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다는 고대 모든 종족은 몸방어구는 안할지언정 무조건 머리보호구는 필히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두건이라도 꼭 쓰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지죠. 근데 문제는 장시간 착용하고 전쟁이 지속되면 무족건 지루성 탈모든 유전적으로 탈모가 없던 있던 두피가 상해 탈모가 걸린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있지요. 더군다나 오늘날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보면 탈모이신분들 많습니다. 샴푸가 있고 퇴근하고 샤워를 해도 많이 걸리시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실용적 선택인듯 합니다.
여진족은 지역에 따라 수렵과 농경 유목의 비중이 각기 다른 생활양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어도 부족에 따라 다른 경우도 많았구요. 만주 서북부는 몽골지역에 가까워 유목적 성격이 강했던 예허부족이 있었고, 압록강과 두만강 바로 넘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남만주 지린성과 요녕성부근에는 바로 누르하치가 지배하던 건주여진이 있었고 지금의 사할린 쪽에는 건주여진마저 야만시했을 정도로 많이 미개했던 야인여진이 터잡고 살았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인구도 그나마 많고 사회조직도 발달했던 곳이 건주여진이었고 건주여진은 수렵과 농경(물론 조선의 농경수준에 많이 뒤떨어지는 생산력과 기술수준)과 부분적인 방목(말과 소, 특히 돼지)이 성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요동의 명나라세력과 바로 남쪽과 조선과 인접해있다는 사실때문에 명과 조선과의 무역이 성행하였고 특히 명의 이성량이 지배하던 요동지역과의 조공무역쿼터를 독점하다시피했다는 사실이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여 이 건주여진을 예허부족 중심의 해서여진과 야인여진보다 훨씬 더 강성하게 해주었던 겁니다. 그리고 본래 여진족들은 초원지대의 투르크, 거란족들과는 달리 이동도 거의 하지 않고 자기네 촌락에 정주생활하면서 살아서 유목민족=전투력이라는 공식과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지만 고려시대와 송나라 기록에도 나오듯이 워낙에 사납고 호전성이 강한 종족들로서 매일 매일 부락마다 활쏘기 연습 등 전투력을 일부러 키우는 훈련을 생활화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고려 중기 윤관의 여진정벌이 벌어지기전 고려 국경을 지키던 고려장수에게 여진족 추장이 찾아와 자기네 부락과 적대적인 부락간에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를 참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 고려 장수들이 가서 참관을 했는데 굉장히 사납고 잘싸워서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군요. 중국측 기록을 보건데 여진족들은 흡사 초기 고구려 같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초기 고구려도 산악지대에서 수렵과 방목 그리고 빈약한 농경생산력을 약탈과 전쟁으로 보충하고 세력을 넓혀갔던 전투적인 종족이었죠.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머리에 쓰는 투구 때문임... 일본의 변발인 촌마게도.. 전쟁이 잦았던 전국시대 이후에 널리 퍼졌음.
여진족의 모습이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초원과 인접한 서북쪽에선 몽골인 처럼 유목을 하는 여진족도 있고, 본격적으로 농사 지으며 살던 여진족, 아예 선사시대 원시인 마냥 수렵 생활 하던 여진족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접했던 여진족은 농사 짓고 살던 여진족들이였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냉대기후라 농사짓고 살던 여진족들도 농업 만으론 살기 어려워 목축이나 사냥을 병행하긴 했습니다.
영상에도 나온 거 처럼 투구를 쓰기 위해 변발을 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투구는 보통 쇠로 만들지만, 쇠덩어리 그대로 머리에 쓸 수는 없으니 보통 가죽과 천으로 된 내피를 사용하였는데, 가죽으로 내피를 하면 통풍도 안되고, 머리에 열이나고, 땀이 많이 차게 되고, 불편할 수 밖에 없지요.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투구가 미끌려서 전투중 움직임이 커지면 쉽게 벗겨질 수 도 있고, 위생상의 문제로 탈모가 생기는 등 문제가 많지요. 그렇다고 아예 대머리로 삭발을 해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또 하나도 없어서 투구의 움직임이 커집니다. 그래서 뒷머리나 옆머리 정도는 남겨두는 편이 좋지요. 그러니까 투구를 쓰면 어차피 대머리가 되기도 하고 불편하니 아예 이걸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변발입니다. 만주족 뿐 아니라 일본도 같은 이유로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했고, 몽고족, 투르크족, 카자흐족 등 기마유목민족들도 많이 했어요.
도르곤은 결국 나중에 부관참시 당하지만, 역사적 평가는 좋죠. 홍타이지 사망 후 잘나가던 후금이 불안했었을 때.. 실권을 장악하고.. 결국 명을 멸망시킨 것이 도르곤이었고... 마음만 먹었으면 황제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청을 안정화시키고.. 황위계승을 조카에게 양보했죠. 그냥, 황위를 노렸으면.. 명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병합한 위대한 군주로 역사에 남아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죠.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가끔 만주족이 지금도 그들의 국가를 이루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는 한다. 우리랑은 당연히 인접 국가의 법칙에 따라 사이가 안좋고 고려의 여진 정벌부터 병자호란까지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서로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하고 싸웠겠지? 하지만 분명한건 혼자 너무 강한 국가가 군림하면 중소 국가들이 견제한다고 연합했던 이치처럼 중국을 상대로 싫어도 같이 연대하고 있었을지도
여진족은 부여, 고구려, 발해때만 해도 한민족과 한 나라에서 같이 살던 민족이에요. 거기다 금나라 시조 함보가 여진족을 이끌고 금나라를 건국하는데 이 함보는 고려 사람이고요. 만주족의 청나라 건륭제 칙명으로 완성한 사서인 만주원류고에선 신라와 고려가 자신들의 뿌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진짜 형제의 민족은 저 멀리 터키가 아니라 바로 옆에 여진족이 한민족에게 진짜 형제의 민족인데 소중화 사상에 찌들었던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 한민족도 한족중심사관에 세뇌되어 중국 처럼 여진족을 오랑캐로 보던 시각만 남아 있는거죠.
누르하치 집안은 친명부역자 집안이었죠. 조선계 명나라 사람인 이성량과 결탁해서 세력을 키웠고, 이성량이 여진족 치는데 앞장섰다가 명군의 실수로 누르하치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참살당했고.. 그게 미안했던 이성량이 누르하치에게 교역권을 주었는데.. 그 교역권을 기반으로 부를 쌓고, 명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고, 결국 후금을 세웠죠.
여진족이 왜 변발을 했는지 이유를 찾는건 우리 조상들이 왜 수천년간 상투를 고집했는지 이유를 찾는 거와 비슷함. 고대부터 동아시아에서 헤어스타일은 그저 멋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부족을 나타내는 표식이였음. 조선인에겐 상투가, 여진족에겐 변발이 자기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심볼임. 상투가 무슨 환경에 적응하면서 편의성이나 위생을 고려해서 만든 헤어스타일이 아닌거 처럼, 변발도 여진족이 자기 종족을 나타낼 수 있는 심벌로서 선택한 형태일 뿐임. 특히 여러 부족들간 전쟁이 잦았던 북방의 여건에서 피아를 식별할 수 있어야했고 이를 위해 한 눈에 다른 부족과 구분될 수 있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몽골, 타타르, 거란, 여진 모두 변발을 했지만 그 형태가 다 다름. 그들은 이 머리 모양만으로 눈 앞의 상대가 여진인인지 거란인인지 몽골인인지 구별 할 수 있었음. 그리고 이들은 적대 부족에 항복해 귀부하면 복종의 의미로 적대 부족의 머리 스타일을 따라했음. 중원을 장악한 청이 한족에게 변발을 강조하며 이를 위반하면 반란 의도로 파악하고 극형에 처한 것도 이때문.
@@jiabela9274 상투는 청동기 시대부터 하던 풍습으로 유교보다 역사가 더 오래되었으며 당연히 유교와 아무 상관없음. 상투는 머리털을 잘라야 제대로 할 수 있는 머리임. 머리털 하나도 자르지 않고 상투 틀면 상투가 메론 사이즈가 됨. 대추알 사이즈의 그런 상투를 만들려면 적당한 길이로 머리카락을 잘라야만함. 심지어 여름엔 덥다고 가운데 머리를 싹 밀어머리는 백호치기를 하기도 했음 머리털 하나도 자르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긴건 구한말 단발령에 대한 반대 논리를 오해한 거임. 신체발부 수지부모 운운한 내용은 머리털 한조각도 자르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상투를 자르고 서양 오랑캐 머리카락을 하는 것은 부모에게 받은 귀한 몸을 함부로 취급하는 불효라는 거지 머리털 하나라도 자르면 안된다는 의미가 아님.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참고로 동북아시아는 각 민족이 한국을 제외하고는 변발을 했었습니다. 그 형태는 모두 달랐지만, 선비/동호/거란/여진/몽골/일본 등 모두 변발이었죠. 다만, 변발의 형태로 분류하면, 선비/동호/거란/몽골은 비슷한 계통으로 보여서.. 크게는 몽골계 변발, 여진계 변발, 일본계 변발로 3가지 타입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변발의 이유는 아직도 명확한 학설은 없구요.
