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도와 격이 사라지고 돈만 남았습니다. 정의가 아니고 욕망만 강물처럼 흘러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아요. 사회 상위계층일수록 최소한의 도와 격을 지켜야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가는데.... 여유가 있어도 안 지킵니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돈만 갈구하는 거 같아요.
한강 작가님 인터뷰가 기억이 납니다. 소년이 온다를 끝끝내 시작하지 못하고 숙제처럼 마음에 지고다니실 때에, 5.18당시 어떤 교사의 기록을 보실 기회가 있으셨는데.. "하느님, 저에게는 어찌 양심이 있어..." 로 시작하는 .. 한강작가님의 이 이야기와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 다 쓰지 못하지만, 연말연시에 한강 작가님의 고뇌와 최재천 교수님의 고뇌를 의지 삼으며,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며 스스로의 기준을 바로잡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칫 생산성 없는 매일매일의 낙담한 마음으로 마무리 될 수 도 있었는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요즘 사람들은 다들 본인은 양심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면 타인을 비양심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모습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만 잘먹고 잘살려고 비양심적으로 살아야된다고 생각하기보단 난 양심적인데 타인들만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거같아요. 자기객관화 이부분에 대한 조언도 해주세요
이게 양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릴때부터 어른들께 바보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초등학교 시절 첫 달리기 시합에서 옆에 달리던 친구가 넘어지는걸 보고 일으켜주다가 거의 꼴찌로 들어갔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래야만 될것 같았어요. 중학생때는 체육 선생님의 무리한 체벌을 보고 있기 힘들어 선생님 그만 좀 때리세요! 소리를 쳤다가 체벌 받던 친구 옆에서 덩달아 뺨을 맞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마 저는 똑같이 했을겁니다. 바보소릴 들어도 뺨을 같이 맞아도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절망적인 시대지만 인간에게 심장이 뛰는한 누구나 마음 속에 양심의 불꽃이 자리 잡고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글을 쓰시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심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까라는 철학적 주제로 고민을 했던 대학시절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렇다 입니다. 어디서 오는가 왜 그런가 왜 개나 돼지에게는 없는가? 당시의 결론은 유구한 역사적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다 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탄과 좌절과 걱정이 생겨납니다. 오늘 이진숙같은 분이 계속 방통위원장으로 하도록 허락한 헌재의 판단이 그렇습니다.
양심은 진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의 자식이죠. 그래서 모두에게 뭔지 모를 양심이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 도와가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며, 인간의 모습일지언정 우리는 어느덧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나를 존재케 한 그 근본을 망각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화로운 고요하고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근본을 무시하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겁니다. 그 마음을 불편케 하는 것이 양심이자 근본입니다. 외양으로만 치닫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구벅^^.
최근 뜻하지 않게 사내정치에 휘말리면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상 외로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이 보고, 뜻밖의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선배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사자였지만, 어떻게 보면 야구장 그림의 중간 사람이 되었지요. 한 소끔, 사건이 끓고 나서 동료들에게 털어놓으며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사람답게 살자. 그랬습니다.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양심이란 이런 '사람다움'이 아닌가 싶어요. 개인주의로 포장하는 이기주의, 효율로 포장한 부도덕함 속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양심냉장고가 유행할 때 만큼이나 다시 우리 사회의 중심 단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삶에 있어 지름길이 되어주고 동시에 양심을 저버리게 하는 것 같아요. 특히 기득권층은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잘 사는 것에 대해 정당한 이유를 부여하며 더 많은 편견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유명한 나이 많으신 남성 교수이십니다. 사회적으로 여성과 지적장애인이 어떻게 의미부여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해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학자라면 저는 학자의 관점으로 앞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싶습니다. 약자들을 위해 목소리내주시고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저 착한 척, 도덕적인 척이라며 피상적인 말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것이 사회를 넘어서 개인, 자기 자신에게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무게감을 알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개인을 탓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정말 심란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꾸준히 발화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호의가 권리가 되지 않는 태도 역시 양심입니다 다 짊어지기로 한 양보하기로 한 사람에게 받은 사람은 꼭 베푼 사람에게 감사함과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근데 사회에서는 그렇게 책임진 사람을 권리가 되어 평가하며 너는 제대로 못했어를 시전합니다 그것도 양심이 없음에 포함됩니다 그 부분이 베풀던 사람이 안베풀게 되는 시작입니다
마을사회에서 자란세대와 아파트사회에서 자란세대에서의 차이도 있는것 같습니다. 평판..시골 마을에 가면 평판이 존재합니다. 나를 우리 가족을 어떻게 볼까? 개인화되고 아파트주거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나를 스스로 보지 못하더라도 평판으로 동네에서의 평가로 행동이 조심스러울수 있었을텐데... 벽을 하나 두고 사는 이웃도 완벽한 남이 되는 사회이니 양심 이라는 도구도 날이 무뎌지는것 같아 안타갑습니다
오늘 헌재 판결보고 이 양심이란걸 기득권들에게 바라왔던걸 제가 바보인건지 .. 왜? 이런 양심이란걸 일반시민들이 도덕적 잣대와 함께 더 잘 지켜가며 사는지 세상은 저희에게는 왜 이러는 걸까요. 갑갑하지만, 저는 양심있게 꾸준히 살아보겠습니다. 그냥 너무 갑갑한 마음에 넋두리 해보네요. 교수님 책 읽어보면서 흔들리는 마음 다시 잘 부여 잡아보겠습니다.
