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hw 고등학교 때 진도 앞바다 견학 간적 있는데 쇠사슬 흔적 있는데요? 쇠사슬 아니면 70키로 속도로 진격 하는 왜선 어떻게 막아요? 이순신함대는 역조류 서있는건데 배가 진을 이탈 합니다 배가 가만히 있어도 떠내려 가요, 노꾼들이 배 안떠내려 가도록 엄청 힘들어듯 싶네요?
@w hw 그림이 딱 그려지는데요. 명량해전 앞선두가 쇠사슬 걸려서 못가고 뒤에 오는배가 충돌 연쇄충돌 백척이 지들끼리 충돌해서 배가 난파되고 밀물 끝나고 바로 썰물이 아니라 한시간 정도 물조류가 조용 하데요 파도가 잔잔하고 그때 전투 시작 침몰 시킨게 30몆척 배가 부셔진게 백척 이라고 하는거 보면 지들끼리 충돌해서 배가 망실 된것 같은데요?
@@관심법-g2c 명량의 승리가 너무 믿을 수 없는 결과이기 때문에 쇠사슬 썰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기록이란게 임진왜란 끝난후 60년 지나서 김억추 장군의 후손이 기록이라면서 들고 나와서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는데다가 ---김억추 장군은 명량전투에서 젤뒤에 있다가 끝까지 전투 참여도 안해서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대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물의 압력과 그걸 견뎌낼 철의 무게 그걸 버틸 양쪽에서 잡아줄 바위나 구조물읠 계산해본결과 그 시대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나와서 이제는 쇠사슬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결론이 난 듯합니다
@@hiroono1영국 해군사관학교 미국해군사관학교 전세계 해군사관학교 공통 교육필수과목에서 가르치는 세계4대해전 교육---- 한산대해전 살라미스해전 트라팔가해전 칼레해전이다 그중 제일로 치는것이 한산대해전이다 한산대해전 ---한산대첩 일본제독 도조가 존경했던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일본해사 학교내에 이순신장군 사당이 있으며 일본해사생도들은 모두 경배와 제사를 지내고 있다
@@qlfrpdlxm 쇠사슬 아니면 13척으로 어떻게 막아요 명량 가보세요 역조류 서있는것 조차 힘듬 조선 수군은 배 안 떠내려 갈라고 엄청 힘들게 버티고 있을듯 왜선들은 70키로 속도로 밀고 오는데 쇠사슬 걸려서 100척이 앞에 배충돌 충돌 또충돌 밀물이 끝나고 전투시작 썰물때 본격적 전투시작 명량승리죠
@@관심법-g2c 궁금한게 있는데 그렇다면 133척을 상대할수 있는, 최소한 선두에 서는 배들을 걸어 저지할 수 있을만큼 쇠사슬이 굵고 튼튼하고 많아야 하는데 그만한 쇠사슬을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보급했을까요? 둘째로 배를 걸어 저지 할 수 있을만큼 굵고 튼튼하고 긴 쇠사슬을 전선도 쉽게 돌파하기 힘든 조류가 센 울돌목에 설치를 했어야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설치했으며 그때당시 인력과 기술로 가능한가요? 명량 해전 당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기록이 있을까요?
처음에 한양으로 압송 시켰을때 선조의 그 의심은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음 근데 이후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후에 고작 12척의 배로 수백척의 왜군 상대로 승리를 하였는데 마지못해 인정하는 꼴를 보고 있잖니 그저 선조의 질투심과 속이 얼마나 작인지 알 수가 있고 그 덕분에 선조의 능력이 모든걸 저평가 당한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네요... 선조는 앞으로 능력이 좋았다고 쉴드를 쳐선 절대로 안되는 인물인건 틀림없네요.... 아량과 마음넓게 배푸는 것도 능력이거늘...
이순신 장군님의 도량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갖추기 어려운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이길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담대하고 뛰어난 지략과 불굴의 충성심으로 나라를 구하셨으니 이런 인물은 하늘이 내린 것으로써 당시 한민족의 열악한 국력을 가늠하신 하늘에서 국난이 닥칠 것을 아시고 내리신 것이라 한민족을 도와주신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이고 우리 모두 이순신 장군님을 본받아 나라에 충성하고 국민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뭉쳐 나갑시다~
왜군 함선 숫자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했다는 생각만 했지 칠전량 휴유증에 대한 것은 전혀 생각를 못했네요... 그둘이 합쳐 졌으니 그 공포감이야 말로 짐작이나 할 수 있을련지... 이걸 휘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네요 그로모로 이순신 이라는 장군은 정말 한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경외감이 들고 존경 스럽습니다.
부하장수들도 여차하면 튈 생각. 대장선에서 깃발로 신호줫지만 아무도 안도왓고 대장선 혼자 반나절을 싸웟죠. 그제서야 안위 및 2척이 다가왓고 나중에 다른 배들도 합류. 갓 이순신 아니엇으면 전대 승리할수 없엇던 전투. 개인적으로 명량이 최고의 전투라 생각함. 이순신이 아니엇다면 이룰수 없는 승리.
