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회고록을 읽고 감동 받아 경북 칠곡군에 있는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 현장을 답사한적이 있었습니다. 양쪽의 산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가운데가 평야지대였는데 그 평야에서 오랫동안 서로가 대치하면서 치열한 전투까지 벌어졌습니다 만약 이 방어선이 뚤렸다면 지금 우리는 거지같이 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맹세"를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가슴 떨렸었던 생각이 납니다.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서 육이오 전쟁에서 소령으로 참전하셨습니다. 그 후 화랑 무공훈장과 이름은 모르지만 미군에서도 훈장을 받으셨고, 현재 현충원에 안치되어 계시는데, 어렸을 땐 할아버지의 훈장이 그저 번쩍이는 금붙이 장식이니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매 편 전쟁사를 보니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부끄러움 없는 손주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부동 전투에서 귀순한 정봉욱 중좌는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특별임관하게 됩니다. 이후 7사단 사단장, 초대 3사관학교장, 육군훈련소장을 역임하셨죠. 7사단장 시절엔 예하 GP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자 포병을 동원해 북한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정봉욱 소장은 2018년 성남에서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초록세상-k1r 리더의 중요성을 아주 모르는군요. 양이 지휘하는 사자 100마리보다 사자가 지휘하는 양 100마리가 훨씬 강력한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이순신장군은 위대하다고 하지요.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인가요? 아니면 수병들이 위대한 것인가요? 이순신 장군이 없었어도 해전에서 전승을 했을까요? 1초만 생각해도 리더가 훨씬 중요한 것을 알지요.
대구 사투리 중에, 다부로!! 라는게 있습니다. 도로, 원래대로 라는 뜻을 지닌건데, 이 사투리가 바로 저 다부동 전투에서 나온 말 입니다. 하루에도 주인이 몇번씩 바꼈다는 다부동 전투... 뺏기면, 다부로!! 다시 찾고 또 뺏기면 다부로!! 대구가 뚫리면, 경상도 통째로 넘어가고 남는건 부산 뿐입니다. 도시 하나만으로 나라 하나를 대적할순 없죠. 즉, 대구 뺏기면, 그냥 UN군 철수 상황이니... 절대 내줄수 없는 전투가 바로 다부동 전투였습니다.
다부동 전투는 정말 치열한 전투였지요 국군의 방어선을 어떻게든 뚫어려는 인민군 필사적으로 지켜야 했던 국군 특히 군번없는 용사와 많은 이름없는 학도병들이 산화 하셨지요 다시한번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애국심에 깊은 경의를 드리며 우리는 그선배 젊은이 들의 피와 땀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존경합니다...ㅠㅠ 얼마나 치열 했을지 상상이 안가네요..저희 아빠보다 10살 정도 형들이 참전용사로 학도병으로 이 전투에서 희생 되었다고 생각하니...더욱 역사가 가깝게 느껴지고 마음이 아프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나라를 지켜주신 호국선열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ㅠㅠ
저때 대구 부산 등 영남의 학도병, 징집병들이 급히 투입되었습니다. 두 대도시의 징집병이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선을 못 막아 냈을 겁니다. 두 대도시가 없고 농촌 지역만 있었다면 애초에 방어선도 못 만들었을 겁니다. 지역균형 발전이 필요한 극단적 사례죠. 수도권 초집중화를 막아햐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초록세상-k1r 리더의 중요성을 아주 모르는군요. 양이 지휘하는 사자 100마리보다 사자가 지휘하는 양 100마리가 훨씬 강력한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이순신장군은 위대하다고 하지요.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인가요? 아니면 수병들이 위대한 것인가요? 이순신 장군이 없었어도 해전에서 전승을 했을까요? 1초만 생각해도 리더가 훨씬 중요한 것을 알지요.