양심이란 단어의 용도 폐기되다. 헉.. 그렇군요. 쪽팔리다로 대체되는 수준이군요. '공평'+양심=공정. 공평했다고 했으나 나 이만큼 주고 할만큼 다한거다는 공평의 태도에 머물렀습니다. 반성합니다. 적극적 양보. 우리 사회가 비양심적으로 살아도 되고 더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걸 보면서 자란 어린 젊은 세대가 걱정된다. 실험실 쥐에서 관찰되는 보이는 게 공감인데,, 공정의 개념은 포유류 초기의 진화로 지킬려면 사회분위기가 있어야한다.
야구장 담장의 가운데 사람이 맘 불편했을 거란 말씀.. 나도 못주는 상자인데 큰 사람에게 양보하란 말도 못하고.. 어쨋든 난 보고 있으니까 모른척하면서도 작은 사람에게 조금은 미안했을.. 가운데 사람의 망설였을 그 마음이 양심이란 말씀을 곱씹게 됩니다. 제가 그 사람 입장이라도, 마찬가지로 우물쭈물 시치미떼고 있었을거라.. 여러 생각이 듭니다.
양심을 대체해 널리 쓰이는 말이 있죠. 개념. 유가 사상에서 인 다음 예의 시대가 온 것처럼 양심이라는 것도 기준 삼기 어려운 모호한 범주니까 어느새 힘을 잃고 '개념'이란 말이, 한국 사회가 늘 그랬듯이, 군대에서 쓰던 맥락 그대로 이식받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개념은 concept가 아니죠. convention, tradition, rule 정도의 의미입니다. 결국 우리가 남을 재단할 때 그걸 잣대로 적용하지 않나요? 양심냉장고에서 검증하려던 것도 바로 그런 개념이고, 양심이라는 말의 순수성을 지키자면 검증은 할 수 없고 사회적 논평으로만 쓸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접근이 될 것 같습니다. 예컨대 고통받는 환자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뜨는 전공의 집단을 가리켜 "양심 없는 행위" 라고 하면 그 문제의 복잡하고 입체적인 층을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된 말들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구성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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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도와 격이 사라지고 돈만 남았습니다. 정의가 아니고 욕망만 강물처럼 흘러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아요. 사회 상위계층일수록 최소한의 도와 격을 지켜야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가는데.... 여유가 있어도 안 지킵니다.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돈만 갈구하는 거 같아요.
그러네요..
두가지의 사실.
나이 앞에 장사 없고..
돈 앞에 장사 없다..
그게 권력자들이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돈에 미친것들로 만들어서 양심도 없고 이기주의가 되어서 극우로 만들어버리죠. 그래서 지금 이 사태가 벌어진겁니다. 그래서 교육을 개혁해야하구요. 사유능력을 키워야합니다.
갈구하는거까지는 괜찮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답답해하고 미련하다고 생각하고 짓밟을수 있다고 생각까지 하니 문제예요. 슬픕니다.
