ความคิดเห็น •

  • @Pneo01
    @Pneo01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5

    제 아버지가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그리스도인 다운 멋진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병으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일찍 돌아가셨을 때, 결국 나를 위로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요ㅋㅋㅋㅋ

  • @user-LGtwins0827
    @user-LGtwins0827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5

    김창옥교수님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따님께 질문햏습니다.,
    죽도록 그리워서 미치는것과 그런 그리움이 힘들바엔 그런 경험이 아예 없는 것.. 어느걸 선택하겠냐니까 전자를 선택했어요...
    우리가 겪는 슬픔들과 그 슬픔을 아예 없이 살아가는 삶...
    즉 아들이 아예 없이 사는 것( 기쁨도 슬픔도 없음) . 아들과 행복하게 살다가 이별의 순간이 온다면 이럴바엔 아들없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까...
    전자의 경우가 맞다면 고아가 가장 행복하다고 할수있을까요?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 현상같아요.
    그리고 슬픔의 크기는 각자에겐 최대치같습니다.
    세월호희생가족에게 치매환자가족의 위로가 위로가 될수없고.
    (치매의 고통은 안겪지않느냐)
    치매환자 가족에게 세월호 희생자가 위로가 될까요?
    (치매여도 살아있지않느냐)
    위로삼을순있겠지만 위로를 강요할순없겠죠.
    고통의 크기가 반응을 결정하기보단 고통에 대한 인식이 반응을 정하지않나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같아요.

  • @jinsong3773
    @jinsong3773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

    예전에 추천해주신 당신의 과녁 웹툰도 정말 재미있게 은혜롭게 봤었습니다 ㅎㅎㅎ 신정론에 대해서는 역시 다메섹님!! 다메섹님 변증은 다양한 예시와 컨텐츠를 사용해주셔서 이해도 쉬운데 깊어서 너무 좋습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격려 감사합니다!

  • @kyj880821
    @kyj880821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크 이번영상도 찢었네요..
    동의 안되는 부분도 몇부분있지만, 동의되고 설득되는 부분이 훨씬 많았습니다.
    영상 여러번 보면서 제껄로 만들고 싶은 사상들과 변증이네요!

  • @user-dy3si3vx5v
    @user-dy3si3vx5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1

    윤회를 믿는 사람들에겐 현세의 처지는 결국 전생의 본인 업보이고 자기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데.. 기독교 세계관에서 하나님은 과녘이 되어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심정적으로도 위로가 되네요..
    다윗의 탄식시,, 원수를 향한 적개심마저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어디까지 우리 인간의 마음을 헤아려주시는지..
    이제는 지금도 비판과 조롱의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예수님의 짐을 저도 실천적인 삶으로 조금이나마 나누어 드리길 원합니다.

  • @user-wz3bq6iz8u
    @user-wz3bq6iz8u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

    저의 깊은 고민 중 하나였는데 인사이트를 얻습니다. 감사해요

  • @JJJJLFOREVER
    @JJJJLFOREVE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좋은 말씀 정말 유익하게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의문들 저도 다 생각해 보면서 기도하고 여쭤보기도 했던 질문들이라 반가웠습니다.

  • @user-cy8kk9qh6b
    @user-cy8kk9qh6b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2

    아 진짜 너무 좋다... 다메섹님 늘 깊이 있는 메시지와 신학적으로 통찰력 있는 메시지 감사합니다
    늘 이렇게 힘써주세요 화이팅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감사합니다!

  • @soorimaeul
    @soorimaeul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신정론에 대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깊은 깨달음을 주는 말씀입니다.

  • @user-lz4kk2nl7d
    @user-lz4kk2nl7d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다메섹 동영상을 만힝 봐 왔는데 이번이 최고인것 같아요. 웬만한 목사님보다 훨씬 생각이 깊네요.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감사합니다

    • @user-oh2eb2qs7i
      @user-oh2eb2qs7i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웬만한 목사들도 생각깊어요

  • @user-is7mt6nz2y
    @user-is7mt6nz2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1

    미래가 아무리 좋아도 현재가 힘들면 소용없는것같아요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알고리즘이랑 과녁 이론은 신박하네요. 엔도슈사쿠 침묵 마지막 부분이 진짜... 진짜 인생 소설입니다 ㅠㅠ

  • @user-vx1ik5hh5u
    @user-vx1ik5hh5u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기독교에 흥미 있는데 정말 좋은 채널입니다. 특히 이 영상은 이해가 더 깊어질 때까지 댓글 달아두고 주기적으로 두고두고 봐야겠습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HY-hr1jj
    @HY-hr1jj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가 몇년동안 고민하던게 신정론이었는데 다메섹님을 통해서 또 다른 생각도 할수있게되었어요. 다메섹티비를 알게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 @user-pu2cw6kk5h
    @user-pu2cw6kk5h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2

    고군분투하시는 젊은 신학자를 응원합니다 제가 젊은 날 골방에서 책과 성경만 들고 고통을 견디며 고민했던 주제들인데 이렇게 함께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약간은 짠하지만,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하나님은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라던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와 같은 질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인애를 이미 훼손하고있기때문에 올바른 답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고통은 사람의 존재양식에 가깝습니다 누구나 고통을 느낍니다 내고통이 최고라고 느끼지만 모든사람의 고통에는 공통성이 있습니다
    신정론은 고통을 줘서 인간을 회심시키는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인애가 소멸되기때문입니다
    신정론은 자유의지로 선택한 타락과 죄의 전체성으로 인해 사람에게 부과되는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논합니다
    사람들은 늘 자유의지의 능력을 간과한채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에 몰두하죠
    쉽게 말하면 내가 무지와 탐욕 중독과 나태에 빠진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기때문이다라고 말하는것은 그 사람이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고통에 대한 제대로된 반응을 하지않고있다는 뜻입니다 (욥처럼 반응하는것이 최선입니다)
    제가 관찰하기로는 모든 사람은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 거기에서 파생된 불안함, 오염된 세상,이 주는 불편함이라는 고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아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좀비는 다를것이 없겠죠.
    또한 몸의 고통과 심리적 고통의 본질은 동일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모든 사람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외부를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뻗습니다
    이 올바른 반응이 있을때 하나님의 은총은 비로소 작동하기시작합니다
    이런 매커니즘에서 하나님께서 고통을 은총의 지렛대로 사용하는것 은 하나님의 공의와 인애를 전혀 훼손하지 않습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이중예정론은 아이디어 자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전지함이라는 하나님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하려 하다가 인지체계안에서 자유의지와 충돌해버린 경우입니다 이른바 '땔감론'은 '무지와 탐욕'이라고 읽으면 될것 같구요 하나님에 대한 단정적인 개념화는 하나님을 총체적으로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습니다ㅡ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감사드립니다. 다만 저는 신학자나 신학도가 아니라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청년입니다. 만약 모든 기독교인이 보편적으로 행해야 할 '신학함'을 염두에 두시는 거라면 격려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user-pu2cw6kk5h
      @user-pu2cw6kk5h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네 저도 그런뜻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따봉을 안누를 수가 없네!!! 👍

  • @user-ys7ig5kl7v
    @user-ys7ig5kl7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8

    저는 욥과 하나님의 상황이 똑같다고 느껴졌어요. 욥기서만 읽었을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고 하나님이 악하게 느껴지기만 했는데 하나님 또한 종들인 우리를 사망으로 잃고 독생자도 세상에 보내서 모든 고난을 지도록 명하시고 결국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욥과 같은 포지션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또한 욥은 결국 하나님께 복을 받아 더 많은 자식을 얻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하셔서 결국 우리라는 자식들을 얻게된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 @tangsgoos4455
    @tangsgoos4455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99마라의 양을 살리기 위해서 1마리의 양을 희생한다는 말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99마리의 우리 안의 양보다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기뻐한다는 말씀은 존재하죠
    그러니 예시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롯유다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저에게 좋을 뻔 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로 아예 도달할 방법이 없는 자들을 미리 데려가셔서 어떻게든 도달할 방법이 있게 만드시려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시지 99마리의 양을 살리기 위하여 1마리의 양을 희생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선한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십니다
    우리의 선함의 판단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근거를 예시로 마련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 @jj-hc7sf
    @jj-hc7sf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미쳤다 좀 시원해요.. 또 의문이 들 날이 오겠지만 이렇게 그때그때의 깨달음이 버티게 해주는것 같네요.....시원합니다 다메섹님

  • @ringo8530
    @ringo8530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닥치니까 감사함은 커녕 원망만 들더라고요. 현재의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하나님한테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을거 같아요. 여전히 마음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다룬 영상을 시청하게 되어 위로가 됩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토기장이한테 토달지 말라” 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누구한테 상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 @user-qi6rr9jc8m
    @user-qi6rr9jc8m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날이 갈수록 더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

  • @yoontaejung4403
    @yoontaejung4403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옳고 그르고를 떠나 깊이 생각하려는 자세는 매우 좋은 것같아요. 여기다가 옳은 소리 댓글로 늘어놓는 분들도 도움이 되구요. 고통의 문제는... 결국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저 괴로움을가지고도 받아들이는것...이겠지요. 제일 도움 안되는건 욥 친구들처럼 행동하는거겠죠. 평안파시길 기도했어요.

