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0에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위치가 잘못됐습니다. 경기도 시흥시가 아닌 '오늘날' 【서울 금천구 시흥동】 입니다. 같이 보면 좋은 [춘천전투] 영상 th-cam.com/video/_cjI6QSM03Y/w-d-xo.html 같이 보면 좋은 [6.25전쟁] 플레이리스트 th-cam.com/play/PLEFdqOeF1nkSLwig948Xch66LJk7sbKWI.html
6.25는 좀 안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외국인들때문에 벌어진 전쟁이고,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지요.우리가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넘쳐나서 6.25관련 동영상만 봐도 짜증나는 경우가 많네요. 6.25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고,이미 2차 세계대전때 계획된 전쟁이라고 하지요. 6.25원인은 첫째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둘로 쪼갠 것이 근본적인 이유이고,두번째는 미국이 애치슨 라인 긋고 철수한 게 원인이죠.북한의 침입은 그 결과죠. 애치슨 동영상을 보면 우리나라와 주변 지도를 보여주며 지키기 어렵다면서 철수한다고 하죠. 뭐 지도만 보면 맞는 이야기지만 당시 미국경제를 생각하면 맞지않지요.게다가 6.25가 터지자 곧바로 미국은 참전했죠. 낡은 옷을 입은 노인분이 자동차매장에 와서 경차를 보고서는 차가 이쁜데 비싸서 못사겠다고 하면 겉모습만 보면 다들 납득하겠지요. 하지만 그 노인분이 대기업회장이고,경차가 비싸서 못사겠다는 사람이 바로 옆에 수십억짜리 스포츠카가 있는 걸보고 곧바로 구입한다면? 당시 북한과 남한은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약소국중에 약소국이었고,둘이 싸워봐야 큰 피해는 나지 않았겠죠. 하지만 수백만의 외국인들이 내전에 참전했고,그 결과 세계대전급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즉 6.25원인도 외국인들때문에 발생한 것이고,막대한 피해 역시 외국인들 때문이라는 거...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고마워하는지?
채병덕 같은 쓰레기가 참모총장으로 지휘를 하고 있었으니 많은 훈련과 병력 및 장비를 가진 북괴군에게 뚫리는 것은 1+1 = 2 라는 공식이나 마찮가지 인것입니다 의지만 가지고는 안되는것이 있습니다 병력이 비슷하고 장비가 차이가 없을때나 가능한것인데 북괴군은 전차로 밀고 내려오며 전차를 파괴시킬 방법을 알지 못하는 국군에게 전차를 앞세운 막대한 병력의 북괴군을 막으라니 ... 미군에게 전차를 파괴할수 있는 방법이라도 물어보고 육군에게 전파를 해야 하는것이 효율적이고 전 체 전선의 상황을 관리해야할 총장을 쓰레기급 인물로 고용 했으니 당시에는 유능한 장성을 알아보거나 경험많은 장군급이 갖독립한 한국군에게 있을리 만무하지 요 유재흥이 같은 인간쓰레기 만도 못한 자가 군단장을 했던것도 그렇고 ...북괴군은 그래도 전투경험이 많은 장성급과 전쟁준비 및 훈련도 소련군에게 엄청나게 많이 받은 장교들이 수두룩 했는데 .. 6.25 전후로 이승만의 쓸데없는 호언장담이나 대처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승만의 부하들인 이기붕과 그외의 내시들 같았던 딸랑이 부하들도 쓰레기들만 모아놓은 집단이구요 그래도 김홍일, 김종오 장군이나 백선엽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한국이 북괴군에 적화되지 않았고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방 사단장들의 트롤링에도 불구하고 한강방어선을 지키며 국군을 수습했던 김홍일 장군이 없었다면 그 뒤의 낙동강 방어전,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것. 다만 미고문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군단장에서 해임된 사건으로 미군에게 이후 찬밥대우를 받으며 위상에서는 크게 밀리게 된 분...
당시 군내부에서 백전노장이던 김홍일 장군은 조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게 두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내었는데 첫번째론 한강 방어선 주장이고 두번째로는 채병덕의 육사생도 참전 결정이였습니다 왜냐하면 고급 장교 교육과정에 있는 생도들을 무작정 전장에 투입하여 엘리트 생도들을 잃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김홍일 장군이 채씨에게 찾아가 축차투입하지 말고 병력을 순차적으로 퇴각시키라고 조언했지만 개무시… 그덕에 선전중이던 중부전선의 6사단, 동부전선의 8사단 제외하고 편제유지 못할정도로 흩어지게 만듬 생도 투입은… 초급 지휘관을 그냥 소총병으로 소모하겠다는 발상인데 비슷한 개념이 왜구의 가미카제
춘천전투가 너무나도 컸죠.. 김종오 장군이 이끌던 6사단 7연대 부대 국군 덕분에 3일간 시간을 벌어주셨고 춘천 전투로 인해서 북한군이 서울에 3일간 머물게됬고.. ㅜㅠㅜ 이 전투로 전쟁 상황이 뒤바뀐 배경도 됬죠 ㅠㅠㅠ 대한민국을 지켜준 모든 참전용사분들께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ㅠㅜ
백선엽장군은 진지 저지전에 능했고 김홍일장군은 지연전에 능했습니다. 이는 그 두분이 배우고 습득해야 하는 전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공세의 입장에 있는 일본군에 소속된 백선엽장군은 지점방어와 구축능력이 독립군 소속으로 일본군과 러시아군에게 몰리는 입장에서 지연전이 중요했습니다.
