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탱크의 깜짝 대반전! 탱크 15대의 기적 [슬림강 전투, 2차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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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เผยแพร่เมื่อ 4 ก.พ. 2025
- 1942년 1월 7일 말레이 전역 슬림강 전투. 일본군은 탱크 15대와 보병 100명으로 겨우 6시간만에 영국인도군 2개 여단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대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일본 육군의 전격전에 관해서 자세히 분석하는 이야기입니다. 깡통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던 약한 탱크들로 어떻게 이런 승리가 가능했는지, 영국군이 어떻게 붕괴했는지 그 과정에 집중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Gordon L. Rottman, World War II Japanese Tank Tactics, Osprey Publishing, 2008
Mark Stille, Malaya and Singapore 1941-42: The fall of Britain's empire in the East, Osprey Publishing, 2008
Kaushik Roy, Battle for Malaya: The Indian Army in Defeat, 1941-1942, Indiana University Press, 2019
지도 출처
전군 제작
캐릭터
전군 제작
그외 이미지 출처
Australian War Memorial
www.awm.gov.au...
Wiki Commons
By Sun Ladder - Own work, CC BY-SA 3.0, commons.wikime...
不明 - blogs.yahoo.co...., パブリック・ドメイン, commons.wikime...
By User:Fat yankey - Own work, CC BY-SA 2.5, commons.wik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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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st J. Bakker from IJmuiden - Humber Light Reconnaissance CarUploaded by Oxyman, CC BY 2.0, commons.wikime...
이번편 만드는데 65시간이 걸렸습니다! (힘들얻따...)
전투 지역이 넓어서 지도 그리기 많이 힘드네용;
출처
1. 00:31 영국군 전력은 1개 대대당 800명으로 밝히고 있는 Mark Stille, Malaya and Singapore 1941-42: The fall of Britain's empire in the East, Osprey Publishing, 2008 를 참고해서 계산했습니다.
2. 02:35 시마다 부대는 2개 전차중대를 합한 것입니다. 이중 절반은 보병공격을 지원하는 역할이었기에, 실제 탱크 공격에 투입된 15대만 전력으로 포함했습니다. 전력은 Gordon L. Rottman, World War II Japanese Tank Tactics, Osprey Publishing, 2008을 참고 했습니다.
3. 03:13 부터 시작되는 전투 전개 과정은 주로 Mark Stille, Malaya and Singapore 1941-42: The fall of Britain's empire in the East, Osprey Publishing, 2008을 참고했습니다. 몇몇 영국군 관점의 이야기는 Kaushik Roy, Battle for Malaya: The Indian Army in Defeat, 1941-1942, Indiana University Press, 2019를 참고 해서 만들었습니다.
4. 10:17 에서 시마다 소좌의 결단 분석은 Gordon L. Rottman, World War II Japanese Tank Tactics, Osprey Publishing, 2008 에서 작가의 분석을 참고 했습니다.
수고했음.
@@레이루-i3d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우와, 65시간 ㄷㄷ 14분 영상 더빙하고, 이미지 그리고 자료 찾고... 하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군요.... 덕분에 영상 재밌게 잘 봤습니다.
노가다가 느껴지는 영상 잘봤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신게 느껴지네요, 한편으로는 이전에 한시간 두시간 하던 영상들이 그립습니다. 전 보통 팟케스트처럼 운전하거나 다른일 할때 전군님 영상을 듣는게 더 익숙하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자료 잘부탁드립니다!
시마다의 대모험ㅋㅋㅋㅋㅋㅋㅋㅋ
큰 모험이었죠!! 모험 결과 대승리를 했습니다!
일본 에니메이션 급 ㅋㅋㅋ
전군의지식나눔방 영국에 크롬웰만 있었다면 시마다도 적극 공세를 하지 못했을겁니다.
@@오문원-v7y 어쨌든 뛰어난 부대장과 현장 지휘관이 만들어낸 대단한 성과죠.
근데 이런 인물을 바로 만주로 보내버림 ㅋㅋㅋㅋㅋ
시/ 마다\ 의/ 대모험/!
와... 그냥 상관없는 영상만 올리는게 아니고, 진짜 제대로 된 정보네요. 너무 재밌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재미는 개뿔,,
@@73lovemany51 노잼이면 그냥 끄면되지 왜 시비임?
@@73lovemany51ㅇㅓ휴 아재요
치하 가지고 정글에서 전격전을 했네요; 대단
일본군 버전의 전격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ㅎㅎ!
전군의지식나눔방 만약 영국에 크롬웰만 있었다면 전격전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마 일본군전차 거의다 잃었을겁니다. 병력피해도 상당했을 겁니다.
@@오문원-v7y 저때 크롬웰 개발도 안됨
밤에 정글에서 탱크몰고 정글속에서 우회로 찾고.... 도박 대성공
@@오문원-v7y 으음 전차 아무거나 있어도 충분히 이겼죠
간간이 사진과 함께 설명을 잘해주셨습니다. 감사.
치하는 스펙상으로 보면 영락없는 경전차로서 가벼운 무게, 좁은 폭, 신속한 기동력 등... 산악과 밀림지역 작전에 아주 유리한 전차였습니다. T-34에 비하면 무게가 거의 절반 수준임.. 16톤도 채 안 됨.. 이렇게 가벼우니 동남아 지방의 부실한 다리도 돌파 가능.. 밀림에서 우회기동까지...
동급의 미군 경전차나 소련 경전차에 비하면 성능이 부족한 전차지만 어쨌든 전차이고, 무기는 어디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허수아비가 될수도, 호랑이가 될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설마 밀림에서 전차에게 당할까 방심해서 대전차방어 준비를 부실하게 했다가 허를 찔림...
군마현 출신인 시마다는 중학졸업 후 1929년에 육사 제 45기 보병과 생도로 입교해 졸업 후 견습사관을 거쳐 소위로 임관해
전차 제 2연대에서 전차교육을 받았다. 그 후 1935년의 만주사변, 1939년의 중일전쟁에 종군한 후 태평양전쟁시 남방작전에
투입되어 전차 제 6연대 막하의 제 4중대장으로 말레이 작전에 종사했다.
