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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라면 김만덕이라고 여자 노비 상단의 대행수가 있었는데요? 호남과 제주도 일대 상권을 장악했지요. 조선통신사 기록화에서 바지도 안입고 조선의 국서를 따로 가마 태워 모시던 가마꾼들 다 일본 노비인데, 일본 서적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그림까지 그려놓고 노비라고 함. 성종 때 임복이라고 8000석 대부호가 되는 건 일본 노비는 꿈도 못 꿈. 유럽 모든 나라도 1800년대에 기계라는 노동력 대체제가 생겨서야 노예제 폐지했는데? 1800년대 사토 노부히로는 지방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대략 해마다 일본 전국 1/3의 가정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마들이 영아살해(마비키)했다고 하는데요? MABIKI 라고 Fabian Drexler이 쓴 책에서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일본이야 거짓말로 대외적으로계속 노비 없었다고 하는데 그말 믿음? 에도시대 '화한삼재도회'에도 멀쩡히 기록되어있고,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이라는 서양 노예상이 일본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이 똑같은 거짓말 하다가 외국인이 '요시와라 유곽의 성노예들은 노예아니냐 구라치지 마라'고 걸렸고요 예니체리와 환관도 노비인데 각각 오스만 제국과 중국에서 권력이 막강했음. 조선에서 내시도 노비인데 종2품 관리까지 갈 수 있는 자리였고. 19세기 영국이 과거제 따라 임관시험 만들때까지 매관매직이 일상이던 서양인데, 조선에서도 노비는 정식으로 관직 살 수 있었고 관직 앞에 "납속"만 붙였음. 조선의 노비는 사유재산 인정, 재산 상속 가능, 법적 보호 (주인에게 살해당하면 가해자에게 살인죄 적용됨), 납세 면제, 군역 면제라 타국 노비와 매우 다름. 그냥 말만 노비지 2등 국민.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自賣자매) 돈 만지고 군역 면제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음. 서양 농노처럼 땅 벗어나면 그 누구도 (기리시테 고멘처럼) 죽여버려도 합법인 게 아님.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까지 따라간 덴쇼소년사절단 증언한 바로는 동남아 인도 동/서아프리카, 포르투갈 등 배가 정박한 곳마다 팔려간 일본인 성노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500년대에만 해도, 50만명이 화약과 조총사려고 팔려나감. 식민지화가 되기 전 그냥 서구의 교역국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1800년대 메이지 45년간에도 50만명의 가라유키상 성노예를 팔고 이걸 1만엔권에 모셔놓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람은 일본의 개혁발전 자금을 위해 자국 소녀들을 팔아치우는 건 멈춰선 안된다고 성노예를 '해외에 진군하는 낭자군'이라고 포장함. 좁디좁은 싱가포르에 "일본인 묘지"가 따로 있는데 지금도 사이트 가면 가라유키상 워낙 많이 팔려와서 그녀들이 죽고 파묻을 묘지에서 시작했다고 함. 그리고 일본의 서양 교역도 조선의 해류가 위험하고 난파되면 먼저 남쪽에 있는 규슈에 조난 당하는 거니까 서양과 접하기 훨씬 쉬웠을 뿐. 그리고 별로 팔게 없으니까 노예팔았음. 그러니까 1500년대 일본 자국민 노예수출 중 규슈 하나만으로 60% 팔았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 어마어마하게 납치해가서, 하기 도자기, 아리타 도자기, 사쓰마 도자기를 일본의 도자기로 왜곡 포장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됨. 각각 하기 아리타 사쓰마 도자기 일본 사이트 가보세요 거기 전부 조선인 납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인도네시아에 일본 여성이 13세에 성노예로 팔려나가 2차대전 종전 후 귀국도 못하고 외롭게 현지인들과 따로 살다가 죽는 실화가 '산다칸 8번 창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는 꼴이죠. 러일전쟁 때도 여러번 파산 했잖아요? 그때마다 영국과 미국이 돈 퍼줘서 기사회생하고, 전쟁 끝나도 겉만 승전이지 전쟁배상금 하나도 못 뜯어내서, 대신 국민들 은행계좌 전부 예금봉쇄해서 은행에 예치한 돈 강제로 정부가 뜯어내서 국채 갚고, 2차대전 이후에도 또 하고... 1870년 홋카이도 정벌과 학살, 1609년 오키나와 정벌과 학살, 이런 걸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 뿐, 에도가 번영한 걸 무슨 오늘날 북한 평양처럼 모든 부를 수도에 집중시켜놓고 "북한 전체가 경제 발전했다"라고 왜곡하는 꼴에 속아넘어가다니...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니 학자 맞으세요. 제도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극소수고 인류사 대부분은 그냥 규모의 경제로 싸웁니다. 유럽 대다수 가난한 동유럽, 오스만 식민지 남유럽 빼고, 서유럽 소수 국가만 번영한 건 사실 그 나라만 봐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대륙 단위의 식민지의 경제 위에 서있던 겁니다. 아이티 하나만 해도 프랑스 본국 세수의 3배를 거둘 수 있던 노다지 죠. 서유럽 식민 제국들은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서 대략 GDP 성장을 수백년 동안 20~30배속 돌린 겁니다. 그렇게 빨리 돌리니까 기계 개발자금 같은 발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거고 인도인들은 전부 "자유민"이었지만 나라가 영국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 노예, 이런 말은 아무 쓸모 없고 그냥 실질대우를 봐야합니다. 영국 같은 나라가 노예제 "철폐"를 빨리 할 수 있던 건 그냥 노예 노동을 본국이 아니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식민지에 다 떠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표면적인 부분에 속지 마세요. 20세기 일제시대 아직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이 하천에 떠내려가고, 아직도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버려야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 출신이 많았던 육군이, 육군 지원 안하고 쓸데 없이 해군 장성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군함 축조하는데만 돈 낭비한다고 불만이던 사람들이 황도파라는 파벌 만들어서 쿠데타 일으켰는데?
@@이윤성-o7b중앙집권제는 지방에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유력한 세력이 등장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지역 독자의 군사와 상업을 억압하기가 쉽죠. 설령 지방에 유력한 세력이 등장한다해도 곧바로 밟아버려야 하는 것이고요. 결국 중앙정부 세력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을 때, 이를 견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세력이 부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조선이 반식민지와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된 것이죠.
0:00: 📈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 0:00: 일본의 상인과 세금제도 2:16: 농민과 토지 소유 제한 4:23: 상인의 화폐 경제와 자본 축적 5:24: 다양한 종류의 화폐 유통 6:19: 💱 일본의 지방화폐와 시장경제 6:19: 화폐 집회와 발행 6:32: 환전상의 역할 6:48: 지역별 금화 사용 7:02: 환전상 가문의 역할 9:41: 지방의 쌀 시장 12:04: 쌀 증권 거래 12:16: 📈 일본식 시장경제와 선물시장에 대한 설명 12:16: 증권 시장의 가격 변동과 거래 과정 13:48: 선물시장의 운영과 시장 시간 14:18: 선물시장에서의 차액 정산과 환전상 거래 15:30: 선물시장의 중요성과 정보 전달 시스템 16:06: 퀵서비스 업체와 깃발 통신시스템의 활용 17:33: 현지 시장과 프로그램 매매의 중요성 17:52: 💰 일본의 미스 가문의 재벌 성장과 환전상의 역할 17:52: 환전상과 은행의 금융 역할이 활발해짐 18:45: 미스 가문의 역사와 재벌 성장 18:54: 미스 다카토시의 가문과 장사 출발 20:06: 미츠코시 백화점의 성장과 확장 21:15: 외상거래와 금장사의 전환 22:00: 미스 가문의 전국망과 은행 결제 시스템 23:32: 호코인 제도를 통한 후계자 계승 시스템 23:49: 📚 일본의 기업 전통과 전속 계약에 대한 이야기 23:49: 일본의 오래된 기업과 전통 24:12: 전속 계약의 중요성과 유지 이유 26:09: 콩고 구미의 역사와 성공 이유 29:29: 다나카 야스의 상가수첩 수집 활동 31:02: 📈 일본의 상인과 상가의 영속성 연구 결과 31:02: 일본 상가의 평균 폐업 기간은 15년 32:21: 일본 상인의 평균 경영기간은 15년 32:28: 일본 상인의 영속성이 상대적으로 낮음 34:38: 자식에게 상속한 가게의 평균 생존 기간은 5~6년 35:06: 영업 독점권을 타인에게 판매한 경우 평균 생존 기간은 18.1년 35:22: 일본의 가문들은 예외적으로 오래 가게 운영 35:47: 일본의 상가와 상인들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친 역사를 가짐 36:12: 📚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에 영향을 미친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36:12: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변화가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36:27: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조화로운 섞임이 중요한 이유였다 36:35: 지방 자치제로 인해 지방 경제가 발전하고 경쟁적인 요인이 되었다 37:25: 지방 분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경쟁의 요인이 되었다 37:41: 각 지방 간의 경쟁과 교류가 유럽 국가들과 유사한 상업 발달을 이끌었다 37:58: 일본의 현대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역사적인 연원이 있다 38:59: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에 영향을 미친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Recapped using Tammy AI
