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jo8315 고려인이 가서 변화시킨것이 아니라 류쿠삼국시대부터 이미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봐야죠 류쿠왕국(통일)한중일과의 조공관계국이었구요 발전에 기여한 정도로 보면 중국>고려,조선>일본 순일테니 고려인이 건너가서 해양중심국이 됐다는 것은 너무 가신듯 하네요 암도 몰랐다고 하는 것도 좀 다른 것이 뱃길로 아랍과 신라 일본으로 오가는 배들이 난파되면 해류에 의해 주로 오키나와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삼별초.. 이제와 새삼 그들의 행적을 알게되니 어제 있었던 일인듯 생생한 역사를 느끼게하네요. 우리민족은 두 부류였던듯. 안일한 족속과 자존심 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들 그렇게 두 부류였나봅니다. 몽고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못차리고 몽고와 연합해 민족의 자존심을 치다니. 그런인간들때문에 야만족 일본한테 나라를 뺏기는 수모를 겪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군요. 우리의 역사에 별빛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것을 가슴에 새겨야겠습니다.
2021년 네이처지에 실린 삼각측량법(고고학.유전학,언어학)에 의한 트랜스 유라시아어의 확산 이라는 논문 (마틴 로비츠와 40명의 박사 참여)에 의하면 중세시기 이전에 살았던 오키나와인의 고인골들에서 오키나와 조몬인 유전자 100%에서 중세시기에 살았던 오키나와인의 고인골들에서는 한반도인의 유전자 75+오키나와 조몬인 25% 로 대처됨. 그렇다면 삼별초가 오키나와에 가면서 유전자가 대거 대처되었다는 거겠죠. 헌데 문제는 울나라 역사학자들은 문서에 기록이 없으면 역사적 사실로 인정을 못하는 일본의 주술에 걸려 있어서... 지들이 먼저 나서서 부정하고 있음. ㅋ 하는 짓들이 참 썩열스럽지.
삼별초를 대몽항쟁으로만 점철하지 말고 그틀의 페악도 함께 알아아죠ᆢ 삼별초 그들의 몽고항쟁은 그틀만의 권력유지, 민생을 짓누르고 그들만의 호위호식을 위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당시 삼별초 점령지역의 백성들은 삼별초 학정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발 몽고군이 들어오기를 학수고대 했을 정도였답니다...
삼별초의 난 ... 자세하게 알게 되어 고맙습니다.
삼별초는 고려판 독립 운동의 군대로서 잊혀지지 말았어야 할 그러나 잊혀진 서민 군대였네요.
삼별초이야기..기대가 되네요..
공영방송의 진정한 가치 역사스페셜 시리즈.한국의 유일한 역사영상백과사전.요즘 세대의 시청률도 중요하겠지만 역사저널은 점점 예능화 되어서 이제는 보기 힘드네요.
오키나와 원시인부터 중세시대까지 빠른 발전을한 고려
오키나와가 원래 류쿠국이었는데 1800년대후반에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된겁니다
1600년대 초반 사쓰마번의 침략으로 사쓰마번의 속국이됌
오키나와 우리땅이었네
일부 삼별초가 오키나와에 가서 정착한거겠죠 정벌한것이 아니니 우리나라 땅이라고 하기는 무리인듯 하네요
오키나와에 이미 선주민이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그 당시에 오키나와는
일본의 영역도 아니였고
고려의 국력으로~?
정복하기에는~?
정복한다고 해도 관리.운영하기도~?
왜 거리가 멀어서~?
설사 전부 이루었더라도 조선이 포기해 버렸을테니까~?
왜 쟤네들 섬주민들에게도 비우고
상륙하라는데~?
아무도 관심도 없고 몰랐던 외딴 섬을 고려인들이 가서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중심으로 만든 겁니다.
@@syjo8315 고려인이 가서 변화시킨것이 아니라 류쿠삼국시대부터 이미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봐야죠 류쿠왕국(통일)한중일과의 조공관계국이었구요 발전에 기여한 정도로 보면 중국>고려,조선>일본 순일테니 고려인이 건너가서 해양중심국이 됐다는 것은 너무 가신듯 하네요 암도 몰랐다고 하는 것도 좀 다른 것이 뱃길로 아랍과 신라 일본으로 오가는 배들이 난파되면 해류에 의해 주로 오키나와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삼별초의 오키나와 역사는 한국사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
삼별초.. 이제와 새삼 그들의 행적을 알게되니 어제 있었던 일인듯 생생한 역사를 느끼게하네요.
