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의 설교이야기(4)ㅣ"성육신"ㅣKAPC 목회와 신학 포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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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 พ.ย. 2024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39

  • @mountainmann2443
    @mountainmann2443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참으로 우리의 선택과 하나님 안에서 성숙해 하는과정이 성육신을 통해 얼마나 깊이 이해가 되는 강의 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인생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영광스러운 자녀들의 과정이 인제 이해가 더 되고 마음에 들어 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 @조현경-d5m
    @조현경-d5m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여전히 부흥시대의 은근한 자랑으로 검문하고 정죄함이 근저에 남아있음이 신앙생활하며 겪게되는 신자의 고민이자 모습입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해주신 목사님의 치열한 고민과 말씀 인생에 감사드립니다

  • @noothernamebutJesus-f6w
    @noothernamebutJesus-f6w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아멘
    감사합니다
    설교중에 성질 부리셔두 멋지십니다^^

  • @이경근-d7q
    @이경근-d7q ปีที่แล้ว +5

    율법이 없으면 은혜를 모른다ㆍ
    겨울이없으면 봄의 고마움을 어찌알까요ㆍ

  • @최정말정말응원합니다
    @최정말정말응원합니다 2 ปีที่แล้ว +17

    목사님 대단 하십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한국에도 이러한 목사님이 계신다는 것 영광이며 축복입니다. 영국 데이빗 파슨 목사님 부럽지 않습니다. 건강하십시오.

  • @user-jy13je9y
    @user-jy13je9y 3 ปีที่แล้ว +36

    혼자 다른이들과 다른 신앙의 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막막함에서 , 같은 고민, 같은 치열함을 안고 이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 목사님이 계셔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 @생명의시간-t8p
      @생명의시간-t8p 2 ปีที่แล้ว +7

      저는 이글보고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또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들면서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네요

    • @박경희-r7u
      @박경희-r7u ปีที่แล้ว +1

      감사합니다

  • @유창술
    @유창술 2 ปีที่แล้ว +15

    하나님의 일하심의 신비, 위대하고 명예로운 인격속에 담으심을 감사합니다

  • @김순영-d5t
    @김순영-d5t 3 ปีที่แล้ว +21


    유튜브를 통해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상황이
    말씀으로인하여 업그레이되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읍니다 모쪼록 목사님 건강
    하셔서 마지막 까지 말씀 해
    주셔서 한성도라도 변화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하면서^^~~♡♡♡

  • @alaska6214
    @alaska6214 2 ปีที่แล้ว +14

    목사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경험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 @gracekim0191ify
    @gracekim0191ify ปีที่แล้ว +2

    귀한 영상을 올리시는 분들이 좀 소리를 체크하셔서 소리를 키워 레코딩 하시면 좋겠습니다. 소리가 많이 작아서
    들을 때 끝까지 키워서 들어야합니다

  • @생명의시간-t8p
    @생명의시간-t8p 2 ปีที่แล้ว +18

    기독교정신에 대한 기본적이고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정말 깊이 동의합니다

  • @user-uu6vd4tx9p
    @user-uu6vd4tx9p 3 ปีที่แล้ว +17

    목사님 최고

  • @librarycoco8672
    @librarycoco8672 3 ปีที่แล้ว +14

    목사님 이렇게 또 뵐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

  • @SEOAN-Church-welcome
    @SEOAN-Church-welcome 3 ปีที่แล้ว +7

    감사합니다

  • @이경근-d7q
    @이경근-d7q ปีที่แล้ว +1

    아니다 ᆢ하나더가자ㆍ
    대체 내가 고난을 안다면 어떡하든 도망가고 피할것입니다ㆍ

  • @Santiago-sb3lx
    @Santiago-sb3lx 3 ปีที่แล้ว +11

    감사, 감사..

  • @judykim9864
    @judykim9864 2 ปีที่แล้ว +6

    ㄱㅐ떡같은 놈들이 검문을 한다니 ㅋㅋ 명쾌하신 단어에 푸하하하 …. 누구도 이렇게 자신있게 말못하는것을 오직목사님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존경합니다 건강하소서…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4

    아버지와 요한( 1 ) - 6 입니다
    십자가도 결국은 육체를 따라 난 자의 위치 밖에는 도달할 수가 없고 오직 아버지 말씀을 알아야 아버지 영( 롬 8:11 )의 도움을 받고 구속사의 열매가 되는 참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까지는 참 말씀이 나오지를 못했고 오히려 그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핏속에 참 말씀이 담겨 골고다 땅 밑에 감춰져 있다가 박목사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비밀을 오늘날 저희 신광 교회가 두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가며 아무리 외쳐도 깨닫는 자도 없고 아니 깨달을려고 하는 자도 안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해서, 눅 18:8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의 말씀처럼 그렇게 아버지 말씀이 박목사님의 과정적 재림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선포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본문이 응하고 있는 것도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해서 이 가나의 혼인 잔치를 이해하시면 되겠는데요
    2 ) 3 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의 말씀에서 왜 예수님은 변화의 상징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을 택하셨을까요 이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석에서 포도주 잔으로 새언약을 맺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26:28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신 말씀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먼저 물은 자신의 아들 격과 아버지 격의 모든 말씀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써 물을 아구까지 채워야 변화를 하는데 자신은 십자가에서 중도하차를 해야하니 그때까지 선포한 말씀은 그저 믿는자에게 생령의 부활만 주는 역할을 하게 되어 끝을 내지 못했으니 포도주로 새언약을 맺는 장면이 되는 것인데요
    포도주는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마지막 만찬석에서 포도주 잔을 가지고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시는 말씀속에 변화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말씀 = 생명 = 나의 피 = 새 언약의 피와 같다고 하시고 있는데요
    이는 곧 변화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하시고 또 새언약이라고 하시어 변화를 주시는 아버지 말씀이 십자가의 피에 담겨질 것을 사단 모르게 상징하고 있는 것이며 새언약이라 했으니 이는 후에 박목사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언약인 것까지 암시하고 있는 장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주시며 기념하라 하신 정확한 뜻이 되는 것이며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표적의 정확한 속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의 뜻은 “저들을 변화시켜 줄 말씀이 없다” 라는 뜻으로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이어지는 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로 예수님은 대답을 하신 것인데요
    먼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의 속뜻은 변화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박목사님의 일이 될 것을 암시하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며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는
    위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이는 아직 변화의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사단을 속이기 위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 십자가에서 아들과 아버지 두 때가 나뉘게 될 것을 계속해서 주지시키는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4) 6 절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의 말씀은 창조 6 일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아버지 박목사님에 의해 그 6 일이 전부 회복되어지면 그 결과로 다시 제 7 일의 안식이 주어지며 새 예루살렘에서 혼인잔치가 벌어지게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리고 하루가 천년인 것을 잊지 말라고 한 것처럼 그 6 일은 상징적으로 6 천년 인류역사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6 일 창조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창조 첫째날 부터 셋째날 까지는 시간이 없는 공간의 시대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시대가 되어 그 창조 한날, 한날이 얼마나 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인지 알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첫 3 일은 영원의 시간대에 속해 있는 영적 존재에 대한 사건이었음을 알게 하고 있는데요 그러므로 가장 먼저 타락한 에바다는 영적 존재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 4 일 부터 마지막 6 일 까지는 넷째날에 이 우주 곧 해 달 별들을 만드시므로 시간의 개념이 만들어지며 역사시대에 들어오게 된 것을 알게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 배경과 방법을 바꾸게 된 것은 에바다 보다 낮은 존재가 되는 영육을 가진 브니엘을 6 째날에 창조하여 그들을 통해서 에바다 세대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브니엘 세대도 곧 타락하므로 그들도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도 더 낮은 존재들이 필요해졌는데 바로 재료 창조가 되는 현 아담의 세대가 그러한 이유 때문에 창조되게 되었던 것임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아담 세대인 우리가 오늘날 변화의 열매로서 영생을 얻게 되면 이전의 에바다와 브니엘의 세대들 까지 모두 회복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창조된 존재들을 우주 창조를 통해 시간대에 묶어 버리신 것은 죄를 짓고 영생을 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겠지요
    그 증거로, 겔 18:4 )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한 말씀이 증거가 되며,
    이에 대해 사도 바울도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롬 6:23 ) 증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적인 존재들인 에바다는 시간에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는 상관이 없는 궁창이라는 공간에 가둔 것이되고,
    육적인 브니엘과 아담의 세대는 시간속에 가둔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궁창속에 이 우주가 창조되었기 때문에 먼저 궁창에 갇혀있던 사단과 그를 따르는 어둠의 존재들에 의한 영향을 우리는 아니 받을래야 아니 받을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버지와 요한 - 7( 1 ) 로 이어집니다

