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종차적 차이와 달리 들뢰즈는 사물만이 가지는 개별성 즉 강도에 초점을 두어 차이 그 자체를 말했군요. 생각해보면 미분 할때도 같은 곡선 위에 있는 점들일지라도 점마다 그 미분 값이 다른데, 다시금 들뢰즈가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치밀한지 놀라고 갑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선생님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우선, 강도에 관하여 강의해주심 부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계속 이해하지 못하고있던 부분이였는데 덕분에 다시 책을 볼때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될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미지는 언어를 앞서간다고 말씀 해주셨는데, 이를 기의는 기표를 항상 앞지른다 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기의들 조차 동일한 것은 없고 늘 새로운 기의로 생성된다 라고 들뢰즈적 해석을 해도 괜찮을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들뢰즈는 들을수록 매력을 느낌니다, 왜 더 일찍 만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레도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알게되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차자료를 읽지 않아서 저의 이해가 맏는지 모르겠는데, 들뢰즈의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크리스테바의 코라의 semiotic과 유사한점이 있네요. 이미지는 우리의 경험이 언어로 해석되기전의 그 단계에 있는거 갔고, 언어의 해석을 넘어서며, 사건으로 다가오는 그때마다 차이를 통하여 상증계의 의미를 다시 해석할수 있게하는것? 크리스테바의 코라는 상증계의 의미를 다시 부여하고, 이 의미화 과정속에서 주체가 형성되가는, 그러니까 라캉이 상증계를 주체화의 운명적인 벗어날수 없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들뢰즈와 크리스테바는 주체가 이미지사건/코라에 의해 언제나 상증계의 의미를 다시 부여할수있는것으로 생각한건가요? 저의 이해가 오른건지 모르겠네요. 선생님 강의를 따라가다보면, 읽을께 산처럼 싸임...... ㅠㅠ
와~~ 댓글 덕분에 저도 연결지어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틀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크리스테바의 코라는 상징계를 재의미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코라, 기호계를 상정하지만 그걸 상징계 바깥(전상징계적. 물론 기호들이 침투하지만요) 놓기에 어떤 면에서는 상징계 질서를 일부 인정하지만 들뢰쇠즈의 차이에 기반한 탈영토화 재배치화는 그 권력장(상징계) 내부 자체에서 질서의 결함을 보이며 전복을 꾀한다는 점에서 상징계를 재의미화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면서도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ㅇ[차이와반복]중에 예도님이 주요하게 짚어주는 부분은 재현표상과 이미지의 차이군요. 칸트/헤겔과 베르그송/들뢰즈의 인식론상의 구별이라 여겨요. ㅡ끝부분에 들뢰즈가 라캉에게 비판적인 이유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판의 이유로 라캉의 기표의사슬 혹은 언어(문자)개념으로 뒤덮힌 의미화연쇄에서 주체의 인식(상징계에서)에 대하여, 들뢰드는 실재는 현상이고 그 현상은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들었습니다. ㅡ제가 아는 이해로 봤을때는 라캉의 이야기가 과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어도, 들뢰즈의 주장처럼 인식과 실재 사이의 현상은 이미지라는 취지는 적절하지 않다 여겨요. ㅡ생명체는 자신의 지각/인식에 있아서 이미지와 언어(개념)으로 한다고 볼 수 있지요. 1차적으로요.. 그러나 언어를 통해 진화한 현대인의 경우, 언어로 사유한다고 보게 됩니다. 일부 자폐아 등의 경우에 이미지 사고를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요. ㅡ무엇이 진리냐가 아니라, 기존의 표상과 재현의 철학에 어떤 대안을 가질 수 있느냐로 질문을 바꾼다면, 이미지를 통한 사유와 표현은 현실적이지도 적절한 대안일 수 없다 여겨요. 즉 언어개념을 이미지로 바꾼다고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ㅇ불교의 경우, 산자나띠/아비자나띠 란 개념이 있는데, 전자는 상(이미지와 언어개념)으로 보는 것, 후자는 여실히(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하지요. 용법은 "산자나띠 하지 말고, 아비자나띠 하세요."라 합니다. ㅡ고타마의 경우, 이미지와 언어를 구별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지요. ㅡ불교수행에서 중시하는 바는, 범주화 혹은 구별/분별에 있어요. 이미지든 언어든 개념화된 것을 상온이라고 하는데, 이마저도 허상인 자아라 여기지요. ㅇ이젠 상식으로 볼 수 있는, 실재는 없고 현상뿐이다에서, 전개된 논의는 현상도 없고 인식뿐인가?로 넘어가고 있는 듯 해요. 다른 표현으로는 실재와 현상, 인식이 모두 같다는 말이 되지요. ㅡ현재 제 생각으로는 베르그송/들뢰즈의 이미지 개념이 단단해 보이진 않아요.
