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법문은 항상 저를 어둠에서 깨어나게 해줍니다. 오늘의 "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법문은 항상 어렵게 느껴젔던 공사상에 대하여 단순히 탁상공론식의 설명이 아니라 수도자로써 수행 경험을 더하여 보면 고성제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고 너무 현학적이고 철학적으로 공사상을 전개함으로써 수행에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점도 지적해주셨습니다. 참으로 수행력이 돋보인 법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법문에서 "용수의 "空" 思想이 부파불교 중 가장 세력이 컸던 설일체유부가 부처님 법을 분석하고 체계화한 아비담마에서 75가지 법은 自性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데 대한 반발로 " 법 자체도 자성은 없고 空한 것이라는 공 사상을 전개했다고 하는 공사상 출현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여줌으로써" 저에게 부처님 이후 현재까지 불교사상의 변천을 보게 만들었고 결국 여러가지 불교의 종파나 사상은 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부분과 종파의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해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 무상, 고, 무아를 논리적,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불교의 과학성과 논리성을 증명하는데 기여한 면과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렵고 왜곡되게 하는 오류를 범하는 공과 폐단이 있었고, 종파나 조사들의 사상은 전 시대를 관통하지 못한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한계가 있음을 아는데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원음을 넘어선 탁월한 사상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혼란에 빠져 시간 낭비말고 부처님 원음인 사성제로 매진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공을 참 명쾌하게 설명하시네요. 불교책 여러권 보고, 인터넷 뒤져보고 다해도 이정도로 공을 설명하는 것을 못봤음 대충 남이 하는 뜬구름 소리 하는 중생들만 봤지. 앞으로도 좋은 법문 많이 기대합니다. 역시 모든 중들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스님분들은 설명이 참 좋네요.
일묵스님께서는 성자가 되고 예류자가 되고 7번 안으로만 윤회하면 되고 저는 끝도없이 기약도없이 육도를 윤회해야 하니 스님이 부럽습니다. 대륙의 지배자보다 우주를 지배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남자라면 사람이라면 스님같은 포부와 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법문 잘 듣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머리가 아둔하면 조금은 이해가 느리게 되는 불교 그러나 걱정안하겠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알려주시고 가르침주시는 일묵스님의 법문을 귀쫑긋하며 한말씀도 안놓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성불하는 그날까지 . 불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철학! 저의 목표는 자타일시성불도 !!
ㅡㅡ 공에 대한 소고 ㅡㅡ 공(반야심경)은 살아있는 활공을 말하며, 이 활공과 함께 상대,대대가 없는 절대 지혜가 함께 합니다. 이 뜻이 선정과 지혜가 항상 함께 합니다. 때문에 ㅡ정혜쌍수,정혜쌍용ㅡ 이란 말을 합니다. ㅡ공ㅡ의 두가지 측면, 즉 선정과 지혜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적적성성, 공적영지, 무실무허(금강경) 등이 있습니다. ♥ 부연한다면, 활공(적적, 공적, 무실)과 지혜(성성, 영지, 무허)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 선정과 지혜는 항상 함께한다. ㅡㅡㅡㅡㅡ ♥불법은 아는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나는 49년 동안 한 법도 설하지 않았다(부처님). 아공, 법공, 구공을 체득하라. ♥ 너의 주인공, 나의 주인공, 당신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은 넷이 아닌 하나다. ♥ 심 불급 중생 시삼 무차별.
