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질문을 들이겠습니다. 저는 인연과보로 평생을 내옆에 인연과 마주보고 힘들게 살아서 온몸이 가슴이 막혀 말을 잘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유트브로 우연히 단전호흡을 하면은 몸과마음이 건강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호흡을 6초 하다가 상기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선생님이 잠심을 하여 단전으로 내리라고 일러 주셔서 지금은 매일 4시간 목표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발목 복상뼈 밑이 많이 아파 걷기가 힘듭니다. 스님께서 아무것도 하지마라 하셨는데 저는 깨닫고 보림하는 것은 되는지요? 혼자서 수행하는것이 어렵지만 호흡으로 기와 산소로 단전이 따뜻하고 상체는 기가 돌고 풀렸습니다. 그린데 발은 혈이 통하지 않아 수행정진 으로 몸과마음 정신을 보림하여 닦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수행을 놓아야 하는지요? 좋은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입니다.
누구나 우리 모두는 깨달아 있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생각과 자아상에 묶여 있어서 중생이라는 상을 만들고 있고... 우리의 본래 근본자리를 못 돌아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무명이죠.. .. 그 자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확연해지기 까지 노력이란 걸..흔히 말하는 수행이라는 걸 합니다. 소가 보이지 않으니 숲과 길을 헤치고 소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어떤 특별한 수행과, 참선과, 비범한 어떤 행위를 통해서 어떤 노력의 결과물로 이뤄지는 규정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항상 여기 주어져 있는 그것을 바로 알아보면 되는 일이라 지금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아직 소가 보이지 않을 수 있어도 절실하면...걷고 걷다보면 확연해집니다. 그리고.. 단전호흡은 몸과 마음을 건강해주는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다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기 호흡에 맞게 하세요..꼭 4시간 해야 된다는 목표도 내려놓고 편하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것이 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중 4시간은 화두를 잡는 선승도 아니고 긴 시간입니다... 하루중 20분도 좋고 10분도 좋구요.. 저는 적당하게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서도 하고 법문도 듣고 발목이 아프시니 무리하지 말고 살짝이라도 산책도 나가고 친구들과 차도 한 잔 마시며...일상과 어우려지며 선을 하시기 권합니다. 세상은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한번만 봐서는 안될거 같아 저장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멱살을 잡고 싸워도 내면은 고요하다는게 잘 와닿질 않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제일 답답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분별은 하되 분별심에 빠지지 않는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승병들 중에는 분명히 깨달음에 이르신 스님들도 계셨을텐데, 그분들은 사람을 죽일때도 고요한 마음으로 죽였을까요? 이것이 무위로 행한 것일까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자리를 머리로만 알려고 드려니 답답한 마음에 몇줄 적었습니다. 스님 영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승병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우리가 함부로 속단하긴 어렵지만... 살생의 그 순간 마음이 고요하긴 어렵겠지요.. 감정이 격했든 고요했든... 그 생각, 그 감정 그대로.... 자신을 직시 하였으리라 봅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알아차림하고 있었겠지요.. 걷고 걷다보면 확연하게 소가 다가옵니다. 듣고 듣다보면 아 하는 순간이 옵니다. 감사합니다
아는자와 알려지는 대상 결국 아는자를 쫒으면 알려지는 대상으로 회귀하게 되고 그렇다고 알려지는 대상을 쫒으면 아는자와 회귀하게 되고 왜 그럴까? 했더니 따로 나눠진게 아니라 그게 일체더군요 그러니 드러난 모든 것이 같은 원리로 나타나니 일부를 붙잡는다고 하면 결국 전체를 붙잡는 것이더군요 깨어나는 "나"가 또 다른 꿈이더군요 그 붙잡은 "나"가 꿈을 지탱케하는 꿈의 내용이더군요 그러한가요? 스님
@@foolBuddha 스님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아는 자(관찰자)라는 것이 우리가 먹는 밥같이 아무 맛이 없으나 언제나 동일한 감각이기에 이미 항상적으로 존재한다는 착각이 있다고 드는데.. 마치 우리가 거울을 볼 때 매번 볼 때마다 거울속에 내 얼굴이 나타난다면 비친상이 함께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울안에 이미 상이 존재한다는 착각 된 관념을 가질 수 있듯이 아는 자(관찰자)라는 것 또한 생각이라는 대상이 일어나면서 함께 나타나지만 그 특유의 변화자체가 없는 무맛(?)으로 인해 항상적으로 이전에 존재한다는 오해로 인해 계속적인 "나"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건가요?