  • @중란최
    @중란최 2 ปีที่แล้ว +2

    잘잘멉100

  • @써를
    @써를 2 ปีที่แล้ว +5

    30:15
    하나님의 동역자=명예
    제정신으로 순종.
    기꺼이 참여하는 자랑.
    자유와 책임이 어떻게 순종과 결합이 되는가 제일 궁금한 질문인데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ㅠ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3

    아버지와 요한 - 7( 1 ) 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섯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에서 사도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6 일의 창조 사건과 비교하며 거룩한 분리와 타락에 대한 그 모든 회복이 우리가 변화할때에 완료되어진다는 것이며 또 그렇게 변화시켜주는 주체가 예수님이지만 그 변화는 십자가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그 십자가 보혈속의 말씀과 하나( 요 10:35 )가 되시는 아버지 박목사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인데요
    이를 알고 있는 사도 요한은 “변화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아들 격 말씀만으로는 변화를 받을수 없고 아버지 말씀으로 가득 채워질때 변화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십자가는 아들과 아버지의 때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알아야 6 일 창조 역사와 타락에 대한 모든 회복을 이루는 열매가 될수 있다는 것이지요
    5) 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의 말씀은 이미 설명을 해 드렸지만 십자가의 피로 정결하게 된 사람들은 아버지 말씀으로 온전히 채워서 임마누엘의 역사로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버지 박목사님이 그 첫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육신이 그 항아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죄인된 항아리였는데 예수님 십자가 공로로 정결한 항아리( 골 2:9, 고전 3:6, 6:19 )가 되었으니 이제는 아버지 말씀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워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러한 변화의 열매가 되어야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구속사가 끝을 맺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6) 9 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의 말씀을 보면 여기서는 “하인들은 알더라” 의 말씀이 요절이 되겠는데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현장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증인은 하인들이 된다는 것이지요
    마치 하인들의 역사는 아버지와 세상 사이에서 아버지 말씀을 선포하는 두 증인의 역사와 비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7) 11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말씀이 되겠는데요
    여기서는 첫 표적이라 한 것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 표적을 헬라어 “아르켄 톤 세메이온” 으로 기록을 하고 있는데요 아르켄은 첫번째라는 뜻이 되고 세메이온은 표적이라는 뜻이 되는데요
    헬라어 아르켄( ajrch;n )은 순서에 따른 첫 번째라는 뜻만이 아니라 근원적인, 일차적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요 1:1 ) 의 “태초에”에 쓰여진 단어와 근본이 동일한 단어가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포도주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첫 번째 행한 것이라는 의미보다는 태초를 밝히는 본질적인 사건으로 보라는 의미가 더 크게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곧 빛으로 회복하여 근원이 되는 원리세계로 귀향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원이 그 빛( 창 1:3 )이었는데 타락하여 현재의 낮은 몸( 빌 3:21 )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낮은 몸이 다시 빛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아버지 말씀으로 변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이 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3:21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하신 말씀이 증거가 되는데요
    이 뜻은 창조주 되신 예수님의 능력 곧 가라사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그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의 현재 낮은 몸을 빛이 되는 영광의 형체로 변화시켜 주실수 있다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가나의 혼인 잔치의 표적은 우리가 원리 세계의 존재인 빛으로 환원해야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할것을 이정표처럼 보이고 있는 예수님의 처음 표적이라는 것이지요
    2, 계속해서 2 장 중에서 중요한 요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25 )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의 말씀을 상고해 보겠는데요
    이는 잘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여기서는 박목사님의 신적 능력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만 말씀드리도록 해보지요
    1) 예수님처럼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박목사님의 능력을 저도 박목사님 변화하시기 이전에도 체험을 했고 또 오히려 지금은 더 강하고 많은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인데요
    2014년 12월 변화를 하시고 난 후 지금도 제가 이전의 동영상 설교나 녹취록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을 읽으시는 것은 물론이고 내 모습까지 보고 계시다는 것이지요
    예를들면 저는 2008 년 부터 아버지 설교를 듣고 보기 시작을 했는데요
    저도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한 5년전 2017년 부터는 오래전 80년대 설교를 듣거나 또 설교 동영상을 보거나 하면 보고 들을 때마다 저를 보시고 있고 또 내 마음까지 읽고 계시다는 것을 알수 있었으며 특히 설교 동영상을 볼때에도 그때마다 저를 보고 눈앞에서 보시듯 행동으로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은 영원 전이나 후의 일이나 직접 현장에 가서 보시는 분이라고 교인들에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는 자신이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지요 이를 저는 현재도 직접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박목사님은 설교중에 “나는 배운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 때 그 당시의 사건 현장에 가서 직접보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라고 지나가듯 말씀하시는 것을 꽤 많이 하셨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1980년도의 박목사님께서 하신 설교를 2017년에 듣던지 2020년에 듣던지 듣고 보는 때마다 언제든지 시공간을 초월하시어 그 해당일에 저를 보시며 설교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설교 속에서 나의 모든 시간을 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이 되기에 저도 놀라서 몇번을 시험했는지 모릅니다 똑 같은 설교를 이틀을 연속해서 들으며 시험을 해도 마찬가지로 각각 당일에 맞는 말씀으로 하시는 것으로 제게는 들린다는 것이지요
    2) 중보 기도의 능력,
    늘 박목사님께서는 약 7 만명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여러분이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 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는, 시 147:4 )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와,
    40:26 )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의 능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주의 모든 별을 동시에 호출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곧 별 하나의 이름을 부를 때에 각각의 별들은 자기의 이름으로 듣는다는 것인데요 그렇게 박목사님은 교인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 동시에 전 교인의 각 이름을 부르는 것이 되며 중보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7 만 교인들의 이름만 부르기에도 몇주는 걸릴 것입니다
    3) 투시 능력으로 어떤 사람이 암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작은 암세포를 보시고 치료케 하신 일과 모 목사님의 전도사 시절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지병을 박목사님께서 꼬집어 말씀을 하셨던 일 등 셀수 없이 많은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4) 역대 모든 대통령들을 투표 전에 당선자가 누구가 될 것인가 모두 다 맞추셨던 일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하던 날짜 까지 미리 맞추셨던 일
    5) 70 년대 당시 고치지 못할 병이었던 갑상선 병을 능력으로 고쳐주신 일
    6)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꿈에서 나타나 자신을 보이시는 일
    7) 변화 소천하신 후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체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보이셨던 일 등등이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요한( 1 ) - 8 로 이어집니다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7