6.25 남침 당시 중공팔로군 출신 조선족병사들은 북한군 전병력의 3분의1을 차지했다 개전초기 파죽지세 인민군들의 놀랄만한 전투력은 국공내전에서 얻은 풍부한 전투경험이 바탕이됬고 북한군 몇개사단은 아예 중공군사단에 마크만 바꾸어달고 참전하여 실제로는 개전초부터 중공군과 국군의 전쟁이었던것이다
대구에서 군생활을 했었습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도 당연히 가보았고, 소속 부대에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승전기념 행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도 (기록이 소실되어 인정받지 못했던) 학도병 참전용사였습니다. 할아버지 사후에야 참전용사로는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와 삼촌들은 국가유공자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이제 우리군에서 우리 가족과 같은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를 위한 희생에는 그에 걸맞는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역에 떨어졌다는 포탄은 우리 국방부 발간물 등에 보면 박격포로 나옵니다. 당시(8월 18일) 칠곡 가산(전선)에서 대구방면으로 침투한 인민군이 쏜 것으로.. 그런데 당시 인민군 82밀리 박격포 최대사거리가 3킬로 조금 더 됩니다. 대구역에서 반경(북쪽) 3킬로는 금호강(대구북쪽에 동서로 흐르는 강)북단이 아닌 남단정도입니다. 그 무거운 82밀리 박격포를 메고(분해하더라도) 가산에서 수십킬로 산을 넘고, 전선후방까지 침투하고 금호강을 도강하여 쐈다??? 인터넷지도에서 바로 확인됩니다. 국방부 군편소 연구원도 확실히 이 부분에 대해 답변 못해줬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낙동강방어선 희생 호국위령재를 칠곡삼명사에서 해마다 6월에 여법하게 봉행해드리고 있읍니다ㆍ칠곡 삼명사를 유튜브로 조회하시면 위령재 영상이 있읍니다ㆍ각 지역에서는 삼명사처럼 그지역에서 희생된 호국위령재를 많이 봉행해드리는게 그분들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ㆍ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해주신 국군장병분들 학도병분들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주기위해 참전한 유엔군분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이 살아날수있었습니다 지금도 북괴놈들에게 나라를 바치지못해 안달난 인간들이있는데 우리 후손들이 그들에게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수있도록 힘을주세요
다부동 전투가 엄청나게 치열 했던건 국군이 가진 장비가 열세였기 때문이지요.. 원래는 미군과 연합군이 방어선을 치고 있던 지역이 북한군이 더 많았지만 쉽게 뚫을 수 없자 장비의 열세인 국군이 막고 있는 중서부를 뚫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 사실 미공군의 공중폭격 지원이 없었으면 진즉 뚫렸다고 함..
제가 얼마전 요양병원에 저희 고조할머니를 뵈러 갔을때, 할머니에게서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30년대생인지라 전쟁이 터졌을때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하루에도 두세번씩 사이렌이 울려 지하 대피소로 피난을 가야 했답니다. 그때를 아흔이 되신 지금까지도 기억하시는것 보면 전쟁이라는게 참 무서운 건가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평화로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름없는 영웅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 영웅들은 우리 근처의 부모님일수도,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안드로이드-g2q 김국주선생님은 제가 몰랐던 분인데 님 댓글 덕분에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백선엽 장군의 업적이 과장되었다 쳐도 그분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런 댓글을 달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을거에요. 과를 잊지는 말되 공을 깎아내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요.
🛑욕설이나 비하, 정치적 내용의 댓글은 경고 없이 삭제 또는 차단될 수 있습니다.🛑
역시형 넘 빨라 ㄷㄷ
이런 상황이 왜 왔는지
그런댓글 걍차단해줘 제발
ㄷ@@뉴럴충
ㅎ@@gotojailjuly
조부님 께서 다부동 전투에 참전 하셨습니다. 어릴적 그이야기를 줄곧 하셨는데 그땐 몰랐어요. 전쟁에서 살아돌아온다는걸요. 모든 호국영령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저희 할아버지도요 ㅎㅎ 종종 625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저희 외조부도요 모두😊😊 훌륭한 분들 입니다
ㅎㅎ 다들 반갑네요! 우리 다들 부끄럽지 않은 자손이 되어봅시다!
