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시대때 돼지고기가 선호되지 않은이유가 토종돼지는 크기부터가 무척 작아서 고기 양이 적었고 또 곡물 말고도 인분,음식물 쓰레기,오물등을 먹이랍시고 먹여대서 냄새도 진짜 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돼지들을 이런식으로 키워서 품질이 지금기준으로는 좋지 못했죠 때문에 조선시대땐 소고기가 많은것도 있지만 누린내나 사람의 인분을 먹는거 때문에 기피되었던거 같습니다
그럼 노동력 제공도 안하는 돼지를 굳이 왜 키웠을까요? 영상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70% 비싸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똥 먹여서 키운게 왜 더 비싸게 거래 됐을까요? 전세계 어디나 돼지는 사육할때 음식 찌꺼기 아니면 똥 먹였습니다. 그럼에도 키운건 맛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 사막 지역에선 종교라는 명분으로 못 먹게 한겁니다. 과거에는 돼지를 기피한게 아니라 돼지를 먹고 싶어도 양반 아니면 못 먹는 소보다 돼지가 더 귀하니까 못 먹은거지 싫어서 안 먹은게 아닙니다.
고대부터 돼지는 제사용 아니면 민가에선 거의 키우지 않았다고 해요. 윗분들 말씀처럼 곡식을 먹여야 하기도 하고, 인간과 함께 노동하는 소와는 달리 노동력 제공도 안해서 돼지는 게으르고 못된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도 쓰였으니 그닥 호감가는 동물도 아니었고여. 그래도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서는 귀한 식재료였겠지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이 집 저 집 농사를 했으니 새끼도 많이 낳으면서 사람 먹을것도 부족한데 똑같은걸 먹여야하는 돼지보다 소가 더 인기 많은게 이해되네요 장금이의 꿈에서도 소는 살아있을땐 농사짓는것을 도와주고 죽어서는 사람들에게 일용한 양식을 제공해 배를 채워준다고 했죠
조선시대당시엔 돼지고기를 선호하지않았고 소고기보다 비싼이유가 곡식을 축내서라고하니 생각난게 이슬람의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문화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이슬람이 탄생한곳이 사막이었고 물과 식량은 풍족하지않은데 물과 식량을 축내는데다 사막이 돼지가 서식하기 적합하지않은곳이라 열을 식혀주기위해 물을 소비해야했던것과 다소 비슷함
아버지와 아들의 겸상이 어느정도로 금기시 되었는지.. 예전에 어디서 읽은 글이 생각나네요. 조선시대때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인 일이 있어 왕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갔는데, 패륜죄이니 처벌을 해야하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게 된 원인이 겸상을 했던거라고 하니 왕이 탄식했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의외로 배가 없어서 놀랐습니다. 배나 포도(머루?) 다래(키위?) 같은 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오네요. 고려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에는 뭘 먹었고 입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 그리고 몽골 유목지역은 또 뭘 어떻게 먹었나요? 아랍쪽도 가능하다면 부탁해요~
돼지고기 소고기 보다는 꿩고기 새고기 오히러 더 흔해습니다 심지어 호랑이 늑대도 마니 잡아 먹어다고함 그래서 포수가 흔하고 양반들도 그걸 알아서 사냥가서 꿩이나 새를 잡아오면 50%만 자기들이 먹고 50% 머슴한테 줌 이유가 양반 집이라도 소고기는 그리 흔한게 아님 그래서 사냥을 가면 항상 30%~50% 본인들이 먹고 머슴들에게 나누어줌 오히러 고려 조선시대는 머슴은 출산휴가 대보름등 휴가를 마니 챙겨줌 실제로는 아이가 태어남 산모를 위한 휴가나 돈이나 고기 곡식을 마니줘다고 나옴
조선시대에 술을 단순히 많이 마신게 아니라...또 엄청 독했다네요. 중국 사신들이 마셔보고 조선술은 너무 독하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는...근데 정조대왕은 이 술을 바가지만한 필통에 가득 채워서 원샷!!을 신하들에게 자주 시켜서 기어이 신하를 꽐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목로주점 비슷한 것은 70~80년대에도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구요. 문자 그대로 가난한 학생들이나 험한 일 하시는 분들이 집에 가다가 한잔은 하고 싶은데 돈은 넉넉하지 않으니. 잔술로 한잔 시키고 안주 한 두 점 먹고 기분 전환하는 용도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을 했다고. 당시에는 담배도 까치 단위로 판매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한 갑은 너무 비싸고. 담배는 펴야겠고.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서 까치 단위로 자주 팔았다고... 아는 형님의 뇌피셜로는 그게 전체적으로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다찌 집으로 변화 했다고 하시는데.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은 드네요. 다찌 집은 안주를 따로 판매하지 않습니다. 팔기도 팔지만(흔히 말하는 시세의 의지하는 제철 음식) 대다수는 술 값에 의해 안주가 결정되는 형태의 가게죠. 처음 가면 뭔 나물만 나오다가 술을 많이 마실 수록 안주가 점점 업그레이드 됨. 맛 보기 식으로 고기나 생선 안주 한입 거리로 내오는 곳도 있긴 한데. 거진 단가 거의 없는 안주가 먼저 나옴. 다만 먹고 죽을 생각 아니면 그냥 생선구이 가게가 요즘 트렌드에 맞죠. 안주 업그레이드 되기 전에 실시간으로 몸이 죽어 나감 ㅋㅋ 주당 급이거나 지갑이 얇은 사람에겐 추천.
