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숭이 관직에 오래있었으니 그를 신뢰할순 있겠지만 제갈첨은 저때가 첫 전투 경험에 병력 대부분이 정예병이 아닌 급조된 병력일태니 제갈첨이 나서지 말고 농성하자는 판단을 한거같음ᆞ 그래도 이런 군으로도 한번 이긴거보면 당시 음평산길 후유증이 장난 아닐지라 이길 확율이 높았을탠데ᆢ
@@Akashi12 황숭이 공격하자고 한거 아니엿음? [부현에 도착해 제갈첨이 전진하지 않자 신속하게 가서 요충지를 점거해 적군의 평지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도록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결정하지 못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면죽관에 들어가서 농성하자는 건 제갈첨이고, 황숭은 야외에서 일단 적이 거점으로 자리잡을 요충지를 먼저 점거한 후에 불안불안한 상황에서 공략을 하자고 한거니까, 황숭이 좀더 적극적인 공격을 권하는 내용이잖음? 물론 면죽에 들어가기 전에도 갈팡질팡을 햇다고 해야하나? 먼저 선봉을 보내서 야전을 걸엇다가(물론 황숭이 제안한 적이 요충지에서 자리 잡는걸 막자는걸 안하고 그들이 자리잡은 후에 말이죠) 패배하고 면죽에서 농성을 시작한거라서 어중간에게 굴어서 손실을 입고 시작 한 후에 농성에 들어간건데, 그렇게 시작한 농성에서도 한차례 이겻을 정도면 당시 음평산길 후유증이 장난 아닌지라 차라리 어중간하게 굴지말고 정 황숭의 판단을 따르기 힘들면 그냥 면죽에 먼저 자리잡고 철저한 농성준비를 하고 막앗으면 모르겟는데 이도저도 아닌 상태인거 보면 제갈첨의 실전 경험이 참...(뭐 저게 첫 전투라니까)
우리야 아 좀만 참지싶지만 관우 입장에서 보면...유비가 조조를 한중에서 정면에서 꺾어버렸으니 내심 촉과 위 사이에서 저울질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거고, 그러니 관우가 번성 뚫는데 성공해서 허도까지 올라갔으면 그에 맞춰 호응해줄 사람도 꽤 있었을 겁니다 관우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로 보였겠죠 우리야 직후 조조가 죽고 더 크게 흔들린다는 점을 알고있으니 아쉬울 뿐...
제갈첨이 황숭을 의심하고(황권이 위나라에 투항한 일 때문) 그의 의견을 따르지 않자 황숭이 이를 눈치 채고 아버지가 위에 투항했어도 (남은 가족들에) 아무런 벌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두텁게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두 마음을 품겠냐고 제갈첨 앞에 통곡함. 그는 그의 말대로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 촉의 충신으로 전사.. 아버지보다 나은 아들이라 생각해요..
항장 중에 유명한 장수들이 있죠. 가후, 장료, 장합, 강유 등등. 그에 비해 황권은 나관중에 선택받지 못해 인지도가 위에 인물들에 비해 바닥인 건 이유가 있겠죠. 위나라는 인재의 무덤이죠. 조조때는 그나마 1세대니 재능이 최우선이였지만 조비 이후로는 후계자 싸움으로 크게 파벌이 갈리고 창업공신들과 조조씨족들과의 기싸움과 세습으로 말도 안되게 빠르게 붕괴돼 낭고상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중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미친 오호십육국 시대를 만들었죠.
