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동-m4v 군대는 하나의 자원으로 볼 수 있음. 그러나 서울대를 가느냐 여부는 설령 서울대를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손쳐도 한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적으로 갈리는 점에서 전혀 다른 케이스 같음. 즉 애당초 이질적이고 개성이 서로 다른 개인의 집합이지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하는 것이 말이 안 됨.
이순신 장군에 관한 강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짜 국가의 리더가 무능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요즘 대선 상황을 보면서 참 걱정이 앞서네요. 무능한 선조의 재림인 무당이나 숭배하는 인간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에혀... 여튼 이순신 장군에 관한 강의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웅장해지면서도 한편으론 짠해지네요. 무능한 군주를 만나서 고생만 하셨으니... 그그참...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몇 안되는 분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분이시죠 러일 해전에 승전한 제독이 기자회견에서 영국 닐슨제독과 이순신장군과 비교하는 덕담을 하자 닐슨제독과 비교하는것은 이해하나 이순신장군에게 비교하는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나는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죠 그의 말만 빌어 보더라도 이순신 장군은 유일무이한 분이십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15:03 쇠사슬을 어찌어찌 사람갈아넣어서 만들었다고 치자..나도..쇠사슬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봄.. 상식적인 사람의 생각이라면 그 물살과 밀려걸리는 여러 물체가 쇠줄에 걸리는걸 견디고 양사이드 지지해 가지고 땅에 박혀서 도는 쇠줄감고 푸는 도르레 같은 걸 2달이라는 시간에 만들수 있었겠나... 절대 불가능하다고 본다
진짜역사 사실에 근거한 세세한 역사추론과 유추는 황현필샘이 현시대 최고입니다 들을수록 뜨거워지는 가슴, 타임머신을 타고 그시대로 돌아간듯한 기시감, 정말 좋은강의해주시려 노력하시는, 그리고 얕은지식으로 샘을 공격하는 부족한 의견에도 안타까움을 갖고 반론해주시는 섬세함 단연 독보적입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아무것도 의문은 없다.
주말마다 선생님.. 영상 업로드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언제 올라오지... 하면서 계속 채널 챙겨보고 있었는데.. 새 영상이 똭~~~ 오늘은...GGG 시네요 많은.. "설"에 대해서도 특유의 "감"이 아닌.. 인정할수 밖에 없는 정확한 분석과 그에 따른 팩트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존경하고 글 올립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매주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선생님 영상을 보며 많은 공감과 그리고 또 응원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제 어릴적 꿈이 역사를 공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니 항상 즐겁고 행복합니다. 명량해전의 의문점 관련하여 모두 선생님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다만, 강강술래의 경우에는 조금 생각이 다르긴 합니다. 주민들이 전투를 보며 실질적으로 마음 졸이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만약 전술적으로 적을 교란하기 위하여 울돌목 해협 양쪽(진도와 해남) 높은 언덕이나 산에서 갖가지 색깔로 치장한 높은 장대를 세워놓고 소리높여 강강술래를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과부적의 전투를 앞두고 어선을 동원하여 후방에 배치할 정도로 교란작전을 염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모든 자원과 지형, 심리전까지 모두 동원하였을 것이고 지리적으로 적을 공격 또는 교란할 수 있는 울돌목 해협 양측의 고지대에서도 충분히 작전을 펼쳤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상대가 이순신이었으므로 일반적이지 않은 작은 어떠한 행위도 왜군은 긴장하고 조심하며 겁먹으며 전투를 치뤘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말씀하신대로 도저히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승리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보통 판옥선과 화포의 우위, 지형의 활용, 이순신 장군의 전략,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 등이었겠으나 그 속에는 이순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적에게 심리적 공포와 경계심, 불필요한 신중함 등을 유발한 것이 보이지않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군을 폐하라는 선조의 지시에 반대하며 올리는 장계 속 "신이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란 말은 바로 왜군과의 수많은 전투를 통해 왜군의 수를 장군께서 잘 알고 있었고, 왜군이 본인을 두려워하고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어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도 장군께서 느끼고 계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의 소견으로도 먄씀에 동의합니다 어쩌면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의 차이로 물쌀이 쎈틈을 이용하여 적을 교란시키며 우리가 이렇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쳐들어 와보라는 심리를 이용하려 덕골산 정상에서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적을 유인하며 적진이 울돌목의 물쌀이 쎈틈을 이용하여 수십척의 적선을 침몰시키는 탁월한 전술을 발휘한 것으로도 유추해 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쇠사슬은 현재 기술로도 불가능하다 봅니다 쇠사슬 제작 이동 설치도 설명이 안되지만 쇠사슬을 감고 버틸 수 있는 육지의 고정장치는 최소 100여톤(?) 이상 견딜 수 있는 육지의 시설이 필요하고 그럴려면 콘크리트 수십톤을 때려붓는 기반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허구라 봅니다
역시 황현필 선생님의 강의는 최고입니다. 난중일기 임진년(1592).1월17일,2월2일,2월9일,3월27일. 쇠사슬기록이 나옵니다. 즉 좌수영 방어 차원에 서쪽은 장군도 바다수중성이 있으며, 동쪽엔 쇠사슬을 설치한 전라좌수영 방어시설로 종포에서 돌산도에 설치한 난중일기 기록입니다.
1월 17일 (무인) 맑다. [양력 2월 29일] 춥기가 한 겨울 같다. 아침에 순찰사와 남원의 반자(아전의 별칭)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녁에 쇠사슬 박을 구멍낸 돌을 실어오는 일로 배 네척을 선생원으로 보냈다. 김효성(金孝誠)이 거느리고 갔다. 2월 초2일 (계사) 맑다. [양력 3월 15일] 동헌에서 공무를 봤다. 쇠사슬을 건너매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돌 여든 여 개를 실어 왔다. 활 열순을 쏘았다. 2월 초9일 (경자) 맑다. [양력 3월 22일] 새벽에 쇠사슬을 꿸 긴 나무를 베는 일로 이원룡 (李元龍)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두산도(돌산도)로 보냈다. 3월 27일 (정해) 맑고 바람조차 없다. [양력 5월 8일]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 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함에서 대포 쏘는 것 도 시험했다.