슬림강 전투에서 제 4중대의 전차 및 수반한 보병 및 공병 100여명과 함께 전차에 의한 야습을 처음으로 실행하여 적진을
하루만에 돌파하고 전차의 기동력을 살려 전격전을 실시해 각 도시를 점령한 후 영국군 사령부를 공격해 슬림 시가지로
진출하여 후방의 영국령 인도군 1개 사단의 퇴로를 끊어 포위, 섬멸했다.
그 후, 1942년 4월에 전차 제 9연대로 이동하여 만주로 이동했다가 1943년에 육군사관학교 기갑병 교관으로 부임한 시마다는
1945년 3월에 전차 제 18연대장이 되어 중좌계급을 마지막으로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고향인 군마현
다테바야시 시의 다테바야시 고교에서 사회교사로 교편을 잡은 시마다는 정년까지 일한 후 1988년에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오, 시마다 소좌는 죽지 않고 전쟁 후까지 살아서 천수를 누렸네요.
재작년 다테바야시 갔었는데,아는 사람이 거기살아서요
무척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임에도 평범한 삶을 살았네요
1912년에 태어났단 얘긴데 33살에 중령달고 군복 벗은거면 얼마나 유능했던걸까... 육사 출신도 아닌데 대단하네
@@뿌뿌형 일본 육사 나왔다고 되어 있네요.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언제나 연재영상 잘보고 있습니다
초군반 고군반에서 전사연구시 이런 영상이 활용된다면 장교들도 지루하지 않고 전사연구시 더 이해하기 쉽고 즐거울 것 같은데 이런 좋은 자료가 활용되지 못하는게 아쉽내요 ㅜㅜ
제가 고군반 다녀온게 2014년이었는데 아마 아직도 다 낡아빠진 한국전 전훈분석과 전사연구실습만 하고 있을 것 같아 씁쓸합니다(당시 교육은 L&T로 진행되어 저는 1차 체첸전과 디엔비엔푸로 발표를 했는데 교관이 오히려 연구자료로 쓰고싶다고 원고를 받아가던 웃지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조금만 찾아보면나오는 자료들로 만든 원고들이었는데, 그만큼 교육수준이 낙후되어있다는 말인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2014년에 고군반을 다녀오신분도 이런댓글을 다신다니
무척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장교에대한 전사교육이 이정도로 허접한건가? 라는 의문이드네요
슬림강전투에관한 이내용을 1990년 우리중대장의 고군반 자료에서처음보고 일본군에도 대단한지휘관이 있었네~라고 놀랐었는데말이죠
4개월전쯤
제대한지 30년이지나서 진군님의 영상으로 슬림강전투사를 다시보고
상당히 기분이씁쓸해서 댓글 남겼었는데 찾지못하겠네요
30년전 고군반자료중 시마다경전차중대에관한에피소드내용에
우선 시마다는 경전차10대 뿐이었다고나옵니다
이정도야 별차이가아닌데
근본적으로 그때의 자료에는 매복이라고기술되있습니다 최대한숨죽이고 있다가 영국군전차들을 가까이끌어들인뒤 단한번에 엔진을키는바람에 놀란 영국군전차들이 혼비백산 후퇴했고무선연락이 엉키면서 영국군지휘소는 상황판단을 못해 대규모부대의기습으로 오인해서무작정 후퇴하는와중에 시마다는 이 아비규환상태의 영국군을상대로 올린전과라고 ~
사실은 매복이아니라 기습이었던거고 영국군에게는 전차는물론 대전차포도 없던상태였다는걸 알고 그때30년전자료에는 왜그렇게 기술되있었을까? 의문이들었네요
이건 대단히 큰차이인데말이죠
진군님영상을통해서 그때본 고군반 텍스트북이 역사소설수준이었다는걸 알게됐고
예전에는 우리나라군이 고군반에서도 이렇게 허접한엉터리내용을 수업했던거같아서 실망스러운 마음이었는데
님 댓글보고서 2014 년이면 최근인데
머 별반 달라지지않은건가? 싶네요
하긴 별로중요한부분이 아닐수도 있지만
@@지나가는바람-x4e 2014년 대전 종군교 고군반에서 받은 전사교육 수준은 그러했습니다
안타깝지만, 교육컨텐츠 수준은 부실하고 (병기교육대라서 더 경시한건지 모르지만)
'보급전의 역사'나 '작전적군수'같은 휼륭한 시판 서적이 있음에도 전사교육컨텐츠는 6.25, 베트남전 사례의 반복이었습니다
(영상의 슬림강 전투는 커녕 2차대전사에서 보급경시로 대참사를 유발한 임팔전선도 교육안함)
당시 L&T교육이라 교관은 기초 교육만 제공하고
학생장교가 연구주제에 맞는 사례를 선정해서 다른 학생장교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식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는데
디엔비엔푸와 체첸전 사례를 제가 발표하자 교관님이 그 발표자료를
연구용으로 쓴다고 가져가셨습니다 ㅡㅅㅡ;;;
조금만 찾아보면 나오는 자료들인데 그런 의지도 없는 것인지 6.25와 베트남전 사례에 고착되고 텍스트위주의 구태의연한 교육에 저는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idealist_87
1차세계대전의참호전에서 영국의장군들은 효과도없는 사전포격을한뒤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를향해 무작정돌격을주문했었죠
그리고 순식간에 수많은병력이 사라졌습니다
과달카날에서의일본군장교들도 똑같은짓을하다가 소득없는소모전을 했었구요
그당시 그런무모한명령을 내린장군들도 변명꺼리는있을꺼라봅니다 무기체계의 하드웨어적발달을 소프트웨어적으로 따라잡지못한것도 있을꺼구요~
하지만 아프리카수단을점령할때
화약무기앞으로 창하나들고뛰어들다 근처에도못오고 전사해버린수단의전사들을향해 영국점령군은 야만인들이 무지해서 죽을줄모르고 달려들기만한다고 비웃었던바있습니다
또 동학군들이 기관총앞으로 죽창들고 달려들다 개죽음당하는걸보고 일본군들도비웃었다죠 조선인들이무지하다고~
수단군을 비웃던영국은 독일을상대로 똑같이 무지한짓을 헀었고
동학군을비웃던 일본도 미군앞에서 똑같이 빙신짓을했습니다
그들은이미 러일전쟁당시 뤼순에서 기관총앞으로뛰어드는 보병이 얼마나무모한지 경험한바있는데도말이죠
첨단화된무기들로무장된 현재의군대에게 이런것들을 직접대입할순없지만
전사의 정확한분석은
참호전에서의 영국군이나
태평양에서의 일본군같은 뻘짓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꺼라보는데말이죠
무기가아무리발달해도
3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전쟁은사람이 하는거라~
결론 탱크가 똥망이여도 잘쓰면 가성비 ㅆㅅㅌㅊ
@@rightbum123 일반 보병대대가 20미리포 들고다니긴 힘들어서
@@rightbum123 우리게이는 어디 살길래 20미리 기관총도 들고다니누?