우리 전통에 스탠딩바가 있었다니.... 쌀1.8리터면 밥솥으로 9~10인분임. 보통 가정용 밥솥이 6~8인분인데.... ㅎㄷㄷ 돼지고기 안먹었던건 특유의 냄새때문에... 요즘은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냄새가 거의 안나지만, 잔반등을 먹이던 과거에는 맷돼지랑 똑같은 진한 냄새가 났었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께 DNA는 동일, 오로지 사는 환경의 차이로 모습이 다른거 뿐이니까요. 가끔 우리밖으로 탈출한 돼지 뉴스가 나오는데 약 3계월만 지나면 어금니와 검은색 털이 수북이 자라 걍 맷돼지 그잡체라는....
티비에서 나오는 북한 실상 프로그램 (이만갑) 이었나??? 나무 하러 40km씩 간다고 하더라구요 유산소 40km인 셈이죠 ...조선시대에도 나무로 식사부터 보온까지 했던 시절이니 그리고 지금이야 농사도 트랙터 경운기 혹은 기계들이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때는 등짐 지고 몇십리 까지 움직였으니 뭐 양반네는 어쨋는지 모르겠지만요....
중요한 것은 아니나 식물학적으로 참외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입니다. 과일 = 나무에서 나는 열매, 채소 = 풀에서 나는 열매 (수박, 메론, 딸기 등등) 통틀어 과채류 라고 하면 둘 다의 의미가 되니 맞는표현입니다. 정보전달의 목적을 둔 채널이므로 작은 오류라도 잡아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 많아 즐겨보고 있는 팬으로써 항상 응원합니다!
일부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때 일본관료들이 식사제공할때 조선인과 일본인한테 음식양에서 차별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 아님 한국인은 조선시대 옛날부터 식사량이 많았고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똑같은 식사량을 제공했지만 조선인은 많이 먹는 민족이라 똑같은 양이라도 적게 느껴질수 밖에 없는거임
밥 많이 먹는 부분에서 나오는 사진, 썰 다 전공교재에서 본거ㅋㅋㅋㅋㅋ 밥을 많이 먹었던건 일단 가난해서 삼시세끼 먹기가 힘들고, 밭일이 힘들어서 일을 하기 위해서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었다는 썰도 있어요 평민들 외에도 고봉밥으로 먹었다는걸 보면 별개로 대식 민족이었던 것 같기도...ㅋㅋㅋ
일부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때 일본관료들이 식사제공할때 조선인과 일본인한테 음식양에서 차별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 아님 한국인은 조선시대 옛날부터 식사량이 많았고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똑같은 식사량을 제공했지만 조선인은 많이 먹는 민족이라 똑같은 양이라도 적게 느껴질수 밖에 없는거임
@@NOLAN_HAMMZY 정식적으로 공룡 시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룡은 대략 2억 5천만년부터 6600만년 전 중생대 시기에 활동했으며, 공룡이 멸종하는 시기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류의 최초의 직계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보다 약 6200만년 빠른시기입니다. 또한, 시대를 구분할 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는데, 역사시대가 시작된 것은 대략 기원전 3000여년 경으로 그 이전에는 구체적 기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를 '먼저 선'에 '기록 사' 자를 써서 선사시대 즉, 기록 이전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사학계와 다른나라의 경제 사학계에서도 삼국시대는 커녕 조선 중~후반 까지도 제대로 된 경제적 통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선 말기 이전에는 생활수준에 대한 제대로된 기록이 존재하질 않기에 조선 후기부터의 경제력은 추측에 불과할 뿐입니다. 당장에 1800년대의 조선 경제적 통계에서 조차 여러 학자들 마다 의견이 갈리는데, 수 백년 전의 추정치는 조선에 관한 의견들보다 훨씬 편차가 크겠죠.
조선시대 술은 지금과 다릅니다,양조술이 발전하지 못해 맑은술은 거의 없었고 지금처럼 25도,40도 술은 그냥 없었다고 보시면 되고요 탁주라 불리는 막걸리는 거의 알콜 1~3도의 알콜맛 나는 음료 정도라 보시면 되구요,소주라 불리는 술은 지금 맥주 정도의 술 이라고 보면 됩니다....
삼겹살은 60~70년대 돼지사육은 환경오염이 심했기에 일본은 한국에 돼지사육을 장려하여 일본 돼지고기 기지로서 키웠고 이에 따라 돼지를 잡아서 등심안심등 살코기가 많은 부위는 대부분 일본이 가져가고 남는 부위가 삼겹살 족발 돼지머리 등등이었다. 바로 그 남는 고기들을 시장에 판매하게 되어 먹기 시작함. 한국인은 원래 살코기 좋아함.. 당시 일본경제는 세계1위를 향했기에 돼지사육 농가들도 그렇게 판매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늦가을 또는 초겨울에 항아리에 볏집과 소금물로 우려낸 감을 간식으로 주시곤 했는데
너무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너무 좋아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시는 먹을수 없게 되어 너무 그리운 맛이 되어버렸어요 ㅜ ㅠ
우린 감 먹고싶다....
그거 침 감 같아요
@🌈𝒀𝑶𝑲𝑶🎀 절임은 아니예요^^
자르지 않고 땡감을 항아리속에서 후숙하는거예요
아주 달고 맛있어요
단감보다 몇배 당도가 높아져요^^
짠맛은 1도 없어요
소금물로 우려낸 감은 침 감 아닌가요
엄마가 떪은 감을 소금물에 담가뒀다 먹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가요?