여진은 고대 숙신으로.... 하은주 시대에도 있었고. 기록에 발,식신으로 묶어 적혀있기도하는데. 다른 사서엔 발,조선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듯이... 고조선 시대 동이족 계열이였음. 어쩌면 전(고)조선 세력일지도. 활을 잘만들어서 외교선물로 보낸것도.. 예맥각궁으로 외교선물하던 우리와 같고. 활촉에 독을 발라 두려움의 존재였음. 고조선의 북막추장이던 흉노후손 신라 마의태자가 금나라로 이어진걸 생각해도 우리와 깊은 인연인데. 그들의 변발은 우리가 땋은 머리를 고수한것과 같은 의미라고 추측됌. 고대 우리 이족 환족은 2대 부루단군의 명령에 따라.. 머리카락을 땋아 목에 드리우기 시작함. 그 명령을 머리를 깍아야하는 상황에서도 종족의 특징으로 고수한것이 변발로 이어진듯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여진의 강점은 다양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임. 거란,몽골등은 순수 유목 민족이었지만 여진은 순수 유목 민족이 아니었음. 수렵,채집,유목,농업에도 종사했던 반농반목의 생활을 했음. 게다가 상당수는 어업에도 종사해 고려나 조선의 해안 지대나 우산국, 일본의 서해안 지대까지 약탈하는 해적들도 상당했음. 윤관이 여진 정벌 때 제일 먼저 한 게 서해안 지대의 여진 해적 근거지부터 박살을 내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좋은 사례임. 여진의 해상 세력이 건재하면 고려군이 여진 지역 깊숙히 들어갔을 때 그들이 배로 배후를 공격할 우려가 있어서 였음.
디즈니 뮬란에도 나오는 센유, 즉 선우..변발을 한 사람임..유목민족의 우두머리를 칭함. 흉노의 왕을 선우라고 하는데..웃긴게 고구려왕을 선우라고 불렀던 중국기록있음. 흉노대군주 이름이 탱그리고도선우..인데..탱그리는 단군임..유목민족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딘가 한국사와 접점이 있음. 아마 그게 고조선이 아닐까 함.
@@Abkaijui 단군을 지금까지 기억하면서 선조로 생각하는 국가는 한국하고 몇 중앙아시아만 남음. 특히 제세이화 홍익인간의 원리를 이해하고 천부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도 한국뿐일듯. 일본이 고대사 뺏어가려고 고대사 날조하고 대종교 핍박했지만 결국 천손은 한국에서 나오고 있음. ㅋ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도처에 동사무소와 파출소가 있죠. 군부대도 있구요. 옛날에도 적군이 국경을 넘으면 계속 위치를 추적하고 며칠뒤에 어디에 닿을지 다 알고 있습니다. 대규모 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데 그 위치를 모를수가 있을까요? 4만 잼버리부대가 새만금에 진을 치고 있을때 아무데나 포탄 한발만 떨어뜨려도 쑥대밭이 됩니다. 서로 도망가려고 짐챙기고 우왕좌왕하게 되죠. 근데 포 10대로 100발을 떨어뜨리면...짐싸고 도망가고 새로운 숙영지를 찾아야죠? 근데 거기도 사정거리 안쪽이면? 잠도 못자고 지쳐서 전투력상실.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게 중국 조선족을 제외하면 만주족입니다 조선족은 그냥 당연한거고 제일 가까운 민족이 만주족이죠 고대부터 한민족이 세웠던 만주지역 국가들의 구성원에 항상 있었고요 중국이 발작할수도 있겠으나 여진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로 봐도 무리없죠
1. 여진족 오야 가족이 전부 대머리, 2. 그 대머리 유전자가 너무 쎄서 세대가 내려가도 여자의 피가 섞여도 전부 대머리(만약 세대를 걸러서 대머리가 나오면 희망이라도 갖고 왕관을 썼을 거임 - 왕관을 쓰면 대머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요, 왕관을 쓰면 대머리가 아닐 경우 머리를 밀 필요나 아픔이 없지요, 3. 여진족 오야가 대신 등 지배계층과 회의할 때 "내 밑으로 다 밀어"라는 무언의 협박을 함 - 나만 없으니 서운하기도 하고 모두 변발이면 누가 대머리인지 알 수도 없고 4. 대머리가 아닌데 머리 밀게 된 지배계층도 열받아 피지배계층에게 "내 밑으로 다 밀어"라고 대 놓고 협박, 5. 이렇게 상급계층이 힘이 낮은 하급계층에게 대머리를 강요하다 보니 결국 민족이 모두 변발이라는 괴랄한 헤어스타일을 가지게 됨, 6. 이 이유가 아니면 머리카락을 신성(비스무리하게)시 하던 민족에게서 대머리와 같은 변발 문화가 생길리 만무 함
@@power_lover_ilb 우리가 말하는게 아니고 동시대 신라인들이 말하는 거임 문무대왕비 라든가 몇 사료가 있음 신라 김씨의 조상을 흉노의 왕자 김일제로 지칭함 조상은 당연히 수백년 앞선 사람니까 그 말이 대를 이어 전해 왔겠지 조선 성리학의 물을 먹은 후인들이 그걸 거부하는거 뿐이지 ///
우리 조상들께서 상투를 틀때 윗부분은 밀어버리고 주변머리를 모아 상투를 틀었는데 ...상투를 틀지않고 그대로 내리면 변발과 같죠! ...같은 동이족인데 우린 상투를 틀고 여진 거란 몽골등은 상투를 틀지 않은점은 뭘까?...제 생각을 좀 보태자면 직계와 방계의 차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즉, 배달 고조선의 직계인 고구려는 상투를 틀고 방계인 여진 거란 몽골등은 상투를 틀지않고 변발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집안에서 제사를 모실때 직계 장손과 그외 자손들처럼 말이죠!...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북방민족들은 하늘과 인간과의 연결고리로 하늘과 제일 가까운 머리에 각 족속마다 여러형태로 문화가 형성됐다고 봅니다~~~ 우리 한민족이 상투를 통해 하늘과 가까워지길 원했듯~~~ 여진 거란도 그랬구요. 또한 각 부족마다 머리모양으로 서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그 형태도 달랐을겁니다.
여진족의 추장은 신라인, 김함보라 청나라 황실의 성씨, 아이신교로는 한자로 금(=김)으로 신라 왕실의 후예임을 나타냈읍니다.이이제이의 '이'를 오랑캐로 번역하면 안됩니다. 이의 뜻은 크다, 인이라는 뜻으로 오랑캐라는 뜻은 없으며 이족이 우리의 조상입니다. 조상을 오랑캐라는 사람이 어디 있읍니까?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한심합니다. 다시는 그런 말 히지 마세요.
그게 매국사학자놈들의 주장이죠...미친 놈들이죠...고구려 망하고 당으로 끌려간 사람외엔 그 땅에 그대로 고구려인들은 살았죠..왕족들은 세금을 걷어들이며 토호세력으로 백성은 백성대로 대대로 그 땅에 살았죠...발해. 금.청인들을 여진족으로 따로 부른 기록은 희소한데 그걸 부풀려서 여진인들을 따로 실체화시켜 마치 고구려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왜곡했는데 그 왜곡한 놈들이 중국도 아니고 친일관변사학자놈들 이죠..이러한 사관을 그대로 답습한 강단사학이 스스로 굴종적으로 역사를 왜곡...일본에서 해방된지가 언젠데 아직도 일본놈들의 식민사관을 주입시키며 일본놈들의 쫄짜를 자처하고 있죠...천인공노할 친일매국노들...
@@예쁜나-v8s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예전에 국사를 공부할 때는 상투는 한민족 고유의 전통이라고 배웠습니다.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할 때 상투를 먼저 틀고 들어왔다고 배웠구요... 이와 달리 유교식 사상과 문화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이후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뭔가 일의 순서로 따지면 다르게 추측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일반 대중은 여진식 변발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일본 자신들도 변발을 했었으면서.. 아시아 다른 나라의 변발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더군요. 한국도 여진/일본식 변발은 영화/드라마로 접해서 알지만, 몽골계 변발을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일본도 원래는 변발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긴 머리를 뒤로 매고 다녔는데, 무사정권시대가 되면서 투구에 차인 열기를 해소하고자 위의 머리를 밀었던 것이지요. 나중에는 그 스타일이 유행이 되어서 에도시대에 보편화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도 머리숱이 너무 많으면 상투를 틀고 다니기가 불편하여, 숱을 많이 치고 상투를 틀었습니다.