있다 없다는 한낱 사람의 가치 의미적 판단이어서 끝도 없이 존재하거나 끝도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유무의 표현울 사용하지 않듯이 이런 자신의 지식적 판단의 결과물인 현상울 존재로 착각하여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림자가 영원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듯이 눈 앞 그림자가 내 머릿속의 지식적 현상일 뿐이어서 그림자란 우주적 상황이 반복될 뿐이고 이것을 참나가 인지하여 세계란 현상으로 펼쳐놓은 것이어서 그림자란 개별적으로 드러나지만 가치적 의미로는 보편자라 생각할 수 있어 개별적인 그림자(색)가 거기에 없으므로 무아(공)라고 할 수 있고 그림자를 만들어 보고 있는 나가 명확히 존재하므로 이 나룰 참나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주가 지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고 그림자란 우주적 상황을 알아차려 지식화하여 세계를 만들고 있는 참나라는 것이 우주적 실체인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참나가 바로 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왜 그런지 논리적 이해가 안됩니다. 단지 그림자가 통으로 날라가니 개입된 것은 나밖에 없어 공으로 나라는 것이 치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공은 홀로그램같은것으로 이해하면 될런지요 있기는 있으나 실제의 그것은 아닌것.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딱 언어의 논리로 전할수 있는것만 설법하신것같습니다. 언어논리를 넘는 그무엇을 전해봐야 중생은 이해하지도 못하거니와 왜 말이 앞뒤가 다르냐며 받아들이지 못했을것같네요 언어를 넘어서는 세계. 언어로 전할수 없는 그무엇. 귀한 말씀들은 지엽적인것을 전할뿐이고 깨닫는것은 내가 찾을일. 깨닫고나봐야 결국 그자리가 원래부터 내가 계속 있었던 그자리일것같아요 상상을 해봅니다. 이세상에 오직 한사람만 살고 있습니다 그는 먹을것이 널려있고, 혹은 먹는다는 행위가 전혀 필요없고 언어도 없는 세상에 혼자 사는 그는 깨달을 필요도 없는 이미 깨달은 존재일듯합니다 원래 우리는 네츄럴본 모두 깨달은 존재인데 인간 사회에서 사회속의 인간으로 교육.언어.환경등을 거치며 온갖것이 덕지덕지 입혀져 우리는 원래 우리가 부처인걸 모르는게 아닐까 합니다. 내일 돈벌러 나가려면 어서 자야되는데 잠이 안와서요..
태어남이 없는 것도 그리 좋다고도 볼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모든 고등동물에 본체는 영체인데, 이 영체는 이 우주상에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상상을 초월하게 많습니다. 이를 또는 유정체라고 합니다. 이들은, 우주에 있는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체, 유정들은 선한 일도 악한 일도 아니 하는 중간정도의 삶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래서 그리 좋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이 영체, 유정체가 사람으로 태어낫을때 육신의 복을 만끽하고 누리고 살며는 반드시 역학적으로서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양쪽을 다람쥐챗바귀 도는 식으로 계속 반복하여 살게 됩니다. 영원히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 하고싶은것 다하고 복되게 살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최상으로 좋은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생물로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계율과 양심에 어긋나는 짓거리 절대하지 않는것 및 매사에 사리에 맞게 일처리 하며 사는것, 이 3가지를 어떠한 조건과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는것 이것이 아예 내 심신에 금강석 같이 굳어져 살아가는것 이 상태가 되면 아라한이 되고 더 굳건히 잘하면 더높이 올라 갑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최고로 보람된 삶은 바로 이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 상태에 이르자면 일생을 하고싶은것 하며 살수도 없고 만복도, 또 이러저런 복도 누리며 살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경지에 이르느라 고생만 박박하며 산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착오, 착각에 많이 빠지는게 많이 알며는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줄 아는데 절대 이렇이 않습니다. 이래서 불교계에 박사, 교수, 이외 이와 대등한 스님분들이나 재가분들이 마치 자신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느냥, 이 이상 넘어섰느냥 많이도 으시대고 큰소리 뻥뻥 치시는데 절대 그렇이 않습니다. 행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위의 3가지 심신행이 요지부동으로 굳어져야 합니다. 위에 나열한 분들은 거의 대부분 알음알이는 모두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행실은 0점 입니다. 이점을 대단히 명심해야 합니다. 아뭏은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 위의 3가지 습성을 공고히 잘 익혀서 아라한과에 이르고 이를 뛰어넘어 멀리멀리 높은 경지로 가는 것이 최상최고의 인생삶 입니다.
