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년간 구독해왔지만 처음 댓글을 다네요😊 보면서 끄적였던 생각을 나눕니다. 하나님의 스토리 전체의 결말을 바꾸는데 필요한 변수가 10이라면(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질)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10미만이다. 하나님의 신실, 그의 나라를 완성해가시는 전지전능함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폭을 웃돈다. 인간이 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다잡고 선택하고 울부짖고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나고 전심을 다해 고심하기에 하나님의 품은 충분하다.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결정’이라고 믿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 공간의 한계를 가늠하고 궁금해하는 자와 그 공간의 한계에는 관심 없고 공간의 거대함에 감탄하는 자의 대화이다. 그러나 이 두 견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지지하고 받쳐준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인류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차원입니다)
확실히 제목대로 이것보다 깊은 예정론 토론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몇번 예정론 토론이 있긴 했지만 이번 토론만큼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예정론측에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무조건적 유기라는 예정론의 너무나도 불편한 문제를 외면하는 방향으로만 대답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불편한 부분을 그냥 있는 그대로 가져간 스탠스가 좋았습니다. 물론 그것에 동의는 하지 않지만 비겁하지는 않아서 좋았어요. 사실 예정론이 맞냐 아니냐는 우리가 세상이 끝날때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한국교회에서, 예정론만 맞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인식은 좀 깨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예정론을 반대하는 이유는, 일단 제 도덕적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성경적으로도 수많은 맥락들이 뭉개지지만, 이 예정론이란걸 조금만 잘못 받아들여도 아주 끔찍한 인간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정론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일단 전제해야 할 것은 누가 구원을 받을 자이고 아닌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근데 예정론을 믿는 사람이 누군가를 구원받지 못하기로 예정된 자라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차피 지옥에 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예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예정론적 사고가 확장이 돼서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도 하나님께서 정하시듯 이 세상의 부유하게 태어날 사람, 가난하게 태어날 사람, 건강한 사람, 병든 사람도 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특별히 더 사랑하시고 누군가는 복 주지 않기로 작정하셔서 그런거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이 가르침이 너무도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가르침이 퍼지는 곳에서 교회는 그저 운좋은 인간들의 파티가 열리는 곳일 뿐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공간은 아무런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보다도 더 역겹게 느껴집니다. 제가 성경을 읽었을때 부나 건강, 흔히 말하는 이 세상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아무런 이유없이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주어진다기 보다는 의에 대한 보상이거나, 그보다도 오히려 사명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부자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그렇게 태어나게 하셨단 구절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를 망설이는 부자청년을 보시며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죠. 그건 더 특별하게 사랑해서 복을 주신게 아니라, 이 세상의 좋은 조건을 타고난 자는 마땅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집니다. 예정론을 믿는 것 자체는 전 무조건 틀렸다 할 수는 없다 보지만 최소한 그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이 돼요.
예정론만 딱 보고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글들을 전체적으로 읽고 판단해야 할것 같네요. 당연히 예정론만 딱 잘라서 판단하면 가질수 있는 오해들을 이야기 하셨고, 실제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고백서, 성령의 일하심등등 여러 주제들로 신앙을 정의합니다. 예정만 딱 잘라서 문제점만 이야기하는건 문제입니다. 예정이 빠지면 100% 행위구원으로 방향이 설정되죠. 결국은 공산/사회주의/무신론으로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저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고 동의하는 바이지만 동물들에 대해서 혹은 무생물까지 확장해서 본다면 기본적으로도 인간에 대한 편애라고 할까요? 그것을 충분히 전제할 수 있는데, 동물들의 고통과 구원 불가능성 거기에 비추어 본다면 인간은 구원하시고 동물은 고통속에 내버려둔다라는 것은 사실이며 인간만이 사랑받을 자격있다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어떤인간에 대한 편애와 유기에 대해서도 신의 왕벽한 자주권이 주어진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hwanginchan4478 일단 예정이 빠지면 백프로 행위구원으로 방향이 설정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흔히 드는 밧줄의 비유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을 잡으면 물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밧줄이 없다면 그 사람은 건짐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밧줄을 잡을지 안잡을지 인간의 선택이 개입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밧줄이 전제되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어느 구원론이든 하나님의 은혜가 전제되어야하기에 백프로 행위구원이라는 말은 틀린말입니다. 그리고 행위구원과 뒤에 열거하신 이데올로기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공산주의보다도 자본주의죠. 내가 열심히 산 만큼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인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ㆍ 다메섹님은 상대방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반박하시거나 주장 하시면 좋겠습니다ㆍ 예전에 설교시간에 예정론 말씀 듣다가 다메섹님처럼 화가나서 하나님을 떠난적 있습니다ㆍ 어느날 내동생 다니는 교회에 조카를 데려다주러 갔는데ᆢ 예배당 안에 들어선 순간ᆢ❤사랑하는 내 딸아~왜 이제서야 왔느냐ᆢ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느냐ᆢ 하시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엄있는 소리를 나를 감싸안으셨습니다ㆍ 그 자리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닭똥같은 눈물이 줄줄줄~ 그 다음날부터 미워하는 마음이 용서와 긍휼의 마음으로ᆢ😂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신 자기 백성은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ㆍ 회개하는것, 잘 믿는것, 기도하는것,전도하는것내가 내 의지로 하는줄.알았는데요 지나놓고 보니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고, 그래서 믿음 구원의 선물은 자랑할게 없습니다ㆍ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결과로 옳은 행실 즉, 성령의 열매가 나타는구요 하나님을 믿고싶다?고 하여 우리 인간은 그럴수 없는 존재이고 모든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되어지고 믿어지는겁니다ㆍ 성경 노아홍수때도 단 8명만이 ᆢ 나머지는 모두 휩쓸어버렸습니다ㆍ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이코패스다ㆍ악신이다 라는 발언은 조금 조심했으면 합니다ㆍ 내 교리와 맞지 않다고 하여 ᆢ 내 교리가 100% 아닐수도 있지 않습니까ᆢ 물론 예정론이 100% 맞지 않을수도 있겠지요 서로 진리 가운데로 가기 위한 토론이니 좀더 존중한 마음으로ᆢ 그래도 마지막 웃으면서 마무리 하시니 보기좋습니다ㆍ🎉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진심으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유익한 토론이었습니다! 일단, 예정론 찬성이든 반대이든 결국 인간의 인식 안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임을 양측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라이브 채팅창 보면, 예정론 반대론자들을 인간 위주로 해석하는 태도라고 하시는 분이 있던데, 제가 보기엔 예정론이야말로 전지전능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갇혀서 하나님을 해석하려고는 태도로 보입니다. 결국, 그 의미 때문에 생기는 모순을 이중예정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보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예정론 지지자 중에서 빛의 성질로 하나님의 성질을 비유하신 분이 계신데.. 이것 또한 인간의 결론일 뿐, 그게 빛을 전부 설명한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으로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성질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두 성질이 공존해야 빛이 나타내는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그렇게 결론지은 것이지요. 결국, 인간이 그 특성을 규정해버린 겁니다. 지금 예정론자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특성을 인간의 이해의 범주 안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즉, 인간이 가진 든 것으로 하나님을 설명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를 표현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엄청난 교만으로 보입니다. 제가 기독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인정할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오기를 바라는 분입니다. 인간이 직접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요. 애초에 인간이 하나님에게 돌아올 것을 알도록 창조했다면, 그것이 하나님에게 어떤 의미, 어떤 감동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각 영혼에 대한 구원의 결말로부터 스스로 눈을 감으심으로써, 피조물인 인간과 직접 관계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나아가고자 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결론을 알고 계신다라는 예정론은, 하나님의 그 마음을 무시하는 태도가아닐런지.. 그게 아니라면, 나는 믿어지니까 이 해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태함의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양쪽 모두 인간의 범주 안에서의 해석이지만, 저는 스스로의 결말까지 제한하신 하나님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둘다 인간적인 해석이나, 어느 쪽이 더 하나님의 선, 사랑의 속성에 가까운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전통적이기에 견지한다는 논리야말로 너무 답답합니다.
@@DamascusLiveTV사역자님께! 예정론 뿐만 아니라 칼빈교리, 루터교리, 어거스틴교리, 삼위일체교리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교리는 사탄 루시퍼가 생각을 줘서 만들어진 지옥가는 교리입니다. 칼빈, 루터, 어거스틴 모두 지옥에 떨어져서 엄청난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dolphinpark2264 1. 위 교리들이 사탄이 생각을 줘서 만들어졌다는 근거는 뭔가요? 2.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생각이 사탄이 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요? 3. 칼빈, 루터, 어거스틴 모두 지옥에 떨어져서 형벌을 받고 있다는 근거는 뭔가요? 명확한 성경적, 논리적 근거가 없이 위와 같이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원중-g7r 우리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영(성령)이 주시는 생각. 아니면 사탄 루시퍼가 주는 생각 2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영서이기 때문에 성령충만 받아서 읽어야 영적비밀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모든 교리는 성경을 벗어나서 잘못 해석해서 만들어진 지옥가는 교리입니다. 그 생각을 사탄 루시퍼가 준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서 가르치고 그 교리대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목사님들도 교인들도 거의다 지옥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이원중-g7r 성도님! 칼빈교리, 루터교리, 어거스틴교리, 삼위일체교리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교리는 사탄 루시퍼가 생각을 줘서 만들어진 지옥가는 교리입니다. 칼빈, 루터, 어거스틴이 다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 교리대로 가르친 목사님들, 조용기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김기동 목사님, 정필도 목사님 들도 회개치 않아서 다 지옥 가셨습니다. 물론, 중.소.개척교회 목사님들과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도 죽으신 분들은 거의다 지옥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양시무스님 너무 성경의 문자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에 천착하시네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문자와 구절이 모순된다고 하나님이 모순되시진 않아요. 칼빈주의가 틀린다고 하나님의 구원이 훼손되지도 않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선택받아 구원받았음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믿음이냐 또는 나의 전적인 자유의지로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음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믿음이냐의 차이입니다. 신앙적으로 둘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와 창조와 구원에 계시된 그분의 자유로우신 의지를 고려한다면, 신학적 논리상으로는 예정하심이 옳습니다. 단, 타락한 죄인의 영원 전 유기의 교리가 신앙적 걸림돌이 되면, 누구나 예정의 교리를 자유롭게 버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하실 점은 지옥에 죄인을 유기시키는 칼빈주의적 하나님이 잔혹하다면, 알미니안적 하나님 또한 죄인들이 지옥의 멸망길로 자유의지로 나아감을 다아시고도 그들의 자유의지를 절대로 훼손시키지 않고자 죄인들을 실질적으로 유기시키는 숨겨진 잔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의 눈에는 어차피 영원한 지옥에 죄인을 유기시키는 폭력적 하나님입니다. 물론 말할것도 없이 크리스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의 종말론적 실현이지만요.
두분의 논리들으면서 칼빈주의 예정론은 오류가있지만 그래도 예정론이 더 와닿네요. 어차피 무오한 신학은 존재하지않아요. 다메섹님이 발언기회가 훨씬 많고 먼가 분위기로 제압하는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내용만보면 자유의지쪽은 역시 설득력이 빈약한단 생각. 그리고 신학하시는분들이 사고의 한계가..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있습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발언기회에 대한 부분은 좀 잘못생각하셨다고 봅니다. 다메섹님의 발언이 더 많았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 맞습니다만, 그건 양시무스님이 이야기하지 않은것이고,(거칠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거고) 기회를 준 것입니다. 말이 겹쳤을 때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살펴보시면 저는 공정했다고 봅니다.
10시간 이라도 듣고 싶은 토론 이네요. 시간만 충분하다면 다메섹님이 칼빈주의 모든 교리를 헤렘, 박살각 나올 것 같은데 시간이 아쉽네요. 한국 기독교 변증의 아이돌 다메섹..역시 변증력 끝판왕 최종보스 인정합니다. 양시무스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다양한 루트의 칼빈주의 논증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양시무스님이 아니면 이렇게 깊은 논의들이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양시무스 님께서 칼빈주의 스텐스로 토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언제 회복되었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후 라고 세미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말하는것 같은데, 구약의 인물들은 자유의지가 회복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선택한다고 할 수있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맞아요. 아말렉족속을 하나님은 어린 아이부터 모두를 죽이라고 하신것은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절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밖에 없을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의 회복은 자유의지가 없었는데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의지 선한 자유의지가 선악과 사건이후로 타락한 자유의지 악한자유의지로 바뀌어서 어떤 선한 선택(선행이라기보다는 예수를 택하은것)할수 없게되었는데. 자유의지를 회복하셔서 예수를 선택할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그중에 그 회복된 자유의지를 잘사용해서 선택한사람에게는 믿음과 구원을 주시고 아닌사람에게는 심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아담부터 끝날까지 유효한것처럼 십자가에서의 자유의지의 회복도 그리스도전부터 이후까지 유효하다고 생각할겁니다. 물론 저는 선행은총을 통한 자유의지의 회복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적 선택을 따릅니다. 상대방의 논리가 무엇이가 공부하고 알려드리는 겁니다 .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칼빈과 개혁신학을 좋아하는 제가 볼 때는, 다메섹님이 제시하시는 케노시스 이론 또한 계속 파고들어가다보면 논리적인 모순과, 그런 하나님이라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지요. 양시무스님이 토론을 잘 해주셨지만, '칼빈주의 예정론은 옳은가?'라는 주제 선정에서부터, 예정론 안에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논리로 방어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쪽으로 기운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실제 토론도 그렇게 흘러갔구요. 그게 의도였고 목적이었다면 할말 없지만, 다음 번에 비슷한 포맷으로 '케노시스 이론은 옳은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를 놓고 토론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다메섹님 저는 아직 다메섹님과 양시무스님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는것같습니다. 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부분은 혹시 다메섹님은 기도하실때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어떤 기도냐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경험하고있는건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리기가 어렵거든요. 저도 한때는 양시무스님같은 신앙관(모교에서부터 배움)이었다가 청년이 되고 성경은 묵상할수록 다메섹님과 비슷한 결이 되었거든요. 제가 삶에서 해야하는(선택하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있는건 아는데. 뭐랄까. 하나님만이 하실수있다는 고백이 잘 안나오더라구요. 내가 했어야하는건 아닌가 이 기도가 맞나 이런생각들요.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모든책임을 돌리는것이 편하고 마음이 후련하다는 전제하에 자유의지에 중점을 두면 그런기도를 할수없어서 힘든건지, 혹시 어떤 기도로 어떤 고백들을 하시는지 나눠주실수있나요?
우리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나님께서 개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저도 기도가 항상 어렵고, 잘 되지 않습니다만,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학관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정하는 신학까지 나아간게 아니라면요) 저희 담임목사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겸손하지 못해서라고 하시는데, 잘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정말 절실한 상황이 닥치면 내 신학관이 어떻든 기도가 절로 나올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 기도가 신학과 상관없다고 느끼는 점은, 보통 기도를 통해서 뭔가 마법처럼 되게 해주시기보다 나 자신의 마인드를 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꿔주시기 때문이죠.
@@DamascusLiveTV 답변 너무 감사드려요. 또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교만함 때문에 기도가 안될수도 있겠다.. 저의 교만은 왜 끝나지 않을까요ㅎㅎ 내가 뭘할수있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의 낮아짐과 공생이 안되는것같아요.. 더 묵상하고 성경읽고 기도하고 사람들과 나눠봐야겠네요. 내 마인드를 바꾸는 기도. 이것도 중요한것같아요. 감사합니다.
내가 죄인임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이 믿어지는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ㆍ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고로, 자랑할게 없지요ㆍ 내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지요 예전엔 내가, 내가,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는 선한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내 안에 교만함을 버리고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로 사는것ㆍ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ㆍ 주체가 자아인지ᆢ 주체가 하나님인지ᆢ 저는 요즘ᆢ갈2:20 말씀을 묵상하며 십자가 보혈 의지하며 나아갑니다ㆍ 지나가다 요즘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ㆍ샬롬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계획을 하지만 그걸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모든 만사가 그럴수도 있지만 특히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것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주관입니다. 사람은 도구라고 비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닌 개인의 삶에 대한 일이라면 스스로의 힘이 크겠지만 예를들어 믿지않는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도 그 틀은 인생이라는 틀에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솔로몬의 잠언이지요
@@sheep_maximus... 히6장의 그리스도를 다시 못 박은 자들이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 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안 하신것 같은데 알고 싶네요~ 유튜버 정택주 전도사도 이 사람들이 애시당초 진정 거듭난자들이 아닐거라는 합리화적인 말을 하던데요,, 난독증이 아닌이상, 절대 그렇게 이해할수 없죠~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에 ,, 다시 못박음이요, 그리스도를 배반함으로 타락함이요, 새롭게 깨끗케 되지 못함이요, 내내 히 6장 7절에는 성도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땅(마음,믿음,성도)이 그위에 자주내리는 비(은혜,긍휼,,)를 흡수하여 주인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복을 받지만, 가시나엉겅퀴를 내면 버린바 되어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1달란트, 미련다섯처녀, 염소, 쭉정이, 나쁜열매, 하나님나라를유업로 받지못하는자들의 죄의목록,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자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자,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자들, 자기의육체를위하여심는자들,,, 믿는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하는 동시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가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영생이 마치 추수때에 수확하는 열매로 묘사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킴, 곧 믿음의 결국 구원을 받음입니다. 재가 언급한 말씀들애 대해서, 먼저 그 말씀 앞에 답변을 하시고 온전할때 말씀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정말, 구원을 잃을수 있다면, 양전도사님은 비공식 구원파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면제부를 나눠주는게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모든 책임은 각자에게 있는것이지만요,,
9:31 개인의 열심의 신앙생활 눈물을 믿음의 근거로 둘 수 없다. 그런 행위들은 다른 모든 종교들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것들을 무시한다기 보다는 그런 것들을 붙잡았던 자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금 제시해줄 뿐이다.ㅠㅠ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안에서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게 되고 평등하게 될수 있고 또 누구도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신학은 반유대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으로 언약을 폐하여 유대인을 쫓아 내고 그 자리에 이방인이 들어가서 만든 것이 신학입니다. 택함과 예정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은 엡 1-3장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과 예정은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 택함과 예정이니 택함과 예정은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는 것입니다. 이 통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데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 계획에 의하여 우리가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택함을 받은 자들이니 택함을 받은 것은 이 기업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어떠한 기업인가? 우리 기업의 보증은너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택함을 받아 기업이 되었고 너희는 우리의 기업에 의하여 복음을 믿어 구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결과는 우리나 너희나 다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통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데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의 통일은 우리와 너희가 하나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우리와 너희가 다르고 택함과 복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와 택함은 하늘의 것이요 너희와 복음은 땅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함은 우리와 너희는 복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며 너희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설명은 엡 2장에 등장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되는 것은 이스라엘과 이빙인입니다. 그리고 너희를 이방인이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인을 무할례자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방을 구원하시기 위한 기업으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은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이방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택함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유기하는 것이 아니라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에 복음을 믿을 자들이 미리 택함을 받은 자라면 택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고 택하시는 이는 하나님인데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도 없는 이방인이 어떻게 택함을 받아 복음을 믿을 수 있는가? 그러니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한 예정은 개인 구원이 아니라 경륜의 예정입니다. 곧 우리를 택하여 기업으로 삼아 너희를 구원하시기로 한 예정입니다. 너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위를 보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하시는 것이지 그 대상이 택자와 비택자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곧 구원의 대상이 개개인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무 것이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 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말씀 곧 복음을 주시어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그 대상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듯이 복음의 대상은 천하 만민이요 택함의 대상은 유대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택함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구원을 받은 자들이 버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원 후에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하면 구원에서 제외됩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할례를 받고 언약에 참여해도 율법을 범할 때 무할례자가 되어 언약에서 제외됨과 같습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구원된 후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에 의한 구원 다음에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엡 2:12에 의거 이방에서 복음을 믿을 자들이 미리 택함을 받은 자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참 흥미로운 토론이었습니다 끝까지 다 볼 정도로요~! 저는 토론 후 투표 기다리며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어요~ 각자가 당황했던 순간들, 상대의 토론자로서의 장점,강점을 이야기할 때요.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토론을 한 번 더 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꼭 한번 보고 싶어요! (토론이, 훨씬 더 풍성해질 거 같아요)
다메섹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적인 존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안에서만 납득하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예를 자꾸 드시는데 본래 인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감히 부를 수도 없는 먼지같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의 시간과 공간속에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친히 하나님의 본체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자녀 삼아주신거지요. 성자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 성령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인간을 다 죽이든 저 태양을 폭파시켜서 태양계를 날려버리든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악해서 나는 못믿겠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말들이 전부 성육신과 신약성경을 부정하는 말이란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네요. 여호와는 알지만 예수는 모르는 말이라고요. 예, 나는 그런 유대교인 같은 사고로 살바에 안믿을랍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 예시는 내가 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드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자주요. 내 부모가 날 버리고 손절한다해도 선하다 믿고 신뢰하겠다는 자식만큼 비인간적이고 기괴한 경우도 없을겁니다. 그걸 보는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부디 사랑의 하나님을 기계적인 창조신 정도로 전락시키지 말길 바랍니다. 그런건 이교도인들이 하는 짓입니다. 신약을 읽으세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굳이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품,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셨어요.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넌 어차피 날 이해하지 못해"라고 하실까요? 능력은 무한하시나 유한한 우리에게 맞춰 설명해 주시는게 더 자연스럽죠. "내가 니들을 내맘대로 상줄 놈, 벌줄 놈 정했는데 왜냐고? 묻지마! 니들이 말해준다고 이해나 하겠니? 나의 생각을? 어디 감히 피조물이 대들어?" 이런 분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다구요? 말이 안되잖아요. 만약 하나님이 선하지 않은 분이라도 실제 그러신 분이라면 피조물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생각해보면 그 선과 악이라는 개념조차 그분이 주셨어요. 우리가 가진 도덕개념은 상당부분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신 겁니다. 기준을 우리에게 주신 분의 기준으로 볼 때 악하다는 결론이 나면 말이 안되는 것이라니까요. 해석이 그렇게 되면 해석을 잘못한 것이겠죠. 말그대로 일관성이 없으니까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그냥 하나님은 너무 높고 위대하신 분이라 감히 판단하지 마라고 하면 그분이 선하신 것은 어떻게 보고 배우겠습니까? 애초에 판단을 못하는데..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로마서 9장의 토기장이 비유는 예정론에 적용할 비유가 아닙니다! 어느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 때 처음부터 절반 이상을 깨부실 계획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그런 토기장이가 있다면 사이코패스인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다만 사용처에 따라서 그가 만드는 그릇을 어느 것은 화려하게 만들고 어떤 것은 평범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떻게 모든 인간들을 구원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로 미리 예정하는 것에 관한 적용할 비유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기본 방침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안녕하세요 다메섹님! 우선 질 높은 토론 감사드립니다! 저는 성경적으로보나 논리로보나 특히나 비신자들을 상대로 대화를 이어나갈때 다메섹님이 주장하시는 의견 말고는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중 한명입니다. 하지만 제가 고민하는 지점은 성경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일어났어야만하는 사건 (예를 들어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사건)이 만약에 유다가 스스로 선택할수있고 본인의 자유의지를 통해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더라면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타격이 엄청나게 갔을꺼같은데 여기에 대한 생각이 정말 궁금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것만 해결된다면 훨씬 더 풍성한 신앙생활을 누릴수있을 것 같은데 혹시나 다메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다의 배신 없이 십자가형이 어떻게든 이뤄지는 경우의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엔 딱 그 사건만 달라진다기보단, 기승전결 자체가 달랐을 수도 있겠네요. 사실 십자가사건은 예수님의 의지적 요소가 많습니다. 겟세마네 사건도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지니셨던 자유의지를 비춰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적 측면이 자유보다 컸다고 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도 자기 발로 들어오셨죠. 유다는 단지 십자가형으로 가는 스토리의 요소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말고를 결정할 순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것을 지기로 완전히 작정하셨으니까요.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유다가 시험을 패스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교사인데 어떤 학생이 100% 시험에 낙제할 지 너무도 잘 압니다. 이는 그 학생이 낙제하기로 예정되었다기 보다는 시험에 낙제할 정도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 추가로 논의 되었으면하는점 "믿음을 잃어버리면 구원이 파기될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가 잃어버렸다가 죽을때까지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을 잃어버렸다" 고 할수있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것인지?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하는것은 사람의 믿음인지 예수님의 보혈인지? 둘 다 인지? 둘 다 라면 온전한 은혜라고 할 수 있는지? 은혜를 받았다 반납했다 가능한 것인지?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유지시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 이 때문에 그를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라 시인 할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12:3) 그런데 사울의 경우를 보면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 가신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지 않는데 이것이 믿음일까요? 이것이 히브리서 6:1-6의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계속해서 책망하시고 인도하시나 계속되는 불순종으로 마치 성령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게되면 성령님께서 떠나가십니다. 스스로가 원치 않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죠. 우리를 씻기는 예수님의 보혈,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신실하였던거 처럼 그에게 신실 할 때에 구원이 이릅니다. 그래서 구원을 지키라고 말하며 모두가 경주에서 뛰나 모두 우승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원어를 보시면 biblehub.com/greek/4102.htm 뜻은 믿음, 신앙, 신실함, 충성됨, 신뢰 등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믿음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지식이 아니며 그 관계에 대한 믿음을 이루는 모든것을 포함합니다. 예를들어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 하면서 날마다 바람을 피고 아내의 불만을 무시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습니까? 성경에서의 믿음은 말뿐만이 아닌, 지식이 아닌 행동을 포함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육체의 법에 순종할지 영에 법에 순종할지는 결국 우리의 의지에 남겨두셨습니다.
