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다닐때 학교앞 문구점 주인아저씨가 우연히 저와 본관과 파까지 같았습니다. 그 뒤로는 물건값도 깍아주시곤 하셨고 제가 애매하게 지각할 시간에 학교에 가고 있으면 뛰라고 재촉도 해주시고 문구점 앞에 오락기에서 오락하려고 하면 가서 얼른 공부하라고 쫒아내기도 하셨습니다. 저랑 같이 오락하러 온 애들도 같이 쫒겨났죠. 그런 인연이 있었고 고등학교도 근처로 진학해 그 문구점을 계속 이용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근처에 가거나 하면 얼굴 뵈러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쯤에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부인분께 들었습니다. 영상을 보니까 괜히 그 아저씨가 생각나고 그립네요.
미국 가서 놀란게..성씨는 다들 다른데 이름이 똑같은 사람들이 많다는것. 유명 관광지에 가면 로버트, 존, 마이클 같은 이름이 아예 새겨진 열쇠고리나 냉장고 자석등의 기념품이 필수로 있음. 이름이 얼마나 흔하면 기념품 가게에서 자기 이름 찾고 있겠음. 우리 두 딸 이름이 크리스틴, 섀넌이었는데..흔한 크리스틴은 몰라도 안 흔할것 같은 섀넌 열쇠고리도 항상 있었음. 아마 그들은 성씨로 부르니까 독창적인 이름은 굳이 필요없고, 우리는 성이 다 같으니까 이름을 독창적으로 짓는거같음.
피와 성씨는 그냥 조상이 옛다, 하고 준 거라 내 노력은 안 들어가있지만 하는 행동이 천박하면 무엇을 조상님이 쥐어줬든 천박하게 구는 사람이고 진흙 속 연꽃처럼 맑은 사람은 출신이며 행색이 어찌됐든 귀하게 대접해야 할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당신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는 건 성씨가 아니라 오늘날 당신의 품행입니다.
TMI: 배우 독고영재(본명: 전영재)의 아버지인 배우 독고성(본명: 전원윤)은 유명해지자 독고씨 문중에서 진짜 독고씨로 착각하고 문중행사에 초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독고성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행사에 참석했으며, 본명도 밝히지 않은 채로 문중사람들과 인사까지 했다고 합니다. ㅋ
이웃동네 좀 사는 집안에서 우리집안 족보를 사갔다는 소리를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족보는 그대로 있었는데 뭘 팔았다는건지 어린 마음에도 갸웃뚱했습니다. 족보를 팔았다는 의미를 커서야 알았습니다. 우리집안 족보에 그쪽 집안을 갖다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성씨는 같은 성씨인데 아마 그쪽 집안은 좀 그렇고 그런 본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족보에서는 1대를 보통 30년으로 잡는데, 우리 집안도 10대까지는 조상들 묘가 확실하게 있고, 임금이 내린 교지도 몇개 있지만, 더 이전은 저희도 장담을 못합니다. 교지도 가짜가 많다던데...
저희집 성씨는 전국에 약 인구수 10만? 정도 되고, 전국에 몇몇도시에 집성촌이 있으나 저희 파는 경기도 한시골마을에 집성촌으로 살고있고, 지금도 같은 성씨 친척들끼리 모여살고 있네요. 동네 뒷산이 저희 선산이고 조상님들 산소들이 모여있습니다. 1년에 한번씩 같은 성씨들끼리 모여 체육대회도 하고 그럽니다 ㅋㅋㅋ
말이되냐 어차피 후대에는 암 도 몰른다 김씨들은 가짜여도 이씨 박씨는 아니다 왜냐 이씨의 왕가 자손만해도 어마어마한데 박씨는 귀족이었고 또 이씨가 통치한 나라에 이씨가 많은게 당연한거다 이씨가 왕족에서 나와서 잔가지로 파를 만들고 그 잔가지들은 여러 지방에서 자손을 낳았기때문이지..
또 성이없는 상놈들이 무슨 돈이 있고 땅이 있어서 성씨를 사냐? 절대로 그럴수가 없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조선시대에 여자가 귀한집에 갔거나 상놈이 공주한테 장가들어 성을 얻었을경우가 높지..지금 집한채 못사는것들이랑 같다고 보면된다 죽어도못사는데 성을 사냐?밥도 못사먹는데?
사학과 학생입니다 영상을 보면 얼마나 많이 공부를 했는지 느껴질 정도로 고증이 꽤 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교육봉사하면서 교양만두 영상 많이 틀어주는데 항상 좋은 내용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는 기록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갈리는 학문이라서 많은 학자들은 100%사실을 전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추측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역사가 가지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정설을 왜곡하고 가치폄하하는 것은 큰 문제지만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학문을 흥미롭게 풀어주시는 것 같아서 고증이 >꽤
@@dri13829 성은 단순히 이름 앞에 붙는 것이 아니라 혈통을 나타내는 귀족들의 특권이었습니다. 고려시대,조선시대에는 공신들에게 왕이 직접 내린 성씨 즉 혈통을 이어가는 자체를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티내는것(?)이 족보였구요. 제일 오래된 족보가 조선시대 안동권씨 성화보구요. 전 시기를 걸쳐 ‘특권’의 역할을 했던 성씨가 공명첩으로 대중화 된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잘보고 갑니다...저의 집에도 족보가 있습니다...집에서 애지중지 하던 족보였는데...언젠가 책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위영상과 비슷한 내용의 책이었습니다...김...모 작가였는데..암튼 과거 우리나라 거의 90프로 대부분은 상놈이란 사실이란 내용이었던걸로 기억 납니다...나이가 어느정도 든 이후 나자신과 가문의 진실을 알게 되어 족보는 창고에 처박아 두었습니다...가증스런 위선에 나 자신을 속여 사느니 차라리 추악한 진실을 받아들여 떳떳하게 사는게 더 인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산,제사,족보 있으면 양반 맞아요. 디지털 족보로 찾기 추천... 족보에도 없는 놈이 욕인 이유죠. 참고로 현시대라도 본처 자식 아니면 족보 등재 어려워요. 물론 본처자식이라 등재한 경우면 아주 아주 가끔 있지요 딸인 경우 현대에는 꽤 많지만 50년 전만 해도 고모들은 없고요 시집간 집에 증조까지 등록 됩니다 희안하게도 시집온 여성은 이름이 없이 본관과 성씨만 족보에 등록 됩니다.
자신의 성씨 집성촌이 최소200년 이상 되어 현재까지 있거나 전쟁전까지 있었거나.. 같은 성씨나 그 본관이 희귀해 현재 전국적으로는 아주 소수이면서도 고려 조선초에 역사적인물을 배출한 경력이 있거나 하면 볼것도 없이 양반이었을것임 또한 어릴적 집안제사에 가서 주위사람들 수십명이 죄다 한복에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있었다면 그것도... 물론 대부분의 권세가는 흔한성 흔한 본관에 적한 사람들이었겠지만 어쩌겠나 너무 많아서 구분조차 하기 힘든게 현실인데... 헌데 지금이야 돈이 최고지.. 개인적으로는 양반 중인 상놈중 사실 머리좋기는 예나 지금이나 중인이 최고였을것 같다
그건 견강부회입니다. 진짜가 90프로 에 가짜가 몇프로가 붙은겁니다 ㅋㅋㅋ 양반은 삼혼 사혼 해서 아이들이 많고 치료도 잘받아서 오래살죠 그러나 천민은 그렇지 못하고 수명이 짧죠 사람이 많다고 하는 그런건 이름만 빌려준것이고 족보를 봐도 내용이 부실하고 그렇습니다 김해김씨 같은 경우 400만 되는데요 족보 완질이 100권은 족히 될겁니다 참고로 4만 정도 되는 성씨에 15권 20만원 주고 샀습니다. 족보가 있음 종회 모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가짜일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선산이 없는 사람 도 확율이 높겠죠 ㅋㅋㅋ
@@존테리-v6t 저기 보면 10명 중 1명 꼴로 양반이었다고 나오는데요? 엄마의 신분을 따라가는 법 때문에 양반의 아이는 많았어도 진짜 양반의 수는 적었을듯합니다... 저야말로 전국에 1천명도 없는 희성인데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 성씨를 숨기고 살아서 선산도 없고 권위도 없음...
@@MapBroBs 그건 틀린 말임. 모든 사회는 모계사회로 출발한다. 선사시대 배웠을텐데..남성은 사냥중심 여성은 수렵채집중심. 사냥의 성공확룰이 낮아 가정의 주도권은 여성이 우세했음. 근데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남성의 노동력이 더 높으니까 이제 남성이 주도권을 잡음으로 인해 남성중심사회로 발전한거임. 어디에도 부계사회로 출발한 문명은 없다.
예전에 저희 아버님께서 하신말씀중에 진짜 양반가인 집안에서 가장어른격인 큰집에는 아주오래된 몇백년은 족히 되보이는 족보가 있으면 양반가일 확률이 높은 집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진짜 양반가들중에 대부분 진짜양반가는 못산데요. 외그러냐면요. 일제시대 부터 6.25때까지 재산을 많이 빼앗겼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안동 권씨인데... 족보 너무 무겁고 양이 많아서 첫권과 마지막 권(내 이름 가족이름 있어서)만 빼고 모조리 이사때 내다버렸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대노하실 ?? 근데 친가 어른들...진짜 쫌 노답ㅎㅎ 양반이었지만 후대서 교육을 제대로 못받으면 그럴수 있어보여요. 인성도 후천성인가 봅니다.
왠지 피씨도 댓글 달거같다 싶어서 찾아봤는데 역시 있네요 반갑습니다. 어릴땐 성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는데,나이를 좀 먹고나니 유니크한 성을 가진게 오히려 자랑스럽네요 ㅋ 뭔가 강력한 느낌이 든달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는데,피씨성을 가진 아이를 가질 생각하면 좋데요 ㅋㅋ
일제가 들어와서 신분제를 폐지할때 주인마님 성씨가 밀양박씨면. 그집 노비들 성씨를 밀양박씨로,, 대감마님 성씨가 노비 성씨가 된거죠 보통 노비가 30명되면 다 밀양박씨 광산김씨면 다 김씨로. 그래서. 한국이 김이박이. 많다는 설이죠. 그래서 희귀성씨가 순도 100%양반가문이라는 설이 있죠
김이박 성씨를 가진 분들은 처음 만나면 어디 성씨냐, 항렬자는 뭐냐 물으며 왕족 얘기하는 게 국룰이지만 전 홍씨라 늘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지,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네요ㅋㅋㅋ 어디가면 홍씨는 늘 저 혼자였는데 대만에 살고있는 지금은 홍씨가 꽤나 많아서 이름만 보면 한국인인 줄 아무도 모르더라구요 한국인인 거 알면 다들 놀라면서 한국 사람은 거의 다 김씨 아니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아요ㅠㅠㅋㅋ 이 내용 이야기해줘야겠네요😄 참고로 우리 조상님 중엔 홍경래의 난으로 유명한 홍경래가 있습니다❤️ 홍씨 화이팅!!