여진족,몽골족,만주족....고구려 유민의 다른 이름임. 같은 핏줄인 우리가 그들을 이민족 처럼 부를 필요가 없슴. 대륙의 고대 국가 중에 동이족의 나라인 은나라, 상나라 뿐만 아니라 원나라, 청나라도 우리 역사로 가르쳐야 함. 중국 동북공정은 역사 왜곡이지만 , 내가 말하는 것은 중국 사서만 가지고도 대륙의 역대 왕조 중에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슴.
발해 멸망 이후 여진은 생여진, 숙여진으로 정의되었다. 이 분류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이 한 것이다. 이 중에서 숙여진(흑수말갈을 제외한 여진)만 우리 민족과 관계가 있다. 이들은 오랜기간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고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발해인이 되었다. 발해가 멸망하자 숙여진은 거란 치하에서 거란인에게 협조하여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거란이 망하자 생여진의 금나라가 산둥과 화북으로 이들을 뿔뿔이 강제이주시켜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발해가 멸망할때 왕자 한명이 무리를 이끌고 왕건이 통치하던 고려로 귀순하여 고려에 동화되었다. 숙여진을 탄압했던 생여진(흑수말갈족)은 고려와 동북9성을 놓고 전쟁을했고,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웠다. 이들은 북중국을 정복한 뒤 통치를 위해 중원으로 들어가버려서 여진족으로서의 계보가 끊겼다. 여기까지가 고려시대 여진족의 설명이다. 반면 영상에서 설명하는 조선시대의 여진족(건주위, 해서위, 야인여진)은 퉁구스계 부족들이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남하하여 한족, 조선인, 몽골인과 섞여 형성된 것으로 고려시대 생여진, 숙여진과 별 관련이 없다. 이들은 고구려, 발해와 접점이 없다는 말이다. 굳이 우리민족과의 연관성을 찾으려면 건주위 지도층이 이성계 부하 출신인것과, 조선과 여진의 국경이 워낙 길다보니 국경을 넘어와 조선인이 된 여진족들, 혹은 반대로 만주로 넘어가서 여진족이 된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정도. 청나라의 초대 황제인 홍타이지는 이처럼 혼란스러웠던 여진족의 근본에 대한 고민 끝에 여진족이라는 이름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따지고보면 자기들의 근본은 여진(주르첸, 주션)이 아닌데 왜 자꾸 여진으로 부르냐며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고 만주족으로 민족이름을 변경했다.
@@만주벌판-s5m 만주말로 후금은 만주 구룬(만주 나라). 반면 금나라는 주션 구룬(여진 나라). 즉 그들말로보면 두 나라가 같은 국명을 썼다고 보기엔 애매하다. 대외적으로 중화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금(金)이라는 중국의 한자를 공유했을 뿐 이 금이라는 명칭을 읽는 방법도 금(알춘), 후금(아이신)으로 꽤 차이가 있다. 누르하치가 금나라를 칭한것은 정치적으로 과거의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와, 과거 금나라의 강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또 홍타이지 이전까지는 그들 스스로도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해서 과거 동북지방에서 가장 유명했던 종족인 여진족과 자신들을 동일시 한 측면도 있다. 사실 만주원류고에서 만주족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법만 봐도, 만주족의 선조가 주션 구룬의 땅에 살고 있었다는 식으로 매우 애매하다. 여기서 주션 구룬이란 지금의 중국 동북3성,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부, 북한의 함경북도 지역까지도 포괄하는말로 중세 여진족이 정복했던 넓은 땅을 의미하는 것이지 여진족이 살던 땅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션 구룬에 살았다고 해서 여진족이라는것은 오해이다. 비슷한 예로 몽골족이 러시아와 중동, 페르시아까지 정복하여 예케 몽골 올로스(몽골 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세웠고 러시아인, 아랍인, 페르시아인은 몽골 제국의 땅 안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몽골 제국에 살았다고 해서 그들이 몽골족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진족이 정복한 넓은 땅에 살고 있었다고 해서 여진족은 아닌 것이다. 이 예시는 매우 적절한 것이 몽골제국이 망한 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몽골을 계승하는 수많은 나라가 생겨났고 인도의 무굴 제국은 아예 국명이 몽골(무굴)이었다. 물론 혈통적으로 따지면 무굴과 몽골은 사실상 연관이 없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 그리고 영토에 대한 명분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옛 국가의 명칭을 따오는 일은 매우 흔하다.
벌거벗은 세계사 한국사 만든 TVN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프로이고.. 이렇게 유튜브를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강한다는 고대 모든 종족은 몸방어구는 안할지언정 무조건 머리보호구는 필히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두건이라도 꼭 쓰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웠지죠. 근데 문제는 장시간 착용하고 전쟁이 지속되면 무족건 지루성 탈모든
유전적으로 탈모가 없던 있던 두피가 상해 탈모가 걸린 수 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있지요. 더군다나 오늘날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보면 탈모이신분들 많습니다. 샴푸가 있고 퇴근하고 샤워를 해도 많이 걸리시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실용적 선택인듯 합니다.
여진족은 지역에 따라 수렵과 농경 유목의 비중이 각기 다른 생활양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어도 부족에 따라 다른 경우도 많았구요. 만주 서북부는 몽골지역에 가까워 유목적 성격이 강했던 예허부족이 있었고, 압록강과 두만강 바로 넘어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남만주 지린성과 요녕성부근에는 바로 누르하치가 지배하던 건주여진이 있었고 지금의 사할린 쪽에는 건주여진마저 야만시했을 정도로 많이 미개했던 야인여진이 터잡고 살았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인구도 그나마 많고 사회조직도 발달했던 곳이 건주여진이었고 건주여진은 수렵과 농경(물론 조선의 농경수준에 많이 뒤떨어지는 생산력과 기술수준)과 부분적인 방목(말과 소, 특히 돼지)이 성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요동의 명나라세력과 바로 남쪽과 조선과 인접해있다는 사실때문에 명과 조선과의 무역이 성행하였고 특히 명의 이성량이 지배하던 요동지역과의 조공무역쿼터를 독점하다시피했다는 사실이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여 이 건주여진을 예허부족 중심의 해서여진과 야인여진보다 훨씬 더 강성하게 해주었던 겁니다.
그리고 본래 여진족들은 초원지대의 투르크, 거란족들과는 달리 이동도 거의 하지 않고 자기네 촌락에 정주생활하면서 살아서 유목민족=전투력이라는 공식과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지만 고려시대와 송나라 기록에도 나오듯이 워낙에 사납고 호전성이 강한 종족들로서 매일 매일 부락마다 활쏘기 연습 등 전투력을 일부러 키우는 훈련을 생활화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고려 중기 윤관의 여진정벌이 벌어지기전 고려 국경을 지키던 고려장수에게 여진족 추장이 찾아와 자기네 부락과 적대적인 부락간에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를 참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 고려 장수들이 가서 참관을 했는데 굉장히 사납고 잘싸워서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군요.
중국측 기록을 보건데 여진족들은 흡사 초기 고구려 같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초기 고구려도 산악지대에서 수렵과 방목 그리고 빈약한 농경생산력을 약탈과 전쟁으로 보충하고 세력을 넓혀갔던 전투적인 종족이었죠.
뭔가 게르만족 같기도하네
재밌어요.
옛고구려의 주력이 말갈병사니까 얘들이 여진족이라 당나라 수나라 백만대군과 전쟁해도 팽팽했지!!!!
반도에 쪼그라들어 선조들의 기상과패기를 완전히 잊고, 잃어버리고 사는 반도인들이 되어버린..
여진족 헤어스타일, 그거 아메리칸 인디안도 비슷했던거 같아요. 특히 전사급.
머리 이 (석캐)때문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바이킹도 머리 밀었고, 일본 사무라이도 머리 밀었죠. 전투때 쓰는 투구와 연관이 깊습니다.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머리에 쓰는 투구 때문임...
일본의 변발인 촌마게도..
전쟁이 잦았던 전국시대 이후에 널리 퍼졌음.
여진은 오랜시간 고구려 피지배층이었기때문에
여진족 문화라고 보이는 것들 대부분은 고구려영향일수도.
활쏘기. 말타는 것까지
意淫
애초에 그런것 자체가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보다 흉노같은 튀르크계 북방유목민족들이 먼저인데?
그래서 도대체 그게 한국에 어떤의미가 있죠? 결국 청나라나 일본제국에게 지배 점령당했는데. 그런 정신승리는 필요없어요. 오히려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게 미래를 위한 길입니다.