@@hiroono1 신기하다. 당신은 마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나팔수처럼 말을하고 있다. 명과 조선을 깍아내릴뿐 일본군에 대한 언급은 단지 우세하다는듯이 시작해서 모든 비난은 역시나 도요토미군에게 전가시키는 패턴은 익히 알고 있다. 관백이 죽지 않았다면 이겼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인가? 국가간 7년의 총력전 단순화시키는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이 비겁하게 공격했다고 말하면 위안이 되는가? 일본군이 조선을 기습침략한 국가적 비열함은 대체 어디에서 발현한 것인가?. 일본제국이 미국을 기습공격하고 결국 패망했을때도 비슷한 논리였던거 같다. 자국에 대한 무리한 미화는 그네들의 전통인가? 조선 기습침략 초반에 기세등등 할때를 제외하고 조선팔도 백성의 항쟁과 수군의 활약으로 보급선이 끊긴 일본군이 죽도록 고전한 사실은 알고 싶지 않은거 같다. 백성이 길안내를 해줬다는건 사실이다. 사야가 등의 일본군도 승세와 상관없이 예의 나라에 백성이 되고자 투항한거도 사실아닌가 선교사도 일본에서도 조선침략은 명분없는 전쟁이며 학살로 규정하고 있는걸로 알고있다. 그 죄를 도요토미 한사람의 욕망으로 전가하여 상세히 교육도 하지않고 쉬쉬하니 이렇게까지 시각차가 생길 수 밖에 없는거 같다. 그리고 이순신이 거북선을 탔다는 말은 살면서 처음 들어본다. 거북선 함장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날조를 위한 날조는 자제하기 바란다. 또한, 전선돌격 후 포격을 가하기 위한 거북선인데 조선은 화살공격 위주이므로 허구라는 말은 답답할 따름이다. 몇줄의 인용문에 알량한 사심을 채워넣어 합리화할 시간에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양상을 객관적으로 공부해보는게 어떤가?
이 동영상을 보고서 지금까지 명량해전에 대해서 가졌던 의문점등이 해소가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울둘목의 좁은 해역에서 이순신 장군의 원맨쇼에 따른 전승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기본적인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의 전술을 고려하면 불리하지만 충분히 좁은 해협에서 일본군과의 승부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장군이 전투를 수행해서 승리한 결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리더십의 측면에 있어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승산이 있어도 리더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데, 이순신 장군은 확고한 리더십과 신뢰를 통해서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공포에 질린 조선수군의 전투력을 본인이 선봉에 나서서 왜 적선을 격파함으로써 다시 조선수군을 호랑이로 만들어서 수적인 불리를 질적인 우위로 극복해서 명량의 대첩을 이뤘습니다. 400년전 500년전의 일이라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이라고 무시하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도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의지이고 이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이야 말로 가장 큰 무형의 자산입니다. 살다보면 명량해전처럼 극한의 상황에 몰릴 경우도 있는데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강인함을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도 극한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hiroono1 날조라치자. 역사 날조는 얼마든지 많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일본놈은 백제 후손. 2000년도 안되었는데 신석기 유물이 박물관에 있다고 만년 역사라 날조한다. 한국은 오천년. 이게 말이 되냐? 백제는 기원후 500년 부터인데? 전라도 사람 심리가 날조 좋아한다. 일본도 전라도 놈이다. 천왕도 백제인이라 한국 가고 싶다했다. 지들 멋대로 천황이냐?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 나 특전사 중사 출신이라 내 말이 거짓인지 확인해라. 내 답글에 토달지 말고 꺼져라.
제발 생각좀 해라 여기서 빵 터졌네요ㅋㅋㅋㅋㅋㅋ 제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는이유는 왕과 조정의 압박에도 본인의 뜻을 쉽게 접지않고 또한 군율을 엄하게 다스리는 쉽게말해 상남자 스타일 그부분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군율을어기고 탈영하거나 법을어기는 군사는 참수형을 했을정도로 엄하게 다뤘던 장수였습니다
@@myloveyonga 저기 전문가 중 한분이 계속 원균 옹호하는 것 같아 더더욱 안좋아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깍고 원균을 옹호하고..... 다시 정치권에서 원균의 후손이 뜨니 예전 역사저널 그날처럼 원균 옹호론이 또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죽기살기로. 진인사대천명. 명량전투를 승리로 이끈후 난중일기에 하늘이 도왓다..라고 할 정도로 이순신장군 또한 이기기 매우 힘들거라 봣엇죠. 13 vs 300 엿으니까요. 그래서 부하장수들은 멀리 떨어져잇엇고, 대장산 깃발 올라갓슴에도 오지 않앗기에 이순신 혼자 반나절을 싸웟을 정도엿으니까요. 여차하면 퇼 각만 재고 잇엇다고 봐도 무방.
08:50에서 전에 본 글 중에 23전 23승이 아니라고 하는 게 저건가 봄. 130전 130승이었나?라고 ㄷㄷㄷ... 이건 또 뭔 소리야 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모든 정찰 부대 격퇴 같은 것을 포함한 부딪힘?에서 이겼단 얘기였던 것 같음. 정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위인 두 분 중 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 느낌.
일기에 보면 새벽까지 자지 않고 보냈던 척후를 기다렸다. 서너팀을 운용한 듯한데 언제나 그들의 발걸음을 방안에서 헤아리고 있었다. 일개 병사나 지휘관들은 근무시간을 빼면 쉴 수나 있었지만 공은 챙길게 많아서 , 생각할게 많아서 함부로 쉴 수가 없었다. 항상 전체 흐름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약자의 입장이어서 한시도 맘 편하게 술 한잔에 노래 한자락 파티는 언감생심. 철저한 노력형 지도자였다.
와... 하루종일 노를 저어??? ㄷㄷㄷ 노꾼들도 이순신장군만큼이나 대단하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지금 보니까 진짜 지리는 말이지 저때는 얼마나 처절 했겠냐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만 있다면. 이것도 지금보니 지리는 말이지. 얼마나 고심했겠냐고.... 여튼 진짜 대단하다고밖엔 말 못함. 그어떤 미사어구도 표현하기 힘듬.
전쟁사에서 해군제독을 논할 때 이순신을 넬슨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순신을 넬슨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독임.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 공군 지휘관 중에서 이순신만한 지휘관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음. 전쟁사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서 전세계 인류사에 이순신만한 인물을 본 적이 없음. 군인으로써 갖춰야 할 모든 역량과 성인에 가까운 성품까지... 그냥 넘사벽임.