조부님께서 나라를 지켜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저때 신병이 하루만 버티면 고참이되는 상상이 안될정도로 힘든 전투 였다고 들었습니다. 타국만리에서 목숨을걸고 한국을 지킨 미동맹국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호국선열의 용기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신병 600~700명이 충원되어도 하루면 다 전사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학도병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거겠죠.
백선엽 회고록을 읽고 감동 받아 경북 칠곡군에 있는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 현장을 답사한적이 있었습니다.
양쪽의 산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가운데가 평야지대였는데 그 평야에서 오랫동안 서로가 대치하면서 치열한 전투까지 벌어졌습니다
만약 이 방어선이 뚤렸다면 지금 우리는 거지같이 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맹세"를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가슴 떨렸었던 생각이 납니다.
이겼지만 네명만 살아남고 소대원들이 모두 전사해서 그 죄책감에 자결하신 해병대 김용호중위께서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셨습니다.
그런아픈사연이 있었군요 고인의명복을빕니다 대한민국힘내라
😢
군복을 입는 그 순간 내 목숨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명심하세요
@@13무명씨징병제라 군복을 입을지 말지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데 어떡하죠 ㅋㅋ
@@YoungHwanChoi-j6l 그럼 징병제 없는 국가에서 태어나는 걸로 결정했어야죠 ㅋㅋㅋㅋ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께서 육이오 전쟁에서 소령으로 참전하셨습니다. 그 후 화랑 무공훈장과 이름은 모르지만 미군에서도 훈장을 받으셨고, 현재 현충원에 안치되어 계시는데, 어렸을 땐 할아버지의 훈장이 그저 번쩍이는 금붙이 장식이니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매 편 전쟁사를 보니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부끄러움 없는 손주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younghuh3642조부 께서 무슨일을 하셨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어쩌라고요
@@younghuh3642그 당시 일본소위면..
@@younghuh3642일본군 장교라고 다 친일파는 아닙니다
@@웁방개방개방개일제때는 그냥 조선땅이 아니라 일본땅임ㅋㅋ 일본사람으로 나고 자라서 일본육사 가겠다는데 너가 어쩔껀데ㅋㅋㅋ 결국 조선땅 지키러 6.25 전쟁 참여한거면 애국자 아님?ㅋㅋ
다부동 전투에서 귀순한 정봉욱 중좌는 대한민국 육군 중령으로 특별임관하게 됩니다. 이후 7사단 사단장, 초대 3사관학교장, 육군훈련소장을 역임하셨죠.
7사단장 시절엔 예하 GP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자 포병을 동원해 북한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정봉욱 소장은 2018년 성남에서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그랫군요~
귀순해서 큰 공을 세웟네요
적군도 귀순하면 잘못을 덮어주는데ᆢ기용하는데ᆢ
625때 지휘관이 50퍼정도가 독립군 50퍼가 일본군 출신이지만 협력하여 나라를 지켰지요ᆢ그런데 당시 상황을 배려치 않고ᆢ저런분들이 안계셨음 시골촌부가 나라를 지켰을까나? 원인은 조상들이 무능이 원인이지요ᆢ
똑같이 귀순한 리학구 총좌는 애석하게도 미군 포로 장군인 윌리엄 딘 소장과 포로교환 목적으로 이용당하고 북한에가서 고생하다가 41살에 자살했다는 이야기 가 있지요
정봉욱장군은 중화민국 장개석 총통이 만든 황포군관학교 출신입니다.
문재인이 싫어했을듯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를 뒤집어쓰며 산화하신 국군 및 연합군, 학도의용군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시 다부동 지역에 적 박격포가 지독하게 떨어졌다고 참전용사께서 증언하신것 봤었음. 참 감사하고 존경받아야 하실 분들임..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해주신 어르신들께 감사합니다.
본인이 죽을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국가의 진정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감사하네요 :)
낙동강 전선에서 버텨주신 참전용사분들에게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부산까지 다 점령한 한반도를 미군이 다시 수복하려 무리수를 둘 필요성을 못느꼈을 것이고 우리는 지금 세상과 단절된채 옥수수죽을 퍼먹으며 김씨부자를 찬양하고 있었을겁니다.
