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인구 비중이 높은 한반도 도시 Top 10
ฝัง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2 ธ.ค. 2024
- 당시 일본인들의 거류 비중이 높았던 곳은 어디였을까?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국세조사, 대한민국정부자료를 참고해
1920년과 1930년을 비교해서 이를 확인해보자.
자료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
wikimedia.org/wiki/File:Japanese-style_House_in_Sinheung-dong,_Gunsan_46.jpg
Kimhs5400 - wikimedia.org/wiki/File:Gunsanoldcustoms.jpg
한국저작권위원회
Mobius6 -
wikimedia.org/wiki/File:Mokpo_Modern_History_Museum_(Building_1)_20241005_002.jpg
Hou4240 - wikimedia.org/wiki/File:등록문화재_제718-7호.jpg
오래전에..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생각나네요. 1921년에 태어나신걸로 아는데..바로 이웃집이 일본인 대학교수(경성제국대학-현재는 서울대학교)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그 집에 딸이 한명 있었고 ..우리 할머니랑 동갑이었다고 ..
여하튼, 친구처럼 지냈다고 하시더군요.
그 일본인부부의 딸은 한국(조선)에서 태어났다는...
당시에 일본말보다 조선말을 더 잘 했다고..하시더라는..
그러다가 1941년? 42년? 즈음에..일본으로 돌아가셨다고 함. 정말 친하게 지내셨는지..그 일본인 부부의 딸이 선물로 주었던 조그만 손가방(일본제품)을 돌아가시기전까지 간직하고 계셨음...
말씀 잘 봤습니다. 그리우시겠네요.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본인들도 개개인을 보면 선량하지만 조선사람들하고 살면서 더 선량해지고 친해지는것 같습니다.
일본은 우익정치가들과 그 정치가들을 지지하는 우익노인들이 문제지요.
저도 1924년생 우리조부모에게 일제시대 이야기 수도없이 들었어요.제 조부께서는 일본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신분이라 그런지 주변이읏으로 살고있는 일본인들에게 크게 나쁜일 당한것 없이 좋은분들 많았다고 하셨어요.일본순사(순경)보다도 한국순사들 나쁜사람들이 더많았다고 오히려 우리한국사람을 더 안좋게 말씀하셨어요.케이스 별로 다른것같네요 .참고로 경남밀양 마산 진해가 주 거주지였어요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해방되자마자 쫒기듯이 도망갔다고
지금 식민지 인간이 잘 해쥤다고 일제를 미화하는 겁니까
나 같았으면 선물이고 뭐고 불에 태워 버렸을톈데 독립운동가들이 고문받고 있을 때인데 친하게 지냈다고 자랑하다니 친일 식민지 의식에 절어서 사셨나 보네 부끄러윘다고 가르쳐야지 참 어이없는 가족이네
이걸 또 자랑이라고 글을 올리시나니요
선물은 개나 주라고 거절했겠다 나 같았으면
@@노루-w3u당연히 우리 것 빼앗아서 사업하며 돈 벌고 누리며 사는데 모든 일본인이 나쁜 짓을 했을까 그렇다고 일본인을 미화하나요 갈때 우리 재산 다 털어서 도망갔을 텐데 부끄러운 줄 아세요 그렇게 친일파 되는 겁니다
일본 순사보다 더 실적을 내고 싶거나 아니면 압박했겠거나 권력에 미친 친일 경찰들이 더 악독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일본인을 비교하며 미화하다니 어이없네요 친일 경찰을 비판하시던가 재발방지 위해서
군산, 인천, 원산 정도 생각했는데 군산인구 1/3이 일본사람이었군요 ㄷㄷ
비중으로 보면 상당하죠.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종북좌파들이 군산을 비롯해서 전북에 많은 이유..그들은 신분 세탁을 위해 오히려 친일을 매도하고 우익을 친일로 매도한것임
지금 군산에서 근무중인데 일본 시대 건물들이 관광지로 많이 있더군요 영상을보고 의미를 잘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여담으로 해방후 일본으로 돌아가기위해 부산 마산 창원등 항구도시로 몰려간 일본인중 돌아가지 못해 일본인임을 숨기고 정착한 사람이 꽤 많답니다
그래서 경상도에는 친일들이 엄청 많음..조선시대 경상도 5개의 왜관에 살던 많은 왜인들도 눌러살았슴..😢😢😢😢
아마도 그럴 것 같네요. 의견 고맙습니다.
@@top10contents 그중에 본인은 한일혼혈 그것도 쿼터임을 어릴때 말 안하고 살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모 SNS의 제 인맥은 70프로가 일본 국적이죠.
그래서 부산에 그런비중이 높구나
@@erickim7771
일본은 강점기 이전에도 부산은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슴.. 귀화인들도 많았고
임진왜란때 다른지역과 달리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부산은 오히려 항구를 개방했었슴
임진왜란 이후 일본사신은 한국에 오더라고 부산밖 한국땅을 못밟게 햇고
그래서 부산에만 일본인들이 넘쳐났고 초량 왜관이 생김.
오늘도 좋은 내용 너무 감사합니다.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서울이 제일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군산이 젤 많네여
근대사 볼 때 은근 많이 나오는 곳이 군산이긴 한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건물이 남아있는 점에 대해선 의문이긴 하나 유족들의 불만이 진작 있고도 남을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과거의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지식스쿨님
숫자로만 보면 십만넘는 서울이지만 비율로 보면 군산이 거주인구비율로선 1등
지금은 그냥 추운시골깡촌인 강원도 북부 철원도 일제강점때만해도 나름 규모있던 도시 였음...지금은 민통선때문에 일반인이 가기 번거롭지만 철원에 일제가 만든 근대건축물 몇개 아직도 보존중임.
