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men who are adored by the royal family and loved by Joseon's Jeongjo/The Red Sleeve

แชร์
ฝัง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2 ส.ค. 2024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66

  • @user-yj9vp2vt5h
    @user-yj9vp2vt5h 2 ปีที่แล้ว +15

    옷소매붉은끝동 드라마에서 덕임의 친구로 나오는 궁녀들도 모두 실존 인물들 이었군요 ~ 재미 있는 사실 알아 갑니다~~ ^^

  • @user-zv1nr8nb7g
    @user-zv1nr8nb7g 2 ปีที่แล้ว +171

    사도세자가 비극적으로 죽고 혜빈 슬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더욱 돈독했을 듯

  • @reolee-gk2gx
    @reolee-gk2gx 2 ปีที่แล้ว +45

    귀한자료를 병풍으로 만들뻔 했다는 소리에 저도모르게 히익!!! 하는 소리가 나왔었네요
    뉘신지 모르지만 고물상손에서 구해서 보존해주신 고서전문가 였던 분께 감사합니다

  • @hydia1390
    @hydia1390 2 ปีที่แล้ว +33

    혜경궁이 둘째딸 과부되고 어미 닮아서 그랬다는 부분보니 짠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안타까우면 어미가 자기탓 하는건 변함 없네요 울 엄마도 그런대 ㅡㅡ

  • @sora-ri8zr8lc8s
    @sora-ri8zr8lc8s 2 ปีที่แล้ว +10

    한복은 고급스러워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큼💜💜💜

  • @SARA-rb4qw
    @SARA-rb4qw 2 ปีที่แล้ว +6

    12~♡♡
    재미있어요 풀시👍👏🏽👏🏽👏🏽🌸

  • @user-fi8ox3dd3j
    @user-fi8ox3dd3j 2 ปีที่แล้ว +4

    역사서페설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수고많이합니다

  • @user-pl8kb4du2d
    @user-pl8kb4du2d 2 ปีที่แล้ว +6

    와우!!! 배경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 @user-fi8ox3dd3j
    @user-fi8ox3dd3j 2 ปีที่แล้ว +2

    역사패치참잘하십니다감사합니다잘보아습니다

  • @user-lh1db5ii6b
    @user-lh1db5ii6b 2 ปีที่แล้ว +5

    재밌게 잘보고있어요.감사합니다

  • @kdk7832
    @kdk7832 2 ปีที่แล้ว +7

    제니 무엇? 왜케 뿜뿜 하지 ♡-♡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58

    사도세자 서출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세요. 기록을 보면 일단 영조는 사도세자의 서출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에 정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 정조마저 임오화변 당시 만 10세였으니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절, 뜻하지 않게 요절하기라도 했더라면 영조가 울며 겨자 먹기로 사도세자의 서장자인 은언군을 후계자로 책봉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 이렇게 되었더라면 정말 역사가 또 어떻게 흘러갔을지 궁금하네요... ㅎㅎㅎ;;;
    1. 은언군 (숙빈 임씨 소생): 어쨌든 영조가 왕자로 봉해주고 혼인도 시켜 줌. 그런데 생활 보조는 안 해 줬는지 시전 상인들의 돈을 꾸고 갚지 않았다 탄핵되어 한번 제주도로 유배 갔다 돌아온 후 정신 차리고 공부도 좀 하고 정조와 좋은 사이 유지함. 그런데 그의 장남 상계군을 홍국영이 원빈 홍씨(홍국영의 여동생/정조에게 후궁으로 보냄)의 양자로 삼으려던 것이 문제가 되어 여기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 죽이라는 상소가 빗발 쳤지만 정조가 비호. 유일한 남자 형제로 (사도세자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내는 정치 쇼였던 것으로 보는 시각도 강하지만) 정조가 그를 자주 만나러 가는 등 형제애를 보여줌. 하지만 강화도를 탈출하려다 잡히는 등 은언군에게도 문제 소지가 될 만한 행동들이 제법 보였음. 결국 정조가 죽자 순조의 수렴청정을 시작한 정순왕후에 의해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사.
    정말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았죠;;; 그의 동생들은 일찍 죽어서 어쩌면 그 삶이 편했을지도요... 참고로 이 분이 철종의 조상입니다.
    2. 은신군 (숙빈 임씨 소생): 위에서 이야기한 은언군 제주도 유배 당시 같은 죄목으로 같이 유배를 갔다 1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병사.
    3. 청근옹주 (경빈 박씨 소생):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 없이 무난하게 살다 간 것 같습니다. 영조가 제때 시집 보내주고 순조와 헌종도 왕실 어른으로 그녀를 예우했다는 기록이 나오네요. 무난하게 살다 헌종 때 사망.
    4. 은전군 (경빈 박씨 소생): 돌쟁이 때 어머니가 아버지 손에 죽고 그 1년 후 아버지는 할아버지 손에 죽은 비운의 아이. 이로 인해 왕실에 대한 반감이 클 거라 생각한 사람들이 역모에 자꾸 끌어들이는 바람에 결국 정조가 사약을 내려 스무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사.
    간단하게만 쓰자면 이렇습니다. 여자인 청근옹주 빼고는 다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편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네요. 청근옹주도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임오화변을 당한 사도세자의 자식이라는 특성상 편치 못한 인생을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 @nobody02022
    @nobody0202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정조는 참 사람을.많이 아끼셨네여 ㅜㅜ

