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 언뜻언뜻 보였던 기독교와의 교집합으로 인해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던 철학자인데, 오늘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눈이 번뜩 떠질만큼 새롭다'라기 보다는, '이렇게 생각해도 되나?' 고민했던 것들이 정리되고 신학과 철학 모두에게 지지받는 느낌 때문에 매혹됐달까요. 기독교인이라는 착각,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 투명하게 섰을 때만 깨달을 수 있는 죄, 그만큼의 절망, 아담으로부터가 아닌 아담처럼, 온 인류가 속이고 싶은 단 하나의 밤과 성찬의 의미, 죽은 척 매달리다 세속의 필요가 채워지면 필요 없어지는 기도, 윤동주의 시(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 들으면서는 이승우의 도 떠올랐어요), 카프카의 망치같은 기독교의 공격... 두 분 영상 녹취로 풀었더니 A4 11장이 나오네요. ㅋㅋ 책도 바로 주문했습니다~ 번역 계획 또한 순탄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내용 잘 들었습니다 이런 토론은 참 신선하고 좋네요. 저는 성경의 양면성에 대해 조금 의견을 올려봅니다 철학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모두가 '본질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 생각에서 나오는 모든 행위는 무의미 하며,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해야 하는 입장일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서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즉, 율법을 가진 유대인의 행위, 거듭난 사람의 행위, 이방인으로서의 행위들이 각기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실존주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각자는 하나님 편을 향해서는 본질주의적인 존재이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칠수 있는 실존주의적 존재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브람'의 때와 '아브라함'의 때가 구분되어야 하듯이 양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칙 앞에 자꾸 윤리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아마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과일을 먹은 결과 때문일 겁니다) 추가로 저는 과거 구원파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영상 내용 중에 덴마크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없다고 했는데, 외람된 말이지만 구원에 대해서도 실제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런 입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기에 복음이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파'라는 명칭도 70년대 이전 한국 기독교는 '구원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해서 '구원받아야 한다'라는 말을 비꼬아 '구원파'라고 했습니다 그런 구원관 때문에 이단으로 취급(물론 기득권자들에게는 바울도 이단의 괴수므로) 받았는데 그래도 그때는 그나마 지금보단 상황이 나았을 겁니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교제인데 요즘은 기독교인들이 거듭난 경험없이 예배당에 다니면 구원받은 거라고 하니 복음이 더 혼잡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두리뭉실하게 기독교인이 되어버렸기에 좁은문이 아닌 담을 넘어온 자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는 예배당에 다닌다거나, 예배를 드린다거나 ,성경을 전한다거나 하는 그런 행위(실존주의적)를 하든지 안하든지 상관없이 우선은 믿음을 먼저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쉐퍼의 책들을 좀 읽었는데, 비교해주시면 정말 재미있을것같습니다. 양심얘기도 흥미롭고요. 제발 다시 한번 모셔주십시오. 저도 한가지 궁금한점은, 하나님 앞에 혼자선다는것과 사람때가 묻지않은곳에 간다는 얘기가 공가이 되었는데, 인간의 실존이 사실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측면도 있는데 그것을 배제하고 원자적으로만 바라본건 아닌지 생각이듭니다. 하나님을 독대한다는게 정확히 어떤뜻인지 궁금합니다. 책은 벌써 주문했습니다 ㅎ
1) 키르케고르의 투명성의 개념: 먼저 키르케고르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인데, 이때만 인간의 전 존재가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가 있습니다. 바로 그곳이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가장 재미 없는 설명이고, 키르케고르는 전체 약 80개가 넘는 강화를 섰는데, 그 중에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강화가 13편이 넘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합니다. 이런 코람데오의 사상에서 근본적으로 "단독자" 개념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2) 윤리적 책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오직 이 때만 윤리적 책임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나쁜 짓 하기 쉽지 않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윤리, 문화, 법과 같은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간단히 이정도만 설명드리겠습니다. 3) 이웃사랑: 키르케고르는 독특하게 코람데오 사상을 이웃사랑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랑의 역사]를 참고하십시오. 그는 사랑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 사랑은 오직 "지금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함으로써만" 입증된다는 것이죠. 이는 눈에 보이는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wonk19 이것은 간단하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키르케고르에게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철학의 부스러기에서는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하여 진리를 논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말하는 진리 역시 시간 안에 들어온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kenosis(자기비하)"를 언급한 겁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이성은 이 진리를 알 수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자가 태어남을 이해할 수 없듯, 거듭나지 않는 자가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머리로 개조되어야 하는게 그게 기독교적의 의미에서는 거듭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떡갈나무를 화분에 심으면 깨지듯이, 깨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그릇에 진리를 심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말해, 거듭나지 않는 자에게 진리는 파악하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진리가 이해불가능한 부분은 있으나, 그렇다면 거듭난 자들은 어떨까요? 그 사람들도 진리가 이해불가능한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거듭난 자에게 진리가 언제나 역설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거듭난 자에게 이해가 된 진리를 거듭나지 않는 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강화를 읽어보고싶네요. 이번에 나온 4종세트 다 사려고하다가 일단 지기시험을 위하여만 주문했는데요, 이 책들에 강화가 많이 담겨있나요? 투명성, 주괸적 진실, 본받음 등 키르케고르의 핵심 개념들을 완전히 파악해보고싶네요. 가족들과 매주 교회 예배를 드리고있지만 솔직히 설교도 이제 아무 감흥이 없고요. 최소한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제 실천(본받음)이 모자라서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유월절을 성찬의 위로의 적혀있는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유월절을 기념하고 그 저녁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 간절히 원하셨던 사랑을 깨닫는 방식인가요? 하나님의 교회 교리도 성찬의 위로 내용도 자세히 알 지 못해서 나타나는 의문 같이 보입니다. 제가 라이브를 풀로 보았다면 질문드렸을 텐데요. 이제 와서야 댓글로 질문들립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 자체가 유해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장하는 이론 때문에 온전한 유월절 기념 행위가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해야될까요?
