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민통이라는 여성분은 이 영상을 통해 처음 알았네요. 그녀가 부유하게 귀족으로 여유롭게 살다가 죽기 전에 가난하게 지내다 돌아가셨다고 해서 불행하다거나 불우하게 보는 건, 보는 사람의 일방적 편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본인은 한사람을 열렬히 평생 사랑하고, 본인 의지대로 살았으니 나름 행복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혼을 안했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꼭 불행한 건 아니니까요.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 또한 여러 고생과 안타까움을 겪기도했지만, 그 속에서 느끼거나 깨달은 것들이 많아, 바르게 잘 살다가 돌아가신 것 같네요, 그래서 그 삶이 마냥 안타깝게 느껴지지만은 않아 다행입니다.
소개해주신 이 왕민통이라는 여성을 처음 알게 되어 더 찾아 보게되었는데 푸지에와의 혼사문제로 만주국 쪽에 갔다가 푸이를 보고 그 이후 푸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예 결혼을 하지 않았네요.푸이가 리수센과 결혼했을 때 굉장히 슬퍼했다고 하더라고요. 외모도 훌륭하고 집안도 훌륭한데 너무 이상적이지 않았나 합니다. 그 이상이 너무 봉건적이기도 한 것 같고. 푸이와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행복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현실과 이상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의 여성이었는데 자신의 이상 때문에 아픔이 많은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왕민통이 문화대혁명 때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해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다지만 사실 왕민통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왕민통은 자신의 황족이라는 신분에 너무 집착해서 인지 평생 일을 하지 않았고 보조금 300위안으로만 생활했죠.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교사로라도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구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굉장히 값어치 있는 유품이 있어서 그걸 팔면 여유롭게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소중하게 간직하다 말년에 대만에 있는 친척에게 돈 한푼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고 합니다. 왕민통이 황족이니 그의 친척들도 다 황족이어서 왕민통의 생활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고 해요. 그래서 왕민통을 돌봐주려고 같이 생활하자고 설득을 해도 왕민통이 완강하게 거부했다고 하네요. 또 푸이의 이복동생으로 자신보다 5살 어린 푸런의 청혼을 받아 들였어도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고 외롭지 않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민통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푸이가 사망하자 왕민통은 살아갈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6:24초경의 사진이 왕민통이 양로원에 있을 때 놓아두었던 사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때가 왕민통이 가장 행복하였을 때라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왕민통 좋은 집안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는데 본인의 틀과 고집이 너무 세서 활용을 잘 못했네요. 안타깝네요. 황제라는게 다가 아닌데 , 대만으로 이사갈수도 잇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편히 살수도 있는데 봉건 사상에 너무 물들어있고 완고한 모습에 푸이가 왜 거절했는지 알겠네요.
@@그림물감-o2m 혹시 청나라도 근친혼했나요? ㅋㅋ 사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고대로 가서 외모도 삐까뻔쩍한 외모의 권력자 남주 만난다는 설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설정이라잖아요. 일단 당시 평균 키가 지금보다 훨 작았죠. 현대 여성보다 당시 키 큰 남성이 더 작았을 겁니다. 그리고 근친혼을 해서 외모 꽝인 경우가 많았을 거라죠... ㅋㅋㅋ
윗분 말씀처럼 푸이가 감옥에서 나온 뒤로 청왕조 귀족 집안과 얽히는 걸 피했다고 하네요. 공산당에서 과거 황제였던 푸이를 사회주의형 인간으로 개조시켰다고 선전했으니 더 그렇겠죠. 과거의 황족들과 얽혀봐야 자신에게 좋을 일이 없겠죠. 문화대혁명 때 황제였던 신분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푸이가 감옥에서 나온 뒤로 일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집안 일도 하고 그러려고 노력은 했데요. 그전 황제로서의 특권 의식을 많이 버리고 평민으로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왕민통 말고 다른 귀족 집안에서도 혼사 제의를 했으나 다 거절하고 평민출신인 간호사인 리수셴과 결혼했죠. 일단 왕민통은 황족여성답게 평생 일하지 않았지만 리수셴은 간호사라는 직업도 있고 감옥에서 나온 뒤 건강이 안 좋은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걸 많이 생각했다고 그러네요. 또 왕민통이 빼어난 미인이라고 해도 성적으로 불능상태인 푸이에게는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더구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첫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황후인 완룽의 아주 가까운 친적이기도 하니 더 그랬을 것 같아요. 왕민통이 순결증명서를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성적으로 불능상태인 푸이에게는 그것이 더 치욕스러웠을 거라 그러네요. 황제였던 푸이와 결혼함으로써 황족이라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신분에 정점을 찍으려는 왕민통과 이제 황제였던 과거를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는 평민 푸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완안씨와 애신각라씨가 결혼하여 자손을 생산해야 나중에라도 청나라의 대를 잇는 희망을 가실 수 있는데...그래서 정통 금나라 황실가문의 완안동기(왕밍통)가 정통 청(후금)나라 황실 혈통의 아이신기오로 푸이에게 집착한 것인데... 푸이는 걍 조용히,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뿐... 그래서 집안도 내력도 없는 평범한 간호사와 결혼한 것...
