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2차 대전. 진짜 다른것보다 인과관계랑 각 국가별 입장 꼬박꼬박 다 말씀해주시는게 너무 좋네요. 저는 이때까지 소련 침공 목적이 석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석유를 노리다가 모스크바를 못먹어서 진거였군요. 다시 한번 새롭게 배웠습니다. 감사해요
소련이 전쟁초기에 어처구니 없이 밀렸던건 스탈린 군숙청도 있었지만 스탈린 통치가 하도 막장이어서 수많은 군사병들 사기가 밑바닥이었고(스탈린을 위해 죽기 싫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 발트3국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기 때문임. 나치한테는 엄청난 기회의 창이 열렸던 거였는데 그 상황에서 독일군이 벌였던짓은... 대충이라도 알고 싶다면 컴앤씨를 보면 됨.
히틀러가 모스크바 점령을 코앞에 뒀는데 키예프 먼저 가라한점 스탈린 그라드에서 쓸대없이 어텍땅 한점 북부는 레닌그라드를 굳이 포위해서 굶겨 죽이다가 반격맞고 박살, 남부집단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박살 그래도 나름 전력이 잘 보존되 있는 중부집단군을 성체작전으로 말아먹은점, 히틀러가 구데리안, 클루게, 만슈타인 등등 고위 지휘관들을 짤라버린점 까지 있습니다 어째 히틀러가 다 말아먹은걸로 보이지.....
@@임-l5q ㅇㅇ 맞긴한데 일단 자본주의자라는 공통의 적을 지니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스탈린이 연합국을 같이 치자는 계획을 제안(히틀러가 거절하긴함)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나쁘지 않았음. 영국 항복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립각을 세우게되었겠지만, 독-소 동맹이 성사되었다면 1940년대에 영국이 항복하고 서로의 분열로 몇년이내에 독소전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음(그러나 이 경우에도 독일은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음)
스탈린이 군지휘관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해 줬다고 했는데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독소전 초반에는 스탈린이 하도 간섭을 해대서 소련군이 계속해서 패배했습니다. 초반의 실패에 스탈린의 간섭이 상당히 일조한 셈이지요. 자신이 대단한 명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스탈린이 나중에 현실을 깨닫고 군지휘관들에게 자율권을 보장해주고난 뒤에야 소련군이 승리하기 시작했지요.
독소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흔치 않을 겁니다. 다만, 독소전쟁에서 소련의 사망자 최대치가 4000만 명이라는 추정은 처음 듣네요. 최소 2000만 명에서 최대 2800만 명까지 잡는 건 본 기억이 있는데 4000만 명은 아닌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에서 희생자 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4000만명이라는 숫자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영상 설명란에 남겨놓은 참고자료들에서도 언급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다만 저도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체가 아니라 소련만이요? 설마요... 물론 추산치가 부정확하긴 하지만 5000만 명은 너무하지 않나요? 겨울전쟁의 경우에도 핀란드군 전사자가 약 3만 명, 소련군 전사자가 공식적으로 약 6만 명인데 실제로는 약 20만 명으로 추정한다고 알고 있는데, 가끔 100만 명이 죽었다고 과장하는 사람이 있듯이, 3000만 명부터는 과장 같아요.
@@historytogether 답글 감사합니다. 루카치의 책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에서 제가 흥미롭게 읽은 내용의 흔적도 여기서 발견했고, 여러모로 그 긴 전쟁의 핵심이 다 드러나 있는 것 같네요.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이 보여준 무능함도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무능함이 소련의 진면목이라곤 할 수 없는데 히틀러가 그걸 간과했겠죠.
영상 늘 흥미롭게 잘 보고 있습니다! 역사에 별 관심없었는데 계속 보게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에서 독일이 영국으로부터 유럽대륙에 대한 지배력을 인정받고 싶어했다고 그랬는데 그건 왜 그런 건가요? 유럽에서 이미 상당한 지배력을 차지했음에도 영국으로부터의 인정이 독일에게 중요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당!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서 최근 학계의 논의가 반영되지 않은 지점들이 눈에 띕니다. 첫째로, 스탈린 테러로 소련군 수뇌부가 큰 타격을 입어 독소전쟁 초기 소련군의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최근에는 독소전쟁 직전 지나치게 빨리 확대되던 소련군 조직과 인원에 하급장교의 충원이 따라가지 못해 소련군이 초기에 지지부진하게 패퇴했다는 주장이 각광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탈린 테러로 고급 장교들이 상당히 많이 숙청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의 유능한 장교들이 살아남았고 기존 소련군의 적체된 인사를 고려했을 때에 숙청이 오히려 소련군을 더 젊게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야전에서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하급 장교들의 수가 매우 적었고, 또 그들의 훈련 수준 역시 낮았던 것은 전쟁 초기 소련군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이죠. 둘째는 날씨에 대한 강조입니다. 물론 1941-42년 겨울은 독일군에게 커다란 재앙이었습니다만, 그것은 러시아군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적으로 모스크바 공방전 직후 자신감을 얻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군은 스몰렌스크 방향으로 대대적인 반격이 개시되었지만, 마찬가지로 겨울과 뻘로 변한 땅 때문에 커다란 패배를 당했습니다. 따라서 독소전쟁 과정에 날씨는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에게 공평하게 장애물을 제공했고, 소련군이 독일군에 비해 동장군에 더 잘 대처했다는 증거 역시 약합니다. 당시 소련군의 절망적인 전쟁 준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말이죠. 그리고 날씨를 소련군 승리 원인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은, 소련군의 자체적 전쟁 수행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독일군의 불행 때문에 소련군이 승리했다는, 어찌 보면 전통적인 러시아포비아적 관점의 산물이라는 지적 역시 존재합니다. 그래서 독소전쟁을 다룬 최근 영미권, 러시아권 연구에서 날씨를 주요한 요인으로 보는 시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소련사 전공자로서 독소전쟁에 대한 편향된 컨텐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훌륭한 영상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다만 위와 같은 견해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운좋게 프랑스를 빠르게 먹어서 현실감이 떨어지고 뵈는 게 없어진 거임. 애초에 독일은 다른 연합국 없는 소련을 단독으로도 이길 수 없는 나라였음. 당시 소련의 공업생산력은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고 넓은 땅과 많은 자원과 인구를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임. 당장 보급만 하려고 해도 찐빠지는 나라가 소련임. 어떤 사람들은 소련에 대한 미군의 물자지원을 너무 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이것이 소련의 숨통을 터주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물자 대다수는 소련 스스로 보급했다는 것도 알아야 함. 소련 자체가 강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음.