솔직히 역사때문에라도 저런 근대건축물들을 후대에도 남겨야함. 조선총독부는 없앨만 했다쳐도.
@@準拠_依拠_遵守 구지 쓸대없이.. 싹 밀어야지
예상도 못했던 주제 감사합니다 형님
오늘도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좀 더 짜내서 재밌는 주제로 찾아뵐게요 ㅎㅎ
@top10contents 🥵
제 친구가 의사인데, 중국 화교들은 의사면허 따는게 쉬웠던 시절이 있어서 언어 문화적으로 완벽한 한국인이지만 중국 출신도 상당히 있다고 하더라고요.당시 일본인도 이런 식으로 정착한 경우가 꽤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약사 면허따기쉬운시절이 있었어요~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한의대 나왔는데 한학번에 화교 8명 있었던 적도 있음.화교학교에서 30명 중 10등 정도 했었다고함.
오늘도감사 😊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고로 일제시대의 部중에서 가장 일본인 인구가 적었던건 경기도 개성부입니다. 워낙 개성사람들이 깍쟁이로 유명해서 일본인들이 발을 붙히지 못할정도였다고 하네요.
와~지식스쿨 최고! 본 채널에서만 들을수 있는 알짜배기 내용굿!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식민(植民)이란 단어를 뜯어보면 사람들을 갖다가 심는다는 뜻인데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적절하네요. 흥미로운 영상 감사합니다!
식민, 전기 등등 대부분의 근대적 단어들은 일본인이 만들었음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식민이라는 단어도 일본인들이 만들었지.
대부분 이음절 한자단어는 일본에서 넘어온게 많긴함. 민주, 주의, 정부, 학교, 정책 등 이런 단어들 대부분이 일본이 메이지시대때 외국어 번역하면서 만든 단어들이라 그게 현대 동아시아국가들에서 쓰이고 있는거라. 식민 이라는 단어도 거기서 왔을 가능성 있긴함.
당장 우리 인간의 장기이름들도 일본이 근대화 성공하면서 의학도 발전하면서 서양언어 번역하면서 명칭 만든거라.
생각보다 현재의 수십만 백만단위 대도시들 인구가 5만도 채안되었던게 놀랍네요. 도시화 진행되기전이라 전국토에 몇만단위로 고르게 퍼져살았던듯
마산 사람인데 옛날 일제시대에 지어진 마산헌병분견대, 일본신사, 옛 일제 건물들 등 일부 일제시대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항상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마산 출신이시군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와주세요^^
특히 지금 제일여고 있는 자리가 신사로 올라가는 위치에 있죠, 제일여고 아래로 길게 뻗은 계단 길과 좌우에 벚꽃 진짜 완전 일본 풍경이랑 같더라구요
어릴 때는 적산가옥이란 이름으로 일본식 집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엇죠
‘조선을 떠나며’
‘다시 조선으로’ 책이 생각나네요
독서를 좋아하시나보네요. 감사합니다~
먼내용인데?
8분42초에 나오는 지도에서 군산 위치가 실제보다 남쪽에 표시되어 있네요~
확실히~항구도시가 많네요😮 목포는 바둑판계획도시었는데~그점은 그당시 일본도시랑 비슷함 그리고 흑석동명수대는 일본인들별장이 많았음 그리고 그당시 명동(명치정)보다 충무로(혼마치-본정)이 더 번화가였음
의견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씁쓸하긴한데.....인정해야만 하는게....영상의 10대 도시 공통점이 1920년과 1930년, 즉 10년 사이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면서
조선인 도시인구도 거의 폭발적으로 늘었죠....다들 언급하신대로 "군산"은 아예 없는 도시였다가 전략적으로 생겼고.....암튼,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그게 왜 씁쓸한 일임? 제발 역사에 감정 주입좀 하지 마라...
항상 궁금했는데
뒤에 배경 사진같은것들은
어디서 가져오시는건가요?
루트는 주제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사용이 가능한 저작권이 확보된 사진이나 영상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군산 자체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도시이다. 군산이 있기 이전에는 강경이 구한말 물류의 중심지였다.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방전 1940년이나 1945년도 만들어주세요~
1930년 기준에는 53만명이나
1945년 해방전에는 200만명이나 있었으니 순위도 많이 바뀔것 같아요
만드는데 고생은 했지만 더 좀더 퀄리티 있는 영상이라면 해방전 데이타를 근거로 하심
내륙도시는 서울과 대구뿐이네요 특히 대구가 인상적이네요
'군산이 왜 1위지?'라고 생각했는데, 호남평야와 같이 보니까 타당하네요. 곡창지대였으니 일본인들이 껌뻑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요. 군산선(군산~익산)을 건설하여 호남선(대전~목포)과 붙인 것도 전라도 지역의 쌀을 부산항으로 신속하게 수송하기 위해서였죠. 대전에서 호남선과 경부선이 접속한 방향도 익산→대전→부산 방향이었고요.
부산이 2위인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죠. 일본과 가까우니 왕래가 잦았고 부산에 거류하는 일본인도 많았죠. 조선 시대에도 부산(동래군, 부산포)에 들어오는 일본인이 많았고요.