신기해요. 어디 공식적으로 이런건 기록을 남겼으면 해요
역시 식문화주제가 젤 재밌네요^^
사극에서 양반들이 주막비용 결제할때 5냥 낸다는건
주막 풀코스를 즐겼다는 의미입니다.
그쵸... 5냥이면 지금으로치면 40만원가까이되는돈이니
5냥이 40만원이었.... ㄷㄷ
@@syukeulia_de_la_mancha 당백전이 얼마나 개념없는 화페인지 아시겠죠
북창동식이었으려나요?
@@leo_king99 ㅋㅋㅋㅋㅋ
단백질을 섭취하기 힘들던 농경국가에 농업이 주인 국가라 탄수화물인 밥을 엄청 먹고 그 고된 농사를 했으니 이해가 되는 밥양이네요
동아시아는 전부 쌀농사가 주력인데
어딜 찾아봐도 우리나라의 식사량 절반을 넘기는 나라조차도 없음.
심지어는 노동을 거의 안하는 양반도 식사량이 적지가 않음.
그냥 DNA 자체에 대식이 새겨진 민족임.
@@llPlutoII 진짜 경신대기근은 어케버틴거지?
일본은 나라에서 육식을 금지했는데...조선이 일본보다 단백질이 더 부족할 이유가?
@@happykorea2183조선시대 소고기 섭취량은 대한민국 80년대 중후반정도임 조선시대 내내 소고기 금지령 자주하는거 보면 이게 양반때문에 소고기 먹지말라 했겠음 양반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맨날 농사지어서 힘들어서 그렇댘 그거 다뻥이라고 나왔어요 다른나라도 농사 개그치 지었어요. 그냥 우리조상들이 많이 먹은겁니다
저시대때 돼지고기가 선호되지 않은이유가 토종돼지는 크기부터가 무척 작아서 고기 양이 적었고 또 곡물 말고도 인분,음식물 쓰레기,오물등을 먹이랍시고 먹여대서 냄새도 진짜 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돼지들을 이런식으로 키워서 품질이 지금기준으로는 좋지 못했죠 때문에 조선시대땐 소고기가 많은것도 있지만 누린내나 사람의 인분을 먹는거 때문에 기피되었던거 같습니다
그럼 노동력 제공도 안하는 돼지를 굳이 왜 키웠을까요? 영상엔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70% 비싸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똥 먹여서 키운게 왜 더 비싸게 거래 됐을까요? 전세계 어디나 돼지는 사육할때 음식 찌꺼기 아니면 똥 먹였습니다. 그럼에도 키운건 맛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든 사막 지역에선 종교라는 명분으로 못 먹게 한겁니다. 과거에는 돼지를 기피한게 아니라 돼지를 먹고 싶어도 양반 아니면 못 먹는 소보다 돼지가 더 귀하니까 못 먹은거지 싫어서 안 먹은게 아닙니다.
@@hong-eo 아님. 조선시대에서는 돼지를 먹으면 치질에 걸린다는 소문이 있었음.
미개한 조선이였네요
돼지를 먹지 않은 이유는..
소는 방목으로 키울 수 있지만
돼지는 인간이 먹는 농작물을 먹어야 하기 때문임.
또한 먹을 게 귀했던 시절이라 짬밥이 남을 수 없었기 때문임.
고대부터 돼지는 제사용 아니면 민가에선 거의 키우지 않았다고 해요. 윗분들 말씀처럼 곡식을 먹여야 하기도 하고, 인간과 함께 노동하는 소와는 달리 노동력 제공도 안해서 돼지는 게으르고 못된 사람을 뜻하는 용어로도 쓰였으니 그닥 호감가는 동물도 아니었고여. 그래도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에서는 귀한 식재료였겠지요.
3:28 결국엔 냉전이 만들어낸 문화였네요...
8~90년대에는 찌개를 가운데 놓고 숟가락으로 떠먹는게 자연스러웠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찌개를 따로 국자로 퍼서 먹었었지요 ㅋ
저 당시엔 단백질이나 지방 섭취가 거의 없어 밥으로 열량을 다 채워야했고 그 쌀 마저도 현재랑 달라서 개량이 안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영양가있는게 아니었어요 ㅎㅎ 그 정도 양을 먹어야 버틸 수 있었던거죠
현재 쌀이 좋다는 거네
저때 사람들이 지금 쌀밥을 먹는다면 원래 먹었던 양만큼 먹지는 못하겠네요
곡류를 통해서 단백질 지방 등 영양성분을 채우려면 양으로때려박는수밖에...
@@매드빈 어떤부분에서요...??
제가알기론 저당시 과일이 지금과 전혀 다른 품종급으로 영양소가 적었다고 알고있는데
중국이나 일본 같은 주변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했을텐데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 많이 먹었던 걸까요?? 궁금합니다. 우리에겐 대식가 유전자가 있는걸까요
4:44 명수옹,유느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양을 소화시키는 조상님들의 운동량이란 가늠이 안되네요
옛날에는 농사를 지어서 활동양이많았고 저장할 기술도 없었으니까 그때그때 먹어야했고 많이 먹어야했죠ㅋㅋ
탄수화물만 처먹으니 산더미같이 먹어도 허기진거임 동물성 단백질이 포만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데
폭염에 농사한번 하러가면 저것도 부족하죠..
