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가 끝나고 아무도없는 예배당에 돌아가신 은퇴목사님의 노 사모님의 늘어진 성대와 울음섞인 찬송가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찬양을 한시간 가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모님 연세가 87살 그 시간 동안 들렸던 찬양은 예배당 가득 형언할 수 없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청중인 저도 사모님도 성령께서도 함께 드린 거룩한 예배였음을 기억합니다. 사운드, 몸짓, 악기, 실력, 기타등등의 모든 조화로움과 기술이 예배의 요소일까요?
저는 같은 곡을 영화 타이타닉 중에 악단 리더가 연주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고 연주자로서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영화에 나오는 그 연주를 보면서 그것이 예수쟁이의 삶의 모습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눈물로 예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영상에서 두분이 같이 지적하시고 동의하시는 내용이 바로 마지막에 적어주신 부분과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운드, 몸짓, 악기, 실력 기타등등의 모든 조화로움과 기술이 예배의 요소는 아니지만 회중에 예배시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경우라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 라는 것이지요. 회중이 그것을 필요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회중의 연령대, 문화권, 음악적 배경 등등의 것들이 다양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판단은 해당 순서를 맡은 담당 교역자와 찬양인도자가 할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본질적인 복음에 대한 접근 없이, 예배의 주체가 되는 회중에 대한 깊은 배려 없이 다른 교회에서 하니까, 멋있어 보이니까, 화려하니까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일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형교회와 선교단체, 군대교회, 그리고 파병을 갔던 이라크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게 되었고, 일반대학교 졸업후 서울에 있는 모예술대학교에 실용음악과를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청, 부탁으로 찬양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작은 교회에서 예배시작 전 잠깐의 찬양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자하는 전공생들과 거기에 부합한 음악적 요소들을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하던 매주 2회?의 찬양인도, 60,70대 어르신 10여명과 저 기타와 아내 건반으로 찬양하는 지금의 작은교회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경험과 현실속에서 찬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은 예배의 요소인가 아니면 찬양 그 자체가 예배가 될 수 있고 찬양예배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1. 찬양을 예배의 요소로 여긴다면 엄청난 찬양실력과 구성, 인도자의 탁월한 찬양인도, 찬양인도자의 개인적인 신앙과 그 모범성이 모두에게 아주 눈부시게 분명할지라도 찬양은 찬양 그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찬양은 예배의 요소라고 정의합니다) 찬양(콘티)을 잘 준비했구나, 혹은 준비한 그 마음이 느껴지구나, 이 찬양의 주제가 무엇이구나, 라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거나 조금 느끼는 것이지 찬양 그 자체와 찬양인도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거나 이를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2. 그러나 찬양을 예배의 요소가 아닌 찬양이 예배의 그 자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지금 두 분이 나누시는 내용처럼 다양한 생각과 주관이 오고 갈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찬양의 이야기와 의미를 찬양인도를 통해 성도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몸이 안좋아서 음이탈이 될 때가 있고 밤새 갓 태어난 아가의 육아로 인해 찬양인도 준비가 수월하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찬양을 통해 부족한 내 마음일지라도 분명하게 믿는 바를 고백하고 싶은 대상이 ‘MZ젊은사람 혹은 어르신, 음악을 전공한 사람, 음악적 지식이 높은 사람, 절대음감의 사람, 교수, 목사님, 사랑하는 아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음악적 지식이 없는 사람’ 이 아니라 하나님이기에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 향하는 찬양에 촛점을 분명히 두고자 노력하고 찬양과 그 인도를 준비한다면 여러가지 요소가 저는 아주 자유로운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리드미컬한 현대 기독교 음악과 그 효과를 좋아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최선의 찬양이라고 정의한다면 지금 함께 찬양해야할 60,70대 어떤 어르신들에게는 곤욕과 어려움을 줄 수 있겠죠? 모두가 잘 아는 찬송가와 아주 오래된 복음송이라고 할지라도 그 가사와 의미가 잘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그 찬양의 고백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고자하는 믿음을 담은 찬양이라면 그보다 좋은 찬양과 최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찬양은 예배의 요소인가 찬양 그 자체가 예배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위 주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한 때 화려한 찬양과 분위기, 특히 부흥회나 특별 집회에서 기도가 잘 나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찬양 없이 혼자 조용하게 기도하면 기도가 뭔가 막히고 잘 나오지 않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내가 울고 불고 기도하던 것은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드럼 비트, 신스, 일렉, 베이스 사운드였고 인도자, 사역자들이 억지로 쥐어 짜듯이 소리치고 이끌어내어 '만들어진' 분위기에 의해 감정이 동요 되어서 나온 기도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나 마음 상태는 분위기나 열기,소리, 에너지 파동 등에 굉장한 큰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에고만 좋아하고 강화 시키며 그런 상황에 속임 당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마치 놀이 공원에서 스릴 있는 데이트 하면 심장이 빨리 뛰기 때문에 이성에게 더 끌리고 사귈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주님께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임재는 시끄럽고 웅장하고 화려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잠잠한 곳에서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타를 전공했고 유명한 사역단체에서도 예배팀경험이있고 현재는 어쿠스틱기타로 시골교회에 어른들만있는 교회에서 사역간사로있습니다 기타솔로에대해 한말씀드리면 솔로는 곡에서의 한 멜로디 그러니까 그곡의 하나의 멜로디라고 생각해도좋을거 같아요 찬양이라는건 곡조가 있는 노래를 하는것을 찬양이라고 하면 기타솔로의 멜로도 가사가 없지 찬양이 아니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편에는 악기연주자들이 공교히 연주해야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솔로가 있어야 하냐 없어야하냐가 아니라 악기로 음악으로 예배를 하냐 안하냐가 제일 중요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본인의 부족함이라고 마무리하셨지만 엠마오님의 관점도 충분히 이해되었고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예시도 좋았습니다 저는 16마디든 32마디는 솔로를 비롯해 어떠한 음악적 장치나 효과도 그 자체로는 단지 도구에 불과한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사는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상각합니다. 그래서 가사에 관한 토크를 꼭 보고싶습니다!!!
몇일전에 채널 처음 보고 하나둘 토론을 보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네요. 이 토론에 있어서 저는 엠마오님쪽 의견에 가까운듯 합니다. 화려한 것의 기준은 개개인에 달린 문제겠지만 예배외의 무언가가 더해질 위험성을 구분하는 것은 결국 변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인듯 합니다. 변수가 적은 상태에서는 설령 그것만으로도 자기 욕망을 위해 찬양하는 이가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날 여지가 없는것.. 화려함이라는 변수를 늘일수록 더 통제하기 힘든것.. 그 차이라고 봅니다. 엠마오님 의견은 예배의 본질을 위해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다메섹님 의견은 어차피 위험을 피할 수 없다면 기준으로 삼을 필요 없다 인데 예배는 보수적으로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결국 엠마오님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의 욕망이 예배를 망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마섹님은 어떤 시스템이라도 사람의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스템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네요. 이건 전형적인 개인의 문제(보수)와 공동체의 문제(진보)의 갈등이 있는 한 영원한 갈등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메섹님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곙배드리는 개인의 마음의 문제"라는 입장인데요, 화려한 조명과 심금을 울리는 찬양 등도 예배의 요소로써 예배를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엠마오님의 주장도 고려해 보아야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서 식물만 먹겠다고 말씀한 것을 기억하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음악과 영상에 마음이 뺏기는 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또,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음악과 영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먼저 믿은 성도나 교역자들이 음악과 영상으로 믿음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그것에만 빠져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 참 반갑네요. 제가 어렸을 때에 (뭐 지금도 어리다면 어리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교회에서 이런 논쟁(?)이 있었어요. 예배시간에 드럼을 치는게 옳은가? 일렉기타며, 베이스며, 키보드로 연주하는게 옳은가? 너무 화려함에만 치우쳐서 너무 악기에만 치우쳐서 중심을 놓치는 거 아니냐? 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돌았었어요. 실제로도 드럼까지는 아닌거 같다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예배시간엔 드럼금지까지 됐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일 아닙니까? 화려한 음악에 치우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고, 주의해야 하지만 그것들에 매여서 금지할 필요는 전혀없다. 라는게 결론입니다.
토론 정말 재밌네요! 찬양팀을 10년 넘게 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에요.저는 우울하고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교회에서 기타를 배우게 됐고 찬양팀으로 섬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코드도 제대로 못쳐서 예배 때 수없이 틀렸어요. 틀리지 않기 위해 반주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예배를 드리는 건지도 모르겠고 혹여나 틀리면 예배를 방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몇 년을 섬기면서 실력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실력만 좋아진 게 아니라 성격도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소심하고 자신감 없던 제가 기타솔로를 준비하고 준비한만큼 잘 해내면서 다른 악기팀과도 어울릴 줄 알게 되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나님은 악기 연주자도 이렇게 성장시키시더라고요. 엠마오님 의견에도 동의하지만 저는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공급과 은혜를 주시는 쌍방의 생동감 넘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배 시간에 우리의 어떤 행동이 누군가의 예배를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예배자의 마음인 것 같아요. 기타 반주했던 사람으로서 나의 기타 소리가 회중의 마음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자의식과잉일지 몰라요. 진정한 예배자인 회중은 생각보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잠깐은 주의를 빼앗길지 모르지만 진짜 예배 드리기 위해 온 사람은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건 회중이나 기타 연주자도 마찬가지고요.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걸 막을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또 악기 솔로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막을만큼 대단하지도 않아요. 하나님은 크신 분이죠. 악기 솔로가 그 순간에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찬양팀을 하면서 했던 고민인데 올려주신 토론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저는 비전공자인데 피아노를 연습하다보니 어느 새 뛰어난 피아노가 들릴 때 하나님이 아닌 반주법에 귀가 쏠리는 경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악적인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것이 찬양에 방해가 되었던 적도 있으니까요. 저는 엠마오님 말씀에 좀 더 공감이 가는 게 때로는 음악이 주는 그 감정에 취해 하나님 없이 감동했던 순간이 있고, 악기 솔로에 청중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에 이질감이 든 경험이 있었거든요. 화려한 음악을 빼는 게 매번 능사는 아니겠지만 제 생각에는 특히나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되는 몇몇 지점에서는 stop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실력이 안 되는 아마추어 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음원 카피, 악기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솔로 등)! 그렇지만 기타 솔로가 있는 화려한 기도 반주 속에서 더 뜨겁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경험도 있다보니 다메섹님이 말씀하신 솔로가 빠지면 그것 나름대로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성경을 근거로 생각해보자면 , 구약시대에는 레위 지파들이 찬양을 드리는 일을 맡았었고 성소에서 섬겼습니다 . 그리고 악기를 비파와 수금 등의 악기를 사용해 찬양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심지어 예수님과 사도들께서도 악기를 동원해 찬양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 악기 없는 가운데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한 것 뿐이죠 .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보더라도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찬양할 것 " 을 사도 바울께서 가르치셨는데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는 실상 같은 의미를 중복 표현한 " 동의어 병행법 " 에 해당한다고 신학자들도 보는 편입니다 . 동일한 의미의 해석을 드러내어 강조하는 표현 방식이죠 . 시는 곧 헬라어 원문에 " 프살모스 ( 시편 ) " 라고 드러납니다 . 그래서 칼빈과 동료 개혁자들도 시편 찬송이 타당하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 그리고 신약성경엔 악기를 동원한 찬양이 드러나지 않기에 개혁신학자들은 " 무악기 시편 찬송 " 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 실제로 지금도 동방 정교회는 무악기 화음 찬송만 드리죠 .
어저께 이거 보다가 잠 못잤습니다... 진짜 찬양 들으면서 항상 느꼈던 주제입니다. 청중 입장에서 찬양팀끼리 삘 받아서 찬양하는 모습도 많이 봤고(그들이 나이롱 크리스찬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찬양리더가 삑살과 엉망인 세션의 경우도 봤습니다. 장단점이 있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초2부터 성가대를 하고 성인이 되어선 찬양팀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씨씨엠이 너무... 거부감 들기 시작했어요... 감성적인 멜로디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느낌... 어떤 멜로디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다들 은혜에 취했는데 나만... 수련회 마지막날 촛불의식할때 다들 엄마... 하고 펑펑 우는데 낼 집에 가서 볼건데 왜저래... 하고 홀로 멀뚱거리는 느낌...
개인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봄. 찬양을 통해 나의 ego 를 들어 낼것인가 아니면 온전한 찬양의 "도구" 로 사용될것인가의 마음은 "자신"이 제일 잘 알기에. 만약 내 연주나 노래에 대한 인도자나 회중의 비판 (critique) 에 직면 했을때 지나치게 감정의 요동이 생긴다면 그건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봄. 찬양팀 일렉 기타로 20년째 섬기고 있는 본인의 솔직한 생각은 찬양 중간에 4마디 이상의 긴 기타솔로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찬양의 방해가 될 리스크가 너무 높기에 배제하는게 낫다고 본다, 인도자가 요구한다면 순종해야겠지만.