스페인은 이미 스페인내전때 독일이 지원한 프랑코정권이엇기에 직접 끼어든건 아니엇지만 친독정권이엇죠. 공군과 잠수함늘려서 영국부터 작살냇어야 함. 전투기늘리든 잠수함늘리든 영국전함 발목만잡고 영국상륙만 햇더라도 영국 그냥 털리는건데, 참 일본이나 영국이나 섬이라서 이득본건 맞음.
사실 소련도 이렇게 독일과 언젠가 전쟁을 하게될거란 사실을 알고있었죠. 전쟁 직전에 제작된 소련육군사관학교 다큐를 보면 방어전이 아니라 공격전을 훈련하고 있었으며, 가상 훈련지도 죄다 독일 지명을 사용할 정도로 노골적이었으며, 모토도 "개전 시 우리의 땅이 아닌 적의 땅에서 싸운다"라는 것이었죠. 이렇게 서로가 서로 잡아먹지못해 안달이었지만, 단지 스탈린은 히틀러가 그렇게 빠르게 불가침조약을 파기할 또라이일줄은 몰랐던 것이죠.
쉬움 아시아 강국인 일본이랑 독일의 팽창주의,제국주의등의 이데올로기랑 서로의 지역을 정복하고 미국,영국,프랑스등의 강국을 밀어내자는 이해관계가 맞아 독일이랑 일본은 자연스럽게 동맹하게됐고 이탈리아는 강국은아니고 약강국정도수준이었는데 1차세계대전때 협상국이었던 이탈리아에게 승리후 보상은 거의 없는수준이었기에 영국,프랑스에 불만을 갖고있었고 독일이 최강국이고 바로위기에 개기면 다죽는다는것도 알고있었기에 거의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독일이랑 동맹한거죠
@@xzxzxzxz9892 또한 독일-일본의 협력은 서로 외교적 고립 (일본은 만주국건국, 독일은 재군비로 인한 국제연맹 탈퇴) 에서 벗어나고, 공동의 적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협력하자는 의미로 시작되었지, 강대국을 밀어내자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름부터가 방공협정이었죠. 미영프의 기득권의 탈취보다는, 일본은 중국을 독일은 동유럽을 원했죠..
본격적인 3국동맹은 독일의 프랑스점령후입니다. 일본이 미영을 완전히 적으로 돌릴 동맹관계를 맺을만큼 독일의 빠른 유럽제패는 놀라웠거든요. 동맹의 근본목적은 소련의 위협에 대한 공동협력이고, 독일의 유럽재패후에는 극동에 대한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죠. 독일에 의해 유럽이 장악되면 극동의 유럽세력도 힘을 잃을것이므로 일본으로서는 이득이었죠
미국이 일본에 경제적 제재를 가함 -> 일본이 동아시아 전역을 점령해가며 전선이 넓어지고 자원이 부족해짐 -> 경제적 악화 풀지못하면 전쟁 불가능하기까지 이름 -> 미국 공격해서 경제 제제를 풀자! ->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해군은 세계 최강급) -> 천조국의 미친 생산량과 여러 전투 패배로 인해 일본 패배
8:00 사실과 다릅니다. 스탈린은 실제로 나서서 깝치다가 몇번이나 코피를 쏟아 내고서야 겨우 군을 지휘관에게 맡겼습니다. 오죽했으면 실패한 작전의 지휘관을 두고 쓸만한 장군이 없다고 펄펄 뛰던 스탈린에게 알랑방귀 맨 보로실로프가 "니가 쓸만한 놈들 모두 숙청 시켰잖아!"라고 먹던 접시까지 던질 정도였겠습니까? 이러나 저러나 콧수염 독재자들은 모두 미친놈들이엇습니다. 그나마 쏘련은 스탈린을 주저 앉혔지만 독인은 히틀러를 주저 앉히는데 실패한 겁니다. 그리고 히틀러의 우크라이나에서의 광대짓거리는 그야말로 바보짓 이었지만 처음에 히틀러보다 스탈린을 더 증오하던 우크라이나 인들은 히틀러의 나치독일을 환연 했습니다. 만일 그때 히틀러가 적당히 눙치고 "공산당 놈들 죽여라!"같은 미친짓 안했으면 역사는 모를 일입니다.
@@aazzxxrrdd //아! 그렇습니다. 1차 겨울전쟁 때였지요. 잠시 정신이 나갔다 왔나 봅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종종 함부러 끼어들었다가 쏘련군이 호되게 댓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옐르 들어 스탈린은 게오르기 주코프와 이반 코네프를 베를린 입성 경쟁을 시킴으로서 8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부상자 합계 36만명을 넘는 인적 희생을 치루게 했습니다. 게다가 스딸린은 가만 있었다지만 레브란티 베리야와 엔케베데는 정말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지요!