한국영화 만다라를 보며 파랑새가 생각이 났습니다. 파랑새가 내 밖에 분명 있는데 수행이 모자라 인연이 모자라 도저히 못찾는다고 고통안에서 사는 수행자(전무송님)를 그리고있더군요 마지막엔 안성기씨가 연기한 수행자가 자신이 피하고싶은 어둡고 협소한 마음구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좋지도 싫지도 판단하려하지 않으며 오직 시작점에서 앞으로 걸어나갈뿐하며 영화는 끝이납니다. 느끼건데...파랑새는 우리마음안에 이미 있었고 찾으려할필요도 없는물건이 아니였을까 다만 찾으러가고 다시오고 번거로웠을뿐... 그리고...그이상은...그모든 의미는... 다만 모를뿐... 분명히 모를뿐...
저도 이게 의문이었습니다 설파하고 가르치고 알려준다고 해서 과연 세상 인간을 교화시킬수 있는가?? 이거 저도 생각해봤는데 이건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부처나 예수가 세상 모든 자들이 거의 다 알정도의 인지도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교화되지않았죠 오히려 더 종교를 이용해 변질적으로 변해 중생들의 돈을 착취하고 재산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발전되어왔죠 그러므로 결코 예수와 부처가 했던 이런 방식들은 교화할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종교가 절대자에 의한 교화의 수단만은 아니며 맹목적으로 잘못알고 있던것을 스스로가 자각할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봅니다. 지금까지 생각과 느낌속에서 살아 왔다면 자각을 했을 경우에는 느낌과 생각에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자각은 특별한게 아니며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데 잠자고 있는것을 깨우는 역할을 하는것입니다.
합장.! 목격자 주지자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분리 된다는 것도 망상 입니다. 생각 움직임 더 세심하게 관찰해 보세요! 먹고, 자고, 똥싸고 그게 다 입니다. 경허 선사 참선곡에 다 나와 있습니다. 지혜가 바로 알아차림 입니다. 알아 차리는게 지혜가 아니구요!!! 마음이 알아 차림이구요!!! 마음이 지혜이구요! 훈련.! 훈련! 수행! 수행!
스님 한가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안양의 한 교회가 이라크에 선교사를 보냈는데 이슬람 극단세력에게 납치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납치된 한국인 선교사가 보였는데 그때 선교사를 파견한 안양의 교회는 선교사가 선교를 하러간 것이 아니라 NGO단체의 일원으로 구호를 하러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던 한국의 NGO 단체들은 살짝 놀랐습니다. 아니 교회들이 언제부터 비정부기구였단 말이야? 하고 놀리기도 했죠. 한국의 진짜 NGO 단체들이란 7~80년대를 거치며 치열하게 군사정부와 싸우면서 국민들부터 선한 신뢰를 받고 있었던 시절인데 그런데 교회가 자국의 진짜 NGO 활동에 대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 이해를 위해 보낸 선교사들 이름은 같은 동급으로 사용해 한국의 진짜 NGO들을 황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측이 자신들이 2천년 동안 고유하게 사용한 선교사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NGO라고 주장한 이면은 당시 시대적으로 NGO란 이름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교회는 그것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마음을 얻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회들이 NGO단체들의 도덕성에 밀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고유한 것을 두고 NGO란 이름을 차용해야 했습니다.. 저는 스님의 말씀을 전부 동의해 스님편을 모아놓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스님이 내세우는 그 이름 바보붓다라는 말에 걸립니다. 선종한 김수환추기경도 자기가 바보 무엇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국민적 수준에서 바보라는 말에 공감하고 그것에 대해 감동을 준 사람은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편한 길을 내려놓고 부산에서 계속 깨졌지만 끝없이 도전했습니다. 후일 국민들이 그 희생에 감동해 그를 우리나라의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스님과 김수환추기경은 고유한 자신들의 종교적 아우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바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위의 교회가 했던 것처럼 왠지 편승하려는 느낌을 줍니다. 스님은 스님의 깨우침으로 충분한데 굳이 바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왜 있을까요? 석가를 바보라고 하지 않듯이 스님은 스님만의 깨우침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그냥 예민한 학생의 지나가는 기우로 말씀을 드려봅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쑥쓰러운데 아무튼 사랑합니다.. ㅜ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보붓다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한 말입니다. 과거 출가한 사문을 부를때 결혼도 안하고 처 자식도 버린다 해서 인도사회에서 뷔두 뷔두라고 불렀는데.. 이 뷔두가 곧 바보라는 의미이고.. 그 뷔두가 붓다로 바뀐 것이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지만 사실 큰 지혜를 기르는 사람들이죠.. 감사합니다
