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버싸이드에 살고 있는데 리버싸이드에 한인 타운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디에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그 옛날 이야기 였네요 지금은 한인타운 없습니다 LA 한국타운 처럼 한국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차를타고 가야만 만날수 있는 여기 저기 뚝뚝 떨여져 삽니다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 동상은 리버싸이드 어느 학교에 가면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보고 깜짝놀랐습니다 그리고 리버싸이드 요즘은 너무 너무 변했습니다 그 옛날 오렌지 농장이 많아 봄이오면 그 꽃냄새에 취해 하루종일 그 곳에 머물고 싶었고 운전을 하면 차문을 열어놓고 코를 킁킁 거리면서 냄새를 맞곤 했는데 어느날 불도저가 와서 그 오랜지 나무를 좌다 뽑아버리더니 집을 마구 마구 짓기 시작 했습니다 미국 전국에서 개발이 두번째로 많은 도시가 되었는데 그 덕에 길도 어마 어마하게 넓어지고 집값도 어마어마하게 오르고 한데 길이 너무 막힙니다 얼마나 큰 도시로 변했는지 .... 그리고 오렌지는 역시 리버싸이드 오렌지가 전국에서 젤 맛있습니다 나도 우리집 300 평정도 되는 앞뜰 뒷뜰에 오렌지 나무를 많이 심어 봄이면 꽃향기에 취해 커피한잔을 들고 나와 남편과 밴취에 앉아 마십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그 오렌지 따서 쥬스를 내어 마시고 .. 켈리포니아는 사막지대라서 비가 겨울에만 좀 오고 거의 비가 안오니 산은 벌고숭이지만 습기가 없어 벌래들이 꼬이지 않아 어떤 야채라도 어떤 과일이라도 약을 칠 필요가 없으니 그게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맛있고요
@@Dingo7423 아니예요 그 학교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어느 고등학교에 가면 도산 안창호 기념비가 있어요 나도 몰랐는데 내 조카넘이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퇴학을 당했어요 그러더니 또 퇴학당한 학생이 가는 학교가 있더라고요 그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다시 원래 다니는 학교로 가요 그 학교가 바로 그 고등학교였는데 그 곳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기념비가 있어서 나도 깜짝 놀랐어요 그 학교를 갔다온지가 10년이 넘어 학교 이름이 생각 안나네요 아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겁니다 님이 말씀 하시는 도산 동상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엘에이 산지 30년 넘었는데 이런 역사가 있는줄 몰랐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차이나타운이나 재판타운은 다운타운에만 있고 되게 작거든요. 한타만큼 크고 위치 좋은 이민자 거리가 없을거예요. 저런분들의 노력때문에 가능했군요. 지금 엘에이 한타는 저녁에 가보면 젊은 미국 MZ 세대 애들이 더 많이 보여요. ㅎㅎ 가끔 다른 이민자들이 한타 변두리 지역 자기네 지역구로 떼어달라도 한적 있는데 그때도 지켜냈지요. 한국서 오시면 무슨 80년대 느낌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타운 있어서 참 감사하네요. 요즘 제 2의 한타는 오렌지 카운티의 부에나팍/플러톤 경계선 지역입니다. 한인마켓이 3개나 몰려있지요. 한인분들이 참 대단하네요!!
@@Benjaminlee0919한국이 못살던 시절인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그 당시 뉴욕 뉴저지에는 삼복 삼미 대우 동대문 88 뉴욕종합식품 등 중소규모의 한인슈퍼마켓들이 많았는데, 자금력을 갖춘 한아름(H Mart)의 공격적인 확장으로 중소규모의 한인 슈퍼들은 모두 문 닫았고 H Mart는 미국 캐나다 전역에서 최대의 한인마켓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부익부 빈익빈이 끝까진 간 자본주의 끝판왕 나라가 되어서 미국인들의 70%는 은행잔고가 1,000달러(130만원) 미만입니다.
@@루원주린이TV 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는 1850년까지 2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 지배하의 멕시코 땅이었고,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했을 때 미국이 쳐들어가서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어서 멕시코계 인구가 많습니다. 1950년대까지 미국 서부에서는 백인 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간의 인종대립이 첨예했는데, 1960년대부터 미국이 그곳에다가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여서, 유색인종들간의 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원주민들의 백인 지배층을 향한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다고 합니다.
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는 1850년까지 2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 지배하의 멕시코 땅이었고,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했을 때 미국이 쳐들어가서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어서 미국서부에는 멕시코계 인구가 많고, 그래서 Los Angeles는 스페인어이고, 영어로는 The Angel, 우리말로는 천사 혹은 천사의 땅 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샌프란시스코이다. 당시 길거리에서 미국인들이 둘러서서 구경하는 가운데에 한인들끼리 서로 상투를 잡고 싸우는 광경을 보고 크게 낙담하였다고 한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비록 상투를 잡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추태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산의 민족개조론이야말로 미국의 코리안 커뮤니티가 본받고 발전시켜야 할 정신이다.