항구 도시에는 아직도 잔재들이 남아있죠. 잘 보았습니다 ^^
네 말씀처럼 유산으로 등록된 곳도 많죠.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제 때 공주와 청주에 충청 인구가 모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 중심지로서 철도역을 새로 지으려고 했었음. 공주와 청주는 인구가 많아 거부를 많이하다보니까
당시 논밭이 주류이자 전체 인구가 대전을 철도 도시이자 계획 도시로 지음. 당시 1기로 288명이, 이후 2천명 넘게 들어와 충남 대전부 본정통 2가 소제호 인근 현재 대전 동광장 뒷편
소제동에 일본 철도 관사촌을 짓고 식솔 및 상업을 위한 일본인들 위주로 살고 있었음. 당시 대전 시민 8할이 일본인이었을 정도로 광복 이후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일본인들의
귀촌이던 곳들은 어느새 "기찻길 옆 오막살이"로 불리는 대전에서 낙후된 동네가 되었죠.
오늘 동영상을 보니 일제강점기때 서울,대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항구도시에 거주했으며,군산의 경우 일본인들이 많기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군산에 간척지를 개간하여 거기에 일본의 농민들이 많이 군산의 간척지에 많이 갔다고 들었고,대표적인 쌀의 수탈지와 쌀의 생산지를 동시에 한것으로 알고있음!!
군산은 사실상 일본이 만든 도시죠.
부산이 1윈 줄 알았는데 군산이 1위라니 의외네.
일본이 빼먹을 것이 많았네보네.
그 쌀이 온전한 수탈까지는 아님. 그리고 일본에서도 조선에서 쌀 반입하는거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음.
@@오서준-k7c가는데마다 일본쉴드를 치고있노
되도 않는소리. ..독립군 운동지역은 못들오가고. 친일파들이 한짓이 강제노역 위안부 수탈이다. 친일파들 골라 산곳
솔직히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내에서 조직적인 독립운동은 거의 없었음. 이는 일제의 지배가 최소한 조선말 양반들이 수탈한 당시보다 더 효율적이었음을 의미한거라 볼수 있지.
댕청~ 조직적인 독립세력을 한반도 청소를 끝냈으니 일제강점을 한거임ㅋㅋㅋ 강점전 5년동안 일본이 반도를 싹 정리함
수탈의 효율성?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일본은 칼로 다스리는 나라였기에 가혹한 세금으로 자국민에게도 수탈을 일삼았다. 오죽하면 임진왜란에 조선 농민을 고용하려 해도 그들이 제시하는 세금이 하도 황당해서 조선인들이 비웃었을까?
이 영상을 보니
당시 조선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일본인들이 광복과 동시에 일본 본토에 돌아간 후의 삶에 대해 들은적이 있습니다
본토에 가서 친척들의 냉대와 더불어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대접받을 수 있었겠네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패망 후 일본 본토로 돌아갔던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지금도 일본의 식민 지배가 이어지고 있었다면 우리들은 한반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숱한 박해와 차별을 당했을 겁니다.
당시 일본에서 못배우고 천한 밑바닥 인생들이 주로 조선이나 중국 지역으로 몰려가서 일본 침략의 첨병이 되었죠. 출신부터가 일본에서도 대접받기 힘든 일본인들이었습니다. 일제때 일본 유학을 다녀오신 분이 하신 말씀이 일본의 대학에 다니던 가난한 조선인 유학생은 별 차별을 받지 않았지만 외지(일본 본토가 아닌 일본의 식민지, 지배지역)출신 일본인들은 일본 내지인들이 매우 싫어했다고 하더군요.
@@댓글만답니다-z5q 네 맞습니다
좀 안타깝기는 해도 그건 그들 사정 입니다
일본 뿐 아니라 유럽의 해외식민지 시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나 오세아니아등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등등의 유럽인들도 정작 본토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타지인에 대한 차별은 민족 나라 지역에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인거 같아요 우리나라 화냥년도 비슷한 거 아닌가요
항구도시가 쌀을 수탈해서 일본본토로 보내야하기에
일본인들이 많을수밖에 없죠
진해는 군사기지라 지금가도 일본식건축이 많이 보이죠
일제때 일본해군의 한국 중심부로 진해를 선정한 것도 이와 같을겁니다. 진해진수부가 있던 곳은 현재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가 있는데 이 영향으로 보이죠.
부산의 수영공항(!!!)도 일본군 육군 비행장으로 설계됐다가 반환뒤 국군과 미국하고 쓰다가 철거한뒤 들어선건 다름이 아닌 센텀시티라는...
일본은 자본주의국가인데 단순 수탈하면 자국 농업 시장이 망가지죠 ㅋㅋㅋㅋ
@anonymous7537 그때는 군국주의입니다 역사공부 다시 하세요
@ 군국주의는 경제체제가 아니져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정반대로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일본 도시 순위도 기대하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가능 여부를 판단해보겠습니다.
과연 전부 돌아갔을까?
전부 안돌아갔어요. 남쪽은 돌아가려면 재산 전부 반환하고 미군정이 정해준 소액만 받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라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인으로 귀화하고 조선인과 결혼해서 한국인으로 살았습니다. 북쪽은 소련군정이 북한 김일성 체제에 관리하도록 주고 김일성은 일본인 인재 , 기술자들은 조선인으로 강제 귀화 시키고 나머지 불필요한 일본인만 일본에 반환해서 정확한 수치는 확인 할 수 없죠.
오늘날 토착왜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일본밀정들..😢😢😢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안돌아갔으면 늬는 이제 키무라가 아니고 김서방이여 했지
@@gggg33333ee당시 일제 패망 이후 혼란할때라 조선 재류 일본인들 챙길 겨를도 없었을테고 ㅠ 아마 대다수가 학살 당했을거라 봅니다. 아니면 소련군에 의해서 시베리아로 끌려갔던지
물론 당시 김일성 집단이 무슨짓을 했을지 자세히 기록했을것도 아니고 진실은 저너머에...
