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외조부는 자기의 언어와 문화인 독일보다는 태어날 때의 국가를 택해서 프랑스로 이주했고 슈바이처의 부친은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택해 독일이 된 알자스에 남았지요. 슈바이처 박사는 1차대전시 아프리카의 독일세력권에서 활동 중 프랑스에 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종전후 아프리카활동지가 프랑스영토가 되자 계속 활동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택할 수 밖에 없었죠. 슈바이처는 독어와 불어 모두에 능했지만 생각은 독어로 한다고 하더군요..참고로 프랑스애국자가 된 사르트르의 외조부는 사르트르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 완벽한 불어를 하지 못했다더군요...
샤르트르가 아니고 사르트르죠. (Cha. -> Sartre) 오늘은 정박님 발음이 정확하네요 ㅎㅎ. 슈바이처도 탄생지는 현 프랑스군요. 언급된대로 독일 프랑스 사이 국경이 자주 바뀌던 알자스 로렌 지방. 태어날 땐 독일제국이라 독일인, 1차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1919년 다시 프랑스국적이 되었네요. 참고로 슈바이처는 독어로 스위스인이란 뜻입니다.
영상 마지막 부분에 대한 담론 중 제 의견을 좀 덧붙여보면, 이것은 통신기술의 발전; 즉, 소셜 미디어의 수월한 접근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떤 오피니언이나 정보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제 2의 담론이 되기 위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X(전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바로 바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사고 판단의 시간적 여유가 그만큼 짧아지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 예전에 정프로가 지적한 적도 있었죠. 요즘은 무조건 빨리 판단해서 자기의 의견을 말해야 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희석되고, 사고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겁니다. 오히려 선동되기 쉬운 시대입니다. 하루만에 여론이 180도 바뀌기도 합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런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수도 있고, 이대로 계속 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안녕하세요 너무나도 잘 들었습니다. 요즘 문학도 그렇고 문과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들이 일상을 조금 더 편하고 잘 살아보자고 투자나 돈 버는거나 돈을 많이 버는 테크 관련 직업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들어내고 알리는게 강조되는 SNS 버추어 삶이 감성이라는 글자로 보기좋게 감싸고 강조해서 살아서 그런지 현대인들이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란 무엇인가를 잘 생각 안하는거 같아요. 종교인이 줄어드는것도 무신론적 가치보다는 종교생활이 나에게 어떤 실질적 배네핏을 주느냐? 라는 생각 때문에 줄어드는거 같구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책임보다 현재의 안위와 더 돈 많고 부를 누리는 삶 직장에서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너무 치중되어 있는가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역설적으로 교회를 가게되고 신앙이되는 경우도 있는거 같구요. 왜냐면 기독교에스는 개인의 삶의 대한 책임이 자기 부정과 순종을 통해서만 있으니 그 어떤 과정과 결과는 다 주님께서 이끌어 준다라고만 하니까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과 도덕적 고민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기분을 주는거 같거든요. 아마 이러한 점이 저는 실존주의와 상반 되는거 같습니다. 교회에서는 자기 부정 즉 자기 억압을 통한 하나님의 이끄심이 나의 고유한 존재는 하나님 아니고서는 없다를 받아 들이고 모든 일어나는 일에 그냥 기도와 하나님 인도와 순종으로서만 받아들이면 그 어떤 선택과ㅠ결과에 인간이 주체적인 책임을 입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실존적 문제를 다루고자 한 성경이 욥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욥기가 그 고통을 겪었지만 끝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욥기가 7배 더 부자가되고 아내와 많은 자녀가 생겼다는거는 나중에 다른 저자가 가져다 붙인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욥기가 그 이해 할 수 없는 고통 자기가 배우고 알아온 가치에서는 성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고통을 받아오며 살아오면 주님께 끝까지 질문 하는데 마지막 하나님이 욥기에게 다시 응답 질문을 하는 그 순간 그때가 바로 욥기의 기독교적인 실존적 질문이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욥기가 고통속에서 자기 친구들과 질응답을 하는게 아닌 그 고통의 이유가 될수있는 절대다가 욥기에게 figurative한 질문을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혹시 the book of job에 관련된 책 소개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도에서만 다를뿐이지 욥기가 하나님으로부터 figurative한 질문을 받은 그 순간을 보통의 나름 도덕적으로 법 잘키면서 살아온 사람한테 대입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욥기가 응답을 받는 그 순간이 보통 신앙인으로 치면 그때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내가 나름 잘 살아왔는데 왜 이꼴을 당하고 있을까? 욥기야 욥기야 거기 있느냐 라고 하면서 말이죠 키에르 케고르의 leap of faith 개념도해서 키에르 케고르와 book of job 둘다 섞어서 왠지 좋을거 같은
그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지켜야할 규칙을 정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상황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요.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도 잘 살것처럼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규칙도 잘 감수하며 살 수 있다는 말인데, 마녀사냥을 하는 중세 사회에서 당신의 가족이 마녀로 몰려서 화형 당할 위험이 있는 그 사회에서 잘 살 수 있을까요? 어째서 이데올로기를 공허한 것으로 인식하는 잘못된 인식이 퍼진 것인지 모르겠군요.