1700년대라면 김만덕이라고 여자 노비 상단의 대행수가 있었는데요? 호남과 제주도 일대 상권을 장악했지요. 조선통신사 기록화에서 바지도 안입고 조선의 국서를 따로 가마 태워 모시던 가마꾼들 다 일본 노비인데, 일본 서적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그림까지 그려놓고 노비라고 함. 성종 때 임복이라고 8000석 대부호가 되는 건 일본 노비는 꿈도 못 꿈. 유럽 모든 나라도 1800년대에 기계라는 노동력 대체제가 생겨서야 노예제 폐지했는데? 일본이야 거짓말로 대외적으로계속 노비 없었다고 하는데 그말 믿음? 에도시대 '화한삼재도회'에도 멀쩡히 기록되어있고,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이라는 서양 노예상이 일본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이 똑같은 거짓말 하다가 외국인이 '요시와라 유곽의 성노예들은 노예아니냐 구라치지 마라'고 걸렸고요 예니체리와 환관도 노비인데 각각 오스만 제국과 중국에서 권력이 막강했음. 조선에서 내시도 노비인데 종2품 관리까지 갈 수 있는 자리였고. 19세기 영국이 과거제 따라 임관시험 만들때까지 매관매직이 일상이던 서양인데, 조선에서도 노비는 정식으로 관직 살 수 있었고 관직 앞에 "납속"만 붙였음. 조선의 노비는 사유재산 인정, 재산 상속 가능, 법적 보호 (주인에게 살해당하면 가해자에게 살인죄 적용됨), 납세 면제, 군역 면제라 타국 노비와 매우 다름. 그냥 말만 노비지 2등 국민.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自賣자매) 돈 만지고 군역 면제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음. 서양 농노처럼 땅 벗어나면 그 누구도 (기리시테 고멘처럼) 죽여버려도 합법인 게 아님.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까지 따라간 덴쇼소년사절단 증언한 바로는 동남아 인도 동/서아프리카, 포르투갈 등 배가 정박한 곳마다 팔려간 일본인 성노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500년대에만 해도, 50만명이 화약과 조총사려고 팔려나감. 식민지화가 되기 전 그냥 서구의 교역국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1800년대 메이지 45년간에도 50만명의 가라유키상 성노예를 팔고 이걸 1만엔권에 모셔놓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람은 일본의 개혁발전 자금을 위해 자국 소녀들을 팔아치우는 건 멈춰선 안된다고 성노예를 '해외에 진군하는 낭자군'이라고 포장함. 좁디좁은 싱가포르에 "일본인 묘지"가 따로 있는데 지금도 사이트 가면 가라유키상 워낙 많이 팔려와서 그녀들이 죽고 파묻을 묘지에서 시작했다고 함. 그리고 일본의 서양 교역도 조선의 해류가 위험하고 난파되면 먼저 남쪽에 있는 규슈에 조난 당하는 거니까 서양과 접하기 훨씬 쉬웠을 뿐. 그리고 별로 팔게 없으니까 노예팔았음. 그러니까 1500년대 일본 자국민 노예수출 중 규슈 하나만으로 60% 팔았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 어마어마하게 납치해가서, 하기 도자기, 아리타 도자기, 사쓰마 도자기를 일본의 도자기로 왜곡 포장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됨. 각각 하기 아리타 사쓰마 도자기 일본 사이트 가보세요 거기 전부 조선인 납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1800년대 사토 노부히로는 지방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대략 해마다 일본 전국 1/3의 가정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마들이 영아살해(마비키)했다고 하는데요? MABIKI 라고 Fabian Drexler이 쓴 책에서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인도네시아에 일본 여성이 13세에 성노예로 팔려나가 2차대전 종전 후 귀국도 못하고 외롭게 현지인들과 따로 살다가 죽는 실화가 '산다칸 8번 창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는 꼴이죠. 러일전쟁 때도 여러번 파산 했잖아요? 그때마다 영국과 미국이 돈 퍼줘서 기사회생하고, 전쟁 끝나도 겉만 승전이지 전쟁배상금 하나도 못 뜯어내서, 대신 국민들 은행계좌 전부 예금봉쇄해서 은행에 예치한 돈 강제로 정부가 뜯어내서 국채 갚고, 2차대전 이후에도 또 하고... 1870년 홋카이도 정벌과 학살, 1609년 오키나와 정벌과 학살, 이런 걸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 뿐, 에도가 번영한 걸 무슨 오늘날 북한 평양처럼 모든 부를 수도에 집중시켜놓고 "북한 전체가 경제 발전했다"라고 왜곡하는 꼴에 속아넘어가다니...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니 학자 맞으세요. 제도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극소수고 인류사 대부분은 그냥 규모의 경제로 싸웁니다. 유럽 대다수 가난한 동유럽, 오스만 식민지 남유럽 빼고, 서유럽 소수 국가만 번영한 건 사실 그 나라만 봐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대륙 단위의 식민지의 경제 위에 서있던 겁니다. 아이티 하나만 해도 프랑스 본국 세수의 3배를 거둘 수 있던 노다지 죠. 서유럽 식민 제국들은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서 대략 GDP 성장을 수백년 동안 20~30배속 돌린 겁니다. 그렇게 빨리 돌리니까 기계 개발자금 같은 발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거고 인도인들은 전부 "자유민"이었지만 나라가 영국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 노예, 이런 말은 아무 쓸모 없고 그냥 실질대우를 봐야합니다. 영국 같은 나라가 노예제 "철폐"를 빨리 할 수 있던 건 그냥 노예 노동을 본국이 아니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식민지에 다 떠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표면적인 부분에 속지 마세요. 20세기 일제시대 아직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이 하천에 떠내려가고, 아직도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버려야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 출신이 많았던 육군이, 육군 지원 안하고 쓸데 없이 해군 장성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군함 축조하는데만 돈 낭비한다고 불만이던 사람들이 황도파라는 파벌 만들어서 쿠데타 일으켰는데?
1700년대라면 김만덕이라고 여자 노비 상단의 대행수가 있었는데요? 호남과 제주도 일대 상권을 장악했지요. 조선통신사 기록화에서 바지도 안입고 조선의 국서를 따로 가마 태워 모시던 가마꾼들 다 일본 노비인데, 일본 서적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그림까지 그려놓고 노비라고 함. 성종 때 임복이라고 8000석 대부호가 되는 건 일본 노비는 꿈도 못 꿈. 유럽 모든 나라도 1800년대에 기계라는 노동력 대체제가 생겨서야 노예제 폐지했는데? 1800년대 사토 노부히로는 지방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대략 해마다 일본 전국 1/3의 가정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마들이 영아살해(마비키)했다고 하는데요? MABIKI 라고 Fabian Drexler이 쓴 책에서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일본이야 거짓말로 대외적으로계속 노비 없었다고 하는데 그말 믿음? 에도시대 '화한삼재도회'에도 멀쩡히 기록되어있고,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이라는 서양 노예상이 일본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이 똑같은 거짓말 하다가 외국인이 '요시와라 유곽의 성노예들은 노예아니냐 구라치지 마라'고 걸렸고요 예니체리와 환관도 노비인데 각각 오스만 제국과 중국에서 권력이 막강했음. 조선에서 내시도 노비인데 종2품 관리까지 갈 수 있는 자리였고. 19세기 영국이 과거제 따라 임관시험 만들때까지 매관매직이 일상이던 서양인데, 조선에서도 노비는 정식으로 관직 살 수 있었고 관직 앞에 "납속"만 붙였음. 조선의 노비는 사유재산 인정, 재산 상속 가능, 법적 보호 (주인에게 살해당하면 가해자에게 살인죄 적용됨), 납세 면제, 군역 면제라 타국 노비와 매우 다름. 그냥 말만 노비지 2등 국민.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自賣자매) 돈 만지고 군역 면제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음. 서양 농노처럼 땅 벗어나면 그 누구도 (기리시테 고멘처럼) 죽여버려도 합법인 게 아님.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까지 따라간 덴쇼소년사절단 증언한 바로는 동남아 인도 동/서아프리카, 포르투갈 등 배가 정박한 곳마다 팔려간 일본인 성노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500년대에만 해도, 50만명이 화약과 조총사려고 팔려나감. 식민지화가 되기 전 그냥 서구의 교역국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1800년대 메이지 45년간에도 50만명의 가라유키상 성노예를 팔고 이걸 1만엔권에 모셔놓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람은 일본의 개혁발전 자금을 위해 자국 소녀들을 팔아치우는 건 멈춰선 안된다고 성노예를 '해외에 진군하는 낭자군'이라고 포장함. 좁디좁은 싱가포르에 "일본인 묘지"가 따로 있는데 지금도 사이트 가면 가라유키상 워낙 많이 팔려와서 그녀들이 죽고 파묻을 묘지에서 시작했다고 함. 그리고 일본의 서양 교역도 조선의 해류가 위험하고 난파되면 먼저 남쪽에 있는 규슈에 조난 당하는 거니까 서양과 접하기 훨씬 쉬웠을 뿐. 그리고 별로 팔게 없으니까 노예팔았음. 그러니까 1500년대 일본 자국민 노예수출 중 규슈 하나만으로 60% 팔았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 어마어마하게 납치해가서, 하기 도자기, 아리타 도자기, 사쓰마 도자기를 일본의 도자기로 왜곡 포장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됨. 각각 하기 아리타 사쓰마 도자기 일본 사이트 가보세요 거기 전부 조선인 납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인도네시아에 일본 여성이 13세에 성노예로 팔려나가 2차대전 종전 후 귀국도 못하고 외롭게 현지인들과 따로 살다가 죽는 실화가 '산다칸 8번 창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는 꼴이죠. 러일전쟁 때도 여러번 파산 했잖아요? 그때마다 영국과 미국이 돈 퍼줘서 기사회생하고, 전쟁 끝나도 겉만 승전이지 전쟁배상금 하나도 못 뜯어내서, 대신 국민들 은행계좌 전부 예금봉쇄해서 은행에 예치한 돈 강제로 정부가 뜯어내서 국채 갚고, 2차대전 이후에도 또 하고... 1870년 홋카이도 정벌과 학살, 1609년 오키나와 정벌과 학살, 이런 걸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 뿐, 에도가 번영한 걸 무슨 오늘날 북한 평양처럼 모든 부를 수도에 집중시켜놓고 "북한 전체가 경제 발전했다"라고 왜곡하는 꼴에 속아넘어가다니...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니 학자 맞으세요. 제도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극소수고 인류사 대부분은 그냥 규모의 경제로 싸웁니다. 유럽 대다수 가난한 동유럽, 오스만 식민지 남유럽 빼고, 서유럽 소수 국가만 번영한 건 사실 그 나라만 봐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대륙 단위의 식민지의 경제 위에 서있던 겁니다. 아이티 하나만 해도 프랑스 본국 세수의 3배를 거둘 수 있던 노다지 죠. 서유럽 식민 제국들은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서 대략 GDP 성장을 수백년 동안 20~30배속 돌린 겁니다. 그렇게 빨리 돌리니까 기계 개발자금 같은 발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거고 인도인들은 전부 "자유민"이었지만 나라가 영국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 노예, 이런 말은 아무 쓸모 없고 그냥 실질대우를 봐야합니다. 영국 같은 나라가 노예제 "철폐"를 빨리 할 수 있던 건 그냥 노예 노동을 본국이 아니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식민지에 다 떠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표면적인 부분에 속지 마세요. 20세기 일제시대 아직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이 하천에 떠내려가고, 아직도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버려야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 출신이 많았던 육군이, 육군 지원 안하고 쓸데 없이 해군 장성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군함 축조하는데만 돈 낭비한다고 불만이던 사람들이 황도파라는 파벌 만들어서 쿠데타 일으켰는데?
강의 잘들었습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 유현준교수님은 건축양식의 차이로도 풀어주시더라구요 한옥은 높이 쌓을수없어서 인구가 밀집되기가 어려워 5일장밖에 안되었고, 일본가옥은 2층이상으로 지을 수 있어서 인구밀집이 가능하여 소빚등이 품부해져 상설시장이 설립되고 자본축적이 가능해졌다 라고요
주식보다는 어음입니다. 주식은 기업의 미래 영업가치를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서로 교환하고 주식의 목적은 기업의 운영의 시드머니를 빚의 형태가 아닌 자본을 참여시킴으로 레버리지를 높이되 기업의 안정성을 담보하려는 것이므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용도입니다. 하지만 어음은 채권을 기본으로하여 그 효력을 제3자에게도 인정시키는 것이므로 위험은 고스란히 기업이 떠받고 대신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기업활동을 근거로 보증하는 유가증권 입니다. 고로 기업활동을 근거로 하지만 이윤을 가운데 두고서 그 태도가 정반대인 증권인 셈입니다. 주식은 미래의 이익을 어음은 이미 투여한 재정을 기초로 합니다. 때문에 주식무너지면 손털지만 어음이 부도나면 각두기라도 동원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피눈물을 흘리며 20%,30% 어음깡을 하거나!