난 임용한 박사님이 좋은게. 남들은 도통 이해는 안가지만 그랬다에서 끝나는데 우리가 정작 궁금한 걸 그 당시 상황과 합리적인 추측으로 이해가 가게 만들어 준다는 거. 학익진 써서 일당백으로 써서 대승했다. 이걸 누가 모르냐고. 일본 장수들이 죄다 바보 천치겠냐고. 그들 생각에 이래저래해서 될거 같으니까 그런 전술 쓴건데 그런걸 이야기 아하 하게 설명을 해준다는거. 이게 중요한 거죠.
명량해전 전날 꿈에 신인이 나타나 전략을 알려주었다, 한산해전 때 꾸었던 길몽을 또 꾸었다, 이런 내용은 사실 정유년 당시에 썼던 일기에는 나오지 않고 조금 더 나중에 원래 썼던 일기에 충무공께서 직접 더 내용을 추가해서 쓴, 이른바 속정유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입니다. 이때 어쩌면 전쟁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썼던 난중일기들 정리하여 정식으로 책으로 낼 생각도 하셨기 때문에 다소 문학적인 내용도 추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협수로를 등지고 싸울 수 없어 우수영으로 옮겼다. 즉. 벽파진에서는 역조류를 맞서서 싸워야하고, 자칫 협수로에 들어서 조운이 힘 들어지고, 암초 등으로 인한 전투불능을 걱정하여.. 좀 더 넓은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겨.. 일자진으로 적선의 서해 진출을 차단한 뒤.. 상선이 최선두에서 전투 모범을 보였다고 봅니다.
이순신의 신인이 나타난꿈은 한두번이 아니다. 예지몽은 이순신 장군의 특기이다. "아들면이 죽음에 아들생각에 슬픔을 못 이겨 다시 눈을 감았더니 몽롱한 가운데 면이 또 꿈에 나타났다. "" 아버지가 자식의 원수를 갚는 일에 저승과 이승이 무슨 차이가 았습니까 원수를 진에 놓고는 엊찌 제 말을 예사로 듣고 죽이지 않습니까? 하며 슬피울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공은 또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주위 부하들에게 알아보았더니, 과연 새로 잡혀온 왜군 한명이 배에 갇혀 있었다. 그자를 불러 자세히 캐물으니 바로 아들 면을 죽인 그 자였다. 그래서 공은 그를 죽여 아들의 원수를 갚았다 [행록] "
[바로잡습니다]
28:29 자막에 표기된 '학인진' 을'학익진'으로 바로잡습니다.
@@hiroono1 소설쓰는건그렇다쳐도 쫌 개연성이라도있던가ㅋㅋ
일본인들도 안믿겠다 이 븽신아
밥은먹고다니냐?
그런 귀여운실수도 웃을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잡아라! 잡아!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영웅호걸 임진왜란 최고의 구국공신 세계적인 명장 불멸의 영웅호걸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조선과백성을구한진짜장군이시다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선견지명일본수군일본함대를박살내고격파괘멸시킨장군이바로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을알고임진왜란을논하라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정이품자현대부 현국방부장관해군참모총장겸직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공훈공적경력을보라 조선과백성을구한진짜장군이시다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임진왜란 이십년전부터전쟁준비대를해왔고진지구축을해왔고공직재직시
판옥선거북선을직접설계건조해서함포를장착해서세계최강전함수백척을만들어서전국해군기지에배치운영토록하고조선해군수만명특수해병대수천명교육훈련양성세계최강해군을전국해군기지에배치운영토록하고전쟁군수물자를확보해왔고계속추진해
선조대왕재조명하라
선조대왕의전쟁대비명령도있어
선조대왕은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을
조선수병마절도사칠회역임
경상우수사경상좌수사전라우수사전라좌수사
충청수사경기수사겸직역임 과
육군의모든관직을두루거친
전쟁의신 성웅
위인 전술전략가
병법의달인
청백리공직자
지휘관의신뢰도세계최고의명장해군제독 덕장지장용장
조선과백성을구한진짜장군이시다바로알고
임진왜란 정유재란 을알고임진왜란을논하라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정이품자현대부 현국방부장관해군참모총장겸직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공훈공적경력을보라 조선과백성을구한진짜장군이시다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참고해주세요 널리알려주시기를두손모아빕니다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조선과백성을구한진짜장군이시다 경장겸선전관 정걸장군
제발 생각좀해라.
정말 와닿는 말씀입니다.
12척이 있습니다라는 글이 이전에 생각했던것과는 참 다르게 느껴지는 영상이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명량해전의 우리 수군 병사들과 이순신 장군님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날조라뇨 일본인인것같은데 세계4대해전에 해당하는 한신대첩이 거북선과 이순신장군의 큰승리인것을 전세계가 인정한 역사적사실인데 뭐 날조라구여 ㅎㅎ 왜곡된역사를 열공하니 이런 일이 생기네여
감사합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 그대에 있어
나라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순신 장군님의 전략은 인생을 사는 교훈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순신장군은 배 한척도 손실없이 일방적으로 때린 혼자 전쟁하셨죠. 영웅이 아님.. 신이심.
이순신 장군이랑 같이 배탔던 송희립 장군은 무슨 생각들었을까, 옆에서 오랜시간 보면서. 일반 병사랑 다르게 지휘관급은 명령 듣는것 뿐만 아니라 독자적 판단도 내릴때가 있으니까 엄청 복잡한 심경이었을거같다.
이순신장군님의 이야기도 알면 알수록 놀랍지만
오늘 방송에서 한신의 배수진이 어떤 전략이었는지 제대로 배운거 같습니다.
