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 이항대립이 필요한 이유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생존에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나누는 것이 이항대립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사자와 맞서도 무관하고 사자에 먹혀도 무관하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허무주의의 다른 버전이겠죠) 대립이 필요하지만 융통성(이항대립 수백개를 방정식으로 푸는 것)을 갖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최선 아닐지
@@5philosophy 중도를 따르고자 노력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항대립과 해체가 균형을 이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항대립이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가르면 되는 문제로 보입니다(말이 쉽지만요) 어쩌면 기존의 구조를 허물어야한다는 생각도 이항대립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구조적 모순) 둘은 상호보완이 필요한 관계로 보이네요
그렇죠 무리수와 유리수는 이항대립관계가 아닌 다 실수 안에 자리하고 있는 수일 뿐인거죠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하다 싶은 그 무엇에 집착하다보면 점점더 무리하지 않으려하고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야말로 유리수만 자신의 수이고 무리수와 실수는 수도 아닌 이항대립의 삶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할 줄 모르고 유리함이 어떤 상황에선 불리할 수도 있는 때가 온다는 걸 예지하고 인지할 줄 모르면 인간은 별 수없이 대립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게 생겨 먹은 종자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을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감지하고 예지하고 인지한다는 것 참 어려운 삶의 기술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것이다는 말은 여기서 부터 나온 말이라고 봐줘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5년 전까지는 들뢰즈의 리좀에 동의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항대립을 데리다는 칸트를 끌어써서 그것이 지식과 이해의 근원이라고 정의한점, 허나 칸트의 선험을 초기에는 부정햤던 점도 인상깊죠, 그러나 결국 마진을 인정하는 점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현재는 이 이항대립의 인정이 철학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에 여러가지 연구들이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리다가 철학을 죽였다고 비판받고 있는 부분이기도하고요.
요즘 작가님 폼 무쳤다이! 건강보다 영상이 우선입니다!! 농담이구 요세 영상이 많이 올리신다고 고생많으십니다.😂 대학교 과제할 때 많이 많이 참고 했는데 그때 철학에 영업되어 직장생활하면서도 듣고있네요. 요번 영상 보며 제 인생책인 싯다르타가 떠올랐어요 수도생활과 속세의 이항 대립... 그리고 강이라는 회색지대(저는 중용이라는 개념이라 생각해요)에서 사람들을 나르고 뱃사공의 평범한 순간과 아들을 떠나 보내는 비범한 순간들이 조화를 이루어 케고르의 신앞에 선 단독자와 같이 깨닳음을 지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되는...아무튼 싯다르타,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에세이와 곁들어 보면 좋은 영상이네요!!🤭(이렇게 하면 되죠?)
생각에 잡혀먹혔다고 보면 되겠죠 대부분 철학자들은 상당히 비판적인데 비판성을 유지하면서도 의미를 놓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해석했다고 해서 세계가 끝나는 것이 아닐텐데 회의주의적인 철학자들은 자기 세계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죠 어떤 게임의 엔딩을 봤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다른 게임을 찾아보거나 스스로 자기만의 게임을 창작해 볼 수 있는 거겠죠 항상 생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에 휩싸이지(끌려다니지) 말고 그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겠죠 그리고 너무 이성적으로만 살면 감정이 마비돼서 우울함(무의미함)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죠 지피지기 중에서 대상은 잘 파악하는데 자기는 잘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까요(또는 자기 이론에 잡아먹힘) 항상 미래를 닫지 말고 열어두면(자기 생각이 틀릴 가능성을 고려해야)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이 언어를 갖기시작하면서 부터 생긴문제를 개념화하고 이를 철학이라고 칭하고 그 철학중에 이항구조주의를 개념이라는 창으로 포착한것으로 보입니다. 언어가 기본적으로 있다와 없다를 전제로 하기때문이고 좀 더 들어가보면 있다를 전제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있다에 기반하여 없다를 인식하기때문에 이항대립구조에서 벗어나기 여간어려운게 아니죠. 이걸 벗어난 사람을 현자라고 부릅니다.
