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제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주시는 분들의 여건이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은 이런 정도로 나갈 듯합니다. 지금 나가는 것도 지난 겨울에 찍었던 것입니다. 제가 여유가 생기면 직접 만들어볼까 합니다만,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들어도 재미있고 명쾌한 설명 잘 시청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양과 수준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의 응용성도 중요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반대급부를 유발하는 것을 덕(德)이라 규정을 할 때... 매 사안마다.. 여기서 내가 베푸는 이만 한 것인데... 나중에 돌아 올 것은 어느 정도일꺼야를 생각을 하고 베품의 정도(덕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피곤하기도 피곤 할 뿐더러 그 찰라의 순간에 내 앞의 상대방은 나의 이해타산적인 망설임을 눈치챌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완벽한 덕(德)을 실행을 하려면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서 체화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실행에 있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야만 그 덕(德)의 실행이 완벽 해 진다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부하병사의 고름을 빨았다는 장수나... 사방 백리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을 실천한 경주 최씨 집안의 이야기들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조직원, 하급자, 피지배층, 신봉자들등 그 명칭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힘(力)에 의한 동참 보다는 자발적인 동참이 훨씬 더 참여도가 높고 지속성도 높으며 각자의 창의력까지 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이념서들이나 처세술서에서 모두 가장 이상적으로 묘사를 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동기부여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사회의 구조를 이해관계자들간의 계약으로 파악하는 지식인에게는 위선적이거나 고도로 계산된 행위로 보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힘에 의존한 용인술 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거부감을 덜 불러 일으키는 용인술로 수용이 될 겁니다. 그렇기에 수십세기 동안 생명력을 유지 해 온 것이겠지요... 선생께서 규정한(설명한) 덕(德)이란 의미가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는 하는 질문도 무의미 하다라고 봅니다. 아차피 이 사회를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간의 계약관계로 보더라도 각 개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이익관철을 위한 나의 행동을 좀더 세련되고 우아하게 실행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암튼 덕(德)이란 글자 하나에 많은 생각을 하고 갑니다.
선생님 답변을 읽고서 생각해보니 저는 ‘실생활에의 응용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덕이라는 것을 요즘 우리는 윤리학적 측면에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적어도 춘추시대의 德에 대한 강조는 ‘인간관계는 전략적으로 맺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강조와 다름없었습니다. 장수가 부하 병사의 고름을 빨거나,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최부자집 가훈에는 분명 전략적 사고라는 토대가 있습니다. 극락이나 천당에 갈 수 있는 도덕적 선행이라는 차원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德이 지닌 그 ‘전략적 사고’ 때문에 법가는 德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보편이라는 토대 위의 法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legal mind를 높이 샀던 것이지요. 德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법가는 분명하게 나쁜 것으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사적인 거래로 보았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전략적 사고’라는 것이 대상마다 반대급부를 계산하여 처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전제합니다. 넓은 그물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德은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일반적인 태도’로 규정될 수 있고, 그 때문에 오늘날 윤리학의 덕목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 덕분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유가사상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자면 학자나 저널리스트의 해설보다는 원전을 읽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한자문화권 고전의 대부분은 유가에서 자가의 경전으로 흡수했는데, 그것들의 저본에 해당하는 것이 입니다. 왜냐면 유가 경전들은 모두 공자의 손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에는 맹자 중용 대학은 물론이고 < 서경>도 대강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만 제대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은 예외인데, 그것도 일찌감치 유가에 흡수되어 경전으로 다루어집니다만, 워낙 方外의 사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유가적 세계관과는 동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hoMyungHwa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답을 주시다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논어와 맹자는 문고본과 몇몇 강설 강독본으로 몇 번 읽어 본 적이 있지만 일천한 수준입니다. 선생님의 온라인 강의를 보고 그동안 읽어왔던 관련 책들이 설명했던 여러 개념들을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시는 것을 보고 감탄해서 선생님의 논어역평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공자전을 통해 충격을 받고 오구라 기조, 리숴 등 저자의 책들을 읽으며 충격과 지적 희열을 느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얕게 느끼실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제 수준에서는 오구라 기조와 이수태님의 논어 번역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류종목님의 논어의 문법적 이해도 자주 비교를 위해 펼쳐보고요. 제가 선생님의 책을 불완전하게나마 1독하게 될 즈음 선생님의 논어강의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다시 한번 지혜를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미국의 덕을 봐 온 중국은 미국의 힘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 있을거라 했는데, Plato goes to China라는 저서에서는 플라톤의 범주인 민주/정의/철인통치 같은 것을 공산당 지배층이 “고귀한 거짓말”로 알고 인민에게 적용하는데 반해 미국은 민주주의 위태로움이 virtue가 시들해짐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미국이 culture war를 통해 그만큼 득이 없는 덕에 목매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또한 세계 헤게모니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득이 된다는 계산에서 아닐까도 싶구요. 대국의 통치전략인거 같습니다.