  • @qkdnlqhrkdnl2835
    @qkdnlqhrkdnl2835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안녕하세요. 다메섹님
    이제까지 영상을 봐오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헷갈린다는 겁니다. 신앙? 지식?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인 거 같습니다.
    누군 이렇게 말하면 오 맞는 거 같아
    누군 저렇게 말하면 오 맞는 거 같아
    그러다보니 제가 무언갈 설명할 땐 그 당시 동의되었던 내용을 줏대없이 따라가는 식이 대부분인 거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항상 설명이 달라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다메섹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줏대(?), 바른 지식을 세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성경은 매일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지러운 부분이 있죠.
    결국 그 간지러운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가면 되는 걸까요?
    그리고 다메섹님이 설명하시는 영상, 변증하는 영상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어 지식을 쌓는 이유가 내가 멋져보이고 싶다는 기저가 있는데요 다메섹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보신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제는 내가 멋져보이고 싶다는 게 안 좋다고 생각하구요.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신학을 공부할수록 깨닫게 되는 곳은 신앙에 있어 어느정도의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모든 성경구절에 하나의 정확한 해석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곤 하죠. 신학이란 그 정확한 해석을 배우고 암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거나 변증을 해갈수록 더욱 불확실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성경과 교리에 대해 너무나 많은 해석이 있고, 각자의 해석들은 너무 이상한 해석만 아니라면 그에 걸맞는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배울수록 양보할 수 없는 부분과 유하게 열어놓을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그 기준 자체도 사람마다 다를테니 거기서 논쟁이 생겨나는 것이구요. 그 논쟁은 기독교 역사 2천년 내내 이어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소위 전통이라 불리우는 해석들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는 변증가인 C.S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 표현한 기독교, 즉 모든 교파들이 믿는 공통사항에 해당하는 기독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것조차 부정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만, 저는 이 최소한의 핵심 코어를 사수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으로 남아있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을 구분해서 변증하는 것이 제 사역이기도 하구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변증을 익히고 싶다면 저라면 너무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객관적이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책으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 위에 말한 C.S 루이스나 팀 켈러와 같은 분들 말이죠. 물론 성경을 읽으시는 것도 좋습니다. 읽어가며 바이블 프로젝트라는 채널의 도움을 받아 기초지식과 배경을 배워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멋져보이고 싶은 욕구는 알다시피 바람직한 공부의 동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동기부여 역할을 해준다면 꼭 나쁘다고 볼 수 없겠죠. 누구나 신앙적 동기에 불순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해나가며 조금씩 없애가는거죠.

  • @TV-fn2qt
    @TV-fn2qt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알고리즘 신정론 재밌네요😮

  • @dedebig
    @dedebig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씨름을 해야하는 신앙과 시선에 대해 좋은 생각 가지고 갑니다

  • @user-cf7vm1zs5y
    @user-cf7vm1zs5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20분 영상을 2분처럼 봤네요. 제가 본 신정론 변증 중에 가장 동의되고 그리스도 중심의 변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순속에 진리를 발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인간성을 하나님께로부터 난것이라 믿고, 창조의 원형으로 돌이키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해석하신 탁월한 변증 ㅎㅎ 잘 써먹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 @iooh776
    @iooh776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신정론을 과녁이 되신 예수님으로 설명하니 답답했던 부분이 풀린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user-ll5bh3yk6n
    @user-ll5bh3yk6n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참 이해되지 않고 어려운 신앙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늘 통찰을 얻고 도움을 받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릴게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외면하고 떠나가고 있는 세상에서, 정말 귀한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는 다메섹님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됩니다

  • @Kst0318
    @Kst0318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오우 좋은 발견이네요!
    논리와 감정을 가진 인간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데리고 가시는지 감사하네요!

  • @mimang2
    @mimang2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개인적으로 많이 동의하는 신정론입니다

  • @shlee989
    @shlee989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속이 다 시원하네요~~~~

  • @restanding
    @restanding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가 너무 고통스러우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나요.

  • @user-zh7mw4pm7e
    @user-zh7mw4pm7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이해 안되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숨 붙어 있으니까 믿고 살아간다.

  • @user-gy3he8tx2r
    @user-gy3he8tx2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대박 아멘

  • @johnko-fz3se
    @johnko-fz3s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이 영상을 보니까 왜 다메섹님이 그런 말들을 했는지 이해가 좀 되네요.
    구원론, 예정론에 대한 영상보다 이 영상이 더 그러한 윤곽을 느끼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이 영상은 꽤 중요한 영상인듯 합니다.
    그 이유는 역시나 복음에 대한 내용 이기 때문인듯 합니다.
    제가 사실 여러번 다메섹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좀 물어보고 싶었던것이 바로 '복음'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였습니다.
    다메섹님은 '선하신 하나님' 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든지 인격적, 인간적으로 부빌수 있는 하나님인듯 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런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대해야만 사실상 의미가 있고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십자가'라는 내용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것 같습니다. 두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
    일단 제가 이해하기로 하나님과의 관계라는것이 어떤 한 가지 상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친구, 종, 어쩔때는 다시 죄인의 표현하는데, 이것이 논리적, 순차적인 시간순으로 ,마치 게임에서 전직하듯이 직업을 바꿔가는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발전, 성장에 따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심화되는 거라고 이해됩니다. 이런게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구별되는것도 아니고 하나로 뭉쳐서 보자니 그건 더 이상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진 않지만
    가령, 처음엔 죄인으로 시작하여 회개하고 구원에 이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고 더 나아가 영적 어른이 되고 마침내 서로 사랑함이 깊어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여기십니다. 근데 거기서 더 나아가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아버지와 동등됨을 원치않고 종이 되신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많이 성숙할 수록 하나님앞에서 낮아지고 종의 형태를 띄게 됩니다.
    죄인, 자녀, 친구, 종
    이런 관계들을 볼때 그 중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십자가를 바라볼때 2가지 상반된 인식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죄인된 자아로서
    다른 하나는, 거듭난 자아로서..
    둘중 한가지만 취사선택한다면, 이상한 신앙이 되어버릴거라 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죄인에서 영광의 작은 예수가 되기까지의 간극이 너무나 넓기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시는 여정이 매우 길다는 것이죠.
    만일, 자아의 죽음만을 강조하여 어둡고 무거운 십자가만 바라본다면, 다메섹님 말씀처럼 지나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자기 인격을 말살하는등의 문제가 생길것이고
    반대로, 죽어야할 자아를 다루지 않고 사랑과 축복받는 자녀만 강조하여 밝은 십자가만 바라본다면, 인본주의적인 신앙이 되어버릴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관계안에서 낮아지며 종이 되어지는 관계를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것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성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성장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변합니다. 믿음의 분량이 차면, 하나님의 종의 포지션을 갖게 되는데, 다메섹님에게는 그런 관계가 우리가 하나님을 지나치게 높이고 스스로 인격말살하는 잘못된 관계라고만 보여지는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2. 십자가를 통한 고통의 문제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물리적으로 이유를 알수는 없으나, 하나님은 그 고통이 우리에게 오는것을 허용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통, 즉 세상의 악으로 인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고통에 우리를 노출시킴으로써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십니다. 악을 선하게 바꿔서 쓰는건 하나님만 하실수 있고 하나님이 전문입니다.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하셨는데, 표면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근원적으로는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이끄는 거의 유일한 도구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에 대해서 '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외쳐 부르시는 유일한 메가폰'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 지우십니다. 그것을 통해 마지막날에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을 나눠서 받게 하시려는겁니다.
    저는 다메섹님이 '고난'에 대해서 대체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궁금했습니다. 왜냐면 구원론, 예정론을 얘기할때 이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얘기를 안 하시더군요.
    고난과 고통을 잘 생각해보면, 자유의지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건(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 이야기는 할 필요는 없고..
    고통과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해석하고 소화하기가 사실 너무 폭이 넓고 깊어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잇는 말을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대전제는 같습니다.
    그 대전제는, 고통은 예수님에게 가게하기에 우리에게 유익이라는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악을 강제로, 비인격적으로 감수하라고 떠미는 파괴적인 행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고통은 하나님께로 더 이끄시는 도구로 쓰시면서, 우리를 더 낮추시는 풀무불로도 쓰십니다.
    욥에게 고통이 발생한 표면적인 이유는 사탄이 송사를 했기때문이지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욥안에 있는 불순물(자기의)을 빼내는 도구로써 풀무불처럼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고난은 각자가 소화하는 객관적인 분량도 다르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고통의 강도도 다르기때문에 일반화하기가 어렵지만,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주지 않는다고 하시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느낄때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인격적, 파괴적,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1번에서 얘기한것처럼, 우리가 성숙해가는 과정에 필요한 분량만큼 고통을 주실것이고, 어떤 경우엔 욥처럼 대제앙수준의 고난도 주실수 있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하나님한테 따지고 토달고 변론하는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수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분량까지 성장하게끔 인도하신다는겁니다.
    6살딸있는 아버지 비유를 하셔서 좋은 예시가 되겠네요.
    수백명을 살리기 위해서 내 딸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에 대해서 예라고 답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가 그렇게 잘 못한다는걸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한테는 그것을 요구하셨죠. 스스로를 희생하여 인류를 구원하셨으니까요.
    당연히 너무나 어려운 문제지만, 예수님의 분량에 다가가서 1번에 말씀드린대로 '주의종'의 포지션이 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하실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분량까지 성장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이끄시고 그것을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니까요.
    얼마든지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고 화낼수 있고 변론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을 통해서 이끄시는 종착지가 아닙니다.
    성장할수록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보이는 고난들도 겪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만 높이고 낮아지는 단계로 접어 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분량을 향해 성장하지 않는것이고, 심지어 그것을 고착화 시키고 이론적으로 정립한다면 인본주의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네요.

  • @user-dz1gw9bp3t
    @user-dz1gw9bp3t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아마 댓글을 처음 다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저또한 하나님께 그러한 질문, 원망, 분노를 했었는데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들었던(주셨던) 마음, 생각들을 잘 정리해주셔서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신앙을 물려주셨던 아버지가 자살하셨습니다. 꼴에 저는 신자라고 아버지 시신 앞에서 감사기도를 하고 발인예배 때 예수님 믿자고 얘기를 했습니다(돌이켜보면 제 힘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물음과 분노가 있지만 그런 것을 표출하면 안되는 자리에 있다보니 제 신앙생활은 체념과 정신승리에 그쳐 우울함이 가득했습니다(물론 이 상태가 과정이었음을 지나고나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다 하나님께 원망하고 씨름한 끝에 결국 완전 항복하게 되었고 정말 기쁘더라구요. 워딩은 '하나님은 계획이 있으셔'라는 동일한 말을하는데 자기암시나 체념같은 느낌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사람들에게 질문해라 원망해라 씨름해라 다만 절대 떠나지는 마시기를, 같이 살아있어보자고 감히 부탁드립니다(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러하셨듯 반드시 붙잡고 끌고가심을 믿는 마음으로)
    대부분 시편이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울부짖다가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끝나는데 88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탄원과 원망과 울부짖음과 한숨으로 가득하죠..그리고 이 88편 또한 성경에 있죠..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들으십니다..기꺼이 과녁이 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제가 이론으로 떠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존적인 깨달음이시네요. 멋지십니다.