@@seanlake1707 우와 신기하게도 저희 집안도 인물은 음... 좀... 그래요 (....죄송) 저 대에는 저만 여자고 다 남자인데 다들 학벌도 좋고 직업도 좋습니다! 아쉽게도 전 공부랑은 담을 쌓은 외가를 닮아서 저들과 달리 평범한 대학 나와 평범하게 살고있지만 ㅠㅠ 그래도 외가 닮은 덕에 쌍커풀 수술비와 치아교정비는 아꼈네요^^ㅋㅋㅋㅋㅋ
@@hyeonsseungsseungi 양반가도 딸 이름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친정집에서 부르는 아명이 있었어요.(한자이름) 그리고 혼인하면 더이상 아명으로 안 부르고 부인의 이름(아명)은 물어봐도 안 되고 아무에게도 안 알려줌. 대신 호를 지음. 사임당 윤지당같이. 그래서 할머니는(1912년생) 한자이름이 있으셨지만, 그 윗대로 증조모, 고조모, 현조모는 본관+성씨만 알아요. 부인의 아명은 족보와 비문에 쓰지 않아서요.
그게 일제시대 625이후로 전혀 신빙성 없어여. 국내 메이져 성씨 장손이란 사람도 알고보니 첩의 자식의 후손인거 나올때 개웃겼는데 ㅋㅋ 어차피 반상이 사라진 한국에서 의미없어여. 그냥 희귀성이면 조상이 양반인가 하고 흔한성이면 돌쇠구나 해도 되지만 현생에선 아무 의미없고 인생업적 구라왕족이 최대업적인 사람들만 신경씀 ㅋ
본인의 고향 혹은 부모님이 태어나신 곳이 집성촌(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 마을)이라면 소위 말하는 양반집 후손입니다. 조선 후기에 족보 위조 및 매관매직 등으로 양반 수가 급증하게 되어 기존 양반 가문들이 저런 신향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다며 집안의 위상을 높이고자 같은 성씨의 사람들끼리 부락을 꾸려 살았죠. 지금도 시골에 집성촌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나빌레라-n1z 아 그렇군요..ㄷㄷ 제가 태어난 동네는 어르신들 피셜로는 일제강점기 시절만 해도 노비들이 있었고 노비들의 이름은 주인집 어른이 지어주되 다들 김씨로 통일해서 지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시골집에 저희 집성촌 성씨를 쓰는 어른들이 많은 만큼 김씨 성을 쓰는 사람들도 꽤 많음..
하나도 안맞네 ㅎㅎ... 양반이라도 장남말고는 계속 갈라져서 땅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부모님이라고 조선시대때 부터 성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고 나오는데 그걸 알방도가 없습니다. 족보위조도 위에 영상에 나와요 마지막은 진짜 말도 안됨... 모계쪽 얼굴이 다른데 어떻게 몇대 후손이 닯는게 이상하지요..
선산,제사,족보 있으면 양반 맞아요. 디지털 족보로 찾기 추천... 참고로 현시대라도 본처 자식 아니면 족보 등재 어려워요. 물론 본처자식이라 등재한 경우면 아주 아주 가끔 있지요 딸인 경우 현대에는 꽤 많지만 50년 전만 해도 고모들은 없고요 시집간 집에 증조까지 등록 됩니다 희안하게도 시집온 여성은 이름이 없이 본관과 성씨만 족보에 등록 됩니다.
저는 문씨인데 어릴적 학교 친구들이 자기 집안 다들 명문가라고 자랑할때 문씨는 천민이라고 다들 저를 놀리더라구여. 그래서 아버지에게 우리 족보가 궁금하다고 하니 아버지가 낡은 족보를 가져오셔서 설명을 하는데 정말 참담하더라구여 우리집안이 양반은 맞는데, 전부 진사 생원으로 끝나더라구여. 한마디로 절름발이 양반이엇죠. 조상들 대부분이 한마디로 한량인 집안이었죠. 너무 충격받앗습니다. 왜 우리집안이 그런거지 하고 조사를 해보니, 우리집안이 고려시대에는 문벌귀족 가문이었다고 하더군여. 그러나 고려에 끝가지 충성한 집안이라 결국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하지않고 양반신분 유지할수 있는 진사 생원 시험만 본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역사공부를 더하니간 조선시대 오리지널 양반은 5%도 안되는걸 보고는 다들 성울 위조했구나라는것을 알았죠
저도 성이 특이해서 성이나 본관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지는가 같아여ㅎㅎㅎ제가 사는 마을도 친척들이 모여살던 집성촌이였거든요ㅎㅎㅎㅎ 어렸을때는 호 자로 시작하는 모든것들이 제 별명이었는데(호빵호떡호호아줌마호산나등등) 어린맘에 나도 김이박씨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더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니 이게 저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더라구요ㅎㅎㅎㅎㅎ 아무튼 성의 유래 재밌게 잘 봤습니다🙏
장흥마씨와 목천마씨는 마려가 백제 개국공신으로 현재 전라남도 장흥지역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장흥마씨가 되었고 목천마씨는 고려문종때 목천읍을 본관으로 분파가 되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공신이 3명 이고 장흥과 목천마씨를 합해 정시와 식년시를 통해 총 36명의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태종때 좌명공신 마천목이 있고 신숙주 집안과는 사돈이며 그 외증손녀가 폐비윤씨이니 조선왕가와 혈통도 연결되어있네요, 세조때 숭정대부에 봉해진 마승,동지 중추부사에 오른 마사인, 인조때 어영대장으로 봉림대군을 청나라에서 보필한 마지룡,고종때 통정대부중추원의관을 지낸 마종성등이 있습니다. 명량해전때 적진에 분투하던 이순신을 구하다 적탄에 전사한 선공감 주부 마하수라는 분도,남원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신 구례현감 마응방도 있습니다. 선조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ㅎㅎ 2023년 기준 분파까지 합쳐 3만명이 되지 않으니 조선조에는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인구수라 할수 있고, 당상관에 오른 인물들이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급제자와 당상관급 인물들이 드문드문 있어 양반의 명맥은 이어왔네요. 소수희귀성씨에 인기도 없었을 테니 다른 성씨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입니다.
밭전씨가 담양전씨와 남양전씨가 있는데 남양전씨가 왕씨 왕족 후손입니다. 저도 그냥 카더라인줄 알았는데 북한의 고려 왕족 후손 살아계신분께서 다큐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게 진짜였구나 라는 걸 알게되었거든요. 물론 담양전씨도 양반가였고요 지금도 집성촌이있구요. 저도 담양전씨에요 반가워용
공명첩의 영향도 있지만 실상은 일제가 호적법을 시행하면서 성씨가 없던 노비 신분인 자들을 주인의 성씨를 따서 부여한 영향도 매우 큽니다. 사실상 조선 노예제도를 선언적으로 없앤 건 김홍집 내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없앤건 일제죠. 이 때부터 모든 사람이 성씨를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회사 중에 사장님이 같은 성씨였지요... 그래서 첫 회식 때... 호구 조사 들어갔는데... 알고 봤더니 사장님이 나보다 항렬이 한참 낮은(제가 할아버지 항렬) .. 그것도 가까운 친척이었음. 그때부터 회사 생활이 피긴 했으나... 몇 달 후... 그 사장은 2달 치 임금을 체불하고 야간 도주했죠... 쩝.. ㅋㅋㅋ
60대 상당수와 70대 이상은 대부분 본인 조상이 양반인지 평민이지 천민인지 알더라고요. 아무래도 어릴때 조부모나 부모에게서 듣고 겪은 신분제 영향이 삶에 남아 있어선거같아요. 근데 자식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도시로 이주한뒤에 고향을 다시는 안가는 방식으로 과거를 지우고 산거같아요. 한국에서 신분제가 사라진데는 역시 전쟁과 곧이어진 산업화가 영향이 정말 큰듯요. 이렇게 변화가 느린 시골까지 신분제가 단시간안에 사라진 나라가 정말 거의 없을 것 같아요ㅇㅇ
지금 60대분들도 다 한국전쟁 이후 세대입니다. 한국전쟁 때는 그나마 관습적으로 남아있었던 신분제의 그림자가 완전히 없어졌어요. 양반이었던 사람, 평민, 노비출신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난한데 무슨 신분제?? 출신을 안다구요?? 그걸 어찌 압니까? 또 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족보 그거 다 믿을바 못 됩니다.
나 예전에 친구가 천민의 성 아니냐고 놀리기에 너야말로 일제시대 양반족보 산 노비일 거다. 우리는 조선시대 누구 누구 누구 정승판서 성씨가 있다. 라고 반박하니 오히려 당혹하며 화내더라. ㅋㅋ 김 이 박.. 이 오히려 천민의 후손일 확률이 더 높으니 이런 놀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물론 지금은 전혀 의미없는 논쟁일뿐이지만..
제가 구독하길 정말 잘했다는 유일한 체널입니다. 몰랐던 사실도 알게되고 또 재밌게 알려주셔서 너무 집중해서 보게 되요 늦게 알았다는 사실이 아쉽지만ㅜ 정말 애정있게 보고있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드리구 유투브 영상만 하시는게 아니니까 너무 지치지 않을 만큼만 화이팅 해주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제 성씨인 김씨는 흔히 아는 경주 김씨 김해 김씨가 아니라 선산 김씨입니다. 예전엔 일선 김씨라고 불렸대요. 아버지께서 파까지 말씀해주셨었는데 파는 뭐였는지 잘 기억 안나네요. 하여간 김씨 중에선 매우 희귀하답니다. 제가 언제 성씨, 본관 숫자 랭킹을 본적 있는데 다른 김씨는 전부다 20위권 내에 있는데 선산 김씨는 혼자 저~기 170위대... 뭐, 그냥 그렇다고요.
이씨인데 전국적으로 5만정도 있어서 적은편같아요. 3세대 전에 북한에서 내려오셔서 족보는 없는데 저도 제 뿌리가 궁금해요 종친회에 껴달라고 하니 족보 없어서 못받아준다고 했대요. 엄마쪽은 영상에도 나온 엄청 흔한 성인데 종묘제례에도 매년 참석해서 진짜인거 같아요. 어느후손일까 궁금해서 백과사전 찾아봤는데 엄청 괴팍하고 좋은 조상은 아니더라구요 ㅋㅋㅋㅋ 아빠쪽이 늘 궁금한데 분단된 상황이라 더 알수가 없네요
@@tkdvPehoska 저희 큰 고모부가 풍산 홍씨인데 고모부 친가가 엄청 부유하셨어요.. 저희는 경주 최 가 저희도 재산이 많은 집안이기도 했고.. 문제는 고모부가 재산 많고 손귀한 집안 막내이자 장손이라 한량이셨음;;;;; 때문에 재산 털어먹고 쫄딱 망해 고모랑 고종사촌 오빠들 언니가 엄청 고생하셨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YSCh01-xj8vz 원래 부자이면 자식이 병신이란 말도 있던데요~ 그런 자식이 조상들이 힘들게 축척해온 부를 흥청망청쓰고 그지가 되더라구요. 저또한 생모쪽이 엄청난 부자(홍진사댁으로 불림) 99칸집에 12칸 대궐이있고 현금많고, 면단위만한 땅도 있었다고함.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이 딱맞음 난 그땅,돈.대궐 냄새도 못맡아봄. 생모도 35년만에 처음 보았음. 그냥 개막장임 지금은 생모와도 연락안함.