ㅇ좀 다른 생각은 어때요? 베르그송의 이미지를 그림이미지(오감)와 언어(개념)이미지를 포함한 것으로 보는 방법이지요. 즉 베르그송의 이미지는 감각과 지각과정에서의 어떤 것을 상정한다고요. ㅡ그림이미지가 동영상(시청각)매체, 개념이미지는 언어(말문자)매체로만 본다면, 김샘의 이야기가 적절하겠어요. ㅡ제가 알기로 뇌신경과학쪽에서 이 단계는 1차감각으로 보더군요. 2차공감각단계부터는 사실상 언어개념으로 생각한다고 보더군요. ㅡ즉 그림을 통한 생각과 언어를 통한 생각으로 나눈다면, 전자는 동물과 자페아, 후자는 언어와 함께 소통하는 일반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ㅡ그렇다면, 유튜브나 음악미술까지 개념적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여겨요. 개념적 생각은 문자언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어요. ㅡ제가 문제제기하는 바는 결국 2차 공감각 이후의 인간의 개념사슬을 1차 이미지(감각범주과 개념범주)에서의 감각선호를 통해 해결되기 어렵지 않느냐의 문제제기를 담고 있어요. ㅇ또하나는 동영상과 글자매체는 그 매체의 특성의 문제로 구별하기 보다는, 정보와 전달측과 이를 이해하고 수락/거부하는 측간의 소통에서 어떻게 차이나는가를 보는게 좋을 듯 해요. 루만이 고민해둔 주제지요.
@@TaegyoonKim 네 제가볼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들뢰즈가 이미지 또한 언어처럼 코드화 개념화될수있는 영역으로 보았다고 생각되서요 들뢰즈의 이미지는 지각활동 그 자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개념화또한 동시에 이룰수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들어 더욱 각광받는것은 아닐까 싶어요 저희가 실제로 진행하는 연구도 이런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희는 이미 이미지가 문자와 동일하게 2차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까지 매개되고 있다고 봐요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상징적 상호작용이랄지. (미디어인류학 학생입니다)
@@seiikim7892 ㅇ그렇군요. 견문이 좁아서.. 다만, 들뢰즈가 라캉의 기표(문자, 상징) 사슬을 비판한 대목을 두고 말씀드린 바라, 그 비판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요. ㅡ만약 들뢰즈가 제 이해를 넘어 이를테면 개념적 생각을 그치고 감각차원의 이미지(생각)으로 살아라 고 한다면, 고타마의 조언과 맥을 같이 할 듯 해요. ㅇ2차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전제로, 이미지를 통한 생각이나 이를 통한 상호작용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다만 대단히 특별할 것이라 보지요. 예술쪽 같은.. 혹은 개인의 심리차원 정도 .. ㅡ일반적인 소통에서 본다면, 라캉이 짚어낸 언어의 사슬이 가진 위력이 비판받기 보다는 비중있게 보아야 하지요. ㅡ들뢰즈는 초인을 기대하는 듯 해요. 제 문제의식중 하나는 그러한 깨달은자이외에 평범한 일반인의 소통과 변화와 성장을 고민하고 있지요. ㅇ문화인류학은 접했는데, 미디어인류학이 있겠군요. ㅡ미디어를 공부하시면 기회되시면 루만의 소통이론을 살펴보시길.. 아실수도 있겠어요.