세상 살아보니 주의나 이념 그리고 종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분은 깨달은게 아니라 결론을 내린겁니다. 근데 반박이 안돼요 마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배고프니 먹는다 처럼.. 살면서 꼭 마주 치는 언어들 입니다. 우리는 그냥 그런 언어에 피식 웃고 마는 거지요. 단순한 언어로 설명하는데 댓글 수준에 아닥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정당화 되기 때문에 오직 목적에 대한 합의만 필요하다. 수단의 정당성이 문제될 때, 이미 수단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을 함의한다. 어떤 수단을 목적1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데 그 수단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수단이 목적2를 훼손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1과 2중 무엇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가에 대한 합의를 통해 수단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일당백을 삼년째 들어왔지만 오늘 저는 처음으로 조금 부끄러웠어요. 지성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 25년을 살고 있고, 프랑스어를 비랭귀지로 구사하고, 사르트르와 까뮈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며 그들을 탐닉할 기회가 그렇게 많았는데, 이런 자산속에 살면서 그들의 사상에 대해 참 제대로 알고 있는게 없었구나... 아니 그런 기회를 기꺼이 만들지 않았었구나...를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틀전에 유럽연합 의회선거가 극우당 몰표를 거두는 결과가 있었죠. 사르트르와 까뮈의 나라도 이제 예전같지 않다는 걱정과 불안이 만연해 있습니다. 남편은 ”걸작도 시대에 호응한다“는 대답을 했으나 ”Les mains sales"은 현재 읽어도 좋을 내용으로 보입니다. 원어로 꼭 읽어보려고요. 벌써부터 뒤늦은 지식이 차오르는 느낌 한아름 안고 행복하게 잠들수 있을것 같습니다. 겸손한 지성 정박님과 요즈음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진심으로 들어주신 영진씨와 지선씨께도 감사합니다.
우리 영진이 형은 매불쇼에서 한마디도 하질 않고 하차해서 시력이 문제란 건지 실어증이 문제인지 그래놓고 담론이 사라진 시대가 안타까워? 삼푸로인지 뭔지 그거 상장시키려고 양심이고 뭐고 그냥 침묵을 결정했다며? 여기 일당백 댓글에서 사람들이 그러던데? 최근에 경제와 문화, 환경과 미래를 아우르는 가장 품격있고 생생한 논쟁을 민희진 기자회견에서 봄 근데 정의를 멍멍 부르짖던 민주당 아저씨들은 가세연 뻑가 이런 것들이랑 민희진 막 공격하대? 김갑수가 민희진 가르치려 들고 최욱이 옆에서 공정한척 거들때 러블리는 그 옆에서 수발들던데? 삼푸로가 주식 채널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김여사 주가조작 다룬 적 있음?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실수로 사람을 죽인자는 죽일 수 없을지 몰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고의성이 있는 살인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죽여야만, 부정한 살인이 줄어든다.라고 생각 됨! 건희나 석열이처럼, 본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이용해서 여러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을 처형해야, 올바른 세상으로 전진 할 수 있다고, 생각함! 또 그 옆에 빌붙어 본인의 이익을 위해 동조하는 부역자들은 더욱더 처형해야 함!