나누는게 단순히 나쁜 것만은 아님. 예를 들어서 근대에 들어와 인간세상에 "위생"의 관념이 중요해짐.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나누는 이항의 개념 정립으로 위생을 관리하는 수도기술/건축기술/의학개념 등등으로 "공간 구획 능력"이 생겼고 공간을 나누고 단절시킴으로 (화장실, 수술실 등이 예시)그 결과 많은 생명을 건졌음. 인간의 지식체계 자체가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지식체계를 발달시켜온건데 못 버리지. 쌓아올린 탑이 이만큼인데 ㅋ
우리로 말하자면 양비와 양시 둘 다를 기반으로 하는 중도가 구조의 해체였네요. 불운하게도 박쥐라고 욕을 먹기 땀시 숨어사느라 제자리에 등극을 못했지요. 이제 배트맨은 서양의 영웅을 넘어 동양의 주류로 제자릴 찾아야 한다고 봄다. 논리학의 동일률이 바로 가장 오래된 차연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철학이니까 이처럼 막 나가봅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도는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세밀화한다고 봐야겠죠 A, B가 있을 때 보통이라면 A와 B로 갈라지죠 중도는 A와 B로 갈라지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인 A와 B를 A(a, b)/B(c, d)로 가르는 거라고 봐야겠죠 A(a,b), B(c, d) => C(a, c) 이런 식의 융통성(다소 복잡한 계산)을 중도로 볼 수 있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구조를 무작정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의 요소를 세밀화시켜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봐야겠죠 자기가 충분히 이성적이라면 응당 그래야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극단적인 세력들은 그 계산을 포기한 사람들이고(자기쪽은 무조건 맞고 상대는 무조건 틀리다) 중도에 위치할수록 그 계산을 열심히 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건 맞지만 저건 틀리다, 부분이 전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부분적 양비, 부분적 양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죠) 자기 생각이라고 해도 틀린 건 틀리고 맞는 건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중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피곤한 정치라고 할 수 있죠 분명한 것은 다 귀찮다고 무조건 해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나간다라고 봐야겠죠
@@maroangel8525 일찌기 어릴 때는 국어시간에서, 장성해서 사회에서는 언론과 매스컴들의 논조에서, 중도가 서기 위한 양비론을 논지를 흐린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다 못해 논술시험에 나오면 무조건 오답이라는 풍조가 지배적이였지요. 그 결과 상당수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항대립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헌법에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모셔놓고도 현실에서는 그 자유을 누렸다는 이유로 압색과 기소를 당하는 요즈음이구요. 이항대립의 원인은 이율배반으로 존재의 필연적 구조인데 원초적 이율배반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들이 정치와 종교에서 날이면 날마다 이항대립으로 서로 죽이는 쌈질을 하지요. 그렇다보니 이제는 심지어 권력이 존재까지도 압색하여 무화하려는 망상이 정치의 옷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네요. 체험에 있어 우리는 저 서구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의 경험치를 전혀 도달해보지 못했으면서도 지나치고 있다고 봅니다. 마치 별로 연구 없이도 메모리반도체 강국까지 된 유별난 경험 덕이지요. 알고 나면 매우 쉬운 답도 알기 전에만 어려우니 답부터 얻으면 중간은 거저지요. 무지무지 고생하며 작품을 어렵게 만들어낸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5분 뚝딱은 이제 세계 제1의 철학반도체 생산공장입니다.
최근에 읽은 김주환교수님의 내면소통 중에서 본질적인 측면에서 공동체적이며 생성질서를 지닌 구성물인 자아를 ‘고유하고도 개별적인 실체’라고 굳게 믿는 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전형적인 산물이다’라는 문장이 생각나네요. 내면적인 일을 수행할 때조차 사회적 규칙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바탕인 개인의 사유와 신념체계 등 역시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내용이 영상을 보면서 계속 떠올랐습니다 두가지 개념이 양립해서 발전해온 역사 역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bti에서 S,N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처럼 기계론적 세계관과 유기론적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도 선생님의 사유로 듣고 싶습니다. 추천해주신 책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그렇죠 언어는 게임이고 존재의 집이고 언어의 놀이만이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ㅎㅎㅎ 철학하면 개소리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지평융합을 통해 시야를 넓혀 유한하고 일시적이지만 그 자체로 근본적으로 세계를 바꾸는 진리사태를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네요!ㅋㅋㅋ 이제 설파하는 분들이 잘 살 수만 있으면 행복할텐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을 빙 둘러서 말하느라 고생 많으셨네요ㅠㅠ
동물에게 이항대립이 필요한 이유는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생존에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나누는 것이 이항대립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사자와 맞서도 무관하고 사자에 먹혀도 무관하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허무주의의 다른 버전이겠죠)
대립이 필요하지만 융통성(이항대립 수백개를 방정식으로 푸는 것)을 갖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최선 아닐지
아 그 점을 생각못했군요. 맞는 말씀인것 같습니다.