법은 건너기 위한 뗏목이다... 맞소.. 부처가 한 말은 맞소...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자의 말은.. 그 뗏목만 목적이고 건넌 후 목적지는 관심 없다. 법,, 이것이 뗏목인 것이다. 경전 이것이 뗏목인 것이고, 건넌 후의 목적지는 공이다. 일묵스님은 공이 뭔지 모르는 것 같네,, 왜 설명을 못하지? 내가 알려주마.. ~! 공이란?.. 뇌에서 느끼는 인식, 멈춤없는 인식체계가, 그 인식 대상을 특정하지 아니한 상태인 것이다. 공은 상태이고, 이를 유도하는 것은 허이다. 즉 인식대상이 없는 뇌의 인식상태(수면,기절 뇌사와 다름)로 인식의 방향성과 대상이 없고, 즉 벡터상태가 아닌, 스칼라상태로서의 느낌이 없는, 그러면서 모든걸 느낄 수 있는 상태, 광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상태 ! 이것이 공이다. 왜 이상태가 필요한가 ? 본능마저 잠든, 억제된 상태로, 순수상태의 존재(선입견, 지식,경험,의지 등을 배제한)를 느낄 수 있고 이것은 모든 번뇌(아성, 욕심)이 없는 순수세계이다. 번뇌란 ? 담에.... 바빠....용
지혜의 말씀에 어리석은 마음을 알고 집착을 내려놓습니다~~~🧎♀️🧎♂️🧎♀️🙏🙏🙏
😮😮
😮
스님의 법문은 항상 저를 어둠에서 깨어나게 해줍니다. 오늘의 "공이란 무엇인가"라는 법문은 항상 어렵게 느껴젔던 공사상에 대하여 단순히 탁상공론식의 설명이 아니라 수도자로써 수행 경험을 더하여 보면 고성제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고 너무 현학적이고 철학적으로 공사상을 전개함으로써 수행에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 점도 지적해주셨습니다. 참으로 수행력이 돋보인 법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법문에서 "용수의 "空" 思想이 부파불교 중 가장 세력이 컸던 설일체유부가 부처님 법을 분석하고 체계화한 아비담마에서 75가지 법은 自性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데 대한 반발로 " 법 자체도 자성은 없고 空한 것이라는 공 사상을 전개했다고 하는 공사상 출현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여줌으로써" 저에게 부처님 이후 현재까지 불교사상의 변천을 보게 만들었고 결국 여러가지 불교의 종파나 사상은 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부분과 종파의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해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 무상, 고, 무아를 논리적,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불교의 과학성과 논리성을 증명하는데 기여한 면과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렵고 왜곡되게 하는 오류를 범하는 공과 폐단이 있었고, 종파나 조사들의 사상은 전 시대를 관통하지 못한 한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한계가 있음을 아는데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원음을 넘어선 탁월한 사상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혼란에 빠져 시간 낭비말고 부처님 원음인 사성제로 매진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공을 참 명쾌하게 설명하시네요.
불교책 여러권 보고, 인터넷 뒤져보고
다해도 이정도로 공을 설명하는 것을 못봤음
대충 남이 하는 뜬구름 소리 하는 중생들만 봤지.
앞으로도 좋은 법문 많이 기대합니다.
역시 모든 중들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스님분들은 설명이 참 좋네요.
교를 통한 선의 완성을 존경합니다
또다시 들어도 空에 대한 명확한 법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일묵스님께서는 성자가 되고 예류자가 되고 7번 안으로만 윤회하면 되고 저는 끝도없이 기약도없이 육도를 윤회해야 하니 스님이 부럽습니다. 대륙의 지배자보다 우주를 지배하는 것보다 좋습니다. 남자라면 사람이라면 스님같은 포부와 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법문 잘 듣고 있습니다.
☝🏼
깨달음으로의 여정!에서,
가까이 다가감의 법문,법문들....
"색즉시공"에서 비롯된,
"공"의 잘못된 분별심,
그로인한 불교에 대한 오해들...
해서, 더욱더,
스님의 기본적인,법문!
중요함이 ~~~
다시금,감사드립니다!