    • @user-dz1gw9bp3t
      @user-dz1gw9bp3t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DamascusLiveTV 저도 그냥 느낌으로만 지나갈 수 있는것을 덕분에 생각과 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칼빈을 배우고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맞아'라는 뉘앙스보다는, 알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며 다메섹님의 생각과 말씀들이 보완되고 도움된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user-dz1gw9bp3t 의외겠지만 저도 10년 넘게 장로교회에서 칼빈을 배우고 신앙생활하는 성도입니다 😅

    • @user-dz1gw9bp3t
      @user-dz1gw9bp3t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DamascusLiveTV 아 넵 알고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 @user-wm1lq2zg7w
    @user-wm1lq2zg7w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라는 신학자가 쓴 책들에 대해 알아봐야겠네요 처음 알았는데 훌륭한 통찰인거같습니다
    언제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벤틀리 하트는 신정론 자체에 대해선 저와는 다른 결론을 내긴 합니다. 하지만 멋진 학자입니다!

  • @mjlee8487
    @mjlee8487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고통의 문제에 대한 저의 소견을 나누겠습니다. 인간 수명 100살 X 고통의 순간들 레벨 (1부터 10단계(10= 본인 질병, 가족 없거나 죽음, 평생 불행) 하면 최악의 시나리오의 사람일 경우 고통 레벨 100x10= 1,000 입니다.
    죽음 후 천국부활 후 수명 무한x 고통레벨 - 무한 = 무한한 기쁨
    결국, 1,000 이라는 숫자는 무한대 라는 수 앞에서 0인 것임.
    욥의 불쌍한 자녀들 개죽음? 그 고통 순간도 당시 잠시 찰나였음. 지금 욥과 그 자녀들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기간이 훨씬 길음. 기쁨 가운데 있는 욥 자녀한테 지금가서 너 그때 고통 스러웠을텐데 하나님 밉지? 하는 꼴임.
    반박 시 당신 말이 옳다

    • @NO.1_brain_trainer
      @NO.1_brain_traine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자녀들이 죽은이후에..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죄를 지어서 죽은건지.. 쓰임을 받기 위해서 죽은건지 알수없습니다.
      모든것이 추측일뿐 알 수 없습니다. 고통의 예로서 추측의 이야기를 꺼내는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린 욥에 대해서는 말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욥에 대해서는 성경책에 여러가지가 적혀있으니까요. 욥은 결국 극복해냈고 행복했겠지요. 우린 그걸 믿으면 되지 않을까요? 욥의 자녀가 개죽음인지.. 아니면 천국가서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우린 정보가 없으니.... 논외로 쳐서... 모른다라고 답하는게 좋을꺼 같습니다.
      욥의 이야기를 읽을때 욥의 자식은 이 무슨 개죽음인가.. 또는 천국갔나? 여러가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나.. 결론은 욥의 자식은 알 수 없음.. 이였습니다.
      알수 없는것에 대해서 논의 하기보다는 알수있는 욥의 고난과 극복에 대해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게 더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 @user-pl2qd4rx1c
      @user-pl2qd4rx1c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NO.1_brain_trainer모든 죽음에 개죽음은 없지 않을까요? 개죽음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깔면 결론에도 오류가 있겠지요. 또한 자녀가 개죽음을 당했는데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다소 변태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RaffeTheLiar
    @RaffeTheLia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필립 얀시의 책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의 저자는 이미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슬픔과 애통함이 멈추지 않고 있다. 고통의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 슬픔과 애통함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것은 아마 그것을 아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엔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결론이었어요. 구약에서 억울하게 고통받은 이가 욥이라면, 신약에서 억울하게 고통받은 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 @iranbinny
      @iranbinn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책 제목이 혹시 무엇인가요?

    • @RaffeTheLiar
      @RaffeTheLia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iranbinny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입니다

    • @iranbinny
      @iranbinn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감사합니다

  • @user-qi6rr9jc8m
    @user-qi6rr9jc8m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9:05
    요셉의 경우는 이런 케이스로 보이지 않나요?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맞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고통받았음을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고백했죠. 고통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 건 나쁜게 아닐 뿐더러 오히려 숭고한 것 같습니다. 타인이 의미를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독촉하는 것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겠죠.

  • @Jason-bs9tg
    @Jason-bs9tg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솔직히 말해서 너무 멋있는 하나님인것 같아요. 그토록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냥 작은 인간이 하는 불평불만을 다 들어 주신다는것.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인거죠. 깊은 나눔 감사합니다.

  • @user-lj5zo6fy2z
    @user-lj5zo6fy2z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인간에게 고난이 없다면 행복이란건 상상도 하지못했을 것이다

  • @seanyoonjazz
    @seanyoonjazz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영화 밀양이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 @fallinlove7888
    @fallinlove788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저는 얘기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언의 동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니 말이 맞아 나도 동감해..그런데 좀 더 인내해주겠니..나도 너와 똑같은 상황이야..라는 하나님만의 언어..때로는 침묵이 큰 위로가 될 수 있죠.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짧고 굵고 강렬하게 동감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잦은 침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구요 ㅎㅎ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도 그래서 ㅚ브리서 4장 15절입니다.

  • @heyhan5551
    @heyhan5551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이걸 듣는데 눈물이 나네요 제가 많이 하나님을 오해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저 또한 누군가에게 위로한답시고 폭행하지 않았나 싶어요
    세상 건조하게 얘기하시는데 너무 은혜가 되었어요 😊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위로가 됐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 @user-ub3wi9eh8e
    @user-ub3wi9eh8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책 읽기가 부족한 요즘 세대는 3줄 요약에 목말라 있습니다.😢
    제가 잘 이해를 못해서, 저보다 더 잘 이해하신 분들이 조금 도와주셨으면 저에겡 정말 큰 은혜가 될것 같습니다 :)
    영상을 요약하자면
    무참히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는
    1. 하나님의 왜 내 딸을 살해당하게 두었는지 모르지만, (알고리즘 처럼)
    2. 그 분노와 고통을 하나님께 향하며 (인간을 향하지 말고)
    3.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 (최고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면 좋을까요??

    • @iranbinny
      @iranbinn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정말 간단히 요약하면 그렇게 해석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조금 저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욥기에서의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에 겨워 나를 욕하고 저주할지언정, 나를 떠나지는 말아다오. 차라리 나를 욕해라.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욕하고, 분노가 차오르면 나에게 분노를 쏟아내어라.
      하지만 제발 떠나지만 말아달라. 나는 너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나를 밟고 저주하고, 침을 뱉을 지언정 떠나지만 말아라. 내가 너를 사랑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를 한줄로 요약하자면,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요약되는 순간 변질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가진 생명력이 죽기 때문이죠.
      그래서 참 3줄 요약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줄 요약을 하자면,
      1.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고, 안 믿긴다고 솔직히 고백해도 된다.
      2.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지만 말아달라.
      3. 왜냐하면 아예 떠나버리는 순간, 우릴 사랑해야한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제가 정확한 의미는 아닐수 도 있겠지만, 이렇게 정도로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욥기에는 욥말고도 욥의 아내도 나옵니다. 하지만 우린 욥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잘 모르죠. 사실 욥과 욥의 아내 둘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합니다. 하지만 그 둘의 차이는 욥은 이해가 되고 욕할 지언정 여전히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 안에서 반항한 것이지요.
      욥기 2장 9절에는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욥의 아내와 욥 둘다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욥은 욕할지언정 하나님 안에 있었지만, 욥의 아내는 욕한 후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지요.
      그 이후에 욥의 아내는 성경이라는 무대에서 퇴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선 슬픈 일이지요. 그러니 욕하고 저주할지언정 내 안에 있으라고 하나님은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는데 조금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 @Pianost.
    @Pianost.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윤회에 대해서도 간추려 주실수 있을까요? 기독교 초기 400년동안 윤회이론을 정식교리로 인정했다던데요

  • @user-dl4tc8cr6s
    @user-dl4tc8cr6s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감사합니다

  • @Grace-df7ec
    @Grace-df7ec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요즘 스위스로 가서 조력사망을 하려는 분들이 꽤 있다고 하는데요.
    조력사망을 해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다메섹님의 의견 듣고 싶네요.

    • @user-ic8mq6mp9s
      @user-ic8mq6mp9s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본인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자살과 다를 바 없습니다.

  • @hjs1901
    @hjs1901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불행, 부조리함은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일.
    그것을 불행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파멸과 구렁텅이에서 뒹굴지 아니면 그 순간을 자신의 성숙이나 성장의 기회로 생각하는것은 자신의 인식에 달린 문제.
    그런 인식의 전환을 쉽게 도와주는것이 종교.

  • @no_gal
    @no_gal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폼 미치셨네...ㄷㄷ

  • @geonhuikim8622
    @geonhuikim8622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다메섹님의 신정론 이야기를 듣자니 음미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생각납니다.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의 인생은 결국 성경에 나온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도 하다는 말씀에 깊은 혜안을 얻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과녘이 되어 주신 예수님을 떠올리며 성경을 깊이 묵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user-li1fq2ee5b
    @user-li1fq2ee5b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라는 성경 말씀 아세요?