“먹을수 있는 것”과 “먹을수 없는 것”을 구분 못해서 아무거나 잘못 먹으면 탈이 나거나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죠.
@@5philosophy 중도를 따르고자 노력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항대립과 해체가 균형을 이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항대립이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가르면 되는 문제로 보입니다(말이 쉽지만요)
어쩌면 기존의 구조를 허물어야한다는 생각도 이항대립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구조적 모순)
둘은 상호보완이 필요한 관계로 보이네요
@@XT55555 맞습니다 다만 실전에서는 조금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둘로 나눠지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어 보이니까요
교수님 목소리 참 좋아요~
감사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네요. 가미하신 해석도 멋진거 같아요~
박사님 영상 정말 잘보았습니다! 7월5일 북콘서트 신청할 때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질문을 남겼는데 이 주제로 영상이 올라와서 기뻐요 😄
감사합니다. 그날 뵐께요.
추천합니다~
이항대립 구조는 흔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말씀하셨듯이 깊이 있는 내용을 많이 다루기는 힘든 한계가 있는데 기대되네요
이 시대에는 회색지대를 품어줄 마을을 찾는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 회색주의를 품어주자 못한다라는 말자체가 회색주의를 배척하는 언어같습니다.
회색주의와 회색주의가 아닌 이항대립으로 재대립화를 가능하기 때문이져
강좌와 추천서적 엄청 도움이 됩니다😊
세상은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체감합니다
그렇죠 무리수와 유리수는 이항대립관계가 아닌 다 실수 안에 자리하고 있는 수일 뿐인거죠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하다 싶은 그 무엇에 집착하다보면 점점더 무리하지 않으려하고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야말로 유리수만 자신의 수이고 무리수와 실수는 수도 아닌 이항대립의 삶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할 줄 모르고 유리함이 어떤 상황에선 불리할 수도 있는 때가 온다는 걸 예지하고 인지할 줄 모르면 인간은 별 수없이 대립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게 생겨 먹은 종자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을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감지하고 예지하고 인지한다는 것 참 어려운 삶의 기술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것이다는 말은 여기서 부터 나온 말이라고 봐줘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영상보고 책 바로 주문했습니다! 원래 철학에 관심 1도 없었는데 교수님 영상보고 재미붙였습니다!!ㅎㅎ 배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광기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았던 유럽 16세기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
17세기 이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비정상적인 사람 감금 광인 범죄자 무신론자 이교도 게으름벵이 거지를 한곳에 가두기 시작함 이것이 종합병원의 시작
5년 전까지는 들뢰즈의 리좀에 동의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항대립을 데리다는 칸트를 끌어써서 그것이 지식과 이해의 근원이라고 정의한점, 허나 칸트의 선험을 초기에는 부정햤던 점도 인상깊죠, 그러나 결국 마진을 인정하는 점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현재는 이 이항대립의 인정이 철학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에 여러가지 연구들이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리다가 철학을 죽였다고 비판받고 있는 부분이기도하고요.
이항대립으로 표현된 구조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포스트구조주의의 출현이 필연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하나의 잣대로 양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잘 정리한 자료의 제공에
항상 감사합니다.
포스트구조주의관련하여 보고있었는데 골자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요즘 작가님 폼 무쳤다이! 건강보다 영상이 우선입니다!!
농담이구 요세 영상이 많이 올리신다고 고생많으십니다.😂 대학교 과제할 때 많이 많이 참고 했는데 그때 철학에 영업되어 직장생활하면서도 듣고있네요.
