체 어디서 온걸까..
받아 들인게 아니라,
그냥 주입된거죠...
그냥 고구려, 백제의 또 하나의 터전이였을뿐
46:20 헉 "고이즈미"도 고려계 성씨~~ ㅋㅋㅋ
삼국시대
우리나라 기술을
너무 많이 전파했다.
Kokuryo 's yakkwang king made kokuryo sinsa in japan .and japan pray kokuryeo's king .Komak is the place that there town open festival . yakkwang king was the last king of kokuryeo and the son of bojang king in kokuryeo in korea history.
우리 선조의 역사가 일본 땅과 문화에 남아있군요.. 고맙게 봅니다.
한국은 일본 문화라면 청산해야한다고 울부짖는데 그릇차이가 다르네요
@@KoreanMonkey-IQ.60-80 일본의 역사왜곡을 싫어하는거지, 역사적인 진실을 배척하는게 아니죠
@@라일락-j2d 일본이 어떤 역사를 왜곡했나요
@@KoreanMonkey-IQ.60-80 임나일본부설,남한경략설은 오로지 일본국내기록에서만 나옴. 그 정도 대규모 원정이 있었다면 중국정사에도 보여야 하는 데 어라? 없네? 4세기 일본 역사는 거의 텅 비어 있다는 것. 이건 일본학자들도 인정한다. 그래서 신비의 4세기라는 표현을 쓰지. 그리고 자기네 주장은 역사가 2600년이 됐고 초대왕이 진무라고 하지만 이 역시 에가미 나미오등 일본학자들도 10대 스진왕부터가 초대라고 여기며 심지어 만세일계는 신빙성이 없고 삼왕조교체설까지 주장하는 상황이다.
@@KoreanMonkey-IQ.60-80독도,동해표기 정도 있겠네요. 한일합병은 강제병합이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한자 발음 권 이 곤이구나.. 나는 일본에도 권씨가 있는줄 알았다!!
한국어 발음 권(權)이 일본어 발음으론 곤이겠지요!
케이비에스 당신들한테 바라는거는 딱하나 뿐이다 내 수신료 갖자 쓰잖아 그니까 다 같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고민하고 하는 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래 지발 47년 세월동안 봐왔던 케이비에스가 비비씨나 머 그딴거 회사처럼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봐주세요 하는 방송이 되길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 상나라의 문화나 흔적도 중국에는 거의 없고 오히려 우리나라에 더 많이 남아있다고 함. 그 이유가 상나라가 망하고 상나라인들은 주나라에 의해서 억압을 받았고 반면에 주나라를 피해서 고조선으로 이주한 상나라인들은 고조선에서 대우를 받았다더군요.
이걸 바탕으로 나루토 닌자 일족 하나 만들면 되겠네요 ㅎㅎ
미후내 가 수장으로 있는 철의 닌자들이 위에서 말한 고구려 유민을 모티브로 만들었습니다
@@김사랑-e2f 저 근데 미후네의 철의 나라는 닌자가 아니라 사무라이들이 있는 나라인데요
@@김사랑-e2f 철의 나라의 모티브가 일본에 정착한 고구려 유민들이라는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인가요?
4:31 아베 히로유키 님. 기존에 알던 그 총리 아베와 이름이 같다니...
고구려백제가 먹여살렸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몽골사? ㅋ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 백제가 먹여 살렸지
우선 니가 개소리로 주장하는 몽골사 빼고
고구려 백제가 먹여 살린건 팩트잖아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지난번에 했는데 또? 얼마나 무식한거야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컨셉 징하게 잡았네ㅋㅋ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어그로 관종 일베충 매금이 얼른 병원으로 gogogo
자막 이럴거예요? ㅠㅜ
요즘은 왜 이런 프로그램이 없나요
일본 시스템 따라한 예능프로와 개쓰레기같은 재벌드라마를 보여주느라 이런 프로는 이제 맥이 끊어졌죠.
정작 한반도 에서는 언제 사라진지도 모를 고구려 문화를 계승 하고 지키고 있다니
희안 하군요 ㅋㅋ 일본은 고대 한반도 핏줄과 문화의 집합소 인가 …
역시 규슈랑 구마모토 관서 지방은 한반도의 영향이 강하 군요
중세시대에 고려라는 이름이 싫다고 이름 바꾸게 해달라고 일황에게 조른적도 있었다. 20~30년 전에는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의 작은 신사이었는데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고 재일교포 묘지 사업으로 돈 좀 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