쇠사슬 때문에 조선수군 승ㄹㄱ
@w hw 고등학교 때 진도 앞바다 견학 간적 있는데 쇠사슬 흔적 있는데요? 쇠사슬 아니면 70키로 속도로 진격 하는 왜선 어떻게 막아요? 이순신함대는 역조류 서있는건데 배가 진을 이탈 합니다 배가 가만히 있어도 떠내려 가요, 노꾼들이 배 안떠내려 가도록 엄청 힘들어듯 싶네요?
@w hw 그림이 딱 그려지는데요. 명량해전 앞선두가 쇠사슬 걸려서 못가고 뒤에 오는배가 충돌 연쇄충돌 백척이 지들끼리 충돌해서 배가 난파되고 밀물 끝나고 바로 썰물이 아니라 한시간 정도 물조류가 조용 하데요 파도가 잔잔하고 그때 전투 시작 침몰 시킨게 30몆척 배가 부셔진게 백척 이라고 하는거 보면 지들끼리 충돌해서 배가 망실 된것 같은데요?
@@관심법-g2c 명량의 승리가 너무 믿을 수 없는 결과이기 때문에 쇠사슬 썰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기록이란게 임진왜란 끝난후 60년 지나서 김억추 장군의 후손이 기록이라면서 들고 나와서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는데다가 ---김억추 장군은 명량전투에서 젤뒤에 있다가 끝까지 전투 참여도 안해서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대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물의 압력과 그걸 견뎌낼 철의 무게 그걸 버틸 양쪽에서 잡아줄 바위나 구조물읠 계산해본결과 그 시대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나와서 이제는 쇠사슬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결론이 난 듯합니다
너무 잘봤어요 정말 성웅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좋아요 만번 억만번 하고 싶어요
이순신장군이 위대한건 명량의 대승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승리할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했다는거죠.
걍 목숨 내놓고 전투 하신거죠.
이순신 장군께서 말씀하신
필생즉사 필사즉생.
명량 이기고나서 난중일기에 하늘이 도왓다고 써놧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명량해전을 앞둔 시기의 난중일기를 보면 충무공 역시 사람이었기에 어수선하고 걱정스럽고 울적한 심정을 여러 차례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순신이라는 거인이 정말 위대한 것은 그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스스로 담대히 뛰어넘었다는 점에 있겠지요.
혼자서 웅크려 앉아있는 모습이 많이 나오죠.그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낸 성웅 장군님..
울돌목 직접 봤는데 조류가 바뀌는 시간 바다를 쳐다만 보고 있어도 머리가 어지럽더라고요. 양쪽 가장자리에선 뜰채로 숭어를 엄청 잡고 계시고.. 십 몇년이 지났지만 오늘 영상 보고 잠시 옛 추억을 그려 봅니다. 정말 존경하는 이순신 제독님 항상 감사드 드립니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군의 바닥까지 떨어진 전투 의지를 끌어 올리는 것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
@@hiroono1영국 해군사관학교 미국해군사관학교 전세계 해군사관학교 공통 교육필수과목에서 가르치는 세계4대해전 교육----
한산대해전 살라미스해전 트라팔가해전 칼레해전이다
그중 제일로 치는것이 한산대해전이다
한산대해전 ---한산대첩
일본제독 도조가 존경했던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일본해사 학교내에 이순신장군 사당이 있으며 일본해사생도들은 모두 경배와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하늘이 도왔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표현도 이해가 감.
아무리 훌륭히 계산에 넣고 싸워도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겼지?
진 일본군도 귀신에 흘린듯 했을듯....
이순신은 신이다.
세상의 기적은 없습니다 바다속에 쇠사슬 걸어놔서 왜선 들이 쇠사슬에 걸려서 왜선 배들이 지들 끼리 부딪히고 역조류 서있는것 조차 힘듬 배가 떠내려갑니다
@@관심법-g2c 쇠사슬 설은 학계에선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예전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나 유인촌 나오던 역사스페셜에서 쇠사슬설을 많이 전파했는데 정작 학계에선 불가능한 전술이라고 말하더군요.
@@qlfrpdlxm 쇠사슬 아니면 13척으로 어떻게 막아요 명량 가보세요 역조류 서있는것 조차 힘듬 조선 수군은 배 안 떠내려 갈라고 엄청 힘들게 버티고 있을듯 왜선들은 70키로 속도로 밀고 오는데 쇠사슬 걸려서 100척이 앞에 배충돌 충돌 또충돌 밀물이 끝나고 전투시작 썰물때 본격적 전투시작 명량승리죠
@@관심법-g2c 궁금한게 있는데 그렇다면 133척을 상대할수 있는, 최소한 선두에 서는 배들을 걸어 저지할 수 있을만큼 쇠사슬이 굵고 튼튼하고 많아야 하는데 그만한 쇠사슬을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보급했을까요?
둘째로 배를 걸어 저지 할 수 있을만큼 굵고 튼튼하고 긴 쇠사슬을 전선도 쉽게 돌파하기 힘든 조류가 센 울돌목에 설치를 했어야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설치했으며 그때당시 인력과 기술로 가능한가요?
명량 해전 당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기록이 있을까요?
@@관심법-g2c 상식적으로 물자와 자원이 부족한 마당에 명량 사이를 잇는 장대한 쇠사슬을 어디서 어떻게 주조해서 구합니까? ㅋㅋ 말이 안 되죠
처음에 한양으로 압송 시켰을때 선조의 그 의심은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음
근데 이후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후에 고작 12척의 배로 수백척의 왜군 상대로 승리를 하였는데
마지못해 인정하는 꼴를 보고 있잖니
그저 선조의 질투심과 속이 얼마나 작인지 알 수가 있고
그 덕분에 선조의 능력이 모든걸 저평가 당한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네요...
선조는 앞으로 능력이 좋았다고 쉴드를 쳐선 절대로 안되는 인물인건 틀림없네요....
아량과 마음넓게 배푸는 것도 능력이거늘...
선조는 사람들 인식과 다르게 머리가 똑똑하고 정치력도 있지만 이기적이고 인간 자체가 안좋은 놈임.