Plato goes to China라는 저서에서는 중국 공산당 지배층이 플라톤의 범주인 민주 정의 철인통치가 “고귀한 거짓말”인지 알고 인민들에게 득이 되도록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통치해 왔다면 미국은 현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트럼프를 사살하려는 시도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MAGA가 미국에 득이 될진 몰라도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virtue로 보여지지는 않아서이지 않나 싶네요. 그렇게 계속 덕을 잃다보면 세계적 헤게모니의 정당성마저 확보하기 어려울테고.. 어느게 이득일지 고민이 많겠네요
너무 도움 됩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시대의 필요에 의해 의미가 변하는군요.
2024년 10월 11일 금 16시 태평양 시간
선생님 즐겁고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좀더 자주 올려주세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제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주시는 분들의 여건이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은 이런 정도로 나갈 듯합니다. 지금 나가는 것도 지난 겨울에 찍었던 것입니다. 제가 여유가 생기면 직접 만들어볼까 합니다만, 어느 세월에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oMyungHwa 선생님 제가 까망이컴퓨터 라고 컴퓨터 유튜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채널은 제가 관리하고 있지는 않지만요 보시면 전자 칠판으로 설명 하는것 있습니다 그런쪽으로 운영하시면 보다 쉽게 영사을 제작 가능할듯 합니다
언제들어도 재미있고 명쾌한 설명 잘 시청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양과 수준도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의 응용성도 중요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반대급부를 유발하는 것을 덕(德)이라 규정을 할 때... 매 사안마다.. 여기서 내가 베푸는 이만 한 것인데... 나중에 돌아 올 것은 어느 정도일꺼야를 생각을 하고 베품의 정도(덕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피곤하기도 피곤 할 뿐더러 그 찰라의 순간에 내 앞의 상대방은 나의 이해타산적인 망설임을 눈치챌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완벽한 덕(德)을 실행을 하려면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서 체화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실행에 있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야만 그 덕(德)의 실행이 완벽 해 진다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부하병사의 고름을 빨았다는 장수나... 사방 백리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훈을 실천한 경주 최씨 집안의 이야기들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조직원, 하급자, 피지배층, 신봉자들등 그 명칭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힘(力)에 의한 동참 보다는 자발적인 동참이 훨씬 더 참여도가 높고 지속성도 높으며 각자의 창의력까지 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이념서들이나 처세술서에서 모두 가장 이상적으로 묘사를 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동기부여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 사회의 구조를 이해관계자들간의 계약으로 파악하는 지식인에게는 위선적이거나 고도로 계산된 행위로 보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힘에 의존한 용인술 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거부감을 덜 불러 일으키는 용인술로 수용이 될 겁니다. 그렇기에 수십세기 동안 생명력을 유지 해 온 것이겠지요...
선생께서 규정한(설명한) 덕(德)이란 의미가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는 하는 질문도 무의미 하다라고 봅니다.
아차피 이 사회를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간의 계약관계로 보더라도 각 개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이익관철을 위한 나의 행동을 좀더 세련되고 우아하게 실행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암튼 덕(德)이란 글자 하나에 많은 생각을 하고 갑니다.