작년에 군대에서 대대장 인솔하에 부대원 전원 다부동 전투기념관에 다녀왔는데 너무 인상깊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제가 박물관같은곳 별로 안좋아하는데 다부동전투기념관은 진짜 흥미진진하게 구경했어요. 안가신 분들 한번 가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었군요 나라를 수호하신 영웅들 오늘도 존경합니다
제 작은 할아버지도 참전 용사셨는데, 자주 625 전쟁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그 때 잘 듣지 않은 것이 지금은 후회 되네요. 얼핏 기억으로는 전쟁 후 마을에서 징집되었던 사람 중 2명만 살아 돌아 왔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칠곡에있는 다부동전적비 다녀왔습니다.그평화로운 땅에 융단폭격을 했다는게 믿을수가 없더군요.마음속으로 감사의 표를하고 왔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됩니다. 늦었지만 퍄퍄킴님 30만 돌파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연합군 국군 호국선열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창군이후 처음맞는 대규모 전쟁에서 이정도까지 싸워주고 경험이 쌓이자 중공군도 잘 막아내준 국군은 약한군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옳은 말입니다. 백선엽 혼자 싸운게 아니지요. 그 당시 그 전투에서 피,땀흘리며 싸우신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 참전군인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초록세상-k1r 리더의 중요성을 아주 모르는군요. 양이 지휘하는 사자 100마리보다 사자가 지휘하는 양 100마리가 훨씬 강력한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이순신장군은 위대하다고 하지요.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인가요? 아니면 수병들이 위대한 것인가요? 이순신 장군이 없었어도 해전에서 전승을 했을까요? 1초만 생각해도 리더가 훨씬 중요한 것을 알지요.
이렇게 자료조사 잘 해서 훌륭한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버는 퍄퍄킴 최곱니다.
포항에서도 우회해서 남하한 북한 군 기계화보병사단을 학생이신분들이 제대로된 사격연습 없이 막아내셨지요... 감사합니다. 이곳이 뚤렸다면. 어찌되엇을까요.
그들을 기리기 위해 포항여중과 매우 가까운 포항고 한복판에는 ㅈ바위라고 거대한 남성의 그것을 세운 동상이 있습니다!! 죽어간 군인들의 음기가 강해 세웟다고하더군요.
대구 사투리 중에, 다부로!! 라는게 있습니다.
도로, 원래대로 라는 뜻을 지닌건데, 이 사투리가 바로
저 다부동 전투에서 나온 말 입니다.
하루에도 주인이 몇번씩 바꼈다는 다부동 전투...
뺏기면, 다부로!! 다시 찾고 또 뺏기면 다부로!!
대구가 뚫리면, 경상도 통째로 넘어가고 남는건
부산 뿐입니다. 도시 하나만으로 나라 하나를 대적할순 없죠.
즉, 대구 뺏기면, 그냥 UN군 철수 상황이니... 절대 내줄수 없는
전투가 바로 다부동 전투였습니다.
역시 한국전쟁 시리즈가 제일 가슴에 와닿아서 재밌는듯 …
제일 가슴에 와닿아서 제일 마음이 아프다
1사단 12연대 출신인데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가 이 전투였군요 1사단 12연대 출신으로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
12연대는 괴멸 11연대가 주력
괴멸이었다해도 역시 그 자체로 치열하게 싸웠단 증거
1사단 11연대 2대대출신입니다
1사단 12연대 2대대 출신입니다
당시 2대대는 파평면 늘노리에
위치했습니다
1사단 12연대 화이팅 ᆢ
낙동강 방어선에선 6.25참전용사 선배님. 학도병 선배님.경찰.경찰학교 학생들까지
총동원해서 나라를 지킨 영웅 이라는걸 교육을 해주지 않으니
진짜 미군, 연합군 없었으면 지금 우리집 거실엔 김일성3부자 사진이 걸려있었겠네
거실이라도 있으려면 공산당 간부는 되어야 ㅎ
@@구름따라-d9q ㅋㅋㅋ ㅅㅂ
@@구름따라-d9q아 ㅋㅋ 노예가 어딜 마당을 가지냐고
난 태어나지도 못함😂😢
한국사에서 짧게 배우는 부분이지만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영상 너무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정봉욱 그는 북에서 귀순했지만 진짜 훌룡한 군인입니다.청렴하고 강인한 군인이었으며 북의 위협을 좌시하지 않고 받아쳐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용장입니다.