  • @user-mx9io2kz1o
    @user-mx9io2kz1o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 생각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 양면성이 각자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부분을 다루는 것인데 문제는 그 양면성중 한쪽이 자기가 다다 하면서 다른 반대쪽 면을 틀렸어 하고 무시하면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양면성을 조화롭게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한쪽면이 다가 아니라 부분적이니깐요 조화롭게 가지는 방법은 맥락과 상황에 따라 가지고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 @user-asdqfoq11za
    @user-asdqfoq11za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현실에선 자식을 잃어본적도 없는 인간들이 신을 더 욕한다. 신을 조롱하고 욕하는 자들이 다 자식을 잃었겠는가?
    그런데 신은 하나뿐인 자식을 잃었다. 입양한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서

  • @wjlee382
    @wjlee38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지성이 성경에 묻다 책에서의 구원론과 자유의지와의 관계 어떻게 생각하세요

  • @user-op7nw1vq5m
    @user-op7nw1vq5m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고통을 겪고 감수해내며 살아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왜냐하면 사실 사람 의 모든 것은 지나가는데 우린 매순간을 보고 묵도 하며 또 그렇게 있던 일들이 기록되어 영원히 세겨지게 되는 시공간의 우주 전체를 지배 하는 하나님 의 이야기 속에 거해야함을 깨닫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슬픔 고통을 다 아시는 하나님 의 비정함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만이 존재하는 우리들이 살수가 있는것도 깨닫고 알고 살으란 것이니. 안좋은 일을 일일히 다 설명을 하실수 있는 하나님 께서 그리 하지 않으심을 헤아려 알아 불평불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 @user-xg5gh2yu1r
    @user-xg5gh2yu1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비 기독교적 입장에서
    한마디 해도 될까요
    소유 > 행위 > 존재
    이런말 들어 보셨나요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가치를 두는 것의 변화라고 합니다
    사랑이란 것도
    위의 세가지 관점이 가능합니다
    소유적 사랑
    행위적 사랑
    존재적 사랑
    당연히 신의 사랑은
    존재의 차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사랑이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는 악인과 의인 모두에게 내린다
    태양은 악인과 의인 모두를 비춘다
    존재 차원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말입니다
    신은 악인에게도
    사랑아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 사랑을 거부할수는 있죠
    이것이 인간이 고통받는 이유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신의 사랑을 거부하면서
    고통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왜?
    신의 사랑은 존재의 차원이니까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사랑입니다

  • @harpajoTV
    @harpajo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심지어 우리의 잘못된 선택도 선으로 바꾸어 축복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모르니까 이런 혼란들이 오는 것이지...

  • @user-zt2vm4cs9e
    @user-zt2vm4cs9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고통은 듀!두가지 첫째 죄 때문에 고통이 따르고 두번째는 의의 고통이다 십자가의 고통이다

  • @KHK4641
    @KHK4641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th-cam.com/video/LEppdPUo-Wo/w-d-xo.html
    물리학자 김범준님의 유튜브 체널 '범준에 물리다' 에서
    뇌과학자 장동선님과 죽음, 사후세계에 대해 담론을 나눈 영상 입니다.
    만약 다메섹 님께서 이분들과 대화를 한다면 어떤 스탠스와 변증으로 이들과 토론 하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 @user-metachurch
    @user-metachurch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죽음과 악의 문제는 전도서 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에서도 굉장히 많이 다뤄내던 문제였던거 같아요 .
    교회에서 엄청 많이 들었던, 하나님께 토 달지 말라는 말에 반박하며 ,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라는 구절도 생각났어요. 선으로 완성을 시키려고는 하지만, 자유의지를 엄청 존중해주셔서 하나님이 악에 무능력해보이는 걸까요? 영상 늘 감사합니다

  • @user-ub3wi9eh8e
    @user-ub3wi9eh8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영상과 댓글을 정독하고
    깊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이 안에 현재 한국의 개신교가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 개신교 인구는 크게 줄고 있고(특히 청년)
    개신교를 싫어하는 일반 사람은 많고
    ○ 주류 미디어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이는 미디어의 영향이 강한 청년들에게 더 기피의 계기가 되겠지요.)
    ○ 그렇지만 개신교인들만은 개신교인들을 심하게 좋아하고.
    이것이 현실입니다. 직시 해야 합니다.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글에는 하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는 글에는 비꼼과 욕설이.
    이것이 현실입니다.
    다른 돈과 인기를 쫒는 유튜버는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교회 내에서 자기들 끼리만 서로 위해주면 자정이나 발전이 없을까 우려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1분만 이 현실을 생각해보고, 어떻게 하면 어린양들을 하느님의 품으로 인도할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댓글 감사합니다. 여기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을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누자면 비신자,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기독교인, 동의하는 기독교인이 될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중 3번에게만 하트를 달았고, 이건 유튜버로서 제 권한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의견에 동의해주시고, 좋게 봐주는 분들에게 하트를 누르고, 그렇지 않을 경우 누르지 않는 것 말이죠. 저에겐 모든 댓글에 하트를 누를 의무가 없습니다.
      둘째로, 의견에 반대되는 이들 중 대화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겐 대부분 재댓글로 의견을 전개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죠.
      이 영상, 더 나아가 이 채널의 상당수의 반대댓글은 비개신교인이라기보단 2번 부류, 즉 이미 개신교인이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 저의 의견에 반대하는 부류입니다. 이분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합니다만, 대화하기에는 가장 흥미가 없는 분들입니다. 설득하는 것도 거의 불가하며, 굳이 그래야하나 싶기 때문입니다.
      채널의 영상 전체를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비신자분들과의 대화는 한국 기독교 유튜버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많이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비신자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해당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판한 내용도 결국 비신자와의 대화 여지를 차단하기 때문에 비판한 것입니다.

  • @finalfestival4673
    @finalfestival4673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옥성호 작가가 쓴 [너무도 가벼운 고통] 이라는 저서가 기존 욥기 해석에서 감정적으로 불만족스러웠던 부분들을 많이 긁어주더군요.
    정통 기독교인이 보면, 노발대발 할 내용이지만.....최소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 정도 사유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타 컨스피러시] 라는 작품도, 유다를 재 조명하는데, 상당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줍니다.
    사실 옥성호 작가의 여러 저서들을 제대로 논박하는 기독교측 진영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잘 못찾은 것 같습니다.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면 유익한 내용들이 제법 있어 보입니다.

  • @watertree4320
    @watertree4320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 기준으로는... 오늘 이 영상은 아카이브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 @peacemusic5196
    @peacemusic5196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 죄의 문제 등등 다 해결하셨어요 그걸 우리가 쟁취해야되요
    레슬링한 사람처럼요. (누구든지 이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 말하며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이게 말씀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johnbillon7757
      @johnbillon7757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요셉은 쟁취를 위해서 레슬링을 한 게 아니라,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무슨 신앙을 쟁취 이런 것으로 보지는 좀 맙시다.

  • @ji6824
    @ji6824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디지털, 에서 알 수 있는 작동 논리와
    신께서 계획하고 진행하시는 역사와 비슷한 점이 실제로 많은 것 같습니다.
    삼위 일체도 어떻게 신이 한 분이 아니고 여럿일 수 있으면서, 동시에 한 분이라고 주장하느냐라고 할때.
    포인터 변수로 설명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소 값을 저장하는 포인터 변수
    같은 주소를 담고 있는 포인터 변수는 ,
    그 포인터 변수가 아무리 여러개라도
    같은 주소 값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의 변수' 라고 봅니다.
    이것 말고도 디지털 1,0 이 신께서 창조하실 때 , 없던 것이 , 갑자기 있게 되는 것을 표한 할때도 이해를 돕습니다.
    없는 것은 0, 있는 것은 1 로 표현하는 것처럼 , 신에게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이지, 모호한 것이 있을 수 없듯.

  • @user-tv6eg5ld4l
    @user-tv6eg5ld4l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8:03
    만물과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면 죄의 문제도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16:4).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의 원인이 될 수 없지만, 그의 능력과 지혜 때문에 죄조차도 그의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사용하십니다.
    간혹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른 것이고, 죄악된 것은 하나님의 허용(허락)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까, 허용입니까?
    아담의 타락은 기뻐 하시는 뜻입니까, 허용입니까?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허용이고 그의 기뻐하심과 무관합니까?
    그 모든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의한 것입니다.
    죄의 문제조차도 하나님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허용이라 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허용이나 허락이라는 말이 인간의 언어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마치 두 가지(기뻐하시는 뜻과 허용)인 것처럼 오해되도록 쓰여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둘 이상으로 보일지라도 분명히 하나님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지는 단일하십니다.
    즉, 허용하셨을지라도 의지하심으로 허용하신 것이지,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허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첫 타락뿐만 아니라 천사들과 인간들은 단순히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권능으로 그 모든 죄들의 한계를 정하시고, 하나 적들을 위해 다양한 경륜 속에서 그것들을 다스리십니다
    이는 죄의 문제도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즉, 이는 자신의 전능하신 능력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한 선하심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죄조차도 수단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 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사 28:29).

  • @tangsgoos4455
    @tangsgoos4455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누가복음4장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요한일서 5장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야고보서 4장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 @tangsgoos4455
      @tangsgoos4455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 세상의 권세를 받은 자는 사탄입니다
      이 세상의 말을 믿지 마십시요
      이 세상의 말과 성경말씀이 다르다면 이 세상의 말이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런 거짓말과 성경말씀을 조율하고 타협하여 흐리멍텅하게 만들면 안될 일입니다
      무조건 성경말씀이 옳은 것입니다
      세상의 말과 성경말씀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그것은 주님께 속한 자가 아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user-ib3gg1pe2b
    @user-ib3gg1pe2b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3:30

  • @user-gv9vt4xv2y
    @user-gv9vt4xv2y 10 วันที่ผ่านมา

    현재 고통의 이유가 계시록12:12에 마귀가 땅에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또한 사도행전10:38에서 마귀에게 짓눌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보면 고통의 원인이 초인적 세력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2:31 이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라고 알려주는데 누가10:18에서 사탄이 떨어지는 것을 언급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악해진 이유는 악한자인 사탄의 통치 때문이며 그는 좋은 천사로 가장도 하고 그가 부리는 종들인 그리스도교국도 좋은 하느님의 대변자로 가장합니다 고린도 후서4:4 그러니까 모를 수 밖에. . .성경에 다 있는데. . .