법문 감사합니다. 여기 저기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진리의 파편들이 한줄로 꿰어져 머리속에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님 법문 너무 알기쉽게 설명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보고 또 봅니다. 볼때마다 새로운걸 배웁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요즘 일아스님의 숫따니빠따를 다시 읽고 있는데 일묵스님의 사성제를 여러 번 읽고 읽으니 확실히 훨씬 더 이해가 빠르네요.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많은 강의도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드리고, 건강하십시오 스님 🙏🏼
기독교인입니다.부처님정말위대한인류스승이라는생각이들어요
_()_ 법문 감사합니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데 스님 덕분에 공사상이 많이 이해가 됐습니다. 스님이 쓰신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성제를 바탕으로 여러 불교 가르침을 포용하는 스님의 넓으신 도량을 수희찬탄합니다. ()()()
공성에대해이해한상태가되어야 분별심을벗어날수있고 바른사유가가능하다~
공성에대해 잘 설법해 주셔
감사합니다...!😊🙏🙏🙏
스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설명을 너무 잘해주십니다.
유튜브로 알아차림. 사띠를 알게되면서 관심갖고 수행했을 때 고통에서 해방된 경험을 하고 참 대단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상올려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매우 유익한 법문 감사합니다.
"사성제"!
불교의 기본적인 법문,
스님의 소명의식!...?
자긍심, 자부심으로~~~
널리널리 !
펼치시길~~~~!!!!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ᆢ
잘 들엇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
스님 고맙습니다 🙏🙏🙏🙇♀️🙇♀️🙇♀️
자세한 설명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군더더기 없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네요. 구독 박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공부 많이 하신 스님이네요.. 내용 좋습니다.
일묵스님의 법문이 최고입니다~ 사두 사두..()..
(저의 경우)머리가 아둔하면 조금은 이해가 느리게 되는 불교 그러나 걱정안하겠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알려주시고 가르침주시는 일묵스님의 법문을 귀쫑긋하며 한말씀도 안놓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성불하는 그날까지 . 불교는 종교라기 보다는 철학! 저의 목표는 자타일시성불도 !!
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께 삼배올립니다 ()()()
사두사두사두!!
ㅡㅡ 공에 대한 소고 ㅡㅡ
공(반야심경)은 살아있는
활공을 말하며, 이 활공과
함께 상대,대대가 없는
절대 지혜가 함께 합니다.
이 뜻이 선정과 지혜가 항상 함께 합니다.
때문에 ㅡ정혜쌍수,정혜쌍용ㅡ
이란 말을 합니다.
ㅡ공ㅡ의 두가지 측면, 즉
선정과 지혜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적적성성, 공적영지, 무실무허(금강경)
등이 있습니다.
♥ 부연한다면,
활공(적적, 공적, 무실)과
지혜(성성, 영지, 무허)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
선정과 지혜는 항상 함께한다.
ㅡㅡㅡㅡㅡ
♥불법은 아는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나는 49년 동안 한 법도
설하지 않았다(부처님).
아공, 법공, 구공을 체득하라.
♥ 너의 주인공, 나의 주인공,
당신의 주인공, 우주의 주인공은 넷이 아닌 하나다.
♥ 심 불급 중생 시삼 무차별.
공(空)은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
서울대 출신이니
스님말씀 듣지
기타대 출신은
어리버리 해요
감사합니다
있다 없다는 한낱 사람의 가치 의미적 판단이어서 끝도 없이 존재하거나 끝도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유무의 표현울 사용하지 않듯이 이런 자신의 지식적 판단의 결과물인 현상울 존재로 착각하여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림자가 영원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듯이 눈 앞 그림자가 내 머릿속의 지식적 현상일 뿐이어서 그림자란 우주적 상황이 반복될 뿐이고 이것을 참나가 인지하여 세계란 현상으로 펼쳐놓은 것이어서 그림자란 개별적으로 드러나지만 가치적 의미로는 보편자라 생각할 수 있어 개별적인 그림자(색)가 거기에 없으므로 무아(공)라고 할 수 있고 그림자를 만들어 보고 있는 나가 명확히 존재하므로 이 나룰 참나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주가 지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고 그림자란 우주적 상황을 알아차려 지식화하여 세계를 만들고 있는 참나라는 것이 우주적 실체인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참나가 바로 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왜 그런지 논리적 이해가 안됩니다. 단지 그림자가 통으로 날라가니 개입된 것은 나밖에 없어 공으로 나라는 것이 치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수행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성제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군요. _()_
끝까지 가고 설법 하면 좋겠다 도통하고 모자란 있어요
2
여쭙겠습니다
열반은 인식을 넘어 깨닿는 것입니까 열반을 이해하는 것입니까?