다부동 전투는 정말 치열한
전투였지요 국군의 방어선을
어떻게든 뚫어려는 인민군
필사적으로 지켜야 했던 국군
특히 군번없는 용사와 많은
이름없는 학도병들이 산화 하셨지요
다시한번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애국심에 깊은 경의를
드리며 우리는 그선배 젊은이 들의 피와 땀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드것도 무겁고 불편한 M1소총을 들고.....
이때 무너졌다면 아마도 공산국가였는데 막아주신 우리국군 최고
8:25
이거보면 사기진작이 진짜 중요한듯.
30분만에 다시 탈환하다니
리더는 저런 면모가 있어야하는듯
지휘관이 위험에 앞서는 건 보통 말도 안되는 잘못이지만 극약처방으로 전황을 뒤집었으니 마지막 한 수 였네요
@@AkuiTeeMo 그래서 이당시 미군측에서 백선엽준장이 11연대와 함께 공격작전을 하는것을 극구 말렸다고함
'이 집 군사고증은 정말 일품이란 말이야.
볼트액션 작동 재현도 뻑뻑하고 바주카 발사절차도 꽤 많이 신경썼어'
마루오까 설렁탕먹방
'Fuck fuck 하고'
볼링장 전투 저 때 M4 셔먼이 아니라 M-26 퍼싱임
현리전투등 뼈아픈 패전이 있었지만 오로지 자유를 위해 이 악물고 파로호전투같은 대승을 이끌어낸 선배님들을 존경하고 감사드립니다.
아직 휴전 중이다. 전쟁 안끝났단 말이야 정신차려야함 지금까진 할아버지 세대가 목숨 걸고 싸워서 우리가 살있다. 이제 우리차례가 될수있어 정신똑바로차려야함 평소에 건강챙길겸 운동도 해야하고 국제 정세 돌아가는 뉴스도 관심 가지며 살아야함....
우리는 그냥 누워서보는 영상이지만
그 당시 그 장소엔 젊은 사람들이
갈려나가고 있었겠지...
너무 감사하고 존경합니다...ㅠㅠ 얼마나 치열 했을지 상상이 안가네요..저희 아빠보다 10살 정도 형들이 참전용사로 학도병으로 이 전투에서 희생 되었다고 생각하니...더욱 역사가 가깝게 느껴지고 마음이 아프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나라를 지켜주신 호국선열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ㅠㅠ
다부동 대구 포항 어느한곳이라도 뚫려다면 대한민국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낙동강전투가 중요했습니다 마지노선 자유 대한민국 만세입니다 백선엽장군 비롯 호국영령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김일성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면서 살고있겠죠. ㅋㅋㅋㅋㅋ
그 무더운 8월에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싸워 막아낸 대한민국 군인들을 생각하니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전쟁이 재개되면 수많은 희생자와 유공자, 시민분 들을 위해 부디 한 몫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계셔서 지금껏 잘먹고 잘자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저때 대구 부산 등 영남의 학도병, 징집병들이 급히 투입되었습니다. 두 대도시의 징집병이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선을 못 막아 냈을 겁니다.
두 대도시가 없고 농촌 지역만 있었다면 애초에 방어선도 못 만들었을 겁니다.
지역균형 발전이 필요한 극단적 사례죠. 수도권 초집중화를 막아햐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국군분들 감사합니다
백선엽 준장님 감사합니다.
그 당시 감사할 사람은 백선엽이 아니라 그 전투에서 피,땀 흘리며 공산독재괴뢰군과 싸운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 참전군인들
@@초록세상-k1r 리더의 중요성을 아주 모르는군요. 양이 지휘하는 사자 100마리보다 사자가 지휘하는 양 100마리가 훨씬 강력한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이순신장군은 위대하다고 하지요.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인가요? 아니면 수병들이 위대한 것인가요? 이순신 장군이 없었어도 해전에서 전승을 했을까요? 1초만 생각해도 리더가 훨씬 중요한 것을 알지요.