백선엽 빠돌이이신거 같은데 정확히 말해서 김홍일 장군은 저지전, 지연전 전부 능했습니다! 김홍일 장군이 미군과 사이가 안좋아 능력을 펼치기 어려웠을 뿐이지 독립군 시절과 장제스 휘하 장군 시절때 중공군과 일본군과 싸울때 보면 그 상황에 알맞게 전술과 전략을 썼을정도로 다재다능하신분이셨어요 또한 백선엽은 김석원 장군, 김종오장군이나 장도영장군에 비해서 저지전에서 조차 능력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김석원 장군이 부임하자 마자 백선엽 휘하 부하들이 대거 김석원 장군쪽으로 넘어 갔었죠.!! 백선엽은 너무 과대 포장 됬습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국방부 장관직에 신성모가 육군참모총장에 채병덕이 앉았다는 것… 지청천이 국방부 장관을 하기엔 나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참전이라도 했다면 전쟁의 판도는 달랐을 것이고 이범석 또한 2살 더 많은 김홍일이 군에 있을 때 이범석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너무나도 충성한 나머지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앉지 않았을 뿐더러 참전하지 않은게 너무도 아쉬움 지청천, 이범석 두 분 다 독립•광복군 경험을 끝으로 군을 떠난 게 큰 오점
개인적으로 일본군 출신 백선엽 장군을 인정하는게 김홍일 장군과 가까워서지요. 백선엽 회고록에도 김홍일을 칭송하는 부분이 있고요. 두 분 각각의 지지자들은 서로 누가 더 공이 많네. 라이벌 의식이 있지만 두분 다 전쟁영웅 이십니다. 김홍일,백선엽,김종오 이렇게 TOP3 라고 봅니다.
님 왜?? 백선엽을 빠시죠?설마 6.25활약당시 님 이 알고 있는 장군이 3명밖에 없어서 top3인가여??그리고 백선엽을 왜 김홍일 장군과 동일시 하시는지??? 백선엽은 그런 깜량이 안된 과대포장된 장군입니다 그리고 6.25전쟁 영웅들이 살아계셨던 1983년 국방부 선정 6.25전쟁 4대영웅은 워커, 맥아더, 김홍일, 김종오 입니다.. 그리고 그때당시 백선엽 보다 김석원 장군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느정도 였냐면 김석원 장군이 부임하자마자 백선엽 휘하 부하들이 대거 김석원 장군 밑으러 자진해서 들어가서 백선엽이 삐졌다고 할정도 였습니다. 더군다나 백선엽이 김홍일 장군이나 김종오 장군에 비해 전과도 크지고 않고 진짜 전과 따진다면 파로호 대첩 주역인 장도영 장군이 있는데.. 왜 백선엽장군을 빠시는지..???
굳이 백선엽을?? 김종오 장군이나 현대판 살수대첩인 파로호대첩 주인공인 장도영 장군이 있는데도??? 더군다나 김석원 장군에 비해서 백선엽은 능력도 떨어진데 다가 부하들도 백선엽보다 김석원을 더 믿었습니다. 한예로 김석원 장군이 다시 부임하자 마자 백선엽 휘하 참모진들 대거 자진해서 김석원 장군 휘하로 들어갔을 정도입니다. 그정도면 빨아줄정도의 명장까진 아닙니다
한가지 빠진게 당시 북한이 한강 이남으로 전격적으로 남하하지 않은 이유는 북한병력이 동부전선을 순식간에 격파하고 남하하여 한강이남의 뒤를 치는 계획이었는데 당시 동부전선 국군들의 목숨을 건 저항으로 북한의 진격에 차질이 생기며 서부전선이 북한군이 한강이남으로 진격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거 같네요~~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군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은 장군 두분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김홍일 장군, 다른 한 사람은 김석원 장군이죠. 먼저 김홍일 장군은 독립군에 활동하다 중국 국민당군에 입대 장교가 되어 김구선생의 애국단을 지원했고 중일전쟁에서 외국인 출신으론 최초로 소장으로 진급하여 국민당군 사단을 지휘 일본군을 격퇴했죠. 해방 후 귀국하여 국군창설에 앞장섰고 예비역으로 있다가 육이오 전쟁으로 복귀한거죠. 김석원 장군은 비록 일본군 대령 출신이었지만 의외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으며 이후 귀국하여 자숙하다 국군창설에 나서서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자 1사단장이 되어 북한군을 격퇴했습니다.
러시아 내전, 국민당의 북벌, 중일전쟁을 거친 베테랑이자 6.25 전쟁에서 전군 8개 사단 중 5개 사단이 박살난 가운데 와해된 병력을 수습, 3개 사단으로 재편하고 북한군을 성공적으로 지연시킨 구국의 영웅. 김홍일 장군의 일대기도 파란만장하기에 나중에 한 번 다뤄보면 좋겠네요.