좋은 말씀이세요 어느정도까지의 탐욕은 어느시대나 있었지만 요즘은 하아 ;; 정의의 그림자까지 너무나 드러나는 시대라 그런지 도는 무슨 격은 무슨 정의는 무슨 정말 천박의 시대같아요
@@리짜이밍-l8h 실제로 낙수효과 받고있지도 않을텐데 어디서 본대로 세뇌당해서 낙수효과 이러고있노 ㅋㅋㅋㅋㅋㅋㅋ
양심.
참 거추장스러운 게 되었습니다.
양심을 말하면 위선자가 되고
욕망을 말하면 솔직하고 진취적인 사람이 되는 시대에,
어른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심에 이어 이젠 법 마저 파괴되고 있어요. 정말 대한민국의 바닥이 이리 엉망인지 몰랐습니다
한강 작가님 인터뷰가 기억이 납니다. 소년이 온다를 끝끝내 시작하지 못하고 숙제처럼 마음에 지고다니실 때에, 5.18당시 어떤 교사의 기록을 보실 기회가 있으셨는데.. "하느님, 저에게는 어찌 양심이 있어..." 로 시작하는 .. 한강작가님의 이 이야기와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 다 쓰지 못하지만, 연말연시에 한강 작가님의 고뇌와 최재천 교수님의 고뇌를 의지 삼으며,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며 스스로의 기준을 바로잡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칫 생산성 없는 매일매일의 낙담한 마음으로 마무리 될 수 도 있었는데 말이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양심이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는 나라. 기필고 우리가 성장발전과 함께 가져가야할 과업입니다.
그렇네요. 양심이라는 단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네요ㅠ
이렇게 짚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소리를 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교수님같은분이 계셔서 아직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는듯합니다 늘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책 꼭 읽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위치에 계시니 앞으로도 좋은 글ㆍ말씀 부탁드릴게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양심 없는 사람들이 지도자로서 적지 않지만, 양심 있는 평범한 사람이 죄책감과 괴로움, 부끄러움을 느끼며 하루하루 묵묵하게 사회를 이뤄가는 것 같다고 믿고 싶은 기자회견입니다.
품격있는 이야기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본인은 양심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면 타인을 비양심적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모습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만 잘먹고 잘살려고 비양심적으로 살아야된다고 생각하기보단 난 양심적인데 타인들만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거같아요. 자기객관화 이부분에 대한 조언도 해주세요
존경합니다. 배운 사람들은 사회에 빚진 자들인데 가족과 함께 혼자만 잘 사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그만 이죠 이런 사회는 절대 다수가 공멸로 갈수밖에 없고 기득권은 난 아니겠지 하지만
같은 부류에게 얼마든지 희생을 강요 당할수 있다는거
최재천 교수님,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양심의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양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늘 감사합니다.
교수님 말씀처럼 사라지고 있는 단어들이.. 그 존재마저 사라지고 있는거 같아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저부터 양심을 가지고 살아보겠습니다
윤리시간에 배웠던 측은지심. 수오지심이 생각나는 요즘 교수님의 양심 간담회 영상, 양심이라는 너무나 중요한 화두를 세상에 다시금 상기시켜주시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꼭 사서 읽어야겠어요. 최재천 교수님같은 사회 지도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나름 다른 평범한 사람 처럼 양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데 요즘은 부쩍 양심대로 행동하면 손해 보는 생각이 촛불이 사그라 들락 말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 시국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리고...깊이 존경합니다🙏🏻
교수님 저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사소한것도 즉 쪽팔리는 짓을 하고 싶지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자식들이 본다면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답니다
교수님 이시대에 필요한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양심을 지키지 않아도 크게 비난 받지 않지만 내가 보고 있기에 지킬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요즘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영상 같아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교수님..
교수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힐링합니다
키 큰 자가
키 작은 사람의 보잘것없는 박스 조차도 뺏어가는 걸
자유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고 권장하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잊혀지고 있던 양심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실험쥐의 음식거부가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교수님 정말 존경합니다
정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당연한 건데 인간이 참...
답답했던 마음이 교수님의 책으로 위로가 됩니다. 잊혀져 가는 '양심'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마음에 꼭 간직하겠습니다.
저에게는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쉽고 공감가게 해석해 주시는 이 시대 어른이십니다.
제 안의 양심을 순수하게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할 순간을 주시는 것 같네요.ㅎㅎ
존경합니다.
