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중에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지금 현재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타락 이전에 아담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결코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방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은혜언약의 중보자와 보증으로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의 의를 완전히 이루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분을 믿을 때 그분이 율법의 성취를 통해서 이룬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것이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방식입니다.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능동적 순종을 성령의 조명과 적용으로 죄사함의 의의 전가와 함께 칭의의 열매로 주어지고, 모든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결과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개혁파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네요!
교수님, 부끄럽지만 무식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1. 아담은 죄를 지을수도 있고, 안지을수도 있는 상태로 지어진 것인가요? 만약 죄를 지을수도 있는 상태라면 선악과를 먹기전에 이미 죄가 존재했다는 건가요? 2.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켰다는 말은 구약의 율법의 세목 하나하나를 다 지켰다는 말인가요? 만약 그런거라면 예수님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장면이 있지 않나요?
1. 네. 아담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죄가 존재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인류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경우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타락했으니까요. 2.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본래의 의미를 다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문자적으로 다 지키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율법의 본래의 정신과 의미를 다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어떤 경우는 율법 본래의 의미와 배치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지키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죠. 혹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셨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죄없는 자가 돌로키라고 했을 경우,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치는 것이 맞지만 예수님께서는 또다른 가르침을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율법을 어기신 것 같지만, 사실은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자가 치라고 하셨으니 율법을 어기신 것은 아니죠. 이와 같이 율법의 본래 정신은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본래의 목적은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를 억제하기 위해서 돌로치라고 한 것도 그 사회의 도덕과 질서, 그리고 영적인 안녕을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도 율법의 본래 정신인 사랑을 기억해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신 것은 더더욱 아니죠. 오히려 율법의 참된 정신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율법이 아니라 유대교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생겨난 장로들이 만든 유전과 규례와 같은 것들은 지켜야 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교수님 귀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의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저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가르침에 모두 동의하며 지금껏 능동적 순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의의 획득과 전가의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총신의 박00 교수님께서 온라인 강의 중에 전반적으로는 정00목사의 주장을 비판하시면서도 애매하게 저들과 맥이 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박00교수님께서 능동적 정의는 예수님께서 얻으신 의와는 상관없고 그저 그분이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자질과 관련된 것으로 말씀 하셨기때문입니다. 즉, 능동적 순종의 핵심인 행위구원과의 상관성이나 율법의 요구의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적잖은 혼란이 왔습니다. 박00교수님은 그래도 차세대 조직신학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분인데 김병훈 교수님의 주장보다는 정00목사의 주장과 더 비슷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저의 일천한 신학 지식으로 인한 오해일수도 있겠다 싶어 이렇게 교수님께 문의를 드립니다. 목회와 연구 사역으로 바쁘시겠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래 링크는 박00교수님 강의 영상입니다. th-cam.com/video/bdHe8OaiZQE/w-d-xo.htmlsi=5dZgHWwaJjnCT6Ol
목사님. 능동적 순종교리가 교리적으로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더 어떤 유익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흠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또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 대속제물이 되신 그 은혜가 이미 무한한 은혜인데.. 그분이 율밥을 다 지켰으므로 더 감사해야 한다고 한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미 예수님의 제물 되심으로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도 별 의미가 없으며, 예수님의 제물되심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에게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이 무슨 감흥으로 올까요? 그저 능동순종 교리논쟁 이라는 것은 신학자들의 탁상공론일뿐 실제로 성도들에게는 별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회심준비론의 경우에는 신학적 논쟁이 되기는 하지만,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는 측면이 존재합니다만, 능동순종 교리는 글쎄요..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인간이 지켰어야만 할 율법을 그럴 능력이 없어진 인간 대신 그리스도께서 대신 순종하신 것을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면 성경 어떤 곳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나요? 능동적 순종 교리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율법에 순종하셨다라는 사실을 넘어서 모든 율법을 지키심으로 획득된 의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신자에게도 전가 된다는데 있습니다. 원죄로 인해 행위 언약을 지킬 수 없게 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여서 나 대신 모든 율법을 감당하시고 성취하셨다는 그 사실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율법을 다 지키셨기 때문에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희생제물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 때의 율법은 사실 완벽하게 지켜서 구원받아라 라고 준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하게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두니까 능동수동순종이란말이 나온것같습니다. 그랴서 제사를 계속 드려야한다고 쓰여있죠 완벽하게 지키라고 준 것이었다면 어떤 때는 정말 완벽하게 지켜서 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야죠 그래서 예수님으로 구약 율법이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복음서에서 가르쳐주는겁니다. 그 후로 자유 율법이라고 표현되고 행위로만 할 것이(가식) 아니고 마음부터 지켜라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도 초등학문처럼 처음부터 세세하게 알려주는 단계가아니고 행동규칙부터 알려주듯이 내려준 율법입니다 마음속에서 계속 되네이면서 몸으로 익히는거죠. 예수님이 율법 완전히 지켜서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되었고 이 상태로 어린양으로 바쳐진거다 라는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죄가 없었죠. 다만 해야할 사명이 있어서 그걸 다하고 돌아가신거죠. 