리버사이드 스테디움에 세워진 동상들 둘러보다가 도산안창호도 계셔서 반가왔습니다. 그런데 아쉽게 느낀점이 타동상의 인물들은 업적이 쓰여져 있는데 도산동상엔 기부자 명단뿐이에요. 동상을 둘러보는 이들의 관심과 궁금증이 과연 의문의 동양인 동상의 주인공 업적보다 한인기부자일까요?
이민자로 새로 유입이 된 집단이라면 기존에 터 잡고 살아온 다른 인종들과 어울리고 융합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마땅합니다. 한인들이 그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사건이 LA폭동 사건이었구요. 또다른 요인을 들자면, 미국의 대륙 크기와 한국의 사이즈를 주목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보다 큽니다. 좁은 땅에 너무 이질적인 문화가 섞이면 사회 통합에 위협적인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정부에서 외국인 기술 인력을 허가할 때도 특정 국가나 종교 집단이 과도한 퍼센트를 차지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는 1850년까지 2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 지배하의 멕시코 땅이었고,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했을때 미국이 쳐들어가서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어서 미국 서부에는 멕시코계 인구가 많고, 그래서 Los Angeles는 스페인어이고, 영어로는 The Angel, 우리말로는 천사 혹은 천사의 땅 입니다. 1950년대까지 미국서부에서는 백인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간의 인종간 대립이 첨예했는데, 1960년대부터 미국이 그곳에다가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여서, 유색인종들간의 인종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백인지배층에게 튈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이 못살던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그분들의 한국문화와 한국정서는 그 시점에서 멈추어 버렸기 때문에, 미국의 코리아타운을 가보면 70~80년대의 한국 같습니다. 이민 1세들은 고령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이민 2~3세가 주류를 이루어가면서 그들은 한국 본국과는 별 상관없는 미국에 동화되어 가고있는 유색인종 아시아계 일 뿐입니다.
@@keehakhwang324 한국이 못살던 시절인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지금 한국은 세계경제 10위 정도의 나라가 되어서 미국이민보다는 역이민 숫자가 더 많습니다. 미국의 한인사회는 문화적으로 혼돈상태에 놓여져 있는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점이 이민생활의 가장 힘든 점입니다.
그렇지만도 않은데. 그리고 7-80년대에 이민이 많았던 건 힘들었서의 이유도 있었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는 해외여행조차도 금지였었을 정도로 외국에 나가는 거 자체가 힘들어서의 이유도 있었어요. 그리고 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가족이민초청이 허가가 나서 그 여파로 미국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많기도 했었고.
@@seomelong1950년대까지 미국서부에서는 백인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간의 인종간 대립이 첨예했는데, 1960년대에 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이민확대를 결정해서 1970년대부터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미국서부의 원주민들인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인구수를 절반이하로 떨어뜨리고 유색인종들간의 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원주민들의 백인지배층을 향한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제 LA 한인타운는 위험하고 거지많아서 여기 한인들도 잘 안갑니다. 오히려 30분 밑에 오렌지카운티 안에 있는 부에나팍에 새로 한인타운이 생겼습니다. 거지 없고 안전하고 학군(플러튼, Cypress) 좋아서 엘에이 한인들이나, 한국에서 오시는분들도 바로 부에나팍/플러튼쪽으로 오시는분들이 많아요.
LA 이민사의 실질적 시작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비로소 영세 자본가가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력이 여전히 미흡해 1979년 흥사단 건물을 핋리핀계 미국인이 구입할 때 그 역사적 건물을 지키지 못 할 정도였다. 이희덕을 언급하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독 광부 파견 시대의 한 명으로서 독일 국적을 이용해서 쉽게 미국 이민을 했고, 가져 온 돈 8천달러에 대출 받아서 1만6천달러에 20평 남짓한 망해가던 식품점을 백인에게서 인수하여 의외로 많은 현금을 벌기 시작했고, 이후 옆 칸을 잡아 먹어 나갔던 이유는 LA에 사는 30만명에 육박했던 한국계 미국인의 전용 식품점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희덕의 올림픽 식품점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여서였다. 국내 언론이 당시 대서특필했을 정도였으니, 안창호 때의 농장 노동자의 가난함은 상권을 형성할 수 없었다.