지금 30대인데 어릴 때 본관과 항렬 등을 아버지, 할아버지께 배우고 했었는데요. 앞으론 본관, 항렬, 족보, 조상, 제사, 돌림자 등등 아예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질 것 같은데 양반이니 그런 거 따지는 유치한 이유보단 마치 조부모, 외조부, 부모의 일생과 성함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듯, 그러한 것들이 대대손손 대한민국 문화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몰라도 상관없고 알아도 쓸데없을지 몰라도 마치 전래동화처럼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왕이 바뀌는 대로 성씨가 바뀌던 시대를 살았다고... 6.25 이후 신분제가 사라짐과 동시에 족보가 다 짝퉁으로 만들어 졌다는.. 중학생때엿나 ...본이 궁금했던 저는 .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크흑.. 그결과 " 임(任) " 씨인 저는 .. 한국 성씨가 아니었고...OTL... 중국에서 넘어온 성씨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나 찾아보니 관직도 했던 조상도 있으니 뭐 ..그냥 저냥... 그러나 어릴 땐 한반에 임씨가 2명 인데서로 한자가 달라서 이유없이 적대적? 인 사이가 되기도 하고 ㅋ 뭐 나름...좋은 영상이었네요. 흠. 에...저는 한쿡인 이다 하오. ㅋㅋㅋ
여러분,,, 이곳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하시면 어떡해요,,
난 별명이 박병신이었음
교양만두팀에서 정한 주제입니다, 받아들이십쇼 ㅋㅋㅋㅋㅋ
ㅋㅋㅋ
교양만두 만세~~~~~~~
@@tyizem6865 진짜인데...
중학교다닐때 학교앞 문구점 주인아저씨가 우연히 저와 본관과 파까지 같았습니다. 그 뒤로는 물건값도 깍아주시곤 하셨고 제가 애매하게 지각할 시간에 학교에 가고 있으면 뛰라고 재촉도 해주시고 문구점 앞에 오락기에서 오락하려고 하면 가서 얼른 공부하라고 쫒아내기도 하셨습니다. 저랑 같이 오락하러 온 애들도 같이 쫒겨났죠. 그런 인연이 있었고 고등학교도 근처로 진학해 그 문구점을 계속 이용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근처에 가거나 하면 얼굴 뵈러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쯤에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부인분께 들었습니다. 영상을 보니까 괜히 그 아저씨가 생각나고 그립네요.
삼촌같은 느낌이셨겠네요
특별한 인연인데 돌아가셨다니 안타깝네요
나도 초등학고 문구점 아저씨가 같은 마산사람이라 엄청 이뻐해주셨는데 잘 있으실려나
나10짤
나도 문구점 아주머니가 늘 친절히 대해주시구 우리 가족 이름도 다 기억하시구.. 졸업 후 자연스레 발길 끊긴 후 갑자기 생각나서 가봤는데 그때도 내 얼굴 알아보시구... 인사 건네주셨는데. 잘지내시나..
유산 한푼 없는 저희 친가가 명절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를 20년 넘게 고생시키는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뭐라고 하건 저희 집은 상놈 집안이고, 저희 대에서 제사는 무조건 폐지합니다.
어이쿠
잘하셧네요
저희는 제사 폐지했습니다. 다른것도아니고 뭐..친척들 눈엔 딸년이 없앤거라 샹년 취급을...ㅎㅎ;;
아부지 엄니 대에서 제사 폐지했습니다 .... 명절때마다 부모님께 무한감사
제사는 형편에 맞게 남녀 같이 차리는 게 조선시대 제사였는데ㅜㅜ 악습이 되어버렸죠
미국 가서 놀란게..성씨는 다들 다른데 이름이 똑같은 사람들이 많다는것. 유명 관광지에 가면 로버트, 존, 마이클 같은 이름이 아예 새겨진 열쇠고리나 냉장고 자석등의 기념품이 필수로 있음. 이름이 얼마나 흔하면 기념품 가게에서 자기 이름 찾고 있겠음. 우리 두 딸 이름이 크리스틴, 섀넌이었는데..흔한 크리스틴은 몰라도 안 흔할것 같은 섀넌 열쇠고리도 항상 있었음. 아마 그들은 성씨로 부르니까 독창적인 이름은 굳이 필요없고, 우리는 성이 다 같으니까 이름을 독창적으로 짓는거같음.
@@최성원-y1e
오히려 근대 시기까지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위인들의 성들은 그들이 귀족이기에 성으로 불러도 헷갈릴 일이 없는 거임....
우린 양반들 성씨 배껴다 썼지만 걔넨 성경 인물들 이름 배껴다 쓴건 비슷함 ㅋㅋㅋㅋ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ㅋㅋ 신기하다
오 진짜 나 미국에 기념품퍄는데 있는데 열쇠고리애 erica라고 내이름 적혀있더라요
저는 뉴질 살면서 동양은 성이 한정적이고 이름이 다양한데 반해 서양은 성이 다양아고 이름이 한정적이라고 느꼈어요 발음은 비슷하지만 스펠링이 조금씩 다르긴하지만요
영상에서 최고 명언 들었네요
"지독한 체면의 나라" 지금 한국도 변한건 없는듯
정신승리 민족임. ㅋㅋㅋㅋㅋ
피와 성씨는 그냥 조상이 옛다, 하고 준 거라 내 노력은 안 들어가있지만
하는 행동이 천박하면 무엇을 조상님이 쥐어줬든 천박하게 구는 사람이고
진흙 속 연꽃처럼 맑은 사람은 출신이며 행색이 어찌됐든 귀하게 대접해야 할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당신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는 건 성씨가 아니라 오늘날 당신의 품행입니다.
누구나 하는 생각이라도 글로 이렇게 옮기기 쉽지 않은데
필요한 말을 예쁘게 잘 쓰셨습니다.
👍
평소 내 생각과
같으네요
오 굳
명문가 출신이군요
TMI: 배우 독고영재(본명: 전영재)의 아버지인 배우 독고성(본명: 전원윤)은 유명해지자 독고씨 문중에서 진짜 독고씨로 착각하고 문중행사에 초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독고성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행사에 참석했으며, 본명도 밝히지 않은 채로 문중사람들과 인사까지 했다고 합니다. ㅋ
아니 문중에서 하는거면 최소한 족보는 뒤져봐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고씨가 얼마나 인물이 없었으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넼ㅋㅋㅋㅋㅋ
독고 다이
@@Madojin ㅋㅋ
이순신 장군 장인도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 이죠 20대초반에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30대에 급제 하게되어 조선실록에 신궁으로 두분의 이름이 있습니다 종3품인가 4품인데 그당시 문반 무반인 양반이었죠
천방지축마골피가 희귀한 성씨인 터라, 잘못알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던데, 이렇게 명료하게 설명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씨로 무시하는 사람들 치고 현명한 사람없죠. 그런 사람들이 혈액형 성격론이나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미신, 유언비어에 쉽게 휩쓸리니까요. 그 담임분 사기당하거나 주변인말 듣고 주식하다가 패가망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ㅎㅎ
천.민
@@그림자-z7n 그럼 백정 이학찬과 백정 박서양은 천민 아닌가요 노비출신 독립운동가 최재천 그외에도 찾아보면 넘 많아서 김이박최정강조윤 순서대로 천민 백정이 많은건 어떻게 된건지요
저는 마씨인데 덕분에 마동석 소리 많이 듣죠 ㅋㅋㅋㅋㅋ
초등이 아니고 국민학교 시절 선생도 그런 무식한 선생은 없었는데요~ 큰 상처였겠어요~~
저는 50세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제 앞에서 그딴 말 한사람이 없어요~ 다만 국딩때 찐따가 얼버무리며 말한적 있어요
옛날에는 희귀성씨나 사람이 적은 성씨는 집성촌 개념으로 많이들 살았기에 그 성으로 위조했을 경우에 걸릴 확률이 높아, 많이들 김이박으로 성씨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자료 보고 갑니다! ㅎㅎ
이웃동네 좀 사는 집안에서 우리집안 족보를 사갔다는 소리를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족보는 그대로 있었는데 뭘 팔았다는건지 어린 마음에도 갸웃뚱했습니다.
족보를 팔았다는 의미를 커서야 알았습니다. 우리집안 족보에 그쪽 집안을 갖다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성씨는 같은 성씨인데 아마 그쪽 집안은 좀 그렇고 그런 본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족보에서는 1대를 보통 30년으로 잡는데, 우리 집안도 10대까지는 조상들 묘가 확실하게 있고,
임금이 내린 교지도 몇개 있지만, 더 이전은 저희도 장담을 못합니다. 교지도 가짜가 많다던데...
@밴디국밥_YT 한자리수는 거의 가짜라고 봄
저희집 성씨는 전국에 약 인구수 10만? 정도 되고, 전국에 몇몇도시에 집성촌이 있으나 저희 파는 경기도 한시골마을에 집성촌으로 살고있고, 지금도 같은 성씨 친척들끼리 모여살고 있네요. 동네 뒷산이 저희 선산이고 조상님들 산소들이 모여있습니다. 1년에 한번씩 같은 성씨들끼리 모여 체육대회도 하고 그럽니다 ㅋㅋㅋ
말이되냐 어차피 후대에는 암 도 몰른다 김씨들은 가짜여도 이씨 박씨는 아니다 왜냐 이씨의 왕가 자손만해도 어마어마한데 박씨는 귀족이었고 또 이씨가 통치한 나라에 이씨가 많은게 당연한거다 이씨가 왕족에서 나와서 잔가지로 파를 만들고 그 잔가지들은 여러 지방에서 자손을 낳았기때문이지..
또 성이없는 상놈들이 무슨 돈이 있고 땅이 있어서 성씨를 사냐? 절대로 그럴수가 없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조선시대에 여자가 귀한집에 갔거나 상놈이 공주한테 장가들어 성을 얻었을경우가 높지..지금 집한채 못사는것들이랑 같다고 보면된다 죽어도못사는데 성을 사냐?밥도 못사먹는데?
사학과 학생입니다 영상을 보면 얼마나 많이 공부를 했는지 느껴질 정도로 고증이 꽤 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교육봉사하면서 교양만두 영상 많이 틀어주는데 항상 좋은 내용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는 기록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갈리는 학문이라서 많은 학자들은 100%사실을 전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추측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역사가 가지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정설을 왜곡하고 가치폄하하는 것은 큰 문제지만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학문을 흥미롭게 풀어주시는 것 같아서 고증이 >꽤
17C 들어서 성씨가 보편화 됐다는 것에서 걸러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일반 평민들에게도 성씨가 보편화 된 건 이미 고려 시대에 진행됬음.