1898년 9월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 오산학교 졸업 중국 국민혁명군 -대한 의용군으로 만주 일대에서 일본군 소탕 -중국 국민혁명군 장군 (김구의 요청으로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에 사용된 폭탄 제조 및 훈련을 맡음) 광복군 참모장 (김구 계열) -광복 이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장제스를 도와 국공내전에 참전과 동시에 동포들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헌신함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과 동시에 이범석, 최용덕, 유동열, 신익희 등 광복군 동지들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 -김홍일 장군을 비롯 송호성( 광복군) , 손원일( 독립지사 가문) , 채병덕( 일본 행정병) , 이응준( 일본군) 과 함께 최초 국군 장군으로 발탁 -후배 고급 교관을 양성하기 위해 4년제 육사를 이승만에게 건의 및 육사교장 취임 -6.25전쟁 발발 군원로회의에서 한강방어선 주장 (지지자: 지청천, 이범석, 김석원) -한강 방어선 이외에도 진천-음성-청주에 방어선을 한 번 더 구축 -1951년 4월 군을 떠남 (미국의 압력) 및 자유중국(대만) 대사 역임 -5.16군정의 원로로 참여하였으나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는 박정희 군정을 비판 및 신민당 총재로 독재를 견제 ( 군정에 있던 군인들이 가장 존경하던 군인이자 스승이던 김홍일)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다 1980년 8월 완벽한 영웅의 삶을 마침
동부 전선은 6.25 일어나기 전 누군가가 전쟁 일어날 느낌을 받아 전 사단에 훈련 빡시게 하라고 명령 하달했다죠. 동부가 뚫리지 않았기에 낙동강 전선을 구축했고. 유엔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죠. 중부. 서부 전선은 뚫렸고. 국군 포로들을 인민군 군복을 입혀 총알받이로 썼다는 일화.
* 7:40에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위치가 잘못됐습니다. 경기도 시흥시가 아닌 '오늘날' 【서울 금천구 시흥동】 입니다.
같이 보면 좋은 [춘천전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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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면 좋은 [6.25전쟁]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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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방어선덕분에 미군참전.화력무기지원을 할수있었내요
6.25는 좀 안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외국인들때문에 벌어진 전쟁이고,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지요.우리가 피해자인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넘쳐나서 6.25관련 동영상만 봐도 짜증나는 경우가 많네요.
6.25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고,이미 2차 세계대전때 계획된 전쟁이라고 하지요.
6.25원인은 첫째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둘로 쪼갠 것이 근본적인 이유이고,두번째는 미국이 애치슨 라인 긋고 철수한 게 원인이죠.북한의 침입은 그 결과죠.
애치슨 동영상을 보면 우리나라와 주변 지도를 보여주며 지키기 어렵다면서 철수한다고 하죠.
뭐 지도만 보면 맞는 이야기지만 당시 미국경제를 생각하면 맞지않지요.게다가 6.25가 터지자 곧바로 미국은 참전했죠.
낡은 옷을 입은 노인분이 자동차매장에 와서 경차를 보고서는 차가 이쁜데 비싸서 못사겠다고 하면 겉모습만 보면 다들 납득하겠지요.
하지만 그 노인분이 대기업회장이고,경차가 비싸서 못사겠다는 사람이 바로 옆에 수십억짜리 스포츠카가 있는 걸보고 곧바로 구입한다면?
당시 북한과 남한은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약소국중에 약소국이었고,둘이 싸워봐야 큰 피해는 나지 않았겠죠.
하지만 수백만의 외국인들이 내전에 참전했고,그 결과 세계대전급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즉 6.25원인도 외국인들때문에 발생한 것이고,막대한 피해 역시 외국인들 때문이라는 거...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고마워하는지?
제가 이전 영상에 댓글로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및 국군의 지연작전이 알려지지 않아 너무 아쉬워서 만들어주십사 싶어 댓글을 달았었는데... 이미 준비중이셨군요 ㄷㄷ 감사합니다. 국군의 지연 작전도 잘 부탁드립니다 !
ㅣ
김홍일 장군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한국전쟁시기 장성으로 임관하셔서 엄청난 군공을 세우셨고 그후 외무부장관과 국회의원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산증인 이셨네요!
이미 중화민국군에서도 소장이었습니다. 일본 육군과 중화민국군이 운명의 한타를 벌인 우한대전 (그 우한임)에서 군단 참모로 복무했습니다.
별명이 오성장군이셨죠 중화민국에서 2성장군 한국군에서 3성장군 별이 5개~!!!!ㅋ
ㄷㄷ
엄혹했던 유신시대에는 야당 총재로서 가택연금이 되기도 했었죠. 장군으로서의 능력 못지엖게 훌륭한 인품을 지닌 분..
이러분을 4성 못달게 하려고 3성에서 옷을 벗긴 그분....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별이신
오성장군 김홍일장군님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수호에 힘쓰신
거룩한 정신 잊지않겠습니다
김홍일 오성장군님! 이렇게 훌륭하신 위인을 역사적으로 더 알리지 못 해 아쉽습니다.
김홍일 장군님을 포함한 참전 용사들 감사합니다.