벌교에 보성여관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시절 지어진 일본가옥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죠..
제작년에 그지역 여행간적이 있는데 그쪽도 제법 잔재들이 남아있는거 같아요..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연말잘보내세요~^^😊
그럼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은 어디인지 순위 다뤄주세요.
의견 감사합니다. 가능여부를 고민해보겠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도 추천합니다.
20년전쯤 어떤 방송에 군산 옥구 일제강점기 간척지로 만들어진 불이마을 지금도 그대로 있던데 일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주해와 간척 농지를 불하받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주민 자녀들이 중 고등학교 까지 다니다 해방후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 한곳에 정착해 살던데 이들은 태어난 곳이 군산 옥구라 방송에 나와 고향 군산을 그리워 하고 눈물 흘리고 향우회 동창회도 한다고 하면서 환영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고향 군산 옥구 방문도 한다고 하더라.
말씀 잘 봤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국에 일본인 농장얘기보면 은행 대출받아 습지황무지개간해서 살다가. 패전으로 미군정에게 다 몰수당하고. 쫓겨나건데. 이걸수탈이라고 하는건 좀 억지.
돌아가신 조부님께서 평양 근처 진남포(현 남포특별시) 출신이셨습니다. 진남포에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더군요..
@@고영환-y9i 평양다음으로 유명항구도시가 진남포임
영상과 같은 시기 진남포의 일본인은 5,333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비중은 진남포 전체 인구의 13.93%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지금 열차는 안 다니지만 철로는 남아있어 관광지가 됐지만,
그게 바로 당시에 우리의 농산물이 털려나가던 그 길 이였네요.
(군산역 - 항구)
털린게 아니라 거래이지요...수탈한 시기는 2차세계 대전 일본패망때
농산물 등의 농산물이 털려나가면 한국인의 인구는 늘어나지 않지 않나???
@@WoodenLighthouse.개소리하지 마..😮😮😮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鷹爪鋭족발좀 ㄲㅈ자
재미있네요 우리 할머니시절인데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08:17 불법적인 토지소유? 구체적으로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살때는 인천에 화교들이 많았던걸로 기억
@@fremont-j6d 인천은 개항기 시절부터 각국의 대사관들부터 건전 클럽등 여러직종의 건물이 들어선 문화도시였고 이중에 말씀하신대로 화교 (해외에 살고있는 중화민국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했거나 준 귀화자인 중국사람을 화교라 하더군요.) 들이 60프로 정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천엔 유독 중국 (중화민국 혹은 중화인민공화국) 관련 흔적이 있습니다. 당장 인천역 부역명부터 아예 차이나타운이었던걸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인천 출신이신가보네요~ 감사합니다~
인천 찐 토박이는 인천역 거주자 제외 없다 봐야죠
@@목포1대장조범석 맞죠. 당장 경기도에서도 화교들이 거진 70프로 살고있고, 안산도 외국인 친구들이 다수 국적을 보유하며 살고 있죠.
부산보다 군산이 더 많았다니 아이러니하네..
숫자가 아니고 비율
일본인 비중이 높았네요. 패전 후 일본인들 귀국해서 일본사회에서 차별 많이 받았고, 일부는 귀국을 포기하고 여기서 정착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해요. 예전 어른들 이야기 들어보면
그래서 토착왜구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듯..
충청도의 '대전'이 빠졌네요. 대전도 일제시대에 경부선, 호남선 부설로 크게 발전한 도시였지요. 대전 역사 정보에 따르면 해방 직전에 대전 총인구가 5만명 규모였는데, 일본인이 6~7천명, 중국인이 2~3천명 정도 거주했다고 합니다. 특히, 대전의 특징은 민족 분규(한국인 VS 일본인, 한국인 VS 중국인)가 한번도 안 발생해서 나름 평화로운 도시였다고 합니다.
서로 잘지냈다고 볼수도 있겠네요. 아무리 거주가 구분이 되어있어도 분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건 대체적으로 잘지냈다는 얘기겠죠.
엉뚱한소리 . 대존은 조선시대 공주의 외곽 시골이었다. 도시자체가 철도로 생긴도시라 헌국전쟁당시 박살았다.
@@uondstogy8572맞춤법이나 다시 공부 좀 하고와 ㅋㅋㅋㅋ
1930년 당시 대전은 일본에 행정개편에 따라 부가 아니었습니다. 영상 내 도시보다 작게 취급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박한 주제네요 이 주제는 처음본듯요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제시대는 그냥 일제시대일뿐입니다. 제가 50대 초반인데 제가 어릴때는 굳이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고 그냥 일제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를 굳이 조선양반강점기 라고 부르나요??
일제시대나 일제강점기나 편한대로 부르면 되죠. 일제시대가 단어 뜻 그대로 일본한테 지배받았던 기간을 뜻하는건데 이게 과장된것도 아니고 미화한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말한거라 문제 되는게 이상. 나도 일제강점기 5글자 귀찮을땐 일제시대라고 그냥 말하는데
과거를잊는자미래도없다
네 민혁씨가 친일성향을 가지신거 궁금하진 않았지만 잘 알았습니다~
일본인이셨는데 광복후 일본으로 안가시고 충남 논산 강경에 자리잡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 한국에 자리 잡은 일본인이시군요~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top10contents댓글 목록을 보세요. 저게 한식은 더럽고 일식은 최고랍니다.