안녕하세요 CNC코퍼레이션 마케팅 담당자입니다. 유튜브 협업건 관련 이메일 보내드렸었는데 혹시 확인하셨는지 궁금하여 댓글 남깁니다 :) 확인 후 답변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메일을 못받으셨다면, 다시한번 보내드리겠습니다. 또는 스팸메일함 확인 꼭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청나라 공주라고 떠도는 사진을 봤을때 너무 예뻐서 기억에 남았는데 이런 가련한 삶을 살았다니 정말 가엽네요ㅠㅠ
푸이의 시선이 가장 정확하네요. "옛시절의 황실과 가문에 얽매여 있는 여자"
저런 흑백사진으로 저 얼굴이면 정말 예쁜 건데 쌍커풀 없으면서도 큰 눈에 날씬하고 너무 예쁜데요
나만 김슬기 생각났나
홍대나 이태원 한번 나가보시고요
@@jwlim3161지금 성형 조진 련들이랑 저 당시 성형이고 화장이고 발달 안했던 시대랑 같냐고
격변하는 사회에 걸맞지 않는 봉건적인 사고와 너무 높은 신분, 그리고 푸이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너무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앳되고 아름다운 젊은 시절의 모습에서 홀로 늙은 말년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공감합니다. 세상의 변화에 맞지 않는 봉건적 사고에 지나치게 갇혀있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하게 합니다
가녀리고 똘망똘망 하게 참 예쁜데 왜 자기를 좋아해주지도 않는 남자한테 평생 매달려가지고ㅠㅠ
그동안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받았을테니 오히려 신사적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는 모습에 반하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드네요
푸이가 비참한 마지막 황제가 아니라 진짜 행복한 남자로 보이네
푸이는 뼛속까지 개념있는 신사였네요. 푸이의 상황이 좋았다면 왕민퉁과 결혼도 가능했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혼란한 시대에 억지로 불행이 뻔한 결혼하느니 차라리 혼자사는 것이 나았다 보입니다.
'왕민통'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봐도 예쁘네요
최고미녀가 하나도 부럽지않네요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튜버님 떡상만을 기다리는 1인입니다
왕민통이라는 여성분은 이 영상을 통해 처음 알았네요. 그녀가 부유하게 귀족으로 여유롭게 살다가 죽기 전에 가난하게 지내다 돌아가셨다고 해서 불행하다거나 불우하게 보는 건, 보는 사람의 일방적 편견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본인은 한사람을 열렬히 평생 사랑하고, 본인 의지대로 살았으니 나름 행복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혼을 안했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꼭 불행한 건 아니니까요.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 또한 여러 고생과 안타까움을 겪기도했지만, 그 속에서 느끼거나 깨달은 것들이 많아, 바르게 잘 살다가 돌아가신 것 같네요, 그래서 그 삶이 마냥 안타깝게 느껴지지만은 않아 다행입니다.
우와... 전형적인 동양적 미인상이네요 지금 보아도 고운 미모에 잘 배우고 자란 여식답게 기품있어보입니다.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지만 외모가 아름다워 눈길이 자꾸 가네요ㅎㅎ
왕민통이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았으나 결국 그 남자는 어릴때부터 황제로 살면서 많은 일을 겪고 다시는 엮이기 싫어져서 그런게 아니었을지…
지금 봐도 미인이신데 저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청혼을 하였을까??