@@ChristIsMyKingAndImHisServant 음 되게 원론적인 얘기를 하시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사람이 어쩌다가 원나잇을 한번 하게되었습니다. 이사람은 원나잇을 한 순간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건가요? 그럼 곧바로 원나잇을 뉘우치면 다시 아내를 사랑하는 상태가 되는거구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고 죄를 지을때는 믿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뉘우치고 돌아오면 믿는 상태가 되는것입니까? 그러면 구원을 잃엇다 얻엇다가 죽을때까지 반복되겠군요.
@@qweasdzxc123-y3f 예시가 성경의 예시와 다릅니다. 또 저의 예시와도 다르구요. 아마 제가 적은걸 잘못 이해하셔서 그런듯합니다. 사울은 불순종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지 않았으므로, 즉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므로 그 상태에 머문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유다와 베드로가 대조되는것과 같습니다. 유다와 베드로 둘 모두 예수님을 배신했으나 베드로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고 이것이 두려움으로 인한 실수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유다의 경우 요한복음 12장에서 말하길 돈궤에서 돈을 훔쳐갔다 합니다. 여기서의 동사는 원어로 불완전 직설법 능동태 (한국어로 맞는지 모르겠는데 영어로는 imperfect indicative active) 로서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유다는 회개 없이 육의 법에 순종함으로 이 그림은 예수님의 배반 이후에도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육신의 판단에 맡깁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유다에 대한 뜻은 구원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신실함은 지속적인것에 있지 한 순간의 실수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셔서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길 기다리십니다. 이런 말씀들을 무시하면 위의 예시처럼 해석 할 수 있겠네요.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이 처음부터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이상 유효하지 않도록 만들었을 때, 즉 스스로가 그 은혜를 필요없다 여기듯이 살고 마음이 돌아섰을 때, 성령님을 슬프게하여 떠나가실 때가 정말 끝입니다. 그 시기는 사람은 알지 못하나 하나님과 개인 사이에서의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한 믿음으로 자라기까지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를 인도하시고 우리는 순종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것, 예수님 안에 거하는것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적으신 예시는 행위 구원론입니다. 행위가 상태 전부를 대변하진 않지만 상태가 행위 없이는 증명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상태가 그 상태란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입니다.
악신 문제를 더 집요하게 공략했어야 하는데 밋밋하게 넘기셔서 아쉬웠습니다 다메섹님. '악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도 선한 거라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여튼 선하시니까. 인간의 관점으로는 그 선악에 대해 감히 판단하고 불평할 수 없으니까'가 양시무스님의 반론이었는데, 사실 악해 보인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논리적으로 악하다는 차원에서 칼빈주의가 함의하는 결정론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의 죄를 짓는 경향성은 하나님께서 본인이 직접 그렇게 설정한 겁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사실 인간이 그런 경향성으로 죄를 짓는 것도 인간의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유일한 주체는 하나님밖에 없거든요. 이 결정론적인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결정론적인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 행위는 하나님의 입력인 것이죠. 요컨대 살인도 사실은 살인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살인도 학살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플레이어 얘기 하셨는데 다시 말해 칼빈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플레이어가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만이 플레이어입니다. 모든 사건들과 모든 행위들의 유일하고도 진실한 주체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죠. 그 모든 사건들과 그 모든 행위들의 악은 하나님께로 다 수렴하고요. 단순히 하나님이 악신처럼 보인다는 정도가 아니죠. 논리적인 차원에서 악의 문제가 발생합니다(맥키가 제시한 논리적 악의 문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다시 말해 구원받고 말고는 무기준 랜덤뽑기 수준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구원받을 만한 인생을 살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나님이 하나하나 다 그렇게 결정하셔서 창조를 하시는 거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만한 인생을 살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나님이 하나하나 다 그렇게 결정하셔서 창조하시는 거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살인을 하든 학살을 하든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거고요. 즉 하나님만이 유일한 진짜 주체라는 겁니다 나머지는 다 조종받고 있을 뿐이고요. 즉 마인드컨트롤로 치면 우리 인생 전체가 마인드컨트롤입니다. 기실은 하나님께서 악을 발생시키시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악을 행하시는 거지만 하여튼 그것도 선하다. 왜냐면 하여튼 선하니까. 라고는 부디 하지 맙시다. 순환논리죠. 이걸 방어하려면 인간이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살인도 학살도 애초에 악이 아니다라고 해야할 것입니다(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악이 사실 없다고 해야 말이 맞죠.). 그래야 진짜 주체이신 하나님께로 그 악이 수렴하지 않을 테니까요.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멸망과 종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뿐만 아니라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다음 세상에 관한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그 다음 세상까지 환상으로 보고서 성경을 집필한 예수님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왜 그곳에 다 적혀 있으며 왜 그렇게 성경이 처음과 마지막을 강조할까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하나님에 의해 결정이 난다는 걸 성경의 독자들에게 가르쳐주려고요. 이스라엘과 열두 지파를 애굽에 보내려고 전세계에 유례없는 기근을 내리신 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430년 동안 애굽에 집어넣으셔서 그들을 애굽화 시킨 건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뭔지를 가르쳐주려고. 그런데 출애굽하고 나와서 이스라엘의 추악함과 불가능이 곧바로 광야에서 폭로됩니다. 애굽에서 행한 이적을 보고서도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거역한 놈들이라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과연 열번만 거역했을까요? 실제로 열번 시험하고 거역한 건 애굽왕 바로였습니다. 바로는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의 대표인데 지금 애굽화된 이스라엘을 바로 취급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화시키신 건 하나님인데 그럼 이스라엘이 악한 행위를 한 건 하나님께로 다 수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전부 조종하셨는데 하나님 책임인가요? 이 우주와 역사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그분이 왕이시며 새로운 피조물이 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하나님 백성들은 그분만을 꼭 의존해야 하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가르치기 위한 시험장에 불과합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인생의 목적에 관한 말씀이 나오지요?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짐승이 다름이 없음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고. 다 똑같은 짐승들인데 은혜를 입은 어떤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부스러기라도 달라는 가나안 여인처럼 "내가 짐승이 맞네요."하고 끌려나오는 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들만 이 인생과 역사를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허수아비?", "인간은 플레이어인가 아닌가." "인간은 꼭두각시인가? 로봇인가?" 하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테지만 성경은 애초에 인간을 흙으로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영양가 있는 흙도 아니고 그냥 티끌입니다. 영어 성경만 가도 dust, 먼지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허수아비 로봇 수준이 아니라 먼지란 말입니다. 이사야서 40장으로 가면 대놓고 온 나라가 티끌이라고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장에서는 인간의 모든 의가 똥걸레라고까지 비하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백성이 아닌 온 세상은 Nothing입니다. 티끌입니다. 죽은 흙, 똥걸레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제외한 온 민족과 나라가 떵떵거리며 잘살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nothingness인 것입니다. 그럼 대체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란 겁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살인은 선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족속을 어린아이 부녀자 가릴 것 없이 얼마나 많이 진멸했습니까? 다윗은 살인교살하고 간음을 저질렀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짜 받으시는 상한 심령이라는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첫 아들이 죽으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산다는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럼 그가 저지른 죄가 선을 위한 도구로 쓰였는데 이걸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왜 다윗이 하필 그 시간에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았을까요? 웬 늙은 할머니를 보았다면 간음할 생각을 감히 했을까요? 왜 하필 밧세바 사이에서 솔로몬이 나왔을까요? 마귀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사울왕을 괴롭힌 악신과 아합왕을 심판하는 거짓말하는 영도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지옥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지옥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무엇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판단하겠습니까? 왜 성경이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선악과를 동산 한가운데 가장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만드셨으면서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왜 하필 뱀을 그곳에 보내셨으며 왜 인간이 선악 판단의 주체로 서는 세상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는지 깊이 고민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성경을 인간은 불가능, 하나님은 전부라는 은혜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가급적 여러 번역본으로요. 죄라는 것도 선악과라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의와 긍휼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가시길.
하나님은 예수님처럼 인격적으로 믿는 자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기에 인류에게 인격적인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체 섭리 안에서는 예정론이 맞지만 개인 구원의 문제는 케노시스적 자유의지가 더 하나님의 성품에 맞다고 봅니다. 이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성경말씀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으로 이루라는 말씀은 구원받았다는 것, 즉 선민 의식에 나태해지지 말라는 것이고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의 대한 말씀은 사람이 보기에 겉으로 교회 안에서 구원 받은 것과 같은 행동과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고 또한 이러한 여러가지 체험 등을 맛보고도 믿음을 버리는 것은 그는 진짜 믿음이 아닌 겉으로만 보여주기식인 가짜이다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히6장의 ~~맛보고도 타락한자들은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수 없나니 , , 이사람들이 중생하지 못한자들 이라고요~~~ㅎㅎㅎ 절대예정론자들의 아킬레스건이라, 이들이 진짜로 거듭난 자들이 아니라는둥, 가짜믿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말하는 분들이 많네요~~ㅎ 타락(배도)한것으로 봐서 가짜믿음이다? 그럼 애시당초 거듭나지도 못한자가 무슨 타락입니까?마귀자식이~ 빛을 받았다는 말은 ,, 요1장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이 들어와 사망의 그늘에서 광명을 얻음이요, 성령에 참여한바 됨은 ,, 같은 성령에 참여함이요,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봄은 ,, 깊은 영성에 이른 자들이요,,
우선 신학 전공자 분들께서 이런 토론을 열린 곳에서 하신 다는 것이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그러한 시도와 노력에 일단 큰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다들 바쁘신데 영상 만들어서 올리시고 또 댓글 다시는 것은 그 만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 있기 때문이고 한 분 에게 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우리의 열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댓글 다신 한 분 한 분이 귀한 것 같습니다. 자연 법칙(law of nature) 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끔씩 그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들이 발생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고 신비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학적인 법칙으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설명이 안된다고 모순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습니다. 자연법칙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 법칙안에 있지 않으시고 그 법칙에 묶여 있지 않으시지요. 과학자들도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상당한 많은 갈등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양자역학의 시대는 그 자연 법칙의 정의가 확장되는 시기였고 동시에 우리의 일반 논리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엄청 힘든 시기였습니다. 갈등이 얼마나 심했으면 슈뢰딩거가 고양이 얘기를 하면서 양자역학의 모순을 비판했을까요? namu.wiki/w/%EC%8A%88%EB%A2%B0%EB%94%A9%EA%B1%B0%EC%9D%98%20%EA%B3%A0%EC%96%91%EC%9D%B4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시면 참조하실 수 있도록 나무위키 링크 첨부합니다.) 철학이나 신학자들의 사고 체계와 논리 체계를 제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을 받았기에 때문에 Logic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그냥 paradox라고 빨간 줄로 그어 버리는 것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교육을 받았지만 뉴턴 시대의 과학에서 벗어나 양자시대의 과학을 조금만 접해 봐도 paradox 라고 치부한 내용을 mystery 로 받아드리는 것에 대한 거부가 사라질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올 수 있습니다. 논리로 설명이 안된다고 모순이라고 몰아 부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 못하지만 받아 드리는 사고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자 우리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100% 인성과 100% 신성을 어떻게 논리로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가요? 이런 중요한 부분이 논리적이 않다고 해서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님을 신으로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몰몬교들에게도 삼위 일체가 말이 안되는 논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비라고 부르면 믿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저희 집에 여호와 증인 교도들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제가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고 했더니 그게 어찌 논리적으로 말이 되냐고 하더군요.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 될 수 있는지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을 들이밀면서 예수님께서도 종말의 시기는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는데 어찌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삼위일체일 수 있냐고 열을 올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논리로 설명이 안된다고 거짓이나 모순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단순하게 전자가(Electron) 파동이며 입자인 것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이라고 그러한 현상과 같다고 보시면 된다고 했더니 본인은 생물학 전공이라서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공부해서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양자역학을 전혀 모르는 분이라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의 구원이 100% 자유의지 그리고 100%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면 이게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가요? 왜 이 부분을 굳이 논리로 설명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2가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 태초 전부터 선택했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겠다.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구원은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2가지를 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 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수학 교수인 John Lennox에게 어떤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교수님은 학자로서 논리에 맞지 않는 예수님이 완전 인간이며 완전 신이라는 것으로 믿을 수 있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어떻게 인간이 였으며 동시에 신인지 설명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전자가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인 것을 설명 못하지만 그게 사실인 것으로 받아 드리는 것처럼 예수님이 신이며 인간 이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youtube 로 이걸 보시는 것은 양자역학 때문입니다. 전자의 양자적인 상태를 이용해서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만들고 전파를 활용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인류는 전자의 양자성을 이용해서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law of nature) 만드신 lawgiver 이신 하나님께서 거시 세상의 뉴턴 시대에 규범 했던 자연 현상들 뿐 아니라 미시 세상의 양자 현상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 못한다고 모순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신비로 받아 드리면 됩니다. 우리의 logic의 한계라고 겸허히 받아드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도 같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도 논리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저는 저의 구원이 저의 100% 선택이면서 동시에 100%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며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 댓글을 쓰는 것도 저의 100% 자유의지적 선택이며 100%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양자역학을 처음 배우고는 그것을 통해 양립론을 주장하곤 했습니다만, 실제로 깊이있게 들어가보면 조금 무리수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몇몇 반론을 마주할 수 있고, 그 반론은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마 저나 양시무스님 모두 그 사실을 알아서 양자역학 비유로 손쉽게 양립론을 이끌어내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럼에도 전 주류인 코펜하겐 해석이 미시세계에서의 불확정성을 받쳐주며 결정론자들에게 골칫거리를 던져주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로서 결정타가 아닐 뿐이죠. 글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명백한 사실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것 처럼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양립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들도 꽤 있습니다. 참고로, 과학자들은 뇌의 전기적 상호작용은 뉴튼 역학아래서 일어나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뭐, 로저 펜로즈처럼 뇌에서의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이상한 의견들도 있긴 하지만요.
@@Think_of_Semiconductor 문제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양립시키려는 대배분의 시도들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약한 결정론이 대표적이죠. 주로 결정론과 양립시킨 자유의지는 절대다수가 받아들이는 자유의지랑은 다른, 재정의된 자유의지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특정한 행동이나 선택을 하는 식으로밖에는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을 자유롭다 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절대다수가 그걸 자유롭다 여기지 않습니다.
@@qweasdzxc123-y3f그런데 그게 칼빈주의가 원하는 이중예정론 관점으로 가지 않고, 택한 것처럼 보이는 국가나 (이스라엘), 버린 것처럼 보이는 국가나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결론이 나니까 문제인 것이지요. 9-11장을 다시 한번 칼빈주의적 관점을 내려놓고 텍스트 그대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9-11장은 전체적으로 한 이야기를 하는 세트거든요. 더 크게 보면 로마서 전체가 위에서 말한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하는 빌드업이구요. 로마서를 어떻게 읽어도 택자만이 구원이란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자발적으로 믿는 이들에겐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신다는 이신칭의의 결론이 나오는 것이죠. 제가 볼 때는 이중예정과 이신칭의는 같이 갈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양시무스님도 로마서의 결론은 인정하면서 토론하셨죠. 양시무스님의 토론 중 주장도, 로마서 9장이 칼빈주의적 결론을 낸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뭘 하든, 심지어 악신으로 보이는 일을 하든 인간은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로마서 9장이 지지하는 것 아니냐?' 라는 것이였구요. 제 입장에선 이에 반대한 것이었구요.
@@DamascusLiveTV 제가 의문인 점은 전지성을 제한한 하나님이 악신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전지성을 제한해서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 신을 선하다고 볼 근거가 결국은 신자들의 신앙에 달려있는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서 양시무스님이 전지성을 인정하면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이나 거기서 거기고 악신까지 간다는 말에 동감이 되구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가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라디아서 4-5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 4: 23-24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교회의 자녀들은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의 예"를 따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좆아 ...... 갈 5: 13... 너희가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 설명 하자면 고전 2 : 9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잘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고 이해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믿음"을 우리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가질 수는 없다. 주의 학교에서 전진하는 첫 걸음은 자기의 통찰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전 2: 10) (요 6: 44-45)
@@DamascusLiveTV 다시 한번 영상을 봤습니다. 그리고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다메섹님의 의견이 무엇인지 이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메섹님이 지지하시는 구원론은 어떤 것이신지요? 혹시 이미 그와 관련된 영상을 만드셨다면 그 링크를 공유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TheKaydubai 영상에서도 드러난 것 같지만, 제가 지지하는 구원론은 성경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구원론입니다. 요 3:16절처럼,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한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창세 전에 택한 자가 아니라)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믿는다는 건 뭐냐? 롬 10:9절,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저는 이 명확한 구절들에서 저는 믿음조차 하나님이 마인드 컨트롤한다는 뉘앙스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인간이 스스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DamascusLiveTV 마지막으로 그럼, '복음을 믿는 것'조차 우리의 공이 아니라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을 수 있게 된다는 view에 대해서는 다메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이 '마인드컨트롤을 하셔서 믿게 된다' vs.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믿게 된다', 이 2가지 표현은 같은 것일까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 중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중에, 내가 이만큼 잘 했으니까 은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과연 이게 수사적 표현일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결론 아닐까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외에 우리가 구원 받는 근거가 이디 있지요?