  • @zzang-mathis
    @zzang-mathis 2 ปีที่แล้ว +75

    영조가 사도 세자의 서출들에 대해 그렇게 까지 무신경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혜경궁 자녀들만큼 사랑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시기 놓치지 않고 섭섭지 않게 갖추어서 시집 장가 다 보내주고, 이후에 큰 허물이 생겨도 영조 성격에 비하면 크게 처벌하지도 않고 하는 것 보니.
    그냥 궁녀까지 건드리면서 만들어 내는 세자의 일탈에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났을지를 생각해보면 서손들에 대한 저런 무관심이 그나마의 애정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예전에는 몰랐는데, 실록 해석 이후의 자료를 보고 연구하게 되니까
    임오 화변 이후에 영조의 조치를 보면 영조가 정말 고민하고 철두철미하게 계산하게 행동한 것이 보이게 되네요.
    세자 폐서인 후에 세손을 효장 세자 호적에 입적시켜 후계자 지위 확실하게 해주고.
    이후에 사도 시호를 내리면서 금쪽같이 아끼던 며느리와 손녀들 보호해주는 등등.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2

      애초에 양녕대군처럼 유배를 보내지 않고 뒤주에 가둬 죽인 것부터가 영조가 오래 전부터 계산한 방법인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이 양녕대군 유배 후 충령대군을 택한 건 사실은 종법 위반입니다. 장남의 장남, 그러니까 양녕대군의 장남을 왕세손으로 봉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양녕대군은 죄인으로 유배 보냈으니 그 아들도 죄인이라는 연좌제 적용이 가능한 거죠.
      만약 사도세자를 기행을 일쌈는 일 중 하나라도 크게 지목해서 유배를 보내거나 사사를 한다면 정조도 죄인의 아들이니 연좌제로 죄인이었습니다. 물론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키기는 했지만 사실은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냐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겠죠.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기행을 일쌈는 아들을 혼내 주다 아들이 그만 죽어버리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들이 하도 기행을 일쌈고 다니니까 혼내주려고 뒤주에 가둬 두었는데 그만 아들이 아사해 버렸네요? 난 죽을 줄은 몰랐죠. 그런 거죠. 그리고 아버지가 혼내주다 그만 죽어버렸으니 죄인은 아니고 이제 장남(효장세자)의 장남을 왕세손으로 봉하는 건 종법상 딱 맞네요? 8일 뒤인 윤5월 21일 아사한 세자의 죽음이 확인되자 세자의 위호(位號)를 복구하고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내용) 이러니 정조는 아버지한테 혼나다 그만 죽어버린 사도세자의 아들일 뿐 죄인의 아들은 아니에요. 심지어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양까지 간 상태네요?
      그래도 친아들이라고 못 죽이겠어서 양녕대군처럼 유배 보내면 내가 죽은 후 왕이 된 정조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에, 그리고 유교사회 조선에서 보여주기식 효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궁으로 모셔오거나 모셔오지는 못해도 최소한 유배는 풀어줘서 양녕대군처럼 지 놀고 싶은 대로 활개 치고 다니면서 놀고 다니고 왕인 아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좌지우지하려고 하겠죠? 정조도 제아무리 자신이 왕이라도 아버지를 단속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테고요. 세종은 아버지가 아닌 형인데도 결국 죽이지 못하겠으면 유배라도 보내라는 상소가 빗발 쳐도 끝까지 감싸주었는데요?