선생님의 강의는 아무리 들어도 정말 객관적이고 타당성에 기초한 강의라 흥미진진 합니다, 저도 철책은 시간 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불가능이라 판단 하고, 거기서 강강수월래 라니요 참 어이없는 망상일 뿐입니다, 얼마나 맘졸이며 응원했을것이고 뒤쳐져 있는 군사들에세 빨히 합류하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을 겁니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영화 명량다시 어제봤네요 보면서 감동 감동이었습니다 선생님 제발 하나 부탁드립니다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전에는 정기룡 장군이 있었는데 선조시대에 파벌에 밀리고 젊다는 이유로 선무공신에도 임명되지 못한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없네요 육전의 10여명의 기병으로 최초 승리를 한분인데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섭섭합니다 제가 상주가 고향인데 아직도 정기룡 장군님의 업적은 어렸을때부터 들어왔어요 목민관으로서도 훌륭하셨구요 임진정유재란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닫네요 끝나기전에 번외편에서라도 꼭꼭 정기룡장군님에대해서 이야기부탁드립니다 임진란이후 겨우 영조때야 인정받으신 분인데 선생님 강의에서라도 한번쯤은 그분의 업적을 되새겨보는것도 의미있을듯 합니다. 꼭 부탁드립시다
아 역시.. 황선생님 최고입니다!! 그 동안 명량해전에서의 의문점들을 잘 해소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아 또한 이 전 영상들에도 댓글을 달았던 부분인데 1598년 무술년 10월에 있었던 노량해전 바로 전 전투인 신성포해전(순천왜교성해전 혹은 전투) 꼭 자세하게 다뤄 주셨으면 합니다!! 패전이냐 승전이냐의 논란도 많은 해전이지만!! (명나라 군사들이 삽질하여 명나라 전선들이 피해를 봤고 전사자의 대부분도 명나라 군사들이였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저는 승전으로 보지만!! 최근 원 뭐시기 놈들이 ㅋㅋㅋㅋㅋ 장군을 폄훼하면서 이를 패전으로 둔갑시키네요.. 신성포해전은 어찌되었든 진실이 꼭 알고 싶은 해전입니다!! 황선생님 화이팅!!
황현필 선생님의 역사영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보고있습니다 임진 정유재란 영상들을 보면서.. 문득 일본 가토기요마사 였던가? 여튼 일본의 선봉장이였던 일본인 귀화후 김충선이란 인물을 제대로 알고 싶어 집니다 그외 많은 일본군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때 귀화했다고 그러던데 귀화한 일본인들의 특집편 한번 부탁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첨언드리자면 만약 우수영 앞에서 싸왔다면 일본 선봉이외에 나머지 배들은 전투를 그냥 지나쳐 서해로 나갔을 것 같아요. 조선수군 배는 그냥 우수영 앞에 묶어두고 나면 일본수군을 막을 수 없을테니까요. 따라서 선생님 말씀처럼 울돌목이 명랑해전의 정확한 위치일것 같습니다.
머리가 나쁘다고 탓하지말라 나는 첫번째 무과 시험에서 낙방하고 32세의 늦은 나이에 겨우 합격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머물러야 했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수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당했다 몸이 약하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으로 고생 했고 부하들과 전염병에 시달렸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에야 47세에 해군 제독이 되었다 배후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일구어 군량과 군수물자와 군선 무기를 만들어 서른번의 전투에서 서른번 모두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의심과 오해로 모든 공을 빼앗긴채 감옥에 갇히고 고문 당했다 자본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다시 돌아온 전쟁터에서 12척의 낡은 군선으로 300척의 적선과 싸워 이겼다 옳지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말라 나는 20세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남은 아들들과 조카와 함께 다시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군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충무공 이순신 ]
김훈이? 그건 모르겠고 영화 명량은 공부 많이 했다고 인터뷰한 걸 기억해요. 다만 영화화 하면서 극적이게 만들기 위해서 상상력으로 많이 대체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전투 장면은 자료는 부족하고 사료대로 영화 장면을 만들면 시간을 채우기도 어렵도 영화적 재미를 살리기 어려워서 많이 바꿨다고... 그랬대요~
진도군 녹진 나리에(진도대교 교각부근) 예전에 유인등대가 있었고 그 등대에 유류와 보급품을 전달하면서 조류가 쎄서 보급선을 연결하는 철쇄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도 중학교 소풍가서 그 철쇠의 잔재를 분명히 목격하시고 명량해전의 철쇄를 믿으시나, 명량의 거센조류의 유속에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진도촌놈-
많은 지식과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40대중반 외국에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인해 선생님 유투브 방송 다 봤네요 선생님의 강의하는눈빛이 제가 일하는 모습과 비슷하셔서 항상 웃으며 보고 있습니다 제가 1993년도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제 고등학교 친구중 유대인 터키 대만 헝거리 일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너무 유사한 점이 많은거에요 대만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이니 비슷한데 왜 터키 유대인 헝가리는 우리와 비슷한 음식과 언어 문화가 있을까 이 의문이 그당시 10대인 저를 전공과 상관없이 역사공부가 제 취미가 되버리게 하더라고요 구약성서이전의 고대사에 심취하다 고조선 부여 몽골 역사에 관심이 가다 백제에 관심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왜나라 일본역사에 관심이 가지더라고요 그래서 틈만 나면 전 세계 50개국을 다니며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연구했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가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보듯이 일본의 역사는 사실 백제의 역사라 생각이 드는데 선생님께서 한일의 갈등을 해소하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역사는 같은 왕조국가이며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거 처럼 일본이 백제를 계승한 역사로 보는 그럼 대한민국과 일본은 더이상 미워하지 않을꺼 같다란 생각이 듭니다 반일반중이 만연한 요즘 선생님께서 일본에 대해 발해를 꿈꾸며처럼 일본을 그렇게 바라보는 역사강의를 해주시면 안될까요? 요즘 너무 조선족 일본 중국을 싫어하는 문화가 많은거 같습니다 제가 역사 전공자가 아니라 선생님의 레슨을 받고 싶네요 제 바램은 청나라를 계승한 중국 고구려 신라 백제가 있었던 대한민국 가야 백제를 계승한 일본 다 동의족이란 사실을 한중일이 알았으면 합니다 역사공부로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강의가 부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되길 기도합니다
저는 그런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지고있는 일본인,중국인이 밉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을 용서한다는건, 인간이기 보다는 신성한 종교의 지도자 이지요. 선생님의 뜻 이해는 하지만, 좀 가증스럽게 보입니다. 불편하게 들으시라 글을적는 의도는 아니고, 저도 제의견을 한말씀드립니다. 선생님이나 그렇게 용서하세요. 분위기좀 파악하시며 말씀하시길.
