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도시 개경, KOREA를 만들다 (다시보는 북한문화유산)[역사실험] KBS 2001.10.2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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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8 มิ.ย. 2021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126

  • @user-yx2xg8tt8n
    @user-yx2xg8tt8n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고려는 남북보다 동서가 긴 나라이고
    조선은 수도가 1개지만 고려는 3개
    최영장군의 고우전투
    선춘령 해주 명주
    찾으면 됩니다 거란과 싸우고 몽고와 싸운 황제국입니다 그 기록을 명과 조선이 지웠다해도 성곽과 해저 다 없애진 못합니다

  • @user-kj1ch4br8t
    @user-kj1ch4br8t 3 ปีที่แล้ว +28

    남북한이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기록이 있는 것도 한때 남북간 왕래가 일부 있어서 문화유산, 유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비롯 북한이지만 평양의 안학궁과 개성의 만월대 부지가 보존되어 있는 것도 참으로 다행입니다. 서울에는 경희궁과 경운궁(현 덕수궁) 부지조차 축소되었는데요. 좀 아쉬운 것은 평양성의 유적, 궁궐터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 조선, 일제에 의한 철저하게 흔적이 사라졌겠지만 북한 평양의 중심부로서 북한의 평양 개발시 몇몇 을밀대외 고고학적인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성의 성곽이 3중 구조인 줄 알았는데 4중 구조였네요. 황성, 내성, 반월성, 나성으로 구성되어 있었군요. 그리고 기와가 청자였다니? 고려가 조선보다 건축기술이 더 화려하고 더 거대한 궁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너무 남아 있는 유적만 보고 궁궐의 규모를 축소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성의 만월대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고요. 만월대라는 것은 회전당의 지금 보이는 계단의 명칭입니다. 회전당은 경북궁의 근정전이나 다름없고요. 마치 궁궐이 회전당이 다 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고려 궁궐의 규모를 소규모인냥 착각할 수 있어요. 극히 궁궐의 일부분입니다. 경북궁의 몇배이상 입니다. 그리고 개성의 궁궐을 만월대라는 명칭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황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궁궐성곽까지 다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 안애 만월대, 회전당, 수창궁등 수많은 전각들이 있는 것입니다. 또 고려시대에는 황성외 별도의 궁궐도 여러 곳에 존재했다는 것이 역사에 나와 있구요.

  • @lintonsha
    @lintonsha 3 ปีที่แล้ว +27

    아름답습니다. 역사적 흔적.

  • @user-hq6lk3lk1j
    @user-hq6lk3lk1j 2 ปีที่แล้ว +11

    중요한 역사적 다큐영상입니다~
    남북이 서로 자유롭게 오가며 협력하고 교류하는 시간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고려의 궁궐도 남북이 협력하여 복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sklee7071
    @sklee7071 3 ปีที่แล้ว +21

    고려는 귀족들이 지방을 다스렸다는 것이고 그래서 조선시대보다는 지방자치로 호족이 각지역을 다스렸다고 보면 되고 지방이 따로 다스릴 경우 나름대로 경쟁이 되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할수 있음. 개경이 국제적인 도시가 될수 있었던 것도 고려내의 호족들의 경쟁과 각 호족의 외부세계와의 교류로 개성에 세계 각국의 상인들이 모일 수 있어서 상업이 발달. 그리고 불교가 상업을 장려하는 종교임. 조선시대는 호족을 혁파하고 중앙집권제로 하면서 제후국으로 될수 밖에 없었음. 그리고 종친은 벼슬을 못하게 함으로써 황제국을 표명할 수 없게 됨. 암행어사도 만들고 농업위주로 바뀌면서 나라의 발전이 멈추고 도리어 뒤로 감. 조선시대 중앙집권제가 되면서 사형 판결을 받는 자들은 국왕이 직접 심사를 하는 3심제도가 있었던 것은 호족에의해 법도 없이 다스리던 시대보다 정치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상업은 도리어 통일신라, 고려때보다 후퇴한 것으로 보임. 경주가 숯을 사용하고 기와집으로 가득찼다고 하는 기록을 볼때 정치, 또는 정신적인 발전과 상업의 발전으로 물산이 풍부한 시대를 비교할 때 신라,고려와 조선은 완전히 다른 나라임. 지금도 문제가 되는 거죠. 자본주의 물질이 넘쳐나는 나라와 가난하면서 평등한 이념만 추구하는 나라. 근데 재산이 늘어나면 전체적인 삶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 @otomaszseh1857
      @otomaszseh1857 2 ปีที่แล้ว +4