그냥 순종인겁니다 능동적순종 이런식의 말을 붙일 이유가 없어요 육적인 수준에서 이제 영적인 수준으로 단계가 올라가야 하니 예수님이 알려주고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 것이지 죄없이 의로운 존재가 되기위해 완전히 지켰다 라는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저도 예수님의 능동적인 순종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동시에 의문이 들어 의견을 구합니다. 1. 구약 시대에 영생이 주어지는 조건이 행위 언약이라면, 단 한명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아브라함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라를 누이라 두번 속이고, 사라 역시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것에 비웃고, 다윗도 밧세바 간음 사건이나 인구 조사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 걸로 보면 말이죠. 하지만 이들이 '영생', 여기서 영생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생명이라 정의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누구든 찬성할 것으로 보여요. 신약성경에서도 그들의 행위의 온전함보단, 하나님의 정체성에 분명한 믿음을 지닌 것으로 믿음의 조상들을 바라보게 해주니까요. 요컨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이루신 능동, 수동 순종에 동의가 되지만, 구약 시대의 경우에 나타나는 구원의 형태에선, 행위 언약만으로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어 여쭤보려 남깁니다 :)
내용 중에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지금 현재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타락 이전에 아담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결코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방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은혜언약의 중보자와 보증으로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의 의를 완전히 이루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분을 믿을 때 그분이 율법의 성취를 통해서 이룬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것이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방식입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통해 죄가 사해지고 의를 얻었다는 말씀이 참으로 감사와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족이 이루어 진 것을 깨닫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신학 교리를 짧고 간단히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아담에 관한 설명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할렐루야 오직 주님께 영광돌립니다.
교수님 만나게 해주신 주께 감사드립니다.
정녕 찿으라 그러면 찿게하시고 두드리면 열리게 하시는 진리에 이제야 누리게하십니다.
교수님, 꼭 필요한 내용을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잘 배웁니다
교수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아멘♡ 능동적순종에 대해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위험한건 능동순종을 부인하면서 구원파 사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거라네요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능동적 순종을 성령의 조명과 적용으로 죄사함의 의의 전가와 함께 칭의의 열매로 주어지고, 모든 신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결과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개혁파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능동적순종 교리를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율법을 다 지키셨다' 라는 표현 가운데 그 율법의 범위를 어디정도 까지로 이해하면 될까요~?
예수님이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모든 삶으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네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모든 삶을 통틀어서 율법을 지키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Reformed_TV 감사합니다~!
이담은 영생을 얻었는데 영원이 사는데
하나님이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고 했잖아요
말씀을 어겼잖아요.
그래서 죽었잖아요.
교수님, 부끄럽지만 무식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1. 아담은 죄를 지을수도 있고, 안지을수도 있는 상태로 지어진 것인가요? 만약 죄를 지을수도 있는 상태라면 선악과를 먹기전에 이미 죄가 존재했다는 건가요?
2.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켰다는 말은 구약의 율법의 세목 하나하나를 다 지켰다는 말인가요? 만약 그런거라면 예수님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장면이 있지 않나요?
1. 네. 아담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죄가 존재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인류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경우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타락했으니까요.
2.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본래의 의미를 다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문자적으로 다 지키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율법의 본래의 정신과 의미를 다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어떤 경우는 율법 본래의 의미와 배치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지키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죠. 혹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셨던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 죄없는 자가 돌로키라고 했을 경우,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치는 것이 맞지만 예수님께서는 또다른 가르침을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율법을 어기신 것 같지만, 사실은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 자가 치라고 하셨으니 율법을 어기신 것은 아니죠. 이와 같이 율법의 본래 정신은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본래의 목적은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를 억제하기 위해서 돌로치라고 한 것도 그 사회의 도덕과 질서, 그리고 영적인 안녕을 위해서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도 율법의 본래 정신인 사랑을 기억해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신 것은 더더욱 아니죠. 오히려 율법의 참된 정신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율법이 아니라 유대교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생겨난 장로들이 만든 유전과 규례와 같은 것들은 지켜야 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hessedd 네 교수님 잘 알겠습니다
정성스런 답변 고맙습니다
1 . 아담의 창조 상태는 " 의와 진리의 거룩함 ; 하나님의 형상 " 대로 지음받았습니다 . 그러나 피조물이기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가능한 " 가변성 " 의 상태였습니다 . 그래서 사탄을 통해 미혹받아 죄짓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
교수님 귀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의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저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가르침에 모두 동의하며 지금껏 능동적 순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의의 획득과 전가의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총신의 박00 교수님께서 온라인 강의 중에 전반적으로는 정00목사의 주장을 비판하시면서도 애매하게 저들과 맥이 닿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박00교수님께서 능동적 정의는 예수님께서 얻으신 의와는 상관없고 그저 그분이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자질과 관련된 것으로 말씀 하셨기때문입니다. 즉, 능동적 순종의 핵심인 행위구원과의 상관성이나 율법의 요구의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적잖은 혼란이 왔습니다. 박00교수님은 그래도 차세대 조직신학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분인데 김병훈 교수님의 주장보다는 정00목사의 주장과 더 비슷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저의 일천한 신학 지식으로 인한 오해일수도 있겠다 싶어 이렇게 교수님께 문의를 드립니다. 목회와 연구 사역으로 바쁘시겠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래 링크는 박00교수님 강의 영상입니다.