서양은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각 지역의 군벌이 난립하게 되고, 그들이 통합전쟁을 벌이면서, 지금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실체를 띠게 된 것이죠. 일본은 헤이안시대부터 우리나라로 치면 세도정치 비슷하게 귀족들이 국가의 재산, 권력을 사유화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질서가 문란해지고 약화되어, 여기저기서 군벌과 호족들이 난립하게 된 것이죠. 중요한 것은 유럽 전체가 하나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듯이, 일본은 헤이안시대 이후로 일본의 전국이 하나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도 저 시절 장사꾼 엄청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유럽도 마찬가지고요. 나라가 만들어질 때부터 상인을 무시하지 않았던 나라는 '미국'정도밖에 없습니다.(그래서 그렇게 유럽애들이 초창기 미국을 '상놈'들이 만든 천박한 국가라고 욕했죠)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이 달랐던 점은 한마디만 적자면 관료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냐의 차이입니다. 조선은 그게 엄청 잘 작동한거고 일본은 항상 불안했기 때문에 불균형해서 상인들의 존재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죠.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좀 내용이 길어져서 이 정도로만 설명하겠습니다.
저 당시 일본의 상인의 이미지가 지금 딱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바라보는 시각이랑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장사 잘해서 돈 벌면 '와 잘했다.' 정도로 인식하지만 똑똑하고 배운사람들 혹은 잘나가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 갑자기 나 장사 하겠다고하면(또는 똑똑한 여자가 고냥저냥 장사하는 남자랑 결혼하겠다 하면) 뭐라 생각할까요? 아마도 대다수가 잘 결정했다는 소리는 안 할듯... 뭔 문제있나? 이정도 인식? 저때 일본사회가 딱 그정도였습니다.
일본의 기업수는 400만개라고 하는데(2019년) 그중 100년 기업이 1%라면 4만개로 엄청나게 많은 것 아닌가요? (22년 중앙일보등 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100년기업은 3만3천곳)그럼 우리나라의 100년 기업은 몇군데나 될까요? 기재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불과 7군데라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일본은 중세때부터 조선보다 초강대국, 선진국이었음. 일본은 봉건제 사회였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정치를 잘못해도 지방들이 살아있어서 지방들끼리 경쟁하면서 발전하다보니 일본은 계속해서 군사,경제,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갔던것같음. 하지만 조선은 초기때는 비록 세계적인 선진국, 강대국, 문명국이긴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고려가 세계적으로 벌어들였던 돈들을 다 까먹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가 발전의 동력을 잃어갔고 돈이 없다보니 점차 국가가 가난해지는데 그때 임진왜란, 병자호란 대전쟁 발발하면서 신분제도가 강화되면서 정치싸움에 혈안이 되면서 몰락한것같음. 저는 일본과 유럽이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가 중세 봉건제 때문이라고 생각함. 반면에 원래부터 세계패권국가였던 중국 대청제국(청나라), 오스만제국(오스만투르크) 등이 몰락한 대표적 이유들은 내전,군사쿠데타,부정부패들도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 이유는 "중앙집권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이 두 세계패권제국들은 중앙집권제였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부패해가면서 지방도 같이 몰락함. 그리고 조선은 중국의 영향력을 워낙 강하게 받았던 국가라서 중국이 쇠락해가니까 조선도 덩달아 쇠퇴해버리고... 하지만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몰락할수밖에 없는데 일본은 중세 봉건제였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몰락해도 지방들이 살아있어서 그게 원동력이 된 것 같음. 결국 일본을 근대국가로 만든 원동력도 사츠마번 - 조슈번의 동맹들이었고
사카모토 료마전 드라마 분위기가 이런거였군요, 하급 사무라이들이 먹고 살려고 이거저거 장사하고 날품팔이하고, 장사해서 돈좀 만진 평민들이 허울뿐인 하급사무라이 족보를 사기도 하고... 나중에 증기선으로 우편사업 하던 인물도 나오는 것 같더군요. 유명한 사람이던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일본 사회가 부유해진 것은 헤이안시대 말기부터 시작된 송나라와의 국제교역으로 대량의 송전이 유입되어 지금의 키나이 지역 (오사카, 교토, 나라 등) 에서부터 화폐경제 사회가 성립되고 상업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10~11세기) 그리고 송나라에서 강남농법 (모내기) 이 전래되면서 일본의 농업생산량이 크게 증가합니다. 그 결과 카마쿠라시대와 무로마치시대에 형성된 일본의 화폐경제와 상업사회를 조선도 본받아야 한다면서 사신 박서생이 세종대왕에게 진언한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 12월 3일 을해 5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박서생이 시행할 만할 일들을 갖추어 아뢰다 일본 농민에게 수차(水車)를 설비하여 물을 퍼 돌려 전답에 대는 자가 있기에, 학생(學生) 김신(金愼)으로 하여금 그 수차를 만든 법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수차가 물을 타고 저절로 회전하면서 물을 퍼 올려 대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 전년에 만들었던 수차인 인력(人力)으로 물을 대는 것과는 다른데, 다만 물살이 센 곳에는 설치할 만하오나, 물살이 느린 곳에는 설치할 수가 없습니다. 수침(水砧)129) 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록 물살이 느리더라도 사람이 발로 밟아서 물을 올린다면 또한 물을 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간략하게 그 모형을 만들어 바치오니, 청컨대 각 고을에 설치할 만한 곳에 이 모형에 따라 제작하여 관개(灌漑)의 편리에 돕도록 하소서. 일본은 그 국도(國都)로부터 연해(沿海)에 이르기까지 돈[錢]을 포백이나 미곡보다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이 비록 천리를 가더라도 돈꿰미[錢緡]만 차고 식량을 휴대하지 않으며, 길가에 사는 사람들이 행려자(行旅者)들이 기숙할 처소를 설치해 놓고, 만약 손님이 올 것 같으면 서로 앞을 다투어 청하여 영접하고, 손님이 주는 돈에 따라 인마(人馬)의 숙식을 제공하며, 관량(關梁)에 있어서는 큰 강(江)에는 주교(舟橋)를 설치하고, 조그마한 냇물에는 누교(樓橋)를 설치해 놓고는 그 곁에 사는 자가 다리 세(稅)를 관장하고 있는데, 그 다리를 지나가는 손님에게 돈 10문(文)이나 5문을 징수하되, 다리의 대소를 참작하여 세를 징수하여 뒷날의 보수(補修) 자금으로 삼고 있사오며, 토전(土田)이나 주거(舟車)의 세까지도 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하여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노고가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대나무로 큰 밧줄을 만들어 양쪽 언덕에 매어 놓고, 통나무를 깎아서 배를 만들어 대나무 밧줄에 등자[鐙]을 달아 배 위로 내려뜨리고는,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가설하고, 널빤지[板子]를 죽 깔아 다리를 만들어 놓고는, 진리(津吏)로 하여금 건너는 세를 가볍게 징수하게 하여 후일에 교량이 낡아 허물어졌을 때의 보수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강과 임진강은 남북을 통하는 큰 관진(關津)입니다. 비옵건대, 이 예에 따라 다리를 가설하고 다릿세를 거두어서 무너지는 대로 즉시 보수하게 한다면, 다만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해질 뿐만이 아니라 남북의 인마(人馬)가 험로(險路)를 걸어서 피곤해 쓰러지는 폐단도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 일본인의 풍속이 노소없이 목욕하고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집에는 각기 욕실(浴室)을 설치하고, 여염(閭閻)마다 또한 여러 군데 욕탕을 설치하고 있는데, 그 욕실의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어 편리합니다. 탕(湯)을 끓이는 자가 각(角)을 불면,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내고 목욕을 합니다. 비옵건대, 제생원(濟生院)·혜민국(惠民局)·왜관 한증(倭館汗蒸)·광통교(廣通橋) 등지와 외방의 의원(醫院)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모두 욕실을 설치하여 돈을 사용하는 법을 돕도록 하소서. 일본 상가(商街)의 제도는 시장 상인들이 각기 처마 아래에다 널빤지로 층루(層樓)를 만들고 물건들을 그 위에 두니, 다만 먼지가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를 보고 살 수 있었으며, 시중(市中)의 음식물들을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모두 사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장은 건습(乾濕)할 것 없이 모든 어육(魚肉) 등의 식물들을 모두 진토(塵土) 위에 두고는 혹은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밟기도 하오니, 비옵건대 운종가(雲從街) 좌우의 행랑(行廊)에서부터 동쪽 누문(樓門)에 이르기까지, 종루(鍾樓) 남쪽에서부터 광통교(廣通橋)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첨(補簷)을 달아내고, 그 아래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을 층루를 만들어, 어느 간(間)은 무슨 물건을 둔 곳이라고 죽 편액(扁額)을 달아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소서. 일본에서는 모든 금(金)·은(銀)·동(銅)·철(鐵) 등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 방금(防禁)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 지방에 사는 자로 하여금 대대로 채취하여 이익을 보게 하고, 나라에 바치는 세공(歲貢)은 일정한 수량뿐이고 다른 부역이 없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자가 태만하지 아니하여 보물의 생산이 무궁하여, 공사(公私)간에 모두 이익이 된다고 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일본의 예에 의하여 모든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는 금법(禁法)을 세우지 말고 평민들에게 그 이익의 독점을 허용하여, 세공(歲貢)을 제정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어 길이 세업(世業)을 삼도록 하소서.ㅑ
다른 매체에서 이창민교수님이 편하게 준비된 순서와 시각자료를 가지고 진행하는걸 봤는데, 그편이 훨씬 편하고 효율적인 전달이 되었습니다. 시청자로서 매번 사회자의 개입이 불필요하고 억지스럽다 느껴져셔 매루 좋은 컨텐츠 임에도 시청자로서 불편합니다...사회자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삼프로티비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일본 문화자체가 선조(자기집마다 먹고 살았던 직업.가업)때 부터 가업을 벗어나거나. 남의 직업을 함부로 할수도 없고 (이지메 발생근거와도 관계있고)타지역으로 이동해서 다른 일을 할수 없기에 100년 이상이 되는 가업들이 생기게 되고. 그를 위반하면 사무라이가 제재 한 문화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업을 승계하는것이 전통이 되어버린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상업(중소기업)이 발달하게 된것입니다. 즉.정치하는 집안은 대대로 정치 합니다(자민당 각계파를 이끄는 수장급들은 일본 정치집안이고 이사람들이 일본 정치 이끌기에 국민들이 민주화나 불평등. 등등 변하는 정치에 그냥 순응하는 것 이죠. 일본은 일본만의 특이한 공동체의식이 있는데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이가 거의 없는것도 일본이 잘나가던 30년 전이나. 23년24년 현재와도 비슷하고. 대졸과 고졸 등의 학력차이가 있다하더라도 그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일본사는데 이런건 있어요. 왜 좋은 대학을 가야하지? 굳이 대기업에 가야하나? 엄청나게 가게를 키워서 부자가 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긴해요 그래서 고졸로 만족하며 살아가거나 첫 커리어를 작은 중소기업에서 몇 십년 근무하거나, 테이블 2-3개 되는 작은 식당을 더 큰 규모로 키우지 않고 몇대째 이어서 운영하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신분상승이나 부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스펙을 쌓거나 인생과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적긴 해요. 근데 이런 사회적요소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잘 돌아가다 보니 우리와 같은 사회 정치적 갈등도 적고 국가적 혼란에 낭비될 수 있는 국력의 소모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보니 과거 자기들보다 근대화를 빨리했던 유럽을 모두 제치고 한 때의 경제대국 일본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부정하긴 힘들 듯 하네요. 그래서 중국도 미중 2강체제가 되는데 있어서 사회적 갈등을 찍어누르는데 온 힘을 쏟은거고 다만 중국은 국가의 권력으로 만든거고 일본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
그렇지 않답니다. 전 세계의 증여세 상속세에 비해 한국은 낮은 편에 속합니다. 상속으로 인하여 사회적 특권계급이 생기는걸 막고 새로운 세력이 생기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상속세 증여세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키기위한 최소한의 방지장치입니다. 19세기 아담스미스식의 야경국가를 좋아하시나 본데 공부하세요. 관점을 자본의 눈이 아니라 임금근로자의 눈으로 보세요. 재벌도 아니면서 사고가 왜 사장님마인드입니까? ㅎㅎ
🎉아무리 진행자지만 메이지유신이 어느시대 인지도 모르고, 임진왜란 때 조선과 일본이 비슷했으니까 전쟁이 일어 낳다는 발언은 너무 무식해 보입니다. 이 정도면 일본 역사나 우리 역사도 일자무식인 수준인데 훌륭한 전문가 모셔놓고 기본적인 공부는 허는게 진행자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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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까지 하니 삼프로TV의 수준이 높어요. 발표 하신 분은 정보의 수집 준비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강의였습니다. 쌀로 증권시장, 선물시장 같은 자본주의를 이미 하고 있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선같은 거지나라와는 그 근본부터 달랐네요
ㅑㅏㅑ
@@tuiontu4194
지금 시점에서 봐도 지방자치와 발전은 단순한 권력분립과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관점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이 가져오는 역동성과 혁신의 기회라는 실질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듯.