채병덕 같은 쓰레기가 참모총장으로 지휘를 하고 있었으니 많은 훈련과 병력 및 장비를 가진 북괴군에게 뚫리는 것은 1+1 = 2 라는 공식이나 마찮가지 인것입니다
의지만 가지고는 안되는것이 있습니다 병력이 비슷하고 장비가 차이가 없을때나 가능한것인데 북괴군은 전차로 밀고 내려오며 전차를 파괴시킬 방법을 알지 못하는
국군에게 전차를 앞세운 막대한 병력의 북괴군을 막으라니 ... 미군에게 전차를 파괴할수 있는 방법이라도 물어보고 육군에게 전파를 해야 하는것이 효율적이고 전
체 전선의 상황을 관리해야할 총장을 쓰레기급 인물로 고용 했으니 당시에는 유능한 장성을 알아보거나 경험많은 장군급이 갖독립한 한국군에게 있을리 만무하지
요 유재흥이 같은 인간쓰레기 만도 못한 자가 군단장을 했던것도 그렇고 ...북괴군은 그래도 전투경험이 많은 장성급과 전쟁준비 및 훈련도 소련군에게 엄청나게 많이
받은 장교들이 수두룩 했는데 .. 6.25 전후로 이승만의 쓸데없는 호언장담이나 대처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승만의 부하들인 이기붕과 그외의 내시들 같았던 딸랑이
부하들도 쓰레기들만 모아놓은 집단이구요 그래도 김홍일, 김종오 장군이나 백선엽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한국이 북괴군에 적화되지 않았고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방 사단장들의 트롤링에도 불구하고 한강방어선을 지키며 국군을 수습했던 김홍일 장군이 없었다면 그 뒤의 낙동강 방어전, 인천상륙작전도 없었을것. 다만 미고문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군단장에서 해임된 사건으로 미군에게 이후 찬밥대우를 받으며 위상에서는 크게 밀리게 된 분...
제일 트롤링은 채병덕이죠, 이승만에게 큰소리만 치면서 실제적 작전능력은 없이 국군을 소모시켜버린
채병덕과 유재흥... 트롤링으로 육군 작전통제권이 미군으로 넘어가버림
백선엽 김홍일 이런 분들 없었음 바로 빨간땅임
@@commentno3153 현리전투를 유재흥의 책임으로 몰고가는건 무리임
거기에 신성모 장관까지
김홍일 장군님은 진짜 반일에, 반공, 반독재까지 완벽한 트리플 크라운 달성한 참군인이시죠....
인정
나라의 얼마없는 보물이여
순혈주의 한국인이 좋아할 인물이네
@@SovietPikachu1945 소뽕 빨갱이 수준
억까절대 못하게쎼ㅋㅣㄱ
김홍일 장군님이 없었으면 미군의 참전도 유엔의 참전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채병덕 진짜 ㅋㅋㅋㅋㅋ 무능한 지휘관이 적군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에 제일 잘 어울리는 작자다
실제로 적한테 함락당한 것 중 반은 무능한 인물이 지휘했거나 무능한 왕이 있었습니다
간첩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관상은 과학인게 다시금 느껴지는.. 어쩜 저렇게 무대포로 생긴 사람들은 꼭 무능해 빠졌는지
딱 원균이네요 근데 스파이일수도있습니다 아주 우연히 전쟁전날 대규모로 휴가 외박나가고....
진짜 보면 채병덕 이양반은 이해할려고해도 할수가없어요…
육군의 참 아버지 김홍일 장군이군요. 독립군 출신으로 타군의 설립자들에 비해 꿀릴것 없는 명예를 가지고 계시지요.
한번 무너져 전의를 잃은 부대를 수습하고 사기가 오른 다수의 적에 맞서는것.... 정말 정말 수고하셧습니다..아무도 못할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광복군 출신의 명장이자
당시 국군의 장군들중에 유일하게 사단급 이상의 병력을 지휘한 경력자
채병덕이 아니고 김홍일장군이라면 지연전 제대로 펼치고 있었을텐데
아마.. 김홍일장군이 미군과 사이 좋았다면 중공 최강의 장수인 팽덕회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냈을지 정말 궁금해졌을 겁니다..
@@안녕-u9k2v 미국은 말 잘듣는애가 필요한거ㅏㄹ
@@여기있었구만심영-i4b 넌 역사 공부나 해라
당시 군내부에서 백전노장이던 김홍일 장군은 조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게 두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내었는데 첫번째론 한강 방어선 주장이고 두번째로는 채병덕의 육사생도 참전 결정이였습니다 왜냐하면 고급 장교 교육과정에 있는 생도들을 무작정 전장에 투입하여 엘리트 생도들을 잃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주장을 하셨네요.
초장에 한강 이남 방어로 나갔으면 전방의 우리군 거의 잃지않고 작전을 펼쳤을 것이고, 북한군 진격은 오히려 더 늦었을 듯요.
@@청천고운 그에 앞서 김종오 장군의 6사단이 춘천에서 인민군 2군단의 남하를 저지하였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죠…!
@@가르르닥고 거기에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이성가 장군의 8사단도 한몫했습니다
@@안녕-u9k2v 맞습니다 백의사 및 광복군 출신의 이성가 장군 휘하 8사단이 동부전선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을 완벽하게 저지하였죠!