깡통이어도 좀 떨어진 거리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막을 수 있고 영거리 사격은 실전에서 일어날 일이 거의 없으니까...
전군 지식님 영상들이 라디오 처럼 들려서 들으면서 잘 때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자주 채널 들립니다
전쟁사를 즐겨 찾고 본느 사람입니다. 이런 좋은 컨텐츠를 지도까지 첨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는곳은 여기 밖에 없는것 같아. 감사 글 남깁니다.다른데는 그냥 스크린샷에 자막첨부가 다인데... 음성지원에 자세한 지도까지. 이 컨텐츠를 만들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이 무엇인지도 궁금하고요!
아무리 일본군의 전차가 형편없다 하더라도 전차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적 종심에 대한 돌파력과 충격력이 잘 드러난 전투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땅한 대응 수단이 준비되지 않거나 갖춰지지 않다면 알보병들에겐 장갑차도 위험한 상대임이 분명한데 확실히 치하도 이 때 만큼은 전차는 전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더불어 2차대전간 전차의 발전속도에 대해서도 참 빠르구나 느껴지기도 합니다. 치치하도 한때는 통할때가 있었는데 불과 3년 뒤 연합 추축국 각국의 주력 중형,중전차들을 생각해보면 2차대전 초기의 전차들 따위는 탱캣수준이니..
영국의 Battleship Prince of Wales (프린스 오브 웨일즈 전함) 과 Battlecruser Repulse (리펄스 순양함) 격침 이야기도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새영상 잘봤습니다 ~~ 날이갈수록 퀄리티가 좋아지네요 ㅎㅎㅎㅎ
남방작전은 아무래도 서유럽보다 넓은 권역의 다수 거점에서 다수의 부대들을 거의 동시에 상륙시켜서 작전을 해야 했고 그나마도 중일전쟁에서 겨우 병력을 빼내와야 했기 때문에 일본군은 상당한 숫적 열세에 시달렸습니다.
탱크 하나로 진지 개박살 나기도 하고 탱크 15대로 여단 2개를 개박살 내기도 했네 ㅋㅋㅋ
2차세계대전은 정말 다사다난합니다 ㅎㅎ
@@jeonkun 진심 공감합니다
확실히 강력한 속도가 핵심이네요 독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기계화부대의 장점이 통한 전투는 역시 다르네요
전격전의 신화야 널렸지만... 이건 치하로 이뤄낸거다!!!
치하로 해냈다는게 참 신기한것 같습니다 ㅎㅎ!
낫질 작전도 탱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1 ~ 4호전차로 했지만 일본군의 트랙터로 했으니...
영국군 대부분이 식민지 사단인것 같은데 그래서 더더욱 빨리 패닉에 빠지고 전의를 상실한것 아닐까요??
네. 병력 대부분이 인도인이었습니다. 식민지 사단인만큼 영연방 군대 중에서도 약체에 속했죵
@브론즈라이프
호주출신 용병들도 있어요.
싱가폴시티에서는 호주군이 최후의 보루로 목숨걸고 싸웠다네요.
@브론즈라이프 밀덕아닌 초딩은 꺼져라 ㅋㅋㅋㅋㅋ
그때 일본이 "사악한 미국과 영국을
몰아내고 아시아를 해방시키자(대동아공영권)"
를 주장했으니 당시 미국과 영국등 서구열강에 착취와 억압을 당하고 있던
동남아 식민지 원주민들은 이에 동조하여
연합군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게
한몫했죠
@브론즈라이프 사스가 관종 클라스~
근데 어디선 또 일코하더라ㅋㅋㅋ
2차대전 일본군에도 명장이라 부를만한 장군이 있었네.
육군 - 이마무라 히토시 , 아다치 하타조 , 야마시타 도모유키 , 쿠리바야시 다다미치
해군 - 야마모토 이소로쿠 , 이노누에 시게요시
현실은 위로는 토조 히데키를 위시해서 3대오물 무다구치 렌야 ,스기야마 하지메, 도미나가 교지 같은 무능한자들이 높은자리에서 다 말아드시고 최악은 츠지 마사노부 같은 쥐세끼같은자가 쓸만한 애들은 다 숙청시키고 작전이란 작전은 다 말아드시고 그러면서 스스로 작전의 신이라 자칭하면서 정계 줄잡아서 싸이코 패스짓하다가 종전후에는 승려가 되서 도망다니다가 집행유예끝나자마자 일본에 돌아와 정계까지 진출한 이런기회주의자 같은 무능한애들이 군부에 중용이됨.
반면 쓸만한 애들은 대부분 관동군 이나 변방 섬 수비대로 좌천시킴
해군은 야마모토 제독이 절대 방심하지말고 항모를 잡느걸 1순위로 하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나구모가 일본 육군 대본영 토조히데키 충견노릇한다고 미드웨이에서 비행장 폭격을 1순위로 하라고 지시한 명령을 따른다고 삽질하다가 미군엔터프라이즈 항모에서 띄운 급강하 폭격기편대 하나에 대응을 못해서 항모 3대 한방에 말아드시고 4척의 항모를 잃음.