하나님의 구원에 인간의 도덕감성을 개입시키는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하나님을 우리의 이해의 프레임 안에 가두려고 하는 시도들입니다.. 첫째로, 인간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의 실존을 살고있는지 모르고 있기때문이고 둘째로,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분인지 모르기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때문에 구원하는것도 맞지만,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이타적이지만, 동시에 자기중심적입니다. 이 두가지가 혼합된 인격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모든것을 당신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물론 사랑으로써 그 자녀들을 영원히 대하십니다. 부디 하나님을 나의 이해의 테두리 안에 가두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가? 의 질문에 인간적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자꾸 끄집어내는건데, 부디 접근하기를, 내 감정과 정서, 도덕성은 두번째로 미뤄두고 가장 먼저 무엇이 진실인지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는걸 1 순위로 두지 말아야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거고 하나님의 관점과 방식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이 제한된다면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최종 구원에서도 변동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후회하실 수 있는 분이라 나의 최종 구원도, 종말론적 행복한 결말도 다 우리 인간들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멀티버스라는 식으로 회피하지만, 결국 하나님 뜻대로 다 된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구원도 우린 알 수 없으나, 다 예정하셨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요셉의 경우도, 바로의 경우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독특하게 신비적으로 간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어느 한 분의 사상은 너무 표피적이고 말초적이어서,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만화나 소설, 연극의 눈으로 바라 보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세상에는 하나님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군요. 하나님의 일이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라거나, 또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이해의 수준에서 되어져야 한다고, 그런 말하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너무 인문학 만능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욥에게 일어났던 일을 실제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한국 신학교에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구원받은 참된 목회자를 찾고 싶다면 성경의 모든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믿는 목회자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목회자가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Steve-qp6ep 성경을 안믿는데 선하신 하나님 의미 없구요~~ 주님은 모든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을 믿으며 사흘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100%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인간의 선행없이~~ 오직 믿음만으로요. 구원받기 참 쉽죠.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이에요. 당신처럼 안믿는 사람을 사탄의 자식이라고 하고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사탄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 된 것이고요. 성경을 100%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믿으면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불에서 고통 받고요~~ 믿지 않는 인간들이야 당신처럼 키득키득 거리고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심각한 것이고요~~ 왜 성경을 통해서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알거든요~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한 남자는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개로 취급하고요, 여자는 돼지로 취급하세요. 선하신 하나님께서요~ 성경 글지 하나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당신이 조롱한 이 글도 미래의 언젠가 주님께서 다 보여주시고 심판하세요. 선하신 하나님께서요. 아시겠어요?? 물론 성경을 안믿으니까 모르시겠지만~~
허나님의 예정과 작정하심에는 그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과 조건, 또 투입되는 인력과 재화와 기타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작동된 모든 것, 또 그릐 개인적 구원의 전체적인 그림을 작정하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A씨의 구원을 예정하실 때, 복음으로의 초청에 연관된 모든 것과 그의 반응의 때와 상태와 인격, 인지, 등등의 모든 것도 준비하시는 것이죠. 이 깊은 하나님의 경륜을 미미한 사람의 지혜로 다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토론의 내용과 별개로 지적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평소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번 토론을 보면서 느낀 점은 토론의 내용보다 양시무스님의 웃음들이 기쁨이나 즐거움의 웃음보단 감정적 우위에 있고싶어하는 방어기제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점은 함께 토론을 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느 동일한 선상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느낌을 주지 못하며,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추가적으로 이런 점들은 토론에서 타당한 근거를 토대로 보다 발전된 논의로 나아가거나 올바른 내용으로 수렴되기보다는 보다 감정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우위을 증명하려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보다 외형적으로도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보다 더 타당한 근거들과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칼빈주의 신학에 정통한 장로회 교회에서 태어날 때부터 자란 제가 장로회 목사님을 신학적으로 비판하려거나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가 가진 약점들이 있으나 논리적으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여러 이점들도 충분히 더 잘 전달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에서 끄적여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님으로 안 믿으면서, 내 마음의 위로와 평안, 종교심의 충족 등 종교 생활 하느라고 교회 열심히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 많이 봤어요. 그런 분들 결국 교회 떠나고, 무신론자 되고, 예수님 욕하고 등등. 교회 다닐 때 청년회장, 집사 장로 하면서 기도원에 금식 기도 다니고, 산기도에 철야예배... 교회에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자기 종교 생홯에 열심이었던 것이지, 진정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럿 봤어요. 그것은 구원 받았다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죠. 처음부터 구원이 아니었거나, 우리는 모르나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벗어난 것이 전혀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결코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어요.*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위 성경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입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회개하면 모두 용서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의 뜻을 짐짓 가리는 행위가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당신은 명백히 언급된 성경의 말씀을 부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을 말합니까? 당신은 구원에 관련한 성경의 말씀을 임의대로 지울 수 있는 것입니까?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 말씀들은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구도 어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칼빈주의의 독에 든 사람들은 이 구절들은 철저히 뭉개면서 감히 구원을 입에 담습니다. 딩신은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님의 영적 상태를 보면 매우 불안정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위 성경의 구절들부터 삭제하고 말하세요.
양시무스는 말을 이해를 못하네, 인간이 작품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것은 사랑을 빼앗겼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질투심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 아픔이 투영되어서 발생되는 심리다. 그런데 예정론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보신적이 없으신 상황에서,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보시면서 질투심을 느끼시는가?? 자신이 로봇을 만들어서, 로봇이 만든이를 사랑한다고 설정하게 만드셨고, 그러다가 그 로봇이 만든 사람을 배신하여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설정을 하셨다고, 질투심을 느끼시는가?? 인간은 그 질투심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서 그 주인공이 되어서 그 아픈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칼빈주의가 말하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질투심을 느껴보신 감정 자체가 없으시기 때문에, 질투심을 느끼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를 다른 것에게 빼앗겨보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다, 그분의 설정이고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질투심을 느껴본적이 없는 사람은 그 감정을 알지 못하고, 현실에서 질투심을 많이 느낀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스토리만 봐도 가슴이 아파온다. 마찬가지로 화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배신 행위를 경험하지 못한사람이 어찌 자신이 쓴 작품을 보고 화를 낼 수 있나?? 양시무스가 주장하는 예정론은 살아있는 인간을 만들어서, 신을 사랑하고 믿게 하였다가 배신하게 만들어서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기괴하고 사악한 성품아닌가?? 그건 인간을 생명체로 보는게 아니라, 연극의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인간이 고통받고, 배신받고,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다면, 차라리, 로봇을 만드는게 낫지 않은가?? 아픔이 없는 로봇을 만들어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하는게 인격적인게 아닌가?? 우리가 관상용 작품속의 존재라면, 우리가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는게 최소한 인격적인 것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훼손시킨다. 왜냐하면, 드라마 속에 인물은 모두 연기하여 가짜로 죽는 것이고, 우리는 진짜로 아픔을 당하고 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짜 선하신 절대선이시라는 것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선의 기준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ultex1142 죄송합니다. 님은 좋은 자질을 갖고 계시는데,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계시네요. 무속신앙은 인간을 운명론자가 되게 만들었는데, 다시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운명론자가 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캐노시스적 가치관을 나타내 주십니다. 즉, 하실 수 있으나, 안하시는 분이란 뜻은 자신은 사랑과 희생의 하나님이시란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은 전지전능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사용치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내가 내 자녀가 무엇을 하는지 CCTV로 감시하고 도청해서 들을 수 있지만, 하지 않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낼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인격을 존중하고, 나의 능력을 사용치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시고 사랑하시길 원하시고 이끄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사상에 매몰되어서, 전지성을 충족시키려고만 하는 이론적 관점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에,본질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을 악신으로 만들며, 심지어, 우리의 인생을 운명짓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님의 자질은 훌륭한데, 잘못된 사상에 매몰에되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자녀가 생기면, 님에게 전지전능함을 부여해주면, 님은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을 조종해서, 당신의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게 그 능력을 사용하실 건가요?? 나는 그 능력을 갖고 있어도 결코 사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나의 고양이에게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인격속에 들어가 조종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1. 저는 다메섹님과 함께 '성육신'을 할 때 전지전능이 제한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자와의 단절로 인해 슬퍼하는 일이나, 성자 하나님께서 아버지와의 단절로 상실감을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상실을 빼앗긴 적이 없다는 가정은 틀린 게 됩니다. 2. 띄어쓰기 좀...
@@sheep_maximus 저는 님과 논쟁할 생각이 없습니다. 님은 이미 훌륭한 자질을 갖고 계시니, 님의 구원관이 바뀌시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희망과 권면과 사랑을 전하게 되실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삶을 극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님의 구원관이 운명론자이시라면, 주변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해도, 그냥 구경만 할 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에겐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겨내라고, 말하면 나중에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리적 안정을 갖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명론자라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기만이며, 거짓이며, 그냥 달콤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니들은 지옥가지만, 어차피 니들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지만, 그냥 달콤한 말에 위로를 받고 일시적으로 힘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잔혹한 진리입니다. 이러한 저의 도덕성과 선함보다 더 초월하신 분이 절대선을 지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선은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그분이 선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이들을 귱휼하게 바라보며 권면하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의 최종 가장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긍정보다 위로보다 더 위에 있는 상위개념이 복음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론을 전하는 자가 아니고, 논쟁하는 자가 아니며, 지식을 자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님에게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님의 훌륭한 자질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하시길 바라는 뜻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심판주로서 영광스러운것이므로 잔혹하신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지못하는 유기된 죄인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이 안타까움이드는 우리의 감정이 이해되지않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적한 죄의 더러움과 반역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심판하심이 어떻게 잔인해질수 있을지도 숙고해봅시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오직 은혜로 구원받음과 홀로 모든영광 받으실 한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신자들은 서로 형제입니다 샬롬
예정론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고자,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훼손시켰다는 점이다. 이렇게 인간을 작품 속의 관상용으로 만들었다면, 드라마속의 인물들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연기하고 가짜로 죽는 것이지만, 인간은 진짜로 인생을 살면서, 아픔과 고통과 배신과 슬픔과 절망을 느끼고 심지어 괴로워서 자살도 하는 진짜 그 작품을 리얼하게 고통 당하며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정론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것이다. 선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훼손시켜 전지성을 충족시키고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들어서 관상용을 만들어서 고통스럽게 죽게 만들었다는 예정론은 칼빈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 드라마속 인물처럼 아프지 않게 해줘야 되는데, 그게 아닌 우린 작품을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서 진짜 고통을 당하며 택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는 예정론이 더 그리스도를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시점과 인간의 시점은 너무나도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위대하십니다 그 분의 능력이 그분의 위대함이 높아지는것이 얼마나 우리에겐 소망인지요... 욥과 같은 일들을 당해 보셨습니까? 인간에게 고통이란게 너무나도 힘든것 이지만 그 과정을 겪어야지만 알 수 있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 신비는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나타내고 우리로 하여금 아무말 없게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소망하는것이 오늘의 삶에 있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다는걸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것이 옳다고 느껴질 때가 옵니다...
@@noah88life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교리에 집중하시지 마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칼빈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였고, 신학적으로 오랜 연구를 한 사람도 아닌 젊었을때, 30살도 안되어서 어린나이에 법을 공부하다가 성경을 읽었고, 26살에 기독교 강요를 썼을 뿐입니다. 그당시 성경이 모두에게 허락된 것도 아닌 그런 시대에서 어떤 무엇을 바라십니까?? 칼빈의 잘못된 교리에 매몰되어서, 성경을 왜곡시키다보니, 하나님을 악신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당신의 주변 사람을 보세요. 그들은 지금도 고통받고 살며 슬퍼하고 절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서 말해보세요. 당신들은 택함받지 못해서, 지옥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시는 동안 안타깝지만 고통을 이겨내세요. 우리는 이 고통이 우리를 완전하게 하여 천국을 갑니다. 라고 말해보세요. 그것은 너무 잔혹한거 아닌가요?? 만약 그게 진리라면, 그냥, 조용히 신앙생활하시면서 끼리 끼리 구워받은 자들만 모여서 숨기시면서 생활하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유기된 자들은 너무 인생이 고달프고 괴롭고 슬픈데, 뭐하시는 겁니까?? 그냥 선택받은 자들끼리 기뻐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하시면서, 사세요. 유기된 자들에게 잔혹한 진리를 전하시지 말고요.
@@acemen777어떤 사람이 유기됐는지 무엇으로 판단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무엇으로 판단하시겠습니까? 열매로 판단한다면 우편강도는 유기됐습니까? 예수를 세번 부인한 사람은 유기됐습니까? 살인 강도 사기 근친 창녀 강간을 벌인 예수의 족보에 있는 사람들이 유기됐습니까? Aceman님은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하세요?
@@noah88life 왜 그걸 꼭 판단해야 합니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유기자라면, 버릴 것입니까?? 택함과 유기는 하나님을 믿는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흑과 백을 나누는 행위고, 종교적 우월성을 가지고 비기독교인들 차별하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혹여 택함 받은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선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긍휼이 여기며, 그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기쁜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사람일뿐이지,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님의 사상은 너무 종교적 우월성을 가지고 인간을 나누며, 심지어, 그 우월성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거져 받았다면, 남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월성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면서 자위하면서, 그것이 진리라고 떠든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가 설렁 택함받고 우리만 천국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보다 나은자들이 결코 아니며, 그들을 벌레취급해서도 안되는 자인데, 어찌, 그것을 꼭 정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요, 우리가 판단해서도 안될 일이며,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온전케 판단하실 권한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누가 되었든, 유기인지 택한 사람인지 상관없이, 그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택함과 유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진리라고 해도, 그것은 마치, 종교적 우월성을 갖게 되고 교만해지기 때문에, 그 마음을 마음에 품지 않습니다.
나의 자발과 주님의 뜻과 계획이 맞는것이 신비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사람의 변화는 억지로 강압으로 되지가 않아요 자식을 키울때도 결국은 선한길로 갈것을 믿지만 과정중에 강압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광야를 선택하고 고난을통해 선한길로 가는것을 기다려주는것이 강압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되요 하나님은 우리를 로버트로도 고아로도 만드시지 않았어요 우리는 선택을해요 하지만 죽을때 나의 인생을 바라볼때 우리 주님으 나의 인생을 이끄셨구나 라고 느끼게될것같아요 우리는 모든일의 과징중에는 주님의 예정론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해보여요 모든것이 끝났을때 비로소 이해가 될것같아요 나를 쳐서 십자가의 길 순종을 강조하는 이유도 우리의 힘으로 선택하는것은 광야의 길이 많아서 나의 욕심을 빼도록 순종의 길을 말씀하시는것 같아요 지금 제 나이가 50인데 내 이익을 엄청 계산하고 한 선택과 그렇지 않았던 선택들의 결과를 볼때 나의 이익 보다는 희생을하는 선택들의 결과과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이였을때 많았고 이끄심으로 선택을 해도 망하지는않고 오히려 큰 축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예정론의 이해는 나이가 차고 경험에서 나오는것같아요 논리와 말로는 한계가 있어요 본인의 믿음의 깊이와 연륜과도 어는정도 영향이 있는것같아요 바울도 에베소서 쓸때 주님을 만나고 시간이 흘러서야 예수님의 예정을 쓰신것같아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댓글이 하필 666이라..답글달아봅니다. 😅 잘 들었습니다. 저는 디베이트 코치입니다. 기독교인이나 신학지식은 깊지 못합니다. 이번 토론 잘 봤습니다. 난상토론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토론이 인간에게는 어려운 부분이네요. 그럼에도 이정도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역량이 대단해보입니다. 그럼에도 댓글에서 내용이 태도에 의해 가려지는걸 보면 디베이트 훈련이 필요하다는걸 다시 느낍니다. 아카데미 디베이트는 시간, 순서 등의 엄격한 형식 안에서 토론에 필요한 발언형식을 훈련하고 태도 점수를 포함하여 승패를가르는 찬반토론 형태의 교육토론인데요, 양측 입장을 모두 준비하여 경기직전 입장을 정해 토론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즉 자기 가치관으로 토론하는게 아니고 입장에서 토론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죠. 이런 훈련이 제대로 되면 난상토론을 하더라도 자신의 스피치 컨트롤, 상대에대한 예의, 발언 후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등의 방식이 몸에 익어 형식없이도 어느정도 형식없는 토론이 가능해집니다. 이번에 교회에서 강의를 신청해주셔서 청소년들과 훈련중인데요. 교회 안에서도 건전한 토론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친한 사이다보니 컨텐츠 재미를 위해 더 도발하고 말을 끊으며 오바한 감은 있습니다 ㅎㅎ. 그럼에도 코치님이 댓글을 달아주시니 살면서 한번 쯤은 제대로 토론교육을 받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보통 교육을 하시면 교육생이 어느정도 기간을 가르쳐야 이후 혼자서 자기 것으로 체화할 준비가 되나요?
@@DamascusLiveTV 저는 학생들의 경우 이론부터 실습까지 최소4시간~8시간을 제시하고 있고 교사연수의 경우 8시간씩 2일 총16시간정도면 실습까지 우리나라 협회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형식 습득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형식이 훈련하는 목표들을 이해한 이후에는 내가 적용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학교에서 꾸준히 연습할기회가 주어지는 편이구요. 교사분들은 학생을 코칭하며 훈련하시겠죠. 저도 아직 힘든부분이 있지만, 디베이트 가치가 넘 좋아서 계속 나누려고 노력중입니다^^
@@DamascusLiveTV 예를들면 말 끊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닌데, 댓글에선 불편해 하죠. 디베이트 형식중 말끊고 제시하는 포맷도 있답니다. 그게 룰인 거죠. 룰인이유는? 일상토론에 분명히 필요한 스킬이기에 그것을 훈련하는 목적인것이죠. 다만 합의된 상황에서 진행할 뿐입니다.ㅎ
구원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이죠. 인간은 내가 태어나고 싶은 나라,부모,성별,목슴,성격까지도 스스로 결정할수 없습니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이 주어진것이 많습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거나 아프리카에 태어 났으면 복음을 만날 확률이 희박하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전적타락의 인간이 죄를 해결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의 의지로 구원에 도달할수 있다면 예수님이 극단적으로 죽기까지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명제 입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네 그렇습니다. 구원에 관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상징적인 비유가 성경에 표현되는데 아들이 공부를 못하거나 나쁜짓을 하더라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훼손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훼손 되는 것은 처음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것이죠. 왜 구원받은 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강조 할까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에서 입니다. 인간은 정체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서 삶의 양식이 바껴버리기 때문이죠. 내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믿음,신뢰,확신,의지,소통,사랑으로 더 가속화 시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의심을 품으면 앞으로 나아갈수 없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노예의 습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 방만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대해 성경에서도 가라지라고 표현하고 그냥 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수 밖에 없고 그들을 지도하기 위해 명제를 뒤틀어 버릴수 없습니다. 정체성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순종합니다. 하지만 분명해야 할것은 그 순종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해서 순종하는 것이지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의무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물론 순종에 실패할수 있습니다.->죄가 있는곳에 은혜가 더한다.죄를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더 깊히있고 진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방만한 삶은 원래 가라지 입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스스로 점검을 해보셔야 합니다. 내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기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요? 예수 그리스로를 영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할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는 사망케 합니다. 죽음에서 비로소 예수님이 보이게 됩니다. 그 이전에 율법이 정죄하고 죄로 죽지 않을때는 예수그리스도는 그저 좋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상태로는 예수님과 접점이 없고 사랑할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의 가능성에 기댈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가능성이 0에 수렴할때,혹은 죽음에서 신음할때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영광만을 나타냅니다. 양자역학은 이해할수 없는 학문이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죽을때까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해안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것은 아니죠. 인간의 자유의지와 예정론을 완벽하게 이해할려고 하다보면 오류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두십시요.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이것도 한번 읽어 보세요 ^^ 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가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라디아서 4-5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 4: 23-24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교회의 자녀들은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의 예"를 따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좆아 ...... 갈 5: 13... 너희가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 설명 하자면 고전 2 : 9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잘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고 이해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믿음"을 우리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가질 수는 없다. 주의 학교에서 전진하는 첫 걸음은 자기의 통찰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전 2: 10) (요 6: 44-45)
😮예정론 논쟁은 무신론자들vs개신교인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믿음이 있다는 자들중 인간이 거부할수 있다vs 없다의 논의만을 가지고 해야하는데 다메섹님은 많은 부분에서 무신론자들이 싫어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정론때문에 상처받고 믿음을 가지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토기장이 비유는 예정론에 적용할 비유가 아닙니다! 어느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 때 처음부터 절반 이상을 깨부실 계획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그런 토기장이가 있다면 사이코패스인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다만 사용처에 따라서 그가 만드는 그릇을 어느 것은 화려하게 만들고 어떤 것은 평범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떻게 모든 인간들을 구원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로 미리 예정하는 것에 관한 적용할 비유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기본 방침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은하수-t7w 고린도전서 2장 5절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믿음'이란 것은 같은 장 2절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적인 문맥으로 봐야지 일부 구절만 따와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믿음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도 있고 그 믿음에 대해서 인간이 해야 할 분량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것'으로 착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무익한 종을 주인이 추방하는 비유를 통해서 행함없는 무익한 믿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면 무익한 종의 잘못이 아니라 믿음을 주지 않은 하나님의 잘못인 것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조리 부정한 칼빈주의는 성경을 매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오늘날엔 구원파식 이단의 믿음으로 발전했습니다. 비록 저 자신도 행함이 잘 따르지 못하지만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은 믿음만으로만이 아니고 실천적 행함이 따라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2:24)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칼빈주의자들은 비이성적인 성경 해석으로 왜곡하지 마십시오. 성경 어디에 믿을 사람들과 믿지 않을 사람들이 모두 예정되었다고 나옵니까? 그렇게 되면 인간이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은 인간의 전적 타락 때문이 아니라 신의 '전적 예정'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죄와 악함 때문에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신의 악한 계획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되버립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성경을 왜곡하고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인간적 사유로 창조한 것이며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의 사이비 종교 사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은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고 그 믿음과 구원으로 초대(누가복음14장)에 응함의 여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성경은 수없이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행위적 실천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인간의 선택을 강조한 것만 보아도 인간에게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시험을 하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영역도 있고 인간이 해야할 분량도 같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는 말씀으로 비유를 하셨겠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15:7)"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해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실천적 행함과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하는 책임적 분량을 분명히 언급하십니다.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또한 성경에는 분명히 구원으로부터의 탈락도 경고하고 있음에도 견인교리라는 비성경적 교리로 잘못된 구원론을 형성한 칼빈주의 교리는 오늘날 구원파 이단 교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하나님 입장에선 칼빈주의, 내 입장에선 알마니안주의 일수도 있잖아요. 그 두가지가 그렇게 크게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가 결정 됬다는건 하나님의 입장이지, 시간의 유한한 흐름에 묶여있는 내 입장에선 내 선택이 미래를 결정하는 큰 의미가 있을수도 있는것 아닌가요?