맞는 추론일듯 고조선의 유민인 말갈인들이 나라없이 살다가 부여의 후손인 고구려 유민과 동맹국가 진나라(발해)를 건국하고 나중에 이들이합해져저 여진족이라 칭해여졌다고 보면 이해가 잘될듯 싶내요
@@성이름-r5k 어떤 의미냐고요? ㅋ 한국은 곧 망하고 고구려와 같은 예맥제국이 다시 나타날겁니다
여진족은 유목민족보다 수렵농경민족입니다.동북지역 특성상 겨울철에는 사냥할 동물들이 많았으니깐요.전투력이 강한것도 개개인이 거의다 사냥꾼이라 강한거죠.
여진족의 모습이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초원과 인접한 서북쪽에선 몽골인 처럼 유목을 하는 여진족도 있고, 본격적으로 농사 지으며 살던 여진족, 아예 선사시대 원시인 마냥 수렵 생활 하던 여진족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접했던 여진족은 농사 짓고 살던 여진족들이였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냉대기후라 농사짓고 살던 여진족들도 농업 만으론 살기 어려워 목축이나 사냥을 병행하긴 했습니다.
조선인은 개개인이 거의다 노비니 약한거죠...
금이 망하고 나서 명이 여진을 갈갈이 찢어서 건주니 뭐니 해서 분리 한거죠 서로 이간 시키고 했죠 금 태조 완안 아골타의 후손인 누르하치가 인삼장사로 명의 은을 겁나 벌어들였죠 애신각라 금태조는 자신은 신라의 후손이라 했습니다
여진족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키메라죠.
지역마다 다른 부족이 있고 그 부족들의 능력이 또 다름.
기마술 특화 부족, 산악보병전 특화 부족, 해상전 특화 부족 등.
풀유목이냐 반유목이냐 쿼터유목이냐의 차이일뿐 유목민이긴함.
영상에도 나온 거 처럼 투구를 쓰기 위해 변발을 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투구는 보통 쇠로 만들지만, 쇠덩어리 그대로 머리에 쓸 수는 없으니 보통 가죽과 천으로 된 내피를 사용하였는데, 가죽으로 내피를 하면 통풍도 안되고, 머리에 열이나고, 땀이 많이 차게 되고, 불편할 수 밖에 없지요.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투구가 미끌려서 전투중 움직임이 커지면 쉽게 벗겨질 수 도 있고, 위생상의 문제로 탈모가 생기는 등 문제가 많지요. 그렇다고 아예 대머리로 삭발을 해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또 하나도 없어서 투구의 움직임이 커집니다. 그래서 뒷머리나 옆머리 정도는 남겨두는 편이 좋지요.
그러니까 투구를 쓰면 어차피 대머리가 되기도 하고 불편하니 아예 이걸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변발입니다.
만주족 뿐 아니라 일본도 같은 이유로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했고, 몽고족, 투르크족, 카자흐족 등 기마유목민족들도 많이 했어요.
그럼 우리는 상투까지틀었는데
도르곤은 결국 나중에 부관참시 당하지만, 역사적 평가는 좋죠. 홍타이지 사망 후 잘나가던 후금이 불안했었을 때.. 실권을 장악하고.. 결국 명을 멸망시킨 것이 도르곤이었고... 마음만 먹었으면 황제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청을 안정화시키고.. 황위계승을 조카에게 양보했죠. 그냥, 황위를 노렸으면.. 명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병합한 위대한 군주로 역사에 남아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죠.
도르곤이 황제 자리를 노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도르곤이 무정자증이어서 후사가 없어서 그랬다는 설이 있더군요~ 어차피 후사가 없는데, 황위는 뺏어서 뭐하나 그런....
여진족 사회를 보면 배신과 살육,약탈,암살이 무한반복 되는 곳이라 스스로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 . 그들이 왜 전투민족이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사회
대표적인 언더도그마.
여진이 바로 발해 사람들입니다 발해인들을 미개인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변발은.. 상대를 배꼽잡고 웃기게 만들어 방심을 유도하는 고도의 심리전이 틀림없다 ㅋㅋㅋㅋ 😂
재미있어요 ㅋ
😂😂😂
웃으면서 죽는거죠 ㅎ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가끔 만주족이 지금도 그들의 국가를 이루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는 한다.
우리랑은 당연히 인접 국가의 법칙에 따라 사이가 안좋고 고려의 여진 정벌부터 병자호란까지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서로 니가 맞니 내가 맞니 하고 싸웠겠지?
하지만 분명한건 혼자 너무 강한 국가가 군림하면 중소 국가들이 견제한다고 연합했던 이치처럼 중국을 상대로 싫어도 같이 연대하고 있었을지도
그럼 한국놈들 고구려 자기들역사라고 주장못함...
역사는 백제와 신라 가야 삼국으로 축소되고
한반도고립역사 됨
ㄹㅇ로 좃구려 없없어서 국뽕하지도 못하고 그냥 속국됨
발해의 역사는 누구의 역사냐?
백두산 영토 분쟁
오랑캐 vs 응 삼전도
국경이 붙어 있으니 독도 분쟁 같은것보다 훨씬 살벌했을듯
맞아요 만주에도 나라가 하나 따로 생길 필요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 멸망시킨 나당연합이 한반도 역사에 천추의 한이 되는거죠 대동강 이남의 반쪽만도 못하는 삼국통일?이라 불리는 것보다 삼국시대가 쭉 이어지는게 서로에게 더 편했죠
@@sungbinee8매일 전쟁하는 시대가 좋진 않을듯
너무 월클이라 중국먹고 중국에 동화됨 ㅋㅋㅋㅋㅋ
여진은 진짜 뭉치면 겁나 쎈 애들입니다
조선인은 진짜 뭉치면 겁나 약한 들쥐떼입니다...
지들끼리 도망가다가 밟혀죽음 ㅋ 셀프로
사실 모든 유목민족들은 뭉치면 답이 없는 것들이죠.
여진족은 부여, 고구려, 발해때만 해도 한민족과 한 나라에서 같이 살던 민족이에요. 거기다 금나라 시조 함보가 여진족을 이끌고 금나라를 건국하는데 이 함보는 고려 사람이고요. 만주족의 청나라 건륭제 칙명으로 완성한 사서인 만주원류고에선 신라와 고려가 자신들의 뿌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진짜 형제의 민족은 저 멀리 터키가 아니라 바로 옆에 여진족이 한민족에게 진짜 형제의 민족인데 소중화 사상에 찌들었던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 한민족도 한족중심사관에 세뇌되어 중국 처럼 여진족을 오랑캐로 보던 시각만 남아 있는거죠.
이런 분명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게 안타깝네요. 청나라 건국이야 말로, 우리 민족의 중국 정복 사건이죠.
일제 시대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 발해 금 청으로 이어지는 만주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런 주장은 일제 시대 들어서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요약정리 최고입니다
@@dhhong221 可怜的韩国人。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중 대다수는 고구려의 후손이 아니거든요 ㅋ
고구려 예맥인은 당나라에 의해 변방으로 이주되거나 여진족에 동화되거나 일본으로 건너갔어요 ㅋㅋ 우리 대부분은 신라후손일뿐임
누르하치 집안은 친명부역자 집안이었죠. 조선계 명나라 사람인 이성량과 결탁해서 세력을 키웠고, 이성량이 여진족 치는데 앞장섰다가 명군의 실수로 누르하치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참살당했고.. 그게 미안했던 이성량이 누르하치에게 교역권을 주었는데.. 그 교역권을 기반으로 부를 쌓고, 명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고, 결국 후금을 세웠죠.
이성개새기 집안은 친원부역자 집안이었죠.
고려 통수치고 조선을 세우고 중국에게 사대하고 자국민 절반을 노비로 만드는 암흑왕조를 열었죠.
누르하치 6대조가 이성계 부하였슴.
호전적인 민족이 투구를 많이 쓰다보니, 대머리 형태의 두발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럽의 바이킹족이라던지, 일본의 사무라이.... 여진족은 그런 전투 민족 + 뒷머리 땋는 문화가 결합된거 아닌까 추측해 봅니다
거란족도 희안한 머리를 하고 있죠
그냥 대머리들이 권력 잡아서 딴놈들도 대머리 만든거임. 이래서 대머리들 인성이 썩은거지
조선도 상투 틀기 빡세서 속알머리 했음.
놀라운게 거란은 여자도 변발을 했습니다. 여진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그게 헬멧 쓸때 어쩔 수 없이 머리 밀어야함.
여진족이 왜 변발을 했는지 이유를 찾는건 우리 조상들이 왜 수천년간 상투를 고집했는지 이유를 찾는 거와 비슷함.