@@jhya1208이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jhya1208 다부동전투는 백선엽유재흥의 무능한 지휘때문에 불필요하게 큰희생을 치룬 전투라는 걸 좀 알아야 할텐데 ㅋㅋ
@@초록세상-k1r 우리는 이런걸 정신병이라고 부르죠
06:05 미친;; B29 98대.. 거기다 호위기 숫자 까지 생각하면 저날 하늘 본 북한군 입장에서 충격 먹었을듯
왜 카펫 바밍(융단폭격)인지 알 수 있는... 면적을 그냥 이불로 덮듯이 싹 날려버림 ㅋㅋㅋ
북괴반란군을 결사항전으로 막아내신 다부동 전투의 영웅들에게 경롓!!!
6:06 냥이 표정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운데 ㅋㅋ
1사단에 있을때 대대건물에 낙동강방어선 전투가 적혀있던게 생각나네요. 선배 전우님들에게 감사합니다.
외조부께서 다부동에서 전투하시고 총상을 입으셧죠 존경합니다 할아버지 보고싶어요
6.25 남침 당시 중공팔로군 출신 조선족병사들은 북한군 전병력의 3분의1을 차지했다 개전초기 파죽지세 인민군들의 놀랄만한 전투력은 국공내전에서 얻은 풍부한 전투경험이 바탕이됬고 북한군 몇개사단은 아예 중공군사단에 마크만 바꾸어달고 참전하여 실제로는 개전초부터 중공군과 국군의 전쟁이었던것이다
여기서 귀순한 정봉욱 중좌는 훗날 장군으로 진급하여 초대 3사관학교장이 됩니다.
대구에서 군생활을 했었습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도 당연히 가보았고, 소속 부대에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승전기념 행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도 (기록이 소실되어 인정받지 못했던) 학도병 참전용사였습니다. 할아버지 사후에야 참전용사로는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와 삼촌들은 국가유공자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이제 우리군에서 우리 가족과 같은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를 위한 희생에는 그에 걸맞는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방에서 꿀빨았네
국군과 연합군의 희생덕분에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있습니다 ㅠㅠ
대한민국 역사의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절망적 상황서 나라를 지킨 순국 선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북괴군에 용감하게 싸우신 국군 장병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대구역에 떨어졌다는 포탄은 우리 국방부 발간물 등에 보면 박격포로 나옵니다. 당시(8월 18일) 칠곡 가산(전선)에서 대구방면으로 침투한 인민군이 쏜 것으로.. 그런데 당시 인민군 82밀리 박격포 최대사거리가 3킬로 조금 더 됩니다. 대구역에서 반경(북쪽) 3킬로는 금호강(대구북쪽에 동서로 흐르는 강)북단이 아닌 남단정도입니다. 그 무거운 82밀리 박격포를 메고(분해하더라도) 가산에서 수십킬로 산을 넘고, 전선후방까지 침투하고 금호강을 도강하여 쐈다??? 인터넷지도에서 바로 확인됩니다. 국방부 군편소 연구원도 확실히 이 부분에 대해 답변 못해줬습니다.
동양의 베르됭전투, 다부동전투. 이렇게 위대한 전투의 지휘자나 전황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없다는게...
동양의 베으됭??영전대회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g2q이새낀 답글마다 자꾸 영전 드립치노 대가릴 깨버릴까보다
태극기 휘날리며 초반에 다뤄진 전투가 낙동강~다부동 전투죠. 전투도 전투지만 저 땡볕에 걸어서 이동하고 밥도 거의 며칠 굶은 상태에서 저 전투를 치른건데... 모든 생존 참전용사 분들과 호국영령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북한군 투항자 정봉욱 중좌는 훗날 국군에 특별 임관했습니다. 5.16 군사정변에 참가했고 훗날 김신조 사태가 벌어지자 특수부대급 역량을 가진 장교가 필요하다는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육군3사관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활동하시게 됩니다.