      국뽕들은 조선이 중앙집권제 세계적으로 빨리 이뤄낸 게 업적이라고 당당하던데 정치학적으로도 국왕을 견제하는 귀족들이 많은 나라들이 결국 부도 창출되었고 나라가 강해졌다고 함.

    • @sklee7071
      @sklee7071 2 ปีที่แล้ว

      @@otomaszseh1857 조선시대에 정치적인 보복 살인은 많았지만 사적인 살인은 고려나 신라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증앙집권제의 장점중 하나죠 암행어사도 있고 하니. 보통은 큰 정부나 국가에 고통을 받는 경우보다 작은 공동체에서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현대 국가는 강력한 법으로 개인 가족의 일에도 관여하는 데 대부분의 봉건제 국가에선 가족 또는 부족내부의 일에는 관여를 최소한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성생활까지 관여하는 상태까지 되었죠. 중앙집권제가 되면 인간 개인에 대해 작은 공동체 내에서의 폭력을 많이 막아주기는 합니다. 국가의 폭력과 작은 공동체내에서의 폭력중 어느 것이 견디기 어렵냐 할 때 많은 경우 아무데도 말할 수 없는 작은 공동체내에서의 폭력이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 @vivivi3865
      @vivivi3865 2 ปีที่แล้ว +1

      @@sklee7071 글쎄요. 국가도 국가 나름이라 케바케죠.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3 ปีที่แล้ว +9

    이거 90년대에 방영했던 역사스페셜 북한특집 나레이션만 바뀐 거네요

  • @Luminary03
    @Luminary03 2 ปีที่แล้ว +5

    와 청자지붕 건물 생각만 해도 번쩍번쩍 하네요 얼릉 통일해서 복원하죠!

  • @69MadnezZ
    @69MadnezZ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18:46 와.. 조선과는 격이 다른 아름다움
    기와 끝도 위로 예쁘게 올라오고 2층 벽
    부분도 일본 일부 건축물들처럼 멋지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서 감동이네요.
    3d 복원도는 조선식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 또 개성 제로인 전각과 기와 끝...

    • @user-lc6uc1qm7f
      @user-lc6uc1qm7f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남북이 통일되면 황해도 해주가 코리아의 수도가 가장 적당하다는 학자들의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 @user-ex4bj6jn4u
    @user-ex4bj6jn4u 2 ปีที่แล้ว +6

    복원되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죽기 전에 복원된 모습 꼭 보고싶네요!

  • @wys2493
    @wys2493 2 ปีที่แล้ว +24

    고려청자를 기와로 썼다니 얼마나 화려하고 부유한 시대였을까요.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2 ปีที่แล้ว

      @테스트 ㄴㄴ 상공업을 중시하긴 했지만 민간차원의 무역은 통제를 많이함
      국제적인 아라비아 대항해시대를 떠올리면 안됨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2 ปีที่แล้ว