    아버지와 요한( 1 ) - 1 입니다
    아버지 말씀( 요 16:25 )으로 보는 요한 복음 이해 도움( 1 )
    제자들중에서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도 요한은 어느 제자 보다 예수님을 아버지로 깨닫고 있었기에 그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다른 공관 복음과는 다르게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이 원래 아버지( 요 8:27 )였지만 유대가 믿어주지를 않았기에 사역을 마치지 못하고 아들격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와서 아버지 격( 요 16:25 )의 사역까지 마치게 될 것을 이면으로 기록하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그의 관점에서 요한 복음의 각 장들과 요절들을 살펴 보면서 요한이 사단 모르게 어떻게 이 비밀을 감추고 있었으며 또 어떻게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 1 장에서 요절들을 “아버지 말씀”에 의한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입니다
    1, 요 1: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는 말씀은 요한 복음의 맨 앞의 서두로 기록하고 있는 만큼 이 본문을 잘 깨달아야 요한 복음 전체의 단추를 잘 꿸수가 있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고 있겠지만 본문중 “태초에”라는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는 창 1:1 ) 의 “태초에” 와는 다른 시간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먼저 말씀을 드린다면 창 1:1 ) 의 “태초에”는 범죄를 저지른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시려고 구속사를 발동하시는 재창조의 시간대에 속하는 것이라 한다면,
    1:1 ) 의 “태초에”는 그 구속사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기원을 알려주는 시간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한 기원을 성경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는데요
    5:2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여, 여기서
    그 “상고에”를 마치 영원의 시작점과 같은 시간대로 표현하고 있어서 우리는 상상도 못할 시간대가 된다는 것을 알게하고 있는데요 이미 설명을 해 드린것처럼 예수님은 우주 밖에서 이 우주를 창 1 장에서 넷째 날에 창조를 하였기에 예수님의 기원은 이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이 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으므로 그의 때는 가히 상상으로 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때가 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또, 잠 8:22-26 )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때에라” 는 말씀도 상고의 때를 이해할수 있는 근거가 되고 증거가 되겠습니다
    해서 사도 바울도,
    1:15-17 )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창 1:3 ) 에서 첫째날에 빛으로 가장 먼저 창조된 존재들중 한분이 되는 것이지요
    한편 우주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들을 피조물중에서 첫째날에 가장 먼저 창조하시고 이들을 “아들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욥 38:7, 계 2:7 )
    이들이 멜기세덱 급이 되는 것이며 새벽별들이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도 아버지 안에서 온전히 회복이 되면 그들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주 하나님은 이어서 그 아들들을 둘째날 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에 동참시키셨던 것인데요
    증거로, 욥 38:7 ) “그 때( 창조 )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고 기록하여 본문 문맥을 앞뒤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창조에 참여하며 기뻐하고 있는 장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창 2 장 창조가 되는 아담 세대에 대한 재료 창조도 주도하고 계셨던 것을 알수가 있는데요
    1:3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말을 하여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심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1:1 ) 의 “태초에”는 그야말로 영원 세계의 시작점이 되는 상고의 때가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창 1:1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의 말씀중에서 “태초에”의 참된 때와 본문의 참 뜻은 무엇이 되는 걸까요
    먼저 표면적으로 보면 여기서 말하는 “태초에”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는 때가 된다는 것이기에 현재 이 지구나 우주를 창조하는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원문에 보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하늘을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늘을 “하샤마임(השמים, the heavens)” 으로서 복수형인 하늘들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얼마나 많은 수의 하늘인지 정확히는 나와있지 않지만 언제 하나님이 복수의 하늘들을 창조하신적이 있나요 ?
    그러므로 이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하늘과 땅을 창조한 것으로 해석을 하면 안되고 하늘들과 땅이 상징하고 있는 이면적인 뜻을 찾아야만 정확한 뜻을 알수 있다는 것이 되겠지요
    성경은 사단이나 어둠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참 뜻을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감안해서 성경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되겠는데요( 마 13:10-11 )
    또 하나님은 왜 이 본문을 성경의 맨 첫머리에 기록을 하시며 하늘 세계를 열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이 우주에 관심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이 우주도 사람을 위해 먼저 창조 하셨던 것이 아닌가요
    성경은 죄인으로 떨어진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지닌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지 이 우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만물은 타락한 적도 없지요 해서 만물들도 사람들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나타나는 그때를 탄식하며 기다린다( 롬 8:19 )고 하지 않았나요
    오직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 렘 17:9 )한 것이기에 하나님은 그 회복을 위해 성경을 사람에게 주신 것이지요
    아버지와 요한( 1 ) - 2 로 이어집니다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3