양심이란 단어가 주는 사회적 책임감
이게 양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릴때부터 어른들께 바보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초등학교 시절 첫 달리기 시합에서 옆에 달리던 친구가 넘어지는걸 보고 일으켜주다가 거의 꼴찌로 들어갔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래야만 될것 같았어요. 중학생때는 체육 선생님의 무리한 체벌을 보고 있기 힘들어 선생님 그만 좀 때리세요! 소리를 쳤다가 체벌 받던 친구 옆에서 덩달아 뺨을 맞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마 저는 똑같이 했을겁니다. 바보소릴 들어도 뺨을 같이 맞아도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절망적인 시대지만 인간에게 심장이 뛰는한 누구나 마음 속에 양심의 불꽃이 자리 잡고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선댓 후시청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교수님
용기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심의 비슷한 말로 공손함을 떠올려 봅니다. 한자 공손할 공은 함께하는 마음이라는 뜻이죠. 사람 뿐만아니라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공손함입니다.
저도 내 안의 양심이 발현하게 매일 수양하는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늘 맘처럼 되진 않지만 그쪽 방향으로 안테나를 세우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사회에 좋은 어른 최재천님 ❤❤
양심에대한 기준이 달라지고있는거같아요. 요즘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이기적이어도 숨기지 않는게 양심=솔직함이라고 생각하는거같아요. 공감하는 능력자체가 이제 퇴화된듯. 협력해서 뭘하기보다 교육부터가 경쟁하게하니까.
교수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요즘 이 시기가 빨리 안정을 찾기를 기원합니다.
이시국에 꼭 필요한 책 이네요 양심. 정의가 사라져가고 욕망 그리고 불법이 난무 하네요..안타깝습니다
정지선 지키셨던 그 분, 그 장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도 반성하고 또 배우고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지금 나라가 떠오르고
눈물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교수님
교수님좋은말씀에존경합니다사랑합니다👍
너무나 좋으신 분인거 같습니다. 적어도 이런 양심이란 단어를 주제로 다뤄주시는것만 봐도 존경스럽습니다.교수님을 닮고싶네요.감사합니다!
최재천교수님 항상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던 주제여서 정말 감명깊게 영상을 봤습니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지켜지지 않는 요즘 사회에 한번 더 좋은 목소리를 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꼭 책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심의 효용가치는 언제나 낮았다.
라는 어떤 기자님 말이 인상 깊더라구요.
배신, 이득, 욕망의 효용가치는 언제나 높았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술마신 정신에도 주의깊게 듣고 있는 제 자신이 제법 쓸모없지는 않은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최교수님의 의무입니다.. 사회에 지도층이 해야할 일 입니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믿고 따라가야할 선을 제시하고 얘기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심은 자신 내면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윤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오랫만에 마음에 위로가 되는 좋은 말씀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선생님같은 어른이 매우 소중합니다, (())
교수님은 훌륭한 과학자를 뛰어넘어 멋진 시인이십니다.
저도 떨어지는 연습하며 성장했는데요. 공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영상덕분에 은퇴후 평화롭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지켜왔다는 걸 ~~
양심도 없는 생물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최교수님 양심 잃지 않고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답 없죠 언론신뢰도 꼴지인 나라 ㅎㅎ
꼴찌 근처긴한데 바닥은 항상 일본이에요 지금은 어딜지 모르겠지만
양심 혹은 그게 위선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그런 비슷한 행위는 사회에 꼭 필요합니다. 법이 모든 것을 판단 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됩니다.
교수님 같은 어른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감사합니다
양심이 있어야지요 ㅎ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한 번 더 자아성찰하고 갑니다.
여러 말씀들을 볼 때마다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같게 만드네요.
교수님 늘 건강하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시대에 정말 존경스러운 분. 현명하시고 겸손하시고 외모도 멋지심. ㅎㅎ
항상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교수님.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도덕의 위기를 말합니다. 양심이라는 화두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묵직한 경고로 들립니다.
최교수님~
구독했어요^^
응원합니다
이런 글을 쓰시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심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까라는 철학적 주제로 고민을 했던 대학시절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렇다 입니다. 어디서 오는가 왜 그런가 왜 개나 돼지에게는 없는가? 당시의 결론은 유구한 역사적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다 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탄과 좌절과 걱정이 생겨납니다. 오늘 이진숙같은 분이 계속 방통위원장으로 하도록 허락한 헌재의 판단이 그렇습니다.