참고로 아프간 실전배치되는 미군들은 하루에 3천칼로리씩 섭취해야 한다고 함.
농사짓는것도 아닌데도 그정도인데 농사짓는 사람이면 얼마나 더 열량이 필요하겠음
@@흰고래-u3x 가난하니 어쩔수없었음ㅋㅋ
탄단지중에 가장 저렴하게 많이 구할수있는게
탄수화물인지라..
지금도 가난한 집 식단은 단백질이 거의 없다싶이함
7:24 ㄹㅇ인게 중국요리중 임시정부 요원들 입맛에 그나마 맞던게 우육면이었는데 돼지고기 베이스가 대부분인 중국요리중에서도 드물게 소고기로 만든거라 그나마 입맛에 맞았었다고 하네요(중국에서 肉이라고 써져있는건 보통 돼지고기를 의미, 소고기나 닭고기는 우육이나 계육으로 따로 표기한다고 함)
저 중국 면요리 중 우육면 가장 좋아하는데 ㅋㅋ 입맛 어디 안 가나 보네요. ㅎㅎ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이 집 저 집 농사를 했으니 새끼도 많이 낳으면서 사람 먹을것도 부족한데 똑같은걸 먹여야하는 돼지보다 소가 더 인기 많은게 이해되네요 장금이의 꿈에서도 소는 살아있을땐 농사짓는것을 도와주고 죽어서는 사람들에게 일용한 양식을 제공해 배를 채워준다고 했죠
무슬림도 그래서 돼지고기를 금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주요 산업이 농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고 노동력이 뛰어나야 산업 산물을 잘내는데 유리했습니다
당연히 애를 많이 낳고 소를 열심히 돌봐야 했죠
조선시대당시엔 돼지고기를 선호하지않았고 소고기보다 비싼이유가 곡식을 축내서라고하니 생각난게 이슬람의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문화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이슬람이 탄생한곳이 사막이었고 물과 식량은 풍족하지않은데 물과 식량을 축내는데다 사막이 돼지가 서식하기 적합하지않은곳이라 열을 식혀주기위해 물을 소비해야했던것과 다소 비슷함
조선이 돼지고기를 안먹었던건 이슬람의 돼지기피와는 이유가 다르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찌개를 먹을 때 국자로 퍼서 따로 먹었는데, 다른 가족 집에 놀러 갔을 때 한 찌개로
다같이 숱가락 넣고 먹는 걸 보고 놀랐어요
한국사람도 가정마다 다른 것 같아요😢😂
원래 우리나라 식문화가 그래요
님 가정이 특이한거지
안그러는 가정도 많음
당신주변이 안그렇다고
다른 사람 비하 하지마셈
그리고 위생적으로 따로 먹는게 더좋음
Tmi: 당시 돼지 품종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으며, 돼지는 고기 이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헐.. 신기하네요
심지어 돼지는 도움안된다고 잘 키우지도 않았음
소는 농사지을때 중요하니 재산 1호고 닭은 계란이라도 낳고 달걀을 내다 팔면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고 개도 경비역활ㄹ 하는데 돼지는..😅
@@소루길 그래서 옛날에 소고기를 많이 먹었던 거군요 ㅋㅋㄱㅋ 세종대왕님도 소고기를 매우 좋아했다고 하던데.. 신기하네용
@@user-ik2nh5wr4c 6-70년댜까지만해도 시골에선 소 잡는건 집안재산을 잡는거였겠죠
@@소루길 와우..ㄷㄷ 개신기하당
아버지와 아들의 겸상이 어느정도로 금기시 되었는지.. 예전에 어디서 읽은 글이 생각나네요.
조선시대때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인 일이 있어 왕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갔는데, 패륜죄이니 처벌을 해야하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게 된 원인이 겸상을 했던거라고 하니 왕이 탄식했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엔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열이 철저해서 겸상을 같이 할려면 두들겨맞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온사람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그런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농사땨문에 운동령은 많고 하루에 20키로는 짐지고 걸어다니고 먹을건 쌀과 나물 종류에 과일도 품종개량안되서 참외가 애기주먹만하고 복숭아가 골프공만하던 시절이니 그럴수 있어요
소는 농사지어야해서 함부로 죽이면 안되고 닭은 계란을 얻어야하니 먹는데 한계가 있고...😢
저래서 할머니들이 더 먹으라고 하는거구나 저런 삶을 사셨으니
의외로 배가 없어서 놀랐습니다. 배나 포도(머루?) 다래(키위?) 같은 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오네요.