      @테스트 전쟁이 많긴 했지만
      덕종 문종 숙종 인종 까진 평화로운 국가였음
      그런데 그때 당시에도 국가적 차원에서 상공업을 권장 했다 보기도 힘듬 물류유통망은
      조세수취를 위한 것 이였고
      조선의 인삼처럼 국가 주도 장려사업이 딱히 있던 국가도 아니였음
      다만 검소와 근검을 국가적인 가치로 내세운 조선과 달리 고려 관료제는 사치가 일상 이였고
      개성과 서경에는 왕실 관영 상점의 폭리 와 욕심 때문에
      물가가 폭등 한 적도 많았음
      즉 귀족과 상류층을 위해 무역을 한 것이지
      고려 자체가 경쟁력 있다고 보기 힘듬
      그래도 품질 좋은 종이와 칠기는 많이 만들기는 함 하지만 이것도 지배계층을 위한 것이였음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2 ปีที่แล้ว

      @테스트 그렇게라도 시도 한 물류 정책을 이어 받은게 조선이고 조선이 조운 유통망을 더욱 확충 한고 체계화 했으면 담당 관청을 만든건 왜 모르시는지….
      사실상 국가의 헌법적 성격인 지향하는 가치와 건국이념은 다르지만 신라와 북위 당나라 제도와 비슷한게 고려이고 그 고려의 지배체계를 비슷하게 계승한게 조선인데….
      조선 전기에 상업을 천시 한 것은 맞지만
      고려와 마찬가지로 공무역 형식으로 의주 부산 진해 울산에서 왜와 무역을 이미 세종때 부터 시작했고 국가 차원에서 근검 검소를 주장했지만
      이미 15c후반 부터 전라도 평야 지방에서
      지방 장시가 열리기도 했음 시간이 흐르며
      조선후기에 주조차익과 공무역을 통해
      초기 자본주의의 성격을 가진게 조선 후기였음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2 ปีที่แล้ว

      @테스트 뭐가 아닌지 제대로 애기를 해봐요
      내가 위에 쓴거 뇌피셜 아니고 오피셜이에요
      임진왜란때 그리고 고려중기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에는 중들이 입는 즉 승복을 많이 입는다 라도 되어있고 명나라 장군들도 그런 언급을 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복식이 통일신라의 복식 문화를 이어 받은게 한복이여서 그런 것임
      생각을 해봐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조선이 망하고 비록 대한민국이 세웠지만
      조선때부터 한민족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강조하고 있음 비록 대륙법이지만 이것이 한국 법의 특징임
      역사를 볼때 제발 편향적으로 고려가 더 괜춘한 국가지…. 이런 병신같은 시각으로는 어떤 것도 배울 수가 없음 뭐든 인과 관계가 있고 이걸
      계속 생각하는게 역사임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2 ปีที่แล้ว

      @테스트 아니 님 왜 논지 이해를 못함??
      내가 고려를 깐게 아니고 고려가 대항해시대
      만큼의 국가가 아니였다고…..
      왜 확대해석을 하냐고 도대체가
      누가 고려가 무역없었다고 했냐고ㅋㅋㅋㅋㅋㅋ
      진짜 웃긴 사람이네
      위키백과 고려 그때 말 맞아
      그런데 고려사에 아라비아 상인 두번 등장한데
      그것도 송나라 상인이 데리고 와서 온거고….
      무역보다는 아라비아 대식국 상인의 물품은
      중국과의 중계무역으로 들어온데 대부분이였고
      내가 한말 들의 요지가 뭐냐면 초기 상업혁명
      초기 자본주의 처럼 민간 차원에서의 무역은
      거의 없었다고 있었다 쳐도 눈치보면서 암암리에 했고 전부 공무역 체제였는데 물품도 귀족 일부 계층을 위해서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물품을 무역한게 90%이상 이라고
      생각을 해봐요 좀 아라비아 애들이 고려에 뭐 얻어 먹을 것 있다고 여기 까지 올까??
      중국에서 모두 구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시세 차익을 노리고 올 수 있긴 하겠지 근데 민간차원의 자본이 축적 된게 없이
      그저 귀족계층 왕실 국가들을 위한 물품들인데
      시세 차익이 가능할까?? 그리고 물류비용이
      어마 무시한데 중국과 상대가 가능할까??
      항해술이 지금처럼 발전 한 것도 아니고 선박의 내구성 전문기술 한반도 라는 제한된 정보력
      이건 아니지…. 단순히 생각을 해봐도
      그렇다고 한반도에 일본처럼 광석이 풍부한가?? 삼국시대부터 변변한 금광 하나 없었던 한반도임