조직신학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오랜 시간 연구한 제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논리적인 설명 들어갑니다. 명제: 성경의 말씀은 진리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며 크고 깊은 뜻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던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성경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 처럼 하시다가도 다메섹님의 주장처럼 분명 현재 같은 시간 미래를 모르시는듯한 구절들이 많다. 어느 구절을 보면 칼빈이 맞고 다른 구절을 보면 웨슬리가 맞다. 또다른 구절늘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 이 모순 처럼 보이는 성경이 모두 참이라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작가와 작품 속 인물의 교감은 가능할수도 있지요. 작품 속 인물이 작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고 그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과 의도적으로 소통한다면 말이죠. 마블 캐릭터 중에도 세계관 밖 작가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존재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쏟아내는 캐릭터가 있죠!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의 대상으로 유기의 대상으로 특정 선택하셨다는 것이 악신으로 향하는 개념이라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왜 유다 지파, 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선택하셨는지 대답할 수 없지 않나요?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른 고대 근동 지방은 이방민족으로 유기하셨는지, 우리 중 아무도 대답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은 구원의 대상으로 선택된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는 부분을 읽어보시면, "너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요. 그 계획의 성취가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이방인에게 퍼진 복음인 것이구요.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도 정확히 그거구요. 그리고 신약까지 가기도 전에 이방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계획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많습니다. 우선 욥은 이방인이었고요. 요나서를 읽어보면 니느웨족속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국가가 솔로몬과 교류를 했기 때문에 엠마오의 두 제자가 만난 이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신학적 추론도 존재하고요. 구약을 잘 읽어보시면, 하나님은 한번도 아무 이유없이 이방민족을 유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극악한 죄 때문에 처벌하시는 거죠. 하다못해 가나안조차 그들의 죄가 끝까지 차올랐다고 묘사하지 않습니까? 그런 가나안 여인인 라합도 구원을 얻었고, 이방여인이던 룻은 아예 책 한권의 제목이자 주인공이 되었구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는자는 구원하십니다. 심지어 구약에서도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택함받았던 민족이긴 하나, 그것은 그들만 구원하겠단 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전세계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게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주구장창 말하는 바입니다. 왈가왈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죠. 그러나 이 부분은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유기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나와있는데 어떻게 왈가왈부 안하나요?
@@DamascusLiveTV 답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신명기 4장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핵심적으로 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면, 다른 이방 민족은 [선택]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만 [선택]하셨음을 명백히 보게 됩니다. 신 4:33 "어떤 국민이 신 앞에서 생존했냐?" 신 4:34 "어떤 신이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신 4: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셔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셨고]"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 세상 다른 어떤 민족을 보더라도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이스라엘의 독특한 선택의 관계를 말씀하신다고 보여집니다.
@@DamascusLiveTV 다메섹님의 말씀에서 저의 논지와 같은 점이 존재하네요. 하나님은 이유없이 다른 민족을 유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 때문에 선택하지 않으셨음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민족, 모든 개인이 죄 앞에 놓여 있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죄 앞에 멸망해야 할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찾으려면', 하나님께서 특정한 이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역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그리고 토론 영상도 유익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peter-in-grace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시점에 유기라는 개념이 바로 따라올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맞지만 최소한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하는 시점엔 나머지 모든 인간은 유기된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방인은 죄때문에 택하지 않았다는건 논리적으로 너무나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수많은 죄는 왜 탈락으로 이어지지 않은건가요.. 그러니까 택함이 발생한 순간 유기는 필연적으로 따라올수 밖에 없는것이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남들보다 작기때문이라는겁니다. 그들에게 택함받을 이유가 있던게 아니라 이유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목적이니까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가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라디아서 4-5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 4: 23-24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교회의 자녀들은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의 예"를 따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좆아 ...... 갈 5: 13... 너희가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 설명 하자면 고전 2 : 9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잘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고 이해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믿음"을 우리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가질 수는 없다. 주의 학교에서 전진하는 첫 걸음은 자기의 통찰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전 2: 10) (요 6: 44-45)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말하는 '행함'은 '율법적 행위(εργων νομου)'로써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대 사람들의 율법적 신앙관을 견제하기 위한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εργων νομου)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εργων(에르고온=행위의)
비록 실천이 제대로 따르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음의 말씀들에 아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저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믿습니다 왜냐면 제가 하나님과 가장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던 시기에 찾아오셨어요.. 그때 터져나온 고백은 하나님은 선하시다 였습니다.. 진짜 하나님은 좋으신 분 ..!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믿는 것은 칼빈주의 쪽이 가깝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크신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요… 뭐가 맞는지는 예수님을 만나는 날 물어봐야겠죠🥲 그저 나같은 자를 구원하심에 감사드릴뿐.. 정말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오직 주의 은혜로… 그 은혜를 아는자는 결국 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가를 아는 사람들 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연약한 우리 모습을 보면서 나같은 자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가망이 없는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음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DamascusLiveTV 제 주변을 보면 신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죄와 싸우고 고민하고 노력해요 성화의 과정에 있다면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회개가 나오지 않는다면 내 신앙 정검을 해봐야 할꺼예요 신앙은 인간의 지혜로는 모순과 신비가 있기에 논쟁으로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는거 같아요 살아가면서 내가 작은거 결단했을때 하나님을 목격하게되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깨닿는게 깊어지니까요 물론 성경말씀에 근거해서요 신앙은 믿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이구나를 뼈져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저는 예정론이 맞다라고 생각하는데 행위를 강조하고 구제를 열심히 하는 감리교를 다니고 있어요 물론 교리는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행위는 중심이 서야 기쁘게 열매로 나오는거라서 감리교의 풍토가 거부감없이 저의 중심을 정검하게 되네요 구원에 있어 신학이 뮛이 그리 중요하겠어요 원죄를 부정하지 않는 이단이면 곤란하지만 사랑하나 하기도 힘들고 사실 입에 파숫꾼 세우는것만도 벅차요 작은것 하나라도 실천해보며 말씀읽고 기도하며 지내기도 너무나 바쁜 요즘입니다 다메섹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DamascusLiveTV 아무생긱없이 교회다니는 사람들 빼고는 죄와 싸우는 사람은 신앙을 잃지않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아가고있어요 죄와 내가 싸우는건지 성령님이 도와주셔야하는건지 내가 예정을 받았어야하는건지 고민만 너무 오래하기보단 순종하고 결단하고 행함 필요한것같아요 강력한 믿음이 있어야 행함이 나와요 예배의 자리지키며 기도와 말씀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죄와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각박한 세상속에서 천국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재산 학력 직업과 상관없이요 이것을 정신승리라고 느끼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고요 저는 예정론이 맞는것 같다 느껴져요 모순있지만 많은것이 나중엔 이해가되고 또 제가 주님의 지혜를 어찌 100프로 알겠으며 신비로 풀어질때도있어요 저는 신비주의나 신사도쪽 계열은 아니예요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성경은 이렇게 믿지 아니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행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선 믿음만이 아니며 실천적 행함도 중요함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입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베드로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죽을수있는 상황에서 겁이나서 예수를 부정했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울면서 회개를 했다. 중요한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한일은 예수가 자신의 피로 죄사함 제사를 드리기전의 일이기때문에 히브리서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 알수있는 내용들이다.
예정론자들은 죽은 때까지 자신이 예정되었는지 유기되었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그렇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하여 창세전에 이중 예정을 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들이 하나님케 순종하느냐 않느냐(아담처럼) 에 따라 심판하시면 그만이셨다. 그럼에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구원을 베푸심은 그분의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셨다. 그러니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이다. 이것이 공의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한다. 모든 인간도 그분의 구원계획이 만인 앞에 공평한 구원계획이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지 안 믿든지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이 공평하게 믿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칼빈의 이중예정은 인간이 멸망하고 지옥에 가는 것은 그 귀책사유가 인간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인간이 죄를짓는 것이 하나님이 예정과 선택을 받지못한 결과이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의 창시자로 비난을 받으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닝ㅅ 이시기 때문에 그런 이중 예정을 하실리 없다. 그러므로 갤빈의 이중예정은 명제는 될지언정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도요한의 말씀이 지금 온 천하에 장쾌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구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예정과 자유가 자꾸 양립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팔을 휘적여서 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자유의지가 없어서라고 한다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진화를 통해 형성된 몸의 제한을 받아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을 이용해 비행기를 만들어서, 점프 장치를 만들어서 납니다. 이게 자유가 기능하는 방식입니다. 자유는 그 어떤 제한도 없어야 하는게 아니라 제한으로써만 자유가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렇게 생각하라고 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하라고 하면 미쳐버려요. 규율이 필요한 겁니다. 규율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불가능해요. 그런 의미에서 전 양립론에서 재정의된 자유의지가 오히려 더 적절한 자유의지라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철학이나 이데아나 잘 모릅니다. 단지 편지형식으로보고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여 요약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삭,야곱 곧 우리조상을 사랑하사 때가되어 그의 변개치아니하시는 약속하심에 따라 그리스도를 대망하고있던(엡1:12) 그 미리아신 자기백성 (롬11:2, 암 3:2)중 하나님의 미리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막3:13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시는 자들을 불러 사도로 택하시고) 이 복음이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이후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도록 사도바울과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과 계시로 감춰져있던 비밀이 알리어지며 (엡1:93:3~5) 사도들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되어 전도의 사명이 맡겨지게 되었다~~ 참조귀절로 ■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15:16) ■ 그들은 아버지의 것 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17:6~8) ■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것이라 (행10:39~43)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17:18~19) ■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22:28~30, 마19:28) ■ 거룩한 소명으로 우리를 부르심은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딤후1:9,11) 구약시대 특별한 택하심을 입은 자들과 같이 신약시대에도 사명자로 택함받아 복음사역에 쓰임받는 분이 쓴 서신이기에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치만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특별 계시인 성경 66권인 진리를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작업이 신학이라면 신학 작업을 인간이 한다면 비록 불완전한 인간이 누구라도 그 누군가가 정립한 신학을 배워야죠. ㅋㅋㅋㅋㅋ 그게 겸손이죠. 신학을 우습게 여기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이단이 되는 것이죠.
근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저버리고 떠난 것을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 일 수 있다 라고 비평한 것에 있어서 그 떠난 사람들이 상처 받는 거랑 성경 말씀에 기반한 구원의 원리, 교리를 따지는거랑 어떤 상관이 있나요? 상처를 받거나 안 받거나 말씀이 어떤지를 봐야지 상처 받는다고 말씀을 왜곡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한들 사실 그 예수님을 저버린자가 정말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인지, 구원받았는데 잠시 흔들리는 자인지 그냥 추측할 뿐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라서 우리는 그저 구원의 원리인 예정론으로 말하고 추측할 뿐이고 다시 돌아오기를 회복하기를 도울 뿐이죠. 그리고 인생을 넓게, 길게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단순히 방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서..
위에서 댓글 달아가 도움이 될까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양시무스님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예정예지가 맞고 예지예정이 틀렸다면 누군가의 구원을 예정하실 때 그 누군가가 전체 삶 속에서 선택할 행위, 믿음, 회개 등의 문제를 전적으로 떼어놓고 즉, 일부러 모른척하고 예정하기로 작정하실 수 있으신가요? 예정의 순간에도 전지하시기 때문에 무조건 어떤 선택(예정)을 할 때에도 모든 것을 아셔야 하니까 그 부분을 떼어놓고 볼 수 없으신 것 아닌가요? 모든 인간들에게서 그 인간 고유의 선택을 전부 배제한다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같아야 하는데(모두 지옥가거나 모두 천국가거나) 반드시 누군가는 선택되고 누군가는 버림 받잖아요? 그럼 절대예정론(또는 이중예정론)이 틀린 것 아닌가요? 같은 맥락에서 절대예정론이 맞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도 지옥에 가나요?
다년간 구독해왔지만 처음 댓글을 다네요😊 보면서 끄적였던 생각을 나눕니다.
하나님의 스토리 전체의 결말을 바꾸는데 필요한 변수가 10이라면(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질)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10미만이다.
하나님의 신실, 그의 나라를 완성해가시는 전지전능함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폭을 웃돈다.
인간이 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다잡고 선택하고 울부짖고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나고 전심을 다해 고심하기에 하나님의 품은 충분하다.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결정’이라고 믿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그 공간의 한계를 가늠하고 궁금해하는 자와 그 공간의 한계에는 관심 없고 공간의 거대함에 감탄하는 자의 대화이다. 그러나 이 두 견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지지하고 받쳐준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인류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차원입니다)
확실히 제목대로 이것보다 깊은 예정론 토론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몇번 예정론 토론이 있긴 했지만 이번 토론만큼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예정론측에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무조건적 유기라는 예정론의 너무나도 불편한 문제를 외면하는 방향으로만 대답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불편한 부분을 그냥 있는 그대로 가져간 스탠스가 좋았습니다. 물론 그것에 동의는 하지 않지만 비겁하지는 않아서 좋았어요. 사실 예정론이 맞냐 아니냐는 우리가 세상이 끝날때까지는 알 수 없겠지만, 한국교회에서, 예정론만 맞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인식은 좀 깨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예정론을 반대하는 이유는, 일단 제 도덕적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성경적으로도 수많은 맥락들이 뭉개지지만, 이 예정론이란걸 조금만 잘못 받아들여도 아주 끔찍한 인간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정론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일단 전제해야 할 것은 누가 구원을 받을 자이고 아닌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근데 예정론을 믿는 사람이 누군가를 구원받지 못하기로 예정된 자라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차피 지옥에 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예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예정론적 사고가 확장이 돼서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도 하나님께서 정하시듯 이 세상의 부유하게 태어날 사람, 가난하게 태어날 사람, 건강한 사람, 병든 사람도 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특별히 더 사랑하시고 누군가는 복 주지 않기로 작정하셔서 그런거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이 가르침이 너무도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가르침이 퍼지는 곳에서 교회는 그저 운좋은 인간들의 파티가 열리는 곳일 뿐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공간은 아무런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보다도 더 역겹게 느껴집니다. 제가 성경을 읽었을때 부나 건강, 흔히 말하는 이 세상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아무런 이유없이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주어진다기 보다는 의에 대한 보상이거나, 그보다도 오히려 사명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부자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셔서 그렇게 태어나게 하셨단 구절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를 망설이는 부자청년을 보시며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죠. 그건 더 특별하게 사랑해서 복을 주신게 아니라, 이 세상의 좋은 조건을 타고난 자는 마땅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겨집니다.
예정론을 믿는 것 자체는 전 무조건 틀렸다 할 수는 없다 보지만 최소한 그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이 돼요.
칼빈주의가 맞다면 그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떨 것인가조차
하나님께서 다 결정하는 거겠지만 말입니다.
예정론만 딱 보고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글들을 전체적으로 읽고 판단해야 할것 같네요. 당연히 예정론만 딱 잘라서 판단하면 가질수 있는 오해들을 이야기 하셨고, 실제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신앙고백서, 성령의 일하심등등 여러 주제들로 신앙을 정의합니다. 예정만 딱 잘라서 문제점만 이야기하는건 문제입니다. 예정이 빠지면 100% 행위구원으로 방향이 설정되죠. 결국은 공산/사회주의/무신론으로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
저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고 동의하는 바이지만 동물들에 대해서 혹은 무생물까지 확장해서 본다면 기본적으로도 인간에 대한 편애라고 할까요? 그것을 충분히 전제할 수 있는데, 동물들의 고통과 구원 불가능성 거기에 비추어 본다면 인간은 구원하시고 동물은 고통속에 내버려둔다라는 것은 사실이며 인간만이 사랑받을 자격있다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어떤인간에 대한 편애와 유기에 대해서도 신의 왕벽한 자주권이 주어진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hwanginchan4478 일단 예정이 빠지면 백프로 행위구원으로 방향이 설정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흔히 드는 밧줄의 비유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을 잡으면 물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밧줄이 없다면 그 사람은 건짐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밧줄을 잡을지 안잡을지 인간의 선택이 개입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밧줄이 전제되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어느 구원론이든 하나님의 은혜가 전제되어야하기에 백프로 행위구원이라는 말은 틀린말입니다. 그리고 행위구원과 뒤에 열거하신 이데올로기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공산주의보다도 자본주의죠. 내가 열심히 산 만큼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인데.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ㆍ
다메섹님은 상대방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반박하시거나 주장
하시면 좋겠습니다ㆍ
예전에 설교시간에
예정론 말씀 듣다가
다메섹님처럼 화가나서
하나님을 떠난적 있습니다ㆍ
어느날 내동생 다니는 교회에 조카를 데려다주러 갔는데ᆢ
예배당 안에 들어선 순간ᆢ❤사랑하는 내 딸아~왜 이제서야 왔느냐ᆢ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느냐ᆢ
하시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엄있는 소리를 나를 감싸안으셨습니다ㆍ
그 자리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닭똥같은 눈물이 줄줄줄~
그 다음날부터 미워하는 마음이 용서와 긍휼의 마음으로ᆢ😂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신 자기 백성은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ㆍ
회개하는것, 잘 믿는것,
기도하는것,전도하는것내가 내 의지로 하는줄.알았는데요
지나놓고 보니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고, 그래서 믿음 구원의 선물은 자랑할게 없습니다ㆍ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결과로 옳은 행실 즉, 성령의 열매가 나타는구요
하나님을 믿고싶다?고
하여 우리 인간은 그럴수 없는 존재이고
모든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되어지고 믿어지는겁니다ㆍ
성경 노아홍수때도
단 8명만이 ᆢ 나머지는
모두 휩쓸어버렸습니다ㆍ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이코패스다ㆍ악신이다
라는 발언은 조금 조심했으면 합니다ㆍ
내 교리와 맞지 않다고 하여 ᆢ 내 교리가 100% 아닐수도 있지 않습니까ᆢ
물론 예정론이 100% 맞지 않을수도 있겠지요
서로 진리 가운데로 가기 위한 토론이니 좀더 존중한 마음으로ᆢ
그래도 마지막 웃으면서
마무리 하시니 보기좋습니다ㆍ🎉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앞으로는 스탠스를 묻는 투표보다는 내가 서있는 스탠스에서 얼마나 나를 반대편으로 움직이게 했는가가 더 적절한 투표질문이 될것같네요. 재미있는 토론이었습니다!
좋은 토론 감사합니다. 이런 토론이 많아져야 해요 정말로
지금까지 별 생각없이 봤었는데
이 구간별로 내용을 정리해주신게 얼마나 큰 일인지 오늘은 보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참 대단한 사소한 일인것 같아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네요 ㅋㅋ
고생하셨습니다 😊
😊
형제님, 감사합니다
칼빈 등판 ㅎㄷㄷ
ㅋㅋㅋㅋㅋ
우와
진심으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유익한 토론이었습니다!
일단, 예정론 찬성이든 반대이든 결국 인간의 인식 안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임을 양측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라이브 채팅창 보면, 예정론 반대론자들을 인간 위주로 해석하는 태도라고 하시는 분이 있던데, 제가 보기엔 예정론이야말로 전지전능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갇혀서 하나님을 해석하려고는 태도로 보입니다. 결국, 그 의미 때문에 생기는 모순을 이중예정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보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예정론 지지자 중에서 빛의 성질로 하나님의 성질을 비유하신 분이 계신데.. 이것 또한 인간의 결론일 뿐, 그게 빛을 전부 설명한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으로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성질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두 성질이 공존해야 빛이 나타내는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그렇게 결론지은 것이지요. 결국, 인간이 그 특성을 규정해버린 겁니다. 지금 예정론자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특성을 인간의 이해의 범주 안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즉, 인간이 가진 든 것으로 하나님을 설명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를 표현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엄청난 교만으로 보입니다. 제가 기독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인정할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오기를 바라는 분입니다. 인간이 직접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요. 애초에 인간이 하나님에게 돌아올 것을 알도록 창조했다면, 그것이 하나님에게 어떤 의미, 어떤 감동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각 영혼에 대한 구원의 결말로부터 스스로 눈을 감으심으로써, 피조물인 인간과 직접 관계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나아가고자 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결론을 알고 계신다라는 예정론은, 하나님의 그 마음을 무시하는 태도가아닐런지.. 그게 아니라면, 나는 믿어지니까 이 해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나태함의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양쪽 모두 인간의 범주 안에서의 해석이지만, 저는 스스로의 결말까지 제한하신 하나님을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둘다 인간적인 해석이나, 어느 쪽이 더 하나님의 선, 사랑의 속성에 가까운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전통적이기에 견지한다는 논리야말로 너무 답답합니다.
정말 질 높은 토론 잘 봤습니다. 정말 이런 컨텐츠가 저에겐 너무 가뭄의 단비같아요.
폭 넓은 시야로 많은 제시를 해주신 다메섹님도
깊이 있는 칼빈주의 시각을 설명해주시는 양시무스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사역자님께!
예정론 뿐만 아니라 칼빈교리, 루터교리, 어거스틴교리, 삼위일체교리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교리는 사탄 루시퍼가 생각을 줘서 만들어진 지옥가는 교리입니다.
칼빈, 루터, 어거스틴 모두 지옥에 떨어져서 엄청난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dolphinpark2264
1. 위 교리들이 사탄이 생각을 줘서 만들어졌다는 근거는 뭔가요?
2.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생각이 사탄이 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요?
3. 칼빈, 루터, 어거스틴 모두 지옥에 떨어져서 형벌을 받고 있다는 근거는 뭔가요?
명확한 성경적, 논리적 근거가 없이 위와 같이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원중-g7r 우리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영(성령)이 주시는 생각. 아니면 사탄 루시퍼가 주는 생각 2가지 외에는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영서이기 때문에 성령충만 받아서 읽어야 영적비밀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모든 교리는 성경을 벗어나서 잘못 해석해서 만들어진 지옥가는 교리입니다.