관심은 많지만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지루한 주제를
접근하기 쉽게 토론처럼 자유롭게 대화해 주셔서
듣기 편해요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좋은 콘텐츠. 세 진행자 분들의 듣기 편한 목소리도 한몫😊
걷기운동때 듣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쉬워지고 지식도 쌓입니다. 감사합니다, 세분.^^
저도 맨발걷기 때 꼭 듣게되네요^^
정박님❤
사르트르와 까뮈라니!진짜 최고의 조합입니다!
역시 이런 철학분야의 핵심설명과 다양성 그리고 문제점 잇슈에서는 정박님의 탁월함이 좋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정프로의 해석도 good!
제가 좋아하는 작가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더 좋네요.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 너무 잼있게 들었습니다..소박하고 알기쉽게 설명해 주시는 겸손한 지식인 정박사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일당백 사랑합니다❤
정방의. 해설은. 최고..
정박님 사러뜨르😊
덕분에 웃으며 듣습니다
세분 건강하세요
???:"드러운손.."
카뮈.. 호감입니다..
2부가 기다려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말씀 전달하시는 교수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
대학시절 많이ㅡ 좋아했던 프랑스의 두 철학자…3부도 너무기대됩니다
일당백 항상 감사합니다.
들어온 손? 드러운 손? ㅋㅋ
정박님의 이런 발음의 손이 정프로의 더러운 손 발음보다는 깨끗하게 들리네요 ㅋ?😂
유투버 최고의 지성 정박님, 넘 멋져요 ❤
앗!!!! 벌써 금요일 일당백 들을 시간이구나!!!!!
와 오늘 컨텐츠 대박입니다
전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열대를 읽고 존경하게 됐는데 그 이름을 들으니 다시 20년만에 그의 책을 다시 꺼내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카뮈 응원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매번 고퀄리티의 영상 감사합니다
빨리 2부를 현기증 나네요
감사합니다.
샤르뜨르와 까뮈라니ㅅㅅㅅㅅ
저는 그 많은 채널 중 일당백을 선택했습니다. 빅데이터도 아니고
저의 의지로 이와 비슷한 채널중 들어보고 일당백이 저와 잘 맞아서
선택했죠. 탁월한 선택~^^
1키로커피
진짜맛있어요
최고의선택
맞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는게... 현대과학의 중론이니.. 난감하네요.
와 카뮈 사르트르....ㄷㄷㄷ 실존주의 아주 좋습니다 ㅎㅎㅎㅎ
드디어 제가 좋아하는 내용이❤❤❤
오 감사합니다. 흥메로운내용입니다 😊 잘보겠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사소한 주장이라도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게 방해가 되겠다 싶으면 특정 팬덤이 몰려다니며 폭력적인 악성댓글을 쓰는 것으로 그 주장에 대한 토론의 기회를 말살해 버립니다
요즘은 논쟁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의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 재밌다. 너무 너무 너무.
정박님 드론손이 뭔가 했네요 ㅋㅋㅋ
정프로. 너무 사랑스러워요 굿 👍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진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일까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진짜 자기가 선택하는 것일까 나인지 또다른 나인지 모를 유전자가 생존에 가장 유리한 생각과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정박님: "살어뜰으에 '드러운 손'"
"깜이에 '정이에 사람덜'"
정프로: ㅋㅋ
지선님: ㅇㅇ
사르트르의 외조부는 자기의 언어와 문화인 독일보다는 태어날 때의 국가를 택해서 프랑스로 이주했고 슈바이처의 부친은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택해 독일이 된 알자스에 남았지요. 슈바이처 박사는 1차대전시 아프리카의 독일세력권에서 활동 중 프랑스에 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종전후 아프리카활동지가 프랑스영토가 되자 계속 활동하기 위해 프랑스 국적을 택할 수 밖에 없었죠. 슈바이처는 독어와 불어 모두에 능했지만 생각은 독어로 한다고 하더군요..참고로 프랑스애국자가 된 사르트르의 외조부는 사르트르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 완벽한 불어를 하지 못했다더군요...