      정치 9단에 온 조선의 역사를 다 꿰뚫고 있는 영조가 이걸 다 꿰뚫어 보고 벌인 완벽한 시나리오가 임오화변이었던 것입니다. 미천한 신분 출신 모친 소생 아들에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 속에서 왕이 된 사람이 자신의 학문과 정치력으로 신하들을 제압한 사람이에요. 다만 한가지 궁금한 것이 사도세자보다 동생 중에 남자 형제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랬더라면 영조가 어떻게 했을지는 살짝 궁금하긴 합니다. 예를 들어 화완옹주나 숙의 문씨 소생 두 옹주들 중 충령대군처럼 똑똑하거나 똑똑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기행은 일쌈지 않는 아들이 있었더라면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령대군을 선택한 태종처럼 영조가 그렇게 했을 법도 한데, 양녕대군의 장남은 그렇게 똑똑했는지 여부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사도세자는 기행을 일쌈지만 정조처럼 똑똑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세자 남동생 중에서도 그럭저럭 쓸 만한 인간이 있었다. 그랬더라면 정치 9단인 영조가 어떤 일을 벌였을지가 살짝 궁금하긴 합니다.

    • @user-ni2zx1tq4m
      @user-ni2zx1tq4m 2 ปีที่แล้ว +1

      '

  • @user-ft3vb3iq5b
    @user-ft3vb3iq5b 2 ปีที่แล้ว +30

    정말 잘 봤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내용을 올
    려주시니 부탁드리게 되네요 이번엔 할아버지
    영조의 계비이자 의붓 새할머니인 정순왕후 김
    씨에 대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 @hilljun2822
    @hilljun2822 2 ปีที่แล้ว +10

    썸네일을 보면서 생각한거 " 여동생이 제니면 아낄수 있지."

  • @user-vm9bs2lq6b
    @user-vm9bs2lq6b 2 ปีที่แล้ว +11

    퇴촌을 잘 아는데 한번도 청선군주묘를 들은 적이 없어서 찾아봤더니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 있다네요.

  • @shinjin2319
    @shinjin2319 2 ปีที่แล้ว +7

    여성왕족들의 이야기..신선하고 좋네요!

  • @user-oi5nw2zz1w
    @user-oi5nw2zz1w 2 ปีที่แล้ว +11

    제니가 여동생이면 누가 안아낄까요??? ㅎㅎ

  • @LOVE-zw8ip
    @LOVE-zw8ip 2 ปีที่แล้ว +20

    영조 자신도 서출이면서 차별을...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2 ปีที่แล้ว +4

      서자 컴플렉스 란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사도세자가 정성왕후의 몸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조가 적장손이라 총애한 이유도 있습니다. 세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세자를 죽였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세자의 조현병이 영조로 인한 것이란 것은 깨닫지 못하였나 봅니다.