그런데 마음 속에 오직 한사람이었고 외사랑은 정말 힘든건데…
소개해주신 이 왕민통이라는 여성을 처음 알게 되어 더 찾아 보게되었는데 푸지에와의 혼사문제로 만주국 쪽에 갔다가 푸이를 보고 그 이후 푸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예 결혼을 하지 않았네요.푸이가 리수센과 결혼했을 때 굉장히 슬퍼했다고 하더라고요. 외모도 훌륭하고 집안도 훌륭한데 너무 이상적이지 않았나 합니다. 그 이상이 너무 봉건적이기도 한 것 같고. 푸이와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행복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현실과 이상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의 여성이었는데 자신의 이상 때문에 아픔이 많은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왕민통이 문화대혁명 때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해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다지만 사실 왕민통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왕민통은 자신의 황족이라는 신분에 너무 집착해서 인지 평생 일을 하지 않았고 보조금 300위안으로만 생활했죠.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교사로라도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구직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굉장히 값어치 있는 유품이 있어서 그걸 팔면 여유롭게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소중하게 간직하다 말년에 대만에 있는 친척에게 돈 한푼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고 합니다. 왕민통이 황족이니 그의 친척들도 다 황족이어서 왕민통의 생활을 보고 마음 아파했다고 해요. 그래서 왕민통을 돌봐주려고 같이 생활하자고 설득을 해도 왕민통이 완강하게 거부했다고 하네요. 또 푸이의 이복동생으로 자신보다 5살 어린 푸런의 청혼을 받아 들였어도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고 외롭지 않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민통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푸이가 사망하자 왕민통은 살아갈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6:24초경의 사진이 왕민통이 양로원에 있을 때 놓아두었던 사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때가 왕민통이 가장 행복하였을 때라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푸이에게 왕민통은 여러가지 면에서 완룽을 떠오르게 한 것같아요..
맞네요, 이상적
왕민통 좋은 집안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는데 본인의 틀과 고집이 너무 세서 활용을 잘 못했네요. 안타깝네요. 황제라는게 다가 아닌데 , 대만으로 이사갈수도 잇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편히 살수도 있는데 봉건 사상에 너무 물들어있고 완고한 모습에 푸이가 왜 거절했는지 알겠네요.
대환장시대가 낳은 슬픈 스토리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진짜 너무 예쁘게 생긴 소녀였는데..
왜 내 눈에는 시대를 초월한 최고 순정녀로 보이죠? ㅋㅋ 이미 꼭두각시 황제는 커녕 감옥살이 이후에 평민으로 전락해서 초로의 노인이 된 이후에도 저리 순정적일수 있나 싶네요;; 아마 부의가 여자한테 별 관심이 없었거나 같은 구황족을 부인으로 삼기가 부담스러웠을 듯
와우 성형 없는 시대에 진짜 매력적인 미인이네요 약간 김슬기 닮았어요
어릴때 읽은 근대 소설중에 만주족 여자를 굉장히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키도 크고 그런 묘사도 있었죠. 저 사진을 보니 이해가 가네요
푸제는 결혼상대인 일본 여성과 의외로 잘 살았다고 함.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손자,손녀까지 보면서 살았음.
지금의 시각으로 봐서는 아깝고 안타깝기 그지없지는 삶이었지만
당시로서는 그럴수도 있을듯하네요ㅠ
영상 감사합니다.
푸이에대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같다. 스토커.
저렇게 아름다웠는데,,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건지,, 고대로 늙은모습이 안타깝네 ㅠㅠ
와 그녀도 미인이지만
엄마가 장난아니게 미인이네
근데 이해가 안되는게 뭐가 아쉬워서
볼것없능 남자에게 집착을.. 헐..
황제니까
@@봄나들이-p4g 저 같으면
저 인물에 황제고뭐고 다른 남자 만남.. 뭔 영광을 누리겠다고..
하기사 지눈에 안경..
@@봄나들이-p4g 평생 황제가 아니였고, 왕민통은 평생을 짝사랑했는데 황제와 뭔 상관이죠?? 이유가 뭐였던 그냥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했던것 뿐이였던것 같은데요~
볼것없진 않지 일본천황,황태후도 푸이보고 꼬박꼬박 '폐하' 라고 칭해줬는데
@@rumelia545 댓글달대는
기본예의가 중요하겟죠??!!!
내가 몇살인줄알고 말을 낮추나??!!
그리고 능력없는 폐하가 뭐 볼거있다고
저런 허울뿐인 황제는
본인뿐아니라 옆의 사람도 인생 피곤하게 할뿐입니다
걍 다른 능력있는 사람도 널렷을텐데
가여워요
저 여자 베트남 마지막 황후랑 분위기가 비슷하네요 생긴건 다른데 규수같은 느낌이 똑같음
91세 그외중에 장수.. 순결증명서라 푸이가 질색할만도..
꿈이 황후......
