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를 원거리 공격에 뛰어난 민족이라 하며 산성과 방어를 잘한다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수렵과 사냥의 민족이라 보이지만요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가 추격, 산성 공략및 방어, 후퇴하며 적을 견제하는등 우리나라 지형까지 생각하면 안성맞춤이라 단순히 산성을 이용한 방어전만 하는게 아니죠 한국은 사냥꾼의 기질을 중국은 권모술수의 계략을 일본은 닌자 스피릿의 나라라 여겨집니다
@@earthsea8740 빈정이 상한게 아닌 대체로 우리나라를 산성만 가지고 싸우는 수동적 이미지를 구축하기에 반론 하는거죠 다른 지역도 수렵은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각종 맹수가 우글거리고 그 맹수를 사냥하는 부대에 그 숫자를 헤아릴수 없는 전문 사냥꾼이 많은 나라가 우리니까 하는 말이죠
@@수집쟁이드라하카 이야 공감함. 국토 70프로가 산이고 평지는 30프로 이니 먹고 살려면 활쏘는건 기본일거임. 그리고 우리나라 땅 4 등급이라고 나왔있음. 1에서5등급 까지 전세계 기준 땅 기준 농사를 할수있는 등급이 3등급 까지인데 우리나라는 4등급임 농사를 할수 없는데 계절이 사절이라서 겨우 농사를 할수 있다고 조사결과를 본적이 있음. 지금 먹고 있는 쌀도 전부 계량쌀임. 그럼 옛날에는 농사 와 사냥,활은 기본 장착이 맞다고 봄 산에 표범 부터 호랑이. 맹수들이 있어 어릴때 부터 활 쏘기는 필수가 아닐까 생각함
@@FitFoodie01 국토의 척박함을 생각하면 농사만이 지을수 있는 나라가 아니죠 우리나라는 상업과 사냥이 필수일수밖에 없죠 척박함을 사냥을 필수성으로 귀결되는건 미처 생각 못했는데 좋은 지적 입니다 TMI인데 조선의 북쪽, 특히 함경도는 남녀노소가 다 사냥꾼이라는데 그쪽 땅이 험준하니 농사는 안되고 사냥을 항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그렇다는군요
1. 남한산성에서 항복한건 식량이 떨어져서거 아닙니다. 물론 식량도 점차 바닥을 보이긴 했지만 남한산성을 구하러 온다던 근왕군들이 죄다 참패한데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어 거기 피신했던 왕비와 세자가 청의 포로가 된 것이 결정타였지요. 식량이 아직 남은 상태에서 인조가 항복을 했습니다. 2. 남한산성에 있던 조선군은 평소 도성을 지키던 나름 조선의 최정예 부대였지만 병자호란에선 이렇다할 활약도 못했고 진짜 군인으로 추한 꼴만 다 보였습니다. 사실 남한산성 포위전은 전투가 거의 없는 포위 대치 상황이 대부분이라 싸울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남한산성 주변에서 동태를 감시하던 청군 경계병을 기습해 몇 명의 목을 베는데 성공하자 , 수급에 따른 포상을 탐낸 병사들이 무리하게 성밖으로 나가 청군 목을 따려다 청군의 역습으로 패퇴하여 큰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포위가 장기화되고 근왕군이 패했단 소식에 사기가 꺾인 남한산성의 조선군은 칼을 차고 임금 앞으로 몰려가 다 죽게 생겼다고 항복하자고 난리를 쳤습니다. 항전을 주장하는 대신들을 베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군란이라도 일으킬 듯 행동했지요. 드라마 등 매채에선 인조가 항복하기 위해 출성하니 성의 병사들이 목놓아 우는 것으로 연출하지만 거짓입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 목숨 구한거에 안도하고 기뻐하며, 자신들의 항복 요청으로 왕조가 존속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까지 했지요. 3. 나선정벌은 병자호란의 활약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청군은 만주 여진 부락의 부대에서 출발했다보니 화약무기는 잘 사용하지 않고 냉병기 위주의 전술에 능했던지라 북경까지 장악하고도 여전히 화약무기 사용율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르강 유역에 러시아군이 내려와 요새를 만들고 알박기를 시도하니 청군이 이를 격퇴하려고 러시아군 요새를 공격했다가 러시아군의 총포에 어이없이 패했습니다. 당시 청군은 2,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러시아군의 작은 보루를 공격했지만 2000명 중 포수는 고작 30명에 불과하고 나머진 창, 칼, 활에 의존하며 전투를 벌였는데 그러다가 러시아군의 총포에 어이없이 털러버렸습니다. 러시아군을 상대하려면 러시아군의 총포에 대응할만한 화력이 필요함을 절감한 청군이였지만 포수 양성을 거의 하지 않아 갑자기 그런 화력을 갖출 방법이 없었습니다. 청군의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조선이 다수의 포수를 양성해 운용해왔다는 걸 생각해내곤 조선에 조선에 포수를 보내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게 나선 정벌의 시작이였지요.