03:31 아주 중요합니다. 03:31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안나오는게 특히 명량 영화가 고증 개판이라고 생각되는게 ... 전투 초반에는 그나마 배들끼리 엉키는걸 보여주면서 물살을 택한 이유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전부 무시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데우스 엑스 마키나격으로 회전! 회오리!!! 물살이 나오면서 끝내버립니다. 하...... 개판입니다. 게다가 보면 왜선들이 이순신 대장선에 여러척 아주 잘 달라붙습니다. 중간에 피섬근방으로 갈땐 조류가 좀 약해져서 그런지 아예 4척에게 둘러싸이고 뒤에서 다른배가 대기(?)까지 하더군요 잘못된거죠... 명량의 전술은 1-11-1 포메이션이죠 대장선 -11척 - 골키퍼 ( 말씀하셨듯이 ) - 대장선이 쐐기역할을 하여 앞서나오는 1파 2파 3파의 배들을 깨부숩니다. 대장선은 가장 훈련이 잘 되어있을거고 이순신이 지휘하기에 가장 잘 싸웠을겁니다. 근거리로 접근하더라도 두세척 정도는 쉽게제압이 가능했을겁니다. 이순신 입장에선 적들이 한줄로 오니 정말 잡기 쉬웠을겁니다. - 이순신에게 달려드는 배들 중 상당수는 물살이 쎄서 뒤로 가버렸을겁니다. 이때 거름막 역할을 하는 11척이 이 나머지 잡것들을 처리하지 않았을까요? 과연 11척이 겁쟁이처럼 뒤에서 가만히 있었을까요? 난파?된,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버린 배들이 이들 열한척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까요? 영화에서처럼 멀뚱멀뚱 있으면.. 그냥 다 도륙당했겠죠. 근데 30척도 넘는걸 이순신 혼자서 처리하는것처럼 묘사했더군요.. 흠... 분명 뒤에서 함포를 쐈을겁니다. 겁쟁이라 할지라도. -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들은 뒤에 골키퍼와 어선들이 처리 멀쩡한배는 골키퍼역할을 하는 한척이 돌아다니며 처리했을거고 물에빠져 조난당한 왜놈들은 어선들이 모두 처리했겠죠 이 과정이 1~3시간동안 빠르게 진행되었을겁니다. 마치 볼링장에 기름칠을 해버려서 볼이 핀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빠져버리듯이 구루지마와 와키자카는 배를 보내는 족족 삼천포로 빠져버리고 대장선을 제대로 못노려서 손실을 많이 봤을겁니다.
쇠사슬은 100퍼 소설입니다. 물살과 사슬에 걸린 배의 장력을 버틸수가 없음.. 더군다나 사람 힘으로?? 수천 수만명이 달라 붙어서 제어가 가능했다손 쳐도 그당시 제철기술로 만들어낸 쇠가 장력을 유지한다?? 지금도 침몰한 배한척 건져올리려면 사람 몸통만한 와이어를 수십개 걸고도 터질까봐 물살 빠를때는 작업을 못하는데 ..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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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cam.com/play/PL0lEEgMCRI86oI5zbT1bem9tki9KkmEII.html
진짜 이순신 장군을 보면.. 책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같은 자원을 가지고도 결과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걸 실감합니다.
@@hjp5864 헤에...이명박, 박근혜 정권때는 이나라가 태평성대 였고 주변국을 깔아뭉개고 있었나 보네?
다른 평행세계에서 살다 오셨어요??
@@picafon4020 뭐랬길래 댓삭하고 튀었냐ㅋㅋㅋㅋ
@@토레신 에혀..좀 모르면 가서 근현대사 공부좀 하세요. 박정희는 일본에다가 한국을 경제 식민지로 갖다 받쳐서 전세계가 호황인데도 불구하고 한국만 - 를 만든 인간이니까.
같은자원이믄 다 서울대가나?.
@@김길동-m4v 군대는 하나의 자원으로 볼 수 있음.
그러나 서울대를 가느냐 여부는
설령 서울대를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손쳐도
한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적으로 갈리는 점에서
전혀 다른 케이스 같음.
즉 애당초 이질적이고 개성이 서로 다른
개인의 집합이지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하는 것이 말이 안 됨.
정말 선조는 줘패고 싶을 정도로 옹졸하네요
이순신 장군님의 치열한 전투가 눈에 그려집니다
강의 감사합니다!!!
선조가 문씨면 이순신에 버금가는 군인은 왜 안나와?
선조가 지금시대면 딱 윤머저리네..!
이순신 장군에 관한 강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짜 국가의 리더가 무능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요즘 대선 상황을 보면서 참 걱정이 앞서네요. 무능한 선조의 재림인 무당이나 숭배하는 인간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에혀... 여튼 이순신 장군에 관한 강의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웅장해지면서도 한편으론 짠해지네요. 무능한 군주를 만나서 고생만 하셨으니... 그그참...
역사공부를 그리해도 모르것습니까 어차피 성군은 몇십몇백년에 한번씩 나오는것을
그냥 인정하고 본업에 충실하시길 세상탓 남탓할 필요없음
맞읍니다. 작금의 무능력하고 일할 맘도 없는 놈이 대통령이 되어서 국가의 안위가 실로 걱정입니다, 옛말에 사람이 턱없는 관을 쓰면 천박이 벌어진다는 무서운 말이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기전 빨리 물러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순국선열이 지킨 나라.
술꾼석열이 넘긴 나라.
현필선생 너무멌있어요.내가 역사를 배우고 좋아하는데 모든걸 시원하게 풀어주는게 너무너무 좋아요.
잘 보고 들었습니다 황선생 설명에 대부분 공감이 큽니다.전 오십대 중반인데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대상이 있습니다. 명량의 파도위에 계신 이순신 장군님과 일면식도 없는 어머니 입니다..
저는 님의 댓글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yhansookim7850 문장 이해력 딸리는거 자랑하나? 오십대 중반인데 생각만으로 가슴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대상이 어머니라는 소리잖아. ㅉㅉㅉ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시면서 서로 오해하시는거 그딴거 하지맙시다 좋은 강의듣고 왜 서로 헐뜯으십니까 자랑스런 충무공 후손들입니다 싸우지맙시당
그게 아니고
이순신장군님 하고 한번도 본적없는
본인의 어머님 이라는것 같네요(왜 어머니를 한번도 본적없는지는 모르지만)
가슴이 아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두 분 - 일면식도 없는 어머님 그리고 명량의 파도 위에 계신 이순신장군님 ....이 뜻인 거 같아요.
진짜 가만 생각해보면 이순신장군님은
인류사에 몇 안되는 한분이신것 같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분 👍
전 세계를 통틀어서
"성웅"이라 불리우는 분은
이순신 장군님이 유일합니다
@@불라바 공감가는 말씀입니다...온나라가 지원을 해줘도 부족한 판에. 같은편에서도 충무공을 죽이려 했으니....서구열강들 위인중에 훌륭한 위인들은 많으나.. 적국의ㅡ적과 내부의 적, 모든 적과 싸워 이기신분은 충무공이 유일..
그렇죠. 전세계의 유일무이한 성웅이시라... 천하의 쟌다르크도 성녀라고 불리기는 한데 성웅으로서의 호칭은 이순신 장군님께서 유일하시니.....
