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소스 출처 영화 영상 패트리어트 - 늪속의 여우 (2000), The Patriot 베리린든 (1975), BarryLyndon 군주의 하인 : 폴타바 전투 (2007), Slaget Vid Poltava 워털루 (1970), Waterloo 기타 영상 머스킷총 재장전 영상 Civil War - Musket Loading Drill "In-Nine-Times" HD (th-cam.com/video/VCAYXQ1Z6q4/w-d-xo.html) 고증오류 2:27 영상에 나오는 사진은 '플린트락'머스킷이 아니고 '퍼커션 캡'방식의 머스킷입니다 ㅠㅠ 정신없이 만들다보니 실수가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영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꾸벅) 나중에 더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ㅎ_ㅎ
창칼로 싸우던 시절 대열 앞줄만 서로 붙게 되므로 전투 초기엔 사상자가 많이 안나옴. 그러다 한쪽이 무너지며 밸런스가 깨지고 공포가 전염되며 도망치는 병사가 속출하면 그 진은 붕괴되고 이를 기마병들이 추격하면 대량 학살이 일어남. 그래서 옛부터 보병의 생명은 진에 있고 물러나는 병사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림. 공포는 전염된다. 이게 젤 무서운 것.
저때 당시의 머스켓을 총이 아니라 사정거리가 긴 창이라고 생각하면 저렇게 싸우는지 이해가 되실겁니다. 머스켓은 숙련된 사수가 아니면 직접적인 사격으로 맞추기 어려운 편이였죠. 거기다 시끄럽고 화약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전장환경이 더해져 맞추기란 더더욱 힘들었구요. 그러다가 남북전쟁때가 되면 미니에탄+ 강선소총이라는 조합으로 무기가 바뀌었는데도 저런 전열보병 방식으로 싸우다 두 진영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전투 끝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면 반대편은 반드시 확인사살과 자군 부상병 회수를 병행했고 몸 멀쩡히 누워있다면 태형`이 반기는 상황. 뭐 다쳐서 이동불가 상황은 참작하긴 한 모양인데 너무 많이 다치면 치료당하기도하고(아군 부상병이 살릴수 없다 판단되면 그대로 방치하거나 도구로 머리뼈를 뚫는 의과적 방법을 선택), 2차대전 때 패튼이 정신병으로 몸 멀쩡히 의료막사에만 머물던 병사를 구타해서 욕먹는 시절이 아닌 패튼 같은 행위가 남자이자 군인으로서 당연하던 시대. 다쳐서 이동불가 상황이 머리를 다쳐서 기절하고 아군시체 밑에 깔려서 살아나는 경우는 자주 묘사되고 실제로 기록도 남던만큼 부상으로 인한 낙오는 인정되나 깨면 스스로 원대복귀 안하면 숨어들어 강도가 되는 수밖에 어차피 범법자로 수배됨.
다 이유가 있죠 어짜피 화약무기 앞에서는 모든 방어력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오히려 공격쪽에 더 노력을 기울인거죠 더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순간까지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군율과 제식이 요구되었죠 한두발을 쏜 뒤에는 근접전까지 벌였기 때문에 그리고 동양의 군대와의 전투를 보면 어마어마한 교환비로 승리를 했었던거 보면 이시절이 냉병기 시절의 군대보다 근접 원거리 모두 더 대단한 군대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참고로 저 당시 짙은 원색의 눈에 띄는 옷을 입은 이유는 흑색화약을 쓰는 머스캣 소총 시대 전투가 벌어지면 연기가 자욱해 지고, 더군다나 후방에서 포사격 까지 더해지면 전장은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는데 그 속에서 피아식별을 하기 위해 저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서용관-e5p 남자는 도망가면 안됩니다. ㅋㅋㅋ 요즘남자들은 자주 도망가죠 ㅋㅋㅋ 아버지 역할이 부재된 사회의 비극이죠 왜 러시아 남자들이 상마초들이죠 러시아 남자들처럼 마초적인게 정상적인 남자입니다. 일본남자들도 생긴거는 한국남자들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성격은 ㅈㄴ마초적임 근데 요즘 한국남성들은 나약하고 찌질하죠 우리는 어머니에 의해서 자라난 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
@@서용관-e5p 고대남성들 중세남성들을 우습게보면 안됩니다. 그들이 컴퓨터나 핸드폰을 다룰줄 몰라도 고대인류역사상 어마어마하게 강인하고 위대한 남성들입니다. 제가 볼때는 현대남성들이야말로 여자들한테 늘 처발리고 다니고 차이고 일자리를 많이 빼앗기는것을 보면 고대인류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나약한 남성들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아무리 여성인권이 높아지고 양성평등해져도 남자는 근본적으로 남자다워야합니다. 요즘 남자들이 여자한테 잘 차이는 이유가 있어요. 남성성이 약해서 그래 하지만 페미니즘이 남성성을 유해한것으로 만들어버렸죠 남성성은 유해한게 아닙니다. 한국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순신 세종대왕도 남성성이 강한 사람이었음 상남자가 허세부리는 남자로 우리가 잘못 세뇌당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소룡이 허세남인가요? 이소룡이 무술고수가 되기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이소룡은 남성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역사속의 영웅들 명장들도 다 남성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토머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뉴턴 슈바이처 이사람들도 남성성이 강한 남자들이었음 페미니즘과 미디어는 남성성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음 군인들도 남성성이 강하니깐 싸우는 겁니다.
그래도 전열보병 시대에도 사냥꾼 출신들만 따로 모아서 만든 엄폐 및 산개 하는 척후 부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틀리지만, 활강식 머스킷이 아니라 강선이 있는 머스킷으로 무장해서 150~600 정도 되는 사정거리로 적의 전열(활강식 머스킷의 유효 사정거리는 70~90)을 괴롭혔다고 하네요. 물론 이 부대는 어디까지나 지원을 하는 역활을 했는데.. 주력이 되지 못한 이유가 사냥꾼등의 화기에 능통한 총잡이들을 구하기 힘들거니와 강선이 있는 머스킷은 장전하는데 3~10분이라는 기존의 활강 머스킷(1분에 3발)보다 느린속도, 그리고 산개로 인해서 기병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으로 널리 쓰이지 못했다고 하네요..
참고로 8:43 에 나오는 이 친구들은 나폴레옹 시기 당시 영국의 제95 라이플 연대 그린자켓인데 이들은 베이커 라이플이라는 강선 판 라이플을 사용해서 200야드(약 182m)에서 저격을 했던 당시 저격병들이었고 이들의 전술은 상대방 전열보병을 전장에 맞닥들이기 전 먼저 앞에 나가서 상대방 진형의 주요 지휘관 및 장교들을 노려서 저격을 했던 한 병과였습니다. 이들은 넓게 흝어져 산개대형으로 최대한 상대방 진형에 혼란을 주기 위한 저격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Skirmisher(스커머쉬) 상대방 진형에 혼란을 주기 위한 특수부대 역할하는 부대였습니다. 산개대형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 맞지만, 당시 나폴레옹 시기에 라이플은 아직까지는 널리 쓰이지는 않았고 비쌌고 장전속도가 전열보병보다 느렸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 당시의 주 병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산개 대형은 특수한 병과나 상황에 맞게 쓰였지만 아직까지는 주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미국의 남북전쟁과 크림전쟁 그리고 당시 이제 막 통일한 독일과 프랑스와의 전쟁인 프랑코 프로이센 전쟁에서도 계속 이어 갔습니다. 이 분이 말하는 1862년의 기관총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추세가 바뀌지는 않았고 점차적으로 퇴화되고 있다 1차세계대전때서야 전열보병이 완벽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당시 기관총의 성능을 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기관총과는 다르게 발사 속도도 느렸고 보병대형이 낙엽처럼 쓰러질정도의 위력은 없었고 기능적인 결함도 심각했고 이 기관총을 포처럼 운영했기 때문에 1862년의 기관총의 등장으로 인해서 전열보병의 개념이 확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1차세계대전의 맥심 기관총이 등장하면서 이런 전열 보병이 사라지게 되는게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전에 보불전쟁에서부터 남북전쟁에 있었던 참호전이나 돌격전술이 시작되고 전술의 다양화가 되면서 점차적으로 퇴화되기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전열보병 전술이 시대의 발전과 전술의 다양화로 통해서 점점 퇴화가 되고는 있었지만 계속해서 전열보병 전술을 사용하다 1차세계대전 기점으로 전열보병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정확하게 알고 계시구만. 좀더 추가하자만 skirmisher 들은 대부분 사냥꾼 출신이라 머스켓 대신 라이플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통상 보병 연대 또는 대대 단위에서 가장 좌측에 진열하며 싸웠고 진열보병 전투 전,후에 산개하여 다가오거나 도망가는 적을 교란했다. 물론 머스켓이 명중률을 떨어지지만, 명중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는 사기에 대부분 있었다. 사람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아무리 적이여도 쉽게 사살하려는 부분은 일반 징병된 militia나 훈련이 덜된 정규 보병은 일부러 눈을 감고 쏘기도 했다 (연기도 이유중 하나). 사기에 따라서 전선이 유지되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있어 지휘관 장군들은 강력한 정신력 버텨 앞으로 나아가 근접한 거리에서 한순간에 일제히 발사할수 있도록 전술이 발전해 졌고 날아오는 포탄보다 무서운것이 상대 보병진영에서 한번에 2줄 또는 3즐이 한번에 발사하는것이 위협적이였고 이러한 전술은 강한 사기 바탕으로 긴 장전 시간없이 한번에 사기를 무너뜨리고 돌진하는 전술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전술을 되받아치기 위해 skirmisher의 역할이 커직 시작하였고 skirmisher들은 낮은 자세 또는 은엄폐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보병의 전술도 산개형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차대전 당시 가장 초기에 기관총에 등장에도 불구하고 프러시아 프랑스는 여전히 진열 보병 대형과 기병을 주력으로 사용도 했다. 포의 경우도 재미있는 부분은 중세시대에 포는 이시대의 머스켓과 같이 엄청 크고 무겁고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성벽을 부시는데 주력이였지만 르네상스 시기가 도달하기 직전쯤 포는 보병에 대해 사용도 시작이 되었다. 결국 장거리 포의 정확도가 기술로 발전하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보병의 역할이 전쟁에서 저하되기 시작한 계기이며 일이차대전 이후에는 급격한 무기발전으로 인하여 보병의 역할은 아주 크게 감소하였다. 가만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기본 육군 전술들이 진열 보병전 도중 부대가 후퇴하였을때 지원, 화력 지원, 기병 지원 등 수단만 바뀌고 전투전술에 대한 기본 개념은 진열보병 시대때 만들어진 전술들이 많으며 군인들이 행진하고 발을 맞춰 걷은것 또한 보병진열 훈련의 가장 기초석이 되는 부분이였다. 지휘관 역량 및 훈련에 따라 진열보병이 상황마다 대처하는 능력도 크게 차이가 났었고 기록을 보면 많은 진열보병 중대 대대 단위로 총한발도 못쏘고 퇴긱한 경우도 수두룩 하다.