ㅣ
@@dri13829 성은 단순히 이름 앞에 붙는 것이 아니라 혈통을 나타내는 귀족들의 특권이었습니다. 고려시대,조선시대에는 공신들에게 왕이 직접 내린 성씨 즉 혈통을 이어가는 자체를 특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티내는것(?)이 족보였구요. 제일 오래된 족보가 조선시대 안동권씨 성화보구요. 전 시기를 걸쳐 ‘특권’의 역할을 했던 성씨가 공명첩으로 대중화 된것으로 이해했습니다^^
@@dri13829 웬만해서 교수님이나 대학원생아니면 사학과 학생 댓글에 반박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은데
좋은일을 하시네요.
잘보고 갑니다...저의 집에도 족보가 있습니다...집에서 애지중지 하던 족보였는데...언젠가 책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위영상과 비슷한 내용의 책이었습니다...김...모 작가였는데..암튼 과거 우리나라 거의 90프로 대부분은 상놈이란 사실이란 내용이었던걸로 기억 납니다...나이가 어느정도 든 이후 나자신과 가문의 진실을 알게 되어 족보는 창고에 처박아 두었습니다...가증스런 위선에 나 자신을 속여 사느니 차라리 추악한 진실을 받아들여 떳떳하게 사는게 더 인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일수도 있죠 나중에 님 손자가 님 할아버지 궁금할수도 있는데 그냥 계속 족보는 갱신 하시죠
Maybe your ancestors bought longtime ago who knows 😂
니 증,고조할배 묘있으면 그 나마 양반 찌끄러기 없으면 상놈^^
@@새롭게-b3y 진짜다 아니다가 중요한게 아니라는 말이지 그만큼 조선 자체가 한민족을 90% 노예로 삼을정도면 양반이라도 미개한 것이라 뜻이지
님이 10프로였을 수도 있음 잘 알아보셈
교양만두팀 여러분 언제나 영상이 건강보다 우선입니다.
건강잘챙기시고 다음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선산,제사,족보 있으면
양반 맞아요.
디지털 족보로 찾기 추천...
족보에도 없는 놈이 욕인 이유죠.
참고로 현시대라도 본처 자식
아니면 족보 등재 어려워요.
물론 본처자식이라 등재한 경우면
아주 아주 가끔 있지요
딸인 경우 현대에는 꽤 많지만
50년 전만 해도 고모들은 없고요
시집간 집에 증조까지 등록 됩니다
희안하게도 시집온 여성은 이름이 없이
본관과 성씨만 족보에 등록 됩니다.
@@HellGodSky그걸 왜 여기에
여기에 다가 잘못 적은걸수도?
교양만두 영상이 유익하기도 하지만 특히 패러디 넣는 센스가 진짜 좋다고 생각해요ㅋㄱㅋㅋ 오늘 영상에 5:18 쇼미 찬혁이(aka.어느새부터 안멋져) 패러디 넣으신거 보니 새로뜨는 밈 빠르게 캐치하는센스가 넘 대박인것 같아요ㅋㄱㄲㅋ
나머지 드립은 꿀잼! 2:25 이건 노잼ㅠㅠ
3:00 에 나오는 사쿠라이 쇼의 경우는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입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성씨는 이름의 앞에 옵니다. 즉 사쿠라이 쇼의 성은 사쿠라이 이고 이름은 쇼 인것이지요.
TMI 일본은 성 종류가 세계에서 가장 많기로 유명하죠.
와 맞아요 거슬렸던거 한번에 긁어주셨다
루크 쇼랑 같은 성인줄 알았네 정확한 정보 감사합니다
시원
@@콰지-v7o 루크 쇼....
저희집안 선산이 있어요. 9대조 부터 내려오는 선산인데 이조참의 하셨어요. 갓쓴 묘비도 있으시고. 그럼 양반집안 맞나요?
고딩 때 문학 선생님이 '본인 양반 집안 아닌사람 손들어봐' 라고 해서 손 들었더니
교직생활 20년만에 손든 사람은 니가 처음이라고 ㅋㅋㅋㅋ
집안..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일 중요한건 본인의 언행이 중요합니다.
모두 곱고 맑은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 갑시다.
만일 그대로 양반 직계 후손들만 그 성을 가졌다면 지금 현대인들 보면 신분에 의한 차별이 암묵적으로 많았을 듯
신분제 는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Chanbong-su5oo 개소리
@@baropingping 다른채널에서 한게 없습니다만?
@@뇸뇸뇸-w2u 조선때처럼 인권침해만 하지 않는선에서 신분제는 있어야해요
세상은 위아래가 있어야해요
@@노란색레드 일본은 성씨만 보고 아 귀족집안 무사집안 후손이네 그걸 알 수 있나요? 평민도 성씨를 갖게 된 메이지유신 때 선물받은 게 8할 이상이지 않을까요...
자신의 성씨 집성촌이 최소200년 이상 되어 현재까지 있거나 전쟁전까지 있었거나.. 같은 성씨나 그 본관이 희귀해 현재 전국적으로는 아주 소수이면서도 고려 조선초에 역사적인물을 배출한 경력이 있거나 하면 볼것도 없이 양반이었을것임 또한 어릴적 집안제사에 가서 주위사람들 수십명이 죄다 한복에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있었다면 그것도...
물론 대부분의 권세가는 흔한성 흔한 본관에 적한 사람들이었겠지만 어쩌겠나 너무 많아서 구분조차 하기 힘든게 현실인데...
헌데 지금이야 돈이 최고지.. 개인적으로는 양반 중인 상놈중 사실 머리좋기는 예나 지금이나 중인이 최고였을것 같다
헐 제 성씨 집성촌 최소 400년됐고 현재까지도 있고 성씨나 본관이 희귀하고 역사적 인물 배출한적도 있네요 근데 전 왜 이럴까요? 😢
대부분의 성씨가 가짜라는 영상댓글에서조차
집안을 따지고 있는 우리민족..
참 웃기죠 요즘 시대에 그런게 어딨어 이렇게 입으로는 말하면서 자기 집안은 양반이길 바라는ㅋㅋㅋ
뿌리를 모른다면 개나 마찬가지 입니다,
@@강인명 그 뿌리의 진위가 확실치 않은데 무작정 우기는 게 문제.
노비것들 ㅋㅋ
@@강인명 몰라도 개뿔 상관없음
많이 배우고 돈많으면 그게 양반임
김이박최정조강윤중 97퍼는 족보 갈아탄 노비라는 얘기가 돌 정도 흔한성씨긴 함. 학교다닐때 박혁거세가 자기 조상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친구있었는데 하는 행동보면 그냥 거세당한 애 였음.
성씨에 관한 설명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구라 입니다,
거세 ㅋㅋ
😢😮
종중회원이고 종갓집이 있고 족보있고 4대째 선산이 있으면 양반일가능성이 높아요
@@에르브저요👍🏻
상대적으로 적은 성씨가 보면 기분 좋아지는 영상…
현실은 국민 95%가 성이 없었고
그 당시에도 남들 다 사는 성씨말고 다른 성씨나 희귀한 성씨 사는 사람들도 많았죠..
김, 이, 박 자슥들의 대부분은 상놈나부랭이
적은 성씨일 수록 찐 양반이라는 말이 있어요ㅋㅋ
저도 희귀성.. 회사직원이 천명인데 저혼잡니다.. 그래서 민원인들이 너무 잘 기억함.ㅠ
"거, X씨성 직원이 아주 싸가지가~~~" 이런 경우 발생...
학교 다닐 때도 내도록 발표 지명당하고..
저는 청풍김씨인데 인구가 10만정도밖에 안돼요. 숙종 엄마였고 현종 왕비셨던 명성왕후랑, 정조의 왕비셨던 효의왕후 김씨가 청풍김씨이고 다수의 정승등등이 있었네요. 연예인중에도
김태희, 김주하 , 김원준, 소녀시대 효연도 청풍김씨라네요. 파도 3개밖에 없는거보면 성을 팔아먹진 않은거 같아요.
@@mary77777777777 와 10만명...저는 경주손씨인데 6만명 정도인걸로 알고있는데..
얼마나 사극에 자주 나오셨으면 최수종 배우님 이름이 ㅋㅋㅋㅋ
최수종 배우님이 연기 하셨던 역사 속 인물들을 각 시대순으로 나열하면
대조영 => 장보고(해신) => 왕건(태조 왕건) 순이 되겠네요 ㅋㅋ
대왕의 꿈 (김춘추)..임진왜란1592(이순신)태양인 이제마(이제마)도 있내요ㅋㅋ
고려거란전쟁의 강감찬 분이 추가되셨습니다
흔한 성씨일 수록 실제 조상은 천민일 확률이 높죠. 이상하게 흔한 성씨일수록 성씨부심, 양반부심 같은게 있음 ㅎㅎ
그건 견강부회입니다. 진짜가 90프로 에 가짜가 몇프로가 붙은겁니다 ㅋㅋㅋ 양반은 삼혼 사혼 해서 아이들이 많고 치료도 잘받아서 오래살죠 그러나 천민은 그렇지 못하고 수명이 짧죠 사람이 많다고 하는 그런건 이름만 빌려준것이고 족보를 봐도 내용이 부실하고 그렇습니다 김해김씨 같은 경우 400만 되는데요 족보 완질이 100권은 족히 될겁니다 참고로 4만 정도 되는 성씨에 15권 20만원 주고 샀습니다. 족보가 있음 종회 모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가짜일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선산이 없는 사람 도 확율이 높겠죠 ㅋㅋㅋ
@@존테리-v6t 저기 보면 10명 중 1명 꼴로 양반이었다고 나오는데요? 엄마의 신분을 따라가는 법 때문에 양반의 아이는 많았어도 진짜 양반의 수는 적었을듯합니다... 저야말로 전국에 1천명도 없는 희성인데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 성씨를 숨기고 살아서 선산도 없고 권위도 없음...
@@성이름-p7o9d
자기 할아버지 때 까지 대대로 정승을 지낸 집안이라도 손자가 생원, 진사에도 합격 못하면 일반 양인 집안이 되던게 조선 사회임.
양반이 10%도 안된다는 건 3대 내로 생원, 진사시라도 합격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10%가 안됬다는 말인 거임.
@@존테리-v6t 현금화 가능한 종중땅 없으면 다 가짜임~
@@之勢破竹 땅이면 다 현금화 가능하지 안되는데도 잇나 시벵아 ㅋㅋㅋ
성씨가 엄마 핏줄로 만들어졌다니 신기하네요 ㅎ 생각해보니 꽤 논리적이에요. 그 당시에는 아빠는 누구인지가 불명확해도 엄마가 누구인지는 확실했으니까.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성씨는 아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게 은근히 씁쓸하네요.
그 당시에도 아빠가 누구인지는 대츙 알았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귀족성의 역할은
서로 결혼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귀족8성이 있었는데
성이 같으면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사회적 신분은
부계로 내려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문명사회는 부계사회 입니다 누군가 강압적으로 만든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겁니다
심지어 현재 동서양 모두 마찬가지죠
@@MapBroBs 그건 틀린 말임. 모든 사회는 모계사회로 출발한다. 선사시대 배웠을텐데..남성은 사냥중심 여성은 수렵채집중심. 사냥의 성공확룰이 낮아 가정의 주도권은 여성이 우세했음. 근데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남성의 노동력이 더 높으니까 이제 남성이 주도권을 잡음으로 인해 남성중심사회로 발전한거임. 어디에도 부계사회로 출발한 문명은 없다.