몇 안되는 분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분이시죠
러일 해전에 승전한 제독이 기자회견에서 영국 닐슨제독과 이순신장군과 비교하는 덕담을 하자 닐슨제독과 비교하는것은 이해하나 이순신장군에게 비교하는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나는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죠
그의 말만 빌어 보더라도 이순신 장군은 유일무이한 분이십니다
그렇죠... 이정도 이시면 그냥 사실상 거의 인간이나 사람같은게 아니라 신과도 같으신 유일신이신 겁니다.ㅋㅎ (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말씀하시는군요.^^ 바로 그 유명한 넬슨 제독과 천하의 미해군쪽이 울다간 그런분
이순신 장군님의 업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강의. 황현필 선생님 최고입니다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황현필선생님의 역사 강의 짱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좋은 강의 많이 올려 주십시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15:03 쇠사슬을 어찌어찌 사람갈아넣어서 만들었다고 치자..나도..쇠사슬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봄.. 상식적인 사람의 생각이라면 그 물살과 밀려걸리는 여러 물체가 쇠줄에 걸리는걸 견디고 양사이드 지지해 가지고 땅에 박혀서 도는 쇠줄감고 푸는 도르레 같은 걸 2달이라는 시간에 만들수 있었겠나... 절대 불가능하다고 본다
쇠사슬은 그 무게를 판옥선도 몇 척이 실어도 못 싣고 갈 것 같습니다 추한 이론을 기술한 김 억추의 후손들 역사 왜곡도 한 몫 하네요 열정적인 강의 늘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밧줄이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나요?
예전에는 줄다리기 줄도 만든걸로 아는데 무게도 가볍고
선생님 강의를 애시청하면서부터 자꾸 눈물이 많아집니다. 늘~감사합니다.
그러니 중국한테 감사히 여기시오 중국이 도와주지 않더라면 수백년전에 일본의 노예로 살았을거요 ㅋㅋ
@@육당최남선-f6f 때놈들이 북괴를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벌써 통일되서 세계 강대국이었다. 🐕 소리 집어 치우고,.. 코로나나 딴대 보내지 말고 너네 나라안에서 잘 관리 했어야지... 아, 오늘 또 욕나오게 하네.
@@육당최남선-f6f 심하셨습니다 댓글 삭제하세요
@@육당최남선-f6f 조상님들 볼 낯이 없는 이유.
이런 벌레들 때문.
문어벙 하고 똑 같네여ㆍ
진짜역사 사실에 근거한 세세한 역사추론과 유추는 황현필샘이 현시대 최고입니다 들을수록 뜨거워지는 가슴, 타임머신을 타고 그시대로 돌아간듯한 기시감, 정말 좋은강의해주시려 노력하시는, 그리고 얕은지식으로 샘을 공격하는 부족한 의견에도 안타까움을 갖고 반론해주시는 섬세함 단연 독보적입니다!
참으로 강의 잘 하시네요. 덕분에 너무 좋은 지식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의를 듣고 있으면 항상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다시한번 이순신 장군님과 그때 그 전투에 참여했던 격꾼 등 말단 조선수군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한때 역사학도의 꿈을 꾸다가..집안문제로 공대를 가고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덧 마흔줄에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쿼리티높은 강연을 이렇게 무료로 하시고 그걸 보자니...늘 감사합니다.
밥벌이는 잘하고 사십니까
넓은 영상도 한번 보시길 그냥 기존 사학정통한것 말구요 다른원문 다른주장도 보시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아무것도 의문은 없다.
황선생님 명강의 감사합니다 천문성이 대단하십니다 솔직하고 진실함이 느껴지는 강의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체 어떻게 졌는지 이해가 안되는 전투를 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이해가 안되는 전투로 갚아준 이순신 장군…ㅠㅠ
황현필 선생님
좋은 강의 항상 감사드립니다~
늘 항상 훌륭한 강의 ..그 당시의 심정을 느낄수 있을법한 명강의 ...감사드립니다..몰랏던 역사의 진실을 알게되어 감사드립니다.
귀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훌륭한 역사가이십니다. 최고네요.
주말마다 선생님.. 영상 업로드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언제 올라오지... 하면서 계속 채널 챙겨보고 있었는데.. 새 영상이 똭~~~
오늘은...GGG 시네요
많은.. "설"에 대해서도 특유의 "감"이 아닌.. 인정할수 밖에 없는 정확한 분석과 그에 따른 팩트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존경하고 글 올립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매주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지루했던 주말 알차게 마무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황현필 임진왜란를 보면서 듣고있습니다. 강의가 너무 시원시원하고, 쏙쏙 들어옵니다~ 그리고 감동도 함께.....성웅 이순신장군을 다시 보게됩니다.
포항제철 ~~ㅎㅎ 정확한 팩트 잘보고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연 👍 모든게 좋았습니다.^^
칠천량 부터 명량 까지 싫어요 누른 것들은
원균 후손 들이냐?.................부끄러움도 모르는 것들이 어딜 기어나와?
"토착 왜구" 들..! ㅎㅎ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요 생각도 못했는데 싫어요가 있었네 ㅋㅋㅋㅋㅋㅋ 진짜 원균 김억추 후손들인가 ㅋㅋㅋㅋ
김억추...억수로 추한놈. 원균...원래 세균같은놈.
배설 추가요
토착 왜구라고 해야죠 ....
김충선 장군님의 후손이 그럴리가 없죠 ....
내 인생 최고의 명강의
가슴이 찡합니다...♡
그렇게 지켜내주신 대한민국 내나라를 소중히 여겨야하고 식민사관에 쪄들어 몰랏던 애국심을 뜨겁게 꺼내어봅니다 이 역사들을 광노처럼 알려주시는 샘..감사하고 사랑해요^^
교수님 영상을 보다보면 빨려 들어가는 것은 무엇인지 이시대에 태어나 교수님 강의를 듣는게 행복 합니다
잼있고 유익한 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분석과 강의입니다 올도 잘 듣고 갑니다 ^^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 조수의 흐름에 의해 일시적으로 조선이 유리해져 일본군의 크루시마가 죽었지만 저녁이 되어 조수가 바뀌자 조선군은 철수했다. 육해 양면에서 일본으로 쫓긴 이순신은 9월 21일에는 멀리 전라도 북단의 고군산도(군산 앞바다)까지 200km나 후퇴했다. 이것은 난중일기와 정한록에 쓰여진 사실이다. 조선군은 분명히 패주했다.
선생님 영상을 보며 많은 공감과 그리고 또 응원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제 어릴적 꿈이 역사를 공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니 항상 즐겁고 행복합니다.
명량해전의 의문점 관련하여 모두 선생님 의견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다만, 강강술래의 경우에는 조금 생각이 다르긴 합니다.