미쓰이 재벌이 1600년대 창업했고, 일본 유수의 건설회사인 다케나카공무점이 1600년대. 산와은행이 1600년대. 다케다제약이 1700년대. 도시바의 원 창업주가 닌교쵸에서 1700년대 태엽인형제작소로 창업.
다케나카 공무점을 제외하면 세습이 끊김
도쿠가와 통일막부는 번영
조선이 병자호란 시기와 겹치네
산화 은행이 산와 머니 인가요??
@@벨벳언더그라운드-o1r三和銀行(산와은행)은 여러번의 통폐합을 거쳐 지금은 MUFG(미츠비시UFJ파이낸셜그룹)으로 들어갔어요.
넘 재밌어요,주말을 풍요롭게 채웁니다
서양에 백년 앞선 세계최초의 선물시장
어디서. 듣지 못한 일본의 과거 자본시장을 상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맨날 지루한 잃어버린 30년 애기안해서도. 좋고요
와 역시 전문가분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네요~
삼프로…이러니 안 볼수가 없다!! . 좋아요 …안 누를수가 없다!~~
일본은 조선과 근본부터 다른 방향으로 좀 달랐던 나라죠~ 우리가 삼국시대에 기술 전수 해줬다고 1000년이 지난 에도막부까지 우리가 일본보다 앞서 있었다고 판단 하는건 우리 국민들의 국뽕이죠
일본은 서구와 비슷한 장원제이고 우린 중앙집권제.. 일본은 상속이 되는 영주가 일정영역을 다스리고.. 한국은 중엉에서 임명한 관리가 몇년 다스리다가 옮겨가고.. 서구 비슷하게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필요에 의해 발전했다.
조선이 일본보다 빨리 개항했으면 일본을 능가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영상을 봐야 할듯 일본은 17세기부터 상당히 발전한 자생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었음.
가도의 확장도 한목 한 듯 하죠. 전쟁과 번주 유지가 상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설도 무시하기 힘든 사질적 이유가 되기도 하죠/.
중요한건 지금은 다 따라잡았다라는...
이미 16세기부터도 이와미은광 등으로 전세계 은 생산량의 60%를 장악하던 나라였음.
@@ilililliliiillil 연은분리법의 발전속도가 빠른 나라였죠. 번주가 대단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긴 해요.
18세기부터 이미 그 당시라곤 믿을 수 없는 교육 수준을 많은 백성들이 받고 있었지. 나라 수준 자체는 동양이라는 한계를 제외하면 원탑이었음.
여기서 이창민 교수님 첨 뵙고 다른 영상도 다 찾아보는 중이에요 재밌네요 ㅎㅎ
우와 이정도면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자본주의 개혁 성공한게 확실히 이해가 되네요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가 해방이후 80년만에 이렇게 개인들은 일본 국민들과 비슷하게 사는게 기적적일 일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기적에 가까운 대한민국 발전도 인정하지만, 일본 역사를 들여다볼수록 우리보다 빠르게 탄탄한 상업 시스템이 있었던것 같아요
그게 미국,일본이 돈,기술 퍼준것 때문에 가능했던거지
식민지배 받은 국가중에 느그처럼 지원 받은 국가는 없단다
@@asdsdasd-h8x스승인디 인정 못받는 그들
일본은 상업을 부흥, 조선은 상업을 천시..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 대응 차이
1700년대라면 김만덕이라고 여자 노비 상단의 대행수가 있었는데요? 호남과 제주도 일대 상권을 장악했지요.
조선통신사 기록화에서 바지도 안입고 조선의 국서를 따로 가마 태워 모시던 가마꾼들 다 일본 노비인데, 일본 서적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그림까지 그려놓고 노비라고 함. 성종 때 임복이라고 8000석 대부호가 되는 건 일본 노비는 꿈도 못 꿈. 유럽 모든 나라도 1800년대에 기계라는 노동력 대체제가 생겨서야 노예제 폐지했는데?
1800년대 사토 노부히로는 지방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대략 해마다 일본 전국 1/3의 가정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마들이 영아살해(마비키)했다고 하는데요? MABIKI 라고 Fabian Drexler이 쓴 책에서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일본이야 거짓말로 대외적으로계속 노비 없었다고 하는데 그말 믿음? 에도시대 '화한삼재도회'에도 멀쩡히 기록되어있고,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이라는 서양 노예상이 일본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이 똑같은 거짓말 하다가 외국인이 '요시와라 유곽의 성노예들은 노예아니냐 구라치지 마라'고 걸렸고요
예니체리와 환관도 노비인데 각각 오스만 제국과 중국에서 권력이 막강했음. 조선에서 내시도 노비인데 종2품 관리까지 갈 수 있는 자리였고. 19세기 영국이 과거제 따라 임관시험 만들때까지 매관매직이 일상이던 서양인데, 조선에서도 노비는 정식으로 관직 살 수 있었고 관직 앞에 "납속"만 붙였음.
조선의 노비는 사유재산 인정, 재산 상속 가능, 법적 보호 (주인에게 살해당하면 가해자에게 살인죄 적용됨), 납세 면제, 군역 면제라 타국 노비와 매우 다름. 그냥 말만 노비지 2등 국민.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自賣자매) 돈 만지고 군역 면제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음. 서양 농노처럼 땅 벗어나면 그 누구도 (기리시테 고멘처럼) 죽여버려도 합법인 게 아님.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까지 따라간 덴쇼소년사절단 증언한 바로는 동남아 인도 동/서아프리카, 포르투갈 등 배가 정박한 곳마다 팔려간 일본인 성노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500년대에만 해도, 50만명이 화약과 조총사려고 팔려나감. 식민지화가 되기 전 그냥 서구의 교역국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1800년대 메이지 45년간에도 50만명의 가라유키상 성노예를 팔고 이걸 1만엔권에 모셔놓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람은 일본의 개혁발전 자금을 위해 자국 소녀들을 팔아치우는 건 멈춰선 안된다고 성노예를 '해외에 진군하는 낭자군'이라고 포장함. 좁디좁은 싱가포르에 "일본인 묘지"가 따로 있는데 지금도 사이트 가면 가라유키상 워낙 많이 팔려와서 그녀들이 죽고 파묻을 묘지에서 시작했다고 함.
그리고 일본의 서양 교역도 조선의 해류가 위험하고 난파되면 먼저 남쪽에 있는 규슈에 조난 당하는 거니까 서양과 접하기 훨씬 쉬웠을 뿐. 그리고 별로 팔게 없으니까 노예팔았음. 그러니까 1500년대 일본 자국민 노예수출 중 규슈 하나만으로 60% 팔았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 어마어마하게 납치해가서, 하기 도자기, 아리타 도자기, 사쓰마 도자기를 일본의 도자기로 왜곡 포장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됨. 각각 하기 아리타 사쓰마 도자기 일본 사이트 가보세요 거기 전부 조선인 납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인도네시아에 일본 여성이 13세에 성노예로 팔려나가 2차대전 종전 후 귀국도 못하고 외롭게 현지인들과 따로 살다가 죽는 실화가 '산다칸 8번 창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는 꼴이죠. 러일전쟁 때도 여러번 파산 했잖아요? 그때마다 영국과 미국이 돈 퍼줘서 기사회생하고, 전쟁 끝나도 겉만 승전이지 전쟁배상금 하나도 못 뜯어내서, 대신 국민들 은행계좌 전부 예금봉쇄해서 은행에 예치한 돈 강제로 정부가 뜯어내서 국채 갚고, 2차대전 이후에도 또 하고...
1870년 홋카이도 정벌과 학살, 1609년 오키나와 정벌과 학살, 이런 걸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 뿐, 에도가 번영한 걸 무슨 오늘날 북한 평양처럼 모든 부를 수도에 집중시켜놓고 "북한 전체가 경제 발전했다"라고 왜곡하는 꼴에 속아넘어가다니...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니 학자 맞으세요. 제도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극소수고 인류사 대부분은 그냥 규모의 경제로 싸웁니다. 유럽 대다수 가난한 동유럽, 오스만 식민지 남유럽 빼고, 서유럽 소수 국가만 번영한 건 사실 그 나라만 봐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대륙 단위의 식민지의 경제 위에 서있던 겁니다. 아이티 하나만 해도 프랑스 본국 세수의 3배를 거둘 수 있던 노다지 죠. 서유럽 식민 제국들은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서 대략 GDP 성장을 수백년 동안 20~30배속 돌린 겁니다.