두분 이야기 듣고 지은 결론: “이유있는 화려함은 괜찮다” 뚜둔. 찬양곡의 가사를 음악으로 풀어냄에 있어서 찬양인도자인지 하여간 음악감독이 있을거고 그의 지휘하에 각자 맡겨진 영역에서 카메라 앵글, 기타솔로, 드럼 등 곡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한 수단 안에서 모든 화려함이 가능하다고 봄.(카메라 앵글은 현장감.및 곡표현도 때로 가능하다고 봄. 때로는 역동적이게, 때로는 차분하게) 결국 “주어진대로 맡겨진대로” 실행하는 세션 및 싱어 카메라맨을 뭐라 하진 말 것. 주어진 화려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걸로. ( 꼭 보면 자기가 돋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전체조율자에게 따지더군요. 제꺼 볼륨 좀 더 달라거나 둥. 지가 자체 볼륨 쎄게 주는 등 ㅋㅋ)
엠마오님이 게시글 올린 걸 봤을 땐 엠마오님에 동의했다가 토론 진행될 땐 다메섹님 입장에 동의하다가 QnA 전에 마지막 발언에선 또 엠마오님에 동의하다가 그러면서 봤네요. 결론적으로는 원칙적으로 다메섹님께 동의하고 상황적으론 엠마오님께도 동의합니다. 형식(화려한 찬양)이냐 내용(하나님께 집중하는지)이냐 문제인 건 같고, 다메섹님은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은 상관 없다, 엠마오님은 형식이 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형식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하는 요런 차이인 것 같네요. 내용이 중요하다는 부분에선 두 분 다 같고요. 토론에서 논의를 위해 그냥 화려한 찬양을 기타 솔로로 좁히고 갔어도 됐을 것 같네요. (+QnA에서 ppt 예시도 이해가 확 되는 예시인 것 같아요.) 엠마오님 주장은 기타 솔로(화려한 찬양)가 예배에 득이 될 게 없고 연주자(연주자는 자신에게, 회중은 연주자에게)에게 집중될 위험만 있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예배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니 기타 솔로도 올려드린다는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영상 중에서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으면 회중들 안 보는 데에서 뒤에 연습실에서 하면 되지 않냐 라고 하셨지만, 공예배에서 올려드리는 거랑 공예배 자리 아닌데서 하는거랑은 또 다르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다 아시지만 기도를 요구하시고, 우리의 삶의 자리가 다 예배 자리이지만 따로 떼어서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듯이 뒤에 연습실에서 하는거랑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엠마오님 말처럼 기타 솔로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고 예배에 도움이 안 된다면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다메섹님 말처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니까 기타 솔로를 하면 안돼 라고 하는건 좀 두고 볼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기타 솔로가 정말(항상)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는가? 기타 솔로를 하지 않는 결론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엠마오님의 의견이 제가 평소 말하던 것과 비슷하네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바라십니다. 세상은 최고를 지향하지만 하나님은 최선을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찬양팀이 최고의 반주를 지향하는 상황도 있다고 봅니다. 실력 우선, 능력 우선인거죠. 그 보다는 최선의 예배, 공동체를 향한 예배가 되면 좋겠네요.
하나님이 최선의 찬양을 바란다구요? 하나님의 원함이 "인간의 최고 정성"이 아니라는 걸 성경을 차근 차근 공부하면서 깨달아지길 바랍니다. 참고로 이 세상의 역사가 시작되는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정성"을 여지없이 부정해 버리시면서 출발하고 있답니다. 성경은 인간의 최고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하나님의 최고 정성을 인간들에게 어떻게 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답니다.
@@공유-n1b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정성)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의미도 가치도 두지 않고 있음을,,, 성경을 조금만 봐도 금방할 수 있다고 한 것인데 끝문장을 보시고 구원에 있어서의 최선으로 이해를 하시다니,, 와우!~ 역시 저보다 님의 문맥파악 능력이 월등히 높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 하나님은 최선을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최선"을 원하신다는 뇌피설적 주장만하지마시고, 구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좀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두번째로 ,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최선" 을 님은 다하셨습니까?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런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거짓말처럼 들리거든요 ,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최선을 다했냐"고 묻고 있는것입니다. 세 번째 ,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최선"의 기준점이 어느 정도인지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님이 정해놓은 최선의 기준점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한 찬양과 기도를 원하신다면, 어떻게 얼마나 해야 '최선'을 다한 것이 될까요? 그리고 보너스 퀴즈를 내도될까요? 제가 3가지 질문을 님에게 던지 의도가 무엇인지 맞춰보세요, 물론 저보다 문맥 파악을 훨씬 잘하시니 쉽게 맞출 수 있겠지요? 그럼 문맥파악도 못하고 답답한 소리만 하는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morming94 먼저, 처음 다신 댓글에 내용도 추가하시고 말투까지 싹 수정하신 것 같아 뭔 의도로 이러시는 건지 황당하네요. 1. 마음을 다한 예배를 원하신다는 기본적인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시고 이를 뇌피셜이라고 말씀하시다니요.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선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겠죠. 이를 마음을 다한 예배라고 볼 수 있죠. 마음을 다하는 예배라는 것을 살펴봐야겠죠. 님은 제가 최선을 다한 예배를 말하니 바로 '정성'이라는 말을 가져와서 오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말을 더 하신 거죠. 제가 말한 최선은 정성을 다해 드리는 무속 신앙의 예배를 말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저는 마음을 다한 예배를 최선의 예배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게 뭘까요? 바로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을 말하죠. 곧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것과 가르쳐 주시는 것에 힘 입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마음을 다해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죠. 진리의 예배는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인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우리에게 주신 새생명의 은혜를 덧입어 의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이겠죠. 3.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예배, 무언가 행위를 통한 정성을 다한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덧입은 최선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너스 퀴즈에 대한 답은 위 답변들을 통해 다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는 괜한 시비조로 댓글을 다셔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공유-n1b 우리의 더러운 죄인된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의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거라구요... 아 그럼 님은 지금까지 예배를 드리면서 추악한 자신의 실체가 대속되어 의인의 모습으로 드렸군요, 단 한번도 예배 중에 딴생각도 안하셔구요,,, 최선을 다하셨냐고 물었는데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하시고,, 문맥을 잘 아시는 분이 "최선"이라 단어 속에 행위가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아셔야지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그 최선의 행위조차 부정당하는 자리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가지 질문을 통해 불가능한 죄인됨을 스스로 증명시키려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문맥을 잘아시는 분이 문맥을 전혀 못잡으시다니,,, 그리고 글의 앞부분에서는 마음을 다해 (노력을 다해) 예배해야 한다고 말해놓고 뒤에서는 행위가 아니라고 하시다니... ㅋㅋㅋ 불편한 상황에 말리지 마세요
개인적으로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불필요한 예배요소들'은 '해당 예배에 대한 전체적인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OO찬양팀'이라고 명칭하는 집회에 참석한 것이고, 그 모든 과정은 'OO찬양팀'의 기획과 계획에 의해 짜인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상과 음악적 장치를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찬양팀 전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생기게 되죠. '누가 예배의 주인인거지?'라는 의구심이 그 시간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내가 주인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은 기독교인으로서 평생 가져가야 할 숙제이죠. 교육으로 '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개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은 예배의 과정에서 지양해야 합니다. 연주자가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 악기로 찬양하는 모습이 꼭 솔로 연주의 모습으로(그 모습을 또한 스크린에 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솔로 연주를 보며 저는 '하나님의 위대함'보다 '개인의 연주실력'에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와 대단하다!', '와 멋지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솔로 연주는 예배가 아닌 개인 콘서트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방송실 20년 하면서 예배화면 다 없애고 검은 화면에 가사만 띄우자는 주의인데 간혹 그런 솔로화면 띄우는 교회를 보면, 님처럼 사람의 실력에 눈이 가기보다는 "아 저 친구 저렇게 기타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구나. 나도 열심히 하나님께 찬양해야지"라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구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skdidufjfndbde 맞습니다. 정답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람의 성향이 동일 할 수 없기에 이런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거죠~ 하지만 바울이 고기를 안먹었던 이유를 감안한다면, 예배의 본질에 저항이 되는 요소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지양하는 것이 맞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형 워쉽팀 지도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100% 같은 말은 아니지만 뉘앙스가.. 이랬어요. 신앙이 연약할 때, 또는 무신론(?)자 일 때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찬양 스킬과 악기들이 주는 느낌도 필요하다. ( 저 역시도 그랬던 것 같아요 ) 그리고 신앙이 자라면 거기서 머무는 것은 젖먹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합니다. 본인이 은혜 받고 감동 받는데서 나아가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딱딱한 말씀을 씹고 찬양 스킬과 모습보다는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단순한 찬송가에서도 은혜를 느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모습의 찬양이던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필요하지만, 그 다음 단계를 갈 수 있게 제시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토론 참 좋습니다.^^ 개신교 유튜버들의 진지한 토론의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다 본질에 집중하려고, 한 영혼이라도 더 생각하는 거, 절제하는 거 참 좋습니다. ㅎㅎ 근데...다소 길다는 ㅎㅎ 반복되는 내용으로 ㅎㅎ 조금 더 편집하셔도 ㅎㅎ 그래서 바로 결론으로 승자투표로 가게 만드네요 ㅎㅎ
두분의 의견에 다 적극 공감합니다. 저는 목적이 명확하다면 진리에 반하지 않는 어떠한 형태, 형식, 기술적인 것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목적이 명확하게 있는 게 아니라면 기술적인 요소들은 가급적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시에 Sing-Along의 주체가 되어야 할 회중의 문화수준, 지식 수준, 배경 지식 등등의 상태에 따라 맞춰서 고려되어야 하고 그 판단은 담당 교역자와 찬양 인도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판단을 어떤 식으로 회중의 수준을 고려할지, 찬양팀원들은 어떤 부분에서 조심하고 준비되어야할지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는 것이 한국 교회에서 큰 문제이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두분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런 부분을 교육하고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 과정에서 음악적 스킬, 화려함을 복음, 예배에 집중하는 것과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처럼 생각하게 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다메섹님이 가진 우려로 이해됩니다. (엠마오 목사님은 프레임질이라고 반 농담으로 말씀하셨지만요 ㅋㅋㅋ) 실제로 이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해야한다 말아야 한다로 접근하게 되는 경우를 저역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목사님의 주장을 조금 풀어서 설명해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엠마오 목사님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나름 요약해보면 1. 음악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나 사운드의 감상 과정에서 따라오는 음악적 엑스타시, 트랜스 상태를 복음의 기쁨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위험하다 2. 화려한 음악(결과적으로 예배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사람)에 집중을 빼앗겨서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라는 말씀이 중요한 내용이고 그러므로 곡을 선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결국 찬양팀의 역할, 위치가 성도들의 집중을 해하지 않도록 스킬적인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데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오버스펙되어 표출되는 스킬이라면 결국 스스로를 높이게 되므로 이에 대한 기준은 팀원의 수준과 회중의 수준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아주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이 단순히 있어보이니까, 다른 팀들이 하니까 그냥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예배할 회중. 성도이니까 그에 대한 고민을 합시다 하는 움직임이 한국 교회에, 예배팀에, 찬양팀에 널리널리 퍼지길 기도합니다. 다만 이 내용은 예배시 회중찬양을 담당하는 찬양팀에 대한 내용이며 한국 교회의 예배시 성가대의 역할과 다르다는 점, 매주 일어나는 예배 찬양과 특정 대상이 참석하는 찬양 집회가 다르고 콘서트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므로 이 내용을 보는 시청자가 이런 부분들에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위에 언급한 성가대, 예배 찬양, 집회, 콘서트에 대해 따로 두분이 의견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엠마오님이 잠깐 언급만 하고 지나간 '영상미'가 정말 많이 공감되었어요. 해외선교를 갔다 오든, 찬양콘서트를 열든 돈이 좀 있는 교회는 비싼 카메라에 하나님을 위해 손을 높이 들고 눈을 감은 아름다운 여성 혹은 남성을 비춰줍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드높이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 인간에게서 신적 권능, 겸손한 인간상, 거룩한 인간상, 세상과 다른 결을 가진 고차원적 존재에 대한 욕망이 생겼던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성도들도 찬양 예배를 드리며 주변에 카메라맨 돌아다니는게 잘 보입니다. 평소에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찬양하던 사람도 카메라가 있다는 걸 의식하면 예배에 거짓과 과장이 섞이게 됩니다. 그렇게 청년들 중에는 '하나님을 드높이는 아름다운 나'라는 욕망으로 찬양에 감화된 나를 꾸며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손을 들여 찬양하는 모습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 맞죠. 제가 갔던 교회에서 구석에 한 노인 분께서 한 손을 들고 조용히 찬양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모습은 비신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도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상이 너무 흔해진 지금, 이것이 독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를 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찬양(예배 준비)의 독인가?' 라는 주제는 예배의 순서를 담당하는 사람(스태프)과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독의 유무인지 될 거 같아요 누군가에겐 치유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독의 순간이 되니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은 하나님과 예배 순서를 담당하는 사람, 예배를 참여하는 사람의 합한 화음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토론이라는 건 이분법적으로 진행하다보니 한 쪽의 의견에 치우치긴 힘들지만 이러한 토론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한 번 쯤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건강한 사람이 된다는 거에 의의를 느끼고 갑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배도 관계안에서의 행위로 정의되면 비교적 간단하다고 봅니다. 일단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거야 니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 라는 말 자체가 너무 율법에 매인자들의 폭력적인 언사라 봅니다. 사람은 죄인이라 화려한 솔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을 드러냅니다. 연주를 틀리지 않고 잘하려고 주중에 연습하고 노력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높이는 중입니다. 자아가 드러나지 않는 예배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십니다. 어린아이의 재롱은 어른들을 위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독무대지만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전심으로 부모를 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한다 말아야 한다는 율법입니다. 자유하셔도 됩니다. 내 연주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연주따위에 가려질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예배입니다. 찬양팀연습하러 예배당에 들어가다 비뚤어진 의자 살포시 제자리에 놓고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솔로를 할일이 있으시다면 "하나님 제가 열심히 연습했어요 기쁨의 노래를 받아주세요"라고 고백하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쁨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춤을 추십니다 ^^ 헛된 모든 사조와 악한 사단의 정죄로부터 자유하세요!
