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정의는 약자와 가난한 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자와 가난한 자가 주어가 아니라,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자가 주어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뜻은 강한자와 부자들은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공의와 정의입니다. '약자=절대선'이라 주장하는 일부 과격주의자들은 잘못입니다. 과격주의자들이 성경의 뜻을 곡해하여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자기 권력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순간 그 약자는 강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강자는 상대편에 선 약자를 역으로 배려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거죠. 인간의 악한 속성을 잘 파악하여 성경의 뜻과 본질에 따라 '권력'이 아닌 '배려'에 방점을 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세상의 법정은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권력가들의 편에 섰기에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본문은 레위기 19:15에 근거하여 가난한 자를 유능한 자로 교정하여 읽어야 한다고 월터 브루그만은 주장합니다. 저도 그러한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먄, 중요한 문제는 재판을 받는 사람의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불의와 불공정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도 재판에서 정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태초에 예수가 계시니라 ! 곧 예수 곧 태초에 말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예수 곧 곧 말씀이 영이시요 영원의 신과 함께 하셨드라 ! 호화로운 전에 앉아 어느 누가 ! 거울아 거울아 ! 세상에서 어느 누가 제일 예쁘니 개들에 자유를 ! 견공과 사랑에 빠져서 그 나라에 조서를 내려 힘없고 빽없는 민초의 사육장 생업의 개들 조차 빼앗아 견공을 후이 대접하고 만들어 자유를 주었으나 오히려 민초는 들개 처럼 방치하며 자유를 빼앗어려 하드라 ! 우리는 여호와 그를 예수라 부르기로 했다 새 이름 !
맞아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편에서는 것이 곧;
약자와 가난한자의 편에
서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
Halleleujah amen입니다
감사합니다
공의와 정의는 약자와 가난한 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자와 가난한 자가 주어가 아니라,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자가 주어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뜻은 강한자와 부자들은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공의와 정의입니다. '약자=절대선'이라 주장하는 일부 과격주의자들은 잘못입니다. 과격주의자들이 성경의 뜻을 곡해하여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자기 권력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순간 그 약자는 강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강자는 상대편에 선 약자를 역으로 배려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거죠. 인간의 악한 속성을 잘 파악하여 성경의 뜻과 본질에 따라 '권력'이 아닌 '배려'에 방점을 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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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약자가 꼭 의로울꺼라는 보장은 없으나~ 강자가 의롭지 못할 경우는 비일비재 하다.
약자와 강자가 송사를 할때,
의도적으로라도 강자에게 핸디캡을 주는 것이 공평하다!
송사에서 핸디캡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고, 성경도 그런 점에는 조심하라고 지적하지요. 다만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 보장 같은 문제에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것은 좋겠지요
성경을 많은 자료를 찾아 가면서 공부하는
사람에겐 아주 유익한 참고네요
왜 좀 더 일찍 성경을 파며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의 길을 노력하며 살지않았는지
그랬으면 생각으로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짓는죄를 좀 줄이지 않았을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림이 넘 좋고 실감나네요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응원 감사합니다😊
상위 5%의 사람들이 80%의 부와 소유를 가진,이 불의하고 처참한 현실에서 어찌 하나님의 사람들이 침묵합니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재 기독교는 권력자의 편에 선 주장을 자꾸 하기 때문에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의 입지는 자꾸만 줄어들 것이 에상됩니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현실입니다.
교회는 약자의 편에 서는게 아니라 정의와 공의 편에 서야하지 않나요?
현시대는 약자와 선을 하나로 보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이것을 그리스도인들의 매사 판단 기준에 두는 것은 매우 조심 스럽습니다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동안 기독교는 권력자나 강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자세를 취했지요. 그게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의와 공의는 바로 힘있는 편에 서는게 아니라, 바른 편에 서야 하겠지요
@@LogosCommunity 김정은과 그 피압박 민중들 중에 누구의 편에 서야 하나요. 탈북민들 강제북송 하는 정당이 정상적인 건가요.
공의 곧 정의 곧 일반 곧 평등 곧 재 분배
나그네와 과부 홀 아비
고아 소외 받는자
제자들이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드라 !
정의 공의 하늘과 태양빛 공기와 물이라 !
@@LogosCommunity
내용을 참 잘 정리하셨네요. 희년 연구자로서 주빌리 정의에 대한 논문을 검색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회되면 희년을 좀더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두호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를 두호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권력자의 송사를 두호하는 경우가 많은게 현실이지요
@@LogosCommunity 이 부분에 대해 원어의 의미를 밝혀주시면 이해가 좀 더 명확할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세상의 법정은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권력가들의 편에 섰기에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본문은 레위기 19:15에 근거하여 가난한 자를 유능한 자로 교정하여 읽어야 한다고 월터 브루그만은 주장합니다. 저도 그러한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먄, 중요한 문제는 재판을 받는 사람의 경제적 상황이 아니라, 불의와 불공정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도 재판에서 정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레위기 19:15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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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든 편협치 말고
부하든
권력에 두둔치 말고
불의 하지 말며
공의 정의 평 평 평강 !
태초에 예수가 계시니라 !
곧 예수 곧
태초에 말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예수 곧
곧 말씀이 영이시요
영원의 신과 함께 하셨드라 !
호화로운 전에 앉아
어느 누가 !
거울아 거울아 !
세상에서 어느 누가 제일 예쁘니
개들에 자유를 !
견공과 사랑에 빠져서
그 나라에 조서를 내려
힘없고 빽없는 민초의
사육장 생업의
개들 조차
빼앗아 견공을
후이 대접하고 만들어
자유를 주었으나
오히려
민초는 들개 처럼 방치하며
자유를 빼앗어려 하드라 !
우리는 여호와 그를
예수라 부르기로 했다
새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