@@seiikim7892 ㅇ좀더 생각해보니 쟁점으로 문제꺼리로 놔둘 필요가 있겠어요. ㅡ제가 배우기로는 말씀드린대로, 인간은 언어로 생각한다고 배웠거든요. 몸짓(제스츄어)은 보조적이거나 이전의 방식으로 배웠지요. ㅡ한참전부터 '이미지정치', '이미지 표현' 등의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샘이 이야기한 이 충분히 짚어볼 만한 주제겠어요. ㅡ결국 소통이 개인의 마음(심리적체계)를 자극하여 어떤 생각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으니 의미/효과도 있겠네요. ㅡ견문을 좀더 넗혀 고민할 수 있는 자료나 개념어, 작자를 알려주시길..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직접 읽으면서 관련된 선생님 강의들도 같이 듣고 있는데 들을때마다 새롭게 들리는 게 참 신기합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차이와반복
아.. 선생님 정말 귀한 강의 입니다.
이런 수준의 강의를 한국어로 그것도 무료로 들을 수 있는게 행운이네요. 들뢰즈 강의를 다시 듣는 중인데 감탄이 나옵니다. 아무쪼록 늘 건강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대인님^^ 무료이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후원도 한번 고려해주셔요.
들뢰즈 철학은 인간의 진보에 추진력과 영감을 주네요 그리고 인간의 시선을 느낍니다 오늘 철학은 인간의 긍정적 아름다움이 선율을 타는 듯 하고.경쾌하고 힘찬 걸음을 봅니다.인간의 아름다움과 기하학도 보이고 셈세하네요. 강의 중반초입에 올립니다 강의 듣겠습니다
오~ 수년전에 했던 들뢰즈 강좌를 시청하시는군요. 방갑습니다. 용식님^^ 월드컵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 저 인상파 정말 좋아하는데 차이와 반복에 모네가 나오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물의 이미지들=차이가 반복되는 표상들 그 자체네요 정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오~ 다솔님^^ 발표 잘 하셨나요? 이쁜 햇살 쬐며 멋진 오후 보내시길요!
헤겔의 종차적 차이와 달리 들뢰즈는 사물만이 가지는 개별성 즉 강도에 초점을 두어 차이 그 자체를 말했군요. 생각해보면 미분 할때도 같은 곡선 위에 있는 점들일지라도 점마다 그 미분 값이 다른데, 다시금 들뢰즈가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치밀한지 놀라고 갑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생동감있는 강의 감사합니다 ~~
강도가 뭔지 대충 감이 잡힌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ㅎㅎ👍
ㅎㅎ 들뢰즈 시리즈 두번째 시청하시네요. 대단한 열정입니다. 일차자료도 함께 읽고 계시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추천합니다~
선생님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우선, 강도에 관하여 강의해주심 부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계속 이해하지 못하고있던 부분이였는데 덕분에 다시 책을 볼때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될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미지는 언어를 앞서간다고 말씀 해주셨는데, 이를 기의는 기표를 항상 앞지른다 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기의들 조차 동일한 것은 없고 늘 새로운 기의로 생성된다 라고 들뢰즈적 해석을 해도 괜찮을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지각 이미지와 행동 사이에는 개입이 존재, 그 안에서 정서! 와.. 그 안에서 강도!!!! 하등 동물은 그 정서의 강도가 약하다는 것을 봅니다. 벌레들은 강도 이전에 행동이 오는데 인간은 정서 가운데 강도를 경험하는데.. 와, 진짜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방갑습니다. 김셉님^^ 건강한 저녁 맞이하셔요!