    • @zzang-mathis
      @zzang-mathis 2 ปีที่แล้ว +7

      @@inyeobseo9369 어지간하면 단정짓지는 않는 편인데 정성왕후의 몸에서 태어났으면 더 사이가 좋지 않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정조와 여동생들이 총애받은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합니다.
      며느리인 혜경궁을 영조가 정말 사랑했거든요.
      사랑하는 며느리의 자식이었기 때문이에요.
      정조의 이복 동생들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영조로부터 애정은 받지 못했던 것이죠.
      정성왕후와 사이가 정말 좋지 않았던 영조에게 정성왕후에게서 난 자식이 있었으면 분명 더 고깝게 여기고 구박했을 것입니다.
      세손에게 물려주기 세자를 제거했다는 표현은 저도 동의합니다.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9

      개인적인 생각엔 사도세자의 서자들은 서자라서 미움 받았다기보다는 공부에는 관심 없고 여인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사도세자에 대한 미움이 곧 그들에게 향한 거라고 보시면 된다고 봅니다.
      만약 사도세자가 정조처럼 학문에 힘쓰는 영조의 입맛에 딱 맞는 모범생 세자였다? 세자빈이랑 금슬도 좋고 정조라는 학문에 힘쓰는 훌륭한 적장자까지 있다? 영조가 사도세자가 후궁을 들여도 영웅호색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남자 왕족의 씨가 말라가던 조선 왕실에서 왕손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좋아했을 겁니다. 저 서출들도 영조의 각별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예쁨 받았을 거고요.
      그런데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고 사냥이나 하러 다니고 친우들이랑 술이나 먹고 다니는데 미천한 신분 출신 나인들을 건드리고 다니니 그 결과물인 서출들이 미워 죽겠는 거죠. 전 이게 원인이라고 확신해요. 그렇게 치면 사도세자도 서자에요. 그런데 영조가 사도세자의 모친의 신분이 미천하다며 싫어하기는커녕 어려서는 아주 예뻐 죽었었죠.

  • @idolman73
    @idolman73 2 ปีที่แล้ว +8

    내용은 몰것고 썸네일땜시 들어왔다..ㅋㅋㅋ

  • @1fgd8hug4vjbwfvvcchvdfc
    @1fgd8hug4vjbwfvvcchvdfc 2 ปีที่แล้ว +4

    메인이 제니네

  • @user-py6kk9hb1n
    @user-py6kk9hb1n 2 ปีที่แล้ว +8

    중간에 사도세자가 추증됐다고 나올때 장조가 장종으로 표시되었어요~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2 ปีที่แล้ว +1

      처음엔 장종으로 하였다가 곧 장조로 개칭이 됩니다. 조가 왕조의 중간에 나오면 안되는데 고종은 대한제국의 5대조를 영, 장, 정, 순, 문조로 개칭을 합니다. 이성계가 5대조를 추존한 방식입니다. 철종과 헌종은 고종과 동항렬이라 존속합니다. 고종이 문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그렇습니다. 진종은 정조의 부친으로 인정하지 않은듯 합니다.
      정조가 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뜻은 백부 효장세자의 아들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 @user-wg7mq7nk8i
    @user-wg7mq7nk8i 2 ปีที่แล้ว +6

    썹네일에 제니가 보여서 들어왔습니다

  • @user-sm5mf4ib5b
    @user-sm5mf4ib5b 2 ปีที่แล้ว +14

    영조와 폐숙의 문씨 사이에서 난 자녀인 화령옹주와 화길옹주 관련 영상도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2 ปีที่แล้ว +3

      화령은 정조보다 한 살 어린 고모로 모친의 사사에도 정조가 보호해줍니다. 화령이 죽은 해가 1821년 효의왕후와 같습니다. 화길은 영조보다 4년 전에 죽어 모친의 화를 보지 않습니다. 일찍 죽은게 복이죠. 순조대에 모든 왕실 여인이 죽어 순원왕후가 최고 어른이 됩니다. 재수가 좋은 왕비입니다.