사실 패색이 짙어진건 1942년에 행해진 히틀러의 머리에서 나온 청색작전 (러시아 남부와 코카서스 유전 공략) 에서 실패하고 부터. 독일군의 장점을 살리기는 커녕 남부공략으로 전선을 더 넓혀버려서 병력이 더욱 분산됨.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의 6군 전멸이 컸음. 또 히틀러가 일정후퇴후 반격을 불허하고 사수를 고집해서 독일군의 피해를 늘림. 중부집단군과 남부집단군의 협공으로 40만명을 포로로 잡은 키예프공략은 그닥 실패라고는 생각지 않음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한 근본원인은 소련이 독일보다 국토 크기, 인구, 공업생산력, 자원 보유량 면에서 월등히 앞섰고 이를 구체적인 전투력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죠. 실제 전투에서 독일군 사상자 비율보다 소련군 사상자 비율이 훨씬 높았지만 압도적인 양적 우위로 이를 극복하는 형국이어서, 설령 여러 가지 행운이 겹쳐서 독일이 조기에 모스크바를 점령했더라도 결국에는 소련이 승리했을 겁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독전했지만 수도기능 상당 부분을 다른 도시로 옮겼다죠? 만약에 모스크바를 독일군이 점령했더라도 그것 때문에 소련 국민들의 전투의지가 꺾이진 않았을 겁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처리하지 않고 모스크바로 갈 경우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옐냐 교두보에서 진격이 막혀있엇고 키에프에 60만 이상의 대군이 모여있었습니다 소련 병력의 15% 가까이있었는데 만약에 여기서 밀려버렸으면 그리고 남부에서 중부로 공세를 가하면 꼼짝없이 갇혀서 죽어버렸습니다 주코프도 당시 독일이 모스크바로 진격했으면 상황이 악화되었을거라 말했죠
41년 소련의 겨울은 50년,백년에 한번 올만한 기록적인 추위엿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추위에 독일군이 무너졋죠. 독일군 장교일기를 보면 전투로 죽은 독일군보다 자살하는 독일군이 더 많다라고 기록되잇엇죠. 그만큼 보급과 이동에 고통받는 상태엿죠. 탱크나 트럭도 움직이질못하니 기갑부대도 무용지물..
10분 발표하는 ppt도 만드는데 하루종일 걸리는데 저작권 때문에 직접 이렇게 애니메이션 그리고 대본쓰고 더빙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련지..
노력에 박수를 치고 갑니다
와우으!!!! 짝짝짝짝짝짝ㅡㅡ
심지어 잼있어...
학교 발표는 돈을 주지 않는데,
유투브는 돈을 주더라구요
@@HoRyoWoo 이건맞지
@@HoRyoWoo 이거지ㅋㅋㅋㅋㅋㅋ
목소리가 점점더 좋아져요. 호흡도 빨라지니 너무 좋아서 귀에 쏙쏙들어옴
역사상 국가vs국가 캐삭빵중에 레전드다 진짜...
독일 졌는데 캐삭안당함. 역설적으로 독일 패망의 근원인 영국 덕분에 독일은 해체될수가 없음. 독일의 해체는 곧 대륙에서의 프랑스, 러시아의 패권이 필요이상으로 커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영국이 가만 안놔둠. 미국도 그부분에선 영국의 편을 들어주고
세계관 최강자들의 대결...가슴이 웅장해진다..
캐삭빵은 로마vs카르타고 아님?ㅋㅋㅋ
@@nabe4987 딱 미국에 예전엔 소련을 견제하려고 중국을 지원하였고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일본 지원하는 것과 비슷
@@로일당-o4v 리얼 캐삭은 그쪽도 레전든데 ㅋㅋ 단기간 단일 전역(독소전쟁)으로 보면 레전드 캐삭빵 맞는듯 ㄷㄷ
우와 정말 최고십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보다 함께하는 세계사에서 더 많은 걸 배웁니다. 훨씬 재미있고 자세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정말 유익한 채널입니다.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좋은 한 주 시작하세요.^^
항상 너무 유익한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노력에 감사를 표합니다.
잘보고 있습니다. 독일어 장난아니게 유창하시데요.ㅎ
나폴레옹:와 거기를 가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마: 엌ㅋㅋ 동쪽을 가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폴레옹: 그래도 모스크바는 가봤다ㅋㅋㅋㅋㅋ...
몽골: 거길못미냐ㅋㅋㅋ
폴란드:ㅅㅂ 뭔대
바이킹: ㅋㅋㅋ, 자칭 고수잖노ㅋㅋㅋ 개웃기네
니가 사람 나보다 더 많이 죽였어? 어?
저 이 채널 너무 좋아해요 2차 세계대전 다음 영상 올려줘서 고맙습니다 기다렸어요 최고에요😊
영상 제작이 공중파급이네요. 보고 있으면 10분이 후딱 지나갑니다. 지난 영상들도 다시 보면 또 재밌더라구요.
다음 제목 : 스탈린,소련의 반격이 시작돼다! 근데 독일의 상태가?
라노벨 제목인줄ㅋㅋ
@@ah.k4872 ㅋㅋㅋㅋㅋㅋㅋㅋ
소련은 젊은이라는 무기를 동원해서 이긴거임
돼다?? 맞춤법 상태가??
@@t34sasha40 걍 히틀러가 운빨믿고 세계정복하려던 바보인게 한몫합니다.
너~무 유익한데 재미있기까지해요! 영상길이도 10분 정도라 부담없구요!!출퇴근시간에 차에 틀어놓고 라디오처험 듣고잇어요 ㅎㅎ
이스라엘영토분쟁이랑 체첸사태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다음화부터는 냉전 영상인가요?? 그러면 그리스 내전도 한번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렸습니다 ㅎ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일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2차 대전. 진짜 다른것보다 인과관계랑 각 국가별 입장 꼬박꼬박 다 말씀해주시는게 너무 좋네요.
저는 이때까지 소련 침공 목적이 석유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또 석유를 노리다가 모스크바를 못먹어서 진거였군요.
다시 한번 새롭게 배웠습니다. 감사해요
중요한 교훈은 히틀러가 졌다는 것이 아니라 덕분에 1억 가까운 인간들이 죽었고, 냉전과 핵무기 경쟁을 낳았다는 것임. 인류 멸종이 가까와졌다는 것.
영상 한 열개쯤 보다가 구독을 안할걸 알았네요. 바로 구독 눌렀습니다
과거영상부터 열심히 보고 있어요 ! 나레이션도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실력이 점점 더 좋아지시는 것 같아요!!
와 이거 최고다 내용도 흐름도 완벽
히틀러 : 아 내가 1차대전에서 참호전에서 직접 굴러서 사관학교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접시위에서 포크와 나이프질 하던 니들보다는 현장을 훨씬 잘 안다고!
독일군의 전격전은 현장 지휘관에 재량권을 부여해야 가능한 작전이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원래 독일군의 전통이었다
@@drmphy !