그렇게 빨리 돌리니까 기계 개발자금 같은 발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거고
인도인들은 전부 "자유민"이었지만 나라가 영국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 노예, 이런 말은 아무 쓸모 없고 그냥 실질대우를 봐야합니다. 영국 같은 나라가 노예제 "철폐"를 빨리 할 수 있던 건 그냥 노예 노동을 본국이 아니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식민지에 다 떠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표면적인 부분에 속지 마세요.
20세기 일제시대 아직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이 하천에 떠내려가고, 아직도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버려야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 출신이 많았던 육군이, 육군 지원 안하고 쓸데 없이 해군 장성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군함 축조하는데만 돈 낭비한다고 불만이던 사람들이 황도파라는 파벌 만들어서 쿠데타 일으켰는데?
중앙 집권제(군현제)와 지방 분권제(엄밀히는 유럽 장원제와 비슷, 다이묘)의 차이가 아닐까요?
일본은 오래전부터 본인만의 문화를 잘 가꾸고 기술을 지키는 것을 진심으로 열심히 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거지.
@@이윤성-o7b 후발 근대화에 성공한 3나라가 모두 지방분권국가였죠.
독일, 이탈리아, 일본.
이건 우연이 아닙니다.
@@이윤성-o7b중앙집권제는 지방에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유력한 세력이 등장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지역 독자의 군사와 상업을 억압하기가 쉽죠.
설령 지방에 유력한 세력이 등장한다해도 곧바로 밟아버려야 하는 것이고요.
결국 중앙정부 세력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을 때, 이를 견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세력이 부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조선이 반식민지와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된 것이죠.
너무 재미있게 잘~들었습니다..감사합니다...
0:00: 📈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
0:00: 일본의 상인과 세금제도
2:16: 농민과 토지 소유 제한
4:23: 상인의 화폐 경제와 자본 축적
5:24: 다양한 종류의 화폐 유통
6:19: 💱 일본의 지방화폐와 시장경제
6:19: 화폐 집회와 발행
6:32: 환전상의 역할
6:48: 지역별 금화 사용
7:02: 환전상 가문의 역할
9:41: 지방의 쌀 시장
12:04: 쌀 증권 거래
12:16: 📈 일본식 시장경제와 선물시장에 대한 설명
12:16: 증권 시장의 가격 변동과 거래 과정
13:48: 선물시장의 운영과 시장 시간
14:18: 선물시장에서의 차액 정산과 환전상 거래
15:30: 선물시장의 중요성과 정보 전달 시스템
16:06: 퀵서비스 업체와 깃발 통신시스템의 활용
17:33: 현지 시장과 프로그램 매매의 중요성
17:52: 💰 일본의 미스 가문의 재벌 성장과 환전상의 역할
17:52: 환전상과 은행의 금융 역할이 활발해짐
18:45: 미스 가문의 역사와 재벌 성장
18:54: 미스 다카토시의 가문과 장사 출발
20:06: 미츠코시 백화점의 성장과 확장
21:15: 외상거래와 금장사의 전환
22:00: 미스 가문의 전국망과 은행 결제 시스템
23:32: 호코인 제도를 통한 후계자 계승 시스템
23:49: 📚 일본의 기업 전통과 전속 계약에 대한 이야기
23:49: 일본의 오래된 기업과 전통
24:12: 전속 계약의 중요성과 유지 이유
26:09: 콩고 구미의 역사와 성공 이유
29:29: 다나카 야스의 상가수첩 수집 활동
31:02: 📈 일본의 상인과 상가의 영속성 연구 결과
31:02: 일본 상가의 평균 폐업 기간은 15년
32:21: 일본 상인의 평균 경영기간은 15년
32:28: 일본 상인의 영속성이 상대적으로 낮음
34:38: 자식에게 상속한 가게의 평균 생존 기간은 5~6년
35:06: 영업 독점권을 타인에게 판매한 경우 평균 생존 기간은 18.1년
35:22: 일본의 가문들은 예외적으로 오래 가게 운영
35:47: 일본의 상가와 상인들은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친 역사를 가짐
36:12: 📚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에 영향을 미친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36:12: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변화가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36:27: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조화로운 섞임이 중요한 이유였다
36:35: 지방 자치제로 인해 지방 경제가 발전하고 경쟁적인 요인이 되었다
37:25: 지방 분권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경쟁의 요인이 되었다
37:41: 각 지방 간의 경쟁과 교류가 유럽 국가들과 유사한 상업 발달을 이끌었다
37:58: 일본의 현대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역사적인 연원이 있다
38:59: 일본의 시장경제 형성에 영향을 미친 지방 자치제와 중앙집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Recapped using Tammy AI
이렇게 수준 높은 방송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넘넘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잼있게 설명을 잘 해주네요
이창민 교수님 내용 너무 좋으네요
일본과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이 너무 달랐다. ^^
취향저격 방송이었습니다. 어림짐작보다는 데이터 수집 후 분석...그리고 예상과는 차이있는 의외의 결과들!!
1700년대라면 김만덕이라고 여자 노비 상단의 대행수가 있었는데요? 호남과 제주도 일대 상권을 장악했지요.
조선통신사 기록화에서 바지도 안입고 조선의 국서를 따로 가마 태워 모시던 가마꾼들 다 일본 노비인데, 일본 서적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그림까지 그려놓고 노비라고 함. 성종 때 임복이라고 8000석 대부호가 되는 건 일본 노비는 꿈도 못 꿈. 유럽 모든 나라도 1800년대에 기계라는 노동력 대체제가 생겨서야 노예제 폐지했는데?
일본이야 거짓말로 대외적으로계속 노비 없었다고 하는데 그말 믿음? 에도시대 '화한삼재도회'에도 멀쩡히 기록되어있고,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이라는 서양 노예상이 일본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이 똑같은 거짓말 하다가 외국인이 '요시와라 유곽의 성노예들은 노예아니냐 구라치지 마라'고 걸렸고요
예니체리와 환관도 노비인데 각각 오스만 제국과 중국에서 권력이 막강했음. 조선에서 내시도 노비인데 종2품 관리까지 갈 수 있는 자리였고. 19세기 영국이 과거제 따라 임관시험 만들때까지 매관매직이 일상이던 서양인데, 조선에서도 노비는 정식으로 관직 살 수 있었고 관직 앞에 "납속"만 붙였음.
조선의 노비는 사유재산 인정, 재산 상속 가능, 법적 보호 (주인에게 살해당하면 가해자에게 살인죄 적용됨), 납세 면제, 군역 면제라 타국 노비와 매우 다름. 그냥 말만 노비지 2등 국민.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自賣자매) 돈 만지고 군역 면제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음. 서양 농노처럼 땅 벗어나면 그 누구도 (기리시테 고멘처럼) 죽여버려도 합법인 게 아님.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까지 따라간 덴쇼소년사절단 증언한 바로는 동남아 인도 동/서아프리카, 포르투갈 등 배가 정박한 곳마다 팔려간 일본인 성노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500년대에만 해도, 50만명이 화약과 조총사려고 팔려나감. 식민지화가 되기 전 그냥 서구의 교역국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1800년대 메이지 45년간에도 50만명의 가라유키상 성노예를 팔고 이걸 1만엔권에 모셔놓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람은 일본의 개혁발전 자금을 위해 자국 소녀들을 팔아치우는 건 멈춰선 안된다고 성노예를 '해외에 진군하는 낭자군'이라고 포장함. 좁디좁은 싱가포르에 "일본인 묘지"가 따로 있는데 지금도 사이트 가면 가라유키상 워낙 많이 팔려와서 그녀들이 죽고 파묻을 묘지에서 시작했다고 함.
그리고 일본의 서양 교역도 조선의 해류가 위험하고 난파되면 먼저 남쪽에 있는 규슈에 조난 당하는 거니까 서양과 접하기 훨씬 쉬웠을 뿐. 그리고 별로 팔게 없으니까 노예팔았음. 그러니까 1500년대 일본 자국민 노예수출 중 규슈 하나만으로 60% 팔았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 어마어마하게 납치해가서, 하기 도자기, 아리타 도자기, 사쓰마 도자기를 일본의 도자기로 왜곡 포장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됨. 각각 하기 아리타 사쓰마 도자기 일본 사이트 가보세요 거기 전부 조선인 납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1800년대 사토 노부히로는 지방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대략 해마다 일본 전국 1/3의 가정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마들이 영아살해(마비키)했다고 하는데요? MABIKI 라고 Fabian Drexler이 쓴 책에서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인도네시아에 일본 여성이 13세에 성노예로 팔려나가 2차대전 종전 후 귀국도 못하고 외롭게 현지인들과 따로 살다가 죽는 실화가 '산다칸 8번 창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는 꼴이죠. 러일전쟁 때도 여러번 파산 했잖아요? 그때마다 영국과 미국이 돈 퍼줘서 기사회생하고, 전쟁 끝나도 겉만 승전이지 전쟁배상금 하나도 못 뜯어내서, 대신 국민들 은행계좌 전부 예금봉쇄해서 은행에 예치한 돈 강제로 정부가 뜯어내서 국채 갚고, 2차대전 이후에도 또 하고...
1870년 홋카이도 정벌과 학살, 1609년 오키나와 정벌과 학살, 이런 걸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 뿐, 에도가 번영한 걸 무슨 오늘날 북한 평양처럼 모든 부를 수도에 집중시켜놓고 "북한 전체가 경제 발전했다"라고 왜곡하는 꼴에 속아넘어가다니...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니 학자 맞으세요. 제도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극소수고 인류사 대부분은 그냥 규모의 경제로 싸웁니다. 유럽 대다수 가난한 동유럽, 오스만 식민지 남유럽 빼고, 서유럽 소수 국가만 번영한 건 사실 그 나라만 봐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대륙 단위의 식민지의 경제 위에 서있던 겁니다. 아이티 하나만 해도 프랑스 본국 세수의 3배를 거둘 수 있던 노다지 죠. 서유럽 식민 제국들은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서 대략 GDP 성장을 수백년 동안 20~30배속 돌린 겁니다.
그렇게 빨리 돌리니까 기계 개발자금 같은 발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거고
인도인들은 전부 "자유민"이었지만 나라가 영국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 노예, 이런 말은 아무 쓸모 없고 그냥 실질대우를 봐야합니다. 영국 같은 나라가 노예제 "철폐"를 빨리 할 수 있던 건 그냥 노예 노동을 본국이 아니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식민지에 다 떠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표면적인 부분에 속지 마세요.