아 그리고 위장을 안하던 이유는 ㅋㅋㅋ 당시 귀족들이 군인의 보급품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각 나라별로의 누가 더 잘사는지 알리기 위해 군인 옷들을 화려하게 입혔고 전열보병 보직중 가장 베테랑인 grenedier들은 멀리서 봐도 위압감이 느꺄질수 있도록 키가 컷어야하며 심지어 일미터가 되는 높은 모자를 쓰는 부대도 많았다. 영국 근위대를 보면 아직도 그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규율 행진이 현대에는 유대감이나 군대 기강을 어느정도 잡아주겠지만 전열보병에게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부대 전체 목숨이 걸린 일이였다. 방진의 경우도 모든 부대가 아닌 거의 10부대중 3,4부대 꼴로밖에 형성하는게 거의 최선이였고 워털루때도 영상처럼이 아닌 1개 부대 방진안에 포병대 및 다른 보병부대가 가운데에서 보호를 받기도 했다. 방진은 한개 부대안의 여러 중대 소대 개념의 병사들이 한치에 오차도 없이 훈련을 한대로 방진을 형성해야 되었기에 제식이 거의 총기 장전 훈련과 맞먹을정도로 제식은 부대의 생존력을 좌지우지하는 방법중 하나였다.
1. 총이 나오고 그 총을 활용할 전략/전술이 정립되지 않아서 저렇게 대열을 맞춰서 전진하고 싸웠다고 합니다. 2. 당시의 총은 성능이 안좋았었고, 사용과정이 시간이 걸려서 저렇게 대열을 갖추고, 앞줄이 발사할동안 뒷줄은 장전 및 발사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3. 저때는 흑색화역 이란걸 사용했는데, 발사후 총안에 화약찌꺼기 즉 탄매가 많이 싸여서 장전 및 발사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사실 진형을 이루는것 자체만 생각하면 고대 중세 내내 했던 진형과 진형싸움의 연장선일 뿐이죠. 코앞에서 창과 방패 검을 들고 바로 앞의 상대를 찔러 죽이는데서 멀리서 상대방을 쏴죽이는걸로 바뀌었으니까요. 근세의 전열보병도 결국 총만들었을뿐 고중세의 회전의 영역안에 있었음
@@papajones2418 사람이 들수있는 정도의 방패는 머스킷에 다 뚫리고 안뚫리는 정도의 구 공성용 차일같은걸 끌고다니면 보병대의 기동력이 떨어지는건 물론 탄도학의 발전으로 갈수록 정교해지는 대포에 저격당할 뿐임. 당시 포병은 수학과 탄도학의 발전으로 상대 포진간 대포 저격까지 벌어질정도였음
예전부터 영화, 드라마에서 17세기,18세기 미국 독립 전쟁, 유럽에서 서로 마주 보면서 총 쏘는 것을 보면서 "저거 바.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그 궁금증이 해소 되었네요. 아무리 군대에 대한 기초 상식이 없다라도 저렇게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총을 쏘면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것인데 저게 뭐하는 것이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원s-x8h 우리나라가 주변국 다양성이 떨어져서 실리외교에 인색한 면이 있음 중국따가리 하면서 유목민이나 일본만 경계하면 외교랄게 없으니 그나마 몽골과는 이제 악감정 가진사람 거의 없죠 중국이나 일본은 안에서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자주 싸웠으니 오늘의 아군은 내일의 적이 쉽게 받아졌겠지만
맞습니다. 물론 사거리, 명중율 등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각궁을 포함한 복합궁이 결코 열등한 무기는 아니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런 활을 쏠 수 있는 궁사를 양성하는데는 엄청난 시간이 드는데 반해 소총을 제대로 활용하는 병사는 쉽게 만들어진다는 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또 활은 아무리 능숙한 궁사라고 해도 10~20발 정도 쏘면 팔힘이 다합니다. 더 이상 강력한 화살을 날릴 수 없죠. 하지만 소총은 화약과 총알만 있으면 계속 쏠 수 있고... 우리나라 복합궁 + 편전 조합이 조총보다 우수하다 라고 국뽕에 취하는 사람들이 좀 보이던데... 가장 높은 수준의 병사들끼리만의 대결이었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런 선수들의 올림픽이 아니죠... 활이 총보다 더 우수했다면 왜란 이후 조선이 조총병 양성에 그렇게 공을 들인 이유가 설명이 안되죠 ㅋㅋㅋ 특정부분만 떼서 정신승리 하는 아주 추한 모습입니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뮤&겜 네 맞습니다 중세 후기 기사들이 입고다녔던 풀플레이트 판금갑옷도 그냥 숭숭 구멍이 날정도로 관통력이 강력했습니다. 현대식 소총과 비교해도 구시대의 머스킷이 힘 적인 부분에서만은 더 강력했다고 증명도 났구요 그래서 전열보병이 주류였던 시대에는 다들 가벼운 무장을 하고다녔습니다 ㅎㅎㅎ 더 궁금한거 있으신가요?? 질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상에서 길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총기집탄율과 명중률을 높이는 방법은 뭘까?"의 해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열보병 전투의 쉽고 간단한 핵심은 1.총기문제, 2.국민개병제를 시행하면서 낮아진 훈련도 가 있겠으며 1번 2번 문제로 인해 집탄율을 높이기 위해서 횡단으로 집단사격을 하자라는 해답을 최선의 답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댓글들에 차라리 활을쓰면 되지않냐는 말이 많이보이는데, 우선 갑옷 방패무장이 왜 사장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총의 파괴력 앞에 그닥 방어효력이 없기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전신무장은 흉갑으로 대체되다 아예 흉갑마저 사라지게된거죠. 근데 만약 다시 활을들고나온다?? 상대방은 방패갑옷까지도 필요없고 대충 급조한 나무 널판지들만 준비하고 그뒤에 총만쏴도 게임끝입니다. 그럼 궁수들을 준비한쪽에선 차라리 그 궁수들을 다시 총병으로 바꾸는게 이득인거죠. 그러면 나무널판지는 물론 방패 갑옷까지 뚫어버리는 파괴력을 얻으니까요 옛날사람들도 바보가아닙니다. 활을 안쓴건 이런이유에서에요. 궁수에대한 상대 대처가 너무쉽고 총에비해 안좋은점이 너무많기때문이죠 그리고 숙련된궁수와 총병의 양성기간 차이도심하구요. 영화에서나 갑옷입고도 화살맞음 픽픽쓰러지지 실제 실험영상보면 왠만합갑옷 활로 뚫기힘들죠. 근데 총은 그냥 뚫립니다. 유튜브에 양덕들 실험영상들 많아요. 실제 전투사례들에서도 아프리카나 아시아국가들이 활과 냉병기로 유럽 전열보병과 싸워 개털린경우가 부지기수였구요.
과도기 부분을 추가적으로 더붙이자면 저 때 당시 엄폐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던 때라고 합니다 서로 총알을 몇번 주고 받고 하다가 백병전으로 갔으니.... 가장 앞라인에 있던 병사들은 주로 신입병사들이라고 하네요 사상자가 가장 많은 라인이기도 하고 뒷라인에는 고참들이 있는데 백병전을 펼치는데 이게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하지만 전투에서 병사들도 사람이었던지라 앞 라인에 있던 병사들이 과도한 압박감과 두려움 때문에 대열이 무너지기도 했지요. 그래서 병사들에게 독한 술이나 마약을 지급해서 복용하고 싸우게 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saltycola 창병은 무기 숙련도가 부족한 인원들이어도 밀집하면 괜찮은 전투력이 나와서 많이 쓰인거임. 저숙련자? 쓸만한 위력? 딱 총 이야기 아니냐 ㅋㅋ. 그리고 궁수를 계승했다고 하면 궁수는 나름 정예병들인데 걔들을 화살받이로 써가면서 대치하는하는건 어디 전술임??
@@saltycola 활을 계승한건 포입니다만. 활은 곡사무기이고 머스킷은 직사무기입니다. 보병들 뒤에서 곡사로 화력투사했던 활의 역할은 포가 계승하게 됩니다. 머스킷병이 기병한테 썰리는 이유는 장전하고 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고, 그래서 총검을 부착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대신 머스킷을 사용한건 활에비해 적은 훈련시간과 비교도 안될 파괴력때문에 널리 썼던것이죠,, 활같은경우는 활의 상태도 꾸준히 점검해줘야하고 기후에 민감한편며 초심자의 경우는 쏠때 부상을 안당하면 다행일정도로 난이도가 악랄했기때문에 양성과정도 되게 길었습니다.
그놈의 활활 이 지랄 하는데 활이라는게 숙련되는 데에도 오래 걸리고 위력에서는 비교할 것도 없는데 뭔 활이야 ㅋㅋㅋ 서양애들이라고 원거리 무기에 관심이 없는 줄 아나 장궁, 석궁 오질라게 쓰던 애들이 그걸 왜 버렸겠나. 심지어 조선군도 조총 먼저 쏘고 그 다음 활 쏘라고 할 정도면 활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은 창->총 으로 대체했고 활->대포 로 대체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활로 적을 맞출 거리면 이미 한참 전부터 적의 대포 사거리 안에 있는거죠. 상대방이 이미 이쪽 조준해서 포탄 날리고있는데 활 쏴보겠다고 전진해 들어가면 다 죽는거죠. 그럼 전열보병은 포탄사거리 내 아니냐구요?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전열보병은 창병역할 입니다. 창병이 적 포 사거리 내에서 싸우는건 당연한거죠.
커뮤니티에 이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활->대포는 전혀 아님. 활은 보병이 고대 로마식 방패술만으로 막을수있음 투석기등의 대형 무기를 대포가 대체했다고 해야 맞고 정확히말하면 대포는 대포일 뿐임 좀전엔 기병이 랜스돌격을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했다는 낭설 많이 떠들더니 창->총 활->대포 대체론은 아직도 정론처럼 퍼져있네
가장 큰건 가성비라는거죠. 평범하게 봤을때 당시 숙련된 궁수를 양성하기 위해선 최소 3년이라고 봤을때 일반 머스킷병은 별도의 훈련 없이도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는 것. 그랬을때 궁수보다 머스킷병이 여러모로 가성비가 높다는 것. 실제로 기병들이 돌격할때 머스킷병은 착검 상태로 방진을 만든 상태에서 사격하면 기병을 저지 할 수 있지만 양성 된 궁수는 그렇지 못 하다는것이 전술적인 측면이 큼. 결과적으로 라인배틀을 진행할때 보병들이 지휘관이 전진 명령을 내리면 병력이 전진하고 지근거리까지 접근하면 최대화력으로 일제 사격하는게 효율이 좋음. 어찌 되었든 사거리가 낮더라도 지근거리까지 들어가서 사격하면 갑옷을 뚫는건 사실이었으니...