제가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과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성찬의 위로] 1장을 참고하면 됩니다. 유월절을 기념하는 행위는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지 현재적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행위는 이것이 과거의 사건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분을 기념하는 것은 죽는 자를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인이 된 자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살아 계신 분'을 기념하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분을 기념하는 행위에서는 그분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는 행위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karisacademy 답변 감사합니다.제 친구가 하나님의 교회 신자인데 유월절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만찬과 연관 짓더라구요.. 저도 전적으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과 성찬이 유월절에 행해졌다고해서 성찬을 기념하는 것을 유월절과 연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확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다마스커스tv를 통해 르네 지라르를 처음 소개 받았을 때와 비견할만한 충격이었습니다.. 심지어 키르케고르는 원래 알던(혹은 안다고 생각하던) 인물이었는데 말이죠!! 귀한 대화 나눠주신 두 분 모두께 감사드립니다ㅠㅠ
정말 감동입니다. 이 긴 영상을 끝까지 다 보게 되었습니다. 두분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정말 좋네요...
키르케고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되어서 좋습니다...
말씀들 중에서 울림이 많네요....
내 자신을 돌아보는...
이걸 지금에야 보고 있네요 ...흥미진진하게 보는 중입니다!!
14:46 재밋게 잘 듣고있습니다.
49:51
1:31:00
1:52:00
1:54:34
2:02:00
2:03:50
2:06:54
너무 좋은 시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창우 교수님같은 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겠어요
평소 키르케고르를 좋아해서 즐겨 들었습니다. 더 공부하고 싶어지는 강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처음으로 댓글 답니다.. 정말 흥미롭게 봤어요..좋은 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좋아하던 키르케고르입니다. , 이창우 목사님은 참으로 키르케고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신 분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출판된 책을 더 읽어보고 싶군요, 오늘 우연히 방송을 시청 중 이해를 더 많이 넓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ㅣ.
키르케고르... 언뜻언뜻 보였던 기독교와의 교집합으로 인해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던 철학자인데, 오늘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눈이 번뜩 떠질만큼 새롭다'라기 보다는, '이렇게 생각해도 되나?' 고민했던 것들이 정리되고 신학과 철학 모두에게 지지받는 느낌 때문에 매혹됐달까요.
기독교인이라는 착각,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 투명하게 섰을 때만 깨달을 수 있는 죄, 그만큼의 절망, 아담으로부터가 아닌 아담처럼, 온 인류가 속이고 싶은 단 하나의 밤과 성찬의 의미, 죽은 척 매달리다 세속의 필요가 채워지면 필요 없어지는 기도, 윤동주의 시(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 들으면서는 이승우의 도 떠올랐어요), 카프카의 망치같은 기독교의 공격... 두 분 영상 녹취로 풀었더니 A4 11장이 나오네요. ㅋㅋ 책도 바로 주문했습니다~ 번역 계획 또한 순탄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하 형님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시간이 없는데도 두 배속으로 보고 있네요ㅜ 입시공부가 끝나면 키르케고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창우 목사님을 통해, 나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완강했습니다. 너무 도움이 되었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너무감사한 대화입니다
1:16:00 죽은척하는 주머니쥐
1:28:00 입문서추천
1:40:00 불안을 극복한 예수. 아담, 아브라함이 예표인지
1:54:10 주관적 진리(객관적, 절대적 진리를 내것으로 만든 진리)
1:59 :00 빅터프랭클
2:05:00
2:17:00 테러리스트와 다른 아브라함의 고통. 시험의 깊이
2:24:00
이제 봤는데 이런 귀한 내용이 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귀한 대화네요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신자를 위해 정성껏 한상 차릴 수 있는가 맙소사..