모계든 부계든 지금은 다같이 협동해서 살고 있으니까 제발 밑에 분들 (예상) 싸우지 마세요~!!!
희귀 성씨 일수록 오히려 진짜 양반 후손일 가능성이 높죠
구태어 희귀 성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
제 성씨는 우리나라에 2만명밖에없음ㅠㅠ 꽤 드문성이라 밖에서 같은명만나면 엄청 반가워함ㅋㅋ
나는 남씨여서 초딩때 애들이 남극이라고 놀림
@@estp1203 남씨면 그나마 나은편이네ㅠ 전 들으면 ㅂㅅ같은성이라 진짜 개명하고싶었음..
저도 지역에서 나름 희귀 본관이었는데 중학교때 국어 선생님께서 할아버지? 셨는데 엄청 반가워하고 챙겨주셨어요
6.25 한국전쟁 후 지역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족보 위조가 안착될 수 있었을 겁니다. 동네사람들끼리 다들 알고 지내면 이런 위조가 쉽게 들키거든요. 사실 이렇게 인구가 휘저어진덕에 사회에서 신분제가 빨리 제거되는 순기능도 있었다던가...
주2회도 했으니 주3회도 쌉가능!! ㅍㅇㅌ
이거 교양만두님이 보면 안된다고 할듯
@@센서님 교양만두님 힘들게 하지마삼
Qq
주4회 할걸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베르길리우스(B.C.70-B.C.19)
노비들이 성을 갖게되면서, 자기 주인 성씨를 많이 썼고 공노비들은 대부분 전주이씨를 썼다고하죠
그냥 무슨 성을 가지고 있든 집안에 실제 현금화 가능한 종친 땅 없으면 상놈집안 출신 90프로임 ㅋㅋㅋ
신라김씨인데 전국 600명살고 조선시대 미비한가문으로 왕비도 나왔어요. 신라땐 왕손이었지만!
아마도 성씨로 양반노비 따지는건 앞으로 없어질듯
역시 한국사 교양만두가 젤젬!!
한국사 많이주세요!!!!!!
드르와악!!!
엌 저는 창영성씨 인데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로 만난 애들이 성씨가 뭐냐고 물으면 성씨라고 답해서 무한의 말 주고받기를 했던 기억이 있네요ㅋㅋㅋ
저희 학교에도 성씨 있는데ㅋㅋㅋ 신기하네요
오겜 우승한 성기훈이가 여깄었구나
공감되네요ㅋㅋ 저도 창녕 성씨인데 학기 초에 성씨라고 말하면 애들이 한번에 못 알아듣곤 하죠
@@woon_in 성기훈ㅋㅋㅋ
ㄹㅇ 맨날 송씨로 알아먹음
중3때 김씨 이씨 박씨 한명도 없는 반이었던적 있는데 선생님도 신기했는지 그때 반애들은 지금까지 모임 만들어서 이름이 ‘김이박 없는 반’ ㅋㅋㅋ
뭐 조금 다르지만 나포함 친구성씨가 박 강 안 최 함 이 서 조 였음 그래서 이름으로 안부르고 서로 박군 안군 서군 이래 불럿음 ㅋㅋㅋㅋㅋ
최까지 없었음 진짜 레전드
와 우째 그럴수가 ㅋㅋ
우와 신기신기~~~
와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통계냐 ㄷㄷ
예전에 저희 아버님께서 하신말씀중에
진짜 양반가인 집안에서 가장어른격인 큰집에는 아주오래된 몇백년은 족히 되보이는 족보가 있으면 양반가일 확률이 높은 집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진짜 양반가들중에 대부분 진짜양반가는 못산데요.
외그러냐면요.
일제시대 부터 6.25때까지 재산을 많이 빼앗겼고
하시더라구요.
양반들이 대부분 독립운동했죠
@@주연이-l7s 나라 팔아먹은 것도 100% 양반들
@@roji4077 극단적이시네 ㅋㅋ 친일파 중에는 조선시대 사람 대우 못받은 사람들도 있다하니 다 양반ㅇ라 할 수 도 없음
진짜 양반가는 본관종가가 존재하고 종가족보에 올라가있으면 양반가라고 할수있죠
그 낡은 족보를 사는 경우도 있어서…
성씨로 따지는게 아니라 본관순위로 따져야 합니다 저는 김씨지만 제 본관의 전국인구는 5만명정도 밖에 안되어 0.001프로도 안됩니다 물론 문과급제자도 있었구요 그만큼 본관순위가 높은 가문에 비해 위조되거나 남발될 확률이 적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고양만두님 오늘도 열심히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재밌고 유익한 채널은 교양만두가
유일한 듯👍👍
친가 어른들 하는 꼴만 보면 개노답 상놈의 집안인데 안동권씨에 안동권씨 집성촌이 할아버지댁이고 거기에 선산까지 있어서 진짜 양반 방계는 맞을지도 모른다는게 소름. 역시 양반이고 천민이고 인성은 신분에 따라가는게 아님.
저도 안동 권씨인데... 족보 너무 무겁고 양이 많아서 첫권과 마지막 권(내 이름 가족이름 있어서)만 빼고 모조리 이사때 내다버렸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대노하실 ??
근데 친가 어른들...진짜 쫌 노답ㅎㅎ
양반이었지만 후대서 교육을 제대로 못받으면 그럴수 있어보여요. 인성도 후천성인가 봅니다.
@@namyoonkwon7954 요새는 전자족보로 많이들 함
@@Jaydyjung 정씨시네요! 저는 의성군파입니다. 반가워요
@@lococo7787 헉 저는 영광파임 반갑습니다
권씨 특인가바욬ㅋㅋㅋㅋㅋ
양반 프라이드 오짐ㅋㅋㅋㅋ
저 또한 권씨
오늘 연관해서 떴는데 저는 사천목씨라는 희귀한 성씨를 가지고있습니다 과거엔 과거급제 1000명 기준으로 1위라고 하는데 전 잘 모르겠더라고여 종친회는 가본적도 없고 선산의 경우에는 집안이 조금 작은 편인데도 1곳을 지니고있고 묘역도 많더라고요 신기합니다 허허
목승화?화교
@@종로너구리-r4c 그분이랑은 아마 머나먼 친척일것 같아요
조선 과거급제 제일 많이 한 집안 광산 김 씨.
@@cleark 정확한 정보 감사합니다
-결국 대부분 신분세탁으로 네임드 성씨로 신분세탁을 한 것이라 서로 혈연관계도
아닐텐데 옛날엔 왜 그렇게 같은 성씨끼리 결혼도 못하게 법으로 막았을까요?
-군대에 있을 때 라,맹,팽씨 본적있었고,
그 이외에 피씨도 2명정도 만난적 있었네요.
한국 팽씨는 명나라 사람이 시조인걸로 암.
@@Heo_dangii 애당초 서류상 같은 가문인거지 실제로 같은 핏줄인건 아니잖아요. 자기네들끼리도 서로 돈으로산 족보라 서로 다른 핏줄인거 뻔히 알면서 그런 법안이 있었다는게 좀 납득이 안가서요.
일제가 처음 민법을 만들때 보니까
조선인들은 같은 성끼리 결혼하지
않는 관습이 있는 것을 알고
법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김이박의 90% 이상이 짝퉁이란게 불편한 진실
90%가 아니라 99%가 상놈임
조상이 양반 출신이면 뭐해, 현생은 노비인데…….
신통한 댓글입니다 ^^
조상이 양반이면 독립유공자나 625유공자 정도 아니면 물려주는 재산 많아야지 아니면 걍 양인이거나 노비출신일 확률 100퍼
중종이 재산이 많아요 양녕대군종중도 7호선이 개통되면서 땅과건물까지 1700억이 넘습니다 종중재산은 개발때문에 어쩔수없이 팔때 종중멤버들이 다 나누어갖습니다
518유공자면 대빵 입니다. 자자손손. 호의호식. 할수있습니다
현생 노비의 삶이 옛날 양반보다 나을긴데
중간 중간 화면이 흐리게만 나오는거 저만 그런가요?
어릴때 항상 신씨여서 신라면이라고 불렸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지금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참 재미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유얼 동족...
@@백하쑤 웰컴 패밀리 ^^
저는 진찌라서 진라면 이었는데 하핳.....
@@bsteriv6669 헬로우 신씨!
@@몸막-l1h 앗.. 아아 ㅋㅋㅋ ㅠㅜ
어릴때 라면 별명은 피할수 없는 숙명인듯 합니다 ㅎㅎㅎㅎ
전 피씨인데 어렸을때 부터 쌍놈 성이라고 놀림 당한적도 많았는데 오늘 좋은거 배워 갑니다 감사합니다 ^^;;
피씨는 양반 성 같은데...
ㅋㅋㅋ 제 성도 피씨 비슷하게 드문성인데 어릴때 어떤애가 제 성 보고 저희아버지 농사지으시냐고 말한적있는데 그때 진짜 상처받았음ㅠㅠ
피자생각났네요ㅜ허허...
유명한 문학작가이자 수필가로
피천득 선생님이 있습니다.
왠지 피씨도 댓글 달거같다 싶어서 찾아봤는데 역시 있네요 반갑습니다.
어릴땐 성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는데,나이를 좀 먹고나니 유니크한 성을 가진게 오히려 자랑스럽네요 ㅋ
뭔가 강력한 느낌이 든달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는데,피씨성을 가진 아이를 가질 생각하면 좋데요 ㅋㅋ
참고로 덧붙이자면 6.25 전쟁때 많은 사람들이 족보를 뺏기거나 잃은 사람들은 한자로 자신의 성씨를 신고 했는데 이때 양반 성씨로 신고하는 사람이 많아, 현재 성씨로 양반을 가린다는것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저희 외가댁이 그때 족보를 도난당하셨답니다
아고 ㅜㅜ 어쩌누?
근데 이미 몇백년전에 조선에 성씨가 다 있었다고 나오네요...
뭐야 이분 목소리도 좋고 내용도 알차네 구독할게요!!
여러분이 어떤 핏줄을 따라 내려왔는지는 중요하지않습니다. 여러분의 돈과 현생을 응원합니다.🙂
옛날에는 노비도 신분세탁하기위해
주인장 성씨 따라했다는 썰들었는데
자세한 설명들을수있어서 좋네요~
김일성의 아버지가 신분세탁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제가 들어와서 신분제를 폐지할때 주인마님 성씨가 밀양박씨면. 그집 노비들 성씨를 밀양박씨로,, 대감마님 성씨가 노비 성씨가 된거죠 보통 노비가 30명되면 다 밀양박씨 광산김씨면 다 김씨로. 그래서. 한국이 김이박이. 많다는 설이죠. 그래서 희귀성씨가 순도 100%양반가문이라는 설이 있죠
@want nobadi 맞아요희귀성씨 역사를 보면 슬프죠..