@@Justdoit_just_do 이민과 노동력을 필요로하던 당시 미국상황에선 반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주제의 관점에서보자면 당장에 노동력과 인구감소가 해결되지않는 단일민족국가에서 이슬람사원과 차이나타운이 들어서는것에대해 반감을 가지는건 생각을 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언제까지 지속될것인가와 그 개념이 가져다주는 앞으로의 대한민국 현실에 적용해서 필요한가 불필요한가에대해 고민해본다면 답이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어떻게 지켜나갈것인지 불필요하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잡음들을 최소화하며 실행해나갈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있었으면 하네요..😅
리버싸이드 살아 보셨어요 7.8십년대 이야기를 하시네요 15년전부터 인가 20년전인가 부터 리버싸이드 전국에서 2번째로 개발하는곳입니다 그래서 큰도로에다 동네마다 경비원이 차를 타고 사찰하면서 다니도 진짜 깨끗하고 큰 도시입니다 LA와 다른곳에 사는 사람들 리버싸이드 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와 보고는 기절초풍 하더라고요
@@양엔젤라 어디든 부촌이 있고 빈촌도 있어요. 제 말은 그래요. 리버사이드 카운티 전체를 대체로 입에 올리면 그렇다는 쪽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아직도 집을 지을 땅이 있는 곳이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있다지요. 테메큘라, 무리에타 지역은 미국 내 범죄 없이 안전한 도시로 1-3 위를 하기도요. 하지만!!!! 옆, 샌디에이고 카운티가 날씨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살기 원하지요.리버사이드 시 다운타운은 아무래도 오래되어. 기분 상하셨다면 제 가 다 알지 못해 그런 댓글 달았을거라고 미안합니다 . 하지만 여전히 리버사이드 시내엔 살고 있지 않고 , 다만 리버사이드 카운티 내 도시에 산답니다 .
하와이-조선 중매 방법ㄷㄷ;; 사진 신부👉th-cam.com/video/GQts1-sAmnE/w-d-xo.htmlsi=gQyteFMKQ-oYiV-4
안창호 선생의 애국심이 대단하셨네요..몰랐던 한인의 역사를 알게 대여 감사합니다..🇰🇷🇰🇷👍👍👍✌
안창호 선생님이 많은것을 하셨네요 역사책에서 독립운동가 정도만 배운것 같은데.....존경합니다....
옷 정말 중요하고 깨끗한 몸가짐이 중요한게 유럽에서 한국인의 이미지가 좋은 이유도 한국인들은 세련되고 깔끔하고 티가 난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리버싸이드에 살고 있는데 리버싸이드에 한인 타운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디에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그 옛날 이야기 였네요 지금은 한인타운 없습니다 LA 한국타운 처럼 한국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차를타고 가야만 만날수 있는 여기 저기 뚝뚝 떨여져 삽니다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 동상은 리버싸이드 어느 학교에 가면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보고 깜짝놀랐습니다 그리고 리버싸이드 요즘은 너무 너무 변했습니다 그 옛날 오렌지 농장이 많아 봄이오면 그 꽃냄새에 취해
하루종일 그 곳에 머물고 싶었고 운전을 하면 차문을 열어놓고 코를 킁킁 거리면서 냄새를 맞곤 했는데 어느날 불도저가 와서 그 오랜지 나무를 좌다 뽑아버리더니 집을 마구 마구 짓기 시작 했습니다
미국 전국에서 개발이 두번째로 많은 도시가 되었는데 그 덕에 길도 어마 어마하게 넓어지고 집값도 어마어마하게 오르고 한데 길이 너무 막힙니다 얼마나 큰 도시로 변했는지
.... 그리고 오렌지는 역시 리버싸이드 오렌지가 전국에서 젤 맛있습니다 나도 우리집 300 평정도 되는 앞뜰 뒷뜰에 오렌지 나무를 많이 심어 봄이면 꽃향기에 취해 커피한잔을 들고 나와 남편과 밴취에 앉아 마십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그 오렌지 따서 쥬스를 내어 마시고 .. 켈리포니아는 사막지대라서 비가 겨울에만 좀 오고 거의 비가 안오니 산은 벌고숭이지만 습기가 없어 벌래들이 꼬이지 않아 어떤 야채라도 어떤 과일이라도 약을 칠 필요가 없으니 그게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맛있고요
요즘 LA 한인타운에 노숙자들이 몰려와서 난리라는데...
내가 리버사이드에 오래 살았었는데, 작고한 홍명기씨가 주도한 모금으로 도산 동상을 세웠는데 학교가 아니라 Mission inn 호텔 근처에 있음. 지금은 노숙자와 불체자들이 너무 많아서 도시자체가 위험하고 보더타운 처럼 변했음.
@@Dingo7423 아니예요 그 학교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어느 고등학교에 가면 도산 안창호 기념비가 있어요 나도 몰랐는데 내 조카넘이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 퇴학을 당했어요 그러더니 또 퇴학당한 학생이 가는 학교가 있더라고요 그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다시 원래 다니는 학교로 가요 그 학교가 바로 그 고등학교였는데 그 곳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기념비가 있어서 나도 깜짝 놀랐어요 그 학교를 갔다온지가 10년이 넘어 학교 이름이 생각 안나네요 아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겁니다
님이 말씀 하시는 도산 동상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얼바인에 살고있어요~ 리버사이드 놀러가보고 싶네요~
@@Dingo7423 어는 학교에 있는건 잘 모르겠고 Downtown Pedestrian Mall 에 동상있는건 확실함.