요번 영상 보며 제 인생책인 싯다르타가 떠올랐어요 수도생활과 속세의 이항 대립... 그리고 강이라는 회색지대(저는 중용이라는 개념이라 생각해요)에서 사람들을 나르고 뱃사공의 평범한 순간과 아들을 떠나 보내는 비범한 순간들이 조화를 이루어 케고르의 신앞에 선 단독자와 같이 깨닳음을 지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되는...아무튼 싯다르타, 평범하게 비범한 철학에세이와 곁들어 보면 좋은 영상이네요!!🤭(이렇게 하면 되죠?)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로가 왜 다들 안 좋을까요?가 지금 이 순간 내 철학적 사유. ㅋ
논외지만 레비스트로스는 100살 넘게 살면서 한국에도 왔었고, W.하버마스도
아직 살아있고, "인정투쟁"의 A.호네트도
살아 계셔요. 독일계가 오래 사는듯요..
생각에 잡혀먹혔다고 보면 되겠죠
대부분 철학자들은 상당히 비판적인데 비판성을 유지하면서도 의미를 놓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해석했다고 해서 세계가 끝나는 것이 아닐텐데 회의주의적인 철학자들은 자기 세계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죠
어떤 게임의 엔딩을 봤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끝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다른 게임을 찾아보거나 스스로 자기만의 게임을 창작해 볼 수 있는 거겠죠
항상 생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에 휩싸이지(끌려다니지) 말고 그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겠죠
그리고 너무 이성적으로만 살면 감정이 마비돼서 우울함(무의미함)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죠
지피지기 중에서 대상은 잘 파악하는데 자기는 잘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까요(또는 자기 이론에 잡아먹힘)
항상 미래를 닫지 말고 열어두면(자기 생각이 틀릴 가능성을 고려해야)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진짜 설명 너무 잘하세요... 대단하시다...
철학 너무 재밉습니다. 근데 모르겠네요 ㅠㅠ. 그래도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간이 언어를 갖기시작하면서 부터 생긴문제를 개념화하고 이를 철학이라고 칭하고 그 철학중에 이항구조주의를 개념이라는 창으로 포착한것으로 보입니다.
언어가 기본적으로 있다와 없다를 전제로 하기때문이고 좀 더 들어가보면 있다를 전제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있다에 기반하여 없다를 인식하기때문에 이항대립구조에서 벗어나기 여간어려운게 아니죠. 이걸 벗어난 사람을 현자라고 부릅니다.
나누는게 단순히 나쁜 것만은 아님. 예를 들어서 근대에 들어와 인간세상에 "위생"의 관념이 중요해짐.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나누는 이항의 개념 정립으로 위생을 관리하는 수도기술/건축기술/의학개념 등등으로 "공간 구획 능력"이 생겼고 공간을 나누고 단절시킴으로 (화장실, 수술실 등이 예시)그 결과 많은 생명을 건졌음.
인간의 지식체계 자체가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지식체계를 발달시켜온건데 못 버리지. 쌓아올린 탑이 이만큼인데 ㅋ
이원론, 영지주의, 흑백논리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단지불회 시즉견성
이 책도 이북 나오면 바로 구매 예정! 근데 교보에서 6월말에 이북 계획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ㅠㅠ
혹시 영상 제작할 때 쓰신 대본 유로로라도 공개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나중에 책으로 출판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5philosophy 감사합니닷
11:47 담론권력의 탄생?
우리로 말하자면 양비와 양시 둘 다를 기반으로 하는 중도가 구조의 해체였네요.
불운하게도 박쥐라고 욕을 먹기 땀시 숨어사느라 제자리에 등극을 못했지요.
이제 배트맨은 서양의 영웅을 넘어 동양의 주류로 제자릴 찾아야 한다고 봄다.