요즘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는데...그 실존의 뿌리인 자유에 관하여 깊은 관련이 있어 넘 재밌게 들었습니다
실존주의 시리즈 너무 좋습니다 ㅎㅎ
샤르트르가 아니고 사르트르죠. (Cha. -> Sartre) 오늘은 정박님 발음이 정확하네요 ㅎㅎ. 슈바이처도 탄생지는 현 프랑스군요. 언급된대로 독일 프랑스 사이 국경이 자주 바뀌던 알자스 로렌 지방. 태어날 땐 독일제국이라 독일인, 1차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1919년 다시 프랑스국적이 되었네요. 참고로 슈바이처는 독어로 스위스인이란 뜻입니다.
카뮈와 스르트르라니!!
이건 못 참지!!
영상 마지막 부분에 대한 담론 중 제 의견을 좀 덧붙여보면,
이것은 통신기술의 발전; 즉, 소셜 미디어의 수월한 접근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떤 오피니언이나 정보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제 2의 담론이 되기 위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X(전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바로 바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사고 판단의 시간적 여유가 그만큼 짧아지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 예전에 정프로가 지적한 적도 있었죠. 요즘은 무조건 빨리 판단해서 자기의 의견을 말해야 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희석되고, 사고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겁니다. 오히려 선동되기 쉬운 시대입니다. 하루만에 여론이 180도 바뀌기도 합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런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수도 있고, 이대로 계속 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안녕하세요 너무나도 잘 들었습니다. 요즘 문학도 그렇고 문과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들이 일상을 조금 더 편하고 잘 살아보자고 투자나 돈 버는거나 돈을 많이 버는 테크 관련 직업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들어내고 알리는게 강조되는 SNS 버추어 삶이 감성이라는 글자로 보기좋게 감싸고 강조해서 살아서 그런지 현대인들이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란 무엇인가를 잘 생각 안하는거 같아요. 종교인이 줄어드는것도 무신론적 가치보다는 종교생활이 나에게 어떤 실질적 배네핏을 주느냐? 라는 생각 때문에 줄어드는거 같구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책임보다 현재의 안위와 더 돈 많고 부를 누리는 삶 직장에서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너무 치중되어 있는가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역설적으로 교회를 가게되고 신앙이되는 경우도 있는거 같구요. 왜냐면 기독교에스는 개인의 삶의 대한 책임이 자기 부정과 순종을 통해서만 있으니 그 어떤 과정과 결과는 다 주님께서 이끌어 준다라고만 하니까 삶의 의미에 대한 고찰과 도덕적 고민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기분을 주는거 같거든요.
아마 이러한 점이 저는 실존주의와 상반 되는거 같습니다. 교회에서는 자기 부정 즉 자기 억압을 통한 하나님의 이끄심이 나의 고유한 존재는 하나님 아니고서는 없다를 받아 들이고 모든 일어나는 일에 그냥 기도와 하나님 인도와 순종으로서만 받아들이면 그 어떤 선택과ㅠ결과에 인간이 주체적인 책임을 입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실존적 문제를 다루고자 한 성경이 욥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욥기가 그 고통을 겪었지만 끝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욥기가 7배 더 부자가되고 아내와 많은 자녀가 생겼다는거는 나중에 다른 저자가 가져다 붙인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욥기가 그 이해 할 수 없는 고통 자기가 배우고 알아온 가치에서는 성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고통을 받아오며 살아오면 주님께 끝까지 질문 하는데 마지막 하나님이 욥기에게 다시 응답 질문을 하는 그 순간 그때가 바로 욥기의 기독교적인 실존적 질문이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욥기가 고통속에서 자기 친구들과 질응답을 하는게 아닌 그 고통의 이유가 될수있는
절대다가 욥기에게 figurative한 질문을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혹시 the book of job에 관련된 책 소개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도에서만 다를뿐이지 욥기가 하나님으로부터 figurative한 질문을 받은 그 순간을 보통의 나름 도덕적으로 법 잘키면서 살아온 사람한테 대입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욥기가 응답을 받는 그 순간이 보통 신앙인으로 치면 그때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내가 나름 잘 살아왔는데 왜 이꼴을 당하고 있을까? 욥기야 욥기야 거기 있느냐 라고 하면서 말이죠 키에르 케고르의 leap of faith 개념도해서 키에르 케고르와 book of job 둘다 섞어서 왠지 좋을거 같은
정박님 최고
지금 이나라의 정치현실에서 설치는 무지한 꼴통들과 가짜들을 보고 있으면 정치는 끝까지 감시하고 비판하며 고쳐 써야 한다. 솔직히 그들과 같이 살면 삶의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 암울하고 억울한 역사는 모두 용서할 수 없는 정치질 때문이다.