@@easeafe4re581 그 40여일간 청군은 남한산성을 공격해 함락시킬 계획이 없었는데 40여일간 막아냈다는건 어폐가 있습니다. 청은 속설과 달리 단기전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홍타이지가 서술한 편지들을 보면 홍타이지는 봄까지는 전쟁을 지속할 계획이였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애시당초 청군은 남한산성 공략을 서두를 생각이 없었고, 공성전 시작 전에 주변 정리부터 착실히 실시했습니다. 따라서 청군은 남한산성에 대한 공세 보다는 성 밖의 조선군부터 격퇴하는 작전을 먼저 진행했습니다. 수 만명의 조선군이 남한산성으로 몰려오는데 이걸 안막고 남한산성 공세로 힘을 빼다간 거꾸로 조선군에게 역포위 당할 수 있음을 청군은 잘 알고 있었고, 고작 3만 8천명이 전부였던 청군으로선 그런 역포위를 허용하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군은 역포위를 막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접근하는 조선군(근왕병)들을 차례로 각개격파했고 이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남한산성을 구원하려 나섰던 근왕군은 대부분 궤멸적 타격을 입고 물러났고 청이 우려한 역포위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남한산성으로 조선군이 들어갔을때 한양에 당도한 청군은 마푸타가 이끄는 기병 300기에 불과했습니다. 인조를 추적해 남한산성에 당도한 청군도 고작 1,000명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이들은 인원 부족으로 한동안 공성전은 엄두도 못내고 남한산성 주변에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나무 울타리를 둘러치고 울타리 주변에 경계조들을 배치하여 남한산성의 인조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군의 남한산성에 대한 공세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된건 남한산성으로 접근하던 마지막 근왕병인 평안도 근왕군까지 궤멸시킨 이후입니다.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서찰을 보냈을 때 비로서 청군은 남한산성 본격 공세를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던 겁니다. 외곽에서 위협할 수 있는 조선군도 사라졌으니 이제 안심하고 남한산성 공략에 전력을 모두 퍼부을 수 있었지요. 거기다 강화도로 도망쳤던 왕비들과 왕자들까지 인질로 잡았습니다.
@@easeafe4re581 분투도 중요하긴 한데 병자호란을 보면은 북쪽을 점령하며 빠르게 진군하는고 남한산성을 고립시키며 항복을 종용한건 조선군이 잘 버틴게 아니라 청나라가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숨통을 조인거죠 그냥 홍이포와 군사로 일시에 밀어버릴걸 왜 시간을 끄냐 묻는다면 그럴 가치도 못 느꼈으니까죠 시간을 두어 조선의 근왕군을 각개격파하고 천천히 옥죄면 간단하고 확실한데 굳이 화약 써가며 이길 필요를 못 느끼는거겠죠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없는 느낌이랄까
@@easeafe4re581 40여일간 막아낸게 아닙니다. 청군은 서둘러 남한산성을 함락시킬 생각이 없었어요. 조선 침공 전에 사전에 청은 명나라 하북 지역을 초토화시켜서 당분간 명이 청을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쳐들어온거기에 그들에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홍타이지가 쓴 편지들을 보면 봄까지 전쟁을 지속할 계획이였습니다. 그들은 남한산성 점령보다는 이를 구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조선군 근왕군들을 격파하는 것이 우선이였습니다. 당시 조선을 침공한 청군은 3만 8천에 불과했고, 전국에서 남한 산성으로 몰려드는 조선군 전체 규모는 이것의 몇배는 되었기에, 남한산성 공략보다는 이 근왕군들이 집결하기 전에 각개격파하는 것이 먼저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을 냅두고 남한산성 공세를 서두르다간 자칫 남한산성을 낀체로 역포위되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남한산성의 성벽을 넘는 일은 근왕군들을 격파한 이후에나 할 일이였습니다. 따라서 남한산성의 조선군의 대응 덕분에 40여일간 버틴게 아닙니다. 청군이 근왕군과 싸우느라 남한산성 공세를 시도할 상황아 아니였던거죠.