고려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에는 뭘 먹었고 입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 그리고 몽골 유목지역은 또 뭘 어떻게 먹었나요? 아랍쪽도 가능하다면 부탁해요~
전통 스탠딩바는 아니지만 종각에 가면 할아버지들 막걸리 한잔 마시고 안주 한점씩 먹는 시스템으로 천원 정도 하는데가 있어요
돼지고기 소고기 보다는 꿩고기 새고기 오히러 더 흔해습니다
심지어 호랑이 늑대도 마니 잡아 먹어다고함 그래서 포수가 흔하고 양반들도 그걸 알아서 사냥가서 꿩이나 새를 잡아오면 50%만 자기들이 먹고 50% 머슴한테 줌
이유가 양반 집이라도 소고기는 그리 흔한게 아님 그래서 사냥을 가면 항상 30%~50% 본인들이 먹고 머슴들에게 나누어줌
오히러 고려 조선시대는 머슴은 출산휴가 대보름등 휴가를 마니 챙겨줌 실제로는 아이가 태어남 산모를 위한 휴가나 돈이나 고기 곡식을 마니줘다고 나옴
잘볼께요 너무 좋은 동영상 같아요
조선시대에 술을 단순히 많이 마신게 아니라...또 엄청 독했다네요. 중국 사신들이 마셔보고 조선술은 너무 독하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는...근데 정조대왕은 이 술을 바가지만한 필통에 가득 채워서 원샷!!을 신하들에게 자주 시켜서 기어이 신하를 꽐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당시엔 지금처럼 먹거리종류가 풍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목로주점 비슷한 것은 70~80년대에도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구요. 문자 그대로 가난한 학생들이나 험한 일 하시는 분들이 집에 가다가 한잔은 하고 싶은데 돈은 넉넉하지 않으니. 잔술로 한잔 시키고 안주 한 두 점 먹고 기분 전환하는 용도로 많은 사람들이 애용을 했다고. 당시에는 담배도 까치 단위로 판매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한 갑은 너무 비싸고. 담배는 펴야겠고.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서 까치 단위로 자주 팔았다고... 아는 형님의 뇌피셜로는 그게 전체적으로 나라가 잘 살게 되면서 다찌 집으로 변화 했다고 하시는데.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은 드네요. 다찌 집은 안주를 따로 판매하지 않습니다. 팔기도 팔지만(흔히 말하는 시세의 의지하는 제철 음식) 대다수는 술 값에 의해 안주가 결정되는 형태의 가게죠. 처음 가면 뭔 나물만 나오다가 술을 많이 마실 수록 안주가 점점 업그레이드 됨. 맛 보기 식으로 고기나 생선 안주 한입 거리로 내오는 곳도 있긴 한데. 거진 단가 거의 없는 안주가 먼저 나옴. 다만 먹고 죽을 생각 아니면 그냥 생선구이 가게가 요즘 트렌드에 맞죠. 안주 업그레이드 되기 전에 실시간으로 몸이 죽어 나감 ㅋㅋ 주당 급이거나 지갑이 얇은 사람에겐 추천.
일반 농민들은 부부끼리 겸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내림상으로 밥을 나눠먹었다고 함.
TMI: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수정포도(청포도)를 좋아했음
3:57 내놓으라 하는 -> 내로라하는 입니다😊
보릿고개 라는말이 괜히있는게 아니네 ㅋㅋㅋㅋㅋㅋ 아니 저렇게 먹어대니 먹을게 부족하짘ㅋㅋㅋㅋㅋㅋ
우리 전통에 스탠딩바가 있었다니....
쌀1.8리터면 밥솥으로 9~10인분임. 보통 가정용 밥솥이 6~8인분인데.... ㅎㄷㄷ
돼지고기 안먹었던건 특유의 냄새때문에... 요즘은 사료를 먹이기 때문에 냄새가 거의 안나지만, 잔반등을 먹이던 과거에는 맷돼지랑 똑같은 진한 냄새가 났었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께 DNA는 동일, 오로지 사는 환경의 차이로 모습이 다른거 뿐이니까요. 가끔 우리밖으로 탈출한 돼지 뉴스가 나오는데 약 3계월만 지나면 어금니와 검은색 털이 수북이 자라 걍 맷돼지 그잡체라는....
요즘은 단독주택이 거의 사라져 없어지다시피한 풍경이지만 오래된집 새집 할거 없이 단독주택에도 감나무를 심은집이 많았던걸 생각하면 감이 찐코리안 소울이긴 한듯
빠퀴님만큼 잘 알려주는 사람 없네요... 존경합니다 respect!
먹는거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거보니 기분이 너무좋내요
독상문화는 다시 부활할법도 한데
한가운데 둘러앉아 식사하는게 그대로 굳어진게 좀 신기함
혼밥 문화가 퍼지면서 본의 아니게 부활하고 있긴 하지요 ㅎㅎ
독상문화 하려면 일이 많아져서 그런걸지도 ...상도 설거지거리가 늘어나는 매직
공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조선시대처럼 앉아서 먹지않고 서양식으로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에다 놓고 먹으니까요.
@@Cro-cop 지금도 앉아서 먹는 가정집들 많아요
그게 우리나라 전통 식사법이니까요
국자를 이용해서 각자 앞접시나 밥그릇에 담아가는 문화로 바뀌고 있죠
옛날에는 남녀가 따로 식사를 했다고 하네요. 어쩐지 우리나라는 과일값이 비싸다했는데 옛날부터 과일이 귀했군요.
오오 조선시대 음식문화까지 나왔네요? 다음에는 군사정권 시대였지만 물가 최전성기였던 80년대 음식문화도 다루셨으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유독 쌀을 많이 먹던 이유는 쌀이 지금은 품종계량으로 영양가도 많고 포만감이 많이 들지만 그당시엔 영양가도 없고 포만감도 많이 안찼다고 해요! 저만큼 먹는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까놓고말해 쌀말곤 가진것도없고 돼지도 덩치가 작아 먹을게없고 땅도 빈말로도 좋은편도 아니라 작물들질이 시원찮아서 그나마 많이나는 쌀 즉 밥으로 보충을 한게 아닌가 싶네요
저 만큼 먹는데엔 다 이유가 있긴 개뿔 일본 중국도 저 시대에 뭐 대단한거 쳐먹고 산줄 아나 ㅋㅋㅋ 걍 조선인들이 식탐이 드럽게 많아서 많이 쳐먹어댄거잖아
아니 뭐 그시기 다른나라는 안그런줄 아시나;;;
그때 일본은 육류도 금기시한판에 동시기 다른나라랑 비교해봐도 과하게 많이 먹는게 맞음
@@user-tb7iq8ff7h 일본 고기 잘만 먹었음 육식금지령 만든 막부, 덴노와 같은 상류층들 조차도 법령 x까 하고 육고기 먹었는데
재미있게 보았어요 ㅎㅎ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시골집 풀 벨 때 공감했읍니다. 아~ 왜 우리가 밥에 집착하던 그 이유를 …..