만약 일본이 패망하지 않고 지금도 한반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었다면 우리들은 본토 출신 순수 일본인이 아닌 한반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숱한 박해와 차별을 당했을 겁니다. 당장 일본이 패망한 이후 조선, 중국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일본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도 차별을 당했고, 지금도 부라쿠민 차별과 같은 신분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나라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재일동포출신 손정의회장도 일본 최고부자까지 올라감. 일본은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라임. 과거 조선인출신임에도 실력있으면 일본 와세다, 메이지대도 갔고 일본기업에 취직도 했었음.
북송 재일교포 중 후에 탈북해서 남한에 있다가 일본으로 귀화했는데 일본에서 사는게 더 좋았다고 함. 왜? 일본인들은 탈북민이라고 해서 차별하지않는데 한국인들은 탈북민들 차별한다고.
북송된 재일동포들 중에 탈북해서 남한에 있다가 일본으로 귀화했는데 일본에서 사는게 더 좋다고 함. 왜? 일본인들은 탈북민들을 차별하지않고 오히려 시민단체들이 도와주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인 탈북민들을 너무 차별한다고.
@@20-th2hx 손정의 집안부터가 대출이랑 파친코 사업으로 돈 많이 벌어서 고등학교부터 미국 유학 보낸 집안인데 ㅋㅋ 그리고 한국은 노력 못 하면 하고 싶은 일 못 하냐? 손 마사요시지 손정의라 하지 마라 이번 라인 사태 그리 겪어도 정신 못 차리네
@@seung-jeyang3746 손정의 할아버지가 일본에 이민 왔을 당시 그리고 태평양전쟁 직후는 찢어지게 가난했은. 그걸 손정의 아버지가 사업으로 일으켜세운거지. 늘 얘기하지만 일본은 능력과 실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잘 살수있는나라임. 되려 북송된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의 차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니.
부산이 1위라고 예상했는데 아니네요 지금도 부산 영도에는 일제시대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국적은 어떻게 바꿨어도 정체성과 네트워크는 남아있어 아직도 여수 석화단지에 일본인 직접투자가 은근히 많이 들어온다. 신한도 재일교포 일본계 자본이 주축이라 아직도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땐 일본에서 재일교포들이 모이고, 롯데도 한국기업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일본이 혼재한 기업이라고 봐도 되고, 쿠팡도 사실상 미국+일본계 자본에 한국 정체성이 약한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고.. 그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지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문제될 게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이고 목포, 군산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과거를 모르고 반일을 하면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것이다.
군산 사람들의 반일을 보면서 정말 참 괴상하다, 이상하다는 느낌을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지울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는 그런 비슷한 심리가 아닌가 싶다. 가끔 정말 극단적인 환경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정작 그 아비라는 사람은 훌륭한 기업가인 경우가 더러 있는데 원망과 치부가 분노의 형태로 표출되는게 아닌가 싶다.
반일을 할 순 있음. 누구는 그 착취를 직접 받았을테니. 다만 반일이라고 그 일본건축을 다 부수는 무식한 짓이 아닌 역사를 제대로 보이는 것이 중요할듯.
와~주제획기적이네
감사합니다.
우리가 일제시절때 수탈과 핍박받는 역사를 주로 배우긴 하지만 오늘같은 영상이 시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거 같아서 좋군요
수탈- 즉 쌀 훔쳐갔다는데 신기하게 연도표보면 그 시기부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더라고요... 분명 쌀 훔쳐가서 먹을게 없었을텐데 신기하고 기괴해요 ㅠㅠ...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09:06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수탈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지금 우리들도 대형마트가 농민에게서 '수탈'해온 쌀을 사먹고 있는 것이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뭔 개소리냐 이건 ㅋㅋㅋ
@cruz2767 일본이 조선의 쌀을 수탈했다는 게 x소리입니다 ^-^
@@삐용삐용-s8p 일본놈이 한국말도 잘하네?ㅋㅋㅋ
군산 사람이라 군산은 무조건 있을거라 생각하고 보고있는데 하도 안나와서 왜 군산이 없지? 생각하던 찰나 1위.. 일줄은..
우리 친 할머니 통계 보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우리 친 아버지가 1948년생이십니다. 그래서 부산 동래정씨 ? 인가 ㅎㅎㅎ 정보가 굿!! 희망
아버지가 여러명 인가 보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전에도 일본인들이 많이살았음.철도 중심지 대전.
생각보다 인구비중이 꽤나 높았네요 식민기간이 길어졌으면 우리말과 문화도 다 사라져 일본화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겠네요
종전되지 않았다면 더 많이 유입되었겠죠.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방당시엔 완전 한본어였음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는 원래 아랍어권 인데 아직도 현지에서는 아랍어에 프랑스어를 섞어 쓴다고 하더군요
@@anwar_el_park 알제리는 대놓고 프랑스가 엥 원래 이거우리 일부야 시전한 동네라 비유하자면 홋카이도가튼거임ㅋㅋ
류큐나 조몬인 신세가 되었겠죠. 나라를 강탈당하고 해방세력까지 씨 말라 영원한 2등국민으로 사는...
테러단체 순위 가능한가요?
순위올려!!
의견 감사합니다. 가능여부를 고민해보겠습니다.
막상 일제시대때 살아본분들 얘기 들어보면 살기좋았다더라
중국 식민지가 아니었던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데..중국 식민지가 되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들이 많은것 같음
중국 식민지가 아니라 다행이라니...중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지
일제 시대 전 중국의 속국이었습니다
@코알라-b1j 뭐가 똑같냐? 공산주의로 살고 싶으면 단둥가서 강건너
@코알라-b1j 똑같지 않아. 조선민주주주의인민공화국 됐겠지. 니 맘속 조국.
