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독립기념관’ 245억 들여 종로에? 이순신 동상 치우려고? 탑골공원 밀어 버리려고? / 일본이 이시바를 선택한 이유는? 일본 정치인들도 질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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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 ต.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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ความคิดเห็น • 22

  • @오남석-x3i
    @오남석-x3i 2 วันที่ผ่านมา +16

    이시영 응원해요!!!!!
    모처럼 의식있는 배우 발견했네요. 앞으로 쭈욱 팬 될께요!!!!

  • @힘들땐쉬었다가자
    @힘들땐쉬었다가자 5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송작가 티비 다같이 독도가서 실시간 방송 한번합시다

  • @user-fc8dq1ik3c
    @user-fc8dq1ik3c 2 วันที่ผ่านมา +6

    이시영님 응원합니다

  • @구지만-m3h
    @구지만-m3h วันที่ผ่านมา +4

    일본에 별로 유감 없었는데 이정권 들어서면서 일본 싫어진다

  • @짬타이거-d5t
    @짬타이거-d5t 2 วันที่ผ่านมา +3

    이시바를 확정했다지만
    그사람의 말은 중요하지만
    과연 행동으로 보여줄까? 자민당인데?

  • @서형미-t8d
    @서형미-t8d วันที่ผ่านมา +3

    윤거니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라,,

  • @서준맘-m7g
    @서준맘-m7g 13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무장항일운동이라니.진짜 대단하다.윤씨.

  • @오드리최-e2o
    @오드리최-e2o 16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오늘도 휴방😰❓️❓️❓️

  • @구지만-m3h
    @구지만-m3h วันที่ผ่านมา +1

    나라에 돈 없다. 지을거면 사비털어 지어라

  • @ksk8475
    @ksk8475 วันที่ผ่านมา

    4. 임무 완료[편집]
    하지만 개인이 군대를 꾸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재산까지도 수비대 유지에 날려버린 홍순칠은 계속 자신들의 업무를 정부에서 맡아주길 요청했지만 정부에선 근무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난색을 표하기만 했고 배속된 경찰들은 근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항의가 거세짐에 따라 한때 홍순칠이 해적이란 주장이 제기되어 홍순칠을 주한미군이 체포하여 한국 정부에 인계하기도 했다. 홍순칠은 자신이 전재산을 바쳐 독도를 지켰다고 국회의 청문회에서 주장했고 청문회는 홍순칠에게 동정적으로 바뀌어 정부가 뭘 했길래 애국자를 해적으로 몰았냐고 내무, 외무, 국방장관에게 항의하는 지경에 이르러 홍순칠은 석방되었다.
    1956년 12월 30일 마침내 기존의 업무를 국립경찰 소속 독도경비대에 인계함으로서 이들의 기나긴 임무는 끝이 났다. 이 공로로 홍순칠은 1966년 5등 근무공로훈장을, 나머지 대원들은 방위포장을 수여받았다. 10명의 의용수비대는 경찰 소속으로 전환하여 그 뒤로도 근무를 계속했다. 그러나 임무를 마친 뒤에도 이들은 독도 방파제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는 등의 독도 지키기 및 독도 가꾸기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5. 고난[편집]
    일본과의 교전 중에선 사상자가 없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전달한 위문품을 받는 과정에서 위문단 한 사람이 놓고 온 카메라집을 가져다 주던 중에 허학도 대원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허 대원은 경찰을 지망하고 있었는데, 사망 후 그의 귀신을 봤다는 대원들이 나타나자 경찰 정모와 근무복을 구해와 그의 위령제를 지내주고 나서야 목격담이 사라졌다고 한다.
    독도에 수비대원들이 지낼 막사와 계단 등을 만드느라 허위로 징용영장을 만들어 울릉도의 목수와 기술자들을 불법으로 징용하여 수비대 기지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술자 몇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 군자금의 부족이 심각하여 제주도 해녀들을 불러 해물을 채취하여 팔아서 군자금을 마련하려 했지만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정도라서 그만두어야 했다.
    이들은 1969년과 1972년 독도개발 계획서를 경상북도에 제출하며 실효적 지배 강화를 거듭 촉구했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들의 존재가 일본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여기며 부담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결국 홍순칠 대장은 1974년 12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당했다. 중정의 요구는 더 이상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그의 오른손을 부러뜨리기도 했다고 부인 박영희 여사가 전했다. 그가 고초를 겪었음에도 언론은 정권의 통제로 보도하지 못했고, 훗날 '국가정보원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또한 신군부는 1980년대 초 그가 독도 지킴이로 북한 방송에 소개되자, 그를 즉각 체포해 극렬한 고문을 가하여 간첩 조작을 하려 했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홍 대장은 1985년에 서울로 이주했고, 1986년, 폐암으로 숨졌다. 박정희 때처럼 일본 등 외국 차관에 의존했던 전두환 정권은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민간인 출입을 막았고, 심지어 노래 ‘독도는 우리땅’을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2012년 한겨레 칼럼)
    5.1. 논란[편집]
    1. 2006년 오마이뉴스에서 독도수비대에 대한 위와 같은 내용이 사실은 과장되었다는 보도를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미 2000년부터 김점구 독도수호대 대표가 울릉도-독도 학술 뗏목탐사 당시 '가짜 대원설'도 주장했고, 2007년에 감사원이 재심사 처분을 시사하여 국가보훈처 산하에 '독도의용수비대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으나 별 성과 없이 이듬해에 활동을 멈췄다. 1 23 반론
    2. 독도의용수비대의 창설시기가 1953년이 아니라 1954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토보호를 목적으로 1954년 정부 보조없이 단독으로 울릉도 출신 대원 30명을 모집하여 다액의 사재를 들여 1956년 8월까지 독도를 수비하여 3차에 걸친 교전을 통하여 일본의 일본의 침입을 방지함으로서 대한민국 영토수호에 헌신 노력하였음" - 총무처 작성, 1966.4.6
    그러나 국가보훈부는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독도경비대원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
    2017년 10월 27일, 국가보훈처(현재의 국가보훈부)는 울릉도에서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개관식을 열고,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기념사를 했다. 기념관은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활동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년 8개월 동안 33명이 활동"했다는 내용은 당시 수비대장이었던 홍순칠의 수기 에도 기록돼 있으며, 홍순칠의 수기는 병적기록, 경찰인사기록, 외무부 발행 독도문제개론, 영토표석 관련 문서철(국가기록원 소장), 경상북도 경찰국 조사보고서 등에서 확인 가능하다.
    6. 이후[편집]
    정부는 이들의 공로를 인정해 1996년 4월 홍순칠 대장에게 국가보훈 삼일장을 추서하고, 나머지 대원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2005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을 토대로 2008년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했다.
    현재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도 의용수비대 묘역에 잠들어있다.[3][4]

  • @원더크로니클
    @원더크로니클 วันที่ผ่านมา

    너무 휴방이 잦아져서 힘들어요 ㅜㅜ

  • @이경숙-p4h1o
    @이경숙-p4h1o 2 วันที่ผ่านมา +4

    큰일이내

  • @ksk8475
    @ksk8475 วันที่ผ่านมา

    대마도와 오키나와도 우리나라땅.

  • @서준맘-m7g
    @서준맘-m7g วันที่ผ่านมา

    진짜 못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