찬양은 누구에게 독이 되는가? 라는게 정의되면 좀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에서는 찬양을 인도하는(찬양팀) 사람에게 독이되는가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고, 어떤 내용에서는 찬양을 드리는 청중에게 독이되는가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문제의 핵심은, 찬양팀과 청중간의 공감대 형성인것 같습니다. 영상 속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화려함의 정의는 저마다 다 다르기에 그 찬양이 절대적 기준에서 어느정도 화려한가를 고려하기보단, 그 찬양이 찬양팀과 청중 안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찬양하는가? 에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공강대가 형성되지 않더라도 청중들은 다양한 형태의 찬양에서도 하나님께 기쁨 또는 슬픔 또는 감사 또는 결단의 찬양을 드릴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화려함만이 예배에 방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화려하지 않음도 예배에 방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험성을 강조하기보단, 모든 상황에 적응하도록 청중들에게 적절한 마음가짐을 교육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다마스커스님의 주장과 비슷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듣다보니....엠마오님이 말하는, '이것이 하나님께 방해가 되는것일까?'하는 고민 그리고 그것을 절제하고 제한하는 마음가짐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어렵네요....
엠마오님. 교회 특송은 어떤가요? 기타 솔로나 드럼솔로는 일부 교회 찬양이지만, 교회 특송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이기에 교회 특송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예배중에 솔로로 특송을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마도 엠마오님이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지금의 생각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음악은 언제는 그 상황에 맞는 연주와 장르가 있습니다. 블루스, 클래식, 힙합, 헤비매탈..등.....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과 대상이 원한다면, 어떤 음악이 가장 하나님의 이름과 은혜를 찬양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되면 안될 것 같아요.
오른쪽이 맞다. 왼쪽은 문제의식에 동감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잘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아서 저러는 거다. 한마디로 현대의 찬양팀 영상이나 모습들에서 거슬리는 것들이 별로 없는 거다. 유투브 봐라. 건반주자들 집회가는 모습부터 영상에 담는다.그러고는 옆모습 신경쓰면서 건반치고.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 즐길수 있는 요소가 매우 강한 예술입니다 견물생심 유혹될만한걸 굳이 가까이 두면서 잘 통제하면 된다고하는건 위험한 발상인듯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므로 음악적 형태는 상관없지만 음악 자체를 예배할 유혹을 굳이 풀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보통 엠마오님 하는 말씀들 반대하는데 이번엔 아니네요..
다윗이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고 수 많은 백성 앞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언약궤를 보며 옷이 벗겨지도록 춤을 추는 것도 모두 범죄 함 일까요? 유혹에 당한 것일까요?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앞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자신의 자아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의 중심의 그 신앙의 싸움입니다.
@@롤트레스만땅찬양자들 연주자들의 중심이 다윗과 같다면...찬양에 취해 옷이 벗겨지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에 취해있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라면... 하지만 다윗과 같은 찬양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혼적인 찬양, 예배.. 내 혼이 흥겨운 찬양, 내 혼이 격동하는 예배가 범람해서 분명히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구분이 애매하지만 보면 안다고 하는 류의 직관이 엠마오님 쪽인데, 거기에 동의해도 그걸 목사 직권으로 판단하거나 제재하기 시작하는 건 별개의 문제임. 여기서부턴 다메섹님에게 급격히 기욺. 우리 다 같이 고민해보고 자제할 게 있음 자제해봅시다, 요새 좀 너무 심하네요, 일반 다수는 독이 되는 찬양인 듯,을 입으로만 떠들면 좋겠다는 생각.
예배중 악기 솔로에 대한 의견 악기 솔로를 두고 악기로 찬양을 하는 것이다. 연주자가 그 순간 직접 찬양을 하는 것이다. 악기의 멜로디로 찬야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 예배에서 사용되어지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17세기 18세기 음악양식에 따른 곡들이 상당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가사'와 무관하게 요즘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다는게 느껴지기에 현대에 사용되어지는 음약양식으로 재편곡 되기도 합니다. 그런과정을 통해 요즘 사용 되어지는 음악양식을 차용하여 예배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솔로는 improvisation (즉흥연주)와 같습니다. (실제로는 자기 손에 익은 방식의 연주나, 준비된 멜로디로 연주합니다.) 이 악기솔로는 클래식음악에서부터 출발하여 재즈에 이르기까지 존재합니다. 실제 클래식음악에서도 카덴짜 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옛날과는 달리 요즘은 유명한 솔로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합니다만) 이런 악기솔로는 훌륭한 연주자의 덕목 중 하나로써 '음악적으로 뛰어나고 기교를 부리는 멋들어진 즉흥연주' 가 가능한 것을 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재즈에서도 이러한 즉흥연주는 존재합니다. 악기끼리 서로 즉흥연주를 '트레이드' 합니다. 재즈에서 추구하는 즉흥성을 발휘하며, 연주자 간의 음악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16세기 그리고리오성가로 부터 점점 교회에서의 음악은 발전하여 요즘의 음악양식을 이용한 예배음악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악기솔로에 대😀한 부분 인 것 같습니다. 악기솔로라는 것은 위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음악적으로 뛰어나고 멋들어진 즉흥연주' 가 가능한 것을 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것이 현대예배에 현대음악을 접목하며 같이 들어오게 된 듯 합니다. CCM과 WORSHIP을 좀 구분해서 간접예배와 직접예배 혹은 크리스쳔 음악문화를 통한 전도와 공동체적 예배라고 본다면, 사실 공동체적 직접예배라는 형태에서는 악기 솔로가 과연 굳이 차용할 가치가 충분한가 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현대음악을 현대예배에 차용함에 있어서, 음악이라는 장르를 이용해 하나님을 예배 할때에 연주자의 기교와 음악성을 자랑하는 악기솔로 라는 역할을 굳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차용해 와야 하는가는 생각해볼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과 욕심이 독이 되는 것 같네요. 화려함의 기준은 풍성함으로도 나타낼수 있고, 소박함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예배음악이든 사람이 거론되거나 팀이 거론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불필요한 화려함 같네요 이 부분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할것 같다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찬양 인도를 오래 했던 사람으로써 그런 부분에서 무지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감정을 짜내고 흔드는것이 좋은 찬양이라고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감정이라는 영역이 배제 되는것은 문제이지만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이 찬양의 내용과 이성을 지배해 버린다면 문제가 되는것 같습니다.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음악에 반응하는 행동? 을 유도하기 위한 방식으로 찬양이 진행될 수 있다는것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런 유혹에서 자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들 측면에서 충분히 고려하고 찬양이 진행 되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다메섹님은 어떤 프레임속에서 논리를 펼치려는게 다분하다 보여짐, 찬양의 화려함이 독이된다 아니다라기보다는 독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거 아닌가요? 솔직히 찬양하는 사람들중에서 자신까지 속이면서 자신을 높이기 위한 무대욕심이 없을수 있을까? 순수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만 찬양 그자체에 목적인지 아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모습은 없는가? 냉철하게 살펴봐야할 문제죠
저는 엠마오님 얘기대로면 강단에 교회 60%이상 조명과 교회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로 설교자를 비추고 것도 앵글 바꿔가면서. 가장 비싼 마이크로 볼륨도 크게 세팅하고. LED에 설교자 바스트 샷을 40분 내내 비추는게 훨 불편합니다. 설교자의 우상화 권력 집중화를 막게 위해 목소리만 나오면 좋겠어요. 특히 엠마오님. 잘 생기고 머리 길어서 메세지 듣기에 방해 많이 됨. ㅋㅋ ㅋ
@@selectivetoldya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못 생겼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 부요 같은 외쩍인 배경을 두고 말한 것이며 고대 문서에는 그의 키는 아주 컸으며 모습은 평화로웠고 꽃 미남이라고 묘사된 글도 있고 토리노 수의로 측정한 결과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화려한 예배와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신학자들은 단순히 화려한 예배에만 집중하는 것 같은 교회들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부분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그런 예배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화려한 예배의 위험성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열정적인 예배도 좋지만,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적인 지식을 가진 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누구를 예배하는지, 그리고 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 예배는 헛된 것이 됩니다. "기타솔로"가 언급되었으니, 기타 솔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배 중간에 기타솔로를 하는 것이 옳은가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록 콘서트의 열렬한 팬이 전도를 받고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찬양팀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가 특별히 그 새로 온 사람을 위해 기타 솔로를 연주하고 싶어한다면? 사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문제로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내신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토라(torah)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은 애초에 율법이 왜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이 계명을 지켰던 거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부지런히 경건하게 살았던 거죠. 그래서 엠마오의 말씀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타 솔로가 너무 과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하다'는 것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예시가 결국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악기를 쓰는 건 괜찮은데 그로인해 예배에 방해가 되거나 본질을 흐리거나 하는 게 문제죠.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기타 솔로를 두고 논한 것 뿐이지, 곡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드럼 연주랄지, 전체 분위기와 동떨어진 보컬의 과도한 기교랄지 이런 게 다 예배에 독이죠. 그리고 단순히 그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할 뿐만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아닌 기술적 능숙함, 연주 그 자체에만 몰입하게 되는 그 공동체와 개인 모두에게조차도 이건 실이 더 크다고 봅니다.