황권은 이릉대전에서 어쩔수 없이 위나라에 항복한 케이스지만 만약에 촉에 남았다면 진짜 제대로 역활을 했을 인물은 틀림없음 제갈량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는 인물인건 부정할수 없음 황권이 대단한것이 항장출신인대도 저렇게 인정받은것은 어찌보면 대단한거 같아요 사마의도 인정할정도면 인품이 대단한듯해요
진짜 찐으로 유장에게 충언을 했지만 들어 먹질 않았고 유비가 서촉을 취한 뒤 유파처럼 두문불출하며 출사를 하질 않았기에 많은 대신들이 그런 그들을 안 좋게 봤었는데 그런 모습 속에 유비가 "그 두 사람에게 해꼬지 할려는 자 있다면 내가 용서치 않으리라!"라고 엄포를 놓아서 수그러 들었고 그 뒤 황권이 유비 밑으로 들어가 신하가 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유비가 이릉대전을 발발하기 전에 황권이 충언하기를, "오나라 사람은 용감하여 전쟁을 잘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피고, 폐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이 적의 허실을 살피겠다며 자청했으나 유비는 이를 거절하고 황권을 후방으로 맡기며 위나라 견제를 하게 했는데 그 뒤 알다싶이 유비가 육손에 의해 대참패를 면하질 못하며 후퇴를 했지만 황권만 이도저도 못하게 된 시점 속에서 고립이 되어 버렸고 이에 고민하던 황권은 결국 하는 수 없이 위나라에 투항을 하게 됩니다. 이에 조비가 황권의 항복에 이렇게 묻는데, 조비: 그대가 짐에게 투항하는 것은 진평과 한신을 추모하기 위해서인가?(참고로 이 두 사람은 항우의 부하였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인물들이자 개국공신이 된 인물들) 그러자 황권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황권: 소신은 촉 황제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강북의 군사를 통솔하다 강동 육손에 의해 퇴로가 끊겨버렸습니다. 촉에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오에 항복할 수도 없게 되어 이렇게 폐하에게 투항을 하게 된 것이오며 또한 이미 싸움에 진 장수가 죽음이나 면하면 다행이지 어찌 옛 사람을 추모한다고 하겠습니까? 라고 말을 하니 이에 조비는 나름 수긍을 하더니 이에 진남장군이란 작위를 내리며 환대를 했지만 황권은 거절을 하며 받질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위나라 가신이 조비에게 다가와 유비가 황권 투항 소식에 진노를 하며 가족을 모두 참했다는 거짓 정보를 이야기를 하면서 황권에게 이 소식을 전해듣게 하니 황권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를, 황권: 소신과 촉주(蜀主:유비)는 서로 믿음이 같은 터 입니다. 신의 본심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에 신의 가족을 함부로 처벌하질 않으셨을 겁니다. 라고 했었고 황권 말대로 황권 투항 소식을 듣게 된 유비는 되려 황권에게 미안하다면서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면서 녹미를 지급하란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비가 백제성에서 사망했을 때 많은 이들의 반응이 다양했었고 이 상황에서 조비가 황권을 놀리기 위해 일부러 건드렸음에도 큰 소득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으니 말 다 한 셈이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사후에는 두 명의 아들이 아버지 뒤를 이었는데 한 명은 황옹(위나라에 함께 투항한 걸로 추측)이였고 다른 한 명은 촉에 남아 있던 황숭이란 인물이였는데 황옹 같은 경우는 부친의 뒤를 이었지만 후사를 남기질 못해 결국 그대로 위나라에서 대가 끊어져 버렸고 황숭 같은 경우는 제갈량 아들 제갈첨과 함께 촉을 지키던 와중에 등애가 촉을 공격해 왔을 때 방어할 대책을 몇 번이고 간언했지만 이내 듣질 않던 것에 한탄을 금칠 못했고 그 뒤 면죽관에서 전사를 한 제갈첨과 더불어 자신도 등애와 맞서 싸우다 전사를 했다고 합니다.
모든 면에서 촉 2세대 중 선두에 있었는데, 인재 선구안 최고의 유비가 이릉대전에 대도독을 한중쟁탈의 히어로 황권을 두고 풍습으로 선정한 게 참 의아하네요. 한편으론 유비가 신중한 황권 타입보단 위연 같은 당돌한 닥공 타입을 좋아하는 거같은 인사기준도 느껴집니다. (관우장비는 말할것도 없고요.)
조조 - 관우 관계 조조 : 너님을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 것이야. 기필코!(적토마 선물) 관우 : 감사합니다. 승상. 제 주인이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승상이 주신 선물로 낼름 제 주인 유비님께 돌아가겠습니다.(딱히 네가 좋아서 귀순한 거 아니고 형수님들과 부하들 안 죽게 하려고 귀순한거잖아?) 조조 : ...(딥빡, 혼절, 낙담) 조비 - 황권 관계 조비 : 나한테 오길 잘 했어. 아주 잘 했다고!! 유비 따위가 널 버렸.... 황권 : 유비님이 절 버린 게 아닙니다! 누군들 당신이 좋아서 투항한 줄 아쇼? 내 부하들이 몰살 안당하게 하려고 귀순한거 아뇨! 조비 : ....(차마 말잇못) 이쯤되면 조비 - 황권 관계는 뭐, 대놓고 조조-관우 관계 시즌2네 ㅋ 조씨 부자가 어째 유비 측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별의별 짓 다 해서 환심사려고 해도 죄다 삽질로 끝나버리는 걸 보면 ㅋㅋㅋ
1. 황권을 알아본 자들의 공통점 (조비, 유비,사마의)는 한결같이 황권을 쥐었거나, 그럴 예정인 사람이네요. (※황권을 알아보지 못한 유장은 오늘날 치면 일개 면장이 딱 어울리는 수준입니다.) 2. 한중은 촉한의 보물창고인 익주 지역을 지키는 거대한 성벽과 같은 존재라고 봐야할 거 같네요.