김홍일 장군이 채씨에게 찾아가 축차투입하지 말고 병력을 순차적으로 퇴각시키라고 조언했지만 개무시… 그덕에 선전중이던 중부전선의 6사단, 동부전선의 8사단 제외하고 편제유지 못할정도로 흩어지게 만듬
생도 투입은… 초급 지휘관을 그냥 소총병으로 소모하겠다는 발상인데 비슷한 개념이 왜구의 가미카제
1983년 국방부 선정 6.25 전쟁 4대 영웅
월튼 워커, 더글라스 맥아더, 김홍일, 김종오
이때는 6.25전쟁 영웅들이 많이 살아계실때 평가입니다
불암산 유격대편 정말 인상깊게 봤었는데 이렇게 또 6.25전쟁 특집영상으로 보게되어 더 기쁩니다 앞으로도 계속 6.25 특집 많이 만들어주세요
또한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시고 지키신 6.25 참전용사분들 감사합니다
채병덕 vs 무타구치 렌야... 가슴이 웅장해지는 한일전
채병덕은 보급 전문가였으니 무다구치 렌야와도 비교가 안됨
채병덕은 그래도 전부 말아먹을때까지 밀어붙인건 아니라서, 무타구치 렌야가 완승 ㅋㅋㅋㅋ 렌야는 자존심 세우려고 망한거 알면서도 밀어부치다 결국 다 말아쳐먹었으니 ㅋㅋㅋㅋㅋㅋ
렌야였으면 한강 이북에서 결사항전, 반자이돌격으로 전멸할때까지 사수하라고 했을듯.
@@humanplusscience4449 보급전문가 ..한강철수때 보급을 왜 그딴식으러 했을까??
@@안녕-u9k2v 보급을 후방에서 하지, 정신없이 밀리는 최전방에서 누군들 잘 할까... 자기 능력에 안 맞게 하필 그 시기에 참모총장까지 한 건 과분하기는 함.
@@humanplusscience4449 보급이라는게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고 맞지만 가지고 있는 무기를 지키는 능력도 보급의 능력입니다. 무기를 이동시킬 시간도 충분했고 실전 경험이 풍부한 김홍일장군과 김석원 장군이 여러차례 충고 했지만 그거 싹다 무시했죠 ㅋㅋㅋㅋ
김홍일 장군님 우리의 큰 영웅입니다!!!!!!! 감사합니다.... 김홍일 장군님...
0:58 중국 국민혁명군으로 중일전쟁에서 활약했고 한국광복군 사령부 한인 참모장이였습니다
허를 찌르는 전략전술로 적을 섬멸시키는거 만큼 중요한게
궤멸 위기의 부대를 수습해
질서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오성장군 김홍일 장군님!
진짜 한국전쟁의 영웅 김홍일 김종오장군님
춘천전투가 너무나도 컸죠.. 김종오 장군이 이끌던 6사단 7연대 부대 국군 덕분에 3일간 시간을 벌어주셨고 춘천 전투로 인해서 북한군이 서울에 3일간 머물게됬고.. ㅜㅠㅜ 이 전투로 전쟁 상황이 뒤바뀐 배경도 됬죠 ㅠㅠㅠ 대한민국을 지켜준 모든 참전용사분들께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ㅠㅜ
독립운동가들에게 잘 대해줬다는 이유만으로 군수출신인 채병덕이라는 똥별이 참모총장이 되면서
6.25 초기의 군 작전이 엄청나게 혼란스러웠지요
말 해 무엇 하리.. 저 때 참전하신 모든 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거지...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한민국 국민이길 포기 한 것.
6:01에서 언급된 70여명의 군경 희생자중에는 후방으로 후퇴해 전력을 재정비하려던 종로경찰서 소속 김영희경위 휘하 다수의 경찰관들도 있었습니다.
전시에 무능한 지휘관이 얼마나 많은 장병들을 희생시키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
지금은 서울 금천구가 되었지만 경기도 시흥시 였다는 건 맞습니다 1963년 서울시로 편입 될때까지 금천구는 시흥시에 포함 되어 있엇습니다 당시 시흥은 군이였고 금천구는 시흥에 있는 한 동네 였기에 이름을 그냥 시흥지구전투사령부로 지은 것입니다
김홍일 장군이 진짜 인물이시네..
드디어 김홍일 장군님이 나오다니!!!
김홍일 장군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얘기 귀영둥이 고양이와 함께 잘 듣고 있어요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훗날 1군단으로 이어집니다.
언제 김홍일 장군과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배경으로 영화 3일 이런 거 만들어줘요. 진짜로... 국방부, 전쟁기념관 일해랏!!
모든 참전 용사들과 현역으로 고생하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채병덕은 진짜 국군 역사상 최악의 수치다... 그에 반해 김홍일장군님은 국군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신듯
한강방어선전투는 지연전술을 펼친 독립운동가 출신인 김홍일장군과 일본육사 출신인 이응준장군이 존나리 쌔빠지게 움직여서 만든 작전이었다 고작 두명이 바꾼 결과랄까... 거진 1인사령부 였을텐데
김홍일 장군님과 그 당시 전투에 임했던 모든 장병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저 영상에 등장한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백선엽장군은 진지 저지전에 능했고
김홍일장군은 지연전에 능했습니다.