  • @bcheong1881
    @bcheong1881 ปีที่แล้ว

    청근현주(옹주추존)도 올려주세요

  • @BTS_MYGSUGA0309
    @BTS_MYGSUGA0309 2 ปีที่แล้ว +6

    제니?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2 ปีที่แล้ว +12

    세손이 기생방에 간 것을 사위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혜빈의 사고는 잘 되면 내아들 탓, 못된 것은 남의 아들 탓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 시기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한 홍인한, 정후겸의 공격이 심한 때라 세손이 영조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한 시기입니다. 이때의 원한으로 화완옹주가 유배를 간 것으로 보입니다. 혜빈은 옹주가 세손과 영조를 이간질하는 것을 가장 우려합니다. 다행히 이 시기 정순왕후는 세손의 편을 든 것으로 보입니다. 홍국영이 정조의 세자를 은언군의 아들 상계군으로 추대한 것은 지금 봐도 대역무도죄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상계군이 죽게 되는데 의문의 죽음입니다. 이런 일에도 정조는 은언군을 친동생 처럼 아꼈다고 합니다.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

      다만 은언군을 친동생처럼 아낀 것처럼 행동했던 건, 당시 남아 선호가 강했던 풍조 속에서 "정말로" 아낀 것인지, (남자 형제가 없으니) 백성들에게 보여주기식 형제애였는지 의견이 분분하긴 해요. ㅋㅋ 특히 동생에 대한 애틋함=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애틋함 표출인 거죠.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무게감을 싣고 있습니다.

    • @zzang-mathis
      @zzang-mathis 2 ปีที่แล้ว +8

      @@user-uo6ih8ur1t 저도 동의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진정으로 은언군을 생각한다면 요란하게 만나서 화제의 중심이 될수록 은언군은 더 위험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정치 9단의 정조가 그 사실을 몰랐을리 없고
      정말 애틋하게 생각했다면 그냥 귀양지에서 불편함없이 살 수 있도록 잘 챙겨주기만 하는 것이 더 나았죠.
      정 보고 싶으면 은언군은 몰라도 조카들만 가끔 만나는 정도로 지내도 충분했을 겁니다.
      형제애라는 것이 자주 못본다고 정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

      그리고 홍국영 그 새끼는 뭐 권력이라는 게 사람 미쳐 날뛰게 하는 거라는 건 알기는 하지만 정말 너무 천지분간 못하고 날뛴 것 같기는 합니다. 뭐 그 상계군 추대 사건이 일어난 건 1786년으로 1800년에 순조가 태어나기 전이기는 해요. 그러니 정조에게 아들이 없었으니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한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당시로선 1753년생인 효의왕후가 20대 중반에 불과한 나이로 언제 임신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자기 여동생을 으뜸 원자를 붙인 원빈으로 삼게 하고 중전에 준하는 예우로 들이게 하고... 물론 최종 승인은 왕인 정조가 내린 거긴 하지만 권세다 대단했다는 것은 알지만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날뛴 결과 결국 정조에게 팽당하고 행려병자 같은 모습으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거죠.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

      @@zzang-mathis 애초에 은언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출생부터가 영조의 꾸지람으로 공포를 느낀 사도세자가 낙태시키려던 걸 불쌍히 여긴 혜경궁 홍씨 덕분에 간신히 태어났고, 이후 영조가 그다지 미천한 신분 출신 나인이 낳은 사도세자의 서자, 서녀들은 좋아하지 않아 관심도 두지 않다 1762년 임오화변 이후 출궁 조치당한 것으로 나와요.
      정조가 1752년생, 은언군이 1754년생입니다. 한마디로 각각 만 10세, 만 8세 이후로 전혀 못 만났어요. 1771년에는 은언군이 은전군과 함께 시전 상인들에게 돈을 꾼 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당했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로 유배 갔고 그 곳에서 은전군은 풍토병에 걸려 죽었고요.
      정조가 왕이 된 것이 1776년입니다. 어렸을 때 같이 궁에 있었을 때도 사도세자가 기행을 벌이는 가운데 얼마나 형제간에 교류했는지도 몰라도, 저 시대엔 이복 형제가 있는 건 당연했으니 이로 인해 사이가 나쁠 이유는 없었지만, 정조 입장에서 만 10세 때 헤어졌다 (중간에 본인들 잘못으로 유배 간 것도 뻔히 아는 마당에)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재회할 수 있게 된 것이에요.
      물론 피붙이이니 헤어졌던 기간과는 상관없이 애틋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라면 친형제지간일지라도 어렸을 때부터 부대끼며 자란 수준은 아닐 것 같고,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을 것 같은데요? 님 말씀하시듯 "정말로" 은언군을 아낀다면 차라리 귀양지에서 불편함없이 살 수 있도록 챙겨주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안 만나는 게 더 나았어요. 그렇게 애틋하게 자꾸 만나면 좋은 건 딱 한가지, 정조가 자기를 죽이지는 않겠다는 거였죠. 실제 정조는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은언군을 끝까지 죽이지 않았고 결국 정조 사후 정순왕후가 순조의 수렴청정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죽죠.
      이런 정황을 볼 때 정조는 "정말" 은언군을 정치적인 쇼로 "이용"한 겁니다. 정조처럼 똑똑한 사람이 저걸 몰랐을까요? 백성들에게 사도세자에 대한 애틋함을 나타내고 싶었고, 정순왕후와 사이는 좋았을지언정 권력 관계를 놓고 자신이 우위에 서고 싶었던 거겠죠.