확실히 과거와 비교해 보면 양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네요
뉴스를 보며 왜 저런 선택을 할까 했을 때 양심이 빠졌기 때문일 수 있겠네요
양심은 진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의 자식이죠. 그래서 모두에게 뭔지 모를 양심이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 도와가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며, 인간의 모습일지언정
우리는 어느덧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나를 존재케 한 그 근본을
망각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화로운 고요하고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근본을 무시하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겁니다. 그 마음을 불편케 하는 것이 양심이자 근본입니다.
외양으로만 치닫는 세상이 안타깝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구벅^^.
정말정말 공감가는 말씀 입니다.
양심이란 두글자..그 무게를 잘 견디면서 살겠습니다. 좋은 강연 감사드립니다.
사람다움 그게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금의 겨울을 보면서 부모가 된것을 후회하게 됩니다.이런 시대를 아이게게 살아라라고 하는게 미안합니다.
교수님같은 분이 계시니 희망은 있는 거겠죠?
지적장애인이 아니라 지체장애인입니다.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지적장애, 정신장애, 신체장애 다양하게 있어요.
초등학교고 대학교고 , 사관학교도 .. 본질은 사람다운 사람을 양성하는게 학교의 사명이지… 사람새키 못만들면 학교가 아니라 걍 학원임..
최근 뜻하지 않게 사내정치에 휘말리면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상 외로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이 보고, 뜻밖의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선배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사자였지만, 어떻게 보면 야구장 그림의 중간 사람이 되었지요. 한 소끔, 사건이 끓고 나서 동료들에게 털어놓으며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사람답게 살자. 그랬습니다.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양심이란 이런 '사람다움'이 아닌가 싶어요. 개인주의로 포장하는 이기주의, 효율로 포장한 부도덕함 속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양심냉장고가 유행할 때 만큼이나 다시 우리 사회의 중심 단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삶에 있어 지름길이 되어주고 동시에 양심을 저버리게 하는 것 같아요. 특히 기득권층은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잘 사는 것에 대해 정당한 이유를 부여하며 더 많은 편견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유명한 나이 많으신 남성 교수이십니다. 사회적으로 여성과 지적장애인이 어떻게 의미부여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데이터와 사실에 근거해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학자라면 저는 학자의 관점으로 앞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싶습니다. 약자들을 위해 목소리내주시고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얼굴을 낮짝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낮짝에서 짝만 남았다가 쪽이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람이 나이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말이 있는데요
요즘 특정집단에서 쪽팔리는일을 많이 하죠 하고도 있고
양심이 없어니 쪽팔리는것도 없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공정 공정 외치는 사람들이 사실은 제일 불공정한 현실 ㅋㅋ😂😂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저 착한 척, 도덕적인 척이라며 피상적인 말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것이 사회를 넘어서 개인, 자기 자신에게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무게감을 알고 있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개인을 탓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정말 심란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꾸준히 발화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호의가 권리가 되지 않는 태도 역시 양심입니다 다 짊어지기로 한 양보하기로 한 사람에게 받은 사람은 꼭 베푼 사람에게 감사함과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근데 사회에서는 그렇게 책임진 사람을 권리가 되어 평가하며 너는 제대로 못했어를 시전합니다 그것도 양심이 없음에 포함됩니다 그 부분이 베풀던 사람이 안베풀게 되는 시작입니다
교수님, 야구 관람 그림을 통해 설명해주신 양심에 대한 정의가 너무 와닿아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공감되는 말씀.. 잘 듣고 갑니다~ !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을사회에서 자란세대와 아파트사회에서 자란세대에서의 차이도 있는것 같습니다.
평판..시골 마을에 가면 평판이 존재합니다.
나를 우리 가족을 어떻게 볼까?
개인화되고 아파트주거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나를 스스로 보지 못하더라도
평판으로 동네에서의 평가로 행동이 조심스러울수 있었을텐데...
벽을 하나 두고 사는 이웃도
완벽한 남이 되는 사회이니
양심 이라는 도구도
날이 무뎌지는것 같아 안타갑습니다
오늘 헌재 판결보고 이 양심이란걸 기득권들에게 바라왔던걸 제가 바보인건지 ..
왜? 이런 양심이란걸 일반시민들이 도덕적 잣대와 함께 더 잘 지켜가며 사는지
세상은 저희에게는 왜 이러는 걸까요.