th-cam.com/video/bdHe8OaiZQE/w-d-xo.htmlsi=5dZgHWwaJjnCT6Ol
목사님. 능동적 순종교리가 교리적으로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더 어떤 유익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흠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또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 대속제물이 되신 그 은혜가 이미 무한한 은혜인데.. 그분이 율밥을 다 지켰으므로 더 감사해야 한다고 한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미 예수님의 제물 되심으로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사람에게도 별 의미가 없으며,
예수님의 제물되심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에게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이 무슨 감흥으로 올까요?
그저 능동순종 교리논쟁 이라는 것은 신학자들의 탁상공론일뿐 실제로 성도들에게는 별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회심준비론의 경우에는 신학적 논쟁이 되기는 하지만,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는 측면이 존재합니다만, 능동순종 교리는 글쎄요..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인간이 지켰어야만 할 율법을 그럴 능력이 없어진 인간 대신 그리스도께서 대신 순종하신 것을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면 성경 어떤 곳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나요?
능동적 순종 교리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율법에 순종하셨다라는 사실을 넘어서 모든 율법을 지키심으로 획득된 의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신자에게도 전가 된다는데 있습니다.
원죄로 인해 행위 언약을 지킬 수 없게 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여서 나 대신 모든 율법을 감당하시고 성취하셨다는 그 사실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율법을 다 지키셨기 때문에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희생제물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 때의 율법은 사실 완벽하게 지켜서 구원받아라 라고 준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하게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두니까 능동수동순종이란말이 나온것같습니다.
그랴서 제사를 계속 드려야한다고 쓰여있죠 완벽하게 지키라고 준 것이었다면 어떤 때는 정말 완벽하게 지켜서 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야죠
그래서 예수님으로 구약 율법이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복음서에서 가르쳐주는겁니다.
그 후로 자유 율법이라고 표현되고 행위로만 할 것이(가식) 아니고 마음부터 지켜라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도 초등학문처럼 처음부터 세세하게 알려주는 단계가아니고 행동규칙부터 알려주듯이 내려준 율법입니다 마음속에서 계속 되네이면서 몸으로 익히는거죠.
예수님이 율법 완전히 지켜서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되었고 이 상태로 어린양으로 바쳐진거다 라는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죄가 없었죠. 다만 해야할 사명이 있어서 그걸 다하고 돌아가신거죠.
그냥 순종인겁니다 능동적순종 이런식의 말을 붙일 이유가 없어요
육적인 수준에서 이제 영적인 수준으로 단계가 올라가야 하니 예수님이 알려주고 어떻게 하는지 보여준 것이지 죄없이 의로운 존재가 되기위해 완전히 지켰다 라는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저도 예수님의 능동적인 순종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동시에 의문이 들어 의견을 구합니다.
1. 구약 시대에 영생이 주어지는 조건이 행위 언약이라면, 단 한명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아브라함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라를 누이라 두번 속이고, 사라 역시 하나님이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것에 비웃고, 다윗도 밧세바 간음 사건이나 인구 조사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 걸로 보면 말이죠. 하지만 이들이 '영생', 여기서 영생을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생명이라 정의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누구든 찬성할 것으로 보여요. 신약성경에서도 그들의 행위의 온전함보단, 하나님의 정체성에 분명한 믿음을 지닌 것으로 믿음의 조상들을 바라보게 해주니까요.
요컨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이 이루신 능동, 수동 순종에 동의가 되지만, 구약 시대의 경우에 나타나는 구원의 형태에선, 행위 언약만으로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어 여쭤보려 남깁니다 :)
안녕하세요. 행위 언약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던건 타락 이전 아담 밖에 없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그 어떤 인간도 행위 언약을 지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구약 시대가 아닌 타락 이전 시대로 이해하시는게 더 바른 이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대마다 필요한 믿음 수준이 다른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교 관원들에게 너네는 날씨예측은 하면서 시대 분간은 못하냐고 말씀하신겁니다.
집주인이 허락한다고 해야 들어갈수있는것입니다.
조건에 맞으면 들어갈 자격이 되는거죠.
아담의 선악과 언약이 " 행위 언약 " 입니다 . 하지만 타락 이후로 인간과 세우신 언약은 " 은혜 언약 "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