번성전투ㅡ이릉전투로 인해 촉의 국력이 심각하게 떨어졌음 당장 유관장 부터 사라지고 황충도 이때 죽었다누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연의 설정? 나이 많아서 그랬을거에요. 게다가 황권도 그렇고 이시기에 많은 장수들이 죽거나 항복했다고 하니 사실상 촉이 위를 치는건 이미 무리 였음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었던 1차 북벌도 말아 먹었으니 ..
위나라도 상황을 지켜보면서 군을 주둔 시켰을텐데, 본인이라면 그 상황에서 퇴각이 가능할까요? 오나라에 위나라에 신경쓸게 하나둘도 아니고 보급로도 끊겼고... 퇴각한다고 시도한들 내부 반란으로 바로 뒤질수도 있는데? 개 죽음 당하느니 목숨이라도 부지하는게 낫죠. 적어도 한 군을 이끌 사람이라면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해야죠. 혼자라면 혼자 분전하다가 뒤지든 말든 하겠으나 이끌고 있던 사람들도 있느데 ㅋ
인재 보는 눈이 좋은 유비, 사이코지만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겐 진심인 조비, 냉혹하지만 유비처럼 인재 보는 눈이 좋은 사마의에게 인정받은 황권...
사실상 유비가 이릉에서 이기려면 황권말 들었어야 했음..
졌더라도 대패는 안했음 ㅋㅋㅋ
@@Donkid-f8m ㅇㅈ
사실 법정만 살아있었어도....
법정도 법정인데, 방통도 안 죽었으면......방통은 유비랑 익주로 가고, 제갈량이 형주에 남아 관우를 지원했으면....
@@유현영-j9r 실상 방통은 능력외에도 형주 대 족벌집안이라 애초에 방통 안죽었으면 관우가 그렇게 죽지도 않았음
정사에 따르면 관우 원수 갚겠다고 나서던 당시 수많은 인재들이 싸우기도 전에 과로사 했습니다. 법정, 황충. 과로사는 안했지만 장비... 결국 싸우기도 전에 군을 이끌 인재를 잃었던 거죠... 싸운 후에는 요? 유망주들 전멸...
5:19 극과극은 통한다고 또라이들은 은근 우직한 애들 좋아함
예외 여포, 고순
사마의도 아꼈다니 뜻밖이네요
이래뵈도 유비 조조 손권급의 인용술을 가짐 ㄷㄷ 등애도 사마의가 알아본 인재 ㄷㄷ
사마의 가 야망있는 제갈량 버전이라 생각하면.
@@너울-i4q 제갈량은 보는 눈이 없는 편 아닙니까..?
@@안상렬-e8z 제갈량이 그래도 유비에게 찍힌 장완 그리고 비의, 강유등 수많은 인재들을 키워놨습니다.
@@안상렬-e8z 마속때문에 그런말이 많은거지 마속빼면 인사결정에 딱히 실책이 없어서
유비 입장에서도
나름 인재인
황권마저 잃고 싶지 않아서리..
이릉대전에 황권이 직접 나서 전장을 살피고자 앞장선다는 주장에 문득 방통 법정 트라우마가 씌어졌을 수도..그래서 거절했을지도..앞장서다 죽으면 어떡하누?..
저런 발언을 하고도 조비가 흡족해할 정도면 말 다했네
촉나라 입장에선 황권 참 아쉬운 인물이네요
계속 있었다면 어땠을지...
인생은 황권처럼
사마의 고증 장난 아니네요
몸을 돌리지 않고도 ㅋㅋㅋ
황권을 말을 안듣던 유비 황권 둘째아들 황순말을 안듣던 제갈첨
이거이거..
하핫 참...
황숭이 관직에 오래있었으니 그를 신뢰할순 있겠지만 제갈첨은 저때가 첫 전투 경험에 병력 대부분이 정예병이 아닌 급조된 병력일태니 제갈첨이 나서지 말고 농성하자는 판단을 한거같음ᆞ 그래도 이런 군으로도 한번 이긴거보면 당시 음평산길 후유증이 장난 아닐지라 이길 확율이 높았을탠데ᆢ
@@이주표-g2z 엥...제갈첨이 공격하자고하고 황숭이 가지말라고하지않았나유
@@Akashi12 황숭이 공격하자고 한거 아니엿음?