선생님 답변을 읽고서 생각해보니 저는 ‘실생활에의 응용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덕이라는 것을 요즘 우리는 윤리학적 측면에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적어도 춘추시대의 德에 대한 강조는 ‘인간관계는 전략적으로 맺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강조와 다름없었습니다. 장수가 부하 병사의 고름을 빨거나,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최부자집 가훈에는 분명 전략적 사고라는 토대가 있습니다. 극락이나 천당에 갈 수 있는 도덕적 선행이라는 차원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德이 지닌 그 ‘전략적 사고’ 때문에 법가는 德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보편이라는 토대 위의 法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요즘 용어로 말하자면 legal mind를 높이 샀던 것이지요. 德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법가는 분명하게 나쁜 것으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사적인 거래로 보았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전략적 사고’라는 것이 대상마다 반대급부를 계산하여 처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보편성을 전제합니다. 넓은 그물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德은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일반적인 태도’로 규정될 수 있고, 그 때문에 오늘날 윤리학의 덕목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 덕분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ChoMyungHwa 부족한 댓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특히 힘 力 자와 대비하면서 설명한 부분이 아주 명쾌하네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제가 가장 공을 들이는 수련은 한국어 표현력입니다만, 글쓰기나 말하기나 천부(하늘이 주심)의 소양이 중요한 듯합니다.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한.마음으로.잘듣고.있습니다
덕의 의미를 고대, 선진시대에 사용되었던 의미를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요즘 리숴의 상나라 정벌을 포함해서 원시유교의 기원과 관련한 책들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의 설명이 내용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유가사상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자면 학자나 저널리스트의 해설보다는 원전을 읽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한자문화권 고전의 대부분은 유가에서 자가의 경전으로 흡수했는데, 그것들의 저본에 해당하는 것이 입니다. 왜냐면 유가 경전들은 모두 공자의 손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에는 맹자 중용 대학은 물론이고 < 서경>도 대강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만 제대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은 예외인데, 그것도 일찌감치 유가에 흡수되어 경전으로 다루어집니다만, 워낙 方外의 사유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유가적 세계관과는 동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hoMyungHwa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답을 주시다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논어와 맹자는 문고본과 몇몇 강설 강독본으로 몇 번 읽어 본 적이 있지만 일천한 수준입니다. 선생님의 온라인 강의를 보고 그동안 읽어왔던 관련 책들이 설명했던 여러 개념들을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시는 것을 보고 감탄해서 선생님의 논어역평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공자전을 통해 충격을 받고 오구라 기조, 리숴 등 저자의 책들을 읽으며 충격과 지적 희열을 느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얕게 느끼실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제 수준에서는 오구라 기조와 이수태님의 논어 번역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류종목님의 논어의 문법적 이해도 자주 비교를 위해 펼쳐보고요. 제가 선생님의 책을 불완전하게나마 1독하게 될 즈음 선생님의 논어강의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다시 한번 지혜를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책 재밌음?? 막연히 상나라하면 이후 등장하는 송나라와 함께 기자의 나라 즉 조상의 나라라고 알고있어서 관심은 있지만 너무나 먼 고대사라 어떨지 궁금함
@@ChoMyungHwa역경은 수학적 규칙성에다 의미를 갖다 붙힌데 불과한 듯싶습니다. 그리고 음양을 볕과 그늘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달의 밝은 부분 어두운 부분에서 나온 듯싶습니다. 반달 긍을 보면 그렇습니다.
德 = 得
그래서 그런지 중국어 발음이 de 로 같군요 ㅎ
널리 베풀어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德을 부지런히 쌓으라는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ㅎㅎ 저는 "널리 베풀어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德을 부지런히 쌓으라."라고 말하지는 않는데요? 德의 속성을 알아보자는 겁니다.
그 어려운 일이 해결 된 것은 큰 형님 덕인 줄 알아라! 라고 할때, 그 덕인가요?
이렇게 "예시"하니 쉽게 이해되네
그동안 미국의 덕을 봐 온 중국은 미국의 힘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 있을거라 했는데, Plato goes to China라는 저서에서는 플라톤의 범주인 민주/정의/철인통치 같은 것을 공산당 지배층이 “고귀한 거짓말”로 알고 인민에게 적용하는데 반해 미국은 민주주의 위태로움이 virtue가 시들해짐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미국이 culture war를 통해 그만큼 득이 없는 덕에 목매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또한 세계 헤게모니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득이 된다는 계산에서 아닐까도 싶구요. 대국의 통치전략인거 같습니다.
Plato goes to China라는 저서에서는 중국 공산당 지배층이 플라톤의 범주인 민주 정의 철인통치가 “고귀한 거짓말”인지 알고 인민들에게 득이 되도록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통치해 왔다면 미국은 현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트럼프를 사살하려는 시도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MAGA가 미국에 득이 될진 몰라도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virtue로 보여지지는 않아서이지 않나 싶네요. 그렇게 계속 덕을 잃다보면 세계적 헤게모니의 정당성마저 확보하기 어려울테고.. 어느게 이득일지 고민이 많겠네요
ㅎㅎㅎ 네, 맞습니다. 이해가 빠르신 분입니다. 한문고전을 더 읽으시면 통쾌한 해석도 내놓으실 수 있을 듯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SonOGongTVchannel 미국의 헤게모니가 virtue에서 나올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상대을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힘 力
상대을 마음으로 움직이는 힘 德
이게 고증학이지 애신각라를 신라를 잊지말고 기억하자라고 해석하는 정신나간 고증학을 보다가 제대로 된 고증학을 보니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거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