임진왜란때 봐도 조선군은 가장 우수한 합성궁을 보유하고 있어 수성전에 매우 유리했지만 우리 국궁은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고 숙련병을 육성하는데 힘드나 조총은 반나절이면 어설프게라도 사용가능했다라는 징비록 기록이 있음 화약무기는 기계식 훈련 반나절이면 사용가능함 그런데 냉병기는 그게 힘듬
프로이센이 용병 위주의 군대라고 하는건 대부분 당시 독일이 통일되지 않아 다른 독일계 국가 병사들을 모집해 군대로 운용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 영국이라고 다르진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국민 혹은 자국과 유사한 문화권 인원들을 용병처럼 돈주고 고용한 것에 가깝구요, 이런 군대가 오늘날의 각국 국군과 차이가 있는 점은. 이들이 충성하는 것은 자신을 고용한 국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반면 오늘날 국군들은 해당 국가에 충성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영국군이 태형을 많이 한 이유는 당시 영국 육군의 위치는 해군이 발사하는 포탄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해군의 가혹한 선상 문화가 영국 육군에 많이 반영된 것에 가깝습니다.
@@yhanzisu4932 해적은 해군출신들이 아니라 대부분 무장상선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장상선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경우가 있어서 임시로 해군 지위를 부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구요. 진짜로 국가에서 돈을 들여 건조한 전쟁용 함선들은 국왕이 직접 명령을 내릴 정도로 규율이 엄격한 편이었습니다. 또 무장상선의 해적화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해적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아시아해적의 대부분은 원거리 항해를 하던 중국이나 일본 상선이 해적으로 진로를 바꾼 경우인 것 처럼요. 그리고 전근대 선원의 대우는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매우 열악한 편에 속했습니다.
서양처럼 숙련된 총기부대가 없었던게 큰 이유 같네요 군대는 사기 싸움인데 두꺼운 갑옷입고 돌격했다가 총 맞고 픽픽 쓰러져가는 아군 보고 사기가 엄청 떨어져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갔을듯 특히 저 큰 소리와 연기를 처음 접하면 상당한 공포였을거구 무엇보다 해상에선 상대가 안되니... 반은 이기고 들어가는거죠
@@eugenedelacroix5081 벨 에포크 시기 유럽 군대는 생각보다 굉장히 인식이 보수적이고 낡았음, 남북전쟁이나 크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썼든 안 썼든 자기네들 비슷한 수준의 군대들간에는 그런거 애지간하면 쓰지 않는 걸로 했으니 그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모른다는 것도 한몫 했고.
기관총의 위력보다는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전투였고 1차대전은 이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서 온갖 시도를 하였죠. 화염방사, 연막탄, 독가스, 고폭탄, 땅굴, 제펄린, 탱크 등 그리고 참호선을 돌파하면 더욱 보급이 어려워지는 문제 등. 기관총을 몰랐다기보다는 참호 돌파 방법을 찾는 과도기였죠.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겁이 많아 병자호란 때 싸워 죽은 이보다 스스로 목 매달아 죽은 이가 많았고 또 피를 싫어해서 전투 중 누군가가 쓰러지면 곧 달아나고 만다' 라고 기록되어 있음. 이걸 말한 사람은 하멜이 아니라 어쩌다 조선으로 표류되어서 조선인으로 귀화하게 된 네덜란드 출신인 벨테브레가(박연) 남긴 말임. 전열보병 방식은 조선에서 가장 필요했던 전술이었던 것.
매우 긴 세월동안 태평성대였으니 그럴만하죠. 지금도 우리나라 미필자들에게 총기 쥐어주고 당장 가서 싸우라 그러면 금방 와해될 겁니다. 군인이 아니니까요.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방금 전까지도 잔뜩 긴장한 채로 주먹 피하던 권투 선수가 쳐들어와서 주먹질 하는데 일반인이 무슨 수로 피하며 당해낼까요.
@@박경서-l4r 강화도나 아시아, 아프리카는 무기 차이로 진거고; 그리고 전열보병 이라서 이긴게 아니거든? 공성전에서 줄서서 싸우면 당연히 피해가 커지지 그 결과가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포격지원도 안받고 병력 보냈다가 사상자가 40명 나온거고 신미양요 때는 미국이 포격지원으로 광성보를 아예 조져놨으니깐 이긴거지 그리고 애초에 전열보병한테 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조선은 유럽처럼 적 코앞에서 난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120m 가량에서 높은 명중률로 사살하는 방식으로 싸웠기 때문에 당시 강선의 발달로 사정거리와 명중률이 뛰어났던 유럽 소총들이 압살하는 결과가 나온거고, 화기 수준이 비슷한 유럽끼리 싸우면 당연히 총알받이지;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게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아닌가? 무기는 발달했지만 전술은 비슷했기 때문에 1년 만에 사상자가 51만명이 나옴 전투마다 사상자 비율이 10~20% 씩은 나오는데 사실 그 사상자도 화포까지 더해지면 그냥 고기파티 되는거임 일렬로 가다가 쇠구슬에 열몇명씩 죽어나가는데 이게 총알받이가 아닐까? 애초에 나폴레옹 전쟁기 13년 동안 사상자가 최소 500만임 이중 절반이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부상 당했다고 쳐도 13년간 200만 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님..
전열보병 이전시기는 전문화된 직업군인, 용병으로 구성된 소규모 전투였습니다. 머스킷이 복잡하고 효율도 떨어지는 무기이긴 하지만 어쨋든 냉병기를 다루는 이전시대 보병, 기병 보다는 훈련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으니 다수로 운영하기 좋았습니다. 이전 국지전 양상과 다르게 전장이 넓어지는 북방전쟁, 7년전쟁, 나폴레옹 시기를 걸치면서 유럽군대들은 이전 소수 직업군인에서 징병된 다수를 운영하는 개념으로 많이 바뀌였죠.
-자료소스 출처
영화 영상
패트리어트 - 늪속의 여우 (2000), The Patriot
베리린든 (1975), BarryLyndon
군주의 하인 : 폴타바 전투 (2007), Slaget Vid Poltava
워털루 (1970), Waterloo
기타 영상
머스킷총 재장전 영상
Civil War - Musket Loading Drill "In-Nine-Times" HD (th-cam.com/video/VCAYXQ1Z6q4/w-d-xo.html)
고증오류
2:27 영상에 나오는 사진은 '플린트락'머스킷이 아니고 '퍼커션 캡'방식의 머스킷입니다 ㅠㅠ
정신없이 만들다보니 실수가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영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꾸벅)
나중에 더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ㅎ_ㅎ
중간에 베리린든도 있었돈거 같아욧
@@luhar0202 반영하겠습니다 ㅎ_ㅎ
나무위키도 좀 보신것같네요
2:27에 플린트락이 아닙니다.
퍼커션 캡 방식입니다
2:22 무슨게임이에요??
사실 창칼로 싸우던 시대에도 똑같았음. 앞열 병사는 자기가 뒤질거 알아도 계속 전진만 해야했음 그때는 주로 가까이서 싸울뿐
멈춰도 어차피 뒤에 아군들한테 밟혀 죽음.. 그나마 전진하는게 생존확률 쬐끔 더 높음
창칼로 싸우던 시절 대열 앞줄만 서로 붙게 되므로 전투 초기엔 사상자가 많이 안나옴.
그러다 한쪽이 무너지며 밸런스가 깨지고 공포가 전염되며 도망치는 병사가 속출하면
그 진은 붕괴되고 이를 기마병들이 추격하면
대량 학살이 일어남.
그래서 옛부터 보병의 생명은 진에 있고
물러나는 병사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림.
공포는 전염된다.
이게 젤 무서운 것.
사실 저시대 총이라는게 사거리 긴 창이라고 보면 되서 큰 틀에서 보면 전근대랑 별로 달라진건 없음
위험한 만큼 전공 세울 기회도 커지죠
미드 롬에선 가장 앞쪽에 있는 병사가 싸우다보면 지치니 백인대장의 지시에 따라 뒤로가서 휴식하고 그다음 줄에 있는 병사가 교대로 싸우더군요.
흩어지기엔 기병이 너무 쎄고
뭉치기엔 대포가 너무 쎄고
그래서 합의점을 찾으면서 내 화력을 최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 길게 늘어선 전열대형
더군다나 당시 전투에는 (유명 대규모 전투들 제외하곤) 대부분 사상자가 10%도 안됐고 적군 진열에 충격을 줘서 흐트리고 후퇴시키는게 주목적이였기때문에 한꺼번에 모아서 발사하는게 유리했습니다.
모랄빵
저때 당시의 머스켓을 총이 아니라 사정거리가 긴 창이라고 생각하면 저렇게 싸우는지 이해가 되실겁니다. 머스켓은 숙련된 사수가 아니면 직접적인 사격으로 맞추기 어려운 편이였죠. 거기다 시끄럽고 화약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전장환경이 더해져 맞추기란 더더욱 힘들었구요. 그러다가 남북전쟁때가 되면 미니에탄+ 강선소총이라는 조합으로 무기가 바뀌었는데도 저런 전열보병 방식으로 싸우다 두 진영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고보니까 베테랑은 1분에 3번 장전한다는데 코앞에서 총알날라오는데 저 10단계를 20초만에 하고 발사한다니 진짜 대단한거 아닌가?
장전후 행진하고 1열발사 2열발사 이런식일겁니다 마지막은 백병전이고요 실제론 총격을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는 쪽이 지는거죠 한부대 무너지며 우루루 무너지는거죠 최정예군이 아닌이상 치킨겜과 같슴돠
미국 독립전쟁 같은경우 샤프슈터 헌터킬러 장교만 죽이는 게릴라전 을했고 미국은 워낙 넒어 매복 게릴라전으로 전계했습니다 대부분 민병대였죠 전문사냥꾼분들이거나
숙련병은 화약넣고 총알넣고 꼬질대 생략하고 바닥에 탕탕 개머리판 치고 사격
배태랑이 쏜것도 총알 하늘로 올라간답니다.
