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뭐라 좀 말해, 진짜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이렇게 허공에 말 거는
내가 더 우스워지기 전에
변명이라도 괜찮아
억지라도 돼
그냥 네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이나 듣고 싶어
침묵은 너무 시끄러워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내 머릿속은 더 지저분해져
차라리 거짓이라도 해봐
뭐라고 좀 말해봐
내가 덜 비참할 수 있게
아무 핑계라도 대봐
네 탓이라도 할 수 있게
애초에 잘못된 거였던 거 알아
근데 왜 난 아직 기대하고 있지
뭐라도 말해봐
나 혼자 미쳐가지 않게
네 표정은 텅 비었고
난 그 빈칸에 답을 쓰고 있어
웃기지,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는 게 나야
너, 지금 생각하는 거 맞아?
아니면 그냥 아무 느낌도 없는 거야?
답답해서 내가 나한테
소리 지를 지경이야
괜찮은 척하지 말고
지겹다는 말이라도 해
그럼 덜 억울하잖아
어차피 끝날 거라면
차라리 욕이라도 해
그게 더 솔직할 테니까
날 미워해도 좋아
그럼 나라도 너를 미워할 수 있잖아
이게 끝인 거 알아
근데 왜 끝이 이렇게 조용해
차라리 욕이라도 해
이 정적이 더 아프니까
웃기지,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보다
이 침묵이 더 길게 느껴져
이게 다 뭐였던 거야, 진짜
다 필요 없어
이젠 아무 말도 하지 마
네가 조용히 있는 게
더 아프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우린 애초에 틀렸던 거야
근데 왜 난 끝까지 말이 필요했을까
다 필요 없어
이젠 그냥 끝내자
그래, 끝났어
이제 말하지 마
아무 말도 필요 없어
이미 늦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