찬양사운드로 사람을 꼬셔와도 되는가 라는 파트를 들었을때 친구 교회에 어떤 믿지않던 남자 청년이 첫 출석을 해서 신부감 찾으러 왔습니다. 라고 당당히 얘기했다 하더라구요. 그 청년의 이후 신앙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렇게라도 오는게 옳은걸까요 믿음이 없고 다른 의도면 오지마 라는게 맞는걸까요... 저는 이단 만 아니면 전자가 맞다고는 생각합니다만 개인의 기준 차이겠죠 🤔🤔🤔 그리고 화려한 찬양이 내 욕망이 담길 수 있으니 위험하다 라고 하는 부분 정말 이해는 하지만 그런 논리로 따지고 가다보면 80년대 드럼도 안돼 신디사이저도 안돼 라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오르간 치던 시대까지 가야 하는거 아닐까요.. ㅋㅋㅋ 보컬도 동요부르듯이 모두 정박에 딱떨어지게 기교넣지말고 불러야 하거나... ㅎㅎㅎ
제가 고민하는 주제인데, 이렇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오프화이트를 입고 찬양집회를 인도하는 어떤 인도자의 설교를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북하지만, 도대체 저게 잘못인가에 대하여 의문이 공존하는 시간이 이어져 오고있습니다, 저작권을 받고, 입장권을 팔아 콘서트를 하는게 정말 옳은 길인가? 그른 일인가? 찬양이라는게 나누고 전파하기 위함인데, 찬양이 하나님의 것인데… 이걸 돈받고 하는게 맞는 일인가? 이것은 집회나 예배가 아니라 그와 다른 콘써트다….라는 말을 들으며.. 그러니까 예외라고 인정해야하나 아니면 그럼에도 예배라고 보아야 하나... 콘써트는 주님의 임재가 없이 단순히 노래만을 위주로 즐기고 누리는 것인가요? 아니면 메마른 일상에서 신남을 찾을때 그나마 주님의 노래를 이용하는게 덜 그릇된 것인가 고민됩니다 찬양도 내가만들었으니, 나에게 주권이 있고 그로 인해 은혜받았다면 저작권을 내야하고 이제는 은혜도 이를 돈을 받고 분배하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아직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에는 제 깊이와 기도가 부족한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진심으로 누굴 비난하고 힐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제 신앙이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오프화이트를 좋아하지만, 사역자들이 그것을 입고 설교를 하면 왜 거븍함을 느끼게 되는지 그들이 명품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마치 그것이 우리의 헌금으로 누리는 것만같은 생각은 제 어리석고 이기적인 마음인가요… 밤이되면, 교회 십자가가 즐비한 대한민국에서 왜 개척의 이름으로 한 사역은 대도시와 번화가에 가득 집중될까요? 지방과 농어촌은 사람이 없어서 사역이 불필요한가요? 인기 목회자가 되기에는 기회가 적기 때문인가요 또 인기목회자는 왜되려고 하나요? 결국 오프화이트도 내 저작권도 목회 사례비라고 변질된 노동의 보상이 본질인 출연료도… 그리고 목회자인 내가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부흥이 목회자 자신의 업적으로 변질되는게 아닌지… 어렵고 힘든 고민만 계속됩니다 신도인 저는 이런 무거움에서 가볍고 목회자는 주의 종이란 이름때문에 이런 비난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건 아닌지.... 그런 그들의 역할과 책임에 기대어 무자비한 비난만 쉽게 던지는 모습은 아닌지 고민됩니다 혹시라도 이런 제 고민에 저보다 깊은 고민의 답을 앞서 얻으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엠마오님은 기존의 일반 예배에 국한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고 생각하기에 이에 맞추어 의견을 드린다면, 다메섹님 의견대로 음악적 완성도를 통하여 유입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분은 일반 예배보다는 찬양예배에서 타겟팅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인도해본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찬양인도는 성도분들이 예배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한 목적성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날의 목회자의 설교말씀을 고려하여 준비하되, 정작 인도할 때는 청중들 반응에 집중하며 조절하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 보컬이든 연주이든, 청중들이 관객이 아닌 주체가 되어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찬양팀의 마이크를 배제하고 청중들과 함께 목소리로 합창하는 것 같이 말이지요. 분명한 것은 찬양인도는 예배의 시간을 구성하는 순서이고, 섬기는 자리/하나님께 사용받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선포처럼 영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리이고, 그렇기에 찬양팀은 오히려 그 예배의 자리에서 영적으로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찬양인도팀은 (개인에 따라 시간적 부담은 있겠지만), 보통 별도로 그들만의 예배를 드리지요. 그만큼 귀한 사역이고 리더의 지혜가 필요한 자리라는 생각도 드네요.
처음 들어본 주제이지만 성가대원으로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네요. 확실히 어렸을 때는 그냥 멜로디가 좋아서 불렀던 기억이ㅎㅎ 그리고 저도 찬양 인도자분이 심취해서 혼자 애드리브를 넣는 모습 등에 예배에 집중이 안 됐던 경험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계속 기도중입니다. 또는 교회 밴드부가 비록 예배시간이 아니었지만 교회 본당에서 찬양곡이 아닌 가요를 연주하며 서로 노는 모습을 봤고, 저는 그런 모습이 보기 불편하더라구요. 찬양가는 항상 겸손하며 내가 드리는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청자는 찬양 속 말씀과 주께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은 계속 서로 노력해야 할 일이지 완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찬양은 예배의 독인가?' 라는 '주제' 만을 두고 논리를 전개시키면 No의견이 우세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화려한 찬양 앞에 수식이 정확하지 않고, 이 경우 '모든'을 붙여 토론을 진행하게 되는 것 같은데, 화려한 찬양이라는 비본질적인 요소에 모든/절대 등을 붙여서는 5대5의 토론이 어려우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주제 들었을때 당연히 no 아닌가 했었구요. 다메섹님께서 역시 너무도 철저하게 토론에 임해주셨고, 항상 응원합니다만, 엠마오님을 조금 변호하자면 1) 엠마오님께서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고 커뮤니티 글을 쓴 계기가 구체적인 현실의 어떤 모습을 보고난 직후였다고 가정해본다면. 예를들어 어떤 한국 대형교회들의 찬양팀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서 멀어져 있다고 느껴, 문제제기 차원의 글까지 쓰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그 특정 찬양팀을 직접 저격하기는 어려우므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화려한 찬양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면, 조금 강한 글이 되었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다메섹님께서 화려함의 기준은 합의될 수 없음을 잘 설명하셨지만, 바로 뒤따르는 엠마오님의 의견은 각 개인과 각 찬양팀이 스스로 돌아보아 화려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였으며, 즉 주관적인 화려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야기가 그렇게 된다면 토론이 될 수 없겠죠, 다메섹님도 당연히 동의하시는 부분이니까요. 즉 실은 엠마오님이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정도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교회들의 상황을 보니 문제가 크게 느껴진다. 나라도 목소리를 내야지. 찬양팀과 예배자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방해되는 요소(특히 화려한 기술)을 내려놓읍니다. 엠마오님도 화려한 찬양을 '막아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봤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예배의 독이 되는 화려한 찬양이 많다." 가 엠마오님 초반에 말씀하신 본인 주장이시니까요. "현재 한국교회 찬양팀의 문제(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했을 때 다메섹님은 복음과 교육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엠마오님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나를 내려놓는 준비라고 정리해본다면, 두분 의견 모두 동의하구요. "현재 한국교회 찬양팀, 문제 많다/괜찮다" 혹은 "현재 한국 대형교회는 화려한 찬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없다" 정도를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을 두고 토론을 한다면 양쪽이 좀 공평한 것 같습니다. 저는 두분 다 너무 좋아하는 뉴비 구독자로서 실은 지금 50분 정도까지만 영상을 보았는데요, 내일 이어서 다 보겠습니다^^
저는 13년동안 대형교회 찬양팀밴드에서 베이스로 사역한 사람입니다. 저는 저의 연주력을 칭찬해주는 사람들의 인정을 동기삼아 사역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였지만 제 중심은 나의 높음과 영광이였던것을 시간이지나 주님께서 지적하셨고 성령님의 은혜로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영광을 제가 차지하려했던 교만과 위선을 지금도 생각날때면 가슴을 치며 회개하며 살아갑니다 . 주님께 너무 죄송하고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다시한번 눈물로 참회하며 살아갑니다. 저같은 사람에겐 화려한 예배는 독이였네요.. 제가 거듭나지 않아서 부족해서 그랬던것같습니다.
요즘은 찬송가가 너무 좋습니다. 찬송가 가사에는 내자아가 없어서 좋습니다.
나의감정과 자기연민이 없어서 좋습니다. 음악이 남루해보이면 어때요. 예수, 십자가,보혈, 회개 그것만이면 충분합니다. 더이상의 감격은 없습니다.
굿
솔직한 고백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했잖아 한잔해
저도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찬송가가 제일 좋어요
자신의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행한 모든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기 바랍니다
루시퍼가 찬양대장이었던 천사였지요...
찬양의 자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탐낼 수 있는 위험한 자리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찬양대나 찬양단에 가장 잡음과 분쟁이 많지요..
새벽기도가 끝나고 아무도없는 예배당에 돌아가신 은퇴목사님의 노 사모님의 늘어진 성대와 울음섞인 찬송가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찬양을 한시간 가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모님 연세가 87살
그 시간 동안 들렸던 찬양은 예배당 가득 형언할 수 없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청중인 저도 사모님도 성령께서도 함께 드린 거룩한 예배였음을 기억합니다. 사운드, 몸짓, 악기, 실력, 기타등등의 모든 조화로움과 기술이 예배의 요소일까요?
저는 같은 곡을 영화 타이타닉 중에 악단 리더가 연주하면서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고
연주자로서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영화에 나오는 그 연주를 보면서
그것이 예수쟁이의 삶의 모습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눈물로 예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영상에서 두분이 같이 지적하시고 동의하시는 내용이 바로 마지막에 적어주신 부분과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운드, 몸짓, 악기, 실력 기타등등의 모든 조화로움과 기술이 예배의 요소는 아니지만
회중에 예배시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경우라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 라는 것이지요.
회중이 그것을 필요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회중의 연령대, 문화권, 음악적 배경 등등의 것들이 다양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판단은 해당 순서를 맡은 담당 교역자와 찬양인도자가 할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본질적인 복음에 대한 접근 없이, 예배의 주체가 되는 회중에 대한 깊은 배려 없이
다른 교회에서 하니까, 멋있어 보이니까, 화려하니까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일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형교회와 선교단체,
군대교회, 그리고 파병을 갔던 이라크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게 되었고,
일반대학교 졸업후 서울에 있는 모예술대학교에
실용음악과를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청,
부탁으로 찬양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작은 교회에서 예배시작 전
잠깐의 찬양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자하는 전공생들과
거기에 부합한 음악적 요소들을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하던 매주 2회?의 찬양인도,
60,70대 어르신 10여명과 저 기타와
아내 건반으로 찬양하는
지금의 작은교회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경험과 현실속에서
찬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찬양은 예배의 요소인가
아니면
찬양 그 자체가 예배가 될 수 있고
찬양예배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1. 찬양을 예배의 요소로 여긴다면
엄청난 찬양실력과 구성,
인도자의 탁월한 찬양인도,
찬양인도자의 개인적인 신앙과 그 모범성이
모두에게 아주 눈부시게 분명할지라도
찬양은 찬양 그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찬양은 예배의 요소라고 정의합니다)
찬양(콘티)을 잘 준비했구나,
혹은 준비한 그 마음이 느껴지구나,
이 찬양의 주제가 무엇이구나, 라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거나 조금 느끼는 것이지
찬양 그 자체와 찬양인도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거나 이를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2. 그러나 찬양을 예배의 요소가 아닌
찬양이 예배의 그 자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지금 두 분이 나누시는 내용처럼 다양한
생각과 주관이 오고 갈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찬양의 이야기와 의미를
찬양인도를 통해 성도들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몸이 안좋아서 음이탈이 될 때가 있고
밤새 갓 태어난 아가의 육아로 인해
찬양인도 준비가 수월하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찬양을 통해 부족한 내 마음일지라도
분명하게 믿는 바를 고백하고 싶은 대상이
‘MZ젊은사람 혹은 어르신,
음악을 전공한 사람, 음악적 지식이 높은 사람,
절대음감의 사람, 교수, 목사님,
사랑하는 아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음악적 지식이 없는 사람’ 이 아니라
하나님이기에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 향하는 찬양에
촛점을 분명히 두고자 노력하고
찬양과 그 인도를 준비한다면
여러가지 요소가
저는 아주 자유로운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리드미컬한
현대 기독교 음악과 그 효과를 좋아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최선의 찬양이라고 정의한다면
지금 함께 찬양해야할 60,70대
어떤 어르신들에게는
곤욕과 어려움을 줄 수 있겠죠?
모두가 잘 아는 찬송가와
아주 오래된 복음송이라고 할지라도
그 가사와 의미가 잘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 그 찬양의 고백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고자하는 믿음을 담은
찬양이라면
그보다 좋은 찬양과 최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찬양은 예배의 요소인가
찬양 그 자체가 예배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위 주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다 생각합니다.
복음이 없는상태에서 감동적인ccm을 통해 은혜를 받다보니 계속 ccm만 듣고 있는 사람들 많더라고요 철저한 공부와 교회차원에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계속 주변에서의 기도와 인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도에 CCM 같은 방법 등이 도움되긴 하니까요.
한 때
화려한 찬양과 분위기, 특히 부흥회나 특별 집회에서 기도가 잘 나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찬양 없이 혼자 조용하게 기도하면 기도가 뭔가 막히고 잘 나오지 않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내가 울고 불고 기도하던 것은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드럼 비트, 신스, 일렉, 베이스 사운드였고 인도자, 사역자들이 억지로 쥐어 짜듯이 소리치고 이끌어내어 '만들어진' 분위기에 의해 감정이 동요 되어서 나온 기도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나 마음 상태는 분위기나 열기,소리, 에너지 파동 등에 굉장한 큰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에고만 좋아하고 강화 시키며 그런 상황에 속임 당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마치 놀이 공원에서 스릴 있는 데이트 하면 심장이 빨리 뛰기 때문에 이성에게 더 끌리고
사귈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주님께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임재는 시끄럽고 웅장하고 화려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잠잠한 곳에서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세션팀 먹고사는것 때문에
이슬람 스타일로 악기 빼고 목소리로만 찬양 드리는게 더 신앙적인 면에서 더 낫을지라도 못하는게 현실임...
찬양이 참 좋은 약이지만 잘못쓰면 독이죠..