[부현에 도착해 제갈첨이 전진하지 않자 신속하게 가서 요충지를 점거해 적군의 평지로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도록 여러 차례 권유했지만 결정하지 못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면죽관에 들어가서 농성하자는 건 제갈첨이고, 황숭은 야외에서 일단 적이 거점으로 자리잡을 요충지를 먼저 점거한 후에 불안불안한 상황에서 공략을 하자고 한거니까, 황숭이 좀더 적극적인 공격을 권하는 내용이잖음?
물론 면죽에 들어가기 전에도 갈팡질팡을 햇다고 해야하나? 먼저 선봉을 보내서 야전을 걸엇다가(물론 황숭이 제안한 적이 요충지에서 자리 잡는걸 막자는걸 안하고 그들이 자리잡은 후에 말이죠) 패배하고 면죽에서 농성을 시작한거라서 어중간에게 굴어서 손실을 입고 시작 한 후에 농성에 들어간건데, 그렇게 시작한 농성에서도 한차례 이겻을 정도면 당시 음평산길 후유증이 장난 아닌지라 차라리 어중간하게 굴지말고 정 황숭의 판단을 따르기 힘들면 그냥 면죽에 먼저 자리잡고 철저한 농성준비를 하고 막앗으면 모르겟는데 이도저도 아닌 상태인거 보면 제갈첨의 실전 경험이 참...(뭐 저게 첫 전투라니까)
@@이주표-g2z 글쿠만
황권의 유비 평가는 미친듯이 정확했음.
법정이 전투 전술짜면 황권은 그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전략에 능한데 이릉으로 날려먹었음 북벌 때 황권 있었으면 마속 쓰는 일 없었음
황권vs육손
볼만했을텐데... 유비야....
하...
그러게요 만일 황권이 처음부터 촉나라 동오정벌군의 대도독이었다면 오나라 망했을는지도 모르겠네요 ㄷㄷㄷ
이른 대전 때 촉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대거 말아먹었다는 것이
이리 들으니 더 실감나네요.
9:19 "그립읍니다"
어느때 어르신인지 대충 짐작은 가옵니다마는...
힘내시고 화이팅입니다. 응원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유비가 정말 매력있게 그려진 일러스트레이터는 여기가 유일하지 않나? 어렸을 때 읽은 월탄 박종화 삼국지 삽화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음.
관우가 북진을 안하고 형주다지기에 치중했다면....유비가 이릉으로 진격안하고 내실을 다졌다면 어떻게 됐을까.....하
북진은 유비가 시킨거고 관우는 단지 우금 포로들 먹일 식량없다고 동맹깨고 손권 선빵친거라
관우 업보고 그다음 유비는 손권이 남만끌어들이고 유장아들 유손을 익주태수로 삼아서 시비오지게
건거라 유비입장에서는 이릉진격안하면 차피 손권에게 선빵맞을운명이긴했음
형주룰 삼국지에서 사통팔달이라고 하죠
좋은곳이긴하나 지키기 어려워서 옆에는 손권이 노리고 잇고 위는 조조가 잇어서 그래서 관우한테 맡긴건데 너무 오를 무시한게큼
@@개조그튼 누가 20년따르던 미방이 통수칠줄알았냐고 아 ㅋ
우리야 아 좀만 참지싶지만 관우 입장에서 보면...유비가 조조를 한중에서 정면에서 꺾어버렸으니 내심 촉과 위 사이에서 저울질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을 거고, 그러니 관우가 번성 뚫는데 성공해서 허도까지 올라갔으면 그에 맞춰 호응해줄 사람도 꽤 있었을 겁니다
관우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로 보였겠죠
우리야 직후 조조가 죽고 더 크게 흔들린다는 점을 알고있으니 아쉬울 뿐...
@@saide9901 ㄹㅇ되게 결과론적일수밖에 없는게, 위 내부에 관우에 호응하는 세력도 많았고
위와 오 촉 은 국력이 넘사라 세월이 흐를수록 위나라는 경제력 인구도 넘사고 북방민족으로부터 질좋은말을 수입해
기병전력도 압도적이라 시간주면 5가스먹은 하이브터진 저그만큼 무서운상황이라
관우입장에서는 타이밍러쉬로 더 발전하기전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을듯
관우에게 운만 좀 따랐더라면 관우가 한신이 될수도 있었다고봄.
2:55 자기네들 영토 한정
강직하고 유능한 사람을 너무나 어처구니 없이 잃은 촉나라
황권은 엄청난 매력과 능력이 있던 것 같음... 타국에 가서도 중용 받고 그러는거 보면...