식전에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었더라도 꼭 김치에 밥을먹어야 식사가 끝났다 생각하는 울 식구들을봐도 밥에 진심인거 인정
밥 많이 먹었던 이유가 농사로 고된 노동을 하여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말하기도 한다던데...
찌개 공유는 일제시대때 그릇같은 쇠붙이들을 다 가져가서 그럴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이후 6.25가 맞는거 같기도 하고.. 둘다 인거 같기도하네요
7 : 51 저 벙거짓골이랑 비슷한거 없나요... 국물요리랑 구이가 동시에 가능한 잇템... 저도 먹고싶은데요...
80년대생인데요
학창시절때에 진짜 밥많이 먹었어요
(식당 공깃밥2배이상)
거의 다 채소 반찬이였죠 그때만해도 농사짓어서 자급자족하면 되지 무슨 반찬사냐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밥3끼먹으면서 3남매 4년제대학교 졸업시키는게 쉬운게 아니였더라고요
조선시대 먹거리문화 잘 봤습니다. 고려시대가 가장 궁금하네요.
혹시 이러다가 삼국시대까지 다루시는 건 아닌지 모르겟네요.
조선시대 가장 충격 먹었던게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인 사건으로 유교사회인 조선시대라면 능지처참이거나 모가지 정도는 썰릴거라 생각했는데 임금이 그냥 귀양만 보냄 ㅡ,. ㅡ
사건 발단이 아비가 아들이랑 같이 겸상해서 밥 먹다가 아들한테 잔소리를 했다고...
빠퀴님 밥은 드셨어요?
빠퀴님 뭐 먹었어요?
안녕하세요저는구독자입니다
항상재밌는영상을 올려줘서 고마워요그리고항상 힘내세요
삼국시대의 음식문화가 궁금합니다. 꼭좀 영상올려주세요.
남북국(통일신라,발해),후삼국,고려,근현대영상도 부탁드릴게요.
덧붙어서 지역별 향토음식의 역사영상도 부탁드릴게요.
참 어려운 이야기였을건데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감사해여 ㅎ 시댁가서 써먹어야징 ㅋㅋㅋㅋㅋ
제발... 요즘도 부모님과 아이는 같이 앉게 하지 말아주세요... 왜 지금은 잔소리를 그냥 들어야 하는거죠...
조선시대에도 그건 금기라고 했는데
맞춤법 이마이 박살난거 보면 너는 잔소리좀 들어야 되겠다ㅋㅋㅋ
@@제주삼다수-o8j ㅋㅋ 오타임 오타
그럼 애가 혼자 알아서 챙겨 먹으면 되겠네
티비에서 나오는 북한 실상 프로그램 (이만갑) 이었나??? 나무 하러 40km씩 간다고 하더라구요
유산소 40km인 셈이죠 ...조선시대에도 나무로 식사부터 보온까지 했던 시절이니
그리고 지금이야 농사도 트랙터 경운기 혹은 기계들이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때는 등짐 지고 몇십리 까지 움직였으니
뭐 양반네는 어쨋는지 모르겠지만요....
일제강점기땐 어떤 식사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니나 식물학적으로 참외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입니다. 과일 = 나무에서 나는 열매, 채소 = 풀에서 나는 열매 (수박, 메론, 딸기 등등) 통틀어 과채류 라고 하면 둘 다의 의미가 되니 맞는표현입니다. 정보전달의 목적을 둔 채널이므로 작은 오류라도 잡아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 많아 즐겨보고 있는 팬으로써 항상 응원합니다!
당시 돼지는 사실상 반은 멧돼지라 누린내가 심했다고 하죠. 의외로 우리 민족이 고기 먹을 일이 적으면서도 누린내는 또 싫어해서 돼지고기는 별로 안 찾았다고 하죠.
차도 없고.. 기계도 없고..
사람이 직접 움직이고
만지고 들어 옮기고 ..
파김치 되는건 시간문제.
허기도 금방지고 기력보충 하려면
지금의 현대인들 보다는
진짜 3배 4배로 많이많이 잘먹어야 했지..
🍚🍚🍚🍚
우리나라 기후특성상 고기를 장기보존하기 어려워서 부족한 열량을 밥으로 죄다 때려박았다는게 정설!
일부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때 일본관료들이
식사제공할때 조선인과 일본인한테 음식양에서
차별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 아님
한국인은 조선시대 옛날부터 식사량이 많았고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똑같은 식사량을
제공했지만 조선인은 많이 먹는 민족이라
똑같은 양이라도 적게 느껴질수 밖에 없는거임
발해시대 식문화 궁금해요!!!