김이박 성씨를 가진 분들은 처음 만나면 어디 성씨냐, 항렬자는 뭐냐 물으며 왕족 얘기하는 게 국룰이지만 전 홍씨라 늘 이런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지, 직접 겪어 본 적이 없네요ㅋㅋㅋ 어디가면 홍씨는 늘 저 혼자였는데 대만에 살고있는 지금은 홍씨가 꽤나 많아서 이름만 보면 한국인인 줄 아무도 모르더라구요 한국인인 거 알면 다들 놀라면서 한국 사람은 거의 다 김씨 아니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아요ㅠㅠㅋㅋ 이 내용 이야기해줘야겠네요😄
참고로 우리 조상님 중엔 홍경래의 난으로 유명한 홍경래가 있습니다❤️ 홍씨 화이팅!!
남양 홍씨 당홍계가 중국의 당나라에서 온 성씨로 알고 있어요. 중국을 시조로 한 성씨 많습니다.
살면서 만났던 홍씨 집안 사람들 특징은 남자들은 인물이 별로고 머리가 매우 좋음. 여자들은 미인이 많음.
@@seanlake1707 우와 신기하게도 저희 집안도 인물은 음... 좀... 그래요 (....죄송) 저 대에는 저만 여자고 다 남자인데 다들 학벌도 좋고 직업도 좋습니다!
아쉽게도 전 공부랑은 담을 쌓은 외가를 닮아서 저들과 달리 평범한 대학 나와 평범하게 살고있지만 ㅠㅠ 그래도 외가 닮은 덕에 쌍커풀 수술비와 치아교정비는 아꼈네요^^ㅋㅋㅋㅋㅋ
누루아치 아들 홍타이지도 있자네요ㅋㅋ
현 사회 성은 그닥 의미없음 고려왕조때 공신들에게 자신의 성을 하사한 왕건때부터 왕씨성과 직접 성을 만들어준 신씨나 많은 공을세운 유씨 복씨 박씨 김씨 최씨등을 제외한 나머지 성들은 은근히 무시 받았었다고 하더이다
@@제임스-d3l 홍타이지 성은 아이신기오로 입니다
영상제목에 답을 해주셔야죠.
조상님 신분을 어떻게 알며 가짜본관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지요?
몇년전 돌아가신 울 아버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우리는 경주김씨 양반 가문이라는 정신승리를 하시고 돌아가셨는데,
난 이미 알고 있었지
증조 할머니 성함이 언년이였다는 것을...
에고…..
옛날에는 양반이라도 여자
이름이 따로 없기도 했습니다.
저희집도 증조부때 서자출신이라 족보 신경 안쓰고 살았는데 중앙종친회에서 연락와서 족보에 올려줄테니 종친회 참석하고 회비내라고해서 걍 거절함
...아명일수도..
@@hyeonsseungsseungi 양반가도 딸 이름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친정집에서 부르는 아명이 있었어요.(한자이름) 그리고 혼인하면 더이상 아명으로 안 부르고 부인의 이름(아명)은 물어봐도 안 되고 아무에게도 안 알려줌. 대신 호를 지음. 사임당 윤지당같이.
그래서 할머니는(1912년생) 한자이름이 있으셨지만, 그 윗대로 증조모, 고조모, 현조모는 본관+성씨만 알아요. 부인의 아명은 족보와 비문에 쓰지 않아서요.
제가 정말 흔치않은 성씨를 가졌는데 친할아버지께서 6.25 직전에 이북에서 넘어오셨거든요~이북에 많은 성씨라는걸 여기서 보니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신기하고 재밌네요ㅎㅎ
성이 뭔데요! 궁금합니다!
계씨
호씨?
폰씨 입니다
안다다씨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이,박 중에 하나가 맞는다라는 말은 팩트였군
저는 아버지때까지만 해도 집성촌으로 사셨대요.
언제였지... 아버지가 고향모임 간다고 하셨는데 알고보니 고향 모임 모두가 같은 성씨라 집안사람들 모임 같은거더라구요...
그때 처음 집성촌이라는걸 알게 됐는데.. 정말 신기한거같아요.
그게 일제시대 625이후로 전혀 신빙성 없어여. 국내 메이져 성씨 장손이란 사람도 알고보니 첩의 자식의 후손인거 나올때 개웃겼는데 ㅋㅋ 어차피 반상이 사라진 한국에서 의미없어여. 그냥 희귀성이면 조상이 양반인가 하고 흔한성이면 돌쇠구나 해도 되지만 현생에선 아무 의미없고 인생업적 구라왕족이 최대업적인 사람들만 신경씀 ㅋ
@@AreYouTheNo.1 집성촌 있으면 거의 확실한건데요. 또 족보 시작이 고려시대에 있다면 맞습니다.
@@영호임-z8q 안녕하세요, 저는 신안주씨 이고 어머니는 양씨 인데 , 금산에 양씨 집성촌에서 자라셨거든요,6.25전부터 살던 곳이고 그곳 근처 산이랑 밭 전부 양씨 일가껀데 집성촌이면 양반이 맞아요~!!공감합니다
님이 여자인가 보죠? 그게 왜 신기함?
@@LoveJOO5055제가 신안주씨 35대손 입니다. 반갑습니다 님은 몇대손 이신가요?
본인의 고향 혹은 부모님이 태어나신 곳이 집성촌(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 마을)이라면 소위 말하는 양반집 후손입니다. 조선 후기에 족보 위조 및 매관매직 등으로 양반 수가 급증하게 되어 기존 양반 가문들이 저런 신향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다며 집안의 위상을 높이고자 같은 성씨의 사람들끼리 부락을 꾸려 살았죠. 지금도 시골에 집성촌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건아닌게 그 양반집 노비들도 다 그 주인님 성 따라써서 그냥 그렇게 된 ..마을도 있습니다.
@@나빌레라-n1z 아 그렇군요..ㄷㄷ 제가 태어난 동네는 어르신들 피셜로는 일제강점기 시절만 해도 노비들이 있었고 노비들의 이름은 주인집 어른이 지어주되 다들 김씨로 통일해서 지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시골집에 저희 집성촌 성씨를 쓰는 어른들이 많은 만큼 김씨 성을 쓰는 사람들도 꽤 많음..
집성촌+근처에 선산 있으면 양반 맞음?
@@sungbinee8 ㅇㅇ맞음 보통 집성촌은 근처에 집안 선산을 끼고 있음. 동네 뒷산부터 해서 옆동네 산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임. 그리고 선산에 가문 제실까지 있으면 완-벽
저희고향 근처에 예전의 노비들이 우리성을 따라서 만든 집성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하고 아주 감정이 안좋았죠ㅎ 집성촌만 있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안에 종가가 있고 중시조를 모신 사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역으로 유명한 인물의 본관이지만 흔하지 않을 경우엔 진짜일 확률이 높다고도 합니다. 동네방네 알려진 유명한 본관 (영상에 나온 곳들처럼) 일수록 가짜가 많이 생겨났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본관일 경우엔 가짜도 그만큼 안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나...?
봉산 이씨. 드물더군요
밀양박이 아닌 음성박 입니다. 본관이 음성인 사람은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선조께서 태조 이성계 개국 공신으로 무관 출신이라고 합니다. 운동 DNA가 하나도 없는 우리집 남매들을 보면 가끔 의심스럽기도....
요즘 알고리즘 떠서 재밌게 보고 있는데 영상 중간중간 모자이크는 뭔가요? 저작권때매 그런건가 왜 굳이 저작권 걸리는 영상을 넣고 모자이크까지 하는 수고를...아님 원본은 이게 아닌데 저작권 걸려서 모자이크하고 재업하신건가
성명학에 관심이 있는데 유사 내용을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산,제사,족보 있으면 양반 맞지요
참고로 족보에는 증조부,외조부까지
기록 됩니다. 물론 타고 올라가면
몇십대라도 확인됩니다
살면서 사람들 다 제사지내면 가는 큰집이 기와집에 선산 3개씩 타는줄 알았는데 고등학교가서야 아니라는걸 깨달아서 컬쳐쇼크였었던 기억이 있네요
찐양반이시네 ㅋ
전 벌초땜시 선산 타느라 하루종일 고생한 기억이...국가사업때 국고에 매입해서 지금은 집안 공동묘지 조성중
류씨네요 찐 성씨 외가쪽이 류씨인데 예전 정권에서 성씨에 ㄹ이 붙으면 안된다고 유씨로 강제로 바뀌었다가 복구 해줄때 안하셔서 유씨를 쓰고 계세요.
류성룡 그쪽이신가 보다
@@jikim6870 지금은 쟤나 너나 우리나 같은 평민 ㅋㅋㅋㅋ
행동이 천박하고 저질스러우면 조상이 노비이고
옷을 추하게 입었어도 말한마디와 행동이 양반같으면 양반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음 피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좋은 집안의 유전자라면 당연히 성격또한 좋겠지
근데 무관출신 양반이면 좀 거칠지 않을까요
잘나가다가 끝에가서 꼴깝떠네.
양반들이 남에게 베풀고 괸대한 선인이라고 착각하는 나이만 먹은 철부지.
대부분의 위세있는 양반들이 백성들 악착같이 착취한 사람들이야. 정신차려 ㅋㅋ
진짜 양반 성씨는 본적에 땅이 많습니다
부모님한테 물어보시면 알 수 있답니다
그리고 시골집에 엄청큰 족보표가 있음
결정적으로 조상님들의 초상화랑 가족이 닮았음
하나도 안맞네 ㅎㅎ... 양반이라도 장남말고는 계속 갈라져서 땅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부모님이라고 조선시대때 부터 성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고 나오는데
그걸 알방도가 없습니다. 족보위조도 위에 영상에 나와요 마지막은 진짜 말도 안됨... 모계쪽 얼굴이 다른데 어떻게 몇대 후손이 닯는게 이상하지요..
조상이 부자면 땅이 많을뿐입니다. 아마 대상의 후손일지도 모르죠. 막대한 재화로 땅도 많이 사고 명문가의 족보도 사고.
@@김치-n3v
땅은 그렇다 치고 초상화는 빼박이라고 봅니다. 유전자힘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진짜양반성씨같은소리하네ㅋㅋ
선산,제사,족보 있으면
양반 맞아요.
디지털 족보로 찾기 추천...
참고로 현시대라도 본처 자식
아니면 족보 등재 어려워요.
물론 본처자식이라 등재한 경우면
아주 아주 가끔 있지요
딸인 경우 현대에는 꽤 많지만
50년 전만 해도 고모들은 없고요
시집간 집에 증조까지 등록 됩니다
희안하게도 시집온 여성은 이름이 없이
본관과 성씨만 족보에 등록 됩니다.