자성이 없는 열반이 의식의 어떤 상태가 아니라면 부처님은 자성도 의식도 없는 열반을 어떻게 설할 수 있었을까요?
열반에 어떤 특징적 상태가 없다면 어떻게 열반을 표현할 수 있나요?
43:20-공성을 이해하지 못함을 무명
사성제에 대한 무지가 무명
아비달마도 비판!!
공사상도 비판!!
~~ 말세 하근기중생에게는
법에 집착하는 것보다
공에 집착하는 악취공이
더 무섭다 !! 한국불교의
망조가 여기 공에 집착한
것에 있다 공은 공때문에
망한다
공은 홀로그램같은것으로 이해하면 될런지요
있기는 있으나 실제의 그것은 아닌것.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딱 언어의 논리로 전할수 있는것만 설법하신것같습니다.
언어논리를 넘는 그무엇을 전해봐야 중생은 이해하지도 못하거니와 왜 말이 앞뒤가 다르냐며 받아들이지 못했을것같네요
언어를 넘어서는 세계.
언어로 전할수 없는 그무엇.
귀한 말씀들은 지엽적인것을 전할뿐이고 깨닫는것은 내가 찾을일. 깨닫고나봐야 결국 그자리가 원래부터 내가 계속 있었던 그자리일것같아요
상상을 해봅니다. 이세상에 오직 한사람만 살고 있습니다 그는 먹을것이 널려있고, 혹은 먹는다는 행위가 전혀 필요없고 언어도 없는 세상에 혼자 사는 그는 깨달을 필요도 없는 이미 깨달은 존재일듯합니다
원래 우리는 네츄럴본 모두 깨달은 존재인데 인간 사회에서 사회속의 인간으로 교육.언어.환경등을 거치며 온갖것이 덕지덕지 입혀져 우리는 원래 우리가 부처인걸 모르는게 아닐까 합니다. 내일 돈벌러 나가려면 어서 자야되는데 잠이 안와서요..
6세기 인도북부 의
역사 의 일부일 뿐...
21세기 현실직시 하고...
숫자+글자=벗어나는것 공
이다...
"번뇌의 소멸"
바라봄, 이루고자 함이..
같을진되....
어짜피,우리 모두,
뗏목에서 내려야할 밖에...?
뗏목에서 내려야
내려야만!
견불성~~~~!!
아닐까요???
부처는
45:22
태어남이 없는게 좋은건가요?
다시 태어나 복덕을 누리는게 좋은걸까요.
태어남이 없는 것도 그리 좋다고도 볼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모든 고등동물에 본체는 영체인데, 이 영체는 이 우주상에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상상을 초월하게 많습니다. 이를 또는 유정체라고 합니다. 이들은, 우주에 있는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체, 유정들은 선한 일도 악한 일도 아니 하는 중간정도의 삶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래서 그리 좋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이 영체, 유정체가 사람으로 태어낫을때 육신의 복을 만끽하고 누리고 살며는 반드시 역학적으로서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양쪽을 다람쥐챗바귀 도는 식으로 계속 반복하여 살게 됩니다. 영원히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 하고싶은것 다하고 복되게 살면 좋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최상으로 좋은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생물로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계율과 양심에 어긋나는 짓거리 절대하지 않는것 및 매사에 사리에 맞게 일처리 하며 사는것, 이 3가지를 어떠한 조건과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는것 이것이 아예 내 심신에 금강석 같이 굳어져 살아가는것 이 상태가 되면 아라한이 되고 더 굳건히 잘하면 더높이 올라 갑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최고로 보람된 삶은 바로 이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 상태에 이르자면 일생을 하고싶은것 하며 살수도 없고 만복도, 또 이러저런 복도 누리며 살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경지에 이르느라 고생만 박박하며 산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착오, 착각에 많이 빠지는게 많이 알며는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는 줄 아는데 절대 이렇이 않습니다. 이래서 불교계에 박사, 교수, 이외 이와 대등한 스님분들이나 재가분들이 마치 자신은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느냥, 이 이상 넘어섰느냥 많이도 으시대고 큰소리 뻥뻥 치시는데 절대 그렇이 않습니다. 행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위의 3가지 심신행이 요지부동으로 굳어져야 합니다. 위에 나열한 분들은 거의 대부분 알음알이는 모두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행실은 0점 입니다. 이점을 대단히 명심해야 합니다. 아뭏은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 위의 3가지 습성을 공고히 잘 익혀서 아라한과에 이르고 이를 뛰어넘어 멀리멀리 높은 경지로 가는 것이 최상최고의 인생삶 입니다.