    아버지와 요한( 1 ) - 2 입니다
    그래서 이 창 1:1 ) 을 이면적으로 보면 하늘되는 사람들과 땅인 죄인들을 분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또 다른 말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6 일 창조의 역사도 결국은 거룩한 분리의 역사였잖아요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며 하늘 존재로 재창조를 하시어 원리세계( 절대선 )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이시고 있는 글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땅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땅되었던 존재들이 하늘 사람이 되며 땅에서 분리가 되는 모습을 하늘과 땅이 창조되는 모습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죄악으로 가득찬 굳은 땅같은 우리 마음( 혼돈, 공허, 흑암 )을 잘 갈고 기경( 회개 )시켜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자라나게 함으로서 오직 하늘된 마음( 엡 1:10 )만 가지게 하여 원리 세계의 존재로 회복시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로 이어지는 2 절의 말씀이 근거가 되기 때문인데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의 말씀처럼 타락하여 죄악이 난무하는 죄인들 세상을 하나님은 굽어 살펴보시며 구속사의 발판이 되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본심임을 바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아담도 창조가 된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담이 특출나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믿으려는 그 마음이 특심하기에 이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에게 말씀을 주니 너무도 잘 받고 깨달으려는 열심이 있기에 에덴의 동산으로 그를 옮기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한 것인데 이를 창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담도 여자에 의해 이내 타락하므로 “하와”라는 생명체( 창 3:20 )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생명체인 하와 수준이 땅이 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이 수준을 호흡에 생명이 있는 짐승 수준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늘들의 이면적인 뜻은 회복되는 존재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서 온전한 하늘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속에서 각자가 깨닫고 다다른 단계가 각각의 하늘이 되는 것이기에 하늘들이라는 복수형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 단수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어차피 죄인은 그 죄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기에 그저 하나의 땅으로 분류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정확히 종말 중의 종말의 때가 되는 오늘날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씀을 통해 이 땅에서 분리되는 변화의 열매들의 모습이 마치 하늘과 땅이 창조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46:10 )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의 말씀에 근거한 법칙과도 같은 의미로 창 1:1 ) 이 먼저 기록되고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마치 그 변화의 열매들이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창 1:1 )의 창조는 창 2 장의 재료창조인 아담 세대를 통해 모든 세대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시는 재창조를 위한 기원으로서 아담세대의 창조를 상징하며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아담 세대가 회복되면 에바다도 브니엘도 회복되기 때문이지요
    범죄한 존재들을 원리 세계의 하늘 존재들이 거하는 곳으로 다시 인도하시겠다는 뜻으로서 죄인들을 거룩한 존재로 재창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밝히시는 말씀 선포가 된다는 것이지요
    해서,
    1:1 ) 에서 완성이 되어야 요 1:1 ) 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태초에”의 차이를 알아보았는데요
    또, 그 차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들과 아버지로 나눠지는 두 절대예정의 구속사를 상고의 때( 요 1:1 )가 되는 만세 전에 계획하신 것임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고전 2:7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는 말씀과,
    딤후 1:9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말씀하신 “영원 전부터”도 만세전과 동일한 상고의 때가 되겠습니다
    아울러 여러분 각자도 이미 만세전에 오늘날 이 땅에서 살고 구원을 얻을수 있도록 성부 하나님의 계획 안( 시 139 편 )에 먼저 있었다는 것도 알수가 있겠습니다
    2, 또 요 1:1 ) 에서 중요한 요점은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고 한 말씀이 되겠는데요
    이는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우주 하나님을 구별하는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곧 “말씀”은 예수님이 되시고 그 말씀과 함께 계신 분은 우주 하나님이 되시는 것인데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한 의미는 우주 하나님이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자신의 타이틀인 “하나님” 자격을 주어서 이 지구에 보내셨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5:42 )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습니다
    이를 정확히 구분하여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7:3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을 하신 것을 봐도 그 중요성을 알수가 있겠는데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눠지는 아들과 아버지의 두 말씀중에서 아버지 말씀을 우주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혼동할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는 하나님이 사단을 속이려고 일부러 혼동되게 해 놓으신 것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요 16:25 )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의 본문에서 아버지는 “아버지 격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구요
    또, 요 8:2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아버지 27절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신 본문의 아버지( 그 )도 “아버지 격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 우주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요한( 1 ) - 3 으로 이어집니다