  • @user-fr2jv3is1h
    @user-fr2jv3is1h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 따지는 거죠?

  • @Martin-mh4my
    @Martin-mh4my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하나님과 레슬링을 했다. 겨루었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그게 권장되거나 긍정적으로 얘기될 수는 없죠 ㅎㅎ

  • @user-sb6uq5ju4s
    @user-sb6uq5ju4s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그렇게 신이 설명해주면 그자체로 존재증명이 됨. 예전에 당신이 하늘에 갓 이즈 히어 써도 안믿는자는 안믿는다 했는데 그런 사람도 분명 있지만 절대다수는 신을 믿게 될것임. 자기 자식을 먼저 데려갔어도 천국에서 잘 있고 언젠간 반드시 만난다는것을
    내면적 확신이 아닌 실체적 확신을 갖게됨. 난 신이 있다고 보는데 과연 그 신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우리가 볼때 잔혹하기 그지없는 이세상을 그대로 두고본다는게 이해가 되지않고 그저 만들어놓고
    일절 개입하지않는 신으로 봄.
    나의 믿음이라는건 여기까지임 믿기는 만큼만 믿음.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믿음을 '존재를 믿는다'로 정의한다면 그렇겠죠. 그러나 기독교가 요구하는 믿음은 인격 대 인격의 신뢰의 믿음입니다. 난 내 와이프를 믿어라는 말이 와이프의 존재를 믿는단 뜻이 아니듯, 난 하나님을 믿어라는 뜻도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존재에 대한 믿음이 선행조건이겠지만요.) 와이프의 존재를 믿지만 죽도록 미워할 수 있듯, 신의 존재를 믿지만 죽도록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느니 존재를 믿지 않는 상황이 낫습니다. 존재는 언제든 계기에 따라 믿게될 수 있거든요. 갓 이즈 히어 비유는 그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 @user-ym2od4so7f
    @user-ym2od4so7f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성경을 깨달았을때 하나님(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내 안에 오시는겁니다. 그때에 비로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요. 성경은 천지창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66권 모두 비유이며 신화입니다.

  • @gospelkim484
    @gospelkim484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들어본 신정론 중
    가장 아름다운 신정론입니다.👍

  • @pmhpop
    @pmhpop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다마스커스 채널에 종종 영상을 보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신학적 주제를 통해 흥미롭게 보고 있는 구독자입니다. 영상을 보면서 한 말씀 하자면, 저는 인간의 감정이나 인간애적 마음에서 하나님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그분, 바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는 단계로까지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그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 입장에서 둘 중에 하나이겠죠. 완전히 떠나거나 그리스도인으로 남거나 말이죠. 하나님을 욕하고 따지고 항상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진 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또 다른 고통과 슬픔일까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딸의 희생이 단지 인간애적 한계에서 머물러 버린다면 그리고 거기까지 이해되고 해석된다면 아버지는 아마도 평생동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해 분노를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지옥은 또 무서워서 떠날 수 없음)
    몇백 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딸이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면, 당연히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가 당연히 없죠! 그러나 그 사건이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인 사건이라는 동일성, 오버랩이 바로 나의 사건이라고 매칭이 되었을 땐 분명히 그 아버지는 무릎을 털썩 꿇고 그것이 그 사람들을 위한 구원인 동시에 본인 자신의 구원이었구나!를 깨달을 것입니다.
    그 해답을 마지막 때에는 당연히 알겠지만, 그때 뿐만 아니라 지금 현세의 삶에서도 알아야만 인생의 미스터리가 풀리지, 그 물음표를 갖고 일생동안 살아간다면 그 자체도 당연히 평생 고통이지 않겠습니까?
    전통적인 신정론 해석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은 똑같은 성경 말씀을 통해 충분히 신정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인간이 감지하고 경험하는 그 악을 통해서만 환희 밝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 팩트(머리, 논리, 이성)가 이제는 가슴(감정, 마음)으로 전환되어, 팩스로만 말하는 자들에게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가슴만 뜨거워서 얘기하는 자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간의 고통과 악의 근본적 이유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 고통속에서 왜 나에게 이 고통을 통해서만 진리로 갈수 밖에 없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깨달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모든 기독교인들이 필연적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상을 통해 언제나 깊은 사색과 질문을 하는 다메섹님의 수고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스스로 깨닫는다면 훌륭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용이라면 전통적 신정론을 포함한 모든 신정론이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봅니다. 다만 문제는 남에게 설명하거나, 적용하거나, 심지어 판단하는데 쓰이는 경우겠죠. 저는 남에게 말해줄 수 있는 신정론은 영상에서 말한 정도가 한계라 봅니다. 그 누구도 그 아버지에게 가서 너의 딸의 죽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달으라고 종용할 순 없는 법이지요. 따라서 써주신 글에 반은 적극 동의하고, 반은 달리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신정론이란 본디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용도니까요. 스스로에게만 적용하면 그건 신정'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요 신앙의 삶 그 자체겠죠. 여담이지만 고통의 문제라는 유려한 글을 썼던 C.S 루이스가 사별 후 헤아려 본 슬픔을 쓴 뒤에는 더이상 쉽게 신정론적 변증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연관이 된다고 봅니다.

    • @pmhpop
      @pmhpop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DamascusLiveTV
      사실 스스로 깨닫는 건 불가능하며 마땅히 성령을 통해서 말씀의 정확한 이치를 깨닫는 것이겠죠. 또한 신정론이 당연지사로 타자를 향한 도구나 용도로만 쓰인다면 그것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신학 사조나 도그마 자체만 붙잡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같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죠.
      무엇보다도 신정론 자체가 정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왜 악의 문제와 고난에 대해서 침묵 및 존재하느냐? 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말씀을 통해 얻고 알지 못한다면 결국엔 신정‘론’에서만 마침표를 찍는 사변적 지식으로 남을 것입니다. 신앙적 삶이란 인간의 삶의 전반에 걸쳐 희노애락 속에서 펼쳐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역동적인 삶입니다. 그러한 삶의 여정을 통과하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자신의 삶을 비춰보면서 통찰해보는 관점이 오늘날 꼭 필요한 시대입니다.

    • @pmhpop
      @pmhpop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사실 스스로 깨닫는 건 불가능하며 마땅히 성령을 통해서 말씀의 정확한 이치를 깨닫는 것이겠죠. 또한 신정론이 당연지사로 타자를 향한 도구나 용도로만 쓰인다면 그것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신학 사조나 도그마 자체만 붙잡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자 같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죠.
      무엇보다도 신정론 자체가 정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왜 악의 문제와 고난에 대해서 침묵 및 존재하느냐? 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말씀을 통해 얻고 알지 못한다면 결국엔 신정‘론’에서만 마침표를 찍는 사변적 지식으로 남을 것입니다. 신앙적 삶이란 인간의 삶의 전반에 걸쳐 희노애락 속에서 펼쳐지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역동적인 삶입니다. 그러한 삶의 여정을 통과하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자신의 삶을 비춰보면서 통찰해보는 관점이 오늘날 꼭 필요한 시대입니다.

  • @orion2187
    @orion2187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니딸을 그런이유로 살해하겠다 그리고 내세에서 천국에서 만나게 해주겠다 정도로 직접 이야기를 해주사다면 그런 신이라면 공의롭고 선하시지요 그러나 미안하지만 니 딸은 지금 죽어서 영원토록 세세톡록 지옥에서 고통당해야하고 그걸 내가 창세전부터 예정해뒀다고 하시면 그걸 받이들이고도 감사와 찬양을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전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정도의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들까요 직접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진 않으셨지만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있고 저도 그 비슷한 상황에 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이라는 존재 우리가 막연히 존재하길 바라고 공의롭고 선하길 바라는 신 또 그런 신을 믿는 다는 사람들의 위선 아니 그 신조차도 사실은 그닥 공명정대한 모습을 보이지 않음에도 자기가 살기 위해 아니 자신만 천국에 가면 남이야 지옥에서 그 어떤 고통을 영원토록 당하건 말건 만족할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게 정말 끔찍하고 그런존재가 인간 뿐 아니라 그 인간을 창조한 신조차도 대부분의 인류가 영원토록 끝없는 고통을 계속 받을지라도 소수의 인간들과 멋진 천국이라는 장소를 만들어서 그 곳에서 그 소수의 인간들과 사랑을 나누며 만족할 수 있다는게 그 인간을 만든 창조자라는 현 기독교 이론 또한 정말 끔찍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선한척 신실하고 사랑이 있는 크리스천인 척 하지만 인간은 그 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 조차도 얼마나 위선덩어리 모순덩어리 들인지 과연 우리인간이라는 존재가 타인들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그 가상의 존재는 또 어떨 것 같은지 이 모든게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

    • @Five-bread
      @Five-bread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가 아니라..예수를 믿지않으면 그 사람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가 맞다고 생각해요. 흔히말하는 이순신장군의 끝이 어디로갔는지 모른다고 하는것처럼요.
      기독교국가vs무슬림국가.
      현대vs복음이닿기어려운전근대
      기독교가족vs비기독교가족.
      압도적으로 전자에서태어난이가 복음화율이높겠죠. 각자에대한판단은 하나님의기준으로판단하실거고, 신자도천국에가는건결국까봐양알듯이 비신자의삶도그럴것이라고봐요

  • @user-ku7nn3hn2l
    @user-ku7nn3hn2l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다마스커스 님의 신정론 이해 참 좋습니다. 그런데 특정 신학을 비난하면서 설명하지 않고, 다마스커스님이 생각하시는 바에 대해 '이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자칫 다른 신학 전체가 부정되어 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 중 말미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 위대하신 토기장이입니다 라고 하시는 분들, 이런 분들이 신앙을 가장 먼저 떠나요"라고 단언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런 분들을 얼마나 만나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들이 가장 먼저 떠나요? 다른 사람의 신앙을 이야기 할때 만큼은 단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BJ-vw8ue
    @BJ-vw8u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저는 말씀하시는 논리의 전제가 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자녀를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은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복음을 통해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중심성을 취한다면 자녀의 비참한 죽음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설복될 수 있는 거죠. 욥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설복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결국 인간의 자기중심성과 하나님중심성의 대결인 거죠. 인간이 하나님의 설득에도 설복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욥기가 말해주는 바는, 그 설복이 스스로 된다면야 좋겠지만 교리나 이론으로 만들거나 남을 설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욥기에선 궁극적인 구원이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그냥 2배씩 갚아주었다는 이스라엘의 희망적 사고만이 반영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의 자리에 가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극심하게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왜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느냐, 왜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순간 욥의 친구가 됩니다.