@@코알라-b1j 똑같겠냐. 한반도가 공산화 됐을텐데..ㅋ
공통점 야구부가 있는 상업고가 설치된 도시
당연히 서울(한성)이 1위일줄 알았는데 군산이 1위라니 믿어지지 않네요. 일제 강점기 소식 흥미롭습니다.
와1. 군산 2. 부산 3. 겡성(서울) 남촌 거주 청진 목포 원산 대구 함흥 마산(창윈) 인천
반역자라는 말을 들어도 할말은 해야겠음. 수탈이 아니라 수출임 조선내 일본인들은 돈벌러 왔지 그냥 온게아님 산업기반 교통기반 위생등 솔직히 이씨조선 였음 상상도 못할일임
맞지ㅋㅋ 수탈이라면 왜 인구수가 증가하고 평균수명또한 증가했겠음?
지금받는월급을 줄인다면
그래도적당하다하시겠습니까?
조상이 나라 팔아먹은 자였구나! 수탈을 굳이 수출로 포장하고 싶고, 강탈을 돈 벌러라고 포장하고, 이씨조선? 전형적인 식민지 교육을 받은 무식이 철철 흐르는 시대를 살아온 자로구나!
수탈은 맞음. 자본주의적인 정상적 상업활동으로 이익남겨서 하는 수출이 아니라 값을 아주 후려쳐서 가져갔기에 수탈임. 수출이면 일본인이 굳이 많을 필요없지. 한국인 무역상이 돈을 벌지. 수탈이기 때문에 일본 무역상이 돈을 벌고 군산 등 항구가 발전하게 됨. 한국인 또는 소수의 일본인 지주는 땅이 넓기에 크게 손해는 안봄. 일본에서 어찌되었든 사주니까. 다만 소작농은 자기가 만든 쌀도 못먹는거지. 그러니까 또 도시로 밀려오는 것이고.
상상은 할 수 있음. 잠깐이지만 고종이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기반의 겉껍데기는 서울 지역 등에 따라함. 설마 조선이 그대로 유교국가로 머물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일본에 의해 망하건 안망하건 근대화는 될 수밖에 없음. 다만 식민지가 되었기에 국부 (쌀과 자원)이 일본에게 싼 값에 뺏겨지고 공산품을 비싼값에 수입할수밖에 없었음. 게다가 일본은 전쟁에 져서 그동안 우리에게 빼앗은거를 제대로 못돌려줌. 그나마 독립축하금이라도 받아냈지만. 우리가 못나서 망한 건 맞는데 일본제국은 열심히 착취한 것도 맞음.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국민까지도.
근데 수탈을 했는데 인구는 왜저렇게 늘어남?
일제에 의해 근대적인 병원이 지어져 또 경제 및 국내 상황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식량부족으로 쌀을 보낸게 아니고 조선쌀이 더 저렴해서 수출한겁니다 지식을 제대로 전하세요 ;;;;
일본은 당시 공장돌리느라 농촌에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었어요. 쌀이 부족해지자 조선에서 가져왔어요. 조선도 쌀 수탈로 식량부족해서 콩을 수입해서 먹었구요
닉네임과 그동안 쓴 댓글 꼴을 봐라. 너도 잔류일본인이냐? 왜 한국말을 쓰면서 네 고향으로 안 돌아가?
식량부족 맞는데? 일본 도시 노동자들 쌀가격 올라서 폭동나고 그랬음
@@-peh2188일본 농민들 항의로 수출막았을때 오히려 조선 부농지주들이 항의했다고 함 비싸게 팔 기회를 막았다고
@@이수일-h1e 당연히 나라수준이 다른데 지주들 입장에선 더 비싸게 팔수 있는 기회였겠지. 그럼 나머지 국민들 쫄쫄 굶어도 됨?
와...!! 하필 내가 사는 곳에 일본인이 가장 많았다고...? 재밌다 재밌어...!! 저 쌀가마 숫자도 거짓말은 안하지!
거주숫자가 아니고 거주비율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이 1위가 아닌것이 예상 밖이네요
인구수로는 서울이1위맞죠 영상1위는 %대비고
절대 인구수는 서울이 1위입니다. 감사합니다.
평양이 없는 것도 의외네요.
즉 도시만들고 좋은건지들이 다 차지하고한국인들은 멀리서 손가락빨게 만들었다는 얘기네요 다시는 저런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빕니다
누가 들으면 조선시대 때에는 비양반들이 손가락 안 빨고 잘만 산 줄 알겠네 ㅋㅋㅋㅋㅋㅋㅋ
북한인들은 다시 반복되길 빌고있을듯
저때당시에는 조선이나 대한이라는 나라가 아닌 일제의 식민지 즉 일제 자체이기 때문에 거류가 아닌 주거 아닌가용?
1940년 통계를 썼으면 더 적절했지 싶습니다. 1930년보다 일본인들의 수가 대폭 증가할테니까요..
문래동 영등포 이쪽에 일본인 많이 거주하지 않났나..
ㅋㅋㅋ 라도 애들 반일 반일 거리더니 dna에 친일이 진~득 하게 남아 있는거 보소 ㅋㅋ
1979년 어남선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소리임
요즘 우리사회를 보면 조만간 중공강점기가 될듯.
그 위험성을 많은사람들이 모르는듯.
한반도가 역사 속 매번 겪던 운명이지 않을까 싶음...