  • @user-vd4ct2hh3t
    @user-vd4ct2hh3t ปีที่แล้ว +2

    역사를모르면 나라가망한다
    개성소식 감사합니다 ~^^

  • @user-sp6oq8nw8w
    @user-sp6oq8nw8w 3 ปีที่แล้ว +15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

    • @flashkims
      @flashkims 2 ปีที่แล้ว +2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보니 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

    • @jambread848
      @jambread848 2 ปีที่แล้ว

      @테스트 그래서 세운게 헬조선.... 그리고 자기도 이방원놈한테 썰리고.

    • @ftghyfpjjh
      @ftghyfpjjh 2 ปีที่แล้ว

      어줍짢은 애들 역사 논쟁 하는 거 보면 같잖지도 않음.
      왕조라는게 정도전이나 이방원 혼자서 세우는 거임? 시대의 힘이 걔들을 그렇게 내몬거다.
      아무리 정몽주가 이성계 일파 숙청하고 개혁한다고 해도 성공했다는 보장도 없다.

  • @user-nv7qc2gk8o
    @user-nv7qc2gk8o 3 ปีที่แล้ว +4

    아름다워요

  • @user-qh3hv3fv9w
    @user-qh3hv3fv9w 2 ปีที่แล้ว +7

    공영방송에 들어가는 세금은 90년대에 끝났나봐... 요즘은 이런거 없는걸보니

  • @user-cw6vh7bi4k
    @user-cw6vh7bi4k 2 ปีที่แล้ว +13

    개성도 서울이나 경주처럼 땅만 파면 유물들이 우수수 나올것 같다.

  • @user-zg9lm4mw7t
    @user-zg9lm4mw7t 2 ปีที่แล้ว +1

    재밌네요 고려와 백제 고구려 너무 궁금한 나라들인데 ㅜㅜ 밝혀진게 너무 없어서....

    • @user-yx2xg8tt8n
      @user-yx2xg8tt8n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책보고 영상추천합니다

  • @user-hp5sx5yi5f
    @user-hp5sx5yi5f 3 ปีที่แล้ว +5

    서울에서 80KM가 아니라 40KM정도 아닌가요? 80KM는 해주시 정도 되겠는데요..

  • @ChickenDelivering
    @ChickenDelivering 3 ปีที่แล้ว +3

    이거 2018년에 재방송된건가

  • @Hyuchan1002
    @Hyuchan1002 2 ปีที่แล้ว +8

    한옥마을 잘 가꾸면 관광지로 각광 받을 듯

  • @user-gv2rt8mh8c
    @user-gv2rt8mh8c 3 ปีที่แล้ว +7

    통일되면 저거 발굴조사복원하는데 엄청난 재원과 인원이 소모될듯. 잘보존하고 역사적사료를 발굴해야된다.

    • @flashkims
      @flashkims 2 ปีที่แล้ว +1

      개발업자들이 가만 놔둘리 없다고 봅니다.

  • @jhfoever
    @jhfoever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7:17 어디서 많이 보던 분의 22년 전 모습이네요. 반갑습니다.

  • @ICEMAN-vk1eb
    @ICEMAN-vk1eb 2 ปีที่แล้ว +3

    코앞인데도 가지못하는 땅이니 아쉽네요.~

  • @user-zb1lk5kr4k
    @user-zb1lk5kr4k 3 ปีที่แล้ว +8

    가보구싶다..

  • @shinwien4460
    @shinwien4460 2 ปีที่แล้ว +1

    코레아, 코리아는 도이치나라, 독일 안에서 게르만 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대표하는데 이름, 게르만은 고려사람을 의미하겠죠?

