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 피바람을 일으키다 |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조선편

แชร์
ฝัง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6 ต.ค. 2024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7

  • @김병진-p6p
    @김병진-p6p ปีที่แล้ว +2

    잘봤어요 이방원이 자신의 도당을 이끌고가서 정도전과 남은과 심효생 기타 등등을 죽였으며, 세자 방석과 그의 형인 방번을 죽였습니다 세자가 방석에서 방과로 교체되죠

  • @mrbykn
    @mrbykn ปีที่แล้ว +1

    32:30 방과가 겁에 질려서 숨어 있었고 방원에 견주어서 겁이 많고 성격이 소심했다???
    이건 진짜 개소리입니다.
    방과는 방원이보다 10살이 많은 형입니다.
    그냥 형도 아니고 일찍부터 아버지한테 발탁당해서 이성계를 싸움터에서 보좌했던 사람입니다.
    즉 차기 가별초의 사령관으로 낙점받은 사람입니다. 이성계가 차기로 꼽았다면 적어도 자기 자식중에서
    무장으로서의 자질이 으뜸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이란 거지요.
    그래서 실록에 보면 격구를 즐겼다는 사실이 무장으로서의 개성이 뚜렸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형이 겁에 질려서 숨고 겁이 많고 소심했다??라고 쓴 것은
    방과를 낮추려는 곡필입니다.
    그리고 전전편에 나온 정몽주시해사건도 사실상의 주역은 방과라고 봅니다.
    시해 후에 조정의 관직이 재조정 되는데,
    이성계의 아들 중에 방과와 방원만이 이름을 올립니다.
    보통 공이 많은 신하는 그 아들들에게 작위를 주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럴 경우에는 연장자순으로 챙겨줍니다.
    첫째가 작위가 없으면 그냥 주고, 첫째가 이미 출사를 했으면 둘째에게 주는 식인데,
    둘째와 다섯째를 콕 찝어서 주는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비상식적으로 논공행상이 행해졌다면 반드시 벼슬을 내릴만한 일을 했다는 반증입니다.
    즉, 정몽주시해사건은 방과, 방원이 주도를 했고, 주어진 관직의 품계를 고려한다면
    방원보다 방과가 주역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근데 이대로 사서에 남으면 방과의 공적이 높아지니까 사서에서 지우고
    방원이 주도했다고 남긴 거겠지요.

  • @임재신-h3s
    @임재신-h3s ปีที่แล้ว +2

    역사는 승자편에서 서술하다보니 왜곡심하네요~

  • @한신-j4j
    @한신-j4j ปีที่แล้ว

    다조은데 해설자가 계속 웃네요 머찌

  • @강대봉-e9d
    @강대봉-e9d ปีที่แล้ว +2

    흔히 1차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이방원 쿠데타를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려는 시도에 경의를 표합니다. 실체적 진실을 잘 재구성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론 이방원 쿠데타는 오천년 한민족사에선 일대 쾌거로 봅니다. 세종 대왕이 '이방원의 아들'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세평이 맞는 거 아닐까요?^^
    물론 이방원의 성격이 과단성이 있다는 점 외에도 이성계 아들들 중 유일한 고려 과거급제자라서 공부머리가 일머리로 연결되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방원은 당태종의 고사를 깊이 연구한 듯 보이고, 주원장의 개국공신 척결
    과정을 잘 지켜봤을 터이고, 명나라 영락제의 쿠데타를 벤치마킹했을 것입니다. 물론
    조조가 '계륵' 사건을 두고 양수를 죽일 때 양수를 빨던 조식은 이미 후계구도에서 빠졌는데 이를 눈치채지 못한 조식 빠들은 참 어리석었던 걸 반면교사로 삼아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것도 참고했을 듯요~^^
    태조 이성계도 개국공신들을 죽이지 않아 대표적으로 인자한 왕으로 보던데요. 저는 의견이 좀 다르거든요^^
    태조 이성계는 주원장과 동시대를 살아 주원장의 공신척결 사실과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알았었다고 봅니다. 또한 당시 조선 개국공신들도 주원장이 한 행위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방송'을 듣고 있었을 테고요^^
    그래서 이성계는 공신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나는 절대 그렇지 않겠다~"는 식으로 다독여야 했을 테고, 사실 태조가 죽고난 뒤 가장 위험한 인물이 실은 방석이 엄마 강비와 정도전이었기에, 태조는 이방원에게 필요 이상으로 홀대하여 방원이가 왕자의 난을 일으키도록 유도해 방원이 칼로 정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 방번과 방석이가 죽임을 당했다는 이유로 태조가 태종을 죽이고 싶었을 것이란 '인지상정'론을 펴지만, 이건 일반인의 편협한 사고방식일 뿐이고 태조는 평생 전쟁터에서 숱한 죽음도 보았고 최소 수천 수만 명 이상은 눈 하나 깜짝않고 죽인 경험도 사실일 겁니다^^
    연대 대조는 못 해 봤지만, 주원장이 죽은 후 그 손자인 2대 황제와 그 삼촌들인 번왕들 간에 골육상잔을 벌이고 있는 것도 다 들었을 것이고, 해서 태조는 '함흥차사 쑈'와 조사의난 등을 배후조종하여 배신가능 개국 공신 세력들을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척결시켜주었고, 환궁할 때 활을 쏜다든지 철퇴를 준비하는 쑈(그것도 하륜 쪽에 비밀리에 슬쩍 흘려주는 식으로)를 벌여 "하늘의 뜻"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는 '정치쑈'를 했을 거로 저는 추정합니다 ^^
    혹여 여차하여 왕조가 뒤집어지면, 이씨 자식들이 몽땅 왕씨들 마냥 강화도 앞바다에서 물고기 밥이 될 텐데, 방번과 방번은 육참골단의 미끼였을 겁니다. 이게 태조 이성계 방식의 공신척결 전략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
    '아들찬스'를 쓴 게지요~ 태종 방원이가 고려에서 과거 급제자기에, 태조는 이리 치밀하게 '만천과해' 전략으로 519년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진 걸로 확신합니다. 방원이가 정몽주 죽일 때 이성계는 방원이를 마음 속으로 후계자로 정했던 걸로 추정됩니다^^

  • @파줏한량
    @파줏한량 10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방원은 자기 처가집 노비를
    겁탈한 놈 임

  • @박흥선-j6b
    @박흥선-j6b ปีที่แล้ว

    천하에 후레 자식!
    에미 형제다죽이고 권세 를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