  • @fallinlove7888
    @fallinlove7888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비인간성은 악인가? 인간성은 선인가? 인간적으로 준 뇌물은 선한가? 비인간적인 사형집행은 악한가? 생각해 볼 문제네요

  • @Ahnjoshua
    @Ahnjoshua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신정론은 변증이 아니라 "심정"으로 풀어가자는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욥의 세친구가 되서는 안됩니다. 다같이 아파하고 울어야 합니다. 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대체 왜 이러시냐고 따지고 울부짖어야 합니다. 마땅히!
    그런데, "변증"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목적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변증하는 신학자들 (어거스틴에서 칼빈 그리고 다메섹님이 존경하시는 팀 켈러 목사님 까지)과 장로교 측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을 왜곡하고, 신정론에서 토기장이 비유나 들이대면서 고통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이니까 입 다물어 식으로 하고 있다며 (전형적 허수아비 때리기 논법) 지나치게 폄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ㅠ.ㅠ.
    감리교 성결교 측 웨슬리언, 알미니언, 유신론적 진화론자, 심지어 공격적인 무신론자와도 대화하면서, 정작 정통 개신교 주류인 칼빈 신학을 사랑하는 이들을 배척하는 태도는 지양하시는것은 어떨까해요?
    그 어느 누구라도, 이단 제외하고, 생각이 다른 다른 크리스챤에게 당신은 신학적 오류에 빠졌다는 식으로, 자기 신학만 옳다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결단코 안된다고 봅니다.
    다메섹 tv는 모든 이를 위한 최고의 신학 변증 유튜브 채널 되길 축복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늘 애청합니다. 생각과 해석이 다를 때도 많지만, 진리를 향한 기독교적 지성의 열정에 형제애를 느낍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애정어린 말씀 감사합니다. 다만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다마스커스 TV에서 저와 생각이 다른 사상 중 가장 많은 소통을 시도한 것이 바로 칼빈주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그들을 무작정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대화하고 토론해왔죠. 심지어 12년째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고요.
      현실 신앙생활에 중에도 가장 많은 대화와 토론을 나눈 분들이 바로 장로교 신자들입니다. 학자와 유명인을 제외하고 가장 존경하는 주변 신앙인들도 죄다 장로교인입니다. 물론 제 주변에 장로교인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긴 하지만요.
      중간에 말씀을 아주 잘해주셨습니다. 당연히 모든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이니까 입다물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주의의 대표주자인 팀 켈러를 존경하는 것도 그분이 그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칼빈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저렇게 입다물라고 나오는 칼빈주의자도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딱히 소수도 아닙니다.
      중간에 언급한 벤틀리 하트도 정확히 동일한 이유로 몇몇 칼빈주의 설교자와 논평 기고자들을 비판합니다. 쓰나미 사건 때 그런 식의 신정론을 주장하며 기고문을 쓴 '실제 칼빈주의자들'을 비판한 겁니다. 제가 비판하는 것도 위와 같은 부류이고, 님께서도 그런 부류에 비판적이니까 그것을 펌훼라고 느끼는 것일테죠.
      제 영상들 중 예정론이나 칼빈주의를 다루는 영상들에 가셔서 댓글들을 면밀히 봐주세요. 과연 제가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이 맞는지 말입니다. 차라리 제가 때리는게 허수아비였으면 하고 정말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 @Ahnjoshua
      @Ahnjoshua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속깊은 진심을 전달해주신 답변에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다메섹님과 나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네요. 저는 이전에 언급한 신학적 스펙트럼에 속한 분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아, 칼빈을 좋아하시는구나! 모든 것이 예정된 하나님의 주권이고 모든 것이 다 끝났네, 형벌대속설, 이중 예정을 믿으시지요?' 하면서, 더 이상 진지한 신학적 대화가 불가능한 것 마냥, 마치 무슨 정치적으로 극단주의자를 만난 것처럼 대할때마다 참으로 속상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다메섹님의 진심어린 고백을 들으면서, 소위 '칼빈주의자'들 앞에서 현대 신학적 논의를 언급할 때마다 '당신은 자유주의자 아니냐?'고 손쉽게 비판당할 때에 많이 힘들고 괴로우셨다고 봅니다. 그분들의 비판적 입장을 변호한다면, 특히나 신정론을 다루면서, 인간의 고통을 현실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전지, 전능, 선하심의 신적 속성을 불가피하게 희생당하는 것을 막고자, 다메섹 님에게 상당히 거칠게 반응하셨다고 유추됩니다. 물론 전문 신학자들끼리는 서로의 책과 아티클을 리뷰하면서, 비난이 아니라, 신학적 비평을 하는 것은 지극히 필요한 일입니다. 벤틀리가 칼빈주의자에게서 신학적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대로 벤틀리는, 예를 들어 That All Shall Be Saved라는 책에서 보편구원론을 주장하면서, 본인의 입장에 동의하는, 제가 확신하기에는, “비”-복음주의적 학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는 신정론이든 뭐든지 다양한 주제 속에서, 서로를 믿고 대화하면서 복음 안에서 신학적 최대 공약수를 찾아가는 건설적 작업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옥도 사탄도 없다는 보편구원론!!, 종교다원주의, 극단적 페미니즘과 동성애 젠더신학은 신천지 이단보다 더 무서운 신학적 이단이지요! 이런 파괴적 관점은 논외를 두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어서 신학적 교만에 빠지기 쉽고, 다른 사람의 신학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상처를 주고 받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신학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은 세상 정치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쨌든 저는 칼빈 신학 진영에 속했으니, 허수아비가 아니라, 진짜로 다메섹님에게 인격적으로 상처준 칼빈주의자들이 있었다면, 그분들이 본의 아니게 다메섹님의 신학적 입장에 충분히 공감해주지도 않고, 일방적인 비판만을 하면서 대화를 거부했다면, 여러 가지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서 전합니다. 그러나,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여전히 주위에 칼빈주의자들과 함께하여 주시는 신학적 관용에 진정으로 찬사를 보내며 감사드립니다. 멋집니다.^^
      참고로, 저는 칼빈의 성경묵상적 신학과 모든 것을 예정으로만 풀어버리는 칼빈주의적-연역적 교리는 결론은 같으나, 신학적 해석 과정은 다르다고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는 하나님의 대화로서 그분의 예지하심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최상의 응답을 받는 믿음의 실천이라는 칼빈의 신학적 주장을 그대로 말해줘도 오히려 칼빈주의자들에게 어떻게 감히 기도가 하나님의 예정하심의 영원한 뜻을 바꿀 수 있느냐?고 비난받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진심 존경하는 팀 켈러 목사님께서도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변경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ㅎㅎ 칼빈을 사랑하는 저도 칼빈주의자들에게 오해받고, 비판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학적 해석이 옳다고 믿으면, 받아야 할 비판과 오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메섹님의 동영상은 제게 늘 신선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르게 접근하는지?...바울의 새관점, 예정론 비판, 유신 진화론 등등 수없이 다르지만, 수많은 건실한 복음 주의자들이 속한 신학적 스펙트럼으로 인정합니다! 특히나 팟캐스트에 최고로 적합한 목소리가 늘 지적으로 매력적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DamascusLiveTV

  • @bcj-zn6gf
    @bcj-zn6gf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아버지와 죽은 딸 예시를 하셨는데요 이건 우리가 큰 죄나 작은 죄나 죄를 지었으면 죄인이라 하듯이 큰 고통일 뿐이지 특별한 고통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몸에 장애를 갖고 나왔거나 몸에 장애가 생긴 사람들은 원망하면 이상한 것일까요
    남보다 못한 부모가 있거나, 고아들은 원망하면 이상한 것일까요
    딸이 죽은 아버지보다는 나으니까요?
    딸이 죽은 아버지가 요점이 아니라 하나님은 왜 각 사람에게 이해되지 않는 고통을 허락하시냐는 것이 요점일 것입니다
    [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애가 3:33) ]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얘기합니다 이 고통들을 주시는 이유가 본심이 아니시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보면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납득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독교신자임에도 그만 죽여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엘리야, 요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너무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어 그만 살고 싶다고 원망의 기도를 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봐도 그때의 고통에 대한 확실한 응답은 아직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예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한 것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과 견줄 수 있는가?
    신의 아들의 죽음과 나의 당하는 것들을 견줄 수 있는가?
    신의 아들은 구더기로 보이는 나를 위해서 대신 죽으셨는데 내 모든 것, 목숨까지도 다 그분 것이라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고 나라면 눈 앞에 일어나는 일들에 좌지우지 되는 게 맞는가?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자기 아들을 걸고 사람에게 약속하시는 것을 보면 저는 하나님이 결코 장난치시는 분은 아니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하셨는데도 이걸 농담삼는 이들이 어리석어보일 뿐이죠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한복음 16:20‭-‬23) ]
    성경에 이런 말씀이 곳곳에 있는 줄 압니다
    너희 근심이 승리의 그 날, 기쁨이 되리라고 말입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저는 이 약속을 믿을 뿐입니다
    믿는 확실한 이유는 신의 아들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셨기에 더이상 토달 것이 없다고 봅니다
    최고의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당장에 나의 좁은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약속을 믿고 잠잠히 기다릴 뿐입니다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예레미야애가 3:26‭-‬28) ]
    왜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분명하며 그 비밀을 풀어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승리의 그 날, 모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모든 비밀이 풀릴 것을 믿습니다
    억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좌절하며, 외롭고, 고독할지라도
    약속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며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눈 앞의 고통때문에 큰 약속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잊는다면 그것이 내게 닥친 가장 큰 불행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것도 결국 하나님이니 덮어놓고 믿으라는 말에 그치는 거 아니냐고 할 것 같은데요
    저는 하나님이 신의 아들을 걸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믿는 자라면 잠시 원망은 할 수 있어도 아예 반기를 드는 것은 믿지않는 자라고 보는 바입니다
    약속을 믿는다 해놓고 그 약속은 아무것도 아니고 당장 내 고통이 더 크다고 하니 약속을 믿는다고 보긴 어렵죠
    물론 사람마다 신앙의 정도가 다르기에 원망할 수 있습니다 저또한 원망했었다고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원망을 끝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다면 이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배교한다고 하지요 하나님은 없다라고 까지 간다면 그는 애초에 약속을 믿은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약속이 있는 건 알았겠지만 그 약속이 자기 것이 되지는 못한 자죠.. 정말 안타까운 일이며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선 줄로 생각말고 날마다 정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문으로 두서없이 쓰느라 글 정리가 안 됐는데
    결론적으로 감추인 것들은 이 세상에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이들이지 다 알고 믿는 이들이 아니니까요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다른 곳에 시선두면 또다시 원망은 반복될 것입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니까요 지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약속을 굳건히 믿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인생을 끝까지 달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저또한 노력하는 중입니다 함께 화이팅했으면 좋겠습니다
    좌절할 수 있습니다, 원망할 수 있습니다, 낙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자라면 반드시 일어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언 24:16) ]