엘에이 산지 30년 넘었는데 이런 역사가 있는줄 몰랐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차이나타운이나 재판타운은 다운타운에만 있고 되게 작거든요. 한타만큼 크고 위치 좋은 이민자 거리가 없을거예요. 저런분들의 노력때문에 가능했군요. 지금 엘에이 한타는 저녁에 가보면 젊은 미국 MZ 세대 애들이 더 많이 보여요. ㅎㅎ 가끔 다른 이민자들이 한타 변두리 지역 자기네 지역구로 떼어달라도 한적 있는데 그때도 지켜냈지요. 한국서 오시면 무슨 80년대 느낌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타운 있어서 참 감사하네요. 요즘 제 2의 한타는 오렌지 카운티의 부에나팍/플러톤 경계선 지역입니다. 한인마켓이 3개나 몰려있지요. 한인분들이 참 대단하네요!!
시온 한남 h마트
혹시 뉴저지랑 그랜달 가보셨나요?
@@Benjaminlee0919한국이 못살던 시절인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그 당시 뉴욕 뉴저지에는 삼복 삼미 대우 동대문 88 뉴욕종합식품 등 중소규모의 한인슈퍼마켓들이 많았는데, 자금력을 갖춘 한아름(H Mart)의 공격적인 확장으로 중소규모의 한인 슈퍼들은 모두 문 닫았고 H Mart는 미국 캐나다 전역에서 최대의 한인마켓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부익부 빈익빈이 끝까진 간 자본주의 끝판왕 나라가 되어서 미국인들의 70%는 은행잔고가 1,000달러(130만원) 미만입니다.
저도엘에이에 65년살았는데 안창호님께서 만드신건진 몰랐네요
@@루원주린이TV 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는 1850년까지 2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 지배하의 멕시코 땅이었고,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했을 때 미국이 쳐들어가서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어서 멕시코계 인구가 많습니다. 1950년대까지 미국 서부에서는 백인 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간의 인종대립이 첨예했는데, 1960년대부터 미국이 그곳에다가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여서, 유색인종들간의 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원주민들의 백인 지배층을 향한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을 말할땐 만주쪽을 주로말하지만 미국교포들도 상당히 중요히 역활을 햇던거임 사람이 하는일은 뭐든 돈이 없으면 못하니
할
만주에서 마적단, 폭력배들이 독립운동가 행세를 했죠. 독립운동가 김일성의 이름을 사칭한 김성주 일가가 그 예죠.
도산안창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깔끔한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가 한인타운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것도 같네요~
단체로 찍은 사진을 보니까 다들 깰꼼하고 입고 있는 옷들도 빳빳하고 단정하네요.
한국 사람들의 성실 하고 예의 바르고 조국을 지키는 기개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진짜 누군가의 위대한 성과로 인해 지금이 유지된다는 걸 느끼게 되네요
LA에서 안창호 로드를 본적이 있는데
뜻깊은 역사가 있었군요
안창호 우체국도 있서요
안창호님 큰아들 필립안(Phillip Ahn)은 한인으로서 첫번째로 헐리우드 배우에 성공한분이죠. LA는 다문화 도시라서 도산 안창호라는 고속도로구간도 있습니다.
또한 안창호 선생의 장녀인 안수산(Susan Ahn)은 미국 해군장교로 임관한 첫 아시아계 여성이었죠.
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는 1850년까지 2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 지배하의 멕시코 땅이었고,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했을 때 미국이 쳐들어가서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어서 미국서부에는 멕시코계 인구가 많고, 그래서 Los Angeles는 스페인어이고, 영어로는 The Angel, 우리말로는 천사 혹은 천사의 땅 입니다.
''다문화도시'라서' 음,.
@wons5183 그닥
안수산님은 미국의 안보기관인 NSA에서 수백명을 지휘감독 했던 최초의 고위급 한국인이었습니다.
도산공원에 기념관갔을때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셨던걸 처음알게됬었는데 다양한 일을 하셨네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샌프란시스코이다. 당시 길거리에서 미국인들이 둘러서서 구경하는 가운데에 한인들끼리 서로 상투를 잡고 싸우는 광경을 보고 크게 낙담하였다고 한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비록 상투를 잡지는 않지만 그와 비슷한 추태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산의 민족개조론이야말로 미국의 코리안 커뮤니티가 본받고 발전시켜야 할 정신이다.
안창호가 민족개조론 그랬다고?
그래. 그 개조론은 2024년에 절실하구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이런 일까지
새마을운동은 안창호선생님이 창시자네
이렇게 소중한 이야기를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구자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해야겠네요😮
보면 볼수록 훌륭하신 분
안창호선교사님..
존경합니다.
이민자들의 역사에대해 재미나게 들었어요
이런 역사가 있군요.한인커뮤니티위해 애쓰신 분들.멋지십니다.
90중반 일땜에 LA자주 갔었는데,코리안 플라자SAs 엄미신발사드리고 밑에 한국드라마 예능 비됴가게 있고 떡집.서점있고.,호돌이 분식이랑 소공동 순두부도 생각나네요.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니..아쉽네요..