  • @YS-mn9xw
    @YS-mn9xw 2 ปีที่แล้ว +5

    개성은 서울에서 48km떨어져 있습니다. 수원이나 동탄 쯤 거리 입니다.

    • @user-rl3qr9fv3s
      @user-rl3qr9fv3s ปีที่แล้ว

      통일되고 개성에 경의선 도시철도만 연결되면 서울에서 출퇴근 가능함.

  • @user-jx7bq7bx8g
    @user-jx7bq7bx8g ปีที่แล้ว +1

    북한은 평양빼곤 다 시골이라 그런지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 @flashkims
    @flashkims 2 ปีที่แล้ว +2

    훗날 통일되면 개발업자들이 만월대 공터에 얼마나 군침을 흘릴까. 남아나지 않겠지

  • @simje429
    @simje429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태조왕건은 재궁을 3번 옮겼습니다. 총4번의 변화가 있었다는 말인데 원본 고려사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세요.

  • @user-vr3lo4kx7h
    @user-vr3lo4kx7h ปีที่แล้ว +1

    북한 문화재 과연 제대로 보존이나 할까 의문 우연히 발굴된 유물이라도 나오면 중국으로 아마 팔아 먹기 바쁠듯 거대한 유물이 우연히 발굴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 @fogtfoomf5763
    @fogtfoomf5763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신당서 구당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쓰인 고려의 국경 묘사를 보면 참으로 의문스럽도다.

  • @user-yx2xg8tt8n
    @user-yx2xg8tt8n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사서도 교차검증없이 우기지 마세요 추정하지 마세요
    송나라 사신단이 기록한 고려도경을 기록하였고 거란을 피해서 우회하여 서경에 들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행선지의 지명 고려서경의 문들 있습니다 책보고영상을 보세요

  • @ysa4473
    @ysa4473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방금 구글번역기에 개성을 영문으로 넣으니 인도네시아어로 나오네

  • @user-bk1cy2rr1l
    @user-bk1cy2rr1l 3 ปีที่แล้ว +27

    개성시민 강원시민ㅋㅋㅋ 한순간에 인생이 ㅋㅋㅋ 만약에 개성이 그대로 한국
    땅으로 존재했다면

    • @user-ex7yt6qr4f
      @user-ex7yt6qr4f 3 ปีที่แล้ว +9

      건물짓는다고 다 헐었지 뭐

    • @flashkims
      @flashkims 2 ปีที่แล้ว

      @@user-ex7yt6qr4f 진짜

    • @user-uc4px3vu6z
      @user-uc4px3vu6z 2 ปีที่แล้ว

      @테스트 10세기에 인구수 30만이면 세계 최대급 도시인데... 독일내 대표적 중대형급 도시였던 마그데부르크 인구가 17세기에 3만이였고 브란덴부르크 변경백-프로이센공국 동군연합의 수도였던 베를린이 1만명이였음

    • @user-uc4px3vu6z
      @user-uc4px3vu6z 2 ปีที่แล้ว

      @테스트 중세시대 세계 최대 계획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과 청동기시대때부터 중국의 주요도시였던 장안이 백만이 되니마니함. 로마 최전성기때 수백만된건 맞지만 중세시대 접어들면서 급락했고. 그래도 30만 언저리였음. 개경이 30만이였다는건 아무리 들어도 개소리인듯

    • @user-uc4px3vu6z
      @user-uc4px3vu6z 2 ปีที่แล้ว

      @테스트 지금은 천만은 무리여도 백만은 가능하다는 주장에동의합니다

  • @TV-hs2yz
    @TV-hs2yz 2 ปีที่แล้ว +9

    이렇게 고려.조선등 용인민속촌처럼 우리문화를 더 특색있게 다양하게 만들어 알리면 좋을텐데...왜 강원도에 중국차이나타운을 짓고 지랄인지...ㅜㅜ

  • @user-kl9jl3gt2q
    @user-kl9jl3gt2q 3 ปีที่แล้ว +8

    개성, 개경. 이름은 비슷한데 개성이 고려의 수도 개경일까.
    대륙에 존재하다가 홍건적, 여진족에 밀려 중국대륙에서 조선땅으로 들어왔다가 이곳 출신인 이성계에서 왕위를 찬탈당하고 망했을 수도 있다