고대부터 동아시아에서 헤어스타일은 그저 멋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부족을 나타내는 표식이였음. 조선인에겐 상투가, 여진족에겐 변발이 자기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심볼임.
상투가 무슨 환경에 적응하면서 편의성이나 위생을 고려해서 만든 헤어스타일이 아닌거 처럼, 변발도 여진족이 자기 종족을 나타낼 수 있는 심벌로서 선택한 형태일 뿐임.
특히 여러 부족들간 전쟁이 잦았던 북방의 여건에서 피아를 식별할 수 있어야했고 이를 위해 한 눈에 다른 부족과 구분될 수 있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음.
그래서 몽골, 타타르, 거란, 여진 모두 변발을 했지만 그 형태가 다 다름. 그들은 이 머리 모양만으로 눈 앞의 상대가 여진인인지 거란인인지 몽골인인지 구별 할 수 있었음.
그리고 이들은 적대 부족에 항복해 귀부하면 복종의 의미로 적대 부족의 머리 스타일을 따라했음. 중원을 장악한 청이 한족에게 변발을 강조하며 이를 위반하면 반란 의도로 파악하고 극형에 처한 것도 이때문.
@@user-sk9yx9ck8l 뭘 여진족임ㅋㅋ 몽골한테 백년간 따먹혀서 요동이랑 남만주에 고려인들 흩어져 살았고 이성계도 그런 고려인이지
진짜 여진족이었음 오랑캐라고 정계 등판하기도 전에 손절당함ㅋㅋㅋ
@@user-sk9yx9ck8l이성계 여진족 설은 도대체 언제 없어질까
@@Abkaijui 여진족 자체가 고구려유민과 말갈족 유민을 통칭하는 말로 봐야 할듯입니다 여진의 아골태가 고조선의 정통은 이제 여진에게 있다며 단군을 개천홍성제로 봉하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jiabela9274 상투는 청동기 시대부터 하던 풍습으로 유교보다 역사가 더 오래되었으며 당연히 유교와 아무 상관없음.
상투는 머리털을 잘라야 제대로 할 수 있는 머리임. 머리털 하나도 자르지 않고 상투 틀면 상투가 메론 사이즈가 됨. 대추알 사이즈의 그런 상투를 만들려면 적당한 길이로 머리카락을 잘라야만함. 심지어 여름엔 덥다고 가운데 머리를 싹 밀어머리는 백호치기를 하기도 했음
머리털 하나도 자르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긴건 구한말 단발령에 대한 반대 논리를 오해한 거임. 신체발부 수지부모 운운한 내용은 머리털 한조각도 자르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상투를 자르고 서양 오랑캐 머리카락을 하는 것은 부모에게 받은 귀한 몸을 함부로 취급하는 불효라는 거지 머리털 하나라도 자르면 안된다는 의미가 아님.
@@jiabela9274 동이족의 상투 문화는 유교랑 전혀 관계없는 동이족 고유문화입니다
조선 성리학이랑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선비.몽골.여진.일본 무사들의 헤어스타일은
정수리 부분을 남기고 장식(머리를 꼬움 )
하고 나머진 깍는 스타일입니다. 대략 4세기 정도에 나타난 물이 귀한 초원 유목민들의 위생을 위한 헤어스타일 입니다.
일본은?
@@zzanga9299다른 이유가있겠지?
@@zzanga9299아시아 전투민족은 다 변발한다고 생각하면되요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요즘에야 머리에 이 도 거의없고 원하면 대부분 머리를 감을수도 있지만, 뜨거운 물은 커녕 물자체도 구하기힘든
허허벌판에서 머리를 안자르는게 오히려 이상한걸지도
금의 발상지를 연해주와 그 이동지대로 이해하는 듯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의 헤이룽장성 하얼빈 시 아청구가 상경회령부라는 것이 지배적인데, 무슨 근거로 저기에 표시를 했나요? 온얀부의 후예라는 예허부도 해서 여진일진대 야인 여진의 세거지를 출발점으로 보이게 하다니요.😅
참고로 동북아시아는 각 민족이 한국을 제외하고는 변발을 했었습니다. 그 형태는 모두 달랐지만, 선비/동호/거란/여진/몽골/일본 등 모두 변발이었죠. 다만, 변발의 형태로 분류하면, 선비/동호/거란/몽골은 비슷한 계통으로 보여서.. 크게는 몽골계 변발, 여진계 변발, 일본계 변발로 3가지 타입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변발의 이유는 아직도 명확한 학설은 없구요.
한국도 기록이없어서 그렇지 변발 많이 했을듯
우리도 택견 민화 보면 머리 땋았잖아요 ㅎ
한국인은 나약한 종속들이니 변발 혼자만 안했네 ㅋㅋ
강약약강 ㅋ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인 자국인에게만 강함 ㅋㅋ
이런 한심한 민족도 또 없을듯.
전국민 절반이 노비 ㅋ 단한번도 원정전쟁나가서 타민족 굴복시킨적이 없고 맨날 사대함 ㅋ
@@kidandLaPuta 변발(?) 인지 모르겠는데 한국은 스님들 있었자너 ㅋㅋ
@@samc9725😂😂
여진족은 유목민 아닌데요~
한 곳에 정착해서 반농반목이라고 하는데 농사 짓거나 사냥을 업으로 했던 종족인데
그것도 유목을 했다하죠
정주민족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지
여진은 고대 숙신으로.... 하은주 시대에도 있었고. 기록에 발,식신으로 묶어 적혀있기도하는데. 다른 사서엔 발,조선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듯이... 고조선 시대 동이족 계열이였음. 어쩌면 전(고)조선 세력일지도. 활을 잘만들어서 외교선물로 보낸것도.. 예맥각궁으로 외교선물하던 우리와 같고. 활촉에 독을 발라 두려움의 존재였음. 고조선의 북막추장이던 흉노후손 신라 마의태자가 금나라로 이어진걸 생각해도 우리와 깊은 인연인데. 그들의 변발은 우리가 땋은 머리를 고수한것과 같은 의미라고 추측됌. 고대 우리 이족 환족은 2대 부루단군의 명령에 따라.. 머리카락을 땋아 목에 드리우기 시작함. 그 명령을 머리를 깍아야하는 상황에서도 종족의 특징으로 고수한것이 변발로 이어진듯
환
땋은 머리에 대한 진지한 고찰, 일리가 있습니다
비극적인 역사뿐인지라 그에대한 보상심리로 망상환빠들이 나타날수밖에 없는 구조
일본애들도 전국시대때 보면 하나같이 앞머리가 날아간 촌마게 였던거 보면 투구 같은게 원인인것같긴함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여진의 강점은 다양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임. 거란,몽골등은 순수 유목 민족이었지만 여진은 순수 유목 민족이 아니었음. 수렵,채집,유목,농업에도 종사했던 반농반목의 생활을 했음. 게다가 상당수는 어업에도 종사해 고려나 조선의 해안 지대나 우산국, 일본의 서해안 지대까지 약탈하는 해적들도 상당했음. 윤관이 여진 정벌 때 제일 먼저 한 게 서해안 지대의 여진 해적 근거지부터 박살을 내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좋은 사례임. 여진의 해상 세력이 건재하면 고려군이 여진 지역 깊숙히 들어갔을 때 그들이 배로 배후를 공격할 우려가 있어서 였음.
누르하치의 6대조 몽케테무르가 이성계의 부하였고, 누르하치의 탄생설화가 고구려 동명성왕의 탄생설화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디즈니 뮬란에도 나오는 센유, 즉 선우..변발을 한 사람임..유목민족의 우두머리를 칭함. 흉노의 왕을 선우라고 하는데..웃긴게 고구려왕을 선우라고 불렀던 중국기록있음. 흉노대군주 이름이 탱그리고도선우..인데..탱그리는 단군임..유목민족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딘가 한국사와 접점이 있음. 아마 그게 고조선이 아닐까 함.
한국에서는 선우가 짱구의 어원이라고 함.
초원 지역 텡그리 신앙이 한반도 지역 단군 신화로 이어진 것이지 오히려 한반도에서 그가 출발하였다는 건 증빙이 어려울 겁니다
@@Abkaijui 단군을 지금까지 기억하면서 선조로 생각하는 국가는 한국하고 몇 중앙아시아만 남음. 특히 제세이화 홍익인간의 원리를 이해하고 천부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도 한국뿐일듯. 일본이 고대사 뺏어가려고 고대사 날조하고 대종교 핍박했지만 결국 천손은 한국에서 나오고 있음. ㅋ
네이버 웹툰 칼부림의 배경입니다. 이 만화는 정말 근래 보기 드문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딴 머리였다가 탈모 유전자가 발현되어서 일부 지도층에서 갈수록 머리가 뒤로 벗겨지다가 나중에는 스타일처럼 퍼져서 탈모 아닌 사람들도 밀었을 것 같음
지도층들보면 중년이상이 많을텐데 그 나이쯤되면 머리도 벗겨지니까 는 개뿔 그냥 위생과 간편함때문일듯
밤낮으로 쌈질만 하는 민족들이라 거추장스러워서 밀고다닌거야 일본 사무라이들도 같은 이유고 탈모니 뭐니 ㄱㅐ씹소리하고 자빠졌노ㅋ
변발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흉노족, 탕구트족, 돌궐족,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만주족 등 북방 기마민족들이 하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고대 이집트나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카자크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변발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장에서 머리에 쓴 투구 때문임.