제갈첨이 황숭을 의심하고(황권이 위나라에 투항한 일 때문) 그의 의견을 따르지 않자 황숭이 이를 눈치 채고 아버지가 위에 투항했어도 (남은 가족들에) 아무런 벌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두텁게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두 마음을 품겠냐고 제갈첨 앞에 통곡함. 그는 그의 말대로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 촉의 충신으로 전사.. 아버지보다 나은 아들이라 생각해요..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바른 판단을 충심으로 말해도 안 먹힐때 미치고 환장하게 됨. 게다가 나중에 일이 완전 폭망하는 걸 옆에서 보는 건, 진짜 끔찍한 트라우마 생김. 하...
나레이션 틀니탁탁 채널 목소리랑 같음 ㅋㅋ
사실 촉 망한 것 관우를 잃은 게 가장 컸지. 관우 사망 - 장비 사망 - 유비 사망의 트리플 콤보.
조비가 가만히 놔둔게 참 신기하긴 하네요...
9:23
군주가 조비인데 ㄷㄷㄷ
6:00 유비도 진짜 멋진 리더고 황권도 투항 했음에도 유비 끝까지 믿고 진짜 물건이네
진짜 위인들이네
😮😮😢😮😮😮😮😮 0:26
마량, 황권, 부융등 너무 아쉬운 인재들ㅠㅠ
진삼국무쌍보다가 여기까지 왔네
와.. 가득이나 인재 넘치는 위나라인데 이릉때 촉의 인재 300명ㄷㄷㄷㄷ.
아... 황권 말을 듣고 했어야 하는데...
그나저나 한중전투 법정활약으로만알고있었는데 황권이라..
황권이 설계하고 법정이 지휘했죠 ㅎㅎ
@@jeminsun8776 감사합니다♥
@@jeminsun8776 아, 그렇군요. 연의에서는 법정이 계략짜고 황충이 정군산에서 하후연 죽였다고 나오던데, 황권이 설계자였군요.
유장 ==>> 황권(구청장도 아닌 군수??)
유비 ==>> 황권(장관 & 시장)
서서 = 어사중승 지금으로 말하면 감사원장 정도는 했다고 보여집니다.
역시 황권ㅋㅋㅋㅋㅋ
이와중에 사악한 살인미소(?)의 조비와 낭고지상의 사마의가 신경이 쓰입...................으흠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황권에게 맡기고 유비 본인은 참전만 했었더라면....
황권을 잃고 마충을 얻었쥬.. 그건 아닌건 갘지만
휴 저는 또 누란지위 원전이 여기야? 싶어서 찾아봤네요ㅋ 누란지위는 이전시대 범저가 최초인듯 하네요
황하가 맑아지길 기다린다(백년하청)은 원래 처음 쓴 사람과 정반대 의미로 쓴 것 같아서 재미있네요
한 시대를 통찰할수 있는 인물 한명이 국가의 흥망을 책임진다는 것을 죽은 유비가 알았더라면.
그건 어지간한 군주는 거의다 알고 있죠, 그 인재를 찾지 못하고, 믿지못하고, 인정하지 않을뿐
항장 중에 유명한 장수들이 있죠. 가후, 장료, 장합, 강유 등등.
그에 비해 황권은 나관중에 선택받지 못해 인지도가 위에 인물들에 비해 바닥인 건 이유가 있겠죠.
위나라는 인재의 무덤이죠.
조조때는 그나마 1세대니 재능이 최우선이였지만 조비 이후로는 후계자 싸움으로 크게 파벌이 갈리고 창업공신들과 조조씨족들과의 기싸움과 세습으로 말도 안되게 빠르게 붕괴돼 낭고상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중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미친 오호십육국 시대를 만들었죠.
위 3문장과 밑에 2문장에서 각각 하고싶은 말이 다른거같은데 ㅋㅋㅋㅋㅋㅋ
정말 삼국지의 시대는 영웅들의 시대... 신의있고 능력있는 인물들이 이토록 중용된 역사가 없었던거지... 능력위주와 신의위주의 인재등용이 정말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
?????? : 역시 황씨가 일을 잘해
황씨 일가는 유씨 일가 잘못 만난듯...
7:34 근데 사마의 그림 등이 앞으로 오고 목을 돌린 그림인가요? 사마의가 목을 180도 돌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거같아서 ㅋㅋㅋㅋㅋㅋ 발보니까 맞는거같기도..?
왓 디테일... 제작자님 코멘트가 필요한데요ㅋㅋ 근데 다른 사람들은 다 옷깃있는 걸 보니 제법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사마의 낭고지상 ㅋㅋ
황권이 살아있었으면 제갈량의 뒤를 황권이 이었을 듯
그렇다기엔 황권은 그당시 60세고 제갈량은 43세라..
