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님이 서울예고를 중퇴했지만 음악가 금난새님과 서울예고 동창이죠. 금난새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음악에 정말 천재였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가난해서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바로 송창식이었음 성대결절로 예전의 미성과 가창력은 잃었지만 지금도 하루종일 연습만 한다고 하죠.
그렇죠...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 시대의 아픔이고 민족의 아픔이었으니... 송창식 씨 아버지는 경찰이셨는데, 6.25전쟁 때 전사를 하셨답니다. 그때 송창식 씨는 네 살... 나중에 어머니는 가출을 하고... 여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으니 얼마나 고생이 되었겠어요? 그런데 인생이 다 그런거지만, 만약 클래식을 계속해서 꿈꾸던 대로 지휘자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금난새 씨 못지 않은, 어쩌면 훨씬 큰 지휘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처럼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가지고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삶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 파악을 못하셨네... 학구열이 대단한게 아니라, 송창식 씨가 네 살 때 일어난 6.25 때 경찰이셨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어머니도 가출하고 어린 여동생과 할아버지 댁에서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초등학생 때 작곡도 하고 해서 별명이 모짜르트였다고 합니다. 지휘자의 꿈을 안고 서울예고에 입학을 했는데, 가정형편 때문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중퇴를 하고 그때부터 2년간 노숙을 했답니다. 밤에는 공사장 경비일을 하고 낮에는 친구들이 있는 홍대에 놀러가서 강의도 듣고 잔디밭에서 기티치며 노래도 했는데 워낙에 뛰어나서 홍대 명물로 알려졌고, 세시봉에서 알바하던 이상벽 씨 눈에 띄어서 세시봉에 가서 노래를 하게 되고, 거기서 윤형주 씨를 만나 트윈폴리오를 결성하고 활동함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 겁니다.
▶︎[🔥지난주 하이라이트🔥]
1. 55년 전 사랑(?) 송창식을 만난 원숙.. 그런 원숙에게만 털어놓는 아픔..
💥th-cam.com/video/SJtFGluuiHM/w-d-xo.html
송창식님이 서울예고를 중퇴했지만 음악가 금난새님과 서울예고 동창이죠.
금난새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음악에 정말 천재였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가난해서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바로 송창식이었음
성대결절로 예전의 미성과 가창력은 잃었지만 지금도 하루종일 연습만 한다고 하죠.
송창식씨 천재맞는거같아요.노래면 노래..작사.곡 정말 레전드입니다.~👍👍👍
⁰00 🎉
송창식선생님 노래 너무 좋아해요
푸르른날은 너무 지금도 한번씩 듣고 있답니다
노래도 멋지고 성품도 멋지신 송창식님~~
늘 멋져요~~
송창식 가수님 너무 좋아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자주 뵈고 싶어요 혜은가수님도 너무 좋아요 다들 건강 하세요 ~♡
송창식 선생님 노래 너무 좋아요.😊건강 하세요
송창식은 이시대 최고의 음악인 입니다 ~! ❤ 매우 존경합니다 ~!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엘비스 처럼 성공을 했을 것입니다 ~!😅
예전에 송창식님 목소리 정말 어느누구도 따라올수 없었을것 같은..
송창식씨 젊어서 고생 진짜 많이 하셨네요..참 훌륭하세요.
@@Byun.youngja 송창식은 이시대 최고의 천재 음악인 입니다 ~! 매우 존경합니다 ~!
노래 따라부르려면
어려워요
송창시카수님
좋은노래많이 불러주세요
건강하세요❤
헤어질 결심 영화에서 부르신’ 안개‘ 듣다 보면 ,송창식님 노래하시는 목소리의 깊이감은 정말 … 말로 표현을 못 할 정도로 잘 익은 그 무엇 같음…
송창식님은 노래하는 철학자시죠.
부디 건강하게 오래 노래해주세요.
송창식님과 동시대에 살아서 영광입니다.
송 창식 가수님 너무 잼나개 잘 하신다
오래 오래 건강히 음악하시길 기원합니다.
송창식씨가 나오셧네요.. 아직도 건강하시네요
혜은이 언니 살 마니 빠지셨다 ♡
안소영님은 아직도 분위기 매력있어요..