그래서 일본식 변발인 촌마개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전국시대 이후에 일반으로 널리 퍼졌다.
직업 특성상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 모자를 쓰는데 갈수록 머리가 가렵고 너무 힘듭니다. 투구든 모자든 장시간 쓰는 생활을 하는 민족이라면 밀게 될 것 같습니다. 안그러면 두피가 버텨내지 못할거라 봅니다.
투구를 쓰게 되면 열이 엄청 발생하는데 그것을 식히기 위해서요
저동네가 물이귀하기도하고 전쟁할때 투구쓰면 열이나서 변발안하면 힘들대요
몽골이 가장 힘들게 싸웠던 민족이 여진족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대포의 거리가 9km인것이 어떻게 승리의 원인일가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쏘아서 뭘 마출수 있었을까요? 사정거리도 중요하지만 정확도와 파괴력이 더 중용한 요소가 아니었을까요?
도처에 동사무소와 파출소가 있죠. 군부대도 있구요.
옛날에도 적군이 국경을 넘으면 계속 위치를 추적하고
며칠뒤에 어디에 닿을지 다 알고 있습니다.
대규모 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데 그 위치를
모를수가 있을까요?
4만 잼버리부대가 새만금에 진을 치고 있을때
아무데나 포탄 한발만 떨어뜨려도 쑥대밭이 됩니다.
서로 도망가려고 짐챙기고
우왕좌왕하게 되죠.
근데 포 10대로 100발을 떨어뜨리면...짐싸고 도망가고
새로운 숙영지를 찾아야죠?
근데 거기도 사정거리 안쪽이면?
잠도 못자고 지쳐서 전투력상실.
ㄷㄷ 대포 한개만 일점사로 쐇겠냐...
엄청 많이 쏴서 전열을 흐트리는건데.. 토탈워도 안해봣나.
이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때도 하마스에서 아이언돔 무력화할라고 재래식미사일 무진장 쐇잖아 전쟁도 똑같이 다 목적이 있는거야 활로 저격하면 그만이고 대포는 위협용이야.
어차피 열병기 초기엔 정확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화망을 만들고 전열을 흐트러트리는데 그 중점이 있음. 전열보병 한번 검색해 보면 알듯?
방구석 역사 키보드 짭교수님들 총출동했네ㅋㅋㅋ 다들 책한권씩 내셔야겠어 아줔ㅋ
저 사르후전투 영상...그 영상이네요..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게 중국 조선족을 제외하면 만주족입니다 조선족은 그냥 당연한거고 제일 가까운 민족이 만주족이죠 고대부터 한민족이 세웠던 만주지역 국가들의 구성원에 항상 있었고요 중국이 발작할수도 있겠으나 여진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로 봐도 무리없죠
울나라 축구선수가 상대팀에게 쎄게 보이려 머리 밀고 경기 뛰었다가 예상치 못한일로 힘들었다 함.
땀이 눈으로 들어와서 계속 땀 닦느라!!! 그래서 스포츠 헤어밴드 하고 다음 경기 뛰었다... 머리를 미는 것과 전투력 상승은 안 맞음!
1. 여진족 오야 가족이 전부 대머리, 2. 그 대머리 유전자가 너무 쎄서 세대가 내려가도 여자의 피가 섞여도 전부 대머리(만약 세대를 걸러서 대머리가 나오면 희망이라도 갖고 왕관을 썼을 거임 - 왕관을 쓰면 대머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요, 왕관을 쓰면 대머리가 아닐 경우 머리를 밀 필요나 아픔이 없지요, 3. 여진족 오야가 대신 등 지배계층과 회의할 때 "내 밑으로 다 밀어"라는 무언의 협박을 함 - 나만 없으니 서운하기도 하고 모두 변발이면 누가 대머리인지 알 수도 없고 4. 대머리가 아닌데 머리 밀게 된 지배계층도 열받아 피지배계층에게 "내 밑으로 다 밀어"라고 대 놓고 협박, 5. 이렇게 상급계층이 힘이 낮은 하급계층에게 대머리를 강요하다 보니 결국 민족이 모두 변발이라는 괴랄한 헤어스타일을 가지게 됨, 6. 이 이유가 아니면 머리카락을 신성(비스무리하게)시 하던 민족에게서 대머리와 같은 변발 문화가 생길리 만무 함
식민학자야 여진 거란 고구려 신라 왜 백제 몽고 다 우리 종족이다
원거리 화살교란, 측면기마병 전술은 다 고구려,발해,고려가 쓰던 전술. 흉노의 수장이 고구려였음.
부여, 고구려도 반농반목 기마족.
저 당시 위생 상태가 좋지않아 머릿이가 심해서, 변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있는데.
금의 초기 건국위치와 발전과정의 지역(고려북쪽)표시가 최근의 다른사료와 비교하여 바로 잡을 필요가 있지 않나요?
신라 왕족 김씨도 흉노족이었다는데
백제 부여씨는 바이칼호수에 살던 몽골 그래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학자들이 역사를 잘 몰라서 못배웠다
모후를 순장하고 그 동생에게 후계를 준 것은 우리식으로 견제 음모로 해석할 수 없는 그들의 풍습일지 모른다
몽골은 언어부터 유전자까지 ㅈㄴ멈
신라 흉노족 설은 언제 안나올까 ㅉㅉ... 흉노랑 신라랑 시기가 다른데
@@power_lover_ilb 신라 왕족이 흉노라는거는 문무대왕비에 쓰여있답니다 kbs다큐 첮아보세요
@@sandgold2288 김씨 신라왕족이 흉노라해서 신라사람 전부 흉노일까? ㅋㅋ 그냥 김씨 왕족만 흉노일뿐
@@power_lover_ilb 우리가 말하는게 아니고 동시대 신라인들이 말하는 거임 문무대왕비 라든가 몇 사료가 있음
신라 김씨의 조상을 흉노의 왕자 김일제로 지칭함 조상은 당연히 수백년 앞선 사람니까 그 말이 대를 이어 전해 왔겠지
조선 성리학의 물을 먹은 후인들이 그걸 거부하는거 뿐이지 ///
처음 후금은 거의 옛 고구려 후손으로 볼수도 있겠네요
영토가 잘못된거 같음. 후금과 명나라의 국경은 산해관을 중심으로 한 만리장성임. 만리장성 자체가 여진족과 몽골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방어진이거든.
추운날씨에 계속 방한모를 써야했는데, 머릿니가 너무 많이 번식을해서 밀었다고 봐야합니다
1. 컷트하다가 좌우 기장이 안 맞아서 결국 다 밀어버림
2. 샴푸하고 행굴때 얼굴로 물이 흐르는게 싫어 밀어버림
3.머리 감기싫어서 세안할때 머리 윗부분까지 씻을려고 밀어버림
발해와 너무 비슷하지만 여진은 중원을 제패해버렸군요.
무서이 만주!!
대머리가 많아서 밀었다는 설이 제일 신빙성이있다
여진족 거란족 동이족임 몽골과 같은 유목민계열
거란족: 여진족이 만 명을 넘으면 당해낼 수가 없다
만주족 : 조선인 만명이 넘어도 그냥 들쥐떼이다
우리 조상들께서 상투를 틀때 윗부분은 밀어버리고 주변머리를 모아 상투를 틀었는데 ...상투를 틀지않고 그대로 내리면 변발과 같죠! ...같은 동이족인데 우린 상투를 틀고 여진 거란 몽골등은 상투를 틀지 않은점은 뭘까?...제 생각을 좀 보태자면 직계와 방계의 차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즉, 배달 고조선의 직계인 고구려는 상투를 틀고 방계인 여진 거란 몽골등은 상투를 틀지않고 변발을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집안에서 제사를 모실때 직계 장손과 그외 자손들처럼 말이죠!...
동이는 혈통적 연관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닙니다
주나라의 동쪽에 있는 야만인들을 뭉뚱그려 표현한 멸칭일 뿐입니다
왜 이런 단어에 집착하는 지 모르겠네요
상투는 고조선과 주변 동이족들의 문화인건데. 고구려 후손이던 여진이 변발을 한건 거란에 지배당하면서 시작한게 아닐까요.