영상 잘봤어요~
소련 전후복구 과정도 다뤄줄수 있나요?
그때 서부지역이 박살나고 소련사람3000만명 죽고도 미국과 냉전할만큼 강했던게
너무 신기해요
소련이 전쟁초기에 어처구니 없이 밀렸던건 스탈린 군숙청도 있었지만 스탈린 통치가 하도 막장이어서 수많은 군사병들 사기가 밑바닥이었고(스탈린을 위해 죽기 싫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 발트3국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기 때문임. 나치한테는 엄청난 기회의 창이 열렸던 거였는데 그 상황에서 독일군이 벌였던짓은... 대충이라도 알고 싶다면 컴앤씨를 보면 됨.
소련 내 반스탈린 세력과 손을 잡았다면 독일에 승산이 있었죠.
@@안강현-u2e 전혀... 반스탈린 세력을 지도할 인물이 그 전에 다 때려잡혀서 ㅡㅡ
@@이뚱-i3f 나치 정권이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지만, 나치 정권이 작정하고 키웠다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었을 것 같네요.
@@안강현-u2e 게릴라야 있었고, 조금만 의심되면 죽이는 판에 작정하고 잘 키워졌겠네요.
히틀러가 모스크바 점령을 코앞에 뒀는데
키예프 먼저 가라한점
스탈린 그라드에서 쓸대없이 어텍땅 한점
북부는 레닌그라드를 굳이 포위해서 굶겨 죽이다가 반격맞고 박살, 남부집단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박살 그래도 나름 전력이 잘 보존되 있는 중부집단군을 성체작전으로
말아먹은점, 히틀러가 구데리안, 클루게, 만슈타인 등등 고위 지휘관들을 짤라버린점
까지 있습니다
어째 히틀러가 다 말아먹은걸로 보이지.....
빨른 성장에 발목을 잡지만 동시에 침략자의 발목을 자르는 매서운 추위 ㅎㄷㄷㄷ
항상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국가라는 위대한 기계에서 작은 나사"라는 표현이 실제로 사용되었나요?
긍정적인 의미라 생각되진 않는데..
전체주의적 국가의 특징이고, 수사법이자, 신념이죠.
그러게말여여ㅡ
냉전 시기 반공주의 역사학자, 가들의 독소전 평가 그리고 자신들보다 열등하다 생각된 러시아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엘리트 독일 장교들로 인해 독소전이 날씨 요인이 과하게 부각됐지...
냉전기 독일역사 기대합니다
8:23 에 왼쪽에 나오는 말은 우리의 명분은 옳다
적은 격퇴당할 것이다
승리는 우리 것이다
이거는 대조국전쟁 당시 나온 라디오 문구네요
라디오는 우리의 명분은 옳고, 적은 패퇴할 것이고,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한걸로 압니다
@@aazzxxrrdd 그게 그거네요
겨울전쟁이엇나? 거기 소련의 삽질을 보고 히틀러가 만만히 봣다는 소리도 어디선가 들어본듯한.....(그곳엔 전설의 스나이퍼가 계셧지::::::)
@@코민테른-f8e 핀란드요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안하고 동맹관계로 갔으면 지금의 역사는 180도 변했을거임 실제로 스탈린은 히틀러한태 호감도가 상당히 높았던걸로아는대 침공전까지만해도
히틀러가 공산주의자들을 싫어하는데 스탈린이 어떻게 히틀러한테 호감도가 높음?
제가 잘못알고 있는건가요
@@임-l5q ㅇㅇ 맞긴한데 일단 자본주의자라는 공통의 적을 지니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스탈린이 연합국을 같이 치자는 계획을 제안(히틀러가 거절하긴함)할 정도로 그 당시에는 나쁘지 않았음. 영국 항복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립각을 세우게되었겠지만, 독-소 동맹이 성사되었다면 1940년대에 영국이 항복하고 서로의 분열로 몇년이내에 독소전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음(그러나 이 경우에도 독일은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음)
어떻게든 싸우게 되어있음 서로 사상적으로 저리다른디 소련이 그때군사적 공백이라 독일 안친거지 자국바로옆에 독일이 이미 강력한데 영국까지 없어지면 막을국가가 없는디 이런 강력한 국가를 끝까지 냅둘거라 생각안함
당시 소련은 유일(사실 어쩌다 주워먹은 몽고가 있었지만)한 사회주의 공화국이어서 왕따였고, 독일은 비밀리에 재무장한다고 서로 협력했지만
이미 독일은 독일인의 생활권(레벤스라움)을 위해서 저 슬라브놈들을 쳐 죽이기 위한 진격을 하자는 생각을 한지라 독소전은 필연...
그러면 소련이 나치 침공했음;
커다란 히틀러도 귀엽... 새로운 콧수염씨도 귀엽... 잘봤습니다~ 좋아요!!! 꾸욱!!!
스탈린이 군지휘관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해 줬다고 했는데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독소전 초반에는 스탈린이 하도 간섭을 해대서 소련군이 계속해서 패배했습니다. 초반의 실패에 스탈린의 간섭이 상당히 일조한 셈이지요. 자신이 대단한 명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스탈린이 나중에 현실을 깨닫고 군지휘관들에게 자율권을 보장해주고난 뒤에야 소련군이 승리하기 시작했지요.
나무위키보다 더 정확하고 재밌어요!🥺 개인적으로 티토도 존경하는데 나중에 티토 관련 영상도 올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영상 퀄리티가 상당하네요..나레이션 목소리 톤도 안정적이구요
고3은 시험기간이라 나오자마자 보진 못하지만 언제나 잘보고 갑니다! 저번에 전쟁사 궁금하다고 댓으로 남겼는데 계속 영상 뽑아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ㅎㅎ
지도 지명표기가 전부 독어로 표기되어 있내요. 영어화에서 벗어나니 보기 좋내요.
나폴레옹 때
영국: 일단 차 마시며 버티자
러시아: 이 무슨???????
제2차 세계대전
영국:일단 차 마시며 버티자
러시아:??????????? 영국 이놈들은 숟가락만 얹지네.