우리민족은 두 부류였던듯. 안일한 족속과 자존심 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들 그렇게 두 부류였나봅니다.
몽고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못차리고 몽고와 연합해 민족의 자존심을 치다니.
그런인간들때문에 야만족 일본한테 나라를 뺏기는 수모를 겪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군요.
우리의 역사에 별빛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것을 가슴에 새겨야겠습니다.
2021년 네이처지에 실린 삼각측량법(고고학.유전학,언어학)에 의한 트랜스 유라시아어의 확산 이라는 논문
(마틴 로비츠와 40명의 박사 참여)에 의하면
중세시기 이전에 살았던 오키나와인의 고인골들에서 오키나와 조몬인 유전자 100%에서
중세시기에 살았던 오키나와인의 고인골들에서는 한반도인의 유전자 75+오키나와 조몬인 25% 로 대처됨.
그렇다면 삼별초가 오키나와에 가면서 유전자가 대거 대처되었다는 거겠죠. 헌데 문제는 울나라 역사학자들은 문서에 기록이 없으면
역사적 사실로 인정을 못하는 일본의 주술에 걸려 있어서... 지들이 먼저 나서서 부정하고 있음. ㅋ 하는 짓들이 참 썩열스럽지.
오키나와 그리고 대마도 다 조선 땅
매금이말이 맞는거네 ㅎㅎ
간접지배가 아니고 고려는 몽고의 속국이었는데 뭔 얼억죽을 간접지배 ㅉㅉ
고려 의종 때 부터
시작했던 무인시대
즉 칼잘쓰는 ㄴㅗㅁ이
왕을 좌지우지 하였고
그 무신들의 뿌리가
삼별초 이다.
이때 당시 무신들은
외침(몽고)이 있어
전국토가 황폐화(황룡사목탑 소실)해도 자신들은
팔만대장경 등을 제작하는등 ...
무인정권이 하릴없이 대장경을 만들었다고 보는군요. 국력을 모아 국난을 이겨보겠다는 마음을 이해하기 힘듭니까. 물론 그럼으로써 체제 결속을 의도했겠지만 그럴 수도 있죠.
대몽항쟁에서의 삼별초만 보지 말고 삼별초가 왕실과 민중에게 행한 부정적인 측면도 같이 소개해라.😮
동쪽에 사는 놈 이구먼 너 2짝이지 ㅋㅋㅋ
몽고가 고려를 정복 못한 이유는 유튜브 장두구
th-cam.com/video/GWuwKQO74CM/w-d-xo.html
유인촌은 ㅈㄴ 오래 해먹네
삼별초를 대몽항쟁으로만 점철하지 말고 그틀의 페악도 함께 알아아죠ᆢ
삼별초 그들의 몽고항쟁은 그틀만의 권력유지, 민생을 짓누르고 그들만의 호위호식을 위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당시 삼별초 점령지역의 백성들은 삼별초 학정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발 몽고군이 들어오기를 학수고대 했을 정도였답니다...
임진왜란, 조선말 때 조선 백성들의 심정과 똑같네요.
진짜요? 삼별초 정말 금수들이네요
@@smittywerbenjagermanjensen2536 삼별초, 정녕 그들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한 가렴주구 조직이지 고려를 위한 애국투쟁은 결코 아니였습니다..
전라남도 진도에 가면 그들의 궁궐 오랑사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davidcho9022 학교에서는 대몽항쟁만 알려줘서 그것만 알았지 저런건 몰랐어요
임진란 병자호란 미국에서 일어남 ㅡ 다음 검색
이성계 부터 한민족 본토는 미국?
1910년대 까지는 열도는 일본이 아니고 왜노. 왕은 한민족
다만 메이지왕부터 바지사장..
1930년대 까지 3개주는 우리말 사용 ㅡ 다음 검색
항몽을 하려면 고려땅에서 해야지 고려를 떠나 오키나와 까지 갔으면 끝난거지. 오키나와에서 무슨 병력과 무슨 말과 무기와 군수품을 생산 하고 군량을 수송해 독립운동을 하나.
항몽은 제주에서 끝났고, 오키나와는 살기위해 새로운곳에 정착했다거 봐야지 ㅇㅇ
누드모델의 내레이션이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