  • @user-oo8is5yq7e
    @user-oo8is5yq7e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북한건물이 튼튼하긴 할것같애

  • @admiralyisoonshin4995
    @admiralyisoonshin4995 3 ปีที่แล้ว +7

    고려! 황제의 나라, 대고구려의 후예. 삼별초, 대몽 항쟁 39년.

  • @faintcorona1726
    @faintcorona1726 3 ปีที่แล้ว +6

    고려사도 조선왕조가 없애버리고 조선때 다시 만든거임

    • @faintcorona1726
      @faintcorona1726 2 ปีที่แล้ว +1

      @테스트 한국판 분서갱유
      조선은 개국 직후 을 없애고, 를 편찬했다가 다시 고쳐서 종래의 자주적인 내용을 제후국에 맞도록 편찬했다. 특히 충렬왕 이후 사적을 완전히 고쳤다. 심지어 속에 등장하는 우왕,창왕을 신우왕,신창왕이라 하여 신돈의 아들로 만들어 놓고, 이성계를 我太祖라고 기술했다. 그리고 등 몇몇 사서만 남기고, 전래해 오던 역사서를 수거해 편찬에 활용한 후 폐기했다. 1457년 세조는 역사서를 편찬한다는 명목으로 古記類를 수거하면서, 역사서는 개인이나 사찰에서 소장하지 말도록 하고, 자진해서 바치는 자는 서책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8도 관찰사에 유시하기를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의 삼성밀기, 안함로,원동중의 삼성기, 도중기, 지리성모, 하사량훈, 문태,왕거인,설업 등이 쓴 수찬기소, 동천록, 마슬록, 통천록, 호중록, 지화록, 도선한도참기 등의 문서는 마땅히 私處에 간직해서는 안 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라. 자원하는 자는 서책을 회사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가 및 寺社에 널리 효유하라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세조3년. 고서 이름을 보면, 세조 때까지 단군에 관한 역사서는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예종은 고서를 바친 자나 숨긴 것을 고발한 자에게 품계를 2등급 올려 주거나 큰 상을 주겠다면서, 고서를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엄명을 내려 또 고서를 수거했다. 예종은 세조보다 더 심한 역사서 수거령을 내려 조선판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의 天詞와 삼성밀기, 도중기, 지리성모, 하사량훈, 문태,왕거인,설업의 기록 1백여 권과 호중록,자화록,명경수 및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해 승정원에 바치고, 外方에서는 가까운 도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 받기를 원하는 자 및 公私賤口에게는 면포 50필을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하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 그것을 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 조선왕조실록 예종1년(1469). 1392년 7월 17일 등극한 이성계는 이듬해 정월 초하루 圓丘壇에서 제사를 지냈다.
      과거 우리 나라에서는 단군 때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부여,삼한,예,맥,고구려,백제,신라 등의 나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하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明나라로부터 국호를 조선으로 낙점받은 후 국가의 祀典을 정비해가던 태조2년 이후 '천자가 아니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성리학자 중심의 중신들에 의해 마침내 圓丘壇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라 제후국인 조선에서 천자의 제천의례인 圓丘祭를 거행할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魯나라 경대부 계손씨가 태산에 산신제를 올렸다. 공자가 계손씨의 가신으로 있던 제자 염유에게 꾸짖어 말했다. "네가 말릴 수 없었느냐?" 염유가 대답했다. "말릴 수 없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오호 슬프다... 제후만이 지낼 수 있는 사직제사를 대부가 참람하게 올리는데 태산신령이 어찌 흠향하겠느냐?" 조선 초 성리학자들은 공자가 강조한 하늘제사를 제후국 조선 태조에게 들이밀어 마침내 국가행사로 천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 @faintcorona1726
      @faintcorona1726 2 ปีที่แล้ว

      @테스트 뭔소리여? 천제한테 제사지내는건 고려때도 국가행사로 거대하게 계속하고 있었는데?? 혹시 중공좆족??