    • @zzang-mathis
      @zzang-mathis 2 ปีที่แล้ว +3

      @@user-uo6ih8ur1t 일단 제주도에서 사망한 것은 은전군이 아니라 은신군입니다.
      그리고 님 말씀에 오류 아닌 오류가 있는 것이 은언군이 출궁 이후에 정조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어요.
      일단 어렸을 때는 제껴두고 제주도 유배갔을 때 까지 10년간 은언군이 정조를 만나지 못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기록도 없구요.
      은언군이 죄인도 아니고 어엿한 왕실의 인사이고 벼슬까지 하고 있는데 형에게 문안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죠.
      그리고 20대 중반이 아니라 만 20세에 제주도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 상계군 사건이 터진 이후 13년 이나 한양에서 지냈는데,
      무조건 남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네요.
      어렸을 때 왕실 어른들과 부모 사랑도 받지 못하면서 자란 이복 동생에 대해 정조가 안타깝게 생각하며 애틋하게 생각하며 아꼈을 가능성도 충분히 높으니까요.
      출궁한 은언군의 생활까지 친정을 통해서 챙겼던 혜경궁의 성격을 정조가 닮았다면...
      물론 이것도 추론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님 의견과 거의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단 저는 님과 의견을 같이 하기는 하지만 그 부분은 명확한 기록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전후 사정에 의한 유추 추론이기 때문에 너무 단정짓는 것은 성급해 보입니다.

  • @user19875
    @user19875 2 ปีที่แล้ว +6

    역사패치님 썸네일 여배우분 누구인가요? 너무 궁금해요 ㅜㅜ

    • @user-hm1sq6un6l
      @user-hm1sq6un6l 2 ปีที่แล้ว +5

      걸그룹 블랙핑크 제니 예요~

    • @user19875
      @user19875 2 ปีที่แล้ว +4

      @수혀니마미 엇 진짜 제니인가요? 제니가 찍은 사극 없는지 찾아보니 못 찾았아서 제니 아닌가했어요.. 혹시 출연작품 아실까요?

    • @user-hm1sq6un6l
      @user-hm1sq6un6l 2 ปีที่แล้ว +2

      @@user19875 화보나 예능 아닐까요?드라마출연은 아직 없는걸로 압니다.