갑갑하지만, 저는 양심있게 꾸준히 살아보겠습니다. 그냥 너무 갑갑한 마음에 넋두리 해보네요.
교수님 책 읽어보면서 흔들리는 마음 다시 잘 부여 잡아보겠습니다.
양심 = 정의
ㆍ나도 이롭고 너도 이롭게
살아가기를 노력하는 마음
ㆍ자기가 처한 환경,상황에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법을 너무 좋아하다가 양심이 사라진 시대가 된 듯합니다~양심이 살아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쪽팔리다도 양심을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양심의 가책은 guilt에 가까운데 guilt는 주변의 사회적 비난 없이 내적인 성찰만으로 성립하는 감정이고 쪽팔리는 건 사회적 평가에 노출되어서 수치스럽다는 shame에 가깝죠.
양심은 개인의 헌법이다
양심이란 단어의 용도 폐기되다. 헉.. 그렇군요. 쪽팔리다로 대체되는 수준이군요. '공평'+양심=공정. 공평했다고 했으나 나 이만큼 주고 할만큼 다한거다는 공평의 태도에 머물렀습니다. 반성합니다. 적극적 양보. 우리 사회가 비양심적으로 살아도 되고 더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걸 보면서 자란 어린 젊은 세대가 걱정된다. 실험실 쥐에서 관찰되는 보이는 게 공감인데,, 공정의 개념은 포유류 초기의 진화로 지킬려면 사회분위기가 있어야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
"심지어 비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 더 잘 사는 것 같기도하고..." 이렇다면 양심이란것이 지속가능할것같지 않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양시적으로 사는것이 더 잘살아야 지속가능하지 않을까요? 힘든 문제이네요...
양심, 염치가 사라진 사회 안됩니다 안됩니다 죽을 날 얼마 안남았어도 나이든 노인들이 앞장서서 지키고 보여줘야 아랫세대가 따릅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에 찬성하시나요
맞아요, 양심 대신 소비, 투자
야구장 담장의 가운데 사람이 맘 불편했을 거란 말씀..
나도 못주는 상자인데 큰 사람에게 양보하란 말도 못하고.. 어쨋든 난 보고 있으니까 모른척하면서도 작은 사람에게 조금은 미안했을..
가운데 사람의 망설였을 그 마음이 양심이란 말씀을 곱씹게 됩니다.
제가 그 사람 입장이라도, 마찬가지로 우물쭈물 시치미떼고 있었을거라.. 여러 생각이 듭니다.
저도 뭔가 하나 남겨야겠어요...
양심냉장고 참 재밌게 봤었는데ㅎㅎ
그때의 어린이가 이제는 대한민국에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
양심을 대체해 널리 쓰이는 말이 있죠.
개념.
유가 사상에서 인 다음 예의 시대가 온 것처럼 양심이라는 것도 기준 삼기 어려운 모호한 범주니까 어느새 힘을 잃고 '개념'이란 말이, 한국 사회가 늘 그랬듯이, 군대에서 쓰던 맥락 그대로 이식받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개념은 concept가 아니죠. convention, tradition, rule 정도의 의미입니다.
결국 우리가 남을 재단할 때 그걸 잣대로 적용하지 않나요?
양심냉장고에서 검증하려던 것도 바로 그런 개념이고, 양심이라는 말의 순수성을 지키자면 검증은 할 수 없고 사회적 논평으로만 쓸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접근이 될 것 같습니다. 예컨대 고통받는 환자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뜨는 전공의 집단을 가리켜 "양심 없는 행위" 라고 하면 그 문제의 복잡하고 입체적인 층을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된 말들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구성이라고 생각해요.
한정된 자원에 사람만 많아지니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라진 양심은, 일정수준의 인원으로 감소되었을 때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싶네요.
애쓰셨습니다.
교수님 어두운 시대에 한줄기의 밝은 빛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겠습니다.❤❤❤
나누는 기쁨, 그걸 알면 더 행복하고 평화로울텐데
양심이 사라진세상이네요.
양심보다 뻔뻔함이 훨씬 강력한 이익을 주는걸 아는데 누가 양심을 지키고 부끄러원하겠어요.너무 답답한세상이네요
다들 주체적이지 않아요.
자기 주인은 자기여야하는데,
다들 남에 눈치만 봐요…
큰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