20세기 일제시대 아직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이 하천에 떠내려가고, 아직도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버려야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 출신이 많았던 육군이, 육군 지원 안하고 쓸데 없이 해군 장성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군함 축조하는데만 돈 낭비한다고 불만이던 사람들이 황도파라는 파벌 만들어서 쿠데타 일으켰는데?
교수님, 이 프레임, 재밌게 보고 갑니다.
다음엔 메이지유신입니까.
신나네요. 봉건국가 일본이 열심히 서구열강을 배우고, 피나게 공부해서 따라잡는, 어찌보면 일본의 황금기이지요.
1700년대라면 김만덕이라고 여자 노비 상단의 대행수가 있었는데요? 호남과 제주도 일대 상권을 장악했지요.
조선통신사 기록화에서 바지도 안입고 조선의 국서를 따로 가마 태워 모시던 가마꾼들 다 일본 노비인데, 일본 서적 화한삼재도회 7권에서 그림까지 그려놓고 노비라고 함. 성종 때 임복이라고 8000석 대부호가 되는 건 일본 노비는 꿈도 못 꿈. 유럽 모든 나라도 1800년대에 기계라는 노동력 대체제가 생겨서야 노예제 폐지했는데?
1800년대 사토 노부히로는 지방마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대략 해마다 일본 전국 1/3의 가정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마들이 영아살해(마비키)했다고 하는데요? MABIKI 라고 Fabian Drexler이 쓴 책에서 자세하게 들어갑니다.
일본이야 거짓말로 대외적으로계속 노비 없었다고 하는데 그말 믿음? 에도시대 '화한삼재도회'에도 멀쩡히 기록되어있고, 마리아 루스 호 사건이라는 서양 노예상이 일본에 잠깐 들렀다가 일본이 똑같은 거짓말 하다가 외국인이 '요시와라 유곽의 성노예들은 노예아니냐 구라치지 마라'고 걸렸고요
예니체리와 환관도 노비인데 각각 오스만 제국과 중국에서 권력이 막강했음. 조선에서 내시도 노비인데 종2품 관리까지 갈 수 있는 자리였고. 19세기 영국이 과거제 따라 임관시험 만들때까지 매관매직이 일상이던 서양인데, 조선에서도 노비는 정식으로 관직 살 수 있었고 관직 앞에 "납속"만 붙였음.
조선의 노비는 사유재산 인정, 재산 상속 가능, 법적 보호 (주인에게 살해당하면 가해자에게 살인죄 적용됨), 납세 면제, 군역 면제라 타국 노비와 매우 다름. 그냥 말만 노비지 2등 국민.
자신을 노비로 팔아서 (自賣자매) 돈 만지고 군역 면제 받으려는 사람도 많았음. 서양 농노처럼 땅 벗어나면 그 누구도 (기리시테 고멘처럼) 죽여버려도 합법인 게 아님.
포르투갈 선교사 따라 로마까지 따라간 덴쇼소년사절단 증언한 바로는 동남아 인도 동/서아프리카, 포르투갈 등 배가 정박한 곳마다 팔려간 일본인 성노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1500년대에만 해도, 50만명이 화약과 조총사려고 팔려나감. 식민지화가 되기 전 그냥 서구의 교역국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처럼. 1800년대 메이지 45년간에도 50만명의 가라유키상 성노예를 팔고 이걸 1만엔권에 모셔놓은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사람은 일본의 개혁발전 자금을 위해 자국 소녀들을 팔아치우는 건 멈춰선 안된다고 성노예를 '해외에 진군하는 낭자군'이라고 포장함. 좁디좁은 싱가포르에 "일본인 묘지"가 따로 있는데 지금도 사이트 가면 가라유키상 워낙 많이 팔려와서 그녀들이 죽고 파묻을 묘지에서 시작했다고 함.
그리고 일본의 서양 교역도 조선의 해류가 위험하고 난파되면 먼저 남쪽에 있는 규슈에 조난 당하는 거니까 서양과 접하기 훨씬 쉬웠을 뿐. 그리고 별로 팔게 없으니까 노예팔았음. 그러니까 1500년대 일본 자국민 노예수출 중 규슈 하나만으로 60% 팔았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공들 어마어마하게 납치해가서, 하기 도자기, 아리타 도자기, 사쓰마 도자기를 일본의 도자기로 왜곡 포장해서 막대한 돈을 벌게 됨. 각각 하기 아리타 사쓰마 도자기 일본 사이트 가보세요 거기 전부 조선인 납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인도네시아에 일본 여성이 13세에 성노예로 팔려나가 2차대전 종전 후 귀국도 못하고 외롭게 현지인들과 따로 살다가 죽는 실화가 '산다칸 8번 창관'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북한의 거짓말에 속는 꼴이죠. 러일전쟁 때도 여러번 파산 했잖아요? 그때마다 영국과 미국이 돈 퍼줘서 기사회생하고, 전쟁 끝나도 겉만 승전이지 전쟁배상금 하나도 못 뜯어내서, 대신 국민들 은행계좌 전부 예금봉쇄해서 은행에 예치한 돈 강제로 정부가 뜯어내서 국채 갚고, 2차대전 이후에도 또 하고...
1870년 홋카이도 정벌과 학살, 1609년 오키나와 정벌과 학살, 이런 걸로 경제 규모를 키운 것 뿐, 에도가 번영한 걸 무슨 오늘날 북한 평양처럼 모든 부를 수도에 집중시켜놓고 "북한 전체가 경제 발전했다"라고 왜곡하는 꼴에 속아넘어가다니... 일본인들이 내세우는 핑계를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니 학자 맞으세요. 제도로 도움 받을 수 있는 건 극소수고 인류사 대부분은 그냥 규모의 경제로 싸웁니다. 유럽 대다수 가난한 동유럽, 오스만 식민지 남유럽 빼고, 서유럽 소수 국가만 번영한 건 사실 그 나라만 봐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대륙 단위의 식민지의 경제 위에 서있던 겁니다. 아이티 하나만 해도 프랑스 본국 세수의 3배를 거둘 수 있던 노다지 죠. 서유럽 식민 제국들은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서 대략 GDP 성장을 수백년 동안 20~30배속 돌린 겁니다.
그렇게 빨리 돌리니까 기계 개발자금 같은 발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거고
인도인들은 전부 "자유민"이었지만 나라가 영국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자유민, 노예, 이런 말은 아무 쓸모 없고 그냥 실질대우를 봐야합니다. 영국 같은 나라가 노예제 "철폐"를 빨리 할 수 있던 건 그냥 노예 노동을 본국이 아니라 아웃소싱할 수 있는 식민지에 다 떠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표면적인 부분에 속지 마세요.
20세기 일제시대 아직까지 굶어죽는 아이들이 하천에 떠내려가고, 아직도 여동생들을 유곽에 팔아버려야할 정도로 가난한 지역 출신이 많았던 육군이, 육군 지원 안하고 쓸데 없이 해군 장성들이 장악한 정권에서 군함 축조하는데만 돈 낭비한다고 불만이던 사람들이 황도파라는 파벌 만들어서 쿠데타 일으켰는데?
강의 잘들었습니다 같은 내용에 대해 유현준교수님은 건축양식의 차이로도 풀어주시더라구요
한옥은 높이 쌓을수없어서 인구가 밀집되기가 어려워 5일장밖에 안되었고, 일본가옥은 2층이상으로 지을 수 있어서 인구밀집이 가능하여 소빚등이 품부해져 상설시장이 설립되고 자본축적이 가능해졌다 라고요
일본이 영토도 우리나라의 2배. 인구도 3배 이상이었습니다. 어떻게 국력이 비슷하다고 느끼셨을까?
국뽕러들 댓글 예방접종이지 ㅋㅋㅋ 😂
17:00 아비트리지는 못참지
동시대 조선이랑 정말 비교되네,,,
메이지유신 성공한 이유가 사무라이만 잘해서가 아냐,,,,
돈도 있고 지식도 있고 절박함도 있고 3박자가 다 맞았죠.
집에서 도움 안 되는 글공부만 하는 선비의 나라 조선은 어차피 처음부터 망할 운명
이런것만 봐도 일본이 아시아의 초 강대국이 되고 찬란한 근대화 문명을 꽃피운 이유가 설명이 되네.. 반대로 조선은 그저 야만 수준.. 조선이 500년 찬란한 문명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그저 야만
새로운 관점 재미 감사 합니다
주식보다는 어음입니다. 주식은 기업의 미래 영업가치를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서로 교환하고 주식의 목적은 기업의 운영의 시드머니를 빚의 형태가 아닌
자본을 참여시킴으로 레버리지를 높이되 기업의 안정성을 담보하려는 것이므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용도입니다.
하지만 어음은 채권을 기본으로하여 그 효력을 제3자에게도 인정시키는 것이므로
위험은 고스란히 기업이 떠받고 대신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기업활동을 근거로 보증하는
유가증권 입니다. 고로 기업활동을 근거로 하지만 이윤을 가운데 두고서 그 태도가 정반대인
증권인 셈입니다. 주식은 미래의 이익을 어음은 이미 투여한 재정을 기초로 합니다.
때문에 주식무너지면 손털지만 어음이 부도나면 각두기라도 동원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피눈물을 흘리며 20%,30% 어음깡을 하거나!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주장하기 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네요... 나름 내부에서 경쟁력을 갖춰가며 만든 거였군요..
서양에서 일어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과 유사한 건지 세계사적 맥락에서 의견이 나왔으면 더 좋겠습니다. 일본의 막부, 번 시스템이 서양의 봉건제와 매우 유사했는데 서양과 유사한 이유와 경로로 일본도 그 이행 과정을 거쳐갔는 지가 궁금하네요?
서양은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각 지역의 군벌이 난립하게 되고, 그들이 통합전쟁을 벌이면서, 지금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실체를 띠게 된 것이죠.
일본은 헤이안시대부터 우리나라로 치면 세도정치 비슷하게 귀족들이 국가의 재산, 권력을 사유화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질서가 문란해지고 약화되어, 여기저기서 군벌과 호족들이 난립하게 된 것이죠.
중요한 것은
유럽 전체가 하나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듯이,
일본은 헤이안시대 이후로 일본의 전국이 하나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인들 참 영리한 민족입니다. 그에 비해 조선은 ...
예전부터 비슷한 위치에 있던 나라인데 몇백년전부터 저런걸 했다는게ㅋㅋㅋㅋ놀랍네
조선도 이미 알고있었지만 성리학양반들은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쇄국을 하고 중국힘에 기대며 국민을 수탈하기만 했죠. 일제시대보다 더 악랄한 조선양반네들입니다. 한글창제하면 뭐합니까 백성들이 글을 알면 다스리기 힘들까봐 보급을 안하는데요ㅠ 아이러니한게 한글보급은 일제시대에 이뤄진겁니다.