저는 문씨인데 어릴적 학교 친구들이 자기 집안 다들 명문가라고 자랑할때 문씨는 천민이라고 다들 저를 놀리더라구여. 그래서 아버지에게 우리 족보가 궁금하다고 하니 아버지가 낡은 족보를 가져오셔서 설명을 하는데 정말 참담하더라구여 우리집안이 양반은 맞는데, 전부 진사 생원으로 끝나더라구여. 한마디로 절름발이 양반이엇죠. 조상들 대부분이 한마디로 한량인 집안이었죠. 너무 충격받앗습니다. 왜 우리집안이 그런거지 하고 조사를 해보니, 우리집안이 고려시대에는 문벌귀족 가문이었다고 하더군여. 그러나 고려에 끝가지 충성한 집안이라 결국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하지않고 양반신분 유지할수 있는 진사 생원 시험만 본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역사공부를 더하니간 조선시대 오리지널 양반은 5%도 안되는걸 보고는 다들 성울 위조했구나라는것을 알았죠
진사, 생원 시험도 못 붙는 양반들도 많았습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조선후기에는 양반가문도 인구가 많아져 진사 생원도 못붙는 사람 많았데요. 권반은 아니었겠지만 나름 지방에서는 향반으로 체면치례할 수있었습니닺
우리 외가도 그런 드문 성씨. 봉산 이씨.
3분30초 로얄패밀리에 평산신씨 넣어주셔서 감사드려요 ㅋㅋㅋㅋ
평산신씨는 안나오네 했는데
마지막에 평산신씨 넣어주심 ㅋㅋㅋㅋ
참고로
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는
혼인 하지 않았어요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고해서요
심지어 김해 구지봉에서 같이 제사도 지냅니다
김해 허씨의 조상은 김수로 와이프인 인도인 출신 허황옥 아님?
@@user-tendo 허황옥 남편이 김해김씨 시조임
@@jhy75 그게 김수로지요.
@@jhy75 근데 인천 이씨의 조상은 혹시 아십니까?
허황후 신화는 김유신의 후손이 조작한 것이다. -검색
근데 혹시 영상 중간에 자료화면이 뿌옇게 가려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거 해결 가능한가요?
원래는 없었던걸로 아는데 지금은 저작권에 걸려서 모자이크처리 된거같아요ㅜㅜ
최수종 씨 언급할 때마다 빵 터졌어요..
발해 건국시킨 대조영 사도세자 해상왕 장보고 고려건국 왕건 신라 김춘추 등등 ㅋ 사극왕 최수종 ㅋㅋㅋ
저도 성이 특이해서 성이나 본관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지는가 같아여ㅎㅎㅎ제가 사는 마을도 친척들이 모여살던 집성촌이였거든요ㅎㅎㅎㅎ
어렸을때는 호 자로 시작하는 모든것들이 제 별명이었는데(호빵호떡호호아줌마호산나등등)
어린맘에 나도 김이박씨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더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니 이게 저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더라구요ㅎㅎㅎㅎㅎ
아무튼 성의 유래 재밌게 잘 봤습니다🙏
우아 호씨는 처음.. 호랭이 물어갈
제시도 본명이 호현주로 성이 호씨인게 신기
역사적으로 17세기 이전에 조성된 선산이 있다면 양반이라고들 하더군요. 방송에서도 17세기 이후 공명첩으로 양반 급증이라는 걸 보니 맞는 말 같네요.
우리문중에 17세기이전부터 선산있는데,양반이네 ㅎ
김이박 99.9퍼는 상놈이라는건가요
선산외에도 왕이 찍어준 도장같은게 집안 대대로 내려옵니다. 장원급제 시험 합격 답안지, 임금님이 찍어준 도장등 벼슬한 집안이면 유물이 쏟아지게 내려옴 직접 눈으로 확인함
저희 집안은 좌의정 영의정 등 한 집안인데 왕이 하사해준 땅, 노비 문서(노비 이름이 쓰여진 12장)등 대대로 내려옴
우리집도 나 어릴때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두달에 한번? 정도였는데 지금은 할아버지 제사 그리고 설날에 제사긴 한데 진짜 초간단.. 으로하고 끝.. 😅
천방지축마골피중 목천마씨인데, 워낙에 성씨로 무시를 많이 받아와서 속이 뚫리는 느낌입니다 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마씨네,,,,ㅎㄷㄷ
마씨 명문가임
장흥마씨와 목천마씨는 마려가 백제 개국공신으로 현재 전라남도 장흥지역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장흥마씨가 되었고 목천마씨는 고려문종때 목천읍을 본관으로 분파가 되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공신이 3명 이고 장흥과 목천마씨를 합해 정시와 식년시를 통해 총 36명의 급제자를 배출했습니다.
태종때 좌명공신 마천목이 있고 신숙주 집안과는 사돈이며 그 외증손녀가 폐비윤씨이니 조선왕가와 혈통도 연결되어있네요, 세조때 숭정대부에 봉해진 마승,동지 중추부사에 오른 마사인, 인조때 어영대장으로 봉림대군을 청나라에서 보필한 마지룡,고종때 통정대부중추원의관을 지낸 마종성등이 있습니다.
명량해전때 적진에 분투하던 이순신을 구하다 적탄에 전사한 선공감 주부 마하수라는 분도,남원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신 구례현감 마응방도 있습니다.
선조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ㅎㅎ
2023년 기준 분파까지 합쳐 3만명이 되지 않으니 조선조에는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인구수라 할수 있고, 당상관에 오른 인물들이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급제자와 당상관급 인물들이 드문드문 있어 양반의 명맥은 이어왔네요.
소수희귀성씨에 인기도 없었을 테니 다른 성씨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입니다.
장군집안!
오래된 성씨긴 한데 인구수가 적네요.
전 전씨인데 아버지가 조선건국 때 왕씨들이 성을 속일려고 갓써서 全씨로 양옆을 막아서 田씨로 바꿧다 하드라고요. 물론 카더라정도로 알고있지만 성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니 문뜩 떠올랐습니다 ㅋㅋ
맞을거임
점하나 찍어서 옥(玉)씨 로 했단 소리도 들은적 있음
밭전씨가 담양전씨와 남양전씨가 있는데 남양전씨가 왕씨 왕족 후손입니다. 저도 그냥 카더라인줄 알았는데 북한의 고려 왕족 후손 살아계신분께서 다큐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그게 진짜였구나 라는 걸 알게되었거든요. 물론 담양전씨도 양반가였고요 지금도 집성촌이있구요. 저도 담양전씨에요 반가워용
저는 어디선가 밭전자 쓰는 전씨들은 노비출신이라 성 지을때 밭을 뜻하는 밭전자를 쓴거라는 카더라 썰을 들었는데, 그것도 역시나 사실이 아니었나 보군요
@@madelyn04mcw 그 당시엔 밭이 엄청 귀했습니다 농업사회인데요..
전태규
공명첩의 영향도 있지만 실상은 일제가 호적법을 시행하면서 성씨가 없던 노비 신분인 자들을 주인의 성씨를 따서 부여한 영향도 매우 큽니다. 사실상 조선 노예제도를 선언적으로 없앤 건 김홍집 내각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없앤건 일제죠. 이 때부터 모든 사람이 성씨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부분들에 불만을 갖은 양반가문들이 독립운동을 하기 시작한것입니다. 상놈들은 일제를 환영할수밖게 없었죠.
애초에 동족이 동족을 노예로 부리던 미친 국가였네요.. 일제를 옹호하진않지만 조선의 패망은 너무나 속시원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충격 먹었다.. 지금까지 헛 살았다니...? 뿌리깊은 집안인줄 알았는데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닐수도가 아니고 99퍼 아님
님 상놈집안임
@@따옹치 느그 아부지가?
김해 김, 전주 이, 밀양 박이면 거의 90퍼센트 이상 ㅋㅋ 오히려 소수 성씨면 뿌리깊은 집안일 경우 높음
@@따옹치 님두요. 천비출신인듯 말하는 꼬라지가 딱 티가 남. 역시 천비
그래서 희귀성을 가질수록 진짜 조상 족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몇십년 전 부터 알고 있습니다.
(가구 수가 적으니 숨어들어 갈 수도 없고, 인기도 원래 없고)
내가 다녔던 회사 중에 사장님이 같은 성씨였지요... 그래서 첫 회식 때... 호구 조사 들어갔는데... 알고 봤더니 사장님이 나보다 항렬이 한참 낮은(제가 할아버지 항렬) .. 그것도 가까운 친척이었음. 그때부터 회사 생활이 피긴 했으나... 몇 달 후... 그 사장은 2달 치 임금을 체불하고 야간 도주했죠... 쩝.. ㅋㅋㅋ
야반도주
집안내력인가봐요
슬픈 집안사네 같은집안을 등치다니...쌍놈의 사장
60대 상당수와 70대 이상은 대부분 본인 조상이 양반인지 평민이지 천민인지 알더라고요. 아무래도 어릴때 조부모나 부모에게서 듣고 겪은 신분제 영향이 삶에 남아 있어선거같아요. 근데 자식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도시로 이주한뒤에 고향을 다시는 안가는 방식으로 과거를 지우고 산거같아요.
한국에서 신분제가 사라진데는 역시 전쟁과 곧이어진 산업화가 영향이 정말 큰듯요. 이렇게 변화가 느린 시골까지 신분제가 단시간안에 사라진 나라가 정말 거의 없을 것 같아요ㅇㅇ
맞아요. 일제시대만 해도 지방에서는 양반들이 거들먹거리며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신분제가 없어졌죠.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는데 돈이 신분이 되는 사회가 되었죠.
상놈출신인걸 어떻게 알수있나요
웃긴건 개나소나 다 지들이 양반집안이라함ㅋㅋㅋㅋ
지금 60대분들도 다 한국전쟁 이후 세대입니다. 한국전쟁 때는 그나마 관습적으로 남아있었던 신분제의 그림자가 완전히 없어졌어요. 양반이었던 사람, 평민, 노비출신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난한데 무슨 신분제??
출신을 안다구요?? 그걸 어찌 압니까? 또 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세요? 족보 그거 다 믿을바 못 됩니다.
할아버지대 부터 도시에 살면서 집성촌에 가본적없는..,.그리고 조상들의 선산이 몇개나되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본인들이 상놈의 씨 인지 금방알수 있습니다.
나 예전에 친구가 천민의 성 아니냐고 놀리기에 너야말로 일제시대 양반족보 산 노비일 거다.
우리는 조선시대 누구 누구 누구 정승판서 성씨가 있다. 라고 반박하니 오히려 당혹하며 화내더라. ㅋㅋ
김 이 박.. 이 오히려 천민의 후손일 확률이 더 높으니 이런 놀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물론 지금은 전혀 의미없는 논쟁일뿐이지만..
거래처 부장님이랑 성에 본관 고향까지 같아서 신기했는데 알고보니 진짜 가족이었음ㅋㅋㅋ….
신기한인연이네요 ㅋㅋㅋ
성씨에 무슨파로 나뉘는것도 다뤄주세요!!항상 재밋게보고있습니다~!!
그걸 모른다면 이미 상놈입니다.
그건 성씨 아래로 자손들이 각자 파를 만든거에요
교양만두님 3:30에 화산 이씨 종문이 달성 서씨 종문으로 잘못 나왔네요.
화산 이씨는 베트남 왕족 성씨예요. 아주 희귀하죠.