아마 머리가 크다는건 조선인이 러시아인보다 키가 작아서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거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ㅎㅎ 왜냐면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도 머리가 크잖아요? 키가 작으면 머리가 상대적으로 커보이다보니.. 러시아인들은 키가 큰데 조선인들은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가장 키가 큰 건 사실이었지만 러시아인에 비해서는 훨씬 키가 작긴 한건 사실이라서 그렇게 생각한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ㅎㅎ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대청제국의 나선정벌(러시아정벌)때 동원된 100명의 조선군 저격병들의 활약이 진짜 대단하긴 했음 ㄷㄷ
영상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다만 오늘 영상 볼륨이 저만 작게 들리는 건지 모르겠네요. ㅎㅎ
흔히 우리나라를 원거리 공격에 뛰어난 민족이라 하며 산성과 방어를 잘한다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수렵과 사냥의 민족이라 보이지만요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가 추격, 산성 공략및 방어, 후퇴하며 적을 견제하는등
우리나라 지형까지 생각하면 안성맞춤이라
단순히 산성을 이용한 방어전만 하는게 아니죠
한국은 사냥꾼의 기질을
중국은 권모술수의 계략을
일본은 닌자 스피릿의 나라라 여겨집니다
대체로 모든 민족은 수렵과 사냥의 민족이에요. 다들 채집하고 수렵하고 사냥하고 살았어요.
뭘 이야기하고 싶으신지 알기 어렵네요. 방어전이라니깐, 한민족의 입장에서 빈정 상하나봐요?
@@earthsea8740
빈정이 상한게 아닌 대체로 우리나라를 산성만 가지고 싸우는 수동적 이미지를 구축하기에
반론 하는거죠
다른 지역도 수렵은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각종 맹수가 우글거리고 그 맹수를 사냥하는 부대에
그 숫자를 헤아릴수 없는 전문 사냥꾼이 많은 나라가 우리니까 하는 말이죠
@@수집쟁이드라하카 이야 공감함. 국토 70프로가 산이고 평지는 30프로 이니 먹고 살려면 활쏘는건 기본일거임. 그리고 우리나라 땅 4 등급이라고 나왔있음. 1에서5등급 까지 전세계 기준 땅 기준 농사를 할수있는 등급이 3등급 까지인데 우리나라는 4등급임 농사를 할수 없는데 계절이 사절이라서 겨우 농사를 할수 있다고 조사결과를 본적이 있음. 지금 먹고 있는 쌀도 전부 계량쌀임. 그럼 옛날에는 농사 와 사냥,활은 기본 장착이 맞다고 봄 산에 표범 부터 호랑이. 맹수들이 있어 어릴때 부터 활 쏘기는 필수가 아닐까 생각함
@@FitFoodie01
원체가 맹수가 바글대는 땅이니까요
사자, 코뿔소, 코끼리, 악어빼고 왠만한 맹수가 다 있으니
세상천지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의 고양이과 맹수가 종류별로 있고
곰도 불곰, 흑곰, 반달가슴곰 종류별로 다 있는 땅은 드물죠
@@FitFoodie01
국토의 척박함을 생각하면 농사만이 지을수 있는 나라가 아니죠 우리나라는
상업과 사냥이 필수일수밖에 없죠
척박함을 사냥을 필수성으로 귀결되는건 미처 생각 못했는데
좋은 지적 입니다
TMI인데 조선의 북쪽, 특히 함경도는 남녀노소가 다 사냥꾼이라는데
그쪽 땅이 험준하니 농사는 안되고 사냥을 항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그렇다는군요
1. 남한산성에서 항복한건 식량이 떨어져서거 아닙니다. 물론 식량도 점차 바닥을 보이긴 했지만 남한산성을 구하러 온다던 근왕군들이 죄다 참패한데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어 거기 피신했던 왕비와 세자가 청의 포로가 된 것이 결정타였지요. 식량이 아직 남은 상태에서 인조가 항복을 했습니다.