엠마오님은 인간에게 박혀있는 쓴 뿌리들이 누르지 못하몈 언제든지 튀어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계신거 같네요 평생 간과할 수 없는 부분!!! 😊
1:17:24 ptsd가 올 정도로 감동적인 찬양인도였습니다ㅠㅠㅠ 만약 수련회 현장이었다면 모든 학생들이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 만났을거라고 확신합니다!ㅎㅎ
진짜 말 잘하신다 .. 보통 중간에 누가 반박하거나 하면 하던 얘기도 까먹고 긴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감정 싸움 없이 (개싸움은 하지만) 너무 말을 잘해서 놀라워요. 둘 다 어떤 논리인지 알 거 같고.. 전 왔다리 갔다리 하네용 .....
두분다 소모전 입니다.
자녀가 있다면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는 모습만으로도 부모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지 않을까요?
어떤 모습이든 찬양하는 자들이 기쁨으로 차있다면
하나님도 기뻐 하실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게 정답이지❤
그 기쁨은 가수 콘서트 가서도 느낄 수 있는거임
무조건 의도가 중요함 멜로디에 취해 신이 난건지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해보세요 무슨 마음인건가 내가
@@KSA4850kd 환자는...의사에게..
찬양이 뭔지 개념부터 알아보셨음 합니다ㆍ
내가 부를때 내가 기쁘면 하나님도 기뻐하실거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ㆍ
예배는 ! 하나님 중심이여야 합니다ㆍ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ㆍ
안녕하세요 저는 기타를 전공했고 유명한 사역단체에서도 예배팀경험이있고
현재는 어쿠스틱기타로 시골교회에 어른들만있는 교회에서 사역간사로있습니다
기타솔로에대해 한말씀드리면
솔로는 곡에서의 한 멜로디 그러니까 그곡의 하나의 멜로디라고 생각해도좋을거 같아요 찬양이라는건 곡조가 있는 노래를 하는것을 찬양이라고 하면 기타솔로의 멜로도 가사가 없지 찬양이 아니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편에는 악기연주자들이 공교히 연주해야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솔로가 있어야 하냐 없어야하냐가 아니라
악기로 음악으로 예배를 하냐 안하냐가 제일 중요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본인의 부족함이라고 마무리하셨지만 엠마오님의 관점도 충분히 이해되었고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예시도 좋았습니다
저는 16마디든 32마디는 솔로를 비롯해 어떠한 음악적 장치나 효과도 그 자체로는 단지 도구에 불과한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사는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상각합니다. 그래서 가사에 관한 토크를 꼭 보고싶습니다!!!
몇일전에 채널 처음 보고 하나둘 토론을 보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네요.
이 토론에 있어서 저는 엠마오님쪽 의견에 가까운듯 합니다.
화려한 것의 기준은 개개인에 달린 문제겠지만
예배외의 무언가가 더해질 위험성을 구분하는 것은 결국
변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인듯 합니다.
변수가 적은 상태에서는
설령 그것만으로도 자기 욕망을 위해 찬양하는 이가 있더라도
겉으로 드러날 여지가 없는것..
화려함이라는 변수를 늘일수록 더 통제하기 힘든것..
그 차이라고 봅니다.
엠마오님 의견은 예배의 본질을 위해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다메섹님 의견은 어차피 위험을 피할 수 없다면 기준으로 삼을 필요 없다 인데
예배는 보수적으로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결국 엠마오님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의 욕망이 예배를 망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마섹님은 어떤 시스템이라도 사람의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스템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네요.
이건 전형적인 개인의 문제(보수)와 공동체의 문제(진보)의 갈등이 있는 한 영원한 갈등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메섹님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곙배드리는 개인의 마음의 문제"라는 입장인데요, 화려한 조명과 심금을 울리는 찬양 등도 예배의 요소로써 예배를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엠마오님의 주장도 고려해 보아야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서 식물만 먹겠다고 말씀한 것을 기억하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음악과 영상에 마음이 뺏기는 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또,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음악과 영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먼저 믿은 성도나 교역자들이 음악과 영상으로 믿음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그것에만 빠져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 참 반갑네요.
제가 어렸을 때에 (뭐 지금도 어리다면 어리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교회에서 이런 논쟁(?)이 있었어요.
예배시간에 드럼을 치는게 옳은가? 일렉기타며, 베이스며, 키보드로 연주하는게 옳은가?
너무 화려함에만 치우쳐서
너무 악기에만 치우쳐서 중심을 놓치는 거 아니냐?
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돌았었어요.
실제로도 드럼까지는 아닌거 같다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예배시간엔 드럼금지까지 됐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일 아닙니까?
화려한 음악에 치우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고, 주의해야 하지만
그것들에 매여서 금지할 필요는 전혀없다.
라는게 결론입니다.
토론 정말 재밌네요!
찬양팀을 10년 넘게 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에요.저는 우울하고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교회에서 기타를 배우게 됐고 찬양팀으로 섬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코드도 제대로 못쳐서 예배 때 수없이 틀렸어요. 틀리지 않기 위해 반주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예배를 드리는 건지도 모르겠고 혹여나 틀리면 예배를 방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몇 년을 섬기면서 실력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실력만 좋아진 게 아니라 성격도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소심하고 자신감 없던 제가 기타솔로를 준비하고 준비한만큼 잘 해내면서 다른 악기팀과도 어울릴 줄 알게 되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하나님은 악기 연주자도 이렇게 성장시키시더라고요.
엠마오님 의견에도 동의하지만 저는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드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공급과 은혜를 주시는 쌍방의 생동감 넘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배 시간에 우리의 어떤 행동이 누군가의 예배를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예배자의 마음인 것 같아요. 기타 반주했던 사람으로서 나의 기타 소리가 회중의 마음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자의식과잉일지 몰라요. 진정한 예배자인 회중은 생각보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잠깐은 주의를 빼앗길지 모르지만 진짜 예배 드리기 위해 온 사람은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건 회중이나 기타 연주자도 마찬가지고요.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걸 막을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또 악기 솔로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막을만큼 대단하지도 않아요. 하나님은 크신 분이죠. 악기 솔로가 그 순간에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의견 나눔 감사합니다!
찬양팀을 하면서 했던 고민인데 올려주신 토론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저는 비전공자인데 피아노를 연습하다보니 어느 새 뛰어난 피아노가 들릴 때 하나님이 아닌 반주법에 귀가 쏠리는 경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악적인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것이 찬양에 방해가 되었던 적도 있으니까요.
저는 엠마오님 말씀에 좀 더 공감이 가는 게 때로는 음악이 주는 그 감정에 취해 하나님 없이 감동했던 순간이 있고, 악기 솔로에 청중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에 이질감이 든 경험이 있었거든요. 화려한 음악을 빼는 게 매번 능사는 아니겠지만 제 생각에는 특히나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되는 몇몇 지점에서는 stop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실력이 안 되는 아마추어 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음원 카피, 악기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진행하는 솔로 등)!
그렇지만 기타 솔로가 있는 화려한 기도 반주 속에서 더 뜨겁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경험도 있다보니 다메섹님이 말씀하신 솔로가 빠지면 그것 나름대로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성경을 근거로 생각해보자면 ,
구약시대에는 레위 지파들이 찬양을 드리는 일을 맡았었고 성소에서 섬겼습니다 . 그리고 악기를 비파와 수금 등의 악기를 사용해 찬양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심지어 예수님과 사도들께서도 악기를 동원해 찬양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 악기 없는 가운데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한 것 뿐이죠 .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보더라도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찬양할 것 " 을 사도 바울께서 가르치셨는데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는 실상 같은 의미를 중복 표현한 " 동의어 병행법 " 에 해당한다고 신학자들도 보는 편입니다 . 동일한 의미의 해석을 드러내어 강조하는 표현 방식이죠 .
시는 곧 헬라어 원문에 " 프살모스 ( 시편 ) " 라고 드러납니다 . 그래서 칼빈과 동료 개혁자들도 시편 찬송이 타당하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
그리고 신약성경엔 악기를 동원한 찬양이 드러나지 않기에 개혁신학자들은 " 무악기 시편 찬송 " 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타당하다고 봤습니다 . 실제로 지금도 동방 정교회는 무악기 화음 찬송만 드리죠 .
어저께 이거 보다가 잠 못잤습니다... 진짜 찬양 들으면서 항상 느꼈던 주제입니다. 청중 입장에서 찬양팀끼리 삘 받아서 찬양하는 모습도 많이 봤고(그들이 나이롱 크리스찬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찬양리더가 삑살과 엉망인 세션의 경우도 봤습니다. 장단점이 있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초2부터 성가대를 하고 성인이 되어선 찬양팀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씨씨엠이 너무... 거부감 들기 시작했어요... 감성적인 멜로디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느낌... 어떤 멜로디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다들 은혜에 취했는데 나만... 수련회 마지막날 촛불의식할때 다들 엄마... 하고 펑펑 우는데 낼 집에 가서 볼건데 왜저래... 하고 홀로 멀뚱거리는 느낌...
개인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봄. 찬양을 통해 나의 ego 를 들어 낼것인가 아니면 온전한 찬양의 "도구" 로 사용될것인가의 마음은 "자신"이 제일 잘 알기에. 만약 내 연주나 노래에 대한 인도자나 회중의 비판 (critique) 에 직면 했을때 지나치게 감정의 요동이 생긴다면 그건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봄. 찬양팀 일렉 기타로 20년째 섬기고 있는 본인의 솔직한 생각은 찬양 중간에 4마디 이상의 긴 기타솔로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찬양의 방해가 될 리스크가 너무 높기에 배제하는게 낫다고 본다, 인도자가 요구한다면 순종해야겠지만.
어떤 교회, 말씀은 기억 나지 않고, 찬양은 은혜가 되었지만, 그것으로는 영적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는...
두분 이야기 듣고 지은 결론: “이유있는 화려함은 괜찮다” 뚜둔. 찬양곡의 가사를 음악으로 풀어냄에 있어서 찬양인도자인지 하여간 음악감독이 있을거고 그의 지휘하에 각자 맡겨진 영역에서 카메라 앵글, 기타솔로, 드럼 등 곡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한 수단 안에서 모든 화려함이 가능하다고 봄.(카메라 앵글은 현장감.및 곡표현도 때로 가능하다고 봄. 때로는 역동적이게, 때로는 차분하게)
결국 “주어진대로 맡겨진대로” 실행하는 세션 및 싱어 카메라맨을 뭐라 하진 말 것. 주어진 화려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걸로. ( 꼭 보면 자기가 돋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전체조율자에게 따지더군요. 제꺼 볼륨 좀 더 달라거나 둥. 지가 자체 볼륨 쎄게 주는 등 ㅋㅋ)
엠마오님이 게시글 올린 걸 봤을 땐 엠마오님에 동의했다가 토론 진행될 땐 다메섹님 입장에 동의하다가 QnA 전에 마지막 발언에선 또 엠마오님에 동의하다가 그러면서 봤네요. 결론적으로는 원칙적으로 다메섹님께 동의하고 상황적으론 엠마오님께도 동의합니다.
형식(화려한 찬양)이냐 내용(하나님께 집중하는지)이냐 문제인 건 같고, 다메섹님은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은 상관 없다, 엠마오님은 형식이 내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형식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하는 요런 차이인 것 같네요. 내용이 중요하다는 부분에선 두 분 다 같고요.
토론에서 논의를 위해 그냥 화려한 찬양을 기타 솔로로 좁히고 갔어도 됐을 것 같네요. (+QnA에서 ppt 예시도 이해가 확 되는 예시인 것 같아요.)
엠마오님 주장은 기타 솔로(화려한 찬양)가 예배에 득이 될 게 없고 연주자(연주자는 자신에게, 회중은 연주자에게)에게 집중될 위험만 있으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예배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니 기타 솔로도 올려드린다는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영상 중에서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으면 회중들 안 보는 데에서 뒤에 연습실에서 하면 되지 않냐 라고 하셨지만, 공예배에서 올려드리는 거랑 공예배 자리 아닌데서 하는거랑은 또 다르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다 아시지만 기도를 요구하시고, 우리의 삶의 자리가 다 예배 자리이지만 따로 떼어서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듯이 뒤에 연습실에서 하는거랑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엠마오님 말처럼 기타 솔로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고 예배에 도움이 안 된다면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다메섹님 말처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니까 기타 솔로를 하면 안돼 라고 하는건 좀 두고 볼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기타 솔로가 정말(항상)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해치는가? 기타 솔로를 하지 않는 결론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화려한 밴드가 없어도 내목소리에 취해 하나님 없이 찬양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음악은 사람을 쉽게 감동시키기도 하고 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밴드나 성가대 지휘자 모두 영성?훈련과 교육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에 취하면 어느 순간 하나님은 안보이고 내 자신만 보이더이다- 나를 숭배하게 되는
ㅋㅋㅋ물론 두 분이 친하시고 인격적 비난으로 토론하시는게 아닌걸 아는데 되게 재밋네요ㅎㅎ
좋다 ... 이런 고민과 토론 🙏
엠마오님의 의견이 제가 평소 말하던 것과 비슷하네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최고가 아닌 최선을 바라십니다. 세상은 최고를 지향하지만 하나님은 최선을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찬양팀이 최고의 반주를 지향하는 상황도 있다고 봅니다. 실력 우선, 능력 우선인거죠. 그 보다는 최선의 예배, 공동체를 향한 예배가 되면 좋겠네요.