뒤에서 대신 장전해주는 인원도있었음
전열보병이 싸우는 방식이 웃겨보여도 당시에는 최강의 전술이었네요. 청군, 맘루크군 괴멸;
맘루크군은 ㅇㅈ이지ㅋㅋ
아편전쟁 당시에는 전열보병보다 무기 차이였어요
그냥 전 세계를 지배했죠 ㅋㅋㅋ
저기에 기동력까지 더해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가 전설이됨
ㅈ밥같아보여도 저때 나폴레옹이 등장했음
대열을 이탈하면 장교에게 확실히 죽지만 대열유지를 하면 운좋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만큼 훈련이 가혹했죠
맞는말이긴 하네요...
날카로운 지적인듯..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이는ㅎ;
애초에 훈련도 개판이라. 복불복임
@@linert7719 그리고 옆에서 달려오는 기병에게 밟히겠죠.
@@linert7719 아가리 제갈량 ㅋㅋㅋㅋ
근본적인 이유는 무기의 한계로군.
진짜 궁금했거든요.
정리를 깔끔하고 이해되게 잘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지휘관 편견
그 편견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
실용적 전쟁이 아닌 격식 형식에 치우쳐
병력 낭비
9:21 제식훈련의 가장 큰 목적
'간지'
우리나라 육군훈련소 군법에 전쟁발발시 전시가 되면 5주의 기간이 3주로 단축 되고
1주는 준비
2주는 제식
3주는 사격으로
제식이 진짜 중요하다는걸 말해줌
@@언제나하루-b6r 좌향좌 했는데 오른쪽으로 돌고 이지랄 나면 골치 아프니
저격총 쓰면 안되나 ?
미국독립전쟁 때 라인배틀하는 영국군에 대해
미국독립군이 산개 저격으로 영국군 측에 엄청난 손실 안겼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사실 라인배틀이 대세일 때도 산개 저격이 엄청 좋은 방식이었던 거임
유럽에서도 많이 쓰였나
성의가 흠뻑 느껴지는 영상 잘 봤습니다~!
정성이 묻어나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맨 앞줄에 있으면 총 쏘고 나서 덜덜 떨면서 장전하면서 적이 나를 조준하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전투 전에 술을 마셔서 공포를 견디기도 했습니다
그냥 죽은척하고 업드릴듯
@@개굴이-x9s ???: 어 확인사살 어서오고~
당시 전투 끝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면 반대편은 반드시 확인사살과 자군 부상병 회수를 병행했고 몸 멀쩡히 누워있다면 태형`이 반기는 상황.
뭐 다쳐서 이동불가 상황은 참작하긴 한 모양인데 너무 많이 다치면 치료당하기도하고(아군 부상병이 살릴수 없다 판단되면 그대로 방치하거나 도구로 머리뼈를 뚫는 의과적 방법을 선택), 2차대전 때 패튼이 정신병으로 몸 멀쩡히 의료막사에만 머물던 병사를 구타해서 욕먹는 시절이 아닌 패튼 같은 행위가 남자이자 군인으로서 당연하던 시대.
다쳐서 이동불가 상황이 머리를 다쳐서 기절하고 아군시체 밑에 깔려서 살아나는 경우는 자주 묘사되고 실제로 기록도 남던만큼 부상으로 인한 낙오는 인정되나 깨면 스스로 원대복귀 안하면 숨어들어 강도가 되는 수밖에 어차피 범법자로 수배됨.
@Khan Ali 평균수명이 낮은 이유는 신생아 사망률도 포함해서 그런거임
저 상황에서 장전을? 쌉고인물 ㄷㄷ
포탄이 바로 앞에서 날라오거나 터지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천천히 진격만 하고 적군이랑 바로 앞ㄲㅏ지 도달했을떄도 바로 돌진안하고 서로 총 쏘는거 기다려주고 이런거 보면서 정말 ㅄ같다는 생각 많이 했었는데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만
돌진하면 아군총알에 맞을듯 ㅋㅋ
ㄹㅇ
신사도는 귀족장교가 발휘하고 총맞고 개죽음은 하층민병사가 도맡음.
다 이유가 있죠 어짜피 화약무기 앞에서는 모든 방어력이 의미가 없어지니까 오히려 공격쪽에 더 노력을 기울인거죠 더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순간까지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군율과 제식이 요구되었죠 한두발을 쏜 뒤에는 근접전까지 벌였기 때문에 그리고 동양의 군대와의 전투를 보면 어마어마한 교환비로 승리를 했었던거 보면 이시절이 냉병기 시절의 군대보다 근접 원거리 모두 더 대단한 군대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난 그래도 바보같은 짓거리라고 본다
참고로 저 당시 짙은 원색의 눈에 띄는 옷을 입은 이유는 흑색화약을 쓰는 머스캣 소총 시대 전투가 벌어지면 연기가 자욱해 지고, 더군다나 후방에서 포사격 까지 더해지면 전장은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는데 그 속에서 피아식별을 하기 위해 저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화려한 복식으로 적을 주눅들게하고 아군의 사기를 올려 군무이탈을 막으려 했습니다
저렇게 멋진 옷이라도 입혀서 뽀대라도 나야 모병 징병이 그나마 수월했다는게 참...
역으로 표적되기도 좋았겠는데요.
@@김용국-l5r 그런 건 흑색화약 연기로 극뽀옥
@@옼케발 옷 한 벌 가치가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높았던 시대이기도 하고요. 멋진 정복 준다는 것 만으로도 솔깃할 만했다니 원...
정말 좋은 영상입니다. 과거 진열된 전투의 방식과 현대의 산발형적인 전투, 군인의 제식에 대한 중요성이 왜 나타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장병들에게도 정신전력 교육 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_^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ㅎ
요즘 애들은 다들 똑똑해서 이런거 다 알고, 오히려 "아직도 몇백년전 구닥다리 방식이나 가르키는 한심한 군대" 라고 손가락질 할걸요.
저도 그랬구요.
@@서용관-e5p
남자는 도망가면 안됩니다.
ㅋㅋㅋ 요즘남자들은 자주 도망가죠
ㅋㅋㅋ 아버지 역할이 부재된 사회의 비극이죠 왜 러시아 남자들이 상마초들이죠 러시아 남자들처럼 마초적인게 정상적인 남자입니다.
일본남자들도 생긴거는 한국남자들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성격은 ㅈㄴ마초적임
근데 요즘 한국남성들은 나약하고
찌질하죠 우리는 어머니에 의해서
자라난 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
@@서용관-e5p
고대남성들 중세남성들을 우습게보면
안됩니다. 그들이 컴퓨터나 핸드폰을
다룰줄 몰라도 고대인류역사상 어마어마하게 강인하고 위대한 남성들입니다. 제가 볼때는 현대남성들이야말로 여자들한테 늘 처발리고 다니고 차이고 일자리를 많이
빼앗기는것을 보면 고대인류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나약한 남성들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아무리 여성인권이 높아지고 양성평등해져도 남자는 근본적으로 남자다워야합니다.
요즘 남자들이 여자한테 잘 차이는 이유가 있어요. 남성성이 약해서 그래
하지만 페미니즘이 남성성을 유해한것으로 만들어버렸죠
남성성은 유해한게 아닙니다.
한국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순신 세종대왕도 남성성이 강한 사람이었음
상남자가 허세부리는 남자로 우리가 잘못
세뇌당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소룡이 허세남인가요? 이소룡이 무술고수가 되기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이소룡은 남성미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역사속의 영웅들 명장들도 다 남성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토머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갈릴레이 뉴턴 슈바이처 이사람들도 남성성이 강한 남자들이었음
페미니즘과 미디어는 남성성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음
군인들도 남성성이 강하니깐 싸우는 겁니다.
그래도 전열보병 시대에도 사냥꾼 출신들만 따로 모아서 만든 엄폐 및 산개 하는 척후 부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라마다 틀리지만, 활강식 머스킷이 아니라 강선이 있는 머스킷으로 무장해서 150~600 정도 되는 사정거리로 적의 전열(활강식 머스킷의 유효 사정거리는 70~90)을 괴롭혔다고 하네요. 물론 이 부대는 어디까지나 지원을 하는 역활을 했는데.. 주력이 되지 못한 이유가 사냥꾼등의 화기에 능통한 총잡이들을 구하기 힘들거니와 강선이 있는 머스킷은 장전하는데 3~10분이라는 기존의 활강 머스킷(1분에 3발)보다 느린속도, 그리고 산개로 인해서 기병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으로 널리 쓰이지 못했다고 하네요..
'다르지만'
그래서 미국은 일반 착검이 가능한 일반활강식머스킷병을 같이 붙쳐놨다네요
오히려 미국의 민병대가 정규보다 더 좋은.. 독립전쟁 당시 베트콩처럼 게릴라전 하는 매복해서 쏘고 런하고 사거리 명중률 좋은 장거리 저격하는 시대를 앞서간 전투를 했으니
부비트랩과 땅굴만 있었어도 완벽했음
오히려 미국의 민병대가 정규보다 더 좋은.. 독립전쟁 당시 베트콩처럼 게릴라전 하는 매복해서 쏘고 런하고 사거리 명중률 좋은 장거리 저격하는 시대를 앞서간 전투를 했으니
부비트랩과 땅굴만 있었어도 영국군한테는 PTSD 완벽했음
틀리지만 -> 다르지만
갑자기 봤는데 재밌어서 정주행 했네요 ㅋㅋㅋ 재밌어요
재밌으셔서 다행입니다!!
감사드리고 또 와주세요! ㅎ_ㅎ
참고로 8:43 에 나오는 이 친구들은 나폴레옹 시기 당시 영국의 제95 라이플 연대 그린자켓인데 이들은 베이커 라이플이라는 강선 판 라이플을 사용해서 200야드(약 182m)에서 저격을 했던 당시 저격병들이었고 이들의 전술은 상대방 전열보병을 전장에 맞닥들이기 전 먼저 앞에 나가서 상대방 진형의 주요 지휘관 및 장교들을 노려서 저격을 했던 한 병과였습니다.
이들은 넓게 흝어져 산개대형으로 최대한 상대방 진형에 혼란을 주기 위한 저격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Skirmisher(스커머쉬) 상대방 진형에 혼란을 주기 위한 특수부대 역할하는 부대였습니다.
산개대형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 맞지만, 당시 나폴레옹 시기에 라이플은 아직까지는 널리 쓰이지는 않았고 비쌌고 장전속도가 전열보병보다 느렸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 당시의 주 병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산개 대형은 특수한 병과나 상황에 맞게 쓰였지만 아직까지는 주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미국의 남북전쟁과 크림전쟁 그리고 당시 이제 막 통일한 독일과 프랑스와의 전쟁인 프랑코 프로이센 전쟁에서도 계속 이어 갔습니다.
