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틱 운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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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30 ก.ย. 2024
  • 운동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운동의 가장 큰 적은 게으름이라기보다는 부상입니다.
    갑작스런 운동이나 과도한 운동 혹은 잘못된 동작으로 인해 부상에 시달려보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부상을 당하게 되면 운동을 할 수 없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건강 악화를 불러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소매틱 운동 혹은 고유감각 훈련에 대해 살펴보고, 부상 없이 지속적인 운동을 해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내면소통 519 - 547)
    고유감각에 집중하는 훈련의 핵심은 움직임 속에서 내 몸이 주는 여러 신호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과 같은 장력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을 할 때 주의할 점은 특정한 자세를 외형적으로 따라 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유연성만 향상될 뿐 고유감각 훈련의 효과는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유감각 훈련의 목표는 특정한 자세를 비슷하게 흉내 내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특정한 자세를 취하고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내 몸이 나에게 주는 다양한 신호들을 지속적으로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근육과 관절들이 주는 고유감각에 계속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요가(하타 요가)를 예로 들어보자. 요가는 오랜 전통을 지닌 움직임 명상이며, 고유감각과 내부감각의 자각 능력을 모두 높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소매틱 운동이다. 요가를 진정 요가답게 하려면 특정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특정한 자세를 취하려 할 때 내 몸이 나에게 주는 고유감각과 내부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내 몸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들으려 해야 한다. 내 몸과 내면소통을 해야 한다.
    요가 수업에서는 흔히 강사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만을 강조하며 특정 자세를 취하려는 의도를 앞세운다. 내 몸이 나에게 주는 고유감각과 내부감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보면서 자세를 취한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도 동작을 해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요가 비슷한 동작을 하는 스트레칭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요가를 할 때는 더 이상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계속 바라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냥 가끔 흘낏 한번 보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보다는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내 몸이 주는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 얼마나 더 유연해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호흡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게 되었는가를 발전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 남이 보는 내 몸(body)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내면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몸(soma)이 훨씬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요가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리해서 억지로 동작을 따라 하다가 생기는 일이다. 무조건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건강한 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필라테스나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칭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하나의 동작이 나의 코어 근육 깊숙이 어떤 감각을 가져다주는지에 집중하면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몸과 마음의 근력을 모두 키울 수 있다.
    고유감각 훈련은 요가나 스트레칭과 같은 장력운동을 통해서만 할 수있는 것은 아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같은 ‘근력운동’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근력운동을 할 때도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작 하나하나에서 근육과 관절에 전해지는 느낌에 순간순간 계속 집중하면 된다. 고유감각 수용체는 근육에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근력운동을 하든 천천히 집중해서 하면 효과적인 고유감각 훈련을 할 수 있다. 몇 킬로그램의 무게를 드는지 혹은 몇 회를 반복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확한 동작을 천천히 하면서 순간순간 내 몸이 나에게 주는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근육의 움직임과 부하에 집중하면서 근육을 수축시킬 때뿐 아니라 이완시킬 때에도 긴장을 풀지 말고 움직임이 주는 미세한 느낌까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시간 동안 운동을 해도 근력운동의 효과를 더 크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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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덴크라이스요법(Feldenkrais Method)을 창안한 모쉐 펠덴크라이스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움직인다는 것이기에 삶이 곧 움직임이다.”577 그는 의식과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한 명상과 성찰은 모두 스스로의 움직임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한다고 하면서 움직임 명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펠덴크라이스는 선구자적인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다. 현대 뇌과학이 최근에 와서야 겨우 도달한 결론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개인적인 직관에 근거해서 분명하고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뇌는 움직임의 기능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모든 생각이나 감정의 유발은 몸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몸의 변화가 곧 움직임으로부터 나오는 것(out of motion), 즉 감정(e-motion)이라는 것이다.