공부를 하다 조금 눈이 뜨이자 제 눈의 들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학교를 전혀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제 자신이 어느날부터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질량을 가진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답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알아차림 깨어있는 마음
보여지는 현상에
끄려가는 마음을 멈추게
하여 자각하여 지혜롭게 관찰하며 바르게 살겠습니다 .
덕분입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태을주 금화종지 🎉😂❤황극신 청주 만동묘 화양구곡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핵심을 복습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인연... 좋은말씀...
고맙습니다 ~_()_
자비행이 어렵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네요.
오늘도 감사히 경청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질문을 들이겠습니다.
저는 인연과보로
평생을 내옆에 인연과 마주보고 힘들게 살아서 온몸이
가슴이 막혀 말을 잘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유트브로 우연히 단전호흡을 하면은 몸과마음이 건강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호흡을 6초
하다가 상기병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선생님이
잠심을 하여 단전으로
내리라고 일러 주셔서
지금은 매일 4시간
목표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발목 복상뼈 밑이
많이 아파 걷기가
힘듭니다.
스님께서 아무것도
하지마라 하셨는데
저는 깨닫고 보림하는
것은 되는지요?
혼자서 수행하는것이
어렵지만 호흡으로
기와 산소로 단전이 따뜻하고 상체는
기가 돌고 풀렸습니다.
그린데 발은 혈이
통하지 않아 수행정진
으로 몸과마음 정신을
보림하여 닦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수행을 놓아야 하는지요?
좋은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입니다.
누구나 우리 모두는 깨달아 있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생각과 자아상에 묶여 있어서
중생이라는 상을
만들고 있고...
우리의 본래 근본자리를 못 돌아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무명이죠.. ..
그 자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확연해지기 까지
노력이란 걸..흔히 말하는 수행이라는 걸 합니다.
소가 보이지 않으니
숲과 길을 헤치고 소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어떤 특별한 수행과, 참선과, 비범한 어떤 행위를 통해서
어떤 노력의 결과물로
이뤄지는 규정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항상 여기 주어져 있는 그것을 바로 알아보면
되는 일이라
지금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아직 소가 보이지 않을 수 있어도
절실하면...걷고 걷다보면 확연해집니다.
그리고..
단전호흡은
몸과 마음을 건강해주는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다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기 호흡에 맞게
하세요..꼭 4시간 해야 된다는 목표도 내려놓고
편하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것이 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중 4시간은 화두를 잡는 선승도 아니고
긴 시간입니다...
하루중 20분도 좋고 10분도 좋구요..
저는 적당하게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서도 하고 법문도 듣고 발목이 아프시니
무리하지 말고
살짝이라도 산책도 나가고
친구들과 차도 한 잔 마시며...일상과 어우려지며
선을 하시기 권합니다.
세상은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이 납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좋은인연 귀한인연
주심에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
공감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큰 파장과 진동을 일으키죠.