이 조합이 젤 좋았는데..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고...ㅎ
저는 오히려 편하게 살다가 음악 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어요! 워낙 웃는 인상이셔서~~~~ 울컥합니다 !!
눈물겨운삶을 살아 오셨 네요 ?
그렇죠...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 시대의 아픔이고 민족의 아픔이었으니...
송창식 씨 아버지는 경찰이셨는데, 6.25전쟁 때 전사를 하셨답니다. 그때 송창식 씨는 네 살... 나중에 어머니는 가출을 하고...
여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으니 얼마나 고생이 되었겠어요?
그런데 인생이 다 그런거지만, 만약 클래식을 계속해서 꿈꾸던 대로 지휘자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금난새 씨 못지 않은, 어쩌면 훨씬 큰 지휘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처럼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가지고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삶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안문숙 시원시원하니 센스쟁이❤ 응원합니다
70년대
라디오만 틀면
한번쯤ㆍ피리부는 사나이
최고의 가창력 겸손하고
인성 좋으신분
천재 예술인
명곡 한번쯤ㆍ우리는
최고!였지요
아픔이 계신줄 몰랐네요 ..
혜은이씨 살빠지니 옛날얼굴 나오네요!!!!
다시 이조합으로 가면 시청률 올라가는데..
그래도 어려움 속에 음악열정하나로 살아오신 것 존경합니다. 얼굴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데 너무 인상이 좋습니다. 바르게 사신것 같아요. 비슷한 연배의 이혼하고 비호감 가수로 뿔테안경끼고 다른사람 노래나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급이 다르십니다.
대단하다...감탄만 나옴
제발 미발표곡 좀 들려주세요.
발표해주세요😅
내가 전축판 첨삿던게 송창식씨 판엿음 고래사냥 왜불러 피리부는사이이 이런곳들 들어잇엇고77년도에 전축을 삿는데 시골동네 전파사같지도 않은전파사에서 어떤형이 가내수공업으로 만든전축엿음
고등학교도 나오셨는데 노숙을 하셨다고? 학구열이 대단하셨구나
내용 파악을 못하셨네...
학구열이 대단한게 아니라, 송창식 씨가 네 살 때 일어난 6.25 때 경찰이셨던 아버지가 전사하고 어머니도 가출하고 어린 여동생과 할아버지 댁에서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초등학생 때 작곡도 하고 해서 별명이 모짜르트였다고 합니다. 지휘자의 꿈을 안고 서울예고에 입학을 했는데, 가정형편 때문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중퇴를 하고 그때부터 2년간 노숙을 했답니다. 밤에는 공사장 경비일을 하고 낮에는 친구들이 있는 홍대에 놀러가서 강의도 듣고 잔디밭에서 기티치며 노래도 했는데 워낙에 뛰어나서 홍대 명물로 알려졌고, 세시봉에서 알바하던 이상벽 씨 눈에 띄어서 세시봉에 가서 노래를 하게 되고, 거기서 윤형주 씨를 만나 트윈폴리오를 결성하고 활동함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 겁니다.
@@소은처사 감사합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분들이 참 많네요..그땐
😂질문하면 다른 얘기하는 사람들 많다 ㅋ
이프로가 좋아서 공개한다
칠십년대 혜은이님 그용모가 신데랠라 버금갔지 ..그시절로 돌아가 잠시라도 옆에 앉고싶어..
참 세월에는 모든것이 사그리 변하네 ..이럴수가.
이사고는 사실 고집이 샙니다
나때는 유네스코회관 명동 이었어
처조카를 입양한거네 ㅎㅎ 완전 남은 아니구만 이모가 엄마된거구만
문숙씨 ㅎㅎ갑자기 고스톱이 왜 나와요 ㅋㅋㅋ
음유시인
나이가 무슨 벼슬이냐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해야지. 나이 몇 살 더 많다고 면박하듯 말하는 폼새 못배운티내는거임.
무시해서 그런게 아니라 말실수 하는거 막아준 느낌인데
파이팅 힘내세요 😊🎉❤
나는 옛날에 혜은이보면 가슴이 떨렀었는데
인간은 성공하고 나면 가치가 없다!
말은 바로하고 진실되게 하자
그땐 노숙자가 아니고
지인들에게 빌붙어서
피해주며 살았었다고 해야지
무슨 노숙은 노숙
운도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