  • @user-gy3jl6pj2g
    @user-gy3jl6pj2g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가 좋아하는 다메섹님께 부족하지만 신정론을 생각 하면서 제가 만든 이야기를 적어 보겠습니다 만약에 천국에서 하나님과 피조물들이 영원전 부터 너무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보니까 피조물이 양심이 조금 찔리는겁니다 그래서 피조물이 하나님께 찿아가서 이야기 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천국에서 사는게 너무너무 행복한데 그런데 양심이 찔려서 세상에서 조금 살다가 오겠습니다 이랬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니다 천국에 모든것이 다 정리되어있다 그러니 안가도된다 그랬더니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래도갔다오는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이야기가 종료되는데 저는 이 이야기의 관점 을 피조물의 선한 양심 으로생각합니다 그리고천국을성선설로 생각해 봅니다 잘 모르겠지만

  • @gospelkim484
    @gospelkim484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 아 근데 그때 아브라함 그녀석은 정말 자기 독생자를 바치려했다니까?! 😲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놀랬었다 야

  • @obayesian
    @obayesian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딸 아빠가 스탈린이었다면??? 인간 시스템에 종속되는 신정론이라면 굳이 믿을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 @Barnabas153
    @Barnabas153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구약성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과정에서 관통하는 주제가 로마서 4장의 내용이 아닌가 생각 해보게 됩니다. 행위로도 할례로도 율법으로도 우리 스스로가 선에 도달 하지 못하지만 아브라함 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며 내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 감사가 되네요 ~!

  • @syul4133
    @syul4133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그렇다면 이 모든게 하나님의 자작극이 되지않은데 있어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설명될 수 있는건가요?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 토론을 한번 참조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th-cam.com/users/liveoica90-kNJY?feature=share

  • @HY-hr1jj
    @HY-hr1jj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저는 이 신정론이 비기독교인에게도
    더 믿기쉽고 합리적으로 들릴것같아요

    • @user-ub3wi9eh8e
      @user-ub3wi9eh8e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가 잘 이해가 안되서요 ㅠㅠ
      혹시 저를 좀 도와주실수 있을까요?
      영상을 요약하자면
      무참히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는
      1. 하나님의 왜 내 딸을 살해당하게 두었는지 모르지만, (알고리즘 처럼)
      2. 그 분노와 고통을 하나님께 향하며 (인간을 향하지 말고)
      3.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 (최고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면 좋을까요??

  • @Joy_...
    @Joy_...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신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억울하게 덮어쓰고 죽으신 예수님.

  • @user-zl7ph1mg1o
    @user-zl7ph1mg1o 24 วันที่ผ่านมา

    전독시가 생각나내요ㅋㄱㅋ 독자만 결말을 알고있지만 말한다고 한들 이해할수 없다ㄷㄷ ■■■ 블라인드 처리도 있지만ㄷㄷ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23 วันที่ผ่านมา