그래도 불란서가 불란서인게 어느 나라였다면 강제 등산가서 코렁탕 잡수셨을 분들이 활동을 할 수 있네요❤
재미있게 보았던곳 마다 정프로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세상 살아보니 주의나 이념 그리고 종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황에 따라 상황에 맞게 삶을 꾸려가면 된다.
그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지켜야할 규칙을 정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상황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요.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도 잘 살것처럼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규칙도 잘 감수하며 살 수 있다는 말인데, 마녀사냥을 하는 중세 사회에서 당신의 가족이 마녀로 몰려서 화형 당할 위험이 있는 그 사회에서 잘 살 수 있을까요?
어째서 이데올로기를 공허한 것으로 인식하는 잘못된 인식이 퍼진 것인지 모르겠군요.
세상 살아보니 주의나 이념 그리고 종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분은 깨달은게 아니라 결론을 내린겁니다. 근데 반박이 안돼요
마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배고프니 먹는다 처럼..
살면서 꼭 마주 치는 언어들 입니다. 우리는 그냥 그런 언어에 피식 웃고 마는 거지요. 단순한 언어로 설명하는데 댓글 수준에 아닥일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walker4650 실사구시.
마녀사냥은 여전히 현재 진행 형!!! 마녀 사냥은 권력과 탐욕의 결과일 뿐!
👋👋👋👋👋👋👋
왔다 내 사랑 카뮈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정당화 되기 때문에 오직 목적에 대한 합의만 필요하다. 수단의 정당성이 문제될 때, 이미 수단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을 함의한다. 어떤 수단을 목적1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데 그 수단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수단이 목적2를 훼손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1과 2중 무엇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가에 대한 합의를 통해 수단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
필터 무엇???
정의의 이름으로 융성녈 정도는 죽여도 되지 않겠어?
❤
제발 시즌4로 넣어주세요. 정주행중인데 시즌3이 너무 길어요.
화질이 좀~~ 뭔가 필터?가 잘못 적용된듯?
까뮈와 메를로 퐁티!!
선글라스 맨 저분 삼프로에 나왔던 것 같은데??
화질이 뿌예요
ㅋㅋ
색즉시공?
세일러문은 용서안하던데😂
정영진님의 사르트르에 대한 의견에 격공합니다.
사러떠러 ㅋㅋㅋㅋ 더러운손 ㅋㅋㅋㅋ
36:00
샤르트르는 사회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 주변과 결별한 사례가 많앗지요..
사람 죽이고 감옥 가면된다.지요?
정영진한테 대실망
근데 유언에 따라 박대의 무덤에 침을 뱉을 수 있게 무덤에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왜 그 자녀들은 고인의 유언을 무시하죠?
아...ㅈㅅ....불효자들이구나...간단한데...혼자 고민하고 있었네.
근데 가끔 보면 진보진영 예를 들어서 문제점을 강조하시는데 기계적 중립인가요? 아니면 보수진영의 문제점은 언급할 가치도 없어서 안하시는건가요?