진짜 안창호선생님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옴.
1982년 1월에 이민, 지금 나온 올림픽에 몇개 없었던 가게들이 기억나죠. 지금은 너무 많은 인종들이 모여서 살고있는 non-KTown이 되어있네요.그래도 초, 중, 고를 엘에이에서 자란 1.5세들한텐 이곳이 고향이네요.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하게 지켰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못살던 시절인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이민1세들은 고령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이민 2,3세가 주류를 이루어가면서 그들은 한국 본국과는 아무 상관없는 미국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 유색인종 아시아계 일 뿐입니다.
잘 봤습니다 🍂🌾
평화를 빕니다 🙏
안창호 선생의 애국심이 대단하셨네요..몰랐던 한인의 역사를 알게 대여 감사합니다..🇰🇷🇰🇷
리버사이드 스테디움에
세워진 동상들 둘러보다가
도산안창호도 계셔서 반가왔습니다. 그런데 아쉽게 느낀점이 타동상의 인물들은 업적이 쓰여져 있는데
도산동상엔 기부자 명단뿐이에요. 동상을 둘러보는 이들의 관심과 궁금증이 과연 의문의 동양인
동상의 주인공 업적보다
한인기부자일까요?
조세호씨 영어발음 너무 좋으시네요
ㅋㅋㅋㅋㅋ뭔가햇네
북창동이 최초는 아니였죠. 베벌리 순두부가 먼저 있었고, 거기서 일하던분이 건너편에 소공동 순두부를 차리고 그후에 북창동 순두부가 나온걸로 기억합니다. ㅎㅎ
저는 올림픽 연경 짜탕 인것 같네요 일하는 친절한 맥시코 아저씨도. 👍
맞아요 북창동은 원조가아니죠 ㅋㅋ 베벌리가 아마 조기구이 주는게 시초였나? 그럴껄요 북창동 곱창순두부는 맛있는데 맨해튼 지점엔 없더라고여
븍창동은 소공동 그대로 키피입니디.
메뉴까지 똑같이 카피했지요.
븍창동은 마케팅을 잘한거임
소공동순두부집 유명했는데 강도에게 집털리고나서 북창동생기고 급락했죠....예전 소공동집 젓갈맛있었는데....
I remember all those places bc we came to US in 1972
아~ 눈물난다.. 살 때는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었는 데. 내인생의 한 부분이 저기 있었구나
2002년 즈음에 올림픽 블리바드에 위치한 LA한인타운 가봤었는데 진짜 깜놀.
당구장 중국집 김밥천국 등등..한글 간판에 한국인들 뿐임. 그냥 한국이었음. 지금도 있나 모르겠네 한남체인이라는 대형 마트..
엘에이한인타운 게토입니다. 멕시칸통네랑 흑인동네사이에있음. 노숙자많고 미국은 좋은동네는 다운타운이랑 멀수록 좋음
게토까진아니죠 또 다운타운도 전혀아닌데...코타는 윌셔라는 파이넨셜디스트릭도있고 코리아타운서쪽은 엄청난부촌이고 코리아타운내의 싱글집들도 지금은 다 1.5밀정도씩인데 게토라뇨.....토이디스트릭이나 다운타운이 게토죠. 문론 게토처럼 지져분한곳도있고하지만....
Koreatown 표지판은 김명균 한인회장이 달있습니다....
18:19 한인타운에 맨처음 생긴 순두부 집 북창동순두부 아니예요
올림픽이랑 벌몬 가까이에 있던 순두부 집이 1호점이었습니다. 몇 년 전 문 닫긴 했지만
심지어 LA 한식당이 서울의 웬만한 곳보다 푸짐하고 맛있음. 단, 불친절 ~~~~
중국인과 확실히 다른것이 시민의식 도덕 예의 청결
대단하신 분들...ㅜㅜ
Shalom. Hallelujah
LA 북창동 순두부는 재료가 풍부해서 맛이 좋았어요.
라성에 가면 편지를 써주세요.~!
미국은 중심지보자 시외각에 부촌이 많습니다 한국가는 다르죠 또한부촌 주의에 흑인.히스패닉동네 이렇게 형성되었있죠
한인타운이 형성되는 지역은 공항이나 항구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거리상 슬럼화된, 가격이 저렴한 곳에 형성되더라구요.
지금은 없어졋지만 6가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 이름이 걸린 USPS 우체국도 있었죠. 상가 아파트 짓는다고 제이미슨 프로퍼티가 밀어버렸지만요 ㅠ
코리아타운 가보고 싶네요^^
안선생님과 독립운동 하시던 분들 고생 많이 하셨네....
그는 ..신이야❤
이민자로 새로 유입이 된 집단이라면 기존에 터 잡고 살아온 다른 인종들과 어울리고 융합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마땅합니다. 한인들이 그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사건이 LA폭동 사건이었구요.