여러모로 비교되죠ㅋㅋ
영국:전시에 티타임은 필수지!
독일:티거에 티타임은 필수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근데 독일 대단한게 20세기 초강대국 소련 영국 프랑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거아니여.ㄷㄷㄷ 것도 프랑스 점령 러시아 점령 직전 ㄷ
히틀러가 장군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이긴 전쟁을..
메르켈은 유럽 점령 성공
@@user-rp9vc9hh3r 히틀러가 아주 커다란 떵을 싸긴했져
독일은 고대하고 중세때도 강했던 국가였어요.
다만 그리스하고 이탈리아가 워낙 강해서...
그리고 미국은 제 2차세계대전때 일본넘들의 침공이 아니었으면 경제성장이 늦었을것입니다
흔히 무시당하는 중화민국 국민정부와 일본 제국의 전선인 '중일 전쟁' 편도 가능할까요?
3:30
이 지도를 보면서 스위스는 당시 유럽에서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
예ㅡ전부터!! 오늘날까지! 중립적 방향을 유지하는 국가 아닙니까?
스위스는 영구중립국이라 뭘 하진 못했고 가끔 오는 독일군들 엿이나 먹여줬다카더라..
독일 응딩이 빨아재끼면서 살아남음
음 자기네 상공으로 날아오는 독일기들을 독일기로 격추한거로 알고있숩니다
독소전쟁에 대해서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게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흔치 않을 겁니다. 다만, 독소전쟁에서 소련의 사망자 최대치가 4000만 명이라는 추정은 처음 듣네요. 최소 2000만 명에서 최대 2800만 명까지 잡는 건 본 기억이 있는데 4000만 명은 아닌 것 같아요.
최대는 5천만까지 잡기도 함. 사실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름.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에서 희생자 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4000만명이라는 숫자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영상 설명란에 남겨놓은 참고자료들에서도 언급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다만 저도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체가 아니라 소련만이요? 설마요... 물론 추산치가 부정확하긴 하지만 5000만 명은 너무하지 않나요? 겨울전쟁의 경우에도 핀란드군 전사자가 약 3만 명, 소련군 전사자가 공식적으로 약 6만 명인데 실제로는 약 20만 명으로 추정한다고 알고 있는데, 가끔 100만 명이 죽었다고 과장하는 사람이 있듯이, 3000만 명부터는 과장 같아요.
@@historytogether 답글 감사합니다. 루카치의 책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에서 제가 흥미롭게 읽은 내용의 흔적도 여기서 발견했고, 여러모로 그 긴 전쟁의 핵심이 다 드러나 있는 것 같네요.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이 보여준 무능함도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무능함이 소련의 진면목이라곤 할 수 없는데 히틀러가 그걸 간과했겠죠.
민간인까지 합쳐진거에요.
전쟁중에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사람들이
어마어마 햇을것임.
난징대학살도 그렇고요.
그 혹독했다는 동부전선이군요..사상자도 어마어마하네요
카잔의 기적 이후..
히틀러, 나폴레옹: 경험담을 못 믿는군
겉으로만 알고있는 한국사를 상세히 잘 설명해주시는게 너무 좋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합리가 이래서 중요하고 또 무서운거 봅니다.
공산주의 이념으로 만들어진 국가지만, 필요에 따라선 민족주의를 우선할 수 있는거처럼,
얽메이지 않는 사고 방식을 배워야 할 거 같아요.
얽매이지 않는 사고가 아니라,
종교든 이념이든 어차피 권력자들의 이용물인거죠.
영상 늘 흥미롭게 잘 보고 있습니다! 역사에 별 관심없었는데 계속 보게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에서 독일이 영국으로부터 유럽대륙에 대한 지배력을 인정받고 싶어했다고 그랬는데 그건 왜 그런 건가요? 유럽에서 이미 상당한 지배력을 차지했음에도 영국으로부터의 인정이 독일에게 중요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당!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서 최근 학계의 논의가 반영되지 않은 지점들이 눈에 띕니다.
첫째로, 스탈린 테러로 소련군 수뇌부가 큰 타격을 입어 독소전쟁 초기 소련군의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최근에는 독소전쟁 직전 지나치게 빨리 확대되던 소련군 조직과 인원에 하급장교의 충원이 따라가지 못해 소련군이 초기에 지지부진하게 패퇴했다는 주장이 각광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탈린 테러로 고급 장교들이 상당히 많이 숙청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의 유능한 장교들이 살아남았고 기존 소련군의 적체된 인사를 고려했을 때에 숙청이 오히려 소련군을 더 젊게 만들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야전에서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하급 장교들의 수가 매우 적었고, 또 그들의 훈련 수준 역시 낮았던 것은 전쟁 초기 소련군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이죠.
둘째는 날씨에 대한 강조입니다. 물론 1941-42년 겨울은 독일군에게 커다란 재앙이었습니다만, 그것은 러시아군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적으로 모스크바 공방전 직후 자신감을 얻은 스탈린의 명령으로 소련군은 스몰렌스크 방향으로 대대적인 반격이 개시되었지만, 마찬가지로 겨울과 뻘로 변한 땅 때문에 커다란 패배를 당했습니다. 따라서 독소전쟁 과정에 날씨는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에게 공평하게 장애물을 제공했고, 소련군이 독일군에 비해 동장군에 더 잘 대처했다는 증거 역시 약합니다. 당시 소련군의 절망적인 전쟁 준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말이죠. 그리고 날씨를 소련군 승리 원인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은, 소련군의 자체적 전쟁 수행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독일군의 불행 때문에 소련군이 승리했다는, 어찌 보면 전통적인 러시아포비아적 관점의 산물이라는 지적 역시 존재합니다. 그래서 독소전쟁을 다룬 최근 영미권, 러시아권 연구에서 날씨를 주요한 요인으로 보는 시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소련사 전공자로서 독소전쟁에 대한 편향된 컨텐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훌륭한 영상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다만 위와 같은 견해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독일:전차가 약해?부가장갑을 붙여!
소련:전차가 약해?인간으로 덮어!
독일:전차가 약해? 돈으로 떡칠해(생산비용이...)