엄청 매력있게 생겼네
푸이가 정상이네~
외모며 금수저에 다가졌지만
다만 남자보는 눈이없네
여기도 사촌끼리 결혼이 가능했군요.온갖 격랑
다 겪은 푸이로선 결혼
해도 아무일 안겪을 제일 밑바닥 여자가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정원사하다가 죽었죠.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연예인을 한 시대를 풍미했을 듯합니다.
민통이 아이돌상이네
저시절은 미인박명 시절이라 ㅇㅇ
지금 태어났으면 기획사만 잘만나면
잘나갔을듯
시대가 맞지 않았던 불운한 삶
감사합니다
청나라.푸이는.마지막황제
푸이가.일본으로.불모로
잡혀가고.푸이의일생을
영화도.책도.많이봤습니다
청나라의.마지막황제.푸이의
이얘기.슬픈인생.이야기
잘듣고.영화도보고.불행하게
살다가신분.푸이
절세 미인까지는 아니지만 오늘날로도 꽤나 귀염상 있는 괜찮은 외모네요~
당시의 청나라 황실 여인 사진들을 보면 그 시절로서는 절세 미인이더군요...저 시절의 황실의 다른 여자들 사진 보면 왕민동이 얼마나 희귀한 미모였는지 막 실감이 난다는요 ^^;;;
@@그림물감-o2m 혹시 청나라도 근친혼했나요? ㅋㅋ 사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고대로 가서 외모도 삐까뻔쩍한 외모의 권력자 남주 만난다는 설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설정이라잖아요.
일단 당시 평균 키가 지금보다 훨 작았죠. 현대 여성보다 당시 키 큰 남성이 더 작았을 겁니다.
그리고 근친혼을 해서 외모 꽝인 경우가 많았을 거라죠... ㅋㅋㅋ
그 시절을 생각해야지.
저땐 화장술, 성형 등등 뒤떨어졌을텐데 저정도면 엄청난 미인이죠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옛날 왕실의 사연도 좋을것 같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와~ 중국여성들은 저시대 저런 외모면, 엄청미인 아닌가, 입식문화라 몸매도 좋고.
근데 그와중에 푸이는 보는 눈도 없네.
괴거 본인의 신분이 왕이었던터라
공산주의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데
또다른 왕족과의 결혼은 부담이 컸을겁니다.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 어려운 시대의 격변을 살아 온 사람으로서 뒤늦게나마 어쩌면 현명한 선택을 한거죠
윗분 말씀처럼 푸이가 감옥에서 나온 뒤로 청왕조 귀족 집안과 얽히는 걸 피했다고 하네요. 공산당에서 과거 황제였던 푸이를 사회주의형 인간으로 개조시켰다고 선전했으니 더 그렇겠죠. 과거의 황족들과 얽혀봐야 자신에게 좋을 일이 없겠죠. 문화대혁명 때 황제였던 신분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푸이가 감옥에서 나온 뒤로 일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집안 일도 하고 그러려고 노력은 했데요. 그전 황제로서의 특권 의식을 많이 버리고 평민으로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왕민통 말고 다른 귀족 집안에서도 혼사 제의를 했으나 다 거절하고 평민출신인 간호사인 리수셴과 결혼했죠. 일단 왕민통은 황족여성답게 평생 일하지 않았지만 리수셴은 간호사라는 직업도 있고 감옥에서 나온 뒤 건강이 안 좋은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걸 많이 생각했다고 그러네요.
또 왕민통이 빼어난 미인이라고 해도 성적으로 불능상태인 푸이에게는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더구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첫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황후인 완룽의 아주 가까운 친적이기도 하니 더 그랬을 것 같아요. 왕민통이 순결증명서를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성적으로 불능상태인 푸이에게는 그것이 더 치욕스러웠을 거라 그러네요.
황제였던 푸이와 결혼함으로써 황족이라는 자랑스러운 자신의 신분에 정점을 찍으려는 왕민통과 이제 황제였던 과거를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는 평민 푸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 같습니다.
@@mozart3002 안타깝내요
푸이가 미인 그런 외모 따질 처지가 아니었잖아...
안타깝네요
이루어질수 없었던 사랑, 이상적인 여자, 깨닫고 다른 남자를 선택했더라면 완전히 다른 인생이 되었을까? 안타깝고, 불행하고, 그 고해를 어찌 다 속에 삼켰을지, 苦海无边,回头是岸
세상이 변하는데 과거 왕족이고 귀족이 뭐가 중요해
완안씨와 애신각라씨가 결혼하여 자손을 생산해야 나중에라도 청나라의 대를 잇는 희망을 가실 수 있는데...그래서 정통 금나라 황실가문의 완안동기(왕밍통)가 정통 청(후금)나라 황실 혈통의 아이신기오로 푸이에게 집착한 것인데...