이 분이 말하는 1862년의 기관총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추세가 바뀌지는 않았고 점차적으로 퇴화되고 있다 1차세계대전때서야 전열보병이 완벽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당시 기관총의 성능을 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기관총과는 다르게 발사 속도도 느렸고 보병대형이 낙엽처럼 쓰러질정도의 위력은 없었고 기능적인 결함도 심각했고 이 기관총을 포처럼 운영했기 때문에 1862년의 기관총의 등장으로 인해서 전열보병의 개념이 확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1차세계대전의 맥심 기관총이 등장하면서 이런 전열 보병이 사라지게 되는게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전에 보불전쟁에서부터 남북전쟁에 있었던 참호전이나 돌격전술이 시작되고 전술의 다양화가 되면서 점차적으로 퇴화되기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전열보병 전술이 시대의 발전과 전술의 다양화로 통해서 점점 퇴화가 되고는 있었지만 계속해서 전열보병 전술을 사용하다 1차세계대전 기점으로 전열보병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Feat. 건들건들
정확하게 알고 계시구만. 좀더 추가하자만 skirmisher 들은 대부분 사냥꾼 출신이라 머스켓 대신 라이플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통상 보병 연대 또는 대대 단위에서 가장 좌측에 진열하며 싸웠고 진열보병 전투 전,후에 산개하여 다가오거나 도망가는 적을 교란했다. 물론 머스켓이 명중률을 떨어지지만, 명중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는 사기에 대부분 있었다. 사람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아무리 적이여도 쉽게 사살하려는 부분은 일반 징병된 militia나 훈련이 덜된 정규 보병은 일부러 눈을 감고 쏘기도 했다 (연기도 이유중 하나). 사기에 따라서 전선이 유지되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있어 지휘관 장군들은 강력한 정신력 버텨 앞으로 나아가 근접한 거리에서 한순간에 일제히 발사할수 있도록 전술이 발전해 졌고 날아오는 포탄보다 무서운것이 상대 보병진영에서 한번에 2줄 또는 3즐이 한번에 발사하는것이 위협적이였고 이러한 전술은 강한 사기 바탕으로 긴 장전 시간없이 한번에 사기를 무너뜨리고 돌진하는 전술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전술을 되받아치기 위해 skirmisher의 역할이 커직 시작하였고 skirmisher들은 낮은 자세 또는 은엄폐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보병의 전술도 산개형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차대전 당시 가장 초기에 기관총에 등장에도 불구하고 프러시아 프랑스는 여전히 진열 보병 대형과 기병을 주력으로 사용도 했다. 포의 경우도 재미있는 부분은 중세시대에 포는 이시대의 머스켓과 같이 엄청 크고 무겁고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래서 성벽을 부시는데 주력이였지만 르네상스 시기가 도달하기 직전쯤 포는 보병에 대해 사용도 시작이 되었다. 결국 장거리 포의 정확도가 기술로 발전하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보병의 역할이 전쟁에서 저하되기 시작한 계기이며 일이차대전 이후에는 급격한 무기발전으로 인하여 보병의 역할은 아주 크게 감소하였다. 가만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기본 육군 전술들이 진열 보병전 도중 부대가 후퇴하였을때 지원, 화력 지원, 기병 지원 등 수단만 바뀌고 전투전술에 대한 기본 개념은 진열보병 시대때 만들어진 전술들이 많으며 군인들이 행진하고 발을 맞춰 걷은것 또한 보병진열 훈련의 가장 기초석이 되는 부분이였다. 지휘관 역량 및 훈련에 따라 진열보병이 상황마다 대처하는 능력도 크게 차이가 났었고 기록을 보면 많은 진열보병 중대 대대 단위로 총한발도 못쏘고 퇴긱한 경우도 수두룩 하다.
아 그리고 위장을 안하던 이유는 ㅋㅋㅋ 당시 귀족들이 군인의 보급품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각 나라별로의 누가 더 잘사는지 알리기 위해 군인 옷들을 화려하게 입혔고 전열보병 보직중 가장 베테랑인 grenedier들은 멀리서 봐도 위압감이 느꺄질수 있도록 키가 컷어야하며 심지어 일미터가 되는 높은 모자를 쓰는 부대도 많았다. 영국 근위대를 보면 아직도 그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규율 행진이 현대에는 유대감이나 군대 기강을 어느정도 잡아주겠지만 전열보병에게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부대 전체 목숨이 걸린 일이였다. 방진의 경우도 모든 부대가 아닌 거의 10부대중 3,4부대 꼴로밖에 형성하는게 거의 최선이였고 워털루때도 영상처럼이 아닌 1개 부대 방진안에 포병대 및 다른 보병부대가 가운데에서 보호를 받기도 했다. 방진은 한개 부대안의 여러 중대 소대 개념의 병사들이 한치에 오차도 없이 훈련을 한대로 방진을 형성해야 되었기에 제식이 거의 총기 장전 훈련과 맞먹을정도로 제식은 부대의 생존력을 좌지우지하는 방법중 하나였다.
저때는 활강식 머스캣이라 그렇고 나중에 강선을판 머스킷이 어느정도 개발,보급이 된 이후로는 조준사격이 가능해서 전용 특수부대도 생겼다함 이후로 점점 강선식 머스캣을 주로 이루고 전투방식도 바뀌었다 함
머스캣이 반짝반짝할 정도로 닦으면 샤인 머스캣인가요?
특수부대보단 정예병인듯 특수부대 개념은 2차대전에 생긴거라
@@명경태-l6y하하하 아이고 부장님
@@명경태-l6y폴리싱도 하셔야죠
채널오픈 초반영상에 비해 저번 영상부터 게임, 영화 등 첨부영상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 다음영상까지 파이팅입니다~~
적절한 자료 찾기가 쉽지않네요^_^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총알받이"의 시초가 여기서부터.
1. 총이 나오고 그 총을 활용할 전략/전술이 정립되지 않아서 저렇게 대열을 맞춰서 전진하고 싸웠다고 합니다.
2. 당시의 총은 성능이 안좋았었고, 사용과정이 시간이 걸려서 저렇게 대열을 갖추고, 앞줄이 발사할동안 뒷줄은 장전 및 발사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3. 저때는 흑색화역 이란걸 사용했는데, 발사후 총안에 화약찌꺼기 즉 탄매가 많이 싸여서 장전 및 발사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기병이 한번덥치면 전열이무너지고 아비규환으로 죄다 총버리고 줄행랑칠겁니다 그래서 기병이 오면 신속히 방진을 갖춰야하고 또한 머스킷 특성상 너무낮은 명중률때문에 한번에 화력을 집중해서 퍼부어야 최대한 많은 피해를 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궁금했었는데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상 재미있게 봐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ㅎㅎ
진을 이루지 않고 산개되면 기병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 저렇게 진을짜고 뭉쳐야 그나마 살 확률이 올라갔죠 ㅋㅋ
와우 이거 진짜 멍청하게 왜 저렇게 전투를 했을까 엄청 궁금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ㅎㅎ
진짜 ㅇ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신사같이 싸웟긴함
@@kyoungmikim9534 딱히 신사적으로 보기도 힘든게 당시에는 백병전이 흔하게 일어났는데 총 끝에 달린 검으로 달려가서 적을 찌르고 베어야 했음 몇천명이 소리지르면서 총에 칼꼽고 쫓아오면 느끼는 공포도 오졌을듯
저정도면 활이 더 유용하지 않나
@@공룡새슈빌 훈련에 들어가는 시간, 비용 때문에 그런거
그냥 원거리 공격도 가능했던 창병으로 봐야죠.
진형 유지하면서 전진의 가장 큰 이유가 기병 때문이죠
사실 진형을 이루는것 자체만 생각하면 고대 중세 내내 했던 진형과 진형싸움의 연장선일 뿐이죠. 코앞에서 창과 방패 검을 들고 바로 앞의 상대를 찔러 죽이는데서 멀리서 상대방을 쏴죽이는걸로 바뀌었으니까요. 근세의 전열보병도 결국 총만들었을뿐 고중세의 회전의 영역안에 있었음
그래서 중국어로 총을 槍(枪)이라고 하는지도.. 총이랑 창을 똑같은 글자로 씀.
적어도 맨 앞에 있는 병사들은 방패들게 하면안되나? 아직도 이해가 안가네
@@papajones2418 사람이 들수있는 정도의 방패는 머스킷에 다 뚫리고 안뚫리는 정도의 구 공성용 차일같은걸 끌고다니면 보병대의 기동력이 떨어지는건 물론 탄도학의 발전으로 갈수록 정교해지는 대포에 저격당할 뿐임. 당시 포병은 수학과 탄도학의 발전으로 상대 포진간 대포 저격까지 벌어질정도였음
방패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탄알의 힘이 약한건데 왜 안했을까?? 무엇보다 전사의 의지나 그런걸 보여주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넘 재미있습니다
이런 유튜버들이 뜨셔야하는데 말이죠
구독 눌렀습니다
영상 감사해요
예전부터 영화, 드라마에서 17세기,18세기 미국 독립 전쟁, 유럽에서 서로 마주 보면서 총 쏘는 것을 보면서 "저거 바.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그 궁금증이 해소 되었네요. 아무리 군대에 대한 기초 상식이 없다라도 저렇게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총을 쏘면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것인데 저게 뭐하는 것이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침대 눕는 순간 알람 떠 1등 박고 ㅋㅋ 시청
병기나 전투전열방식은 문외한인데 적절한 자료화면에 전달력이 좋아서 쉽게 이해되고 지식도 얻어갑니다~
어떻게 매번 1등이십니까 ㅎ_ㅎ
차이나는역사님 항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
이건 미친짓야 레드코트와 라인배틀을 벌이다니
- 패트리어트 늪속의 여우 -
같은영국인끼리 동족상잔 저당시는 반기들고 싸워서독립했는데 지금은
미국영국 군사동맹 우방이지 반기들고싸웟는데 어땋게친해진거지
서양인은 과거는잊고 현제 좋으면 친구가되나
@@원s-x8h 공동의 적이 있으면 친해짐. 1, 2차대전의 독일, 소련, 지금은 중국
@@원s-x8h 우리나라가 주변국 다양성이 떨어져서 실리외교에 인색한 면이 있음 중국따가리 하면서 유목민이나 일본만 경계하면 외교랄게 없으니 그나마 몽골과는 이제 악감정 가진사람 거의 없죠 중국이나 일본은 안에서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자주 싸웠으니 오늘의 아군은 내일의 적이 쉽게 받아졌겠지만
스타크래프트의 마린도 임요환 같은 명장이 아니라면 전열 보병 방식으로 싸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글링 상대로는 전열보병 방식이 제일 효율적임 맹독충 상대로는 산개해야 하고
@@kikihaha5879 스투 마린 산개컨 ㅈㄴ 어려움;;
ㄹㅇㅋㅋ
찐
이렇게 직관적이고 쉽게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도 활이 더 좋았겠네, 바보같네 라는 댓글을 남기는 분들을 보시는 주인장님 속이 꽤나 답답하시겠습니다. 좋은 영상 잘 보고갑니다.