소련:전차가 안좋아? 막찍어내면돼! 떼삼사5만대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소련의 상태는 굉장했다!
유일하게 러시아를 정복한 남자..'징기스 칸'
그때는 하나로 통합된게 아니라서.
키예프 공국이었을걸
@@표범재 당시 러시아는 여러 공국들이 잇엇습니다. 연합체제엿죠.
수부타이가 딱히 칠 생각은 없엇는데
철수하는 수부타이군을 기습한거고 열받은 수부타이가 숫자열세임에도 개바름.
이후 킵차크칸국이 들어서죠.
그리고 '짝팔'
궁금한게 있는데요. 전선에 몇 개월 나가 있으면 속옷은 어떻게 갈아 입고, 샤워는 어떻게 하나요? 그냥 전선에서는 이런 것들이 전부 불가능한 건지요?
굿!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영국과의 전쟁에서 이겼을까요?
바다는 죽어도 못 건넘
구독했습니다.
쏘련은 스탈린 때문에 이긴게 아닙니다. 스탈린이 있는데도 불과하고 이긴 겁니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더라고요.
막장vs개막장 데스메치
저때 소련측에선 물자가 생겨나자마자 소모됬죠
운좋게 프랑스를 빠르게 먹어서 현실감이 떨어지고 뵈는 게 없어진 거임. 애초에 독일은 다른 연합국 없는 소련을 단독으로도 이길 수 없는 나라였음. 당시 소련의 공업생산력은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이었고 넓은 땅과 많은 자원과 인구를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임. 당장 보급만 하려고 해도 찐빠지는 나라가 소련임. 어떤 사람들은 소련에 대한 미군의 물자지원을 너무 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이것이 소련의 숨통을 터주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물자 대다수는 소련 스스로 보급했다는 것도 알아야 함. 소련 자체가 강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음.
세상 모든 지식 내래이션이랑 같은 분이신가요?
8:18
Наше Дело Правое
나쉐 뎰로 쁘라보예
우리의 대의는 정당하며
Враг Будет Разбит
브라그 부졧 라즈빗
적들은 무너지고 부서질 것이며
Поведа будет За Нами!
빠볘다 부졧 자 나미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모스크바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돌아가서 키에프 점령한거는 ㄹㅈㄷ
키예프 포위전으로 전과가 워낙커서 딱히 나쁜선택이라고는 생각안함
이탈리아와 일본이 어떤계기로 주축국의 위치에서 참전하게 되었는지 궁금한데 독일을 메인으로 한 얘기라서 그런지 안 나오네요 추후에 따로 영상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ㅠㅜㅜ
장진호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같이 추위가 전선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례 중 하나가 모스크바 전투였죠.
독일이 러시아에 가면 안되는 이유:
1. 1차세계대전
2. 2차세계대전
3. 러시아월드컵 한국vs독일 2대0
어떻게 해야 2500만이 죽는지 상상이 안간다...한국 수도권 사는 사람들 싹 죽인다는건데 어느세월에?
스탈린그라드에선 7초에 한명씩 죽었다던데...
@@ykk4824 1...2...3...4...5...6...7
방금 독일군 한명이 죽었습니다
그야말로 맘에 안드는 인간은 살처분하는 식의 통치였으니까요.
@@sagittarius00 소련 라디오 방송이랍니다... 근데 사실 7초에 한 번 번갈아가면서 죽고있었다는
독소전 소련군민 사상자 수 저 수치 훨씬넘습니다. 경우에 따라 비공식적으로 6,5천만명에서 최대 7천만명 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공식자료 믿지 마세요..
스탈린은 최고의 명장 주코프 장군을 불러드려 모스크바 방어작전을 짜죠 시베리아 극동군 12개사단을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됩니다.1941년12월5일 드디어 독일 중부집단군에게 총공세를 퍼 부었죠
영국을 항공전에서 끝장내고 스페인과 동맹한 후에 소련으로 갔어야 했다.
스페인은 이미 스페인내전때 독일이 지원한 프랑코정권이엇기에 직접 끼어든건 아니엇지만 친독정권이엇죠.
공군과 잠수함늘려서 영국부터 작살냇어야 함.
전투기늘리든 잠수함늘리든 영국전함 발목만잡고 영국상륙만 햇더라도
영국 그냥 털리는건데,
참 일본이나 영국이나 섬이라서 이득본건 맞음.
@@yhansookim7850 애초에 해군력차이가 넘사라서 상륙은 절대못함. 만약 한다하더라도 보급부족으로 영국 못이김
국가라는 위대한 기계에서 작은 나사에 해당하는 수천만 명의 소박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위해....이 말 정말 두려운 말이군요
독일이 소련 정복 했다면 2차세계 대전 더 오래 갔음 소련 자원이 ㅎㄷㄷ 해서 미국도 장기전갔으면 철수 했을거에요
@@siriul 음 독일이 낙지정권에서 아시아까지 영향력이 있으면......파시즘과 민주주의로 대립각이.....아니면 일본도 파시즘이니 계속 식민지이거나 독일도 나중에 일본 먹으려했으니 독일식민지이거나...
사실 소련도 이렇게 독일과 언젠가 전쟁을 하게될거란 사실을 알고있었죠. 전쟁 직전에 제작된 소련육군사관학교 다큐를 보면 방어전이 아니라 공격전을 훈련하고 있었으며, 가상 훈련지도 죄다 독일 지명을 사용할 정도로 노골적이었으며, 모토도 "개전 시 우리의 땅이 아닌 적의 땅에서 싸운다"라는 것이었죠. 이렇게 서로가 서로 잡아먹지못해 안달이었지만, 단지 스탈린은 히틀러가 그렇게 빠르게 불가침조약을 파기할 또라이일줄은 몰랐던 것이죠.
그 어떤 장비와 장군도 자연 그 자체를 이길 순 없다.
개나소나 국가대 국가 캐삭빵은 있었지만 이건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인구수 억대에 육박하는 주요 메이저 세력 민족단위의 캐삭빵이다. 앞으로 이걸 뛰어넘는 캐삭빵이 나온다면 그건 3차대전일 것이야..