들뢰즈는 들을수록 매력을 느낌니다, 왜 더 일찍 만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레도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알게되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차자료를 읽지 않아서 저의 이해가 맏는지 모르겠는데, 들뢰즈의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크리스테바의 코라의 semiotic과 유사한점이 있네요. 이미지는 우리의 경험이 언어로 해석되기전의 그 단계에 있는거 갔고, 언어의 해석을 넘어서며, 사건으로 다가오는 그때마다 차이를 통하여 상증계의 의미를 다시 해석할수 있게하는것? 크리스테바의 코라는 상증계의 의미를 다시 부여하고, 이 의미화 과정속에서 주체가 형성되가는, 그러니까 라캉이 상증계를 주체화의 운명적인 벗어날수 없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들뢰즈와 크리스테바는 주체가 이미지사건/코라에 의해 언제나 상증계의 의미를 다시 부여할수있는것으로 생각한건가요? 저의 이해가 오른건지 모르겠네요. 선생님 강의를 따라가다보면, 읽을께 산처럼 싸임...... ㅠㅠ
오~ 멋진 분석입니다. 혜나교수님^^
와~~ 댓글 덕분에 저도 연결지어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틀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크리스테바의 코라는 상징계를 재의미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코라, 기호계를 상정하지만 그걸 상징계 바깥(전상징계적. 물론 기호들이 침투하지만요) 놓기에 어떤 면에서는 상징계 질서를 일부 인정하지만
들뢰쇠즈의 차이에 기반한 탈영토화 재배치화는 그 권력장(상징계) 내부 자체에서 질서의 결함을 보이며 전복을 꾀한다는 점에서 상징계를 재의미화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면서도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ㅇ[차이와반복]중에 예도님이 주요하게 짚어주는 부분은 재현표상과 이미지의 차이군요. 칸트/헤겔과 베르그송/들뢰즈의 인식론상의 구별이라 여겨요.
ㅡ끝부분에 들뢰즈가 라캉에게 비판적인 이유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비판의 이유로 라캉의 기표의사슬 혹은 언어(문자)개념으로 뒤덮힌 의미화연쇄에서 주체의 인식(상징계에서)에 대하여, 들뢰드는 실재는 현상이고 그 현상은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들었습니다.
ㅡ제가 아는 이해로 봤을때는 라캉의 이야기가 과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어도, 들뢰즈의 주장처럼 인식과 실재 사이의 현상은 이미지라는 취지는 적절하지 않다 여겨요.
ㅡ생명체는 자신의 지각/인식에 있아서 이미지와 언어(개념)으로 한다고 볼 수 있지요. 1차적으로요.. 그러나 언어를 통해 진화한 현대인의 경우, 언어로 사유한다고 보게 됩니다. 일부 자폐아 등의 경우에 이미지 사고를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요.
ㅡ무엇이 진리냐가 아니라, 기존의 표상과 재현의 철학에 어떤 대안을 가질 수 있느냐로 질문을 바꾼다면, 이미지를 통한 사유와 표현은 현실적이지도 적절한 대안일 수 없다 여겨요. 즉 언어개념을 이미지로 바꾼다고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ㅇ불교의 경우, 산자나띠/아비자나띠 란 개념이 있는데, 전자는 상(이미지와 언어개념)으로 보는 것, 후자는 여실히(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하지요. 용법은 "산자나띠 하지 말고, 아비자나띠 하세요."라 합니다.
ㅡ고타마의 경우, 이미지와 언어를 구별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지요.
ㅡ불교수행에서 중시하는 바는, 범주화 혹은 구별/분별에 있어요. 이미지든 언어든 개념화된 것을 상온이라고 하는데, 이마저도 허상인 자아라 여기지요.
ㅇ이젠 상식으로 볼 수 있는, 실재는 없고 현상뿐이다에서, 전개된 논의는 현상도 없고 인식뿐인가?로 넘어가고 있는 듯 해요. 다른 표현으로는 실재와 현상, 인식이 모두 같다는 말이 되지요.
ㅡ현재 제 생각으로는 베르그송/들뢰즈의 이미지 개념이 단단해 보이진 않아요.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로부터출발한 미디어중심문화에서 언어중심적사고관은 더이상.. 보편적으로통하지않는것 같아요 라캉을 좋아하긴 하지만.. 들뢰즈가 인터넷 가상영역에서 확실히 더 잘 들어맞는구석이 있어서 신기하긴 하네요
ㅇ좀 다른 생각은 어때요? 베르그송의 이미지를 그림이미지(오감)와 언어(개념)이미지를 포함한 것으로 보는 방법이지요. 즉 베르그송의 이미지는 감각과 지각과정에서의 어떤 것을 상정한다고요.