저 위에 표기된 장군들이 높은자리에서 간섭없이 지휘만 했어도 일본 패망은 몇년은 늦춰졌을겁니다.
아참... 어차피 원폭때문에 안되겠군요.
@유민석 미드웨이의 일본군 함장인가요?
진짜 전쟁은 보면 보병한테 너무 자비없이 굴러간다는게 뭔가 안타깝네...
왠지 모르게 재밌네요!! 좋아요 누릅니다
충격과 속도! b. 현장지휘관의 임무형전술!
탱크부대는 충격과! 속도죠!
와우 잘봤습니다. 한국전쟁도 언젠가 이런식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전투들을 리뷰 해주신다면 참 좋을것 같네요 ㅋㅋ
당시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배했던 영국과 네덜란드,프랑스(특히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1940년 본국이 독일군의 침공으로 점거당한상태)는 유럽에서 터진 독일군의 침공에 맞서싸우느라 자신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쪽에 신경쓸 겨를이없었죠
맞습니다.간신히 영국본토 항공전으로 상륙작전을 저지했고 롬멜의 투입으로 북아프리카 전선이 위험했는지라 아시아까지 여력이 없었습니다.
프랑스는 독일군에 점령당해 나치 괴뢰정부인 비시프랑스와 나치에 대항하는 자유프랑스로 나뉘었고 네덜란드 역시 독일군에 침공에 점령당해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나치에 의해 나라가 점거당한 상태였죠
독일 안쳐들어왔어도 지원군 오기전에 일본이 다 먹었을겁니다 동방까지 오느라 지친 영국함대는 근처 육상기지에서 출격한 항공전력에 의해서 일본군 밥이 되어있겠지요
덕분에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치하 대전차전에서의 유일한 장점은 산악지대에서 사용하기 좋다는 것과 부각이 좋다는 것 말고는 없음..
8:15 진짜 무섭고 어이 없었겠다. ㅋㅋㅋ
구르카면 정예용병들인데 ㅋㅋㅋㅋ
97식 치하땅도 이런 전과를 거두기도 했네요. 아무리 깡통 전차라도 전차는 전차다. 괜히 야마시타 장군이 말레이의 호랭이 소리 듣던게 아니네요. 정글에 은륜부대로 신속하게 기동한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네여.
이런 시마다를 이 전투 이후 안 써먹는 일본군
이 이후 퇴역했대요?
@@j-zero7485 관동군으로 가요
애초에 방어선이 잘못 구성되어진 것입니다
공격시 판단력도 좋습니다...
치하를 전차가 아닌 장갑차개념으로 생각하면 나름 괜찮지 않나?
재미있는 전투사네요
일본 승리요인은 신속한 돌격
영국 패인은 무전기 이네요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군 소좌나 대위급 인재들이 많이 똑똑했음
이들이 사관학교를 입학한게 20년대말에서 30년대 초반인데 이때 일본이 사관학교생도수를 이전에는 한 기수에 500명모집했던것을 이시기는 130명으로 감축해 소수정예화를 했고 교육기간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서 교육의 질을 엄청높여서 이들이 초급장교시절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전쟁초반의 승리를 기여했음
하지만 전쟁 중반쯤에는 이들이 전사하거나 승진한 후 전시대량양성된 질낮은 장교들이 임관함으로서 일본군 초급장교들의 질이 낮아졌고 이전같은 우회돌파능력이 떨어지고 무의미한 만세돌격에 집착하게됨
결론은 고위 장교들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전장에서 그 작전의 성공여부를 가지는 건 현장지휘관이 얼마나 자신의 능력을 통해 유연성 있게 대처하느냐인데 전쟁 말년 일본군 초급장교들의 대부분은 승리를 자신의 힘으로 쟁취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거. 100명의 무타구치 렌야보단 1명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낫다
아무리 중령,대령이 대단해도 사령부가 꼰대고
대위,중의,소위가 머자리면 전쟁에소 진다
@@hotcoffeeplz6411 오....오! 님아!!
이포 갔다가 이 방송보고 저기 나온 간선 도로 (지금은 국도)따라 내려오면서 여기가 옛날 영국이 만든 간선 도로고 이 길 따라 일본군이 자전거타고 내려 왔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영국이 말레이시아 식민지 건설하면서 저 간선도로를 닦아놔서 일본군 보병은 자전거타고 내려오는 사진이 말레이시아 국립박물관에 있습니다.
노랑머리 저 캐릭터 마음에 들어요. 잘 생겼다. 자주 등장 시켜 주세요. 저런 표정 좋아요.
감사합니다! ㅎㅎ
세계 최고의 용병이라고 하는 구르카 용병이 지키고 있는 방어선을 가볍게 넘어섰다는게 놀랍네요.
영상만드느라수고하셨습니다
잘봤어요 훌륭합니다
우선 양손엄지척~^^
근데
내용 시작부터
엥? 이거뭐지 ~!
싶으면서 내가예전에소설을 한편읽었다는기분이 듭니다
이내용 30년전 군생활하던시절 야간상황근무시간에 고급군사지휘관(고군반)과정 텍스트북으로읽은건데
'시마다부대가영국군 을 후퇴시켰다'
라는 대명제만 빼고는 다 차이가나서
띵~ 합니다
육군사관학교출신 지휘관이던 우리부대대장이 고군반과정에서 배우던걸 내가읽어본거였거든요
올려주신내용과 차이가 많아요
제가보기엔 전군님이 올려주신내용에 더신뢰가 가는데 일단비교해보면
30년전의그책내용에
시마다는 영국군전차부대의 존재를 알고 매복중에 최대한 가까이턱밑까지왔을때 모든전차의 시동을 동시에키면서 공격을시작한거로 나옵니다
기습이 아니라 매복이 시작인거죠
영국군은 전차부대가 선두에있었고
숲에서 대열이 갗춰지지않은채 방심하던 영국군전차부대가 후퇴하면서차례차례로 혼비백산 도망가버렸다는내용이었어요
전투없이 그냥 영군군들이 지례겁먹고 튄걸로만 나오는데~
그리고 시마다는 경전차10대로만 이루어진 부실한규모로 되있었습니다
어느순간부터 아는척을 안하게됩니다
젊을때 역사에관심이 많아서 관련된독서를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경우처럼 차이가많이나는내용들을 본게 너무 많네요
개인이펴낸책도아니고 우리나라군대지휘관용 책에서본것마져 정확한게아닌것 같으니~
미드웨이해전도그렇고 전투사외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되는것들도있는거같고 그차이가 이번경우처럼 너무커서
내가그동안알고있던것들에대해 한발짝 떨어져서 판단부터해야겠다는 생각이드는구만요
영상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헛!! 반자이 또라이만 있는줄만 알았는데...똑똑한 소좌 한 사람이 열 일했네. 과감한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긴 것도 호남인데요.