배수진을 친다 라는 전술의 원래 목적은 상대방을 오판하게 만들어서 상대의 뒤통수를 친다 라는 개념이네요
진짜 찐재미 와
감동 받았어요
이순신 장군님의 도량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갖추기 어려운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이길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담대하고 뛰어난 지략과 불굴의 충성심으로 나라를 구하셨으니
이런 인물은 하늘이 내린 것으로써
당시 한민족의 열악한 국력을 가늠하신 하늘에서
국난이 닥칠 것을 아시고 내리신 것이라 한민족을 도와주신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이고
우리 모두 이순신 장군님을 본받아 나라에 충성하고 국민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뭉쳐 나갑시다~
저는. 표현을. 할줄을
모릅니다
표현을. 적절히. 잘 해
주시내요
잘 봤습니다
왜군 함선 숫자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했다는 생각만 했지
칠전량 휴유증에 대한 것은 전혀 생각를 못했네요...
그둘이 합쳐 졌으니 그 공포감이야 말로 짐작이나 할 수 있을련지...
이걸 휘하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네요
그로모로 이순신 이라는 장군은 정말 한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경외감이 들고 존경 스럽습니다.
부하장수들도 여차하면 튈 생각.
대장선에서 깃발로 신호줫지만
아무도 안도왓고
대장선 혼자 반나절을 싸웟죠.
그제서야 안위 및 2척이 다가왓고
나중에 다른 배들도 합류.
갓 이순신 아니엇으면
전대 승리할수 없엇던 전투.
개인적으로 명량이 최고의 전투라 생각함.
이순신이 아니엇다면 이룰수 없는 승리.
@@hiroono1 신기하다. 당신은 마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나팔수처럼 말을하고 있다. 명과 조선을 깍아내릴뿐 일본군에 대한 언급은 단지 우세하다는듯이 시작해서 모든 비난은 역시나 도요토미군에게 전가시키는 패턴은 익히 알고 있다.
관백이 죽지 않았다면 이겼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인가?
국가간 7년의 총력전 단순화시키는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이 비겁하게 공격했다고 말하면 위안이 되는가? 일본군이 조선을 기습침략한 국가적 비열함은 대체 어디에서 발현한 것인가?. 일본제국이 미국을 기습공격하고 결국 패망했을때도 비슷한 논리였던거 같다. 자국에 대한 무리한 미화는 그네들의 전통인가?
조선 기습침략 초반에 기세등등 할때를 제외하고 조선팔도 백성의 항쟁과 수군의 활약으로 보급선이 끊긴 일본군이 죽도록 고전한 사실은 알고 싶지 않은거 같다.
백성이 길안내를 해줬다는건 사실이다. 사야가 등의 일본군도 승세와 상관없이 예의 나라에 백성이 되고자 투항한거도 사실아닌가
선교사도 일본에서도 조선침략은 명분없는 전쟁이며 학살로 규정하고 있는걸로 알고있다. 그 죄를 도요토미 한사람의 욕망으로 전가하여 상세히 교육도 하지않고 쉬쉬하니 이렇게까지 시각차가 생길 수 밖에 없는거 같다.
그리고 이순신이 거북선을 탔다는 말은 살면서 처음 들어본다. 거북선 함장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날조를 위한 날조는 자제하기 바란다.
또한, 전선돌격 후 포격을 가하기 위한 거북선인데 조선은 화살공격 위주이므로 허구라는 말은 답답할 따름이다.
몇줄의 인용문에 알량한 사심을 채워넣어 합리화할 시간에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양상을 객관적으로 공부해보는게 어떤가?
이순신 장군의 가장 대단한 점은 간신들의 모함과 왕의 질투가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강한 외적의 침략을 막고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상황에서 아마 다들 포기했을 겁니다
이 동영상을 보고서 지금까지 명량해전에 대해서 가졌던 의문점등이 해소가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울둘목의 좁은 해역에서 이순신 장군의 원맨쇼에 따른 전승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기본적인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의 전술을 고려하면 불리하지만 충분히 좁은 해협에서 일본군과의 승부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장군이 전투를 수행해서 승리한 결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리더십의 측면에 있어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승산이 있어도 리더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데, 이순신 장군은 확고한 리더십과 신뢰를 통해서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공포에 질린 조선수군의 전투력을 본인이 선봉에 나서서 왜 적선을 격파함으로써 다시 조선수군을 호랑이로 만들어서 수적인 불리를 질적인 우위로 극복해서 명량의 대첩을 이뤘습니다. 400년전 500년전의 일이라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이라고 무시하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도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의지이고 이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이야 말로 가장 큰 무형의 자산입니다. 살다보면 명량해전처럼 극한의 상황에 몰릴 경우도 있는데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강인함을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도 극한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응, 아니고, 지도자가 누구던지 상관없이, 궁민들이 열심히 하면 나라는 발전하는거고.
동감합니다
보는 시점과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고해서 가볍게 무시하는 일은 좋지 않습니다..
오전 동안 이순신 장군 배 한척이 원맨쇼 했지.
충무공께서 명량대첩 전까지 전남지역을 돌며 전투준비를 하시던 이야기가 더 자세히 해주셨으면 더 좋았겠지만..명량은 언제나 감동스럽습니다..잘봤습니다.
횡현필쌤 영상보신 분이군
@@yhansookim7850 황현필은 좋은 강의도 있지만, 안좋은 강의도 많다. 특히, 편협한 정치 사상을 가진 것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미국이 6.25전쟁을 일으켰다 등등
@@wigwamlwje208 이라크전을 보면 미국의 개짓을 의심할만하지요.
1차대전후 엄청난 공급때문에 대공황까지 이르럿고,
2차대전 일본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미국창고엔 군수장비가 가득햇슴.