우리가 뭣도 모르고 애써 무시해서 그렇지 일본은 역사적으로 항상 경제적 수준뿐만 아니라 지적 문화적 수준도 두 수 위였어
비교안됨😊
그러니까 근대 일본의 조선보다 앞선 발전은 개항이 몇십년 빨라서가 아니라 일본상업이 오랬동안 축적된 산물이네요. 반면에 조선은 개항하자마자 적응이 안되어서 농민반란부터 일어나고 전봉준같은 사회주의 비슷한 사상가들이 일어나서 말아먹고...
삼프로 선생님들, 힘드시겠느나 이창민 교수님의 연구 성과를 경제적 소득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시면 안될까요? 올바르게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고민의 자료가 될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는 '장사'를 무시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데 어떻게 100년 기업이 나올까요?
'장사꾼' 이라는 단어의 뉘앙스 우리 모두 알잖아요
사업가입니다~
일본도 저 시절 장사꾼 엄청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유럽도 마찬가지고요. 나라가 만들어질 때부터 상인을 무시하지 않았던 나라는 '미국'정도밖에 없습니다.(그래서 그렇게 유럽애들이 초창기 미국을 '상놈'들이 만든 천박한 국가라고 욕했죠)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이 달랐던 점은 한마디만 적자면 관료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했냐의 차이입니다. 조선은 그게 엄청 잘 작동한거고 일본은 항상 불안했기 때문에 불균형해서 상인들의 존재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죠. 이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좀 내용이 길어져서 이 정도로만 설명하겠습니다.
저 당시 일본의 상인의 이미지가 지금 딱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바라보는 시각이랑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장사 잘해서 돈 벌면 '와 잘했다.' 정도로 인식하지만 똑똑하고 배운사람들 혹은 잘나가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 갑자기 나 장사 하겠다고하면(또는 똑똑한 여자가 고냥저냥 장사하는 남자랑 결혼하겠다 하면) 뭐라 생각할까요? 아마도 대다수가 잘 결정했다는 소리는 안 할듯... 뭔 문제있나? 이정도 인식? 저때 일본사회가 딱 그정도였습니다.
@@illillilil111관료제? 오히려 그 관료제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겁니다 ㅋㅋㅋㅋㅋ
@@illillilil111뭐가 불안하고 불균형이었다는 건가요? ㅋㅋㅋㅋ 그리고 그게 상인이랑 무슨 상관이죠? ㅋㅋㅋㅋ
AI시대이듯이 지식의축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2프로 질문이 가장 맴에들어
신뢰가 가는 제품과 서비스가 많음.
일본의 기업수는 400만개라고 하는데(2019년) 그중 100년 기업이 1%라면 4만개로 엄청나게 많은 것 아닌가요? (22년 중앙일보등 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100년기업은 3만3천곳)그럼 우리나라의 100년 기업은 몇군데나 될까요? 기재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불과 7군데라고 하네요
자본주의의 역사와 전국단위 전쟁 등 한국과 일본은 환경이 많이 다르죠. 직접 비교는 곤란하다 봅니다.
그러니까요. 1프로니까 낮다 라는 게 이 프로그램의 가장 시작부분에 나오니 공감이 안가네요.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와 625전쟁 거치면서 산업과 기업이 리셋되다보니 아직 100년기업이 나오기는 조금 어려운 환경이지 않을까요?
영상에도 나오지만 4만곳이면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비교해도 엄청난 숫자이긴 함
그놈의 전쟁드립. 그럼 6.25 전에는 한국이 일본보다 기업수가 많앗다는 것인가
농업 임업 수산업 축산업 광업은 생명의근본 1차산업
제조업은 제품의생산과소비 수출과수입 2차산업
서비스와금융업은 3차산업
생각해보면 일본은 중세때부터 조선보다 초강대국, 선진국이었음.
일본은 봉건제 사회였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정치를 잘못해도 지방들이 살아있어서 지방들끼리 경쟁하면서 발전하다보니 일본은 계속해서 군사,경제,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갔던것같음.
하지만 조선은 초기때는 비록 세계적인 선진국, 강대국, 문명국이긴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고려가 세계적으로 벌어들였던 돈들을 다 까먹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가 발전의 동력을 잃어갔고
돈이 없다보니 점차 국가가 가난해지는데 그때 임진왜란, 병자호란 대전쟁 발발하면서 신분제도가 강화되면서 정치싸움에 혈안이 되면서 몰락한것같음.
저는 일본과 유럽이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가 중세 봉건제 때문이라고 생각함.
반면에 원래부터 세계패권국가였던 중국 대청제국(청나라), 오스만제국(오스만투르크) 등이 몰락한 대표적 이유들은
내전,군사쿠데타,부정부패들도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 이유는 "중앙집권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이 두 세계패권제국들은 중앙집권제였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부패해가면서 지방도 같이 몰락함.
그리고 조선은 중국의 영향력을 워낙 강하게 받았던 국가라서 중국이 쇠락해가니까 조선도 덩달아 쇠퇴해버리고...
하지만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몰락할수밖에 없는데 일본은 중세 봉건제였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몰락해도 지방들이 살아있어서 그게 원동력이 된 것 같음. 결국 일본을 근대국가로 만든 원동력도 사츠마번 - 조슈번의 동맹들이었고
일본인 이미 은납추출법을 조선에서 들여와서 많은 은을 확보했다
와우 이프로님은 역시 잘생김...무슨김? 잘생김!!!
축구 야구랑 비슷하네 선수가 한국보다 몇백배가 많으니 그중에 잘하는 선수가 한국보다 많이 나오는거지
사회자 추임새 조금 줄여주면 좋겠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일본이 위대한 이유
전쟁을 해야 자본주의가 발달함
산업혁명과 달리 자본주의는 무조건 전쟁을 통한 수요확대, 금융발달이 되야만 가능하다
일본의 상업은 전쟁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해 발달했고 잔쟁으로 뺏은 잉여자본으로 더욱 발전할수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쟁 시스템'이 있어야 자본주의가 발달하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전쟁이 '가장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 되는 것이구요.
역사를 잊은 민족 운운하는 것들 치고 이런거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음ㄲ
이딴거는 몰라도 되고
강제노역, 위안부 100년된 역사만 알면 되는 미개인들임😂
한반도는 북방 이민족 침략 때문에 힘을 분산하면 지금 중국의 소수민족처럼 됩니다.
장사나 기업을 하다 망해도 지식은 남지요
아직도 억측에 근거한 허망한 설일뿐인 성리학 주자학 찾고 있고 지폐의 인물들도 거의 전부 유교 인물들인 우리나라 ㅋㅋㅋ
임진왜란때 조선과 일본이 비슷하다뇨 ㅎㅎ 일본이 그당시에도 강대국이니 십수만명이 배타고 넘어온것 아닙니까?? 조선이 십수만명 배타고 일본에 가서 침략할 국력이 되었던가요??
4:40
올해가 레이와몇년인가요?
令和6年이에요~
사카모토 료마전 드라마 분위기가 이런거였군요, 하급 사무라이들이 먹고 살려고 이거저거 장사하고 날품팔이하고, 장사해서 돈좀 만진 평민들이 허울뿐인 하급사무라이 족보를 사기도 하고...
나중에 증기선으로 우편사업 하던 인물도 나오는 것 같더군요. 유명한 사람이던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이와사키 야타로 말씀이신가요?일본우선(日本郵船)의 히카와마루(氷川丸)
미츠비시 그룹의 전신인 미츠비시 상회의 설립자이기도 하고요.
3:17 무슨 알바가 본능이야...하하...요즘 드리블 좀 친다...
양적완화하여 가계부채 청산하고 결혼부 신설하여 연애수당 월 20만원 결혼 수당 1억 출산 수당 5000만원 주택구입 2억 전업주부 월 100만원 다자녀 부모는 취업에 우선순위를 주는 공영제하자.
음식점 오래 하려면. 우리나라식 경쟁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 휴식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경쟁은 자멸의길
왜 옛날 조선에는 오래된 기업이 없는지 정말 모르나요? 일본에는 왜 있는지 정말 모르나요?
경쟁체제가 좋은게 아닌가?
신규입장벽이 높으면
내게도 희망이 없다
봉화시스템 자체는 다른나라에도 있다쳐도
시속 700km으로 하루 10번 동기화되는 실시간 시스템이 상설로 굴러가는건 진짜 무릎탁 급이네 ㅋㅋㅋ
막스의 자본론에서 이미 월급은 생활가능 할만큼만 주라고 했슴
일본 사회가 부유해진 것은 헤이안시대 말기부터 시작된
송나라와의 국제교역으로 대량의 송전이 유입되어
지금의 키나이 지역 (오사카, 교토, 나라 등) 에서부터 화폐경제 사회가 성립되고 상업사회가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10~11세기)
그리고 송나라에서 강남농법 (모내기) 이 전래되면서 일본의 농업생산량이 크게 증가합니다.
그 결과 카마쿠라시대와 무로마치시대에 형성된 일본의 화폐경제와 상업사회를 조선도 본받아야 한다면서
사신 박서생이 세종대왕에게 진언한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 46권, 세종 11년 12월 3일 을해 5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박서생이 시행할 만할 일들을 갖추어 아뢰다
일본 농민에게 수차(水車)를 설비하여 물을 퍼 돌려 전답에 대는 자가 있기에, 학생(學生) 김신(金愼)으로 하여금 그 수차를 만든 법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수차가 물을 타고 저절로 회전하면서 물을 퍼 올려 대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 전년에 만들었던 수차인 인력(人力)으로 물을 대는 것과는 다른데, 다만 물살이 센 곳에는 설치할 만하오나, 물살이 느린 곳에는 설치할 수가 없습니다. 수침(水砧)129) 도 또한 그러하였으니,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록 물살이 느리더라도 사람이 발로 밟아서 물을 올린다면 또한 물을 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간략하게 그 모형을 만들어 바치오니, 청컨대 각 고을에 설치할 만한 곳에 이 모형에 따라 제작하여 관개(灌漑)의 편리에 돕도록 하소서.