그 생각을 사탄 루시퍼가 준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서 가르치고 그 교리대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목사님들도 교인들도 거의다 지옥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이원중-g7r 성도님!
칼빈교리, 루터교리, 어거스틴교리, 삼위일체교리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교리는 사탄 루시퍼가 생각을 줘서 만들어진 지옥가는 교리입니다.
칼빈, 루터, 어거스틴이 다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 교리대로 가르친 목사님들,
조용기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김기동 목사님, 정필도 목사님 들도 회개치 않아서 다 지옥 가셨습니다.
물론, 중.소.개척교회 목사님들과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도 죽으신 분들은 거의다 지옥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다메섹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 예정론 관련해서 책써주세요 ㅠㅠ 머리속에 있는 모든 지식 다 가져오고 싶네 ㅠㅠ
격려 감사합니다!😊
2탄으로 칼빈의 5개강령 하나씩 배틀 가시죠 이 5대강령을 풀어야 풀릴듯
기도할 때는 모든 사람은 칼빈주의자가 된다.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그게 참 희한하죠.
양시무스님 너무 성경의 문자 하나하나 구절 하나하나에 천착하시네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문자와 구절이 모순된다고 하나님이 모순되시진 않아요. 칼빈주의가 틀린다고 하나님의 구원이 훼손되지도 않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선택받아 구원받았음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믿음이냐 또는 나의 전적인 자유의지로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음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믿음이냐의 차이입니다. 신앙적으로 둘다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와 창조와 구원에 계시된 그분의 자유로우신 의지를 고려한다면, 신학적 논리상으로는 예정하심이 옳습니다.
단, 타락한 죄인의 영원 전 유기의 교리가 신앙적 걸림돌이 되면, 누구나 예정의 교리를 자유롭게 버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하실 점은 지옥에 죄인을 유기시키는 칼빈주의적 하나님이 잔혹하다면, 알미니안적 하나님 또한 죄인들이 지옥의 멸망길로 자유의지로 나아감을 다아시고도 그들의 자유의지를 절대로 훼손시키지 않고자 죄인들을 실질적으로 유기시키는 숨겨진 잔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의 눈에는 어차피 영원한 지옥에 죄인을 유기시키는 폭력적 하나님입니다. 물론 말할것도 없이 크리스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의 종말론적 실현이지만요.
사회자 락헌 님이 진짜 정리를 엄청 잘 하셨고… 개인적으로는, 상대가 말하게 시켰다면 웬만하면 말하는 중간에 끊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런 면은 조금 마음이 힘들어지긴 했어요 ㅎㅎ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ㅎㅎ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와.. 은혜받았습니다
두분의 논리들으면서 칼빈주의 예정론은 오류가있지만 그래도 예정론이 더 와닿네요. 어차피 무오한 신학은 존재하지않아요. 다메섹님이 발언기회가 훨씬 많고 먼가 분위기로 제압하는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내용만보면 자유의지쪽은 역시 설득력이 빈약한단 생각. 그리고 신학하시는분들이 사고의 한계가..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있습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발언기회에 대한 부분은 좀 잘못생각하셨다고 봅니다.
다메섹님의 발언이 더 많았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 맞습니다만,
그건 양시무스님이 이야기하지 않은것이고,(거칠게 말하면 할 말이 없는거고) 기회를 준 것입니다.
말이 겹쳤을 때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살펴보시면
저는 공정했다고 봅니다.
정말로 깊이 있고, 도움이 많이 되는 토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0시간 이라도 듣고 싶은 토론 이네요.
시간만 충분하다면 다메섹님이 칼빈주의 모든 교리를 헤렘, 박살각 나올 것 같은데 시간이 아쉽네요.
한국 기독교 변증의 아이돌 다메섹..역시 변증력 끝판왕 최종보스 인정합니다.
양시무스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다양한 루트의 칼빈주의 논증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양시무스님이 아니면 이렇게 깊은 논의들이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양시무스 님께서 칼빈주의 스텐스로 토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누구나 참여가능한 예정론 라방 한번 더 해야겠네요.
와우~! 기대됩니다.!!!@@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제 질문에 대한 답 부탁드립니다. 제가 자주 못 오니까 나중에라도 읽을께요.
님 주장대로라면 "님이 지금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님도 나중에 예수님을 안 믿게 될 수 있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죠?
인간의 자유의지가 언제 회복되었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후 라고 세미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말하는것 같은데,
구약의 인물들은 자유의지가 회복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선택한다고 할 수있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맞아요.
아말렉족속을 하나님은 어린 아이부터 모두를 죽이라고 하신것은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절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밖에 없을것 같아요.
자유의지는 처음부터 있지않았나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의 회복은 자유의지가 없었는데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의지 선한 자유의지가 선악과 사건이후로 타락한 자유의지 악한자유의지로 바뀌어서 어떤 선한 선택(선행이라기보다는 예수를 택하은것)할수 없게되었는데.
자유의지를 회복하셔서 예수를 선택할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그중에 그 회복된 자유의지를 잘사용해서 선택한사람에게는 믿음과 구원을 주시고 아닌사람에게는 심판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아담부터 끝날까지 유효한것처럼 십자가에서의 자유의지의 회복도 그리스도전부터 이후까지 유효하다고 생각할겁니다.
물론 저는 선행은총을 통한 자유의지의 회복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적 선택을 따릅니다. 상대방의 논리가 무엇이가 공부하고 알려드리는 겁니다 .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선물은 구원이 아니라 구속 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닼ㅋㅋㅋㅋㅋ
p.s. 양시무스 하이라이트를 보고 싶으시면 1:15:14 부터 보세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칼빈과 개혁신학을 좋아하는 제가 볼 때는, 다메섹님이 제시하시는 케노시스 이론 또한 계속 파고들어가다보면 논리적인 모순과, 그런 하나님이라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지요.
양시무스님이 토론을 잘 해주셨지만, '칼빈주의 예정론은 옳은가?'라는 주제 선정에서부터, 예정론 안에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논리로 방어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쪽으로 기운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실제 토론도 그렇게 흘러갔구요. 그게 의도였고 목적이었다면 할말 없지만, 다음 번에 비슷한 포맷으로 '케노시스 이론은 옳은가?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를 놓고 토론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다메섹님 저는 아직 다메섹님과 양시무스님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는것같습니다. 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부분은 혹시 다메섹님은 기도하실때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어떤 기도냐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경험하고있는건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리기가 어렵거든요. 저도 한때는 양시무스님같은 신앙관(모교에서부터 배움)이었다가 청년이 되고 성경은 묵상할수록 다메섹님과 비슷한 결이 되었거든요. 제가 삶에서 해야하는(선택하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있는건 아는데. 뭐랄까. 하나님만이 하실수있다는 고백이 잘 안나오더라구요. 내가 했어야하는건 아닌가 이 기도가 맞나 이런생각들요.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모든책임을 돌리는것이 편하고 마음이 후련하다는 전제하에 자유의지에 중점을 두면 그런기도를 할수없어서 힘든건지, 혹시 어떤 기도로 어떤 고백들을 하시는지 나눠주실수있나요?
우리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나님께서 개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저도 기도가 항상 어렵고, 잘 되지 않습니다만,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학관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정하는 신학까지 나아간게 아니라면요) 저희 담임목사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겸손하지 못해서라고 하시는데, 잘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정말 절실한 상황이 닥치면 내 신학관이 어떻든 기도가 절로 나올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 기도가 신학과 상관없다고 느끼는 점은, 보통 기도를 통해서 뭔가 마법처럼 되게 해주시기보다 나 자신의 마인드를 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바꿔주시기 때문이죠.
@@DamascusLiveTV 답변 너무 감사드려요. 또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저의 교만함 때문에 기도가 안될수도 있겠다.. 저의 교만은 왜 끝나지 않을까요ㅎㅎ 내가 뭘할수있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의 낮아짐과 공생이 안되는것같아요.. 더 묵상하고 성경읽고 기도하고 사람들과 나눠봐야겠네요.
내 마인드를 바꾸는 기도. 이것도 중요한것같아요. 감사합니다.
@@DamascusLiveTV *"하나님 제 친구가 아직 믿지 않아요.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내가 죄인임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이 믿어지는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ㆍ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고로, 자랑할게 없지요ㆍ
내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지요
예전엔 내가, 내가,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는 선한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내 안에 교만함을 버리고 나는 죽고 예수그리스도로 사는것ㆍ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ㆍ
주체가 자아인지ᆢ 주체가 하나님인지ᆢ
저는 요즘ᆢ갈2:20
말씀을 묵상하며
십자가 보혈 의지하며
나아갑니다ㆍ
지나가다 요즘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ㆍ샬롬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계획을 하지만 그걸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모든 만사가 그럴수도 있지만 특히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것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주관입니다.
사람은 도구라고 비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닌 개인의 삶에 대한 일이라면 스스로의 힘이 크겠지만 예를들어 믿지않는 사람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도 그 틀은 인생이라는 틀에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솔로몬의 잠언이지요
정말 양시무스님 다시봤어요..정말 멋집니다. 제대로 배웠어요. 저는 여태 다메섹님의 견지에 항상 공감과동의가되었는데 이번만큼은 양시무스님말씀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였나 생각이 드는 뜻깊은 시간이였습니다. 다시봤네요 ㅋㅋ 까불까뿔하기만하시는줄알았는데
사실 제가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서 가벼운 척을 하려고 까불까불했던 겁니다. 저 진지하면 정말 감당 못하십니다!(막 이러고 ㅋㅋㅋㅋ)
암튼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sheep_maximus ㅋㅎㅎ 넘좋아용 양시무스님 화이팅!! 새해복만히받으시구 활동도 다메섹님과계속같이해주세요!!
@@ucreeda 다메섹님이 자비를 베푸신다면 계속 하고 싶습니다 ㅋㅋㅋㅋ 이상 부스러기 바라기 양시무스였습니다 ㅋㅋㅋㅋ
@@sheep_maximus...
히6장의 그리스도를 다시 못 박은 자들이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 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안 하신것 같은데 알고 싶네요~
유튜버 정택주 전도사도 이 사람들이 애시당초 진정 거듭난자들이 아닐거라는 합리화적인 말을 하던데요,,
난독증이 아닌이상, 절대 그렇게 이해할수 없죠~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에 ,, 다시 못박음이요, 그리스도를 배반함으로 타락함이요, 새롭게 깨끗케 되지 못함이요,
내내 히 6장 7절에는 성도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땅(마음,믿음,성도)이 그위에 자주내리는 비(은혜,긍휼,,)를 흡수하여 주인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복을 받지만, 가시나엉겅퀴를 내면 버린바 되어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1달란트, 미련다섯처녀, 염소, 쭉정이, 나쁜열매, 하나님나라를유업로 받지못하는자들의 죄의목록,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자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자,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자들,
자기의육체를위하여심는자들,,,
믿는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하는 동시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가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합니다.
영생이 마치 추수때에 수확하는 열매로 묘사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킴, 곧 믿음의 결국 구원을 받음입니다.
재가 언급한 말씀들애 대해서, 먼저 그 말씀 앞에 답변을 하시고 온전할때 말씀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정말, 구원을 잃을수 있다면, 양전도사님은 비공식 구원파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면제부를 나눠주는게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모든 책임은 각자에게 있는것이지만요,,
양시무스님께 한 제 질문이 사라졌네요~~ㅎㅎㅎ
와… 사회자님이 오지네요…🎉
두분의 엄청난 신학적 지식의 대향연 잘봤습니다..
다만 다메섹님의..
소설과 영화,드라마 등의 인문학적인 비유 또는 비교는 그다지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있네요..
이 토론이 너무 흥미로워서 예정론 토론을 더 찾아보려 했는데 진짜 거의 없네요. 혹시 추천하시는 영상 있을까요?
토론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쓴 책들은 많으니 각각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9:31 개인의 열심의 신앙생활 눈물을 믿음의 근거로 둘 수 없다. 그런 행위들은 다른 모든 종교들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것들을 무시한다기 보다는 그런 것들을 붙잡았던 자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금 제시해줄 뿐이다.ㅠㅠ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안에서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게 되고 평등하게 될수 있고 또 누구도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솔직한 토론 좋네요.^^
신학은 반유대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으로 언약을 폐하여 유대인을 쫓아 내고 그 자리에 이방인이 들어가서 만든 것이 신학입니다. 택함과 예정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은 엡 1-3장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과 예정은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 택함과 예정이니 택함과 예정은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는 것입니다. 이 통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데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 계획에 의하여 우리가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택함을 받은 자들이니 택함을 받은 것은 이 기업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어떠한 기업인가? 우리 기업의 보증은너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택함을 받아 기업이 되었고 너희는 우리의 기업에 의하여 복음을 믿어 구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결과는 우리나 너희나 다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통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데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의 통일은 우리와 너희가 하나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우리와 너희가 다르고 택함과 복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와 택함은 하늘의 것이요 너희와 복음은 땅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함은 우리와 너희는 복음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며 너희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설명은 엡 2장에 등장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되는 것은 이스라엘과 이빙인입니다. 그리고 너희를 이방인이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인을 무할례자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요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방을 구원하시기 위한 기업으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택함은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이방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택함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유기하는 것이 아니라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에 복음을 믿을 자들이 미리 택함을 받은 자라면 택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고 택하시는 이는 하나님인데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도 없는 이방인이 어떻게 택함을 받아 복음을 믿을 수 있는가? 그러니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한 예정은 개인 구원이 아니라 경륜의 예정입니다.
곧 우리를 택하여 기업으로 삼아 너희를 구원하시기로 한 예정입니다. 너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행위를 보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하시는 것이지 그 대상이 택자와 비택자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곧 구원의 대상이 개개인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무 것이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 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말씀 곧 복음을 주시어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그 대상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듯이 복음의 대상은 천하 만민이요 택함의 대상은 유대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택함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구원을 받은 자들이 버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원 후에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하면 구원에서 제외됩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할례를 받고 언약에 참여해도 율법을 범할 때 무할례자가 되어 언약에서 제외됨과 같습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구원된 후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에 의한 구원 다음에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엡 2:12에 의거 이방에서 복음을 믿을 자들이 미리 택함을 받은 자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참 흥미로운 토론이었습니다 끝까지 다 볼 정도로요~! 저는 토론 후 투표 기다리며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어요~ 각자가 당황했던 순간들, 상대의 토론자로서의 장점,강점을 이야기할 때요.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토론을 한 번 더 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꼭 한번 보고 싶어요! (토론이, 훨씬 더 풍성해질 거 같아요)
다메섹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적인 존재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안에서만 납득하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예를 자꾸 드시는데 본래 인간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감히 부를 수도 없는 먼지같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의 시간과 공간속에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친히 하나님의 본체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자녀 삼아주신거지요.
성자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 성령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인간을 다 죽이든 저 태양을 폭파시켜서 태양계를 날려버리든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악해서 나는 못믿겠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말들이 전부 성육신과 신약성경을 부정하는 말이란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네요. 여호와는 알지만 예수는 모르는 말이라고요. 예, 나는 그런 유대교인 같은 사고로 살바에 안믿을랍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 예시는 내가 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드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자주요. 내 부모가 날 버리고 손절한다해도 선하다 믿고 신뢰하겠다는 자식만큼 비인간적이고 기괴한 경우도 없을겁니다. 그걸 보는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부디 사랑의 하나님을 기계적인 창조신 정도로 전락시키지 말길 바랍니다. 그런건 이교도인들이 하는 짓입니다. 신약을 읽으세요.
@@DamascusLiveTV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 우상숭배 하는 자 등에 대해서도 자녀라고 하지는 않거든요.
@@DamascusLiveTV 신약의 하나님 말씀에는 심판의 내용이 없던가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굳이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품,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셨어요.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넌 어차피 날 이해하지 못해"라고 하실까요? 능력은 무한하시나 유한한 우리에게 맞춰 설명해 주시는게 더 자연스럽죠. "내가 니들을 내맘대로 상줄 놈, 벌줄 놈 정했는데 왜냐고? 묻지마! 니들이 말해준다고 이해나 하겠니? 나의 생각을? 어디 감히 피조물이 대들어?" 이런 분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셨다구요? 말이 안되잖아요.
만약 하나님이 선하지 않은 분이라도 실제 그러신 분이라면 피조물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생각해보면 그 선과 악이라는 개념조차 그분이 주셨어요. 우리가 가진 도덕개념은 상당부분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신 겁니다. 기준을 우리에게 주신 분의 기준으로 볼 때 악하다는 결론이 나면 말이 안되는 것이라니까요. 해석이 그렇게 되면 해석을 잘못한 것이겠죠. 말그대로 일관성이 없으니까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그냥 하나님은 너무 높고 위대하신 분이라 감히 판단하지 마라고 하면 그분이 선하신 것은 어떻게 보고 배우겠습니까? 애초에 판단을 못하는데..
이런 멋진 파이터들과 예정론 토론 스파링 해 본 적 있다는 게 영광이네요.
숨은 고수신데 나중에 한번 데뷔하시죠 ㅎㅎ 요즘 다마스커스 토론판 뜨겁습니다
너랑 하면 내가 알미니안 포지션으로 해야겠네 ㅋㅋㅋㅋ
Thanks!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묵혀뒀다 이제야 보네요. 예정론이 하나님을 악신으로 만든다는 주장이 정말 새로운 시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정에 대한 이견이 생기지 않음은 은혜일지, 익숙함의 영역일지…ㅎㅎ 신앙의 지평을 넒히는 토론 감사합니다~
로마서 9 장을 읽으세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본주의에 빠지게 되죠.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로마서 9장의 토기장이 비유는 예정론에 적용할 비유가 아닙니다!
어느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 때 처음부터 절반 이상을 깨부실 계획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그런 토기장이가 있다면 사이코패스인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다만 사용처에 따라서 그가 만드는 그릇을 어느 것은 화려하게 만들고 어떤 것은 평범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떻게 모든 인간들을 구원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로 미리 예정하는 것에 관한 적용할 비유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기본 방침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dsp6089 님같은 자들의 반론에 답하는 것이 바로 토기장이 비유죠.
@@dsp6089 하나님의 주권이 바로 그련 거라고요. 그게 싫죠?
@@dsp6089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거 맞다니까요.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전13:48)
안녕하세요 다메섹님! 우선 질 높은 토론 감사드립니다! 저는 성경적으로보나 논리로보나 특히나 비신자들을 상대로 대화를 이어나갈때 다메섹님이 주장하시는 의견 말고는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중 한명입니다. 하지만 제가 고민하는 지점은 성경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일어났어야만하는 사건 (예를 들어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사건)이 만약에 유다가 스스로 선택할수있고 본인의 자유의지를 통해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더라면 전체적인 내러티브에 타격이 엄청나게 갔을꺼같은데 여기에 대한 생각이 정말 궁금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것만 해결된다면 훨씬 더 풍성한 신앙생활을 누릴수있을 것 같은데 혹시나 다메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다의 배신 없이 십자가형이 어떻게든 이뤄지는 경우의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엔 딱 그 사건만 달라진다기보단, 기승전결 자체가 달랐을 수도 있겠네요.
사실 십자가사건은 예수님의 의지적 요소가 많습니다. 겟세마네 사건도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지니셨던 자유의지를 비춰줬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적 측면이 자유보다 컸다고 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도 자기 발로 들어오셨죠.
유다는 단지 십자가형으로 가는 스토리의 요소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말고를 결정할 순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것을 지기로 완전히 작정하셨으니까요.
@@DamascusLiveTV저도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주신 답변을 보니 이해가 너무 잘되네요. 감사합니다.
Good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유다가 시험을 패스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교사인데 어떤 학생이 100% 시험에 낙제할 지 너무도 잘 압니다. 이는 그 학생이 낙제하기로 예정되었다기 보다는 시험에 낙제할 정도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룟유다 딜레마라는 책이 있는데 추천드립니다
* 추가로 논의 되었으면하는점
"믿음을 잃어버리면 구원이 파기될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었다가 잃어버렸다가 죽을때까지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믿음을 잃어버렸다" 고 할수있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것인지?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하는것은 사람의 믿음인지 예수님의 보혈인지? 둘 다 인지? 둘 다 라면 온전한 은혜라고 할 수 있는지?
은혜를 받았다 반납했다 가능한 것인지?
저는 한 번 얻은 구원은 잃어질 수 없다 생각하는 바입니다
다만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 아닌지는 욥과 욥의 부인의 사례로 알 수 있죠
모든 것을 앗아가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어떤 것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이 두가지는 하늘과 땅차이라 봅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을 유지시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 이 때문에 그를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라 시인 할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12:3) 그런데 사울의 경우를 보면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 가신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지 않는데 이것이 믿음일까요? 이것이 히브리서 6:1-6의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계속해서 책망하시고 인도하시나 계속되는 불순종으로 마치 성령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게되면 성령님께서 떠나가십니다. 스스로가 원치 않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이죠.
우리를 씻기는 예수님의 보혈,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신실하였던거 처럼 그에게 신실 할 때에 구원이 이릅니다. 그래서 구원을 지키라고 말하며 모두가 경주에서 뛰나 모두 우승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원어를 보시면 biblehub.com/greek/4102.htm 뜻은 믿음, 신앙, 신실함, 충성됨, 신뢰 등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믿음을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지식이 아니며 그 관계에 대한 믿음을 이루는 모든것을 포함합니다. 예를들어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 하면서 날마다 바람을 피고 아내의 불만을 무시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습니까? 성경에서의 믿음은 말뿐만이 아닌, 지식이 아닌 행동을 포함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육체의 법에 순종할지 영에 법에 순종할지는 결국 우리의 의지에 남겨두셨습니다.