또다른 요인을 들자면, 미국의 대륙 크기와 한국의 사이즈를 주목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보다 큽니다. 좁은 땅에 너무 이질적인 문화가 섞이면 사회 통합에 위협적인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정부에서 외국인 기술 인력을 허가할 때도 특정 국가나 종교 집단이 과도한 퍼센트를 차지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텍사스 부터 캘리포니아 까지는 1850년까지 200년동안 스페인 식민지 지배하의 멕시코 땅이었고,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막 독립했을때 미국이 쳐들어가서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이어서 미국 서부에는 멕시코계 인구가 많고, 그래서 Los Angeles는 스페인어이고, 영어로는 The Angel, 우리말로는 천사 혹은 천사의 땅 입니다.
1950년대까지 미국서부에서는 백인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간의 인종간 대립이 첨예했는데, 1960년대부터 미국이 그곳에다가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여서, 유색인종들간의 인종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백인지배층에게 튈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다고 합니다.
동감합니다. 트럼프가 한국계미국인 구출했을때 땅큐도 못하는게 한국계미국인입니다
미국에선 말도 못해서 한국사람들 등치다가 한국에와서는 혀바닥 굴리고 한국말 못하고 영어잘하는척만합니다. 미국에서 뭘알아야지말입니다. 영어도 한국영어를 쓰니 칠뜩이로 취급합니다. 칠뜩이하고 속뒤집어져서 친구하고 싶겠습니까 융합할생각을 안합니다. 다들 너무잘나서요
@@utopiakorea9021 92 폭등은 바로 백인에게 피해가 올까봐서 또 다른 유색인종인 한인을 이용해서
한vs 흑 갈등으로 연출한것임!
자뻑이네 국뽕이네도 문제지만, 과도한 죄의식과 자학은 더더더 문제다!!!
조세호씨가 스타일 조금 바꾸더니 많이 똑똑해지셨네여. 잘 보고 갑니다.
지금 그 LA의 한인분들이 텍사스나 다른 주들로 이동중.... 미친 물가땜시
지금은 달라스 애틀랜타 아리조나 포틀랜드등 여러 지역으로 많이 떠나고 있죠
캘리포니아가 넓긴 넓지
엘에이 한인타운이 독보적이지만
좀 미국 생활 적응하면 엘에이 안에도
글렌데일, 라크라센타 ,버뱅크 ,파사데나등등
오렌지 카운티로 내려가면
부에나팍, 토렌스 ,세리토스, 플러튼 ,얼바인
브레아, 부에나 팍, 토렌스 등등
벤츄라 카운티도 한인 사람 많은거로 알고 있음
오렌지 카운티 전체가 한인들 대표 거주지역이죠 🍊
한국이 못살던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그분들의 한국문화와 한국정서는 그 시점에서 멈추어 버렸기 때문에, 미국의 코리아타운을 가보면 70~80년대의 한국 같습니다. 이민 1세들은 고령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이민 2~3세가 주류를 이루어가면서 그들은 한국 본국과는 별 상관없는 미국에 동화되어 가고있는 유색인종 아시아계 일 뿐입니다.
맞습니다. 김우중 회장 말씀대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지요.
꿈을 가진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어나가야지요!
짱개인가?ㅋㅋㅋ요즘은 어떻게든 혈연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각국이 눈이 벌건데 있는혈연도 속좁은 안목으로 걷어차는 매국노심보 외교력이 외교관만 파견하면 생기는줄아나 ?
@@keehakhwang324 한국이 못살던 시절인 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많이 갔었고, 지금 한국은 세계경제 10위 정도의 나라가 되어서 미국이민보다는 역이민 숫자가 더 많습니다. 미국의 한인사회는 문화적으로 혼돈상태에 놓여져 있는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점이 이민생활의 가장 힘든 점입니다.
그렇지만도 않은데.
그리고 7-80년대에 이민이 많았던 건 힘들었서의 이유도 있었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는 해외여행조차도 금지였었을 정도로 외국에 나가는 거 자체가 힘들어서의 이유도 있었어요. 그리고 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가족이민초청이 허가가 나서 그 여파로 미국으로 넘어간 사람들도 많기도 했었고.
@@seomelong1950년대까지 미국서부에서는 백인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들간의 인종간 대립이 첨예했는데, 1960년대에 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이민확대를 결정해서 1970년대부터 한국 중국 인도 필리핀 등으로부터 이민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미국서부의 원주민들인 멕시코계 미국인들의 인구수를 절반이하로 떨어뜨리고 유색인종들간의 분쟁을 먼저 일어나게 하여서, 원주민들의 백인지배층을 향한 인종저항의 불똥을 비켜가겠금 만들었다고 합니다.
ㅣ요즘 노숙자문제도 그렇고 무법자천국이 되어가는것 같아 안타까워요..
근데 내가 가봤을때는 미국 흑인 슬럼가랑 겹쳐있어서 굉장히 위험한곳이었는데 요즘은 좀 다른가??