원, 명, 청, 일본
그 사이 지배세력이 약해져 독립국으로 사는 날도 있었지만
지배받는 시대로 다시 들어가는 운명 같음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수탈은 강제로 뺐어가는것이니 틀린 표현이고 수매라고 해야겠지요.
조선 시장 가격보다 일본인이 비싸게 사주니 판겁니다.
강제로 뺐어가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전라도에서는 쌀을 비싸게 많이 팔아서 부자가 많이 나왔죠. 대표적 인물이 고려대학교 만든 김성수
진짜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다.
수탈과 수매도 구분하지 못하나?
농민들 무식해서 글자도 모를때 토지대장도 모르는 농민들한테 토지대장 등록하라 하고 못하면 그 땅 다 빼앗고, 그 땅에서 소작농으로 일 시키고 소작료로 빼앗아 그걸 빼돌린게 수탈체제인데 이 무식한 것이 공부는 안하고 짱구만 굴려 상상만 했구나. 모르면 나대지나 말 일이지 공부도 안한게 입만 나불거리고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
구룡포가 왜 빠졌지 했다가 제목 보고 '아하' 했습니다.
구룡포는 당시 시가 아니었으니까요.(지금도 읍이죠)
말씀 감사합니다^^
엣날 마산에 가면 일본식에 엄청난 좁고 미로같은 낙후된 골목길 좁은집들이 많이 모여있엇음 산동네마을같은..
지금은 다 허물고 아파트가 생겻는데.. 엣날 일본식 마을은 좁은집이 너무 붙어있어서 답답햇던 느낌이 많이남 대문도 높이도 엄청낮고 암튼 별로 좋지않았음
한일 혼혈도 상당히 늘엇겟네요
내고향 인천이지만 일본 차이나 타운 박물관 가보나 인천이 일본 강제 침략 시절 보니 인천부라 의외로 큰도시라는 알게되었음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이겼다면 지금 북한처럼 살아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건설된 도시이고 일본인 인구비중도 높았던데다 친일 행적도 가장 뚜렷한 도시 중 하나인데 부 승격이 늦어서인가? 대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이 매우 의외이다.
해방 후 많은 일본인들이 신분세탁을 해서 한반도에 남았고 일명 잔존일본민들이다. 이들은 지금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을까?
일제가 항복하자 재산 집, 가구, 등등 다 버리고 갈수 밖에 없는데 귀국해서 새로 정착하느라 엄청 고생이 많았답니다. 집이 없으니 친척 집에 의탁해 눈치 보며 살기도 했고, 친척이라지만 왕래도 거의 없고 데면 데면한 사이도 많았는데, 어느 여고생은 친척들의 타박과 갈굼에 힘겨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그런 사건도 있었답니다. 사춘기 어린 소녀가 겪었을 심적인 고통 이해 갑니다. 지나간 과거이지만 가상 현실처럼 상상할수 있는 일들입니다.
식민지배를 햇던 일본 걱정을 하고있는사람이 잇네...
@@hjl4845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거지 당신은 민족주의적으로 보는거고 이 분은 인류애적으로 보는거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일본도 자기네 본토가 지진 잘 나는 땅인 거 아니까 조선인들을 영구히 만주땅이나 다른 곳으로 내쫓고 일본 왕실을 경성 그러니까 현재의 서울로 영구히 옮길 계획도 있었다고
독립활동 없던직역 ㄷㄷㄷ
독립활동에 제한이 많았던 지역이 사실상 맞겠죠
저땐 어디나라건 시대자체가 지금처럼 인권있고 평화로운 시대도 아니고 총 칼로 다스리던 시절이라 함부로 말 꺼내기가 힘들었지 일본인 많은 동네면 더더욱.
일본 열도에서 농업생산성이 인구증가율을 못 따라가 쌀이 부족해 인플레이션과 폭동이 나던 상황을 전라도 쌀을 일본으로 싸게 들여와 유통시켜 막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일본이 지배를했으니 남녀가 양식 교육도받고
집에 화장실도 생겼으며 헌법만들어져서 질서가
유지된것임.
만약 러시아가 지배했으면 우리는 쏘련 위성국가로
살다가 1990년대 스탄으로 신생독립국였음
역사공뷰 다시해라
@@wqlxcrtyzmwqzxf-t1l 네다음좌익절라도
러시아 지배 당했으면 공산주의 사상 박혔을듯. 그게 지금의 북한만 봐도 답이 나오고. 북한은 딱 러시아가 원하던 대로 결과물이 나온나라지. 일제해방되고 곧바로 북한 먹어서 공산치하로 만들어냈으니. 미국아니었으면 우리도 스탈린 소련 테크트리타면서 진짜 스탄국가 될수도 있었다....
쌀을 수탈한게 아니라 수출했읍니다. 오히려 일본 농민들이 값싸고 질 떨어지는 조선의 쌀 수입을 금지 시키려 했읍니다. 일본의 선진 농업 기술 도입으로 인해 쌀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늘었읍니다
저정도면 일본인 후손도 한국에 많이 남아서 본능적으로 일본에 애착을 느낄수도 있겠네요
친일파가 달리 친일파가 아닐듯
원래 식민지에서 가장 발전된 지역이 지배국 국민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데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살았던 명동조차도 당시 일본의 소도시 수준인걸 보면 일본이 조선을 발전시켰다는 말은 개소리임
일본이 없어도 조선은 발전하고 있었슴..😢😢😢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Kenny-fh3om
그것은 50년 후… 100년 후일지도 모른다.