일본은 그 국도(國都)로부터 연해(沿海)에 이르기까지 돈[錢]을 포백이나 미곡보다도 훨씬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이 비록 천리를 가더라도 돈꿰미[錢緡]만 차고 식량을 휴대하지 않으며, 길가에 사는 사람들이 행려자(行旅者)들이 기숙할 처소를 설치해 놓고, 만약 손님이 올 것 같으면 서로 앞을 다투어 청하여 영접하고, 손님이 주는 돈에 따라 인마(人馬)의 숙식을 제공하며, 관량(關梁)에 있어서는 큰 강(江)에는 주교(舟橋)를 설치하고, 조그마한 냇물에는 누교(樓橋)를 설치해 놓고는 그 곁에 사는 자가 다리 세(稅)를 관장하고 있는데, 그 다리를 지나가는 손님에게 돈 10문(文)이나 5문을 징수하되, 다리의 대소를 참작하여 세를 징수하여 뒷날의 보수(補修) 자금으로 삼고 있사오며, 토전(土田)이나 주거(舟車)의 세까지도 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하여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노고가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대나무로 큰 밧줄을 만들어 양쪽 언덕에 매어 놓고, 통나무를 깎아서 배를 만들어 대나무 밧줄에 등자[鐙]을 달아 배 위로 내려뜨리고는,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가설하고, 널빤지[板子]를 죽 깔아 다리를 만들어 놓고는, 진리(津吏)로 하여금 건너는 세를 가볍게 징수하게 하여 후일에 교량이 낡아 허물어졌을 때의 보수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강과 임진강은 남북을 통하는 큰 관진(關津)입니다. 비옵건대, 이 예에 따라 다리를 가설하고 다릿세를 거두어서 무너지는 대로 즉시 보수하게 한다면, 다만 돈을 사용하는 법이 광범위해질 뿐만이 아니라 남북의 인마(人馬)가 험로(險路)를 걸어서 피곤해 쓰러지는 폐단도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
일본인의 풍속이 노소없이 목욕하고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집에는 각기 욕실(浴室)을 설치하고, 여염(閭閻)마다 또한 여러 군데 욕탕을 설치하고 있는데, 그 욕실의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어 편리합니다. 탕(湯)을 끓이는 자가 각(角)을 불면,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다투어 돈을 내고 목욕을 합니다. 비옵건대, 제생원(濟生院)·혜민국(惠民局)·왜관 한증(倭館汗蒸)·광통교(廣通橋) 등지와 외방의 의원(醫院) 등, 사람들이 많은 곳에 모두 욕실을 설치하여 돈을 사용하는 법을 돕도록 하소서.
일본 상가(商街)의 제도는 시장 상인들이 각기 처마 아래에다 널빤지로 층루(層樓)를 만들고 물건들을 그 위에 두니, 다만 먼지가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를 보고 살 수 있었으며, 시중(市中)의 음식물들을 귀천(貴賤)의 구별 없이 모두 사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장은 건습(乾濕)할 것 없이 모든 어육(魚肉) 등의 식물들을 모두 진토(塵土) 위에 두고는 혹은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밟기도 하오니, 비옵건대 운종가(雲從街) 좌우의 행랑(行廊)에서부터 동쪽 누문(樓門)에 이르기까지, 종루(鍾樓) 남쪽에서부터 광통교(廣通橋)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첨(補簷)을 달아내고, 그 아래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을 층루를 만들어, 어느 간(間)은 무슨 물건을 둔 곳이라고 죽 편액(扁額)을 달아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소서.
일본에서는 모든 금(金)·은(銀)·동(銅)·철(鐵) 등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 방금(防禁)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 지방에 사는 자로 하여금 대대로 채취하여 이익을 보게 하고, 나라에 바치는 세공(歲貢)은 일정한 수량뿐이고 다른 부역이 없기 때문에, 이를 주관하는 자가 태만하지 아니하여 보물의 생산이 무궁하여, 공사(公私)간에 모두 이익이 된다고 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일본의 예에 의하여 모든 진귀한 물품이 생산되는 곳에는 금법(禁法)을 세우지 말고 평민들에게 그 이익의 독점을 허용하여, 세공(歲貢)을 제정하고 부역을 면제해 주어 길이 세업(世業)을 삼도록 하소서.ㅑ
후삼국시대 때 왕건부터가 경기도 최고의 무역 자본가 아닌가요?? ㅋㅋㅋ
임진란 때 조선과 일본이 다이다이?
명나라는 어디에?
한반도에서 동해는 일본입장에서는 서해
한반도에서 서해는 중국입장에서는 동해
동아시아는 세계최대의수산물생산소비국가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북빙양
남빙양
지구는 자전과공전을 합니다
100세시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생노병사합니다
항상 건강과안전을 챙기세요
일본에대해 뭐가 그리 궁금해
그 짓거리들은
남의나라 침범에 사죄와 변화도 없는 부패한 일이거늘
❤❤❤❤
단기4357년
불기2568년
서기2024년
갑진년
최고가 되세요
지구는 자전과공전을 합니다
100세시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생노병산합니다
항상 건강과안전을 챙기세요
일본 지방분권은 일본 지리가 그렇게 만든거임
정신차리고 두 번 봐야지 ㅋ
일본
인구11위 1억2605만여명
면적61위 3779만7천HA
그럼 오래된 기업이 많은 나라는 도대체 어디가 있죠?😅
일본은 남한과북한 모두 투자교류합니다
남한과북한은 모두 단절
조선시대에는장사를천하게여겨서
식민지의 오래된 기업은 제국주의 시대를 버텨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니, 오래된 기업은 식민통치를 받지 않은 나라에 많은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조선에 제대로된 기업이 있었나요? 제대로된 기업이란게 있을 정도의 체제였으면 식민지배를 안 받을겁니다.
다른 매체에서 이창민교수님이 편하게 준비된 순서와 시각자료를 가지고 진행하는걸 봤는데, 그편이 훨씬 편하고 효율적인 전달이 되었습니다. 시청자로서 매번 사회자의 개입이 불필요하고 억지스럽다 느껴져셔 매루 좋은 컨텐츠 임에도 시청자로서 불편합니다...사회자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삼프로티비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일본 문화자체가 선조(자기집마다 먹고 살았던 직업.가업)때 부터 가업을 벗어나거나.
남의 직업을 함부로 할수도 없고 (이지메 발생근거와도 관계있고)타지역으로 이동해서 다른 일을 할수 없기에 100년 이상이 되는 가업들이 생기게 되고.
그를 위반하면 사무라이가 제재 한 문화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업을 승계하는것이 전통이 되어버린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상업(중소기업)이 발달하게 된것입니다.
즉.정치하는 집안은 대대로 정치 합니다(자민당 각계파를 이끄는 수장급들은 일본 정치집안이고 이사람들이 일본 정치 이끌기에 국민들이 민주화나 불평등. 등등 변하는 정치에 그냥 순응하는 것 이죠.
일본은 일본만의 특이한 공동체의식이 있는데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이가 거의 없는것도
일본이 잘나가던 30년 전이나.
23년24년 현재와도 비슷하고.
대졸과 고졸 등의 학력차이가 있다하더라도 그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본사는데 이런건 있어요.
왜 좋은 대학을 가야하지? 굳이 대기업에 가야하나? 엄청나게 가게를 키워서 부자가 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긴해요
그래서 고졸로 만족하며 살아가거나 첫 커리어를 작은 중소기업에서 몇 십년 근무하거나, 테이블 2-3개 되는 작은 식당을 더 큰 규모로 키우지 않고 몇대째 이어서 운영하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신분상승이나 부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스펙을 쌓거나 인생과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적긴 해요.
근데 이런 사회적요소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잘 돌아가다 보니 우리와 같은 사회 정치적 갈등도 적고 국가적 혼란에 낭비될 수 있는 국력의 소모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보니 과거 자기들보다 근대화를 빨리했던 유럽을 모두 제치고 한 때의 경제대국 일본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부정하긴 힘들 듯 하네요.
그래서 중국도 미중 2강체제가 되는데 있어서 사회적 갈등을 찍어누르는데 온 힘을 쏟은거고 다만 중국은 국가의 권력으로 만든거고 일본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
지식 브런치 채널 내용이네요
다른 유튜버. 내용 갖고. 왔네요. 주제와. 상관없는. 내용
일본 내 분위기가 그런건 맞죠
지금 잘 돌아가는 가업을 두고 궂이 새로운 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
그리고 자본에 의한 신분상승까지도 나중에는 간섭이 심한 것도 맞고요
일본의 상속세율이 세계최고 수준이라는데 요즘에도 경영권이
세습될수있는지 궁금하네요
상속세율이 높긴한데 실효 세율이 13프로밖에 안되네요.사업승계하면 혜택으로 상속세를 많이 깍아주나보네요
@@한-y5l실효세율은 세금을 낸 사람들중에서 평균을 낸거지
실제로 통지되는 세율이 아닙니다
사업계승 공제가 많은걸로 압니다
한국이 단연 최고..
우리나라는 상속세때문에 알짜기업들도 외국에 팔리거나 공중분해됨 ㅋㅋㅋ
그렇지 않답니다. 전 세계의 증여세 상속세에 비해 한국은 낮은 편에 속합니다. 상속으로 인하여 사회적 특권계급이 생기는걸 막고 새로운 세력이 생기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상속세 증여세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키기위한 최소한의 방지장치입니다. 19세기 아담스미스식의 야경국가를 좋아하시나 본데 공부하세요. 관점을 자본의 눈이 아니라 임금근로자의 눈으로 보세요. 재벌도 아니면서 사고가 왜 사장님마인드입니까? ㅎㅎ
일본은 못 이긴다
역시 이프로 혼자 나온 이유가 있구만... 메이지유신을 다룬다니... 다음 시간 댓글이 눈에 선하다. 에효
🎉아무리 진행자지만 메이지유신이 어느시대 인지도 모르고, 임진왜란 때 조선과 일본이 비슷했으니까 전쟁이 일어 낳다는 발언은 너무 무식해 보입니다. 이 정도면 일본 역사나 우리 역사도 일자무식인 수준인데 훌륭한 전문가 모셔놓고 기본적인 공부는 허는게 진행자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대륙의 시대에서 별 볼일 없던 섬나라가
해양의 시대가 되면서 운좋게 선진문물 타의반자의반으로 받으들이면서 ....
암튼 국가나 개인이나 운빨이 최고닷!!ㅋㅋㅋ 강의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한국도 운 좋게 중국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고대문명화가 빨랐죠.
베트남도 마찬가지고요.
또 바로 옆에 있어서 근대화가 많이 지체된 것도 있네요.
그걸 운으로 치기에는 아시아에서 근대화 성공해서 열강이 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일본은 준비되어 있었기에 운도 잡을 수 있었던겁니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거란다 느그 조선처럼 준비도 안돼있으면 기회인지도 모르지 ㅋㅋㅋㅋ
표 b
일본에 대해서 분석할때 제발 감성말고 냉정하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해보자
그넘의 반일정서는 이제 지긋지긋,,,
그런 말은 20년전에도 있었고 30년 전에도 있었음.
우리를 핍박하고 학살한 역사를 인지하면 그런 말 못하죠.
@@이윤성-o7b일본이 핍박하고 학살한 적이 없는데요..
@@이윤성-o7b국민 모두가 잘못배운 역사죠 진짜 우리나라 국민들은 무슨 자격으로 짱깨들 동북공정에 뭐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1빠
결국은 다 단군할배 탓이다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일본은 일본의 길이 있고, 한국은 한국의 길이 있는 것이죠. 무작정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 동경과 열광에 빠져, 팬덤적 시각으로 조선사를 비난하는 것은 위험하고 편협한 사고일 뿐이죠.
조선의 길은 북한의 길이죠 ㅋㅋㅋ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사유재산의 보장 시장경제의 활성화등 인류보편적으로 가야할 방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