지금은 la코리아 타운이 노숙자문제 범죄등 많이 안좋은 상황이에요
LA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생가도 있을만큼 되게 유명한대.. 모르는척하는건지 모르는건지... 특히 토니는 미국에서 살다왔는데..
진짜로 모르는거임 요즘 교포는 LA에 안창호도로 있는데 그 도로가 안창호 도로인지도 모름 아니 관심 없음
지금 코리아타운은 슬럼화가 진행중
영빈관...
이제야 생각 나네요.
예전엔 잘 나가던 쎈터였죠.
김동명 목사님, 안이숙 사모님이 개척한 로스앤젤스 한인 침례 교회(1950년대 후반 개척)도 한인들이 지금의 한인 타운에 모이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초기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이 이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아 이민 생활에 정착하곤 했죠.
도산 안창호 선생이 큰일 을 하신거다..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지리까지 읽으신 현자셨다.....
이제 LA 한인타운는 위험하고 거지많아서 여기 한인들도 잘 안갑니다. 오히려 30분 밑에 오렌지카운티 안에 있는 부에나팍에 새로 한인타운이 생겼습니다.
거지 없고 안전하고 학군(플러튼, Cypress) 좋아서 엘에이 한인들이나, 한국에서 오시는분들도 바로 부에나팍/플러튼쪽으로 오시는분들이 많아요.
부유한 곳으로 한인타운이 이동한게,
한국의 발전과 교포들 노고인거 같아
왠지 뿌듯하네요
그렇게 따지면 겁나많지 세리토스 ,토렌스, 브레아, 등등
@@요지부동-y9b 거기에 코리아타운이라도 안하자나 ㅋ 한인 인구와 인프라가 비교적 별로 없으니
부애나팍이 캘리포니아 세번째 공식 코리아타운이죠 그쪽이 새건물들이라서 깨끗하고 인기가많죠 그전에는 가든 그로브가 인기가많았구요
LA 남부 신도시 얼바인도 한국인들과 한국식당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 북적대는 곳은 다 부촌들 입니다.
동부는 뉴저지에 많이 살고 있다고 하던데 거기는 유래가 있음?
그쪽은 한인 이주 역사가 궁금하긴하네요
노른자 땅이라고 하기엔 흑인들한테 너무 털리는거 아님?
참고로 저기서 언급한 오리지날 북창동순두부는 한국에 많이 퍼진 북창동순두부(DKkore)가 아닌 BCD tofu 북창동 순두부 입니다
지금은 DKkore가 두배정도 지점이 많을겁니다
작금의 이 참담한 대한민국을 어찌 하오리까 선열들이여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역사가 정말 많네요~~~
독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네요
힘든 막노동으로 쉬지않고 일해서 번 고귀한 돈을 독립자금으로 보내주신 안창호 선생님과 한인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친일파들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내용은 재밋고 좋은데, 진행이 답답하고 늘어지는 느낌이네요. 먼가 0.8 배속 하는 느낌
대단하시다
LA 이민사의 실질적 시작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비로소 영세 자본가가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력이 여전히 미흡해 1979년 흥사단 건물을 핋리핀계 미국인이 구입할 때 그 역사적 건물을 지키지 못 할 정도였다. 이희덕을 언급하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독 광부 파견 시대의 한 명으로서 독일 국적을 이용해서 쉽게 미국 이민을 했고, 가져 온 돈 8천달러에 대출 받아서 1만6천달러에 20평 남짓한 망해가던 식품점을 백인에게서 인수하여 의외로 많은 현금을 벌기 시작했고, 이후 옆 칸을 잡아 먹어 나갔던 이유는 LA에 사는 30만명에 육박했던 한국계 미국인의 전용 식품점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희덕의 올림픽 식품점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여서였다. 국내 언론이 당시 대서특필했을 정도였으니, 안창호 때의 농장 노동자의 가난함은 상권을 형성할 수 없었다.
노른자 땅이 아니고 흑인 동네랑 가까운데라 비싼 지역이 아니지요 비싼 지역은 백인들이나 주이시 들이 샀거나 차지 하지요. 멕시칸들도 많이 살고. 유투버가 잘못알고 있네.
이혜성씨 너무 예쁘다
17:18 모아미용실은 gta5 에서 코리아타운에도 나오는거 같은데?
조금 더 있으면 한인없는 한타가 될수도…😢 들어오는 한인은 없고 점점 빠져나가네요
그런 LA가 지금은 망해가고 있음. 물가만 겁나 비싸고 요즘은 코타플도 점점 빈 가게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고 …
일본인이 운영하던 마켓은 아시안 마켓이 아니었나요???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한데.. 글쎄요.. LA에 크게 자리를 잡았으면 영화사업 같은 거에 참여를 해서 열심히 일을 하셔야 되는데.. 한인들이 열심히 하실 거라 믿습니다.
노숙자 문제를 해결해야....
영빈관 지금은 멕시코 식당이 들어갔어요. ㅠㅠ
노른자 땅이지만 대표적인 홈레스
지역
우리나라에 차이나타운 들어서고 이슬람사원 세우는건 기겁하는게 현실인데 미국에 코리아타운세운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게 뭔가 아이러니하다.