@@Akashi12 다만 황권이 제갈량 사후 몇 년더 살았으니
@@마루1세-x3z 그야...제갈량은 고생했고 황권은 위나라에서 그나마 편하게 살았으니...촉에 계속있었다면 똑같이 오래살았을리가..
애초에 뒤를 이은건 실질적으론 장완이었음
감사 합니다
황권은 이릉대전에서 어쩔수 없이 위나라에 항복한 케이스지만
만약에 촉에 남았다면 진짜 제대로 역활을 했을 인물은 틀림없음
제갈량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는 인물인건 부정할수 없음
황권이 대단한것이 항장출신인대도
저렇게 인정받은것은 어찌보면 대단한거 같아요
사마의도 인정할정도면 인품이 대단한듯해요
ㅇㅈ, 글고 황권 선봉에 내세워서 육손하고 붙었으면 진짜 막상막하였을 듯요.
@@청천고운 육손이랑 막상막하까지은 잘...
막상막하는 몰라도 최소한의 피해로 촉나라 2세대 장군들은 잃지 않았을듯
만약 법정과 황권이 모두 촉에 존재했었다면 유비가 북벌군을 이끌고 옹양주로 쳐들어가는 장면이 나올수도 있었겠죠
진짜 찐으로 유장에게 충언을 했지만 들어 먹질 않았고 유비가 서촉을 취한 뒤 유파처럼 두문불출하며 출사를 하질 않았기에 많은 대신들이 그런 그들을 안 좋게 봤었는데 그런 모습 속에 유비가 "그 두 사람에게 해꼬지 할려는 자 있다면 내가 용서치 않으리라!"라고 엄포를 놓아서 수그러 들었고 그 뒤 황권이 유비 밑으로 들어가 신하가 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유비가 이릉대전을 발발하기 전에 황권이 충언하기를,
"오나라 사람은 용감하여 전쟁을 잘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피고, 폐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이 적의 허실을 살피겠다며 자청했으나 유비는 이를 거절하고 황권을 후방으로 맡기며 위나라 견제를 하게 했는데 그 뒤 알다싶이 유비가 육손에 의해 대참패를 면하질 못하며 후퇴를 했지만 황권만 이도저도 못하게 된 시점 속에서 고립이 되어 버렸고 이에 고민하던 황권은 결국 하는 수 없이 위나라에 투항을 하게 됩니다.
이에 조비가 황권의 항복에 이렇게 묻는데,
조비: 그대가 짐에게 투항하는 것은 진평과 한신을 추모하기 위해서인가?(참고로 이 두 사람은 항우의 부하였다가 유방에게 투항한 인물들이자 개국공신이 된 인물들)
그러자 황권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황권: 소신은 촉 황제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강북의 군사를 통솔하다 강동 육손에 의해 퇴로가 끊겨버렸습니다. 촉에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오에 항복할 수도 없게 되어 이렇게 폐하에게 투항을 하게 된 것이오며 또한 이미 싸움에 진 장수가 죽음이나 면하면 다행이지 어찌 옛 사람을 추모한다고 하겠습니까?
라고 말을 하니 이에 조비는 나름 수긍을 하더니 이에 진남장군이란 작위를 내리며 환대를 했지만 황권은 거절을 하며 받질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위나라 가신이 조비에게 다가와 유비가 황권 투항 소식에 진노를 하며 가족을 모두 참했다는 거짓 정보를 이야기를 하면서 황권에게 이 소식을 전해듣게 하니 황권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기를,
황권: 소신과 촉주(蜀主:유비)는 서로 믿음이 같은 터 입니다. 신의 본심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에 신의 가족을 함부로 처벌하질 않으셨을 겁니다.
라고 했었고 황권 말대로 황권 투항 소식을 듣게 된 유비는 되려 황권에게 미안하다면서 그의 가족들을 보호하면서 녹미를 지급하란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비가 백제성에서 사망했을 때 많은 이들의 반응이 다양했었고 이 상황에서 조비가 황권을 놀리기 위해 일부러 건드렸음에도 큰 소득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으니 말 다 한 셈이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사후에는 두 명의 아들이 아버지 뒤를 이었는데 한 명은 황옹(위나라에 함께 투항한 걸로 추측)이였고 다른 한 명은 촉에 남아 있던 황숭이란 인물이였는데 황옹 같은 경우는 부친의 뒤를 이었지만
후사를 남기질 못해 결국 그대로 위나라에서 대가 끊어져 버렸고 황숭 같은 경우는 제갈량 아들 제갈첨과 함께 촉을 지키던 와중에 등애가 촉을 공격해 왔을 때 방어할 대책을 몇 번이고 간언했지만 이내 듣질 않던 것에 한탄을 금칠 못했고 그 뒤 면죽관에서 전사를 한 제갈첨과 더불어 자신도 등애와 맞서 싸우다 전사를 했다고 합니다.