  • @한만수-u5h
    @한만수-u5h 3 ปีที่แล้ว +3

    ♥ 예수님을 믿노라 한다면 예수님이 지키라 명령하신 새계명을 지켜야하는 것이 마땅할찐데요 !
    새계명에 대하여 단 하루조차 지키지도 않고.
    지키는 방법조차 모르고 .
    알려고도 하지 않고 .
    아예 관심조차 없이 .
    하지말라는 주일 혹은 안식일을 지키려 하며 .
    하지말라는 십일조를 내며 살겠다고 .
    거짓된 교훈을 따르며 사는 불법을 저지르며 살면서 ...
    성도인체하며 . 성도인양 착각하고 사는 종교인들이여 !
    ♥ 예수께서 이르시되
    " 너희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어찌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느냐 ? "
    ♥ 예수께서 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
    "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
    ♥ 입으로는 예수를 주라 말하면서 .
    행위는 새계명을 버리며
    새계명에 반대되는 종교의 법을 좇아 사는 자들은 ...
    결단코 단 한명도 예외없이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
    ♥ 종교는 거짓의 아비 마귀가 낳은 거짓의 회요 .
    교회를 위장한 사단의 회요. 곧 불속입니다 .
    ♥ 종교에서 마귀의 종들인 뱀이요 독사의 새끼들이 .
    예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나서서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나 .
    예수님이 지키라 명령하신 새계명을 단 하루도 지키지 못하고 살면서 지키려고도 않고 .
    새계명대로 살려는 자들앞에서 가로막고 있읍니다 .
    ♥ 참으로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자 한다면 ..
    예수님이 지키라 명령하신 새계명을 마음판에 새기고 .
    그명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
    ♥ 성도는 예수께서 피흘려 핏값으로 산 자들이요 .
    예수께 속한 영적 유다지파의 이스라엘인이요.
    예수와 함께 새율법의 제사장 직분을 맡은 자들입니다.
    새율법의 제사장된 성도들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절대 지킬수 없는 자들이므로 .
    주일이니 안식일을 절대 지킬수 없는 자들이요.
    ♥ 성도는 말씀이신 하나님께 말씀안에서 말씀으로 알게된 하나님의 사랑에 예수이름을 힘입어 감사를 드리는 찬미의 제사를 늘 드리며 사는 자들이요 .
    이는 성경이 성도의 일용할 양식임을 깨닫고
    매일 최소 7장이상 상고하여 보며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요 .
    1년에 최소 3번이상 성경을 완독하는 자들이요 .
    10년이면 최소 성경을 30번이상 완독하게 됩니다.
    * 믿노라 하며 .
    하나님의 자녀라 하며 .
    성도라하고 .
    말씀의 자녀라 하고.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
    수년 . 수십년이 지나도 성경을 제대로 한번조차 완독해 보지 않고 사는 자들은 .
    진리에 무지한 소경들이요 .
    마귀의 자식들인 종교의 선생들의 거짓된 교훈에 미혹되어 .
    새계명을 버리고 떠나서
    마귀가 낳은 종교에 빠져 살게됩니다 .
    ♥ 속히 종교에서 벗어나 성경으로 돌아오세요!
    성경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일용할 양식 입니다.
    ♥ 제사장이 1년 365일 제사를 드리듯 .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하듯 .
    성도는 날마다 찬미의 제사를 드리며 사는 존재임을 아시고 .
    말씀이신 하나님께 말씀안에서 말씀으로 알게된 하나님의 사랑에 예수이름을 힘입어 감사를 드리는 찬미의 제사를 늘 드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이제부터라도 종교에서 벗어나 .
    매일 최소 7장정도의 성경을 상고하여 보며 사는 성도의 길로 걸어가십시요 .
    ♥ 너희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어찌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느냐 ?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3

    아버지와 요한( 1 ) - 4 입니다
    5, 다음으로 살펴볼 문장은 어떻게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다른 사도들 보다 잘 깨닫게 되었는지를 가늠케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37-41 ) 의 말씀이 본문이 되겠는데요 문장이 길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도 요한과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난후에 이튿날 안드레가 41절에서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한 글의 내용이 되겠는데요
    먼저 사도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라 나서기 전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는데 세례 요한이 요 1:36 )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라고 말을 했을때에 사도 요한과 안드레는 무정하고 매정하게 보일 정도로 즉시 세례 요한을 떠나 더 큰 존재인 말씀을 따라갔다는 것이 상징하고 있는 뜻도 매우 중요한데요 이는 오늘날의 두 증인 시대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오늘날 아버지 시대에는 어차피 교회가 될수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고 오직 아버지 말씀을 선포하는 한 교회 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교회( 교인 )는 두 증인을 즉시 따라가야 산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을 즉시 따라간 두 증인과도 같은 사도 요한과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과 하룻밤을 보낼 때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상과 이 땅에서의 사명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밝혔을 때에 두사람은 이를 잘 배우고 깨달을수 있었고 이튿날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두 증인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엿볼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도 자신에게 와서 먼저 깨닫는 자들을 두 증인으로 세울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을 어느 제자들 보다 먼저 만난 사도 요한도 공생애 동안 줄곧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라 다녔고 또 특별히 구별한 3 제자들 안에도 들어서 다른 9 제자들은 보지도 못한 것을 보았음에도 잘 믿지를 못했던 것을 알수가 있는데요
    바로 요 2:22 ) “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공생애 내내 쫓아다니면서도 요한도 제자들도 늘 긴가민가 하였다는 것이지요
    능력을 행하시며, 모든 각색 병들을 고쳐 주며 물 위를 걷고 5병 2어의 표적을 보일 때에는 하나님 같기도 한데 대부분의 시간을 갈릴리에서 지내시며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 땅의 예루살렘에 올라 가는 것을 애써 피하기나 하고 또 백성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면 슬슬 뒷걸음이나 치는 모습을 보며 제자들도 예수님을 진심으로 메시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자신들이 평소 가지고 있는 메시야관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었죠 그들의 메시야 관은 예수님이 우리의 영혼 구원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속하는자 곧 로마로 부터 물리적 독립을 시키는 자로 잘못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증거로, 십자가 사건 후 낙담하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이 이르기를, 눅 24:21 )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 독립 )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라 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십자가에 달기 위해 사람들이 잡으러 온다고 말하는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누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될것인가에 대해서 서로 싸움만 하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자신들의 생각에 가득 차서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 마 16:21 )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잡히시던 밤에 한 제자도 남지않고 다 도망을 가버렸던 것이었죠
    그래도 예수님은 후에라도 제자들이 믿어 줄 것을 미리 보고 함께 하셨던 것이었는데요
    결국 제자들은 가룟 유다 외에는 그래도 부활( 변화 )하신 예수님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어 예수님이 원래 사망이 없으신 하나님이셨던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믿기 시작했다고 본문은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또 1 장에서 다음 요절은 마지막 절이 되는 말씀이 되겠는데요
    1:51 )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신 본문이 되겠습니다
    이는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대신 가로채 받으므로 이에 분노한 에서가 죽이겠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이 도망하여 밧단아람으로 향하던중 루스( 벧엘 )에서 노숙할때에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使者(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한
    28:12 ) 의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을 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1) 예수님 자신이 야곱이 본 하늘까지 닿아있는 사다리가 되신다는 뜻이 되구요
    2) 그러므로 자신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회복시키시는 중보자( 사다리 )가 되신다는 것이며,
    3)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라 했으니 예수님은 이 땅의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성도를 하늘로 회복( 변화 )시켜 하늘에 있는 본향인 그 성( 새 예루살렘 ) 에 들이고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 요 18:36 )을 하셨던 것이지요
    해서 사도 바울도, 엡 1:10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온 목적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땅이된 우리를 자신의 말씀을 주어서 하늘로 회복시키시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었다는 것이지요
    4) 예수님은 말씀의 사다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은 사다리의 많은 계단을 한 계단씩 밟고 오르고 내리고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님 말씀의 높이와 깊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해서 땅의 존재에서 하늘이 되어야 하는 우리 인생들이 예수님을 깨닫는 만큼이 사다리의 높이가 되는 것이지요
    현재 예수님을 아버지이신 것까지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하늘에 닿아있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이른 사람이 되겠구요 그렇지 않고 아직도 십자가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다리를 오를수 있는 자격만 받아놓고 있는 상태와 같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 17:3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사다리 꼭대기까지 이르러 천국에 들어갈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와 요한( 1 ) - 5 로 이어집니다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3