2. 남한산성에 있던 조선군은 평소 도성을 지키던 나름 조선의 최정예 부대였지만 병자호란에선 이렇다할 활약도 못했고 진짜 군인으로 추한 꼴만 다 보였습니다. 사실 남한산성 포위전은 전투가 거의 없는 포위 대치 상황이 대부분이라 싸울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남한산성 주변에서 동태를 감시하던 청군 경계병을 기습해 몇 명의 목을 베는데 성공하자 , 수급에 따른 포상을 탐낸 병사들이 무리하게 성밖으로 나가 청군 목을 따려다 청군의 역습으로 패퇴하여 큰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포위가 장기화되고 근왕군이 패했단 소식에 사기가 꺾인 남한산성의 조선군은 칼을 차고 임금 앞으로 몰려가 다 죽게 생겼다고 항복하자고 난리를 쳤습니다. 항전을 주장하는 대신들을 베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군란이라도 일으킬 듯 행동했지요. 드라마 등 매채에선 인조가 항복하기 위해 출성하니 성의 병사들이 목놓아 우는 것으로 연출하지만 거짓입니다. 그들은 그저 자기 목숨 구한거에 안도하고 기뻐하며, 자신들의 항복 요청으로 왕조가 존속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까지 했지요.
3. 나선정벌은 병자호란의 활약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청군은 만주 여진 부락의 부대에서 출발했다보니 화약무기는 잘 사용하지 않고 냉병기 위주의 전술에 능했던지라 북경까지 장악하고도 여전히 화약무기 사용율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르강 유역에 러시아군이 내려와 요새를 만들고 알박기를 시도하니 청군이 이를 격퇴하려고 러시아군 요새를 공격했다가 러시아군의 총포에 어이없이 패했습니다. 당시 청군은 2,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러시아군의 작은 보루를 공격했지만 2000명 중 포수는 고작 30명에 불과하고 나머진 창, 칼, 활에 의존하며 전투를 벌였는데 그러다가 러시아군의 총포에 어이없이 털러버렸습니다.
러시아군을 상대하려면 러시아군의 총포에 대응할만한 화력이 필요함을 절감한 청군이였지만 포수 양성을 거의 하지 않아 갑자기 그런 화력을 갖출 방법이 없었습니다. 청군의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조선이 다수의 포수를 양성해 운용해왔다는 걸 생각해내곤 조선에 조선에 포수를 보내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게 나선 정벌의 시작이였지요.
확실히 만약 병자호란때 조선군이 포수가 눈에 띄었다면
특별히 요청해 명나라 공략에 써먹었겠죠
근데 그건 없는걸로 보아 러시아와 싸울때 실력있는 포수를 양성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마침 조선이 그런 포수를 운영하는걸 알기에 요청했다 보는게 맞아 보이긴 하죠
교전이 중요한게 아니라 청황제가 친정한 전투에서 40여일이 지나도록 남한산성 함락을 막아내었다는게 중요하죠
청태종이 남한산성함락을 원하지 않았겠어요? 함락이 안되니까 항복을 받은 겁니다
@@easeafe4re581 그 40여일간 청군은 남한산성을 공격해 함락시킬 계획이 없었는데 40여일간 막아냈다는건 어폐가 있습니다.
청은 속설과 달리 단기전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홍타이지가 서술한 편지들을 보면 홍타이지는 봄까지는 전쟁을 지속할 계획이였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애시당초 청군은 남한산성 공략을 서두를 생각이 없었고, 공성전 시작 전에 주변 정리부터 착실히 실시했습니다.