10:15 이래서 가문이나 피가 중요해.
뛰어난 능력과 전술적 안목에다가 충성심까지... 부전자전
유비의 이릉대전은 병신짓이였지 ㅋㅋ 장수 다 죽고 복수는 병신짓임
우리도 일본 지랄하는거 지켜보자 군사 일으키지 마라 알아서 멸망함
끝까지 버티다가 유장 망하고 항복했으니 유장한테도 할 도리 다했고
이릉에서도 유비가 황권 버린거지 황권이 잘못한게 아닌데
삼국지 겜에서는 은근 배신자 기믹이 붙은 듯 ㅋㅋ
조(커)비 앞에서 저래도 승진한....ㅎㄷ;;;
황권만 있었더라도 제갈량 북벌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ㅠㅠ
그런가정 시작하면 마속의 뻘짓 아니였어도 촉나라가 삼국통일했어요 ㅋㅋ 끝도없음
@@lol-bi2ec ㄹㅇ 방통만 안뒤졌어도 형주가 얼탱이 없게 안먹혔을거고 끝이 없지 ㅋㅋ
배신자가 이 정도 중임받는다는 건 능력이 있는 증거
능력은 기본이고 배신에도 명분이 있어야함. 유장은 지가 항복해버린거고 유비는 지가 버린거라 ㅋㅋ
배신은 세력이 온전한데 통수치고 도망가는거고 유장땐 흡수당한거고 이릉에선 후방을 관리하던 황권이 퇴각조차 못할정도의 상황을 만들어버린 유비의 잘못이 컸죠
모든 면에서 촉 2세대 중 선두에 있었는데, 인재 선구안 최고의 유비가 이릉대전에 대도독을 한중쟁탈의 히어로 황권을 두고 풍습으로 선정한 게 참 의아하네요.
한편으론 유비가 신중한 황권 타입보단
위연 같은 당돌한 닥공 타입을 좋아하는 거같은 인사기준도 느껴집니다.
(관우장비는 말할것도 없고요.)
그래도 황권쯤 되니까 수군도독으로 위나라 견제 시킨것일듯요
촉은 말련이 않좋아 그말이 맞나봐 난세에 영웅난다고 나지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조조 - 관우 관계
조조 : 너님을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 것이야. 기필코!(적토마 선물)
관우 : 감사합니다. 승상. 제 주인이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승상이 주신 선물로 낼름 제 주인 유비님께 돌아가겠습니다.(딱히 네가 좋아서 귀순한 거 아니고 형수님들과 부하들 안 죽게 하려고 귀순한거잖아?)
조조 : ...(딥빡, 혼절, 낙담)
조비 - 황권 관계
조비 : 나한테 오길 잘 했어. 아주 잘 했다고!! 유비 따위가 널 버렸....
황권 : 유비님이 절 버린 게 아닙니다! 누군들 당신이 좋아서 투항한 줄 아쇼? 내 부하들이 몰살 안당하게 하려고 귀순한거 아뇨!
조비 : ....(차마 말잇못)
이쯤되면 조비 - 황권 관계는 뭐, 대놓고 조조-관우 관계 시즌2네 ㅋ 조씨 부자가 어째 유비 측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별의별 짓 다 해서 환심사려고 해도 죄다 삽질로 끝나버리는 걸 보면 ㅋㅋㅋ
나레이션 하는분 누구에요 귀에쏙쏙들어오네요 구독했습니다
그 옛날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가가멜역으로 열연하신 탁원제 선생님 입니다
@@etrangerjh 진짜요?
@@Junseok03 예 심슨에 최강빌런 몽고메리 번즈 사장님도요
@@Junseok03 정확히는 탁원제 선생님 보이스웨어라네요.
역사는 선택에 따라 바뀌누 한번 잘못된 선택하면 그나라 운명이 바뀌네요
문득 든 궁금증인데 유비에게 유장이사신보낼때 목매달아 죽은 촉인재 아시는분
왕루일겁니다
왕루인데 연의 창작
다들감사합니다♥
이름값에비해? 언급이너무안되...
연의의 폐해...
150명 가까이 작위를 받았으니 촉의 인재가 많이 부족했겠군요
아 황권 ㅠ 제갈첨 뭐하냐
아첨꾼은 솔직히 정감 안가지
큰틀은 황권이 만들고 그 안의 내용물은 법정이 만든다
라고 했지만 법정은 한중전투가 끝난 다음해 죽고 황권은 이릉전투때 오에 의해 퇴각로가 막혀서 위로 망명
자랑스럽다 ! 촉나라 !