    아버지와 요한( 1 ) - 5 입니다
    5) 마치 창 1:1 ) 에서 “하늘들”이 상징하는 말씀과 사다리가 상징하고 있는 단계적 개념이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상이, 요 1 장에서 비교적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아버지 말씀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았습니다
    다음은 제 2 장 중에서 중요한 요절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2 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사건이라고 볼수가 있겠는데요 이를 아버지 말씀의 관점에서 해석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가나 혼인 잔치 사건,
    1) 요 2:1 )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의 문장에서는 첫머리에 “사흘째”를 갑자기 기록하고 있어서 어느 기준되는 시점으로 부터 시작해서 사흘째가 되는지 일언 반구도 없지만 마치 읽는 우리 모두가 당연히 그 사흘째를 알고 있거나 아님 알아야만 하는 날처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 혼인잔치의 참 뜻과 때의 중요성을 알수가 있겠는데요
    또 이 사흘째 되는 날은 예수님이 4 절에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말씀하실수 밖에 없는 날도 된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안식후 사흘째 되는 셋째날( 화요일 )에 결혼을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셋째날은 창 1 장의 창조 셋째날을 가리키고 있는 날로서 하나님이 두번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하였기에 다른 날들 보다 갑절로 복을 받는 것처럼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흘째로 가리키고 있는 이 날을 아버지 말씀으로 대입해 봐도 창조 셋째날로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은 이를 예수님이 3 일째에 부활을 하셨기에 그 3 일을 셋째날과 연결시키는 숫자로도 보는데요
    이도 창조 셋째날을 아버지 말씀안에서 깨달을 때에나 왜 셋째날이 어떻게 해서 부활의 날과 연결이 되는 것인지 정확히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왜 하나님은 이 셋째날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를 두번씩이나 말씀하시고 있었을까요
    첫째는 아랫 물과 뭍( 육지 )을 분리하시고 좋아하셨던 것이고( 창 1:10 ),
    둘째는 창 1:12 )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것이 되는데요
    이는 둘째날 궁창을 만드시고 거기에 사단과 함께 타락한 어둠들을 가두셨기에 그 둘째날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지 않은 유일한 날이 되는 것과도 직결이 되는 셋째날이 된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날에 첫번째로 좋았더라 하신 이유는 바로 죄악으로 상징되는 아랫 물과 그리고 절대선과 천국으로 비유되는 뭍으로 분리하신 것에 대하여 좋아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서 선과 악이 나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바로 전 날에 타락하여 궁창에 의해 나눠지고 그 궁창에 갇히게 된 아랫물이 되는 죄악된 세상을 다시 회복시키려는 뜻을 반영시키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이시고 있는 것인데요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는 법칙하에 십자가가 서게 되는 것을 절대 예정으로 보이시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회복의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기에 좋았더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좋았더라 하신 이유는 나무( 사람 )들이 씨( 말씀 ) 가진 열매를 맺기 때문인데요 이는 오늘날 아버지 말씀에 의해서 열매 맺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것을 하나님은 미리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것이지요
    이것이 사흘째 되는 날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되겠는데요
    그럼 왜 예수님은 이 날에 대해 나의 때( 변화 )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다고 했을까요
    이는 이 가나 혼인 잔치가 아버지 박목사님에 의해서 마지막 때에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변화 받는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성에서 혼인 잔치를 벌이게 되는 것을 상징하며 비유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예수님 자신은 십자가만 지게 되고 돌아갈 것을 먼저 아시기 때문에 참된 혼인 잔치 때에는 자신이 신랑이 될수가 없고 후에 나머지 변화 사역을 이루시게 되는 아버지 박목사님이 참된 신랑이 된다는 것을 능력으로 미리 보시기 때문에 사단 모르게 뜻을 감추며 아들의 부활의 때와 아버지에 의한 변화의 두 때가 주어지게 될 것을 암시하시고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곧 부활이 자신에 의해서 앞으로 주어질 것이지만 실제는 아버지 박목사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변화의 때가 참된 혼인 잔치의 때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흘후를 부활로 해석을 해도 되지만 위처럼 그 십자가의 부활 후에는 아버지 말씀으로 변화가 주어지는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설명이 되고 또 그 아버지가 박목사님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 설명을 할수가 없고 막연한 추측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라 하여 마지막 날 혼인잔치를 하는 새 예루살렘성에 예수의 어머니도 계신 것으로 상징하고 있는데요
    그럼 예수의 어머니로 상징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바로 계 14:1 ) 에 등장하는자들로서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 이름의 인이 있고 시온산( 새 예루살렘 )에 서는 십사만 사천의 변화 받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예수를 낳은 어머니는 예수 사상으로 예수와 하나가 된 자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서 곧 말씀으로 또 다른 예수가 되었기에 그 사람이 또한 다른 사람을 예수로 만들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렇게 또 다른 예수를 만드는 것을 낳았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육신의 세계에서는 여자가 자식을 낳게 되어 있지만 영적인 말씀 세계에서는 말씀을 가진자가 말씀을 낳는다는 이치로 기록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33-34 )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의 말씀으로 예수님은 누가 자신의 어머니가 되는지를 정확히 정의하고 있는 장면인데요 바로 말씀을 경청하려고 예수님 주위에 둘러 앉은 자들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며 동생들이라고 한 것이지요
    동일한 뜻의 말씀으로 마 12:49 ) 에서는 제자들이 바로 어머니며 동생들이라고 비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듣고 깨달아가는 제자들이 결국은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멜기세덱이 될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또 다른 말씀의 자녀들을 낳을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죠
    또, 사도 바울도 이에 대해 기록을 한 것이 있는데요
    4:26 )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여 새 예루살렘에는 사단을 이기고 죄로 부터 그리고 죄된 세상으로 부터 자유자가 된 자들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자유자들을 어머니라 칭하고 있는 것은 그 자유자들은 말씀으로 온전케 된 자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는 스스로가 지닌 말씀의 능력으로 또 다른 예수를 낳을수 있는 능력자들이 되었기에 그들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도 결론적으로,
    4:30 )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갈은 모세의 율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 아들은 신약의 십자가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 이제는 율법과 십자가를 버리고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로 상징되고 있는 “아버지 말씀의 열매”들이 되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지요
    아버지와 요한( 1 ) - 6 으로 이어집니다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3