@@yhansookim7850 아니 하고싶은 말이 먼데? 미국이 남침 주도했다는거야? 미국이 주적이야?
1:09 난중일기 1:44 칠천량 이후 2:43 육군합류를 거부. 3:23 명장면 3:38 이순신의 존재 자체 5:40 13척 06:09 당시 일본군의 행동 08:08 소규모 교전 09:48 신뢰,책임감 12:06 모든걸 다아는 14:16 조선군의 행동. 17:23 울둘목. 18:58 세키부네를 투입 19:58 체급차이 21:10 당황 22:15 시작과 초탐선,배치도,당시 일본함대. 23:53 이순신의 의도 24:50 겁먹은 조선군 26:10 안위. 27:01 이순신의 작전 28:38 앞장선 이순신 31:19 오후전투 32:21 조류변화. 33:13 일본 지휘관 전사 35:53 전략공유 (배수진) 38:51 전과. 40:44 영향. 41:27 찌질한 선조,이순신의 비극 43:08 영웅사관
두분의 패널전문가분들 덕에 찐공부가 됩니다~👍
최고의 영상. 감사합니다
강민채님~보라색옷이 유독 아름다우세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입장에서는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할 때에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명량 해전 승리 이후에는 아끼던 아들 이면을 왜군 손에 잃게 되는 아픔을 아들과 아버지로써 겪게 되죠. ㅠㅠㅠㅠㅠ
@@hiroono1 날조라치자.
역사 날조는 얼마든지 많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일본놈은 백제 후손.
2000년도 안되었는데 신석기 유물이 박물관에 있다고 만년 역사라 날조한다.
한국은 오천년.
이게 말이 되냐?
백제는 기원후 500년 부터인데?
전라도 사람 심리가 날조 좋아한다.
일본도 전라도 놈이다.
천왕도 백제인이라 한국 가고 싶다했다.
지들 멋대로 천황이냐?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
나 특전사 중사 출신이라 내 말이 거짓인지 확인해라.
내 답글에 토달지 말고 꺼져라.
@@WHCAV-u5p배경호씨? 배씨네 배설 후손이군아 그래 좋겠다 니 조상은 참수 당하셨지 조선실록에 있단다^^ 그러니 너도 참수참수거리는군아 뒤에서 근거없이 욕하고 도망다니는게 배씨 특기군아 ㅋㅋㅋㅋ 소설이래ㅋㅋ 역사적 근거가 있는데 평생 그러고 살아라 안타깝다
●●●●●●♤♤♤♤
최고에 해설 감사드립니다~^^b
제발 생각좀 해라
여기서 빵 터졌네요ㅋㅋㅋㅋㅋㅋ
제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는이유는
왕과 조정의 압박에도 본인의 뜻을 쉽게 접지않고 또한 군율을 엄하게 다스리는 쉽게말해 상남자 스타일 그부분이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군율을어기고 탈영하거나 법을어기는 군사는 참수형을 했을정도로 엄하게 다뤘던 장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님께는 가없는 경애를 바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보다 조금 더 흥미로운 주제라뇨 또한 흥미로운 주제 라고 말 하시길요
장군님 딕션도 좋고 다음에 또 한국사때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느 누구가 해도 다 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밌고 유익하네용
최고의 명콤비
얼마나 원균이 엉망이었으면 일본이 작정하고 이긴 것이 아니라 우연히 이기냐!!
원균은 우리민족의 수치이자 역적이다!!
이순신장군 권율장군과 같이 1등 공신이랍니다.
평택 원균묘에 칠천량에서 육군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채 싸움에 내몰려 패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있더군요 .
마치 이순신장군은 육군의 지원을 받았던 것 마냥..
@@myloveyonga 저기 전문가 중 한분이 계속 원균 옹호하는 것 같아 더더욱 안좋아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깍고 원균을 옹호하고..... 다시 정치권에서 원균의 후손이 뜨니 예전 역사저널 그날처럼 원균 옹호론이 또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myloveyonga 원균을 1등 공신 만든건, 이순신한테 삼도수군통제사 자리 빼았어서 원균에 준 선조의 무능을 면피 하기 위한 정치적 꼼수죠.
원균은 무능하면서도 자기가 무능한줄 모르고, 지잘난맛에 살던 인간인데,
꼭 IMF 얻어 쳐맞은 김영삼과 비슷한 성격이죠.
@@KimJunNyoung 원유철은 그냥 찌그러져있는데요? 원희룡은 원균가문이 아닙니다.
@@myloveyonga 원균은 병사5천 지원받앗슴.
도원수 권율이 괜히 빡친게 아니죠
진짜 신 아니냐 말이되나 이게
몇년전 전남영암 군수 이능권 이순신 8대 후손 연주 현씨 가문에서 보관중인 이순신 과 부인과의 편지 충남아산 덕수이씨 문중에 기증 전남여수에는 이순신 후손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서울 경기 전라도 각지로 다나가서 산다고 하네요
03:16 사이다
일단 좋아요 박고 봅니다
똑같은 작전을 원균이...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ㅋㅋ
감히 저를 업신여기지 못할것입니다.
울돌목의 빠른 조류 때문에 일본의 세키부네들이 제대로 기동하지 못하고 적지 않은 수는 판옥선에 접근 못하고 조류에 떠밀려 그대로 지나쳐버렸을거 같네요. 그렇게 전력이 분산되어버리는 바람에 일본군은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각개 격파당했던거죠.
실제로는 울돌목의 조류는 일본도 이것을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본에서 동일한 조건의 해협에서 해적활동 하고 있는 미치후사를 선봉장으로 명량해전을 치룬거다. 이순신은 이런 미치후사도 발라버렸지.
44:34 진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전멸했겠죠. 일본 피해 없이
@@jakehan7979 ㄴㄴ
부하장수들 튈 각 재고 잇엇슴.