주민들이 전투를 보며 실질적으로 마음 졸이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만약 전술적으로 적을 교란하기 위하여 울돌목 해협 양쪽(진도와 해남) 높은 언덕이나 산에서 갖가지 색깔로 치장한 높은 장대를 세워놓고 소리높여 강강술래를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과부적의 전투를 앞두고 어선을 동원하여 후방에 배치할 정도로 교란작전을 염두할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모든 자원과 지형, 심리전까지 모두 동원하였을 것이고 지리적으로 적을 공격 또는 교란할 수 있는 울돌목 해협 양측의 고지대에서도 충분히 작전을 펼쳤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상대가 이순신이었으므로 일반적이지 않은 작은 어떠한 행위도 왜군은 긴장하고 조심하며 겁먹으며 전투를 치뤘을 것이고 이러한 것들이 말씀하신대로 도저히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승리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보통 판옥선과 화포의 우위, 지형의 활용, 이순신 장군의 전략, 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 등이었겠으나 그 속에는 이순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적에게 심리적 공포와 경계심, 불필요한 신중함 등을 유발한 것이 보이지않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군을 폐하라는 선조의 지시에 반대하며 올리는 장계 속 "신이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란 말은 바로 왜군과의 수많은 전투를 통해 왜군의 수를 장군께서 잘 알고 있었고, 왜군이 본인을 두려워하고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어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도 장군께서 느끼고 계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의 소견으로도 먄씀에 동의합니다
어쩌면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의 차이로 물쌀이 쎈틈을 이용하여 적을 교란시키며 우리가 이렇게 전쟁을 준비하고 있으니 쳐들어 와보라는 심리를 이용하려 덕골산 정상에서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적을 유인하며 적진이 울돌목의 물쌀이 쎈틈을 이용하여 수십척의 적선을 침몰시키는 탁월한 전술을 발휘한 것으로도 유추해 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외계인설, 타임머신 타고 조선으로 간 후손. 이 두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길수 없던 전투..
황선생님
정말최고십니다.
당신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영상이 점점 길어져서 좋습니다👍항상 집중해서 보고있고 다른 일 하다가 영상 떳다고 알림 뜨면 괜히 기분 좋아지네요ㅎㅎ 항상 화이팅 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코로나도 잘 이겨내십시오~~!!
저도 어릴 때 쇠사슬 첨 들었을 때, 저게 가능한가 하고 갸웃 했는데, 역시. 오히려 저런 유사과학같은 말들로 인해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위업이 신화에 가깝다면서 퇴색되는듯.
3
충무공께서 신의 반열에 오르신 결정적 전투 명량해전! 500년이 넘은 사건이지만 황선생님의 박진감 넘치는 명강덕분에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열정적인 강의 잘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이 합리적인 결론이라 수긍하면서
눈물 훔치며 잘 보았습니다
사료와 답사로 많이 연구하신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어렸을 때 티비에서 보았던 쇠사슬과 강강술래 그냥 믿었었는데...
물살 쌘 명량에서 격꾼들 힘들게 승리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같네요.
전투가 끝나고 그날 저녁 아니면 후일 강강수월래 했을거라 봅니다
나이 50넘어 임진왜란과 성웅 이순신의 뜨거운 강의를 듣게 되어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칼의노래를 오래전에 읽고 큰감동을 받았는데, 이강의를 통해 이순신의 바다,징비록,난중일기등 관련 서적을 더욱 탐독해야겠다는 마음이
불타오릅니다.
오늘도 잘 봤습니다.
시간이 순삭되는, 영화를 보는듯한 강의 감사 드려요. 이순신 장군님의 위대함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특히 대충 알던 것보다 원균이 훨씬 무능하고 악랄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쇠사슬은 현재 기술로도 불가능하다 봅니다
쇠사슬 제작 이동 설치도 설명이 안되지만
쇠사슬을 감고 버틸 수 있는 육지의 고정장치는
최소 100여톤(?) 이상 견딜 수 있는 육지의 시설이 필요하고 그럴려면 콘크리트 수십톤을 때려붓는 기반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허구라 봅니다
맞아요. 저도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저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살과 함께 떠내려 오가는 배를 잡고 지탱해 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그 당시 존재할 수가 없었죠. 인간이나 소, 말로도 그건 불가능하고요.
배들이 좁은 곳에서 뒤엉켜 꼈다고 보는게 맞을거 같아요.
이게 맞죠
해군 관함식 때 항공모함 홋줄을 당겨본 사람으로서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 굵은 홋줄도 몇십명이 달라붙어서 겨우 거는데 무슨 쇠사슬을 당기라고요? 그것도 배를 막아선다고? 부력에 의해 떠밀려서 육지보다 더 힘이 필요한데 인간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합니다
최고의 명강의 입니다.
감사합니다.
와 선생님 훌륭하십니다
너무나 좋은 수업이에요
저와 의견이 정확히 같으신데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한 것 같아요 싫어요가 없네요 늘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황셈 감사합니다 최고의 역사 선생님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속시원한 역사해설에 폭풍 박수를 보냅니다~!
고려말 황산대첩이나 일제강점기 청산리대첩 같이
일본은 지들이 수적으로 완전히 우세한 상황에서
발린 전투는 기록으로도 부정해버리고 심지어는
비석까지 뽑아가버리는데 명량은 인정하네
적에게도 존경받을 만큼 위대하신 분
황산은 해적내지 일본 내전에서 패한 패잔병 찌끄래기임 고려 침공한 홍건적 같은 애들인데 관심이 갈리가ㅎ
일본에 이순신 장군님을 신으로 모신 신사도 있고 이순신 장군 그림을 악귀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네요-일본에서 태어나서 살다 온 친구 한테 들은 말이라 정확하지 않음
규모가 다르니깐요. 일본 정규군을 조선 장수하나가 막아낸 말도안되는 사건이었죠
@@힐러-b6l 카토기요마사의 개인절에.가보면
이순신장군의 친필을 보관하고 있죠. 재미있는건 그를 흠모하는 장수들이 왜군에선 많았다는것
@@힐러-b6l 예전에 다큐멘터리에도 나온적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이나 암자 또는 산신각 같은곳에 관운장 모시는 곳 처럼 일본에도 이순신 장군 모신 신사가 있다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황현필 선생님, 현재 56편 시청중인데...팬이 되었습니다.명량을 보고 이순신장군님에 대해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황현필 선생님 영상 덕분에 더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 영상 찾아 보고 여기저기 나누고파요^^ 엄지척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삼국지로 치면 제갈량의 지능과
장비의 전투력을 합쳐놓은 분인듯ㄷㄷ
명량에서 대장선 혼자 입구 틀어막는 건
장판교에서의 장익덕을 연상케하네
@@거성-v6t 수군제독 혼자서??
말이 안되죠..