지금 살고 있는 우리동네가 화산이씨 본고장이죠 충효당도 있고 매년 축제때 리왕조 뮤지컬공연도 하죠
저는 성이 길씨고 이름이 은지라 여러서부터 기름진, 길은쥐, Long mouse, 제주도신비의길길이가얼마나길은지 등등으로 불렸죠ㅎㅎ......
시대가 바뀌면서 양반성씨도 바뀌었죠
대표적으로
삼성 이씨
현대 정씨
애플 스씨
엘지 구씨
Sk 최씨
신세계 정씨
롯데 신씨
gs 방씨
오뚝 함씨
애플은 잡씨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맞닼ㅋㅋㅋㅋㅋ
그렇게 조선을 욕하고 제사지내기도 싫어하는데 물어봐서 양반집안이 아닌자를 본적이 없다
제가 구독하길 정말 잘했다는 유일한 체널입니다. 몰랐던 사실도 알게되고 또 재밌게 알려주셔서 너무 집중해서 보게 되요 늦게 알았다는 사실이 아쉽지만ㅜ 정말 애정있게 보고있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드리구 유투브 영상만 하시는게 아니니까 너무 지치지 않을 만큼만 화이팅 해주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고대때{sov동이족}들{몽골어}+{한국어}+{만주어}가
서로 대화가 통했다는 기록
이 고대때 기록한{sov동이족}들
동남아 뿌리이 기록한
동북아 뿌리{sov동이족}들 기록들 복붙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
동이들이 서로 전하여 오기를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이 부여와 대부분 같다
(후한서 동이열전 감)
예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후한서 동이열전 동옥저)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양서 동이열전 백제)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양서 동이열전 신라)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신당서 권220 열전 동이)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 말하기를 북부여의 후예하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부여가 멸망하고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두막루는
300여년 이후 발해에 병합
(위서 권100 열전 88 실위)
실위(몽골)의 언어는 고막해(선비) 거란 두막루(부여)국과 같다
/두막루(부여)는 실위(몽골의 기원)의 동쪽에 있었는데 두막루의
언어와 선비족의 후예 고막해와 거란의 언어가 같음
/1300여년 전에는 부여(고조선어)어와 실위(원몽골어)어와
고막해(선비족 후예)어와 거란(선비족 후예)어가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비슷함
/고조선의 해체기에 고조선에 종속해 있던 유목민족들은
독립을 하고 그 후예들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지고
고조선 문명권에 속해있던 민족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공통 조어로 공유함
/두막루를 통합한 남북국시대의 발해는 고구려어를 사용함
/발해가 고구려어를 사용했다는
(속일본기 권13 천평 12년(740년))
천황이 대극전에 임하여 신년조회를 받았다
발해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함께 참석했다
/신라학어는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일본에 파견된 신라인
일본은 발해 사신과의 통역을 위해 신라학어와 함께 참석
/부여(한국), 실위(몽골), 고막해(선비족), 거란(선비족),
옥저,예,맥,한,고구려,백제,신라,두막루,발해의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다는 기록들은 고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고조선어 후예!!!!!!!!!!!!!
이씨이긴 한데 본관이 희귀한 본관이라 아직 친인척 외에는 같은 본관을 본 적이 없는 1인입니다. 그럼 찐족보일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까요ㅋㅋ
저도 원주 이씨입니다ㅎㅎ
3:00 일본은 앞에오는게 성 뒤에가 이름인 우리나라랑 같은 이름체계인데 사쿠라이상 이라고 적어두는게 맞을듯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이시...
@@hyunkim7607 저게 드립이라고요? 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어떤드립이죠?
@@검열당함 이 분들 교양있는 분들인데, 설마 모를까요.
제 성씨인 김씨는 흔히 아는 경주 김씨 김해 김씨가 아니라 선산 김씨입니다. 예전엔 일선 김씨라고 불렸대요.
아버지께서 파까지 말씀해주셨었는데 파는 뭐였는지 잘 기억 안나네요. 하여간 김씨 중에선 매우 희귀하답니다.
제가 언제 성씨, 본관 숫자 랭킹을 본적 있는데
다른 김씨는 전부다 20위권 내에 있는데
선산 김씨는 혼자 저~기 170위대...
뭐, 그냥 그렇다고요.
파는 무파마 ㅋ
성씨와 족보가 워낙 사고팔고 위조하고 그래서 실제 조상 성이 뭔지는 모르는 법이지요..
오 저도 선산 김씨인데
선산 김씨는 유의해야 하는 게, 이전 일선 김씨와 들성 김씨가 현재 같이 선산 김씨라고 불리는 이조 동성동본 집안이라는 겁니다.
저희남편 선산 김씨인데 괜히반갑네요ㅎㅎㅎㅎ
요청에 따라 원글은 삭제합니다.
논란을 만들려던 건 아닌데 썰을 진지하게 듣는 분이 있으시네요 ㅜㅜ
마지막으로 달린 댓글은 순화해서 삭제 요청이지 사실상 비방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댓글은 신고하고 글도 삭제했네요.
홧김에 글을 지우긴 했는데 섣부른 감이 없잖아 있네요...
족보가지고 양반. 상민 따지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멍청한 짓입니다.
1:23 오늘 시험에 한자 姓에 대한 내용 나왔는데.. 영상이 하루만 일찍 올라왔더라면ㅠㅠㅠㅠㅠㅠㅠ 아쉽지만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어쩐지 저희 어머니 성씨가 계 씨 성이신데 살면서 저희어머니 쪽말고는
한번도 보지못한 성씨라고 생각했는데 저런이유가 있었네여
가수 계은숙씨 유명한대~
계백장군 유명한데
계네빈 guinaifen
진보이씨 송당파 어릴땐 놀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자랑스럽!
집안에 유명인도 많구용ㅋㅋ
일단 이원록이라고 말하면 잘모르지만 이육사 라고 말하면 다아시는그분도 우리집안 사람이고 영화계 거장 이창동 감독님도 저희윗대 아재로 알고있음
우와 멋있어요...!
진보이씨 같은집안 진성이씨 요기 한명더요 🙋🏻♀️반초당파~~~
@@솜대길 반갑습니다ㅎㅎ
@@mklee-o9o 저두요ㅎㅎㅎ
와... 성씨는 모르겠고 같은 닉네임 반갑습니다
이씨인데 전국적으로 5만정도 있어서 적은편같아요. 3세대 전에 북한에서 내려오셔서 족보는 없는데 저도 제 뿌리가 궁금해요 종친회에 껴달라고 하니 족보 없어서 못받아준다고 했대요. 엄마쪽은 영상에도 나온 엄청 흔한 성인데 종묘제례에도 매년 참석해서 진짜인거 같아요. 어느후손일까 궁금해서 백과사전 찾아봤는데 엄청 괴팍하고 좋은 조상은 아니더라구요 ㅋㅋㅋㅋ 아빠쪽이 늘 궁금한데 분단된 상황이라 더 알수가 없네요
전 풍산홍씨인데 학교에서 사회선생님이 풍산홍씨 있냐고 물어보셔서 저 혼자 손들었는데 웃으시면서 악수좀 해보자그러고 이름,가족관계등등 많이 물어보셨는데 왜그러시냐고 여쭤보니까 정조대왕 엄마가 풍산홍씨라서 자기도 기 받아간다고 했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혜경궁 홍씨가 풍산 홍입니다. 홍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양홍씨는 풍산홍이라고하면 갈라져나간 홍씨라고하는데 시조가 다르죠
아.. ㅋㅋㅋ
으이구 각 성씨마다 유명한 사람은 다 있는데 ㅋㅋ
@@tkdvPehoska 저희 큰 고모부가 풍산 홍씨인데 고모부 친가가 엄청 부유하셨어요.. 저희는 경주 최 가 저희도 재산이 많은 집안이기도 했고.. 문제는 고모부가 재산 많고 손귀한 집안 막내이자 장손이라 한량이셨음;;;;; 때문에 재산 털어먹고 쫄딱 망해 고모랑 고종사촌 오빠들 언니가 엄청 고생하셨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YSCh01-xj8vz 원래 부자이면 자식이 병신이란 말도 있던데요~
그런 자식이 조상들이 힘들게 축척해온 부를 흥청망청쓰고 그지가 되더라구요.
저또한 생모쪽이 엄청난 부자(홍진사댁으로 불림) 99칸집에 12칸 대궐이있고 현금많고, 면단위만한 땅도 있었다고함.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이 딱맞음 난 그땅,돈.대궐 냄새도 못맡아봄.
생모도 35년만에 처음 보았음. 그냥 개막장임
지금은 생모와도 연락안함.
지금 30대인데 어릴 때 본관과 항렬 등을 아버지, 할아버지께 배우고 했었는데요. 앞으론 본관, 항렬, 족보, 조상, 제사, 돌림자 등등 아예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질 것 같은데 양반이니 그런 거 따지는 유치한 이유보단 마치 조부모, 외조부, 부모의 일생과 성함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듯, 그러한 것들이 대대손손 대한민국 문화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몰라도 상관없고 알아도 쓸데없을지 몰라도 마치 전래동화처럼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그런 게 없어져가는 건 참 아쉬워요..
저는 집에 장남으로 종친회 같은데 참석하라고 하는데, 참석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종친회에서 한분도 않왔으면서, 인쇄된 족보보내주면서 돈뜯어 내려고 하는게 괴씸해서....
@@This_is_a_competition아쉬우면 너만해 난 하기싫어서 안할거
가야의 성씨인 김해김씨가 이렇게 많다는게 너무 신기하긴 하다..
왕이 바뀌는 대로 성씨가 바뀌던 시대를 살았다고... 6.25 이후 신분제가 사라짐과 동시에 족보가 다 짝퉁으로 만들어 졌다는.. 중학생때엿나 ...본이 궁금했던 저는 .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크흑..
그결과 " 임(任) " 씨인 저는 .. 한국 성씨가 아니었고...OTL... 중국에서 넘어온 성씨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나 찾아보니 관직도 했던 조상도 있으니 뭐 ..그냥 저냥... 그러나 어릴 땐 한반에 임씨가 2명 인데서로 한자가 달라서 이유없이 적대적? 인 사이가 되기도 하고 ㅋ 뭐 나름...좋은 영상이었네요. 흠. 에...저는 한쿡인 이다 하오. ㅋㅋㅋ
고려시대때 태후도 있죠.
아들 셋이 왕이 된..
삼국시대인가 통일신라인가때인가..에도 권력 잡은거 같긴 한데..
어쨌즌 고려왕족 외척세력이라 조선시대때 밀려나서 그 후로는 가문이 별로 돈이 없죠;;
아... 풍천... 외가가 풍천 임씨에요
중부고속도로 어딘가에 황산이라고 황희정승댁 황씨할머니가 시집올때 들고오신 산에 선산을 꾸몄댔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원래 본가는 중국 절강성이던가 그랬는데 원나라때 제국대장공주 시집올때 따라왔다던가...
암튼 임씨 노인네들 대단해서 족보들고 대만가서 대만쪽 족보랑 맞춰봤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