@@ChristIsMyKingAndImHisServant 음 되게 원론적인 얘기를 하시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사람이 어쩌다가 원나잇을 한번 하게되었습니다. 이사람은 원나잇을 한 순간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건가요? 그럼 곧바로 원나잇을 뉘우치면 다시 아내를 사랑하는 상태가 되는거구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고 죄를 지을때는 믿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뉘우치고 돌아오면 믿는 상태가 되는것입니까?
그러면 구원을 잃엇다 얻엇다가 죽을때까지 반복되겠군요.
@@qweasdzxc123-y3f 예시가 성경의 예시와 다릅니다. 또 저의 예시와도 다르구요. 아마 제가 적은걸 잘못 이해하셔서 그런듯합니다.
사울은 불순종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지 않았으므로, 즉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므로 그 상태에 머문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유다와 베드로가 대조되는것과 같습니다.
유다와 베드로 둘 모두 예수님을 배신했으나 베드로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고 이것이 두려움으로 인한 실수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유다의 경우 요한복음 12장에서 말하길 돈궤에서 돈을 훔쳐갔다 합니다. 여기서의 동사는 원어로 불완전 직설법 능동태 (한국어로 맞는지 모르겠는데 영어로는 imperfect indicative active) 로서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유다는 회개 없이 육의 법에 순종함으로 이 그림은 예수님의 배반 이후에도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육신의 판단에 맡깁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유다에 대한 뜻은 구원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신실함은 지속적인것에 있지 한 순간의 실수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셔서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길 기다리십니다. 이런 말씀들을 무시하면 위의 예시처럼 해석 할 수 있겠네요.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믿음이 처음부터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이상 유효하지 않도록 만들었을 때, 즉 스스로가 그 은혜를 필요없다 여기듯이 살고 마음이 돌아섰을 때, 성령님을 슬프게하여 떠나가실 때가 정말 끝입니다.
그 시기는 사람은 알지 못하나 하나님과 개인 사이에서의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한 믿음으로 자라기까지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를 인도하시고 우리는 순종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것, 예수님 안에 거하는것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적으신 예시는 행위 구원론입니다. 행위가 상태 전부를 대변하진 않지만 상태가 행위 없이는 증명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상태가 그 상태란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입니다.
악신 문제를 더 집요하게 공략했어야 하는데 밋밋하게 넘기셔서 아쉬웠습니다 다메섹님. '악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도 선한 거라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여튼 선하시니까. 인간의 관점으로는 그 선악에 대해 감히 판단하고 불평할 수 없으니까'가 양시무스님의 반론이었는데, 사실 악해 보인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논리적으로 악하다는 차원에서 칼빈주의가 함의하는 결정론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의 죄를 짓는 경향성은 하나님께서 본인이 직접 그렇게 설정한 겁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사실 인간이 그런 경향성으로 죄를 짓는 것도 인간의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유일한 주체는 하나님밖에 없거든요. 이 결정론적인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결정론적인 세계의 모든 결정론적 행위는 하나님의 입력인 것이죠. 요컨대 살인도 사실은 살인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살인도 학살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플레이어 얘기 하셨는데 다시 말해 칼빈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플레이어가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만이 플레이어입니다. 모든 사건들과 모든 행위들의 유일하고도 진실한 주체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죠. 그 모든 사건들과 그 모든 행위들의 악은 하나님께로 다 수렴하고요. 단순히 하나님이 악신처럼 보인다는 정도가 아니죠. 논리적인 차원에서 악의 문제가 발생합니다(맥키가 제시한 논리적 악의 문제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다시 말해 구원받고 말고는 무기준 랜덤뽑기 수준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구원받을 만한 인생을 살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나님이 하나하나 다 그렇게 결정하셔서 창조를 하시는 거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만한 인생을 살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나님이 하나하나 다 그렇게 결정하셔서 창조하시는 거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이 살인을 하든 학살을 하든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거고요. 즉 하나님만이 유일한 진짜 주체라는 겁니다 나머지는 다 조종받고 있을 뿐이고요. 즉 마인드컨트롤로 치면 우리 인생 전체가 마인드컨트롤입니다.
기실은 하나님께서 악을 발생시키시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악을 행하시는 거지만 하여튼 그것도 선하다. 왜냐면 하여튼 선하니까. 라고는 부디 하지 맙시다. 순환논리죠. 이걸 방어하려면 인간이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살인도 학살도 애초에 악이 아니다라고 해야할 것입니다(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악이 사실 없다고 해야 말이 맞죠.). 그래야 진짜 주체이신 하나님께로 그 악이 수렴하지 않을 테니까요.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의 멸망과 종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뿐만 아니라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다음 세상에 관한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그 다음 세상까지 환상으로 보고서 성경을 집필한 예수님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왜 그곳에 다 적혀 있으며 왜 그렇게 성경이 처음과 마지막을 강조할까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하나님에 의해 결정이 난다는 걸 성경의 독자들에게 가르쳐주려고요. 이스라엘과 열두 지파를 애굽에 보내려고 전세계에 유례없는 기근을 내리신 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430년 동안 애굽에 집어넣으셔서 그들을 애굽화 시킨 건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뭔지를 가르쳐주려고. 그런데 출애굽하고 나와서 이스라엘의 추악함과 불가능이 곧바로 광야에서 폭로됩니다. 애굽에서 행한 이적을 보고서도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거역한 놈들이라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과연 열번만 거역했을까요? 실제로 열번 시험하고 거역한 건 애굽왕 바로였습니다. 바로는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의 대표인데 지금 애굽화된 이스라엘을 바로 취급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화시키신 건 하나님인데 그럼 이스라엘이 악한 행위를 한 건 하나님께로 다 수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전부 조종하셨는데 하나님 책임인가요?
이 우주와 역사는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그분이 왕이시며 새로운 피조물이 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하나님 백성들은 그분만을 꼭 의존해야 하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가르치기 위한 시험장에 불과합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인생의 목적에 관한 말씀이 나오지요?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짐승이 다름이 없음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고. 다 똑같은 짐승들인데 은혜를 입은 어떤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부스러기라도 달라는 가나안 여인처럼 "내가 짐승이 맞네요."하고 끌려나오는 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들만 이 인생과 역사를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허수아비?", "인간은 플레이어인가 아닌가." "인간은 꼭두각시인가? 로봇인가?" 하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테지만 성경은 애초에 인간을 흙으로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영양가 있는 흙도 아니고 그냥 티끌입니다. 영어 성경만 가도 dust, 먼지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허수아비 로봇 수준이 아니라 먼지란 말입니다.
이사야서 40장으로 가면 대놓고 온 나라가 티끌이라고 "그 앞에서는 모든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에게는 사람이란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장에서는 인간의 모든 의가 똥걸레라고까지 비하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백성이 아닌 온 세상은 Nothing입니다. 티끌입니다. 죽은 흙, 똥걸레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제외한 온 민족과 나라가 떵떵거리며 잘살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nothingness인 것입니다. 그럼 대체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란 겁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살인은 선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족속을 어린아이 부녀자 가릴 것 없이 얼마나 많이 진멸했습니까? 다윗은 살인교살하고 간음을 저질렀지만 그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짜 받으시는 상한 심령이라는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첫 아들이 죽으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산다는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럼 그가 저지른 죄가 선을 위한 도구로 쓰였는데 이걸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왜 다윗이 하필 그 시간에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았을까요? 웬 늙은 할머니를 보았다면 간음할 생각을 감히 했을까요? 왜 하필 밧세바 사이에서 솔로몬이 나왔을까요?
마귀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사울왕을 괴롭힌 악신과 아합왕을 심판하는 거짓말하는 영도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지옥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지옥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무엇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판단하겠습니까? 왜 성경이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선악과를 동산 한가운데 가장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만드셨으면서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왜 하필 뱀을 그곳에 보내셨으며 왜 인간이 선악 판단의 주체로 서는 세상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는지 깊이 고민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성경을 인간은 불가능, 하나님은 전부라는 은혜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가급적 여러 번역본으로요. 죄라는 것도 선악과라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의와 긍휼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걸 알아가시길.
치열하군요. 그리고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처럼 인격적으로 믿는 자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기에 인류에게 인격적인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체 섭리 안에서는 예정론이 맞지만 개인 구원의 문제는 케노시스적 자유의지가 더 하나님의 성품에 맞다고 봅니다. 이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성경말씀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으로 이루라는 말씀은 구원받았다는 것, 즉 선민 의식에 나태해지지 말라는 것이고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의 대한 말씀은 사람이 보기에 겉으로 교회 안에서 구원 받은 것과 같은 행동과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고 또한 이러한 여러가지 체험 등을 맛보고도 믿음을 버리는 것은 그는 진짜 믿음이 아닌 겉으로만 보여주기식인 가짜이다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히6장의 ~~맛보고도 타락한자들은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수 없나니 , ,
이사람들이 중생하지 못한자들 이라고요~~~ㅎㅎㅎ
절대예정론자들의 아킬레스건이라, 이들이 진짜로 거듭난 자들이 아니라는둥, 가짜믿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말하는 분들이 많네요~~ㅎ
타락(배도)한것으로 봐서 가짜믿음이다?
그럼 애시당초 거듭나지도 못한자가 무슨 타락입니까?마귀자식이~
빛을 받았다는 말은 ,, 요1장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이 들어와 사망의 그늘에서 광명을 얻음이요,
성령에 참여한바 됨은 ,, 같은 성령에 참여함이요,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봄은 ,, 깊은 영성에 이른 자들이요,,
우선 신학 전공자 분들께서 이런 토론을 열린 곳에서 하신 다는 것이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그러한 시도와 노력에 일단 큰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다들 바쁘신데 영상 만들어서 올리시고 또 댓글 다시는 것은 그 만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 있기 때문이고 한 분 에게 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우리의 열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댓글 다신 한 분 한 분이 귀한 것 같습니다.
자연 법칙(law of nature) 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끔씩 그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들이 발생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하고 신비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학적인 법칙으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설명이 안된다고 모순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습니다. 자연법칙을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 법칙안에 있지 않으시고 그 법칙에 묶여 있지 않으시지요.
과학자들도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상당한 많은 갈등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양자역학의 시대는 그 자연 법칙의 정의가 확장되는 시기였고 동시에 우리의 일반 논리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엄청 힘든 시기였습니다.
갈등이 얼마나 심했으면 슈뢰딩거가 고양이 얘기를 하면서 양자역학의 모순을 비판했을까요? namu.wiki/w/%EC%8A%88%EB%A2%B0%EB%94%A9%EA%B1%B0%EC%9D%98%20%EA%B3%A0%EC%96%91%EC%9D%B4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시면 참조하실 수 있도록 나무위키 링크 첨부합니다.)
철학이나 신학자들의 사고 체계와 논리 체계를 제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교육받고 훈련을 받았기에 때문에 Logic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그냥 paradox라고 빨간 줄로 그어 버리는 것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교육을 받았지만 뉴턴 시대의 과학에서 벗어나 양자시대의 과학을 조금만 접해 봐도 paradox 라고 치부한 내용을 mystery 로 받아드리는 것에 대한 거부가 사라질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올 수 있습니다. 논리로 설명이 안된다고 모순이라고 몰아 부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 못하지만 받아 드리는 사고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자 우리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100% 인성과 100% 신성을 어떻게 논리로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가요? 이런 중요한 부분이 논리적이 않다고 해서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님을 신으로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몰몬교들에게도 삼위 일체가 말이 안되는 논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비라고 부르면 믿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저희 집에 여호와 증인 교도들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제가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고 했더니 그게 어찌 논리적으로 말이 되냐고 하더군요.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 될 수 있는지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을 들이밀면서 예수님께서도 종말의 시기는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는데 어찌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삼위일체일 수 있냐고 열을 올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논리로 설명이 안된다고 거짓이나 모순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단순하게 전자가(Electron) 파동이며 입자인 것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이라고 그러한 현상과 같다고 보시면 된다고 했더니 본인은 생물학 전공이라서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공부해서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양자역학을 전혀 모르는 분이라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의 구원이 100% 자유의지 그리고 100%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면 이게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가요? 왜 이 부분을 굳이 논리로 설명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2가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 태초 전부터 선택했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겠다.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구원은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2가지를 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 다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수학 교수인 John Lennox에게 어떤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교수님은 학자로서 논리에 맞지 않는 예수님이 완전 인간이며 완전 신이라는 것으로 믿을 수 있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어떻게 인간이 였으며 동시에 신인지 설명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전자가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인 것을 설명 못하지만 그게 사실인 것으로 받아 드리는 것처럼 예수님이 신이며 인간 이였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youtube 로 이걸 보시는 것은 양자역학 때문입니다. 전자의 양자적인 상태를 이용해서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만들고 전파를 활용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인류는 전자의 양자성을 이용해서 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law of nature) 만드신 lawgiver 이신 하나님께서 거시 세상의 뉴턴 시대에 규범 했던 자연 현상들 뿐 아니라 미시 세상의 양자 현상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 못한다고 모순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신비로 받아 드리면 됩니다. 우리의 logic의 한계라고 겸허히 받아드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도 같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도 논리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저는 저의 구원이 저의 100% 선택이면서 동시에 100%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며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 댓글을 쓰는 것도 저의 100% 자유의지적 선택이며 100%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양자역학을 처음 배우고는 그것을 통해 양립론을 주장하곤 했습니다만, 실제로 깊이있게 들어가보면 조금 무리수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몇몇 반론을 마주할 수 있고, 그 반론은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마 저나 양시무스님 모두 그 사실을 알아서 양자역학 비유로 손쉽게 양립론을 이끌어내지 않았을 것이구요. 그럼에도 전 주류인 코펜하겐 해석이 미시세계에서의 불확정성을 받쳐주며 결정론자들에게 골칫거리를 던져주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로서 결정타가 아닐 뿐이죠. 글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명백한 사실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것 처럼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양립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들도 꽤 있습니다.
참고로, 과학자들은 뇌의 전기적 상호작용은 뉴튼 역학아래서 일어나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뭐, 로저 펜로즈처럼 뇌에서의 양자역학을 주장하는 이상한 의견들도 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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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_of_Semiconductor 문제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양립시키려는 대배분의 시도들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약한 결정론이 대표적이죠. 주로 결정론과 양립시킨 자유의지는 절대다수가 받아들이는 자유의지랑은 다른, 재정의된 자유의지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특정한 행동이나 선택을 하는 식으로밖에는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을 자유롭다 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절대다수가 그걸 자유롭다 여기지 않습니다.
@@DamascusLiveTV 뭐 어쨌든 세상에 자유의지가 존재하려면 비결정론적이긴 해야 하니까요. 유물론을 전제하면 세상이 비결정론적이어도 부자유한 세상이겠지만요. 대가리에 난수발생기 박혀있다고 그게 자유의지냐?가 대표적인 반론이고요.
하나님의 시각 기준에서 보면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나의 사람의 기준에서는 한번 구원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바로왕 논의는 솔직히 칼빈주의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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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 로마서 9장은 솔직히 반박할여지가 없는데.. 그게 국가에 대한것이든 아니든 토기장이가 그렇게 했다(전지전능하다, 혹은 결정해놓았다)는 말이 변함이 없는데..
@@qweasdzxc123-y3f그런데 그게 칼빈주의가 원하는 이중예정론 관점으로 가지 않고, 택한 것처럼 보이는 국가나 (이스라엘), 버린 것처럼 보이는 국가나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결론이 나니까 문제인 것이지요.
9-11장을 다시 한번 칼빈주의적 관점을 내려놓고 텍스트 그대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9-11장은 전체적으로 한 이야기를 하는 세트거든요. 더 크게 보면 로마서 전체가 위에서 말한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하는 빌드업이구요.
로마서를 어떻게 읽어도 택자만이 구원이란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자발적으로 믿는 이들에겐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신다는 이신칭의의 결론이 나오는 것이죠. 제가 볼 때는 이중예정과 이신칭의는 같이 갈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양시무스님도 로마서의 결론은 인정하면서 토론하셨죠. 양시무스님의 토론 중 주장도, 로마서 9장이 칼빈주의적 결론을 낸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뭘 하든, 심지어 악신으로 보이는 일을 하든 인간은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로마서 9장이 지지하는 것 아니냐?' 라는 것이였구요. 제 입장에선 이에 반대한 것이었구요.
@@DamascusLiveTV 제가 의문인 점은 전지성을 제한한 하나님이 악신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전지성을 제한해서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 신을 선하다고 볼 근거가 결국은 신자들의 신앙에 달려있는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서 양시무스님이 전지성을 인정하면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이나 거기서 거기고 악신까지 간다는 말에 동감이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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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가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라디아서 4-5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 4: 23-24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교회의 자녀들은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의 예"를 따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좆아 ...... 갈 5: 13... 너희가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 설명 하자면 고전 2 : 9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잘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고 이해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믿음"을 우리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가질 수는 없다. 주의 학교에서 전진하는 첫 걸음은 자기의 통찰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전 2: 10) (요 6: 44-45)
혹시 이럴 수는 없는걸까요?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구절의 경우? 실제로 하나님이 후회하신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작가가 관용적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는 것 아닐지요?
영상에서 제가 반론했듯이, 그렇게 따지면 하나님이 우릴 사랑하신다는 말도 관용적인 표현이 아닐 이유가 있을까요?
@@DamascusLiveTV 생각 못해봤는데 그렇네요.
@@DamascusLiveTV 다시 한번 영상을 봤습니다. 그리고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다메섹님의 의견이 무엇인지 이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메섹님이 지지하시는 구원론은 어떤 것이신지요? 혹시 이미 그와 관련된 영상을 만드셨다면 그 링크를 공유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TheKaydubai 영상에서도 드러난 것 같지만, 제가 지지하는 구원론은 성경이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구원론입니다.
요 3:16절처럼,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한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창세 전에 택한 자가 아니라)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면 믿는다는 건 뭐냐?
롬 10:9절,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저는 이 명확한 구절들에서 저는 믿음조차 하나님이 마인드 컨트롤한다는 뉘앙스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인간이 스스로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DamascusLiveTV 마지막으로 그럼, '복음을 믿는 것'조차 우리의 공이 아니라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믿을 수 있게 된다는 view에 대해서는 다메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이 '마인드컨트롤을 하셔서 믿게 된다' vs.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믿게 된다', 이 2가지 표현은 같은 것일까요?
토론끝까지 다 봤는데 다매섹님 말끊기 비아냥 거리기가 너무 심하네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 자체가 없고
토론이 아니라
내가 정답이고 넌 틀렸어 마인드가 깔려있네요
저런태도로 토론하실거면 왜 토론하자고 하시는지
씁슬하네요..
양방에서 제시하는 논거의 옳고그름은 차치하고서라도 혼자 노골적으로 감정이 실려있는게 보여서 시청하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네요. 토론을 하자는건지 어디 뭐 한번 싸우자는건지..
보기 불편할 정도의 토론태도라고 생각됩니다. 제발 상대방 얘기는 다 듣고 말씀하시길~~ 뭐 엄청난 혜안이 있다고 볼 만한 것도 없었던거 같은데 자뻑이 심하신것 같아 그저 쓴 웃음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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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 중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중에, 내가 이만큼 잘 했으니까 은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과연 이게 수사적 표현일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결론 아닐까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외에 우리가 구원 받는 근거가 이디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요.
하나님의 구원에 인간의 도덕감성을 개입시키는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하나님을 우리의 이해의 프레임 안에 가두려고 하는 시도들입니다..
첫째로, 인간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의 실존을 살고있는지 모르고 있기때문이고
둘째로,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분인지 모르기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때문에 구원하는것도 맞지만,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이타적이지만, 동시에 자기중심적입니다. 이 두가지가 혼합된 인격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모든것을 당신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물론 사랑으로써 그 자녀들을 영원히 대하십니다.
부디 하나님을 나의 이해의 테두리 안에 가두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가? 의 질문에 인간적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자꾸 끄집어내는건데,
부디 접근하기를, 내 감정과 정서, 도덕성은 두번째로 미뤄두고 가장 먼저 무엇이 진실인지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의 불편함을 해소하는걸 1 순위로 두지 말아야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거고 하나님의 관점과 방식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불변성이 제한된다면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최종 구원에서도 변동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내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후회하실 수 있는 분이라 나의 최종 구원도, 종말론적 행복한 결말도 다 우리 인간들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멀티버스라는 식으로 회피하지만, 결국 하나님 뜻대로 다 된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구원도 우린 알 수 없으나, 다 예정하셨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요셉의 경우도, 바로의 경우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독특하게 신비적으로 간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가룟유다가 자살한것은 하나님의 예정된 것인가. 회개안한 본인 잘못인가
어느 한 분의 사상은 너무 표피적이고 말초적이어서,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만화나 소설, 연극의 눈으로 바라 보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세상에는 하나님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군요.
하나님의 일이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라거나, 또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이해의 수준에서 되어져야 한다고, 그런 말하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너무 인문학 만능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김밥-b6u 문제는 님이 주장하는 성경귀절 다수는 근거가 빈약하구요.그 이상으로 반대되는 귀절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님이야 말로 후화하심이 없다는 단 한귀절로 후회하신다는 많은 귀절을 무시하고 있으시네요.
구원의 기준을 인간에게서 찾을 때, 하나님의 선택의 여지는 극도로 작아지거나 갇혀버립니다.
구원의 필요를 하나님에게서 찾을 때에야만, 구원의 기준이 있을 만한 자리를 찾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욥에게 일어났던 일을 실제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한국 신학교에 자유주의 신학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구원받은 참된 목회자를 찾고 싶다면 성경의 모든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믿는 목회자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런 목회자가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진화론 젊은 지구 심지어는 지구 평평섷, 태양이 지구를 공전한다고 믿으실듯
@@Steve-qp6ep 네~~ 나중에 백보좌 심판 때 주님 앞에서도 똑같이 얘기 하세요~~ㅎㅎ
그리고 그런식으로 하나님 무시하면 제명에 못살아요~~
@@hansangkim1996 오우 선하신 하나님 믿는다는 사람이 저주까지 내리다니 참 못되셨네요 ㅋㅋㅋㅋㅋㅋ 하나님을 무시한게 아니라 당신의 얘기에 대해서 무시한겁니다. 꼭 당신의 하나님 상만 맞다는 게 오만이죠.