ㅡ그림이미지가 동영상(시청각)매체, 개념이미지는 언어(말문자)매체로만 본다면, 김샘의 이야기가 적절하겠어요.
ㅡ제가 알기로 뇌신경과학쪽에서 이 단계는 1차감각으로 보더군요. 2차공감각단계부터는 사실상 언어개념으로 생각한다고 보더군요.
ㅡ즉 그림을 통한 생각과 언어를 통한 생각으로 나눈다면, 전자는 동물과 자페아, 후자는 언어와 함께 소통하는 일반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지요.
ㅡ그렇다면, 유튜브나 음악미술까지 개념적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여겨요. 개념적 생각은 문자언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어요.
ㅡ제가 문제제기하는 바는 결국 2차 공감각 이후의 인간의 개념사슬을 1차 이미지(감각범주과 개념범주)에서의 감각선호를 통해 해결되기 어렵지 않느냐의 문제제기를 담고 있어요.
ㅇ또하나는 동영상과 글자매체는 그 매체의 특성의 문제로 구별하기 보다는, 정보와 전달측과 이를 이해하고 수락/거부하는 측간의 소통에서 어떻게 차이나는가를 보는게 좋을 듯 해요. 루만이 고민해둔 주제지요.
@@TaegyoonKim 네 제가볼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들뢰즈가 이미지 또한 언어처럼 코드화 개념화될수있는 영역으로 보았다고 생각되서요 들뢰즈의 이미지는 지각활동 그 자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개념화또한 동시에 이룰수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들어 더욱 각광받는것은 아닐까 싶어요 저희가 실제로 진행하는 연구도 이런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희는 이미 이미지가 문자와 동일하게 2차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까지 매개되고 있다고 봐요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상징적 상호작용이랄지. (미디어인류학 학생입니다)
@@seiikim7892 ㅇ그렇군요. 견문이 좁아서.. 다만, 들뢰즈가 라캉의 기표(문자, 상징) 사슬을 비판한 대목을 두고 말씀드린 바라, 그 비판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요.
ㅡ만약 들뢰즈가 제 이해를 넘어 이를테면 개념적 생각을 그치고 감각차원의 이미지(생각)으로 살아라 고 한다면, 고타마의 조언과 맥을 같이 할 듯 해요.
ㅇ2차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전제로, 이미지를 통한 생각이나 이를 통한 상호작용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다만 대단히 특별할 것이라 보지요. 예술쪽 같은.. 혹은 개인의 심리차원 정도 ..
ㅡ일반적인 소통에서 본다면, 라캉이 짚어낸 언어의 사슬이 가진 위력이 비판받기 보다는 비중있게 보아야 하지요.
ㅡ들뢰즈는 초인을 기대하는 듯 해요. 제 문제의식중 하나는 그러한 깨달은자이외에 평범한 일반인의 소통과 변화와 성장을 고민하고 있지요.
ㅇ문화인류학은 접했는데, 미디어인류학이 있겠군요.
ㅡ미디어를 공부하시면 기회되시면 루만의 소통이론을 살펴보시길.. 아실수도 있겠어요.
@@seiikim7892 ㅇ좀더 생각해보니 쟁점으로 문제꺼리로 놔둘 필요가 있겠어요.
ㅡ제가 배우기로는 말씀드린대로, 인간은 언어로 생각한다고 배웠거든요. 몸짓(제스츄어)은 보조적이거나 이전의 방식으로 배웠지요.
ㅡ한참전부터 '이미지정치', '이미지 표현' 등의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샘이 이야기한 이 충분히 짚어볼 만한 주제겠어요.
ㅡ결국 소통이 개인의 마음(심리적체계)를 자극하여 어떤 생각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낳으니 의미/효과도 있겠네요.
ㅡ견문을 좀더 넗혀 고민할 수 있는 자료나 개념어, 작자를 알려주시길..
감사합니다