국가 캐삭빵이 아니라 인류 캐삭빵이 될듯 하네요ㅋㅋㅋㅋㅋ
한국전같은 대리전이 일어날순잇어도
직접 맞짱까는 일은 없슴.
특히 핵을 보유한 상임이사국5국끼리는 더욱더.
@@조현진-u1w 앜ㅋㅋ
1. 스탈린도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전지시하다가 제대로 말아먹고 나중에 빠진것임 2. 히틀러가 소련을 얕본것은 겨울전쟁이 가장 컸음 3 역사상 최고의 스파이라는 조르게얘기를 했어야 ...
랜드리스가 빠졌네요 미국에서 막대한 물자들을 지원해줘서 군용 물자들을 생산했는데... 그 부분도 추가해주셨으면 좋았을듯..
1차대전 배경부터 2차대전 종식까지 한번에 달렸네요. 흡입력있고 깔끔하며 안정적인 설명과 직관적인 시각자료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정말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저 엄지손가락 닮은 캐릭터들이 넘 귀여움
6:07 루즈벨트 대통령이 독일을 이기면 일본은 자연스레 패배하게 되어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럽전선에서 이기면 숨 고르고 소련,영국과 동맹 맺어서 다구리 깔 수 있어서 일 듯. 일본이 태평양 넘어서 대대적인 미국침공 불가능 했을거니까.
만약 독일군이 스탈린 그라드로 닥돌 하지않고 보급로,정비소 등등을 건설하며 천천히 진격했다면?(물론 전격전 중독자일 독일군은 않그랬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3국 동맹 맺게 된 과정도 궁금하네요
쉬움 아시아 강국인 일본이랑 독일의 팽창주의,제국주의등의 이데올로기랑 서로의 지역을 정복하고 미국,영국,프랑스등의 강국을 밀어내자는 이해관계가 맞아 독일이랑 일본은 자연스럽게 동맹하게됐고 이탈리아는 강국은아니고 약강국정도수준이었는데 1차세계대전때 협상국이었던 이탈리아에게 승리후 보상은 거의 없는수준이었기에 영국,프랑스에 불만을 갖고있었고 독일이 최강국이고 바로위기에 개기면 다죽는다는것도 알고있었기에 거의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독일이랑 동맹한거죠
@@xzxzxzxz9892 이탈리아는 원조 파시즘 국가이고 팽창정책 (에티오피아 침공)을 펴고있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라는 의건은 이해할수 없네요
@@xzxzxzxz9892 또한 독일-일본의 협력은 서로 외교적 고립 (일본은 만주국건국, 독일은 재군비로 인한 국제연맹 탈퇴) 에서 벗어나고, 공동의 적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협력하자는 의미로 시작되었지, 강대국을 밀어내자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이름부터가 방공협정이었죠. 미영프의 기득권의 탈취보다는, 일본은 중국을 독일은 동유럽을 원했죠..
본격적인 3국동맹은 독일의 프랑스점령후입니다. 일본이 미영을 완전히 적으로 돌릴 동맹관계를 맺을만큼 독일의 빠른 유럽제패는 놀라웠거든요. 동맹의 근본목적은 소련의 위협에 대한 공동협력이고, 독일의 유럽재패후에는 극동에 대한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죠. 독일에 의해 유럽이 장악되면 극동의 유럽세력도 힘을 잃을것이므로 일본으로서는 이득이었죠
@@nabe4987 👍👍👍
100년전 나폴레옹의 대군도 전멸시킨 러시아인데. 하물며 독일군이야..........
제목:히틀러,프랑스에 이어 소련까지 침공하다 근데 소련의 상태가
부제:전쟁 일으켜서 운 좋게 이기는 법
이기면 합리화되어 찬양받는 지휘방향!! 단지 너무
추워 진 전쟁임!!! 내복도 한벌뿐이었던 독일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독일 침공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란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보다보니 뎃을 거의 다 읽어버렸다 더 내려가질못하네....
참 만약이라는게 되면 어땠을까 다른 차원세계에서는 이런일이 일어났으면 그걸 구경할수있으면 얼마나 좋을(?)
6개월 만에 독일에게 항복한
프랑스 가 왜 유엔 상임이사국 이 됫는지 이해가 아니 갑니다.
이에 설명하는 자료가 없을까요?
6개월이 아니라 6주입니다...
프랑스는 원래부터 유럽과 세계 각지에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이였고 당시 독일에게 침략당하지 전 까지만 해도 유럽 내 육군 1위였습니다. 아마 이런 과거가 반영되어서 해방된 이후에 상임이사국 자격이 된듯하네요
@@지원-t7w3k 6주요?
그럼 프랑스는 내가 생각햇던
것보다 더더더욱 무능한
좆빱 국가입니다.
영미호주 로부터 왕따
당하고 사는 이유.
노블리스 오브 /톨러런스 등등
불어 로 쓰는 개뿔 개념은
프랑스에서는 1도 없고.
영국에만 잇음.
공대생인 저에겐 일본 미국 진주만이 갑툭튀한 느낌인데 더 자세히 흐름을 알고 싶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경제적 제재를 가함 -> 일본이 동아시아 전역을 점령해가며 전선이 넓어지고 자원이 부족해짐 -> 경제적 악화 풀지못하면 전쟁 불가능하기까지 이름 -> 미국 공격해서 경제 제제를 풀자! ->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해군은 세계 최강급) -> 천조국의 미친 생산량과 여러 전투 패배로 인해 일본 패배
@@최용준-p2z 야마토 전함=해상호텔
8:00 사실과 다릅니다. 스탈린은 실제로 나서서 깝치다가 몇번이나 코피를 쏟아 내고서야 겨우
군을 지휘관에게 맡겼습니다.
오죽했으면 실패한 작전의 지휘관을 두고 쓸만한 장군이 없다고 펄펄 뛰던 스탈린에게 알랑방귀 맨 보로실로프가 "니가 쓸만한 놈들 모두 숙청 시켰잖아!"라고 먹던 접시까지 던질 정도였겠습니까?
이러나 저러나 콧수염 독재자들은 모두 미친놈들이엇습니다.