푸이는 걍 조용히,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뿐...
그래서 집안도 내력도 없는 평범한 간호사와 결혼한 것...
So great!!
진짜 예쁘네 ㅋ
혁명 전의 만주식 본명은 완안입동기이지요.
귀여움
근데 독신이라 외롭긴 했겠지만 안 맞는 사람과 결혼해서 애낳고 사는 게 더 고생이었을 수도 있다.
푸이는 왜 왕민통같은 미녀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다칠까봐 그랬겠죠
왕족끼리 결혼하는걸 공산당이 곱게볼까요?
그리고 푸이도 아무것도 없는 살림에
무엇하나 줄것없는 무능한 사람인데
저도 같은 생각. 10년간 사상개조 엄청 받았을테고 공산당 감시가 계속 될텐데 황족여인과 결혼한다면 아직 봉건적 잔재를 버리지 않았다고 의심받을수 있었을듯.
저시대 저정도면 잘 살았다. 자유롭게.
남편 외도 폭력 시집살이 평생 출산하고 전염병과 전쟁으로 가족 잃고 살아온 조선여자들에 비하면..
스토커였네
황족인데 같은 집안인 황족과 결혼이 가능한가요?
동성이본이라 가능합니다.
왕밍통은 사실 완안씨입니다.
완안씨는 경주김씨입니다.
그리고 푸이는 애신각라씨입니다.
애신각라씨는 김해김씨입니다.
경주김씨와 김해김씨는 동성이본, 즉 성은 같으나 본이 다르므로 결혼할 수 있습니다.
@@thesanctuary225 누르하치가 경주김씨라더니... 푸이는 또 김해 김씨인가요?
@@素渶-z6t 누르하치는 김해김씨입니다.
경주김씨는 완안 아골타...
@@素渶-z6t 저거 국뽕 헛소리입니다 믿지마세요. 애신각라 성씨는 한국과 관련이 없습니다
가엾어라.
왕민통이 훨씬 더 여성스운 성격인 것 같은데, 왕민통이 오히려 더 푸이를 잘 돌봐주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가끔 유툽 등에 올라오는 과거사진들을 보면 미의 기준이 옛날이랑 비교해도 과히 다르지 않은것 같습니다 왕민통도 그렇고 유명한 기생이었다는 분들도 다들 한미모 하시더라고요 어쨌거나 미모가 다는 아닌가봅니다 자존감이 모자랐을까요? 아니면 저분 자존감의 근원이 좀 비뚫어졌던걸까요? 왕민통도 참 깝깝하게 사셨네요
뉴진스 민지와
존똑이다
나인뮤직스의 경리와 닮았고
김민주 닮았다
이찌에 채령이 닮았음
푸제 부인 탕스샤 분명 여자 맞죠?
2022🍨3🍰11
굿.🐢🐲🌎🌏🌍.
격랑의 시대의 피해자
푸이가 그토록 왕민통을 밀어낸 건, 사실 발기부전인 자신의 실상을 황실 최고 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 아닐까...ㅋㅋㅋ
완안 입동기
흠,,
안녕하세요 CNC코퍼레이션 마케팅 담당자입니다.
유튜브 협업건 관련 이메일 보내드렸었는데 혹시 확인하셨는지 궁금하여 댓글 남깁니다 :)
확인 후 답변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메일을 못받으셨다면, 다시한번 보내드리겠습니다. 또는 스팸메일함 확인 꼭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사정상 경황이 없어 조만간 확인해 보고 메일 드릴게요.
@@mika_box 네 !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분 궁금햇음
김슬기
나는 청황조 별로... 비록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하나 일국의 왕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청나라 ...쌤통이지
난 그 굴욕을 무능한 인조의 자업자득이라고 봄.
대충 항복만 했어도 머리 찧는 거까진 안갔을 듯.
@@sdfjhbgvds중국인이냐? 뭘 항복을 해
관심없다 중국..^^
어지간히 관심있나 보네.. ^^
장원영?
흠.. 동네에서 흔하게 보는 고딩이..
2
아기가 아닙니다
야 엄마입니다
야가 보살피고 데리고 가는데,은영이 할머니입니다
쟈는 정상으로 만들고나서 가네요
최은영이랑 이득순이는 가고없습니다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