저두 그 부분에 팍 꼿혔네요...
우와 쉐퍼 루이스 케고르 비교 컨텐츠 넘나 기대합니다. 교슈님 꼭 부탁드립니다~! 책 구매도 했습니다.
성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되네요
화면으로나마 반가운 얼굴봅니다~^^
이창우목사님! 침신대 도서관에서 매주 금요일 나눴던 이야기들이 생각납니다.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시네요
진흙속의 진주를 꺼내주신 다마스커스tv에도 감사드립니다.
땡큐^^
이제서야 다 들었어요. 저에게는 이창우 목사님을 따라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보내요 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정주행 3번째..
이창우 목사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설교네요. 반성과 울림이 큽니다.
1:18:00 믿음이란 하나님을 얻기위해 나의 모든 인간적인 이해를 포기한다.
이부분 조금 보충설명해주실 수 있나요..책에 나오나요 ㅋㅋ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 = 인간적인 이해를 포기한다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한근희-n5f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 아들 바치라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했던 걸 예시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여~
3부 기독교의 공격 56:43
내용 잘 들었습니다
이런 토론은 참 신선하고 좋네요. 저는 성경의 양면성에 대해 조금 의견을 올려봅니다
철학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 모두가 '본질주의'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 생각에서 나오는 모든 행위는 무의미 하며,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구해야 하는 입장일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서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즉, 율법을 가진 유대인의 행위, 거듭난 사람의 행위, 이방인으로서의 행위들이 각기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실존주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각자는 하나님 편을 향해서는 본질주의적인 존재이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이에게 영향을 끼칠수 있는 실존주의적 존재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브람'의 때와 '아브라함'의 때가 구분되어야 하듯이 양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칙 앞에 자꾸 윤리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아마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과일을 먹은 결과 때문일 겁니다)
추가로 저는 과거 구원파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영상 내용 중에 덴마크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없다고 했는데,
외람된 말이지만 구원에 대해서도 실제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런 입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기에 복음이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실 '구원파'라는 명칭도 70년대 이전 한국 기독교는 '구원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해서 '구원받아야 한다'라는 말을 비꼬아 '구원파'라고 했습니다
그런 구원관 때문에 이단으로 취급(물론 기득권자들에게는 바울도 이단의 괴수므로) 받았는데 그래도 그때는 그나마 지금보단 상황이 나았을 겁니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교제인데 요즘은 기독교인들이 거듭난 경험없이 예배당에 다니면 구원받은 거라고 하니 복음이 더 혼잡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두리뭉실하게 기독교인이 되어버렸기에 좁은문이 아닌 담을 넘어온 자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는 예배당에 다닌다거나, 예배를 드린다거나 ,성경을 전한다거나 하는 그런 행위(실존주의적)를 하든지 안하든지 상관없이
우선은 믿음을 먼저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시작 3:09
아 헤어스타일 질문 저도 궁금했어욬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저도 정주행 3번짼데... 형님 혹시 시간나실 때 편집 조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름대로 정리해서 이해하고 싶은데 요번 내용은 책을 읽기 전까지는 머리 속에 넣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ㅎㅎ 시간대별로 큼지막하게라도 나눠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편집이라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시간대를 나눠서 밑에 하얀 글씨 뜨도록 하는 것(?)을 여쭌 것입니다..!!
시간되는대로 해놓을게요
감사합니다 !!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쉐퍼의 책들을 좀 읽었는데, 비교해주시면 정말 재미있을것같습니다. 양심얘기도 흥미롭고요. 제발 다시 한번 모셔주십시오. 저도 한가지 궁금한점은, 하나님 앞에 혼자선다는것과 사람때가 묻지않은곳에 간다는 얘기가 공가이 되었는데, 인간의 실존이 사실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측면도 있는데 그것을 배제하고 원자적으로만 바라본건 아닌지 생각이듭니다. 하나님을 독대한다는게 정확히 어떤뜻인지 궁금합니다. 책은 벌써 주문했습니다 ㅎ
또 오늘 말씀만 들으면 윤리나 계명은 이미 진리이다라고 깔고 들어가는 것같은데, 그것들이 진리인지는 어떻게 아는지, 아니면 알수나 있는건지. 거기서 이성의 역할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1) 키르케고르의 투명성의 개념: 먼저 키르케고르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인데, 이때만 인간의 전 존재가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일종의 '완충지대'가 있습니다. 바로 그곳이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가 있는 공간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가장 재미 없는 설명이고, 키르케고르는 전체 약 80개가 넘는 강화를 섰는데, 그 중에서 들의 백합과 공중의 새에 관한 강화가 13편이 넘습니다. 그 정도로 중요합니다. 이런 코람데오의 사상에서 근본적으로 "단독자" 개념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2) 윤리적 책임: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오직 이 때만 윤리적 책임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나쁜 짓 하기 쉽지 않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키르케고르에게 윤리, 문화, 법과 같은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간단히 이정도만 설명드리겠습니다.