하나님이 최선의 찬양을 바란다구요? 하나님의 원함이 "인간의 최고 정성"이 아니라는 걸 성경을 차근 차근 공부하면서 깨달아지길 바랍니다. 참고로 이 세상의 역사가 시작되는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정성"을 여지없이 부정해 버리시면서 출발하고 있답니다. 성경은 인간의 최고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하나님의 최고 정성을 인간들에게 어떻게 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답니다.
@@morming94 여기서 누가 구원에 있어서의 최선을 얘기했나요? 혼자 딴소리 하시면 곤란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제발 문맥을 이해하세요. 답답하네요.
@@공유-n1b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자세(정성)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의미도 가치도 두지 않고 있음을,,, 성경을 조금만 봐도 금방할 수 있다고 한 것인데 끝문장을 보시고 구원에 있어서의 최선으로 이해를 하시다니,, 와우!~ 역시 저보다 님의 문맥파악 능력이 월등히 높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 하나님은 최선을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최선"을 원하신다는 뇌피설적 주장만하지마시고, 구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좀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두번째로 ,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최선" 을 님은 다하셨습니까?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런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거짓말처럼 들리거든요 ,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최선을 다했냐"고 묻고 있는것입니다. 세 번째 ,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최선"의 기준점이 어느 정도인지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님이 정해놓은 최선의 기준점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한 찬양과 기도를 원하신다면, 어떻게 얼마나 해야 '최선'을 다한 것이 될까요? 그리고 보너스 퀴즈를 내도될까요? 제가 3가지 질문을 님에게 던지 의도가 무엇인지 맞춰보세요, 물론 저보다 문맥 파악을 훨씬 잘하시니 쉽게 맞출 수 있겠지요? 그럼 문맥파악도 못하고 답답한 소리만 하는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morming94 먼저, 처음 다신 댓글에 내용도 추가하시고 말투까지 싹 수정하신 것 같아 뭔 의도로 이러시는 건지 황당하네요. 1. 마음을 다한 예배를 원하신다는 기본적인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시고 이를 뇌피셜이라고 말씀하시다니요.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선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겠죠. 이를 마음을 다한 예배라고 볼 수 있죠. 마음을 다하는 예배라는 것을 살펴봐야겠죠. 님은 제가 최선을 다한 예배를 말하니 바로 '정성'이라는 말을 가져와서 오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말을 더 하신 거죠. 제가 말한 최선은 정성을 다해 드리는 무속 신앙의 예배를 말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저는 마음을 다한 예배를 최선의 예배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게 뭘까요? 바로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을 말하죠. 곧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것과 가르쳐 주시는 것에 힘 입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 마음을 다해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죠. 진리의 예배는 예수님 안에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인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우리에게 주신 새생명의 은혜를 덧입어 의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이겠죠. 3.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예배, 무언가 행위를 통한 정성을 다한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덧입은 최선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너스 퀴즈에 대한 답은 위 답변들을 통해 다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는 괜한 시비조로 댓글을 다셔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공유-n1b 우리의 더러운 죄인된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의인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거라구요... 아 그럼 님은 지금까지 예배를 드리면서 추악한 자신의 실체가 대속되어 의인의 모습으로 드렸군요, 단 한번도 예배 중에 딴생각도 안하셔구요,,, 최선을 다하셨냐고 물었는데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하시고,, 문맥을 잘 아시는 분이 "최선"이라 단어 속에 행위가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아셔야지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그 최선의 행위조차 부정당하는 자리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가지 질문을 통해 불가능한 죄인됨을 스스로 증명시키려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문맥을 잘아시는 분이 문맥을 전혀 못잡으시다니,,, 그리고 글의 앞부분에서는 마음을 다해 (노력을 다해) 예배해야 한다고 말해놓고 뒤에서는 행위가 아니라고 하시다니... ㅋㅋㅋ 불편한 상황에 말리지 마세요
개인적으로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불필요한 예배요소들'은 '해당 예배에 대한 전체적인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OO찬양팀'이라고 명칭하는 집회에 참석한 것이고, 그 모든 과정은 'OO찬양팀'의 기획과 계획에 의해 짜인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상과 음악적 장치를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찬양팀 전체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생기게 되죠. '누가 예배의 주인인거지?'라는 의구심이 그 시간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내가 주인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은 기독교인으로서 평생 가져가야 할 숙제이죠. 교육으로 '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개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은 예배의 과정에서 지양해야 합니다. 연주자가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 악기로 찬양하는 모습이 꼭 솔로 연주의 모습으로(그 모습을 또한 스크린에 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솔로 연주를 보며 저는 '하나님의 위대함'보다 '개인의 연주실력'에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와 대단하다!', '와 멋지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솔로 연주는 예배가 아닌 개인 콘서트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방송실 20년 하면서 예배화면 다 없애고 검은 화면에 가사만 띄우자는 주의인데 간혹 그런 솔로화면 띄우는 교회를 보면, 님처럼 사람의 실력에 눈이 가기보다는 "아 저 친구 저렇게 기타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있구나. 나도 열심히 하나님께 찬양해야지"라는 생각밖에 안들더라구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skdidufjfndbde 맞습니다. 정답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람의 성향이 동일 할 수 없기에 이런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거죠~ 하지만 바울이 고기를 안먹었던 이유를 감안한다면, 예배의 본질에 저항이 되는 요소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지양하는 것이 맞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hello2Jesse 공감합니다.
청소년부에서 MD로 섬기고있습니다. 힙합 일렉트로닉 청소년들의 문화에 맞게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라는 가장 본질적인것을 두고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을 다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찬송가를 통해 정말 많은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립니다 ㅎㅎ
내가 가장 믿고 듣고 보는 아름다운 청년 두분..
역시 실망을 시키지 않으시네요 ㅎ
그래도 우리 다메섹님이 넘버 원!!^^
근데 차목사님 벌칙한다음에 현타와서 급정색하시는게 킬포네요ㅋㅋㅋㅋㅋ
엠마오님은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비본질에 집중하시는거 같습니다.
와 찐텐 장난없으시네요,, 토론법 강의하셔도 될거 같아요
힐송의 너무 모르는군요 ㅋㅋㅋ 웃음밖에ㅠ안나옴 ㅋㅋ 난 앰마오님 동의
나는 엠마오에 한표~
음악으로 분위기로 마치 성령을 받은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기술에 의해 잠깐 마음을 빼았기지만 마음이 유지 되지는 않음.
집에가서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건 충분히 타당함....
그래서 전 교회 때려치웠어요..
음악을믿는건지 불확실해서요.
혹시 알아요? 악기 전부 없앤 이슬람식 찬송이 더 진정성 있다고 기뻐하실지..
그냥 내가 주 안에서 성숙하면 음악이든 어떤 요소든 사람을 높이는 예배를 한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면 나는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죠. 오히려 교회에서 이탈되는 것이 과연 그게 내 영성에 도움이 되는지 고려해봐야겠군여.
두분 수고 많으셨어요~❤️
대형 워쉽팀 지도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100% 같은 말은 아니지만 뉘앙스가.. 이랬어요.
신앙이 연약할 때, 또는 무신론(?)자 일 때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찬양 스킬과 악기들이 주는 느낌도 필요하다. ( 저 역시도 그랬던 것 같아요 )
그리고 신앙이 자라면 거기서 머무는 것은 젖먹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합니다.
본인이 은혜 받고 감동 받는데서 나아가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딱딱한 말씀을 씹고 찬양 스킬과 모습보다는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단순한 찬송가에서도 은혜를 느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모습의 찬양이던 상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필요하지만, 그 다음 단계를 갈 수 있게 제시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기 연주할 사람도 없고 심지어 미가엘 반주기도 없이 찬양할 때 찬양과 예배가 지루하다라고 하던 청년들이 떠오르네요..
나의 예배는 무엇이 기쁨인가..정말 고민해봐야..물론 저부터😢
이런 토론 참 좋습니다.^^ 개신교 유튜버들의 진지한 토론의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다 본질에 집중하려고, 한 영혼이라도 더 생각하는 거, 절제하는 거 참 좋습니다. ㅎㅎ 근데...다소 길다는 ㅎㅎ 반복되는 내용으로 ㅎㅎ 조금 더 편집하셔도 ㅎㅎ 그래서 바로 결론으로 승자투표로 가게 만드네요 ㅎㅎ
ㅋㅋㅋㅋ
엠마오님 찬양 인도 아주 재미있는...ㅋㅋ
ㅋㅋㅋㅋㅋ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을 만나는게 중요한게 아닐까요?
초신자도 기도,찬양,말씀 가운데서 언제든 하나님을 만날수 있다고 봅니다
쉽지 않은 문제네요.
마음이 진실 되면 형식이 따라오게 되는데
형식이 갖춰져도 마음은 없는 경우도 많으니…
마음이 안 따라주는데 형식에만 치중하면 껍데기만 남게 되고
그렇다고 형식이 너무 부실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은 진심을 느끼지 못하구요.
그 문제를 교육을 병행하여 해결하면 될듯요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안 따라주는 상태도 편하게 표현할 수 있고 그것 역시 공동체가 편하게 받아주고 기다려주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어렸을 때부터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복음은 잘 모른채 형식만 강요 받으면서 자란다는 느낌도 있구요.
@@무서운헤라 왜 시비거세요?
@@무서운헤라 저 아세요?
두분의 의견에 다 적극 공감합니다.
저는 목적이 명확하다면 진리에 반하지 않는 어떠한 형태, 형식, 기술적인 것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목적이 명확하게 있는 게 아니라면 기술적인 요소들은 가급적 배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시에 Sing-Along의 주체가 되어야 할 회중의
문화수준, 지식 수준, 배경 지식 등등의 상태에 따라 맞춰서 고려되어야 하고
그 판단은 담당 교역자와 찬양 인도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판단을 어떤 식으로 회중의 수준을 고려할지,
찬양팀원들은 어떤 부분에서 조심하고 준비되어야할지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는 것이 한국 교회에서 큰 문제이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두분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런 부분을 교육하고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만 이 과정에서 음악적 스킬, 화려함을 복음, 예배에 집중하는 것과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처럼
생각하게 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다메섹님이 가진 우려로 이해됩니다.
(엠마오 목사님은 프레임질이라고 반 농담으로 말씀하셨지만요 ㅋㅋㅋ)
실제로 이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해야한다 말아야 한다로 접근하게 되는 경우를
저역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목사님의 주장을 조금 풀어서 설명해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엠마오 목사님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나름 요약해보면
1. 음악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나 사운드의 감상 과정에서 따라오는 음악적 엑스타시, 트랜스 상태를
복음의 기쁨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위험하다
2. 화려한 음악(결과적으로 예배의 일부분을 담당하는 사람)에 집중을 빼앗겨서
예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라는 말씀이 중요한 내용이고
그러므로 곡을 선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결국 찬양팀의 역할, 위치가
성도들의 집중을 해하지 않도록 스킬적인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데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오버스펙되어 표출되는 스킬이라면 결국 스스로를 높이게 되므로
이에 대한 기준은 팀원의 수준과 회중의 수준이 모두 고려되어야 하는
아주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이 단순히 있어보이니까, 다른 팀들이 하니까
그냥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예배할 회중. 성도이니까 그에 대한 고민을 합시다 하는 움직임이
한국 교회에, 예배팀에, 찬양팀에 널리널리 퍼지길 기도합니다.
다만 이 내용은 예배시 회중찬양을 담당하는 찬양팀에 대한 내용이며
한국 교회의 예배시 성가대의 역할과 다르다는 점,
매주 일어나는 예배 찬양과 특정 대상이 참석하는 찬양 집회가 다르고
콘서트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므로
이 내용을 보는 시청자가 이런 부분들에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위에 언급한 성가대, 예배 찬양, 집회, 콘서트에 대해 따로
두분이 의견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엠마오님이 잠깐 언급만 하고 지나간 '영상미'가 정말 많이 공감되었어요. 해외선교를 갔다 오든, 찬양콘서트를 열든 돈이 좀 있는 교회는 비싼 카메라에 하나님을 위해 손을 높이 들고 눈을 감은 아름다운 여성 혹은 남성을 비춰줍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 인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을 드높이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 인간에게서 신적 권능, 겸손한 인간상, 거룩한 인간상, 세상과 다른 결을 가진 고차원적 존재에 대한 욕망이 생겼던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성도들도 찬양 예배를 드리며 주변에 카메라맨 돌아다니는게 잘 보입니다. 평소에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찬양하던 사람도 카메라가 있다는 걸 의식하면 예배에 거짓과 과장이 섞이게 됩니다. 그렇게 청년들 중에는 '하나님을 드높이는 아름다운 나'라는 욕망으로 찬양에 감화된 나를 꾸며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손을 들여 찬양하는 모습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 맞죠. 제가 갔던 교회에서 구석에 한 노인 분께서 한 손을 들고 조용히 찬양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모습은 비신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도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상이 너무 흔해진 지금, 이것이 독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를 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논리에서 다마섹 압승처럼 보였는데, 엠마오의 상한 음식에 넣는 MSG 비유에 G려버렸음..! 엠마오 대박 👍🏻
'화려한 찬양(예배 준비)의 독인가?'