    • @faintcorona1726
      @faintcorona1726 2 ปีที่แล้ว

      @테스트 하... 천제가 곧 단군에게도 같이 제사를 올리는것인디?? 하늘에 제사 올릴때 단군이 왜 빠짐??... 역사를 좀 제대로 알든가

    • @user-sz9nc8zd9l
      @user-sz9nc8zd9l 2 ปีที่แล้ว

      @테스트 페인트 코로나 얘 저번에 역사학과도 아니면서 역사학과라고 구라치다가 들통난적도 있음, 신경끄셈. 걍 댓글마다 어그로끄는 틀딱임.

  • @user-xi4fu4ts8y
    @user-xi4fu4ts8y 2 ปีที่แล้ว +1

    고려궁궐 을 몇개지어도 되겠네요

  • @jambread848
    @jambread848 2 ปีที่แล้ว +4

    부칸놈들이 말하는 장면에서는 자막을 넣어주시면 좋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네요.

    • @user-sh2io7bc6z
      @user-sh2io7bc6z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그러니까 너같은 작자들은 듣지말길 ᆢ

  • @user-yx2xg8tt8n
    @user-yx2xg8tt8n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누가 개성을 개경이라고 사기를 칠까요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입니다
    사서에는 고려말에 심양왕이라고 했는데 그럼 심양이 고려말 수도가 되야되고 서경지도가 북경이니 북경은 고구려 평양과 고려 서경이 되는거죠

  • @ykj1630
    @ykj1630 2 ปีที่แล้ว +1

    한국전쟁 전에는 남한 땅이였지 라고 쓰니 나레이션으로 나오네 ㅋ

  • @chelivee
    @chelivee 3 ปีที่แล้ว

    고구려 천자국 발해 황제국 = 고려 그리고 왕건의 고려 = 다 같은 계통이 고구려 발해 다시 고려로 이어지는 황제국 즉 천자국 ~

  • @user-po6fj4qz5q
    @user-po6fj4qz5q ปีที่แล้ว +1

    고려시대 왕능 대한민국 너무 무관심 고려문화재도 잘 보존 해야 됩니다

  • @user-pj1kk6of4z
    @user-pj1kk6of4z 2 ปีที่แล้ว +1

    Corea가 맞습니다
    정정해 주세요

  • @shinwien4460
    @shinwien4460 2 ปีที่แล้ว +2

    왕건의 묘가 정착된 1276년이면 징기스칸 몽고족들이 세계를 피로 물들이던 시기인데 고려가 몽고족아닌가요?

  • @user-tk4ld4vw6d
    @user-tk4ld4vw6d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고려수도가 개경이라고? 수도라면 고려왕건포함역대 왕들의 묘소와 왕궁이 있을건데 어디에 몇 개가 있나? 역사조작세뇌화 중단하고 고려제국의 실체를 밝혀 동북공정에 맞서라.그것이 매국하지 않는 최소한의 도리다

  • @jhfoever
    @jhfoever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27:17

  • @yabal3992
    @yabal3992 18 วันที่ผ่านมา

    저런게 북한에 있다니 ㅈㄴ 슬프다 박물관도 ㅈ같이 만들어놨네ㅋㅋ

  • @user-rc2uv2pc5r
    @user-rc2uv2pc5r 3 ปีที่แล้ว +2

    북한이라 믿지 못하겠다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27 วันที่ผ่านมา

    개경에 쌓은 성이 개성인데 고려수도 개경 그 성이 개성.. 개경 개성도 구분 못하는 코메디가 따로 없다

  • @user-kx5bc1ge1x
    @user-kx5bc1ge1x 2 ปีที่แล้ว +1

    6:20 개성이 방어에 용이한 도시라고요? 전쟁만 터졌다 하면 일단 수도부터 버리고 시작한 게 고려인데?