논리학의 동일률이 바로 가장 오래된 차연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철학이니까 이처럼 막 나가봅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도는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세밀화한다고 봐야겠죠
A, B가 있을 때 보통이라면 A와 B로 갈라지죠
중도는 A와 B로 갈라지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인 A와 B를 A(a, b)/B(c, d)로 가르는 거라고 봐야겠죠
A(a,b), B(c, d) => C(a, c) 이런 식의 융통성(다소 복잡한 계산)을 중도로 볼 수 있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구조를 무작정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의 요소를 세밀화시켜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봐야겠죠
자기가 충분히 이성적이라면 응당 그래야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극단적인 세력들은 그 계산을 포기한 사람들이고(자기쪽은 무조건 맞고 상대는 무조건 틀리다)
중도에 위치할수록 그 계산을 열심히 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이건 맞지만 저건 틀리다, 부분이 전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부분적 양비, 부분적 양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죠)
자기 생각이라고 해도 틀린 건 틀리고 맞는 건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중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피곤한 정치라고 할 수 있죠
분명한 것은 다 귀찮다고 무조건 해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나간다라고 봐야겠죠
@@maroangel8525 일찌기 어릴 때는 국어시간에서, 장성해서 사회에서는 언론과 매스컴들의 논조에서, 중도가 서기 위한 양비론을 논지를 흐린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다 못해 논술시험에 나오면 무조건 오답이라는 풍조가 지배적이였지요. 그 결과 상당수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항대립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헌법에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모셔놓고도 현실에서는 그 자유을 누렸다는 이유로 압색과 기소를 당하는 요즈음이구요. 이항대립의 원인은 이율배반으로 존재의 필연적 구조인데 원초적 이율배반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들이 정치와 종교에서 날이면 날마다 이항대립으로 서로 죽이는 쌈질을 하지요. 그렇다보니 이제는 심지어 권력이 존재까지도 압색하여 무화하려는 망상이 정치의 옷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네요. 체험에 있어 우리는 저 서구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의 경험치를 전혀 도달해보지 못했으면서도 지나치고 있다고 봅니다. 마치 별로 연구 없이도 메모리반도체 강국까지 된 유별난 경험 덕이지요. 알고 나면 매우 쉬운 답도 알기 전에만 어려우니 답부터 얻으면 중간은 거저지요. 무지무지 고생하며 작품을 어렵게 만들어낸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5분 뚝딱은 이제 세계 제1의 철학반도체 생산공장입니다.
결국 가정을 해체하고 사회를 망치는 자들의 사상으로
질서가 파괴될뿐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무차별적으로
욕망의 도구로 쓰는 자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말살되야한다
뭐양 구조해주세요
오
푸코의 사상이 합리적일지는 몰라도
현대에 사상이 권력에 매몰되어 자본주의화 돼버린 걸 보면
윤리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푸코의 포스트 구조주의 인식은, 프랑크푸르트학파식의 저항과 함께해야 견제가 되지 않나 싶기도 해요
현대에 살지만 현대인이 아닌 사람도 많아 보여요. 근데 이렇게 쓰면 또 현대인과 현대인이 아닌 사람으로 이항대리봐게 되네요.
ㅋ
최근에 읽은
김주환교수님의 내면소통 중에서
본질적인 측면에서 공동체적이며
생성질서를 지닌 구성물인 자아를
‘고유하고도 개별적인 실체’라고
굳게 믿는 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전형적인 산물이다’라는 문장이 생각나네요.
내면적인 일을 수행할 때조차
사회적 규칙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바탕인 개인의 사유와 신념체계 등
역시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내용이 영상을 보면서 계속 떠올랐습니다
두가지 개념이 양립해서 발전해온 역사 역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bti에서 S,N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처럼
기계론적 세계관과 유기론적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도 선생님의 사유로 듣고 싶습니다.
추천해주신 책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언어가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부분에 있어서 현대 사회에 치명상을 입힌 데리다 ㅇㅇ
차연=최적화
일빠 선 댓글 후감상
×푸코ㅡ에피스테메 이항대립해체
×들뢰즈ㅡ리좀 개념
×데리다ㅡ차연 개념
뽀로로족이라니...^0^
광기의역사
어차피 철학은 말 장난이고, 개소리를 잴 들어 주는 어떤 이가 있으니, 설파하는 어떤이는 잘 살 수 있겠죠~~~^^
무지를 자랑하시는...
그렇죠 언어는 게임이고 존재의 집이고 언어의 놀이만이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ㅎㅎㅎ
철학하면 개소리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지평융합을 통해 시야를 넓혀
유한하고 일시적이지만 그 자체로 근본적으로 세계를 바꾸는 진리사태를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네요!ㅋㅋㅋ
이제 설파하는 분들이 잘 살 수만 있으면 행복할텐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을 빙 둘러서 말하느라 고생 많으셨네요ㅠㅠ
와.. 일본의 철학자라 과연 어떨까. 한중일에게 철학이란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 했는데
마지막 부분 쯤에 여자들이 사각형 웅덩이에 일렬로 앉아있는 사진이 뭐하는 사진인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