이는 그 두분이 배우고 습득해야 하는 전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공세의 입장에 있는 일본군에 소속된 백선엽장군은 지점방어와 구축능력이 독립군 소속으로 일본군과 러시아군에게 몰리는 입장에서 지연전이 중요했습니다.
백선엽 빠돌이이신거 같은데 정확히 말해서 김홍일 장군은 저지전, 지연전 전부 능했습니다! 김홍일 장군이 미군과 사이가 안좋아 능력을 펼치기 어려웠을 뿐이지 독립군 시절과 장제스 휘하 장군 시절때 중공군과 일본군과 싸울때 보면 그 상황에 알맞게 전술과 전략을 썼을정도로 다재다능하신분이셨어요 또한 백선엽은 김석원 장군, 김종오장군이나 장도영장군에 비해서 저지전에서 조차 능력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김석원 장군이 부임하자 마자 백선엽 휘하 부하들이 대거 김석원 장군쪽으로 넘어 갔었죠.!! 백선엽은 너무 과대 포장 됬습니다
김홍일 장군님은 분이라 칭해도 되지만 간도특설대 백선엽에게 분은 좀...
@@kimhunv 김홍일 장군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어쨌든 6.25전쟁에서 영웅은 영웅이죠.. 다만 친일경력이 있는 아쉬운 영웅
@@kimhunv 당시 간도에는 독립군 없을 때입니다.
훨씬 이전에 김일성을 비롯한 소련 압잡이들에 의해 자유시에서 참변을 당하고 만주 땅에 진정한 독립군들은 사라진 이후지요.
좌파들의 교묘한 짜집기 역사에 놀아나면 안됩니다.
@@가르르닥고 백선엽은 김종오장군이나 김석원 장군 장도영장군에 비해서도 전공이 많이 부족하죠 . 8사단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출신 이성가 장군과 전공은 비슷하겠네요
야전 지휘관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보여주는 사례~
또 다른 의미의 한강의 기적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네요
김홍일 장군님은 얼굴도 뭔가 서구형으로 2차대전 당시 미군이나 독일군 명장의 느낌도 나고 잘생기심 ㄷㄷ;
정말 존경하는 분,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선엽도 참 답답한게 위관급장교수준 30대가 실전경험풍부하고 사단급지휘를 해본 김홍일장군이 직속상관은 아니더라도 충고를해주면 받아들이고 1사단을 후퇴시켜었어야했는데 그걸안했다는게참..
미국은 맥아더를 보내 한국의 전투력과 전투의지를 확인한 후에 군대를 파견했다 본인들이 싸우려하지 않는 국가엔 절대 미군을 보내 희생 시키지 않는다 일반병에게도 여기를 지키는 이유가 뭔지 꼭 물어보았다
그게 당연함 후에 베트남전에서도 뼈저리게 겪지
6.25 초기 기습+보급, 무장 부족으로 퉁치기에는 수뇌부의 무능도 매우 컷다고 생각합니다.
ㅇㅈ
하.. 그래도 경험이 풍부한 김홍일장군과 김석원 장군이 버젓이 있었는데 왜??채병덕이가 됬을까나???
@@안녕-u9k2v 한국전쟁 3대미스터리
수뇌부 무능을 감싸는 건 아니지만
유효한 대전차무기도 없는데 탱크로 밀고내려오는걸 어떻게 막아요
거기다가 병사들의 수준도
국지전만 해본 아군과
중공내전으로 단련된 괴뢰군의 질적 차이도 있었는데
@@TH-camactslikechina 지연전은 가능한데
정작그것도안하고있다가 병력을 쌩으로 다날려버리고 지연도 못시키고 도망갔다는게 문제죠
가장 아쉬운 부분은 국방부 장관직에 신성모가 육군참모총장에 채병덕이 앉았다는 것… 지청천이 국방부 장관을 하기엔 나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참전이라도 했다면 전쟁의 판도는 달랐을 것이고 이범석 또한 2살 더 많은 김홍일이 군에 있을 때 이범석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너무나도 충성한 나머지 육군참모총장 자리에 앉지 않았을 뿐더러 참전하지 않은게 너무도 아쉬움 지청천, 이범석 두 분 다 독립•광복군 경험을 끝으로 군을 떠난 게 큰 오점
개인적으로 일본군 출신 백선엽 장군을 인정하는게 김홍일 장군과 가까워서지요. 백선엽 회고록에도 김홍일을 칭송하는 부분이 있고요. 두 분 각각의 지지자들은 서로 누가 더 공이 많네. 라이벌 의식이 있지만 두분 다 전쟁영웅 이십니다. 김홍일,백선엽,김종오 이렇게 TOP3 라고 봅니다.