대장선 깃발 올랏어도 버티면서 오지않앗엇죠.
대장선이 쉽게 무너졋다면
바로 튀엇을것임.
근데 무엇보다 원균이엇다면
명량전투도 없엇을것임.
선조말대로 수군없애고 육군에 합류햇겟죠.
싸워보지도않고 판옥선70여척을 수장시키고 튄 놈이 무슨...
명량이 진짜지
장군이 통제사 복귀 후 길을 재촉하던 중,
한 무리의 피난민을 만났는데,
그 중 한 남자가 아내에게..
"사또께서 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살 수 있소. 나는 장군을 따를터이니, 임자는 식솔들과 잘 숨어있으소!"라며 자원 입대하였단다.
이순신장군의 명량해전 승전비법은🤔😨?!
죽기살기로.
진인사대천명.
명량전투를 승리로 이끈후
난중일기에 하늘이 도왓다..라고 할 정도로
이순신장군 또한 이기기 매우 힘들거라 봣엇죠.
13 vs 300 엿으니까요.
그래서 부하장수들은 멀리 떨어져잇엇고, 대장산 깃발 올라갓슴에도 오지 않앗기에
이순신 혼자 반나절을 싸웟을 정도엿으니까요.
여차하면 퇼 각만 재고 잇엇다고 봐도 무방.
참..내가 소인배인걸까
저렇게 무시,핍박을 받고도 애국을 하실수 있는걸까
대인배 이시구나 다시금 느낍니다
잘봤습니다
인간은 모두 같습니다
카투사때 미군들과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은 잘 이해가 되더군요
명량은 물살(조류)때문에 빠지면 무조건 익사함. 한산 노량보다 훨씬 위험함. 배밑에 구멍하나만 내면 그배탑승인원은 몰살임. 실제로 울돌목 끝자락에 피섬이 있는데 왜군시체가 가득찼다고함.
다른 영상에 비해 소리가 작아요
말도 하지 마십시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의 패망을 위해 힘쓴 장수 - 원균
조선의 광복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 - 무다구찌 렌야
08:50에서 전에 본 글 중에 23전 23승이 아니라고 하는 게 저건가 봄. 130전 130승이었나?라고 ㄷㄷㄷ... 이건 또 뭔 소리야 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모든 정찰 부대 격퇴 같은 것을 포함한 부딪힘?에서 이겼단 얘기였던 것 같음.
정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위인 두 분 중 한 분이라는 것을 다시 느낌.
통상께서는 영원한 삼도수군통제사도 이십니다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한 신인이 나타나 이르기를 이렇게하면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고 말해줬다. 참으로 괴이하다. (1597.9.15.난중일기(명량해전 하루 전))
과몰입한 나머지 꿈에서도 전쟁하고 있었던 듯
아니면 무너질대로 무너진 사기를 끌어올리기위해서 하신 말씀일지도
보성 열선루에서 상유십이의 장계늘 올렸다 추정되며, 확실시 되고 있답니다.
배설의 판옥선은 회령포에 잘 정박해 두었었고, 장군이 잘 인수하였지요.
지금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답답합니다
성웅 이순신.
잘보겠습니다
선조의 깨알같은 꼬장
그리고 조선수군.충무공의 위대한 승리
기적같은 승리
제발 생각좀 해라 ㅋㅋ 빵 터졌네요
일기에 보면 새벽까지 자지 않고 보냈던 척후를 기다렸다. 서너팀을 운용한 듯한데 언제나 그들의 발걸음을 방안에서 헤아리고 있었다. 일개 병사나 지휘관들은 근무시간을 빼면 쉴 수나 있었지만 공은 챙길게 많아서 , 생각할게 많아서 함부로 쉴 수가 없었다. 항상 전체 흐름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 약자의 입장이어서 한시도 맘 편하게 술 한잔에 노래 한자락 파티는 언감생심. 철저한 노력형 지도자였다.
와... 하루종일 노를 저어??? ㄷㄷㄷ
노꾼들도 이순신장군만큼이나 대단하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지금 보니까 진짜 지리는 말이지 저때는 얼마나 처절 했겠냐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만 있다면.
이것도 지금보니 지리는 말이지.
얼마나 고심했겠냐고....
여튼 진짜 대단하다고밖엔 말 못함.
그어떤 미사어구도 표현하기 힘듬.
상하차 12시간 해보니 인간은 상상이상으로 강하다고 생각함. 나중에 쓸 에너지를 레버리지로 땡겨쓰면 몇일동안 꼼짝도 못하지
전쟁사에서 해군제독을 논할 때 이순신을 넬슨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순신을 넬슨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독임.
해군뿐만 아니라 육군 공군 지휘관 중에서 이순신만한 지휘관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음.
전쟁사라는 카테고리를 넘어서 전세계 인류사에 이순신만한 인물을 본 적이 없음.
군인으로써 갖춰야 할 모든 역량과 성인에 가까운 성품까지...
그냥 넘사벽임.
성웅 이순신은 비교불가
@@yusozoo4743 맞습니다.
군인으로써의 출중한 능력과 인간 됨됨이까지...인류사에서 이순신만한 인물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네요.
사막의여우 전차전투의신 위대한 롬멜장군이있음
@@유진사랑-r3n 어디 감히 롬벨로 이순신에게 비비려고 ㅋㅋㅋ
심한 국뽕의 잘못된 예
성웅은 이순신 장군님 한 분 뿐
오글거리는 댓글 멈춰~!!
뉴전사 보다가 명량 보고왔어요 크
12척에 집착하지는 마세여
그이전에 그분에 타고난 지략이 있었기에!