인간들이이해안가는애기가지고중생들헷갈리게하지마라공은공동체라고쉽게애기해버려야중새이좀쉽게이해한다서로돕고서로사랑하라이게더맞는말이다쓸데없는말로구업지어호의호식하지말고부처님뜻쉽고간단하게똑바로전하라왓다갇다얼버무리지말고
법은 건너기 위한 뗏목이다... 맞소.. 부처가 한 말은 맞소...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자의 말은.. 그 뗏목만 목적이고 건넌 후 목적지는 관심 없다.
법,, 이것이 뗏목인 것이다. 경전 이것이 뗏목인 것이고, 건넌 후의 목적지는 공이다.
일묵스님은 공이 뭔지 모르는 것 같네,, 왜 설명을 못하지? 내가 알려주마.. ~!
공이란?.. 뇌에서 느끼는 인식, 멈춤없는 인식체계가, 그 인식 대상을 특정하지 아니한 상태인 것이다. 공은 상태이고, 이를 유도하는 것은 허이다. 즉 인식대상이 없는 뇌의 인식상태(수면,기절 뇌사와 다름)로 인식의 방향성과 대상이 없고, 즉 벡터상태가 아닌, 스칼라상태로서의 느낌이 없는, 그러면서 모든걸 느낄 수 있는 상태, 광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상태 ! 이것이 공이다. 왜 이상태가 필요한가 ? 본능마저 잠든, 억제된 상태로, 순수상태의 존재(선입견, 지식,경험,의지 등을 배제한)를 느낄 수 있고 이것은 모든 번뇌(아성, 욕심)이 없는 순수세계이다.
번뇌란 ? 담에.... 바빠....용
스님께서 설법하신 '공'은 축구공, 골프공이 아닙니다.
공 = 청정, 혹은 불생불멸과 같은 의미입니다.
청정한 안목의 깊은 수행을 통해서만 알 수 있지,
전도된 생각으론 일체악을 증장시킬 뿐입니다.
삭제해도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단어는 분명 쓸모없는 단어겠지요
모르는 것 안 떠들고
사기 안 치는게
공
입니다
Shiㅌ
너무 추상적인 내용으로만 말씀하시네요. 일반 불자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네요. 구체적인 사례도 들어서 이야기 하시면 좋겠습니다.
공, 업보는 있의나 작자는 없다.
명색, 정신과 물질?
이름과 형태가 아니고?
땟목은 부처님의 가르침(법; 다르마)이고
아비담마의 법(다르마)은 인식의 대상이
아닌지?
ㅈ
하찮은 글 하나가? 허~~뭘 그렇게 심오할것이 있는가?인생에 물질이 최고인데, 마음을비워서 행복을 찾는게 불교나 기독교나 공통이쟎어. 씰데 없이 심오하구만
미친 공이 공인걸 공을 설명할까 지랄이다 배워서 되면 부처를 가르처야지
공에 대한 설명 참 어렵게 한다.
분별심에서 괴로움이 시작되고
괴로움을 해결하려면 분별력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뭐 이런 이야기 아닙니까?
공부나 제데로 하고.
제데로 깨우치고 법문하소.
짧게 설명해도 다 아는 이야기
이것저것 갖다붙이며 설명한다고 욕보네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