@@거성-v6t 애초에 명나라에 사대하는 입장에서 중국은 절대 못치죠 나라 근본이 성리학이여서 만약 한족중심 중국을 치면 아들이 아버지 치는 패륜보다 더 욕먹었을텐데요 ㅋㅋ 일본은 어케했을수는 있겠네요
@@이구-g3f 재조지은 즉 임진왜란 이후에나 명에 극심하게 사대를 한거지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정도전이나 그 후의 재상들의 발언들 세종대왕의 행적을 보면 오히려 독자적인면이 더 강했죠. 선조때 부터 재조지은 이라고 해서 심하게 빨아 재꼈죠.
삼국지는 소설입니다
무례하게... 비교한다해도 ...
충무공과 비교될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런데...그 난폭하고 미련한 장비라니.....
@@갯바위워커-c1c 장판파는 삼국지 정사에도
나오는 내용이고, 장비는 전투력만 가지고
쓰신거 같은데 화내시기 전에 글 좀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철쇄는 지금도 믿겨지지 않을 명량해전의 소설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와 다르죠. 이순신이 이 나라를 지키는데 너무나 진심이었고 벌 받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는데 하늘도 감동한 승리라고 여겨집니다.
선조의열등의식ㅇㄹ이순신없으므로축어가는것는죄없는민초들이아니가?
@@카르디 쉽게 생각해보시길..반대로 50여척이 판옥선 한대에 다 달라붙을수 있음?? ㅎㅎ 전투양상이 어땠는지는 그시대에만 알수있겠지만 어쨌든 이순신은 버티다가 나중에 후퇴할 땐 화끈하게 충청 태안반도까지 후퇴했습니다 ㅎㅎ
역시 황현필 선생님의 강의는 최고입니다.
난중일기 임진년(1592).1월17일,2월2일,2월9일,3월27일.
쇠사슬기록이 나옵니다. 즉 좌수영 방어 차원에 서쪽은 장군도 바다수중성이 있으며, 동쪽엔 쇠사슬을 설치한 전라좌수영 방어시설로 종포에서 돌산도에 설치한 난중일기 기록입니다.
1월 17일 (무인) 맑다. [양력 2월 29일]
춥기가 한 겨울 같다. 아침에 순찰사와 남원의 반자(아전의 별칭)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녁에 쇠사슬 박을 구멍낸 돌을 실어오는 일로 배 네척을 선생원으로 보냈다. 김효성(金孝誠)이 거느리고 갔다.
2월 초2일 (계사) 맑다. [양력 3월 15일]
동헌에서 공무를 봤다. 쇠사슬을 건너매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돌 여든 여 개를 실어 왔다. 활 열순을 쏘았다.
2월 초9일 (경자) 맑다. [양력 3월 22일]
새벽에 쇠사슬을 꿸 긴 나무를 베는 일로 이원룡 (李元龍)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두산도(돌산도)로 보냈다.
3월 27일 (정해) 맑고 바람조차 없다. [양력 5월 8일]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 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함에서 대포 쏘는 것 도 시험했다.
선생님의 강의는 아무리 들어도 정말 객관적이고 타당성에 기초한 강의라 흥미진진 합니다, 저도 철책은 시간 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불가능이라 판단 하고, 거기서 강강수월래 라니요 참 어이없는 망상일 뿐입니다, 얼마나 맘졸이며 응원했을것이고 뒤쳐져 있는 군사들에세 빨히 합류하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을 겁니다.
명량대첩은 3대 대첩에 안 들어가는게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전투라서 그런 듯 합니다. 한 개인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승리한 전투가 아닐까 합니다.
👍👍👍👍👍
그걸 믿는 자들은 저능아들이 틀림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육당최남선-f6f 비겁한 중공놈들 유언비어 하는게 일이고 그 놈들의 종특이다
ㅋㅋ 위에 최남선 이광수 댓글 본캐 부캐로 썼나보네 ㅋㅋ
일베충들 몇명있네 벌레들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영화 명량다시 어제봤네요 보면서 감동 감동이었습니다
선생님 제발 하나 부탁드립니다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전에는 정기룡 장군이 있었는데 선조시대에 파벌에 밀리고 젊다는 이유로 선무공신에도 임명되지 못한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없네요 육전의 10여명의 기병으로 최초 승리를 한분인데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섭섭합니다 제가 상주가 고향인데 아직도 정기룡 장군님의 업적은 어렸을때부터 들어왔어요 목민관으로서도 훌륭하셨구요
임진정유재란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닫네요 끝나기전에 번외편에서라도 꼭꼭 정기룡장군님에대해서 이야기부탁드립니다 임진란이후 겨우 영조때야 인정받으신 분인데 선생님 강의에서라도 한번쯤은 그분의 업적을 되새겨보는것도 의미있을듯 합니다. 꼭 부탁드립시다
감사합니다~^^
그간 구전처럼 전해지던...뭔가 앞뒤가 안맞는 듯했던 내용들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듯합니다. 선생님의 의견에 100% 공감합니다.
아 역시.. 황선생님 최고입니다!!
그 동안 명량해전에서의 의문점들을 잘 해소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아 또한 이 전 영상들에도 댓글을 달았던 부분인데
1598년 무술년 10월에 있었던 노량해전 바로 전 전투인 신성포해전(순천왜교성해전 혹은 전투)
꼭 자세하게 다뤄 주셨으면 합니다!!
패전이냐 승전이냐의 논란도 많은 해전이지만!!
(명나라 군사들이 삽질하여 명나라 전선들이 피해를 봤고 전사자의 대부분도 명나라 군사들이였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저는 승전으로 보지만!! 최근 원 뭐시기 놈들이 ㅋㅋㅋㅋㅋ
장군을 폄훼하면서 이를 패전으로 둔갑시키네요..
신성포해전은 어찌되었든 진실이 꼭 알고 싶은 해전입니다!! 황선생님 화이팅!!
정말 대단 하십니다 ㆍ 선생님은 현대판 이순신 이십니다ㆍㆍ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처음 알았을까요? 참고로 나는 역사에 관심많은 49세 남자 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임진왜란을 처음으로 공부해봅니다. 너무 귀에 쏙쏙들어와서 며칠째 보고있는데 진짜 당시 임진왜란 속에서 같이 겪는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많으셨던 이순신장군님ㅠ
대단하시고 배워야할 것이 많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쌤 존경합니다. 덕분에 이제라도 자랑스러운 이순신장군님에 대해 더 정확히 알게되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강의 듣다보면 눈물이 너무나요ㅠㅠ
매번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고대 부터 군복의 변천사 강의 부탁합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울 군인들 너무 초라해요~ ㅜㅜ
제작비등 여러 이유인건 알지만 대부분 보고 듣는것이 전부라고 이해하니까요~~
정말 대단한 강의 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이런곳에 늘 이런 답변이 하나씩 있었는데 이해가 갑니다.