14:08 올돌골… 삼국지에서 망아장과함께 빡통을 담당하는…
난 임용한 박사님이 좋은게. 남들은 도통 이해는 안가지만 그랬다에서 끝나는데 우리가 정작 궁금한 걸 그 당시 상황과 합리적인 추측으로 이해가 가게 만들어 준다는 거. 학익진 써서 일당백으로 써서 대승했다. 이걸 누가 모르냐고. 일본 장수들이 죄다 바보 천치겠냐고. 그들 생각에 이래저래해서 될거 같으니까 그런 전술 쓴건데 그런걸 이야기 아하 하게 설명을 해준다는거. 이게 중요한 거죠.
명쾌한해석
15:44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적군 1천명도 막을 수 있다”
이말도 실제로 했나요? 아니면 영화에서 나온 대사인가요?
난중일기에 나오는 표현이라고 하며, 실제 병법서에도 나옵니다.
열국지나 삼국지(연의)에도 그런 표현 나옵니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 입니다
@@jongtaeklee2225 실제 병법서에 나오는건 알겠는데.. 실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요 난중일기에 나온다는 말도 있고 안나온다는 말도 있고 모르겠네요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 아닌가요? 이순신장군이 즐겨 인용했던 오자병법
아이러니하게도 대장선 혼자서 수십척과 싸움 그것도 몇시간동안이나;; 기록에는 수십수백척에 포위되었다고도 나오는데 이걸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음
뒤쪽에 포진했던 향선의 활약도 좋았다.
각종 전투물자를 나르거나 물 혹은 동과라는 과일로 메마른 입을 적시게 해주는 등의 부수적 활동과
마하수 부자 같이 직접 참전하여 전사하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상선을 회오리로부터 구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고 본다.
명량해전 전날 꿈에 신인이 나타나 전략을 알려주었다, 한산해전 때 꾸었던 길몽을 또 꾸었다, 이런 내용은 사실 정유년 당시에 썼던 일기에는 나오지 않고 조금 더 나중에 원래 썼던 일기에 충무공께서 직접 더 내용을 추가해서 쓴, 이른바 속정유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입니다. 이때 어쩌면 전쟁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썼던 난중일기들 정리하여 정식으로 책으로 낼 생각도 하셨기 때문에 다소 문학적인 내용도 추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 이순신 장군님....
오후에 유리해진건 알겠는데 오전에 어떻게 안 진거죠?
협수로를 등지고 싸울 수 없어 우수영으로 옮겼다.
즉. 벽파진에서는 역조류를 맞서서 싸워야하고, 자칫 협수로에 들어서 조운이 힘 들어지고, 암초 등으로 인한 전투불능을 걱정하여..
좀 더 넓은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겨..
일자진으로 적선의 서해 진출을 차단한 뒤..
상선이 최선두에서 전투 모범을 보였다고 봅니다.
이순신의 신인이 나타난꿈은 한두번이 아니다. 예지몽은 이순신 장군의 특기이다.
"아들면이 죽음에 아들생각에 슬픔을 못 이겨 다시 눈을 감았더니 몽롱한 가운데 면이 또 꿈에 나타났다. "" 아버지가 자식의 원수를 갚는 일에 저승과 이승이 무슨 차이가 았습니까 원수를 진에 놓고는 엊찌 제 말을 예사로 듣고 죽이지 않습니까? 하며 슬피울면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공은 또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주위 부하들에게 알아보았더니, 과연 새로 잡혀온 왜군 한명이 배에 갇혀 있었다. 그자를 불러 자세히 캐물으니 바로 아들 면을 죽인 그 자였다. 그래서 공은 그를 죽여 아들의 원수를 갚았다 [행록] "
만고의 영웅이자 세계사 최고의 전쟁ㅈ의 신.
3:40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 말을 이순신이 실제 하셨나요?
영화에서 나온 말인가요?
실제 한 말이죠
@@yas065gh 난중일기에 나오나요??
워털루전투 해주세요 ㅜㅜ 제발 🥺 🙏
좋아요
이순신 장군님! 님.. 성웅..
저때 와끼자카 무얼 했나요 ...
불멸에서 안위 완전 겁쟁이로 그려놔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전쟁의 천재 이순신장군이 안죽었으면 한국은 더 잘살았을텐데
조선왕조와 사대부들이 아무짓도 안해서 또 일제시대라는 치욕을 않겨준것이 현실. 유럽 포르튜갈 영국이랑 무역을 하고 그랬어야지 되는데.
명량 해전 이전의 해전은
어란포, 벽파진 해전.
33:20
그리고 정묘호란 병자호란….조선 병자들….
아무리 임금이라지만 군주라는 자가 나라을 망친다면 그 군주는 역적인데 참 세상사란 ?
그 힘은 자 존가입니다 자존감
임박사님은 이순신 장군이 인두로 지지거나 주리를 트는 등의 사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주장에는 회의적이시던데, 영상의 내용이 임박사님의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나보네요.
예전 임박사님이 팟캐스트나 박사님 채널에서 얘기하셧던걸 기억하자면 조선이란 나라가 그렇게 치사하거나 바보같지 않다더군요 역모혐의가 아닌 이상 삼도수군 통제사 까지 하신분에 신체에 고신이라뇨..
빠따만 맞았다고 합니다
@@야채토마토 곤장만 맞아도 죽음. 젊고 건강한 사람도 50대 맞으면 살기 어려움.
추정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고문당하면 백의종군을 못하기도하고요. 장군님은 바로 먼거리를 이동하시고 백의종군하셔서 고문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더라고요.
@@davidjacobs8558 나도 알아 맞아봤어 ㅋㅋ
졸렬선조 진짜 ㅋㅋㅋ
임용한 = "신"
고려 현종이나 조선 세종 이라면 왜란을 끝내기 위해서 이순신 장군을 끝까지 믿어 주고 밀어 주면서 공노비로 부려 먹을 것 같은 데. 선조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거죠.
선조 그릇이 간장 종지만해서 그런거겠죠.
쫌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