학교에서도 짱은 위에서 조용히 있음 밑에 얘들이 더 시끄럽지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에다가 이민국가가 아니고 미국은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이민국가이니까 반응이 다르지
@@nike2399 과연 그럴까요?
@@YDH9686그럼 어떻게 생각하세요?
@@Justdoit_just_do 이민과 노동력을 필요로하던 당시 미국상황에선 반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주제의 관점에서보자면 당장에 노동력과 인구감소가 해결되지않는 단일민족국가에서 이슬람사원과 차이나타운이 들어서는것에대해 반감을 가지는건 생각을 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그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언제까지 지속될것인가와 그 개념이 가져다주는 앞으로의 대한민국 현실에 적용해서 필요한가 불필요한가에대해 고민해본다면 답이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어떻게 지켜나갈것인지 불필요하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잡음들을 최소화하며 실행해나갈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있었으면 하네요..😅
북창동 순두부 한국 가게들보다 맛있읍
LA 북창동 순두부가 한국 순두부 보다 더 맛있음^^;
응 아니야
전혀 아닌데 ㅋㅋㅋ
개소리야ㅋㅋㅋ
여기 순두부가 한국 순두부 보다 맛있는건 모르겠지만 실제로 외국의 한식당 음식이 국내 왠만한 곳보다 맛있는식당이 많다는건 팩트임
엘에이가 한국 왠만한데 보다 음식이 훨 맛있긴함 ㅋㅋㅋ근데 조미료 탕이라 먹고나면 잠이 쏟아졌던기억이 납니다 ㅋㅋㅋㅋ
la코타가 언제부터 노른자 였는지 궁금하네요. 00년대 중후반 cj가 진출하면서 그나마 좀 좋아지다가 팬더믹 이후로 스키드로 천국됨ㄹㅇㅋㅋ
엘에이 외곽지역 부촌 집값 오른거랑
한인타운 집값 오른거랑 비교하면 한인타운이 더 올랐서요
지금 다 뺐겼다고 하더라구요.
독립자금. 감사
죄송합니다 얼핏 조세호인줄 알았네요
안창호 규칙
9시소등 ㆍ내복입은채로나가지말고
깨끗이청소
더럽게하고다니면 독립국가될자격없다 로
지혜로운 안창호선생
이로 LA코리아타운
세계절 큰
Billy Joel의 Piano Man 이 탄생한 한인타운.
이 기사에나온 최초 발견자가 제 아내입니다
잼있네요
리버사이드 카운티는 현재 부촌이 없어요. . 근처 오렌지 카운티에 한인 타운이 있고 더 가면 엘에이 카운티 입니다. 샌버나디노, 헤멧, 마약의 거리는 위험합니다.스페니쉬와 가난한 이들이 대체로 집약된 카운티죠.
리버싸이드 살아 보셨어요 7.8십년대 이야기를 하시네요 15년전부터 인가 20년전인가 부터 리버싸이드 전국에서 2번째로 개발하는곳입니다
그래서 큰도로에다 동네마다 경비원이 차를 타고 사찰하면서 다니도
진짜 깨끗하고 큰 도시입니다 LA와 다른곳에 사는 사람들 리버싸이드 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와 보고는 기절초풍 하더라고요
@@양엔젤라 어디든 부촌이 있고 빈촌도 있어요. 제 말은 그래요. 리버사이드 카운티 전체를 대체로 입에 올리면 그렇다는 쪽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아직도 집을 지을 땅이 있는 곳이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있다지요. 테메큘라, 무리에타 지역은 미국 내 범죄 없이 안전한 도시로 1-3 위를 하기도요. 하지만!!!! 옆, 샌디에이고 카운티가 날씨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살기 원하지요.리버사이드 시 다운타운은 아무래도 오래되어. 기분 상하셨다면 제 가 다 알지 못해 그런 댓글 달았을거라고 미안합니다 . 하지만 여전히 리버사이드 시내엔 살고 있지 않고 , 다만 리버사이드 카운티 내 도시에 산답니다 .
미국 최고의 부촌이 리버사이는 아니었죠
지폐에 들어가야할 위인 1순위 안창호
뉴라이트 집단의 뿌리를 뽑아버려야하는 이유.
독립자금 오렌지딸때마다
독립을위한 의미있는 노동
역시 혜성이 똑똑하고 사랑스러워❤
혜성이?
지금 한타는 너무 낙후되었고 좋지 않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겁니다
미국 한인타운에 전통한옥마을이 있다면 좋을텐데;
이승만은 허구인거지. 한게 없어 프란치스카와 독립자금으로 데이트나 했다고하드만
안창호 선생님이야 진정한 애국자임 강남에 도산공원과 도산대로가 왜 있는지 알수 있음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
거긴 죽었고 이젠 부에나팍이지
가든그로브는 올드 코리아타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