맞습니다. 물론 사거리, 명중율 등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각궁을 포함한 복합궁이 결코 열등한 무기는 아니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런 활을 쏠 수 있는 궁사를 양성하는데는 엄청난 시간이 드는데 반해 소총을 제대로 활용하는 병사는 쉽게 만들어진다는 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또 활은 아무리 능숙한 궁사라고 해도 10~20발 정도 쏘면 팔힘이 다합니다. 더 이상 강력한 화살을 날릴 수 없죠. 하지만 소총은 화약과 총알만 있으면 계속 쏠 수 있고...
우리나라 복합궁 + 편전 조합이 조총보다 우수하다 라고 국뽕에 취하는 사람들이 좀 보이던데... 가장 높은 수준의 병사들끼리만의 대결이었다면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런 선수들의 올림픽이 아니죠... 활이 총보다 더 우수했다면 왜란 이후 조선이 조총병 양성에 그렇게 공을 들인 이유가 설명이 안되죠 ㅋㅋㅋ
특정부분만 떼서 정신승리 하는 아주 추한 모습입니다. 인정할건 인정해야죠.
영상이 길어지더라도 좀 더 설명을 추가했어야 했나 싶어요 ㅠ
위에분 말씀처럼 활은 왜 안쓰게 되었는지, 방패는 왜 안쓰는지에 대해서 넣었어야했는데 ㅠ
@뮤&겜 네 맞습니다 중세 후기 기사들이 입고다녔던 풀플레이트 판금갑옷도 그냥 숭숭 구멍이 날정도로 관통력이 강력했습니다.
현대식 소총과 비교해도 구시대의 머스킷이 힘 적인 부분에서만은 더 강력했다고 증명도 났구요
그래서 전열보병이 주류였던 시대에는 다들 가벼운 무장을 하고다녔습니다 ㅎㅎㅎ 더 궁금한거 있으신가요?? 질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활 숙련시키려면 최소 2~3년이고 머스킷은 빡세게 굴리면 3일이면 어느정도 병사로 대충 쓸 수 있는데 걍 넘사벽 차이지
와 이게 진짜인 줄은 몰랐는데...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실제 상황이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거에 청나라 털리고 조선도 털렸음
그거도 한줌도 안되는 숫자에
구독하고 갑니다! 자료영상이 많이 나오는데, 출처가 없어서 아쉽네요. 영화 제목같은 출처가 조그맣게 들어가면 좋겠네요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ㅎ_ㅎ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고정댓글로 오래나오고 자주나오는 영상 위주로 자료영상 출처 남겼습니다!
머릿속으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용을 세세하게 알려주니 간지러운 부분을 골라 쏙쏙 긁어주는 효자손이 떠오르네요 ..^^..*
효자손이 되어서 기분이 좋네요^_^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렇게 총이 사정거리가 짧고 장전속도도 길다면 차라리 활을 쏘는 게 훨씬 효율적일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활은 다루는 사람의 힘과 기량에 크게 의존함..
즉, 팔에 힘이 좋고 명중률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오랜기간 훈련이 필요함
활의 사거리는더 처참함
총의사정거리가 짧다? 유효사거리가 짧다는말로 알겟음..
왜냐면 최대사거리는 1km정도니까
조선 교범인 수조규식 의하면
적이 100보앞으로 오면 조총사격을하고
90미터앞까지 왔을때 활을 쏘라고되어있음.
총의 유효사거리는 활보다 길고 맞추기도 총이쉽고
명중률제외 최대살상거리는 활에 3배
각궁의운동에너지는 최대100j
총은 2000j
활은 갑옷입은 적에게 약하지만
총은 갑옷은커녕 기병도 일격에 사살가능함.
그리고 조선도 임진왜란이후 조총이 주력군이였고... 그어떤나라도 머스킷등장이후 활같이 약해빠진무기는 그저 궁기병들이나 간간히 쓰는무기였음.
7:19 완전 우리얘기 아니냐?
뭐 개솔
@@user-su8jc2vw9p 맞는 말이지 징병제도로 강제로 안잡아두면 군대에 남아있을 병사가 있겠냐?
저때 하층민은 지금이랑 개념이좀 다름
직업을 가진자는 거의군대에 안가고 세금 더내놓으라는 거임 농부상인등 저때 병사들은
백수한량건달정도? 아니면 전쟁으로 한몫 잡으려는 부류 약탈이가능하니까
응애 나 애기 군인
@@김재원-i2z9k귀여웡~
높은 수준의 영상 감사합니다
1. 총의 기술력
2. 중세전투의 과도기
3. 귀족의 기사도 정신
4. 병사의 사기
러시아가 군사강국인 이유도, 당시 전장에선 병사의 훈련도보단 총검의 숫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군요.
구스타브 2세 이야기가 없어서 아쉬웠네요. 그리고 17세기 당시 보병 체제에서 18세기 전열보병으로 전환하기 전 당시 어떤식으로 구성되어있었는지 그 설명이 부재했다는게 아쉽네요
지금까지 본 전열보병 설명 영상 중 가장 정확하고 디테일한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에서 길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총기집탄율과 명중률을 높이는 방법은 뭘까?"의 해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열보병 전투의 쉽고 간단한 핵심은 1.총기문제, 2.국민개병제를 시행하면서 낮아진 훈련도 가 있겠으며
1번 2번 문제로 인해 집탄율을 높이기 위해서 횡단으로 집단사격을 하자라는 해답을 최선의 답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숲에서나 야간전투를 피하였는데
그이유로는 탈영을 방지하지 위해서였죠
Guts&BlackPowder 라는 게임을 하다보니깐 이런 영상도 나오니 좋네요 ㅎ (이런거 너~무 좋아요 ㅎ)
명중률이 워낙 처참하다보니 단체로 화망을 유지하지 않으면 맞질 않았고 각개 전투로 하기엔 기병의 먹이감이 될수 없었기에 너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전투였죠
이
조선- ????
@@미숫가루찌개현실에서도 이러한 산개 전투 때문에 사르후에서 조선군이 전멸하기도 했습니다.
@@mobile_one1 명중률 문제보다 장전 문제입니다
조총, 즉 화승총도 명중률 자체는 괜찮았으나 장전속도가 1분에 한발 쏠만틈 매우 느린지라…
댓글들에 차라리 활을쓰면 되지않냐는 말이 많이보이는데,
우선 갑옷 방패무장이 왜 사장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총의 파괴력 앞에 그닥 방어효력이 없기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전신무장은 흉갑으로 대체되다 아예 흉갑마저 사라지게된거죠.
근데 만약 다시 활을들고나온다?? 상대방은 방패갑옷까지도 필요없고 대충 급조한 나무 널판지들만 준비하고 그뒤에 총만쏴도 게임끝입니다. 그럼 궁수들을 준비한쪽에선 차라리 그 궁수들을 다시 총병으로 바꾸는게 이득인거죠. 그러면 나무널판지는 물론 방패 갑옷까지 뚫어버리는 파괴력을 얻으니까요
옛날사람들도 바보가아닙니다. 활을 안쓴건 이런이유에서에요. 궁수에대한 상대 대처가 너무쉽고 총에비해 안좋은점이 너무많기때문이죠
그리고 숙련된궁수와 총병의 양성기간 차이도심하구요.
영화에서나 갑옷입고도 화살맞음 픽픽쓰러지지 실제 실험영상보면 왠만합갑옷 활로 뚫기힘들죠.
근데 총은 그냥 뚫립니다. 유튜브에 양덕들 실험영상들 많아요.
실제 전투사례들에서도 아프리카나 아시아국가들이 활과 냉병기로 유럽 전열보병과 싸워 개털린경우가 부지기수였구요.
전쟁용으로 갑옷을 상대하려고 무진장 몰빵해서 한번 당기기도 힘든 킹왕짱 쎈 활의 파괴력 = 한손으로 들고 쏘는 권총 수준
오오 나레이션이 너무 좋아졌어요 듣기 편안합니다.ㅎㅎ
전열보병이 아시아 군대랑 싸울 때 교환비 개미쳤네 ㅎㄷㄷ
저당시에는 저 전술이 최선 ㅇㅈ
아~~역시 잠이 잘와요 목소리 너무 좋아요😆
대포맞고 머리 날라가신 분이 제일 안 아팠겠다..ㅜ
아픔을 느낄 겨를이 ㅜ
이인화의 사람의길 소설에서 잠깐 관련 얘기를 듣고, 이후 궁금했는데 어디서도 못찾겠더군요. 제대로 알았습니다.
지금 현대시대에 불합리하네 억울하네 말들 많아도
옛 시대는 항상 지금보다 심했던 것 같다
@벼농사 맞아
진짜 너무 궁금했었던건데 이렇게 다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궁금했었는데 감사합니다~~
혹시 빠진게 있으면 추가할 내용 쓰려고 했는데 쓰고 싶은걸 다 올려두심 ㅋ
2:27 사진은 플린트락이 아닌 퍼커션 머스킷 입니다
고정댓글에 고증오류 추가수정 완료했습니다!!
좋은 지적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섬세한 디테일까지 챙기진 못했네요..ㅠㅠ 앞으로도 이런 지적 부탁드립니다 ㅎㅎ
@@Knowledge_Reader 정보는 정확한게 중요하죠 빠른 수정 감사합니다
정말 궁금했던 내용이네요..시대적으로 최선의 방법이라고 이해 해야겠네요
@@_shabah_ 방패 관통당합니다... 운동에너지가 매우 강해 방패따윈 그냥 뚫어요
@@_shabah_ 기병 돌격을 고작 방패로 막을수 있었다면 냉병기 시대에 굳이 육성이 까다로운 장창병을 굴리는 일도 없었을겁니다..방패 들고 달려드는 차를 막아봐야 의미 없는것처럼 기병 돌격에도 방패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 진짜 궁금했던 것인데 감사해요 ㅋ
재미있게 봐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_^
가오가 육체를 지배했을 때의 끝판왕ㄷ
산개전투는 자기가 잘피하고 잘쏘면 운좋게 살수있다는 헛된희망이라도 있겠지만 저거는 어후..
머스킷의 정확도는 너무 안좋아서 선빵필승은 개뿔 영국군처럼 계속 진군해서 코앞에서 쏘는게 더 좋음 영화가 약간 과장된게 있긴함 그래도 님 말처럼 희망이 없음 ㅠ
@@mil_duck 걍 방패랑 낫 들고 돌격하는게 더 유리할 수 도
그냥 전차로 밀고가는게 가장 안전할듯
@@abc-qf1ms 그때 전차는 없었습니다
@@ll_POWER_ll 당시 머스킷 총은 갑옷도 그냥 뚤려요ㅋ 낫들고 붙으면 총검에 벌집되요
설명에 빠진 이유중 하나가 아직 기병이 현존 하던 시대로 기병의 돌격에 대비하기 위해 전열을 맞추어 대열을 유지 했던것도 이유가 크지요
6:00 있는거 아닌가요?