@@코드지로 상투는 한족과 한반도, 일본 열도에서도 있던 보편적인 문화입니다. 지역에 따라 형태는 다르지만 상투가 한국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Abkaijui 한족 조상 화족들은 상투 없었어요. 나중에 중원 진출하고 상투 따라함.
@@코드지로 혹시 환단고기를 좋아하시나요
몽골도 그렇고 여진도 그렇고 지배층이 바뀐거일뿐 백성들 삶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소수의 몽골족 여진족들이 중국을 지배 할 수 있었던거 같아요.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북방민족들은 하늘과 인간과의 연결고리로 하늘과 제일 가까운 머리에 각 족속마다 여러형태로 문화가 형성됐다고 봅니다~~~
우리 한민족이 상투를 통해 하늘과 가까워지길 원했듯~~~
여진 거란도 그랬구요.
또한 각 부족마다 머리모양으로 서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그 형태도 달랐을겁니다.
숙신 말갈 등으로도 알려진 여진족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건국하였고 고려를 아버지의 나라라 하여 우대하였다. 중국보다는 오히려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가 훨씬 밀접함에도 여전히 중국의 역사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진족의 추장은 신라인, 김함보라 청나라 황실의 성씨, 아이신교로는 한자로 금(=김)으로 신라 왕실의 후예임을 나타냈읍니다.이이제이의 '이'를 오랑캐로 번역하면 안됩니다. 이의 뜻은 크다, 인이라는 뜻으로 오랑캐라는 뜻은 없으며 이족이 우리의 조상입니다. 조상을 오랑캐라는 사람이 어디 있읍니까?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한심합니다. 다시는 그런 말 히지 마세요.
고구려 후손이 여진이자나???
같이 모여 살았는데 여진 따로 고구려 따로 번식했다는게 말이 되냐???
그게 매국사학자놈들의 주장이죠...미친 놈들이죠...고구려 망하고 당으로 끌려간 사람외엔 그 땅에 그대로 고구려인들은 살았죠..왕족들은 세금을 걷어들이며 토호세력으로 백성은 백성대로 대대로 그 땅에 살았죠...발해. 금.청인들을 여진족으로 따로 부른 기록은 희소한데 그걸 부풀려서 여진인들을 따로 실체화시켜 마치 고구려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왜곡했는데 그 왜곡한 놈들이 중국도 아니고 친일관변사학자놈들 이죠..이러한 사관을 그대로 답습한 강단사학이 스스로 굴종적으로 역사를 왜곡...일본에서 해방된지가 언젠데 아직도 일본놈들의 식민사관을 주입시키며 일본놈들의 쫄짜를 자처하고 있죠...천인공노할 친일매국노들...
저런 놈들을 통제한 고구려는 얼마나 강했던거냐???!!
고구려는 추위를 못이겨만주에서한반도로도망한 민족이다 때 문에 억울하면 국군을 만주로진출시켜야한다 즉 이성계의뒤를이어 제이차요동정벌을해야할다
@@xiujipiao5035 웃기시네
@@xiujipiao5035 조선족 자꾸 왜 유튜브하냐; 너네 중국인이잖아 근데 왜 유튜브해;
@@xiujipiao5035ㅂㅅㅇㄱ
금나라는 흑수말갈의 후손들이 세웠죠. 흑수 말갈은 우리와 피가 많이 다릅니다. 속말말갈은 발해를 세우고 이후 청나라를 세웁니다
혈통으로 여진족이 우리와 가깝지 않을까? 추운데서 점차 귀화한 이들도 많고, 일제시대엔 올라가 살았잖은가?
고구려 땅에 살던 고구려인들임.여진족 고대 한국인
"빠른 기마병의 기동력"?(X)
기마병의 빠른 기동력!(O)
여진의 금나라 청나라 이사람들은 아이신
애신각라 본인들이 신라의 후예라고 청나라의 공식 역사서 만주원류고에 정확하게 나와 있음.
이런데도 중국본토가 니들 화하족 역사라고? 진나라, 수나라,당나라도 화하족 나라가 아님.
다른 주변 민족들은 중국을 제외하면 다들 변발을 했는데, 왜 우리 민족은 상투를 트는 방식으로 진화했을까요...? 신기합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손 효지시야 때문이 아닐까요. 부모가 준 신체는 터럭 한 올도 뽑지 않는 것.
@@예쁜나-v8s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예전에 국사를 공부할 때는 상투는 한민족 고유의 전통이라고 배웠습니다.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할 때 상투를 먼저 틀고 들어왔다고 배웠구요... 이와 달리 유교식 사상과 문화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이후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뭔가 일의 순서로 따지면 다르게 추측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이수수 더 멋진 답변에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스스로 소중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맹의 도를 따르는 유교국가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yuntorisisatsu 소중화 의식의 발전은 조선 중기 이후 아닌가요...?
배우 여진구님이 이 영상을 흥미로워 합니다
몽골 과 여진이 당시의 각각의 최고 전투력으로 싸웠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궁금하다.
말타고 편하게라는게 여진족 변발의 일반적인 해석인데
muduri 즉 여진족의 신 중 하나였던 용의 꼬리랑 상관있지않을까요
즉 여진의 종교가 변발의 이유였다는거지요
변발의 이유는 지배계층이 탈모를 겪으면서 위상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 다 변발을 하도록 강제하여 탈모로 인한 노쇄함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이게 정답임ㅋㅋ
전두환때 그럼 다대머리😂
그건 아닌듯 우리나라는 탈모없냐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로 확신하는건 아닌듯요
어렸을때 영화나 드라마보면서 생각하던건데 ㅋ
내가 왕이고 탈모라면 밑에놈들 강제로 머리빡빡밀게 해야지~
근데 그게 진짜였어? ㅋㅋㅋㅋㅋ 아님 글쓴이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거야? ㅋ
저도 이생각했엇음..고대페르시아 제국귀족들은 탈모방지를 위해 거시기를 거시기했음.. 중세 카톨릭수도사들도 민머리...탈모로 머리 빠질빠엔 다같이 미는거.일본 에도시대가 대표적.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일반 대중은 여진식 변발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일본 자신들도 변발을 했었으면서.. 아시아 다른 나라의 변발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더군요. 한국도 여진/일본식 변발은 영화/드라마로 접해서 알지만, 몽골계 변발을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이럴땐 유교에 감사함;
일본은 여진족과 역사적으로 점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네요. 여진구의 침탈이나 청일 전쟁 정도 제외하면 딱히 교류나 충돌이 없는 편이죠. 그러니 사극으로 만들어질 일도 적어서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guaaaak유교랑 상관없다. 우리나라는 고대로 상투를 틀어 올리는 풍습을 가졌다. 중국은 머리를 길게 늘였고, 몽골쪽은 다 밀고 머리 중앙을 길게 따았고, 여진과 일본은 변발을 했고.. 무식하게 유교영향이라니..
@@양태민-l7d상투는 유교랑 상관없는게 맞죠 ㅎㅎ
일본도 원래는 변발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긴 머리를 뒤로 매고 다녔는데, 무사정권시대가 되면서 투구에 차인 열기를 해소하고자 위의 머리를 밀었던 것이지요. 나중에는 그 스타일이 유행이 되어서 에도시대에 보편화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도 머리숱이 너무 많으면 상투를 틀고 다니기가 불편하여, 숱을 많이 치고 상투를 틀었습니다.
유행과 피아식별용 아님? 변발을 했다는 이유들이 우리 조상처럼 상투를 틀었으면 대부분 해결될 문제들이잖아. 그나마 물이 귀해서라는 것은 납득이 되는데, 몽골이 아닌 여진족은 그마저도 갸우뚱.
여진이 말갈족 인가요???
여진족 변발이유 ㅡ> 황제가 대머리라서 그 백성들도 황제와 같은 스타일을 함.
천자 총통의 사거리는 1200보로 나오는데,
3~4km?
5 600미터일 것입니다
말갈 읍루 여진 숙신..등등 이들을 우리에게서 떨어뜨린건 일제입니다. 그 이유는 생각해보세요
청나라는 후금으로 후신라라고 볼수있습니다
제일오른쪽에 있는분 여진족비슷함😊
용골대오셨네.순하게보이네요😊😊😊
중국역사상 가장위대한 황제 천고일제 강희제,,,,,세계제국을 건설한 청나라 여진족이,,
오늘날 씨가 말랐네,,,,,,,,,,,중국 한족의 동화능력이 무서울따름이다,,,,,
스튜디오에 여진족이 있는거 같습니다~!