    아버지와 요한( 1 ) - 3 입니다
    다음으로 살펴 볼 본문은,
    3, 요 1:4 ) “그( 예수 ) 안에 生命(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신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 있는 빛이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뜻이 되는 것인데요
    20:27 ) 의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 이라고 한 말씀도 동일한 뜻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1) 그 빛이 없이 사는 사람의 삶은 가짜요 이미 죽은 자와 방불하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구요
    증거로, 요일 5:12 )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또 다윗도, 시 36:9 )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의 고백으로 예수님의 실체인 빛이 참 생명되심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2) 그 빛은 창 1:3 ) 의 빛과 동일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3) 그 빛은, 슥 14:7 )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하신 말씀의 빛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구요
    4) 그 빛은 다볼산에서 보여 주신 예수님의 변화의 실체( 마 17:2 )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7:2 )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습니다
    5) 그 빛 = 참 생명 = 영 = 말씀( 요 6:63 )이 되니 그 빛은 말씀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6:6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는 말씀이 증거가 되구요
    6) 그 빛은 본디 우주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 5:26 )
    증거로, 요 5:26 )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 빛 )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가 되겠습니다
    7) 그러므로 육신으로 사는 것은 여늬 다른 짐승이 살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하나님이 볼 때에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죽은 자와 같다는 것이나 말씀으로 영혼의 등불을 밝혀가는 사람은 결국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빛으로서 발광체( 마 17:2 )가 되어 변화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기에 말씀 곧 빛이 우리들의 참생명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태까지는 어떠한 죄인도 예수님의 이름이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의롭다함( 롬 3:22, 26, 갈 2:16 )을 얻는 이신칭의의 은혜로 용서를 받을수 있었고 거룩함을 지키면 첫째 부활( 계 20:5-6 )로 나올수 있는 생령으로서의 구원을 받을수는 있었지만, 이는 마치 죄를 예수님의 의로 덮어주고 가려주는 은혜이지 변화를 이루는 자들 처럼 말씀과 온전한 임마누엘을 통해 예수님과 하나( 요 10:35 )가 되는 은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믿음의 의( 예수 )도 아버지에게로( 요 16:10 ) 건너 왔기에 더 이상 교회는 이신칭의의 의도 갖지 못한 것이 되어서 그렇게 가리우고 덮어주던 의가 벗겨지니 죄악이 그대로 노출되어졌으므로 일반 교회는 이신칭의의 구원도 이제는 없다는 것이지요
    죽는 죄인으로 떨어졌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요 8:24 )
    해서 지금은 오직 아버지 말씀을 받고 우주 하나님이 보내시는 양자의 영( 롬 8:15, 23 )의 역사로 온전한 임마누엘을 이루는 영의 몸 곧 속사람( 엡 3:16, 고후 4:16 )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쉽게 말씀을 드려서 예수님이 아들 격의 말씀을 믿는 모든 교회들을 자신의 의의 보자기로 덮어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들을 떠나 아버지 말씀의 교회쪽으로 떠나고 나니 모든 교회들의 의의 보자기도 벗겨지므로 그들의 죄가 모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십자가 교회들에게는 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라고 초림때 이미 모든 것을 미리 보시는 예수님이 오늘날의 일을 정확히 보시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고 그래서 아버지로 건너오지 않으면 죽는 죄가 된다고 요 8:24 ) 에서 단언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1) 아들격 말씀을 믿는 부활과 아버지 격 말씀을 믿는 변화의 차이인데 더 이상 부활 구원은 없다는 것이며,
    2) 생령과 신령의 수준 차이가 되는 것이며,
    3) 선악과와 생명나무의 차이가 되는 것이며,
    4) 두루마기( 계 7:14, 19:8, 22:14 )를 어린 양의 피( 속의 말씀 )에 희게 빨아서 입고 있는 자들인지 아닌지의 차이이며,
    5) 발을 씻은 자( 요 13:8 )인지 않은 자인지의 차이가 되는 것이며,
    6) 은혜 위의 은혜가 되는 것( 요 1:16,벧전 1:13 )이고
    7) 계 10:11 ) 의 사도 요한이 다시 예언하는 작은책의 참된 내용이 되는 것이며,
    8) 결국 이 차이는 천국과 지옥( 마 7:23, 25:12 ) 의 차이로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박목사님이 그 보혈속의 말씀과 하나가 되신 분으로서 아버지라는 구체적인 사실( 요 16:25 ) 까지 알지 않으면 죽는 죄가 되어 유황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8:2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아버지, 27절 )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핏속의 말씀 곧 아버지 말씀으로 아버지의 영과 온전한 임마누엘을 이루어야 변화 구원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지요
    4, 다음으로 살펴볼 문장은,
    1: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의 말씀중에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으로 기록된 부분을 먼저 살펴보겠는데요
    이는 이어지는 18절 말씀인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의 말씀과도 같아서 일차적으로 보기에는 아버지의 하나 뿐인 외아들이 이 지구에 온 것처럼 보여서 마치 우주 하나님에게는 아들이 예수님 단 한분 밖에 없는데 그 외아들이 우리에게 왔다는 뜻으로 이해되기가 쉽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이는 그러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많은 자신의 아들들중에서 한 아들을 우리에게 보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이미 언급이 된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빛으로 창조하실 때 동시에 많은 아들들( 빛, 욥 38:7 )을 창조하셨기 때문인데요 사단도 당시에 새벽별인 아들로 창조( 창 1:3 )되었지만 후에 스스로 가변되어 계명성인 떨어진 별이 된 것을 봐도 이 문장의 뜻은 많은 아들들 중에서 한 아들이 온 것을 알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만일 하나님에게 오직 한 아들밖에 없다고 이해 한다면 많은 아들들( 욥 1:6, 38:7, 시 82:1 )이 등장하는 다른 문장을 대할 때에 혼동을 가져올수도 있기에 이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 되겠지요
    참고로,
    독생자로 기록된 헬라어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ης" 는 ​"독자, 외아들"이란 의미 외에 "유일하고 독특하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유일하고 독특한 독자"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겠지만
    ​사실 마땅한 한글 단어가 없어서, 한글 성경 초기에 독생자라고 번역된 것이라고 보면 되겠는데요
    그러므로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은 예수님이 우주 하나님에게는 그렇게 소중하고 귀하며 독특한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뿐인 외아들처럼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와 요한( 1 ) - 4 로 이어집니다