    • @HistoryKoreastory
      @HistoryKoreastory  2 ปีที่แล้ว +5

      블랙핑크 제니 맞습니다. 올린 후 급한 일들이 있어서 채널을 못 들어와 답변이 늦었네요. 사극에 출연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제니가 광고했던 호텔 광고에서 청선공주 역을 맡은 적이 있어서 이미지를 맞춰올렸습니다. 유튜브에 "제니", "청선" 같이 치면 나옵니다. ㅎ 광고를 이쁘게 찍었는데 고증이 조금 잘못되었던 광고였습니다. 문구는 장조의 막내딸 청선공주라고 되어있는데 사도세자는 후일 고종대에서 추존되는데 군주가 아닌 공주라고 언급한 점. 그리고 청선공주는 1756년에 태어나 11살인 1766년 정재화와 혼인을 하고 출궁해 하가를 했는데. 1771년이 배경임에도 머리를 올리지 않았고 출궁을 하지 않은 점. 초반 도입부에는 정조의 화성행차를 차용했는데 화성행차 시기는 1795년(정조 20년)이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 40살로 1남 2녀를 둔 어머니였다는 점. 역사적 디테일과는 상관없이 그냥 이미지만 차용했던 이쁜 광고였습니다.

    • @user19875
      @user19875 2 ปีที่แล้ว +3

      @수혀니마미님 찾아보니 파라다이스호텔 광고 풀버전에 나오는 장면이더라구요ㅎㅎ 정보주셔서 감사해요 😊

  • @wuv_pinks
    @wuv_pinks 9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썸넬에 제니 웅니가???!❤❤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0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날라리과 아들과 똑똑하고 “왕”인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극대화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영조도 정말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기는 했죠. 하지만 사도세자는 태생이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날라리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버지가 의사인데 아들은 아무리 공부하라고 잔소리해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미성년자가 담배나 피고 술이나 먹고 문제만 일으키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집안이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영조는 일개 의사를 넘어 한 국가를 책임 져야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국가를 생각해서 폭군의 씨앗이 보이는 자는 제거해야 했던 겁니다.
    다만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습니다. 정확히는 이 시대에는 남편이 부인의 처소에 들어야만 부부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해 볼 때 혜경궁 홍씨에 대한 사도세자의 총애는 매우 컸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10대 중반 이후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요.
    - 1744년 1735년생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혼인
    *정명공주의 후손인 왕가의 후손이자 할아버지 홍현보는 예조판서까지 역임한 명문가이지만 아버지는 과거 급제를 못해 명문가지만 다소 빈한하여 외척이 득세할 우려가 없는, 영조의 입맛에 딱 맞는 세자빈이었음.
    1. 의소세손: 1750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 만 15세, 이 무렵 합궁&대리 청정
    2. 정조: 1752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3. 은언군: 1754년생-숙빈 임씨 소생 (영조 분노 시작)
    4. 청연공주: 1754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5. 은신군: 1755년생-숙빈 임씨 소생 (영조 분노 폭발)
    6. 청선공주: 1756년생-혜경궁 홍씨 소생
    7. 청근옹주: 1758년생-경빈 박씨 소생 (영조 분노 대폭발)
    8. 은전군: 1759년생-경빈 박씨 소생 (영조 분노 화산 폭발-0-)
    *1762년 임오화변 발생
    이건 인터넷 찌라시일지도 모르지만 2번 유산도 했다네요. 한마디로 무사히 태어난 아이들이 2남 2녀인 것이지, 1749년 합궁한 이후 남편이 사망하는 1762년까지 약 13년간 무려 6번을 임신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년에 1번은 임신했다는 것이니, 임신 기간, 출산 후 바로 부부 관계를 못 갖는 기간까지 감안하면 사도세자가 얼마나 세자빈을 자주 찾았는지를 알 수 있네요.
    실제 영조 그 성격에, 본인이 정성왕후에게 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세자가 세자빈을 찾지 않아 적통 세손이 태어나지 않으면 이로 인한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도 폭발했을 텐데 그런 기록은 일절 없죠. 영화 사도는 고증에 매우 충실한 영화인데 이 영화 속에서도 사도세자(유아인)가 광증을 나타내기 전까지는 세자빈(문근영)에게 매우 다정다감한 남편인 것으로 묘사되죠. 이것도 사료에 기초한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가 문근영 씨 같은 외모였으려나요? 그렇다면 왜 세자가 세자빈에게 다정다감한 남편이었는지, 누가 잔소리할 필요도 없이 그 처소를 자주 찾았는지가 이해가 갑니다.
    이로 인해 이 영상 속에서 이야기하는 청연이와 청선이도 태어난 것이죠. 그 중 한 부마랑 정조가 기방 나들이도 좀 하고요... ㅋㅋ 이거야 젊은 시절 일탈이 누구에겐들 없겠습니까. 이들이 아들이 아니었다는 점이 다소 아쉽습니다. 이들이 아들이어서 부계 혈통을 인정하는 유교 사회에서, 이들 후손이 더 있었고 철종보다 더 똑똑한 이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 @zzang-mathis
      @zzang-mathis 2 ปีที่แล้ว +4