앗..저기도 여진족 1인 있네 ㅋ
^^;;;
북두칠성 하늘과 최대한 가까이 - 흰옷 입은무리 백의민족 제사장 천손 흰말 유니콘 전설이 한국인 이다
여진족. 한반도와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아종인 아무르호랑이의 주 서식지에 같이 살던 강인한민족
상투틀고 공자왈 맹자왈 달달 외우고 시문을 읊어야 양반 사대부로 ... 그런 문화와 전통에 익숙한 우리가 이민족으로 치부하는 여진을 생각하면서도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 민족의 역사로~ 중국이나 일본 역사학자들은 어찌 생각할지...
"상투"틀고 공자왈 맹자왈? 상투는 지나의 유교가 들어오기도 전부터 한반도 민족의 두발 전통이었음. 변발과 머리깍는 부위만 다를 뿐 거의 유사하게 머리를 깍음. 상투를 틀기전에 정수리 부위 머리는 전부 밀고 상투를 틀었음.
이게 뭔 ㅂㅅ같은 생각이지 그런걸 왜 걱정함? 따지자면 중국은 몽골도 지들역사라고하고 일본은 상태가 더 심한데 사서는 소설이고 고고학 왜곡은 현대에 일어난 일임 뭔 눈치를그렇게봄
진심 대한민국 배우들은 조상님들께 감사해야 된다, 예전에 주변 나라들 남자들 머리보면 앵간한 정신력으로 그머리 하고 연기 못하지ㅎㅎ
지도로 봐도 여진족 세력권이 작지는 않았음.
인구가 적어서 그렇지...
인구 적어서 세력권 작다는 말도 틀린건 아닐듯 임진왜란 이전까진 명 조선에 조리돌림 당하는 신세엿음
그 요즘 방영 되는 고려 거란전쟁에서 거란족 변발 한번 봐보셈 그 원형탈모 같은 변발 보다는 차라리 황비홍 스타일의 변발이 나아 보일 정도 입디다
샴푸가 없어서...
임진왜란 이야기가 같이 나왔어야는데 당시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네요
그 옛날에 두피건강을 위해서 변발을 했다는 클라스 쩐다.
살인광을 미화하는 미친 역사기록과 강의.
국립진주박물관이 큰일했네.
여진족,몽골족,만주족....고구려 유민의 다른 이름임. 같은 핏줄인 우리가 그들을 이민족 처럼 부를 필요가 없슴. 대륙의 고대 국가 중에 동이족의 나라인 은나라, 상나라 뿐만 아니라 원나라, 청나라도 우리 역사로 가르쳐야 함.
중국 동북공정은 역사 왜곡이지만 , 내가 말하는 것은 중국 사서만 가지고도 대륙의 역대 왕조 중에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슴.
발해 멸망 이후 여진은 생여진, 숙여진으로 정의되었다. 이 분류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이 한 것이다. 이 중에서 숙여진(흑수말갈을 제외한 여진)만 우리 민족과 관계가 있다. 이들은 오랜기간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고 고구려 멸망 이후에는 발해인이 되었다. 발해가 멸망하자 숙여진은 거란 치하에서 거란인에게 협조하여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거란이 망하자 생여진의 금나라가 산둥과 화북으로 이들을 뿔뿔이 강제이주시켜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발해가 멸망할때 왕자 한명이 무리를 이끌고 왕건이 통치하던 고려로 귀순하여 고려에 동화되었다.
숙여진을 탄압했던 생여진(흑수말갈족)은 고려와 동북9성을 놓고 전쟁을했고,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웠다. 이들은 북중국을 정복한 뒤 통치를 위해 중원으로 들어가버려서 여진족으로서의 계보가 끊겼다. 여기까지가 고려시대 여진족의 설명이다.
반면 영상에서 설명하는 조선시대의 여진족(건주위, 해서위, 야인여진)은 퉁구스계 부족들이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남하하여 한족, 조선인, 몽골인과 섞여 형성된 것으로 고려시대 생여진, 숙여진과 별 관련이 없다. 이들은 고구려, 발해와 접점이 없다는 말이다. 굳이 우리민족과의 연관성을 찾으려면 건주위 지도층이 이성계 부하 출신인것과,
조선과 여진의 국경이 워낙 길다보니 국경을 넘어와 조선인이 된 여진족들, 혹은 반대로 만주로 넘어가서 여진족이 된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정도.
청나라의 초대 황제인 홍타이지는 이처럼 혼란스러웠던 여진족의 근본에 대한 고민 끝에 여진족이라는 이름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따지고보면 자기들의 근본은 여진(주르첸, 주션)이 아닌데 왜 자꾸 여진으로 부르냐며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고 만주족으로 민족이름을 변경했다.
만주원류고에 나와요. 만주족의 원류로 지금 한국이 나옵니다. 한국은 중국 만주 심지어 몽골 튀르크 그리고 일본에게도 좋은 친구이고 한 원류로 이어져 있습니다. ♡
저는 일본이 제일 좋고 한민족은 일본보다 못한 존제라고 믿지만 어쨌든 한국을 사랑합니다 !!!
근데 왜 나라 이름을 금이라 했을까요?
@@만주벌판-s5m 만주말로 후금은 만주 구룬(만주 나라). 반면 금나라는 주션 구룬(여진 나라). 즉 그들말로보면 두 나라가 같은 국명을 썼다고 보기엔 애매하다. 대외적으로 중화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금(金)이라는 중국의 한자를 공유했을 뿐 이 금이라는 명칭을 읽는 방법도 금(알춘), 후금(아이신)으로 꽤 차이가 있다. 누르하치가 금나라를 칭한것은 정치적으로 과거의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와, 과거 금나라의 강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또 홍타이지 이전까지는 그들 스스로도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해서 과거 동북지방에서 가장 유명했던 종족인 여진족과 자신들을 동일시 한 측면도 있다.
사실 만주원류고에서 만주족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법만 봐도, 만주족의 선조가 주션 구룬의 땅에 살고 있었다는 식으로 매우 애매하다. 여기서 주션 구룬이란 지금의 중국 동북3성,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일부, 북한의 함경북도 지역까지도 포괄하는말로 중세 여진족이 정복했던 넓은 땅을 의미하는 것이지 여진족이 살던 땅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션 구룬에 살았다고 해서 여진족이라는것은 오해이다.
비슷한 예로 몽골족이 러시아와 중동, 페르시아까지 정복하여 예케 몽골 올로스(몽골 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세웠고 러시아인, 아랍인, 페르시아인은 몽골 제국의 땅 안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몽골 제국에 살았다고 해서 그들이 몽골족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진족이 정복한 넓은 땅에 살고 있었다고 해서 여진족은 아닌 것이다. 이 예시는 매우 적절한 것이 몽골제국이 망한 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몽골을 계승하는 수많은 나라가 생겨났고 인도의 무굴 제국은 아예 국명이 몽골(무굴)이었다. 물론 혈통적으로 따지면 무굴과 몽골은 사실상 연관이 없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 그리고 영토에 대한 명분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옛 국가의 명칭을 따오는 일은 매우 흔하다.
@@mool_tissue 초점이 그게 아니고, 신라의 김씨 왕족과의 연계성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생여진은 왜 신라와 연결되었을까요?
@@만주벌판-s5m 응 접점 없어 ㅋㅋ 환빠 또 지랄이네
복속과 이탈을 반복한 몽골어에도 고구려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던데 여진 문화의 상당수는 고구려신라 영향을 받은게 많을듯
실제 강원도 함경도는 말갈로 부르기도했음 이게 종족 분류가 아니라 산맥인가 지역분류라고하던데
그런적 별로없다.
@@12coom 뭐가 별로없다는 말임?
@@우이쒸
영향받은거 별로없다고.
@@12coom 보빈말을 예로 들었을뿐이지만 교류가 있던 나라에서 영향이 없을 순 없는데 없다는 근거는 뭐임
@@우이쒸
그런것보다 오히려 한국어에 몽골, 여진같은 북방유목민족 한테 영향받은게 더 많은. 대표적으로 장사치 ,벼슬아치 같은 치라는 단어도 몽골어 다루가치에서 비롯된 것이고 압록강도 만주족 언어 얄루에서 비롯된 단어.
이혜성 볼수록 매력있네
우리나라 김씨가 사실 금씨래요. 한자가 금자에요. 조선에서 김이라고 부르게 했대요.
누루하치와 현봉식배우닮음
어디 근처에 진지만 구축하면 쏴버리겠군요
조선시대 상투도 드라마처럼 그런거 아니라한것도 들음. 가운데 정수리만 뽑고 그 뽑은 부위를 중심으로 꼬아서 상투틀었다는 썰들음. 그래야 갓도 쓰고 여름시대 덜 덥고 실용적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