오늘 하루도 여여하십시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한번만 봐서는 안될거 같아 저장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멱살을 잡고 싸워도 내면은 고요하다는게 잘 와닿질 않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제일 답답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분별은 하되 분별심에 빠지지 않는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승병들 중에는 분명히 깨달음에 이르신 스님들도 계셨을텐데,
그분들은 사람을 죽일때도 고요한 마음으로 죽였을까요? 이것이 무위로 행한 것일까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자리를 머리로만 알려고 드려니 답답한 마음에 몇줄 적었습니다.
스님 영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승병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우리가 함부로 속단하긴 어렵지만...
살생의 그 순간 마음이 고요하긴 어렵겠지요..
감정이 격했든 고요했든...
그 생각, 그 감정 그대로....
자신을 직시 하였으리라 봅니다.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알아차림하고 있었겠지요..
걷고 걷다보면 확연하게 소가 다가옵니다.
듣고 듣다보면 아 하는 순간이 옵니다.
감사합니다
@@foolBuddha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는자와 알려지는 대상 결국 아는자를 쫒으면 알려지는 대상으로 회귀하게 되고 그렇다고 알려지는 대상을 쫒으면 아는자와 회귀하게 되고 왜 그럴까? 했더니 따로 나눠진게 아니라 그게 일체더군요 그러니 드러난 모든 것이 같은 원리로 나타나니 일부를 붙잡는다고 하면 결국 전체를 붙잡는 것이더군요 깨어나는 "나"가 또 다른 꿈이더군요 그 붙잡은 "나"가 꿈을 지탱케하는 꿈의 내용이더군요 그러한가요? 스님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엄에서는 일즉다 다즉일..하나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하나이죠.. 수 많은 것들로 나눠져 있는듯 파도치는 듯 보이지만 그 파도가 곧 바다죠.
@@foolBuddha 스님 한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아는 자(관찰자)라는 것이 우리가 먹는 밥같이 아무 맛이 없으나 언제나 동일한 감각이기에 이미 항상적으로 존재한다는 착각이 있다고 드는데.. 마치 우리가 거울을 볼 때 매번 볼 때마다 거울속에 내 얼굴이 나타난다면 비친상이 함께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울안에 이미 상이 존재한다는 착각 된 관념을 가질 수 있듯이 아는 자(관찰자)라는 것 또한 생각이라는 대상이 일어나면서 함께 나타나지만 그 특유의 변화자체가 없는 무맛(?)으로 인해 항상적으로 이전에 존재한다는 오해로 인해 계속적인 "나"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건가요?
한국영화 만다라를 보며
파랑새가 생각이 났습니다. 파랑새가 내 밖에 분명 있는데 수행이 모자라 인연이 모자라 도저히 못찾는다고 고통안에서 사는 수행자(전무송님)를 그리고있더군요
마지막엔 안성기씨가 연기한 수행자가 자신이 피하고싶은 어둡고 협소한 마음구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좋지도 싫지도 판단하려하지 않으며 오직 시작점에서 앞으로 걸어나갈뿐하며 영화는 끝이납니다. 느끼건데...파랑새는 우리마음안에 이미 있었고 찾으려할필요도 없는물건이 아니였을까 다만 찾으러가고 다시오고 번거로웠을뿐... 그리고...그이상은...그모든 의미는... 다만 모를뿐... 분명히 모를뿐...
오래전에 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만다라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이런식으로 설파하시면 과연 인간은 교화 될까요?
일대일의 법문이 아닌 불특정 다수로 하는 법문이라.. 누군가는 확연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리송할 수도 있겠죠..
저도 이게 의문이었습니다 설파하고 가르치고 알려준다고 해서 과연 세상 인간을 교화시킬수 있는가?? 이거 저도 생각해봤는데 이건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부처나 예수가 세상 모든 자들이 거의 다 알정도의 인지도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교화되지않았죠 오히려 더 종교를 이용해 변질적으로 변해 중생들의 돈을 착취하고 재산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발전되어왔죠 그러므로 결코 예수와 부처가 했던 이런 방식들은 교화할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미카엘-g7g 듣고보니 그렇네요 흠….
종교가 절대자에 의한 교화의 수단만은 아니며 맹목적으로 잘못알고 있던것을 스스로가 자각할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봅니다.