이렇게 지킨 나란데 좌좀들 하는 짓거릴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먹에 힘이 들어감!
생판 모르던 타국까지 지원 와주신 분들까지 합치면 6.25전투 하나에만 몇명이 희생된거지 대체..ㅠ
미군 사망자가 3만5천 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6.25전쟁에 맞서싸운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 차일혁 경무관을 다뤄주셨으면합니다.
그대들의 피로서 대한민국을 구했습니다 ..... 그대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번영을 이룰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국영령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74년전에 있었던 참혹했던 비극ㆍ아버지세대에 있었던 그날의 역사를 자식세대인 저희들의 잘못으로 너무나잘못된 교육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참으로 걱정됩니다.
한국전쟁 시리즈 연속기 ㄷㄷ 재밌게 잘 보고있습니다. 더 주세요
1사단 출신이라 신교대때부터 전역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ㅋㅋ
다부동전투
항상 드는 생각이 뭔가 625에 대해서는 제대로 못배웠던거같음
암만 생각해도 역사시간에 졸았던 기억이 딱히 없는데 유튭에서 625관련 영상들을 볼때마다 몰랏던 내용들이 계속해서 나오네...
전교조 ㅃㄱㅇ 선생들이 자신들 치부라 반공교육을 등안시했죠.
저런 험한 곳에서 우리 할아버진 어떻게 살아나오셨을까 모두들 감사합니다. ㅠ
백선엽장군님 감사합니다.
모든 6.25참전 용사님들 나라를 지켜주셔서 정말감사드립니다~
백선엽 준장님을 비롯한 우리를 지켜주신 국군 연합군분들 정말 감사합니다ㅠ
백선엽은 6.25때 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날조된 역사를 바로 아시길 바랍니다
@@김윤근-e9o한게 없는 사람이 국군최초4스타에 참모총장에 외교관에 미군 명예사령관 칭호 받고 그러는거임? 사료를 쳐 가지고 오삼 제발 그리고 니는 지금 뭐하는데 그 말하는 너는 ㅋㅋㅋ
@@김윤근-e9o인천상륙작전도 그거지만 다부동 전투 이후로 전세가 역전됬더는건 엄연한 펙트임 그군대가 유엔군이나 미군도 아닌 패주하던 국군이였고 평양애 가장먼저 입성한 군대도 백선엽의 1사단이였음
@@김윤근-e9o지리산 무장공비 토벌작전도 백선엽이 지휘했고
@@김윤근-e9o다 떠나서 6.25전투에 참여한거 자체로 한거있는거임. 한게 하나도 없다니. 참~~~
나라를 위해서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낙동강방어선 희생 호국위령재를 칠곡삼명사에서 해마다 6월에 여법하게 봉행해드리고 있읍니다ㆍ칠곡 삼명사를
유튜브로 조회하시면 위령재 영상이 있읍니다ㆍ각 지역에서는 삼명사처럼
그지역에서 희생된 호국위령재를 많이 봉행해드리는게 그분들의 희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ㆍ
셔먼 전차가 이렇게 멋있어 보이기는 처음이다
독일에서는 호랑이에게 먹히는
초록 도마뱀이였다가 한국에서는 구원자. ㅎㅎ
설명충 등장!
볼링장 전투 저 때 투입된 전차가 M-26 퍼싱전차임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대구 사람인데 자랑스럽내요
6.25전쟁중 다부동에서 지켜내지 못했으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그런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에 참전하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8:27 진짜 다시봐도 명언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백선엽 장군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과도 있는 인물이지만 다부동 전투에서 업적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언급을 안할수가 없음
공과 과는 확실히 해야겠지요.. 백장군께서 6.25라는 풍전등화의 상황인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한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비록 백선엽이 6.25 전쟁에 참전해서 싸운 건 맞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일본군 산하부대인 간도특설대에 들어가 대한독립군을 토벌한 친일반민족자인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5782o3p 팩트) 저당시 대한 독립군들은 자유시 참변으로 사실상 궤멸된 상황이엇다
과가 있지만 공이 엄청난데 미개한 인간들은 과만 기억함ㅋㅋㅋ
백선엽 장군이 친일했다고?