위장 안에 저 양이 한번에 다 들어가는게 신기하네요
운동량이 굉장히 많아서 그래요
@@소루길 위: 처먹으면서도
움직여야 한다.. ㅅㅂ
저 시대 서양선교사 비망록 읽어보면 당뇨환자가 그리 흔했다고 합니다. 저리 많이 먹어도 배가 안 찬 이유는 단백질 지렛대 이론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BGM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조선시대 뿐아니라 고려시대에도 밥을 겁나게 먹어서 군량미로 쓸 곡식이 부족하기도 했었고 쌀생산량은 늘지 않는데 인구는 늘어서 조선초기 이성계가 집권후 점심먹는걸 법으로 금하기도 했답니다~
그당시에는 조선보다 더 심했을껄요?
더 이전 역사이니
음식이 있을때 말리거나 염장을하거나 해서 저장을 해야되는데 조선시대는 저축하는 문화가 미비했던것같고 모든면에서 신라, 고려시대보다 퇴보된 시대가 조선시대라고 생각함. 그 퇴보의 중심에 유교사상을 국가근본으로 삼은것에 때문이라고 생각함.
ㄹㅇ 다른 나라들은 전부 무역하면서 수출수입으로 물질적으로 점점 풍족해지는데
조선은 그놈의 중국바라기... 쩝 ㅠ
언제 밥한잔 하자요~
제일 설레는말
밥 많이 먹는 부분에서 나오는 사진, 썰 다 전공교재에서 본거ㅋㅋㅋㅋㅋ 밥을 많이 먹었던건 일단 가난해서 삼시세끼 먹기가 힘들고, 밭일이 힘들어서 일을 하기 위해서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었다는 썰도 있어요 평민들 외에도 고봉밥으로 먹었다는걸 보면 별개로 대식 민족이었던 것 같기도...ㅋㅋㅋ
삼국시대도 해주세요,
하긴 농경사회였고 성인 남성기준 최소 하루 3000kcal 정도 먹어야 했을텐데 서민들은 다른 단백질이나 지방원이 귀하고 없었겠죠.. 거의 탄수화물 만으로 채워야 하는 열량인데 당시 곡물 품질도 현재만큼 좋지 않을 것이 당연하구요. 고봉고봉봉밥이 이해가 가네요
8:08 와 이건 지금 나와도 살 것 같아요..
현대 불판, 석쇠보다 훨씬 앞서간 형태
엄청난 노동을 하는데 저정도는 먹어야 버틸거 같네요
일부 한국인들이 일제강점기때 일본관료들이
식사제공할때 조선인과 일본인한테 음식양에서
차별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 아님
한국인은 조선시대 옛날부터 식사량이 많았고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똑같은 식사량을
제공했지만 조선인은 많이 먹는 민족이라
똑같은 양이라도 적게 느껴질수 밖에 없는거임
실제로 중종시기 부자가 겸상을 하다가 아버지의 잔소리를 못견딘 아들이 아버지를 국그릇으러 때려 죽인 사례가 있습니다
고봉밥 먹는 흑백 사진 인터넷에 있는데 그거 첨부해 줬으면 더 좋았을거 같아요. 진짜 깜짝 놀랄정도로 고봉을 쌓아놓고 먹더라고요... 2그릇 양
*고려시대랑 삼국시대도 해주세요!*
고봉밥을 먹었다는게 그 밥을 다 먹은게 아니라 밥상 물림 문화가 있었기에 집안 제일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고 남은 음식을 아이들 여인들이 물림상으로 먹었기 떄문에 처음부터 고봉밥으로 밥을 담았던 겁니다.
재밌게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우리선조들은 진정한 푸드파이터임
세계에서 가장 정이 많은민족, 세계1등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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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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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오징어게임으로 들썩이고, 한국 특유의 정 문화에 놀래 자빠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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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탑클래스 손흥민선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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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독도는 우리땅!
컬투쇼 사연에 등장한 참외하나깎아먹던 아버지는 전통을 지키던 분이네
1인 1상인데 고기 구워먹을때는 겸상을 했네요
진짜 곡기가 들어가야 밥먹었네 생각이듬,,ㅋㅋㅋ 샌드위치 뭐 그런거 밥대신 먹는거 먹으면 먹은둥마는둥 헛헛한데 삼시세끼 밥먹으니까 헛헛한게 사악없어짐 ㅋㅋㅋ
잣... 운 좋게 마트에서 발견해도 가격이 가격이라... 죽 같은거에 넣어서 먹는다고 하지만, 전 그냥 먹는게 맛있더군요
저도 참외한박스는 먹는데요 10키로로 존맛탱
고려시대도 좋고 삼국시대도 궁금해요 ㅎㅎ
너무 옛날이라 기록이 별로 없음 ㅋㅋㅋㅋㅋ
@@고추-l4g 전 공룡시대요(?)
@@NOLAN_HAMMZY 정식적으로 공룡 시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룡은 대략 2억 5천만년부터 6600만년 전 중생대 시기에 활동했으며, 공룡이 멸종하는 시기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류의 최초의 직계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보다 약 6200만년 빠른시기입니다.
또한, 시대를 구분할 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는데, 역사시대가 시작된 것은 대략 기원전 3000여년 경으로 그 이전에는 구체적 기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를 '먼저 선'에 '기록 사' 자를 써서 선사시대 즉, 기록 이전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 사학계와 다른나라의 경제 사학계에서도 삼국시대는 커녕 조선 중~후반 까지도 제대로 된 경제적 통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선 말기 이전에는 생활수준에 대한 제대로된 기록이 존재하질 않기에 조선 후기부터의 경제력은 추측에 불과할 뿐입니다.