행복 요약1.시1마다에 도박 성공. 요약2. 그냥 명령 내리는 상관에 상환판단 능력 부족
이오지마 전투때도 일본군은 속칭 반자이라고 말하는 단순한 1차대전 돌격식 공격 전술이 아닌 철저한 방어전술에 집중하면서 비록 섬의 사수엔 실패했지만 미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할수 있었져
@@Kooks-o8d 표현 주의하세요. 같이 있던게 아니라 총알받이로 끌려간겁니다.
@@moon-ly8lu 글쎄요. 실제 역사보면 자발적 지원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조선인 출신 차별이 없어져서 기뻐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본인은 중국인을 차별했고 조선인은 일본인과 함께 태평양 전선 전역에서 그들의 일을 돕거나 관리를 많이 했었죠. 뭐 강제로 끌려가거나 할당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무려 150만명이나 동원된 조선인 학병 출신을 설명할 수가 없지요.
@@moon-ly8lu 맞아요, 자발적으로 참전한수도 많습니다, 먹고살기위해서요, 그리고 그때 차별도 많이 없어진게 역사적 사실이고요
하이랜더 구르카... 영국의 정예부대뿐인데 돌파했다는 사실이 더 고평가 받을만한 사실이군요
의외로 2차 세계대전의 주제는 주로 독일과 소비에트, 연합군 위주의 정보 뿐이었는데, 참신하네요. 잘 볼게요!
와 구독박고 갑니다
최고의 방어는 바로 공격이다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의 명언이다.
그 발언을 베르됭에서 한다면...
다음번에는 스몰렌스크 전투도 한번해주세요!
동부전선 이야기 저도 정말 다루고 싶습니다! 현재 자료 수집중에 있습니다 +_+
전군의지식나눔방 흐엉 답글을 달아주셧어!까아아앙아아아아아아아아
난징전투도 해줄수있나요?
잘 보았어요. ^^ 이야 대단했구나
감사합니다 ^~^
오직 시마다 일족만이 용을 부린다
방어를 할때는 우회로 차단이 기본입니다. 그 입구를 자연기물로 일단 막아서면 시간을 벌수있고 그 기물뒤에는 지뢰를 깔아둡니다.
그다음 적 전진로에는 지뢰를 기본 매설하고 대전차 지뢰와 교차로 매설합니다.
적이 우회로를 따라 후면을 칠것도 대비해서 우회로 출구쪽에 다시 지뢰를 매설합니다
그리고 정찰부대를 운영해서 이동로 파악 통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새벽기습을 잘하는 일본특성을 잘 알고 새벽전투가 벌어질때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지뢰입니다
1. 방어선은 1차 방어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곳이 뚫리면 심리적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1차 방어선에서 적 전력의 대부분을 잡아내야합니다.
포는 크로스파이어 즉, 교차포격을 해야합니다. 전진하는 부대의 약점은 측면입니다. 측면쪽에 숨겨둔 대전차포가 있으면 적을 잡아내기 쉽죠.
적 전면에 포 2문 적 측면에 시야가 확보된 곳에 포2문을 배치해서 우회로를 선점합니다. 또한 공병대를 노리는 저격수를 곳곳에 배치해서 장교들을 노렸다면
일본군은 큰 혼란을 겪었을 겁니다.
1번 탱크가 지뢰를 맞고 멈춘 순간 측면에서 멈춘 2번탱크를 향해 포가 때렸으면 시마다 부대 15대 전차는 녹았을겁니다. 전차가 사라진 공병부대는 그냥 사냥감
문제는 이것을 알고 장비를 적절히 배치할 지휘관의 전략인데 영국군이 인도군이 었으니 ...
시마다 부대의 규모를 재빨리 파악해서 통신했더라면 영국군은 더 잘 대비할수 있었을텐데 가장 중요한 연락체계가 없었으니 각개격파당한겁니다.
2. 통신부대의 운영 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적 규모를 잘 파악하면 대비가 쉽지만 그게 어렵죠.
3. 마지막은 폭파입니다. 적이 만약 방어선을 돌파하면 슬림강 다리를 폭파하도록 해서 적 전진을 늦추고 아군의 전열정비 시간을 벌어야합니다.
영국군은 안일한 지휘관과 미숙한 부대들로 이루어진 관계로 이러한 체계적인 방어개념이 없었다고 밖엔 볼수없네요. 연락체계구축 전략적 방어선 1차방어선의 중요성
적 탱크가 아무리 깡통이라고 해도 포를 쏘는 탱크란 점을 알고 대비해야했습니다.
5000명의 부대를 탱크 15 대 150명의 부대로 유린한 일본군 시마다의 판단이 빛나는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처음에 치하사진 위에 중형전차라고 써야하고, 치하 사진도 2개 여야함 하나는 57밀 단포신 초기형 치하도 있어야 함
03:08 철모 안쓴건 철이 부족해서인가요? 아니면 사진은 그냥 예시용인가요?
권칸방 예, 영화에서도 자주 본 복식인데요, 그러니까 일본군이 저렇게 철모 안쓰는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돈이들어서 안씌운건지(한국 사극 병졸들 죄다 천떼기 입히듯)아니면 철 수급문제나, 기타 요인으로 못씌운건지 궁금해서요 ㅎㅎ
다들 치하 무시하는데 산악지형이나 밀림에서도 기동력이 좋아 중공군이 국공내전때 무진장 애용하던 녀석입니다. 물론 타국의 중형전차 만나면 박살나는건 변치 않지만 그래도 전차니까 적어도 보병한테는 여전히 사신이라는거죠.