      초반부만 보았는데, 전독시의 주인공 설정이 전지하지만 시간에 맞춰 같이 호흡하는 존재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 @NO.1_brain_trainer
    @NO.1_brain_traine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기독교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봅니다.
    결국 신정론의 길에서 생기는 고통은 어쩔 수 없는것이고 그 고통을 하나님한테 한풀이 하는것까지가 포함된것이다. 라는 주장같습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고통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는것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해도 그 고통이 덜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화가 날 수 도 있다는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유를 설명해 줌으로써 오히려 내 자식이 옳은일을 했구나라는 확신에 의해서 고통을 더는 경우도 분명 존재할겁니다. 모든 인간이 이유를 모르는것이 좋을수도 있지만 이유를 정확히 앎으로써 고통을 벗어나는 경우도 분명 있을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설명해 줄수도 있지만 일괄적으로 전부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것은..
    오히려 신이 없다라는 방증 아닐까요?
    저는 또다른 세계관을 구축해보려 합니다. 예수님은 꼭 반드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했을까요? 그냥 신이니까.. 수리수리 마수리.. 인간을 구원하자 얍~~~ 하고 해도 충분한거 아니였을까요? 그런데 왜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신이니까 맘껏 아무렇게나 인간을 용서해줘도 되는건데... 굳이... 예수님이 돌아가셨을까..
    인간이 선악과에 의해서 원죄의 죄가 있고 그로 인해서 몇만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는게 말이 되나? 그냥 신이니까.. 다시 에덴으로 돌려보내면 되는거 아닌가.. 몇천.. 몇만년 고통받고 있다는건 너무한거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제가 든 생각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실때 법칙을 만드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정교함 컴퓨터가 돌아가는 원리처럼.. 또는 함수처럼.. x값을 넣으면 y가 나오게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한 정교한 법칙을 만드셨을거라고 생각하고 그 법칙에 의해서 인간의 DNA 유전.. 자연의 법칙.. 만유인력 등등.. 모든 법칙들이 다 정해져 있다.
    그래서 선악과를 안먹었을 경우와 먹었을 경우의 수가 다 정해져 있고..
    아홉살 어린 딸이 죽는 이유도... 처음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어떤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다.. 다만 Y값은 죽음인데.. X값이 무엇인지 우리가 다만 모를뿐이다.
    마치 게임처럼.. 어떤 특정한 곳에 가고 어떤특정 행동을 하면 게임에서 캐릭터가 미션을 받을수도 있고 죽을수도있고 여러가지 경우에 수가 있는것처럼..
    그리고 이 법칙에 인위적인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행위일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들의 너무나 불행한 고통들이.. 하나님의 행위가 아니라.. 처음 이세상을 만들때의 법칙에 의해서 단지 인간은 고통을 받는것일뿐.. 하나님의 그것을 바라시는것은 아니고 그 법칙에 의해서 단지 이루어졌을뿐이다.
    너무나도 정교하게 맞물려진 법칙이기에.. 이것을 바꿀수도 없는것이고..
    우리가 악과 싸워서 이기는 그 날도..
    법칙에 의해서 정해져 있으면 그 트리거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발동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뭔지는 우린 모르지만.. 그것 또한 정해져 있기때문에
    우리 인간은 기다리는수 밖에 없다.
    신이라서 모든것을 할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것..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할 수 없도록 세상을 설계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왜 세상에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것일까.. 그냥 짜짠!~~~ 하고 나타나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좋을테넫.. 거기에 대한 어떤 목사님의 답변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는 것이다. 목에 개목걸이를 하고 가는것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목줄을 차고 싶습니다. 방향을 정해주시면 그렇게만 행동을 하고 살고싶습니다. 라고 말이지요.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요..
    전쟁에서 강간을 당해서 어린 아이가 죽었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허용하신건가요? 허용을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하신다고요? 아니면 악의 독립적인 행위로 한것인가요? 하지만 악은 결국 하나님의 허용이 있어야만 할수 있는것 아닌가요?
    이도 아니면 혹시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해서 생긴것이니 하나님한테는 책임이 없는건가요?
    라는 것에 대한 해답을 많이 생각해보았고..
    제 해답은 법칙입니다. 어떤것이 원인이 되서 그렇게 결과값을 얻었는지도 도저히 알수는 없지만.... 세상이 처음 창조될때 모든 법칙을 만드셨고 그렇기에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신것도 그렇게 해야 인간이 구원받는다라는 법칙을 이전에 만드셨기때문에 필히 그렇게 했어야 되는것처럼..
    아이의 죽음도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만들때 세상의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다. 발동되는 트리거.. x값.. 원인이 정확히 뭔지는 알수 없지만.. 그 법칙에 의해서 어쩔수가 없었다..
    이렇게 설명을 해야 하나님은 선한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인간이 고통을 받을수 밖에 없는것도 법칙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것이고..
    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단적인 생각이고 사이비적인 생각이고 어쩌면 정답일수도 있고 답으로 가는 과정일수도 있고.. 헛소리 일수도 있지만..
    창조법칙에 의해서 그럴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해야 하나님의 행위에 대해서 이해가 가기때문에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이 생각이 전혀 틀리던 말던.. 상관없이.. 하나님과 무지하게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생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 악을 발생시킨것이 아닌.... 악이 발생했을 경우에 선으로 돌리기 위한 조건 또는 법칙등이 있다. 악과 고통이 생기는것 또한 법칙에 의해서 생겼고 이것이 선으로 돌리기 위한것도 여러 법칙중에 하나일 뿐이다. 악이 악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면 악이 선으로 변할수도 있다. 여러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가 악으로 끝나고 또는 선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 2가지 모든 가능하다. 왜냐하면 태초에 그렇게 설계를 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인위적이고 강제적으로 개입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신다. 그것이 신정론이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첫째로, 신정론보다는 신이 없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에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다만 그건 무신론이지 신정론 내의 논의는 아닙니다. 신정론은 '만약 신이 있다면, 왜 이렇게 고통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논의니까요. 질문 자체에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으니, 신을 전제로 대답하는 것이죠. 무신론 vs 유신론은 아예 별도의 논의입니다.
      전개하신 세계관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본인에게 그것이 의미있다고 느껴지는 설명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 @iranbinny
      @iranbinn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 해답은 법칙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 방법을 하나님이 쓰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법칙"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자주 언급되는 '율법'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세계관이 딱 이 세계관이지요. 인과응보가 적용되는 세계. 착한 자는 상을 받고 악한자는 벌을 받는 세계관.
      그러나 언급되는 욥기는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관입니다. 이 세상엔 '법칙'으로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요. 구약이 가진 '율법의 한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 '법칙'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왔어요. 수많은 율법과 지켜야할 절기들, 등등... 하지만 그 모든 법칙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한계는 신약에서 완성되는 것이지요.
      절대 헛소리거나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니깐요.
      계속 의문점을 품고 고민을 하는 것이, 고민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NO.1_brain_trainer
      @NO.1_brain_traine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DamascusLiveTV 답변 감사합니다.
      다마님이 하나님이 원치않는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의 말은 하나님의 계획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고 이 말은 신자들에게 굉장한 불안감을 줍니다.
      고난이 왔을때 계획하에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선하시니 뚫고 나갈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계획하에 있지 않은 상황도 있다고 하면 고난을 만났을때 이겨내기 힘들꺼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정신적인 안정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그 즉시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이게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마님의 주장하신 바가.. 하나님의 계획하에 이루어지지만 일부는 계획하지 않은 상황도 온다. 즉 모든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건지 궁금합니다.
      또는 그와관련된 영상이 있으시다면 님의 영상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 이제 막 기독교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르는것 투성이 입니다. 저의 세계관도 굳이 길게 쓴 이유는 저의 세계관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이건 신의계획하에 이루어 진다고 볼수있나?
      아니면 논외인가? 등에서 시작한 세계관이고.. 다만 전 초보이기에 자칫잘못하면 사이비식으로 빠져들까봐 걱정되서 쓴 글이였습니다.
      하여튼 다마님 영상 처음 봤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앞으로 구독해서 자주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와 같은 영상을 올려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 @NO.1_brain_trainer
      @NO.1_brain_trainer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iranbinny 매우매우 멋진 답변이고 도움이 됐습니다. 욥기에서는 그 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에 매우 동의를 하고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법칙은 인간의 유전자.. 우주의 법칙, 물리, 화학 처럼 모든것이 컴퓨터처럼 정교하게 맞물려서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 아.. 하나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실때 매우 디테일하게 설계하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원리에 의해서 우린 고통받는게 아닐까... 나도 모르는 어떤 x라는 행동을 해서 y라는 고난을 받는 마치...... 수학처럼.. 딱딱딱..... 프로그래밍 된거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법칙이란것은 구약에서의 율법과 절기등을 뛰어넘는 이 세상을 창조할때 만들어낸 법칙에 해당하는것입니다.
      누군가 암에 걸려 죽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계획하에 암에 걸렸을까요? 즉 하나님이 넌 암을 허용하게 했다. 라고 생각할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원죄에 의해서 암이 랜덤하게 걸렸다고 한다면.. 이건 또.. 하나님의 계획하에 걸린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세상이 무서워 집니다. 나의 고난이 하나님이 허용한게 아니고 계획도 없다고 하면 어떻게 그 힘듦을 긍정적으로 뚫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한것은 인간의 몸은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실때.. 인스턴트 먹으면 담배피면 암걸린다고 태초에 그렇게 법칙을 만들었는데 우린 나쁜것을 먹으니 암에걸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계획하에 이루어진것이고 악의 허용도 이해가 되고 또한 동시에 선하신 하나님도 이해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무조건 죽습니다. 이것 또한 인간이 태초에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지요. 즉 태초에 설계된 룰에 따라서 인간은 고난을 받는다. 다만 그 고난의 트리거.. 즉 마치 게임속 미로의 암살장치처럼... 어떤것을 밟으면 어떤 고난이 튀어 나온다.
      이것은 태초에 설계된 룰이기에 하나님도 바꾸기 어렵다.
      이렇게 이해하면 하나님이 악의 허용도 그렇게 설계됐기에 어쩔 수 없이 허용될 수밖에 없는거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목사님은 암에 걸린것에 대해서 자기자신을 비난하시다가 내린 결론이 이 세상은 원죄에 빠져있기에 랜덤하게 걸린 병이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라는 결론에 이르셨습니다. 하지만 전 이결론에 반대하는것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에 이루어져 있다는것을 반박하는 것이고 악의 허용도 하나님의 뜻이여야만 합니다.
      왜냐면 내가 깊은 고난에 빠졌을때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것이다 라고 생각을 해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니 반드시 나의 선한하나님이 나를 건저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즉 태초의 롤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악이 허용되도록 하였다. 하나님이 변태적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가장 적합한 보편적 법칙이였기에 그렇게 하였다. 그런 형태가 인간을 가장 선한 결과로 이어지기에 용이함으로..
      뭐 이정도가 제가 생각한것입니다.
      아직 기독교적으로 너무 수준이 낮은 사람이라서 님같은 답변이 단비와 같습니다. 너무 배우는것이 많습니다.
      답변 매우 감사드립니다.

    • @iranbinny
      @iranbinny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NO.1_brain_trainer 태초의 룰. 이것을 우리가 흔히 아는 단어로 바꾸면, '과학'이지요. 맞습니다. 인간의 몸이 생겨난 원리는 생물학, 의학이고, 지구가 탄생한 것은 천문학, 물리학이지요.
      이러한 자연법칙, 즉 과학의 원리는 인간의 이성보다 더 큽니다. 과학자들도 과학을 알면 알수록 깨닫는 것이 '인간이 무지하구나'를 깨닫는다고 해요. 이것은 무신론자 과학자들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다른 점은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겸손'을 배웁니다. 나는 모른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이 '겸손'은 모든 지혜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지혜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과학이 발전된 과정은 '나는 모른다'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우주의 원리를 모르기에, 사람들은 물리학을 탐구했습니다. 인간의 작동원리를 모르기에 의학, 생물학이 만들어진거죠.
      결국 이 '겸손', 나는 모른다, 이 개념이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나는 죄인이다'라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교만'이거든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인에게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 @mikepark8025
    @mikepark8025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인간에게 완전히 이해되는 신은 신이 될수없다.
    인간은 하나님께 이해시켜 달라고 요구할 권리 같은게 없다.
    아니 요구할 만큼 선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불합리한 사건들은 대부분 사탄의 역사이다.
    사탄이 고민하며 괴롭힐 만한 선한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일을 할뿐…
    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nocrossnocrown9143
      @nocrossnocrown9143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그런 권리있는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버지도 자신의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줄 수 없듯이 하나님도 같은 마음이실거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자녀의 불평을 허용하고 자녀 또한 이를 호소하는 것.. 이게 참다운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모습 아닐까요?

  • @Daniel_kang
    @Daniel_kang 24 วันที่ผ่านมา

    다마스커스 님의 신정론에 의하면
    가장 슬픈 아버지는 하나님일테고
    어린 9살 나이에 죽임당한 이는 예수님이겠네요.
    다마스커스 님의 현재의
    고민/비판/논리적 생각/기도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도와도 같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국은
    순종하셨죠.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 @Ahnjoshua
    @Ahnjoshua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신정론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미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끝에 나옵니다. 인류 역사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촌극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의 죄악과 저주를 감당하셨습니다.

  • @user-bx6lr9ie9l
    @user-bx6lr9ie9l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CS루이스 고통의 문제

  • @sjy9567
    @sjy9567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이런식으로 말하면 전 이만희도 옴진리교 교주도 쉴드칠수있어요;;

  • @user-df4wp5cs9b
    @user-df4wp5cs9b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알고리즘은 매순간 평가, 시험 받는데.. 신뢰의 대상이 아님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알고리즘 자체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느냐가 포인트가 아닙니다. 포인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평가받는지, 어떻게 시험 받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권위에 의해 쉽게 신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gods705
    @gods705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하나님을 오해하시고 믿지 아니하시는 분들이여
    태초에 세상은 완벽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매우 사랑하셨고 수동적인 피조물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마음으로 기뻐하고 경배하며 사랑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스스로 악을 택하였고 그 결과 영생과 참 기쁨을 잃어 버렸고 인간이 하나님께 다스림을 의탁받은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죽고 병들고 썩어지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그 결과는 끔찍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는데 세상이 왜 그런지 말씀드린다면 바로 죄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주 작은 암에 걸리면 그것이 자라서 온몸을 썩게하고 문드러지고 흉해져서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악이 하늘에까지 닿게 되었고 하나님은 슬픔과 진노 속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물로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여 세우셨지만 그들역시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여전히 사랑하셨고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그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이땅에보내시고 세상 죄를 그 아들에게 짊어지우시고 십자가에서 죄와 함께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죄를 사함받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3:16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참 사랑과 심판의 공의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지만 공의가 없다면 죄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 계속 죄를 짓게 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왕의 왕이 되셨고 그분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는 죄사함과 영생을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죄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그분의 사랑을 영원히 찬양할것이며
    지옥에서는 공의로 죄를 선택한 자들이 마지막이 어떠한지를 영원히 고통받는 자들을 통해 세세에 기억될것이며 그의 나라는 그 사랑과 공의로 영원할 것입니다

  • @cocogithub
    @cocogithub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베스트셀러는 이유가 있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