감히 누가손가락질할 수있나요
목슴바쳐나라지키고 구하신분들께
두손모아 존경과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유엔군 장병과 국군 의용병 학도병 여러분 덕에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슴니다 ㆍ
잊지맙시다 .
어릴때 왜관살았는데 십여년 전만해도 동네 뒷산에서도 실탄과 유해가 꽤나 나왔었음...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해주신 국군장병분들 학도병분들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주기위해 참전한 유엔군분들 감사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이 살아날수있었습니다 지금도 북괴놈들에게 나라를 바치지못해 안달난 인간들이있는데 우리 후손들이 그들에게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수있도록 힘을주세요
퍄퍄킴 역사가 최고야
이렇게 나라를 구한 분들은 기리지 않고... 술먹고 놀다 죽은 사람까지 보상하자는 나라가 되엇으니~ ㅠㅠ
0:40 냐옹이가 꾹꾹이로 소련제 모신나강 소총을 수동장전 하는 디테일까지! 고증도 완벽하네요👍
대구 경북이 나라를 지켰네. 다부동이 뚫렸으면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서 월남처럼 망했겠네
백선엽장군님 전설이군요
다부동 전투가 엄청나게 치열 했던건 국군이 가진 장비가 열세였기 때문이지요.. 원래는 미군과 연합군이 방어선을 치고 있던 지역이 북한군이 더 많았지만 쉽게 뚫을 수 없자 장비의 열세인 국군이 막고 있는 중서부를 뚫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
사실 미공군의 공중폭격 지원이 없었으면 진즉 뚫렸다고 함..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전 요양병원에 저희 고조할머니를 뵈러 갔을때, 할머니에게서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 30년대생인지라 전쟁이 터졌을때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하루에도 두세번씩 사이렌이 울려 지하 대피소로 피난을 가야 했답니다. 그때를 아흔이 되신 지금까지도 기억하시는것 보면 전쟁이라는게 참 무서운 건가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평화로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이름없는 영웅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 영웅들은 우리 근처의 부모님일수도,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05군번 입니다
1사단 11연대 1대대
선, 후배님들 사랑합니다
항상 건승하십쇼! 전진!
이제 다부동전투가 끝나면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625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이성가 장군의 영천 대회전이 있겠군요!! 기대 하겠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말은 병사들의 피를 끓게 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명언이네요.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었고 우리 선배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지는 말이었습니다.
박진교 전투 이야기 들어보면 북한군이 새벽에 포대자루 같은걸로 겨우겨우 다리 만들면 다음날 아침에 전투기가와서 뿌수고 치열하게 반복이였다들었어영
잘 시청했습니다.6.25 참전용사분들이 없었다면 저희도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 - 故백선엽 장군
지난 날 백선엽 장군님의 조문을 다녀왔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을세!! 독립운동가 출신 625전쟁 영웅도 있을텐데?? 백선엽씨의 조문도 갔으면 김국주 선생님 조문도 다녀 가셨나요?? 그분이 독립운동가 출신이먄서 다부동때 가장 크게 활약한 군인이셨습니다
@@안드로이드-g2q
김국주선생님은 제가 몰랐던 분인데 님 댓글 덕분에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백선엽 장군의 업적이 과장되었다 쳐도 그분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런 댓글을 달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을거에요.
과를 잊지는 말되 공을 깎아내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요.
막아낸것 자체가 기적.
다음회차가 너무 궁금합니다. 너무 잘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당시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 유엔군 감사합니다
나무위키보니 투항한 정봉욱 중좌는 남한에서 승승장구해서 장군까지 달고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셨네요. 백선엽 장군님도 거의 100살까지 살다 돌아가셨네요.
3사관학교 교장
위키에서도 청백리라 적힌거보면 진짜 검소하게 살다 가셨는듯 보입니다.
퀄리티 디테일이 좋네요 모신나간 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손으로 장전하는 모션도 넣고 더 볼맛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