@@문선재-c7k 아 설명이 있었는데 왜 못들었을까요? ㅎ
과도기 부분을 추가적으로 더붙이자면 저 때 당시 엄폐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던 때라고 합니다
서로 총알을 몇번 주고 받고 하다가 백병전으로 갔으니....
가장 앞라인에 있던 병사들은 주로 신입병사들이라고 하네요 사상자가 가장 많은 라인이기도 하고 뒷라인에는 고참들이 있는데 백병전을 펼치는데
이게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하지만
전투에서 병사들도 사람이었던지라 앞 라인에 있던 병사들이 과도한 압박감과 두려움 때문에 대열이 무너지기도 했지요.
그래서 병사들에게 독한 술이나 마약을 지급해서 복용하고 싸우게 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포병부대가 쑥대밭 만들어놓으면 보병부대가 소총을 쏘고 돌격앞으로 가서 점령하는게 18~19세기 전형적인 전투방식임
이걸 잘한 사람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포병장교출신
나폴레옹 당시에도 이렇게 싸웠어요
@@말이중요해요 전형적인 뜻을 모름?
나폴레옹은 포병의 운용땜에 최강이 된거 아닌가??뛰어난 기동력과 포병 화력의 집중으로 각개격파
@@룰루하잉-x3s 다른 나라들도 따라하겠지 그거보고
나폴레옹이 잘한건 기동과 병력 집중 아님?
참으로 이상했었는데 이젠 좀 이해가....
애초에 머스킷은 창을 계승한 무기에 가까웠으니. 보병을 산개시키면 기병의 먹잇감이 될 뿐이고. 이후 포가 강해지고, 자동화기가 등장, 기병이 쇠락하면서 뭉쳐놓을 이유가 없어졌으니.
ㄴㄴ 머스킷에 총검을 장착하기 까지 백년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saltycola 전술적인 활용이 창을 계승했는거죠
@@saltycola 창병은 무기 숙련도가 부족한 인원들이어도 밀집하면 괜찮은 전투력이 나와서 많이 쓰인거임. 저숙련자? 쓸만한 위력? 딱 총 이야기 아니냐 ㅋㅋ. 그리고 궁수를 계승했다고 하면 궁수는 나름 정예병들인데 걔들을 화살받이로 써가면서 대치하는하는건 어디 전술임??
@@saltycola 활을 계승한건 포입니다만. 활은 곡사무기이고 머스킷은 직사무기입니다. 보병들 뒤에서 곡사로 화력투사했던 활의 역할은 포가 계승하게 됩니다. 머스킷병이 기병한테 썰리는 이유는 장전하고 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이고, 그래서 총검을 부착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대신 머스킷을 사용한건 활에비해 적은 훈련시간과 비교도 안될 파괴력때문에 널리 썼던것이죠,,
활같은경우는 활의 상태도 꾸준히 점검해줘야하고 기후에 민감한편며 초심자의 경우는 쏠때 부상을 안당하면 다행일정도로 난이도가 악랄했기때문에 양성과정도 되게 길었습니다.
그냥 식민지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평민들을 빠르게 병사로 바꿀 수 있게 됬으니 전열 보병 같은 전법이 유지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전투 한 번 할 때마다 선봉은 버려야 하는 전법을 유지할 수가 없음.
@@dri13829 오 그런가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머스켓이 더 기후에 민감할듯
@@김재준-d5f쏠때 말고 관리할때 말하는거
@@dri13829그니까 그걸활로할려그러면 존나오래걸리는데 총은 하루만에가능한거지
1:00 나만 놀랬나...? 진짜 날아오는줄 ㅡㅡ
그놈의 활활 이 지랄 하는데 활이라는게 숙련되는 데에도 오래 걸리고 위력에서는 비교할 것도 없는데 뭔 활이야 ㅋㅋㅋ 서양애들이라고 원거리 무기에 관심이 없는 줄 아나 장궁, 석궁 오질라게 쓰던 애들이 그걸 왜 버렸겠나. 심지어 조선군도 조총 먼저 쏘고 그 다음 활 쏘라고 할 정도면 활
멍청해서그래요ㅋㅋ 활이무슨 백발백중에 무적관통무기인줄 아나봄
@@stivejin9281 일본에 일본도가 있다면 한국은 합성궁으로 망상에 빠져 있음
@@아이리어 일본에선 맨날 카타나로 무쌍찍고 한국에선 활로 무쌍찍는 영상매체들만 나오니 실전에서도 그런줄앎. 카타나 무거워서 체력소모도 크고 합성궁은 열대번 당기면 팔에 무리가는데 ㅋ
실제로 활이 소음무기여서 암살무기로 쓰는것도 목이나 급소로 즉사시키는 명궁이 아닌이상 적들이 비명지름
@@stivejin9281근데 아무리 그래도 일본의 일본도와 비교하기에는 그래도 활이 원거리 무기임.. 게다가 우리나라가 궁사로는 세계 최고라서...
총앞에서는 다 장사없는건 맞는데 그래도 활이 원거리 무기
하나 더 추가하자면....
실탄 사격훈련 자체가 없다시피 했었음..
실제 실탄훈련을 한 부대는 영국 레드코트가 유일하다고 함..
이러니 사격 정확도는 저~하늘로..ㅋ
+부싯돌이 비싸서 돈 아낄려 그랬음.
그리고 레드코트도 사실 상황도 좋지는 않았음....특히 군기강이 해이했다는것도 심각한 수준이었고
@@tonicwater5512 부싯돌도 비쌌지만 영국넘들이 재해권 장악하고 남미에서 넘어오는 초석에 관세? 엄청붙이는 바람에 화약 자체도 무지막지하게 비쌌던걸로......
@@thing386 그것도 그렇고 영국은 애초에 육군을 소수정예로 운영했기에 실탄사격훈련을 자주할 수 있을 조건이 맞춰졌음
또 그렇다보니 전열 라인을 얇게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여왕 생일때 하는 trooping the color를 보면 평균 2.3열로 유지하는데 이는 장전속도와 명중률에 목숨을 건거임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은 창->총 으로 대체했고 활->대포 로 대체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활로 적을 맞출 거리면 이미 한참 전부터 적의 대포 사거리 안에 있는거죠. 상대방이 이미 이쪽 조준해서 포탄 날리고있는데 활 쏴보겠다고 전진해 들어가면 다 죽는거죠.
그럼 전열보병은 포탄사거리 내 아니냐구요?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전열보병은 창병역할 입니다. 창병이 적 포 사거리 내에서 싸우는건 당연한거죠.
커뮤니티에 이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활->대포는 전혀 아님. 활은 보병이 고대 로마식 방패술만으로 막을수있음
투석기등의 대형 무기를 대포가 대체했다고 해야 맞고 정확히말하면 대포는 대포일 뿐임
좀전엔 기병이 랜스돌격을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했다는 낭설 많이 떠들더니 창->총 활->대포 대체론은 아직도 정론처럼 퍼져있네
활->대포 대체론은 나폴레옹 전쟁 양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거임. 활을 대체했다고 할만한건 포병도 전열보병도 아닌 산병(척후병)이 있겠네
창->머스킷 대체론도 절반만 맞음. 중세 석궁은 어디감?
@@letztermensch5571 그럼 석궁의 전술적 가치와 창의 전략적 가치를 둘다 가져갔다고 하면 되나요?
@@Hamtorimusa 넹
오랜만에 봐도 재미있는 영상이네요!!!
전열보병이 단지 구시대 지휘관의 멍청함 때문인줄만 알았는데 나름의 합당한 이유들이 있었네요ㅋㅋㅋㅋ 완전 신기ㅎㅎ 영상 재밌어요! 10분순삭했네요👍👍
맞습니다 ㅎㅎ 그 시대에 계속해서 쓰였던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영상 재밌게 보셨다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
초창기라면 멍청하겠지만 세기단위로 쓰인 전략아닌가요? 멍청할리가요
니가 더 멍청한듯
멍청했으면 어떻게 저걸로 동양 군대들 싸그리 줘패버렸을까요 ㅋㅋ
쉽게 말해서 군대규모의 치킨게임임.
앞줄이 차래로 죽는 치킨게임. 누가먼저 뒤돌아서 도망가냐의 싸움.
치킨먹고싶다...
치킨마렵네
먹고 있지롱
사격한다는 방식때문인지 활머스킷 경합상대로 생각하고 논쟁하는 분들이 많은데 머스킷은 창을 대체하는 용도였던거임 ㄷㄷ
뭉쳐서 맞으려는게 아니라, 사실은 뭉쳐서 쏘려다보니 뭉쳐서 맞을 수밖에 없는...
뭉쳐서 총이나 대포에 맞는 피해보다 흩어져서 기병에게 썰리는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ㅠ
@@ysh2695 사실.. 당시만 해도, 영상에도 있지만 포탄이 날아와서 병사 목을 날리고 있는 수준이긴 하니.
방패병 뒤에 숨어서 쐈으면 안됐나
@@UpanddownQ 아마 그런 총탄 막는 방패의 효율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칼이나 화살이 아니고, 초근거리에서 쏘는 탄환이니.
그거 막을 정도의 방패병이 전열에 배치되면, 영상에도 있는 재장전이나 조준도 많이 불편해졌을 수도 있고.
@@UpanddownQ 일본 전국시대 한정으로 운용하긴 했는데 총이 점점 발전하면서 방패도 뚫어버려요;;
가장 큰건 가성비라는거죠. 평범하게 봤을때 당시 숙련된 궁수를 양성하기 위해선 최소 3년이라고 봤을때 일반 머스킷병은 별도의 훈련 없이도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는 것. 그랬을때 궁수보다 머스킷병이 여러모로 가성비가 높다는 것.
실제로 기병들이 돌격할때 머스킷병은 착검 상태로 방진을 만든 상태에서 사격하면 기병을 저지 할 수 있지만 양성 된 궁수는 그렇지 못 하다는것이 전술적인 측면이 큼.
결과적으로 라인배틀을 진행할때 보병들이 지휘관이 전진 명령을 내리면 병력이 전진하고 지근거리까지 접근하면 최대화력으로 일제 사격하는게 효율이 좋음.
어찌 되었든 사거리가 낮더라도 지근거리까지 들어가서 사격하면 갑옷을 뚫는건 사실이었으니...