님 왜?? 백선엽을 빠시죠?설마 6.25활약당시 님 이 알고 있는 장군이 3명밖에 없어서 top3인가여??그리고 백선엽을 왜 김홍일 장군과 동일시 하시는지??? 백선엽은 그런 깜량이 안된 과대포장된 장군입니다 그리고 6.25전쟁 영웅들이 살아계셨던 1983년 국방부 선정 6.25전쟁 4대영웅은 워커, 맥아더, 김홍일, 김종오 입니다.. 그리고 그때당시 백선엽 보다 김석원 장군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느정도 였냐면 김석원 장군이 부임하자마자 백선엽 휘하 부하들이 대거 김석원 장군 밑으러 자진해서 들어가서 백선엽이 삐졌다고 할정도 였습니다. 더군다나 백선엽이 김홍일 장군이나 김종오 장군에 비해 전과도 크지고 않고 진짜 전과 따진다면 파로호 대첩 주역인 장도영 장군이 있는데.. 왜 백선엽장군을 빠시는지..???
백선엽은 빼자.
김홍일장군 백선엽장군님 두분다 모두 존경합니다
굳이 백선엽을?? 김종오 장군이나 현대판 살수대첩인 파로호대첩 주인공인 장도영 장군이 있는데도???
더군다나 김석원 장군에 비해서 백선엽은 능력도 떨어진데 다가 부하들도 백선엽보다 김석원을 더 믿었습니다. 한예로 김석원 장군이 다시 부임하자 마자 백선엽 휘하 참모진들 대거 자진해서 김석원 장군 휘하로 들어갔을 정도입니다. 그정도면 빨아줄정도의 명장까진 아닙니다
무능한 장군들속에서 진짜 장군님덕에 대한민국이 버틸수있엇다
역사이야기는 항상 재밌어요
SL-17: 50년 6월 25일 이전에 작성된 한국전쟁 계획
DS-SL-17: 50년 6월 29일 맥아더가 한강방어선을 돌아보고 만든 수정 작전겨획
진짜 한명의 무능한 지휘관이 유능한 적군보다 무섭다의 좋은 예시
김홍일 장군님 대단하신 분이네요.
채병덕 같이 무능한자가 참모총장이라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창피할 지경이다.
김홍일 장군같이 지덕체를 고로 갖춘 훌륭한 인물이
참모총장이 아니였다는 사실 자체가 개탄스럽다
헤즐릿중령이라는분도 우리나라를 위해 정말 필요한조언 해주셨네
6.25 전쟁편 너무 재밌네요.
채병덕 총장.. 진짜 얼굴만 봐도 얘가 어떤 인간인지 훤히 보인다
전쟁에 희생되신 군인들분들 존경
님이 여긴왜?
@@AK47Zd ??????
나름 625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방송보고 세상엔 고수가 많다는걸 느꼈습니다
조금 더 보고 구독할께요
한가지 빠진게 당시 북한이 한강 이남으로 전격적으로 남하하지 않은 이유는 북한병력이 동부전선을 순식간에 격파하고 남하하여 한강이남의 뒤를 치는 계획이었는데
당시 동부전선 국군들의 목숨을 건 저항으로 북한의 진격에 차질이 생기며 서부전선이 북한군이 한강이남으로 진격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거 같네요~~
해당 이야기는 6편 춘천전투편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h-cam.com/video/_cjI6QSM03Y/w-d-xo.html
일본군 출신인 채병덕은 적군보다 더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채병덕은 간첩같은 매우 의심스런 인물. 김종오, 김홍일 장군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지켜낸 영웅들. 막강한 화력의 북한군을 변변찮은 무기와 적은 병력으로 지켜내다니 정말 용장 이시다.
개꿀잼 ㅎ 더 없는 게 아쉽네요 ㅠ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온몸 불살라 산화하신 순국용사들의 명복을 비옵니다.
김홍일 장군님 감사합니다.
그냥 속수무책으로 밀린게 아니라 밀렸지만 귀중한 시간 며칠을 벌었던거군요 그게 스노우볼이 굴렀다
7:40에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위치를 수정해 주십시요. 저 당시 육군보병학교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정 댓글에 달아놓겠습니다.
1사단 전진부대 출신 예비역 병장으로서 영상 잘 시청했습니다
김홍일,김종오,장도영,백선엽 한국전쟁 4대 명장..
그동안 서울 점령전 사흘간 어떻게 싸웠는지 궁금했는데 그궁금증이 해소되네요
감사합니다.
아무리 봐도 채병덕이라는 사람은 똥별이구나
퍄퍄님 우리가모르는 상세한
개전 초기의 상황을 알러주셔셔 감사합니다.
한강다리 폭파 3시간 30분 전
군인들과 일선 상인들에게만 알려준듸
폭파했어도 시간이 충분했을텐데
너무 안타깝네요.
당시 지휘관은 폭파할 생각도 없었음
빨갱이 간첩이 사방팔방있는데 잘도?