@@Steve-qp6ep 성경을 안믿는데 선하신 하나님 의미 없구요~~ 주님은 모든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을 믿으며 사흘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100%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인간의 선행없이~~ 오직 믿음만으로요.
구원받기 참 쉽죠.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이에요.
당신처럼 안믿는 사람을 사탄의 자식이라고 하고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사탄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 된 것이고요.
성경을 100%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믿으면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불에서 고통 받고요~~ 믿지 않는 인간들이야 당신처럼 키득키득 거리고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심각한 것이고요~~ 왜 성경을 통해서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알거든요~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한 남자는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개로 취급하고요, 여자는 돼지로 취급하세요. 선하신 하나님께서요~
성경 글지 하나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당신이 조롱한 이 글도 미래의 언젠가 주님께서 다 보여주시고 심판하세요. 선하신 하나님께서요. 아시겠어요??
물론 성경을 안믿으니까 모르시겠지만~~
허나님의 예정과 작정하심에는 그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과 조건, 또 투입되는 인력과 재화와 기타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작동된 모든 것, 또 그릐 개인적 구원의 전체적인 그림을 작정하셨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A씨의 구원을 예정하실 때, 복음으로의 초청에 연관된 모든 것과 그의 반응의 때와 상태와 인격, 인지, 등등의 모든 것도 준비하시는 것이죠.
이 깊은 하나님의 경륜을 미미한 사람의 지혜로 다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토론의 내용과 별개로 지적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평소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번 토론을 보면서 느낀 점은 토론의 내용보다 양시무스님의 웃음들이 기쁨이나 즐거움의 웃음보단 감정적 우위에 있고싶어하는 방어기제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점은 함께 토론을 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느 동일한 선상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느낌을 주지 못하며,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추가적으로 이런 점들은 토론에서 타당한 근거를 토대로 보다 발전된 논의로 나아가거나 올바른 내용으로 수렴되기보다는 보다 감정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우위을 증명하려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보다 외형적으로도 진지하게 토론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보다 더 타당한 근거들과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칼빈주의 신학에 정통한 장로회 교회에서 태어날 때부터 자란 제가 장로회 목사님을 신학적으로 비판하려거나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가 가진 약점들이 있으나 논리적으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여러 이점들도 충분히 더 잘 전달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에서 끄적여봅니다
포커페이스 한다고 했는데 실패한 모양이군요 ㅋㅋㅋㅋㅋ
저는 그것보다는 긴장함에서 나온 웃음이라고 보이던데요
다메섹님의 토론태도도 개판~~ 도찐개찐
다른것보다 머리를 자꾸 끄덕이셔서 눈이 어지러웠어요 ㅠ 그냥 가만히 듣고 계시는게 더 좋아 보였을텐데.....
비유의 적절성과 그를뒷바침 하는 논리적인면에서는 다메섹님의 승이네요. 학설적으로 계속 파고든다면 끝이없긴 하겠네요.
예수님을 나의 주인님으로 안 믿으면서, 내 마음의 위로와 평안, 종교심의 충족 등 종교 생활 하느라고 교회 열심히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 많이 봤어요. 그런 분들 결국 교회 떠나고, 무신론자 되고, 예수님 욕하고 등등.
교회 다닐 때 청년회장, 집사 장로 하면서 기도원에 금식 기도 다니고, 산기도에 철야예배... 교회에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자기 종교 생홯에 열심이었던 것이지, 진정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럿 봤어요.
그것은 구원 받았다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죠.
처음부터 구원이 아니었거나,
우리는 모르나 하나님의 택하심에서 벗어난 것이 전혀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결코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어요.*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dsp6089 님이 혹 지금은 예수님 잘 믿는다해도 *"결국 지옥에"* 갈 수 있는 거죠?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위 성경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입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회개하면 모두 용서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의 뜻을 짐짓 가리는 행위가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dsp6089 답을 회피하고 싶으세요? 다마스커스나 님 주장은 < 님이 지금은 회개도 햤고, 예수님 잘 믿고 있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거죠? >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당신은 명백히 언급된 성경의 말씀을 부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을 말합니까? 당신은 구원에 관련한 성경의 말씀을 임의대로 지울 수 있는 것입니까?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 말씀들은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구도 어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칼빈주의의 독에 든 사람들은 이 구절들은 철저히 뭉개면서 감히 구원을 입에 담습니다.
딩신은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님의 영적 상태를 보면 매우 불안정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위 성경의 구절들부터 삭제하고 말하세요.
1:36:55 이거 정말 궁금하네요 또한 다메섹님도 완전 자기 주장을 펼치신건지 어느정도 연기하신건지 궁금했습니다
양시무스는 말을 이해를 못하네, 인간이 작품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것은 사랑을 빼앗겼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질투심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 아픔이 투영되어서 발생되는 심리다. 그런데 예정론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보신적이 없으신 상황에서,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보시면서 질투심을 느끼시는가?? 자신이 로봇을 만들어서, 로봇이 만든이를 사랑한다고 설정하게 만드셨고, 그러다가 그 로봇이 만든 사람을 배신하여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설정을 하셨다고, 질투심을 느끼시는가?? 인간은 그 질투심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서 그 주인공이 되어서 그 아픈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칼빈주의가 말하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질투심을 느껴보신 감정 자체가 없으시기 때문에, 질투심을 느끼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를 다른 것에게 빼앗겨보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다, 그분의 설정이고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질투심을 느껴본적이 없는 사람은 그 감정을 알지 못하고, 현실에서 질투심을 많이 느낀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스토리만 봐도 가슴이 아파온다. 마찬가지로 화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배신 행위를 경험하지 못한사람이 어찌 자신이 쓴 작품을 보고 화를 낼 수 있나?? 양시무스가 주장하는 예정론은 살아있는 인간을 만들어서, 신을 사랑하고 믿게 하였다가 배신하게 만들어서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기괴하고 사악한 성품아닌가?? 그건 인간을 생명체로 보는게 아니라, 연극의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인간이 고통받고, 배신받고,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다면, 차라리, 로봇을 만드는게 낫지 않은가?? 아픔이 없는 로봇을 만들어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하는게 인격적인게 아닌가?? 우리가 관상용 작품속의 존재라면, 우리가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는게 최소한 인격적인 것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훼손시킨다. 왜냐하면, 드라마 속에 인물은 모두 연기하여 가짜로 죽는 것이고, 우리는 진짜로 아픔을 당하고 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짜 선하신 절대선이시라는 것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선의 기준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존댓말좀;;해주세용
@@ultex1142 죄송합니다. 님은 좋은 자질을 갖고 계시는데,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계시네요. 무속신앙은 인간을 운명론자가 되게 만들었는데, 다시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운명론자가 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캐노시스적 가치관을 나타내 주십니다. 즉, 하실 수 있으나, 안하시는 분이란 뜻은 자신은 사랑과 희생의 하나님이시란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선포하시고 계시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은 전지전능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사용치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치, 내가 내 자녀가 무엇을 하는지 CCTV로 감시하고 도청해서 들을 수 있지만, 하지 않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낼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인격을 존중하고, 나의 능력을 사용치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시고 사랑하시길 원하시고 이끄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사상에 매몰되어서, 전지성을 충족시키려고만 하는 이론적 관점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에,본질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을 악신으로 만들며, 심지어, 우리의 인생을 운명짓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님의 자질은 훌륭한데, 잘못된 사상에 매몰에되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자녀가 생기면, 님에게 전지전능함을 부여해주면, 님은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을 조종해서, 당신의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게 그 능력을 사용하실 건가요?? 나는 그 능력을 갖고 있어도 결코 사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나의 고양이에게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인격속에 들어가 조종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1. 저는 다메섹님과 함께 '성육신'을 할 때 전지전능이 제한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자와의 단절로 인해 슬퍼하는 일이나, 성자 하나님께서 아버지와의 단절로 상실감을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상실을 빼앗긴 적이 없다는 가정은 틀린 게 됩니다.
2. 띄어쓰기 좀...
@@acemen777쉽게 쓰는걸 연습하세요
@@sheep_maximus 저는 님과 논쟁할 생각이 없습니다. 님은 이미 훌륭한 자질을 갖고 계시니, 님의 구원관이 바뀌시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희망과 권면과 사랑을 전하게 되실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삶을 극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님의 구원관이 운명론자이시라면, 주변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해도, 그냥 구경만 할 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에겐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겨내라고, 말하면 나중에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심리적 안정을 갖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명론자라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기만이며, 거짓이며, 그냥 달콤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니들은 지옥가지만, 어차피 니들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지만, 그냥 달콤한 말에 위로를 받고 일시적으로 힘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잔혹한 진리입니다. 이러한 저의 도덕성과 선함보다 더 초월하신 분이 절대선을 지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선은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그분이 선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이들을 귱휼하게 바라보며 권면하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의 최종 가장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긍정보다 위로보다 더 위에 있는 상위개념이 복음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론을 전하는 자가 아니고, 논쟁하는 자가 아니며, 지식을 자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저는 님에게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님의 훌륭한 자질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하시길 바라는 뜻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심판주로서 영광스러운것이므로 잔혹하신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지못하는 유기된 죄인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이 안타까움이드는 우리의 감정이 이해되지않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적한 죄의 더러움과 반역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심판하심이 어떻게 잔인해질수 있을지도 숙고해봅시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오직 은혜로 구원받음과 홀로 모든영광 받으실 한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신자들은 서로 형제입니다 샬롬
그런데 먼저 죽일 놈으로 정해놓고 그렇게 강제로 살게 만들고 영원한 벌을 주겠다는 건 따지고 보면 심판이 잘못된 거 아닌가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죄짓게 딱 프로그래밍 해놓고 왜 죄짓냐고 하면 안되잖아요. 최소한 자신이 선택했어야 죄를 물을 수 있죠.
예정론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고자,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훼손시켰다는 점이다. 이렇게 인간을 작품 속의 관상용으로 만들었다면, 드라마속의 인물들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연기하고 가짜로 죽는 것이지만, 인간은 진짜로 인생을 살면서, 아픔과 고통과 배신과 슬픔과 절망을 느끼고 심지어 괴로워서 자살도 하는 진짜 그 작품을 리얼하게 고통 당하며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정론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것이다. 선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훼손시켜 전지성을 충족시키고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들어서 관상용을 만들어서 고통스럽게 죽게 만들었다는 예정론은 칼빈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 드라마속 인물처럼 아프지 않게 해줘야 되는데, 그게 아닌 우린 작품을 리얼하게 만들기 위해서 진짜 고통을 당하며 택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는 예정론이 더 그리스도를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시점과 인간의 시점은 너무나도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 위대하십니다 그 분의 능력이 그분의 위대함이 높아지는것이 얼마나 우리에겐 소망인지요...
욥과 같은 일들을 당해 보셨습니까? 인간에게 고통이란게 너무나도 힘든것 이지만 그 과정을 겪어야지만 알 수 있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 신비는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나타내고 우리로 하여금 아무말 없게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소망하는것이 오늘의 삶에 있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다는걸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것이 옳다고 느껴질 때가 옵니다...
그 고통을 누구한테는 주고 누구한테는 안줘요. 그리고 고통받았는데 유기되고, 고통받지 않는데 선택받았을 수도 있죠. 어디가 신비고 어디가 아름답죠?
@@noah88life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교리에 집중하시지 마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칼빈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였고, 신학적으로 오랜 연구를 한 사람도 아닌 젊었을때, 30살도 안되어서 어린나이에 법을 공부하다가 성경을 읽었고, 26살에 기독교 강요를 썼을 뿐입니다. 그당시 성경이 모두에게 허락된 것도 아닌 그런 시대에서 어떤 무엇을 바라십니까?? 칼빈의 잘못된 교리에 매몰되어서, 성경을 왜곡시키다보니, 하나님을 악신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당신의 주변 사람을 보세요. 그들은 지금도 고통받고 살며 슬퍼하고 절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서 말해보세요. 당신들은 택함받지 못해서, 지옥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시는 동안 안타깝지만 고통을 이겨내세요. 우리는 이 고통이 우리를 완전하게 하여 천국을 갑니다. 라고 말해보세요. 그것은 너무 잔혹한거 아닌가요?? 만약 그게 진리라면, 그냥, 조용히 신앙생활하시면서 끼리 끼리 구워받은 자들만 모여서 숨기시면서 생활하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유기된 자들은 너무 인생이 고달프고 괴롭고 슬픈데, 뭐하시는 겁니까?? 그냥 선택받은 자들끼리 기뻐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하시면서, 사세요. 유기된 자들에게 잔혹한 진리를 전하시지 말고요.
@@acemen777어떤 사람이 유기됐는지 무엇으로 판단하시겠습니까? 선택은 무엇으로 판단하시겠습니까?
열매로 판단한다면 우편강도는 유기됐습니까? 예수를 세번 부인한 사람은 유기됐습니까? 살인 강도 사기 근친 창녀 강간을 벌인 예수의 족보에 있는 사람들이 유기됐습니까?
Aceman님은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하세요?
@@noah88life 왜 그걸 꼭 판단해야 합니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유기자라면, 버릴 것입니까?? 택함과 유기는 하나님을 믿는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흑과 백을 나누는 행위고, 종교적 우월성을 가지고 비기독교인들 차별하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혹여 택함 받은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선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긍휼이 여기며, 그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기쁜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사람일뿐이지,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닙니다. 님의 사상은 너무 종교적 우월성을 가지고 인간을 나누며, 심지어, 그 우월성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거져 받았다면, 남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월성을 가지고 은혜라고 하면서 자위하면서, 그것이 진리라고 떠든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가 설렁 택함받고 우리만 천국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보다 나은자들이 결코 아니며, 그들을 벌레취급해서도 안되는 자인데, 어찌, 그것을 꼭 정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요, 우리가 판단해서도 안될 일이며,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온전케 판단하실 권한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누가 되었든, 유기인지 택한 사람인지 상관없이, 그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택함과 유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진리라고 해도, 그것은 마치, 종교적 우월성을 갖게 되고 교만해지기 때문에, 그 마음을 마음에 품지 않습니다.
나의 자발과 주님의 뜻과 계획이 맞는것이 신비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사람의 변화는 억지로 강압으로 되지가 않아요 자식을 키울때도 결국은 선한길로 갈것을 믿지만 과정중에 강압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광야를 선택하고 고난을통해 선한길로 가는것을 기다려주는것이 강압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되요 하나님은 우리를 로버트로도 고아로도 만드시지 않았어요 우리는 선택을해요 하지만 죽을때 나의 인생을 바라볼때 우리 주님으 나의 인생을 이끄셨구나 라고 느끼게될것같아요 우리는 모든일의 과징중에는 주님의 예정론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해보여요 모든것이 끝났을때 비로소 이해가 될것같아요
나를 쳐서 십자가의 길 순종을 강조하는 이유도 우리의 힘으로 선택하는것은 광야의 길이 많아서 나의 욕심을 빼도록 순종의 길을 말씀하시는것 같아요
지금 제 나이가 50인데 내 이익을 엄청 계산하고 한 선택과 그렇지 않았던 선택들의 결과를 볼때 나의 이익 보다는 희생을하는 선택들의 결과과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이였을때 많았고 이끄심으로 선택을 해도 망하지는않고 오히려 큰 축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예정론의 이해는 나이가 차고 경험에서 나오는것같아요 논리와 말로는 한계가 있어요 본인의 믿음의 깊이와 연륜과도 어는정도 영향이 있는것같아요
바울도 에베소서 쓸때 주님을 만나고 시간이 흘러서야 예수님의 예정을 쓰신것같아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댓글이 하필 666이라..답글달아봅니다. 😅
잘 들었습니다.
저는 디베이트 코치입니다.
기독교인이나 신학지식은 깊지 못합니다. 이번 토론 잘 봤습니다.
난상토론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토론이 인간에게는 어려운 부분이네요. 그럼에도 이정도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역량이 대단해보입니다.
그럼에도 댓글에서 내용이 태도에 의해 가려지는걸 보면
디베이트 훈련이 필요하다는걸 다시 느낍니다.
아카데미 디베이트는 시간, 순서 등의 엄격한 형식 안에서 토론에 필요한 발언형식을 훈련하고 태도 점수를 포함하여 승패를가르는 찬반토론 형태의 교육토론인데요, 양측 입장을 모두 준비하여 경기직전 입장을 정해 토론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즉 자기 가치관으로 토론하는게 아니고 입장에서 토론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죠. 이런 훈련이 제대로 되면 난상토론을 하더라도 자신의 스피치 컨트롤, 상대에대한 예의, 발언 후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등의 방식이 몸에 익어 형식없이도 어느정도 형식없는 토론이 가능해집니다.
이번에 교회에서 강의를 신청해주셔서 청소년들과 훈련중인데요.
교회 안에서도 건전한 토론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친한 사이다보니 컨텐츠 재미를 위해 더 도발하고 말을 끊으며 오바한 감은 있습니다 ㅎㅎ. 그럼에도 코치님이 댓글을 달아주시니 살면서 한번 쯤은 제대로 토론교육을 받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보통 교육을 하시면 교육생이 어느정도 기간을 가르쳐야 이후 혼자서 자기 것으로 체화할 준비가 되나요?
@@DamascusLiveTV 저는 학생들의 경우 이론부터 실습까지 최소4시간~8시간을 제시하고 있고 교사연수의 경우 8시간씩 2일 총16시간정도면 실습까지 우리나라 협회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형식 습득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형식이 훈련하는 목표들을 이해한 이후에는 내가 적용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학교에서 꾸준히 연습할기회가 주어지는 편이구요. 교사분들은 학생을 코칭하며 훈련하시겠죠. 저도 아직 힘든부분이 있지만, 디베이트 가치가 넘 좋아서 계속 나누려고 노력중입니다^^
@@DamascusLiveTV 예를들면 말 끊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닌데, 댓글에선 불편해 하죠. 디베이트 형식중 말끊고 제시하는 포맷도 있답니다. 그게 룰인 거죠. 룰인이유는? 일상토론에 분명히 필요한 스킬이기에 그것을 훈련하는 목적인것이죠.
다만 합의된 상황에서 진행할 뿐입니다.ㅎ
8에서 16시간이면 생각보다 괜찮네요. 혹시 가르치시던 포맷 그대로 온라인으로 강의를 만드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유료로라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컨텐츠든 일상에서든 크고 작은 디베이트를 항상 하며 살 것 같아서요 ㅎㅎ
더불어, 홀리컴뱃 등 다른 사람들의 토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디베이트의 기본을 배우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구원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이죠. 인간은 내가 태어나고 싶은 나라,부모,성별,목슴,성격까지도 스스로 결정할수 없습니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이 주어진것이 많습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거나 아프리카에 태어 났으면 복음을 만날 확률이 희박하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는 전적타락의 인간이 죄를 해결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의 의지로 구원에 도달할수 있다면 예수님이 극단적으로 죽기까지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명제 입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네 그렇습니다. 구원에 관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상징적인 비유가 성경에 표현되는데 아들이 공부를 못하거나 나쁜짓을 하더라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훼손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훼손 되는 것은 처음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것이죠. 왜 구원받은 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강조 할까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이유에서 입니다.
인간은 정체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서 삶의 양식이 바껴버리기 때문이죠. 내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믿음,신뢰,확신,의지,소통,사랑으로 더 가속화 시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의심을 품으면 앞으로 나아갈수 없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노예의 습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 방만한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대해 성경에서도 가라지라고 표현하고 그냥 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수 밖에 없고 그들을 지도하기 위해 명제를 뒤틀어 버릴수 없습니다.
정체성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순종합니다. 하지만 분명해야 할것은 그 순종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해서 순종하는 것이지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의무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물론 순종에 실패할수 있습니다.->죄가 있는곳에 은혜가 더한다.죄를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더 깊히있고 진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방만한 삶은 원래 가라지 입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스스로 점검을 해보셔야 합니다. 내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기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요?
예수 그리스로를 영접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할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는 사망케 합니다. 죽음에서 비로소 예수님이 보이게 됩니다. 그 이전에 율법이 정죄하고 죄로 죽지 않을때는 예수그리스도는 그저 좋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상태로는 예수님과 접점이 없고 사랑할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의 가능성에 기댈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가능성이 0에 수렴할때,혹은 죽음에서 신음할때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영광만을 나타냅니다.
양자역학은 이해할수 없는 학문이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죽을때까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해안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것은 아니죠. 인간의 자유의지와 예정론을 완벽하게 이해할려고 하다보면 오류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두십시요.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이것도 한번 읽어 보세요 ^^
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가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라디아서 4-5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 4: 23-24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교회의 자녀들은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의 예"를 따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좆아 ...... 갈 5: 13... 너희가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 설명 하자면 고전 2 : 9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잘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고 이해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믿음"을 우리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가질 수는 없다.
주의 학교에서 전진하는 첫 걸음은 자기의 통찰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전 2: 10) (요 6: 44-45)
😮예정론 논쟁은 무신론자들vs개신교인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믿음이 있다는 자들중
인간이 거부할수 있다vs 없다의 논의만을 가지고 해야하는데
다메섹님은 많은 부분에서 무신론자들이 싫어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정론때문에 상처받고 믿음을 가지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토기장이의 비유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다메섹은 하나님의 주권 보다는 믿음을 거부하는 자들의 맘에 들게하는 것이 먼저인가 봐요...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토기장이 비유는 예정론에 적용할 비유가 아닙니다!