라는 주제는 예배의 순서를 담당하는 사람(스태프)과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독의 유무인지 될 거 같아요
누군가에겐 치유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독의 순간이 되니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은 하나님과 예배 순서를 담당하는 사람, 예배를 참여하는 사람의 합한 화음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토론이라는 건 이분법적으로 진행하다보니 한 쪽의 의견에 치우치긴 힘들지만 이러한 토론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한 번 쯤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건강한 사람이 된다는 거에 의의를 느끼고 갑니다
애초에 투표하는 사람들이 다메섹에게 치우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겠는데, 다들 화려한 조명과 튀는 음악을 좋아하며 신앙생활을 하니까 엠마오 의견이 불편했을 가능성이 있음.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배도 관계안에서의 행위로 정의되면 비교적 간단하다고 봅니다.
일단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거야 니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 라는 말 자체가 너무 율법에 매인자들의 폭력적인 언사라 봅니다. 사람은 죄인이라 화려한 솔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을 드러냅니다. 연주를 틀리지 않고 잘하려고 주중에 연습하고 노력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높이는 중입니다. 자아가 드러나지 않는 예배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받으십니다. 어린아이의 재롱은 어른들을 위한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독무대지만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전심으로 부모를 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한다 말아야 한다는 율법입니다. 자유하셔도 됩니다. 내 연주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연주따위에 가려질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예배입니다. 찬양팀연습하러 예배당에 들어가다 비뚤어진 의자 살포시 제자리에 놓고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솔로를 할일이 있으시다면 "하나님 제가 열심히 연습했어요 기쁨의 노래를 받아주세요"라고 고백하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쁨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춤을 추십니다 ^^ 헛된 모든 사조와 악한 사단의 정죄로부터 자유하세요!
두 분다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신다 생각합니다. 두 분의 말씀대로 다 고려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찬양은 누구에게 독이 되는가? 라는게 정의되면 좀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에서는 찬양을 인도하는(찬양팀) 사람에게 독이되는가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고,
어떤 내용에서는 찬양을 드리는 청중에게 독이되는가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문제의 핵심은, 찬양팀과 청중간의 공감대 형성인것 같습니다.
영상 속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화려함의 정의는 저마다 다 다르기에 그 찬양이 절대적 기준에서 어느정도 화려한가를 고려하기보단,
그 찬양이 찬양팀과 청중 안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찬양하는가? 에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공강대가 형성되지 않더라도 청중들은 다양한 형태의 찬양에서도 하나님께 기쁨 또는 슬픔 또는 감사 또는 결단의 찬양을 드릴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화려함만이 예배에 방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화려하지 않음도 예배에 방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험성을 강조하기보단, 모든 상황에 적응하도록 청중들에게 적절한 마음가짐을 교육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다마스커스님의 주장과 비슷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듣다보니....엠마오님이 말하는, '이것이 하나님께 방해가 되는것일까?'하는 고민 그리고 그것을 절제하고 제한하는 마음가짐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어렵네요....
찬양을잘한다고 은혜 더받지는 않음.. 나도 찬양을 하고있으니....
그리고 난 아이들 찬양때가 더 감동..
57:47 교육이 있다고 해가되지 않는다. 법이 있어서 범죄가 안일어나지는 않죠. 교육이 있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사람'이라서 교육의 효과가 100% 영향이 생기지는 않죠. 강제해도 반발하는게 사람인데 교육한다고 사람이 다 성숙해질까...
안녕하세요, 처음 들어와 봅니다... 유쾌한 토론...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두분 다 맞는 말씀이시고 정말 생각 깊이 해볼만한 주제에요!!! 정말루!!! 감사합니다.
엠마오님. 교회 특송은 어떤가요? 기타 솔로나 드럼솔로는 일부 교회 찬양이지만, 교회 특송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이기에 교회 특송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예배중에 솔로로 특송을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기자랑 같아요
재능잔치죠ㅋㅋ 비그리스도인 성악전공자들도 돈받고 특송부르러 교회가는데 이런게 한두군데겠습니까
두분 말씀이 결국 비슷한거같아요 ㅎㅎ 화려한 음악에 흔들리지 않도록 근본을 잊지 말자는 고뇌가 느껴집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화려한음악 괜찮아 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거든'
화려한 찬양을 드리는 교회를 다니는 저는 감정에 취하는 것을 조심하며 찬양을 드리는데, 정말 제 마음의 중심을 드려 찬양 드렸다 했을지라도 집에 돌아가면 공허할때가 있더라구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뭔가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ㅎ
저는 엠마오님 동의
요즘 찬양 드럼들 보면
화려한 스킬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댓글달고 드러머를 높이고
영상 제목이 교회 연합수련회인데 500명 앞에서 찢었다
아마도 엠마오님이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지금의 생각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음악은 언제는 그 상황에 맞는 연주와 장르가 있습니다. 블루스, 클래식, 힙합, 헤비매탈..등..... 음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과 대상이 원한다면, 어떤 음악이 가장 하나님의 이름과 은혜를 찬양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되면 안될 것 같아요.
절제는 중요합니다. 카메라가 왜 예배에 등장해야하는가 말씀이 핵심입니다
찬양이 어떤가보다는 설교말씀과 예배시간 밖에서의 교인들의 모습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 신앙이 떨어지면 찬양이 화려하든 소박하든 잘 들리지 않고 내가 갈급한 상태에서는 찬양의 형식에 상관없이 감동받는 경험을 해서요.
다마섹님! 마지막 멘트
공감합니다. 화려함 보다는 가사가
문제다!
오른쪽이 맞다. 왼쪽은 문제의식에 동감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잘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아서 저러는 거다. 한마디로 현대의 찬양팀 영상이나 모습들에서 거슬리는 것들이 별로 없는 거다.
유투브 봐라. 건반주자들 집회가는 모습부터 영상에 담는다.그러고는 옆모습 신경쓰면서 건반치고.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 즐길수 있는 요소가 매우 강한 예술입니다
견물생심
유혹될만한걸 굳이 가까이 두면서 잘 통제하면 된다고하는건 위험한 발상인듯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므로 음악적 형태는 상관없지만
음악 자체를 예배할 유혹을 굳이 풀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보통 엠마오님 하는 말씀들 반대하는데 이번엔 아니네요..
다윗이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고 수 많은 백성 앞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언약궤를 보며 옷이 벗겨지도록 춤을 추는 것도 모두 범죄 함 일까요? 유혹에 당한 것일까요?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 앞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자신의 자아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의 중심의 그 신앙의 싸움입니다.
@@롤트레스만땅찬양자들 연주자들의 중심이 다윗과 같다면...찬양에 취해 옷이 벗겨지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에 취해있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라면...
하지만 다윗과 같은 찬양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혼적인 찬양, 예배.. 내 혼이 흥겨운 찬양, 내 혼이 격동하는 예배가 범람해서 분명히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교한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구분이 애매하지만 보면 안다고 하는 류의 직관이 엠마오님 쪽인데, 거기에 동의해도 그걸 목사 직권으로 판단하거나 제재하기 시작하는 건 별개의 문제임. 여기서부턴 다메섹님에게 급격히 기욺.
우리 다 같이 고민해보고 자제할 게 있음 자제해봅시다, 요새 좀 너무 심하네요, 일반 다수는 독이 되는 찬양인 듯,을 입으로만 떠들면 좋겠다는 생각.
예배중 악기 솔로에 대한 의견
악기 솔로를 두고
악기로 찬양을 하는 것이다.
연주자가 그 순간 직접 찬양을 하는 것이다.
악기의 멜로디로 찬야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현대 예배에서 사용되어지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17세기 18세기 음악양식에 따른 곡들이 상당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가사'와 무관하게 요즘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다는게 느껴지기에
현대에 사용되어지는 음약양식으로 재편곡 되기도 합니다.
그런과정을 통해
요즘 사용 되어지는 음악양식을 차용하여 예배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솔로는 improvisation (즉흥연주)와 같습니다.
(실제로는 자기 손에 익은 방식의 연주나, 준비된 멜로디로 연주합니다.)
이 악기솔로는 클래식음악에서부터 출발하여 재즈에 이르기까지 존재합니다.
실제 클래식음악에서도 카덴짜 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옛날과는 달리 요즘은 유명한 솔로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합니다만)
이런 악기솔로는 훌륭한 연주자의 덕목 중 하나로써
'음악적으로 뛰어나고 기교를 부리는 멋들어진 즉흥연주' 가 가능한 것을 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재즈에서도 이러한 즉흥연주는 존재합니다.
악기끼리 서로 즉흥연주를 '트레이드' 합니다.
재즈에서 추구하는 즉흥성을 발휘하며, 연주자 간의 음악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16세기 그리고리오성가로 부터 점점 교회에서의 음악은 발전하여
요즘의 음악양식을 이용한 예배음악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악기솔로에 대😀한 부분 인 것 같습니다.
악기솔로라는 것은
위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음악적으로 뛰어나고 멋들어진 즉흥연주' 가 가능한 것을 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이것이 현대예배에 현대음악을 접목하며 같이 들어오게 된 듯 합니다.
CCM과 WORSHIP을 좀 구분해서
간접예배와 직접예배 혹은
크리스쳔 음악문화를 통한 전도와 공동체적 예배라고 본다면,
사실 공동체적 직접예배라는 형태에서는
악기 솔로가 과연 굳이 차용할 가치가 충분한가 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현대음악을 현대예배에 차용함에 있어서,
음악이라는 장르를 이용해 하나님을 예배 할때에
연주자의 기교와 음악성을 자랑하는 악기솔로 라는 역할을
굳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차용해 와야 하는가는 생각해볼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욕망과 욕심이 독이 되는 것 같네요. 화려함의 기준은 풍성함으로도 나타낼수 있고, 소박함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예배음악이든 사람이 거론되거나 팀이 거론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불필요한 화려함 같네요
이 부분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할것 같다 생각이 듭니다
다메섹님 측에서 좀 더 논리적으로는 반론을 잘 하신 느낌이지만, 저는 엠마오님의 의견에 더욱 공감이 됩니다. 이 주제는 말로 잘 설명/설득하지 못했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찬양 인도를 오래 했던 사람으로써 그런 부분에서 무지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감정을 짜내고 흔드는것이 좋은 찬양이라고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감정이라는 영역이 배제 되는것은 문제이지만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이 찬양의 내용과 이성을 지배해 버린다면 문제가 되는것 같습니다.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음악에 반응하는 행동? 을 유도하기 위한 방식으로 찬양이 진행될 수 있다는것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런 유혹에서 자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들 측면에서 충분히 고려하고 찬양이 진행 되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두 분의 영적 주소가 다르셔서...사실 이 논제에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을듯요.
재밌다~~
결국 화려한 예배에 대한 판단을 누가할것인가? 엠마오님의 보수논리 또한 하나님의 관점을 인간이 판단할수 없다
ccm이나 기독문화자체는 좋죠. 문제는 상대적으로 예배나 성경을 도외시한다는 점이죠.
두분의 이야기가 다 맞습니다~마음이 어느곳에 집중이 되어있느냐가 문제인데
두분의 이야기를 모두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함부로 판단을 하면 안되겠습니다~
다메섹님은 어떤 프레임속에서 논리를 펼치려는게 다분하다 보여짐, 찬양의 화려함이 독이된다 아니다라기보다는 독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거 아닌가요? 솔직히 찬양하는 사람들중에서 자신까지 속이면서 자신을 높이기 위한 무대욕심이 없을수 있을까? 순수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만 찬양 그자체에 목적인지 아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모습은 없는가? 냉철하게 살펴봐야할 문제죠
실제로 영상에서 다메섹 님이 이기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토론했다고 말하셨어요 ㅋㅋㅋㅋ 토론에서는 엠마오님이 이 전략에 말린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엠마오님의 논지 전개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했네요.