따라서 청군은 남한산성에 대한 공세 보다는 성 밖의 조선군부터 격퇴하는 작전을 먼저 진행했습니다. 수 만명의 조선군이 남한산성으로 몰려오는데 이걸 안막고 남한산성 공세로 힘을 빼다간 거꾸로 조선군에게 역포위 당할 수 있음을 청군은 잘 알고 있었고, 고작 3만 8천명이 전부였던 청군으로선 그런 역포위를 허용하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군은 역포위를 막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접근하는 조선군(근왕병)들을 차례로 각개격파했고 이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남한산성을 구원하려 나섰던 근왕군은 대부분 궤멸적 타격을 입고 물러났고 청이 우려한 역포위는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남한산성으로 조선군이 들어갔을때 한양에 당도한 청군은 마푸타가 이끄는 기병 300기에 불과했습니다. 인조를 추적해 남한산성에 당도한 청군도 고작 1,000명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이들은 인원 부족으로 한동안 공성전은 엄두도 못내고 남한산성 주변에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나무 울타리를 둘러치고 울타리 주변에 경계조들을 배치하여 남한산성의 인조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군의 남한산성에 대한 공세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된건 남한산성으로 접근하던 마지막 근왕병인 평안도 근왕군까지 궤멸시킨 이후입니다.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서찰을 보냈을 때 비로서 청군은 남한산성 본격 공세를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던 겁니다. 외곽에서 위협할 수 있는 조선군도 사라졌으니 이제 안심하고 남한산성 공략에 전력을 모두 퍼부을 수 있었지요. 거기다 강화도로 도망쳤던 왕비들과 왕자들까지 인질로 잡았습니다.
@@easeafe4re581
분투도 중요하긴 한데
병자호란을 보면은
북쪽을 점령하며 빠르게 진군하는고 남한산성을 고립시키며
항복을 종용한건 조선군이 잘 버틴게 아니라
청나라가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숨통을 조인거죠
그냥 홍이포와 군사로 일시에 밀어버릴걸 왜 시간을 끄냐 묻는다면
그럴 가치도 못 느꼈으니까죠
시간을 두어 조선의 근왕군을 각개격파하고 천천히 옥죄면 간단하고 확실한데
굳이 화약 써가며 이길 필요를 못 느끼는거겠죠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없는 느낌이랄까
@@easeafe4re581 40여일간 막아낸게 아닙니다.
청군은 서둘러 남한산성을 함락시킬 생각이 없었어요. 조선 침공 전에 사전에 청은 명나라 하북 지역을 초토화시켜서 당분간 명이 청을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쳐들어온거기에 그들에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홍타이지가 쓴 편지들을 보면 봄까지 전쟁을 지속할 계획이였습니다.
그들은 남한산성 점령보다는 이를 구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조선군 근왕군들을 격파하는 것이 우선이였습니다. 당시 조선을 침공한 청군은 3만 8천에 불과했고, 전국에서 남한 산성으로 몰려드는 조선군 전체 규모는 이것의 몇배는 되었기에, 남한산성 공략보다는 이 근왕군들이 집결하기 전에 각개격파하는 것이 먼저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을 냅두고 남한산성 공세를 서두르다간 자칫 남한산성을 낀체로 역포위되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남한산성의 성벽을 넘는 일은 근왕군들을 격파한 이후에나 할 일이였습니다.
따라서 남한산성의 조선군의 대응 덕분에 40여일간 버틴게 아닙니다. 청군이 근왕군과 싸우느라 남한산성 공세를 시도할 상황아 아니였던거죠.
조선이 잘 버텨냈으면 청이 러시아에게 배후를 공격당했을 수도 있겠는데...
아마 머리가 크다는건 조선인이 러시아인보다 키가 작아서 그래서 그렇게 생각한거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ㅎㅎ 왜냐면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도 머리가 크잖아요? 키가 작으면 머리가 상대적으로 커보이다보니.. 러시아인들은 키가 큰데 조선인들은 그래도 아시아에서는 가장 키가 큰 건 사실이었지만 러시아인에 비해서는 훨씬 키가 작긴 한건 사실이라서 그렇게 생각한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ㅎㅎ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들은 덜 자란 얘들이기에 머리가 커보이는거죠ㅎㅎ.
모든 포유류는 새끼 때 다 대가리가 큽니다.
작다고 무조건 머리가 커보이는 건 아니죠. 이미 다 자랐는데?ㅎㅎ.
머리 큰게 똑똑한거에요. 물론 뇌용량이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이들도 있긴 하죠.
그거 투구 때문에 그런겁니다. 당시 조선 총병들이 탑이 높은 투구를 썼는데 그것때문에 유난히 머리가 커보여서 대두인이라고 불렀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