ㄹㅇ 아무리 북괴 전차 떼삼사도 2020년인 한국군 보병한테는 사신임 평지서 보병전투 장갑차 k21같은거 없으면 ㄹㅇ 떼삼사 하나만으로도 고전함...
으음 그렇긴 하죠 근디 소문에는 m1개런드에 뚫려서
크응... 개런드가지고 후면장갑 쏘면 운좋으면
될수도..
@@음악쟁이-z4l 그거 뻥임. 그리고 전차 후면 노릴수 있는 상황이면 이미 상대편 상황이 개막장이라는 소리인데
@@로시난테-k9i 으음 일딴 개런드에 측면 뚫려서
전차 승무원 죽었다는 기록이 있음 뻥은 아님
@@음악쟁이-z4l 정확히 언제 벌어진 일이고 어느 전투임?
소대,중대,대대,사단이 몇명으로 이루어져있나요?
혹시 편집프로그램 무엇을 쓰시나요???|
편집 프로그램이 필요 해서요
Movavi 쓰고 있습니다~
@@jeonkun 감사합니다^^
일본군 트랙터가 이걸?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이 약한 일본군 탱크가..?
겁나 재밌네요 사카이 사부로 같은 에이스파일럿의 활약상도 올려주세요
솔직히 대단한 결단력이네요.. 정보도 없이 쭈욱 들어가다니
영국군이 식민지 출신 군대에게 충분한 장비를 지급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아니 안했다는 말이 어울리겠군요. 일본인이 조선인 군대에 저랬다고 상상하면 짜증나는데,
영국 놈들 참....
조선인들만을 모아 부대를만들었다는건 상상이 아닐런지요..
영국군이 아니라 무늬만 영국군이지 대부분 인도병사들인데 무슨 싸울 의지가 있겠습니까. 월급이나 받아먹으려고 군인인 척 하다가 정작 싸움 나면 도망가는 것이 외국인들로 이뤄진 군대입니다.
탱크 사진이 이 시기에 사용된 단포신 57mm포를 장비한 97식 중전차가 아니고 나중에 나온 장포신 47mm포를 장비한 97식 중전차 개(改)네요. 전에 과달카날 영상때의 97식 전차나 스튜어트 전차 사진도 마찬가지였지만 여러가지로 준비 많이 하시고 박식하신 분이 이런 옥의 티 같은 사진선정을 개선하신다면 더 높은 평을 받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게다가 잘 보니 사진이 반전되어 있네요~
헑 그렇쿤용. 앞으로 더욱 신경 쓰겠습니다!
싱가포르 전투는 적을 과소 평가하면 신나게 털린다는 반면교사를 보여주는 전투였습니다 멍청한 영국군 ㅜ 다음번에 실론해전 해줬으면 좋겠네요 ㅎ
와.여기 뭐야..영상 완성도가 훌륭하네
그나마 남방작전이 일본이 잘 나갔던 시기이죠ㅋㅋ
그나마가 아닙니다. 물론 B급 식민지 군대라는 것을 감안해도 상당한 전술적 승리입니다.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됐고 상대방을 궤멸시켰으니 말이죠
1942년초의 일본군은 정말 메이지유신 육군 창설 이후 가장 잘 나간 순간인것 같습니다
말레이반도 영국군 팔할이 인도 원정군과 현지인으로 된 부대
@NAL DAWSON 진주만 때는 잘 나갔지만
미 항모랑 유류저장소 폭파 못 시켜서 완벽
하다고 볼 수 없음
@미네소타트윈스 만약 유류탱크랑 항모까지 완벽하게 파괴시켰다면 미국놈들이 조금 겁먹지 않았을까?
중일전선에서는 경전차 테케만으로도 양학가능했고
소련 미국은 독일에 주력중이고
태평양은 함선 전투기 싸움이니까
애초에 전차가 시기상으로 기준부터가 다른데
시대상 기준으로 평가하는게 모순이쥬
20미리 대전차소총만 보병한테 쥐어졌어도 테케따위는 학살당했을텐데
헐 아무리 식민지 영국군이지만 치하로 저런기적을 시마다 저양반 나름 인재군요.
높은 자리 안가서 다행입니다.
와.. 영상 편집 개노가다 승리! 퍄퍄
아시아에 있던 영국군은 정말 한심했네용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테마인데, 이렇게 면밀한 분석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영상 속 욱일기 인용에 대해 불편을 표하는 분에 대한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오히려 당대를 그대로 직시할껀 직시하고 비판할 껀 비판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지극히 오늘날 시선에서 당장에 보기 싫다고 그 당대의 모습까지도 비틀어서 감정적으로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왜곡이 되는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극히 대국적인 결과를 알고 있는 오늘날의 입장에서 "그때는 대체로 이랬겠지" 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당대를 단정짓고 보기보다는 당대 각개각층의 사람들이 처한 각각의 입장이나 상황에서 어째서 그런 행위나 판단을 했는지에 대한 면밀한 고찰과 반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우리에게 비극이고 부끄러운 시절의 역사라 해서 언급조차 꺼리고 보고 싶은 부분만 보면서, 정신승리를 하는 선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당시를 좀 더 객관적으로 고찰해보고 다시는 이러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면밀한 반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독일도 하켄크로이츠도 원래 스와스티카라는 행운을 상징하는 문양이었지만 히틀러의 나치당이 전쟁에서 사용했고 막대한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전범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해국들은 하켄크로이츠에 대하여 당신과 같은 의견으로 보지 않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금기 시켰습니다.
욱일기도 똑같이 태평양 전쟁때 일본군들이 사용했다고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당시 일본군들이 욱일기로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 욱일기가 무엇을 상징하고 원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전부 압니다.
그런데 당신의 발언을 보고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죠, 바로 부끄러운 역사TV라는 역사왜곡 채널에서 똑같이 말했습니다. 이런말 하면 안되지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극우이신가요?