유비가 황권을 못믿었지
항장출신이라 아무리 아닌척대해도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은 있을겁니다. 인의로 대하는거랑 불안함은 다르니까요. 처자식을 살려둔것도 어쩌면 유비의 죄책감도 일부 포함되지않았을런지..ㅎㅎ
??? 이건 뇌피셜일텐데요? 그리고 팩트체크하세요.항장 출신은 조씨가 더 낮게 대우했습니다. 장합,장료 이런 장수들은 촉에 있었으면 대장군까지 갔었을 장수입니다
대장부들~~~ 지금 정치판을 보면 소인배와 범법자들 양아치들 판국인데....... 습쓸하네.
개뿔. 저놈들은 지금 시대면 다 조폭들임.
유장도 참 멍청하구나 법정 황권 비시 엄안 황충 장임 냉포 같은 얘들을 두고 어찌그렇게 쫄보처럼 살았는지.. 유명한 사람들 다 여깄구만
유장은 멍청하다기 보다는 백성들이 힘있는 자들의 싸움에 죽어나가는게 보기 싫었을 뿐. 약육강식의 시대에 인본주의 정신을 가진 위인.
1. 황권을 알아본 자들의 공통점 (조비, 유비,사마의)는 한결같이 황권을 쥐었거나, 그럴 예정인 사람이네요. (※황권을 알아보지 못한 유장은 오늘날 치면 일개 면장이 딱 어울리는 수준입니다.)
2. 한중은 촉한의 보물창고인 익주 지역을 지키는 거대한 성벽과 같은 존재라고 봐야할 거 같네요.
유비도 그렇고 제갈량도 그렇고...
아들교육이 너무 부족했음...... 능력도 많이 부족.
촉나라는 이러나 저러나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음...
조조나 손가애들은 대개 능력들이 좋았는데.. 쩝;
가정교육도 여유가 있어야 하지. 하루하루 밥벌어 먹기 힘들면 밥상머리교육도 못함
조가애들이 정상이었다고 보고계십니까? 심지어 조비는 엄청난 싸패여서 자신 사촌인 조홍이 본인에게 돈을 안빌려줬었다고 조홍을 죽이려고했었는데요? 게다가 사마의에게 군권을 줬었던 사람이 조비였는데요?
손가요? 손권,손호가 했었던 짓을 보고도 손가애들이 정상이었다고 보고계십니까? 심지어 손권은 말년에 이궁의 변을 일으켰습니다
번성전투ㅡ이릉전투로 인해 촉의 국력이 심각하게 떨어졌음 당장 유관장 부터 사라지고 황충도 이때 죽었다누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연의 설정? 나이 많아서 그랬을거에요. 게다가 황권도 그렇고 이시기에 많은 장수들이 죽거나 항복했다고 하니 사실상 촉이 위를 치는건 이미 무리 였음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었던 1차 북벌도 말아 먹었으니 ..
이릉의 똥
등애ㅜㅜ
상산 조자룡 백전백승 그럼 상산은 어디인가 경상도 상주라고 하면 미친놈들 욕하려나 중국 왕조 자식들도 한국에서 수련하고 간것을 알까
에이 무슨 3국지... 형주조차 위 촉 오 가 삼분하고 있었는데.. 3국지는 이릉대전에서 안발려서도 유비가 할수있는게 더이상 없음.
이해가안되는게,
퇴로가막혀 위나라에 투항?
어떡해든 퇴각해야하는거아닌지
어떻게든
살면서 다 마음먹은대로 되더냐?
자신 뿐 아니라 여러 인재가 있었다 하니,
그 무리를 이끄는 유두머리로써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긴 힘들지 않았을까요
이런얘기가있다죠
오에 투항할 순 없다면서 어찌 위엔 항복했나
촉의 미래인 수백명 인재들을 이끌었으니 어뜩해든 촉에 귀순하는 노력을 했어야 마땅
여러모로 그닥 의리를 중히 여기는 인물은 아니었던 듯.
위나라도 상황을 지켜보면서 군을 주둔 시켰을텐데, 본인이라면 그 상황에서 퇴각이 가능할까요? 오나라에 위나라에 신경쓸게 하나둘도 아니고 보급로도 끊겼고...
퇴각한다고 시도한들 내부 반란으로 바로 뒤질수도 있는데? 개 죽음 당하느니 목숨이라도 부지하는게 낫죠. 적어도 한 군을 이끌 사람이라면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해야죠.
혼자라면 혼자 분전하다가 뒤지든 말든 하겠으나 이끌고 있던 사람들도 있느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