이렇게 역사를 알려줫다면 정말 우리 나라에 수많은 역사 학자들이 있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가로세로 15cm의 철을 400m까는데 필요한 철이 15cm*15cm*40000cm*7.85/1,000=약70톤의 철이 필요한거 같은데 계산이 맞나모르겠네 대략 계산해도 조선시대 전국년간 철 생산량의 2배가 넘는거 같은데 70톤의 철을 저 시대에 운반이 가능한가?
글쵸 글구 군량미도 자급자족 하는마당에 철 구할돈은 절대불가죠 거기다가 작살나서 꼴랑 13척남은 수군인데요
가슴이 끓어오르네요…명강의 감사합니다.
황현필 선생님.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십 중 반에도 넘나 재밋게 보고 잇는 일 인 입니다
황현필 선생님의 역사영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보고있습니다
임진 정유재란 영상들을 보면서..
문득 일본 가토기요마사 였던가? 여튼 일본의 선봉장이였던 일본인 귀화후 김충선이란
인물을 제대로 알고 싶어 집니다
그외 많은 일본군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때 귀화했다고 그러던데
귀화한 일본인들의 특집편 한번 부탁드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첨언드리자면 만약 우수영 앞에서 싸왔다면 일본 선봉이외에 나머지 배들은 전투를 그냥 지나쳐 서해로 나갔을 것 같아요. 조선수군 배는 그냥 우수영 앞에 묶어두고 나면 일본수군을 막을 수 없을테니까요. 따라서 선생님 말씀처럼 울돌목이 명랑해전의 정확한 위치일것 같습니다.
황현필님 덕분에 명쾌한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인. 배상.
성웅 이순신...
국가를 지속시킨 처절한 전투...
명량......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으면 명량해전도 없었고
우리 나라도 존속되지 않았다.
의문점에 대한 합리적이고 명쾌한 해설 감사합니다
이순신장군님은....감히 말하기도 죄송한 진정한 성웅이십니다
황선생님덕에 역사 공부 기초부터 다시합니다.
감사합니다.
9:00 선조 짤 대박이네요 ㅋㅋㅋㅋㅋ
진짜 이순신 장군이 더 대단하다고 느낀 거는 고문 당하고 죄인으로 몰려서 백의종군 했는데 다시 싸웠다는 거임 자신만 생각한 게 아니었던 거...나같으면 진짜 반란 일으켰을 거임
감사드립니다.~!!!
신라장군 이사부도 그랬지 않나요 배에 사자조각상 만들어서 항복할래 사자밥이될래?! 했었다고 예전에 어린이 명심보감 였던거 같은데 도서관에 있어서요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불리한상황을 내편으로 만들다닛😮😅
머리가 나쁘다고 탓하지말라
나는 첫번째 무과 시험에서 낙방하고
32세의 늦은 나이에 겨우 합격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머물러야 했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수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당했다
몸이 약하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으로 고생
했고 부하들과 전염병에 시달렸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에야 47세에 해군 제독이 되었다
배후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일구어 군량과
군수물자와 군선 무기를 만들어 서른번의
전투에서 서른번 모두 이겼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의심과 오해로 모든
공을 빼앗긴채 감옥에 갇히고 고문 당했다
자본이 없다고 실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다시 돌아온 전쟁터에서
12척의 낡은 군선으로 300척의 적선과
싸워 이겼다
옳지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말라
나는 20세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남은 아들들과 조카와 함께
다시 전쟁터로 나섰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군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충무공 이순신 ]
잘보았습니다..근데 이 글이 정말 충무공께서 남기신 글인가요?
@@honey7856
아니요 저도 인터넷에서 퍼온 글
보관 해둔거 옮겨 적은겁니다
제가 알기론 칭기즈칸의 어록을
누군가가 충무공과 연관지어
각색한 글로 보이네요
비슷한 칭기즈칸 어록이 인터넷에
있는데 그것도 실제 어록인지
확실히는 모릅니다
@@스콧버클리 감사합니다..충무공이 남기신 글이 아니어도. 충무공 인생에 정확한 기록입니다..
@@honey7856
예 감사합니다 ^^
이글은 테무진이 남긴글인데 (물론양념듬뿍 ㅋㅋ)한국학자가 이순신장군에 빚대어 각색한거임
지금 기술로도 쇠사슬을 이용해 그 당시 배를 못막습니다. 하늘이 도왓다는게 그 해답이죠. 그냥 이길수 있지 않을까? 라는건 이분한테는 통하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완벽주의자 이시니까요. 이겨놓고 해전을 하는게 이분의 전승비결 아닐까요?
선조ㅋㅋㅋ 진짜 인간이 어디까지 찌질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ㅋㅋ
선조 새끼 중국한테 사대하는것 보면 누가 떠오르네
@@wmemsq 열병식에 다녀온 그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선조는 아니 이균은 견자다!아니 견이라는 단어도 쓰기 아깝다!
이균... 원균...!!?
@@김영현-j2w 선조 휘 즉 이름이 균입니다!
@@JKLEE-dc7lj 저도 선조 이름은 오늘 처음알았네요ㅋㅋ 이균 원균 쌍균이 나라말아먹을뻔했네요
오~그래요?!^^
대한민국역사학자 넘버1황현필선생님
늘이해하기쉽게 팩트를설명하시는 선생님
예전에 임진왜란 책 보는데 책 출판 당시에 불멸의 이순신 방영할때여서 작가가 칼의 노래 김훈작가는 난중일기도 안본 사람일것이라고 겁나게 까대는거 본 기억나네요. 그리고 저는 영화 명량보면서 그 심정을 알겟더라구요.
김훈이? 그건 모르겠고
영화 명량은 공부 많이 했다고 인터뷰한 걸 기억해요.
다만 영화화 하면서 극적이게 만들기 위해서 상상력으로 많이 대체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전투 장면은 자료는 부족하고 사료대로 영화 장면을 만들면 시간을 채우기도 어렵도 영화적 재미를 살리기 어려워서 많이 바꿨다고... 그랬대요~
감사합니다~^^♡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친다는 말씀에 동의
지난 영상보고 영화 명량을 다시 봤습니다. 극장에서 좀 지루하게 봤는데 강의듣고 보니 더욱 가슴아프게 봤네요. 국사공부 다시하는 마음입니다..
진도군 녹진 나리에(진도대교 교각부근) 예전에 유인등대가 있었고 그 등대에 유류와 보급품을 전달하면서 조류가 쎄서 보급선을 연결하는 철쇄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도 중학교 소풍가서 그 철쇠의 잔재를 분명히 목격하시고 명량해전의 철쇄를 믿으시나, 명량의 거센조류의 유속에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진도촌놈-
억추 후손들 진짜 억지부리면서 추하기까지 하네
명량대첩에서 쇠사슬로 상대 전함들 깼다는 건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이 제방 쌓은 다음에
타이밍 맞춰서 터트렸다는 거 만큼이나
과학적으로 불가능... 시대상황 고려할때
저 토목공학과 출신인데 예전에 교수님한테
살수대첩 당시 제방 만든거 팩트냐고 여쭤봤다
오지게 까였음ㅋㅋㅋㅋ
근데 쇠사슬이 해전에서 사용된적은 있지 않음?