지금까지 생각과 느낌속에서 살아 왔다면 자각을 했을 경우에는 느낌과 생각에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자각은 특별한게 아니며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데 잠자고 있는것을 깨우는 역할을 하는것입니다.
@@수수-p8g 그렇죠 깨달음이란 그런거니까요 그런데 그마지막 종착지는 결국 나를 바꾸는 일이며 따지고 보면 교화에 가깝게 되는거죠
합장.!
목격자 주지자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분리 된다는 것도 망상 입니다.
생각 움직임 더 세심하게
관찰해 보세요!
먹고, 자고, 똥싸고
그게 다 입니다.
경허 선사 참선곡에 다 나와 있습니다.
지혜가 바로 알아차림 입니다.
알아 차리는게 지혜가 아니구요!!!
마음이 알아 차림이구요!!!
마음이 지혜이구요!
훈련.! 훈련!
수행! 수행!
네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여여하십시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 🙏🙏
아직 좀 어렵지만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
높으신 법문 듣고듣고 실천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삼배 올립니다. 🙏🙏🙏
오늘 하루도 충만하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한가지 문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안양의 한 교회가 이라크에 선교사를 보냈는데 이슬람 극단세력에게 납치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납치된 한국인 선교사가 보였는데 그때 선교사를 파견한 안양의 교회는 선교사가 선교를 하러간 것이 아니라 NGO단체의 일원으로 구호를 하러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뉴스를 보던 한국의 NGO 단체들은 살짝 놀랐습니다. 아니 교회들이 언제부터 비정부기구였단 말이야? 하고 놀리기도 했죠.
한국의 진짜 NGO 단체들이란 7~80년대를 거치며 치열하게 군사정부와 싸우면서 국민들부터 선한 신뢰를 받고 있었던 시절인데 그런데 교회가 자국의 진짜 NGO 활동에 대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 이해를 위해 보낸 선교사들 이름은 같은 동급으로 사용해 한국의 진짜 NGO들을 황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측이 자신들이 2천년 동안 고유하게 사용한 선교사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NGO라고 주장한 이면은 당시 시대적으로 NGO란 이름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교회는 그것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마음을 얻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회들이 NGO단체들의 도덕성에 밀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고유한 것을 두고 NGO란 이름을 차용해야 했습니다..
저는 스님의 말씀을 전부 동의해 스님편을 모아놓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스님이 내세우는 그 이름 바보붓다라는 말에 걸립니다. 선종한 김수환추기경도 자기가 바보 무엇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국민적 수준에서 바보라는 말에 공감하고 그것에 대해 감동을 준 사람은 정치인 노무현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편한 길을 내려놓고 부산에서 계속 깨졌지만 끝없이 도전했습니다. 후일 국민들이 그 희생에 감동해 그를 우리나라의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스님과 김수환추기경은 고유한 자신들의 종교적 아우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바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위의 교회가 했던 것처럼 왠지 편승하려는 느낌을 줍니다. 스님은 스님의 깨우침으로 충분한데 굳이 바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왜 있을까요? 석가를 바보라고 하지 않듯이 스님은 스님만의 깨우침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그냥 예민한 학생의 지나가는 기우로 말씀을 드려봅니다.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쑥쓰러운데 아무튼 사랑합니다.. ㅜ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보붓다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내포한 말입니다.
과거 출가한 사문을 부를때
결혼도 안하고 처 자식도 버린다 해서
인도사회에서 뷔두 뷔두라고 불렀는데..
이 뷔두가
곧 바보라는 의미이고..
그 뷔두가 붓다로 바뀐 것이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지만 사실
큰 지혜를 기르는 사람들이죠..
감사합니다
공부를 하다 조금 눈이 뜨이자 제 눈의 들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학교를 전혀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제 자신이 어느날부터 인정욕구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질량을 가진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답글 고맙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스님의 법문을
듣었지만 지금 스님법문을 유투버로 보면서 너무나 와다았습니다
오늘 법문은 어떻게 마음공부를
해야 하는지 조금알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정리가 많이
되었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걷는 도반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