@@류승환-o7w 저도요ㅎㅎ
저는 엠마오님 얘기대로면 강단에 교회 60%이상 조명과 교회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로 설교자를 비추고 것도 앵글 바꿔가면서. 가장 비싼 마이크로 볼륨도 크게 세팅하고. LED에 설교자 바스트 샷을 40분 내내 비추는게 훨 불편합니다. 설교자의 우상화 권력 집중화를 막게 위해 목소리만 나오면 좋겠어요. 특히 엠마오님. 잘 생기고 머리 길어서 메세지 듣기에 방해 많이 됨. ㅋㅋ ㅋ
ㅋㅋㅋㅋ 재미나네요ㅎㅎ 왜 예수님은 키도 작고 못생기게 오셨을까요?
@@selectivetoldya 일부러 낮은자로 오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성경인물이 항상 낮은 포지션만 고수하는건 아닙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께서 높이실때도 있고 낮추실때도 있습니다. 극단적인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selectivetoldya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못 생겼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 부요 같은 외쩍인 배경을 두고 말한 것이며 고대 문서에는 그의 키는 아주 컸으며 모습은 평화로웠고 꽃 미남이라고 묘사된 글도 있고 토리노 수의로 측정한 결과도 그렇게 나왔습니다
엠마오님. 잘 생기고 머리 길어서 메세지 듣기에 방해 많이 됨. ㅋㅋ ㅋ
이 말을 적으면서 이사람은부끄러움이란걸 못느끼는걸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절대해선안되고 할수도없을말을
하는사람들보면 신앙을가지는게맞나 하는 회의감이든다 님은빠돌이를하려고교회를갑니까???
그 목회자의 바스트샷은 씨씨엠만큼 화려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
찬양도중에 목사님이 악기없이 했을때 악기없는 찬송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음 천주교 처럼 올갠 하나로도 춤없이 거룩한 분위기가 좋을듯
화려한 예배와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신학자들은 단순히 화려한 예배에만 집중하는 것 같은 교회들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부분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그런 예배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화려한 예배의 위험성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열정적인 예배도 좋지만,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적인 지식을 가진 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누구를 예배하는지, 그리고 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그 예배는 헛된 것이 됩니다.
"기타솔로"가 언급되었으니, 기타 솔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배 중간에 기타솔로를 하는 것이 옳은가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록 콘서트의 열렬한 팬이 전도를 받고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찬양팀의 일렉트릭 기타리스트가 특별히 그 새로 온 사람을 위해 기타 솔로를 연주하고 싶어한다면?
사실 예수님께서 안식일 문제로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내신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토라(torah)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바리새인들은 애초에 율법이 왜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이 계명을 지켰던 거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부지런히 경건하게 살았던 거죠.
그래서 엠마오의 말씀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타 솔로가 너무 과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하다'는 것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예시가 결국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두사람 다 예배가 뭔지부터 다시 정리해야겠네요.
예배의 기준이 사람에게 있는가요?
또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할 수 있는 방법이 인간의 행위에 있는가요?
제 생각은 두분의 토론 주제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제사는 상한심령!
하나님은 상한심령을 원하시지요ᆢ
사람을 기쁘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느냐
예배 가운데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됩니다ㆍ
자기자신들(다메섹)도 알고있을거에요ᆢ겉으로 합리화로 숨길뿐이죠ㆍ
와 너무 재밌네요. 두분다 너무 많은걸 배웠습니다..그리고 두 분 이야기 모두 옳은 방향이라 불편한거ㅠ없이 잘 들었습니다!
악기를 쓰는 건 괜찮은데
그로인해 예배에 방해가 되거나 본질을 흐리거나 하는 게 문제죠.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기타 솔로를 두고 논한 것 뿐이지,
곡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드럼 연주랄지,
전체 분위기와 동떨어진 보컬의 과도한 기교랄지
이런 게 다 예배에 독이죠.
그리고 단순히 그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할 뿐만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아닌 기술적 능숙함, 연주 그 자체에만 몰입하게 되는 그 공동체와 개인 모두에게조차도 이건 실이 더 크다고 봅니다.
좋은토론 감사드립니다👍
태초 루시펠의 찬양이나 힐송교회 음란의 문제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네요~ 좋은 토론 감사합니다
벌칙 겁나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엠마오 주장이 포괄적으로 맞음....
명언하나 적고 갑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솔직히 이길자신이 없타
화려함에 초점을 맞춘것같은데
그것보다 더 문제는 가사가 비성경적인 경우가 너무 많음.
진실된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고민을 해보자는 취지가 고무적이다 😮
찬양사운드로 사람을 꼬셔와도 되는가 라는 파트를 들었을때 친구 교회에 어떤 믿지않던 남자 청년이 첫 출석을 해서 신부감 찾으러 왔습니다. 라고 당당히 얘기했다 하더라구요. 그 청년의 이후 신앙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렇게라도 오는게 옳은걸까요 믿음이 없고 다른 의도면 오지마 라는게 맞는걸까요... 저는 이단 만 아니면 전자가 맞다고는 생각합니다만 개인의 기준 차이겠죠 🤔🤔🤔
그리고 화려한 찬양이 내 욕망이 담길 수 있으니 위험하다 라고 하는 부분 정말 이해는 하지만 그런 논리로 따지고 가다보면 80년대 드럼도 안돼 신디사이저도 안돼 라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오르간 치던 시대까지 가야 하는거 아닐까요.. ㅋㅋㅋ 보컬도 동요부르듯이 모두 정박에 딱떨어지게 기교넣지말고 불러야 하거나... ㅎㅎㅎ
제가 고민하는 주제인데,
이렇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오프화이트를 입고 찬양집회를 인도하는 어떤 인도자의 설교를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북하지만, 도대체 저게 잘못인가에 대하여 의문이 공존하는 시간이 이어져 오고있습니다,
저작권을 받고, 입장권을 팔아 콘서트를 하는게 정말 옳은 길인가? 그른 일인가?
찬양이라는게 나누고 전파하기 위함인데, 찬양이 하나님의 것인데…
이걸 돈받고 하는게 맞는 일인가?
이것은 집회나 예배가 아니라 그와 다른 콘써트다….라는 말을 들으며..
그러니까 예외라고 인정해야하나
아니면 그럼에도 예배라고 보아야 하나...
콘써트는 주님의 임재가 없이 단순히 노래만을 위주로 즐기고 누리는 것인가요?
아니면 메마른 일상에서 신남을 찾을때
그나마 주님의 노래를 이용하는게 덜 그릇된 것인가 고민됩니다
찬양도
내가만들었으니, 나에게 주권이 있고
그로 인해 은혜받았다면 저작권을 내야하고
이제는 은혜도 이를 돈을 받고 분배하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아직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에는 제 깊이와 기도가 부족한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진심으로 누굴 비난하고 힐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제 신앙이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오프화이트를 좋아하지만,
사역자들이 그것을 입고 설교를 하면 왜 거븍함을 느끼게 되는지
그들이 명품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마치 그것이 우리의 헌금으로 누리는 것만같은 생각은
제 어리석고 이기적인 마음인가요…
밤이되면, 교회 십자가가 즐비한 대한민국에서
왜 개척의 이름으로 한 사역은 대도시와 번화가에 가득 집중될까요?
지방과 농어촌은 사람이 없어서 사역이 불필요한가요?
인기 목회자가 되기에는 기회가 적기 때문인가요
또 인기목회자는 왜되려고 하나요?
결국 오프화이트도
내 저작권도
목회 사례비라고 변질된 노동의 보상이 본질인 출연료도…
그리고 목회자인 내가
교회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부흥이 목회자 자신의 업적으로
변질되는게 아닌지…
어렵고 힘든 고민만 계속됩니다
신도인 저는 이런 무거움에서
가볍고
목회자는 주의 종이란 이름때문에
이런 비난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건 아닌지....
그런 그들의 역할과 책임에 기대어
무자비한 비난만 쉽게 던지는 모습은 아닌지 고민됩니다
혹시라도 이런 제 고민에
저보다 깊은 고민의 답을
앞서 얻으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두분이 아무리 가부타 따져도.. 받으시는 주님이 판단하시겠죠.. 두분다 일리가 있습니다. 이토론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스스로가 알테니.. 토론은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분이 예전에 말씀하셨어요!
성경에 시편이 가사만 전해진것을 생각해봐야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깔끔하게 무반주 시편찬송만 부르자 ㅋㅋㅋ
그레고리안 찬트
가 왜 성립되고 있는지 알아야
할 부분 입니다.!!!
좋은 토론 감사합니다. 생각 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화려한 찬양이라고 하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보다는 봉사하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가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엠마오님은 기존의 일반 예배에 국한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다고 생각하기에 이에 맞추어 의견을 드린다면, 다메섹님 의견대로 음악적 완성도를 통하여 유입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분은 일반 예배보다는 찬양예배에서 타겟팅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인도해본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찬양인도는 성도분들이 예배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한 목적성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날의 목회자의 설교말씀을 고려하여 준비하되, 정작 인도할 때는 청중들 반응에 집중하며 조절하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로 보컬이든 연주이든, 청중들이 관객이 아닌 주체가 되어 함께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찬양팀의 마이크를 배제하고 청중들과 함께 목소리로 합창하는 것 같이 말이지요.
분명한 것은 찬양인도는 예배의 시간을 구성하는 순서이고, 섬기는 자리/하나님께 사용받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선포처럼 영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리이고, 그렇기에 찬양팀은 오히려 그 예배의 자리에서 영적으로 지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찬양인도팀은 (개인에 따라 시간적 부담은 있겠지만), 보통 별도로 그들만의 예배를 드리지요. 그만큼 귀한 사역이고 리더의 지혜가 필요한 자리라는 생각도 드네요.
처음 들어본 주제이지만 성가대원으로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네요. 확실히 어렸을 때는 그냥 멜로디가 좋아서 불렀던 기억이ㅎㅎ 그리고 저도 찬양 인도자분이 심취해서 혼자 애드리브를 넣는 모습 등에 예배에 집중이 안 됐던 경험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계속 기도중입니다.
또는 교회 밴드부가 비록 예배시간이 아니었지만 교회 본당에서 찬양곡이 아닌 가요를 연주하며 서로 노는 모습을 봤고, 저는 그런 모습이 보기 불편하더라구요. 찬양가는 항상 겸손하며 내가 드리는 찬양이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청자는 찬양 속 말씀과 주께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은 계속 서로 노력해야 할 일이지 완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찬양은 예배의 독인가?' 라는 '주제' 만을 두고 논리를 전개시키면 No의견이 우세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화려한 찬양 앞에 수식이 정확하지 않고, 이 경우 '모든'을 붙여 토론을 진행하게 되는 것 같은데, 화려한 찬양이라는 비본질적인 요소에 모든/절대 등을 붙여서는 5대5의 토론이 어려우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주제 들었을때 당연히 no 아닌가 했었구요.
다메섹님께서 역시 너무도 철저하게 토론에 임해주셨고, 항상 응원합니다만, 엠마오님을 조금 변호하자면
1) 엠마오님께서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고 커뮤니티 글을 쓴 계기가 구체적인 현실의 어떤 모습을 보고난 직후였다고 가정해본다면.
예를들어 어떤 한국 대형교회들의 찬양팀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서 멀어져 있다고 느껴, 문제제기 차원의 글까지 쓰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그 특정 찬양팀을 직접 저격하기는 어려우므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화려한 찬양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면, 조금 강한 글이 되었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다메섹님께서 화려함의 기준은 합의될 수 없음을 잘 설명하셨지만, 바로 뒤따르는 엠마오님의 의견은 각 개인과 각 찬양팀이 스스로 돌아보아 화려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였으며, 즉 주관적인 화려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야기가 그렇게 된다면 토론이 될 수 없겠죠, 다메섹님도 당연히 동의하시는 부분이니까요.
즉 실은 엠마오님이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정도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교회들의 상황을 보니 문제가 크게 느껴진다. 나라도 목소리를 내야지. 찬양팀과 예배자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방해되는 요소(특히 화려한 기술)을 내려놓읍니다.
엠마오님도 화려한 찬양을 '막아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봤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예배의 독이 되는 화려한 찬양이 많다." 가 엠마오님 초반에 말씀하신 본인 주장이시니까요.
"현재 한국교회 찬양팀의 문제(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했을 때
다메섹님은 복음과 교육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엠마오님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나를 내려놓는 준비라고 정리해본다면,
두분 의견 모두 동의하구요.
"현재 한국교회 찬양팀, 문제 많다/괜찮다" 혹은 "현재 한국 대형교회는 화려한 찬양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없다" 정도를 가지고 구체적인 상황을 두고 토론을 한다면 양쪽이 좀 공평한 것 같습니다.
저는 두분 다 너무 좋아하는 뉴비 구독자로서 실은 지금 50분 정도까지만 영상을 보았는데요, 내일 이어서 다 보겠습니다^^
토론을 재밌게 봐주시고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려한 찬양은 누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졸려서 9:48까지만 보아서 잘 모르겠지만 엠마오가 하는말이 옳다.
찬양곡을 통해 유일하게 은혜 입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작사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