우리나라 말고 서양 전쟁사에서
@@mblee3358 비잔티움의 골든혼 말씀하시는거 맞습니까?
제방을 쌓았다는건 뻥에 가까운 얘기이고 적이 후퇴하면서 도하할때 공격이라고 봐야겠죠
@@박동욱-c3q 네 다시 보니까 맞네요 토전사에서
동로마 콘스탄티노플 얘기 언급될 때 들었었는데
그거랑은 다른 메커니즘인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40대중반 외국에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인해 선생님 유투브 방송 다 봤네요 선생님의 강의하는눈빛이 제가 일하는 모습과 비슷하셔서 항상 웃으며 보고 있습니다 제가 1993년도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제 고등학교 친구중 유대인 터키 대만 헝거리 일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너무 유사한 점이 많은거에요 대만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이니 비슷한데 왜 터키 유대인 헝가리는 우리와 비슷한 음식과 언어 문화가 있을까 이 의문이 그당시 10대인 저를 전공과 상관없이 역사공부가 제 취미가 되버리게 하더라고요 구약성서이전의 고대사에 심취하다 고조선 부여 몽골 역사에 관심이 가다 백제에 관심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왜나라 일본역사에 관심이 가지더라고요 그래서 틈만 나면 전 세계 50개국을 다니며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연구했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우리가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보듯이 일본의 역사는 사실 백제의 역사라 생각이 드는데 선생님께서 한일의 갈등을 해소하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역사는 같은 왕조국가이며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거 처럼 일본이 백제를 계승한 역사로 보는 그럼 대한민국과 일본은 더이상 미워하지 않을꺼 같다란 생각이 듭니다 반일반중이 만연한 요즘 선생님께서 일본에 대해 발해를 꿈꾸며처럼 일본을 그렇게 바라보는 역사강의를 해주시면 안될까요? 요즘 너무 조선족 일본 중국을 싫어하는 문화가 많은거 같습니다 제가 역사 전공자가 아니라 선생님의 레슨을 받고 싶네요 제 바램은 청나라를 계승한 중국 고구려 신라 백제가 있었던 대한민국 가야 백제를 계승한 일본 다 동의족이란 사실을 한중일이 알았으면 합니다 역사공부로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강의가 부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되길 기도합니다
저는 그런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지고있는
일본인,중국인이 밉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을 용서한다는건,
인간이기 보다는 신성한 종교의 지도자 이지요.
선생님의 뜻 이해는 하지만,
좀 가증스럽게 보입니다.
불편하게 들으시라 글을적는 의도는 아니고,
저도 제의견을 한말씀드립니다.
선생님이나 그렇게 용서하세요.
분위기좀 파악하시며 말씀하시길.
일본 수출규제 영상 보고 덕후가 되어버린~
일본 수출규제 애프터 영상 한번 올려주심 안될까요?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보는 지금의 한일관계. 황현필 선생님의 고견이 듣고 싶습니다.
하아~~ 이순신장군님 관련영상보면서 이젠 안그럴때도 된것같은데 마음속 깊숙한 아득하게도 먼 곳에서 올라오는 이 벅참 식을줄 모르네요
선생님 소드 마스터편 척준경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03:31 아주 중요합니다.
03:31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안나오는게
특히 명량 영화가 고증 개판이라고 생각되는게 ...
전투 초반에는 그나마 배들끼리 엉키는걸 보여주면서 물살을 택한 이유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전부 무시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데우스 엑스 마키나격으로 회전! 회오리!!! 물살이 나오면서 끝내버립니다.
하......
개판입니다.
게다가 보면 왜선들이 이순신 대장선에 여러척 아주 잘 달라붙습니다.
중간에 피섬근방으로 갈땐 조류가 좀 약해져서 그런지 아예 4척에게 둘러싸이고 뒤에서 다른배가 대기(?)까지 하더군요
잘못된거죠...
명량의 전술은
1-11-1 포메이션이죠
대장선 -11척 - 골키퍼 ( 말씀하셨듯이 )
- 대장선이 쐐기역할을 하여 앞서나오는 1파 2파 3파의 배들을 깨부숩니다.
대장선은 가장 훈련이 잘 되어있을거고 이순신이 지휘하기에 가장 잘 싸웠을겁니다.
근거리로 접근하더라도 두세척 정도는 쉽게제압이 가능했을겁니다.
이순신 입장에선 적들이 한줄로 오니 정말 잡기 쉬웠을겁니다.
- 이순신에게 달려드는 배들 중 상당수는 물살이 쎄서 뒤로 가버렸을겁니다.
이때 거름막 역할을 하는 11척이 이 나머지 잡것들을 처리하지 않았을까요?
과연 11척이 겁쟁이처럼 뒤에서 가만히 있었을까요?
난파?된,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버린 배들이 이들 열한척에게 다가가지 않았을까요?
영화에서처럼 멀뚱멀뚱 있으면.. 그냥 다 도륙당했겠죠.
근데 30척도 넘는걸 이순신 혼자서 처리하는것처럼 묘사했더군요.. 흠...
분명 뒤에서 함포를 쐈을겁니다. 겁쟁이라 할지라도.
-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들은 뒤에 골키퍼와 어선들이 처리
멀쩡한배는 골키퍼역할을 하는 한척이 돌아다니며 처리했을거고
물에빠져 조난당한 왜놈들은 어선들이 모두 처리했겠죠
이 과정이 1~3시간동안 빠르게 진행되었을겁니다.
마치 볼링장에 기름칠을 해버려서 볼이 핀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빠져버리듯이
구루지마와 와키자카는 배를 보내는 족족 삼천포로 빠져버리고 대장선을 제대로 못노려서 손실을 많이 봤을겁니다.
쇠사슬은 100퍼 소설입니다. 물살과 사슬에 걸린 배의 장력을 버틸수가 없음.. 더군다나 사람 힘으로?? 수천 수만명이 달라 붙어서 제어가 가능했다손 쳐도 그당시 제철기술로 만들어낸 쇠가 장력을 유지한다?? 지금도 침몰한 배한척 건져올리려면 사람 몸통만한 와이어를 수십개 걸고도 터질까봐 물살 빠를때는 작업을 못하는데 ..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부정적이라고 설명하시는데...
@@nosang2002 그니깐요?? 부정적이라는 말에 동의 한다는 소리인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