댓글 먼저 쓰고 영상을 감상하겠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역사인데 이거보고 바로 구독함
유일하게 2대전때 군단급 병력을 운용해본 경험이 있던 장군인 김홍일…
진짜 신기한게 625초기엔 북괴 장군들도 다들 독소전 경험한 애들 1.2있지만
중일 전쟁서 군단급 운용했던 김홍일이랑
비교해서는 실례 국군 장성들은 여단급도 감지덕지인데 인플레 받은경우가 많았고
퍄퍄킴님 믿고있었다구~
내 요청보고 만드셨구만~
흥미롭네요…
파파킴님 다음에 언젠가 김영옥 대령님 에피소드도 한번 다뤄주세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이런 영상 너무 조아~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군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은 장군 두분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김홍일 장군, 다른 한 사람은 김석원 장군이죠. 먼저 김홍일 장군은 독립군에 활동하다 중국 국민당군에 입대 장교가 되어 김구선생의 애국단을 지원했고 중일전쟁에서 외국인 출신으론 최초로 소장으로 진급하여 국민당군 사단을 지휘 일본군을 격퇴했죠. 해방 후 귀국하여 국군창설에 앞장섰고 예비역으로 있다가 육이오 전쟁으로 복귀한거죠. 김석원 장군은 비록 일본군 대령 출신이었지만 의외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으며 이후 귀국하여 자숙하다 국군창설에 나서서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자 1사단장이 되어 북한군을 격퇴했습니다.
원래는 다리 폭파를 훨씬 늦게 할 계획이었는데, 여러 혼선에 의해 너무 일찍 폭파해 버렸다는 설도 유력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웃긴건 한강다리 폭파 책임자를 군법회의에 회부해 총상형을 내리고 총살했다는...
@춘 식 신성모는 아님
임진왜란에 이순신이 있어다면 한국전에는 김홍일 장군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개전초기 와해될뻔한 국군을 재정비하고 반격의 발판을 만든 구국의 영웅
7:36 헌병 모자 좌우반전
채병덕 이놈은 대집성 보다 더한놈 이었구나 ㅋㅋ 😂
잘봅니다 수고하십니다
멕아더장군님의 인천상륙작전이 신의한수였던거같음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엇네요 ...ㄷㄷ
총장 뒤로 원균의 모습이 아른아른 보인다..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아먹는 존재가 있으면 수습하는 존재의 비율 ㅠ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장군들 대부분이 일본군 장교 혹은 만주군 장교출신들인데 김홍일 장군은 독립군 출신에다 광복군 장교 출신이었지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이 6.25 최대 영웅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ㅇ,ㅇ,,무능한 지휘관은 적군보다 무섭다는 진리
상황병 서면서 심심할 때마다 국방일보 웹툰 찾아보는데 자주 본 사람이네
러시아 내전, 국민당의 북벌, 중일전쟁을 거친 베테랑이자 6.25 전쟁에서 전군 8개 사단 중 5개 사단이 박살난 가운데 와해된 병력을 수습, 3개 사단으로 재편하고 북한군을 성공적으로 지연시킨 구국의 영웅.
김홍일 장군의 일대기도 파란만장하기에 나중에 한 번 다뤄보면 좋겠네요.
다음은 혹시 월튼 워커 장군 이야기를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맥아더가 채병덕 만나서 딱 두마디 물어보고 저 인간은 엉터리다 하고 이승만에게 참모총장 교체를 요구했죠.
7:05 고양이들 주먹질하는거 왜 이렇게 귀여움?ㅋㅋ
1898년 9월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
오산학교 졸업
중국 국민혁명군
-대한 의용군으로 만주 일대에서 일본군 소탕
-중국 국민혁명군 장군 (김구의 요청으로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에 사용된 폭탄 제조 및 훈련을 맡음)
광복군 참모장 (김구 계열)
-광복 이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장제스를 도와 국공내전에 참전과 동시에 동포들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헌신함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과 동시에 이범석, 최용덕, 유동열, 신익희 등 광복군 동지들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
-김홍일 장군을 비롯 송호성( 광복군) , 손원일( 독립지사 가문) , 채병덕( 일본 행정병) , 이응준( 일본군) 과 함께 최초 국군 장군으로 발탁
-후배 고급 교관을 양성하기 위해 4년제 육사를 이승만에게 건의 및 육사교장 취임
-6.25전쟁 발발 군원로회의에서 한강방어선 주장 (지지자: 지청천, 이범석, 김석원)
-한강 방어선 이외에도 진천-음성-청주에 방어선을 한 번 더 구축
-1951년 4월 군을 떠남 (미국의 압력) 및 자유중국(대만) 대사 역임
-5.16군정의 원로로 참여하였으나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는 박정희 군정을 비판 및 신민당 총재로 독재를 견제 ( 군정에 있던 군인들이 가장 존경하던 군인이자 스승이던 김홍일)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다 1980년 8월 완벽한 영웅의 삶을 마침
김대중 김영삼 신민당 경선 당시 당수로써 경선 진행하신 분이기도 하십니다.
거기에다 앞으로 추후의 주적은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대비하라는 혜안까지 가지셨죠!!!
그야말로 일생을 전쟁과 함께하신분
훌륭한분 정보 알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지금도 행주대교 부근에는 도하작전을 위한 건조물들이 있습니다 매년 도하훈련장으로도 쓰고있고요 09년 군번 야전공병입니다
채병덕 저런놈이 하필 6.25때
참모총장 이었든게 한국에게 운이없었다
동부 전선은 6.25 일어나기 전
누군가가 전쟁 일어날 느낌을 받아
전 사단에 훈련 빡시게 하라고 명령 하달했다죠.
동부가 뚫리지 않았기에
낙동강 전선을 구축했고.
유엔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켰죠.
중부. 서부 전선은 뚫렸고.
국군 포로들을 인민군 군복을 입혀
총알받이로 썼다는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