당장에 1800년대의 조선 경제적 통계에서 조차 여러 학자들 마다 의견이 갈리는데, 수 백년 전의 추정치는 조선에 관한 의견들보다 훨씬 편차가 크겠죠.
@@진우-q7d 초면에 무례하실 수도 있지만 진지충이신가요?.......당연히 드립인데....
@@NOLAN_HAMMZY 누가 대체 이딴걸 드립으로 치나요..?
TV드라마에서도 찌개 하나에 숟가락 여러개 왔다 갔다....
극혐입니다..
7:10~8:20 [명절이 다가오니 도처에 다리 부러진 소가 많기도 하구나] - 세시풍요 에서 명절이 다가오니 일단 소를 잡고 다리 부러진 소를 잡았다고 관청에 허위보고한 것을 풍자하며 -
벙거짓골은 현대에도 나름 쓸만할것 같네요 ㅎㅎ
조선시대 사람들이 밥을 1리터씩 먹어요? 조선시대는 물림상이라는게 있어서 고봉밥을 올리면 상전은 고봉위에것만 먹고 남은 밥은 하인들이 먹었습니다.
그건 노비같은 경우임
@@VITT755 심지어 노비들도 그런 경우는 아주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경우에나 해당이 됬지
당연히 노비들도 일반 밥상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4:45 박명수와 유재석
TOP2는 먹을게 넘쳐나는 현대에는 상상불가하네요
게다가 조선토종돼지의 경우 생육이 늦고 체구도 작아서 많이 먹고 적게 살이 쪄서 더 비쌋죠.
북한 탁아소 사진을 봤는데 밥그릇이 남한의 2배정도는 함..구한말 사진에서도 밥그릇이 지금보다 훨씬 큼....꽁보리밥에 김치만 먹다 보면 저절로 대식가가 된다. 많이 먹어도 키는 안 큼
조선시대때는 동물 개량이 제대로 안되어있어서 돼지고기는 잡내 심할거 같음. 옛날 사람들이면 더더욱 암컷이 귀해서 수퇘지를 먹었을거 같은데 그 냄새때문에 소고기를 찾은듯함.
벙거짓골로 요즘 트랜드에 맞게 고기구워 먹으면서
국도 먹을수 있으면 설거지도 줄이고 국이나 찌개도 계속 우려져서 맛있을것 같네요
누가 한번 시도 해보실분?!
4:11 나루토?
조선시대 술은 지금과 다릅니다,양조술이 발전하지 못해 맑은술은 거의 없었고 지금처럼 25도,40도 술은 그냥 없었다고 보시면 되고요 탁주라 불리는 막걸리는 거의 알콜 1~3도의 알콜맛 나는 음료 정도라 보시면 되구요,소주라 불리는 술은 지금 맥주 정도의 술 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색희 구라치네
중국은 명나라때도 독한 술이 많았다던데 그런 술 제조법을 조선이 하나도 안배웠을까요? 궁금해서요.
7:57 그럼 쓰고 다니다가 배고플때 벗어서 밥해먹고 물퍼먹으면 거의 코펠이네 ㅋㅋㅋㅋㅋ
8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냄새나는 돼지고기가 상당히 많았음, 당시에 돼지고기보다 로스용 소고기가 외식메뉴로 인기가 좋았지요
일명 똥돼지라고 부르는 돼지가 그것이었는데 90년대 들어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현대식 사료를 먹이는 위생적인 방법으로 돼지를 사육합니다
당시엔 먹을것이 진짜 밥과 반찬밖에 없었음
지금처럼 음식종류가 다양하고 풍요로웠던 떄가 아니라서 제한된 식재료들로 식사를 했기에
참외는 과일이 아닌....참외는 야채.채소.
밥상머리 잔소리는 실제 조선시대에 살인사건까지 난 기록이 있습니다.
하긴 우리 할아버지도 생전에 따로 밥상을 받으셨죠 전 그것도 모르고 어릴때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 하고 먹겠다고 떼 쓰고 그랬는데 허허허 웃으면서 일로 오라고 하셧던거 기억 나네요 어머니 말로는 엄청 유교적이고 무서 웠다는데~~
각상은 유교사상도 있는데 또 중요한게 위생에 관한것도 있습니다.
부자지간의 겸상이 금지된 이유가 잔소리라고 했는데 음식량 보면 금지될만 했을지도...??
밥먹다 귀에서 피나겠닼ㅋㅋㅋㅋㅋㅋ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갖고온 식량 물자를 보고 일주일만에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다고합니다. 근데 한달이 지나도 안돌아가더랍니다. 조선인들 밥먹는거 생각하고 예측했던게 완전 틀렸던 사례죠..
삼겹살은 60~70년대 돼지사육은 환경오염이 심했기에 일본은 한국에 돼지사육을 장려하여 일본 돼지고기 기지로서 키웠고 이에 따라 돼지를 잡아서 등심안심등 살코기가 많은 부위는 대부분 일본이 가져가고 남는 부위가 삼겹살 족발 돼지머리 등등이었다. 바로 그 남는 고기들을 시장에 판매하게 되어 먹기 시작함. 한국인은 원래 살코기 좋아함.. 당시 일본경제는 세계1위를 향했기에 돼지사육 농가들도 그렇게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