@@무명-x4w 역사적 교훈에 대한 접근에 대해 지극히 오늘날의 정치성향 및 진영논리로 접근해 해석하는 것은 지양하고 싶습니다. (그것에 대해 굳이 일일이 대응치 않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당대의 역사를 제대로 고찰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외치면서 감정에 앞서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특히나 오늘날 민감한 사항들이 많은 한일관계사를 놓고봐도 초창기 인터넷이란 환경에서 많은 한국의 네티즌들이 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해 막연한 감정에 앞서 일본 넷티즌과 논쟁을 해오다가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일면에서 역으로 논파를 당하며, 결국엔 편향된 민족주의 사관에 대한 회의감을 품게 된 우리나라의 일부네티즌들이 대거 일뽕으로 전향하게된 세태를 보면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좀더 솔직히 객관적으로 접근하되 비판할 껀 면밀히 비판해야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해당국과 논쟁을 해야될때에 그러한 고찰에서의 면밀한 접근이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실제 피해자분들에게 더 힘이 된다고 봅니다.
@@무명-x4w 욱일기의 원래의 뜻 ㅇㅈㄹ하는데 우리나라도 이상함. 제국주의와 전쟁범죄의 상징이라면 욱일기보단 일장기가 더 가깝지. 우리나라에 욱일기 혐오 문화가 최근에 만들어진 건 알고 있음? 언론과 반일감정으로 잘 선동당한 국민들이지 ㅋㄹㅋㅋㅅ
@@렌지오-e6i 네 다음 일베
@@무명-x4w 뭐만하면 일베 ㅇㅈㄹㅋㅋㅋㅋㅋㅋ 뇌가 없는 티내는건 씹리웹,클베충들 아니냐??
야전지휘관들의 판단과 원하는 타임에 예측하지 못한 공격
이건 마치 패튼의 기동전을 보는듯.
무전기도 없었던건지 척후병도 없었던건지 정말 군대같지도 않은 영국군이었네요 --;;
시마다는 그냥 모험을 한거지만 영국군은 준비도 느리고 정보도 잘못되고.
역시 시도하는 자에게 운도 따르는 법이네요
정글의 우회로 발견이 천운일지도......
항상 정해진 작전대로 작전수행하던 일본군과 달리 현장지휘관들이 즉석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린 덕에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네요.
이건 탱크가 아니라 트랙터라 불러야 맞지 않나?
정보자산 없는 도박이 큰 성과를 얻은건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구일본군 특유의 돌격성 운에 기댄 전술이었던 느낌이 있네요.
결국 후에 버마에서 크게 데인 이유중 하나일 듯.
아무리 전차가 허접하다고 해도 못써먹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전차는 전차였으니까요.
강력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전차는 보병들에게서는 상대하기 힘든 전력입니다.
탱크의 힘은 무한궤도에 있지요.
당연하죠. 사실 전차가 허접한거도 있지만 제병합동 교리를 이루지 못한게 가장 크죠. 초기 독일탱크역시 프랑스,영국군탱크보다 방어력도 약했는데 그것을 보병, 공군과의 제병합동을 이용해 그것을 극복해냈죠. 소련역시 전쟁후기로 가면서 점점 제병합동을 이루었고요. 그런데 일본군은 전차수 확보 부족, 연료부족, 기술부족, 공업력 부족 등으로 결국 제병합동을 이루지 못하죠. 오늘날의 좋은 전차들도 제병합동 못 이루면 박살난다고 군대에서 배우죠
625때도 북괴군이 200대 탱크로 그냥 서울로 돌진했으면 6월 25일 당일에 서울이 점령되었을 겁니다..근데 전투경험이 없어 우리군의 육탄돌격에 질려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고 하네요..대전차포가 있긴 했지만 정면공격은 전혀 뚫리지가 않아서 전차포소대가 전멸당했다고 합니다..소대장 1명만 도망쳤는데 그사람은 소장까지 진급했다고 합니다..이런 625초전의 전차전과 육탄돌격 대전차포소대의 전멸등도 다루면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일본에게도 저런 적이 있었구만...그 이후론ㅋㅋㅋㅋㅋ
아직 최대 진출선에 이르지는 못했음. 저 이후에 인도차이나 반도를 완전히 집어먹고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호주에 폭격을 떄리지
한국은 아시아에서 깽판이라도 쳐봣냐?
@@Nothing-d2v-c5t ㅇㅇ 고구려 때
@ Jino Yh 깽판이 아니라 중국에서 저항한정도밖에 안됨. 아시아에서 깽판친 아시아국가들은 중국,일본,몽골,인도말곤 없음.
@@실험체134 아 그런 깽판?
저 당시 영국군이나 연합군에 대전차전에 대한 능력이 전무하던 시기라 가능햇지 전쟁 중후반 넘어가면서 보병들에 대전차방어전이 발전하면서 힘들어지죠
초반에 저 무대뽀적인 돌파방법은 나치애들도 잘 써먹었음슴다
저게 대전 중후반 가서 저짓거리 하다가는 오히려 역포위 당하거나 보병 대전차팀에게 녹아버리지만
인도군중에 일본군에 협력한 부대도 있었던것으로 암 영국은 인도에서 많은 악행을 저질렀고 다른 침략군중에 하나일뿐이라는 생각도 있었음.. 게다가 본토에 지원도 끊킨 상태나 다름없었고 방치된 부대에 사기도 떨어져 있었고 영국의 식민지배에 반감도 상당했기 때문에 자멸한것이지 일본이 잘해서 이겼다? 아닌듯.
근거는? ㅋㅋㅋㅋ 뇌피셜 ㅅㅂ 일반화 지리네
@@어메디진펍지 일본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조선출신 학도병 들어봤냐. 맨날 도망갈라구 기회만 엿봤는데.
@@CH_Sudal 링크나 근거좀...... 선동질만하지말고
진짜 잼민이 샌즈가 더 설득력있을듯
@@CH_Sudal 그건 아닌듯. 그랬으면 일본군이 그많은 학병 출신을 동원했을 수가 없지요.