    펠덴크라이스 역시 의도와 움직임 간의 괴리에 주목했다. 같은 움직임이라도 어떠한 의도를 갖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간단한 실험을 한번 해보자. 잠시 책을 내려놓고 똑바로 앉은 상태에서 목을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려보라. 목이 어디까지 돌아가는지, 느낌은 어떠한지 잘 기억해둔다. 다시 똑바로 앞을 보고 앉는다. 이제 내 뒤에서 친구가 날 부른다고 상상해보라. 반갑게 날 부르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고 생각하라. 이때 고개는 어디까지 돌아가는가? 느낌은 어떠한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 두 동작은 사실상 같은 동작이지만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다’라는 의도와 ‘날 부르는 목소리 쪽을 쳐다본다’라는 의도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의도가 다르므로 동원되는 미세한 근육의 시스템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서 뒤돌아본 경험이 여러 번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하나의 습관이 된다. 누군가 날 부를 때 돌아보는 특별한 나만의 방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려서부터 무서운 어른이 뒤에서 부르면 깜짝 놀라면서 휙 뒤돌아본 적이 많았던 사람과 친구가 뒤에서 같이 놀자고 부르곤 해서 늘 즐거운 마음으로 반갑게 휙 뒤돌아본 적이 많았던 사람은 ‘누가 날 불러서 뒤돌아보기’의 행동을 할 때 상당히 다른 근육들의 조합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목을 오른쪽으로 돌리기’라는 동작은 스트레칭이나 특정한 운동을 하면서 많이 하게 된다. ‘목을 오른쪽으로 돌린다’라는 의도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요가 수련을 오래 한 사람과 타이치를 오래 한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근육의 조합을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의도’와 ‘행위’ 간의 조합은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체형이나 생활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마다 독특한 걸음걸이가 생겨나고 앉거나 서는 자세도 제각각이 된다.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든 비효율적이거나 불균형한 방식으로 움직임의 의도를 수행해내는 나쁜 습관을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똑바로 서서 무릎을 편 채로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을 때도 마찬가지다. ‘허리를 굽힌다’라는 의도를 갖고 두 손을 내릴 때, 바닥이 내 손을 향해 올라온다는 상상을 하며 손을 내릴 때, 또 정수리를 바닥으로 향하게 해서 배를 허벅지에 붙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손을 내릴 때의 결과는 각각 다르다.
    펠덴크라이스는 같은 움직임이라 해도 서로 다른 의도를 갖고 움직이면 관여하는 신경시스템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정한 움직임에 대한 전혀 다른 ‘의도의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사람마다 무의식적인 습관이 다르고 체형이나 근육의 발달 정도도 다르다는 데 있다. 따라서 어떠한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걷기를 비롯해 어떤 특정 행동을 위한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란 없다. 그렇기에 다양한 움직임 방식의 반복적인 시도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자각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의도를 버림으로써 몸에 주어진 원래 움직임의 방식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펠덴크라이스요법은 움직임에 관한 무의식 차원에서의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움직임에 관한 훈련이면서도 ‘모범적인 표준 움직임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그런 것은 없다) 다양한 의도를 가진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자각하고 깨달으며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습관을 바꾼다는 점에서 펠덴크라이스요법은 움직임 명상 훈련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용해야 한다. 펠덴크라이스는 제대로 잘 움직이기 위해서는 일단 기존의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일어선다는 의도를 버리고 몸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느끼면서 일어서야 한다. 걸을 때도 왼발에 체중을 싣고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하는 식으로 ‘의도’를 지니게 되면 걸음걸이가 어색해진다. 의도를 버려야 한다.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철학을 움직임에 적용한 것이 펠덴크라이스요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의도를 버린다’는 것을 능동적 추론 이론에 근거해서 설명하자면, 각자의 의식에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생성모델을 폐기하고 새로운 생성모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펠덴크라이스는 몸 자체에 내재하는 똑똑함(intelligence)을 믿었다. 우리의 의식이 미치지 않는 여러 곳에서 우리 몸이 상당한 지능을 발휘한다고 본 것이다.585 따라서 몸이 주는 여러 감각정보에 집중하면서 기본적인 움직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하면 몸 스스로가 편안하고 올바른 움직임의 방법을 찾아간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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