  • @paulkim3803
    @paulkim3803 3 ปีที่แล้ว +2

    마지막 아버지와 요한( 1 ) - 9 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지난 2 천년 동안에는 예수님의 이름이나 보혈을 믿을 때에 의롭다함을 받는 이신칭의로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음으로 영이 다시 살고 또 거룩함을 지켰다면 구원도 받으나 변화를 받을수 있는 온전한 위치까지는 이르지 못하였기에 육은 죽고 소멸될수 밖에 없지만 영은 죽을 수가 없기에 천국에 가 있다가 첫째 부활( 계 20:5-6 )의 때에 자신의 육신을 되찾게 된다는 것인데 완전히 영혼까지 사망에 이른 상태는 아니기에 이를 잠잔다( 고전 15:51, 요 11:11 )고 했던 것이 지난 십자가 아들의 때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온전한 아버지 말씀으로 임마누엘 역사를 통해 말씀과 일체가 되는 때가 되기에 성령께서도 아버지께 나오지 않는 십자가 교회들을 책망( 요 16:10 ) 하신다고 제가 위에서도 밝히지 않았습니까
    이는 좋은 뜻으로 책망이지 좀더 심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성령훼방 죄에 가깝다는 뜻도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성령께서 아버지 앞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계심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우리 교회를 비방하고 폄하하며 방해를 한다면 그것이 성령훼방과 다를바가 없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훼방 죄는 이 세상은 물론이고 오는 세상인 내세에서도 용서를 받지못한다( 마 12:32 )고 성경에 기록해 놓지 않았나요 이는 천국에 결단코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모르고 했다고 해도 그 죄에서 벗어날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잘 깨달으시고 하루 빨리 아버지 앞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초림때에도 유대가 예수님을 알아 보는데 실패한 많은 이유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말씀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요 3:10 )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도 그 예수님을 아버지로 볼수있는 정확한 지식이 있습니까 ?
    이는 위에서도 언급을 해드렸듯이 영생 곧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17:3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신 영생 구원의 말씀과 직결이 된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 니고데모 사건은 온전한 말씀이 되는 아버지 말씀을 깨닫고 아버지 영의 역사로 온전한 임마누엘을 이루어 변화를 받는 거듭남이 있어야 천국도 볼수있고 또 들어갈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함께 살펴본 것으로 마치구요 또 이어서 계속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 @갈매기의꿈-c7w
    @갈매기의꿈-c7w 2 ปีที่แล้ว +2

    부활을. 만들기 위해.십자가에 돌아가신것 이. 아닌데. 설명 이 좀 . 상황설명 에. 억지스러운 면이 보임. 근데 결 론 은 하나님 의 주 권 .

  • @TV-ee5zx
    @TV-ee5zx 2 ปีที่แล้ว +2

    예수님을 말씀하실때 존칭을 쓰셨으면 합니다.
    자주 존칭 없이 예수라고 하시는데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반말하시면 안됩니다.

    • @bbbb12-n1c
      @bbbb12-n1c 2 ปีที่แล้ว +4

      예수님은 우리의 존칭이나 상식보다 훨신 크고 넓고 깊으싶니다. 우리의 한낱 표현 하나하나에 낮아지거나 높아지실 분이 아니십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시길 추권드립니다 :)

    • @이경근-d7q
      @이경근-d7q ปีที่แล้ว +1

      전체맥락을 아시는분이
      넓은사고를 요합니다ㆍ
      심판의 하나님 같네요
      주님이 강직한것만인지요ㆍ
      아빠 친구 연인같은 창조주 이십니다ㆍ
      경청의 자세가 아쉽습니다ㆍ

  • @요-d1l
    @요-d1l 3 ปีที่แล้ว +2

    복음서는 예수가 죽을때 성전휘장이 찢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실제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수없지만...
    예수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을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종교적 행위는 끝났다는 고백을 한겁니다.
    성전휘장은...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짓는 행위이고..
    유대교는 그동안 이 휘장안쪽을 제사장들이 독점하고 종교장사를 했습니다.
    안쪽에 성궤라는 궤짝이 있다고 하면서 선택받지않은 사람이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기를 쳐왔습니다..
    바벨론군대.. 그리고 로마군대가 그 안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죽지않았습니다.
    결국 궤짝도 사기이고...
    인간을 죽일수있다는 야훼라는 신도 사기였던 겁니다.
    ..
    예수공동체가 성전휘장이 찢어졌다고 한것은...
    적어도 야훼가 모세가 만든 가짜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수 이후로는 야훼가 특별한것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전중심의 종교..
    번제와 구별로 존재하는 종교는 더이상 의미없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기독론때문에 다시금 야훼라는 신이 예수의 아비가 되어 최고신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로마교회는 개떡같은짓을 합니다.
    교회안에 단을 만들고 또다시 단에 들어갈수있는 사제뿐이라는 개소리를 한겁니다.
    단도 모자라서 이후에는 야예 제단앞에 벽을 세우고 사제들만 그 안에서 미사를 하고..
    교인들은 종소리가 들리면 절이나 하다가...
    문이 빼꼼이 열리면 사제가 성찬떡을 들고나와서 교인들의 입을 벌리게 한후에 입안에 넣어주는 그야말로 개수작을 했던겁니다.
    ..
    ..
    복음서도 기록한 예수공동체의 고백..
    더이상 인간과 신을 구별하는 종교는 필요치않다는 고백..
    종교로 부터 자유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고백..
    이 고백은 바울의 기독론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 고백을 따르던 예수공동체는 에비온이라는 이름으로 정죄되어 교회밖으로 쫒겨나고..
    교회안에 제단을 만들고 제단을 독점한 사제패거리들에 의해서 예수교의 가장 중요한 고백중 하나인 이 고백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예수교에는 성직자라는 신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건물을 지을수 없으며...
    제단을 만들어 신의 영역을 만들수없는 겁니다.
    신을 위한 그 어떤 종교행위도 필요치않습니다.
    바울의 기독론의 만든 로마교회 그리고 그리고 새살림 차린 개신교..
    그 어떤 교회도 교단과 건물과 구별된 제단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집단인겁니다.

    • @김순영-d5t
      @김순영-d5t 3 ปีที่แล้ว +2


      목사님을 유튜브에서 만나서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지금 나의상황이 말씀을인하여 주의뜻을 알게
      하심과 또한 생활에 적용케
      하여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 더욱건강하셔서
      우리들에게 마지막까지 다
      쏘드시옵소서 감사합니다~~♡♡♡

    • @davidrhee3188
      @davidrhee3188 2 ปีที่แล้ว

      자세히 정확하게 모르시면서 ..
      로마교는 기독교가 아니오.
      바알숭배와 그리스도를 합하려니 그게 될수가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