이 동영상 스타일로, 이야기 방식으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나도록, 한국사와 세계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사까지.. 내용. 인물. 스토리.. 들을 최대한 꼼꼼하고 자세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상들 처럼 선생님의 생각이나 유머스런 말들 없이 스토리를 최대한 자세히, 한 동영상당 1시간으로 500개가 넘는 영상 부탁드립니다. 한국사로 예를들어 주몽이라면 탄생 과정. 부여 탈출 이야기. 건국이야기.. 등 스토리를 최대한 자세히, 시간도 길게 부탁드립니다. 소장하고 보고 또 보고 자면서도 듣고 외워야 하는 컨텐츠가 될것입니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세트로 나온 책처럼 그보다 더 자세하고 꼼꼼한 한국사와 세계사를 유튜브로 보고 싶습니다. 평생 소장하고 보고 또 보고 싶습니다. 어디에도 없었던 이야기 형식의 드라마를 보는듯한 한국사와 세계사를 꼭좀 부탁드립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이야기 방식의 동영상으로 한 동영상당 1시간으로해서 500개가 넘는 영상 제작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사 500개가 넘는 영상. 세계사 500개가 넘는 영상으로 최대한 자세하고 내용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을 길게 해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한국사와 세계사 박사가될 정도로요.. 박사보다 더 많이 알수있을 정도로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나듯 PPT가 꼼꼼하면 좋겠지만 PPT가 빈약해도 좋으니 꽉찬 스토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예를들면 유튜브에 우리나라삼국지 오디오북이있는데.. 그런 이야기 방식으로 한국사와 세계사 모든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방식으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나도록, 한국사와 세계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모든 인물. 과학. 예술.. 등 작은 내용 어느것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싶은데, 유튜브 다 찾아봐도 아주 깊게 지엽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분부분만 있어서 도움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ㅡㅡ;;; 한국사와 세계사 강의는 긴 역사에 비해 강의가 짧고 시험을 위한 것이다 보니 행간이 없어서 이해가 어렵습니다. 시대에서 시대로 넘어갈때 사건과 사건 사이..등이 비어있으니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왕조를 빠짐없이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초 대하드라마와 같은 아주 방대한 양의 한국사와 세계사를 부탁드리는 이유는 교양을 목적으로 하지만 시험에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초 대하드라마와 같은 아주 방대한 양의 한국사와 세계사를 보고 한국사와 세계사 강의를 들으면 흡수가 빠를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튜브에 한국사와 세계사 부분부분들은 많습니다. 꿰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영상당 ppt까지 꼼꼼하고 페이지가 아주 많으면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몰입하기에 더욱더 좋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컨텐츠가 될 것입니다.
1000편 정도의 한국사와 세계사를 TV에서 초 대하드라마로 해줬으면 하고 바랬던 적이 있습니다. 세계사는 1000편 이상을 바랬었고요.. 역사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 영상당 수많은 PPT와 함께 한국사와 세계사의 모든 내용을 드라마를 보듯 이야기 형식으로 듣는다면 너무 행복할것 같습니다. 선사시대. 단군 이야기. 모든 왕조..등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내용 모두다요.. 세계사도 그렇고요.. 어디에도 없었던 초 대하드라마 같은 한국사와 세계사 선생님께서 해주시면 저는 너무 너무 행복할것 같습니다. 꼭좀 부탁드립니다.
현장지휘관의 판단과정보가 이룬승리죠..
역시 현장이 답이죠.
그냥 고장안난게 신에한수였던거임
2차대전에도 사람다운 사람은 있었다
영국군이 한심하기로 유명하죠.
북아프리카에서도 독일군이 절반도 안되는데도 계속 패하다가 보급이 안되는 독일군을 방어만해서 겨우 막았죠
그나저나 아무리 머라해도 알보병한테 탱크는 무서운 존재이군요 ㅠ.ㅠ
아무리 쏴도 전혀 관통이 안되고 대전차무기나 대전차포가 없는이상 보병은 탱크에 무력한존재죠...
애초에 일본식 전차운용 교리 자체가 보병지원용인지라, 대전차용이 아닌 대보병용으론 당연히 유효한거죠 ^^
7:17 ㅋㅋㅋ 제목이 잘 어울리네요 ㅋㅋㅋ "대모험" ㅋㅋㅋ
장갑이약한 탱크라도 탱크는 탱크겠죠~^^ 아군에게 탱크가 없다면 장갑차같은 탱크라도 충분한 위협이 될수있겠죠!!
싱가포르와 중국에서는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죠.. (다만 중국은 적 상태가..)
큼큼 그때는 치하 잘나갔죠
그치만 태평양전쟁때는 중전차가 경전차수준인것이 명확히 읍읍
@@swlee2000 셔먼이 막 티거처럼 개사기 깡패 전차는 아니지 않았나요?
@@jjo_rab-y1l 일본한테는 티거 이상급였다는 학계의 정설이...
@@jjo_rab-y1l 개사기 깡패급 까진 아니어도 당시에 M3 스튜어트로도 적에게 겁을 줄 수 있던게 태평양 전선이라..
부대간 연락망도 없는데 돌진한다고??? ㅎㄷㄷ 이것이 이른바 임무형 전술이구나
소좌가 계급이 우리나라계급으로 어떤뜻이에요?
소령입니다!
@@jeonkun 감사합니다!
치하탱크는 n2중기관총에 구멍난다는애잖아요
역시 장비보다 인간빨인가....
1차 대전에서나 볼법한 전차로 저런 성과를 내다니...... 약하긴 해도 방심금물이네요
묻고 더블로 가 ~~~♥
하기사ㄷㄷ 2차대전 당시 일본제국 육군 중에서도 막장들만 있었던것은 아니고 진짜 명장인 장교들또한 어느정도 꾀나 있었다고 하네욥니다.ㅋㅋㅋㅎㅎㅎ
대전차 지뢰도 종심깊게 설치하지 않고 좌우 방어도 안하고...경험의 부족
공군이 빠지긴했지만 제병합동 교리를 거의 최초로 이용한 일본군 장교네요
원래 탱크가 진지를 넘어가기위해 만들어진건데 당연한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