그나마 쏘련은 스탈린을 주저 앉혔지만 독인은 히틀러를 주저 앉히는데 실패한 겁니다.
그리고 히틀러의 우크라이나에서의 광대짓거리는 그야말로 바보짓 이었지만 처음에 히틀러보다 스탈린을 더 증오하던 우크라이나 인들은 히틀러의 나치독일을 환연 했습니다.
만일 그때 히틀러가 적당히 눙치고 "공산당 놈들 죽여라!"같은 미친짓 안했으면 역사는 모를 일입니다.
보로실로프가 접시깬건 겨울전쟁때고요
스탈린은 1942년쯤부터는 지휘체계에 손 다 뗀걸로 압니다
@@aazzxxrrdd //아! 그렇습니다. 1차 겨울전쟁 때였지요. 잠시 정신이 나갔다 왔나 봅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종종 함부러 끼어들었다가 쏘련군이 호되게 댓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옐르 들어 스탈린은 게오르기 주코프와 이반 코네프를 베를린 입성 경쟁을 시킴으로서 8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부상자 합계 36만명을 넘는 인적 희생을 치루게 했습니다.
게다가 스딸린은 가만 있었다지만 레브란티 베리야와 엔케베데는 정말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지요!
@@청솔향-g9u 100% 맞습니다 1941년에 스탈린이 무리하게 반격하라고 지시했다가 르제프에서 크게 한방 먹었죠
TMI저 썸네일에 나온 소련군은 돌격명령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저때나 소련무너지고 체첸때랑 어째 꼬라지가 비슷해보인 느낌은 왜였을까요?
체첸때도 러시아군의 상태 꼬라지가 엉망이었었던걸로 압니다. 그나마 이후 재정비하고 체첸을 아주 박살냈다던데
소련때 역시 독일군에게 얻어터지다 반격하고 뭐 그랬던거 보면 그런거같아요.
레알 저놈의 날씨 버프 러시아는. 진짜 날씨가 다 먹여 살리는군
"독일인들은 패배한 이유를 러시아의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린다"
나폴레옹도 러시아에 쳐들어갈땐 평소보다 병참을 더 철저하고 넉넉하게 챙겼다죠. 러시아의 겨울이 예상을 아득히 넘기는 수준이라 문제지...
???바르바로사 작전은 폴란드침공때 작전인걸로 아는데...?(아닌가..?)
아닌듯합니다.
혹시 몰라 나무를 좀 봤지요..
아닙니다. 폴란드침공은 백색작전이고, 소련침공 작전은 바르바로사 작전입니다.
만약 모스크바를 먼저 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도 이 부분이 정말 다행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결국은 소련이 모스크바를 탈환한다고 해도 수년은 전쟁이 길어졌겠죠
@@renodrap 네 저도 그런 의견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어차피 모스크바까지 못갔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더라고요
사실 패색이 짙어진건 1942년에 행해진 히틀러의 머리에서 나온 청색작전 (러시아 남부와 코카서스 유전 공략) 에서 실패하고 부터. 독일군의 장점을 살리기는 커녕 남부공략으로 전선을 더 넓혀버려서 병력이 더욱 분산됨. 특히 스탈린그라드에서의 6군 전멸이 컸음. 또 히틀러가 일정후퇴후 반격을 불허하고 사수를 고집해서 독일군의 피해를 늘림. 중부집단군과 남부집단군의 협공으로 40만명을 포로로 잡은 키예프공략은 그닥 실패라고는 생각지 않음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한 근본원인은 소련이 독일보다 국토 크기, 인구, 공업생산력, 자원 보유량 면에서 월등히 앞섰고 이를 구체적인 전투력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죠. 실제 전투에서 독일군 사상자 비율보다 소련군 사상자 비율이 훨씬 높았지만 압도적인 양적 우위로 이를 극복하는 형국이어서, 설령 여러 가지 행운이 겹쳐서 독일이 조기에 모스크바를 점령했더라도 결국에는 소련이 승리했을 겁니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독전했지만 수도기능 상당 부분을 다른 도시로 옮겼다죠? 만약에 모스크바를 독일군이 점령했더라도 그것 때문에 소련 국민들의 전투의지가 꺾이진 않았을 겁니다.
@@논리킹Z 흥미롭네요. 관련해서 읽을만한 책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스탈린이 왜 지휘를 하지 않았냐면 초반 본인이 지휘한 모든 작전을 말아먹고 실패해서 그렇습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처리하지 않고 모스크바로 갈 경우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옐냐 교두보에서 진격이 막혀있엇고 키에프에 60만 이상의 대군이 모여있었습니다 소련 병력의 15% 가까이있었는데 만약에 여기서 밀려버렸으면 그리고 남부에서 중부로 공세를 가하면 꼼짝없이 갇혀서 죽어버렸습니다 주코프도 당시 독일이 모스크바로 진격했으면 상황이 악화되었을거라 말했죠
이도저도......
난죽택!
정말 궁금한데
소련은 국제법 준수하면서 전쟁치뤘나요?
얘들도 마냥 깨끗하진 않은걸로 알아서
답: 안함
41년 소련의 겨울은 50년,백년에 한번 올만한 기록적인 추위엿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추위에 독일군이 무너졋죠. 독일군 장교일기를 보면 전투로 죽은 독일군보다 자살하는 독일군이 더 많다라고 기록되잇엇죠. 그만큼 보급과 이동에 고통받는 상태엿죠. 탱크나 트럭도 움직이질못하니 기갑부대도 무용지물..
그냥 독일군의 보급역량 한계로 공세종말점이 온거임.
냉전 시대라? 중국 때문이네요. 앞으로 뻘짓을 못하게 중국 공산당을 몰아 부치면 됩니다.
이번에는 러시아도 도와 줄것 같아요. 중국 따위가 버틸 수 있지가 않아요.
여담으로 썸네일에 나오는 소련군 병사는 저 사진이 찍힌 직후에 사망했다고 하네요...ㅠㅠ
썸네일의 소련군 장교 엄청 유명한 사진인데 저게 아마 쿠르쿠스 전투였을텐데 저 사진찍히고 바로 사망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