맞아 조선의 똥으로 가득찬 길이 일본이 깔아준 길보다 수천배 낮지 ㅇㅇ
과연 쌀을 수탈한게 맞을까?? 쌀을 강제로 수탈했다면 가만있지 않았을텐데 한 예로 원산에서는 총파업도했다고 하는데 강제로 쌀을 뺏기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다?? 뭔가 앞뒤가 안맞네요..고로 수탈이 아니라 수매해서 일본으로 넘기는게 맞을듯 하네요..
태평양 전쟁 한다고 수탈해갔자나
좀 알고 떠드렁
@@wqlxcrtyzmwqzxf-t1l 그땐 일본본토도 배급제였다.
@@wqlxcrtyzmwqzxf-t1l 태평양전쟁때는 일본 본토에서도 다 가져갔다..아는척 오지네
@ 그래 그 배급했던 쌀이 저거라고 ㅋㅋㅋㅋㅋ 아 극우들은 왜 극우유튜브 쇼츠 몇편 보고 아는척을 할까 기분나뻐 더럽고
04:06 농산물이 부산으로 반출됐다? ㅋㅋㅋㅋㅋㅋ
남도 전복 양식업 하시는 분들은 일본으로 전복을 반출하고 계신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05:43 곡창지대 수탈 중심지? 일본이 언제 한반도의 곡물을 수탈했나요? ㅋㅋㅋㅋㅋ
우리나라 과자들은 미국과 캐나다, 호주의 밀을 수탈해서 만들고 있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
1 군산
2 부산
3 서울
일제강점기 조선 땅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면 패전 후 일본에 갈때 돌아간다고 생각했을까 쫒겨난다고 생각했을까
국뽕은그만사실대로이야기하면쌀은수출임 그당시조선에서의쌀수출로일본농민들엄청시위많이함
공부하신분, 수탈이란 단어가 교과서에서 사라졌지요 수탈은 돈안주고 뺏어가는건데 돈을 더주고 사갔으니까요 당시 기록과 신문기사도 그대로 남았지요
@@동제이-k5x 식민지시절 일본의 검열을 받던 기록을 믿는거야?ㅋㅋ 진짜 개콘보다 웃기네 ㅋㅋㅋ
쌀 수출이라 ㅋㅋ 조선쌀을 수탈해서 일본인들끼리 수출해서 돈벌었겠지.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에 쌀 수탈로인해 먹을 쌀이 없어 굶어죽었다는데 수출같은 소리하고 있네
@@LUCKY-0906일본에 쌀 수출해 갑부가 된 조선인지주가 얼마나 많은데ㅋㅋ
이병철만해도 부모가 쌀 안팔았으면 유학자금이랑 사업자금이 어디서 나옴??
그외 김성수를 비롯해 일제랑 해방후에 잘 나가고 지금도 이나라 지배하는 지주출신들이 저때 쌀팔아 잘나가는거다ㅋㅋ
초기에는 수출이었는데 이후에는 수탈에 가까운 수출이었음. 산미증식계획에 필요한 모든 자재값 등을 소작민에게 부과하고, 달성할 수 없는 계획에 미달되어도 그 자재값을 그대로 부담해야하는 구조. 오늘날 갑자기 프랜차이즈 회사가 매출증대로 가맹점에게 이득이 된다는 말로 속여 가맹점에게 막대한 광고료, 인테리어 개선비를 갈취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
진짜 한국은 외국이민자 차별이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듯 일본이었으면 진작 재일교포로 나뉘고 차별 오지게 할텐데 한국은 일본계 한국인이라는 따로 나눤게 없잔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숫자 자체가 적으니 흡수된거지 일본인이 재일마냥 백만단위로 남았으면 달랐지
한국에 일본계가 얼마나 있다고
그리고 한국인들 동남아차별이랑 40대이상 아닌척하면서 외국인 무시하는거 기본으로 깔려있는데 걍 몇안되는 단일민족에 외국인수 ㅈ도 없으니 인종차별 없어보이는거지ㅋㅋ
인구 증가율이 ㅎㅎ. 혹시 서민들에게는 조선시대보다 살기 좋았던건 아닐까 ㅎㅎ
영상은 당시 부라고 표기된 도시로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된 인구도 감안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왜 해방이 되어가지고 이런 막장 유사국가 헬죠선을 창궐시켰나..참 두고두고 뼈아픈 역사다
깨끗하고 정갈한 대일본제국의 황국신민으로 살수 있었는데
북한주민들 왈 : 8.15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일본 절반만큼은 발전되지 않았겠는가?
북한이 발전 못한 이유는 김씨 일가 보유국이였기 때문..일본이 북한에 공장 다 지어놓고 생산시설도 있었는데 이걸 다 날려먹은게 김씨일가
웃긴건 30~40년대 전쟁체제 당시 이북땅이 공업단지가 줄줄이 들어서 있어서 평균적으로 남측보다 훨씬 잘 살았었음ㅋㅋ 그걸 지들이 6.25로 홀라당 말아먹어서 문제지ㅋㅋ
@@조조-w5l북송된 재일교포들이 일본은 전자제품이 넘쳐나고 60년대에 비행기보다 빠른 기차가 다닌다고 소문내니 북한주민생활수준에선 일본은 꿈의 나라라고.
@@조조-w5l 북송된 재일교포들이 일본은 전자제품이 넘쳐나고, 60년대에 이미 비행기보다 빠른 기차가 다닌다고 소문내니 북한주민들한테 일본은 꿈의 나라라고.
@@조조-w5l저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력 발전소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비료공장,1920년대 독일이 최초로 민든 석유액화기술 받아와가지고 30년대에 아오지에다 만들었는데
솔직히 이정도면 망한게 더 대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