어느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 때 처음부터 절반 이상을 깨부실 계획으로 만든단 말입니까! 그런 토기장이가 있다면 사이코패스인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다만 사용처에 따라서 그가 만드는 그릇을 어느 것은 화려하게 만들고 어떤 것은 평범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니 토기장이의 비유가 어떻게 모든 인간들을 구원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로 미리 예정하는 것에 관한 적용할 비유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기본 방침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은하수-t7w 고린도전서 2장 5절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믿음'이란 것은 같은 장 2절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적인 문맥으로 봐야지 일부 구절만 따와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믿음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도 있고 그 믿음에 대해서 인간이 해야 할 분량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것'으로 착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무익한 종을 주인이 추방하는 비유를 통해서 행함없는 무익한 믿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면 무익한 종의 잘못이 아니라 믿음을 주지 않은 하나님의 잘못인 것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조리 부정한 칼빈주의는 성경을 매우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오늘날엔 구원파식 이단의 믿음으로 발전했습니다.
비록 저 자신도 행함이 잘 따르지 못하지만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은 믿음만으로만이 아니고 실천적 행함이 따라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2:24)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칼빈주의자들은 비이성적인 성경 해석으로 왜곡하지 마십시오. 성경 어디에 믿을 사람들과 믿지 않을 사람들이 모두 예정되었다고 나옵니까? 그렇게 되면 인간이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은 인간의 전적 타락 때문이 아니라 신의 '전적 예정'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죄와 악함 때문에 지옥에 가는게 아니라 신의 악한 계획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되버립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성경을 왜곡하고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인간적 사유로 창조한 것이며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의 사이비 종교 사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은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고 그 믿음과 구원으로 초대(누가복음14장)에 응함의 여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성경은 수없이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행위적 실천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인간의 선택을 강조한 것만 보아도 인간에게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시험을 하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영역도 있고 인간이 해야할 분량도 같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는 말씀으로 비유를 하셨겠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15:7)"이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해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실천적 행함과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하는 책임적 분량을 분명히 언급하십니다.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또한 성경에는 분명히 구원으로부터의 탈락도 경고하고 있음에도 견인교리라는 비성경적 교리로 잘못된 구원론을 형성한 칼빈주의 교리는 오늘날 구원파 이단 교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은하수-t7w 1) 2) 3) 답변글 다 있는데요.
다메섹님은성경을
인간의기준으로판단을하는구나
저분은성령의도움없이는절대로이해못한다고봅니다
두렵고떨림은
구원을받고구원을이루어가는과정은
성령의도움으로가는겁니다
그런즉순종을해야
하는겁니다
그런데내가불순종을한다는것은정말
두렵고떨리는겁니다
진정구원받은자만이이기분을알겁니다
신천지도하나님을
굳건히믿습니다
그런즉누구나
믿는다고해서
다진짜가아닙니다
자기자아에빠져서
자기가진짜라고
착각하는거지
잘못된믿음을가진분은대화가통할수없읍니다
하나님 입장에선 칼빈주의, 내 입장에선 알마니안주의 일수도 있잖아요. 그 두가지가 그렇게 크게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가 결정 됬다는건 하나님의 입장이지, 시간의 유한한 흐름에 묶여있는 내 입장에선 내 선택이 미래를 결정하는 큰 의미가 있을수도 있는것 아닌가요?
조직신학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오랜 시간 연구한 제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논리적인 설명 들어갑니다.
명제: 성경의 말씀은 진리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며 크고 깊은 뜻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던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성경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 처럼 하시다가도 다메섹님의 주장처럼 분명 현재 같은 시간 미래를 모르시는듯한 구절들이 많다.
어느 구절을 보면 칼빈이 맞고 다른 구절을 보면 웨슬리가 맞다. 또다른 구절늘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
이 모순 처럼 보이는 성경이 모두 참이라면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다음은??
작가와 작품 속 인물의 교감은 가능할수도 있지요. 작품 속 인물이 작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고 그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과 의도적으로 소통한다면 말이죠. 마블 캐릭터 중에도 세계관 밖 작가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존재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쏟아내는 캐릭터가 있죠!
문제는 그 캐릭터가 쏟아내는 감정이나 생각도 결국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라는 것이겠죠.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의 대상으로 유기의 대상으로 특정 선택하셨다는 것이 악신으로 향하는 개념이라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왜 유다 지파, 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선택하셨는지 대답할 수 없지 않나요?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른 고대 근동 지방은 이방민족으로 유기하셨는지, 우리 중 아무도 대답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은 구원의 대상으로 선택된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는 부분을 읽어보시면, "너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요. 그 계획의 성취가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이방인에게 퍼진 복음인 것이구요.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도 정확히 그거구요.
그리고 신약까지 가기도 전에 이방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계획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많습니다. 우선 욥은 이방인이었고요. 요나서를 읽어보면 니느웨족속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디오피아 국가가 솔로몬과 교류를 했기 때문에 엠마오의 두 제자가 만난 이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는 신학적 추론도 존재하고요.
구약을 잘 읽어보시면, 하나님은 한번도 아무 이유없이 이방민족을 유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극악한 죄 때문에 처벌하시는 거죠. 하다못해 가나안조차 그들의 죄가 끝까지 차올랐다고 묘사하지 않습니까? 그런 가나안 여인인 라합도 구원을 얻었고, 이방여인이던 룻은 아예 책 한권의 제목이자 주인공이 되었구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는자는 구원하십니다. 심지어 구약에서도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택함받았던 민족이긴 하나, 그것은 그들만 구원하겠단 게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전세계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게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주구장창 말하는 바입니다.
왈가왈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죠. 그러나 이 부분은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유기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나와있는데 어떻게 왈가왈부 안하나요?
@@DamascusLiveTV 답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신명기 4장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핵심적으로 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면, 다른 이방 민족은 [선택]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만 [선택]하셨음을 명백히 보게 됩니다.
신 4:33 "어떤 국민이 신 앞에서 생존했냐?"
신 4:34 "어떤 신이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신 4: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셔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셨고]"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 세상 다른 어떤 민족을 보더라도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이스라엘의 독특한 선택의 관계를 말씀하신다고 보여집니다.
@@DamascusLiveTV 다메섹님의 말씀에서 저의 논지와 같은 점이 존재하네요.
하나님은 이유없이 다른 민족을 유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 때문에 선택하지 않으셨음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민족, 모든 개인이 죄 앞에 놓여 있는데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죄 앞에 멸망해야 할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찾으려면', 하나님께서 특정한 이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역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그리고 토론 영상도 유익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peter-in-grace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시점에 유기라는 개념이 바로 따라올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맞지만 최소한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하는 시점엔 나머지 모든 인간은 유기된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방인은 죄때문에 택하지 않았다는건 논리적으로 너무나 앞뒤가 안 맞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수많은 죄는 왜 탈락으로 이어지지 않은건가요..
그러니까 택함이 발생한 순간 유기는 필연적으로 따라올수 밖에 없는것이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남들보다 작기때문이라는겁니다. 그들에게 택함받을 이유가 있던게 아니라 이유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목적이니까요.
위에서 댓글을 달다가 도움이 되실까하고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로마서 9장 토기장이 이야기가 "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라디아서 4-5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갈 4: 23-24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갈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여기서, 교회의 자녀들은 "약속"을 따라서 태어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의 예"를 따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영광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좆아 ...... 갈 5: 13... 너희가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 설명 하자면 고전 2 : 9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현재 눈으로 보는 사물에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잘 믿지 못하면서 하물며 눈으로 볼 수 없고 이해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믿음"을 우리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가질 수는 없다.
주의 학교에서 전진하는 첫 걸음은 자기의 통찰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고전 2: 10) (요 6: 44-45)
어항을 만들어 물고기를 넣으면 물고기는 어항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러나 지금 좌로갈까 우로갈까 하는건 물고기 마음이지. 예정과 자유선택이란게 이런거 아닐까? 굼벵이 지렁이 같은 내가 한번 생각해 본거...
본론을 바로 들어가요.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위 구절의 내용에 동의하십니까?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말하는 '행함'은 '율법적 행위(εργων νομου)'로써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대 사람들의 율법적 신앙관을 견제하기 위한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εργων νομου)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εργων(에르고온=행위의)
비록 실천이 제대로 따르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음의 말씀들에 아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의 믿음... 그러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때로는 의심이 들 때가 있을 수 있지 않나요? 믿음에서 내려 앉은 건가... 내가 악한 건지 인간을 너무 신뢰하는 것인지...
양시무스님 감사합니다
일단 구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알수 있지요
저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믿습니다
왜냐면 제가 하나님과 가장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던 시기에 찾아오셨어요..
그때 터져나온 고백은 하나님은 선하시다 였습니다..
진짜 하나님은 좋으신 분 ..!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제가 믿는 것은 칼빈주의 쪽이 가깝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크신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요…
뭐가 맞는지는 예수님을 만나는 날 물어봐야겠죠🥲
그저 나같은 자를 구원하심에 감사드릴뿐..
정말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에게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은혜만으로 구원에 이르는것이 아니라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이 믿음은 지켜야 하고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오직 주의 은혜로…
그 은혜를 아는자는 결국 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가를 아는 사람들 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연약한 우리 모습을 보면서 나같은 자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가망이 없는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음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천로역정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와 믿음을 같은 뜻으로 아시는것 같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르며 오직 은혜로 구원의 길이 열리고 구원에 이르지만 그 방법은 믿음 입니다
믿음은 원어를 보시면 알겠지만 신실함, 충성됨, 신뢰함, 믿음의 뜻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걸 알고
그의 약속이 신실하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ㅎㅎㅎㅎ
@@천로역정 동의 합니다. 그러나 알고 신뢰한다면서 다르게 행동하면 믿음이 아니죠. 그러므로 믿음은 아는것과 행동입니다. 이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죠
다메섹님 수염이 왜이리 멋지시거죠!!
다메섹님 신앙을 잃어버지는 사람들 공통점 혹시 죄와 피흘려 싸우기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반대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죄와 피흘리기까지 잘 싸우고 있어서 그런건가요?
@@DamascusLiveTV 제 주변을 보면 신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죄와 싸우고 고민하고 노력해요 성화의 과정에 있다면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회개가 나오지 않는다면 내 신앙 정검을 해봐야 할꺼예요 신앙은 인간의 지혜로는 모순과 신비가 있기에 논쟁으로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는거 같아요 살아가면서 내가 작은거 결단했을때 하나님을 목격하게되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깨닿는게 깊어지니까요 물론 성경말씀에 근거해서요 신앙은 믿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이구나를 뼈져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저는 예정론이 맞다라고 생각하는데 행위를 강조하고 구제를 열심히 하는 감리교를 다니고 있어요 물론 교리는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행위는 중심이 서야 기쁘게 열매로 나오는거라서 감리교의 풍토가 거부감없이 저의 중심을 정검하게 되네요 구원에 있어 신학이 뮛이 그리 중요하겠어요 원죄를 부정하지 않는 이단이면 곤란하지만 사랑하나 하기도 힘들고 사실 입에 파숫꾼 세우는것만도 벅차요 작은것 하나라도 실천해보며 말씀읽고 기도하며 지내기도 너무나 바쁜 요즘입니다 다메섹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DamascusLiveTV 아무생긱없이 교회다니는 사람들 빼고는 죄와 싸우는 사람은 신앙을 잃지않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아가고있어요 죄와 내가 싸우는건지 성령님이 도와주셔야하는건지 내가 예정을 받았어야하는건지 고민만 너무 오래하기보단 순종하고 결단하고 행함 필요한것같아요 강력한 믿음이 있어야 행함이 나와요 예배의 자리지키며 기도와 말씀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죄와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각박한 세상속에서 천국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재산 학력 직업과 상관없이요 이것을 정신승리라고 느끼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고요 저는 예정론이 맞는것 같다 느껴져요 모순있지만 많은것이 나중엔 이해가되고 또 제가 주님의 지혜를 어찌 100프로 알겠으며 신비로 풀어질때도있어요 저는 신비주의나 신사도쪽 계열은 아니예요
메리디스 클라인과 전정구 교수는, 하나님의 세계가 어떤 때에는 이 세상의 역사에 침입한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유령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또 절대자로서 세상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칼빈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예정론은 성령의 도우심이라든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든가 라는 말씀은 다 버려야 합니다.
양시무스 용기 있는 분이시네~! 사람들은 자기가 듣기 좋은 이야기에 귀기울이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유기된 자를 찾아간다." by 다마스커스
감사합니다 ㅎㅎ
@@DamascusLiveTV 예수님이 이러십니다.
●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시록21:8)
@@마리아공경은우상숭배 성경은 이렇게 믿지 아니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행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선 믿음만이 아니며 실천적 행함도 중요함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입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유기된 자를 찾아간다는 표현은 비성경적임.
구약에서 인간이 인지하고 대화하는 그 하나님은 예수님 입니다. 다메섹님. 다메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얻으셨나요?
베드로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죽을수있는 상황에서 겁이나서 예수를 부정했지만
나중에 후회하고 울면서 회개를 했다.
중요한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한일은 예수가 자신의 피로 죄사함 제사를
드리기전의 일이기때문에 히브리서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 알수있는 내용들이다.
이론은 이론 일 뿐 논리적 이론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이 판정될 수 있다는 것은 즉 영원한 진리라 말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가 아닌가요?
예정론자들은 죽은 때까지 자신이 예정되었는지 유기되었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그렇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하여 창세전에 이중 예정을 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들이 하나님케 순종하느냐 않느냐(아담처럼) 에 따라 심판하시면 그만이셨다.
그럼에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구원을 베푸심은 그분의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셨다.
그러니 창세전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이다. 이것이 공의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한다. 모든 인간도 그분의 구원계획이 만인 앞에 공평한 구원계획이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지 안 믿든지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이 공평하게 믿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칼빈의 이중예정은 인간이 멸망하고 지옥에 가는 것은 그 귀책사유가 인간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인간이 죄를짓는 것이 하나님이 예정과 선택을 받지못한 결과이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의 창시자로 비난을
받으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닝ㅅ 이시기 때문에 그런 이중 예정을 하실리 없다. 그러므로 갤빈의 이중예정은 명제는 될지언정 진리는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도요한의 말씀이 지금 온 천하에 장쾌하게 울려퍼지고 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구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예정과 자유가 자꾸 양립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팔을 휘적여서 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자유의지가 없어서라고 한다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진화를 통해 형성된 몸의 제한을 받아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을 이용해 비행기를 만들어서, 점프 장치를 만들어서 납니다. 이게 자유가 기능하는 방식입니다. 자유는 그 어떤 제한도 없어야 하는게 아니라 제한으로써만 자유가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렇게 생각하라고 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하라고 하면 미쳐버려요. 규율이 필요한 겁니다. 규율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불가능해요. 그런 의미에서 전 양립론에서 재정의된 자유의지가 오히려 더 적절한 자유의지라고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는 방법은 예정론 이외에도 넘치도록 많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때 너무나도 요셉스러운 예정론 같은 해석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1도 없어 보이네요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지을실 줄 알고 계셨을까? 하나님은 아담을 어떤 존재로 지으셨나? 자유의지를 가진 아담을 만드셨나? 죄를 진 아담이후의 인류에 대해 어떻게 대하고 계신가? 롬2 :12-15 우리의 양심으로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못할까?
논리의 전개나 성경의 이해가 아니라
칼빈의 이해에 따른 퍼즐 끼워 맞추기를 하게 되면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답을 정하고 진리를 찾는다는 것이 개그임
저는 철학이나 이데아나 잘 모릅니다. 단지 편지형식으로보고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여 요약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삭,야곱 곧 우리조상을 사랑하사 때가되어 그의 변개치아니하시는 약속하심에 따라 그리스도를 대망하고있던(엡1:12)
그 미리아신 자기백성 (롬11:2, 암 3:2)중 하나님의 미리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막3:13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시는 자들을 불러 사도로 택하시고) 이 복음이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이후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도록 사도바울과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과 계시로 감춰져있던 비밀이 알리어지며
(엡1:9 3:3~5)
사도들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되어
전도의 사명이 맡겨지게
되었다~~
참조귀절로
■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15:16)
■ 그들은 아버지의 것 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17:6~8)
■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것이라
(행10:39~43)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17:18~19)
■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22:28~30, 마19:28)
■ 거룩한 소명으로 우리를 부르심은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딤후1:9,11)
구약시대 특별한 택하심을
입은 자들과 같이 신약시대에도 사명자로
택함받아 복음사역에 쓰임받는 분이 쓴 서신이기에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신비'라는 말을 꺼낸 순간 스스로 졌다고 인정해야 한다.
토론배틀 듣다보니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대동소이,대동소동
칼빈이든 웨슬리든 둘 다 인간일 뿐이다.
인간이 신을 재단하고 판단 하는건 그저 일부일거다. 만약 인간이 신을 이해하고 판단할수 있다면 그건 신이 아니지 않을까?
우물안에서 보는 하늘이 다는 아닐테니
그치만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특별 계시인 성경 66권인 진리를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작업이 신학이라면 신학 작업을 인간이 한다면 비록 불완전한 인간이 누구라도 그 누군가가 정립한 신학을 배워야죠. ㅋㅋㅋㅋㅋ 그게 겸손이죠. 신학을 우습게 여기면 신앙 생활 못합니다. 이단이 되는 것이죠.
근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저버리고 떠난 것을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 일 수 있다 라고 비평한 것에 있어서
그 떠난 사람들이 상처 받는 거랑
성경 말씀에 기반한 구원의 원리, 교리를 따지는거랑 어떤 상관이 있나요?
상처를 받거나 안 받거나
말씀이 어떤지를 봐야지 상처 받는다고 말씀을 왜곡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것이라고 한들 사실 그 예수님을 저버린자가 정말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인지, 구원받았는데 잠시 흔들리는 자인지 그냥 추측할 뿐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라서 우리는 그저 구원의 원리인 예정론으로 말하고 추측할 뿐이고 다시 돌아오기를 회복하기를 도울 뿐이죠.
그리고 인생을 넓게, 길게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단순히 방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서..
예정을 부정하고픈 사람은,
자유롭게 신불신을 선택하면 됩니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습니다.
예정을 논하기 전에 인간론 즉 현재의 인간의 상태를 논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의지는 성령님께서 섭리.인도하시고,
불신자의 의지는 마귀에게 속박되어 있지요.
욥기를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수없다입니다.성경은 인간입장에서 조금이나마 하나님을 이해할수있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편지. 닥치고 겸손해라 양심에 귀기울여라 양심에 따라 가면 하나님을 발견하게된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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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거나 "후회"하지 않으신다걸 증명해 보세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후회"가 없으시도다 보이시죠?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시는데 이거 물어 보셨죠?
우리가 마음을 바꾸니 하나님도 실제로 행동 하시려던걸 거두시고 반응을 바꾸신다는 거죠?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보이시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 마음의 감동을 주시어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는거?
시 105 : 25 "..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요 12 : 37-40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1 : 24 , 28-31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전 3: 11 "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도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16 :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롬 8: 13- 14) (고전 2:14 , 3:3) (갈 5: 17, 5 :19-23)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애원하는 기도를 드릴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게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또는 그냥 성령의 감동이 없어 "우리 마음이" "악"으로 가버리게 내버려 둔것이 하나님의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나서 "우리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이 반응이나 후회 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은 반응또는 후회보다 "먼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신거기 때문에
뒤에 오는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바꾸어 놓으신 우리의 마음 변화에 "종속" 되는 것이므로
그 반응이나 후회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후회는 하나님이 계획하에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구절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반응이 바뀌시거나 후회 하시는 거 같이 그렇게 보이는거고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입장에서는 후회가 없으신거나 같은겁니다
또, (삼상 15: 29)에서 "후회"가 없으시다고 분명이 말씀하신거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선포한거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후회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증오하시며 싫어하시는가를 알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수준으로 비하시키시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너무도 엄청나게 부패했을 때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려는 것이
그 말씀이 적용되고 있는 목적이다.
(딤후 3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 성경 구절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구절을 맨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해석으로 설명 해 보겠습니다.
창 6:5-7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사.....사람을 ...쓸어 버리되..."
하나님의 계획하에 "우리의 마음"을 악으로 가게 그냥 내버려 둔것이고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이고
그뒤에 나오는 한탄은 하나님 계획하에 종속된것에 불과 합니다
여기서, 타락이후 우리의 마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항상 "악"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이거에 대해서 말해 보시죠?
후회 없으신 분을 후회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시는데 어떻게 해석 하시나요?
설마 이야기 속에서 그 순간 실제로 전지전능하심을 버리시고 들어 오셔서 후회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말하시려는 건가요?
그럼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이것에 위배 되는데요?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고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을 거의 도축하다시피해서 어디서부터 손 볼지 모르겠군요
"미리 정하신 큰 틀을 모든 가능성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에" 성경에 어디서 이런말을 한게 있습니까?
성경 구절들로 설명 하시죠. 다른말 하지 마시고
성경의 통일성은 무시한 채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심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모독 하십니까?
자 님이 성경 구절들로 명확히 설명 해보시죠. 성경의 통일성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인간이 만든 법보다도, 절대 진리라는 성경에 모순이 크고 많이 발생하는 것이 큰 문제다
양시무스님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예정예지가 맞고 예지예정이 틀렸다면
누군가의 구원을 예정하실 때 그 누군가가 전체 삶 속에서 선택할 행위, 믿음, 회개 등의 문제를
전적으로 떼어놓고 즉, 일부러 모른척하고 예정하기로 작정하실 수 있으신가요?
예정의 순간에도 전지하시기 때문에
무조건 어떤 선택(예정)을 할 때에도 모든 것을 아셔야 하니까
그 부분을 떼어놓고 볼 수 없으신 것 아닌가요?
모든 인간들에게서 그 인간 고유의 선택을 전부 배제한다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같아야 하는데(모두 지옥가거나 모두 천국가거나)
반드시 누군가는 선택되고 누군가는 버림 받잖아요?
그럼 절대예정론(또는 이중예정론)이 틀린 것 아닌가요?
같은 맥락에서
절대예정론이 맞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이도 지옥에 가나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예정론은 제비뽑기보다 나을 게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