일당백을 삼년째 들어왔지만 오늘 저는 처음으로 조금 부끄러웠어요.
지성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 25년을 살고 있고, 프랑스어를 비랭귀지로 구사하고, 사르트르와 까뮈가 주인공인 영화를 보며 그들을 탐닉할 기회가 그렇게 많았는데, 이런 자산속에 살면서 그들의 사상에 대해 참 제대로 알고 있는게 없었구나... 아니 그런 기회를 기꺼이 만들지 않았었구나...를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틀전에 유럽연합 의회선거가 극우당 몰표를 거두는 결과가 있었죠. 사르트르와 까뮈의 나라도 이제 예전같지 않다는 걱정과 불안이 만연해 있습니다. 남편은 ”걸작도 시대에 호응한다“는 대답을 했으나 ”Les mains sales"은 현재 읽어도 좋을 내용으로 보입니다. 원어로 꼭 읽어보려고요. 벌써부터 뒤늦은 지식이 차오르는 느낌 한아름 안고 행복하게 잠들수 있을것 같습니다.
겸손한 지성 정박님과 요즈음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진심으로 들어주신 영진씨와 지선씨께도 감사합니다.
드러운손ㅋㅋㅋ
사르트르는 추남
사회전체의 안전에도 이재명을 가볍게 이해하자는 논리를 펴려는 밑밥을 말하네요
이지선 머리 예쁘게 했네.
저런 스타일은 어디서 하나요!!
우리 영진이 형은 매불쇼에서
한마디도 하질 않고 하차해서
시력이 문제란 건지 실어증이 문제인지
그래놓고 담론이 사라진 시대가 안타까워?
삼푸로인지 뭔지 그거 상장시키려고
양심이고 뭐고 그냥 침묵을 결정했다며?
여기 일당백 댓글에서 사람들이 그러던데?
최근에 경제와 문화, 환경과 미래를 아우르는
가장 품격있고 생생한 논쟁을
민희진 기자회견에서 봄
근데 정의를 멍멍 부르짖던 민주당 아저씨들은
가세연 뻑가 이런 것들이랑 민희진 막 공격하대?
김갑수가 민희진 가르치려 들고
최욱이 옆에서 공정한척 거들때
러블리는 그 옆에서 수발들던데?
삼푸로가 주식 채널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김여사 주가조작 다룬 적 있음?
@@이성자-w4t 매불쇼 나오지 않는 거 아쉬워서 쓴 글 아니니까 문해력 떨어지면 나대지 마시고 걍 가던 길 가세요.
ㅆㅇㅈ 요즘 잘못은 보수가 하는데 정영진 같은 사람들이 진보진영이 ㅈㄴ 잘못한듯이 몰아가는거 극혐임. 현 보수정권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길
마키아 벨리를 하찮은 부류로 취급하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많이 궁금합니다.
알아 듣습니다.
드러운 손. ㅋㅋ
사러떠러의 들어온 손
좌,우, 갈라치면은 싸움이지,, 4개의 마음과 하늘과 땅, 6약이 있단다,, 사색당파, 왕과 평민, 자유,공화,사회,공산,신격,따로국밥이 되면 혼란, 참고 하자,
절마 눈봉사냐?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실수로 사람을 죽인자는 죽일 수 없을지 몰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고의성이 있는 살인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죽여야만, 부정한 살인이 줄어든다.라고 생각 됨! 건희나 석열이처럼, 본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이용해서 여러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을 처형해야, 올바른 세상으로 전진 할 수 있다고, 생각함! 또 그 옆에 빌붙어 본인의 이익을 위해 동조하는 부역자들은 더욱더 처형해야 함!
숭늉,, 커피 먹으면 나라 망하나,,, 하하하하 철학은 재미 있다네,,, 논쟁에서 고발 고소로 가는 놈들도 있단다,,, 변호사 밥 쳐 먹여 주는기 지,,,
직업정치는 거짓 위선 모략 간악함 배신 탐욕이 들끓는 가마솥
마키아 벨리가 뭔데 그런 하찮은 새끼 글을 인용 하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