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교수의 불교강좌 4강 [중도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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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30 ม.ค. 2025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4

  • @seminchung2433
    @seminchung2433 2 ปีที่แล้ว

    감사합니다!

  • @sangsoonhong7403
    @sangsoonhong7403 10 ปีที่แล้ว +3

    “마땅히 두 견해를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두 견해인가? 유견과 무견을 두 견해라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문과 바라문이 이 두 견해를 익히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법을 따를 수 없을 때, 그 이유를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곧 사문도 아니고 바라문도 아니다.
    사문에서 사문의 법을 어기고 바라문에서 바라문의 법을 어기게 되므로 이 사문과 바라문은 결국 자기들이 주장하는 열반을 스스로 증득하여 그 경계에서 노닐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만약 어떤 사문과 바라문이 이 두 견해를 배우고 외운다 할지라도 이것을 버려야 하는 이유를 여실하게 안다면, 이 사람은 곧 사문의 행을 지니고 있는 사문이며 바라문의 행을 알고 있는 바라문으로서 열반을 증들하여 그 경계에서 스스로 노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 두 견해를 배우고 익혀서는 안된다. 마땅히 남김없이 버려야 한다. “

  • @sangsoonhong7403
    @sangsoonhong7403 10 ปีที่แล้ว +2

    왜 그렇겠느냐? 세간이 생기는 것(집기하는 것, 즉 모여 일어나는 것)을 여실하고 바르게 보아 안다면, 세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세간이 멸하는 것을 여실하고 바르게 보아 안다면 세간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여래는 두 변을 떠나 중도에서 설하나니, 소위 이것이 있는 곳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나는 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큰 괴로움 의 덩어리가 생기며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행이 멸하여… 내지 큰 괴로움의 덩어리가 멸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