임진왜란때 봐도 조선군은 가장 우수한 합성궁을 보유하고 있어 수성전에 매우 유리했지만 우리 국궁은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고 숙련병을 육성하는데 힘드나 조총은 반나절이면 어설프게라도 사용가능했다라는 징비록 기록이 있음 화약무기는 기계식 훈련 반나절이면 사용가능함 그런데 냉병기는 그게 힘듬
오늘도 유익했어요! 넘 재밌어요
구독박았습니다.
목소리도 좋고 내용도 훌륭합니다!
영국 레드코트가 태형을 많이 한게 프로이센한테 배워서 그렇고 프로이센은 용병위주의 부대라 규율을 유지할려면 태형을 안칠수가 없었음..
그리고 레드코트는 무조건 남들이 선빵 놓을때도 계속 전진이라 옆에서 총 맞는거 보고도 적군 장전 할 때 가까이 붙어서 한방 노리게 만드려면 두들겨 패는 수밖에 없었음
프로이센이 용병 위주의 군대라고 하는건 대부분 당시 독일이 통일되지 않아 다른 독일계 국가 병사들을 모집해 군대로 운용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고, 영국이라고 다르진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국민 혹은 자국과 유사한 문화권 인원들을 용병처럼 돈주고 고용한 것에 가깝구요, 이런 군대가 오늘날의 각국 국군과 차이가 있는 점은. 이들이 충성하는 것은 자신을 고용한 국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반면 오늘날 국군들은 해당 국가에 충성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영국군이 태형을 많이 한 이유는 당시 영국 육군의 위치는 해군이 발사하는 포탄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해군의 가혹한 선상 문화가 영국 육군에 많이 반영된 것에 가깝습니다.
@@PikaPi678 유럽해적은 해군출신들.
급여 ㅈ같고 대우도 ㅈ같고...
에이 탈영이나~
@@yhanzisu4932 해적은 해군출신들이 아니라 대부분 무장상선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장상선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경우가 있어서 임시로 해군 지위를 부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구요. 진짜로 국가에서 돈을 들여 건조한 전쟁용 함선들은 국왕이 직접 명령을 내릴 정도로 규율이 엄격한 편이었습니다.
또 무장상선의 해적화는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해적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아시아해적의 대부분은 원거리 항해를 하던 중국이나 일본 상선이 해적으로 진로를 바꾼 경우인 것 처럼요. 그리고 전근대 선원의 대우는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매우 열악한 편에 속했습니다.
@@PikaPi678 그 무장상선된게 영국여왕이 해적불러서 시킨겁니다.
허가받은 해적 사략함대죠.
해군 급여 정말 안좋앗고 대우도 안좋앗답니다.
밀덕 세환기자가 말해준것임.
해적 아무나 하는거 아니죠, 해본놈들이라 잘한거죠.
7:28 신립이 이러한 이유때문에 임진왜란때 문경새재라는 천연요새를 이용하지 못하고 배수진을 펼쳤다고 하네요. 문제는 비온 뒤 생긴 진흙땜시 당시 총병에 강했다는 기병을 활용 못했다는거...
솔직히 군복들은 다들 멋있네요...
그 군복의 멋을 프랑스가 1차 대전까지 포기 못하다가 돈 오지게 깨졌었죠.. 원래 군복은 멋이 아니라 실용성이 좋아야 하는데
@@진우-q7d 오 답글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인데, 확실히 전투에는 멋을 부릴 이유가 없겠군요
@@kennyreview 제복이 더 멋있는 쪽이 진다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니까요 ㅋㅋ..
@@진우-q7d 유럽 군대들은 예로부터 멋을 좀 중시했다고 들었어요 ㅋㅋ
전투에서 병사들 안도망치게 사기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고 그랬다던데요.
전열유지 시키려고 쓰던 방법중 하나라고.
저 전술이 멍청하고 무모해 보이지만 저 전술이 나오고 지구 전체가 서양의 식민지가 되었다. 가장 멍청해 보이지만 가장 최고의 전술인 것이다.
서양처럼 숙련된 총기부대가 없었던게 큰 이유 같네요 군대는 사기 싸움인데 두꺼운 갑옷입고 돌격했다가 총 맞고 픽픽 쓰러져가는 아군 보고 사기가 엄청 떨어져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갔을듯 특히 저 큰 소리와 연기를 처음 접하면 상당한 공포였을거구 무엇보다 해상에선 상대가 안되니... 반은 이기고 들어가는거죠
첨보는데 영상 퀄리티가 좋네요
좋아요 구독 누르고 갑니다
저 당시에는 전열보병이 전술적인 행동이었다는 거겠죠
총이 아니라 30m짜리 창을 들고 있는 셈임 ㅋㅋ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대박나세요
1차세계대전 초기에 기성 지휘관들이 신무기인 기관총의 위력도 모르고 구시대적인 전열보병체제를 버리지않고 기관총진지에 보병들 돌격시켜서 전쟁 발발 초반에 오지게많이죽었었죠
기관총은 남북전쟁부터 크림전쟁 러일전쟁에서도 대규모로 운용했었는데 그럴리가...
@@eugenedelacroix5081 벨 에포크 시기 유럽 군대는 생각보다 굉장히 인식이 보수적이고 낡았음, 남북전쟁이나 크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썼든 안 썼든 자기네들 비슷한 수준의 군대들간에는 그런거 애지간하면 쓰지 않는 걸로 했으니 그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모른다는 것도 한몫 했고.
1862년에 기관총이 개발되었다는데 1차세계대전에 그걸 모르는 지휘관이 있었다니... 이래서 우리나라도 군필 아니면 대통령 뽑지 말아야 돼
@@dijaypark5257그때 장군들은 미필이었나봄? 세상에
기관총의 위력보다는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전투였고 1차대전은 이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서 온갖 시도를 하였죠. 화염방사, 연막탄, 독가스, 고폭탄, 땅굴, 제펄린, 탱크 등 그리고 참호선을 돌파하면 더욱 보급이 어려워지는 문제 등. 기관총을 몰랐다기보다는 참호 돌파 방법을 찾는 과도기였죠.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겁이 많아 병자호란 때 싸워 죽은 이보다 스스로 목 매달아 죽은 이가 많았고 또 피를 싫어해서 전투 중 누군가가 쓰러지면 곧 달아나고 만다' 라고 기록되어 있음. 이걸 말한 사람은 하멜이 아니라 어쩌다 조선으로 표류되어서 조선인으로 귀화하게 된 네덜란드 출신인 벨테브레가(박연) 남긴 말임. 전열보병 방식은 조선에서 가장 필요했던 전술이었던 것.
매우 긴 세월동안 태평성대였으니 그럴만하죠.
지금도 우리나라 미필자들에게 총기 쥐어주고 당장 가서 싸우라 그러면 금방 와해될 겁니다. 군인이 아니니까요.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방금 전까지도 잔뜩 긴장한 채로 주먹 피하던 권투 선수가 쳐들어와서 주먹질 하는데 일반인이 무슨 수로 피하며 당해낼까요.
사실 병자호란은 인조가 잘튀어서 전쟁이 장기전으로 갓다면 이겼을지도 모르죠 당시 조선 군인들의 담력이나 사기문제가 아니에요
당시 청나라가 상황이 좀 안좋아서 그떄 시간 끌렸으면 명나라가 뒤에서 치거나 식량부족해서 뺼수밖에 없었거든요
궁금 했었는데 정말 감사 합니다..
영화 볼때마다....정말 무식하게 싸운다고 생각했고 지휘관이 멍청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내용을 들으니 이해가 가네요....
유럽은 대부분 평지전투라 가능했던거같기도함
그리고 진정한 총알받이들..
ㅇㅇ 산지에선 저런거보단 은엄폐하면서 쏘는 라이플 많이 활용함
전열보병이 유럽에서만 싸웠냐 ㅉㅉ
총알받이 같은 소리하네 중동이나 아메리카 아시아지역에서
전열보병한테 전사자 교환비 상대도 안되게 다 털렸는데
조선도 천혜의 요새라 자랑한 강화도 순식간에 양민학살 수준으로 전멸됨
자 그러면 누가 총알받이지??
@@박경서-l4r 강화도땐 후장식 소총 썼음
@@박경서-l4r 강화도나 아시아, 아프리카는 무기 차이로 진거고; 그리고 전열보병 이라서 이긴게 아니거든? 공성전에서 줄서서 싸우면 당연히 피해가 커지지 그 결과가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포격지원도 안받고 병력 보냈다가 사상자가 40명 나온거고 신미양요 때는 미국이 포격지원으로 광성보를 아예 조져놨으니깐 이긴거지 그리고 애초에 전열보병한테 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조선은 유럽처럼 적 코앞에서 난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120m 가량에서 높은 명중률로 사살하는 방식으로 싸웠기 때문에 당시 강선의 발달로 사정거리와 명중률이 뛰어났던 유럽 소총들이 압살하는 결과가 나온거고, 화기 수준이 비슷한 유럽끼리 싸우면 당연히 총알받이지;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게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아닌가? 무기는 발달했지만 전술은 비슷했기 때문에 1년 만에 사상자가 51만명이 나옴
전투마다 사상자 비율이 10~20% 씩은 나오는데 사실 그 사상자도 화포까지 더해지면 그냥 고기파티 되는거임 일렬로 가다가 쇠구슬에 열몇명씩 죽어나가는데 이게 총알받이가 아닐까? 애초에 나폴레옹 전쟁기 13년 동안 사상자가 최소 500만임 이중 절반이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부상 당했다고 쳐도 13년간 200만 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님..
@@박경서-l4r 병인양요 정족산성 전투에서는 조선군 사상자가 더 적었음.. 머스킷보다 구세대인 조총가지고 프랑스군 조준사격했음
전열보병 이전시기는 전문화된 직업군인, 용병으로 구성된 소규모 전투였습니다.
머스킷이 복잡하고 효율도 떨어지는 무기이긴 하지만 어쨋든 냉병기를 다루는 이전시대 보병, 기병 보다는 훈련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으니 다수로 운영하기 좋았습니다.
이전 국지전 양상과 다르게 전장이 넓어지는 북방전쟁, 7년전쟁, 나폴레옹 시기를 걸치면서 유럽군대들은 이전 소수 직업군인에서 징병된 다수를 운영하는 개념으로 많이 바뀌였죠.
중.근대 전쟁영화 보면서 긍금했는데 궁금증 해결^^~~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ㅎ
정말 좋은 지식이네요.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재장전 개같은 머스킷으로 베테랑은 1분 3발이나 쐈구나 ..
대단하네 ㄷㄷㄷ
저런 전장에서 베테랑이 있다는게 더 신기함
방독면 9초만에 쓰는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려나?
궁금증을 해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