      은언군이 청연공주 보다 먼저 태어났습니다.
      은언군(음력 2월), 청연공주(음력 7월)
      굳이 태어난 순서대로 적었다면 그 부분은 수정하시는 편이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

      @@zzang-mathis 앗~ 그렇군요. 전 그냥 위키백과에서 보고 둘 다 1754년에 태어났길래 그래도 정실 부인 소생을 먼저 적었죠. ㅎㅎ 숙빈 임씨가 연년생 낳은 것도 강조할 겸요. 그래도 태어난 순서로 수정했습니다>.

    • @user-zx7zf4vm5f
      @user-zx7zf4vm5f 2 ปีที่แล้ว

      갠적으로 사도세자와 혜빈홍씨가 금술이 좋았다는건 아닌것 같아요
      한중록을 보면 혜빈홍씨는 사도세자을 남편으로 생각하기엔 안타까움과 미움 섞인 감정으로 글을 쓴것 같았고 경증이 심할때 혜빈홍씨에게 재떨이을 던져 이마을 상하게 했다고 했어요 워낙 폭력이 심해 그누구도 말리지도 못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사도가 되주에 가두게 되는 과정까지 홍씨는 방광자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고 모른척 했어요
      오죽 정조가 서운했으면 화성행군때 아버지 묘비가 보이는데서 잔치을 했을까요 그리고 옛날 조선시대 왕손들의 잠자리는 의무였지 아무리 금슬이 좋다고 해도 아무때나 관계하지 않았어요
      정해진 택일외에는 합궁은 안되었지요

    • @user-uo6ih8ur1t
      @user-uo6ih8ur1t 2 ปีที่แล้ว +1

      @@user-zx7zf4vm5f 뭐 관점은 여러 가지니까요. 그렇게 사이가 틀어진 건 사도세자의 광증이 심해지고 나서이고요.
      다만 사도세자가 누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혜경궁 홍씨를 찾은 것은 맞습니다.

    • @eunieeeee1121
      @eunieeeee1121 2 ปีที่แล้ว

      그와중에 영조 분노게이지 계속 상승ㅋㅋㅋㅋㅋㅋ

  • @user-ks3in6gd4j
    @user-ks3in6gd4j 2 ปีที่แล้ว +1

    내용은 참 좋은데 굳이 저 썸네일 ㅎ 이구

  • @user-od1wd8tv5p
    @user-od1wd8tv5p 2 ปีที่แล้ว +1

    정조는 종으로 바꺼야됨

  • @user-dnfl5140
    @user-dnfl5140 2 ปีที่แล้ว +1

    근데 공주를 왜 군주라고들 하나요?

    • @user-bn3cm3qp1k
      @user-bn3cm3qp1k 2 ปีที่แล้ว +11

      세자의 딸을 칭하길 군주라 합니다.
      저 두 분이 청연공주 청선공주로 추존된 건 대한제국시기고요.

    • @MrQjxjths
      @MrQjxjths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왕과 왕비의 딸 = 공주
      왕과 후궁의 딸 = 옹주
      왕이 되지 못한 왕족(~군)의 딸 = 군주

  • @user-pp1wk4rw2u
    @user-pp1wk4rw2u ปีที่แล้ว

    해설이 좀 짜증난다

  • @Y2규소맘
    @Y2규소맘 2 ปีที่แล้ว +7

    재밌게 잘보고있어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