3) 이웃사랑: 키르케고르는 독특하게 코람데오 사상을 이웃사랑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랑의 역사]를 참고하십시오. 그는 사랑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 사랑은 오직 "지금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함으로써만" 입증된다는 것이죠. 이는 눈에 보이는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wonk19 이것은 간단하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키르케고르에게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철학의 부스러기에서는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하여 진리를 논하고 있지만, 거기에서 말하는 진리 역시 시간 안에 들어온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kenosis(자기비하)"를 언급한 겁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이성은 이 진리를 알 수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자가 태어남을 이해할 수 없듯, 거듭나지 않는 자가 "거듭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머리로 개조되어야 하는게 그게 기독교적의 의미에서는 거듭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떡갈나무를 화분에 심으면 깨지듯이, 깨지기 쉬운 인간이라는 그릇에 진리를 심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말해, 거듭나지 않는 자에게 진리는 파악하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진리가 이해불가능한 부분은 있으나, 그렇다면 거듭난 자들은 어떨까요? 그 사람들도 진리가 이해불가능한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거듭난 자에게 진리가 언제나 역설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거듭난 자에게 이해가 된 진리를 거듭나지 않는 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강화를 읽어보고싶네요. 이번에 나온 4종세트 다 사려고하다가 일단 지기시험을 위하여만 주문했는데요, 이 책들에 강화가 많이 담겨있나요? 투명성, 주괸적 진실, 본받음 등 키르케고르의 핵심 개념들을 완전히 파악해보고싶네요. 가족들과 매주 교회 예배를 드리고있지만 솔직히 설교도 이제 아무 감흥이 없고요. 최소한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제 실천(본받음)이 모자라서일지 모르겠습니다.
난 cs루이스는 잘 모르겠지만 케고르는 아는데 근데 상대적으로 케고르는 개인주의자고 루이스는 전체주의자라면서 루이스좋아하는 사람 중에 케고르 싫어하는 사람들 봤고 반대로 케고르좋아한다며 루이스 별로란 사람도 봄. 쉐퍼도 케고르 안좋아했던듯. 물론난 둘 다 괜찮은듯
헤어스타일 저도 궁금했는데 ㅎㅎ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유월절을 성찬의 위로의 적혀있는 방식으로 해석한다면 유월절을 기념하고 그 저녁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 간절히 원하셨던 사랑을 깨닫는 방식인가요? 하나님의 교회 교리도 성찬의 위로 내용도 자세히 알 지 못해서 나타나는 의문 같이 보입니다. 제가 라이브를 풀로 보았다면 질문드렸을 텐데요. 이제 와서야 댓글로 질문들립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 자체가 유해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장하는 이론 때문에 온전한 유월절 기념 행위가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해야될까요?
제가 질문의 요지를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과 성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성찬의 위로] 1장을 참고하면 됩니다. 유월절을 기념하는 행위는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지 현재적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행위는 이것이 과거의 사건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분을 기념하는 것은 죽는 자를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인이 된 자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살아 계신 분'을 기념하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분을 기념하는 행위에서는 그분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는 행위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karisacademy 답변 감사합니다.제 친구가 하나님의 교회 신자인데 유월절을 지켜야하는 이유를 만찬과 연관 짓더라구요.. 저도 전적으로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과 성찬이 유월절에 행해졌다고해서 성찬을 기념하는 것을 유월절과 연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믿고 싶었는데 확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마스커스 뒤에 tv는 왜 붙힌건가요?
Jw사이트에 하느님의 이름의 사용을 지지하는 고대 사본동영상에 보면 신약에도 여호와를 써야하는 증거라는 동영상이 있는데, 이것들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Jw면 여증 아닌지? 괜히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겠죠 ㅋㅋㅋ
로마서5장12절 이와같이 를 케고르식으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아담의 대표성을 무시해 버리면 시편에 오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했다는 말씀이 설 곳이 없어집니다. 대표성도 있고 그렇지만 우리도 그처럼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봐야할거 같습니다
쓸대없는소리 모든것 조건 이유 무적근 복종 해야
국문학과로서 말씀드림. 키에르케고르라고 하셈. 표준어규정 따르는 사람도 사실 잘 없고 특히 외래어표기법은 계륵인 측면이 큼.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키에르케고르가 제일 나음
가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