    • @user-or3zc1fh9m
      @user-or3zc1fh9m 2 ปีที่แล้ว +1

      @테스트 고려 왕들이 항상 목포로 피난 갔다는 내용의 출처가 어떻게 되죠?

    • @user-or3zc1fh9m
      @user-or3zc1fh9m 2 ปีที่แล้ว +2

      @테스트 고려왕이 외침으로 몽진을 간 사례가 몇 번 있었던 건 사실이나, 거란 침입 때 현종이 나주까지 갔다는 건 들어봤어도 목포까지 갔다는 왕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 그 정확한 출처를 여쭤본 겁니다.

    • @user-rx3ws7ep8k
      @user-rx3ws7ep8k 2 ปีที่แล้ว +1

      목포와 나주는 엄연히 다른지역인데
      통째로 묶을려고 하면 옆동네 무안이나 영암도 기분 나쁘지요.
      나주나 목포지역이 왕건에게는 씻을 수 없는 회한의 지역입니다.왜냐하면
      견헌과 왕건이 대구 팔공산전투에서 대패하고 국가존망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쪽 영산강 유역의 옛 왕건이 점령한 지역민들이 왕건을 배신하여 견헌에게로
      들어갑니다.그래서 훈요십조가 만들어지고
      차현이남지역민들을 重用하지말라고 한것이고요.

    • @user-jx7bq7bx8g
      @user-jx7bq7bx8g ปีที่แล้ว

      조선도 전쟁났을때 왕이 피했음.

  • @mapx2100
    @mapx2100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조선이 여러모로 예맥족 역사에서 많이 후퇴한 모습으로 출발하긴 했네요.
    고려의 모습들을 보니 너무 아쉽습니다.

  • @user-fg9hq8of9w
    @user-fg9hq8of9w 3 ปีที่แล้ว +12

    저런 역사적인 땅이 하필 빨간놈들한테....

    • @user-sh2io7bc6z
      @user-sh2io7bc6z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군침 흘리지 말길 너희들 바램데로 이제 남의나라이고 중국이 곧 접수한다 ᆢ

  • @hanhan4980
    @hanhan4980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겅화도가 고려다

  • @kkh1395
    @kkh1395 3 ปีที่แล้ว +6

    세계의 상인들이 드나들던 개경은 엄청난 국제도시엿다.그에반해 패쇄 한양은 고리타분한 쓰레기 도시엿다.

  • @user-le5hl5fe2x
    @user-le5hl5fe2x 2 ปีที่แล้ว +3

    저런조그만 나라가 황제국이 될수있을까 고려 지도를 보고 가능한가 의문점이 든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3 ปีที่แล้ว +2

    왕인, 왕건, 둘다 신나라 왕망의 후손들이다.
    김일제 후손들이 가야와 신라를 접수했던것 처럼.

  • @user-sh2io7bc6z
    @user-sh2io7bc6z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미 북한은 다른 나라네요 눈독들이지 말길 ᆢ 지금까지 남한의 보수들의 정책이고 바라는 바였네요

  • @user-jy9ov7nb5b
    @user-jy9ov7nb5b 3 ปีที่แล้ว +1

    🐕ㅇㅅㄴ🖕

  • @kakalotto
    @kakalotto 3 ปีที่แล้ว +4

    북괴

    • @yokim3449
      @yokim3449 2 ปีที่แล้ว

      넌 왜구

  • @user-im1xw5kq8u
    @user-im1xw5kq8u ปีที่แล้ว +1

    한국인이못간다고.왕건릉을저따위로소개하네.왕건릉못가본거같네.저렇게안생겼다.적당히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